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에듀 클래스]<18>미적 교육의 시선으로 바라 본 두 개의 수업

■미적 교육의 등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나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을 만나고 나면, 한동안 그 만남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어떤 드높은 질서 안에서 대상과의 합일하는 경험은 현실의 부족함, 불만, 불안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북돋는다. 사람 없는 석굴암 앞에서, 해가 넘어가는 지리산 등성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서, 가을은 올 시간보다 가버린 시간이 더크다는 고은 선생의 시 구절을 읽다가, 주위의 방해를 받지 않는 무관심한 관조의 상태에서 문득 세상의 비밀스런 질서에 맞닿은 듯한 이러한 경험들은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듀이의 말처럼 인간과 환경 간의 불균형을 조화로 이행하는 순간이며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는 순간, 즉 미적경험의 순간인 것이다. 미적경험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한 관조로부터 일어날 뿐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존재와 최초의 목적마저 사라져버리는 활동의 몰입 과정에서도 생겨난다. 무대 위 배우들이 극중 역할에 자신의 온 존재를 투사해버린 순간, 파란색의 특정한 감각적 물성을 드러내기 위해 갖은 재료와 터치로 실험하는 화가의 작업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의 무너진 마음을 전하고자 감정을 고양하는 가수의 노래에서도, 서로 다른 악기가 제 때에 제 소리로 어울리며 화음이 되는 순간에도 미적경험은 일어난다. 이렇게 자신의 노동이나 활동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넘어서는 순간의 경험이 자아내는 행복과 환희를 맛본 이들은 그러한 경험을 일상에서도 지속시키고자 노력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미적으로 가꾸는 것으로부터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관조와 몰입이 미적인 것은 아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떠나온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난 배를 협동으로 지켜가는 선원들의 생명을 건 몰입노동이, 출근 길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보다 문득 세상의 무의미함에 닿아버린 중년의 회한이, 게임 속 가상의 세계에 빠져 괴물들과 결투를 벌이는 청소년들의 잠 못 이루는 몰입의 밤이나 온갖 근심과 갈등마저 사라져 버리는 속도의 한계까지 내달리는 라이더의 몰아의 주행이 자아내는 경험들은 미적경험으로서의 관조와 몰입에 비견될 만한 경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경제적 토대, 생명의 토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수 있는 이러한 관조와 몰입의 경험들이 반복되는 삶이란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할지 잘 알고 있고 이를 미적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바로 여기에 예술을 통한 미적경험, 그리하여 미적으로 고양된 인격을 형성하며 삶을 변화시켜가는 존재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경험의 과정, 즉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쉴러는 일찍이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이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현실의 제약을 무너뜨려야만 하는데, 현실을 무너뜨리면 이상으로 나아갈 토대가 없어지는 삶의 부조리함을 넘어서기 위해 미적교육이 이뤄져야 함을 그의 저서 미적교육에 관한 편지를 통해 주장했다. 인간은 물질의 한계 안에서 물질에 대항하는 싸움을 놀이해야 합니다. 이는 자유의 성스러운 땅에서 이 두려운 적과 싸우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지요. 인간은 더욱 고귀하게 욕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숭고하게 의지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이런 일은 미적은 문화(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미적인 문화(교육)은 자연법칙도 이성법칙도 인간의 자의를 묶어버리지 못한 그 모든 인간 행동의 영역을 아름다움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미적교육은 외적인 삶에 부여한 형식에서 내적인 삶의 길을 열어 놓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 같은 미술수업 : 김월식 샘과 함께 한 흥덕고등학교 아방과후르드 미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면, 어떤 경험도 완전할 수 없다. 그것은 감각, 분위기, 본원적 생명력, 그리고 생동성의 종합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존듀이의 또 다른 아포리즘은 흥덕고등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술수업을 적확하게 지시한다. 우리 안에 만연한 일상의 폭력성을 예술을 통해 다스리는 힘을 기른다는 목적을 가진 이 수업에는 1학년 14명 2학년 6명, 총20명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 참여하고 있다. 자율수업이어서인지 이미 한 차례 진행된 지난 수업의 저조한 참석률 때문에 김월식 샘과 흥덕고등학교 담당교사의 걱정이 수업 전에 있었다. 이윽고 수업시작 종이 울리고 지난 번 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12명이 교실로 들어선다. 서로 다른 학년과 반에서 왔고, 지난 한 차례 수업만으로는 아직 관계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서로 대면대면 서먹서먹하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김샘이 묻는다. 사진 찍기 싫은 사람? 두 명이 싫다고 하자, 사진찍는 이에게 김샘은 그 두 명은 찍지 말라고 한다. 또 김샘은 묻는다. 우리가 이 수업을 왜 할까? 아이들 대답이 없다. 재차 묻는다. 그럼 삶이 중요할까? 예술이 중요할까? 몇 명의 아이들이 대답을 한다. 김샘, 진지하게 듣고는 모두 중요한 이야기라고 공감을 한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말한다. 예술은 감성이 작동하는 딴 짓이야 아이들, 자기들의 눈높이로 언어화된 김샘의 이야기에 약간의 반응이 생긴다. 그럼 감성적으로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들 아까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약, 술, 연애 김샘, 그렇다 모두 감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의 공통점은 감각을 열리도록 하는 것이라는 거다. 가령 보는 것으로 설명하자면 흐릿한 정신으로 보는 것, 들뜬 마음으로 보는 것. 보는 것은 다양하다. 눈을 감고 볼 수도 있다. 안대를 쓰고 해볼까? 김샘, 안대를 만들어 두 명의 학생에게 차례로 씌어 주면서 만지고 냄새 맡도록 하면서 그것을 이미지로 떠올려 보도록 한다. 만원버스 안에서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스킨향수 냄새를 맡게 된다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 역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감각으로 볼 수 있게 되려면 감성적이 되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감성적이 될 수 있을까? 모두 둥글게 앉아 볼까요 아이들 둥글게 앉자 김샘, 한동안 레크레이션 강사가 되어 몇 개의 게임을 쭉 돌린다. 웃고 떠들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졌다. 김샘, 이제 다시 수업 형태로 앉아 볼까요 수업테이블로 아이들이 모두 앉자, 여러 색깔로 그리기, 여러 속도로 그리기, 여러 모양으로 그리기, 공의 움직임을 그리기 등등. 김샘의 지도와 평, 그리고 상호평을 하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수업에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휴식시간 종이 울렸는데도 아이들 꼼짝않고 김샘의 수업에 몰입한다. 김샘 갑자기 종이비행기를 만들라고 말한다. 아이들 다 접고나면 김샘, 스케치 할 도구 들고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과 다 함께 운동장으로 가서 비행기를 날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렇게 놀다가 스탠드 쪽으로 가서 자리잡고는 몇 명의 친구들이 차례로 자신이 접은 비행기를 날리면 그 궤적을 나머지 아이들이 그리도록 한다. 비행기 궤적의 그림이 추상미술의 한 형태로 아이들마다 다르게 드러난다. 그것에 대해 뉴욕스타일, 모스크바스타일 등등으로 농과 평을 하면서 김샘 추상미술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이제 수업분위기는 무엇이든 김샘이 던지는 대로 아이들이 받아낼 것만 같이 말랑말랑해졌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두 명씩 짝을 짓고 서로의 싸인 따라 그리기를 한다. 그리고 바꿔보고 평하면서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의 회고를 나누고, 다 함께 김샘이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남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수업이 끝난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김샘은 아이들의 질문과 대답 하나 하나에 바로 반응하면서 질문하는 아이나 대답하는 아이,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 한 명 한 명이 수업에서 벗어나있지 않도록 하였고, 그것이 비록 수업과 관련없어 보이는 이야기일지라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수업과 연결시켜 갔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은 끝난 것이 아쉬워 보였고, 마치 열렬한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공연무대를 내려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배우마냥 기쁨과 회한이 넘치는 듯 했다. 단언컨대 김월식 샘의 미술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현실에 발 디딘 놀이를 하면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이어지는 표현들이 완성되는 미적 경험을 했다. 이 경험들은 이번 수업 참가자들의 몸에 기억되어 오래도록 일상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불만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안의 폭력성뿐 아니라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스스로 치유해갈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도 자신의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수업 안에서 가능한 살아있는 경험, 미적경험, 미적교육인 것이다. 경험이 되는 내용이 완성에 다다를 때 우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은 내면적으로 완성되고, 경험 전체의 흐름 속에서 다른 경험과 구별된다. 한 작품이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완결되고,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게임이 진행된다. 식사를 하거나, 체스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정치적인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의 상황은 하나의 정지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의 전체이며, 나름의 개별적인 특성과 자기 충족성을 지닌다. 이것이 경험인 것이다.(존듀이) ▲몸과 맘이 아픈 아이들의 통합예술수업 : 부천문화재단 몸놀이 맘놀이 인간의 본성은 육체, 영혼, 정신으로 구성되며 자유를 향하는 초월적 본성으로서의 자아의 형성이 교육의 목표임을 주장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상은 쉴러의 미적교육의 원리, 즉 육체에 근거한 감각충동(der sinnliche Trieb)과 정신에 근거한 형식충동(der Formtrieb), 그리고 이를 잇고 결합하는 유희충동(der Spieltrieb)의 구조와 거의 흡사하다. 슈타이너는 육체는 의지에, 영혼은 감정, 그리고 정신은 사고에 각각 관여되는데 감정은 육체가 정신과 연결되는 중요한 매개이며, 이는 대개 8세에서 14세에 이르는 교육은 조화와 균형의 예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부천문화재단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지역인 오정구에서 진행하는 토요문화예술 프로그램 <몸놀이 맘놀이>는 어떤 이유에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예술적 놀이를 통해 발달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을 아이들 스스로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고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4월부터 4명의 전공이 조금씩 다른 강사가 4~6주 정도로 돌아가면서 놀이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가꾸고 쓰면서 스스로와 커뮤니티를 생동해 간다는 원리로 기획되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정구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열다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와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비롯한 경계선에 있는 몇 명의 아이들, 그리고 소위 정상범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사소한 대화도 얼마간의 폭력성을 동반하는 것이 문화로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시작된 5개월 전에는 이보다 훨씬 심했는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이나마 조용해지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담당하는 재단의 담당 코디네이터 변자영 샘은 전한다. 방문한 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연극놀이었는데 몸조각놀이가 먼저 시작됐다. 아이들은 교사의 지도에 따라 파트너가 된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조각을 만들려 하지만, 산만하거나 조각이 된 아이가 쑥스러워하면서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나 누군가의 몸을 만지거나 건드리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은 듯 조각가가 된 아이는 대상에 대한 애정없이 도구적으로,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상대의 몸을 다루었다. 수업을 잠시 멈추고 자신과 상대의 몸에 대해 어떤 감각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를 길게 나눠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담당 교사는 아이들의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고, 천천히 속도대로 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한다. 이어서 돌돌 만 신문지를 자신의 상상에 따라 망원경, 지팡이 등으로 이용하는 걸 연기해 보는 놀이가 진행되었다. 몸조각놀이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을 때 스스로 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에 의해 지목된 아이가 하기 싫거나 쑥스러워 하며 나와서는 건성으로 신문지를 이용해 연기를 하고는 재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에도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는 내키는대로 수업의 흐름을 바꿔놓았으며, 2~3명 짝을 지어 있던 아이들은 툭탁거리며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느라 시연하는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이런 그루핑으로는 교사들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몇 주간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관계형성이 되었던 이전 몇 명의 강사들이 이미 거쳐간 터라 아이들은 새로 프로그램을 시작한 교사와의 수업 성공적 운영을 위한 협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이처럼 여러 명의 전문강사에게 의존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들의 생활을 돌보며 일상으로 관계맺는 담임 혹은 담임형 교사가 반드시 수업을 통제 혹은 개입할 수 있어야 원활히 진행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교육은 예술이며 교사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교육예술을 주창한 슈타이너 선생의 개념을 한 번 더 빌려 말하자면 육체, 에테르체(생명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 아스트랄체(감각,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 그리고 자아가 어떤 이유에 의해서 고르게 발달하지 않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걸맞도록 교사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좋은 교육은 준비된 교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교육자의 에테르체(생명체)는 어린이의 육체에 유효한 작용을 미칠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교육자 자신의 아스트랄체(감정체)는 어린이의 에테르체에, 자아는 어린이의 아스트랄체에 유효한 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것입니다 글 강원재 OO은 대학연구소 1소장

[문화바우처의 힘]<5>‘에이블아트오케스트라’

실내관현악단의 아름다운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도중 관람석에서 때아닌 박수와 괴성이 울려퍼진다. 심지어 클래식 연주를 듣는 일부 관객이 온 몸을 사방으로 흔들고 아예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우아한 연주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 소음과 몸짓이 악기 연주와 저마다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나아가 공연곡에 대한 감동을 배가시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연주회 현장에서 찾아보자. 지난 16일 오전 수원 서광학교(장안구 이목동) 대강당.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피아노 등 10여명의 악기 연주자들이 무대격인 강당 앞에서 모차르트 심포니 No.40을 연주중이다. 공연무대가 된 서광학교는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교육기관이다.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 전공과를 두고 있다. 이날 관객은 이 학교의 재학생인 장애인 학생과 교사 등 200여 명이었다. 서광학교에서 이뤄진 두 번째 클래식 음악회로 올해 1학기에 처음으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한 바 있다. 비장애인과 달리 예측불가능한 감상 태도에 쉽사리 기존의 공연장을 찾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는 학교로 찾아온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 됐을 터. 이와 관련 김강식 교사(교육과학부장)는 난생 처음 눈앞에서 생생한 클래식 연주를 보고 들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정말 좋아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처럼 무엇이든 처음이 가져다주는 감동이 가장 크기 마련인데, 두 번째로 열린 관현악단의 연주회를 감상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그것보다 더 뜨거워 아릿할 정도였다. 뜨거운 감동을 일으킨 주인공은 경기문화재단 경기나눔센터가 주관하는 2012년 문화바우처 기획사업 가가호호(문화교감)의 선정 단체인 에이블아트 오케스트라다. 에이블아트 오케스트라는 지난 2010년 장애인과 비장애인 연주자로 구성된 음악단체다. TV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유명세를 자랑하는 자폐 첼리스트 오동한씨를 비롯해 성혁제, 고민성, 임유진, 이승범(이상 플루트) 등 5명의 장애인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이들을 가르치고 연주무대에도 오르는 비장애인 연주자 9명이 함께한다. 이들은 장애인의 문화적 소외를 극복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에이블아트센터(권선구 금곡동)에 소속돼 있다. 올해에는 경기나눔센터 문화바우처 사업 진행 단체로 선정돼 에이블아트 오케스트라 날개를 달다를 타이틀로 장애인과 취약 계층을 방문해 순회 공연을 벌이고 있다. 이날 서광학교에서 가진 음악회 역시 이 사업의 한 프로그램으로 김종훈(시각장애)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는 첫 곡을 연주한 후 바이올린ㆍ비올라ㆍ플루트 등 각 악기를 소개했다. 이어 에이블아트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과 인어공주의 OST를 비롯해 For the beauty of the earth, 야곱의 축복 등을 연주했다. 학생들은 연주를 들으며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잔잔한 멜로디에 소리 죽여 연주자들을 바라봤다. 특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피아노 반주에 솔리스트로 첼로를 켠 오동한씨의 연주 대목에선 관객과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형성되는 듯한 분위기에 감동이 고조됐다. 장애인 학생들이 자신과 닮은 그러나 다른 연주자들의 모습에 희망의 울림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무엇인가 맘에 안드는 듯 온 몸을 흔들거나 화를 내고 울부짖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라면 연주를 깨뜨리는 소음으로 여겨질 그것마저도 하나의 음악이 되어 어우러지는 분위기였다.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김모(17)군은 공연을 보면 마음에서 꽃이 활짝 피는 느낌이라며 오케스트라가 제일 좋다고 환하게 웃으며 관람 소감을 말했다. 김보라 에이블아트센터 팀장은 장애인도 악기를 연주하며 직업인으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장애학생들에게도 큰 힘이 되길 바란다며 문화바우처의 기획사업을 이같은 순회 연주를 비롯해 문화적 소외계층에 삶의 희망을 공유하는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에이블아트오케스트라는 오는 12월1일 오후 5시 300석 규모의 에이블아트 콘서트홀에서 무료로 정기연주회를 열고, 내년 1월3일 오후 8시 같은 장소에서 케냐 지라니 예술학교 건립을 위한 후원연주회(관람료 2만원)로 지라니 합창단과 협연할 예정이다. 문의(070)8672-1077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문화원에서 놀자]<18>부천문화원 '석천농기고두마리' 공연

에 헤리 방애호 에 헤헤리 방애호 이 방아가 뉘 방안가 방아방아가 돌방아냐 지난 11월 10일 토요일 오후, 복잡한 부천역 남부광장에 때 아닌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가 울려퍼졌다.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데이트 나온 연인들, 대형마트에 시장보러 나온 가족들,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러 나오신 어르신들까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넋 놓고 공연을 보고 있다. 농부 100여명이 짚신을 신고 나와 논매기를 하고 나서 농기(農旗) 싸움 하는 장면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부천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풍경치곤 생경스럽다. 쌀쌀한 늦가을, 농부들은 왜 도심으로 뛰쳐 나왔을까. # 각 마을 농기ㆍ풍물패ㆍ농군, 자웅을 겨루다 부천시민들의 발과 눈을 붙잡은 농부들은 부천우수전통민속놀이 석천농기고두마리 공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 소속으로 초등학생부터 주부, 교사, 어르신, 대학생 등 세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부천문화원(원장 박형재)이 주최하고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회장 손영철)가 주관한 석천농기고두마리는 풍물이 어우러진 일명 상좌다툼놀이다. 1800년대 초부터 1910년대까지 옛날 부평군 석천면, 현재의 부천시 송내동과 상동 및 중동 일대에서 이어온 민속놀이다. 십 수년 전만해도 넓은 벌판의 평야지대인 이곳에서 논농사와 세벌매기를 마치고 7월 백중(음력 7월 15일) 날 마을 대항으로 치른 놀이로 특히 철종 이후 조선 말기에 성행했던 것으로 전해 온다. 석천농기고두마리는 농기를 사용하는데 농기 위에 꿩의 꽁지깃을 여러개 모아 묶어 만든 꿩장목을 꽂는다. 이 꿩장목을 부천 고유어로 고두마리라 불러왔고, 농기싸움은 바로 이 고두마리를 빼앗는 놀이인 것이다. 농기고두마리는 우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고된 농사철을 보내는 가운데 농민들이 서로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뜻으로 행해졌다. 다른 한편으론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반상의 차이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신분상승에 대한 희망을 농기다툼의 승자를 통해 표출하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부천의 들녘이 사라지면서 농기싸움도 자연히 사라졌다. 그런데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이는 부천 지역 향토 사학자를 중심으로 1990년대 초부터 석천농기고두마리 복원과 재연작업을 해왔고 2010년 8월에는 석천농기고두마리의 발전적 계승을 위해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가 창립하면서 가능했던 것. # 재연이 아닌, 시민들과 함께하는 흥겨운 자리 10일 오후 4시, 부천역 남부광장에 서촌말, 솔안말 양 마을 풍물패가 농기를 앞세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등장하자 행사가 시작됐다. 이어 논매기 준비를 위한 한마탕 놀이가 펼쳐지고 풍물이 그치고 북이 논매기 준비를 알리기 위해 점고가 끝나자 100여명의 농군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논 안으로 들어가고 상사디 소리에 맞춰 논매기 한다. 세벌 논매기가 끝나자 마을 장정들의 씨름판과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풍물이 진행되는 동안 지난해 패자마을 사람들이 제사상을 차려 놓고 같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농기싸움이 펼쳐졌다. 풍물패는 농기를 중심으로 풍물을 치고 농군들은 자기 마을 사람들의 사기를 돋우는 함성과 춤으로 열기를 달궜다. 지난해 승자마을에서 패자마을에 농기싸움을 하자고 점고를 보내고 패자마을에서도 싸움에 응한다고 점고를 보낸다. 지난해 패자마을의 농기가 놀이에 앞서 상좌마을의 농기에 기 세배를 한다. 기 세배가 끝나자, 각 마을의 농기는 서로 밀고 당기며 자웅을 겨루었다. 이 장면이 바로 석천고두마리 행사의 하이라이트. 빙빙돌면서 만났다가 멀어지기도 하면서 서로 한껏 두 세 차례 시세를 폈다. 와~하는 함성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의 절반은 자기 마을의 농기를 지키기 위해 빙 둘러서고 나머지 절반은 상대 마을의 농기를 쓰러 뜨리기 위해 상대 마을 농기를 향해 달려갔다. 이날은 서촌말 농군들이 솔안말 농기에 꽃혀 있는 깃털(고두마리)를 뽑아 승자가 됐다. 솔안말 농군들은 땅에 주저 앉아 분함을 감추지 못해 땅을 치고 짚신을 벗어던지기도 했다. 농기싸움 후 양쪽마을 풍물패가 하나돼 신명나게 춤을 추며 노는 화합의 한마당을 끝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공연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흥겨운 풍물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전통민속놀이 공연에 소녀 팬들이 몰려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김가현(소명여고 1년) 학생은 여월초등학교 풍물부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가요나 팝송 보다 흥이 나는 우리 풍물소리를 더 좋아했다며 친구들과 같이 직접 와서 보니 앞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시대 살고 있는 요즘엔 볼 수 없는 농경사회의 협동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으며 관람하던 유재호(72) 어르신도 도시개발로 상전벽해를 이룬 부천에서 건전한 민속놀이가 계승 발전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부천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는다며 삭막한 도시 문화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석천농기고두마리 행사를 통해 농경사회 상부상조의 정신을 키우고 지역의 단합력을 결속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석천농기고무마리에서 이긴 농군은 패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패자는 승자를 위해 축배를 드는 아량이 있다. 무엇보다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우애가 숨어 있다. 이에 부천문화원과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는 단순한 재연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하는 살아있는 민속놀이로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형재 부천문화원장은 신도시 개발로 인한 급작스런 도시의 변천사 속에서 석천농기고두마리는 많은 향토 사학자들이 놀이의 근간을 찾아 연구해 계발함과 그 내용을 자료화해 놀이의 원형을 찾아낸 것으로 앞으로도 자료를 바탕으로 시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석천농기고두마리를 알고,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그림읽어주는 남자] 김기라의 ‘망령-역사적 괴물’

올해가 유신 40년이란 사실을 아는 이 드물다. 1972년 10월 17일의 일이었으니 벌써 40해를 훌쩍 넘겼다. 그 해는 국회를 해산 당했고 정당 및 정치활동이 강제로 중지되었다. 유신체제는 대통령의 초헌법적 권력을 용인했다. 당시 비상조치 제1호 포고문에 따르면, 실내외 집회, 시위를 일절 금했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다. 대학은 휴교조치 되었고, 정당한 이유 없이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행위도 할 수 없었다. 야간 통행금지는 물론이고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도 수색, 구속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 3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유신체제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유신의 망령은 한국 사회 내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서 마치 숙주에 기생하는 괴물들처럼 작동한다. 김기라의 망령-역사적 괴물은 수 천 년 역사의 층위에 새겨진 신화와 종교, 영웅의 판타지가 인간사회에 망령으로 떠도는 것을 콜라주로 표현했다. 그는 헬레니즘과 길가메시 서사시의 수메르문명, 이집트 나일문명, 황하문명, 인더스의 고대 문명권과 기독교와 기독교 파생의 온갖 유사종교, 무슬림, 유불선, 신도(神道)의 이미지를 콜라주로 뒤섞었다.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것들을 섞어서 혼합한 뒤, 세상에 없는 우상을 창조해 냈다. 각각의 형상들이 인신(人神)과 신인(神人), 신상(神像), 성인, 영웅들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신화적 상징물들이니, 이 우상의 능력은 초특급울트라메가슈퍼파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영험함의 극치일까?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을 망령-역사적 괴물이라 명명했다. 신성한 것들의 더하기는 빛이 아니라 망령이란 이야기다. 작가는 신성한 믿음으로부터 발현한 거룩한 숭고의 도상들이 어느 순간 욕망으로 변질된 순간들에 주목했다. 신성한 믿음과 거룩한 숭고가 상실된 자리에서 숭배를 소비했던 욕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지하듯 초기 종교에서는 신성을 중시해 몸의 신체를 만들지 않았다. 최근 4.19혁명 당시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렸던 독재자의 동상이 다시 세워졌고, 심지어는 유신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이데올로기 극단화를 부추기는 현상이 빈번하다. 초헌법적 권력의 대통령을 다시 찾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재를 부르는 순간,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ㆍ미술평론가

[비상하는 에듀 클래스]<17>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포럼연극 ‘눈사람?눈사람!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고등학생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에서 빠지지 않고 들리는 뉴스 보도, 학교폭력 그리고 자살(자살시도). 올 1~11월 정신건강검진을 받은 경기지역 초ㆍ중ㆍ고생 1만3천649명 가운데 최근 3개월 내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3천457명에 달했다는 경기도 정신보건센터의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지만 어른들이 말로만 전하는 예방책에 학생들은 반응조차 없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학교폭력 현장을 과감하게 바꿔버릴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PRAXIS)가 만든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포럼연극 눈사람? 눈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토론으로 시작되는 연극을 아시나요? 지난 19일 오전 집중 박수 시작! 우렁찬 진행자의 목소리가 수원 당수초등학교 강당을 뒤흔든다. 왁자지껄 친구들과 장난을 치느라 정신없던 당수초 6학년 학생 180여명은 짝짝~짝짝짝 집중!을 받아치며 이내 귀를 기울인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ㆍ걸상 몇 개가 있는 소박한 무대에서 연극을 보여준다더니 갑자기 학교폭력, 이른바 왕따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어린이 관객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진행자는 무대에서 펼쳐질 연극을 소개한다. 학교폭력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집단 왕따가 일어나는 연극을 관람한 뒤 관객이 공연에 직접 참여해 잘못된 장면을 자기 생각대로 바꿔보는 눈사람?눈사람!이라는 것. 3D도 4D 영상도 아닌 배우들이 나와 속마음까지 말해주는 5D(?)의 한 장면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때리는 포즈를 한 남학생, 몸을 웅크리고 맞는 학생, 지켜보는 학생,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어른. 때리지 마라고 속마음을 이야기 한 친구를 위해 학생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며 그러면 안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용기있는 학생 하나가 무대로 나왔다. 괴롭히지 말고, 때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친구는 신고하고, 어른은 말려야 된다고 말하며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을 일일이 바꿔줬다. 본 연극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미지 전환하기, 질문던지기 등을 통해 학교폭력에 대해 생각하고, 처음 경험해보는 포럼연극을 이해하며, 마치 자신의 상황인 것처럼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지연 프락시스 대표는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머리로 답을 하지만 마음으로 오는 지점은 애매하다면서 학생들이 관객이 아닌 상황의 변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으로 접근해 그들이 머리로 아는 답이 과연 진짜일까라는 과정을 스스로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관객이 배우가 되는 눈사람?눈사람! 막이 바뀌는 동안 스크린에서는 자살 고교생, 사망 전 폭행, 대구서 9개월 새 9명 자살, 카톡 때문에 자살 등 학교폭력에 관련된 기사들이 이어졌다.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 전학생, 선생님, 엄마가 출연하는 연극이 드디어 시작됐다. 내용은 이렇다. 영어 연극 대회에 나가게 된 하나네 반에 영어를 잘하는 소민이가 전학을 온다. 소민은 아이들이 맡기 싫어하는 나쁜 역할의 주인공을, 반장 영인이는 연출을 맡게 된다. 집과 학교에서 연습하는 도중 영인과 함께 진일, 병진은 소민을 왕따로 만들고 괴롭히고, 결국 소민이는 자살을 시도한다. 소민을 원래 알고 있었던 하나는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고민에 빠진다. 연극이 끝나자 신고해요, 병진이를 때려줘요, 소민이를 도와줘요 등 의견이 다양했다. 윤소정양(13)은 소민이가 불쌍했어요. 용기 내서 신고를 한 뒤 소민이를 위로해주고 같이 놀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한바탕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 아이들은 직접 하나역을 맡아 잘못된 부분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수민이 머리에 씌웠던 장면, 눈 가리고 술래잡기할 때 때렸던 장면, 마마보이라고 놀렸던 장면 등. 하지만 객석에서 자신 있게 대답했던 아이들도 무대에선 하나의 역할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지켜보는 입장과 자신이 직접 상황에 있을 때의 부담감이 달랐던 것. 이런 상황에서 나쁜 친구들을 혼내주고 소민이를 도운 이정빈군(13)의 기사도정신이 단연 돋보였다. 이군은 소민이가 맡았던 나쁜 역할을 자처하며 소민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다. 또 쓰레기통을 씌우자고 주동했던 진일이가 오히려 쓰레기통 괴롭힘을 당하게 상황을 만드는 등 연기 내내 진지한 모습으로 할 말을 다하고 마지막까지 소민이를 도와주는 모습에 객석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정빈군(13)은 친구를 때리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소민이가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당할 때 싫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나 역을 연기했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희망의 빛 발견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수원지역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은 당수동에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없다. 학교라곤 당수초가 전부이다. 지역적 특색상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1학년 때부터 6학년 졸업반이 될 때까지 함께 생활한다. 다시 말하면, 왕따를 한 번 당한 학생은 학교를 떠날 때까지 상처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당수초등학교 측은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프락시스에 학교폭력 관련 연극을 당수초에서도 공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공연은 놀라운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여러 친구가 무대에서 피해자를 도와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는 의젓한 연기를 선보인 것. 그 중 교내에서 친구들을 괴롭혔던 아이들도 있어 더욱 놀라웠다. 이를 지켜보던 6학년 담임선생님들도 해당 학생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자신들도 직접 관객배우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연이 6학년 부장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폭력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이런 시간을 마련했다며 오늘 아이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며 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들이 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채워진 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만 생긴다면 전 학년으로 확대해 외부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이지만 더 큰 무대에서 많은 학생에게 보여주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프락시스가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지난 10월부터 5개 초ㆍ중교 학생 1천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다른 기관에서는 포럼연극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해 이 사업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연 대표는 포럼연극이 연극도 교육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어서 연극 쪽에선 교육, 교육 쪽에선 연극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지원을 꺼려한다며 이번 연극처럼 사람들이 점점 개인화되는 시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하나의 작은 주제에서 끌어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청소년 간의 경쟁, 사이버라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문제점 등을 다룰 계획이다.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문화바우처의힘]<4>예술의 정점 봉사정신 실어 나르는 ‘황금마차’

수원에 요란한 포장마차가 떴다. 옛 음악 흐르는 자그마한 오디오와 오색찬란한 조명등을 달았다. 서너명 간신히 끼어앉을 수 있는 규모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국수 한 그릇에 단무지와 김치가 전부인 것이 이름도 있다. 황금마차다. 더 웃긴 것은 요놈이 곧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예술품이 된 마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 수원의 한 경로당을 찾았다. 황금마차를 마주한 곳은 북수동 노인회관(수원시 팔달구 북수동)이었다. 한쪽 문이 내려앉아 어르신은 여닫기도 힘겨운 낮은 철문을 비집고 들어가니, 노인회관의 한 뼘 정원을 황금마차가 주차돼 있다. 마당을 차지한 마차 천정에 걸린 낡은 오디오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퍼지고 문닫은 캬바레에서나 구경할 수 있음직한 낡은 조명이 사방으로 빛을 흩뿌린다. 노인회관안에서도 구성진 노랫소리가 퍼져 나온다. 노인회 20여명 할머니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젊은 총가들의 통기타와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박수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신명난 목소리에 하마터면 본래 목적(?)을 잊고 방안으로 들어갈뻔했다. 예술품임을 자청하는 황금마차의 가면을 벗겨야 하는 것 말이다. 이에 마차 주인장을 찾으니 젊은 작가 천원진씨가 나선다. 다짜고짜 물었다. 이 황금마차가 예술이냐고. 대답은 추호의 흔들림없이 그렇다이다. 조각을 전공한 저는 마차의 나무로 음식 놓고 먹을 수 있는 판부터 지붕도 만들었고, 조명이나 네온싸인으로 꾸미는 것은 장영환 서양화가의 아이디어에요. 기계적 문제를 잘 다루는 장성진 조각가는 마차에 동력장치를 달고 자전거 핸들을 달아 디자인적 요소도 넣었죠. 결국 3명의 미술 전공자이자 전업 작가의 협업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천 작가는 지난해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이자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인계시장을 통해 연을 맺은 수원에서 개인 작업을 결심, 이후 재래시장이 있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개인 작업실을 꾸렸다. 그곳에서 작업 방향을 고민하던 중 낮이나 밤이나 덥거나 춥거나 폐지를 줍고 삼삼오오 모인 노인을 목격한다. 무료한 삶을 버티는 동네 어르신을 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그리고 혼자 끓여먹던 국수를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동료 작가들과 기획한 것이다. 황금마차는 그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대표적 수단이 됐다. 때마침 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가 문화바우처 활생(문화공명)의 지원사업을 공모중이었다. 천 작가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한 젊은 예술가들의 소통과 예술, 지역성 등을 고려한 프로젝트 기획안은 선정작으로 꼽혔다. 그렇게 지원금을 받고 본격적으로 수원의 지동과 북수동 등을 중심으로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국수 대접하는 황금마차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머니들한테 직접 연구하고 끓인 육수 맛 자랑하려고하는데 한 할머니가 비리다면서 뱉는거에요. 20여분이나 모아놓고 큰일이다 싶었죠. 근데 다들 맛있다고 드시네요. 아마 그 할머니는 자신의 요리 노하우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분도 두 그릇이나 잡수셨어요.(웃음) 지난 9월에 시작한 황금마차는 이달말쯤 곧 영업을 끝낸다. 3개월여간 국수 한 그릇이 따뜻한 관심과 정으로 느껴지길 바라며 동네 곳곳을 누볐다.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과 조명기기를 설치했고, 인맥을 총동원해 악기 연주와 노래 잘 부르는 동료 작가들을 참여시켰다. 15년 미술했는데 전시작을 봐도 이해되거나 감흥이 없어요. 미술, 도대체 그 예술이 뭘까요. 즐거운 거 아닌가. 정확히 모르겠지만, 결국 예술의 정점은 즐거움을 주는 봉사인 것 같아요.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밥해주느라 허리 필 틈 없던 어르신들과 노래하며 함께 놀고 뜨끈한 국물에 국수 한 덩이 말아 건네는 것이 곧, 황금마차 프로젝트팀의 예술작업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기언 문화나눔센터 담당자는 커뮤니티 아트의 예술성을 실험하는 시기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작가군을 발굴 지원해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소외계층에 적극적으로 문화예술향유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바우처 활생사업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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