[김종구 칼럼] 5년 뒤, 대한민국 대통령의 복지사과문

2009년. 일본 복지당의 기세는 대단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무료화하겠다고 했고, 유류세를 인하하겠다고 했다. 중학교 이하 모든 학생들에게 1인당 월 2만6천엔(약 32만원)씩의 아동수당을 주겠다고 했다. 최저연금제 공약은 개중 압권이었다. 모든 은퇴자에게 1인당 월 최저 7만엔(85만원)의 연금을 주겠다고 했다. 무차별 복지 공약 앞에 적수가 없었다. 유권자들은 복지당에 230석을 줘 1당 자리를 부여했다. 복지당이 거덜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는 일찌감치 포기됐다. 유류세 인하도 실현되지 못했다. 아동 수당도 시행되지 못했다. 급기야 복지당의 핵심 공약이었던 최저연금제마저 지난 6월 포기됐다. 대신 세율을 5%에서 10%로 높이는 정반대의 정책이 시작됐다. 그리고 어제 치러진 총선에서 복지당은 유권자들의 싸늘한 눈총을 받으며 과거 소수당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모레 치러질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도 복지 선거다. 박근혜 후보는 135조원짜리 복지를 내놨다. 4대 중증 환자 100% 건강보험 보장, 65세 이상 임플란트 건강 보험 적용, 국ㆍ공립 어린이집 확충, 월 20만원 노인 연금 도입,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문재인 후보의 약속도 192조원짜리다. 환자 본인 부담 연간 100만원 상한제, 임신ㆍ출산에 필수적인 의료비 전액 지원, 국ㆍ공립 어린이집 시설 기준 확충, 기초 노령 연금 2017년까지 2배 인상, 장기 공공임대주택 확대. 누가 되든 복지 천국이다. 애 낳을 때 돈 주고, 유치원ㆍ학교 다닐 때 돈 주고, 실업자 돼도 돈 주고, 은퇴해도 돈 주고, 몸 아파도 돈 준다고 한다. 없던 항목은 새로 만들고, 있던 항목은 두 배로 올리고, 일부만 주던 항목은 모두에게 준다고 한다. 바야흐로 살 맛 나는 대한민국이다. 이쯤 되면 오는 19일(대통령 선거)은 신바람 나는 선택이어야 하고, 2월 25일(대통령 취임)은 신바람 나는 취임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공약을 듣던 주부 A에게서 비웃음이 나온다. 저게 되겠어? 돈은 어디서 만들 거냐고. 그 설명을 해야지. 코미디 같은 얘기다. 저마다 내세우는 재정 개혁? 2013년은 쥐어짜서 얼기설기 맞춘다고 치자. 쥐어짤 항목이 없어진 2014년은 어쩔 건가. 2015ㆍ2016ㆍ2017년은 또 어쩔 건가. 더구나 두 후보의 복지 약속은 점진적 확대다. 쏟아 부을 예산이 해마다 커지게 돼 있다. 그들이 말하는 재정 개혁으로는 2015년 이후가 설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정책의 미스매치(부조화)라며 외면하고 있다. 이마저 검증 기회를 빼앗았다. 박 후보는 11일에야 재원조달 방법을 공개했다. 문 후보도 9일에서야 발표했다.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가 시작되던 시점이다. 이어 국정원이 어떻고, 신천지가 어떻고 하는 네거티브전이 시작됐다. 선거의 막판은 매번 이랬다. 이걸 몰랐을 선거꾼들이 아니다. 바로 그 타이밍에 복지 발표를 끼워 넣은 것이다. 밑천 드러날 복지 재원 검증은 안 받겠다는 의도다. 이제 선거는 그들의 작전대로 검증 안 된 복지공약에 의해 마무리돼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누가 되든 앞날은 같다. 이념과 세대갈등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그 자리에 복지공약의 기억만 또렷이 남을 것이다. 그러면서 출산비 독촉, 유치원비 독촉, 교육비 독촉, 실업수당 독촉, 노인연금 독촉이 시작될 것이다. 약속대로 잘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아니 없다. 경제력의 한계가 곧 복지의 한계라는 동서고금의 상식을 깼던 복지공약은 늘 그렇게 끝났다. 어제, 일본의 복지당이 손을 들었다. 세계 경제 3위 대국의 기브 업(포기)이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그런 복지당이 등장하려고 한다. 세계 경제 15위의 한국이 어떻게 버틸 것인가. 슬프지만 상상되는 장면이 있다. 2017년 어느 날-혹은 이보다 빨라진 어느 날-, 박근혜ㆍ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한다. 국민 여러분, 날로 침체하는 국내 경기와 급변하는 국제정세 때문에 저의 복지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5년 뒤, 대한민국 대통령의 복지사과문]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경기도는 없다

2000년 11월 7일. 세계의 시선이 플로리다로 모아졌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의 운명이 걸린 개표였다. 580만명이 투표한 이 지역의 투표 결과는 537표 차이. 앨 고어가 재검표를 요구했고 투표함이 법정으로 옮겨졌다. 한 달여를 끈 뒤 연방 대법원은 부시의 손을 들어줬다. 전체 득표수에서 지고도 당선된 역대 세 번째 대통령이었다. 플로리다가 갖고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다. 매번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가 결정했다. 플로리다의 경제력을 보자. 관광 인프라가 세계 최고다. 매린랜드, 케이프커내버럴, 세인트 오거스틴, 마이애미, 템파 등이 다 플로리다에 있다. 원래 농목축업이 주 산업이다. 오렌지와 포도 생산량이 미국 최대다. 언제부턴가는 공업 인프라도 집중됐다. 식품가공에서 화학, 제지, 인쇄제본, 기계 금속까지 다 몰려 있다. 국립 박물관과 케네디 우주센터도 여기 있다. 플로리다는 미국 남부의 잘 사는 서열 1위다. 우리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정도로만 알고 있는 플로리다州. 그곳은 대통령 선거를 쥐락펴락한 대가로 미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무서운 동네였다. 무너지는 플로리다의 꿈 한국 대선이 13일 남았다. 몇 달 전부터 이런 얘기를 썼다. 경기도가 중심이 돼야 한다 경기도에서 몰표가 나와야 한다 경기도에 도움 줄 후보를 찾자. 때론 이쪽에서 욕 듣고, 때론 저쪽에서 욕 듣고, 때론 양쪽에서 욕 들었다. 그런데도 고집을 펴온 데는 이유가 있다. 경기도를 한국의 플로리다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경기도가 한국의 스윙 스테이트가 되길 바라서였다. 그러면 규제도 풀리고, 실업자도 줄고, 음식점도 잘 될 거라고 믿어서였다. 근데 바뀌지 않았다.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여론 조사는 여전히 두부 모판 자르듯 황금분할 되고 있다. 머리 좋은 후보자들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수도권은 이번에도 영양가 없다. 충청도로 가고 부산으로 가자. 박근혜 후보가 그랬다. 수도권부터 훑으며 공약을 내놨다. 고덕산업단지를 활성화시키겠습니다(평택). 젊은 도시로 만들겠습니다(오산). 명품 관광도시로 발전시키겠습니다(수원). 지하철을 연장하겠습니다(김포). 아시안 게임 지원하겠습니다(인천). 누구는 이런 약속들을 지역 맞춤형의 깨알 같은 공약이라고 추켜 세웠다. 뭐가 지역 맞춤형이고 뭐가 깨알 같다는 건가. 정작 나올 게 안 나왔다. 수도권 규제를 확 풀겠습니다라는 딱 한마디, 그걸 안 했다. 고덕 산단 활성화? 젊은 도시 건설? 명품 관광 도시 발전? 규제만 풀면 절로 되는 일들이다.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안 한 거다. 충청도 눈치 보고 부산ㆍ경남 눈치 보느라 부러 빠뜨린 거다. 문재인 후보도 그렇다. 충청도에 가고, 광주에 가고, 부산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했다는 말들이 이상하다. 수도권의 나 홀로 공화국은 정의롭지도 못하다(부산 유세). 수도권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새누리당의 DNA다(충북 유세). 경기도민들 속 뒤집어 질 소리다. 몇 달 전만 해도 경제수도론을 얘기했던 그다. 애매모호하던 박 후보와 달랐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그런데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돌변했다. 수도이전 냄새 물씬 풍기는 2002년의 톤으로 다시 돌아갔다. 지난 10년간 정부청사 뺏기고 공기업 뺏겼다. 더 뺏길 것도 없는 경기도다. 그런데도 또 이런다. 아마 문 후보도 박 후보처럼 아랫녘에 승부를 건 모양이다. 수도권 규제는 계속될 듯 억장이 무너진다. 누구 하나라도 다 풀겠습니다라고 해주면 고마울 텐데. 일부라도 풀겠습니다라고라도 해주면 고마울텐데. 그런 후보는 없다. 그저 세종시를 챙겨간 2002년의 충청도가 부럽고, 신공항과 해수부 청사를 챙겨갈 2012년의 부산ㆍ경남이 부러울 뿐이다. 이러는 사이 어영부영 다 왔다. 이제 받아들여야 할 때다. 2012 대선에도 경기도는 없었고, 2017년까지 수도권 규제는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달랑 남은 열사흘 가지고 어찌해 볼 도리도 없다. 경기도가 한국의 플로리다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힘없는 글쟁이의 황당한 망상이었던 듯 싶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경기도는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삼성 축구단 사용료 1원도 깎으면 안 되는 이유

협약서 제2조다. ①1단계 사업으로 을(삼성전자)은 부지의 지상에다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를 할 수 있는 43,000석 규모의 전용 축구장 1개와 보조 경기장 1개, 훈련구장 3개, 보조시설(주차장, 헬리포트) 등을 운동장 조성 기본 계획에 맞추어 조화 있게 설치한다. ②2단계 사업으로 갑(수원시)은 잔여 부지에다 마스타플랜에 의한 1단계사업을 제외한 시설물을 설치한다. 수원 제2종합운동장 조성사업 협약서가 제목이다. 1996년 7월 12일에 서명됐고 서명인은 수원시장 심재덕과 삼성전자(주) 부회장 김광호다. 1998년 11월 30일, 이 협약서가 휴짓조각이 된다. 이때의 제목은 수원축구전용경기장 조성사업 변경 협약서다. 96년 7월 12일 체결된 수원 제2종합운동장 조성사업 협약서는 본 협약서로 대체한다로 시작한다. 282억원은 을이 부담하여 토목공사와 일부 건축 기초공사 및 전용 경기장 기본 설계와 실시설계를 완료한다. 을이 지정한 삼성물산 측으로 하여금 본 협약 체결과 동시에 건축 기초 공사를 시행토록 한다. 이 282억원이 십수 년 뒤 삼성의 기부금으로 둔갑하는 바로 그 돈이다. 96ㆍ98년 협약서 읽어야 A4용지 3장짜리 이 협약파기서부터 경기도민과 수원시민의 고통은 시작됐다. 10세 아동부터 80세 노인까지 나섰다. 1인 1의자 갖기 운동에 시민들의 푼돈이 모였다. 하지만 3천억원은 너무 컸다. 경기장도 없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조롱이 이어졌다. 결국 나선 게 정부와 경기도다. 도민이 1천430억원, 시민이 953억원, 정부가 440억원을 냈다. 삼성이 떠난 자리는 그렇게 메워졌다. 하필 그때 사회부장이었다. 공무원들의 낙담한 표정을 봤고, 시민들의 한 맺힌 원성을 들었다. 특히 생생한 게 싸늘히 돌아서던 삼성의 뒷모습이다. 돈 없어서 못 합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 삼성이 철저하게 돌아섰다. 그 해 매출 20조 841억원. 연매출 3천900만원(1969년)으로 시작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의 몸집을 갖춘 게 공교롭게 그 해다. 경실련이 돈 없어서 못 한다더니라고 따졌지만 무시됐다. 누구는 삼성이 이럴 수 있느냐고 비난했고, 누구는 삼성을 이해해야 한다며 옹호했다. 그런데 이쪽도 저쪽도 한가지 결론은 같았다. 삼성이 그냥 입 닦고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가 나아지면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것이다. 이게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 확인되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축구장의 위기는 2002 월드컵 이후부터였다. 누적적자만 수십억에 달했다. 많은 이들이 이 때도 삼성을 쳐다봤다. 하지만 삼성은 또 외면했다. 적자를 메운 건 도민의 돈(60%)과 시민의 돈(40%)이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삼성 축구단發 축구장 얘기가 나돈다. 매년 내는 축구장 사용료 7억원이 비싸다. 깎아 달라. 수원시가 축구를 죽이고 있다. 2012년만 떼어 놓고 보면 이 말이 맞다. 프로야구 10구단에겐 야구장을 공짜로 쓰라고 내줬다. 그런데 바로 옆 축구장에선 매년 7억원씩 받고 있다. 형평성을 잃은 행정이다. 삼성축구단을 지켜온 서포터즈들에겐 백번 흥분할 일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입 닫고 있는 고약한 기술이 있다. 2012년의 7억원 얘기만 뿌려댄다. 시민을 들뜨게 했던 1996년의 3천억원 약속은 숨기고 있다. 시민을 분노하게 했던 1998년의 3천억원 파기는 덮고 있다. 균형있는 토론이 먼저다 혹세무민 아닌가. 2012년을 얘기하려면 1998년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료 7억원을 얘기하려면 파기된 3천억원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수원시의 형평성을 얘기하려면 삼성의 도덕성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론의 시작은 인터넷 공간이 아니라 삼성의 공문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균형과 격식이 갖춰지지 않은 협상으로는 단돈 1원의 사용료도 인하하면 안 된다. 그게 원칙이다. 이를 어기는 시장이 있다면 그 시장은 그 자리부터 내놔야 하는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삼성 축구단 사용료 1원도 깎으면 안 되는 이유]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大選, 경기도가 중심되긴 다 틀렸다

2007년 1월. 이천 시민들이 모였다. 칼바람 속에 만장(輓章)이 나부꼈다. 놋그릇에 담긴 찬물을 마시는 대열 사이로 구호가 이어졌다. 구리는 인체에 아무런 피해가 없다.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막지 마라. 조병돈 시장이 삭발하고 이규택 의원이 삭발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날, 정우택 충북지사(현 새누리당 최고위원)가 기자회견을 했다. 하이닉스 청주공장 이전으로 국가 균형발전은 물론 충북도가 반도체 산업에 중심지가 될 것이다. 2011년 11월 16일. 과천 시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했다. 여인국 시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투표였다.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 계획에 서명했다는 게 이유다. 최초 서명일인 5월 17일에 시작된 파행은 6개월이나 계속됐다. 투표율이 33%에 미달하면서 시장은 복귀했다. 하지만 시민과 시민, 시민과 시장 간에 벌어진 간극은 봉합되지 않았다. 여 시장의 8년 공화국을 만신창이로 만든 근본적인 이유, 그건 세종시로 빼앗긴 청사 이전의 후유증이었다. 나머지 동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성남에서는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LH(주공+토공), 한국도로공사 등이 줄줄이 떠났다. 상권이 무너져 내렸지만 나주로 가고, 대구로 가고, 진주로 가고, 김천으로 가는 이삿짐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농촌진흥청, 국세공무원교육원 등 10여 개 기관을 전라도로 보내고 제주도로 보내는 수원의 상권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에서만 52개 공기업이 이렇게 떠났고 12개 시군이 힘들어졌다. 경기도 공약 안 찾는 경기도민 이천 시민이 길거리로 나선 이유? 과천 시민이 시장을 탄핵한 이유? 성남 수원 시민이 상가 문을 닫아건 이유? 간단하다. 기업 지방 이전 정책이고,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 정책이고,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이다.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으로 통칭되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무지막지한 포탄은 갑자기 날아든 게 아니다. 장약(裝藥)부터 탄착군(彈着群)까지 미리 예고됐었다. 2002년 대선판을 보면 다 나와 있다. 하이닉스 증설 억제, 과천 청사 이전, 농촌 진흥청 이주. 다 있다. 이천 과천 성남 수원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들어 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이상했다. 그런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이겼다. 경기도를 지키겠다던 후보보다 6.47%나 더 얻었다. 전국 차이가 2.3%였으니 경기도 차이 6.47%가 승패를 가른 꼴이다. 한 마디로 경기도의 선택이었고 경기도 유권자의 자업자득이었다. 10년 전 과거사가 아니다. 그때 그 공약이 2012년 경기도를 옥죄고 있다. 16대 대선 때의 얘기가 아니다. 그때 그 경기도 외면 분위기가 18대 대선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부산에 간 박근혜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 해수부를 신설하면 청사는 부산에 두겠다. 해양도시 인천에서는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전주와 진주에 간 문재인 후보가 말했다. 토지주택공사를 이곳(전주 진주)으로 옮기겠다. 그 사무실을 빼앗긴 성남에는 아무 얘기도 안 했다. 안철수 후보측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를 이전하겠다. 장소는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 다 가고 달랑 남은 게 청와대인데 그마저 빼겠다는 얘기다. 유력 후보라는 세 사람이 지금 이러고 다닌다. 경기도 공약 안 내는 대권후보 바보다. 경기도 유권자가 바보다. 反 경기도 공약을 겁 없이 떠드는 후보들을 그냥 쳐다만 본다. 경기도에 도움될 공약을 내놓으라고 추궁하지도 못한다. 경기도에 손해되는 얘기를 왜 하느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내가 세종시를 지킨 사람입니다라고 자랑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과천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야 하는 거다. 국가균형발전의 출발은 우립니다라고 자랑하는 문재인 후보에게 앞으로 5년도 또 그럴 거냐고 물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목소리가 없다.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안타깝다. 이제는 경기도가 중심에 서야 하는 건데. 경기도에 도움되는 후보를 찍어야 하는 건데. 경기도가 힘들어지면 내가 힘들어지는 건데. 경기도 경제가 나빠지면 내 회사가 부도나는 건데. 경기도 실업률이 높아지면 내 자식이 안방에 들어앉는 건데. 경기도를 생략하고 내달리는 대선 D-는 벌써 34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大選, 경기도가 중심되긴 다 틀렸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GTX는 토목이 아니라 복지다

안으로 쫌 들어가요. 안내양의 쉰 쇳소리가 아침을 가른다. 버스는 출발했지만 그의 몸은 절반이 밖에 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거머쥔 그가 비상수단을 쓴다. 배치기로 손님 밀어 넣기다. 여성으로서의 수치심 따윈 버린 지 오래다. 때를 맞춰 운전기사도 기술을 발휘한다.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며 손님들이 뒤섞인다. 이러기를 몇 번, 버스 안이 신기하게도 정리됐다. 3~4분을 간 다음 정거장에 도착할 때쯤엔 어느새 몇 사람 올라설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안내양의 절규와 여학생들의 비명, 아저씨 입에서 풍기는 어제 마셨음직한 술냄새까지. 기차 출입구에 사람들이 매달렸다. 보는 이까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인다. 기차 지붕 위의 모습은 더 아찔하다. 매 칸 수십 명씩이 올라앉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몇 분, 지붕 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인다. 어린 아이 머리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 때문이다. 철도청이 지붕 위 승차를 막겠다며 곳곳에 매달아 놓은 장치다. 라펜디 드자민 인권노동단체 회장은 지붕 승객은 공공 운송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고 표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안전한 철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출근에 60분 걸리는 경기도민 뒤의 것은 2012년 인도네시아, 앞의 것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이다. 인도네시아의 2011년 국민소득은 3천469달러다. 대한민국의 1971년 국민소득이 3천643달러. 공교롭게 두 시기의 소득 수준이 빼다 박은 듯 닮았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로 출근하던 그때의 대한민국은 못 사는 나라였다. 매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를 피해가며 기차 지붕에서 출근하는 지금의 인도네시아도 못 사는 나라다. 무리 없이 연결되는 결론이 있다. 국민의 출근 모습이 곧 그 나라의 경제력이다. 그래서 통근 복지통학 복지(본보 2012년 6월 19일 지지대)라 썼던 거다. 한국인의 평균 통근 시간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다. 어제(30일) 발표된 한국교통연구원 이재훈 박사의 자료다. 여기 나온 한국인의 통근시간은 50분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비슷하다. 한심한 수준인데 그래도 이건 낫다. 경기도민만 떼어내 보니 60.5분까지 늘어난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적힌 답이 더 씁쓸하다. 59.5%가 직장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지 못해서라고 적었다. 돈이 없으니 원하는 곳에 살지 못하고, 가까이 살지 못하니 60분씩 출퇴근에 시달리고, 그렇게 시달리다 보니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있다. 소득이 10배 늘어난 40년 동안 그대로 멈춰 선 대한민국 경기도민의 통근 현실이다. GTX(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 얘기 하려고 이렇게 빙 돌아왔다. 사업이 답보상태인데 그 이유가 GTX의 경제성이란다. 타당성 조사가 1 이하로 나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OECD까지 나서 웰빙 지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통근 시간이다. 토목이 아니라 복지의 문제다. 복지 얘기만 나오면 사족을 못 쓰는 대한민국이 왜 통근 복지에 대해서는 유독 주판알을 튕기나. 애들 급식비 내주기는 경제성이 있어서 시작한 건가. 시작 반년 만에 포기한 보육비 지원은 경제성이 있어서 시작했었나. 3만불 시대의 복지행정에 들이댄다는 기준이 꼭 3천불 시절의 토목행정이다. MB정부, 의지 갖고 시작하길 그렇다고 GTX가 금과옥조라는 건 아니다. GTX보다 저렴한 해결책이 있으면 그걸로 해도 좋다. GTX보다 빠른 방안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게 없어 보인다. 거미줄처럼 엮여 버린 수도권 도로망이다. 더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땅 한 조각 보상에만 수억원이 들어간다. 1년 예산 몽땅 털어 넣어야 땅도 못 산다. 그래서 나온 게 땅속으로 기어들어가자는 거였다. 모두들 그거 괜찮은 생각이라며 박수까지 보냈다. 그래놓고 인제 와서 남느니 밑지느니를 따지고 있다.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저러고들 있다. 끌만큼 끌었다. 이제 시작해야 한다. 의지의 문제 아니겠나. 설마하니 3만달러짜리 이명박 정부가 기차 늘릴 생각 대신 승객 머리통 부술 돌덩어리나 매달아 놓는 3천 달러짜리 어떤 정부처럼 가겠는가. MB 정부의 마지막 넉 달, GTX에도 마지막 넉 달이 될 수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GTX는 토목이 아니라 복지다] 김종구논설실장

[김종구칼럼] 홀대마라! 세계화장실협회도 국제기구다

GCF(녹색기후기금) 유치를 위해 내 건 조건이 대단했다. 개도국 표심을 사려고 4천만 달러가 약속됐다. 각국 대표단 연수와 발전계획 수립 지원에 들어갈 돈이다. 사무국이 입주할 송도 아이타워 15개 층은 무상임대다. 대략 600만달러쯤 든다. 사무국 운영비도 매년 100만달러씩 주기로 했다. 이것도 700만달러다. 이사 오는 비용 200만달러까지 배려했다. 결국엔 GCF 유치에 5천700만달러(약 630억원)짜리 베팅을 한 셈이다. 그래도 경사스런 일이다. GCF는 회원국만 190여개국이다. 상주할 사무국 직원이 500여명이다. 기후와 날씨로 재편되는 향후 세계 경제의 컨트롤 타워다. 2020년까지 매년 조성될 기금만 1천억달러라고 한다. 경쟁국 독일의 베팅이 우리보다 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이번 유치로 3천800억원의 경제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죽음의 도시 송도가 벌써부터 들썩대고 있다. 630억원 베팅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맘 한 켠이 찜찜하다. 수원시 한구석에 버려져 있는-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WTA(세계 화장실 협회) 때문이다. GCF유치에 630억 베팅 WTA도 국제기구다. 2007년 세계 66개국이 모여 창립했다. 의미도 상당하다. 인류의 관심을 먹는 문화에서 싸는 문화로 옮겨 간 최초의 기구다. WAO(유엔식량농업기구)가 올해 발표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인구는 8억70만명이다. 이에 비해 WTA가 2007년 발표한 제대로 싸지 못하는 인구는 25억명이다. 화장실 없이 생활하며 각종 질병에 노출된 인류가 그렇게나 많다. 적어도 머릿수에 관한 한 식량기구보다 화장실 협회의 할 일이 더 많다는 얘기다. 산업, 즉 돈이라는 측면을 봐도 그렇다. 화장실욕실 관련 산업은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다. 변기, 비데, 화장지, 세척제, 타일, 환기장치 끝이 없다. 이 모든 게 화장실 문화와 관련된 산업이다. 그 전망을 짐작케 하는 일이 있다. 중국이 2011년 하이난성(海南省)에서 세계 화장실 엑스포를 개최했다. 올해는 상하이(上海)에서 주방욕실 박람회를 열었다. 세계 경제의 선도자 중국이 이처럼 화장실 산업에 혈안 되는 이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WTA가 우리 주변에 파묻혀 있다. 행정안전부 예산도 끊긴 지 오래다. 경기도가 나서지도 않는다.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11년 1월, 전 직원이 퇴사했다. 겉으로는 구조조정을 얘기하지만 결국엔 돈이 없어서다. 지금도 사무실을 지키는 건 2명뿐이다. 창립 당시 약속됐던 국제연수, 학술대회, 국제협력사업, 글로벌 캠페인 등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지금은 사무국이 있는 동네 주민들조차도 WTA가 무슨 건설회사냐고 물을 정도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창립할 때만 해도 세계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고, 경기도와 수원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을 화장실 산업의 메카로 만들어 줄 거라던 WTA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008년 하반기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뀐 다음 해다. WTA 심재덕 회장의 전화가 왔다. 행안부가 약속했던 70억원 지원금이 없어진 것 같다. 국제기구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들 이러나. 일 리 있는 호소였다. 다음날 경기도 한석규 기획조정실장에게 물었다. 세계화장실협회는 경기도 수원에 유치된 국제기구 아닌가. 도비라도 지원할 수는 없는 건가. 한 실장의 답은 간단했다. 할 수도 있다. 단 심재덕 전 의원이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정치가 버려놓은 WTA WTA가 왜 저 지경이 됐는지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추억이다. 그 후로 정부 지원금은 끊겼고, 직원들은 떠났고, 사업은 백지화됐다. 지금은 사무국 간판만 겨우 붙어 있다. 우리가 당당히 선포한 세계 화장실의 날(11월 22일)이 한 달 앞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국제기구 GCF만 얘기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라 함은 글로벌 경쟁을 뜻한다. 세계에서 싸워야 하고, 국가를 경쟁 삼아야 한다. 네 실적, 내 실적을 따지면 안 된다. 노무현 표 WTA 따로 있고, 이명박 표 GCF 따로 있지 않다. 둘 다 어렵게 유치한 국제기구고,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산업이다. GCF 유치에 쏟았던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WTA에 쏟아야 한다. GCF 운영에 쏟아 부을 돈의 100분의 1이라도 WTA에 챙겨줘야 한다. 화장실의 모든 것을 중국에 넘겨주기 싫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홀대마라! 세계화장실협회도 국제기구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500년만에 대선으로 부활한 신숙주들

황희는 1452년 세상을 떴다. 실록 졸기(卒記: 신하의 품행 등을 평가하여 적음)에는 이렇게 적혔다. 관대하고 후덕하며정대하여 대체(大體)를 보존하기에 힘쓰고중앙과 지방에서 우러러 바라보면서 모두 말하기를 어진 재상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23년 뒤 또 한 명의 재상 신숙주가 숨졌다. 졸기에 적힌 그의 후평(後評)은 이랬다. 신숙주는 인품이 고매하고 너그러우면서 활달했다. 경사를 두루 알아 의논할 때 항상 대체(大體)를 파악했고, 대의를 결단할 때는 강물을 터놓은 듯 막힘이 없었다.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다. 어진 품성에 대한 극찬이 그렇고, 대체를 파악했다는 문구까지 그렇다. 공직에 남겨놓은 이력도 차이가 없다. 황희는 2명의 왕(태종세종)을 모시며 24년간 재상을 했다. 신숙주도 2명의 왕(세조성종) 밑에서 영의정을 했다. 굳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트집 잡더라도 둘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도 역사의 결론은 정반대다. 황희는 조선 최고의 명재상이고, 신숙주는 역사 최악의 변절자다. 졸기의 평가가 같고, 살다간 이력이 같지만 역사의 평가는 이렇게 냉정하다. 그 기준의 한가운데 정통(正統)에 대한 지조가 있다. 황희는 정통 양녕대군 폐위에 폐장입유(廢長立幼)는 재앙을 부른다며 반대하다 귀향 갔다. 신숙주는 나와 함께 중국으로 갑시다라는 수양대군의 제의를 받아들여 정통 단종을 제거하는데 발을 걸쳤다. 이 두 건의 선택으로 갈라진 역사의 평가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박포(朴苞) 아내와의 스캔들이 알려져도 황희는 여전히 명재상이고, 일본 대마도주와의 담판외교가 소개돼도 신숙주는 여전히 변절자다. 통합으로 포장되는 변절 500년쯤 지난 지금, 대선(大選)판에 황희 옷을 걸친 신숙주들이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 이 사람은 엊그제까지 안철수 멘토였다. 청춘 콘서트장을 누비며 안철수 마케팅에 앞장섰다. 그 전에는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최고 브레인이었다. 선거전문가라는 닉네임을 달고 이회창, 이명박의 곁을 지켰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문재인 후보 쪽으로 건너갔다. 어깨엔 그럴듯한 완장이 채워졌다. TV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참 실없다. 문재인 후보를 두 시간 정도 만났다. 대화를 하면서 통합을 이뤄낼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합류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믿어주는 사람이 그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다. 저 사람은 호남 민주당의 거물이다. 네 번의 국회의원(11대, 131415대)을 하는 동안 늘 DJ(김대중) 곁을 지켰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이름표를 달고 청와대까지 따라 들어갔다. DJ에게 정치 민주화는 곧 박정희 대통령의 퇴진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박 대통령의 딸이다. 그런 저 사람이 박 후보에게 갔다. 역시나 완장이 채워졌다. 언제까지 동서로 갈라설 건가. 국민대통합 없이는 우리가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어렵다. 그가 한 말인데 아귀가 맞지 않는다. 독재 박정희에 맞섰던 그의 40년이 나라를 동서로 분열시킨 분열의 정치였다는 얘기가 된다. 왜 두 사람만 트집 잡느냐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사실은 이들 말고도 많다. 아무리 봐도 위장 취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안철수 후보 측 인사도 있다. 평생 민주당을 지켜오다가 엊그제 새누리당에 집단 투항한 무리들도 있다. 변절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들 역시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이 사람과 저 사람만을 붙들고 늘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두 명이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니 국민대통합위원장이니 하며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하나로 통합시킬 대단한 상징처럼 떡하니 등장해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데 말이다. 대선판에 요지경 통합쇼 두 달 있으면 선거다. 이어 논공행상이 따라 붙을 거다.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도 공(功)에 따른 상(償)이 주어질 거다. 바야흐로 민주당 출신 노(老)정객이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한 가닥 하고, 한나라당 출신 노정객이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한 가닥 하는 날이 올 거라는 얘긴데. 그걸 어떻게 봐줘야 할지 벌써 고민이다. 관대함과 후덕함으로 통합을 이뤄낸 황희? 발 빠름과 셈법으로 영화를 챙겨간 신숙주? 답이 뻔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답지 않은 걸 문제랍시고 던져본다. 지금 대선판의 통합 쇼가 그만큼 요지경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500년만에 대선으로 부활한 신숙주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작은 얘기, 하나- 수원시청 이○자 상담사님

꺼리도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031-228-2114를 눌렀다. 감사합니다. 수원 해피콜센터입니다. 화성문화제 전야제가 어디에서 하는지 알고 싶은데요. 담당 부서를 연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제가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전화기만 들면 급해지는 성격이다. 바로 끊었다. 카카오톡 검색을 통해 용연이라는 지명을 확인했다. 그리고 몇 잔의 술이 돌았다. 소란스런 분위기에 받지 못한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1899-3300. 수원시청 콜센터다. 전화가 왔었다고 하자 우리 쪽에서 전화한 모양인데 저는 아닙니다라고 한다. 그대로 전화를 끊었고 5분여가 또 흘렀다. 1899-3300이 다시 찍혔다. 전화를 받자 조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화성문화제 전야제 장소를 문의하신 분 맞으시죠?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려 죄송합니다. 장소는 용연입니다. 방화수류정 근처인데 가시는 길은 아십니까. 왠지 몰랐다.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말미에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수원시청 이○자 상담사였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끝까지 전화 걸어 안내 마무리 첫 번째 전화가 오후 4시 28분이고 마지막 전화가 오후 4시 42분이다. 이○자씨는 담당 직원도 아닌 상담사(교환원)다. 그런데도 14분 동안 두 번의 전화를 했고 끝내 얼굴도 모르는 시민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지켜보던 일행이 얘기했다. 지금 그거 교환원이냐. 교환원이 그렇게까지 해주느냐. 대단하다. 이○자 상담사 덕에 그날 그 자리에서 수원시는 친절한 수원씨가 됐다. 너나없이 야단법석이다. 친절도에 목매고, 청렴도에 목숨 건다. 민선(民選) 이후 더 극성이다. 해마다 매겨지는 점수에 시장들이 울고 웃는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친절도는 마음이고 청렴도는 생활 자세다. 이걸 숫자로 점수 내고 등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청렴도는 그렇다 치자. 감옥 간 공무원 머릿수 세고, 감사 적발된 공무원 벌점 계산하면 대충 계산이 선다. 그러나 친절도는 아니다. 친절(親切)을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돼 있다.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정겨운 정도와 고분고분한 정도를 점수로 측정한다는 얘긴데. 그런데도 여기서 점수를 따겠다는 시장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안산시는 지난 7월 전화 친절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민원상담 콜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다. 이 조례가 시행되면 전문 상담원이 친절해질 거라고 자랑한다. 의정부시는 이름도 생소한 마스터코칭 시스템이란 걸 도입했다. 통화내용을 전부 저장하는 기능이다. 녹음을 들으며 음성과 어감, 언어까지 교정한다고 한다. 5급 이하 직원 2천200명을 대상으로 반년 간의 평가를 시작한 수원시도 있다. 모든 게 돈 들어가고, 품 들어가는 일이다. 들여다보면 그게 그거다. 전화 응대 매뉴얼이란 게 뻔하다. 네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런 문구가 적힌 종잇조각이 책상 유리 속에 끼워져 있다. 이걸 달달 외워서 앵무새처럼 얘기하는 공무원이 상(償)을 받는다. 이 역시 난센스다. 녹음기 틀듯 반복되는 그 매뉴얼에서 무슨 감동이 나오겠나. 오죽하면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전화 상담원)-언제 봤다고? (전유성)(이외수著 절대강자중에서). 지금 돈 들이고 품 팔아가며 시키는 시군의 전화교육이란 게 다 이런 거다. 매뉴얼 아닌 가슴이 하는 친절 방향이 틀렸다. 진정한 친절은 민원인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거다. 시민이 전화했을 땐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만족시켜 줄 때 친절은 완료되는 거다. 부서(科)를 물으면 담당(人)까지 연결해주고, 절차(節次)를 물으면 서류(書類)까지 보내주고, 시(時)를 물으면 분(分)까지 일러주는 게 친절이다. 민원인이 끊었지만 다시 연결하고, 그 연결이 실패하자 다시 전화하는 것. 그렇게 해서 용연에서 8시에 시작됩니다라고 안내해주고서야 비로소 끝내는 것. 이게 친절이다. 매뉴얼로 전달하는 친절은 점수를 주지만, 가슴으로 전달하는 친절은 감동을 준다. 이○자 상담사님이 그날 가르쳐준 교훈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작은 얘기, 하나- 수원시청 이0자 상담사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외국인 학교 부정입학, 99%는 또 아프다

모두들 그 사람 그럴 사람이 아니야라고 했다. 경기도청 공무원으로 살아온 A의 평판이 그랬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계속됐고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밖으로 알려진 그의 범죄 사실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의자는(특기자인) 아들의 과외 레슨비로 매달 60만원씩 모두 4천800만원을 받고혐의다. B는 다들 부러워하던 교수 출신이었다. 3년전 퇴직 때까지는 그랬다. 그 후부터 혼자 살았다. 아들과 딸의 미국 유학을 위해 재산과 아내까지 보냈다. 그런 그가 혼자 살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홀로 남은 외로움에 술을 많이 마셨고 결국 쓰러진 것 같다고 발표했다. 광주發 뉴스 제목은 기러기 아빠,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이었다. 왜들 이렇게 살아가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500만원짜리 강남 과외는 못 시킨다. 하지만 50만원짜리 동네학원이라도 보내려 한다. 대학에 가라고 잔소리하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다. 별장 같은 집까지 얹어주는 호화유학은 보낼 순 없다. 하지만 내 집이라도 팔아 유학 경력은 붙여 주려 한다. 그래야 영어 스펙이 판치는 세상에서 기죽지 않고 살 것 같아서다. 사교육비 40조원 시대를 사는 99%의 아버지들이 이렇다. 유학비 15조원 시대를 사는 99%의 어머니들이 이렇다. 모든 걸 주고 떠나도 좋은 가시고기 인생들이다. 이들에게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이 아니라 인골탑(人骨塔)이다. 1% 특권 세습하려는 범죄 그런데 이 99%의 인내를 폭발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돈자랑도 부족해 불법까지 뒤섞어 특권을 세습하려던 일부 1%의 얘기다. 외국인 학교를 보는 시선은 안 그래도 곱지 않았다. 외국인 학교로 허가 냈는데 내국인이 넘쳐나는 것도 이상하다. 대학보다 비싼 연간 5천~1억원을 내며 귀족학교 티 내는 것도 역겹다. 국민 혈세 지원받아서 부유층 뒷바라지하는 꼴이니 불합리다. 학사도 멋대로 경영도 맘대로인 운영체계도 희한하다. 결국 돈과 특권이라는 두 개의 화두로 귀결되는 얘기다. 이러던 외국인 학교가 99%의 분통을 제대로 건드렸다. 국적 위조, 시민권 위조를 통해 부정입학을 해왔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는 실상이 어처구니없다. 멀쩡한 한국 아이의 국적이 시에라리온(Sierra Leone), 온두라스(Honduras), 과테말라(Guatemala)로 돼 있다. 브로커들이 위조한 이런 서류들이 입학원서랍시고 제출됐다. 그리고 멀쩡히 통과돼 합격했다. 이런 능력과 배짱을 부린 능력자들이 누굴까. 대충 흘러나온 면면이 이렇다. H 자동차 전 부회장의 며느리, 국내 굴지의 로펌 소속 변호사, 대기업 상무 부인, 골프장 소유주, 투자 업체 대표. 수사 대상 60여명 중 몇몇만 들었는데 이 정도다. 1%의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이다. 다 들통난 이 순간에도 병원에 누워 수사특권을 기대하는 이도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불법 입학으로 얻으려 한 게 뭘까. 외국인 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국외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토익 준비한다며 밤새워 공부할 필요 없다. 이런저런 자격 만든다며 맘고생 할 필요도 없다. 외국인 학교 졸업장이 곧 국외 대학 응시자격이다.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 국외 대학 졸업생이 되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와 1%의 특권으로 살아가려 했을 것이다. 특권의 세습이다. 부모처벌 하고 입학 취소해야 Occupy 1%(1%를 점령하라)를 외칠 생각은 없다. 돈으로 교육할 수 있는 것도 특권이다. 그 특권을 받고 태어난 것도 복(福)이다. 기회의 균등으로 한계 지어진 자본주의의 평등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하지만 이때의 특권과 복도 절대 넘어선 안 되는 울타리가 있다. 법(法)이다. 법을 벗어난 특권과 복은 죄다. 죄에는 벌이 따르는 게 순리다. 불법으로 특권을 누린 부모들은 업무방해죄로 기소돼야 맞고, 그 혜택으로 복을 누린 자녀들은 입학취소돼야 맞다. 말로만 떠들어 온 공정사회, 그 작은 시험대가 지금 검찰 손에 쥐어져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외국인 학교 부정입학, 99%는 또 아프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18대 대통령, 800만 경기 유권자가 결정하자

박근혜 후보가 경기도 기자들을 만났다. 후보 선출 뒤 첫 번째 만남이었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에게 경기도 기자들이 물어볼 얘기라야 뻔하다. 수도권 규제 철폐에 대한 구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박 후보의 대답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수도권 규제는 이해는 가지만 굉장히 민감한 부분 규제 때문에 불편을 겪으시는 분들을 위해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상충되지 않는 방향에서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도 마련하겠다. 다음날 경기일보 1면에선 박 후보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4면에 한 귀퉁이에 잡다한 정치권 소식과 함께 섞여 들어갔다. 경기일보만 이런 게 아니다. 이 신문 저 신문도 다 그렇게 다뤘다. 크게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크게 쓸 선물이 없었던 것이다. 야권의 대선판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후보 경선은 문재인 후보 쪽으로 기울고 있다. 호남+PK필승론과 수도권 필승론의 대결도 덩달아 싱겁게 끝나가는 모양새다. 부산 경선도, 충청도 경선도, 광주 경선도 전부 호남+PK의 판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도가 얘기됐을 리 없다. 야권의 또 다른 축인 안철수 교수 역시 PK다. 침묵의 선거운동을 펴는 탓에 딱히 트집 잡을 거리는 없다. 하지만 경기도 산하기관 책임자였던 그로부터도 경기도 얘기는 나온 적이 없다. 며칠 전 경기일보에 민주당발(發) 경기도 얘기가 떴다. 이해찬 대표, 이번 대선에서 경기도 중요성 강조라는 기사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뭘 해주겠다는 설명도 없었다. 밑도 없고 끝도 없기는 박 후보나 진배없다. D-두 자리로 꺾여 들어간 대선판인데도 이렇다. 또다시 꿈틀거리는 경기도 실종(失踪)의 대선역사다. 경기도는 부산의 덤이고 호남의 덤이라는 계산들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그래서 하는 얘기다. 박 후보에 대해 퇴로를 막는 가혹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규제 존속이냐 규제 철폐냐를 답하라고 강제해야 한다. 결국엔 수도권이냐 지방이냐의 질문이다. 그래도 선택을 하라며 대 놓고 윽박질러야 한다. 민감한 부분이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여주면 안 된다. 고민하겠다는 표현을 이해하고 넘어가 주면 안 된다. 지방은 그를 그렇게 녹녹히 다루지 않는다. 신공항을 내놓으라며 노골적으로 압박한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대놓고 협박한다. 호남+PK의 대선 공식에 사로잡힌 야권에도 본을 보여야 한다. 경남 양산을 근본 삼는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의 경기도 생각을 캐물어야 한다. 경기도 투자 기관인 서울대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장직을 임기 중에 내던진 이유를 물어야 한다. 경남 거제를 근본 삼는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경기도 구상을 따지고 들어야 한다. 정부청사 충청권 이전과 공기업 지방 이전을 밀어붙인 참여정부 출신이다. 그 때문에 힘들어진 경기도를 어쩔 것인지 물어야 한다. 경기도는 더 이상 주인 없는 표밭이 아니다. 몇 번의 선거를 통해 호불호의 의사를 분명한 드러냈다. 이를 증명할 빼도 박도 못할 통계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는 51.9%가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줬다. 상대 정동영 후보에게 돌아간 표는 23.55%에 불과했다. 2012년 4.11 총선에서는 52석 가운데 야권에 31석(민주 29+진보 2)을 줬다. 새누리당에게 준 의석은 21석뿐이다. 이쯤 되면 새롭게 시작되는 경기도 몰표의 역사다. 이번 대선도 그래야 한다. 경기도의 이익을 철저하게 따져묻고 그 결론이 난 쪽으로 몰려 가야 한다. 경기도 지역주의를 선동하려 함이 아니다. 1천300만 경기도민의 생존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 해소 질문에 입 닫고 버티는 대권 후보, 부산 잡아야 이긴다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대권 후보들. 이들을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 속에서 어떻게 경기도의 5년을 담보 받을 수 있겠는가. 냉철하게 물어야 하고, 꼼꼼히 따져야 하고, 혹독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래서 18대 대통령 선거를 끌고 와야 한다. 경기도민에겐 그럴만한 희생이 있었고 자격이 있고 표(票)가 있다. 한 달 평균 20개의 업체가 부도로 넘어간다. 22만명의 실업자가 길거리를 헤맨다. 한국은행 경기지부가 내놓는 경기도의 현실이다. 경기도에 잘하겠다는 사람을 고르고 또 골라야 하는 너무도 절박한 이유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18대 대통령, 800만 경기 유권자가 결정하자]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비겁한 교장 105명, 위대한 교장 1명-왜?

또 붙었다. 이번엔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문제다. 교과부는 사안이 중한 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자는 입장이다. 체벌금지 이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학교폭력에 대한 최소대책이라는 설명이다. 경기도 교육청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학창 시절 폭력 사실을 기록에 남기는 것은 학생의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교과부는 올 대입전형부터 시행하라고 밀어붙였고, 교육청은 200시간 비상근무로 맞섰다. 그런데 결말이 싱겁다. 금방 끝났다. 올 수시전형 모집에 쓸 학생부 기재 마감일(8월 31일)까지 99개 학교가 기재를 마쳤다. 교과부가 나머지 7개교에 대해 3일까지 기재하지 않으면 교장 교감 해당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여기서 6개 고교가 추가로 기재했다. 대상학교 106개교 가운데 교육부 입장을 따른 학교는 105개교다. 용인의 A고교 한 곳만 교육청의 입장을 지지하며 학생부 기재를 거부했다. 잠자코 있을 경기도 교육청이 아니다. 교과부가 감사 등 강압으로 학교현장에서 학생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교육자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짓밟고 있다라며 교육부를 맹비난했다. 105명의 교장들이 교과부 협박 때문에 기재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교장 105명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학생의 인권을 짓밟는 일을 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A고교 교장 한 사람만 불이익에 맞서 학생인권을 지켜낸 구세주가 됐다. 교장 105명의 명예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는 논리다. 학생부 기재 교장을 비겁자 취급 한번 보자. 문제 된 106개교 학생 폭력의 내용은 누구도 본적 없다. 누가 누굴 때렸는지, 어떤 학생의 어디가 부러졌는지, 빼앗긴 돈은 또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교과부 책상 속과 교육청 서랍 속에만 있다. A시 B학교 C군이라는 표기법을 쓰면 인권을 다치지 않아도 될 일인데도 안 보여주고 있다. 혹 폭력 내용을 여론에 그대로 드러내면 불리해지는 쪽이라도 있는 걸까. 이런 상태를 덮어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니 이것도 참 코미디다. 공소사실은 밀봉해놓고 유죈지 무죈지 적어 내라는 격이다. 이런 깜깜이 속에서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06명의 교감선생, 교장선생이다. 이들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코피로 범벅된 교복이 있었다면 그 현장을 봤을 거고, 학부모가 쫓아왔다면 그 봉변을 몸소 겪었을 거다. 어쩌면 지금도 처벌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피해자 측 닦달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교장 교감 105명이 학생부 기재를 결정했다. 아무려면 별것도 아닌 내용을 교과부 협박때문에 기재했겠나. 이야말로 교육자의 자존감을 뭉개는 소리다. 어디에 보니-9월 3일자 모 언론- 일본도 학생부 기재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교과부에 반박하는 예로 들었던데, 역시나 어불성설이다. 애들 맞아 죽게 놔 두자는 얘기? 바로 며칠 전-8월 16일- 일본 시가(滋賀)현 오쓰(大津)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시 교육위원회 교육장실에서 시와무라 겐지(澤村憲次65) 교육장이 한 대학생(19남)이 휘두른 망치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오쓰시에서는 지난해 10월 중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숨진 학생이 친구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한 정황이 분명했지만 교육 당국은 자살과 이지메의 인과관계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 대학생은 교육 당국의 진실 은폐에 분노해서 테러를 했다고 밝혔다. 이게 일본의 교육 현실이다. 뭘 배울 게 있다고 일본도 안 하니 우리도 하면 안 된다며 근거로 삼나. 지금도 매 맞는 아이는 있고 돈 빼앗기는 아이는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아이도 있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도 있다. 집단으로 몰려가 성폭행하는 아이가 있고 그걸 숨기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다. 이런 현장에서 정도가 심한 폭력만이라도 기록에 남겨 다른 폭력을 경계 삼자는 얘기다. 이게 왜 공무원 수백명이 밤을 새우며 전의를 불태울 일이고, 교육부 장관 물러나라며 탄핵할 일이며, 교장 105명을 인권과 자리를 맞바꾼 비겁자로 만들 일인가. 무상급식 논란 때 반대론자들을 향해 이렇게들 말했다. 그러면 애들을 굶기자는 얘기냐. 그 어법을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 반대론자들에게 적용하면 이렇다. 그러면 애들 맞아 죽도록 놔두자는 얘기냐. 논리비약이라고 뭐라 할거 없다. 지금 이 말이 틀렸다면 그때 그 말도 틀린 것이고, 그때 그 말이 맞았다면 지금 이 말도 맞는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비겁한 교장 105명, 위대한 교장 1명-왜? ]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사형 폐지론자들에게 묻는다 “이게 인권인가”

○○○○번 면회! 교도관이 그를 불렀다. 직감적으로 사형집행을 눈치 챈 듯했다. 벌떡 일어선 그가 뺑끼통(변기통) 뒤로 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곤 얘기했다. 야, 나 없다고 그래 정치주먹 천하(1978유지광 著)에 소개된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이다. 저자 역시 사형수 출신이다. 극적인 감형 덕에 살아남은 주먹이다. 그래선지 목숨 앞에 약해지는 사형수들의 얘기가 유독 많다. 교도관들이 몰려 와 면회!를 외칠 때마다 사색이 되는 사형수, 사형 확정 한 달 만에 머리가 백발로 변해버린 사형수, 형장으로 가는 길에 자기가 기르던 새를 바깥 세상으로 날려 보낸 사형수. 이제는 모두 소설 속 이야기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 93년 사형이 확정된 원○○이후 58명의 사형수가 여전히 살아있다. 사형미집행 급증은 필연적으로 사형 공포의 반감을 가져왔다. 사형 집행은 사실상 없어졌고, 설혹 시작해도 순서에 따를 것이며, 수십 명을 모두 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만의 논리인 듯하다. 징역형과 생명형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 교도소가 도피처가 되고 있고, 사형선고가 관심 밖 얘기가 되고 있다. 울부짖는 유가족, 원두커피 찾는 살인범 오원춘 사건의 현장을 본 법의학자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이렇게 참혹하게 시신이 훼손된 사건은 처음이다. 그 사건에 대해 들은 후문(後聞)은 이렇다. 수사 초기부터 오원춘의 태도는 빨리 끝내달라였다. 담당 검사는 애초 국민참여재판을 예상했지만 오원춘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재판정에서도 여전했다. 재판장까지 나서 모두 인정되면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데 왜 인정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속전 속결을 원했다. 사형선고가 뻔한 재판을 피고인은 서두르고 판사는 멈칫거리는 이상한 광경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강모씨는 한밤중 주택가에서 광란의 살인극을 벌였다. 주점에 침입해 여주인과 손님을 칼로 찔렀다. 다시 가정집에 뛰쳐 들어가 일가족에게 칼을 휘둘러 살인까지 저질렀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죄를 인정한다. 영장실질심사 필요 없다. 그냥 구속시켜라였다. 부녀자 살해범 서○○는 현장검증이 있기 전까지 11끼니를 굶었다. 그러더니 돌 맞을 각오로 갔는데 (현장검증이)그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더란다. 자장면, 김치 꽁치찜, 두부조림, 제육볶음, 잔치국수, 김치 볶음밥. 요즘 그가 국민 예산으로 매 끼니 주문해 먹고 있는 사식(私食)이다. 사형이 확정된 흉악범들의 교도소 생활도 기가 차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의 내용은 명확해야 하고,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은 배제해야 한다. 마치 법학 논문의 한 구절 같은 이 문구는 사형수 정○○이 쓴 소장(訴狀)의 일부다. 살려달라며 애원했을 초등생 혜진예슬 양을 무참히 살해한 그가 교도관이 자신을 쪼그려 앉혔다며 고소했다. 두 생명을 빼앗고 두 가정을 파탄 낸 그의 입에서 지금 헌법상 행복 추구권이 얘기되고 있다. 2009년 2월 대법원의 사형 확정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교도소는 피난처로, 사형 선고엔 코웃음 케케 묶은 사형제 논란을 여기서 재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똑같이 죽여달라고 울부짖는 유치장 밖 유가족과 원두커피 좀 사오라는 유치장 안 살인범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서○○ 사건). 수면제 없인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교도소 밖 피살자의 언니와 4개 국어로 방송되는 TV시청권이 보장된다는 외국인 교도소로 갈 학살자의 생활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오원춘 사건). 여기에 대한 질문을 한 번쯤 던져보고 싶을 뿐이다. 사형 찬성론자든 사형 반대론자든 뭔가 할 말이 있지 않겠나. 1995년 2월1일, 쾰른시의 한 법정에서 수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을 쏜 사람은 아메드 아푸한이라는 52세의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얼마 전 아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불에 타 참혹하게 숨진 모습이었다. 법정에서는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총을 숨겨 방청석에 들어온 아푸한은 살인범이 시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변호인이 증인을 부르는 순간 총을 꺼내 난사했다. 살인범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공범 등 3명도 중상을 입었다. 1949년 사형이 폐지된 독일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겐 그 순간 그게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슈&토크 참여하기 = 사형 폐지론자들에게 묻는다 “이게 인권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삼성의 수원 기부 40억, 현대의 울산 기부 2400억

현대 공화국이라는 울산시를 보자. 현대중공업이 울산시에 쏟아 부은 기부액이 1천899억원이다. 방어진 순환도로에 1천464억원(2003년), 방어진 체육공원예술 공원에 69억원(2001년), 축구장 건설에 138억원(1996년), 현대 예술관에 212억원(1998년), 동부 도서관에 16억원(1991년)이다. 같은 계열사인 현대 자동차도 541억원을 내놨다. 아산로에 341억원(1996년), 북구종합복지관에 200억원(2008년)이다. 후발주자인 SK(주)의 울산 파고들기도 만만치 않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울산 대공원 조성사업을 위해 1천20억원의 돈을 쾌척했다. 이렇게 도움받은 울산의 1인당 GDP는 5천400만원이다(2010년 기준). 미화 4만8천불로 2만불을 겨우 오르내리는 전국 평균의 2.2배다. GDP로만 보면 일본보다 높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인구 문제도 딴 세상 얘기다. 지난 4월 말 현재 115만 8천665명으로 한 달 새 1천874명이 늘었다. 월 증가율 0.15%로 이 역시 전국 최고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울산을 산업수도라고 부르고 있다. 전국 최고의 도시 울산은 이렇게 전국 최고의 대기업 기부가 있어서 가능했다. 삼성 공화국 수원시는 어떤가. 다들 수원은 삼성이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수원에만 삼성전자(주)(매탄동 416번지), 삼성전기(주)(매탄동 314번지), 삼성 LED(주)(매탄동 314번지)가 몰려 있다. 일과 후 쏟아져 나오는 종업원만 3만4천576명이다. 매탄동, 영통동, 원천동, 인계동 등 대여섯 개 동네가 직접 소비시장이다. 3개 사업장에서 나오는 지방세도 847억원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하나만 유치하려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다른 시군의 눈에 수원은 분명히 삼성이 먹여 살리는 동네다. 너무 다른 현대 공화국과 삼성 공화국 그래서 들여다봤다. 삼성의 지역 기부액은 얼마나 될까. 현대와의 옳은 비교를 위해 같은 기간을 기준 삼았다. 40억원을 들여 기부한 수원 야외음악당이 있다(1996년). 그런데 그게 끝이다.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시였나. 울산에서는 계산하지 않았던 행사 지원이나 봉사 기부를 합쳐 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2010년 한 해 동안 삼성이 기부한 행사봉사 기부는 12건에 9억4천200만원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울산 현대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여기서 역(逆)기여, 다시 말해 삼성을 위해 들어간 지역의 기여를 보자. 본래 삼성전자 사업장을 관통하는 중앙로는 도시계획도로다. 시민이 주인인 도로였다. 하지만 인근 영통 신도시가 자리 잡은 이래로 삼성이 쭉 독점했다. 민선 3기 들어서는 아예 도시계획도로 지정이 폐지됐다. 통째로 넘겨 준 것이다. 이 때문에 받는 주민 불이익은 말도 못한다. 2천300원 내면 될 택시를 5천원이나 주고 돌아 다닌다. 버스를 타든 자가용을 이용하든 손해의 크기는 똑같다. 추상적 피해가 아니라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눈앞의 손해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삼성을 위해서라며 꾹 참고 산다. 삼성로 확장 공사도 그렇다. 누가 보더라도 삼성이 쓸 도로다. 그런 도로를 확장하는데 도민과 시민이 돈을 내고 있다. 경기도민이 430억원, 수원시민이 440억원을 부담한다. 이 도로에 넘겨주는 시민의 혈세만도 삼성이 기부한 야외음악당 건축비의 11배다. 여기에 반도체 공장부지 좀 싸게 주라며 머리띠 동여매고, 지방이전 강요하지 말라며 삭발해온 시민들의 무형의 삼성 지원도 있다.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몬(못) 합니다라며 발 빼 버린 월드컵 축구 경기장의 얽힌 배반의 역사는 나중에 다른 톤으로 얘기하기로 하자). 수원과 삼성, 누가 누굴 먹여 살리는가 알고 나면 두 번 놀랄 일이다. 삼성의 수원지역 기여가 이 정도밖에라며 놀라고, 현대의 울산지역 기여가 저 정도까지라며 또 놀라고. 이건 아니지 않나. 지금부터라도 나머지 삼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삼성 종업원이 4만5천명이라면 삼성과 무관한 시민은 105만5천명이다. 삼성의 소비권이 5개 동이라면 삼성과 무관한 동네는 34개다. 847억원이 삼성에서 나오는 세수라고 하면 삼성과 무관한 세수는 3천986억원이다. 이 나머지-96%의 시민, 87%의 동(洞), 82.5%의 세수-에 대한 역할을 얘기해야 할 때다. 책임이라 생각해도 좋고, 도리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울산시민에 기부된 현대그룹(중공업 지원금+자동차)의 기여액 2천440억원, 수원시민에 기부된 삼성그룹(전자+전기+LED)의 기여액 40억! 수원시민들이 자세한 비교표를 안 봐 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삼성의 수원 기부 40억, 현대의 울산 기부 2400억]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일본은 정말로 그네들 땅이라 믿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2006년 4월 25일. 현직 대통령의 사상 첫 독도담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문장의 맺고 끝음이 분명했다. 독도가 지닌 역사적 사실들을 정확하게 짚어 갔다. 문구 문구마다 확신에 찬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일본의 결단을 기대합니다는 마무리에서는 억누른 감정 속에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날의 8분짜리 담화문은 지금도 노무현의 명연설 중 최고로 남아 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EEZ 재협상을 앞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국은 독도 주변 해저지명을 제안하려 했다. 일본은 이 경우 독도 주변 탐사를 강행하겠다며 버텼다. 이 살벌한 분위기에서 한국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없었던 독도 관련 특별 담화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질을 너무도 잘 아는 일본이었다. 적잖게 긴장했고 언론마다 담화 내용에 대한 예상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런데 막상 담화 뒤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국정치 내부용이라는 한마디로 끝나 버렸다. 그리고 6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갔다. 화려한 담화문도 없었다. 점퍼 차림으로 그냥 갔다. 경비대원들과 마주 앉아 피자 먹고 콜라 마시고 왔다. 내 나라 대통령이 내 나라 땅에 간 일이다. 대통령이 수원에 오고 파주에 온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도 그렇게 생각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10일 국민 75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66.8%가 잘했다고 했다. 부정적 평가는 18.4%에 불과했다(95% 신뢰 수준표본 오차 3.65%). 독도 한일전은 시작됐다 바다 건너 일본은 쑥대밭이 됐다. 주한 일본 대사를 뽑아갔다.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겠다며 난리다. 처음 보는 일이다. 독도 문제에 관한 한 한일 관계에는 공식이 있었다. 영유권 주장, 교과서 채택 등을 앞세운 일본이 항상 선공이었다. 우리는 무대응이 상책 조용한 외교라며 수비로 일관했다. 모처럼 뽑아들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칼마저 내부용으로 끝났다. 아마도 우리의 선제공격이 일본을 뒤집은 예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좋든 싫든 밀릴 수 없는 외교전이 시작됐다. 더구나 이성 잃은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가 몰랐던 검은 속이 드러나고 있다. 단순히 건드려 보자는 눈빛이 아니다. 정말로 자기네 땅이라고 굳게 믿는 광기가 번득인다. 자기네 땅이 한국에 침범당했다는 거대한 집단 히스테리가 열도를 뒤덮고 있다. 한국이 그토록 지켜왔던 조용한 독도 외교. 그 50년의 어느 순간부터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외교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을 위해 뛰는 독도 X맨들이 있다는 거다. 대한축구협회장은 아예 정신 줄을 놓은 모양이다. 축구 대표 박종우 선수의 동메달 문제는 IOC 관할이다. 설명을 해도 IOC에 해야 하고 유감을 표명해도 IOC에 해야 했다. 그런데도 뚱딴지처럼 일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일본 언론이 사죄편지가 왔다며 대서특필했고 한국인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런 짓을 저질러 놓고 겨우 한다는 게 Regret(유감)냐 Apologize(사죄)냐의 단어 풀이다. 정신 못 차린 독도 X맨들 총리를 지냈다는 인사의 말도 그렇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레임덕 회복을 위한 전략인 듯하다. 하필 발언 장소가 미국 한복판이다. 국무부에서 미국 대변인과 일본 기자들 사이에 독도 충돌이 있었던 바로 그 날이다. 역겨운 애국심에 사로잡힌 일본 기자들이 독도문제를 물고 늘어졌고 참다못한 빅토리아 대변인이 이제 끝내자며 짜증을 내고 퇴장했다. 하필 그날, 하필 그 땅에서 대한민국 총리 출신 인사가 독도를 간 우리 대통령이 문제라는 투의 촌평을 냈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독도는 영토의 문제다. 영토는 국가 존립의 근거다. 국가의 수반이 그 나라 영토에 들른 일이다. 임기를 트집 잡힐 일이 아니고 날짜를 추궁당할 일이 아니다. 공연히 벌집을 건드린 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거대한 벌집의 실체를 확인한 일이다. 축구 한일전보다 몇 천 배 중요한 독도 한일전 아닌가. 대통령에게 자신감-혹시 정치적 이득을 왕창 챙겨 가더라도-을 줘야 하고, 국민에게 애국심-하도 오랜 세월 말하지 않아 입술까지 거북스럽지만-을 얘기해야 할 때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일본은 정말로 그네들 땅이라 믿고 있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시청률 대통령 안철수

후보님 토론이 어땠는지 의견 좀 주세요. 당황스러웠다. 토론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 몰랐으니 못 봤고, 못 봤으니 해줄 얘기도 없었다. 망설인 끝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미안해요. 급한 일 때문에 못 봤습니다. 민주통합당의 23일 MBN 토론회는 그랬다. 와이셔츠 차림의 후보 8명은 진지했다. 날 선 공방도 있었고 격정적 토로도 있었다. 대권 경쟁의 초반 판세를 거머쥐려는 안간힘이 역력했다. 하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유권자들이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AGB 닐슨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이 날의 시청률은 1.43%다. 새누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하루 뒤 KBS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박근혜 김문수 임태희 안상수 김태호 후보가 저마다 포부를 펼쳤다. 직격탄이 오갔고 긴장감도 있었다. 문제는 같다. 봐준 국민이 없었다.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시청률이 3.1%다. 민주당보다 높다고 좋아하기엔 너무도 민망한 수치다. 3%든 1%든 방송계에서 프로그램 간판을 내릴 수준이다. 드라마였다면 벌써 조기종영됐을 거다. 5년 전 이 맘 때 뜨거웠던 열기를 기억하는 새누리당이 받은 충격은 더 클 수 있다. 그때의 시청률은 6.2%였다. 여가 헤매고 야가 죽 쑤고 있는 그때 18.7%의 시청률을 기록한 후보가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안 원장은 23일 SBS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개그맨과 방송인, 탤런트와 마주 앉아 한 시간여를 보냈다. 시종일관 나눈 대화라곤 대권과 무관한 신변잡기였다. 그랬는데도 18.7%다. 수도권 기준으로 따지면 21.8%다. 파장도 컸다. 여야의 13명이 펼친 설전은 치열한 공방이라는 화두로 하루 만에 사라졌다. 하지만 안 원장이 장난하듯 던진 입대 비화, 학교 성적 얘기는 며칠을 두고 검색어에 남았다. 3.1%(與) 대 1.4%(野) 대 18.7%(安) 3.1%(與) 대 1.4%(野) 대 18.7%(安). 2012년 7월 말 시청률로 뽑는다면 대통령은 안철수다. 시청률만 그런 게 아니다. 안 원장의 TV 출연에 민주당 4번 타자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17%에서 10%로 곤두박질 쳤다. 새누리당의 지명타자 박근혜 후보도 기우뚱거렸다. 보름 전 40.4%(朴) 대 19.6%(安)에서 35.0%대 36.7%로 뒤집혔다(31일 리서치뷰 발표). 나머지 여당 4명과 야당 7명은 아예 벤치 워머(후보 선수)로 물러앉았다. 이런 변수를 대입해 계산해 본 12월 결론은 이거다. 안 원장은 킹이 되거나 킹을 만들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결론에 굳히기를 더해주는 분위기가 정치권 안에 있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시청률 분석이다. 런던 올림픽 때문이라고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이라고도 한다. 런던 올림픽은 7월 28일 새벽 5시에 시작됐다. 민주당 토론회는 23일에 있었고 새누리당 토론회는 24일에 있었다. 두 토론회의 시청률을 빼앗아갈 만큼 흡입력 있는 올림픽 중계가 있었을 리 없다. 더구나 18.7%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안 원장의 TV출연도 같은 23일이었다. 어불성설이다. 예능 프로그램 탓도 억지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도 같은 힐링 캠프에 출연했다. 정세균과 손학규 후보도 케이블 방송(tvN)에 출연해 예능감을 발휘했다. 그래놓고 시청률에서 밀리니까 안 원장 출연만 트집 잡으려 한다. 정치권의 잘못된 진단, 12월도 위협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특권 포기 공약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유권자를 배신한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국회를 방탄 삼아 비리 수사를 막아선 박지원 대표의 소환 거부. 부정한 수단으로 의원배지를 달고도 수억원의 세비는 챙기겠다며 버티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 이런 게 원인이다. 생각하면 3.1%, 1.4%의 시청률도 후한 편이다. 국민이 다 아는 이유를 두고 정치권만 딴소리를 한다. 올림픽이 어떻고, 예능 프로그램이 어떻고. 진 이유를 모르는데 이길 해법이 나 올 리 있나. 정치권의 시청률 망신이 12월의 대선 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렇게 떠드는 주당(酒黨)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이슈&토크 참여하기 = 시청률 대통령 안철수 ]

[김종구 칼럼] 좌빨 소주 ‘처음처럼’

5년간(2006~2011) 18억병이 팔렸다. 하루 100만병이고 1초당 11병꼴이다. 22㎝ 병을 눕혀 연결하면 4만㎞ 지구를 10바퀴나 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주가 분명하다. 이런 소주, 처음처럼이 대선판을 얼쩡거리고 있다. 무슨 얘긴가. 문재인은 소주 처음처럼. 보수성향의 한 매체가 내 보낸 지난주 기사 제목이다. 문재인의 개인 취향을 얘기한 듯해서 들여다봤는데 그게 아니다. 문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의 글씨체가 문제(?)였다. 거기 쓰인 글씨체가 소주 처음처럼의 그것과 같다는 얘기다. 기사는 이 글을 쓴 사람이 대표적 진보학자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확인됐다며 흥분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의 이력을 장황하게 소개했다. 신 교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 삼았던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1968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신 교수는 민족해방전선을 주도하며 공산혁명을 획책했었다. 당시 육군 중위 신분으로 박성준(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 남편)씨를 포섭했던 조직비서 출신이다(출소 이후) 2002년 연세대에서 민노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본축적은 근본적 모순 체제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국보법 폐지와 615 및 104 선언이행 촉구에도 앞장서 왔다. 문재인 슬로건에 종북 색깔 입히기 40년 전 통혁당 조직도까지 등장시킨 이 기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재인 후보가 슬로건에 사용한 글씨체는 처음처럼 소주의 글씨체와 같다그 글씨는 신영복 교수가 쓴 것이다신 교수는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종북좌파다그러므로 신 교수의 글씨체를 사용한 문재인 후보도 종북좌파다. 케케 묶은 얘기다.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체 논란은 꽤 된 일이다. 2006년 7월, 두산이 이 제품을 출시할 때부터다. 당시 두산은 신 교수의 서예작품명이던 처음처럼을 제품 이름으로 정했다. 신 교수는 글씨체 사용료나 개인적 보상 없이 이를 허락했고, 두산측은 답례로 신 교수가 재직중인 성공회대에 장학금 1억원을 전달했다. 보수층에서는 이를 두고 좌파 성향의 참여정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얄팍한 상술이라며 못마땅해 했다. 보수층의 심기를 건드린 기억은 또 있다. 그 해 9월 28일.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처음처럼이다. 모임의 회원들은 2007년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의 역사성을 담보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준결사체가 되자고 결의했다. 이래저래 처음처럼과 보수층의 악연은 쌓여갔다. 이후 보수를 자처하는 인사들 사이에 소주 처음처럼은 좌빨 소주로 불렸고 지금도 기피 주종 1순위다. 철 지난 이념논쟁, 보수조차 짜증 그런데 그런 처음처럼이 18억병이나 팔렸다. 우파를 자처하는 MB 정부 들어서 되레 더 팔렸다. 2009년 4억병, 2010년 4억4천만병이다. 이랬으면 결론은 난 거다. 정치인의 이념 논쟁이 소비자의 입맛 선택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고, 보수층의 좌빨 공격이 이효리의 섹시효과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결론이 난 거다. 이념 공세의 소재로 더 이상 재미 볼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또 들고 나오려 한다. 대선 후보 문재인+종북좌파 신영복 교수+국민 소주 처음처럼을 뒤섞어 대선용 좌빨 소주 칵테일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한다. 진보가 웃을 일이고, 보수도 짜증 낼 일 아닌가. 이런 일이 있었다. 편의점 7-Eleven이 대박 상품을 내놨다. 매장마다 설치된 7-Election 08이란 기계다. 음료수를 판매하는 종이컵마다 대통령 후보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오바마와 매케인 후보의 컵은 고객이 선택하게 했다. 회사측은 판매되는 종이컵의 수를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7-Eleven의 주요 고객은 독신의 젊은 직장인이다. 공화당측에서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케인은 불평하지 않았다. 고객과 유권자, 매케인 모두가 7-Eleven이 발표하는 지지율을 보며 그냥 재밌어했다. 너무 비교된다. 2012년 대선에 이기려고 2006년 출시된 술병에 글씨를 쓴 사람의 1968년 공소장까지 뒤적거리는 한국의 일부 보수. 어쩌면 그들의 이념이야말로 1968년에 딱 멈춰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좌빨 소주 ‘처음처럼’]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대통령께! “지금은 오얏나무 아래입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라도 갓끈을 고칠 필요가 있으면 기꺼이 고쳐 매겠다. 시청 기자실을 찾은 A시장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검사가 다음날 검찰 기자에게 발끈합니다. 좋다. 갓끈을 고쳐 맸는지 자두를 땄는지 뒤져 보겠다. 그때부터 수사는 파상공세로 갔습니다. 대형유통매장 입점 과정의 비리 내사라던 애초 범위를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개인업체 입출금 전표와 시청 문화행사의 모든 내역서가 압수되고 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됐습니다. 그러기를 달포. 시청 주변에서는 왜 주위까지 힘들게 만드느냐는 원성이 커져갔습니다. 당당함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온 겁니다. 결국 A시장의 선택은 정치였습니다. 어느 하루, A시장의 공식 일정이 모두 비워졌습니다. 기자들 사이에는 시장이 서울에 갔다더라는 말만 나돌았습니다. 훗날 시장은 기자에게 옛날 같았으면 근처도 가지 못했을 곳을 다녀왔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A시장의 내사는 종결됐습니다. 하지만 오얏나무 논쟁의 앙금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1년여 뒤 A시장은 황당한 혐의로 구속됩니다. 평범한 속담이 비범한 진리로 머리에 박힌 사건이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는 것은 용자(勇者)의 행동도, 현자(賢者)의 행동도 아니라는. 오해 증폭 시키는 공항지분매각 대통령께 꺼내는 얘기치고는 너무 지엽적인 얘기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정치가 흘러가는 공식은 거개가 비슷합니다. 되레 국가적 큰일일수록 보편적 순리에 더 정확히 맞아가던 예가 수도 없습니다. 시행횟수가 커질수록 절대값에 가까워진다는 통계학적 공식과도 맞닿아 있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16년 전 A시장의 얘기를 경기도 구석의 촌 동네 얘기로 흘려 넘길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인천국제공항 지분 매각 논란 얘깁니다. 반대가 많습니다. 야당이나 일부 진보단체만의 반대가 아닙니다. 여당의 반대도 많고, 보수단체의 우려도 있습니다. 반대 논리의 출발은 간단합니다. 인천공항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명분이 전혀 와닿지 않는 겁니다. 공기업 선진화 얘기도 그렇고, 정부 예산 충당 계획도 그렇고, 경영권 확보 장담도 그렇습니다. 공적 자본은 후진스럽고 민간 자본은 선진스럽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산 충당 계획도 7개월여 남은 지금 정부와는 상관없어 보입니다. 시간상 현 정부 국고에 입금될 돈은 아니죠. 결국 다음 정권이 쓰게 될 돈일텐데. 다음 정권의 예비 주인들이 하나같이 돈 필요 없으니 팔지 마라고 한답니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도 51%는 정부가 쥐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는 장담도 마찬가집니다. 론스타니 먹튀니 검은 머리 한국인이니 하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국민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정리해줘야 할때 여론이 이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의 몇몇 인사들은 계속해서 추진강행을 얘기합니다. 아마도 명분이 확실하고 소신이 떳떳하다고 생각해서겠죠. 하지만 이런 밀어붙이기가 빚어가는 결과가 황당합니다. 반대 집단의 덩어리를 더 키워주고 있고, 엉뚱한 의혹을 재생산하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야당 대표가 얘기한 10조원에 달하는 공항 유보지 500만평 관련 의혹은 개중 점잖은 루머에 속합니다. 대통령의 뜻은 모릅니다. 팔아라, 말아라는 언급이 보도된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국민이 대통령을 연결하려 합니다. 말은 홍준표 대표가 했고 박재완 장관이 했는데도 그럽니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인데 한 발 더 나가 보려는 세력들도 있습니다. 갖가지 의혹에 대통령을 연관지어 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걱정인 겁니다. 반대가 많아져 자신감이 생기면 움츠렸던 스캔들은 불나방 널뛰듯이 이리 저리로 튀어 다니는 게 정치권의 생리이니까요. 16년 전, A시장의 깨끗함은 무죄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사이 A시장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의 교훈이 이렇습니다. 선비의 조건은 자두를 훔치지 않아야 하는 주관적 도덕성에 그치지 않는다. 자두를 따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는 객관적 도덕성까지 갖춰야 한다. 이제 공항 지분 매각 논란을 끝내야 할 땝니다. 자두 밭에 뛰어들어 벌이는 애매모호한 갓끈 고치기를 중단시켜야 할 땝니다.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대통령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 안하길 바라는게 이곳의 여론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이슈&토크 참여하기 = 대통령께! “지금은 오얏나무 아래입니다”]

[김종구 칼럼] KBO → Kill Baseball Organization

역시 박찬호의 통은 컸다. 2천400만원은 연봉도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의 최저 임금이다. 그 밑으로 주면 구단주가 감옥 간다. 천하의 박찬호가 그런 돈에 서명했다. 여기에 6억원짜리 기부금 약속도 있다. 연봉이 부족하면 옵션까지 털어 넣을 계산이다. 그만이 할 수 있는 계약이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18년. 그간 번 돈은 8천876만달러(한화 1천억원)다. 연봉에 관심 없다.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왔다는 발표에 모두가 역시 박찬호라며 박수를 보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야구 재벌 박찬호를 꿈꾸며 운동장을 뛴다. 하지만 박찬호는 박찬호일 뿐이다. 4월19일. 전혀 다른 2천400만원 짜리의 얘기가 펼쳐졌다. LG 트윈스의 좌완투수 이승우(24)다. 그의 맞상대는 한화의 괴물투수 류현진, 연봉만 4억3천만원이다. CF니 뭐니 다 빼고 연봉만 쳐도 이승우는 류현진의 18분의 1이다. 말도 안 되는 이날 대결의 승자는 이승우였다. 5.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그의 얘기가 기적으로 표현됐다. 장충고를 졸업할 때만 해도 유망주였다. 그러던 그가 프로 입단과 동시에 토미 존 서저리(인대접합수술)를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금은 프로야구 굴욕의 상징인 2천400만원 짜리 선수다. 많은 아이들이 절대 자신의 미래로 꿈꾸지 않는 선수다. 그런데 이런 이승우의 처지조차 부러운 수백 수천의 야구인생들이 있다. 매년 700명의 야구실업자 생산 작년에만 777명이 프로야구에 이력서를 냈다. 이 중에 취업에 성공한 선수는 고작 94명이다. 그나마 신생팀 엔씨가 많이 뽑아준 덕이다. 예년 같았으면 80명에 그쳤을 일이다. 아마도 떨어진 700명의 꿈도 야구 재벌 박찬호였을 거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참담하다. 1천억원은 커녕, 4억3천만원도 아니고 2천400만원도 아니다. 선수생활 자체가 박탈됐다. 야구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애들일 텐데, 그런 700명이 매년 야구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현재 53개 고등학교 야구팀으로는 선수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KBO(한국 야구 위원회)가 10구단 창단을 유보하면서 밝힌 사유다. KBO는 매년 700명의 선수 생명을 끊어왔다. 비율로 환산해보니 실업률은 90%다. 흔히들 청년 실업률이 높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통계청의 5월 말 고용현황에 나타난 청년 실업률이 8.0%다. 통계만을 놓고 보면 KBO는 차라리 실업자 찍어내는 공장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바로 자리 부족이다. 받아주고 싶지만 자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10구단 창단의 목적은 그 숨통 좀 터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남도 아닌 KBO가 그 해결책을 틀어막았다. KBO의 선수 수급 문제라는 말 속에는 팀을 늘리면 프로야구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뜻도 섞여 있던데 욕먹을 각오하고 한번 따져보자. KBO 탐욕이 한국 야구 죽인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나.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근처도 못간다. 기껏해야 마이너리그 중에 트리플 A니 더블 A니를 따지는 실력이다. 몸집이 똑같은 일본 야구와의 격차도 까마득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타자는 일본야구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대한민국의 불방망이는 일본 야구의 솜방망이가 됐다. 그렇게 망신당하고 쫓겨 돌아온 선수들이 지금 한국에서 홈런 1, 2위 하고, 타율 1, 2위 하고 있다. 수준 떨어진다며 10구단 창단을 막은 KBO의 수준이 이렇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선수 수급을 얘기하고 무슨 낯으로 야구 수준을 들먹이나.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관중 600만 시대를 맞고 보니 돈맛을 알았다., 우리끼리만 계속 나눠 먹고 싶다, 욕 듣는 건 잠깐이고 돈 챙기는 건 영원하더라, 그래서 10구단 창단을 유보한 거다라고. 김종구 논설실장 [이슈&토크 참여하기 = KBO Kill Baseball Organization]

[김종구칼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 돼도 좋다면 모를까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주일 뒤. 신문에 잡힌 제목들은 이랬다. 알고 봤더니 국가부도가 눈앞이더라(97. 12. 22) 잠이 안 온다(97.12. 23) 내 팔자는 고생만 할 팔자인가보다 (97.12. 24). 대부분은 대변인단이 해준 전언이다. 하지만 신문에는 직접 화법으로 묘사됐다. 김대중 당선자의 절절한 고뇌가 흘렀다. 이런 제목이 반복되면서 여론도 서서히 바뀌어갔다. 전임자(YS)는 국고를 거덜낸 사람으로, 후임자(DJ)는 그 국고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기술이다. 문제 많은 정부를 이어받는 후임 정부의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한 달여간 계속된 뒤 다음 수순이 이어졌다. 김 당선자 공약 전면 재검토 착수 (98. 1. 25). 물 흐르듯 자연스런 연결이다. 텅 빈 국고(國庫) 앞에서 고민하던 당선자가 결국엔 자신의 공약을 포기하게 된다는 기막힌 연결이다. 물가 3% 약속이 5~6%로 바뀌었다. 복지예산 30% 확보 약속은 보류됐으며 농어가 부채 경감 약속도 무기한 연기됐다. 정치 9단 DJ는 그렇게 전임자를 짓밟으며 빚더미 정부-IMF-를 넘겨받았다. 꼭 2년 전 우리는 그때의 일을 데자뷔처럼 경험했다. 민선 5기 출발과 동시에 민선 4기 짓밟기가 광풍처럼 일었다. 성남시가 불붙인 모라토리엄이 모든 지자체를 휩쓸었다. 호화 청사, 경전철, 종합운동장이 줄줄이 애물단지가 됐다. 민선 4기가 거덜낸 곳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시장들의 애처러운 사연이 줄줄이 소개됐다. 그러면서 선거 때의 공약은 사라졌다. 대신 호화 청사 개선안 마련 경전철 적자 개선책 마련 운동장 문제 심각 등의 과거사 물어뜯기가 지면을 채웠다. 민선 5기 2주년, 실적 안 보인다 여기까지는 봐줄 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적당히 하고 그만했어야 했는데 때를 놓쳤다.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임자 탓에 세월을 좀 먹고 있다. 그렇다고 뭐 하나 고쳐 잡은 것도 없다. 매각하겠다던 호화청사는 여전히 공무원들의 아방궁이다. 시장실에 꾸려놓은 북카페가 전부다. 돈을 아끼겠다던 경전철은 국제 재판에 지면서 되레 예산 먹는 하마가 됐다. 물어줄 돈이 5천억원이었는데 엊그제부터 7천억원으로 늘었다. 개인 기업이면 구속됐을 것이라고 비난하던 그 운동장은 시장 얼굴을 TV에 내보내는 선거 운동장이 돼 버렸다. 인천시는 더 심하다. 전임자 탓을 넘어 전현직 간 설전이 여지껏이다. 서구에 신축 중인 주 경기장을 두고도 국비 거부가 원인(現) 재정사업 전환이 문제(前)로 맞선다. 인천타워 계획도 102층으로 축소한다(現) 151층이 타당하다(前)며 신경전이다. 이밖에 밀라노디자인 시티, 지하철 2호선 개통시기, 인천 세계도시축전 등을 두고도 건건이 논쟁이다. 아시안 게임을 반납해 국제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는 지경의 핵심도 듣다 보면 전임자 탓으로 끝난다. 민선 4기 탓 회견 이제 그만해야 다들 정치 9단 DJ에게 어설프게 배워서 이렇다. 오로지 전임자 짓밟는 기술만 배워서 이렇다.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배우질 못했다. 국민의 정부가 역사 속에 후한 점수를 받는 건 전임자 짓밟기 때문이 아니다. 전임자의 잘못을 고치고 바로 잡는 노력과 결과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97년에 88억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5년만에 1천214억달러(2002년)로 채워졌다. 이 수치를 확인한 사람들이 국민의 정부는 괜찮았던 정부 DJ는 역대 존경 순위 두세 번째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이다. 낼 모레면 민선 5기 취임 2주년이다. 뭘 들고 기자회견을 할 건가. 또 전임자 탓하고 모라토리엄 핑계 대는 자료로 꽉 채울 건가. 아무리 봐도 그럴 시장들이 수두룩할 것 같아 걱정이다. 유권자들은 진작부터 남 탓 그만하고 일 좀 하라고 말하기 시작했는데.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에게 말했다.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이옵니다.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며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태복음 25장 24절~30절)-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2002 월드컵 개최권을 반납하라”

70대 아버지가 약을 먹고 자살했다. 빚에 쫓겨 다니는 아들에 짐이 되기 싫어서다. 그 아버지의 상이 있은지 며칠 뒤. 묘소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이번엔 아들과 가족들이 발견됐다. 역시 자살이었다. 1998년 3월28일, 연천군 청산면에서는 그렇게 한 가족이 사라졌다. 그해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간 2천248명이 목숨을 끊었다. 전년도 같은 기간 1천683명에 비해 36%나 늘었다. 우린 그렇게 늘어난 36%를 IMF 자살이라고 불렀다. 월드컵이 뭔가. 배부른 얘기고 한가한 소리였다. 김대중 당선자가 입을 열었다. 경제난에 따른 긴축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월드컵 경기장을 모두 새로 지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김한길 인수위 대변인 전언1998년 2월 4일). 이 말 한마디로 월드컵은 애물단지가 됐다. 나라 망친 정권이 남겨 놓은 짐이 됐다. 2002년은 더 이상 가슴 설레는 기다림이 아니었다. 여론조사의 60%도 상암 경기장 신축을 포기하라고 했다(청와대 관계자 발표1998년 5월 4일). 시간이 빠듯했다. 개최 예정지 10곳을 돌아본 국제축구연맹의 결론은 한참 전에 나와 있었다. 월드컵 규격에 맞는 경기장이 한 곳도 없다. 잠실 운동장도 안 된다. 10곳의 경기장을 모두 새로 지어라. IMF 자살 사건이 사회면을 채우던 대한민국이다. 누가 나서 수천억짜리 월드컵 경기장을 얘기하겠나. 월드컵을 반납하자는 여론까지 들끓기 시작했다. 나가누마 겐 일본축구연맹 회장은 계속 늦어질 경우 중대 결심을 할 수 있다며 빈정댔다. IMF 환란속 DJ 월드컵 포기 없다 월드컵 수원의 사정도 비관적으로 흘렀다. 경기장을 지어준다던 삼성이 뒤로 빠졌다. 통보방식도 간단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심재덕 시장에게 삼성 측 인사가 툭 던진 한 마디가 다였다. 돈 없어서 몬 합니다-심 시장은 두고두고 이 때의 서운함을 얘기했다- 1시민 1의자 갖기 운동을 벌였지만 3천4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대기엔 턱도 없었다. 수원이 개최지에서 제외된다는 소문이 점점 커져갔다. 몇 달이 흐르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 여론과 경제 전망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상암 경기장 신축을 수용할 뜻이 있는 것으로 안다.(청와대 대변인1998년 5월 4일). 2002 월드컵의 한국 개최가 극적인 전환을 맞은 날이다. 비로소 상암 경기장의 조감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수원 경기장도 경기도비 60%가 수혈되면서 3천417억원의 공사비가 충당됐다. 나머지 8개 지역의 경기장 건설도 속도를 냈다. 포기할 순 없다는 대통령의 결심에 월드컵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렇게 개최된 게 한일 월드컵이다.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 경기장이 환호에 휩싸였다. 가슴 트래핑에 이은 페인트 모션과 슈팅, 사상 첫 16강을 결정하는 박지성의 골이었다. 어수선한 라커룸으로 양복차림의 10여명이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 일행이었다. 히딩크를 끌어안은 대통령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우 던진 말이 Good job, very good job이다. 히딩크와 손을 잡은 대통령이 불편한 몸을 잊고 한동안 펄쩍펄쩍 뛰었다. IMF 자살 공화국속에서도 월드컵 강행을 결심했던 그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아시안게임 반납하자 또 막말 난무 그 후 한국 현대사는 2002 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쪼개졌다. 이전은 IMF 국치의 시대로, 이후는 IMF극복의 시대로 기억됐다. 망신스런 IMF 한국의 이미지는 자랑스런 월드컵 한국의 이미지가 덮고 갔다. 대회 직후 나온 손익계산서에도 +1650억원이 찍혔다(FIFA, 조직위 집계). 월드컵 개최하면 나라 망한다던 1998년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없었다. 그때의 전문가들, 그때의 언론인들 모두 월드컵 신화의 커튼 뒤로 숨기 바빴다. 2012년 6월이다. 사람들이 또 막말을 하고 있다. 2014 아시안 게임 반납을 너무 쉽게 말하고 있다. 반납하겠다며 협상에 써먹으려 하고, 반납하라며 공격에 써먹으려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2년 뒤면 40억 아시아인이 인천에서 뛰고 인천에서 즐길 텐데. 그때 그 부끄러움을 어쩌려고 또 이러는지 모르겠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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