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분위기속 노인정의 하루

“예년같으면 선거철을 앞두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 심심하지 않았는데…” 25일 오후 3시 수원시 장안구 신안동 신안노인정. 20여평의 규모의 노인정 방에는 20여명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화투, 장기 등 오락을 즐기고 있었다. 전국이 떠들하게 하는 낙천·낙선 운동 등 선거철을 앞둔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는 이곳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예년에는 국선, 지방선거 등 크고 작은 선거마다 마을 노인들의 한표를 의식한 선거운동원들이 과일, 떡, 음료수 등을 들고 찾아 왔었는데 이제는 좀처럼 볼수가 없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 외로운 우리로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종잡을 수 없어. 하하하” 세상사에서 밀려난 듯 푸념섞인 목소리로 장기판을 훈수하던 김철수(71)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과거에는 선거철이면 좋든 싫든 간에 선거관계자들이 노인들을 공경하는 척은 해 심심하지는 않았다는 이 노인은 공명선거와 함께 경로사상까지 사라지고, 노인은 관심밖으로 밀려난 세태를 아쉬워 했다. 잠시후 한 노인이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을 뚫고 노인정으로 들어왔다. “에이 갈곳이 없어 또 왔네.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어른을 보고 인사도 안해” 밖에서 불쾌한 일을 당했는지 이 노인은 투덜댔다. 화투를 하던 한 노인은 선거기간동안 후보자들이 마을 노인들에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봐줬으면 좋겠다며 자신들의 외로움을 반영한 뼈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의 발길은 뚝 끊겼어” 연일 계속되는 한파가 우리의 따뜻한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게 한 것 같은 현실의 쓸쓸함을 더 했다. /김창우기자 cwkim@kgib.co.kr

농아자 경찰관

“교통사고를 당한 청각장애인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5일 오후 2시 경기경찰청 5층 대회의실. 2백여명의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경찰대개혁 100일작전 수범사례 발표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광명경찰서 수사2계 하삼종경장이 농아자처럼 수화로 인사말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하경장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농아인과 경찰관의 대화’(http://members.tripod.co.kr/ha3ball)를 마련, ‘농아자 지킴이’로 작은 개혁을 실천하는 주인공. 하경장이 청각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96년. 민원상담은 물론 범죄신고 접수를 위해 마련한 전용팩스를 설치하면서 부터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청각장애인으로부터 ‘환자를 도와달라’는 SOS를 접수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직접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진단결과 이미 3일전 난소가 파열돼 복막염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그러나 병원에는 수화를 할줄 아는 직원이 없었다. 이에따라 하경장은 수술과정에서 의사에게 수화통역을 자청, 환자의 생명을 무사히 구했다. 이 병원간호사 2명은 현재 환자를 위해 수화를 배우고 있다는 것. 얼마전에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 농아자가 화난 표정으로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을 방문,손짓 발짓하며 경찰의 사건처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확인결과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빚어진 오해에서 비롯됐다. 하경장으로부터 수화로 자초지종을 설명들은 농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경장은 “앞으로 사랑의 수화교실운영은 물론 경찰기본수화교본을 만들어 친근한 경찰상 정립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음지에서 소리없이 작은 개혁을 실천하는 하경장의 모습속에서 경찰의 친절 바로바로티터가 어느정도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신동협기자 dhshin@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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