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DJ 이숙영]"아픔을 서로 안아주는 '숙제'아닌 '축제'의 해 함께 만들어요"

겨울비가 내리는 금요일 저녁, 골드원피스에 골드스팽클가방을 든 긴 생머리의 여인이 카페로 걸어 들어온다. 그녀의 손엔 마법천자문 캐릭터가 그려진 녹슨 노란우산이 들려있다. 반전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반짝이는 금빛 물결인 이 여인의 정체는 뭘까. 27년째 아침 라디오 DJ로 활동 중인 방송인 이숙영씨다. KBS 입사 직후 10년 동안 FM 대행진을 진행했고 1994년 프리랜서를 선언 후 1996년 SBS 파워 FM으로 옮겨서도 그녀는 아침방송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중년이 됐다. 허나 그녀는 중년이길, 아줌마이길 철저하게 거부한다. 아직도 10대의 호기심으로, 20대의 정열로 하루 하루를 축제처럼 살고 있다. 파워넘치는 그녀에게 전수받은 2013년 공존기(共存氣)를 공개한다. -와! 오늘 드레스코드가 골드네요. 특별한 날인가 봐요. 사실은 인터뷰 끝나고 오랜만에 편한 선ㆍ후배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어요.(하하) 비싼 것은 못 사도 평소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옷 사는 거 좋아해요. 벌어서 옷에 투자 많이 해요. -오늘처럼 늦은 저녁 약속이 있으면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힘들지 않으세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요. 조간신문 보고 아침 먹고, 6시에 방송국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준비하죠. 워낙 잠이 없는 체질이예요.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자나 봐요. 낮잠도 안 자는데 별로 지치는 법이 없어요. 체력 하나는 겁나 좋죠.(하하) 요즘도 주1회 살사댄스, 주2회 줌바댄스로 체력 단련하고 있어요. -아침형 인간이네요. 27년째 남보다 이른 아침을 맞는다는 것, 힘들 법도 한데요. 초등학교 때도 새벽 3시에 일어나 공부했을 정도로 잠이 없는 편이니 아침 방송 DJ로는 딱 맞는 체질인 셈이죠.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마음 속으로 그럽니다. 오늘도 축제가 시작됐구나. 행복의 기차를 타보자. 마음 먹기 따라서 축제가 될 수도 있고, 숙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 새벽에 아침을 챙겨 먹을 정도면 굉장합니다. 아침은 꼭 먹어요. 홍삼, 야채쥬스, 오메가3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죠. 많이 먹는 것은 아닌데 몸에 좋은 것은 많이 챙겨 먹어요. 섭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아프면 좋은 목소리도 안나오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氣)를 줄 수 없잖아요. 특히 감기 걸리면 안 되니 각종 비타민은 꼭 챙겨 먹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방송계에서 아침 라디오 방송을 27년째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27년을 청취자들과 공존할 수 있었나요. 다행이 제 목소리가 아침에 잘 맞고 활기차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활기차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자세에서 비롯되는데, 죽음을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삶이 치열해 질 수 있어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 미워할 것도 없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오늘 죽고 내일 아침 부활한다는 신념으로 살다보니 어느새 27년이네요. -장수 DJ이지만 봄ㆍ가을 개편 때마다 마음 고생좀 할 것 같은데. 불안하죠. 오래되다 보니 젊은 PD들 입장에서 내가 좀 어렵기도 하고 클레임을 걸 때도 있어요. 전체회의에서 너무 노후된 거 아니냐, 새로운 사람이 필요할 때 아니냐 그런 의견들이 나오기도 하죠. 그래서 항상 낙하산을 준비하고 낙법을 준비하고 있어요.(하하) 나는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항상 양지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낙법이라면. 이숙영도 사람인데 왜 저라고 불안하고 우울할 때가 없겠어요. 저 스스로 에너지가 없으면 청취자들은 예민하게 다 알아채요. 늘 버티자, 극복하자, 견디자, 나는 할 수 있다 등 자기 최면을 걸죠. 하루에 임하는 자세가 곧 마음 수련입니다. -항상 낙법을 준비하곤 있지만 SBS의 간판, 이숙영의 파워FM 20년 대기록이 얼마 안 남았다. 1996년 SBS 개국 때부터 시작했으니 3년 남았네요. 이왕이면 20년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 프로를 20년 동안 진행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죠. 그걸 바라고 있어요. -만약에 이숙영씨, 이번 프로그램 개편됩니다. 그만 하시죠. 그런다면, 어떨 것 같아요. 열심히 하되 집착은 안합니다. 프리 선언 후 독립군이 됐고 내가 노력한 만큼 평가는 받지만 지금도 언제 짤릴지 모르잖아요. 보너스도 없고 퇴직금도 없고. 개편철마다 백수로 돌아갈 수 있는 신분이기에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있죠. 그럴 때마다 욕망을 구조조정하자 마음 먹어요. 승용차 탈 형편이 안 되면 전철타고, 비싼 헬스클럽 못 가면 김밥 사들고 등산 가서 즐기는 거죠. -욕망을 구조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가요. 아니요. 허무주의도 있도 대책없이 밝은 성격은 아니었어요. 20대까지는 경쟁에 굉장히 민감했어요. 초딩 때부터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간접경험을 통해 잘 살아겠다. 좋은 대학 가야겠구나 생각했고 1등 놓치면 무척 힘들어 하는 스타일이었죠. 노력과 극복의 결과인 듯 해요.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늙는 것 밖에 없더라구요. -경쟁 프로가 있다면. 두시 탈출 컬투쇼 잘 듣고 있어요. 컬투의 타고난 예능감이 부럽기도 해요. 워낙 여성성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예능이나 방송을 하는데 방해가 되더라구요. 소녀 같은 감성이 많고 여린 성격이라 잘 망가져지지 않더라구요. -라디오에선 톡톡 튀는 언변에, 장난꾸러 같은 면모도 많이 보이던데. 장난꾸러 같은 면은 있지만 아줌마적인 기질은 전혀 없어요.(하하) 정신 속에는 싱글의 정서가 아직 많아요. 그래서 아줌마들과는 대화가 잘 안 통해요. 정말 진부하지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독서와 영화보기예요. -두 딸의 엄마인데 왜 아줌마를 거부하는 거죠. 공주병인가요. 딸들은 엄마같은 엄마를 원하지만 저는 친구같은 엄마에 속해요. 항상 머물지 않는 젊은 제 영혼이 방송에 티가 나는 것 같아요. 젊음은 물리적인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하죠. 나의 방부제는 호기심과 열정이고. 40~50대의 원너비가 되고 싶어요. -중년에도 호기심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건 솔직히 경제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닌가요. 부모님께서 두 분 다 의사였기 때문에 등록금 걱정은 안했어요. 경기여고, 이화여대 졸업하고 아나운서 시험도 첫 도전에 합격했죠. 실패나 좌절의 경험이 없어서 강연하러 가면 오히려 마이너스에요. 누구한테 감동을 줄 수 없으니 말이죠. 거꾸로 스토리 있는 인생이 부럽기도 해요. 요즘은 마이너스 스펙이 중요한 시대면서 마이너스 스펙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관건이고 곧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20대는 상처도 진주죠. -2013년 계획과 경기도민들에게 필살기 하나 전수해주세요. 여름쯤, 이성 간에 끌리는 대화법(가제)에 관련된 책을 출간할 예정이에요. 오늘이 내가 남아있는 날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이 내 인생의 절정이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어요.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깐요. 죽으라는 법은 없어요.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의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이 좋아해요. 세끼밥 밥 먹는 것이고 1원 한 푼 못 갖고 가는 것인데 건강을 키우면서 때를 노려야겠죠. 무엇보다 2013년은 서로 도와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해가 되어야 해요. 방법은 간단해요. 마이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서로 안아주면 됩니다. 우리 모두 숙제가 아닌 축제같은 2013년을 위해 화이팅해요.(하하)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11년 장수 뱀띠 봉사동호회 '마르사]'봉사중독' 65년생 뱀띠 친구들…'사랑 바이러스' 퍼뜨려요

2013년 계사년(癸巳年) 해가 밝았다. 용에 짓눌려 빛을 보지 못하던 뱀이 드디어 머리를 내밀고 나올 수 있는 해가 돌아왔다. 흔히 뱀띠해에 태어난 이들이 겉은 차갑지만 내면은 누구보다도 따뜻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재미로 띠를 분석해놓은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마치 이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뱀 마냥 우글우글 몰려다니며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마르지 않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1965년 뱀띠 봉사동호회 마르사가 그 주인공. 11년 역사를 가진 이 동호회가 전한 사랑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그들의 사랑이 닿는 그곳 안녕, 안녕 유치원생 인사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2012년 마지막 봉사가 있던 지난해 12월 16일 시흥 엘림요양원에서 본 마르사 회원들의 모습이었다. 1965년 올해 47세인 이들이 나누는 인사라고 생각하기에는 오글거림(?)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좋은 일을 하며 지내다보니 이 생활에 젖어 처음 온 사람들도 어릴 적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같은 마음, 같은 모습으로 섞여간다는 게 마르사 회원들의 설명이다. 일찍 온 회원들끼리 둘러앉아 어제 봉사는 어땠고, 지난주는 어땠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자 하늘색 반팔티에 마르사라고 쓰여있는 티를 똑같이 갈아입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다. 누가 목욕시키고, 누가 청소하고 이런 말도 없다. 늘 해오던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32명의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엘림요양원 봉사는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남자 회원들은 청소기와 걸레를 손에 들고 구석구석을 열심히 청소했고. 여자 회원들은 각기 방으로 흩어져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씻기가 어려운 할머니의 손과 발을 자처하고 나섰다. 한쪽 방에선 대화의 장이 열렸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복희 회원이 손톱을 깎아주며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은 뭘 했는지, 나는 안보고 싶었느냐며 말동무를 해주니 적적했던 할머니들이 쉴 새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던 것. 물론 노환 때문에 귀도 잘 안 들리고, 때로는 소통도 자유롭지 않지만 손을 부여잡은 봉사자와 할머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 있었다. 거실로 눈을 돌려보니 유명환 회원이 한 할머니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 왜 오늘은 나 사탕 안 줘? 오늘은 없어. 다음에 두 개 줄게. 알고 보니 이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유씨란다. 올 때마다 알사탕 하나씩을 꼭 챙겨주는 그런 사이라고. 치매가 오고, 지병이 있어 이곳에 입소했지만 꾸준히 자신들을 만나러 와주는 봉사자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복희씨는 제가 허리 수술을 해서 목욕을 시켜 드리지 못해 손ㆍ발톱 깎기, 매니큐어 발라주기를 하고 있다며 옆에서 다른 어머니들 손톱 깎고 있으니까 옆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살며시 손을 뻗더라.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윤정숙 엘림요양원장은 이분들은 정말 봉사를 내 일처럼 열심히 해주신다. 동갑이라는 결집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이분들이 왔다가 가시면 힘이 된다고 전했다. ■마르사가 궁금하다 마르사 회원들은 시흥뿐만 아니라 수원 2곳, 인천, 서울, 일산에서도 매주 토요일, 일요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2년 시작돼 11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것. 1965년 뱀띠 모임 카페에서 활동하다 금전 봉사보다 노력 봉사로 가자는 뜻을 한 데 모아 소모임으로 봉사방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시작 당시 최용태 회장을 중심으로 미인가 시설 리스트를 뽑아 시설을 둘러보고, 주위 평도 들어보면서 신중하게 수원 2곳, 인천, 서울, 일산, 시흥 등 총 6개 기관과 인연을 맺었다. 1~2년이 지났을 무렵 우여곡절이 찾아왔다. 봉사가 끝난 뒤 함께 식사를 하는 사진들을 카페에서 보고 사회에서 만난 남녀들이 봉사를 핑계로 먹고 논다는 식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눈초리 때문에 회원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최 회장은 어르신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찾지 않는 기관을 자녀와 함께 가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그때 인터넷이 막 활성화될 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이 많이 빠졌지만 이미 시작한 일인데 포기할 순 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딛고 나니 지금은 50여명의 회원들이 마르사라는 이름을 걸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는 결실을 얻게 됐다. 물론 일정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 중에는 제빵을 하는 친구가 매번 빵을, 묵 공장을 하는 회원은 어르신들이 먹을 묵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봉사에 참여한다. 매년 여름에는 마르사 회원이 다 함께 힘을 모아 일일카페라는 큰 행사를 치르고, 수익금으로 가을엔 송편을 빚고, 겨울엔 김장을 담가 필요한 기관에 전달한다. 최용태 회장은 처음 마르사 활동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에게 카페에 봉사 후기를 쓰라고 했었다. 다녀와서 남긴 글들을 보며 참여하지 않은 친구들도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때부터 참가 인원이 늘었고, 한번 참가한 친구들은 거의 안 빠진다. 대부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르사 10년, 뱀띠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2월 마르사 10주년을 맞아 동창회를 열었다. 기간에 상관없이 봉사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르사의 10년을 함께 기억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10년을 만드는 자리였다. 그들의 10년에는 웃고 우는 일도 많았다.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혹은 매일 그 자리에 계시던 어르신이 어느 날 집에 가셨다(돌아가셨다는 표현이라고 함)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때 이들의 마음은 쓰라렸다. 다만 함께 하는 뱀띠 친구들이 있기에 그들은 다시 웃을 수 있고 또 다른 어르신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마르사가 수도권 지역에서 펼치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젠 65년 뱀띠 카페에서 활동 중인 타지역 회원들이 마르사 지역회를 구성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장수 봉사동호회가 빛나는 순간이다. 노성민 전년도 회장은 뱀띠 친구, 봉사라는 좋은 마음을 공통으로 갖고 있어서 현재까지 유지를 잘해왔다며 올해는 좀 더 체계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사랑을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뱀은 높은 나무든, 거친 바닥이든, 물 속이든 어디든 부드럽게 지나간다. 뱀띠 해인 올 한해 사랑의 피가 흐르는 이들 마르사의 봉사가 굴곡 없이 순조롭게 멀리멀리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김진홍 두레마을 숲속 창의력학교 목사]“분열된 마음 통합ㆍ경제위기 극복…청년들 신명나게 해야”

언덕위의 교회동두천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뛴 것은 조감도였다. 청소년을 위한 두레마을 숲속 창의적 학교 6만6천㎡를 세울 예정이라고 김 목사는 설명했다. 현재 교회가 위치한 13만2천㎡까지 합하면 총 19만8천㎡ 규모다. 두레마을 숲속 창의적 학교는 사실상 인터넷중독에 빠진 아이들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치유센터다. 8천200여㎡ 규모의 청소년 운동센터도 들어서고 내년 5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 시대의 아프고 멍든 청년들과 함께 김 목사는 공존하고 있었다. Q. 창의적 학교에 대해 설명해달라. A. 한국 교인들은 수행(수련)이 부족하다. 작년에 내가 70세로 퇴직한 후에 교인들이 수련도 하고, 하루종일 수련만 하기 힘드니까 국가사회에 봉사하자고 생각해서 청소년을 위해 땅을 샀다. 청소년 인터넷 중독자가 전국 200만이 된다. 중증인 애들도 있다. 지난 봄부터 해왔는데 효과가 있다. 사람자연놀이 3박자를 통해 아이들이 회복이 되더라. 상주를 하거나 2박3일5박6일 프로그램이 있는데 참 좋다. 중고생은 (치유가 끝나면) 학교로 복귀한다. 대학생도 세명 와있는데 좋아졌다. 6개월 정도 있으면 정상이 된다. Q. 특별히 창의적 학교를 하게 된 동기는. A. 요즘 수명이 늘어 노령화 시대다. 그러나 교인들이나 사회에 부담되는 노년은 안된다. 노인들의 인력이 생산적인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시범보이자고 생각했다. 내가 올해 71살이다. 80까지 10년간 기독교인들의 수련수행, 청소년 훈련치유를 통해 노인들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선택을 잘 한 것 같다. 참 보람되고 행복하다. 처음에 주위에서 실버타운 하자고 했는데 노인들만 모여서 뭐하나. 망가지고 병든 청소년 치유하고 사회복귀시키는 운동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두레마을 숲속 창의력 학교가 정식이름이다. Q.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라를 정치인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A. 이명박 정권 출범시 뉴라이트를 3년했다. 여야 정치인 보수 진보 골고루 만났는데 정치인들은 애국심이 부족하다. 옛날 안창호 같은 애국심이 부족하다. 여당 야당이나 노동당은 말한 것도 없고, 정치인에게 나라 맡겨서는 나라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민운동 등 나라 각 분야에 리더십이 키워져한다고 생각했다. Q. 뉴라이트를 하게 된 동기는. A. 나는 운동권 출신이다. 6.3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대구에서 주동했다. 그래서 군대를 못갔다. 노무현 정권 때 운동권중 종북좌파가 너무 기존기성 정치권에 많이 들어왔다. 보수 진보가 상생견제 극복해야지 종북좌파나 극단적인 극우는 안된다. 보수에서는 극우를 견제하고, 진보에서는 종북친북 견제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 요직에 운동권 NL그룹 민족해방전선(주사파) 너무 왕성하고 활개치는 것 보고 나라가 너무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3년간 군에 못갔으니 나라를 위해 기여할 필요 있다고 생각해서 3년간 뉴라이트 운동을 했다. 3년을 마치고 후임을 권영묵 노동운동 출신에 맡겼는데 과로로 죽고 뉴라이트 운동은 흐지부지 됐다. 하지만 뉴라이트 정신은 보편화돼 보람 있었다. 그때 정치가들을 고루 만났다. 문재인박근혜 등 정치인을 고루고루 만났다. 당시에서 좀 걱정스러웠다. (정치인) 개인 문제가 아니고, 정치계 풍토가 안좋더라. Q. 이명박 정권 5년을 평가하면, A. 70점을 주고 싶다. 공7 과3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가지에서 크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국위선양을 많이 했다. 둘째는 세계적인 경제불황에 (국내) 경제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선방했다. 셋째는 4대강 개발로, 치수사업 꼭 해야할 사업이다. 시간이 갈수록 평가받을 것이라고 본다. 넷째는 어쨌든 정권재창출했다. 다섯째는 측근비리 있었지만 다른 정권에 비해 비교적 투명했다. 그것은 공이다. 과는 인사문제 치우친 것 , 국민소통 제대로 못한 것, 정치를 너무 활성화하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만 정치를 했지, 정치권 전체를 이끌어 가줬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5년 정권재창출 돼서 다행이다. Q. 박근혜 시대가 열렸다. 박 당선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점은. A. (박 당선인이) 세가지를 제시했는데 합당한 것 같다. 첫째 국민통합 생각하더라, 한계가 있겠지만 MB때 못했던 것이다. 또 인사 탕평책을 쓰겠라고 얘기했다. 이것도 MB때 못했던 것으로, 한쪽에 치우쳤었다. 셋째는 경제활성화로, 서민경제 많이 챙기겠다고 했다. 5년전에 박근혜를 만났을 때하고 (이번) 선거기간에 한 번 만났는데, 5년 만에 분위기와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 좋은 방향으로, 그래서 안심했다. 동양적인 표현으로 내공이 쌓였다. 생각보다 야무지고 좋아지는 사람이구나 하고 밝게 보고 있다. Q. 이것만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A. 보수세력, 노인들 기반으로 당선됐다. 56공 인사들을 주위에 포진안시켰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훌륭했지만 아버지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지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으니까 주위에 너무 56공 유신 사람 가까이 덜했으면 좋겠다. 청년들이 신명나게 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정치 해줬으면 좋겠다. Q. 김문수 경기지사와는 막연한 사이인데. A. 김 지사는 높이 평가한다. (대선)후보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본인이 준비가 안되고 여론이 안돼 차선으로 박근혜가 됐는데 잘 됐다. 김 지사가 국가경영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운동권 출신이면서 보수가 가지는 헌법정신, 개혁정신을 갖고 있다. 뉴라이트 운동의 특색은 세가지인데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개혁성, 투명성(도덕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역사의식도 분명하고, 북한도 잘 알고, 북한에 안 말려들면서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스타일이 김문수다. 통일시대에 적합하다고 본다. MB는 북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했지만 너무 부정적인 역할 하면서 유연성 잃지 않았나 생각한다. Q. 김문수 경기지사가 도지사 그만한 뒤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A. 국회에 들어가든지 해서 다음에 대통령 할 수 있는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 국민적 지지가 약했다. 지방에서 김 지사를 모른다. 인지도가 적고, 본인 준비가 덜됐고, 이번에는 국민에게 알리려고 나간거지, 될려고 나간 것은 아니지 않느냐. 때가 돼야 한다. Q. 김문수 경기지사의 도정을 평가하면, A. 도정은 잘 모른다.(웃음) 열심히 해왔지 않나.하지만 택시 운전하고 몸으로만 뛰지 말고 성찰하고 내공을 길러서 몸으로 뛰는 대신에 일군들 잘 활용하는 내공을 키웠으면 좋겠다. 토요일 마다 택시운전 하는 것은 발상은 좋은데 지도자가 몸으로 때우는 것 아니지 않나. 한 두달 딱 하고 다른데 활용하면 어떤가. Q. 김문수 경기지사의 도지사 3선 도전에 대한 의견은. A. 도지사 두 번 하면 적합하지 않을까?. 다음 단계 준비해야지 도지사만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 본인 생각은 안물어 봤는데 그럴 것 같은데... 본인 국회로 가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Q. 야당이 실패한 원인은. A. 수권정당으로 준비가 덜돼 있었고 민심 잘 못 읽었고 노장년을 약오르게 하지 않았나, 전략적 실패다. 될 수 있는 선거였는데 실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Q. 박 당선인 인수위 인사에 대해서는. A. 야무지게 잘 한 것 같다. MB 정권 때는 인수위 때부터 실패했다. 엇박자놨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고소영강부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수위 때부터 인사 실패했다고 본다. 박근혜는 과욕 부리지 않고 건실하게 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 야무지지 않나. Q. 안철수의 정치 재개는. A. 그 사람은 정치가의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 체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잠깐 외도한 것 아닌가. 정치가라는 느낌도 안들고, 정치 다시하면 실패로 끝날 것 같다. 자기 할일 따로 있는 사람이 정치에 기웃거리는 것은 국가에도 도움이 안되고 본인 팔자에도 안맞는다고 본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Q. 본보의 신년호 주제가 공존이다, 우리 사회가 공존하려면. A. 치열한 선거를 통해 국가여론이 양분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밀어준 사람 만의 대통령(당선인)이 아니지 않은가. 표 안찍은 사람이 청년들이다. 청년은 미래 우리나라 주인들이다. 노장청 넘어서서 대화하는 분위기, 박근혜가 당선된 뒤 야당를 정치 파트너로 생각하겠다고 한 것은 좋은 표현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그런 태도로 임하고 소통하는 태도로 임하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말을 솔직하게 하는 스타일이다.(웃음) 대담 = 강해인부국장 정리 = 김재민기자 jmkim@kyeonggi.com 사진 = 전형민부장

“건강한 간식으로 즐거운 방학 보내세요”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방학 시즌이 돌아왔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방학에는 라면, 햄버거, 피자 등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을 접할 기회도 많아진다. 방학 동안 학교급식까지 중단되면서 성장기 어린이들은 영양분이 부족해 질 수도 있는 기간이다. 방학 동안 어린이들이 균형 잡힌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올바른 간식 선택 요령을 발표했다. 생활 리듬이 달라지는 방학 기간에는 부족해질 수 있는 영양소 보충을 위해 칼슘 및 무기질이 풍부한 우유ㆍ유제품과 과일ㆍ채소류 섭취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유는 1일 2컵(400㎖)을 마시면 되고, 우유 소화가 힘든 어린이의 경우에는 치즈 2장(40g), 우유를 원재료로 한 아이스크림 1컵(200g), 떠먹는 요구르트 1컵(200g)을 먹어주면 부족한 칼슘 섭취에 도움이 된다. 과일류는 사과 중간 크기 1/2개, 중간크기 귤 1개, 포도 15알 정도를 먹으면 된다.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경우에는 세트 메뉴보다는 단품 메뉴를 선택하고, 음료는 탄산음료 대신 우유ㆍ주스 등을 마시는 게 좋다. 디저트 역시 기름진 감자튀김을 먹기보다 샐러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열량 섭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어린이 간식을 마트 등에서 구매할 때에는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마크가 표시된 제품인지 확인하고 구매해야 한다.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마크는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이 아닌 영양을 고루 갖춘 식품(24개사, 70개 제품)으로 식약청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 어린이를 현혹시키는 미끼 상품, 캐릭터 상품 등에 주의하고 반드시 유통기한 등 표시사항을 꼼꼼히 확인해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구매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식약청 관계자는 어린이 방학 맞이 올바른 간식 선택 요령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시ㆍ도교육청 등 관계 기관 협조를 통해 교육ㆍ홍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foodnar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법률플러스]나도 모르는 사이에 판결이 선고됐다니

A씨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그동안 법원에서 어떠한 서류도 받지 못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상대방에게 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알고 보니 A씨는 개인사정상 주민등록상 주소에 살지 않았는데, 상대방은 A씨의 주소를 A씨가 거주하지 않는 주소로 기재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A씨에게 소송서류를 등기우편으로 보냈으나, A씨가 받지를 않자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를 통해 소송서류를 A씨가 받은 것으로 취급하고 소송이 진행돼 결국 판결까지 내려졌다는 것이다. A씨와 같이 주민등록상 주소에 사실상 거주하지 않고, 거주하는 사람과 어떠한 연락방법을 마련해 두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대한 소송이 종결될 수도 있다. 반대로 A씨의 상대방 입장에서는 A씨를 상대로 소송해야 하는데, A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에 소송서류를 보냈으나 수취인불명 등의 사유로 서류가 송달되지 않고, A씨에게 서류를 보낼 다른 연락처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 소송을 진행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A씨의 상대방을 위하여 마련한 제도가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다. 원래 재판은 상대방에게 소송제기사실을 알리고 이에 대한 방어기회를 주기 위해 소송상 서류가 법정 방식에 따라 상대방에게 송달돼야만 진행된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송달해야 하는 소송서류가 폐문부재, 수취인 부재, 수취인불명 등으로 반송돼, 법원을 통해 동사무소 등에서 상대방의 주민등록상 주소를 알아내 송달해 보거나 야간이나 휴일에도 송달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송달되지 않을 때에는 공시송달을 신청하면 된다. 공시송달은 법원에서 송달할 서류를 보관하고 그 사유를 법원게시판, 관보, 공보 등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상대방이 이처럼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를 이용했기 때문에 평소 관보나 공보를 확인하기 어려운 A씨가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선고받을 때까지 수개월 동안 이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A씨의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시송달에 의해 판결이 선고돼 무척 억울하다. 이 경우 A씨는 추완항소라는 것을 제기해 항소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고된 판결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원래 항소는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제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일 A씨가 판결이 선고된 후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알게 된 때에는 바로 그때로부터 2주 이내에 추완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이때 만일 A씨가 2주라는 기간을 놓쳤을 경우에는 뒤늦게 항소를 제기해도 원래의 판결에 대해 다툴 수 없게 되고, 공시송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재심을 진행할 수 있다. 이처럼 주민등록상 주소를 떠나 살게 되는 경우에는 신속히 전입신고를 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의) 031-213-6633.

상조 똑똑히 알고 계약하자!

국내 상조업 시장 성장과 함께 상조업 관련규정이 강화되면서 부실 상조업체들이 속출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30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접수된 상조계약 관련 피해건수는 2008년 234건에서 2011년에는 618건으로 크게 증가했고, 올 11월 말까지 585건이 접수됐다. 상조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상조계약 체결 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상 등록된 회사인지 확인하자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선불식할부거래업자(상조업자)는 자본금 3억원 이상의 상법상 회사,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체결 등 요건을 갖춰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에게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무구조가 튼튼한 회사인지 체크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상조사업자의 중요 표시, 광고 사항으로 총 고객 환급 의무액, 상조관련 자산 등과 관련해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를 받았는지를 계약서와 상품설명서에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정보마당-사업자 정보에서 자산, 부채, 선수금 등을 체크해야 한다. ■회원증서와 영수증은 보관하자 계약 시 계약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서와 회원증서, 영수증을 보관해야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계약해지를 하지 못하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계약해제 시 서면으로 통보하자 서면(내용증명)으로 계약해제를 통보해야 회비 부당인출 피해 및 차후 분쟁 발생 시 증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피해가 해결되지 않을 때 도움을 요청하자 상조사업자의 민원처리 거부로 인해 피해해결이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소비자상담센터(국번없이 1372)로 연락해 피해구제처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2012 문화예술계 결산]한국 문화예술사를 새로 쓰다

2012년 문화예술계에는 의미있는 기록이 탄생했다. 전 세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졌다. 국내 극장가를 찾은 관객수는 사상 처음 1억 명을 돌파했다. 올해는 또 우리의 소리 아리랑이 세계가 보존해야 할 인류무형유산으로 인정받은 해다. 이 기록들의 궤적을 되짚어본다. ■싸이와 강남스타일, 대중음악사를 새로 쓰다 올해 한국 대중음악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싸이(35본명 박재상)가 있다. 그 인기는 폭발적 아니, 폭발 그 자체였다. 올 여름 7월 15일 발표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국내 온라인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이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말춤을 추는 진정 즐길 줄 아는 챔피언 싸이는 언어가 다른 국가에서도 통했다. 유튜브에는 연일 싸이의 말춤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세계 각국의 동영상이 재등장하며 화제를 이어갔다. 그저 K팝 한류의 한 줄기로 여겨졌던 세계인의 관심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무섭게 확산, 마침내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쓰는 기록을 탄생시켰다. 강남스타일은 미국 등 30여 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 영국 UK 싱글 차트 1위, 미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 등에 이름을 올렸다. 뮤직비디오도 단일 영상 중 처음으로 조회 10억 건을 돌파하며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으로 기록됐다. 현지 마케팅이나 홍보조차 벌이지 않았던 가수 싸이는 뒤늦게 해외 러브콜로 각종 무대에 올랐다. 뉴욕에서 열린 마돈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파리 에펠탑 앞 광장에서 2만여 명과 말춤을 췄다. 오바마 미 대통령 앞에서도 말춤을 췄다. 가수 개인의 성공이 아니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가능성을 입증하며 전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안겼다. 싸이와 강남스타일, 기록 행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MTV 유럽뮤직어워드(EMA)에서 베스트 비디오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서 뉴미디어상, 기네스월드레코드(GWR)로부터 인증서를 각각 받았다. 최근 영국 콜린스 사전은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올해의 단어 중 11월의 단어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발표하기도 했다. 4억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 1억900만 표로 올해의 인물 1위에 등극했다. 싸이가 내년에도 이 같은 신드롬을 이어갈 지, 아니면 또 다른 한국 가수가 바통을 이어받을 지 기분 좋은 상상을 남긴 2012년 문화예술계 뉴스 중 단연 돋보이는 뉴스다. ■도둑들과 광해, 영화사를 새로 쓰다 국내 영화계에도 강남스타일로 발화된 대중음악계 열풍만큼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우선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 주인공이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개봉전부터 화제였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등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감독에 대한 관객의 신뢰 역시 흥행에 한 몫 했다. 7월에 개봉한 도둑들은 개봉 70일만에 1천302만명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로는 1천298만명에 그쳐 1천301만명을 동원했던 괴물을 이기진 못했다. 도둑들의 흥행 열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이병헌 주연의 사극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새로운 강자로 떴다. 이병헌 최초의 사극 출연이면서 1인2역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했다. 여기에 역사와 상상을 버무려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그린 영화는 대선 정국과 맞물려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비록 사극 영화 중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왕의 남자(1천230만)에 조금 못미치는 누적관객수 1천219만여명이 관람했지만, 한국 영화사에 1천만 관객 동원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한 해에 두 편이나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한국 영화사 처음이다. 더욱이 광해 흥행 열기가 사그러지기 전 조용히 등장한 늑대 소년이 650만 관객 몰이에 성공하는 등 400만 관객 동원 영화도 9편이나 됐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68만), 건축학개론(410만), 내 아내의 모든 것(458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1만), 댄싱퀸(409만), 연가시(451만) 등이다. 덕분에 지난 11월20일 올해 한국영화를 관람한 총 관객수는 1억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2006년 한국영화 최다 관객수인 9천7백만9천여명을 넘어선 기록으로, 최근 1억500만명을 돌파하며 연일 기록 경신중이다. 인구 5천만 기준으로 봤을 때, 1인당 평균 2편씩 한국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복한 비명과 함께 동반 성장을 촉구하는 날 선 목소리도 나왔다. 1천만 관객을 동원을 영화 두 편 모두 대기업이 투자배급함으로써 극장 상영관 독점 현상이 빚어졌다는 비판이다. 흥행하면 장기간 상영관을 차지하니 저예산 또는 독립영화는 힘써보지 못하고 밀려나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2013년 한국영화계, 모두가 행복한 기록 경신의 해를 위해 대화가 필요한 때다. ■아리랑, 전통문화사를 새로 쓰다 전 세계가 한국의 아리랑을 인정했다.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열린 제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줄타기, 택견 등 총 15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등재 대상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포함한 후렴구와 가사로 이뤄진 노래군을 지칭한다. 흔히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아리랑과 전라도 진도아리랑, 경상도 밀양아리랑 등을 3대 아리랑으로 꼽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009년 정선 아리랑의 등재를 신청했지만 국가별 심사 할당 건수 제한으로 심사에서 제외됐다. 이어 올해 6월 정선 지역의 아리랑에서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일련의 노래군으로 확대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제대로 들어맞았다. 아리랑이 특정 지역의 일부 전승자가 아닌 전국에서 전 국민의 가락으로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지역별로 독특한 아리랑이 존재하고 즉흥적으로 지어 부를 수 있다는 것,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된 점 등이 등재 확정에 힘을 실었다. 또 전 국민적 열망이 전달됐다는 평이다. 실제로 경기도와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지난 6월 천지진동-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전 국민적 열망이 반영됐다는 평이다. 도문화의전당은 지난 6월 아리랑을 주제로 1천200명의 풍물단, 1천명의 연합합창단, 200여명의 군악대, 도립국악단, 경기도립무용단, 4만5천명의 관객이 참여하는 축제를 열었다. 누구나 아리랑지킴이로 등록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각계 각층 인사가 전하는 아리랑과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총 336억원의 예산을 들여 무형문화재 아리랑 전승 활성화 방안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주요 방안은 △아리랑 국가무형 문화유산 지정 △국립무형유산원(2013년 9월 개관 예정) 내 아리랑 아카이브 구축 △아리랑 관련 전시 및 정기공연 마련 △아리랑 학술조사 및 연구 지원 △지방자치단체 아리랑 축제 지원 △국외 주재 교육원을 활용한 아리랑의 보급 선양 등이다. 이번 아리랑 등재는 중국이 지난해 5월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급하게 추진됐다. 남북 공동으로 등재를 추진하다가 제동이 걸렸다가 우리의 것을 눈 뜨고 빼앗길 상황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달려든 것이다. 등재 확정이나 우리 문화를 지킨 일 모두 기쁘지만, 2013년에는 좀 더 주체적으로 우리 문화를 지킬 머리와 힘이 요구된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문화원에서 놀자]<22>오산문화원 ‘정월대보름 맞이 행사’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1월1일이 중요하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은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가장 큰 첫 보름달이 뜨는 1월15일의 중요성이 그에 못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월 대보름은 일년 농사의 풍년을 소망하고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설에는 집에 못갔더라도 보름에는 꼭 집에 들어가 농사짓기를 준비해야하는, 온 가족의 생존이 달린 명절이다. 하지만 농업인구가 급감하면서 정월대보름의 의미도 퇴색하고 다채로운 세시풍속도 사라졌다. 이러한 가운데 오산문화원이 정월대보름의 전통적 의미를 담은 축제를 마련, 이를 지역 대표 행사로 발전시킬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역사 속 정월대보름 음력 1월15일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세시풍속으로 따지면 설날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날로 꼽힌다. 이날에는 약밥 또는 오곡밥, 묵은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었다. 지금도 오곡밥과 나물, 부럼, 귀밝이술 등은 많은 이들이 정월대보름을 기념해 챙겨 먹는 것들이다. 특이한 것은 설에 개인적인 의례를 행한다면 대보름에는 마을 공동의 의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소망보다 그네들이 함께 머무는 마을 공동체의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시기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예로 풍년을 기원하며 짚을 묶어 기 모양을 만든 후 그 끝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은 것을 매달아 집 곁에 세웠던 볏가리가 있다. 또 짚ㆍ솔잎ㆍ나무 등을 모아 언덕위에 쌓아 달집을 짓고 달이 뜨면 불을 질러 대나무가 타는 소리로 마을의 악귀를 쫓고 다 타서 쓰러질 때 그 방향과 모습으로 흉풍을 점치는 달집태우기, 대보름날 아침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해 다가올 여름 더위를 대비하는 더위팔기도 있다. 노는 것도 많은 사람이 참여해 어울릴 수 있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단순한 유희나 오락이 아니라, 승패를 가르며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는 데 목적이 있다는 특징도 있다. 대보름날 밤에 거행하는 줄다리기, 이에 앞서 펼쳐지는 고싸움놀이, 횃불을 들고 놀다가 빼앗거나 꺼뜨리는 횃불싸움, 부인들이 허리를 숙여 만든 다리 위를 성장한 공주가 양쪽 시녀의 부축을 받아 노래에 맞춰 걸어가는 놋다리밟기 등이다. ■기록 속 오산시의 정월대보름 명절에 펼쳐지는 마을 공동 의례나 놀이 등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과 그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오산의 정월대보름은 어떠했을까. 오산문화원이 발간한 오산의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오산시 금암동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당집산에 올라가 짚수세미를 둘둘 묶어서 달이 뜰 때 각자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비는 달맞이를 했다고 한다. 또 오산시 서동(서녘말)에서는 달맞이를 가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매봉재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특히 서동에서는 정월 14일날 쥐불놀이를 했다. 마을의 서씨네와 유씨네가 서로 마주면서 논두렁을 태웠는데, 이 때 유씨들은 서강아지 쥐불이요라고 하고 서씨는 유강아지 쥐불이요라 외치면서 서로 쥐불놀이 싸움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오래전 오산에 터 잡고 살았던 많은 마을 사람들이 민족 고유의 대명절인 대보름에 어울려 함께 즐기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기록이다. 이 같은 전통적인 정월대보름의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가운데 오산문화원은 이 문화유산으로 지키기 위해 적극 나섰다. ■정월대보름을 현대화시키다 오산문화원은 지난 2005년부터 매년 정월대보름 맞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오산천 둔치에서 진행해오던 것을 논밭을 태우며 농사짓기를 준비하는 전통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논이 있는 오산 운암뜰(시청 앞 교차로~부산동 고속도로 지하차도)로 행사장을 옮겼다. 시 최초로 도로를 통제하고 행사를 진행해 불만을 가진 일부 시민의 반발도 있었지만, 2만여명의 어마어마한 시민이 운집했다. 장소를 변경함에 따라 전통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은 물론, 쥐불놀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깡통을 돌리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발생 가능성이 줄어드는 등 마을 공동체가 어울리는 기존 정월대보름의 의미가 한층 강화됐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풍성하고 쉽게 즐길 수 없는 프로그램 덕이다. 5천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 행사에서는 윷놀이 경연을 비롯해 연만들기, 널뛰기, 제기차기, 굴렁쇠, 투호놀이, 깡통 돌리기, 거리행진 방식으로 진행한 지신밝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특히 윷놀이 경연은 시 6개동에서 초중등부, 청장년부, 여성 및 주부, 어르신 등으로 부문별 경연을 진행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함께하는 자리로 효자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호두와 땅콩과 같은 부럼, 뻥튀기, 엿치기, 떡메치기 등 전통적 먹거리도 제공했다. 오산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전문 상인이 참여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한 몫 했다는 평이다. 지자체의 문화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도 풍성했다. 풍물놀이, 북청사자놀이, 줄타기, 널뛰기, 민요 등 전문가(단체)가 특설무대에 올라 흥겨운 명절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사당놀이 보존회의 권원태 무형문화재 제13호, 국악협회 오산지부, 북청사자놀이 보존회 등이다. 무엇보다 오산문화원이 주관하는 정월대보름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검은 하늘에 휘엉청 밝은 달을 향해 솟아오르는 빨간 불길이 인상적인 달집 태우기다. 오산문화원은 행사장의 논 한가운데에 높이 10m의 대형 달집을 세운다. 이날 행사 중 일반 시민이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달집에 엮어놓은 새끼줄에 가득 묶고 불을 붙인다. 드디어 달집에 불을 붙이면서 시민의 간절한 소원도 함께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것이다. 유종대 사무국장은 전통문화를 찾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유지하는 것이 문화원의 역할이라며 지난해부터 좁은 천변길에서 너른 논밭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프로그램과 참여ㆍ방문 인원이 크게 늘어 풍요를 기원하는 신명나는 축제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은 도시 오산은 더 많은 사람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면서 인근 수원이나 서울 등에서도 현대식 건물만 있어서 이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큰 축제를 경험하기 어려우므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오산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비상하는 에듀 클래스]<20>행복한 미술 프로젝트-위대한 화가와 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김홍도, 피카소, 마네. TV 혹은 학교 미술시간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이들의 정체는 바로 동ㆍ서양 미술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화가들이다. 많은 작품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발자취를 만나려면 전시를 일일이 찾아다니거나 도서관, 인터넷에서 수없이 많은 검색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매주 다른 화가들을 만나면서 그와 닮은 내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지난해 9월 문을 연 광주문화스포츠센터가 야심 차게 마련한 행복한 미술 프로젝트-위대한 화가와 나다.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 자아를 찾고 있다는 광주지역 아이들의 수업이 궁금해 살짝(?) 청강해봤다. ■예술가의 삶, 그리고 나를 찾다 시끌벅적한 교실에 들어서니 스크린에는 피카소의 작품들이 보여지고 있었다. 20명의 아이는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다리며 스케치북을 준비하고 물을 떠 오는 등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김정아 강사는 피카소가 입체파 화가라는 설명과 함께 오늘의 주제는 나의 우상은 누구인가라고 소개했다. 피카소가 비록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훗날 많은 화가의 우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입체적으로 분해한 뒤 재조립하는 피카소 특유의 표현법으로 내 우상을 표현해야 한다니 아이들의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한 얼굴에 두 가지 형태의 얼굴이 그려진 선생님의 시범에 아이들은 이해했다는 듯 금방 스케치북으로 눈이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미술 시간인데 아이들이 글짓기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나의 우상이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한 뒤 왜 우상인지 적어내려 갔다. 단순히 예술가를 알고 그림을 그리는 한정된 수업에서 벗어나 글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실히 정한 뒤 붓터치로 표현하는 남다른 수업방식이었던 것. 아이들의 우상은 친구, 엄마, 하느님 등 다양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우상을 그리고 색칠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의 우상이 개그맨 김병만이라는 전희정양(12ㆍ탄벌초5)은 한 예능 프로에서 족장으로 나오는 김병만은 뛰어난 리더십과 함께 운동 실력도 좋아 우상으로 삼았다면서 나도 험한 곳에서 친구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3시간의 수업이 끝나갈 때쯤 아이들의 작품도 서서히 완성되기 시작했다. 글짓기, 그림 그리기에 이어 이번에 발표 시간이란다. 예술가를 알고, 내 삶을 표현하고, 표현력까지 키워주는 맞춤식 교육임을 증명해 보이는 듯했다. 고흐와 피카소를 한 화면에 담은 김세연군(11ㆍ번천초4)은 반추상적인 피카소 예술세계에 맞춰 설명했다. 고흐의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측면)과 피카소의 정면 얼굴이 합쳐져 파이프가 피카소의 눈물처럼 연결된 그림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군은 부모님과 피카소, 고흐 전시회에 직접 가서 작품을 많이 봤다며 우상을 떠올리다 두 화가의 얼굴을 합치면 피카소 작품처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매주 다른 예술가를 만나다 이처럼 어른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행복한 미술 프로젝트-위대한 화가와 나는 1기와 2기로 나뉘어 각각 4~7월, 8~12월 진행됐다. 한 기수당 초등학교 3~6학년생 20명씩 모두 40명이 참가했다. 피카소뿐만 아니라 마네, 마티스, 세잔, 르누아르, 고갱 등 16명의 화가를 회화와 미디어 아트로 만나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만나는 이 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이 공모한 2012 토요문화학교 사업에 선정돼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초등학생들의 토요일을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위대한 화가와 나라는 존재를 화가들의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스토리텔링 과정으로 알아보고 창의성을 확대해가는 발판이 된 것. 수업이 실내에서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에는 센터에서 열린 꿈꾸는 상자전-미술을 삼킨 나의 즐거운 상상에 참여해 여러 작가의 작품세계를 직접 체험했다. 또 탄생 80주년을 맞은 백남준 선생을 만날 수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 DMC홍보관 등을 견학하고 미디어 아트와 인터렉티브 디지털 작품을 경험했다. 실내, 실외에서 만난 예술가를 통해 미술사적 자취를 더듬어 보고 글을 쓰고 색연필, 먹물, 물감 등 다양한 재료로 표현하는 방식에 발표까지 어우러져 어린이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했다. 김정아 강사는 화가들을 선정할 때 자아의식이 강했던 사람들 위주로 골랐다. 아이들이 화가들을 통해 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랐던 것이라며 화가의 기법적인 부분을 흉내 내기 보다 작가는 이런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화가와 나를 연결했을 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들이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에서 출발했지만 그림을 통해 나는 물론 다른 친구의 모습을 알게 되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이들 결실에 학부모 웃음꽃 지난 15일 광주문화스포츠센터 1층에 마련된 갤러리는 학부모와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 수업에 참가한 1ㆍ2기 학생들의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었던 것. 40명의 어린이 화가들과 학부모, 강사들까지 끝까지 수업이 잘 진행됐다는 자축의 잔을 들며 전시 개막을 축하했다. 벽에는 가장 잘 만든 작품 한 점씩이, 한쪽에 마련된 전시대에는 16명의 화가는 만난 아이들의 결실인 아트북이 전시돼 있었다. 어린이 화가들의 창의적 작품이 자신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지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아 강사는 천진난만한 어린이 화가들과 함께 갤러리를 돌며 학부모들에게 아이들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자 학부모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 채지원군의 어머니 김영출씨(43)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배운 화가와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전시로 보니 대견하다며 단순 그림 지도만 하는 미술학원보다 아이가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런 수업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임선주 센터 기획공연팀 대리는 모집 당시 신청인원이 많아 선별해야 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며 아이들이 16명의 화가를 통해 드로잉뿐만 아니라 미디어 아트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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