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이래의 한국 야구는 그랬다. 지역감정이 강한 곳에 전설이 들어섰다. 그 맨 앞자리에 해태 타이거즈가 있다. 전라 남북도를 연고로 프로야구 원년에 창단된 팀이다. 2001년 해체되기까지 19년 동안 9번이나 우승했다. 우승 확률이 50%에 육박한다. 뉴욕 양키스의 26%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30%는 이 근처에도 못 온다. 9번 우승의 승률도 100%다. 한국 시리즈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이겼다는 얘기다. 국보 투수 선동렬, 홈런왕 김봉연, 오리 김성환, 바람돌이 이종범. 80, 90년대 광주를 달렸던 주인공들이다. 그 시절 광주 구장은 관중들이 연호하는 이들의 이름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오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김대중. 책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김은식 著)은 김대중과 해태 타이거즈는 80년대 이후 전라도 지역을 상징하는 두 개의 아이콘이었다고 정의한다. 야구와 지역감정이 만나 불패의 신화로 승화되던 그 시절.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이가 있었다. 코끼리 김응룡 감독이다. 전라도와 인연은 없다. 평안남도 평원이 그의 고향이다. 학교도 영남의 상징인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그런 그가 전라도 야구의 영웅이 됐다. 야구와 김대중을 연결하는 지역감정의 얼굴이 됐다. 19년을 해태만 지켰던 그의 뚝심과 광주의 저항 정신이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더스ㆍ북부도민 어쩌라고 그 김응룡 해태의 전설이 끝난 지 12년. 경기도 땅에도 야구가 상륙했다. 신생 10구단이 수원을 연고로 하는 KT로 결정 났다. 전북과의 유치전은 유례없는 전쟁이었다. 도지사, 시장, 시민, 기업이 똘똘 뭉쳤다. 국가균형발전 논리에 맞선 논쟁도 치열했다. 경기도민이 모처럼 하나 됐고, 승리의 기쁨도 그래서 두 배였다. 결과가 발표된 11일, 수원시와 경기도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런데 그 환희의 틈바구니로 생뚱맞은 검색어가 떴다. 김성근-수원 KT 감독.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서 시작된 유행어를 빌려보자. 도대체 어느 촉새들이 나불거려서 퍼뜨리는 장난질인가. 그를 KT 감독에 앉히고 싶은 모양인데, 틀렸다. 시기도 얍삽했고 내용도 틀렸다. 김 감독은 경기도 고양시가 만든 고양 원더스의 감독이다. 고양 원더스는 모든 게 열악한 경기 북부 주민들의 한이 서린 독립야구단이다. 불과 1년 전 고양 시민 400명 앞에서 김 감독도 얘기했다. 야구 발전과 후배들을 위한 마지막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수원KT 유치전에도 더 없이 힘을 보탠 게 북부 도민들이다. 안병용 의정부 시장은 12월 22일 수원까지 내려와 수원 KT 화이팅을 외쳐주고 갔다. 왜 하필 그런 북부 도민의 꿈을 빼앗는 선택을 하라고 몰고 가나. 김 감독이 부적합한 더 큰 이유가 있다. 그의 연고지 전력은 한 마디로 누더기다. 대전(OB 베어스), 인천(태평양 돌핀스), 대구(삼성 라이온스), 전주(쌍방울 레이더스), 서울(LG트윈스), 부산(롯데 마린스), 인천(SK 와이번스). 누구처럼 19년을 한 팀만 지키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소신으로 포장하며 칼자루를 되돌려 잡는 것도 한두 번이다. 당당한 경기도 지역감정으로 찬란한 경기도 야구 전설을 만들어야 할 수원 KT다. 김 감독은 아니다.
누더기 이적 전력도 부적격 어떻게 얻은 수원 KT 구단인가. 눈물 흘리며 삭발로 얻은 구단이다. 추운 겨울 길바닥을 누비며 서명받아 얻은 구단이다. 수백억원의 도비를 쏟아 붓겠다고 약속해서 얻은 구단이다. 지긋지긋한 국가균형논리에 맞서 싸워 얻은 구단이다. 이게 이유다. 경기도민과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 이유고, 수원시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 이유고, 지역과 애향심을 나눌수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 이유다. 야구장은 넓고 감독감은 많다. 촉새들이 나불대도 인재(人材) 숲은 열려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어느 촉새가 김성근 감독설을 나불대나] 김종구 논설실장
오피니언
김종구 논설실장
2013-01-16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