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① 무상복지 질주 막은 ‘내 돈 16만원’

김상곤 교육감의 족적(足跡)은 크다. 2009년 그가 던진 무상급식이란 화두는 대한민국 복지사(史)를 바꿨다. 그의 등장 이전까지 복지는 국가가 국민에 베푸는 은전(恩典)이었다. 그러던 게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책임(責任)으로 바뀐 거다. 더 이상 국가는 복지를 이유로 거드름 피울 수 없게 됐고, 국민은 복지를 받으며 주눅 들 필요가 없게 됐다. 여기까지가 역사 속에 이견 없이 새겨 질 김 교육감의 공(功)이다. 문제는 그 돈을 어디서 만들 거냐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곳간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 빼낸 만큼 자리가 나게 마련이다. 언젠가 구멍 난 그 자리로 피해를 본 민심-무상급식이 값없이 거두어 값없이 나눠주는 세상을 향한 출발이라고 여기는 혁명가들은 제외한-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럴 거라고 봤다. 하지만 이게 오류였다. 이후 4년간 이어진 오류의 패착은 간단했다. 사람에겐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을 기세가 있다는 거였다. 1년 뒤 2010년 지방 선거는 차라리 무상급식 선거였다. 김 교육감과 고리를 함께 하는 야권의 선거공약 맨 위에 무상급식이 적혔다. 무상급식하면 나라 망한다며 반대하던 한나라당 후보들도 슬그머니 공보물 한 귀퉁이를 할애했다. 무상급식으로 쏠리는 표심이 빤히 보이는 데 달리 수가 없었을 거다. 경기도 시군 31곳의 단체장 선거 결과 야권이 19곳(여권 10ㆍ무소속 2)을 휩쓸었다. 민심이 선택한 무상급식 지방정부였다. 민선 5기가 시작됐고 연 7천억원씩의 무상급식비가 투입됐다. 교육청ㆍ지자체의 재력이 곳곳에서 구멍 났다. 취소되는 행정행위와 손 못 대는 학교 현장이 속출했다. 이제야말로 누군가 나서 지금이 1% 부자 자식들에게 급식비 대줄 때냐라고 떠들어야 할 차례였다. 그게 순서였다. 하지만 조용했다. 공격을 당할 단체장들이 갖고 있는 무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건설경기 침체와 모라토리엄(지자체 부도)이라는 무기가 무상급식의 구멍을 덮어서였다. 2년 뒤 치른 4ㆍ11총선은 아예 무상의 광기가 모든 것을 삼킨 선거였다. 아류 무상복지들까지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무상 의료, 무상 보육, 무상 교육에 반값 등록금까지. 보수와 진보의 경계도 무너졌다. 더 이상의 무상복지 반대는 쌀쌀해진 가을 아침에 한여름 민소매를 걸치고 나온 것처럼 어색해졌다. 망국행(行) 복지 열차로 갈아탈 다음 역까지 대한민국호는 그냥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말로 느닷없이 그 끝이 왔다. 지방 정부의 반성이나 중앙 정부의 포기가 아니라 봉급자의 호주머니에서다. 아홉 달 전 선거는 무상복지 대 무상복지가 맞붙은 최초의 대통령 선거였다. 박근혜 후보는 135조원을 써냈고, 문재인 후보는 192조원을 써냈다. 앞선 다른 무상복지 선거가 그랬듯이 재원조달 방식 따윈 생략됐다. 선거 열흘 전쯤 양측이 설명서라는 것-전문가도 못 알아먹을 수준의-을 내놨다. 하지만 이미 내 편 후보의 말만 들리는 막바지에 검증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렇게 박 후보는 135조원짜리 불안한 차용증을 들고 청와대로 갔다. 공약을 변경해야 한다(본보 1월 3일자 칼럼)며 막판까지 미련도 떨었지만 약속은 지키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모든 게 묻혔다. 천재 소리 듣는 경제통들이 모여 135조원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7개월, 묘안이 나왔다. 연소득 3450만원을 넘는 봉급자 434만명에게서 세금을 더 걷는 방안이다. 연봉 5500만원에서 7000만원을 받는 월급쟁이에게 1년에 16만원을 더 걷는 방안이다. 고통 없이 거위의 털을 뽑는 방법이라는 자평(自評)까지 따랐다. 그 순간, 난리가 났다. 봉급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화이트 칼라 3명 중 2명이 개편안을 반대했고, 14%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도는 5%p 급락했다(12~14일 갤럽 조사). 7개월 공들인 기막힌 방안이 나흘 만에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무상복지 공약을 고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증세 없는 무상복지는 있을 수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도대체 어디서 뭐하던 입들이기에.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경고에도 꿈쩍 않고, 세금폭탄이 날아들 거라는 협박에도 꿈쩍 않던 무상복지. 그 무상복지의 무시무시한 질주는 월급봉투 속 단돈 16만원 앞에 와서야 멈춰 섰다. <다음주 2 보수와 진보의 무상복지 거짓말로 이어갑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① 무상복지 질주 막은 내 돈 16만원]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전두환 아들, 김우중 아들

수사관 Y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잡아다가 조지면 돼. 그런 집을 사들인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월급 받는 공무원이 그 큰돈을 어떻게 설명하겠어. 황당한 얘기다. 일단 잡아넣고 죄 없으면 니가 입증해 보라며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수사기관이 해야 할 거증(擧證)책임을 피의자에게 떠넘기는 수사다. 지금 같았으면 인권 침해로 뭇매를 맞았을 기법이다. 그런데 20년 전 검찰에는 그런 것도 있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사가 그리워진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가난뱅이 아버지와 부자 아들의 관계를 보면서다. 선용씨는 김우중 전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전체 미납추징금의 84%인 17조원을 못 내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아들 재산이 상상을 초월한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번찌(Vun Tri) 골프 클럽의 주인이란다. 2010년에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한다. 자산 규모 600억원짜리다. 김 전 회장 측에서 나온 설명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다. 사실이 아니다가 아닌 걸 보면 골프장 주인은 맞는 거 같다. 땅ㆍ골프장 산 아들들 이제 나이 서른여덟. 국적은 포기했으니 서양 나이로 계산하면 서른여섯 안팎이다. 그런 그가 갖고 있는 재산이 60,000,000,000원! 우리 아들들이 그만큼 벌려면 얼마나 걸릴까. 잘 나가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청년이라면 1200년 걸린다. 더 잘 나가 연봉 1억원을 받는 청년이라도 600년 걸린다. 물론 밥도 굶고 옷도 안 사입으며 살았을 때 얘기다. 그렇게 아들이 사들인 골프장에서 아버지는 열심히 운동중이라고 한다. 돈 없어 추징금도 못 낸 아버지다. 단돈 10원을 상속했어도 위법이다. 그렇다고 600억원을 설명할 기업경영의 이력도 없다. 도저히 설명 안 되는 600억원. 수사관 Y였다면 이랬을 거다. 지금부터 이 종이에 600억원을 만든 경위를 쭉 적어라. 못 적으면 넌 구속이다. 재국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1천672억원의 추징금이 밀려 있는 전 재산 29만원짜리 가난뱅이다. 그런 아들의 재산에 세상이 놀라고 있다. 서초동 땅, 파주 땅, 서초동 건물, 평창동 땅, 연천 땅. 800억원대 회사의 50.53%짜리 대주주다. 그 회사 수장고에서는 미술품 400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전문가들이 가격을 매기겠다며 열흘째 진땀을 빼고 있다. 둘째 아들과 딸의 재산은 치지도 않았다. 그 아버지에게 2003년 판사가 물었다. 측근들과 자식들이 추징금을 안 내줍니까. 그 애들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이라 추징금을 낼 돈이 없습니다. 때마침 아들이 서울과 경기도를 옮겨다니며 부동산을 사 모을 때였다. 아버지 눈에는 이런 부동산 사재기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미납 추징금 1천600억원. 하필 정부가 우리 아들들을 위해 내놓은 청년전용창업자금 1년치다. 29만원밖에 없는 아버지가 물려줬을 리 없다. 아들 회사의 출판업계는 계속된 불황에 문 닫는 회사가 즐비하다. 설명 안 되는 800억원이다. 수사관 Y라면 또 이랬을 거다. 서초동 땅, 평창동 땅, 파주 땅, 연천 땅, 이거 무슨 돈으로 샀는지 자세하게 적어라. 못 적으면 아버지 비자금이다. 불완전ㆍ부족한 수사 그 가난뱅이 아버지와 부자 아들들이 사는 이 시대, 우리 주변에는 방황하는 청년 실업자가 30만명이다. 그 수만큼의 아버지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이들의 눈엔 모든 게 이상할 뿐이다. 추징금 안 내고도 경호 받으며 골프장에서 소일하는 아버지들도 이상하고, 그런 아버지 곁에서 땅 사며 골프장 사들이는 아들들도 이상하다. 여기에 16년간 두고 보다가 이제서야 뛰어들어간 검찰도 이상하다. 20여 년 전. 수사관 Y가 그토록 노리던(?) 공무원은 어떻게 됐을까. 수사 기법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 있어-한 달 정도 후로 기억하는데- 시청 국장실에서 근무 중이던 공무원이 체포됐다. 그리고 하루 뒤 구속됐다. 뇌물 혐의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검찰이 발표했다. 축재(蓄財)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고 전해졌다. 그때의 수사관 Y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선사(禪師ㆍ선법에 통달한 스님)로 통한다. 세상에 완전한 범죄는 없다. 불완전한 수사가 있을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돈세탁도 없다. 부족한 수사의지가 있을 뿐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전두환 아들, 김우중 아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바꿔라! 경기도시공사 조직

노조가 설명한 고소 취지는 이랬다. 공사 경영진이 공무원 회전문 인사로 임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폐해 사례다 여기서 말한 사례는 소장(訴狀)에 자세히 나와 있다. 화합 행사 참여나 월례조회 참석 등 근로자의 사적인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 격(格)에 맞추다 보니 점잖게 표현된 말이다. 쉽게 풀면 이렇다. 화합 행사와 월례조회가 싫으면 참석 않겠다 노조는 이런 고소사실을 7일 공개했다. 신임 사장의 취임식을 사흘 앞두고서다. 공교로운 건지 절묘한 건지, 아무튼 시기선택이 그랬다. 마침 신임 사장이 경기도 부지사 출신이다. 공직 임기를 마치고 막 사장에 취임하려던 참이었다. 이런 때 노조가 경영진을 고소했고, 그 이유라면서 공무원 회전문 인사를 얘기했다. 의도 했건 안 했건 신임 사장 길들이기만큼은 제대로 먹혀든 듯하다. 한가롭고 책임감 없고 이를 지켜보는 도민들은 화가 난다. 지금 도시공사는 노사간 힘겨루기할 때가 아니다. 고소장 들고 여론몰이 나설 때도 아니다. 짊어진 빚만 8조4천357억원이다. 하루 3억8천만원씩 이자를 물고 있다. 미분양 택지도 2조7천500억원 어치에 달한다. 갚아야 할 돈, 물고 있는 이자, 팔아야 할 택지가 전부 도민의 혈세(血稅)다. 고소했다고 자료 낼 시간이 없고, 잘 못 없다고 반박할 시간 없어야 정상이다. 전직(前職) 공무원 탓, 비(非) 전문가 탓도 그렇다. 오국환 사장(2002년 취임)은 토지공사 부사장 출신이다. 분당신도시 사업처장으로 신도시 개발을 담당했다. 이한준 사장(2008년 취임)은 한국교통연구원 부원장 출신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로 대심철도(GTX)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재영 사장(2011년 취임)은 국토부 실장 출신이다. 국토 전도(全圖) 위에 백년대계의 선을 직접 그리던 사람이다. 이만한 전문가들이 없다. 지나간 광교 신도시 10년도 어찌 보면 그들의 개인 역량에 업혀온 바 크다. 오국환 사장은 시중 은행을 엮어 펀드를 조성했고, 이한준 사장은 광교 출장소에 진치며 분양을 책임졌고, 이재영 사장은 마무리에 입주까지 도맡았다. 매 고비 이런저런 비판에 처하기는 했지만 그 논리 어디에도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에란 지적은 없었다. 유독 공사 내에서만 툭하면 공무원 출신 탓이 나왔다. 그리고 하필 지금-경영 위기고, 분양 안 되고, 광교 폭발 직전인-에 와서 고소까지 갔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의도라도 있는 건가. 혹시 사장 자리가 아닌 중간 자리에 대한 또 다른 셈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 속내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공사의 한가로움이 한심할 뿐이고,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는 무책임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공교롭게 그 며칠 전 광교 에콘힐이 무산됐다. 그 지경이 되기까지 도시공사가 무엇을 했다는 얘기는 없다. 주관사인 대우의 사장이라도 찾아가 담판을 했어야 옳았지만, 그런 얘기도 없다. 되레 3천억짜리 역(逆) 소송을 당하느니 마느니 하는 처지다. 1천115억원짜리 세금폭탄을 맞은 엊그제도 그랬다. 이 정도면 공사가 휘청거릴만한 일이다. 이때도 국세청으로 달려가 조치를 취한 건 도청 관계자였다. 도시공사가 아니었다. 도민의 노기 한계 달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경기도시공사는 광교 개발과 분양의 법률적 책임자다. 광교 사무실 옥상에 ㄷ자형 전망대. 거기에서 저쪽엔 법조타운 들어오고, 이쪽엔 도청사 들어온다며 약속하던 사람이 도시공사 사장이었다. 최첨단 시설로 치장된 1층 전시관. 거기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여기가 에콘힐 들어올 자리다라며 홍보하던 사람도 도시공사 직원이었다. 사기분양의 죄가 된다면 피고인석의 주인은 그 사람들이다. 이런 걸 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거다. 한가롭게 회사 단합대회 탓할 수 없었을 거고, 무책임하게 월례 조회 탓할 수 없었을 거다. 얼마 전 임한수 도의원(민주ㆍ용인)이 이럴 거면 도시공사 문 닫으라고 했던데. 일거리가 널려 있으니 폐업해서도 안 되고, 빚이 깔려 있으니 폐업 할 수도 없다. 아마 부채 숫자 8조원을 읽다가 부화가 치밀어서 한 소리일 게다. 도시공사를 향하는 도민의 노기(怒氣)가 딱 그만큼이다. 그러면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나태해진 조직이니 긴장감을 줘야 하고, 책임감 없는 조직이니 책임질 직원들을 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조직개편이란 제도는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바꿔라! 경기도시공사 조직]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최초의 광교 조감도 - 그 11년 전 반성을

한○○ 정무부지사가 던지듯 자료를 내놨다. A3 용지를 두 장 붙인 크기다. 두툼한 스티로폼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표지 제목은 이의 신도시 개발 계획. 안쪽으로 수원시 이의동 일대 항공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위로 붉은색 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었다. 산과 논밭으로 뒤덮힌 이의동이 그 속에서는 완벽히 구획된 신도시였다. 좀 빌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 같고, 맘대로 써먹으라고 들었던 것 같다. 무슨 요일에 쓸까 어떤 제목으로 갈까. 개발 특종을 손에 넣은 그때의 흥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3일쯤 지나 신문 1면으로 보도했다. 당연히 3면에는 총천연색의 이의동 개발 상세도가 실렸다. 그 후로 10여년간 꿈의 도시로 불리게 되는 광교신도시의 첫 조감도가 세상에 나온 순간이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기대와 환영 일색이었다. 시민단체조차 성명서-지금도 그들의 사무실 어딘가에 꽂혀 있을-에서 환경문제에 신중하라는 간단한 조건만을 달았다. 최초의 지자체 도시개발 그런데 여기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찜찜한 비화가 있다. 보도 며칠 뒤 조감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주택공사 경기본부의 정○○ 부장이다. 경기도 일대 개발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이의동 같은 노른자위를 그냥 보아 넘길 그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고 이미 조감도까지 그려놓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한 부지사가 안면 있던 정 부장에게 잠깐만 보자고 빌려왔는데, 이것이 경기도발(發)로 바뀌어 언론에 흘러든 것이다. 아는 검사님한테 물어봤는데, 이건 절도래요. 자료를 빼앗긴(!) 정 부장은 수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한 부지사를 찾아가 말없이 앉아 신경전도 벌였고, 가을비를 우산 없이 맞으며 언론사 김○○ 부장에게 부탁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지난 2002년 그때의 여론은 용인 난개발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주공입장에선 신도시의 신자도 꺼내기 힘든 때였다. 여기에 경기도 개발은 경기도민의 손으로라는 명분까지 더해졌다. 이의동 개발은 경기도의 몫이 됐다. 그로부터 11년. 그 도시가 휘청대고 있다. 2016년 완공하겠다던 도청사는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68층 규모의 초대형 랜드마크인 에콘힐도 좌초됐다. 강남까지 너댓 정거장이라던 신분당선 연장선은 2년째 지연되고 있다. 북수원~상현 IC 간 도로도, 광교~동수원 도로도 다 감감무소식이다. 백화점, 호텔, 문화시설, 글로벌 기업은 분양 광고 찌라시(전단)에만 남아 있는 그림이다. 꿈의 도시가 아니라 꿈만 꿔야 하는 도시다. 폭발한 입주민들이 개발주체인 경기도를 겨냥하고 있다. 도지사는 돈 없어서 청사 못 짓겠다고 한마디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사기 사건의 피고발인이 됐고, 도지사 구속하라 주민 소환하겠다는 우악스런 소리까지 들었다. 에콘힐 책임져라 기반 시설 확충하라 학교 늘려라 방음시설 설치하라. 십수 가지의 민원이 지금도 도지사 책상위로 올라가고 있다. 다른 신도시 같으면 토지주택공사 정문으로 몰려갔을 입주민들이 경기도청 정문에 진치고 있다. 신도시의 성패가 어디 한두 요소로 결정되겠나. 시기(時期), 조건(條件), 정책(政策)이 복잡하게 맞물려 가는 고차함수 같은 거다. 광교신도시 사태도 보는 이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만은 욕 들을 각오로 남겨 놓을까 한다. 애초에 행정기관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예산을 몽땅 털어 주식시장에 투자한다면 그건 도박이다. 마찬가지로 이의동 380만평을 깎아내 집장사에 나선 것도 도박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도박 지금이었더라도 그랬을까. 한 쪽(주공)은 부채 비율 466%에 하루 123억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다른 쪽(경기도ㆍ도시공사)은 부채비율 321%에 하루 3억8천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단언컨대 사정이 이랬다면 한 부지사와 정 부장 간의 조감도 쟁탈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서로 맡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을 게 틀림 없다. 누군가는 꼭 해야만 했던 일도 아니다. 경기도가 안 할 거고 주공이 못할 거면 그냥 놔두면 되는 땅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도 풍광 좋고 공기 좋은 이의동이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민망해진 11년 전 광교 신도시 조감도 쟁탈전. 돌아보면 조감도를 빼앗은 한 부지사나, 돌려달라던 정 부장이나, 좋다고 받아 쓴 김 부장-필자-이나 다들 쓸데없는 짓을 한 거였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최초의 광교 조감도 - 그 11년 전 반성을]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염 시장은 지면 되고, 김 지사는 주면 된다

발단 가운데 하나였다. 임창열 도지사가 시를 초도 순시했다. 여느 시처럼 시정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그런데 형식이 많이 달랐다. 업무 보고자가 부시장이었다. 심재덕 시장은 지사 옆에 나란히 앉았다. 도지사를 맞는 통상의 예와 달랐다. 결국 심 시장의 무례함에 임 지사가 노(怒)했다. 여기까지는 많은 목격자가 전하는 장면이다. 다만 그 일뿐이었는지 또 다른 일도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 사람은 확인해 주지 않고 있고, 다른 사람은 확인해 줄 수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즈음부터 수원행정의 고난은 시작됐다. 시에 내려주는 도비(道費)가 과(科)마다 막히기 시작했다. 교통지옥이란 원성이 높았지만 공사를 시작할 돈은 내려가지 않았다. 신규 프로젝트 시작은 아예 꿈도 못 꿨다. 컨벤션시티 21 사업 요청서가 매번 백성운 부지사실에서 멈췄다. 덜컥 기공식부터 치렀던 수원시만 모양이 우습게 됐다. 주라 마라로 공개된 임 지사의 워딩(Wording)은 없었다. 그런데도 도 공직자들은 지사님 뜻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했다. 시-도 충돌 피해는 시민 그로부터 15년. 경기도와 수원시가 또 아슬아슬하다. 정도는 다르지만 흐름이 비슷하다. 김문수 지사를 찾은 염태영 시장이 부탁을 한 보따리 꺼냈다. 컨벤션 21 해결ㆍ월드컵 경기장 이관ㆍ서울 농대 부지 개방이다. 컨벤션 21은 소유권은 관여 않겠다. 지어만 달라였고, 월드컵 경기장은 전체 운영권을 삼성에 넘겨주자였고, 서울 농대 부지는 시민에게 완전 개방시켜 달라였다. 이날 면담의 결과는 다음날 조간신문 속 사진으로 다 설명됐다. 두 사람의 눈길은 다른 곳을 향했고 입 꼬리도 올라가다가 말았다. 결렬-거부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이었다. 컨벤션 21 요구는 광교 개발이익금이 많지 않다. 지어준다고 할 때는 싫다더니 왜 지금에 와서 요구하느냐며 거부했고, 월드컵 경기장은 삼성에 넘기면 삼성전용구장이 된다. 공익시설을 너무 수익성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안 된다며 거부했고, 서울 농대 부지는 농업 기술원 등 도의 구상이 있다. 지금 정도의 개방이면 충분하다며 거부했다. 둘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알 만하다. 언제나 부아가 치미는 건 당하는 쪽이다. 5일 밤, 수원천 옆 무슨 카페에서 본 염 시장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경기도라는 갑(甲) 앞에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중이네. (컨벤션 21은) 소송이 진행 중이던 과거와 소송에 진 지금은 다른데 안된다고만 하고KT 야구단과의 형평성을 위해 삼성 축구팬에게도 뭔가 해줘야 맞는 거고경기도가 농대부지 개방한다고 플래카드까지 내걸었으니 다 개방하면 좋겠는데모두 안 된다고만 하지 않는가. 노기(怒氣)를 봐선 당장에라도 15년 전으로 되돌아갈 듯 보였다. 하지만 얘기의 끝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경기도는 갑이야. 싸우려 들지 않을 거야. 계속 설득해봐야지. 옳다. 상대는 도지사다. 그리고 김문수다. SOC 사업 때마다 도비에 손을 벌려야 하는 시의 현실이 있다. 싸움이 무섭다고 피해가려 할 김문수도 아니다. 시민의 자존심만으로 들이대기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피해가 너무 많다. 110만 시민 입장도 그렇다. 김 지사와 염 시장으로 구분되고 편 지어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김 지사가 도민이라 부르는 110만이 곧 시민이고, 염 시장이 시민이라고 부르는 110만이 곧 도민이다. 부(副)들의 노력에 기대 충돌도 하면서 가다듬어 가는 게 협상이라 했던가. 때마침 이 고역(苦役)을 위해 두 기관의 부(副ㆍVice)들이 뛰어들었다. 부지사실을 찾은 이재준 수원부시장의 손엔 설명을 위한 자료가 들려 있었고, 부시장을 맞은 박수영 경기도부지사의 마음엔 해결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박 부지사는 이 작업을 마사지라고 설명하던데. 어느 것에 대한 합의가 곧 나올 거라 본다. 그때는 마주 보며 활짝 웃는 김-염의 사진도 나올 거다. 염 시장이 지면 되고, 김 지사가 주면 된다. 안 지고 안 주던 15년 전의 실험. 그 실험에서 90만 시민은 무수한 것을 잃었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염 시장은 지면 되고, 김 지사는 주면 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공천개혁, 또 고려장(高麗葬) 치를 건가?

존 코니어스! 민주당 의원석에서 구부정한 모습의 한 노인이 섰다. 두 손을 양복 앞에 가지런히 모았다. 찰스 랑겔! 바로 옆에서 비슷한 연령의 노인이 일어났다.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샘 존슨! 이번에는 카메라가 반대편을 향했다. 몸이 불편해 보였지만 멋진 거수경례로 답했다. 연설회장은 큰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로 채워졌다.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 대통령의 소개를 받은 한국전 참전 출신 의원들이다. 신상을 찾아보니 이랬다. 민주당 소속 미시간주 하원의원 존 코니어스(John Conyers). 1929년 5월16일생이니까 올해 나이 84세다. 민주당 소속 뉴욕주 하원의원 찰스 랭글(Charles Rangel). 1930년 6월11일생으로 올해 나이 83세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주 하원의원 샘 존슨(Samuel Johnson). 그 역시 1930년 10월11일생으로 83세다. 이순(耳順ㆍ60)을 넘기고, 고희(古稀ㆍ70)도 넘기고, 희수(喜壽ㆍ77)도 넘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미국 의회를 지키는 현역이다. 한국전 참전 美 현역의원 그들의 전쟁, 6ㆍ25는 62년 전이다. 현충일에 틀어주는 흑백 필름이나 봐야 그때 전쟁이 있었구나~싶을 정도다. 그 영상 속 발가벗은 아이는 우리 동(同)시대의 인류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조선 왕조 시대 쪽에 더 가까이 살았던 조상쯤으로 여긴다. 바로 그 전쟁에서 탱크 몰고, 총 쏘던 군인들이다. 그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현역의원으로 소개를 받고 있다. 소개하는 사람은 그 전쟁 이후 18년이나 대통령을 했고, 34년전에 숨진 사람의 딸이다. 이런 장면, 우리 정치에선 절대 볼 수 없다. 50-고참(古參) 60-원로(元老) 70-고려장(高麗葬) 소리 듣는 게 한국 정치다.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정치 정년이란 단어도 등장했다. 나이 많은 의원 그만 두라며 드러내놓고 면박줬다. 그때 나돌던 고려장 명단엔 문희(72), 김용갑(72), 이강두(71), 이재창(72), 박종근(71), 이용희(77), 유재건(71) 등이 들었다. 모두 우리에겐 경험이 있다고 항변 했지만 소용 없었다. 선거판을 뛸 자격-공천-마저 박탈당했다. 이 정도면 나이 보고 후려치는 냉정함만큼은 세계 1등이다. 더불어 정치도 1등 간다면야 뭐라 할 일이 아니지만. 그게 아니다. 유독 젊은 초선이 많았던 국회가 17대다.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63%인 187명이 초선이었다. 제1당의 초선은 152명 가운데 71%인 108명이다. 대개가 386으로 대변되는 젊은 사람들이다. 역동성에 꿈틀대고 신선함에 설어야 할 17대다. 하지만 그때를 좋았던 4년이라고 평해 놓은 기록은 거의 없다. 그 중심에 섰던 제1당은 5년도 못 가 국민의 외면 속에 당기(黨旗)를 내렸다. 이제는 젊고 경험 없는 자들의 실험과 충돌이 난무했던 17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 고려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18대 총선(2008년)도 그랬고, 5기 지방선거(2010년)도 그랬고, 19대 총선(2012년)도 그랬다. 흐름대로라면 내년 6기 지방 선거도 그럴 것이다. 내걸 명패는 공천개혁이지만 칼날이 향하는 곳은 고령(高齡)ㆍ다선(多選)일 것이다. 경험 많은 정객(政客) 몇이 밀려날 것이고, 능력 있는 재선(再選)몇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젊은 풋내기들이 그들만의 혁신-보는 시민에게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을 또 시작할 것이다. 이쯤 되면 패착으로 결론난 실험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고령 퇴출이 곧 정치 패륜 젊은 패기가 뚫고 나갈 게 따로 있고 늙은 경험이 풀어 갈 게 따로 있다. 30대가 해야 할 투쟁이 따로 있고 70대가 해야 할 조화가 따로 있다. 서른의 정치인과 일흔의 정치인이 함께 가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고, 조화로운 사회고, 효율적인 사회다. 선거 민주주의 200년에 예산 3조7천억 달러를 다루는 미국 정치도 팔순의 현역들이 너끈히 끌고 간다. 건방을 떨던 라이스국무장관 후보자를 나는 키신저가 보좌관 할 때부터 상원에 있었다는 한 마디로 겸손하게 만든 것도 조 바이든의 36년 경륜이었다. 우리네 70ㆍ80대라고 다르지 않다. 너끈히 시장(市長) 할 수 있고 의원(議員) 할 수 있다. 나는 늙었다며 포기하는 후보는 없어야 하고, 당신은 늙었다며 쫓아내는 정당도 없어야 한다. 고령 퇴출의 또 다른 표현이 정치 패륜(悖倫)이기 때문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공천개혁, 또 고려장(高麗葬) 치를 건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성남시, 지금 깡패 영화 찍나

며칠 전 본 장면이다. 연두색 조끼 복장의 80여 명이 LH 정문에 나타났다.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 외쳤다. 단속을 시작한다는 얘기인듯했다. 곧이어 양쪽이 뒤엉킨 바퀴벌레 싸움 신이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한참을 이러고 나서 80명은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건 다음 날 본 게임을 위한 예고였다. 연두색쪽 수가 300명으로 늘었다. 굉음을 내는 포크레인까지 가세했다. LH 쪽 여직원 한 명이 포크레인 밑에 드러누웠지만 소용없었다. 정문 옆 철제 구조물이 파괴됐다. 이런 장면도 떠오른다. 검은 양복 차림의 수십 명이 차에서 내렸다. 이어 봉고에 실렸던 야구 방망이가 나눠졌다. 앞에는 최익현(최민식)과 최형배(하정우)가 섰다. 나이트클럽 정문으로 밀고 들어간다. 진입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이 격렬히 충돌했고 잠시 뒤 싸움이 평정됐다. 분함에 씩씩대는 김판호(조진웅)가 꿇어 앉았다. 니 오늘 좀 맞자는 형배의 한 마디로 승자의 폭행이 시작됐다. 맥주병이 머리로 날아갔고, 쓰러진 얼굴에 담뱃불이. 더 자세한 묘사는 19금이다. 공무원으론 부족해 포크레인까지 앞의 것은 성남시 주연의 LH와의 전쟁이고, 뒤의 것은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이다. 앞의 것은 KBS 9시 뉴스, MBCㆍSBS 8시 뉴스에서 대박을 쳤고, 뒤의 것은 500만 관객을 모아 대박을 쳤다. 이런 두 개의 전쟁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LH와의 전쟁이든 범죄와의 전쟁이든 미성년자들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는 거다. 이건 행정이 아니다. 불공정 행정이다. 시는 이번 단속을 통해 LH 본사 사옥의 건축, 위생, 도로, 공원, 광고물, 복지 등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비상구 계단에 물건 쌓아두지 않는 건물이 드물고, 현수막 한두 개쯤 내걸지 않은 건물이 드물고, 경계 벗어난 쇠말뚝 한두 개쯤 세워두지 않은 건물이 드물다. 평소에 단속했어야 할 일상 행정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수십 년 된 LH 사옥에 느닷없이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들어갔다. 불공정하기로 작정하고 들어간 행정이다. 폭압 행정이다. 이날 성남시 공무원들은 모두 연두색 조끼를 입었다. 뒤에는 성남시 공무원 봉사단이란 글씨가 새겨 있었다. 이 봉사단의 목적은 현장 봉사와 복지 봉사다. 건물에 밀고 들어가고 울타리 자빠뜨리는 게 본디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격에 안 맞는 이 옷을 입어 연두색 물결로 만든 속내는 뻔하다. 다수 위력으로 상대방을 외포(畏怖)케 하겠다는 것이다. 연두색 조끼에 손끝만 대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엮겠다는 뜻이다. 집단의 위력을 앞세워 상대를 무력화하겠다는 폭압 행정의 전형이다. 퍼포먼스 행정이다. 일련의 흐름이 마치 영화 촬영하듯 이어졌다. 우선 LH와의 전면전에 들어간다고 발표해 언론의 주목을 예약했다. 다음날 기자들이 모였고 정복 경찰 200명까지 늘어섰다. 그 사이로 연두색 단체복 80명이 등장하며 그림을 만들었다. 다음에는 콘셉트를 바꿔 포크레인을 추가했다. 포크레인의 무자비한 바가지질에 울타리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림은 절정을 이뤘다. 경고-위협-파괴로 완벽히 짜여진 시리즈였다. 공무원 380명의 역할은 애초부터 불법 단속이 아니라 퍼포먼스 출연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불공정ㆍ폭압ㆍ퍼포먼스 행정 독직(瀆職)이란 게 꼭 돈 먹어야만 성립하는 게 아니다. 단속권 있는 행정기관이 불공정을 작정하고 권한을 휘두르면 그게 독직이다. 힘 있는 행정기관이 위력까지 동원해 쳐들어가면 그게 독직이다. 법률적 대응수단을 가진 행정기관이 여론을 선동하며 설쳐대면 그게 독직이다. 22일과 23일, 이틀간 LH 사옥 정문에서 있었던 성남시의 행정은 독직이다. 원칙을 넘어선 월권이고 단속을 빙자한 행패다. 전국에서 청사 제일 크고 예산 제일 많고, 그래서 힘도 제일 세다는 성남시가 한 짓이어서 더 그렇다. 아마도 그날 동원된 380명의 공무원들은 이렇게 말할 거다. 정상적인 행정행위를 깡패 영화와 비교하다니, 모독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아주 일부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그날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 공무원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성남시, 지금 깡패 영화 찍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조선 왕ㆍ인재천거-박수영 부지사ㆍ청탁배격

인재 천거에 대한 조선왕조 기록이 참 많다. 근래 천거하는 길이 끊어져 현인과 불초한 자가 마구 뒤섞여 있는 실정이다. (관리들은) 인재들을 천거하는 글을 올리라 (의종 22년). 재능과 도덕을 품고 있으면서 은둔해 벼슬에 나가지 않는 이가 있으면두텁게 대우하여 나오도록 하라(공민왕 원년). 만일 (천거할 인재가) 가난하여 여행 경비를 조달할 수 없으면 관청에서 의복과 양식을 후히 지급하여 보내도록 하라(충선왕 원년). 성종의 교시는 더 절박하다. 그러나 배움의 축적이 없으면 무엇이 선정인지 알 수 없으며 어진 이를 등용하지 않으면 공(功)을 이룰 수 없으므로 안으로는 상서(庠序)를 열고 밖으로는 학교를 설치하여 재능을 견주는 장소를 열고 선비를 취하는 길을 확충하였다. 그런데도 아직 훌륭한 재능을 지닌 출중한 선비를 얻지 못했으니 이는 어진 이를 은폐하고 능력 있는 이를 막는 자가 있기 때문인가?(성종 11년). 인재천거와 인사청탁 차이 조선 왕들은 이렇듯 인재를 찾았다. 인재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좋았다. 인재를 추천하지 못하는 관리는 능력 없는 자로 간주해 꾸짖었다. 능력과 무관한 혈족(血族)의 시대 500년이 유지된 데는 바로 인재 천거제도가 있다. 그랬던 인재 찾기가 이제는 실록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문(古文)이 됐다. 인재천거란 말은 낯설어졌고 대신 인재청탁이란 말이 익숙해졌다. 공직사회의 대표적 악덕(惡德)으로 꼽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너나없이 인사청탁과의 전쟁을 얘기한다.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에서 지역을 관리하는 시장 군수까지 다 그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라는 우악스런 표현까지 동원했다. 인사청탁을 했던 대기업 사장을 공개해 투신자살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현오 전경찰청장은 인사 청탁하는 직원은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천명했다. 실제로 직원의 명단을 공개해 조직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런 인사청탁과의 전쟁이 곧바로 조직의 완성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패가망신을 경고한 참여정부는 5년 내내 386 측근을 중심으로 도는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렇게 맴돌던 주변인들의 비위가 이어지더니 결국 대통령 스스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조현오 시대의 경찰도 조직 내 하극상이 난무했고 폭로 비방전이 판을 쳤다. 퇴임한 그를 감옥에 보낸 것도 이런 조직 붕괴의 후유증이었다. 이런 게 다 목적이 잘못 정해져서 생긴 일이다. 인사청탁 배격은 인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인재를 찾아내고 적재적소에 그 인재를 배치해서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다. 공정하고 깨끗한 인사는 그런 목적으로 가는 길에 거쳐 가는 작은 과정이고 당연한 절차일 뿐이다. 이를 박수영 부지사가 모를 리 없다. 정부에서도 인사ㆍ조직ㆍ기획 분야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는 그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경기도내 인사 청탁이 생각보다 많다. 인사 청탁자에게는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기자들에게 작정하고 공개한 얘기다. 부임한 지 불과 1주일 만이다. 도대체 그 1주일 동안 행정 1부지사실과 그 방 전화에선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혹시 짐보따리를 푸는 일보다 인사청탁 받아 적는 일이 먼저 시작된 건 아닐까. 인재천거의 길 활짝 열어야 인사청탁 피해가는 데야 이골이 났을 그다. 뭉개기, 돌려막기, 넣었다 빼기 등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며 슬기롭게 넘어갈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가 정상적인 인재천거의 길까지 막아 버릴 거 같다는 점이다. 묻혀 있는 인재를 찾아 발탁할 수 있는 판단의 정보까지 차단해 버릴 거 같다는 점이다. 그렇게 가면 박 부지사가 꿈꾸는 김문수식 인사 개혁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할 텐데. 걱정이다. 인종은 시종관은 각자 초야에 숨어 지내는 훌륭한 선비를 1명씩 천거하라며 강제 할당을 줬다. 그러면서 이런 교시를 함께 내렸다. 천거된 자가 아무 재능이 없을 경우에는 천거한 자에게 벌을 주라(인종 5년). 천거의 길은 열고, 청탁의 길은 닫아야 하는 박 부지사가 한 번쯤 들여다 봄 직한 대목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조선 왕ㆍ인재천거-박수영 부지사ㆍ청탁배격]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도권 풀어도 영ㆍ호남 표심 안변한다

리틀 DJ 한화갑, DJ 비서실장 한광옥, DJ 전위병 이경재. 영원한 DJ 사람들이고 대표적 호남 정치인들이다. 이들이 줄줄이 박근혜 후보 캠프로 합류했다. 무슨 장(長)이니 무슨 특보(特補)니 하는 자리까지 맡겨졌다. 대선(大選) 기간 호남행(行) 박 후보 곁엔 늘 이들이 있었다. 호남 지역민들에게는 인사 탕평을 약속하는 박 후보의 100% 대한민국 약속도 전달됐다. 전문가들은 호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12월 19일 뚜껑이 열렸다. 득표율 10.3%. 달라진 건 없었다. 문재인 후보가 영남에 들인 공(功)도 대단했다. 부산이라는 태생부터가 무기였다. 노무현 당선 이후 굳어진 민주당의 대선 공식이기도 하다. 대선을 50여일쯤 앞두고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 TK(대구 경북) 지역이 꿈틀댔다. 40% 정도의 지지율이 야권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 갔다. TK까지 밀고 올라온 야권 기세에 박근혜 필패론이 고개를 든 것도 이 즈음이다. 그때도 전문가들은 TK 표심이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과는 득표율 19%. TK 역시 달라진 건 없었다. 선거 때 보자는 공갈 이런 걸 두고 철옹성(鐵甕城)이라 한다. 별수를 다 써도 동서(東西)로 갈라진 표심은 움직이지 않는다. 천지개벽 할 변수가 생겨도 저기선 저 당 찍고, 거기선 그 당 찍는다. 정치 9단 DJ의 동진(東進) 정책도 힘 한 번 못 쓰고 사라졌다. 열린 우리당의 전국(全國) 정당 포부 역시 이 벽에 부딪혀 깃발을 내렸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후보의 호남 좌절과 문재인 후보의 영남 좌절을 특별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그저 망국적 지역 정치를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점(點)일 뿐이다. 세상이 다 아는 영남 표심이고 호남 표심이다. 그런데 그 지역 정치인들이 이 뻔한 표(票)를 움켜쥐고 흥정하자며 목청을 높인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내년 지방 선거 때 새누리당 안 찍겠다. 알아서 하라며 으름장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가령, 수도권 규제를 풀었다고 치자. 그래서 영남 민심이 나빠졌다 치자. 그러면 2014년 영남에서 민주당 소속 시장ㆍ군수들이 무더기로 탄생하나. 아닐 것이다. 반대로 수도권 규제를 강화했다고 치자. 그래서 호남 민심이 좋아졌다고 치자. 그러면 2014년 호남에서 새누리당 소속 시장 군수들이 무더기로 탄생하나. 아닐 것이다. 어차피 2014년 6월4일 저녁 개표 현황판의 색깔은 정해져 있다. 수도권 규제를 풀었다고 빨간색이 노란색 되지 않고 안 풀었다고 노란색이 빨간색 되지 않는다. 답답한 건 이런 공갈포가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만 나오면 등장한다는 거다. 그리고 매번 쏠쏠한 재미를 보고 끝난다는 거다. 다음번 선거 때 보자고 겁주면 수도권 규제 안 풀겠다며 백기가 올라간다. 지금까지 그렇게 왔고 지금 또 그러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온 게 지난달 27~28일이다. 29일 아침 비수도권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새누리당, 내년 선거에 재미없을 것이라며 협박했다. 그러자 이틀 뒤 주무 장관이 없었던 일이라며 발을 뺐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정치적 토시까지 달았다. 왜 이러나. 혹시 정치 행위와 통치 행위를 구분 지은 개론(槪論)도 모르는 거 아닌가. 애초 수도권 규제는 정치행위로 묶은 게 아니다. 그린벨트 그을 때 국민 의견 물은 적 없고, 수정법 만들 때 여론조사 해본 적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심으로 한 것이고, 전두환 대통령의 결심으로 한 것이다. 우린 그걸 국가 원수(元首)의 통치행위라고 칭했다. 이제 그 규제의 용도가 30, 40년 지나면서 폐기될 시기에 왔다. 그러면 그 작업도 통치 행위로 풀어가는 게 맞다. 정치를 기웃거리며 쭈뼛댈 일이 아니란 얘기다. 통치행위로 규제 뚫고 나가야 대통령의 신념이 뭔지는 이미 공개됐다. 규제 완화는 찔끔찔끔 풀어서 될 일이 아니다라는 워딩(Wording)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러면 그 통치신념을 실천에 옮겨 확 푸는 일만 남은 거다. 그런데 이를 밀고 가야 할 수족(手足-장관)들이 찔끔거리고 있다. 더구나 일부 바람잡이들이 흔들어대는 허수(虛數) 협박에 겁먹어서인 것 같아 보이니 더 한심스럽다. 나라 좀 살려 보자며 새로 시작한 수출 관계 기관 회의. 그 회의보다 몇 배 큰 국부(國富)와 고용(雇用)의 곳간이 지금 수도권에서 썩어가고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수도권 풀어도 영호남 표심 안변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교육의 중립ㆍ자치? 그런게 여태 있었나

정치로부터 독립된 교육? 행정 자치와 구분된 교육 자치? 그런 건 없다. 교육이 정치에 뒤섞인 게 2009년이다. 직접 선거로 교육감을 뽑으면서다. 아무개는 여당이었고, 아무개는 야당이었다. 투표장을 찾는 도민들은 다 알았다. 후보들 역시 소속(?) 정당의 색깔을 알리는 게 관건이었다. 후보마다 기호 1번과 기호 2번에 매달렸다. 그 기호 1번을 정당과는 무관한 강씨 성을 쓰는 후보가 가져갔다. 투표에서 12.9%를 얻었다. 7.2%p 차이로 1등을 빼앗긴 여당 성향의 기호 4번은 한나라당=1번 때문에 망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2010년 교육감 선거는 한 발 더 나간다. 야권의 시장ㆍ군수, 도지사 후보들이 일찍부터 교육감을 찾았다. 인기 상한가를 치던 무상급식 교육감에 얹혀가려는 정치행위였다. 여기에 맞서는 한나라당의 전략도 속 보였다. 대통령의 교육을 보좌하던 정권 핵심을 후보로 냈다. 선거 지원을 위해 중앙당과 경기도당이 드러내놓고 뛰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도 없었다. 2010년 교육감 선거전은 그렇게 대한민국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는 제대로 된 정치판이었다. 정치 중립 잃고, 교육 자치 잃고 교육 자치도 그 즈음부터 이상해졌다. 부처나 기관의 자치를 평할 때 중요한 척도가 예산의 자치다. 예산 운용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느냐가 판단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교육은 이 조건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670억원짜리 무상급식 청구서가 교육청에서 도청으로 보내지던 2009년부터 그랬다. 교육 스스로 행정 금고에 손을 내밀면서 교육 자치는 사라졌다. 당시 시장ㆍ군수들은 행정 예산 편성권에 대한 침해라며 쌍심지를 켜고 맞섰다. 그런데 이 대립이 2010년 들어 사라진다. 야당 출신 시장ㆍ군수들이 되레 나섰다. 서로 무상급식비 내겠다며 교육으로 밀고 들어왔다. 수십~수백억원의 행정 예산을 학생 밥 먹이는 데 쏟아 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교육청이 내려 보내준 6호 경비까지 다 털어 넣었다. 그렇게 돈을 낸 시장ㆍ군수들이 이제는 돈 줬으니 관여 좀 하겠다며 교육 현장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교육에 관여 좀 그만 하라는 교육장들과의 마찰이 곳곳에서 아슬아슬하다. 이게 교육의 현실이다. 선생님 대신에 정치인이 중심에 섰고, 학력신장 대신에 무상급식이 목표로 붙었다. 교육이 있어야 할 교육 현장은 표에 눈먼 정치인들의 사냥터가 됐다. 국민의 50%가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조사(한국 갤럽 3월 조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때, 김문수 지사가 교육감 선거 러닝 메이트제를 들고 나왔다. 그 역시 교육-행정간 사무중복과 지방 재정 악화를 이유로 든다. 돈 없어 청사 못 짓겠다고 했다가 고발까지 당한 장본인이다. 매년 2~3천억원에 이르는 무상급식비를 세금처럼 내는 장본인이다. 해마다 더 주느니 덜 주느니를 두고 본 예산 전체를 거래해야 하는 홍역을 치르는 장본인이다. 어차피 뒤섞인 교육과 행정이라면 일원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그의 주장엔 이런 진저리 나는 경험이 배어 있는 듯하다. 돌아보면 교육감 선임방식처럼 많이 변하고 빨리 변한 제도도 드물다. 도 교육국장(70년대)관선 교육감(80년대)민선 교육감(90년대)직선 교육감(2000년대)으로 계속 바뀌어 왔다. 러닝 메이트 제도가 이 흐름 어디쯤에 해당되는지는 단정키 어렵다. 어떤 이는 과거로의 회귀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대안이라고 말한다. 일단, 교육제도 개선의 필요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수준에서 판단을 유보해 둘까 한다. 선거가 1년여쯤 남았으니 그럴 때도 된 것이고. 교육감 선거 통째로 다시 봐야 이러면서도 분명히 해놓고 갈 얘기는 있다. 러닝 메이트를 반박하는 (일부)교육계의 주장이다. 헌법상 교육의 정치 중립이 우려된다고 하던데, 그러면 지금의 교육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얘긴가. 교육 자치를 말살하는 발상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행정과 교육 예산이 뒤범벅된 지금의 무상급식이 교육 자치의 완성이라는 얘긴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 중립이 있었다면 지방 정치가 이렇게 시끄러울 리 없고, 그런 자치가 있었다면 지방 행정이 이렇게 휘청거릴 리 없다. 머릿속에서 김문수 김상곤이란 이름 석 자를 지우자. 그리고 교육감 선거제도를 통째로 들여다 보자. 직선 교육감 7년이면 이제 그럴 때도 됐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교육의 중립ㆍ자치? 그런게 여태 있었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땅에 묻힌 보육원생, 그 아이의 눈에는

생활지도교사들이 아이를 야산으로 끌고 갔다. 나무에 붙여 세운 뒤 대걸레 자루로 사정없이 때렸다. 아이가 뒹굴자 미리 준비한 나이론 끈으로 나무에 묶었다. 15번의 몽둥이 질이 더 가해졌지만 묶인 아이에겐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어 힘 빼지 말고 묻어 버려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널찍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강제로 눕혀진 아이 몸 위로 봉분처럼 흙이 덮였다. 교사 한 명은 땅이 굳어야 한다며 밟기까지 했다. 30분 만에 꺼내진 흙범벅의 아이는 다시 보육원으로 끌려가 25차례의 몽둥이질을 또 당했다. 3일 오후 7시30분 양주의 어느 야산. 12살짜리 아이는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렇게 맞고, 묶이고, 묻혔다. 정부가 인가한 보육원에서 정부가 인정한 사회복지사들에게 당한 죽음의 매질이었다. 그런데도 아이에겐 억울함을 호소할 사람이 없었다. 상처 난 다리를 내밀어 볼 사람도 없었다. 잔인하게 맞은 그 건물에서, 잔인하게 때렸던 그 사람들과 함께 또 밥 먹고 잠잤다. 돈 없어 자신을 맡겼던 아버지와 경찰복 입은 아저씨들이 찾아온 그 순간. 그때까지의 열흘을 아이는 그렇게 버텼다. 가난에 멍든 아이를 왜 또 어떤 이는 대한민국을 복지 천국이라 부른다. 그 중에도 보육 복지를 최고로 친다. 20여개의 보육 공약을 내 걸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니 그런 소리 나올 만 하다. 보육을 위한 아빠의 달 제정, 다자녀 가정에 주택 특례 공급, 영아 종일제 돌봄 서비스까지 없는 게 없다. 단어와 순서만 다른 12개의 보육 공약을 내놨던 다른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이런 기대는 같았을 것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보육 복지도 즐비하다. 김 소장은 우리 수원시의 복지과(科) 예산만 2천억원이야라며 자랑한다. 이쯤 되면 보육 복지 천국 맞다. 그런데 여기엔 한가지가 빠져 있다. 돈 없어 버림받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이다. 애초부터 우리가 말하는 보육원과 정치인이 말하는 보육은 달랐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보육원은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건전하게 양육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아동을 대신 보호ㆍ양육하는 시설이다. 정치인이 말하는 보육은 투표권 있는 유권자가 아이를 기르거나 교육하는 데 필요한 제반 경비 및 제도다. 앞의 보육은 불쌍한 아이들이 객체고, 뒤의 보육은 표를 가진 유권자들이 객체다. 육아 휴직을 통한 아빠의 달 도입? 그건 아빠가 있는 아이들 얘기다. 다자녀 가정에 주택 특례 공급? 그건 가정이 있는 아이들 얘기다. 영아 종일제 돌봄 서비스? 그건 직업을 가진 부모가 있는 아이들 얘기다. 가난해서 버려지는 아이들과는 처음부터 상관없는 공약이다. 전국 280개 보육원에 맡겨져 있는 1만7천명의 아이들과는 애초에 연결되지 않는 정책이다. 가난이 주는 생이별은 복지 천국 대한민국에서 버려지고 외면된 지 이미 오래다. 1998년 어느 날, IMF로 붕괴되는 한 가정의 생이별 장면이 TV로 중계됐다. -그토록 먹고 싶던 피자에 아이가 신났다. 꿈에 그리던 놀이공원까지 갔다. 아빠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걸 알 리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보육원을 찾았다.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자 친구들과 노는 곳이라고 답했다. 또래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아이가 들어갔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라며 아빠는 문을 나섰다. 이때부터 카메라는 유리창 너머의 아이를 찍었다. 아이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벽에 몸을 부딪치며 까무러치듯 울어댔다.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챈 것이다. 서너 살짜리 아이도 능히 알 수 있는 천륜의 본능이었다. 창문 안 아이는 아빠를 찾으며 절규했고, 창문 밖 아빠는 못 할 짓 같아요라며 오열했다- 이러고도 복지 천국인가 그렇게 생이별하고 들어왔을 아이가 국가 인증 2급 사회복지사들에게 맞고 묶이고 묻혔다. 누군가 나서 보육원 운영을 감사라도 해줬으면 좋겠고, 사회복지사 실태를 파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해줄 경기도의회는 지금 또 다른 보육 복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돈 있는 집 손주들에까지 보육비 대주자는 손주 보육비 지원 조례안을 놓고 되느니 안 되느니 싸우고 있다고 한다. 그날 밤 양주시 야산에서 맞고 묶이고 묻혔던 그 아이가 우리 아들 우리 손자였더라도 이렇게 모른척 할 수 있을까. [이슈&토크 참여하기 = 땅에 묻힌 보육원생, 그 아이의 눈에는]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冊 ‘한국전쟁 -마지막 겨울의 기록-’

겉표지를 스친 손가락으로 먼지가 묻어났다. 아마도 여러 해 꽂혀 있었던 듯싶다. 더들리 휴즈의 한국 전쟁-마지막 겨울의 기록-인데, 내가 산 기억은 없다. 무협지 냄새 풀풀 나는 이런 책에까지 돈을 쓸 만큼 독서광은 아니다. 그런데 얼핏 꺼내본 책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파란 눈의 병사가 60년 전 전장에서 쓴 일기가 풍기는 메케한 화약냄새 때문이다. 포탄이 스치면서 내는 소름 끼치는 금속성 굉음, 본토에 아내를 향한 지아비의 사랑, 전쟁에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가는 참담한 한국인의 생활이 영상처럼 적혀 있다. 1953년 1월 24일 철원 부근 스퍼트힐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공군이 60톤이 넘는 폭탄과 14발의 네이팜탄을 언덕에 쏟아 부었다. 포병대대는 수천 발의 105밀리미터 포탄을 발사했다. 이어 F-84기가 언덕에 5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적군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개미 언덕의 불개미처럼 동굴과 참호에서 기어 나왔다. 65명의 중국군이 사망했고 77명의 유엔군이 사망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하던 이날의 우리 작전은 실패했다. 왜 독가스가 땅속에 있는 적군들을 살상하기 위해 사용되었는지 그 까닭이 명백해졌다. 1953년 2월 5일 갑자기 쉭- 쉭- 쉭- 하고 박격탄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길 위에 납작 엎드렸다. 포탄이 6미터 옆에 떨어졌는데 폭발하지는 않았다. 두 번의 포격이 더 있었다. 쉭 꽝, 쉭 꽝. 세 발 모두 불발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신이 도운 걸까 아니면 탄약이 잘못된 것일까. 포탄에 맞게 되면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던데 그것도 틀린 말 같다. 엎드리면서 돌덩어리에 턱이 부딪히는 바람에 입술이 찢어지고 아랫니가 덜렁거렸다. 상이훈장을 신청하라는 의무병에게 말했다. 이건 포탄에 맞은 게 아니란 말이야. 됐다. 1953년 2월 6일 <편지>내일 지프가 와서 소대가 있는 새로운 지역으로 날 데려다 줄 거야. 거기 도착하면 맨 먼저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을 거야. 그리고 나서 밤에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뛰쳐나오는 일 없이 침대에 누워 당신 꿈을 꾸며 푹 자고 싶어. 입술이 따갑고 아파. 당신과 함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야.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들 지경이지만 말이야.-나는 전투 중 부상이라는 소식은 숨겼다. 아내에겐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심지어 보이스카우트 캠핑장과도 같은 즐거움을 줄 지경이다. 1953년 2월 28일 버드에게 말했다, 나는 곤잘레스가 군 법정에 서는 걸 원치 않는다. 당장 그 여자 아이를 밖으로 내 보내라고 말하게.한국인 여자 아이는 그 후로 부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 국민들은 침략자나 방어자만큼 고통을 겪었다. 군대가 한반도를 휘젓고 다니면서 집과 마을을 파괴했다. 많은 남편과 아버지, 형제들이 죽거나 입대했다.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부대에 많은 심부름꾼 아이들은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와 있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도 많았다. 이건 칼럼이 아니다. 때론 어쭙잖은 주석이 본문의 생생함을 움츠러들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대로 옮겼다. 미국 포병 장교 휴즈가 181일간 목숨을 내걸고 적어 내려간 이 기록보다 전쟁의 아픔을 설명해낼 재주가 내겐 없다. 북이 휴전협정 파기를 선언해도 꿈쩍 않는 우리, 개성공단 입구를 막아버려도 꿈쩍 않는 우리, 미사일을 쏘아댄다해도 꿈쩍 않는 우리. 자신감에서 나온 당당함이라면 좋으련만 무감각에서 오는 방심이라면 큰일이다. 60년 전 전장속으로 한번쯤 들어가 볼 때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冊 한국전쟁 -마지막 겨울의 기록-]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경기고법, 광교 내걸면 도민 등 돌린다

너네 매장에 사람들 많지. 조만간 내가 찾아갈게 도와줘라. 경기고법 설치 해야 하는데.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와. 수원변협 부회장이 묻고 이마트 분당점장이 답했다. 군복(軍服)만 입혀 놓으면 사람들이 이상해진다더니 교복(校服)이 그렇다. 동창(同窓)이란 단어 하나에 모두가 풀어졌다. 50줄 중년들이 서로를 ○○새끼라고 불렀지만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모임은 그렇게 학연이란 해방구에서 술과 수다로 젖어갔다. 이때 등장한 게 경기고법이다. 생뚱맞은 화두 앞에 잠깐의 어색함이 흘렀다. 하지만 교복의 또 다른 마력은 잠깐의 어색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경기고법 도와주자!라는 일성(一 聲)으로 뭉쳤다. 그즈음 인터넷에 경기고법을 치면 이런 기사가 떴다. 경기도의회 경기고법 광교신도시 유치 결의안 제출 제목 안에 내용이 다 있다. 경기고법을 광교신도시에 가져오자는 결의안이다. 경기고법을 설치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도의회의 결기도 느껴진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유치라는 단어가 이상하고, 광교라는 지역이 이상하고, 부지를 보는 기준이 이상하다. 유치 아닌 설치 촉구해야 왜 자꾸 유치라고 말하나. 유치를 말할 때가 아니라 설치를 말할 때다. 대법원에 촉구할 것도 설치 계획 수립이고, 국회에 촉구할 것도 설치 법안 통과다. 설치촉구가 먼저 가고 지역 유치전(戰)이 뒤를 이어야 한다. 혹 두 순차(順次)의 간극이 밀접히 붙는 일도 있다. 그렇더라도 유치촉구가 설치촉구보다 앞서가는 경우는 없다. 누가 떡을 준다고 해야 배추김치 먹을지 무 김치 먹을지를 따지는 거 아닌가. 광교라는 특정(特定)도 그렇다. 지난 13일 토론회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은 명칭이야 어떻든 간에라며 경기고법 단어 사용을 꺼렸다. 그게 현실이다. 충청 고법은 없다. 대전 고법이다. 경북 고법은 없다. 대구 고법이다. 우리 지역 고법도 경기고법이 아니라 수원고법으로 가는 게 맞다. 김문수 도지사도, 염태영 시장도, 수원변협 회장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경기고법이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있다. 왜겠나. 성남ㆍ평택ㆍ안양ㆍ의정부 시민을 다 참여시키기 위해서다. 103만 수원시민의 힘만으론 부족하니 1천300만 경기도민의 뜻을 모으려는 것이다. 고법설치에 소극적인 대법원의 수원고법과 고법설치에 적극적인 경기도의 경기고법 사이에는 이런 닮은 듯 다른 차이가 있다. 이런 마당에 경기도의회가 갑자기 광교를 들고 나왔다. 경기보다 작고, 수원보다도 작은 광교를 명패로 걸고 나왔다. 나머지 도민들에겐 한순간에 광교만의 일처럼 됐다. 고법 부지 기준에 대한 오판도 문제다. 경기고법 설치 비용은 대략 3천억원이다. 여기서 땅값이 2천억원이다. 1년에 고작 800억원 가지고 청사 짓고 고치는 대법원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돈이다. 그렇다고 복지를 위해 국방비에까지 손대는 정부가 내어줄 리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영통 기재부 땅이다. 관리청 변경만으로 당장 1천억~2천억원이 해결된다. 예산 핑계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더 없는 길이다. 좋은 땅이 아니라 돈 안 드는 땅을 찾아야만 하는 대단히 현실적 이유다. 돈 안드는 땅이 정답이다 다들 열심히 뛰고 있다. 수원변협 부회장의 취중(醉中) 활동, 이마트 분당점장의 조건 없는 약속, 경기도의회의 경기고법 광교신도시 유치 결의안. 모두가 열정이고 희생이다. 힘 보태주고 손잡아줘야 한다. 다만, 그 방향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면 그건 바로 잡아야 한다. 설치를 촉구해야 할 때 유치를 촉구하면 바로 잡아야 하고, 1천300만 도민의 공동 사업으로 가야 할 때 20만 지역민의 특색 사업으로 가려 하면 바로 잡아야 한다. 경기고법 설치는 1천300만 도민을 협력과 하나됨으로 이끄는 화두지만, 광교고법 유치는 31개 시군을 경쟁과 난타전으로 몰고 가는 화두다. 잘못된 역(逆)주행 한 번이 평택시민 등 돌리게 하고, 의정부시민 짜증 나게 하고, 영통주민 관심 접게 할 수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경기고법, 광교 내걸면 도민 등 돌린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대법원 “경기고법 부지로 영통구 4천평이…”

13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 센터 국회 회의장. 대법원장을 초청한 생방송 토론회다. 경기고법 설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소극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답변이 길었다. (경기)고법이 필요하다. 경기도의 사건 수도 그렇고 서울고법은 한계에 왔다. 중요한 것은 돈이다. 부지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기재부에서 받아내야 한다이런 복잡한 문제 때문에 소극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예상했던 답변에 살만 몇 점 붙었다. 어차피 답변보다는 질문에 비중을 둔 준비였다. 편집 안 되는 생방송에서 경기도민의 입장이나 왕창 쏟아 붓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이 오찬장에서 생겼다. 설렁탕이 놓인 원탁 좌우로 A와 B가 다가와 앉았다. A는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 B는 대법원 핵심 관계자다. 둘 다 경기고법 설치에 직접적인 업무 책임자다. 경기고법 질문자와 경기고법 책임자들간의 오찬이다. B가 말했다. 경기도가 고법 부지를 무상으로 준다는 건 아니잖아요. 경기도의 고법 부지 제공 계획에 대한 얘기다. 무상인지 유상인지까지 정확히 말하고 있다. 이미 이 조건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이어 이런 말을 덧붙인다. 사실은 우리가 지켜보는 땅이 있습니다.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땅 4천평입니다. 현재 기재부 소유입니다. 어차피 국가 소유니까 그게 쉬울텐데. 이게 무슨 얘긴가. 도청사 부지도 아니고 농생대 이전 부지도 아니다. 대법원의 비협조? 근거 없어 이어지는 얘기는 A가 했다. 고법 설치에 지금 필요한 건 국회의원입니다. 수원엔 김진표 의원도 있고, 남경필 의원도 있잖아요. 그분들이 좀 나서주면 좋을 텐데요. 법원의 신설에는 개개의 법률이 필요하다. 법안 통과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법 통과를 위해서는 탄원서 수만 장보다 국회의원 한둘의 힘이 더 필요하다. A는 그 일의 적격자로 부총리 출신 김진표 의원과 집권당 다선인 남경필 의원을 꼽았다. B가 다시 거들었다. 남양주 지원 신설 때는 정말 편했습니다. 최재성 의원이 모든 걸 풀어갔습니다. 저는 최 의원이 자료 달라면 자료 주고 서류 만들라면 서류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남양주 법원(지원)이 확정됐다. 역시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챙겨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8개월여 만에 끝났다. B는 최재성 의원이 (기재부 공무원을) 일일이 설득하고 다녔답니다라며 비담(秘談)까지 소개했다. 1시간여의 오찬은 B의 귀엣말로 마무리됐다. 기재부 땅이든 예산 요청이든 우리 입으로 말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원에) 내려가면 (경기일보 가)도와주십시오. 필요한 것 있으면 도 와드리겠습니다.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법원 때문에 안 되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경기고법 설치에 대법원이 비협조적이다. 그러니 범도민 대책위를 만들어 대법원을 압박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개 하나 너머 대법원이 가 있는 수순은 그 너머였다. 예산 확보와 법안 통과를 위한 수(手)에까지 가 있었다. 대법원을 밀어붙이자며 세(勢)에 몰두하는 수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장의 흐름을 위해 실체적 진실을 과장할 생각은 없다. 대법원이 말하는 의지에도 의심 가는 구석은 있고, 수원이 취하는 방식에도 이해 가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양쪽 모두에서 같은 해석이 나와야 하는 공통의 조건은 있다. 고법 설치의 절차가 법률통과를 앞두고 있고, 예산확보를 위해 기재부를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이다. 이 현실만은 달리 해석되면 안 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그 대책을 얘기하고 있고, 수원은 대법원 압박만 얘기하고 있다. 고법 票 장사, 이제 그만해야 진단이 엉뚱하면 방향도 엉뚱해 지는 법, 지금의 수원이 그렇다. 대법원이 기재부 좀 압박해달라는데 수원은 대법원을 압박하고 있고, 대법원이 국회의원 두세 명의 힘이 필요하다는데 수원은 도민 1천만 명의 연판장을 계획하고 있고, 대법원이 당장에 쓸 수 있는 땅 영통구 4천평에 공들이는데 수원은 무상(無償)도 아닌 도청사 부지를 두고 되느니 안 되느니 논쟁을 벌인다. 몰라서 이러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이러는 걸까? 혹시 고법 깃발만 쳐들어도 조건 없이 벌어지는 유권자들의 광기 어린 춤판에 재미붙여서 이러는 건 아닐까? 그날 깍듯한 예의 뒤로 숨겨진 A와 B의 눈빛은 분명히 질문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보야, 중요한 건 돈이고 법이야. 사람 모아놓고 현수막 내걸 때가 아니야. [이슈&토크 참여하기 = 대법원 경기고법 부지로 영통구 4천평이]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경기도지사 후보는 아무개다 -새누리당-

김문수 지사가 또 하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는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다. 탄핵 역풍 속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도 살아남았다. 삼성맨 진대제와의 경기도 대전에서도 이겼다. 민주당 싹쓸이 속에서는 유시민을 이겼다. 그 자신 언젠가 밥 자리에서 안 나가면 안 나갔지 일단 나간 선거에선 진 적이 없네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게다가 8년 도정 경험을 화투판에 굳은 자처럼 떠 안고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의 얘기는 김 지사가 안 나가겠다고 선언했을 경우를 가정해야 할 것이다. 요사이 유정복이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정치판 읽기에 이골이 난 A는 이렇게 말한다. 안행부 장관을 왜 시켰겠어. 지역 출신에 시장까지 경험했고 농림부 장관도 해봤지. 여기에 지방 행정을 총괄하는 안행부 장관 경력까지 더해주면 도지사 스팩으로는 최고 아니겠어. 아무리 봐도 유정복을 장관 시킨 건 경기도지사 만들기 같애. 유정복-김영선-남경필 등 턱없는 소리가 아니다. 유 장관만한 친박(親朴)도 드물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농림부 장관도 친박 몫이었다. 테러를 당한 박 대통령이 했다는 대전은요?의 진실도 그와 박 대통령, 하느님밖에 모른다. 촉새 주의보가 내려졌던 박 당선인 시절, 섣불리 하마평에 올랐다가 본선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친박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유 장관만은 비서실장설 돌고 장관설을 돌아 안행부 장관까지 무사히 안착했다. A의 전망과 비슷한 얘기를 하는 꾼들이 부쩍 늘었다. 북방발(發) 도지사설도 있다. 정치인 B가 전하는 얘기다. 김영선 (전)의원이 뛰기 시작한 것 같던데요. 도와 달라고 얘길 하더라고요. 언론에서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최초의 여성 경기도지사. 그림이 되지 않습니까. 김 의원을 말랑말랑하게 보면 안 돼요. 듣고 보니 그의 말도 맞다. 김 전 대표 역시 친박이다. 친이계의 개헌논의에 맞서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다. 분열의 소지가 있다(2009년 9월16일)며 싸웠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도 세종시 문제에 관해 플러스 알파가 이야기되고 있는데 전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접근이다(2010년 6월24일)라며 당시 박근혜 의원을 지원했다. B의 주장대로 여성 대통령-여성 도지사의 캐치프레이즈도 그만이 내걸 수 있는 광고 문구다. 이래저래 그를 찍는 꾼들도 꽤 된다. 남방발(發) 도지사설은 남경필 의원이다. A와 B가 유정복 김영선의 이름만 얘기하진 않는다. 정병국 의원도 뜻이 있을 테고, 원유철 심재철 의원도 생각이 있을걸? 수원에는 남경필이 있잖아 (A). 고희선 의원도 눈에 띄는 캐릭터인데. 참 남경필이 있군요 (B). 양쪽에 다 겹쳐지는 이름이 남경필이다. 남 의원은 친박이 아니다. 친이도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비주류의 대표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로 보면 유정복 김영선을 따라잡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도지사 후보군엔 여전히 남경필이 있다. 5선이라는 선수(選數)와 110만 수부도시의 지역장이라는 몸값인듯 하다. 여기에다 그 만이 갖고 있는 무기가 하나 있다. 순수한 경기도 출신이라는 출생신고서다. 그를 꼽는 꾼들도 그래서 적지 않다. 20년 청와대 입맛의 반복? 경기도지사 선거는 2014년이다. 이 글이 1년 뒤에-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 유ㆍ김ㆍ남이 모두 안 되는 순간 그렇게 되는 거다. 그런데도 이런 소설 같은 글을 써대는 데는 한 없이 하찮아 보이는 근거가 있다. 20년 지방자치가 남긴 경험, 다섯 번의 경기도지사 선거가 남긴 학습때문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집권 여당의 후보는 늘 청와대가 골랐다. 이인제 후보는 YS 대통령이 골랐고, 임창렬 후보는 DJ 대통령이 골랐고, 진대제 후보는 MH 대통령이 골랐고, 김문수 후보는 MB 대통령이 골랐다. 거기엔 승률이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자리는 양보할수 없다는 청와대의 고집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를 이 글의 주제로 잡은 것도 그래서다. 각설(却說)하고, 서너달 후면 난타전이 시작된다. 새누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를 놓고 이런 저런 논리와 저마다의 신경전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질 결과가 지난 20년의 궤도를 따라 갈지, 20년만에 철길을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갈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걸 느긋하게 지켜볼수 있는 것도 유권자가 가진 권리인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경기도지사 후보는 아무개다 -새누리당-]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장관 2 호남이 홀대면, 장관 0 경기도는 천대다

전라도가 단단히 틀어졌다. 받은 패(牌)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장관 자리를 두 개나 받고서도 이런다. 전북 고창 출신과 전남 완도 출신이 무늬만 호남이란다. 지면으로 전해 오는 호남 여론이 장난 아니다. 행정가인 강운태 광주시장까지 나섰다. 간부 회의 석상에서 대놓고 호남 홀대를 얘기했다. 차관 인사 때 두고 보겠다는 으름장까지 깔았다. 민주당도 두둔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이 실종됐다며 성명서로 불을 지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전라도에게 장관 자리 서너 개는 당연히 받아야 할 할당 같은 거였다. 정권의 탄생지가 어디든 호남에겐 TO가 있었다. 호남 맹주를 꺾고 정권을 잡은 김영삼 정부도 첫 내각에서 6명의 호남 장관을 임명했다. 호남 정권 김대중 정부가 5명, 부산 정권 노무현 정부가 4명이었다. 정권이 호남이면 집권여당 몫으로, 정권이 영남이면 지역 배려로 챙겼다. 장관 자리 두 개를 두고 달랑 두 개라고 투덜댈 만 하다. 같은 날 인사에서 경기도 출신 장관은 몇 명이나 될까. 장관이 17명이다. 서울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다. 두 번째가 경기도였으면 좋겠는데. 영남이 4명으로 두 번째다. 세 번째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2명씩 배출한 호남, 충청, 인천이 공동 세 번째다. 그리고 끝이다. 혹시나 해서 총리 후보의 고향을 뒤적거려 봤지만 영남이다. 무늬만 경기도라도 없을까 따져봤지만 이마저도 없다. 경기도 출신 장관 0명. 이런데도 경기도는 조용하다. 인수위ㆍ장관 도 출신 0명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이상한 침묵을 이상하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긴 불과 한 달여 전에도 그랬다. 권력 구성의 요람이라는 인수위원회가 발표됐다. 서울 9명, 영남 6명, 호남 4명, 충청 4명, 기타 1명이었다. 경기도는 0명이었다. 며칠 뒤 인수위 파견 공무원들이 발표됐다. 정부 부처와 차기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할 핵심 공직자 53명이었다. 거기에도 경기도 출신은 3명뿐이었다. 다른 지역은 그때도 술렁댔다. 박근혜 인수위, 충청 현안 뒷전(충청 투데이ㆍ1월9일자) 인수위 전문위원 道 출신 없다(강원도민일보ㆍ1월 12일). 지역 여론을 옮겨 쓴 언론 제목이 그랬다. 하지만 경기도는 그때도 조용했다. 장관 후보 0명에도 조용하고, 인수위원 0명에도 조용한 곳, 이게 인구 1천200만을 자랑하는 웅도(雄道) 경기도다. 권력의 고기맛? 그런 건 애초부터 몰랐던 듯하다. 정치적 입맛은 차라리 초식동물로 변해버린 듯하다. 대한민국 예산은 장관이 지출한다. 대한민국 개발도 장관이 결정한다. 대한민국 수사도 장관이 결재한다. 내 생활, 내 재산, 내 권리를 쥐고 흔드는 생활 속 권력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십수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수원시가 신동과 화성 태안을 연결하는 도로 계획을 세웠다. 삼성 주변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로였다. 하필 그 계획선 복판에 생산녹지가 있었다. 농림부의 전용 허가가 떨어져야 하는 땅이다. 협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농림부 6급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원시 간부들이 온갖 노력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공사기간 5년 중 2년을 이렇게 농림부 6급이 틀어쥐고 있었다. 지금은 박지성로로 불리는 그곳에 얽힌 뒷얘기다. 당시 담당자 최가 했던 이 말이 생생하다. 서울 가면 우린 바보야. 장관을 아나 국장을 아나 과장을 아나. 의원ㆍ도지사ㆍ시장 침묵 경기도민의 삶을 책임지는 경기 공무원들은 잘 안다. 장관 없는 경기도에서 공무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중앙부처에 출장 다녀오라면 걱정부터 덜컥 나고, 동문회 명단 꺼내놓고 인연 찾아 허둥댄다. 이런 게 다 장관 없고 끗발 없는 경기도에서 공무원 해먹는 죄다. 강운태 시장이 그날 이런 말을 했다던데. (호남)지역의 현안이 많은데 호남 장관 두 명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라는 말이냐. 이제 누군가 나서서 따지고 캐물어야 한다. 1천200만 경기도에는 장관 깜이 없다는 얘기인지 따져야 하고, 936만 유권자의 도움이 2014년에는 필요 없다는 것인지 캐물어야 한다. 전라도에서 장관 달라는 건 권리고 경기도에서 장관 달라는 건 탐욕이냐고 따져야 한다. 충청도에 장관 주면 지역 배려고 경기도에 장관 주면 지역독점이냐고 캐물어야 한다. 장관 2명인 호남이 홀대면 장관 0명인 경기도는 천대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ㆍ군수, 이럴 때 떠들라고 뽑아준 거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FC 안양이 1등 하는 세상이 아름답다

주장은 슈퍼마켓 사장이다. 공격은 까르푸 직원이 맡았다. 차라리 조기 축구팀에 가까웠다. 이런 선수들이 승수를 쌓아 갔다. 1부 리그 명문 구단 등 10팀이 줄줄이 제물이 됐다. 결승에선 졌지만 이미 그들에겐 칼레의 기적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원정 응원에 나섰던 4만명은 전 지역 주민의 절반이었다. 르 몽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들이라고 적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칼레가 정신에서 우승했다고 칭찬했다. 1등이 1등하면 재미 없다. 꼴등이 1등해야 재미있다. 12년 전,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구 도시 칼레(Calais)가 세계 축구사에 기록된 것도 그래서다. 2012년은 경기도민과 수원시민이 모처럼 스포츠로 하나 된 해였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라는 공통의 목표가 모두를 하나로 묶어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격동의 물결 뒤편으로 우리가 챙겨주지 못한 또 하나의 열정이 있었다. 안양시민들의 FC 안양 만들기다. KT처럼 200억 배팅을 써낼 모기업도 없었다. 경기도처럼 맏형 노릇을 할 후원자도 없었다. 그저 내 고장 축구팀을 갖고 싶다는 시민들의 정성만 있었다. 그렇게 외롭게 달려서 이제 창단이다. 2004년 恨, 시민 힘으로 극복 안양 시민에게 축구는 특별한 한(恨)으로 남아 있다. 2004년 2월2일, 안양 시민의 자랑이던 LG 구단이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발표했다. 느닷없는 소식에 축구팬은 물론 안양 시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안양에 남아 달라는 호소도 있었고 LG 제품 안 사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다. 하지만 돈 되는 서울로 떠나겠다는 대기업의 경영 진단을 바꾸진 못했다. 이후 9년, 안양은 축구 불모지였다. 수원 삼성이 세계적 구단으로 커가는 걸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그 쓰라린 경험이 이번 창단과정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기존 구단을 인수할 경우 이런저런 혜택으로 35억원의 돈이 절약된다. 최대호 시장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양시는 신생 구단 창단을 택했다. 영원히 떠나지 않을 시민의 팀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안양시에서 15억, 국민은행에서 10억원을 모아 매년 운영해야 한다. 이 역시 안양시민만의 팀을 지키내려는 고집이다. 안양시민을 9년째 덮고 있는 LG 이탈의 트라우마가 그만큼 깊다. FC 안양의 창단일이 하필 2월2일이다. 9년 전 그 날과 소름끼치게 겹쳤다. 다만 그땐 1부 리그였으나 지금은 2부 리그다. 축복이라면 올해부터 바뀐 프로축구 운영방식이다. 1, 2부 리그 간에 승강제가 시작된다. 1부 리그 하위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고, 2부 리그 상위팀이 1부 리그로 승격되는 방식이다. 꼴찌로 시작하는 FC 안양에는 기회의 땅이다. 우리가 타전해야 할 FC 안양의 첫번째 기적도 신생 구단 FC 안양, 1부 리그 전격 진입일 것이다. 기대라는 놈의 반대편에는 늘 부담이란 놈이 자리를 튼다고 했던가. 오근영 초대 단장이 근심보따리를 잔뜩 풀어놓고 갔다. 시민의 기대가 엄청난데, 구단 경영에도 기여해야 할 텐데, 명문 구단이 1~2년 새 만들어지는 건 아닌데. 99%에 희망 주는 기적 기대 축구 경영인다운 옳은 진단이다. 힘들 날들이 FC안양을 기다리고 있다. 먼지 나는 공설운동장을 뛰며 더 없는 외로움을 견뎌야 할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텅 빈 관중석을 향해 대답 없는 골 세러모니를 해야 할 날도 기다리고 있다. 자본과 전통 앞에 꼴등임을 인정해야 할 날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이 있어 FC 안양의 기적도 대기중인 것이다. 칼레가 돈 많은 도시였다면 기적이라 불렸겠는가. 몸값 비싼 선수들로 그득했다면 기적이라 불렸겠는가. 꼴등이 1등 되는 세상을 보고 싶다. FC 안양이 1등 하는 세상을 보고 싶다. 99%의 꼴등들이 살아야 할 희망을 FC 안양이 만들어 가는 걸 보고싶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FC 안양이 1등 하는 세상이 아름답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칼럼] 어느 촉새가 ‘김성근 감독설’을 나불대나

1982년 이래의 한국 야구는 그랬다. 지역감정이 강한 곳에 전설이 들어섰다. 그 맨 앞자리에 해태 타이거즈가 있다. 전라 남북도를 연고로 프로야구 원년에 창단된 팀이다. 2001년 해체되기까지 19년 동안 9번이나 우승했다. 우승 확률이 50%에 육박한다. 뉴욕 양키스의 26%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30%는 이 근처에도 못 온다. 9번 우승의 승률도 100%다. 한국 시리즈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이겼다는 얘기다. 국보 투수 선동렬, 홈런왕 김봉연, 오리 김성환, 바람돌이 이종범. 80, 90년대 광주를 달렸던 주인공들이다. 그 시절 광주 구장은 관중들이 연호하는 이들의 이름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오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김대중. 책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김은식 著)은 김대중과 해태 타이거즈는 80년대 이후 전라도 지역을 상징하는 두 개의 아이콘이었다고 정의한다. 야구와 지역감정이 만나 불패의 신화로 승화되던 그 시절.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이가 있었다. 코끼리 김응룡 감독이다. 전라도와 인연은 없다. 평안남도 평원이 그의 고향이다. 학교도 영남의 상징인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그런 그가 전라도 야구의 영웅이 됐다. 야구와 김대중을 연결하는 지역감정의 얼굴이 됐다. 19년을 해태만 지켰던 그의 뚝심과 광주의 저항 정신이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더스ㆍ북부도민 어쩌라고 그 김응룡 해태의 전설이 끝난 지 12년. 경기도 땅에도 야구가 상륙했다. 신생 10구단이 수원을 연고로 하는 KT로 결정 났다. 전북과의 유치전은 유례없는 전쟁이었다. 도지사, 시장, 시민, 기업이 똘똘 뭉쳤다. 국가균형발전 논리에 맞선 논쟁도 치열했다. 경기도민이 모처럼 하나 됐고, 승리의 기쁨도 그래서 두 배였다. 결과가 발표된 11일, 수원시와 경기도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런데 그 환희의 틈바구니로 생뚱맞은 검색어가 떴다. 김성근-수원 KT 감독.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서 시작된 유행어를 빌려보자. 도대체 어느 촉새들이 나불거려서 퍼뜨리는 장난질인가. 그를 KT 감독에 앉히고 싶은 모양인데, 틀렸다. 시기도 얍삽했고 내용도 틀렸다. 김 감독은 경기도 고양시가 만든 고양 원더스의 감독이다. 고양 원더스는 모든 게 열악한 경기 북부 주민들의 한이 서린 독립야구단이다. 불과 1년 전 고양 시민 400명 앞에서 김 감독도 얘기했다. 야구 발전과 후배들을 위한 마지막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수원KT 유치전에도 더 없이 힘을 보탠 게 북부 도민들이다. 안병용 의정부 시장은 12월 22일 수원까지 내려와 수원 KT 화이팅을 외쳐주고 갔다. 왜 하필 그런 북부 도민의 꿈을 빼앗는 선택을 하라고 몰고 가나. 김 감독이 부적합한 더 큰 이유가 있다. 그의 연고지 전력은 한 마디로 누더기다. 대전(OB 베어스), 인천(태평양 돌핀스), 대구(삼성 라이온스), 전주(쌍방울 레이더스), 서울(LG트윈스), 부산(롯데 마린스), 인천(SK 와이번스). 누구처럼 19년을 한 팀만 지키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소신으로 포장하며 칼자루를 되돌려 잡는 것도 한두 번이다. 당당한 경기도 지역감정으로 찬란한 경기도 야구 전설을 만들어야 할 수원 KT다. 김 감독은 아니다. 누더기 이적 전력도 부적격 어떻게 얻은 수원 KT 구단인가. 눈물 흘리며 삭발로 얻은 구단이다. 추운 겨울 길바닥을 누비며 서명받아 얻은 구단이다. 수백억원의 도비를 쏟아 붓겠다고 약속해서 얻은 구단이다. 지긋지긋한 국가균형논리에 맞서 싸워 얻은 구단이다. 이게 이유다. 경기도민과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 이유고, 수원시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 이유고, 지역과 애향심을 나눌수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 이유다. 야구장은 넓고 감독감은 많다. 촉새들이 나불대도 인재(人材) 숲은 열려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어느 촉새가 김성근 감독설을 나불대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KBO 행정이 판사 앞에 끌려 가지 않길

조건이 일방적이다. 자격도 일방적이다. 10구단 선정이 치열하다는 말은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다. 야구 구단은 팬이 먹여 살린다. 신생 구단 선택의 첫 번째 고려 대상도 팬이다. 관중 동원 능력을 따져 점수를 매겨야 한다. 전주시 인구는 65만명이다. 수원시 인구는 115만명이다. 전주가 인구 시장을 주변 지역으로 넓혔다. 군산 익산 완주를 모두 포함해 130만명이라고 잡았다. 그 셈법을 수원에 대입해 보자. 용인 화성 오산 평택 안성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안산 시흥. 570만명이다. 관중 시장 130만 대 570만의 싸움. 이런 싸움은 박빙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또 하나의 고려 항목은 구단 재정이다. 망하면 안 되니까. KBO도 구단의 재정 자격을 정해놨다. 모기업의 유동비율이 150% 이상, 부채비율 200% 이하, 자기자본 순 이익률 10% 이상 또는 당기 순이익 1천억원 이상 등이다. 전북 구단 부영이나 수원 구단 KT, 모두 이 조건을 충족한다. 과락(科落)을 면했으니 다음 순서는 등수다. 부영은 보유자산 12조원에 매출 5천억원이다. KT는 자산 32조원에 매출 20조원이다. 초등학생이 평가해도 금방 나올 비교다. 전북 신청 자격 송사 우려 경기도민에게만 이렇게 보이는 게 아니다. 어제 발표된 제일기획의 여론조사에서 그 수치가 드러났다. 500명의 국민 중 80.4%가 KT(수원)를, 19.6%가 부영(전북)을 선택했다. 따지고 보면 여기까지 온 게 이상하다. 애초 접수 단계에서 끝났어야 했다. KBO 야구규약 제18조는 야구구단 운영 방식을 도시연고제로 못 박고 있다. 기존 구단 이름 앞에 인천 부산 대전 광주 대구 등 도시 이름이 따라붙는 이유다. 이 18조는 KBO 이사회 의결을 통해 더 구체화 된다. 창단 당시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를 연고지로 한다는 2011년 2월의 의결이다. 도(道) 단위인 전북도는 18조 도시에 어긋나니 자격 없고, 시(市) 단위인 전주는 이사회 의결 100만 이상에 어긋나니 자격 없다. 유권 해석? 그런 건 법조문 해석에 다툼이 있을 때나 하는 거다. 도시로 해야 하고 그 도시는 100만 이상 도시여야 한다고 딱 떨어지는 두 문구에 무슨 다툼이 있나. 전북이 시작 전부터 유권해석을 의뢰했다는 것 자체가 자격의 불안함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전주와 30분~1시간 거리에 있는 인접 지역이라 문제없다는 설명도 나오던데. KTX는 한 시간에 300㎞를 간다. 서울에서 전북 고창을 가는 거리다. 서울과 고창이 하나의 연고지다? 소가 웃을 일 아닌가. 따지고 보면 KBO의 잘못이 크다. 전북 전주에 자격이라도 주려면 10구단 신청자격을 위한 이사회를 열었어야 했다. 2011년 2월에는 그렇게 했다. 거기서 구단 선정에 대한 자격과 조건이 정해졌고, 그 규정에 따라 통합 창원시가 결정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신청 구단에 자격이 없다고는 못할테니. 자연스레 이미 있는 규약 18조와 2011년 의결이 구단 신청의 기준이 된 것이다. 전북 전주의 무자격 논란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수원 결정해 축제로 끝내야 수원시는 입을 닫아걸었다. 담당 조인상 과장은 겸허히 결과를 기다리겠다. 지금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취재마저 거부했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만 되면 된다. 국민 80%의 뜻과 객관적 통계를 기초로 한 합리적 결과가 나오면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결정, 객관적 통계에 순응하는 결정,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지키는 결정이 나오면 된다. 10구단은 수원 KT로 결정됐다고 발표되는 순간 모든 건 덮어질 수 있다. 축제여야 할 10구단 선정이 10구단 선정 무효 확인의 소송으로 번지고, 그 재판정 피고석에 KBO 대표가 불려 나와 자료를 뒤적이고, 재판부의 추궁 앞에 한국 야구 행정의 허술한 밑바닥이 드러나고. 이런 몰골을 보고 싶어 하는 국민은 한명도 없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KBO 행정이 판사 앞에 끌려 가지 않길]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복지공약 파기 하십쇼, 박 당선인”

저는 실현 가능한 복지만 약속드립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에 든든해했습니다. 복지 공약에 135조원을 배팅하셨죠. 상대 후보의 190조원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런데도 선택됐습니다. 적은 복지 약속이 되레 신뢰를 높인 결과입니다. 물론 대선 승리 요인을 한두 가지로 정리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세대 간 대결, 지역 대결, 이념 대결, NLL. 수도 없이 많죠. 하지만 이렇게는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박 후보의 복지 공약은 믿을 만했다. 그런데 이게 불안하게 갑니다. 그 중 세 가지만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기초(노령)연금입니다. 2014년부터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정도씩 준다고 했습니다. 당장 2014년부터 13조 원이 필요하고 이후 4년간 60조 원이 들어갑니다. 두 번째는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국가 부담입니다. 암ㆍ심장ㆍ뇌혈관ㆍ희귀난치병 환자에 대한 복지를 약속했습니다. 현재 75%인 비급여율을 2016년까지 0%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0~5세 영유아 보육비 지원입니다. 모든 아동에게 보육료를 지원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양육수당 명목으로 월 10만~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세 가지를 얘기하면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시행하면 안 된다. 고소득층은 주면 안 된다(노령 연금). (2조5천억원)돈도 문제고, 현실성ㆍ형평성이 모두 문제다(진료비 국가 부담). 양육수당을 받으려고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지 않는 부작용까지 우려된다(영유아 보육비 부담). 그러면서 결론 냅니다. 공약을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인수위 쪽에서 나오는 설명은 없네요. 혹시 전부 다 지키실 생각입니까. 그래서 국민이 불안합니다. 4조 확보에도 국민 불안 그제 밤 12시 넘어 새해 예산안이 확정됐습니다. 정부 예산에서 4조1천억원이 삭감되고 4조3천억원이 새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엔 0~5세 무상보육 1조4천억원, 반값 등록금 4천억원, 저소득 사회보험 1천468억원, 사병 월급 258억원, 참전 명예수당 400억원이 포함됐습니다. 언론에서는 이걸 박근혜 예산이라고 부릅니다. 차수를 변경해 가며 여야가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 예산표를 보면서 가슴 철렁이는 국민이 많습니다. 깎여서는 안 될 예산이 잘려나갔습니다. 국방 예산 2천900억원이 삭감됐다는데 그 돈으로 차세대 전투기 사고, 전차 사고, 공대지 유도탄 사려고 했답니다. 안 그래도 2007년 8.8%이던 국방비 예산이 4.2%까지 곤두박질 친 나라인데. 의료 급여 2천824억원을 깎았다는 얘기는 더 가슴이 아픕니다. 없이 사는 사람 156만명에게 돌아갈 돈입니다. 미리 물었다면 국민 다수는 말렸을 겁니다. 국민이 그렇게 매정하지 않거든요. 안 그래도 주부들은 불안하던 터였습니다. 대선 다음날 광역상수도 요금이 5% 올랐습니다. 전기요금도 올해부터 4% 오릅니다. 민자고속 도로 통행료도 올랐습니다. 복지 천국 대선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공공요금 인상 폭탄입니다. 여기에 국방비 전용하고 극빈자 의료급여 삭감했다는 얘기까지 왔습니다. 주부 A와 직장인 B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선자가 복지 공약 다 지키겠다고 하면 어쩌나. 큰일이다 . 135조 가운데 겨우 4조 손댔는데 이러고들 있습니다. 선거 때 하신 복지 약속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지 약속은 꼭 실현하겠다, 다른 하나는 내 공약은 국민에 부담 주지 않는다. 그런데 공공요금이 올랐습니다. 가정에 부담 준 일입니다. 국방 예산이 뭉텅이로 잘려나갔습니다. 국가 안위에 부담 준 일입니다. 의료 급여가 대거 삭감됐습니다. 없는 이들 서럽게 한 일입니다. 복지 실현이라는 앞의 약속을 서두르면서 건전 재원이라는 뒤의 약속은 저버린 것이죠. 출발부터 잘못 가고 있습니다. 135조 복지 손실 불가피 그래서 하려는 얘깁니다. 복지 공약을 파기 하십시오. 안 될 공약 걸러내고, 무리한 공약 수정하고, 부담 큰 공약 버리십시오. 그래야만 복지 기대가 복지 불안으로 전락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복지 불안이 복지 공포로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복지 공포가 복지 저항으로 돌변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대선이 열 나흘 지난 2013년 1월 2일, 여론의 시곗바늘은 이미 복지 불안의 언저리에서 째깍거리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복지공약 파기 하십쇼, 박 당선인]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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