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말 많던 공수처 수사, 윤 대통령 석방을 자초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이 7일 윤 대통령 측이 낸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주된 사유는 구속 기간 산정 문제다. 이미 구속 기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기소됐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 구속 취소 심리는 지난달 20일 있었다. 별도의 심리 없이 결정하는 통상의 경우와 달랐다. 여기에 ‘열흘 안에 추가 서면을 제출하라’고도 했다. 이 역시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 결정을 오늘 한 것이고, 방향은 ‘인용’이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쟁점은 공수처 수사의 적법성 판단이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 수사 범위에 내란죄가 포함돼 있지 않고, 검찰에 신병을 이전하며 인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사정들에 대해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다.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구속 취소 결정을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되는 표현도 있다. 재판부는 “이러한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 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을 석방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향후 형사 재판에서의 ‘파기’ ‘재심’ 등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내란 사건의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재판부가 1심 판결을 선고한다. 그 재판부가 '파기' '재심'을 언급했다. 이 의미가 간단한가. 이번 결정의 핵심은 '산수 계산'인 구속일 산정에 있지 않다. 공수처의 수사권 문제가 중심이다. 안 그래도 공수처 논쟁은 최근 변곡점을 겪고 있다. 서울 중앙지법에서의 윤 대통령 관련 영장 기각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후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 영장을 서울서부지법에 냈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 법원과 체포 영장 발부 법원이 다른 것이다. ‘영장 쇼핑’ 논란의 정황이 높아진 것이다. 공수처장의 거짓말 논란도 있었다. 12·3 계엄 직후 수사권 충돌이 있었다. 경찰·검찰이 서로 수사팀을 만들어 경쟁했다. 공수처는 대통령 출국 금지로 뛰어들었다. 내란죄의 명문의 수사권은 경찰에 있었다. 어느 순간 수사 주체가 공수처로 결정됐다. 검찰은 수사에서 배제됐고, 경찰은 보조 역할로 밀렸다. 하지만 공수처 수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서부지법 영장 청구, 딱풀 공문서 활용, 형소법 적용 배제 등 예외에 예외를 거듭하면서 혼란과 불신을 자초해 왔다. 탄핵 심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이번 구속 취소 결정이 탄핵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내란’으로 탄핵소추했지만 헌재에서는 빼겠다고 했다. ‘내란죄 자체는 탄핵 심판의 핵심이 아니다’라는 논리는 유지된다. ‘내란죄 제외’가 지금에 와서는 ‘탄핵 인용의 묘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석방이 가져올 현실적 부담은 분명해 보인다. 탄핵 반대 세력에게는 이번 ‘석방'이 ‘내란 무죄’로 활용될 게 뻔하지 않나. 오동운 공수처장은 법원의 영장 발부를 적법의 근거로 강조해왔다. “법원이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이 곧 정당한 수사의 근거”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 논리가 공수처를 압박하는 역설의 근거가 돼버렸다. 검찰이 공수처를 압수수색 했고, 그 압수수색 영장은 중앙지법이 발부했다. 이제는 중앙지법이 피의자 윤 대통령 구속까지 취소했다. ‘법원의 결정이니 공수처 부실 수사는 증명된 것’이라는 공격이나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설] 계엄에 쑥밭 된 軍, 민가를 쑥밭 만들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방부 장관이 없는 나라다. 지난해 12월10일 김용현 장관이 구속됐다. 12·3 계엄을 통한 내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다.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차관이 장관 대행이다. 실무 군의 핵심인 육군참모총장도 공석이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도 계엄 이후 수사와 청문에 끌려다녔다. 국방부로부터 2월25일 기소 휴직 명령을 받았다. 특전사령관 등 특수부대 지휘관 여러 명이 구속됐다. 군이 쑥밭이다. 이런 상황에서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사고가 터졌다. 포천시 이동면 한 마을이 비행기 폭격으로 쑥밭이 됐다. 어이없게도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는 대한민국 공군기다. 한미 연합·합동 통합화력 훈련 중이던 KF-16 두 대다. 탑재했던 MK-82 폭탄 4개씩, 모두 8개를 투하했다. 건물·교량 파괴에 사용되는 폭탄으로 파괴력이 상당하다. 폭파구가 폭 8m, 깊이 2.4m에 달하고 살상 반경만도 축구장 1개에 이른다. 마을은 초토화됐다. 주택 기와지붕이 내려앉고, 나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성당 건물과 주택, 비닐하우스가 파손됐다. 군인을 포함해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마을에는 폭발물 처리반(EOD)이 투입돼 조사를 벌였다. 모든 주민은 집을 떠나 안전지대로 이동했다. 공군 전투기에 의한 민간지대 오폭 사고는 유례가 없다. 2004년 F-5B 전투기가 폭탄을 오폭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에 대처하는 군의 일 처리도 이해하기 힘들다. 난데없는 폭탄 낙하에 지역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더욱이 피해 지역은 전시 공포가 상존하는 접경지대다. 경찰 등에서는 즉시 오발 사고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군은 100분 가까이 공식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 정확한 사고 원인 설명도 없었다. 조종사 좌표 실수를 밝힌 건 오후 늦게다. 그 동안 주민들은 원인도, 추가 위험도 모른 채 떨고 있었다. 처음 나왔던 발표의 내용도 어색하다. “비정상 투하 사고로 민간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며 부상자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 피해 배상 등 모든 필요한 조치를 적극 시행하겠다.” 일의 우선 순위를 모르나. 그 시각 마을의 공포는 여전했다. 그 상황에서 공군이 할 발표는 사고 원인과 추가 위험 여부다. 그런데 ‘회복 기원’을 말하고, ‘피해 배상’을 약속했다. 어차피 배상은 정부의 몫 아닌가. 안 그래도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 군이다. 공연히 사고 책임을 침소봉대하려는 것 아니다. 어이없는 사고를 보는 국민의 우려를 전해 두려는 것이다. 하루 속히 기계처럼 돌아가던 군 행정의 정식을 되찾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 시급한 게 국방부 장관 임명이다. 휴전 국가에서 국방부 장관은 비워두는 자리가 아니다. 정부 수립 후 최장 공백은 5일(1961년)이었다. 그 자리가 3개월째 비어 있다. 큰 일이다.

[사설] 새마을금고 첫 직선제, 500억 쓰고 16% 투표라니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가 끝났다. 선관위 관리하에 치러진 첫 직선제였다. 선거 비용을 새마을금고가 선관위에 위탁했다. 위탁한 비용은 490억원 정도다. 1개 금고에서 평균 6천여만원의 선거 비용을 부담하는 꼴이다. 4년 임기 이사장을 뽑는 데 과한 부담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금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최종 평가는 비용만큼의 효과가 있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따져 볼 수치가 있다. 투표율이다. 1년 전부터 이번 선거는 요란했다. 과거 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가 이렇게 언론에 오른내린 적 없다. 유감스럽게도 부정선거 등의 부정적 기사가 보도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처음 치러지는 선관위 관리 직선제라는 사실에 쏟아진 관심이었다. 5일 드러난 이 선거의 투표율이 형편없다. 직선제로 치러진 전국 208곳의 투표율이 25.1%였다. 4명 중 1명만 투표했다. 경기·인천지역의 투표율은 그중에도 특히 낮다. 직선제를 택한 금고가 경기 94개, 인천 49개다. 단독 후보 출마로 무투표 당선된 곳이 경기 51개, 인천 20개다. 실제 직선 투표가 실시된 곳은 경기 43개, 인천 29개다. 여기서의 투표율이 경기 16.2%였다. 6명 가운데 1명이다.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인천도 19.4%로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율 제고는 작금의 공영선거가 갖는 공통의 목표다. ‘16% 투표’는 낮아도 너무 낮다. 간선제 투표율과 비교하면 문제가 더 선명하다. 전국 358개 금고 가운데 150개는 간접선거인 대의원 투표를 했다. 여기서는 1만7천39명의 선거인 가운데 1만6천210명이 투표했다. 투표율 95.1%다. 관심도와 몰입도 등에서 오는 차이는 있다. 그렇더라도 10%대 투표율은 이해하기 어렵다. 농협이사장선거도 선관위에 위탁해서 치르는 직선제다. 그런데 투표율은 70~80%다. 어느 모로 보나 설득력 없는 투표율이다. 사정이 이런데 변화가 따라올 리 없다. 경기지역 94개 금고 가운데 59개 금고에서 현직 이사장이 당선됐다. 재선율 62%다. 인천은 49개 가운데 34개 금고의 현직 이사장이 당선됐다. 재선율 69%다. 재선율만으로 변화를 가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동적이지 못했다는 방증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기대와 우려 속에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였다. 우려와 기대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려가 현실화됐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했다. 선거 공영의 당위성은 여전하다. 드러난 문제를 잘 살피자. 중지를 모으고 보완책을 찾자. 그러면 좀 더 좋아진 다음 선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지대] 저출산 고령화 걱정하는 중국

예상했던 기댓값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중국의 연중 가장 큰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가 그랬다. 중국 헌법상 최고기관은 두 곳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다. 매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 두 최고기관의 회의가 열린다. 올해 양회는 반환점을 돈 시진핑 3기 체제에서 세 번째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눈여겨볼 쟁점이 명쾌하게 정리됐다.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 얘기다. 경제성장률은 전인대 개막일인 5일 오전 리창 국무원 총리의 업무보고를 통해 공개됐다. 중국이 올해 양회에서 제시한 경제성장률 목표는 ‘5% 안팎’이다.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 목표도 나왔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3%를 밑도는 2%로 제시됐다. 20년 만에 가장 낮다. 중국이 수요 둔화를 인정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재정적자율 목표도 제시됐다. 역대 최고인 국내총생산(GDP)의 4%다. 적자 규모는 5조6천600억위안(약 1천122조원)이다. 한 해 만에 1조6천억위안(약 320조원) 늘었다. 한층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실시해 지출 강도를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실업률 목표는 5.5%다. 지난해와 같다. 신규 고용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천200만명으로 잡았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도 제시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육아수당 지급과 기초양로금(연금) 인상 등을 시행키로 결정됐다. 인구절벽 위기 해결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주목된다. 리 총리는 “다층적 사회보장 시스템을 완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관련 농촌 거주자 및 비근로 도시 거주자를 위한 기초연금의 월 최저기준을 20위안(약 4천원) 올리고 퇴직자의 기본연금 기준선도 적절히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건 중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출산과 고령화를 우려한다는 점이다. 어디 중국뿐이겠는가.

[세상읽기] 인공지능에서 다루는 두 부류의 위험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지금까지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었던 영역을 눈에 띄게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활용 영역과 문맥에 따라 독특한 위험이 다르게 수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언어 모델(LLM) 기반의 인공지능을 금융기관 고객상담용으로 활용할 경우 딱딱하고 제한된 규칙 기반의 과거 상담 시스템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고객 응대가 가능해진다. 반면 근거 없는 답변을 생성하는 할루시네이션 현상이 발생할 경우 고객은 금융기관이 전혀 제공하지 않는 가상의 놀라운 서비스를 듣고 이를 녹취할 수도 있다. 이는 민원 혹은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미 미국 항공사에서 발생한 실제 사례가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활용하는 영역과 문맥에 따라 위험이 서로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에 따른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이 존재한다. 이용자의 선호도를 파악한 인공지능의 추천으로 일련의 콘텐츠들이 자동 배정될 경우 이를 시청하는 이용자는 심각한 확증 편향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특정 영역 또는 특정 문맥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어떤 영향을 일으킬지 사전에 평가한 후 그 영향력이 매우 크고 연계된 위험 역시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인공지능기본법(제2조 4항, 제33∼35조)에 명시된 ‘고영향 인공지능’과 관련된 위험이 바로 이 첫 번째 부류에 해당한다. 챗GPT 같은 최신의 대규모 언어 모델은 이론상 인류가 지금까지 이뤄 놓은 지식을 최대한 수집한 후 이를 학습해 콘텐츠 생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엄청난 학습 데이터 속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어떤 학습 데이터는 현실 세계에서 접근이 자유롭지 않은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성인물 데이터에 미성년자는 접근할 수 없다. 화학, 바이오, 방사선, 원자핵, 폭발물 같은 대량살상무기 제조 기술에 대한 접근 역시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에 따라 매우 제한적이다. 이 경우 첨단 인공지능 자체에 내재된 위험을 미리 파악해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이용자들에게 투명하게 공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일반 인공지능으로의 발전을 앞두고 비상정지가 필요할 정도의 과도한 자율성과 자기 복제의 위험도 추가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나라 인공지능기본법에 명시된 ‘학습에 사용된 누적연산량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인 인공지능’에서 다루는 위험이 바로 이 두 번째 부류에 해당한다. 인공지능기본법 제12조에는 인공지능의 위험과 관련된 수행기관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하고 인공지능사회의 신뢰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상태, 즉 ‘인공지능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업무를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인공지능안전연구소를 운영한다.” 현재 한국의 인공지능안전연구소(Korea AISI)는 특정한 영역과 문맥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의 위험은 물론이고 첨단 인공지능 자체가 가지는 능력 속에 숨겨진 위험을 찾아내 분석·평가하며 이를 완화하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의정단상] 진보와 보수보다 국민이 먼저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민주당이 진보냐, 보수냐를 두고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불거졌고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념 논쟁은 분열과 대결의 언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념은 줄곧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 돼 왔다.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진영은 진보좌파로, 반대편에 서 있던 진영은 보수우파로 규정됐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 구도가 지속되면서 오랜 세월 대립과 반목이 반복됐다. 지금 다시 이러한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이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두고 논의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이를 진보와 보수 이분법 속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는 민주당이 걸어온 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언제나 현실을 고려한 실용적인 선택을 해왔다. 이념 논쟁에 앞서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당과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시장경제를 적극 수용했다. 당시 정책기조를 보면 김대중 정부는 금융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경제위기라는 현실 속에서 진보라는 이유로 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체결했다. 한미 FTA 추진은 시장 개방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의 일환이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고 이러한 행보가 보수적인 정책으로 비친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새누리당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이었을 뿐 민주당 자체가 진보 이념을 앞세우는 정당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이번 발언과 인식이 다르지 않다. 필자는 1988년 평민당에 입당해 민주당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그러나 민주당 강령에서 진보 혹은 보수라는 이념을 명시적으로 내세운 적은 없다. 민주당은 언제나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지향성을 유지해 왔다. 특히 이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현실적 정책을 고민해 온 것이 민주당의 역사다. 이념 논쟁에 빠지면 현실을 놓친다. 진보와 보수보다 국민이 먼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아니라 실용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삶이 나아지는 것이지 특정 이념을 따르는 정치가 아니다. 경제성장, 민생안정, 사회안전망 강화 등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 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서 대한민국은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의 불안정 속에서 가계 부담은 커지고 있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이념 논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유능한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정당 발언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까지 포용하는 민주당이 돼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이 진보냐, 보수냐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유능한 정당이 되기 위해 민주당은 이념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기고]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3월이면 기억해야 할 날이 있다. 바로 ‘3·8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당시 노동자들은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후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정하고 1977년 3월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부터 공식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했으며 2018년 2월20일 여성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하는 ‘양성평등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2018년 3월8일이 법정기념일인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됐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자 한다. 여성들은 차별과 사회의 억압에 맞서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은 교육, 투표, 직업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해 왔고 그 효시는 1898년 9월1일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 여권통문으로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 정치참여권, 경제활동참여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로부터 127년이 지난 인천 여성의 현실은 어떠할까. 통계청(2024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인천시 경제활동참가율은 여성 57.1%, 남성 74.9%로 여전히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 많은 권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리천장, 임금 격차 등 다양한 문제가 여성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성들은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여전히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차별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며 사회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인천시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성평등한 사회 구현을 목표로 ‘제2차 인천양성평등정책 종합계획’을 수립해 일·생활 균형과 돌봄안전망 구축, 여성 폭력 근절과 성인지 역량 강화 등 양성평등 의식 확산 및 정책 기반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편견을 없애고 모든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사회구성원이 함께 지지하고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은 단순히 여성을 위한 날이 아닌 모두를 위한 날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책임이다. 2025년 세계 여성의 날 주제인 ‘더 빠르게 행동하라(#AccelerateAction)’와 같이 모든 시민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 함께 만들어 가는 양성 평등한 인천시 실현을 앞당겨야겠다.

[경기만평] 집안꼴이 이러니...

[사설] 유엔사는 대성동 주민 소음 측정을 막지 마라

대성동마을 주민의 생존권이 안보를 위협하는가. 유엔사의 지배권이 우리 국민의 생존권에 우선하는가. 파주 대성동마을 주민들이 다시 한번 분단의 현실과 마주했다. 귀신소리, 짐승 울음소리에 시달려 온 게 벌써 8개월째다. 지난해 7월부터 북한 당국이 노골적으로 송출해 온 대남방송이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수면 부족 등의 질병까지 발생하고 있다. 때마침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6월부터 시행될 개정 민방위기본법이다. 같은 유형의 대남방송이 휴전선 곳곳에서 이어진다. 북한과 불과 400m 떨어진 대성동의 피해가 그중 심각하다. 이를 구제하기 위해 파주시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 시작이자 핵심이 대성동마을에 대한 소음 측정이다. 대성동마을은 비무장지대로 유엔사 측의 관리를 받는 특수 지역이다. 이번 소음 측정 행위 일체도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엔사 측의 불허 통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파주시의 관련 업무 추진이 중단됐다. 시는 “불승인 사유가 ‘안보상 이유’라는 것밖에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주시가 운영하던 간이 소음 측정도 중단됐다. 유엔사가 장단면 행정복지센터의 간이 소음 측정 작업을 중지시켰기 때문이다. 시가 지난해 7월부터 운영해 오던 시설이다. 이로써 대성동마을 주민을 위한 소음 피해 관련 작업은 모두 중단됐다. 남아 있는 방법은 한국군 JSA부대를 통해 간접 측정하는 방식이다. 주민들은 이런 간접 측정 방식에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대성동 마을의 법률적 특수성은 있다. 한국휴전협정 제1조 10항의 규제를 받는다.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의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권까지 제한받는 것은 아니잖나. ‘세제’ 등 특권 부여나 ‘거주이전 자유’ 등 제한은 모두 한국 법령에 근거하고 있다. 소음 피해는 지극히 생존권과 관련된 영역이다. 유엔사도 당연히 협조해야 할 사항이다. 파주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때마침 비슷한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했던 전례도 있다. 2020년 추진됐던 이른바 ‘지적(토지위치) 복구 프로젝트’다. 1953년 정전협정 이래 판문점 일대는 미등록 토지로 남아 있었다. 이걸 풀어내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라는 주소를 새로 부여하게 만들었다. 이번 대성동마을 소음 측정 문제도 같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위협받을 안보를 우리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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