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沈 시장→金 시장→廉 시장, 그리고 華城

심재덕 시장이 있어 화성은 부활했다. 서민 아파트 빨래가 널려 있던 곳, 그곳이 화서문(華西門ㆍ서문)으로 부활했다. 일제가 정한 도립 병원이 흉물스럽던 곳, 그곳이 화성행궁(華城行宮)으로 부활했다. 재래시장 주차장을 위해 콘크리트로 뒤덮였던 곳, 그곳이 수원천(水原川)으로 부활했다. 언제부턴가 백과사전에 실렸던 수원성, 그곳이 본래의 이름 화성(華城)으로 부활했다. 200년간 잊혀졌던 위대한 정조대왕의 숨결은 그렇게 심 시장을 통해 부활했다. 유네스코가 뭔지, 문화유산이 뭔지도 생소했다. 그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화성을 등재시키겠다고 뛰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계적 규모의 성곽도 아니었다. 복원이라야 행궁과 부속 시설물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뛰었다. 그리고 1997년 목표를 이뤄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책자를 근거로 밀어붙였음은 그 뒤에 알려졌다. 스스로를 문화 시장이라 말하던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화성은 수원시민의 미래 먹거리다. 김용서 시장이 있어 화성은 완성됐다. 2만2천여㎡의 거대한 화성행궁광장을 복원했다. 흉물처럼 서 있던 우체국을 철거해서 가능했다. 鍾路(종로)라는 이름의 이유였던 여민각(與民閣)을 복원했다. 30년 이상 장사하던 상가들을 철거해서 가능했다. 화홍문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천변이 복원됐다. 방석집이라 불리던 퇴폐 업소들을 몰아내면서 가능했다. 동쪽 관문인 창룡문(蒼龍門) 주변도 복원됐다. 625 이후 터잡은 퉁수마을을 철거해서 가능했다. 집단 민원이라면 벌벌 떠는 게 민선(民選)이다. 그 중에도 주민 철거는 가장 예민하고 후유증 많은 일이다. 우체국, 상인, 술집, 빈민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우체국 철거에 수년이 걸릴 수 있었고, 빈민가 정리에 수백억이 들 수도 있었다. 소신과 배짱 없인 손댈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장애물들이 민선 3ㆍ4기 8년에 모두 정리됐다. 불도저로 불리던 김 시장이 마무리 지은 일이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수원은 관광 중심 도시가 돼야한다. 돌아보면 둘만한 라이벌도 없었다. 정적(政敵)의 상징이었다. 2002년 유세장에선 다신 안 볼 듯 싸웠다. 서로 능력 없다며 공격했고, 부패하다고 공격했다. 전임자의 사업도 줄줄이 백지화됐다. 전임자의 사람도 예외 없이 한직으로 밀려났다. 아주 흔하게 보는 선출직들의 전임자 흔적 지우기다. 그런데 딱 한 가지, 화성(華城)은 달랐다. 심재덕의 화성이 그대로 김용서의 화성이 됐다. 심 시장이 만든 설계가 그대로 김 시장 정책의 밑그림이 됐다. 지금의 화성 뒤엔 이런 정적들의 협력이 있다. 이제 그 자리에 염태영 시장이 있다.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현재 먹거리다. 그동안 화성 정책은 돈 쓰는 정책이었다. 민선 이후 들어간 복원 예산이 5천억원을 넘는다. 복원에 직접 투입된 예산만 그렇다. 인프라 구축 등의 연계 예산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공사 중이라는 푯말 앞에 허비된 시민의 고통도 계산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복원만 할 것이냐는 불만과 수원을 민속촌으로 만들거냐는 불평이 십수년간 이어졌던 이유다. 그 오랜 질문-심ㆍ김 시장은 풀지도 않았고 풀 수도 없었던-에 답을 내야 하는 것이 염 시장이다. 그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를 하려고 한다. 화성 만들기를 화성 팔기로 바꾸는 일이다. 예산 투자를 수익 창출로 바꾸는 일이다. 과거 백성 더듬기를 현재 시민 챙기기로 바꾸는 일이다. 단 한 접시의 수원 갈비라도 더 팔고, 단 1m의 지동 순대라도 더 팔려는 일이다. 생각하면 십수년전 심 시장이 얘기했던 미래 먹거리의 실천이고, 수년 전 김 시장이 얘기했던 관광 도시 수원의 완성이다. 그들이 가지 못한 화성 관광 수원의 마지막 꿈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올 초, 월스트리트 저널이 세계 20대 관광 도시를 선정했다. 거기에 수원은 없다. 311살 버킹엄 궁전의 런던(1위)은 있는데 218살 화성의 수원은 없다. 고적(古跡)의 도시 이스탄불(7위), 로마(14위)는 있는데 성곽의 도시 수원은 없다. 이제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 당장은 아니어도 좋다. 2020년에 20위여도 좋고, 2025년에 10위여도 좋다. 일단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염 시장의 2016 수원 화성 방문의 해가 그 출발일 수 있다. 물론, 그 출발선에 심 시장(유족), 김 시장, 염 시장이 함께 선다면 그보다 더한 그림은 없을 것이고. [이슈&토크 참여하기 = 沈 시장金 시장廉 시장, 그리고 華城]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연정 하나면 도정 깽판 쳐도 괜찮다’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하게 될 거다. 지금은 아니다. 1년 뒤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다. 말 속에 우리는 남-원-정으로 불리는 소장파 그룹이다. 시작할 것이다란 광역 단체장 출마를 말한다. 결국 언젠가 남-원-정이 전국 시도지사로 동시에 출마할 것이다란 의미다. 2009년 어느 날, 서울의 조그만 횟집에서 남경필 의원은 그렇게 말했다. 비보도라는 약속은 없었다. 하지만 기사화하지 않았다.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당내 비주류였던 그다. 소권(小權)이라 불리는 경기도지사를 줄 당(黨)이 아니라고 봤다. 남-원-정이 동시에 출격한다는 예상은 더 가능성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예상이 현실이 됐다. 남과 정은 경기지사에, 원은 제주지사에 나섰다. 그리고 남이 경기지사, 원이 제주지사가 됐다. 우연이라기엔 시기와 형식이 소름 돋게 맞아떨어진다. 국가 정치를 본인의 계획대로 만들어 가는 힘. 정치인 남 지사의 그런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돌아보면 이슈 선점이다. 그날 이런 말도 했었다. ○○○시장을 간단히 보면 안 된다. 큰 선거의 승패는 이슈 선점이다. 그는 이것을 잘 이용하고 있다. 그때 ○○○ 시장은 혐오시설 유치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모두가 미련한 짓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시장의 결정을 남 의원만은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바로 이슈선점이었다. 남 의원 본인의 정치 공학이었던 듯 보인다. 그때도 그렇게 느꼈다. 실제로 그의 정치는 그랬다. 초년 시절 미래연대를 만들었다. 선수(選數)가 깡패라는 정치판에서 소장파 리더라는 이슈를 만들었다. MB에 밉보였던 그가 2008년 총선에서 위기를 맞았다. 그때도 카드는 형님 권력(이상득) 퇴출이란 이슈 선점이었다. 최루탄과 해머로 얼룩진 국회 파행 때도 그의 촉수는 반응했다. 국회 선진화법이란 이슈를 국민 앞에 내놨다. 출마를 뜸들일 때 등장한 남경필 이슈는 6월 선거의 정점이었다. 이쯤 되면 이슈선점의 귀재다. 시기 선택과 소재 창출에 관한 한 그만한 정치인이 없다. 그런 그가 지방 정치판에 연정이란 화두를 던졌다. 때마침 원희룡 제주지사까지 가세했다. 민선 5기 초반이 성남發 모라토리엄에 흔들렸다면 민선 6기 초반은 남경필發 연정으로 요동쳤다. 여기서 모두의 질문이 나온다. 연정을 이슈로 던진 남 지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대화하고 타협하는 새로운 정치는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이고. 모두가 안다. 연정은 대통령 선거용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극에 달했다. 이런 국민을 향해 내놓을 그의 대선 예비 상품이다. 투쟁과 불신의 정치를 화합과 신뢰로 바꾼 연정을 실현했다라는 이력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탄착점이 다르면 조준점도 달라지는 법이다. 연정의 탄착점은 2014년 도정이 아니라 2017년 국정이다. 그러면 이해된다. 모두가 걱정하는 도정 공백을 남 지사만이 느긋하게 지켜보는 이유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슈로 이슈를 덮어가는 그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장인 좌익이란 위기를 아내 사랑이란 이슈로 덮었다. 지지도 급락이란 위기도 수도이전이란 이슈로 탈출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2002.5.28). 실제 그는 통일에 모든 걸 걸었다. 여야(與野) 충돌, 대미(對美) 갈등의 출발도 그의 이런 통일관이었다. 지금의 경기도 연정에서 그때의 모습이 얼비친다. 20곳 넘는 산하기관이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지금의 장(長)들은 후임 결정 때까지의 임시직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청문회 치르느라 두 달이 갔다. 도민에게 무슨 실익이 있었는지 입증된 바 없다. 야당에 준다던 사회통합부지사는 석 달째 비어 있다. 언제 채워질지 기약도 없다. 모든 게 연정을 위해 희생되는 도정이다. 그렇게 100일이 지났는데도 남 지사의 입장은 똑같다. 기다리겠다!. 연정(聯政)만 성공하면 도정(道政)은 다 깽판 쳐도 괜찮은가. 1,300만 도민이 정치 실험의 교보제인가. 이제 달리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큰 인물이라면 끊고 맺음도 분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저래 도민의 연정 피로감만 커져 간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연정 하나면 도정 깽판 쳐도 괜찮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우리에겐 자랑스런 國軍 43만이 있소이다’

담배 15갑이 월 할당량이다. 보름쯤 지나면 동난다. 변기통에 떨어진 장초도 말려서 피운다. 단것은 먹어도 먹어도 당긴다. 사회에서는 먹지 않던 빵을 수시로 사 먹는다. 맛동산과 코코넛 비스킷이 준비될 때도 있다. 분대 단위 회식이 있는 날이다. 그 사이 PX(부대 매점) 외상 장부가 늘어 간다.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PX 병이 내무반을 찾는다. 80년 상병이 그렇게 쓰던 봉급이 3천400원이다. 그 봉급이 2014년에 13만4천600원이다. 40배다. 찌는 듯한 여름날 훈련이 끝난다. 80년 상병 에겐 변변한 공간이 없다. 내무반 구석 총기 거치대 옆이 자리다. TV 앞 침상에는 말련 병장이 눕는다. 신참 병장들이 그 뒤로 조금 불편하게 앉아 있다. 일병과 이병의 자리는 아예 없다. 내무반 밖 처마 밑이 그들의 공간이다. 취침나팔이 불 때까지 내무반은 그렇게 병장과 상병들 차지다. 그 군대에 2003년 현대식 막사가 들어섰다. 개인 침대까지 들어갔다. 2.3㎡이던 1인당 면적이 6.3㎡로 커졌다. 책(冊)은 사치다. 읽을 시간도 없지만 읽을 책도 없다. 진중도서라야 월간 샘터가 전부다. 그나마 언제적 발간인지 알 수가 없다. 80년 군대에서 월간지는 1년이 지나도 다음 달이 오지 않는 연간지다. 샘터 이외 외부 책은 모조리 불온서적이다. 80년 상병에게서 발견된 박범신의 소설이 소대 전체를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그 시절 책은 군기를 해이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랬던 군대에 도서관이 2014년 현재 1천662곳이다. 책이 480만권이다. 놀잇감이 있을 리 없다. 시멘트로 만든 역기(力器)는 고참 차지다. 기웃거렸다간 힘이 남아 돈다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대신 해야 할 게 분대 대항 족구 시합이다. 그나마 담배를 내기로 건 고참들의 놀이거리다. 내무반 구석에 기타는 상급부대 과시용이다. 6개 줄이 성할 리 없다. 남은 줄도 벌겋게 녹슬었다. 80년 상병에게 휴식은 그렇게 놀잇감 없는 고역의 시간이었다. 그 군대에 보급된 PC가 2014년 현재 4만8천617대다. 군인 9명당 1대꼴이다. 소름 끼치는 교육도 있다. 이상한 차림새의 외부 강사가 등장한다. 군복을 입었는데 허리띠가 없다. 군화를 신었는데 신발끈이 없다. 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 병사다. 부대원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강연이 끝나자 헌병에 이끌려 호송차에 실린다. 끔찍한 사진들도 전시된다. 사고 또는 자살자들의 모습이다. 교육의 목적은 간단하다. 죽지도 말고 죽이지도 마라. 그랬던 80년, 군에서 사망한 사고자가 970명이다. 2014년 6월까지 55명이다. 그래도 10월1일은 좋다. 아침 식단에 고깃국이 등장한다. 3개들이 팥빵도 나온다. 훈련도 없다. 모처럼 TV 앞 자리가 모두에게 개방된다. 서울 시청을 지나는 시가행진이 방송된다. 고층 건물에서 뿌려지는 색종이가 거리를 화려하게 덮는다. 여성들이 뛰어들어 장병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준다. 내무반이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얼굴도 모르는 오빠에게로 시작하는 위문편지가 배달되는 것도 이때쯤이다. 80년 상병이 군인 됐음을 뿌듯해 한 날이다. 군(軍)은 좋아졌다. 월급도 올랐고, 내무반도 좋아졌고, 책도 넘쳐나고, 사망 사고도 줄었다. 80년 상병 눈에는 개혁(改革)이 아니라 개벽(開闢)이다. 그런데도 정반대로 가는 게 있다. 군을 보는 민(民)의 시각이다. 부하 죽이는 폭력집단으로 몰고 간다. 하급자 성추행하는 변태집단으로 묘사한다. 툭하면 뚫리는 엉성한 보초집단으로 쓰고 있다. 시민 단체가 선창(先唱)하고, 언론과 정치가 복창(復唱)한다. 국가에 도움 안 될 이런 선동을 경쟁하듯 하고 있다. 국군의 날도 예전의 그날이 아니다. 특식(特食)은 여전하다. 하지만 80년 상병은 받았고 2014년 상병은 못 받는 게 있다. 국민들이 차려주는 생일상이다. 시가행진도 없고 꽃다발도 사라졌다. 공휴일도 아니니 기억해주는 이도 적다. 군사 문화 잔재라며 1991년 문민정부가 없앴다. 겹치기 공휴일까지 챙겨주는 나라지만-대체 공휴일제-국군의 날은 챙기지 않는다. 땅을, 바다를, 하늘을 지켜주는 국군에게 내놓는 생일상이 이렇듯 초라하다. 417년 전, 이순신은 열두 척의 배를 가지고 싸웠다. 그와 수병들이 벌이는 영웅담에 1천800만 국민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어떤 배우의 연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2014년 국군의 모습에는 박수가 없다. 잘린 손가락 대신 다른 손으로 사격하며 연평을 지킨 군인, 불붙은 철모를 쓰고 포탄을 장전하며 전차를 지키던 군인, 수원 시민 다칠까 봐 조종관을 붙들고 산화한 군인. 1597년의 12척 배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2014년의 43만 국군의 모습이다. 그런데 모두들 잊고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부총리의 말장난 또는 거짓말

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 박사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경제 관료였다. 국회 조세소위 위원장도 했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경제부총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경환 부총리를 학문과 실무, 정치를 겸비한 경제 1인자라 부른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증세 계획은 없다이번 담뱃값 인상은 세수가 아니라 국민건강이 목적이다(주민세 자동차세 인상도)지자체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중앙정부가 마지못해 받아들인 정책이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여론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속이는 말이다. 담뱃값이 한꺼번에 80% 올랐다. 하루 한 값이면 1년에 121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9억원짜리 주택의 재산세와 맞먹는다. 끽연자에겐 유례 없는 세금 폭등이다. 주민세도 평균 4천600원 선에서 두 배 오른다. 주민세 인상이라는 단어가 22년만에 처음 등장했다. 자동차세도 2017년까지 두 배 오른다. 존재감 없던 자가용이 애물단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증세 아니고 뭔가. 그의 현학적 표현이야 어떻든 서민에게 날아올 건 세금폭탄 고지서다. 지방정부를 핑계 댔는데 이것도 그렇다. 지방정부의 예산 타령은 연례행사다. 지자제 이후 20년 내내 그랬다. 그런데 이번만 유독 지자체 요구에 반응했다. 내년부터 5천억 원(지방세수 인상분 4천억원+담뱃세 포함 지방세 인상분 1천억원)이 지방에 돌아갈 것이라며 선심 쓰듯 설명했다. 그 뻔한 이유를 모르는 지방민은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떠넘긴 복지비용 6조원 때문이다. 이를 놓고 지방을 위해서 줬다고 설명하면 안 된다. 게다가 보충이랄 것도 없는 돈이다. 지방의 계산은 여전히 -5조5천억원이다. 지난주, 지방 정부의 복지 무책임을 지적했다-본보 9월11일자 김종구 칼럼-. 기초연금 때문에 파탄 나게 생겼다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을 향한 지적이었다. 무상급식으로 무상복지의 불을 지핀 건 본인들이면서. 그 무상급식의 달콤한 열매로 시장ㆍ군수 됐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상급식에는 수십 수백억원씩 널름널름 퍼주면서. 기초연금만을 탓하며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아서였다. 스스로 무상급식을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은 핑계가 이번엔 중앙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은 복지폭탄 돌리기다. 중앙은 지방에 복지비 충당 책임을 돌리고, 지방은 중앙에 예산 파탄 책임을 돌리고 있다. 중앙은 지방에 세금 인상 원인을 돌리고, 지방은 중앙에 편법 증세 원인을 돌리고 있다. 기초연금이 중심인 중앙 정부 복지와 무상급식이 중심인 지방 정부 복지가 충돌하는 폭탄 돌리기다. 실망스럽게도 그 한 축에 대한민국 경제 대통령-경제 관료였고, 경제학 박사이고, 경제통 정치인이기도 한- 최경환 부총리가 있다. 비전문가들 틈에 섞여 그도 그들처럼 핑계 대고 그들처럼 거짓말하고 있다. 몇 해 전, 우리가 본 모습에 이런 게 있다. 미국발 복지-증세 충돌이다. 셧 다운까지 몰고 갔던 오바마케어(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가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위기에 부딪혔다. 오바마의 승부수는 증세였다. 부자들에게 버핏세를 물렸다. 이 세목으로 4천억달러(우리돈 1,700조 원)을 만들었다.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의 부부에게 적용했던 감세 혜택도 폐지했다. 여기서도 8천억 달러를 챙겼다. 그런 오바마에게 미국민은 재선(再選)을 선물했다. 당당한 복지와 떳떳한 증세에 대한 화답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복지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실토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방세 인상도 중앙정부 때문이다라고 시인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또 다른 세금 인상도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놓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표가 떨어지더라도 악역은 내가 맡겠다고 선언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어차피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폭발 직전에 온 복지 폭탄을 끌어안아야 한다. 혹시 2017 대망(大望)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데 안보인다. 최 부총리도 아닌듯 싶고. [이슈&토크 참여하기 = 부총리의 말장난 또는 거짓말]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그러면 노인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4년 전 이 맘 때는 모라토리엄이었다. 돈 없어 빚을 못 갚겠다는 선언이었다. 성남에서 시작된 화두가 전국을 휩쓸었다. 분노한 여론은 전임 지방 정부를 겨냥했다. 8년 한나라당 지방 정부가 대상이었다. 호화 청사부터 대형 운동장까지 모든 게 심판대에 올랐다. 5기 시장들은 거덜난 집안을 살리는 해결사가 돼야 했다. 부채 정리와 재정 건전성 확보에 모든 걸 걸었다. 그 결과 많은 시군의 곳간 사정이 개선됐다. 4년 흐른 지금은 디폴트(default)다. 돈 없어 부도나게 생겼다는 취지는 같다. 이번엔 특정 지자체만의 선창(先唱)도 아니다.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 함께한 합창(合唱)이다. 226개 지자체장이 서명한 디폴트 성명서가 프레스 센터에서 발표됐다. 달라진 건 그 원인이다. 정부가 떠넘긴 복지 비용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전체 예산의 35%를 오르내리는 복지비 부담이 지자체를 파산으로 몰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인이 다르면 치유 방법도 달라진다. 4년 전 모라토리엄은 개인의 문제였다.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간 전임(前任)들의 책임이 컸다. 어떤 전임자는 먼지까지 털려 감옥에 갔다. 어떤 전임자는 회생 불능의 파산자로 찍혔다. 해결해 낸 것도 신임(新任) 시장들 개인이었다. 성남 시장은 모라토리엄을 졸업시켰다. 수원시장은 부채 3천억원을 300억원으로 줄였다. 모라토리엄은 그렇게 망친 것도 개인, 살린 것도 개인이었다. 지금의 디폴트는 복잡하다. 중앙ㆍ지방간의 갈등이 원인이다. 그 밑에 난공불락의 당리ㆍ당략까지 깔려 있다. 3일자 성명서에 등장한 중앙 정부의 복지부담 전가가 그것이다. 기초연금 인상은 새누리당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서명한 외상 장부다.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중 누구도 그 장부에 연서(連署)한 적 없다. 그런데 몇백 억 원짜리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대통령 공약 뒤치다꺼리하다가 4년 다 갈 판이다. 당연히 억울해할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4년 전으로 돌아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초연금의 기원에는 무상(無償) 바이러스가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탈을 쓰고 등장한 무상급식이었다. 걸인(乞人)의 아들도, 갑부(甲富)의 손자도 구분하지 않는 공짜 복지였다. 이 공짜 바이러스가 유권자의 눈을 가렸고, 그 틈새로 당선된 게 민선 5기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재선(再選)으로 몸값을 높였다. 디폴트 성명서를 낭독한 것도 그들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이게 딱 그 격이다. 민선 5기는 무상급식의 폭주(暴走) 4년이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4, 5학년으로 시작했다. 다음해는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됐다. 그다음 해는 중학교로 확대됐다. 대안학교에 유치원까지로 넓혀졌다. 그 사이 십몇 억 원에서 시작한 예산이 100~200억원까지 치솟았다. 지금 그들이 망하게 생겼다며 아우성치는 복지비 35%에 그 돈이 섞여 있다. 더 답답한 건 이런 공짜 바이러스가 여전히 살아 꿈틀댄다는 거다. 성남시는 65세 이상 버스비 지원을 선언해 중앙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기초연금 20만원 중 지자체 몫 8만원을 먼저 뿌리겠다고도 약속했다. 7ㆍ30 재보선의 수원 지역 후보는 무상급식을 고교생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중ㆍ고교생 무상 교복까지 들고 나왔다. 복지 부담 때문에 큰 일 났다며 성명서 내는 지자체의 뒷모습이다. 시민 누가 동의하겠나. 이러면 안 된다. 스스로의 반성과 개선이 먼저다. 무상급식 퍼주기부터 반성해야 한다. 무상급식 3조원 개선책부터 고민해야 한다. 혹시 무상급식 확대를 약속했다면 설명하고 백지화해야 한다. 혹시 과도한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면 사과하고 축소해야 한다. 그런 반성이 있을 때 비로소 기초연금을 탓할 자격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기초연금 5조원을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 그게 정상적인 행정의 책임과 균형이다. 4년 전, 이렇게 썼다. 무상급식이 재정을 위기로 내몰 것이다. 그때 그들이 말했다. 그러면 아이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4년 뒤, 이번엔 그들이 말하고 있다. 기초연금이 지방 정부를 파탄 낼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말하려고 한다. 세금에 애들 돈 따로 있고, 노인 돈 따로 있나. 애들은 먹이고 노인들은 굶기자는 것인가?. 억지 논리라며 분해할 것 없다. 언젠가 닥칠 공짜 복지의 업보(業報)였다. 다만, 그 끝이 빨리 왔을 뿐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그러면 노인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교황 있는 세월호 - 교황 없는 세월호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 좌파 새끼들이 수도 서울을 아예 점령했구나.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줄 안다. 이 말이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인간들, 세월호 유족충. 뮤지컬 배우 이산의 글이다. 글과 함께 사진도 올렸는데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 현장이다. 폼 나게 선글라스까지 끼고 찾아가서 찍었다. 또 다른 배우가 김영오씨의 단식에 황제단식이라는 조롱을 달았다. 이보다 더한 악담들도 SNS에 수두룩하다. 참혹해서 옮길 수 없을 뿐이다. 이러는 사이 세월호 유족들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단식을 하는 유민 아빠는 딸을 버렸던 패륜 아빠로, 농성하는 유족들은 자식 죽음을 대가로 한 몫 잡으려는 패륜 집단으로 몰렸다. 이제 세월호의 슬픔을 입 밖에 꺼내기도 멈칫거려질 정도다. 교황이 없는 한국의 모습이다. 열흘 전 한국은 달랐다. 비바 파파(교황 만세)가 연호되던 광화문은 축복의 장이었다. 입장하던 교황이 차에서 내려 노란색 무리에게 다가갔다. 단식중이던 유민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건네 받은 김씨의 편지를 호주머니 속에 소중히 넣었다. 다음날 교황은 승현 아빠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줬다. 십자가를 지고 900㎞ 걸어온 이씨였다. 교황은 자신과 같은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줬다. 언론은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썼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이라고 썼다. 힘든 자들의 반려자 교황이라고 썼다. 표현할 수 있는 극단의 존칭은 다 동원했을 것이다. 그 사랑의 무리 속에 연예인들도 있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건강하시길 바란다(배우 채시라). 오늘은 굉장히 뜻깊은 날이었다. (교황께서) 노래를 통해서 앞으로 많은 분들께 용기와 희망을 전하라 하셨다(가수 보아). 교황이 있는 한국의 모습이었다. 데자뷰인가. 2002 월드컵. 마지막 한국 경기는 4강전이었다. 바로 다음날 광화문 광장을 찾은 외신 기자가 이런 기사를 타전했다. 어제까지 붉은 인파로 가득 찼던 이곳은 하루 만에 소름끼치도록(Terrible) 조용해졌다. 그 기자가 열흘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을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런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교황 있을 때 세월호 유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광화문이 교황이 떠난 뒤 소름끼치도록 그들을 공격하고 있다. 교황도 인간이다. 그가 해준 건 별로 없다. 죽은 아이들을 살려낸 신력(神力)도, 유족에게 나눠준 재물(財物)도 없었다. 그저 손잡아주고 눈 마주쳐주는 게 다였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거기서 위로받았다. 승현 아빠는 그날 이후 무겁던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성이 서로를 통하게 한 것이다. 교황도 이렇게 강조하며 떠났다.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하물며 대통령도 인간이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특별법은 국회가 만든다. 특별 검사도 정치권이 뽑는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며칠째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7일. 대통령은 아직 선미(船尾)가 괴물처럼 드러나 있는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하진 못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위로받았다. 국민 59%도 대통령을 지지했다(갤럽 조사). 그때와 달라진건 없다. 만나야 한다. 왕 교수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세월호 때문에 밀렸던 봄 축제들이 전부 가을로 넘어왔어요. 연예인 섭외가 비상입니다. 우리 학교도 가수 스케줄에 맞춰 개학과 동시에 하게 됐습니다. 개강하고 축제하고 추석 연휴죠. 왕 교수네 학교뿐만 아니다. 봄 축제가 겹치면서 올가을 대학가는 축제가 홍수를 이루게 됐다. 덩달아 연예인의 몸값도 뛰고 있다. 넉 달 전에 밥줄 끊겼다던 연예인들의 숨통이 그렇게 확 트이고 있다. 모든 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가수도 돌아왔고, 무대 업자도 돌아왔고, 조명 업자도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게 있다. 그때 거기서 죽어간 아이들이다. 그 애들이 부모의 가슴에 남기고 간 천붕(天崩)의 상처다. 어쩌자고 그 불쌍한 애들을 욕되게 하나. 어쩌자고 이 불쌍한 부모들을 힘들게 하나. SNS 곳곳을 튀어다니는 이상한 물질, 이건 분명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흘려놓은 DNA 찌꺼기일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교황 있는 세월호 - 교황 없는 세월호]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아버지 남경필 - 정치인 남경필

목사님 설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유명한 도적이 있었다. 그 나라 풍습에 도적은 아들과 함께 기름에 튀겨 죽였다. 도적과 나이 어린 아들이 잡혀왔다. 법에 따라 둘은 기름이 가득한 가마 솥에 넣어졌다. 불이 지펴졌고 기름은 끓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을 머리 위로 들었다. 도적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아들을 들고 있었다. 도적인 아버지에게도 아들은 소중한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22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하나님이 이르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를 제사의 재물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따랐고 이삭에게 제사에 쓸 나무를 지게 했다. 이윽고 그 땅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고 칼로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하시니라. 천하의 죄인이라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다를 게 없다. 앞선 도적의 얘기가 전하는 뜻이다. 아들을 희생시키는 각오야말로 극단의 믿음을 얻게 되는 징표다. 뒤의 창세기 말씀이 전하는 뜻이다. 아주 흔한 아버지의 사랑과 아주 특별한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다. 불교, 유교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유독 강조한다. 세상 아버지들의 아들 사랑이 그런 거다. 남경필 도지사가 말했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피해를 본 병사와 가족 분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잘못입니다. 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달게 받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저도 같이 벌을 받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겠습니다. 아들 남 상병은 지금 군 당국에서 조사받고 있다. 모르긴 해도 외부와 철저히 통제되고 있을 것이다. 남 상병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항변(抗辯)하는 것뿐이다. 성추행은 장난이었다며 부인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버지는 냉정했다. 남 지사 사과문 어디에도 변명은 없었다. 한 발 나아가 제 아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며 단정까지 했다. 강한 아버지 모습이다. 차남도 공군에 복무 중임이 이번에 알려졌다. 지도층의 병역비리가 만연된 사회다. 돈 없고 빽 없는 놈만 군에 간다는 아주 오래된 속설, 그 속설이 반세기 지나도록 통용되는 사회다. 버스 회사 소유주니 돈은 있을 것이고, 5선의 여당 국회의원이니 빽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 지사는 두 아들을 사병으로 입대시켰다. 당연한 일인데도 얘기되고 있다. 귀감이 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아버지의 무한 책임 인정과 모범적 병역의무 수행을 감안하더라도- 뭔가 모를 찜찜함과 혼란스러움은 남는다. 그건 남 지사가 도지사이고 남 상병이 아들이어서다. 엄연한 현실 속 권력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줄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된 말이다. 이때의 줄은 대개 누구 아들 누구 손자를 말한다. 그 누구를 향해 지휘관들이 줄을 선다. 그리고 이 줄이 병사들 사이엔 권력으로 인식된다. 군(軍)은 계급으로 통일돼야 할 조직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에겐 그것이 평등이다. 그런 곳에 특권이 생긴다는 것, 그건 곧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의 평등권 박탈을 의미한다. 전해지기에는 여러 번 때렸고 여러 명 맞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묵인을 의심하는 대목이다. 만일, 남 상병의 가혹행위가 묵인된 적이 있고, 그것이 남 지사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피해 병사에겐 권력에 의한 폭력이 되는 것이고, 항거할 수 없는 사회적 억압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민이 배경이 있을 것이라며 의혹을 품는 부분도 바로 여기다. 진실규명 외엔 수가 없다. 남 지사에겐 범부(凡父)의 권리가 없다. 남 상병은 경기지사의 아들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될 수도 있다. 궁금증을 남기면 안 된다. 다 밝혀야 한다. 개인이 저지른 폭력인지 권력이 덮어준 폭력인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해명은 부대 내 아무도 남 지사의 아들인지 몰랐었다다.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몇 해 전 남 지사가 지역구를 옮길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갑작스런 주소지 이전 때문이었다. 그때 남 지사가 말했다. 애가 학교를 서울로 진학했습니다. 그래서 옮겼어요. 안 옮기면 그게 바로 위장 전입이예요. 그렇게 철저하던 남 지사다. 논란을 없애려 아들을 쫓아 이사까지 하던 남 지사다. 그랬던 정치인 남경필이 지금 아버지 남경필의 덫에 걸려 정치 8부 능선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아버지 남경필 - 정치인 남경필]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A검사장 “그 동네, 고법 때문에 시끄럽던데…”

떨어져 설치되면 시민이 불편하다?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지법과 고법은 완전히 격리된 법절차다. 지법에서 1심이 끝난 사건은 고법의 2심으로 넘겨진다. 검사와 재판부는 물론 사건 기록물 일체가 옮겨간다. 영통 고법 당사자가 광교 지법에 뛰어갈 일 없고, 광교 지법 당사자가 영통 고법에 뛰어갈 일 없다. 더구나 사건과 상관없는 일반 시민에겐 어떤 불편도 없다. 서울고법 시대가 문제였던 것은 경기도에 사는 관계인이 서울까지 오가며 하루를 허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떨어져 설치됐던 전례가 없다? 그러니 떨어뜨려 설치하는 실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 1심 법원과 2심 법원은 소송법상 분리된 기관이다. 혹시 모를 1심의 오류를 2심에서 거르기 위함이다. 왕왕 1심 유죄가 2심 무죄가 되고, 1심 패소가 2심 승소가 된다. 1, 2, 3심이 분리돼 존재하는 이유다. 이 3심 분리 정신에 충실하려면 각급 법원이 공간적ㆍ인격적으로 격리되는 게 옳다. 어찌 보면 1심 판사와 2심 판사가 같은 건물에서 출퇴근하는 지금의 구조가 되레 문제일 수 있다. 영통 부지 건립은 예산 낭비다? 1997년 토공이 영통지구를 준공할 때부터 영통 국유지는 있었다. 통계청 자리라고 공고됐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 후 20년, 부지는 오물과 생활 쓰레기로 뒤범벅됐다. 생산성 제로 상태로 버려진 도심 흉물이었다. 그곳에 수원시민과 경기도민을 위한 수원고법이 들어선다는 구상이다. 버려진 땅에 새로운 지역 랜드마크가 들어서는 계획이다. 그것도 도비(道費)나 시비(市費)가 아닌 국비(國費)로 건립되는 시설이다. 이보다 더한 효율성은 없다. 왜 영통 부지가 거론됐나? 수원고법이 겉돈 것은 대법원의 반대였다. 이유는 예산이 없다였다. 이에 도민 대표단이 영통에 국유지가 있으니 쓰면 된다고 건의했다. 대법원 기획실장에게 이 건의를 한 당사자 중 한 명이 현 변호사회 회장이다. 기재부로 달려간 것도 도내 국회의원과 도민 대표단이었다. 어떤 언론사 대표는 수원 출신의 기재부 실장을 찾아가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제야 대법원이 동의했다. 물론 국유지인 영통 땅을 공짜로 받는다는 전제가 달렸다. 왜 하필 지금에 와서 이러나? 그 영통 땅의 관리청 변경이 코 앞이다. 하필 이때 광교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돌이켜 보면 6ㆍ4 지방선거가 시작이었다. 도지사 후보, 도의원 후보, 시의원 후보-고법 설치에 어떤 결정권도 없는-들에게 약속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이제는 도지사가 약속했으니 국회의원 후보가 약속했으니라며 광교 유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런 약속한 적 없다. 영통 주민들도 동의한 바 없다. 누구를 위한 논란인가? 그 동네, 고법 때문에 한참 시끄럽데 영통이냐 광교냐로. 법무부 A 검사장의 어제(22일) 첫 마디다. 안 그래도 그걸 물어보려고 건 전화였다. 수원과 연고가 없는-수원에 살지도 않고 수원에 근무한 지도 15년도 더 지난-그의 입에서 대뜸 나온 소리다. 개인적 의견이라고 누차 강조하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검찰) 입장에서는 한곳에 모여 있으면 좋지. 그런데 지금 그쪽(경기도민)은 영통이든 광교든 빨리 유치하는 게 급한 거 아닌가? 그렇다. 흑묘백묘(黑猫白猫)다! 도민 모두의 목표는 수원고법 유치다. 수원고등법원 설치에 관한 특별법에는 그 시한이 있다. 2019년까지다. 하지만 이 시한은 2019년까지 설립할 수 있다는 근거일 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19년까지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밝힌 게 아니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휴짓조각이 된 특별법이 수두룩하다. 지금 도민이 해야 할 일은 문구대로 2019년에 준공시키는 것이다. 정답 없는 마찰로 대법원에 또다시 멈칫거릴 빌미를 주면 안 된다. 이제 그쳐야 한다. 광교가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건의만으로 충분했다. 영통으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 집단행동까지 가선 안 된다. 수원고법을 고대하는 전체 도민의 뜻이 아닐뿐더러 구(區)를 함께 하는 인접 지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A검사장 그 동네, 고법 때문에 시끄럽던데]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원만의 거물은 따로 있다

2000년 어느 날 이병희 전 장관의 동상이 파손됐다. 얼마 뒤 그와 만났다. (이병희 동상)내가 해머로 부쉈어요. 화강암이라 탕탕 튀더라고요. 그 동상을 두고는 수원 정치가 안 됩니다. 그는 진보진영 쪽 인사였다. 사후에도 지역을 보수로 틀어쥐고 있던 이 전 장관이었다. 그 엄청난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그만의 투쟁이었다. 재물 손괴가 아니라 정치행위였다.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 사건은 미제(未濟)다. 거물의 조건은 유권자 머릿수만큼 다양하다. 같은 인물이라도 극단의 호ㆍ불호 속에 거물과 괴물을 오간다. 그럼에도, 다수가 인정하는 상대적 거물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수원에도 몇 있다. 그때 동상이 부서져 나갈 정도로 증오의 대상이던 이병희 장관(용인 출생ㆍ1926~1997)이 있고, 심재덕 시장(수원 출생ㆍ1939~2009), 김진표 부총리(수원 출생ㆍ1947~), 남경필 도지사(수원 출생ㆍ1965~)가 있다. 李 장관은 수원에서 7선을 했다. 중앙당 부총재도 했고, 무임서 장관에 세계농구연맹 부회장도 했다. 沈 시장은 무소속으로 연거푸 수원시장에 당선됐다. 국회의원까지 했고, UN 기구인 세계 화장실협회를 창설해 회장을 지냈다. 金 부총리는 경제ㆍ교육 부총리를 했다. 수원에서 3선을 하며 중앙당 원내 대표까지 역임했다. 南 도지사는 수원에서 5선을 했다. 외교통상위원장을 지냈고, 수원출신 최초의 민선 도지사가 됐다. 중량감만큼이나 업적도 크다. 李 장관은 경기도청을 유치했고 삼성전자를 끌어 왔다. 沈 시장은 화성(華城)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고 문화혁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金 부총리는 지하철 시대를 열었고 수원고등법원을 유치했다. 南 도지사는 그의 5선 내내 화성(華城) 복원의 중심에 있었다. 모든 게 수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먹거리다. 도로 몇 개 뚫고 국ㆍ도비 몇 푼 챙기는 정치와는 급(級)이 다르다. 모두 시민이 만든 작품이었다. 크게 될 싹을 미리 알아봐 줬다. 표를 주며 기다려줬다. 이런 선택과 인내가 아니었으면 그들도 없었고 그들의 업적도 없었다. 그저 키 작고 동글동글한 전직 군인으로 51년전 끝났을 것이다. 그저 한여름밤의 음악축제를 준비하던 문화원장으로 21년전 끝났을 것이다. 잘나가던 부총리로 9년전 끝났을 것이고, 대를 이으려던 아들로 21년전 끝났을 것이다. 이런 것이 수원 거물의 역사다. 그랬던 역사가 지금 위기다. 李 장관 沈 시장은 떠난 지 오래다. 그 뒤를 잇던 金 부총리는 도지사에 낙선하며 떠났고, 南 도지사는 도지사에 당선되어 떠났다. 60년대 이후 이어졌던-80년대 신군부 시절 제외- 수원 거물의 계보가 갑자기 끊겼다. 두 달 전만 해도 시민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도지사 후보 기호 1, 2번이 수원출신임에 뿌듯해하기만 했다. 그 중 하나를 잃는 것이 선거임을 깨달은 건 6월4일 저녁 이후다. 다들 이제 김진표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김진표는 끝난 것이냐며 아쉬워한다. 이 끊어진 수원 거물의 역사를 이어붙여야 하는 것이 7ㆍ30 수원 재보선이다. 지나가는 과객(過客)이 아니라 뿌리 내릴 주객(主客)을 뽑아야 한다. 수년 갈 단기(短期)가 아니라 수십년 갈 장기(長期)를 뽑아야 한다. 개인의 영달(榮達)이 아니라 지역의 번영(繁榮)을 뽑아야 한다. 낙선하면 떠날 이주민(移住民)이 아니라 죽어서도 묻힐 정착민(定着民)을 뽑아야 한다. 수원만의 재목을 찾아내 그 위에 물과 거름을 주기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당장 시작해도 李 장관 만드는 데 30년 걸리고, 沈 시장 만드는 데 20년 걸리고, 金 부총리ㆍ南 지사 만드는 데 십수년 걸린다. 갑자기 밀고 들어온 정치적 떴다방-이력서 한 번만 클릭해보면 금방 확인되는-들에게 선수(選數) 얹어주고 임기(任期) 내어 줄 여유가 없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수원만의 거물은 따로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괴벨스 부활과 문창극 죽이기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만곡족(彎曲足ㆍ소아마비)으로 짧고 휘어진 오른쪽 다리.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와 불거진 입. 어떤 양복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체구.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著)의 첫 장(章)은 그를 신이 경멸받고 조롱받도록 만들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괴벨스의 어린 시절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됐다. 민족의 자유라는 신문사에서 일할 때까지도 그렇고 그런 언론인이었다. 그가 26세 되던 해 인종주의자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접한다. 뼛속까지 반(反)유대인 정서로 물드는 계기였다. 이어 만난 히틀러와의 조합이 비극이었다. 타고난 언변과 문장력으로 히틀러의 정신을 지배했다. 라디오와 TV를 독재에 이용하는 천재성도 발휘했다. 독일 국민 모두에게 라디오를 보급했고, 베를린 올림픽을 사상 최초로 세계에 중계했다. 그의 궤변 말 한마디가 전쟁을 이끌었고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 괴벨스를 생각하게 하는 요 며칠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 지명자를 두고 벌이는 반민족주의자 논란과 친일 논란이다. 이미 대중은 넘어갔다. 일제 식민지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는 얘기에 분노가 들끓는다. 일본 위안부 출신 할머니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를 지명한 대통령의 인기도 급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부정평가 48%, 긍정 평가 43%였다(6월17~19일 전국 성인 남녀 1002명 조사ㆍ신뢰수준 95%3.1%). 놀란 여당까지 문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반민족 주의자, 그리고 친일파.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금이 저리거나 너무 우스워 배꼽이 들락거리거나다. 문제의 강연은 1시간 5분 55초짜리다. 병기고가관리들의 부패로무기가 없고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덩어리만 있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어린 딸을 쌀 한 가마에 팔고 있다는 선교사의 책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조정은 나라에 관심 없고 이씨 왕조 지키기에만 매달렸다며 구한말 상황을 지적했다. 이런 나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시련을 준 것이며 그 결과 우리가 잘살게 됐다가 소(小) 결론이다. 남북 분단 관련도 실제는 다르다. 구한말 조선의 지식층이 유학을 갔는데 대부분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만 매달렸다. 과학이나 의학처럼 조선에 필요한 학문은 외면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해방 후 통일 한국은 사회주의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문 지명자의 생각이 아닌 윤치호의 일기를 인용한 부분이 많다. 구한말 지식층의 정치지향적 병폐를 지적한 말이다. 강연은 이렇게 끝난다.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하나님은 한국을 세계의 중심 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해진 마지막 화두는 대한민국 교회의 반성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된다. 다른 사람 손가락질할 것 없다. 수백명의 기독교인을 앞에 두고 그는 한국 교회의 개혁을 주문하면서 강연을 끝냈다. 반민족 주의? 친일 사관? 강연 어디에 그런 얘기가 있나. 혹 지금의 이 영상과 다른 별개의 영상이라도 있나. 문 지명자는 보수 논객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오는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칼럼 역시 속죄의 대상이다. 그게 칼럼리스트가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1시간 5분 55초짜리 강연은 아니다. 아무리 침소봉대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가선 안 된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말했다. 동영상 칼럼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사람을 반민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경위 자체가 오싹하다. 괴벨스는 1945년 5월 1일 밤 10시 자살했다. 바로 이틀 전 히틀러 시신에 자기가 했던 그대로의 역할을 휘발유 두 통을 들고 따라온 운전기사 라흐에게 부탁했다. 그가 저질렀던 죄만큼이나 참혹한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의 정점에서 사라졌다. 독일인들이 그의 거짓말을 알아챘을 때 그는 이미 없었다. 남은 독일인들이 떠안은 건 역사 앞의 사죄와 유대인 앞의 책임뿐이었다. 성공한 대중선동의 끝은 늘 그랬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괴벨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괴벨스 부활과 문창극 죽이기]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한국 진보, ‘노인 표’에 백기 들라!

첫째, 중앙권력에 대한 역선택 표심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그랬고, 참여 정부 시절에도 그랬다. 31명의 시장 군수 가운데 28명이 야당 소속이었던 적도 있다. 둘째, 높았던 투표율이다. 56.8%는 지방선거 16년만의 투표율이다. 변수는 있으나 높은 투표율은 대개 야당에 유리했다. 셋째, 세월호 참사다. 단군 이래 최악의 사고가 선거 한 달 보름여 전 터졌다. 그것도 정부의 무능과 책임이 뒤섞인 참사였다. 이 세 가지가 야당이 이겼어야 했던 요소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시장 군수는 17대 13으로 겨우 과반을 넘겼다. 도의회 역시 78 대 50으로 약간의 균형추를 무너뜨리는데 그쳤다. 경기지사 선거는 아예 졌다. 어느 전문가도 이번 선거를 야당의 승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심 싹쓸이를 기대했던 야당 스스로의 충격은 더 컸다. 절반의 승리라며 자위하는 미소 뒤로 참패의 그늘이 역력하다. 그 중심에 노인 표가 있다. 이번의 전체 유권자는 4천129만6천228명이다. 4년 전 3천885만1천159명보다 244만5천069명(6.3%) 늘었다. 주목할 것은 50대 이상 증가와 30대 이하 감소다. 50대 이상은 1천709만명으로 4년 전보다 285만명 늘었다. 전체 유권자 대비 36.7%에서 41.4%로 높아진 셈이다. 반면 30대 이하는 1천590만명에서 1천524만명으로 66만명 줄었다. 40.9%에 달하던 유권자 구성비가 36.9%로 낮아졌다. 노인 표의 +4.7%와 젊은 표의 -4%가 이번 선거의 답이었다. 개표가 팽팽했고 곳곳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다음날 정오까지도 최종 승부를 알 수 없었던 곳도 있다. 그런 곳의 승부 대부분이 1% 내외에서 결정됐다. 그 1% 승부에서 야당이 졌다면 그건 노인 표에 진 것이다. 노인 표와 젊은 표의 간극인 8.7%가 승부를 결정한 것이다. 0.8%의 경기지사 선거가 그렇고, 0.4%의 안양시장 선거가 그렇다. 더 무서운 건 응집력이다. 노인 표가 직접 선거판을 누볐다. 세월호로 정국이 요동치자 천재지변일 뿐이라며 막아섰다. 시청 앞 집회의 촛불이 늘어나자 불순 세력 물러가라며 맞섰다. 박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자 함께 울지 않으면 백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응집력이 그대로 투표장으로 옮겨졌다. 노인 표가 정치의 중심임을 그들 스스로 눈치 챈 때문이다.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부터였다. 대선 하루 뒤인 2012년 12월20일. 필자는 실버 보트(Silver Vote)-진보 위기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린 인구비의 역전이다. 이 역전이 그대로 유권자 구성비로 넘어갔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심각히 챙겨야 할 교훈이 바로 여기 있다. 75.8%의 투표율은 앞으로 나오기 어려운 투표율이다. 그런데도 5060 보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대 간 대결을 담보 삼는 이념 대결이 무용지물이 됐다어쩌면 이번 18대 대선이 앞으로 십수년간 이어질 장년층 지배 선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 그때의 졸고(拙稿) 속 예언이 맞았다. 진보는 또다시 노인 표에 무릎을 꿇었다. 중앙 권력 견제도, 젊은 유권자의 참여도, 세월호 참사의 책임도 다 소용없었다. 늘어난 수(數)와 신들린듯한 응집력으로 무장한 노인 표에 모든 걸 지배당했다. 선거는 그렇게 끝났고, 이제 필자는 그때 했던 충고를, 그때보다 강해진 확신으로 진보에 전하려 한다. 세대 간 대결은 끝났다! 뒤바뀔 가능성은 없다! 노인 표가 중심됐음을 인정하라! 숨 막혔던 2014년 6월4일의 개표. 그마저도 이 시대 진보가 보여준 마지막 선전(善戰)이었을 수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한국 진보, 노인 표에 백기 들라!]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엄마 표’(Mom’s votes)

Because we are moms, We cannot ignore (우리는 못 본 척 할 수 없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11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본사 앞. 한 무리의 한인들이 모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참가한 여성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정치 성향도 알 길 없는 교포들이다. 다만 Mom(엄마)이라 쓰여진 것으로 봐 자녀를 둔 부모일거라 여겨질 뿐이다. 안산 분향소에도 엄마들은 줄을 잇고 있다. 다녀간 조문객이 50만명을 넘는다. 휴일 평일 구분 없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행렬이다. 슬픔에 찬 조문객을 굳이 나이 따지고 성별 따질 필요는 없다. 그저 남녀노소 모두라는 표현만으로 족하다. 하지만 그래도 유독 눈에 띄는 모습은 있다. 30, 40대 여성들이다. 눈물을 훔치는 사진마다 예외 없이 그들이 등장한다. 필시 불쌍한 내 새끼들이라며 찾아온 누군가의 엄마들일 게다. 지금 엄마들이 그렇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애들 동영상에 눈물을 쏟아낸다. 엄마 아빠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메시지에 가슴을 쥐어짠다. 둘이 꼭 끌어 앉고 돌아왔다는 주검 소식에 입술을 깨문다. 모두를 살릴 수 있었다는 검찰 발표에는 분노의 치를 떤다. 안 보면 될 뉴스다. 그런데도 뭔가에 중독된 듯 TV 앞을 떠나지 못하며 울고 화낸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 엄마들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엄마들의 마음-엄마 표-이 지금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미디어리서치가 지난주(11~12일) 경기도 여론조사를 했다.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 40.2%, 새정치연합 김진표 후보 39.4%다. 한 달 전 조사에서는 남 후보 49.7%, 김 후보 34.9%였다. 14.8%p였던 차이가 0.8%p 차이로 좁혀졌다. 전 연령층에서 고르게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유독 완전히 뒤집힌 계층이 있다. 30대 여성이다. 남 후보 대 김 후보의 비율이 한 달 전 41.2% 대 36.3%에서 36.3% 대 57.9%로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10일)의 인천 여론조사도 있다. 새누리당 유정복 후보 34.4%, 새정치연합 송영길 후보 46.5%다. 한 달 전(4월 12일) 조사에서는 유 후보 42.0%, 송 후보 43.8%였다. 여기서도 급변한 건 여성 지지도다. 46.1% 대 37.0%가 한 달 만에 33.7% 대 44.4%로 뒤바뀌었다. 같은 기간 남성 지지도가 35.0% 대 48.6%에서 38.0% 대 50.5%로 별 변화가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이게 경기ㆍ인천 엄마 표의 현주소다. -여성들이 인정할 리 없지만-과거 우리는 이렇게 얘기했다. 여성 표는 종속적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여성들은 남편의 사회적 입지를 위해 투표했다. 엄마들은 자식의 정치적 앞날을 위해 투표했다. 선거 때마다 40대가 캐스팅 보트라 불렸지만, 그때의 40대도 따지고 보면 40대ㆍ직장인ㆍ남성을 의미했다. 그러던 여성 표가 독해졌다. 엄마 표로 응집해 선거판을 뒤흔들고 판세를 뒤집어 놓고 있다. 야권은 앵그리 맘(Angry mom)이라 명명했다. 화난 엄마들에 올라탄 전략이다. 분노의 대상이 정부와 여당을 향할 거란 계산이 선 듯하다. 이겨야 하는 것이 선거다. 앵그리 맘 전략을 두고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명심할 게 있다. 세월호로 요동치는 엄마 표에는 정치가 없다는 점이다. 생떼 같은 아이들을 잃은 모정(母情)의 표식일 뿐이라는 점이다. 엄마 표의 최종 탄착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6ㆍ4 지방 선거는 세월호 선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엄마 표가 있다. 엄마 표의 분노가 지금처럼 이어지면 새누리당은 진다. 패배의 최종 성적표는 현재의 여론 수치보다 참담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이기고 싶다면 엄마 표 앞에 무릎 꿇기를 권한다. 함께 펑펑 울어 줄 진정성과 가슴에 와 닿을 대책을 내놓길 권한다. 이것은 비단 수세에 몰린 여(與)뿐 아니라 공세에 나선 야(野)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할 세월호 선거의 슬픈 공식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엄마 표(Moms votes)]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국가보훈처장, 그 입 다무시오

국가보훈처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위기 때 단결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 관례다.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이 국가 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911 사후 보고를 받은 뒤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과 경찰관들의 어깨를 두드려 줬는데 이후 대통령 지지도가 56%에서 90%까지 올랐다. 도대체 무지한 것인가 무모한 것인가. 9ㆍ11 테러는 전쟁이었다. 외세(外勢)에 의한 공격이었다. 그날 오전 8시 45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로 비행기가 돌진했다. 납치된 여객기였다. 18분 뒤 다시 남쪽 건물을 비행기가 받았다. 역시 납치된 여객기였다. 37분 뒤, 이번에는 워싱턴에 있는 펜타곤-국방부-으로 여객기가 날아들었다. 다시 15분 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또 다른 여객기가 추락했다. 그 75분은 미국민에게 전쟁이었다.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사상 최초의 도발이었다. 세월호는 4월 15일 오후 8시 30분 인천항을 출발했다. 수학여행에 들뜬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공격을 할 일도, 공격을 받을 일도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을 태운 배가 갑자기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선장이 급하게 방향을 틀었고, 불법 과적된 화물이 쏠리면서 배가 넘어갔다. 멀쩡한 날씨에, 멀쩡한 여객선이 빚은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기독교-이슬람 전쟁이었던 9ㆍ11 테러와는 눈곱만큼의 공통점도 없다. 두 사고의 위기 대처는 더 판이하다. 비행기 화염 속에 산화한 사람도 있다. 80층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있다. 대다수는 무너진 빌딩 밑에서 숨졌다. 사람들은 안내에 따라 비상통로를 이용했고, 건물은 내진 설계대로 무너졌다. 하지만 2천792명이 숨졌다. 그 후로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그 순간을 얘기했다. 빌딩의 설계자는 TV에 나와 울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그(투신자)는 뛰어내리는 것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 세월호의 2014년 4월 16일 9시 30분이 공개됐다. 배는 45도만 기울어진 상태였다. 3층부터 시작되는 객실은 물에 잠기지 않았다. 이때해경이 진입했으면 모두를 살릴 수 있었다. 9시 45분, 배가 62도로 기울었지만 여전히 객실의 80%는 물 밖에 있었다. 이때 진입했어도 대부분을 살릴 수 있었다. 10시 17분, 배가 108.1도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때도 카톡을 보낸 학생은 있었다. 여전히 해경은 진입하지 않았다. 더 이상 삶의 신호는 없었다. 믿고 말고 할 분석이 아니다. 이번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검ㆍ경 합동수사본부의 분석이다. 수사본부가 핸드폰 문자기록과 각종 자료를 근거로 시뮬레이션까지 동원해 도출한 결론이다. 사고 초기부터 우리는 그렇게 상상했다. 아이들은 살아 있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추측만으로 입 밖에 내기엔 너무 참혹한 상상이었다. 이제 그 상상이 검찰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은 이렇듯 확정적이고 분명하다. 그런데 왜 9ㆍ11 테러를 세월호에 섞어 넣지 못해 안달인가. 9ㆍ11 테러는 재난 예방에 실패한 사고다. 세월호는 재난 예방과 재난 구조에 모두 실패한 사고다. 세월호 참사에 9ㆍ11 테러를 끌어다 붙일 하등의 공통점이 없다. 이러면 안 된다. 9ㆍ11과 비교해 엉터리 논리를 만들고, 그 논리를 근거로 세월호 책임을 돌리려 하면 안 된다. 슬퍼서 우는 국민에게 9ㆍ11때 미국민은 차분했다며 훈계하면 안 되고, 책임을 얘기하는 국민에게 9ㆍ11 때 미국민은 똘똘 뭉쳤다며 억지 쓰면 안 된다. 세월호에 우는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꾼으로 몰면 안 되고, 책임을 추궁하는 국민을 미개한 국민으로 몰면 안 된다. 믿기 어렵게도 이런 억지가 지금 정부기관장 입에서 나오고 있다. 원칙 없는 소신이 권력과 맞닿으면 맹수보다 잔인해진다더니. 지금 우리가 그런 몰골을 보고 있는 듯 싶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국가보훈처장, 그 입 다무시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시체 장사’라니…, ‘알바 조문’ 이라니…

그 순간. 아이들은 객실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펄 물은 밀고 들어와 생명의 공간을 삼켜가고 있었을 것이다. 한 귀퉁이로 몰려간 아이들은 점점 잠겨 갔을 것이다. 발목에서 무릎으로, 다시 무릎에서 가슴으로. 아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공간에서의 시간은 잠깐이었을 것이다. 곧이어 겪었을 어둡고 갑갑한 몇 분이 아이들이 보고 간 마지막 우주였을 것이다.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돌아왔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싶었던 건 누구였을까. 서로를 줄로 묶은 두 아이가 돌아왔다. 아이들이 나눈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학생증을 목에 건 아이가 돌아왔다. 누구 품이 그리워 남겨 놓고 간 표식일까. 어른들에게 버림받고, 어른들을 기다리다 지쳐갔을 아이들이 이렇게 돌아오고 있다. 하나같이 말 못하는 주검이다. 숨을 멎게 하는 상상이다. 몸서리쳐지는 상상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정신병동이다. 그래도 뭔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분향소들을 찾는다. 한 시간을 기다려 내려놓는 국화꽃 한 송이에 눈물을 섞고 있다. 체육관 벽면을 가득 메운 아이들, 그 천진난만한 웃음 앞에 어른임을 사과하고 살아있음을 자책하고 있다. 하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죄인이어서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조문객 가슴에 대못질을 해대나. (분양소를 찾는 아이들이) 6만원의 일당을 받아 왔답니다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정미홍씨의 거짓말이다. 분양 온 아이들이 돈 받고 왔다고 했다. 지인에게 들었다며 수사까지 촉구했다. 그러더니 하루 만에 번복했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절필하겠습니다. 그리곤 SNS에서 잠적해 버렸다. 명문대 출신에 앵커까지 했던 분이다.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등록까지 했던 분이다. 그런 분이 또래의 영정 앞에 슬퍼하는 청소년들을 6만원짜리 알바생으로 둔갑시켰다. 정치에 미친 것인가 원래 미친 것인가. 시체 장사 한 두 번 당해보느냐 제2의 5ㆍ18 폭동이 일어난다는 확신이 든다 지만원씨의 악담이다. 죽어간 아이들에 대한 애도를 시체 장사라 표현했다. 과적과 무책임으로 밝혀진 사고 원인을 남한 빨갱이들의 음모라며 선동했다. 사과도 없었다. 한 때 대한민국 육군 대령이었고 국가 기관의 참모까지 했던 분이다. 대학에서 강의까지 했던 분이다. 그런 분이 애도 행렬을 시체장사로, 세월호 침몰을 빨갱이 음모로, 국민적 슬픔을 폭동의 조짐으로 몰아세웠다. 단어 단어에서 소름이 돋는다. 광인(狂人)들의 헛소리겠지. 이렇게 넘길까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들의 파장력-인정하고 싶지 않지만-이 너무 크다. 한 때 TV에 등장해 지식인인 양 떠들던 사람들이다.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며 SNS 거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애들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국민 애도를 소재 삼아 존재감을 등업시키고 있다. 진보ㆍ보수를 따질 일이 아니다. 너나없이 진저리를 칠 일이다. 모든 게 막말 괴물들이 한 짓이다. 그런데 이 막말 괴물을 키운 게 우리 사회다. 논리 대신 궤변에 박수를 보내고, 예의 대신 악담에 통쾌해 왔던 우리 사회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에는 SNS 막말 유명세TV 토론 인기 패널정치ㆍ정부 입각이라는 출세 공식이 생겼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막말도 그렇게 성장한 괴물들이 토해내는 구역질 나는 토사물이다. 그리고 그 토사물이 급기야 불쌍한 것들의 영정에까지 튀어 가 얼룩을 만들고 있다. 이제 추방해야 한다. 막말을 추방하고, 막말 족속(族屬)을 추방해야 한다. 그리고 퇴출해야 한다. 막말 논객을 퇴출하고, 막말 정치인을 퇴출해야 한다. 열여덟 영령(英靈)들이 우리에게 책임을 남기고 떠났고, 그 책임이 국가 개조에 대한 시대적 사명이라면, 그 사명의 첫 번째 계명(誡命)은 막말 사회의 개조가 돼야 한다. 이것이 광인(狂人)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범인(凡人)들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회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시체 장사라니, 알바 조문 이라니]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법과 원칙에 따라’의 함정 -法만 피하면 책임 안 지는 사회로 간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하늘의 마음은 인군을 친애한다. 재이(災異)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인군의 덕을 굳게 하려는 것이요, 재해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인군의 의지를 근실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덕을 굳건히 하고 의지를 근실하게 한다면 현재의 황사비는 바로 미래의 감로수이자 단 샘물이 될 것입니다. -남효온(南孝溫)이 성종에게 올린 상소문 중에서- 윤리 도덕이 바로 서고 정치와 교육이 잘 이뤄지면, 해와 달이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바람과 비가 제때 와서 행운의 별이나 상서로운 구름이나 단맛 나는 샘물 같은 좋은 조짐이 생긴다. 반대로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정치와 교육이 엉망이 되면, 해와 달이 흉한 일을 알리고 바람과 비는 재앙으로 바뀌어 산이 무너지며 가뭄이 드는 변괴가 일어난다. -이색(李穡)ㆍ西京風月樓記- 법은 최소한의 도덕 조선조 공직관(公職觀)은 그랬다. 자연재해를 실정(失政)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라고 여겼다. 절대 군주조차 이런 재이론(災異論) 앞에 고개를 숙였다. 역병이 돌면 반찬을 줄이는 감선(減膳)과 술을 끊는 철주(撤酒)로 근신했다. 태조 이성계는 15차례의 감선과 9차례의 철주를 했다. 1518년 5월, 하루에 세 차례나 지진이 났다. 중종이 사람을 쓰는 데 잘못이 있을까 항상 두려워하는데도 재변이 이러하니 더욱 두렵다며 스스로 자책했다. 이게 500년 왕조를 지탱한 덕치(道治)다. 덕치의 기본은 책임정치다. 그리고 이때의 책임은 법치를 훨씬 넘어서는 무한책임이다. 하물며 인간이 빚은 재앙이다. 규정을 넘는 화물을 실었다. 항로를 벗어난 곳으로 갔다. 배가 뒤집히자 승객을 버리고 달아났다. 세월호에 탄 인간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실종자 수도 못 헤아렸다. 부표를 배에 매다는 데 3일씩 걸렸다. 공기를 주입하는데도 4일 걸렸다. 그 사이 죄 없는 애들이 죽어갔다. 재난을 극복해야 할 인간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법률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의 구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간다. 시간이 가면서 법률적 책임만 부각된다. 선원 12명이 모두 구속됐다고 보도됐다. 선장에겐 사형이 구형될 수 있다고 한다. 선주(船主)에게 적용된 혐의가 횡령ㆍ배임ㆍ탈세ㆍ강요ㆍ뇌물ㆍ재산 도피 등 6개나 된다고 한다. 합동수사본부 발 이런 자료들이 연일 신문 방송을 도배하고 있다. 어차피 법전(法典)에 따라 엄벌에 처해질 일이었다. 뭐가 충격적이고 뭐가 새롭나. 국민의 분노는 이미 그 범위 밖이다. 불법적 항해를 묵인해온 정부, 구조 시간을 허비한 정부, 사태 파악에 실패한 정부. 그래서 단 한 명의 아이도 구해주지 못한 정부. 이런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 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들과 그런 공무원을 지휘하는 장관(長官)의 책임을 묻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 그 부모를 지켜보는 국민들이라면 당연히 추궁해야 할 정부의 책임이다. 이런 목소리를 윽박지르면 안 된다. 정부의 책임을 말하는 것을 정치적 의도라 하고, 담당 장관의 경질을 말하는 것을 마녀사냥이라 하면 안 된다. 애들 죽어가는 배에 들어가 밧줄 묶는 데 6일씩 걸린 정부를 탓하는 게 정치적인가. 죽음의 탈출이 이어지는 순간에 경찰 졸업식에서 화이팅하며 사진 찍은 장관을 탓하는 게 마녀사냥인가. 틀림없는 그네들 책임이다. 그런데도 입 닫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法 넘어서는 책임행정 법과 원칙에 따라가 사달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 이 구호가 문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근대 법학이 입문부터 가르치는 법언(法諺)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도덕이라면, 법은 그 도덕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어디에도 역병과 지진을 임금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임금은 역병 앞에 곡기를 줄였고 지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게 바로 법과 원칙을 뛰어넘는-이 시대가 배워야 할- 공복(公僕)의 무한책임 정신이다. 애들 5명이 목숨을 잃었던 지난해 해병대 캠프 사고, 교관 3명의 법적 책임뿐 아니라 정부의 책임도 물었어야 했다. 대학 신입생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쳤던 올 초 리조트 붕괴 사고, 업자 21명의 법적 책임뿐 아니라 정부의 책임도 물었어야 했다. 아직 몇 명의 사망자가 나올지 가늠도 할 수도 없는 이번 세월호 참사, 선원 12명에 대한 법적 책임뿐 아니라 장관(들)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책임이 법과 원칙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고 넓은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 법 대로만 책임지는 사회는 더 안전해 질 수 없고, 원칙 대로만 책임지는 사회는 더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법과 원칙에 따라의 함정 -法만 피하면 책임 안 지는 사회로 간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1분이라도 빨리 떠나야 할 장관들

왠지 모를 불안감,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었을까.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아마 행정안전부가 안전행정부로 바뀐 그 언저리부터였을 게다. 결국 그 불안감이 세기의 참변(慘變)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모두가 알게 됐다. 맘을 떠나지 않고 매달려 있던 불안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책임 지지 않는 정부, 책임 대신 엄벌의 칼자루를 휘둘러 온 정부가 이유였다. 작년 7월 우리에겐 첫 경고가 내려졌다. 생때같던 고등학생 5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병대 캠프에 간다며 집을 나섰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수영하라며 밀어 넣어진 태안 앞바다 갯골에서 참변을 당했다. 무자격자로 엉망진창이던 캠프가 저지른 짓이다. 현장에 있던 훈련 교관 등 3명이 구속됐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교장도 사퇴했다. 하지만 책임은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는 책임자 엄벌만을 강조했다. 참사 참사 참사 두 번째 경고는 더 컸고 더 참혹했다. 올 2월 경주의 리조트가 무너져 내렸다. 부산외대 대학생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쳤다. 대학 생활의 꿈도 펴보지 못한 신입생들이다. 부실 자재, 부실 감리, 관리 소홀이 빚은 참사였다. 6명이 구속되는 등 21명이 기소됐다. 대학 측은 학생회 주관 행사였다면 일찌감치 빠졌다. 여기서도 정부의 역할은 빼다 박은 듯 똑같았다. 책임자를 찾아 엄벌하겠습니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부모에 앞서 가는 자식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가슴 메어지는 일도 없다. 반년의 차이를 두고 그런 사고가 생겼고, 모든 이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 두 번 모두 정부는 책임자 엄벌만을 말하고 있었다. 책임지겠다는 장관도 없었고, 책임졌다는 장관도 없었다. 결국 참담한 세 번째 결과가 왔다. 바다 위에서 배가 뒤집혔고 300여명이 실종 또는 사망했다. 이번에도 고등학생들이다. 학창 시절 추억을 꿈꾸며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다. 선장이 운전을 잘 못했다고 한다. 그래놓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먼저 탈출했다고 한다. 그 뒤로 구명조끼도 못 입은 아이들, 안내에 따라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들, 친구를 구하려던 아이들이 남겨졌고, 모두 실종됐다. 악몽(惡夢)이다. 7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 악몽 속에서 대한민국이 울고 있다. 공룡처럼 드러누워 버린 뱃머리를 보면서 사흘을 울었고, 그마저 사라져 버린 텅 빈 바다를 보면서 나흘째 울고 있다. 그렇게 울부짖는 국민들이 정부를 바라봤다. 1초라도 빨리 캄캄한 바다 속으로 들어가 찾아 주기를 바랐다. 이럴 때 나서야 하는 게 정부라고 봐서였다. 이 악몽을 깨워줄 힘은 정부밖에 없다고 믿어서였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몸서리치게 했다. 탑승자 몇 명인지 알아내는데 며칠씩 걸렸다. 실종자가 100명뿐이라고 발표했다가 290명으로 고쳤다. 선실에 진입해 공기를 주입하고 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 대형 부표를 배에 다는 데 사흘이나 걸렸다. 시야가 안 좋다며 조명탄 투하도 질질 끌었다. 그 사이 희망처럼 떠 있던 선수(船首)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게 안전을 책임진다는 정부의 7일간 행적이다. 이후 아비규환이 됐고 뒤죽박죽이 됐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정부는 역할도 못했고 책임도 못했다. 장관들은 위기에 무능했고 국민을 좌절시켰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안행부 장관, 부적절한 촬영을 시도했던 어떤 장관, 발인식 찾아 신분 소개받으려던 또 다른 장관. 모두 신뢰를 잃었다. 이제 이 생지옥 속에서 그들에게 남겨진 역할은 없다. 분노한 가족들도 그들을 생략한 채 청와대로 가려고 한다. 누가 누구를 엄벌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자 엄벌을 얘기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태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합동수사본부장도 검사장급으로 확대됐다. 이제 참변에 상응하는 사법처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법이 처벌 가능한 가장 강력한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건 법전(法典)을 달달 외우는 수사관들이 할 일이다. 윤리적 책임은 그것과 다르다. 법전에 나오지 않는 죄다. 죽어가는 국민을 7일 동안 쳐다만 본 죄, 국민의 희망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죄, 상처 난 가족의 가슴에 난도질한 죄다. 모두 대통령이 결심하고 물어야 할 죄다. 책임자를 엄벌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대통령. 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그런 책임자들이 앉아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1분이라도 빨리 떠나야 할 장관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김상곤, 정치력 아닌 뚝심이 몸값인데…

관선 시절 서울 시장은 장관급이었다. 한 시대의 권력자들이 가는 자리였다. 경기도는 그보다 한 단계-어쩌면 그보다도- 아래 있었다. 정부 부처의 차관보나 국장급이 주로 왔다. 그것이 서울과 경기 사이의 관선시절 서열이었다. 그런 권력 배치를 따라 행정도 서열화됐다. 도민들의 자부심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경기도민은 언제나 서울시민의 아래였고 그걸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였다. 이런 600년의 악습이 정리된 게 민선(民選)이다. 직선(直選) 경기지사의 면면이 화려해졌다. 장관 출신, 부총리 출신, 대권 후보, 당 중진들까지 줄줄이 취임했다. 이제 경기지사직은 더 이상 서울 시장으로 가는 정거장이 아니었다. 지시하고 지시받던 관계도 사라졌다. 당돌하고 발언권 센 경기지사들이 뉴스의 중심을 경기도로 끌고 왔다. 시쳇말로 꿀릴 것 없는 경기지사 시대다. 서울시장 이벤트는 패착 비로소 경기도민의 내 주장이 시작됐다. 서울 시민에게 팔당호 물값을 받아냈다-한강 수계 관리법 제정-. 중국에 가겠다던 10조원짜리 대기업을 휴전선 턱밑으로 끌고 왔다-파주 LG 필립스 공장 유치-. 강남보다 더 좋은 신도시가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다-광교 신도시 등 조성-. 서울의 땅 밑을 파고들어가는 철도 계획도 세웠다-GTX 계획-. 경기지사의 몸값이란 게 이만큼 중요하다. 김상곤 후보가 박원순 시장을 만났다. 7일 오후 2시 50분. 서울시장실 앞에 둘이 섰다. 김 후보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고 박 시장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소 갑작스럽고 느닷없기는 했다. 하지만 만남 자체를 두고 뭐라 할일은 아니다. 경기도ㆍ인천시ㆍ서울시는 수도권이다. 정책 공조는 필수적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에겐 그 필요성이 더하다. 연대해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 3개 지역 후보가 모여 손잡는 이벤트는 이제 수도권 선거의 공식이다.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엄밀히 이날 만남은 회동이 아니라 방문이었다. 포토라인에서 선 박 시장이 묘한 인사말로 이런 상황을 표현했다. 김 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도입하셨다. 앞으로도 (혁신학교 제도를) 성공적으로 확산시켜주셨으면 한다. 경기지사 후보에게 건넬 덕담이 아니다. 도지사 후보에게 왜 교육의 장래를 당부하나. 화법의 달인인 그가 실언했을 리도 없을 테니 더 이상하다. 만남 후 브리핑도 그렇다. 김 후보 측은 (논의를 통해)1차적으로는 융합형 버스 환승 센터를 건설하자고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에서도 (양쪽이 합의했다고) 확정적으로 말해도 좋다고 했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곧 부인했다. 김 예비 후보가 자신의 안을 말하고, 시장님이 덕담하는 수순으로 얘기가 진행됐다며 합의했다는 표현은 너무 세다고 밝혔다. 꼭 선을 그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상수원 벨트 구상도 이상해졌다. 김상곤의 상과 안철수의 수, 그리고 박원순의 원을 합쳐 김 후보 측이 만든 단어다. 하지만 박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차기 대권 주자인 그가 경쟁자인 안철수 대표와 이름을 섞자는 제안에 선뜻 응하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필 만남 이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정반대 뉴스가 떴다. 박원순ㆍ문재인, 동반 등산. 상ㆍ수ㆍ원 벨트를 문밖으로 내보낸 문ㆍ박 벨트였다. 조급해 보였던 김 후보-시큰둥했던 박 시장. 이게 이날 만남에 비쳐진 모습이다. 애초에 잘못된 저울이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아니다. 젊은 시절은 민주화로, 장년 시절은 대학교수로 살았다. 유권자를 만난 경험이라야 5년여가 다다. 그나마도 정치와는 거리가 먼 교육감 선거였다. 그런 그가 야권의 희망으로 올라선 건 순전히 소신과 뚝심 때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유권자들이 무상급식 때의 소신과 뚝심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그를 몸값과 어울리지 않는 저울에 올려놨던 것이다. 본인이 잘못 판단했을 수 있다. 주위의 조언(助言)이 틀렸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날도 유권자에게 생중계된 김 후보의 하루였다. 사전 조율을 거치지 못했고, 단어 선택에 신중하지 못했고, 정무적 계산에 서툴렀던 캠프의 투박함도 그대로 묻어난 하루였다. 남은 20여 일에 주는 교훈이다. 지금부터라도 소신ㆍ뚝심이라는 본래 몸값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게 중앙에 맞서고, 서울과 겨뤄야 하는 경기지사의 자격 조건에도 맞는다. 소신ㆍ뚝심으로 승부해야 소신과 뚝심의 정치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2002년 당원들을 전율케 했던 명 연설의 한 대목이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한 번도 권력을 바꿔 보지 못했습니다. 이 비겁한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역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김상곤, 정치력 아닌 뚝심이 몸값인데]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선거로 돌아온다

Patient Protect Affodable Care Act(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 오바마 케어로 더 익숙하다. 민간 보험 중심의 미국 의료체계에 공적 개념을 도입한 제도다. 문제는 돈이었다. 정부가 분담해야 할 예산이 10년간 1조7천600억 달러에 달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보아 넘길 리 없었다. 예산 통과를 무기로 틀어쥐었다. 세계 주식시장을 셧다운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시작과 끝에 베이비부머(1945~1965년생)가 있다. 공화당이 재정부담이 결국 베이비부머의 짐이 될 것이라며 충동질했다. 여론이 악화됐고 사태는 셧다운까지 치달았다. 다시 희망 없는 베이비부머들을 의료 공포로부터 해방시킬 제도라는 역(逆) 반론이 돌았다. 여론이 급반전했고 오바마케어는 통과됐다. 악에 받친 베이비부머-46%가 무직이고, 17%는 깡통 주택에 살고, 20%는 병원비가 연체됐고, 14%는 의료 보험도 없는-가 뒤흔든 미국 정치의 최근 예(例)다. 한국에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있다. 인구의 15%를 넘나드는 725만명이다. 젊은 시절 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그 무한대 경쟁 속에서 개미처럼 일했다. 배움에 대한 한(恨)도 커서 자식에게 모든 걸 걸었다. 세계 유례가 없는 80%의 대학진학률, 기러기 아빠로 통칭되는 목숨 건 유학 열풍. 이 모든 게 그들이 만든 문화다. 한국의 베이비부머에게 젊은 날은 이렇듯 가혹한 노동의 역사였다. 그들이 은퇴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2012년을 전후해 쫓겨나기 시작했다. 1955년생을 시작으로 공직사회의 명퇴도 시작됐다. 하지만 짊어져야 할 책임은 그대로다. 여전히 자녀의 등록금과 결혼 비용을 책임져야 하고, 노부모의 생활비도 챙겨야 한다. 지나간 30년만큼이나 힘들 게 뻔한 30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주받은 세대 끼인 세대. 스스로를 자조하며 내뱉는 이 표현보다 적절한 단어도 없다. 이런 그들의 분노가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2012년 18대 대선이 출발점이었다. 투표율이 82%에 달했다. 20대(68.5%) 30대(70%) 40대(75.6%)보다 높았고 심지어 60대 이상(80.9%)보다도 높았다. 3.6%의 박빙승부는 결국 50대 몰표에서 결판났다. 40대 시절 이미 선거를 쥐락펴락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이다. 그때의 그 750만명이 그대로 50대로 옮겨갔다. 그리고 분노로 무장한 집단의 힘으로 다시 뭉쳤다. 그들의 표심을 종잡기는 어렵다. 산업화와 민주화 속에 뒤엉켜 살아온 그들이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 수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다. 60대 이상=보수, 20ㆍ30대=진보와 같은 고정 잣대가 통하지 않는다. 18대 대선에서는 그 물꼬가 보수 쪽으로-朴 62.5%: 文 37.4%- 터졌다. 은퇴에 따른 소외감, 경제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보듬을법한 구호로 중산층 재건을 택한 결과다. 이제 두 달 있으면 선거다. 이번에도 그들은 등장할 것이다. 한 번 맞본 정치 존재감에서 손 뗄 그들이 아니다. 여전히 높은 투표율로 선거판을 휘저을 것이다. 여기엔 1년전에 비해 0.3%p나 커진 50대 유권자의 비중도 있다. 휘두를 해머의 중량이 한층 묵직해진 것이다. 미국의 베이비부머가 2008년 백악관을 장악했던 것처럼. 이제 그것보다 10년 늦게 출발한 한국의 베이비부머도 한국 정치를 장악해 가고 있다. 한국 정치에 주어진 운명이다. 베이비부머 공략이 곧 선거전략이다. 그들을 잡아야 이긴다. 그들만의 복지, 그들만의 일자리, 그들만의 문화를 따로 떼어서 공약해야 한다. 아예 그들을 대표 주자로 내놓는 것도 방법이다. 누가 뭐래도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온 공신(功臣) 세대다. 그럴만한 기여를 했고 그래도 좋을 권리를 갖고 있다. 표(票)에 대한 공포(恐怖)가 역겹다던 역사(歷史)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접근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안철수ㆍ김상곤, 한 배에 탄 거 맞아?

대저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 한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加左右手). 손무(孫武)가 쓴 손자 가운데 구지편(九地篇)에 나온다. 오월동주(吳越同舟)로 더 익숙하다. 서로 다른 뜻을 품은 세력끼리의 전략적 제휴다. 우리네 정치사에서도 숱하게 보는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1월 1일 현충원을 찾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2012년 9월 20일에도 똑같은 수순의 참배를 했다. 두 번 모두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취지의 방명록을 남겼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나 김한길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그만의 색깔이다. 하지만 김상곤 전 교육감은 달랐다. 그의 첫 공식 행보도 묘역 참배였다. 13일 현충원과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았다. 현충원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란 공원에서는 전태일 열사, 김근태 고문, 문익환 목사의 묘를 참배했다. 하지만 지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들르지 않았다. 오후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안철수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참배할 생각이 없다. 안 대표의 복지관(觀)은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결합이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했던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예민하게 충돌했던 요소 중 하나다. 결국 신당은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보편과 선별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는 정강을 택했다. 민주당이 안 대표의 생각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보편과 선별의 조합이란 초안이 다소 길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김 전 교육감은 이것과도 다르다. 공교롭게 첫 공약이 무상버스다. 무상 급식에 이은 두 번째 무상 시리즈다. 무상급식은 우리 복지사(史)에서 보편적 복지를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린 정책적 효시다. 그때의 이념, 그때의 방식 그대로다. 소득의 많고 적음, 나이의 늙고 젊음을 따지지 않는다. 무상ㆍ공짜 복지에 대한 당 내외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보편적 복지는 기본적 인권이라며 한 발 더 나갔다. 안 대표는 산업화 세력 끌어안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대중 6ㆍ15 선언과 노무현 104 선언이 논란을 빚은 것도 이 대목이다. 안 대표는 빼려 한 적 없다고 해명했으나 손 보려 했던 것만은 맞는 듯하다. 결국 최종 정강에는 이 두 개의 선언에 박정희 7ㆍ4 공동성명과 노태우 기본 합의서가 더해졌다. 안 대표의 보수 끌어안기가 가장 상징적으로 현시화(顯示化)된 부분이다. 산업화 시대의 공(功)을 명문으로 내건 것이다. 하지만 김 전 교육감은 여기서도 달라 보인다. 사실상의 첫 민생 투어로 양평 두물머리를 택했다. 두물머리는 진보진영엔 투쟁의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보수정권의 4대강 사업에 맞서던 본산이다. 생명 평화 미사가 930일간이나 이어졌다. 그때의 투쟁사가 기록된 영화 두물머리는 지금도 진보진영에 영향력 높은 학습자료다. 그런 곳을 첫 방문지로 찾았는데, 하필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하던 26일이다. 우연치곤 상징성이 너무 짙다. 김 전 교육감은 안철수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런데 다르다. 작정한 듯 반대편으로 내달리고 있다. 한쪽은 집요하게 우향우, 다른 쪽은 고집스럽게 좌향좌다. 6.4 선거라는 태풍을 맞아 한 배에 올랐으면 좌우의 손이 협력하듯(加左右手) 보듬을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은 없다. 때론 힘을 겨루는 듯 보이고, 때론 애초에 남이었던 듯 보이고, 때론 이별을 작정한 듯 보인다. 참으로 이해하기 난해한 조합이다. 오 나라의 왕 합려(闔閭)가 월 나라의 왕 구천(勾踐)에게 패했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복수를 다짐했다. 다음 싸움에서 부차가 구천을 물리쳤다. 구천의 아내가 부차의 첩이 됐다. 이번엔 구천이 쓸개를 매달아 놓고 이를 핥아 가며 복수를 다짐했다. 둘의 싸움은 한 쪽(구천의 월)이 다른 한 쪽(부차의 오)을 패망시키면서야 끝났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역시 우리네 정치사에서 흔히 보는 끝이다. 결국 오월동주의 숨겨진 다른 말은 와신상담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슈&토크 참여하기 = 안철수ㆍ김상곤, 한 배에 탄 거 맞아?]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규제(規制) 없애려면 감사(監査)부터 바꿔 주십쇼”

박수영 행정1부지사의 페이스북에서다. 박수영: 손톱밑 가시는 국민이나 기업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비교적 작은, 그러나 당하는 사람은 생존이 걸린 아픈 규제다. 푸드트럭, 외국인 근로자 등록 등 생중계된 토론에서 제기된 규제들이다. 이 규제는 공무원들이 작심하고 달려들면 대부분 없앨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몇 가지 걸림돌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감사원 감사다. 규정이 좀 애매해도 국민이나 기업이 편하게 해 주자고 하면, 담당직원의 반응은 대개 감사 때문에 안 된다이다. 덧붙여 이런 얘기도 한다. 경제투자실장으로 일하던 2010년. 흙먼지만 날리던 판교 테크노밸리를 지금처럼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만들기 위해, 땅을 분양받은 기업 컨소시엄의 지분변동을 허용해 줄 때도 그랬고, 기조실장으로 일하던 2011년 지금은 활발해진-그러나 당시는 역시 흙먼지만 날리던-한류월드 땅을 되찾아 올 때도 그랬다. 담당직원들은 감사 받을 걸 걱정해서 그냥 소송으로 가자고 했었다. 4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에 맡기자고 했었다. 현장 공무원들의 의견이 따라 붙었다. 김수열(안산시청 산업지원본부장): 현장에서 기업애로 사항 해결을 위해 일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특혜 시비로 실무자가 징계를 염려하여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지요. 감사방법에 혁신해 주어야 긍정적ㆍ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백광학(수원시청 보육 아동과 과장): 제가 일하는 보육아동 업무도 감사원, 상급기관 감사 많이 의식합니다. 행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황선구(경기도 한류월드사업단 단장): 한류월드 1구역의 경우 일방해제가 소송으로 갈 걸 알면서도 소신과 적극 행정이라 판단하고.... 매수인 측과 합의해제 했다는 이유로 지난 연말부터 3개월도 넘게 감사를 받았고...아직 결과는 모르지만... 하지만 우리 한류 월드 사업단 직원들 모두는 1구역 합의 해제를 큰 성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박 부지사가 글을 올린 건 22일이다.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는 공무원의 자세를 언급했고, 덩어리 규제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도 얘기했고, 수도권 역차별에 대한 사례도 언급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댓글은 하나같이 감사(監査)로 모아졌다. 수원시, 안산시, 경기도 공무원이 모두 같은 의견을 얘기했다. 규제 개혁이 성공하려면 감사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틀 전 청와대 끝장 토론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얘기다. 박 부지사, 황 단장, 김 본부장, 백과장의 대화에 숨김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감사에서 해방되겠다는 얄팍한 안일함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야말로 개인적 공간에서,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공개되어도 좋은 방식으로 그들은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대통령이 주재한 토론장에 장관은 있었지만 이런 현장 공무원은 없었다. 칼럼에 네 사람의 말을 되도록 고치지 않고 줄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옮겨 적기로 한 이유다. 도정을 총괄했던 임창렬 전(前) 지사도 같은 말을 한다. 규제 개혁이 성공하려면 감사 관행이 고쳐져야 합니다. 공무원들이 감사원 때문에 몸보신 합니다. 감사가 국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원 폐지 수준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회계감사만을 전담했던 심계원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책 감사는 총리실에 맡기면 됩니다. 모든 걸 쥐고 있는 이런 감사원이 외국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나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경기도내 공무원 몇이 참여한 규제 개혁을 위한 페이스북 토론회. 여기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감사 개혁의 필요성. 이 작은 토론회와 소박한 결론이 잊을뻔 했던 규제 개혁의 필요 조건 하나를 얹어줬다. 맞다. 감사원과 감사를 바꿔야 한다. 각종 규제를 감사의 무기로 삼고 있는 관습(慣習)부터 고쳐야 한다. 수도권 정비법이 32년 해 묶은 규제이고, 개발제한구역이 43년 해 묶은 규제라면, 암행어사 감사는 600년 해 묶은 규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규제(規制) 없애려면 감사(監査)부터 바꿔 주십쇼]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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