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관세전쟁, 위기를 기회로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무역적자를 줄여 적자 폭을 최소화하겠다며 그 대안으로 ‘관세카드’를 꺼내 들었다. 말로만 그칠 줄 알았던 정책은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세계 각국은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라마다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지만 전 세계는 이미 혼돈 상태다. 기축통화국 미국은 달러를 찍어 내며 버텨 왔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화와 자유무역 덕분에 고도성장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관세전쟁이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우리나라의 위치를 보라. 동방 한구석에 중국, 러시아, 일본에 갇히고 남북이 갈린 사실상 섬나라가 아닌가. 우리 주변엔 강대국만 있고 남북 대치로 늘 안보까지 걱정해야 하는 나라다. 그나마 맹방인 미국의 안보 도움으로 경제를 여기까지 성장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마저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면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부존자원 빈국인 우리는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다. 우리는 팔아먹을 자원이 사실상 전무한 나라다. 다른 나라에서 재료를 사다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전형적인 수출지향적 국가다. 그러므로 관세전쟁은 우리에게 직격탄이다. 그나마 노동집약적인 분야는 후발주자인 개발도상국에 넘겨주고 하루라도 수출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나라이지 않은가. 원자재 비용은 상승하고 최저임금 시간급이 늘어도 근근이 버텨 왔는데 매출이 꺾이면 버티기 힘들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은 경기 위축과 악화, 자재비·인건비 상승에 관세까지 높아지면 수익을 내기는커녕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 운영조차 어려울 수 있는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일본과 대만보다 많고 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 중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여섯 번째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14년(3만798달러) 처음 3만달러에 진입한 뒤 꾸준히 늘어 2023년 이후에는 3만6천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이제 막 3만달러 시대 선진국 초입에 들어섰지만 국내 정국마저 혼란스러워 자칫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음에 긴장해야 한다. 단단히 각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분단국가인 우리가 경제마저 흔들리면 그동안 쌓아온 국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관세전쟁의 위기(危機)를 기회(機會)로 삼아 반전과 도약으로 상황을 바꿔 나가야 할 절호의 기회다.

[경기만평] 니가 가라 하와이...

[사설] 법원 ‘반도체 간첩’ 중국인에 철퇴 내렸다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한 판시라고 본다. “국외 유출된 국가 핵심기술이 회수되지 않아 피해 회사와 대한민국의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범죄는 국내 기업 생존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등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은 SK하이닉스 직원이던 중국인 여성이다. SK하이닉스의 첨단 기술을 중국 화웨이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벌금 2천만원이 선고됐다. 항소심이 징역 5년에 벌금 3천만원으로 높였다. 수원지법 형사2-1부(고법부장 김민기 김종우 박광서)의 판결이다. 피고인은 2013년 SK하이닉스에 입사했다. 2020년 중국법인으로 파견됐다. 국내로 복귀한 것은 2022년 6월이다. 곧바로 높은 연봉을 받고 화웨이로 이직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 문제 해결책 관련 자료를 유출해 화웨이에 넘겼다. SK가 개발한 최첨단 기술이다. 명백한 산업간첩 행위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죄가 대한민국에 미친 해악을 형량으로 부과해 중형을 내렸다. 첨단 기술 유출은 회사를 망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다. 피해가 수천억~수조원에 달하기도 한다. 산업기술보호법이 이런 위해를 반영하고 있다. 산업 기술 유출범에 징역 15년까지 선고하도록 규정해놨다. 하지만 실제 처단형의 현실은 가볍기 그지 없다. 최근 6년간 기소된 관련 사건이 117건이다. 여기서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14건이다. 전체 9.9%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으로 풀어줬다. 솜방망이 처벌에 붙이는 판시는 대체로 이렇다. ‘기술 유출로 회사가 입은 손해를 특정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블록체인 보안 기술 엔지니어가 이직을 했다. 근무하던 회사의 기술을 빼돌렸다. 회사가 2년간 70억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피고인에게 집행유예와 벌금 1천만원으로 끝냈다. 역시 ‘손해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수원지법 형사2-1부의 이번 판결은 이런 법원 태도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본다. 1990년대부터 산업기술 유출이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기술은 처벌할 수 없는 지적 영역’이란 의식이 팽배했다. ‘하이클래스 피고인’이라는 현실도 있었다. 이렇게 자리 잡게 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엄단이 필요했다. 그 이후 기술 유출은 빈도나 내용에서 점점 악화됐다. 전문가들은 ‘한중 격차가 사라진 지금의 기술 유출은 경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경고한다. 명백한 간첩 행위이다. 엄중한 판결이 맞다. 수원지법 형사2-1부의 형량과 취지를 존중한다.

[사설] 용인·평택·이천 반세권 미분양, 예삿일 아니다

경기도 ‘반세권’에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있다. 경기도 산업의 중심에서 체크되는 악재다. 용인시 처인구 일대가 최근 그렇다. 728만㎡ 부지, 반도체 생산 공장 6기, 발전소 3기, 소부장 협력기업 60여개 등이 들어선다.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 접근성도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다. 전국 최고의 땅값 상승 지역이었다. 이랬던 처인구에서 최근 아파트 3개 단지 분양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예상 밖으로 저조하다. ‘용인 푸르지오 원클러스터’ 2단지가 지난달 청약을 진행했다. 0.38 대 1을 기록하며 미분양 1천가구를 남겼다. 같은 시기 전국에서 30개 단지가 분양했다. 미달 가구 수 기준으로 이 중에 최악이다. 같은 달 분양한 ‘힐스테이트 용인 마크밸리’ 역시 미달이다. 0.46 대 1이다. 함께 분양한 ‘용인 푸르지오 원클러스터’ 3단지는 그나마 낫다. 1.25 대 1이었다. 용인 반세권의 중심에서 동시에 나타난 미분양 현상이다. 비교치가 있다. 지난해부터 감지된 처인구 일대 아파트 미분양 징조다. ‘용인 둔전역 에피트’가 지난해 8월 분양했다. 1천9가구 모집에 1천637건이 청약했다. 1.62 대 1이었다. 미분양 흐름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반년여 만에 대규모 미분양이 현실이 됐다. 문제는 이게 반세권의 전체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반도체 산단인 평택, 이천도 사정은 같다. 3월 기준 미분양 물량이 평택 5천281가구, 이천 1천610가구다. 경기도 1위와 3위다. 이천과 평택은 ‘미분양 관리 지역’으로 지정됐다. 지정 시점은 지난해 8월과 지난 3월이다. 용인도 지정 조건인 ‘한 달 미분양 1천 가구’를 넘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미분양 관리 지역 지정이 곧 있을 것 같다. 건설사들의 자금이 대거 묶일 것이 걱정이다. 이에 따른 연쇄 위기가 경기도 경제를 뒤흔들 수도 있다. 최소한의 분양 열기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기대해볼 유일 조건은 ‘실거주 전환 수요 본격화’다. 결국 반도체 클러스터의 적기 가동인데, 이게 난망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사업이 미뤄지고 있다. 반도체 간 갈등과 인허가 지연 등이 원인이다. 조기 가동은커녕 2030년 가동 목표마저 여의치 않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5공장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물론 건설사들의 과잉 공급을 묻지 않을 순 없다. 적정 물량의 6배(용인), 2~3배(이천·평택)를 쏟아낸 게 그들이다. 하지만 미분양 증가가 지역에 미칠 파장이 걱정이다. 쌓인 미분양 아파트는 언제나 지역경제를 직격했다. 반세권 미분양 사태를 보는 우리의 우려도 여기 있다.

[지지대] ‘봄 주꾸미’도 옛말?

주꾸미는 해마다 이맘때면 사랑받는 수산물이다. 길이는 24㎝ 남짓하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녀석의 몸에는 둥근 혹 모양의 돌기가 빽빽하게 나 있다. 눈 주위에는 살가시가 몇 개 있다. 다리는 모두 여덟 개인데 2~4줄로 빨판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지느러미를 새처럼 날갯짓을 하며 헤엄친다. 물속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먹이는 작은 물고기다. 자신보다 큰 물고기가 다가오면 수관(水管)으로 땅을 파 숨거나 먹물을 뿌리고 도망간다. 서해를 포함해 국내 모든 연안에서 잡힌다. 서식지는 주로 서해이지만 동해와 남해에서도 잡힌다. 수심 5~50m의 모래나 자갈 바닥에서도 발견된다. 산란기는 3월이다. 성숙기에는 난소가 밥알 모양으로 바뀐다. 덩치가 낙지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이다. 머리 양옆으로 진하게 나 있는 눈을 닮은 금색 고리 무늬가 매력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명이 1년이 안 될 정도로 짧다. 최근 주꾸미 어획량이 5년 전보다 급감(경기일보 8일자 8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늦추위로 바닷물의 저온 현상이 길어지면서다. 수협중앙회 분석 결과 어획량이 2020년 3천327t에서 지난해 1천748t으로 47.5% 줄었다. 봄에 잡히는 주꾸미 감소 폭이 더 컸다. 올해 바닷물 온도 변화를 살펴보자. 지난 2월 초순 3.6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도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2월 중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도 낮았다. 지난 1월부터 한 주를 제외하고 최근까지 줄곧 지난해보다 낮았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주꾸미 대신 소라나 수출용 가재를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심해지는 바닷물의 저온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로 겨울철 이상 한파가 기승을 부릴수록 봄 바닷물의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도 강해진다. 시절이 하 수상하면서 봄 주꾸미도 이젠 옛말이 되는 건가. 내년 봄을 기대해본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을 통과하다

광대한 고원과 사막 ‘서두르면 라싸에 못 간다’ 몽골 느림의 지혜 느껴 사막의 대륙성기후 용감한 전사 만들어 고려말 침략∙약탈 아픔도 몽골의 마지막 밤 변방 자민우드서 숙박 곳곳에 한국 식당 눈길 ■ 몽골고원을 통과해 중국으로 향하다 우리 차는 몽골고원을 통해 중국으로 내려가고 있다. 몽골의 영토는 동서 2천500㎞, 남북 1천400㎞에 이르는 광대한 고원과 사막으로 이뤄져 있다. 몽골고원은 해발 고도 1천m에서 1천500m 사이 건조한 고원 지역이다. 영토는 넓은데 인구는 350만명 수준으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 넓은 영토에 사는 사람에게 공간, 시간의 개념은 좁은 영토에 사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광대한 사막에서 삶의 지혜는 느림, 기다림, 여유로움이다. ‘서두르면 라싸에 못 간다’는 티베트 속담이 있는데 광활한 대지에 살아가는 느림의 지혜다. 과거 초원과 사막의 유목민은 사계절 초지를 이동하며 살기 때문에 정주민 국가처럼 도시가 없다. 당연히 성곽이나 건물 등 역사적 유적도 없다. 연간 강수량이 20~50㎜이고 주로 여름철에 비가 오기 때문에 사막에 초지(草地)가 곳곳에 형성돼 있고 초원에는 유목민 ‘게르’ 천막이 자주 나타난다. 가끔 소나 말들이 도로를 무단횡단하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고 가축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현재 몽골은 지하자원 매장량이 매우 많다고 한다. 몽골의 자원을 탐사한 일본 기술자는 “몽골인들은 보석과 황금이 묻힌 땅 위에 오두막집을 짓고 산다”고 비유했다. 미래 잠재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사막의 정중앙에 길게 뻗어 있는 길은 환상적인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다. 거대한 평원, 나무 한 그루 없는 600여㎞ 먼 거리의 단조로운 광야의 경치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 고비사막의 황량한 생태계 우리 차는 남쪽의 고비사막으로 들어선다. 몽골의 남쪽과 중국의 북쪽에 있는 고비사막은 동서 1천400㎞, 남북 800㎞의 광대한 사막이다. 몽골 말로 ‘고비’는 ‘사막’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면 ‘인생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7월 중순 사막의 한낮 기온은 40도를 넘어서고 있다. 겨울은 영하 20~30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대륙성기후 사막에서 살아가는 삶의 척박한 환경을 말해준다. 몇 년씩 비가 안 오고, 혹한이 엄습하고, 갑자기 질병이 돌아 살기 어려워지면 생존을 위한 주변국 침략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유목민 전사의 호전성, 잔혹성, 공격성은 척박한 환경과 생태계가 만든 것이다. 두세 살에 말을 타고 어린 시절부터 사냥과 전투를 치르면서 자연히 용감한 전사가 될 수밖에 없다. 고비사막은 지리적으로 비가 안 오는 곳이다. 우리 땅은 삼면이 바다이고 1년 내내 수시로 비가 내리고 해외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항구가 있어 사람 살기에 적합한 입지임에 감사함을 느낀다. ■ 대륙의 중심국과 주변국 한반도의 비애(悲哀) 역사의 발전에는 ‘중심국, 주변국, 중간의 ‘반(半)주변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역사상 아시아 대륙의 중심국은 항상 중국이다. 가끔 몽골고원을 통일한 ‘유목제국’이 중심국이 된다. 고대 중국은 유목민을 ‘북적(北狄), 서융(西戎)’ 등 의도적으로 야만인으로 비하하면서 두려움으로 고비사막 경계선에 만리장성을 쌓아 지켰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항상 강대국의 주변국으로 약소국의 비애를 겪으며 살아왔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도 새로운 대륙의 통일왕조가 생기면서 시작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은 몽골 침략(1231~1270년)이다.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 시대였다. 무신정권 실권자 최씨 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하고 본토는 39년 동안 몽골 군대와 장기간 전쟁으로 전 국토가 유린됐다.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중기 이전 대부분 목조 유적이 몽골의 약탈 또는 화재로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은 몽골 침략 이후 고려 말에 지어진 것이다. 다시 16세기 말 일본의 임진왜란으로 고려 후기 지어진 건물은 또다시 대부분 소실된다. 현재 남아 있는 목조 유적은 대체로 임란 후 숙종, 영조 때 건축된 것이다. 고려 무신정권이 몽골과 전쟁 중 강화도에서 만든 팔만대장경이 고려의 대표적 유적이다. ■ 고비사막 국경 도시 ‘자민우드’와 ‘엘렌하우터’ 모든 공항은 출국과 입국이 24시간 가능한데 육상 국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은 오후 8시 이후 야간과 토요일, 일요일은 국경 개방을 안 한다. 부득이 몽골의 최남단 변방 자민우드에서 하룻밤 숙박하고 다음 날 일찍 중국 국경을 통과할 계획이다. 고비사막의 자민우드는 중국에 들어가는 화물차 기사들의 하루 숙박지다. 몽골 변방에도 한국 식당 등 한국 상호 가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란다. 다음 날 아침식사는 한국 상호 ‘카페베네’ 커피숍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해결하고 오전 9시 중국에 입국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한다. 오전 내내 기다리며 중국 입국 수속을 마치니 낮 12시가 넘었다. 세 번째 국가인 중국에 들어오니 내심 안도감이 든다. 중국 국경 내몽골 고비사막에 엘렌하우터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엘렌하우터시는 고층아파트, 넓은 가로수, 시내 공원 등 사막 속의 녹색 오아시스 도시다. 수백㎞ 멀리서 물을 끌어오는 중국 정부의 투자 덕분이다. 반면 바로 인접한 몽골의 자민우드는 나무가 거의 없는 메마른 도시다. 가난한 몽골과 잘사는 중국의 풍요로움을 잠시 비교하게 된다.

[생각 더하기] 고립·은둔, 가족·사회 역할 재조명해야

우리에게 ‘히키코모리’보다 더 익숙한 고립·은둔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거나 낯선 일이 아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방 안에 머물며 삶의 활력을 잃어 가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보편적이고 시급한 과제가 됐다. 2024년 경기복지재단이 실시한 ‘경기도 고립·은둔 청년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내 청년(19~39세) 인구 약 369만명 중 5.9%(21만7천명)가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립·은둔의 특성상 대외적인 노출을 기피하거나 지원 체계와의 접촉을 피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규모는 통계에 나타난 수치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고립·은둔을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시각이다. 청소년·청년기에 발생하는 사회화의 좌절은 경제적 어려움, 교육과 진로의 불확실성, 관계의 단절, 심리적 상처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문제이며 국가와 지역사회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 없이는 결코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경기도를 포함한 여러 지자체에서 일자리 제공, 심리 상담, 재사회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충분히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립·은둔 당사자들은 사회적 시선과 두려움으로 인해 기존 지원 제도에 접근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편적인 처방이 아닌 당사자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지원 체계’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고립·은둔 청년을 둔 부모들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자녀를 돕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노심초사하거나 잘 못 대응해 오히려 갈등이 심화되면서 가족 전체가 함께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고립·은둔의 영향은 당사자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지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사회적 기반으로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가족이 당사자의 회복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체계적인 가족 지원이 있어야 한다. 첫째,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심리적 소진과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과 활력, 자조모임 프로그램 역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 둘째, 가족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 고립·은둔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고 자녀와 공감·소통하는 등 효과적인 대응 역량을 길러야 한다. 셋째, 고립·은둔 자녀의 회복과 사회 이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사회가 지원해 가족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이러한 다층적인 지원은 고립·은둔 당사자에게 안전한 회복과 사회 이행, 자립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을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아울러 고립·은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고 인식을 바꾸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고립·은둔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삶의 위기이며 이들을 향한 이해와 존중의 시선이 사회 전반에 퍼져야 한다. 고립·은둔 문제는 결코 개인의 몫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함께 풀어 가야 할 사회적 과제다. 특히 당사자와 가족을 함께 돕는 지원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때 더 이상 세상과 단절된 채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고립·은둔이 더는 삶의 끝이 아닌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따뜻한 관심과 연대를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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