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법이란 경전을 읽으면서 죄를 참회하는 불교의식을 말하며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대상으로 삼는 것을 미타참법(彌陀懺法)이라 한다. 이 책은 미타참법의 절차를 수록한 것으로 성종 5년(1474년) 세조비인 정희대왕대비가 성종비인 공혜왕후 한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 책 끝에 있는 김수온의 글을 통해 공혜왕후 한씨뿐만 아니라 선대왕과 왕비들의 명복도 함께 빌기 위해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여기에는 판각에 참여한 당시의 유명한 승려와 왕실종친 등의 직책 및 이름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어 왕실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펴내는 데 동원된 사람이 당대 최고 기술자들이고 이들의 직책과 이름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목판 인쇄기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국가유산청 제공
최근 기후 변화로 극한 기상 현상이 잦아지고 있으며 특히 여름철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지표면 기온이 크게 올라 대기 상층과 하층의 기온차가 커져 불안정한 대기가 형성되며 적란운이 발달하는데 이 구름으로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이에 최근 몇 년 사이 구름에서 지표로 떨어지는 낙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에서 지난해 발간한 낙뢰연보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 총 14만5천700여회의 낙뢰가 발생했다. 이는 최근 10년간 관측된 연평균 낙뢰 횟수보다 43.83% 많은 수준이고 2023년에 비해서는 99%가량 더 많이 관측된 것이다. 낙뢰는 일반적으로 여름철인 6∼8월에 집중되는데 지난해에는 전체 낙뢰의 84%가 여름에 발생했다. 특히 8월5일에는 경기도, 경북, 강원도를 중심으로 2만7천회 이상의 낙뢰가 기록됐다. 이는 지난해 관측된 전체 낙뢰의 약 19%에 달하는 수치다. 또 같은 날 광주광역시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는 낙뢰에 의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이 안타까운 사고는 낙뢰로 인한 피해가 높은 산이나 들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크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기상 현상인 낙뢰를 탐지하고자 기상청은 1987년부터 낙뢰관측장비를 설치·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21개의 낙뢰관측장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탐지된 낙뢰를 신속히 분석해 10분마다 우리나라와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낙뢰의 위치를 기상청 누리집과 날씨알리미 앱을 통해 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 매년 기록된 낙뢰의 지역별, 일별 통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이듬해에 낙뢰연보를 발간해 관계 기관, 지자체 등이 낙뢰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올해 5월부터는 디지털 행정구역 데이터와 연계해 전국 행정구역별로 실시간 낙뢰 정보를 제공하는 ‘디지털 행정구역 낙뢰 정보 서비스’를 시작한다. 기상레이더센터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광역시·도, 시·군·구별로 10분~2시간의 실시간 누적 낙뢰 횟수를 확인할 수 있다. 특정 기간, 일별, 월별, 연도별 낙뢰 정보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낙뢰정보 서비스는 단순히 통계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국가와 민간의 주요 시설과 지자체의 낙뢰 재난 대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실시간 낙뢰정보는 전력 시설이나 발전소, 건설 현장, 화학공장 등 낙뢰가 직간접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시설에서 체계적이고 신속한 상황 판단과 시설 보호를 위한 의사 결정을 하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이 새롭게 제공하는 실시간 디지털 행정구역 낙뢰정보 서비스와 날씨알리미 앱의 위치 기반 낙뢰 발생 예측 알림 서비스를 적극 활용해 모두가 낙뢰 피해 없는 안전한 여름을 보낼 수 있기 바란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 인천 펜타포트 락’은 이미 흥분된 여름이다. 8월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한여름 축제다.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개최된다. 인천광역시가 주최하는 역사 깊은 록(Rock) 페스티벌이다. 그 얼리버드 티켓 판매가 30일 오후 2시 진행됐다. 본 티켓 판매에 앞서 진행하는 사전 행사다. 축제에 대한 팬의 관심을 볼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인터파크 티켓과 KB Pay 등이 시작했는데 4분만에 매진됐다. 석 달 앞두고 시작된 열기다.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향한 팬들의 설렘이다. 그 중심에 영국 팝의 전설 펄프(Pulp)가 있다. 1978년 영국 셰필드에서 결성했다. 야드버즈, 레드 제플린, 딥퍼플 등 영국 록의 전설을 계승하는 밴드다. 1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도 보유하고 있다. 24년 만에 새로운 앨범 ‘More’를 예고해 놓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록 팬의 주목을 받는 밴드다. 2025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이들이 출연한다. 한국을 찾는 것은 처음이다. 이 축제에 나설 모든 라인업도 이날 공개됐다. 일본 밴드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이 눈에 띈다. 2007년 출연을 계기로 인연을 이어오는 일본 대표 밴드다. ‘비바두비’는 BBC ‘Sound of 2020’에 선정되며 Z세대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밴드 ‘데프헤븐’과 함께 보여줄 강렬한 무대가 기대된다. 록 팬들에게 친숙한 국내 밴드의 면면도 있다. 싱어송라이터 ‘장기하’, 프로젝트 그룹 ‘혁오’, ‘선셋 롤러코스터’ 등이 완전체로 출연한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권위는 이미 증명됐다. 국내에서는 독보적이고 세계에서는 최정상이다. 역설적으로 2020년을 전후한 코로나 팬데믹이 계기였다. 공연 관람이 제한되면서 유사한 국내 축제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인천시는 과감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행사 주관사는 전 세계인에게 중계되는 맞춤형 축제를 창안했다. 그 결과 지금은 비교 대상 없는 국내 최고의 축제가 됐다. 세계적 밴드가 찾는 내한공연 무대가 됐다. 지난 18일 진행된 예매가 그 증명이었다. 당시 판매된 것은 블라인드 티켓이었다. 출연진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한 행사였다. 그럼에도 판매 시작 3분 만에 매진됐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대한 신뢰가 입증된 것이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록 축전의 효시다.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열렸다. 뉴욕주의 허허벌판 농장에서 시작됐다. 음반, 영화로 창출되는 가치가 천문학적이다. 지방자치는 무한 경쟁의 시대다. 인천시가 록을 통한 경쟁력에 도전했다. 시작은 ‘한국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이었다. 이제는 ‘인천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다. 2025년 축제가 그 목표를 또 한 번 정점으로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성공 개최의 예감이 확인되는 것 같다.
지난 29일자 경기일보 7면에 ‘무판차량’ 기사가 떴다. 번호판 없는 수출 대기 차를 말한다. 최근 이 무판차량들이 인천 연수구 무료 공영주차장을 대거 점령했다고 한다. 차 댈 곳을 못 찾는 시민들 불만이 크다. ‘풍선효과’ 때문이란다. 그간에는 중고차 수출상들이 무판차량들을 인근 이면도로 등에 뒀다. 민원이 잇따르자 구가 집중 단속에 나섰다. 설 곳을 잃은 무판차량들이 공영주차장으로 진출한 것이다. 넘쳐나는 무판차량에 따른 주민 불편은 오래된 얘기다. 그런데 이를 중고차 수출업체 입장에서 한번 보자. 옛 송도유원지 중고차 수출단지의 과포화 상태도 오래 됐다. 세계 중고차 시장 호경기는 이어지고 있다. 업체들도 죽을 맛일 것이다. 한국 중고차 수출의 메카를 자부하는 인천이다. 그러나 합법적 사업장 하나 없고 관련 인프라는 더욱 열악하다. 인천항을 통한 중고차 수출은 국내 전체의 80% 이상이다. 지난 2022년 40만4천653대에서 지난해 62만7천875대로 늘었다.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가 ‘스마트오토밸리’의 조성에 나선 지도 오래다. 인천 남항 인근의 중고차수출클러스터다. 중고차 2만대 수용 규모 실내·외 전시장과 유통시설, 정비소, 튜닝클러스터, 중고차 테마 공간 등이다. 기존 옛 송도유원지 일대에 난립해 있는 중고차 수출상들을 이전, 집적화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사업은 진척이 없다. 민간사업자는 현재 PF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총 사업비의 20%(496억원)를 조달해야 했지만 50억원 정도만 확보한 상태다. 이에 자금 조달 기한을 6개월 연장해 놓은 상태다. 현재 PF 시장의 침체 등을 감안하면 스마트오토밸리 사업이 언제 본궤도에 오를지 불투명하다. 지난 29일 국회에서 허종식 의원이 ‘중고차 수출 지원 정책토론회’를 했다. 전문가들은 중고차 수출 산업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스마트오토밸리 사업에 대해서도 단계적 조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남항 배후의 사업 대상 부지에 대해서는 임시 사용 권한 등을 앞당겨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고차수출클러스터의 조기 가동 전략이다. 이제 비상한 사업 전략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전환에 따른 세계 중고차 수출 시장의 지속 성장을 예고한다. 저개발국 등의 내연기관 중고차 수요 폭발 때문이다. 중고차 수출은 인천의 지역특화산업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 산업의 육성·발전에는 모두 무관심하다. 지역특화산업을 언제까지 ‘무판차량 불법주차’ 굴레에 방치할 것인가.
끔찍한 강력사건의 연속이다. 어린 초등학생이 숨졌고 교장선생님이 다쳤다. 흉기로 자행된 살인 사건에 이어 살인 미수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진 곳이 학교라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을 살해하고 학생이 교사를 다치게 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 ‘백년대계’의 시작이 돼야 할 장소가 범죄의 온상이 돼 버렸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의 한 고등학교. 이곳에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인 A군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교장선생님 등 학교 관계자 등 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 불특정 다수를 노린 계획범죄였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월10일에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가 8세 학생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우울증 문제로 휴직했던 이 교사는 지난해 12월 복직한 후 사건 당일 돌봄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어린 학생을 시청각실로 유인해 살해했다. 직장 부적응 등으로 인한 분노가 증폭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자인 학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상동기 범죄’가 학교 내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전 국민은 분노했다. 2023년 11월15일에는 남양주 소재 중학교에서 한 학생이 흉기를 휘둘러 주변 학생 3명이 다쳤고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에서, 12월 안산에서도 중학생이 교내에서 흉기를 휘두르며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내 강력 범죄로 학생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에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교사들의 두려움도 함께 커지고 있다. 내 아이도, 내 부모(교사 등)도 언제든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는 이제 법·제도적 감시를 받아야 할 공간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하루빨리 학생과 교원 모두 안전한 시스템에서 백년대계를 실행하는 법 및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가 강력 사건의 현장이 되는 것은 여기까지여야 한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한다. 언론에서는 ‘산이 건조해서’라고 원인을 설명하고 산림청은 ‘낙엽을 치워야 한다’는 정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응으로는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 산이 왜 건조한지를 정확히 알아야 예방도 가능하다. 산이 마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땅속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년간 경기도 광주의 야산에 센서를 설치하고 강우 전후의 토양 함수율을 측정해 왔다. 100㎜의 많은 양의 비가 내려도 경사면의 함수율은 14%에서 16%로 잠깐 올랐다가 하루 뒤 다시 14%로 돌아간다. 땅속까지 수분이 충분히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말라 있는 땅은 오히려 물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한 비가 쏟아지면 땅속으로 스며들기보다는 표면에서 흘러내린다. 오히려 마른 땅일수록 홍수나 산사태가 쉽게 발생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건물을 짓고, 도로와 주차장을 설치하고, 경관을 좋게 한다며 가지를 쳐내고 잔디를 심으면 빛과 바람이 숲 바닥까지 도달해 땅은 더 빠르게 말라간다.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는 산이 더 건조해지는 역설이다. 여기에 더해 산림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임도를 조성하고 자른 나무를 옮기기 위해 중장비가 다니며 다져 놓은 길은 물을 빠르게 배출해 산을 더욱 건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한다. 물을 모으고 머무르게 해야 한다. 산에 빗물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스며들 수 있게 ‘물모이’ 같은 작은 웅덩이를 만들자. 숲의 바닥에 낙엽이나 이끼를 그대로 둬 햇빛을 차단하고 증발을 줄이자. 이용하지 않는 논은 물을 가득 채워 두도록 유도하자. 나무를 베어 내거나 주변 경관을 조성할 때는 훼손된 땅 표면의 수분 상태를 원상복구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생태적 복원력 회복의 시작이며 산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이 아니라 수치 기반의 과학적 관리다. 지금 이 땅의 함수율이 얼마인지, 얼마나 유지돼야 안전한지를 알아야 한다. 강수량과 대기 중의 습도만을 중계방송하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땅속의 수분까지 측정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산은 저절로 마르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이제는 그 반대로 산을 촉촉하게 만들 방법을 선택할 시간이다.
런던의 블랙캡 택시 기사들은 도시의 2만5천개가 넘는 복잡한 도로와 골목, 2만개에 달하는 건물과 공공시설의 위치까지 모두 외워야 하는 ‘The Knowledge(지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활용하는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 속 ‘해마’의 크기가 일반인이나 정해진 노선만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마치 근육이 운동에 따라 발달하거나 위축되듯 뇌 역시 사용 방식에 따라 특정 영역이 발달하거나 퇴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러한 과학적 사례가 아니라도 ‘머리는 안 쓰면 퇴화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등장한 후 예전에는 잘 찾아가던 길도 헤매게 되고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하기 시작한 후에는 수십개씩 외우던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 못 하는 일이 흔해졌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묻는 기자에게 “전화번호부에 있는 것을 왜 기억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했던 아인슈타인의 일화처럼 이러한 기억의 아웃소싱은 한정된 두뇌 자원을 더 중요한 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단순한 기억이나 정보 처리뿐 아니라 핵심적 판단 능력까지 외주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동항법장치에만 익숙해진 조종사가 실제 매뉴얼 비행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거나 내비게이션만 믿다가 강물에 빠지는 사례들은 판단 능력을 외주화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자동화 편향’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시대의 징후이다. 듀얼 브레인,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개념이 일상화된 지금 AI는 단순한 정보 처리를 넘어 의사 결정과 창의력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부터 광고 기획, 작가의 창작 과정, 심지어 심리 상담까지 AI가 인간의 본질적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이성적, 감성적 판단마저 AI에 의존하게 되면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위축되듯 인간 고유의 사고 능력은 급속히 퇴화할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AI의 한계와 문제점을 이해하는 AI 리터러시를 강조한다. AI의 판단을 무조건 수용하지 말고 항상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의적 영역에서는 가급적 스스로의 능력으로 먼저 시도하고 AI는 검증이나 보완 도구로만 활용하는 접근법이 중요하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고 디지털에서 벗어나 전통적 취미 활동 등을 즐기는 정기적인 AI 디톡스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도구이자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이는 동반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도구는 도구일 뿐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최종 결정과 책임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 도구가 사용자를 대체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위축된 근육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AI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완전히 매몰되기 전에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정기적인 ‘생각운동’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단단한 닻이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포천의 겨울은 늘 새하얀 눈과 함께 반가운 북적임으로 가득했다.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이자 포천의 대표적 관광지였던 ‘베어스타운’ 덕분이다. 스키와 보드를 즐기려는 관광객,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지역 상권은 포천의 겨울을 든든히 지탱하는 축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포천의 겨울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있다. 리조트 주차장은 비어 있고 주변 상가는 문을 닫은 채 한기를 품고 있다. 베어스타운을 운영하는 이랜드는 2022년 겨울부터 리조트 운영을 중단한 채 매년 휴업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시설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이며 이와 관련해 포천시는 수차례 공식 회의 요청과 협의 제안을 전달했지만 이랜드 측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기업이 수익을 고려해 판단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동안 상부상조해온 지역 상권과의 일방적인 단절은 지역주민과 상인들이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벼랑으로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상권 파트너로서 연결돼 있던 그 어떤 역할과 책임도 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랜드의 침묵은 단순한 사업 중단을 넘어 지역 공동체와의 소통 단절이라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랜드만을 탓할 수는 없다. 포천시 역시 주민들과 상인들이 수년째 제기하고 있는 불편과 피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보여주지 못했다. 체육시설법상 민간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강제 조치는 어렵다는 행정기관으로서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간 포천시는 이랜드 측에 여러 차례 활성화 논의를 요청하며 눈썰매장과 같은 일부 시설이라도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그러나 이랜드의 무응답 속에 이마저 진전이 없었고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시의 대응이 소극적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베어스타운 인근 상권 지역은 생기를 잃고 있고 주민들과 상인들은 뚜렷한 대책 없이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포천시의회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포천시의회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포천시에 전달하고 베어스타운 운영 주체인 이랜드를 상대로 간담회나 질의 등을 통해 기업과 지역 주민 간의 입장을 서로가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또 장기화되는 휴업으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는 지역 상권에 대해서는 상권 피해 실태를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긴급지원금 지급이나 공실 임대료 지원과 같은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집행부에 적극 촉구할 예정이다.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관련 기관의 새로운 정책 구상과 보다 능동적인 행정, 그리고 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침묵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포천의 겨울이 다시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민 모두의 공통된 소망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언어는 삶을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는 무기이자 방패이며 때로는 유일한 친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어는 국내에 정착한 이주민들에게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방언이자 내일로 향하는 다리가 돼 왔다. 병원에서 몸 상태를 설명하고, 자녀의 담임교사와 대화를 나누며, 일터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 이 모든 것이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비롯되는데 그 출발점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하 토픽)이 있다. 이 시험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 왔다. 외국인에게는 대학 입시, 취업, 체류 자격 심사, 귀화 등에서 필수 혹은 결정적인 조건이 되는 시험이기에 단지 점수를 매기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 보트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중요한 제도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 기업에 넘겨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이 시험의 운영을 네이버 컨소시엄에 맡기려 하며 그 대가로 민간은 10년에 걸쳐 전면 운영과 수익 창출권을 보장받는다. 3천억원이 넘는 사업비는 모두 민간 자본이 부담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이윤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에서 가장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시험이 공공의 품을 떠날 때 그것은 언어교육 전체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됨을 의미한다. 응시료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시험 준비를 위한 학습 콘텐츠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따라 유료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한 사람의 삶이 달린 시험이 이제는 지불 능력에 따라 접근 가능한 공산품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교육을 대신하고 이윤이 권리를 대신하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변화는 시험장 너머의 세계, 곧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이미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오늘도 수업을 준비하며 밤 늦게까지 강의안을 다듬는 이들 중 다수는 몇 달짜리 초단기 계약서에 서명한다. 유급휴가는커녕 퇴직금조차 꿈도 꾸기 어렵다. 학생 상담, 평가, 외부 활동 같은 수업 외 활동은 사명감과 봉사정신이란 이름으로 무보수로 강요되고 현재 교육법상의 교원으로도 명시돼 있지 않아 그 어디서도 정식 교원의 신분을 인정받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헌신 위에 한국어의 세계화를 쌓아 올렸지만 그 누더기 같은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무심했다. 국외를 보면 외국인을 위한 자국어 시험이 공공 기관이나 비영리 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TOEFL은 비영리단체가, DELF·DALF는 프랑스 정부가, JLPT는 일본 외무성이, HSK는 중국 교육부가 운영한다. 이들은 언어를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교육의 신뢰를 지키며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토픽이 민간 기업의 독점 체제로 넘겨진다면 그것은 국제적 기준에서나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선에서 한참 벗어난 결정이다. 무엇보다 이 시험은 수많은 이주민과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이나 다름없다. 시험장에서 느끼는 존중, 결과에 담긴 공정함, 응시 과정의 접근성은 한국 사회에 대한 첫인상으로 각인된다. 그 첫인상이 이윤에 의해 재단된다면 우리는 언어와 교육을 통해 다가가야 할 세계와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토픽이란 단순히 언어 시험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길 위에 서 있는 삶이다. 말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고, 삶을 설명하게 하며, 꿈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언어는 고립된 사람을 세상으로 꺼내주는 손길이자 존재의 근거다. 그러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누군가가 시험 비용 때문에 그 문턱에서 돌아선다면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시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의 것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시험은 문을 열기 위한 것이지 닫기 위한 것이 아니며 언어는 서로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한국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한국 사회에서 뿌리 내리기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워 가는 과정이 고통이 아닌 기회가 되려면 교육은 언제나 공공의 이름으로 존재해야 한다. 누구든, 어디서든, 조건 없이 배우고 자랄 수 있는 언어 환경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한국어 교육의 미래다. 그 길 위에 토픽이 다시 공공의 이름으로 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