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경기교육] 게임·그림·뜨개질 동아리 “금요일엔 열정 불태워요”

부천 석천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정해진 동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반마다 각기 다른 동아리를 만들 수 있다. 6학년 2반에는 모두 다섯 개의 동아리가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부서는 보드게임부이다. 보드게임을 원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두 개로 나눠져 있다. 동아리명은 ‘우당탕탕 보드게임’과 ‘보드게임 생산부’이다. 나는 보드게임 생산부 동아리이며, 우리 동아리에서는 루미큐브, 도블, 치킨 차차, 부루마블, 쿼리도, 슬리핑퀸즈 같은 보드게임을 같이 하고 있다. 같은 보드게임 동아리이지만, 우당탕탕 보드게임부에서는 해적 룰렛이나 인생 게임, 할리갈리, 우봉고 같은 우리와 다른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보드게임은 치킨 차차이다. 치킨 차차는 팔각형 타일을 하나씩 뒤집어 자기 닭 앞의 타일과 같은 모양이면 한 칸씩 전진하는 게임이다. 기억력이 승패를 좌우하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두 번째는 토론패드 12세대 프로라는 토론부이다. 매주 정해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며, 언뜻 동아리 이름으로만 보면 재미없어 보이지만, 진짜 재미없는 동아리라고 소개해 웃음을 주었다. 지난 토론 주제는 ‘학급 임원은 꼭 있어야만 하는가’였다고 한다. 양편이 팽팽히 맞선 상태로 토론이 끝나 학교 임원의 유무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도 들을 수 없었다. 세 번째는 대코바늘 공작소로 뜨개질 동아리이다. 이번 1학기에는 만두, 라벤더, 병아리 등을 만들고 있다.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마지막으로 우잘그라는 그림부이다. 우잘그는 ‘우리 좀 잘 그리는 듯’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지는 않지만, 그림 실력을 키우고 싶은 친구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이다. 매주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각자 개성에 맞게 그림을 그린다. 저번에는 오일파스텔로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다른 반에는 우리 반과 달리 댄스동아리나 신문부, 창의놀이부, 만화 그리기 등의 동아리가 있다고 한다. 동아리 시간은 매주 금요일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안 그래도 사랑스러운 금요일인데, 동아리 시간까지 있어서 더 기대되는 요일이 됐다. 김가율 부천 석천초 통신원

[꿈꾸는 경기교육] 수학·과학 부스체험… 흥미·자신감 ‘쑥쑥’

수원 산남중학교(교장 곽봉준)는 학생들에게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제11회 수원시 초등학생 창의력 수학체험전’을 개최했다고 14일 밝혔다. 산남중은 지난 9일 열린 수학체험전에서 수원 지역 동부학군 15개 초등학교 고학년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수학 및 과학 부스 체험활동을 운영했다. 수학체험 부스에선 정이십면체에 센서 발광볼을 넣어 아름다운 조명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플라워 정이십면체’ 체험부스 등을 비롯해 테셀레이션 모자 만들기, 요시모토 큐브, 오더리 탱글 등 7개의 재미있는 체험부스가 열려 학생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과학체험 부스에선 자기력을 이용한 ‘공중부양 자석 팽이 만들기’ 등 3개의 체험부스가 운영, 학생들이 생활 속에 숨어있는 과학의 원리를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체험부스는 산남중 자율 동아리인 창의수리반과 영재반 학생들이 직접 기획해 개념과 원리를 설명해주는 지식의 나눔 봉사 활동으로 운영됐다. 곽봉중 교장은 “수학 체험전을 통해 생활 속 수학적 원리를 직관적으로 깨우치고 수학의 유용성 및 심미성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의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민훈기자

[꿈꾸는 경기교육] 청소년에게 교복의 의미

우리 부모님 세대의 학교는 우리가 다니고 있는 학교와 비교해 엄격했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은 그 당시 공연히 벌어졌던 일이었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문화였다. 체벌 이외에도 학생들의 자유권을 침해했던 두발 및 신발 규제 등이 학생인권조례(201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이 가장 먼저 공포)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면서 대부분 사라지거나 완화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생활하거나 통학할 때 입는 제복 즉, 교복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학생 입장에서는 학교가 학생들이 입을 옷을 ‘강제로 규정하고, 학칙에 규정하지 않은 사복을 입을 시 징계가 있으니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학생들의 자유권을 존중하지 않는 규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생활하거나 통학할 때 만큼은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복을 입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비행 청소년의 증가, 옷 구매에 대한 가계 부담, 빈부격차이다. 이에 대한 부분은 교복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1983년 당시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을 막았던 통행 금지령이 해제되고, 머리도 자유롭게 기를 수 있는 두발 자유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학생들의 교복 자유화도 함께 이뤄졌다. 그러나 교복 자유화가 이뤄진 지 3년 뒤인 1986년 교복 의무화가 다시 실시됐다. 그 이유는 학생이라는 소속감과 책임감을 주던 교복이 사라져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구분할 수 없게 되자 학생들의 비행, 탈선, 범죄율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또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였던 양육비 부담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우려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청소년기 학생들은 외모에 무척 신경을 쓸 나이이다. 학업에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외적인 고민을 없애주고 학생들이 입는 옷에서 드러나는 빈부격차를 드러내지 않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신분 표시이다. 이것은 첫 번째 이유인 비행 청소년의 증가에서도 나왔지만 요즘 학생들은 교복이 없다면 성인으로 보일 정도로 외적으로 성숙하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알려 술과 담배를 쉽게 살 수 없게 만들고, 학생들 역시 자신의 행동에 유의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또 우리나라 미래와도 같은 학생들이기에 신분을 나타내는 교복은 사회에서도 제1순위로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고 쉽게 나타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교복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굳이 교복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멋과 창의성을 뽐낼 기회와 프로그램은 학교에 충분히 마련돼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교복 착용에 대한 여러 장점은 청소년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교복 자율화 보다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 개성과 창의성을 뽐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강민주 하남 감일중

[꿈꾸는 경기교육] 혐오로 인한 갈등 사회

평소 확인하는 뉴스를 보니 첫번째 댓글이 “너희들은 왜 이렇게 선동과 날조를 하니?”였다. 다른 뉴스에서는 “ㅇㅇ이 사실 성형한 인조인간이라고 함”이라는 인신공격 댓글들이 많이 있었다. 요즘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이처럼 얼굴이 찡그려지는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다른 집단을 욕하는 글이다. 이런 글들은 영상, 게시글, 댓글을 가리지 않고 유튜브, 뉴스 등 사이트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종, 세대, 종교, 문화, 신념도 가리지 않고 서로 싸운다. 그 글 대부분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비방글이다. 이러다 우리나라가 분열로 먼저 망할 것 같다. 이 같은 거대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봤다. 우선 우리의 오랜 역사와 연관돼 있는 인간의 혐오 감정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혐오의 감정을 여러 목적을 가지고 활용해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시절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KCI에 있는 ‘혐오와 지배’란 논문을 보면, 혐오 감정은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불결하다 느끼는 것을 배제하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면 자신이 힘들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감정을, 남을 혐오하며 풀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노인을 공격하는 일들이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열등감을 느껴 힘없는 사람을 공격하는 예이다. 또 해당 논문은 혐오와 지배의 관계를 설명한다. 혐오가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는 것을, ‘마녀사냥’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각 정당이 상대와 그 지지자들을 공격하고, 그 지지자 다수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도 무차별 공격한다. 이것은 더 큰 분쟁으로 벌어진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심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여, 야 갈등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오랫동안 패인 감정의 골은 쉽게 메꿔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알아보기도 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코로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코로나가 일어난 후 혐오 발언의 횟수’를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중국과 관련된 인종차별 발언의 횟수가 코로나 초기에 등장했으며 이태원 클럽 확진 때 성소수자, 대구 확진 때 지역혐오, 신천지 확진 때 종교 혐오 발언이 심하게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힘든 상황은 당연히 해외도 마찬가지이다. 서양권의 반아시아혐오 감정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술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인터넷은 이전에는 불가능하던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한 나라 안에서, 또 국가 간 낮아진 장벽은 인종, 세대, 종교, 문화, 신념이 다른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했다. 다양한 의견은 존중돼야 하고 어우러져 살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은 빠르고 쉽게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는 이러한 수단을 악용한다. 그래서 거대 집단들을 만들고 자기들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혐오라는 본능을 이용해 심각한 갈등을 일으킨다. 우리의 갈등과 혐오가 많아지고 있다 해도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는 갈등 연구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갈등 사례를 정리하고 있다. 그 외에 한국갈등관리연구소, 한국갈등해결센터,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등이 우리나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남을 혐오하는 대부분은 본인의 욕구, 감정을 해소하고자 남을 혐오한다. 갈등은 일상에서 계속 일어나는 일이며 혐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누군가 그냥 미워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정보를 모아 판단하고 주장하며 때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남을 비난하기보다는 잠시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경찬 안산 양지중

[꿈꾸는 경기교육] 안양 부흥중 “우리 모두 노담 실천해요”

안양 부흥중학교(교장 최희진)는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학생회 주관으로 학교 정문과 후문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흡연 예방 및 친구사랑 생명살림 캠페인을 벌였다. 이번 캠페인은 금연 상담과 금연 홍보물 만들기, 금연을 약속하는 포토존 사진 찍기 등 활동으로 꾸며졌으며, 학생들이 만든 흡연 예방 동영상도 상영됐다. 또 ‘장난과 재미로 포장된 나쁜 말과 행동은 친구에게 영원한 상처’라는 문구로, 친구사랑 생명살림 활동 캠페인도 전개됐다. 캠페인에 참가한 3학년 학생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흡연했을 때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알게 됐는데 자기 몸도 금연 구역임을 인식하고 흡연하는 일이 절대 없어야겠다”고 말했다. 1학년 학생은 “자신이 받고 싶지 않은 상처를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전했다. 캠페인 활동에 참여한 김국희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며 다시 한번 흡연 예방 및 친구사랑 생명살림의 의지를 다지게 됐다”며 “앞으로도 학교와 학교 주변 순찰 활동, 캠페인 활동 등을 지속해서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양=박용규기자

[꿈꾸는 경기교육] 서로 이해하려 한 적이 있는가

얼마 전 다리 골절을 당해 수술을 받았다. 이후 다리가 회복될 때까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모든 곳을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녀야만 했다. 휠체어를 타는 데 크게 불편한 점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매 순간 주의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내리막길에선 낙상 사고를 조심해야 했고 엘리베이터에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기다려야 했다. 가장 불편함을 크게 느꼈던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평소 장애인 화장실을 보며 ‘저렇게까지 넓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사용해보니 터무니없이 좁아 행동에 제약이 많았고〈E06A〉 드나드는 데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휠체어를 경험하고 난 뒤 공감하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퇴근길과 출근길에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직장인〈E06A〉 학생 등 시민들은 “40분째 지하철 안에 갇혀 있다” 등 많은 불만을 쏟아냈다.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들은 기획재정부〈E06A〉 보건복지부 측과 간담회를 열고 장애인 권리예산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시위를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며 그들을 비난했다. 그들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로 인해 불편함을 겪어야 했던 몇몇 시민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지하철 이동권 시위를 반대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오며 이 시위를 막자는 내용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선 “시민 분들이 전장연 사람들을 내보내거나 승강장까지 들어오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를 점거하라”는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사회 갈등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양측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위로 인해 일상생활에 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그들의 시위 방법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E06A〉 전장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반면 시위를 행하는 장애인들은 우리가 귀 기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에〈E06A〉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아 지하철 승하차와 같은 방법을 택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일방적인 비난보다는 서로 입장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그들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하더라고 장애인에 대한 혐오 발언. 폭력 행동들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 장애인들도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뤄내기 위해 이 같은 방법 대신 새로운 방안을 찾아내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배서현 안양 귀인중

[꿈꾸는 경기교육] 학부모와 교사, 학생성장 위한 ‘교육 동반자’ 돼야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들로부터 학교의 폐쇄성에 대한 답답함을 듣곤 한다.미흡한 정보공개, 충분치 않은 교육활동, 적극적 반영 없는 민원 처리 등 학부모가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문턱과 공간이 너무 좁다는 이야기들이다. 학교 교육 참여를 원하는 학부모들을 교문 앞에서 멈추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학교를 망가뜨리는 민원이라는 공포 학부모와 학교 교육의 연결 지점은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자녀에 대한 생활 지도의 문제, 두번째는 교수학습(수업)에 관한 것이다. 내 자녀의 학교 생활 문제를 상담이라는 ‘교육적’ 접근이 아닌 시시비비를 가리는 ‘민원’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 수업 종 이후 교실에 안 들어오는 학생의 등을 선생님이 손을 대었다면 때린 것인가 단순히 민 것인가? 잘못을 지도하는 교사의 말들이 인격을 모독한 것인가, 훈육 이었나? 이런 갈등이 관계, 대화, 공동체를 중시하는 ‘교육적, 회복적’ 지도로 해결되지 않고 ‘처벌적, 응보적’ 갈등으로 크게 비화되곤 한다. 교육행태를 학교와 교육청의 각종 위원회에서, 혹은 법원에서 무게를 달고 비교를 해 처벌 내리게 되는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학생)의 ‘교육적’ 관계가 이처럼 ‘민원화’되는 현상이 과거엔 신문보도의 일부로 장식됐었다. 그러나 요즘은 교육청 단위마다 매년 1~2건씩 크게 사건화되기도 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은 교사가 퇴직했다는 소문까지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악성 민원이 점점 우리 학교로, 혹은 옆반 선생님으로 가까이 오게 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교사들에게 학부모와의 돌발적 관계는 교직생활을 위협하는 신호로 여겨진다. 이 같은 경험들이 축적돼 일상적 공포로 다가온다. 교사는 본능적으로 관계 맺기를 멀리하게 돼 학부모와의 협력적 관계까지 멀어지게 만든다. ■ 넘쳐나는 교육활동, 부모의 역할까지 요구되는 교사 두번째로 교수학습(수업)에 대한 민원이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 수업은 너무나 쉽고 간단한 지식 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널려진 수 만가지 교육적 활동들을 학교가 등한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사가 교육해야 할 내용은 과거와 달리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교육과정 재구성과 진로, 자치 활성화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 수많은 교육 사업 등 이전과 다른 업무들이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계속 더해지고 있다. 학교의 수업량과 행정업무는 학부모의 학생 시절에 비해 2배는 족히 늘어나 있다. 최근엔 본연의 ‘교육’ 말고 ‘돌봄’과 ‘보육’의 영역까지 학교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 교실에 60-70명이 있어도 끄떡없던 과거와 달리 인성과 생활지도의 부담은 거의 수업의 무게를 넘고도 남을 만큼 증가했다. 갈수록 학교에 요구되는 것은 많아지고 학교의 역할은 이미 포화 상태다. 이로 인해 학부모 참여에 대한 외부의 기대와는 달리 실제 학교로 학부모가 들어올 수 있는 교육 영역은 좁아질 수 있다. 이미 외부로부터 업무 포화 상태인 교사에게 학부모의 참여는 민원 갈등의 부담과 공포가 내 교실로 들어오는 것이자 교육해야 할 또 다른 교과가 생기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3주체의 당위론으로 교육 활동에 학부모가 참여해야 한다는 제도적 압박은 학교와 교사에게 여간 부담이 아니다. 제도의 변화는 학부모의 교육 참여가 ‘민원’의 해결 수단이 아닌 ‘교육적’ 참여가 될 수 있는 문화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한다. ■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를 위한 협력자가 돼야 먼저 교육은 ‘공공재’라는 합의가 우선 돼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과 사적 욕망의 창구로서 3주체의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학부모 및 교사가 함께,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을 아우르며 성장을 도모하는 공동체임을 잊어선 안된다. 모든 학부모에게 내 아이의 이익과 행복은 우선 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동체 문화에선 ‘수업을 방해하는 아무개를 전학 보내라’ 식의 사사로운 민원성 전화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학교는 성별, 사회 계층, 신체적 결함과 관계없이 어울리는 공동의 장소가 되도록 ‘교육적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 학부모에게 공동체적 협력자가 될 수 있는 교육이 정기적,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교육엔 교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 교육의 맥락을 볼 수 있는 학부모의 교육 참여가 되어야 학교는 많은 양의 정보를 홈페이지와 정보공시, 학교운영위라는 제도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양의 종이와 게시물로 학교를 들여다 보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문서에 담지 못해 글자로 정량화 할 수 없는 교사와 학생의 피드백(교수-학습), 상담, 행정업무 등이 산더미처럼 존재한다. 교실의 교육을 제대로 보기 위한 학부모의 다양한 참여 방법이 기획돼야 한다. 그래야 왜 학교는 힘들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교실 교육 너머 지역사회로까지 나가기 어려워 하는지, 오지 수업에서 알 수 있는 학생들의 언어와 행동양상은 무엇인지, 교사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비인지적 정서적 측면의 이해와 대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학교 교육의 속살까지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생업으로서 교육하는 교사와 달리 부가적으로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학부모는 역할과 책임의 크기가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들 한계를 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먼저 이해하는 태도가 전제돼야 ‘공동체’로서 학교 교육을 일궈나갈 수 있다. 공정욱 부천 원종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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