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흔들려요 공간 확보 됐는지요 머물 곳 좁은 곳은 담을 곳도 비좁지요 촘촘히 흔들린 진동 얼이 깃든 집이라 가늘고 긴 속 옛말, 굴레 쓰고 쏟아낼 때 배웅나온 한치 혀끝, 웅숭깊게 숨겨놓고 세 치 끝 밀집한 언어 한 점 쉬고 쏟는 말 너 떨고 나 떨릴 때 점 찍을까, 빨간 점을 우연일까, 곡선 따라 오르다가 하강하는 얼 담긴 소리를 물어 깊고 깊게 찍은 점 살아가며 오르막길 없지는 않겠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가풀막도 뛰어넘는 내리막 조심스럽게 발로 찍는 점 하나 송유나 시인 2008년 ‘월간문학’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설록차문학상·경기시인상 수상. 경기대학교 출강. 사회복지학 박사.
길가의 회화나무 몽실 몽실 꽃피우고 고고하게 웃고 있네 너무 예뻐 시샘한 비바람이 불어 꽃잎이 춤추며 땅 위로 나비처럼 내려 앉았네 오, 여름 날 회화나무 아래 소복소복 꽃눈이 쌓였네 신영희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빼곡히 쌓인 책들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스쳐 가는 아쉬움에 꿈길에 든다 다시 오마 떠났지만 야속한 마음과 걱정에 몸은 야위어 가고 낯선 손길이 내 몸을 무심히 펼쳐보고 어둠으로 집어넣는다 언어들의 넋두리가 서글프게 피어올라 식어 버린 몸을 태운다 박광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수원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문학과 비평 회원.
펑펑 울고 있는 하늘, 마음껏 울 수 있어 좋겠다 마음껏 퍼부을 수 있어 좋겠다 물비린내 나는 도시, 해무로 뒤덮힌 바다처럼 뿌였다 축축이 젖은 회색 건물들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책들같이 처량하다 마음껏 울고 싶다 가로수들도 펑펑 눈물 흘린다 철석이는 파도 소리를 내며 바쁘게 달리는 차들이 도시의 울음을 삼킨다 내일은 장맛비에 세수한 밝은 해가 뜨겠다 길가에 웅크린 꽃들이 얼굴을 든다 김경점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우주에 별 하나 나는 그 안에서 술을 마신다 외로움 한 잔 서러움 한 잔 외롭지 않기 위하여 서럽지 않기 위하여 혼자 술을 마신다 정택상 시인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인마을’ 동인. 농학박사. 시집 ‘치유의 숲’
지금 비가 와서 좋다 내 맘 흐트러놓은 거친 바람이 좋다 꽃이 지는 이유를 바람은 알까, 고운 선율 장마 빗소리와 어우러진다 비 젖은 수국도 바람 따라 춤추고 나는 청보라빛 여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여름을 타고 언덕 넘어 온 바람을 머물러 있게 할 수 있겠다 이숙아 시인 2018년 ‘문예비전’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집 ‘그리운 이름’
봄 햇살 스포트라이트로 가득한 시인마을 뜰에 글꽃 씨앗을 심는다 글삽으로 고른 흙 속에 꼭 꼭 심은 씨앗 봄 단비 보슬보슬 내리는데 될 놈은 떡잎부터라며 매일 토닥토닥 북돋아 정성을 들인다 꽃비로 먼저 내려온 벚꽃들은 마음 깊이 파고 들어 시간이 지나야 아름다워진다, 밝히고 향기로운 글꽃 피우려는 사람들 오늘도 시인마을 뜰에 마음 모아 글삽을 깊이 꽂는다 강부신 시인 ‘문예비전’ 등단.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바닷가에 갈 때 마다 주워 온 돌멩이, 울릉도. 영흥도 멀리 모로코 바다에서도 가져 왔다 돌멩이가 쌓이고 추억도 쌓여 목련 나무 아래 돌탑을 세웠다 두 손 모아 받들고 지성으로 빌면 저 하늘이 들어 주실까 사무치는 그리움 나의 꿈이 얹어지는 돌탑이 높아져 간다. 이경자 시인 2004년 ‘문예비전’ 등단.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제9회 홍재문학상 수상.
황량한 땅에 정직한 자유의 물줄기를 끌어드려 시내를 만들고 시냇가에 민주주의 나무를 심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보지 아니하시랴 순진한 백성을 속여 시내에 수렁을 내고 심긴 민주주의의 뿌리를 뽑으려 해도 뽑히겠느냐 독사의 혓바닥이 날름대는 방탕의 홍수에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凱歌)를 부르겠느냐 심으신 이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열리라’ 하시니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어 선한 칼을 들어 독사의 목을 쳐서 불 못에 던지우리라 정순영 시인 시집 ‘시는 꽃인가’, ‘사랑’ 외 7권. 부산시인협회장, 한국자유문인협회장, 동명대학교 총장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외 다수 수상.
“등 좀 밀어 다오” 어머니의 가녀린 목소리에 일 하던 손 멈추고 들어간 욕실 돌아 앉은 어머니의 등 겨울 나뭇가지처럼 야위어 만지기도 서럽습니다 눈물이 어머니 등을 적십니다 너무 젊어 자식의 길 몰랐던 시절 “부디 오래 사세요” 어머니의 등을 밀어 드리며 용서를 빕니다. 김옥희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멈춘 손 우두커니 참기름병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객지 나가 잘 여물어온 콩 덜 여물어온 콩 더 나눠주지 못해 아쉬운 커다란 손 한 줌씩 퍼 담으며 보내야 할 보따리 싸놓고 보면 텅 빈 그릇만 덩그러니 두 개만 남겨놓고 제 자리로 들어앉는 그릇들 꺼내 놓으면 달그락 달그락 북적거리고 보낼 땐 허탈한 마음만 따라 나선다 등 뒤로 멀어져가던 그 막연한 그리움의 시간 들 이제야 알것 같은 커다란 어머니 손 조병하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옛날로 편지를 쓰고 싶다 고향 마을 어릴 적 동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다 징검다리 건너 사과밭 길 함께 걸었는데, 어디서 살고 있을까 덧니가 예뻤던 그 아이. 우체국에 가면, 한 장 엽서로 고향으로 돌아가 새가 되어 이 들녘 저 마을 앞산 뒷산 맘껏 날아다니고 싶다. 임하정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방심한 순간이 있어 비상의 날개 짓은 이방인이 되어 박제된 틀 속에 갇혀 어제를 잊었다 걸음을 멈출 수 없어 은빛이 솟구친다, 내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신뢰로 섬기며 다가오는 내 뜰안의 이야기 이 무슨 능청, 해학인가 남들보다 좀 서툴면 어떠한가 세상에서 서툴지 않은 사람 있는가, 오늘도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한다 이병희 시인 시집 ‘병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방년 77세 타임머신을 타고 ‘청학’의 동산에 스무 살의 날개를 펼쳤다. 보릿고개 시절 가난의 설움은 여기 젊음이 역동하는 동산에서 팡팡 터지는 꽃봉오리들 봄의 향연에 날려 보내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감사의 봄물이 흐른다 희망을 품은 푸른 학의 비상을 위하여 만학도 여대생 캠퍼스 푸른 동산에서 목련꽃, 벚꽃들의 미소를 화사하게 피운다 *청학 : 오산대학교 상징의 새 심평자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미소 띠며 돌아 앉은 뒷모습 무정도 하네 청산도 앞, 뒷모습 다른데 사람이야 그럴 수 있지 문제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갈등 없는 세상 어디 있으랴 햇살 아래 높였던 자존심, 어둠 내린 길목에서 뒷 모습이 웃고 있네 안명순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문학박사.
서리 서리 묻어두고 차마 하지 못한 말 당신 떠난 후에야 가슴에 이는 분홍빛 숨결 절절히 붓끝으로 흘러 내립니다 당신의 사랑은 오월의 햇살보다 따뜻했고 장미보다 붉었습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김도희 시인 시집 ‘나의 현주소’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2023년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
시냇물 흐르는 수양버들 아래서 버들피리 불며 밀짚모자에 사랑을 담았네,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메아리로 멀어지는 그림자 밤 깊은 뒤안길에서 포근히 감싸주던 사람 가슴 저리도록 보고 싶다 목련꽃 한잎 두잎 떨어지는데 여정의 길목에서 소리쳐 부르는 그리운 사람이여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나, 내 마음 같은 호수 변함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심장에 뛰는 그리움은 오늘도 잊지 못해 행여나 기다린다 장경옥 시인 시집 ‘파꽃’ 2021년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 ‘한국시학’ 회원
언덕에서 내려다본다 한옥 지붕들이 가지처럼 담장 사이로 뻗어가 있다 한낮에도 간판은 환해서 줄지은 나무들도 봄은 이른 영업이다 골목은 살구 꽃향기를 세놓은 듯 여기저기서 코끝을 불러들이고 북촌에서 한복은 봄꽃과 같다던데 까르르 웃는 외국인들 흐드러지면서 살랑바람으로 걷는다 각기 다른 말도 색깔이 있어 끼리끼리 군락을 이룬다 저들이 맞는 봄은 고국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리리라 검은 피부에 커다란 눈의 여인이 옷고름을 고쳐 매는 중이다 북촌의 토요일이 아무도 모르게 사르르 풀리고 있다 이숨 시인 시집 ‘구름 아나키스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한세대학교 겸임교수
어디쯤 왔나 마중 나갔네 들녘에서 귀 기울이면 흙 속에 뿌리 내리는 달래 냉이 꽃다지 씀바귀 어린 잎들이 반겨 주었네 겨울이 삼월 속으로 떠나고 햇살 따사로운 들녘에서 사람들이 밭을 갈며 평화롭게 봄맞이를 하고 있었네 아,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생명들의 푸른 소리여 노고지리의 노래여, 풀 내음 향기로운 들녘에서 봄을 찾았네 신영희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정형외과에 가면 침대마다 할미꽃들이 누워 있다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허리야 한 세상 짊어지고 살아온 등뼈가 마디마디 쑤시고 아프구나 그 곱던 봄날은 다 어디로 갔나 그 어여쁘던 눈웃음은 누가 가져갔나 할미꽃들이 할미꽃들을 붙잡고 서로의 가슴을 쓸어주는 정형외과 아, 봄날은 슬퍼라 봄이 와서 더더욱 슬퍼라. 윤수천 시인•아동문학가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수상. 1976년 동시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