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버선을 벗고 흙으로 지어주신 맨발로 걷는다 흙이 흙끼리 만나니 반갑고 아름다운 이의 회목을 좇으니 숨 가쁘지 않다 청량한 숲 바람에 산새소리가 거룩한 찬양인 듯 즐겁고 하늘빛 이끌림으로 오를수록 행복하다 정순영 시인 시집 ‘시는 꽃인가’ 등 8권. 부산시인협회 회장, 동명대학교 총장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세종문화예술대상 등 수상. ‘4인시’ ‘셋’ 동인.
물은 순응하며 흐르고 갈 길을 가기 위해 큰 바위와 작은 돌을 비켜 가고 돌아가면서 잔잔한 경음악을 연주한다. 때로는 생명수를 주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땅속으로 스며들어 동식물과 인간의 생활 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순진한 물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때는 온 힘을 모아 괴성을 지르며 상대를 넘어뜨리고 지상을 파괴하거나 뒤집어 놓으면서도 반드시 갈 길을 간다. 세상에서 강력한 적응력으로 평소에는 아래로만 흐르는 겸손한 물의 생태적인 삶은 우리 인간이 배워야 할 생활에 귀감(龜鑑)으로 존재한다. 배수자 시인·문학박사 제4회 나혜석 문학상 대상 수상. ‘마음의 향기’, ‘얼음새 꽃 소리’ 등. 수필집 ‘만남의 심미학’ 등.
노신사가 색소폰을 연주한다 감미로운 소리에 마음이 열린다 경쾌한 멜로디, 빠른 리듬, 때로는 흐느끼는 음률이 향기로 퍼진다 들숨과 날숨으로 삶의 생기 멋지게 불어 넣는 그대는 색소폰 부는 남자. 양길순 시인•화가 시집 ‘자운영꽃 그리움’. ‘한국시학’ 회원.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
늙고 보니 좋다 자유가 많아 더 좋다 고독도 자유요, 외로움도 자유다 눕거나 앉거나 모두 다 자유다 보름달 같은 눈물방울 별빛 같은 근심걱정 영혼의 번거로움도 다 버린 자유 하늘나라 다가와서 눈앞에 서성이고 풍전등화 같은 인생, 일초 앞을 모르는데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간섭할 자 그 누군가? 늙음이 자유인 것을 늙어보고 알았네 강양옥 시인·수필가 시집 ‘창밖을 보는 여자’, 수필집 ‘추억에 비치다’ 등 다수. 경기여류문학상 대상 수상.
물향기 공원 꽃들이 아침 햇살 받으며 방긋방긋 웃고 있는데 예쁘게 눈감고 잠만 자는 달맞이꽃 가을 날 해 저물어 산 능선에 달이 떠오르면 배시시 일어나 노랗게 웃는 달맞이꽃 임 그리워 은근한 눈빛 감추며 밤을 지새우네 진숙자 시인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 동인
불같은 사랑에 취한 여름이 가을을 불렀다 팔랑이는 하얀 치맛자락처럼 쉼 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타고 가을바람 소리가 들려 온다 잠시 쉬어가고 싶어 가을 하늘이 수평선을 베고 바다에 누웠다 김경점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회원
참 붉다 소낙비에 퉁퉁 불은 종아리 잘 여문 푸념들이 톡톡 깨알처럼 쏟아지고 철없던 치맛자락 붉은 얼룩이 발갛게 물들이던 가물한 기억 이따금 쏟아 붓는 빗줄기 농도를 부리면 봉숭아 붉은 종아리를 더듬는 햇살 계절에 밀려오는 이야기들이 서늘한 간극을 벌리고 볼우물 터지는 헤픈 속살 달빛이 슬며시 들여다보는데 손톱 아래 꽃물로 피어나던 유년의 꿈이 참 곱다 조병하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오솔길이 생각납니다 그대 가슴에 꽃씨를 뿌렸습니다 그대 그림자 밟지 않았습니다 그대 보랏빛 향기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대 얼굴 또렷합니다 그대 위해 늘 기도합니다 지금도 첫사랑을 먹고 삽니다 정택상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나는 뼈있는 집안 태생이다 나를 따라온 태양이 그 뻣뻣한 사실을 알고 있다 물기는 내 몸에서 고요히 떠났다 그 침묵은 요동치는 파도에서 먼저 익혔다 나의 주검은 늘 온전한 것이었으니 누구의 그물망에 걸렸다고 말하지 말라 내 작은 눈동자, 내 깊은 思惟의 표정을 보라 나는 꼿꼿한 몸가짐으로 뜨거운 번철 위에 눕는다 나의 존엄 수천의 내가 뼈가 바다처럼 모여 내는 無言이다 이지숙 시인 울산대 국문학과 졸업. 한국문협, 인천문협 회원. 저서 ‘너덜겅 달마고도’(2002년).
하얀 찔레꽃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엄마 닮았네 스치는 바람에도 행여 마음 열릴세라 마음의 가시 만들며 걸어오신 외길 육십 해. 순백의 꽃, 머리에 내려도 쪽진 머리, 훗날 아버지 만나실 제 알아보라는 소망일까 찔레꽃 하얀 꽃잎에서 엄마 얼굴이 미소짓네 이순자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물 고을 무지개마을 화홍문 돌다리 길 일곱 수문으로 광교천 흐르는데 華虹觀漲 폭포 물보라 햇살과 눈 맞춰 일곱 빛깔 무지개로 피어나네 동 서 남 북 볼수록 산자수명한데 능수버들 가지 사이로 보이는 무지개빛 새소리 언덕 위 방화수류정에서 백화천조 손짓하고 꽃향 따라 매향천 남수문으로 흘러가네. 임병호 시인 수원 출생.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장. ‘한국시학’ 편집·발행인.
머루 빛 노을을 몸에 묻히고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간 뒤 굴뚝새 혼자 날아와 삐중삐중 놀이터 비밀번호 누른다 아이들은 무얼 남기고 갔을까 모래 속에는 재잘거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노을이 떠나고 나면 흰 달빛 별빛이 내리고 아이들과 굴뚝새도 잠들어 텅 빈 놀이터 내일이면 모래 속 묻어놓은 웃음 싹 트겠다 윤연옥 시인 인천문학상, 인천문화상(문학) 등 수상, ‘시인마을’ 동인. 저서 ‘옳거니 무릎을 치다’ 등 다수.
독도 가던 날 3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다는 곳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수면 위로 오르는 고래 가족 신기한 눈빛으로 모두가 박수치며 즐기던 그 날 “독도는 우리 땅” 외치며 돌섬에서 손가락 걸던 형제자매들 목청 높여 애국가 부르며 자자손손 지켜야 할 우리 땅, 또 그 섬에 가서 소리치고 싶다 독도는 우리 땅! 독도는 우리 땅! 진숙자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 동인.
수수한 그대가 너무 이뻐 나는 길가에 오종종 마중하는 들꽃에게 눈웃음 건넨다 하늘의 별들이 지상으로 뛰어내려 꽃들이 천상의 별꽃으로 필 때까지 이야기하지 말자 내 그리워했노라 사랑하였었노라 노래하지 말자 안개 낀 아침에도 해는 뜨고 또 별이 지고 있음을 오래 새기고 알아 가자 강희동 시인 시집 ‘정숙한 목련’ 등 다수. 한국시학상 본상 영랑문학상 대상 등 수상.
나의 고향 작은 섬 하나 그 곳에는 비릿한 고요함이 바다 위로 하나 가득 알알이 추억으로 박혀 있다 곱게 쌓은 모래성 파도에 밀려 아득히 먼 시간 속으로 흩어지고 아련한 꿈을 찾아 하얀 물결 위를 달린다 소굽친구들과 맨발로 달리던 그 바닷가 잃어버린 추억 찾아 마음을 풍덩 담근다 나의 눈물, 나의 설움 씻어주는 그 바닷가, 모든 시름 토해내도 거칠 것 하나 없는 그 곳으로 내 그리움은 오늘도 뿌리를 내린다 정의숙 시인 ‘한국사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올해도 감꽃이 피었다 꽃잎과 꽃받침이 작은 열매를 감싸 안은 채 노란 감꽃이 툭 떨어졌다 감나무 아래서 감꽃 줍는 아이들 풀잎파리 두 개 엮어 감꽃 끼워 걸어주었더니 재우, 유라 유건이랑 지한이 모여들어 하나씩 걸고 뛰어 다닌다 새 두 마리 휘이익 날아와 깔깔갈 노래하고 오래된 도시 아파트 감나무에 바람도 햇살도 모두 어울려 함께 산다 이숙아 시인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이름’.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 동인.
산 넘어온다 해서 들길에 섭니다 물 건너온다기에 강둑에 앉습니다 이미 별들은 한 눈 가득 차오르고 아직도 보이지 않는 그대 당신이 부유해서 커도 당신이 가난해서 작아도 밝은 하늘이나 구름 낀 하늘이나 해지기 전부터 화장을 하고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태학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중앙대문인회 이사
나는 지금 어항에서 튀어나와 변신 중이다 내 몸집의 크기를 다르게 키우는 안과 밖의 비밀은 코이의 법칙이다 나는 누군인가 나는 분명 피라미가 아니다 별똥별에서 떨어진 작은 조각처럼 아무도 모르는 어항에 갇혀버렸다 내 젖은 입술은 넓은 강물을 헤엄치고 기질대로 자라고 싶은 비단잉어 코이이다 나는 기필코 강물까지 가야겠다 그래서 어항을 깨뜨려야만 했다 사람들은 비단잉어의 반달입술이 조각난 별빛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윤금아 시인·아동문학가 시집 ‘아버지의 거울’, 이론서 ‘동화구연, 참쉽다’ 외 다수. 재능시낭송협회 회장. 성호문학상 등 수상
청보리는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반투명한 놀음이다. 흙과 씨앗으로 가득한 심장의 격정이 허공에 쌓인 건축물이다. 척박하다 한들 뿌리내려서 수액 빨아올리고 영양을 섭취한다. 어쩜 과감하면서도 단순하게 세상과 어우러지는지는 풍경이다. 손가락사이로 도망치는 사랑을 흙에 잡아두기 위한 주문이다. 청보리는 초록 언덕에 사랑이 몰린 봄밤의 콘서트장 카페이다. 김어진 시인 2017년 계간 ‘피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옳지, 봄’, ‘항아리 속의 불씨’, ‘북은 수염의 침대에 자다’, ‘그러니까 너야’.
연초록 녹음이 짙어질 때 싱그러운 들녘엔 저마다 꽃향기 피워내며 눈부신 꽃 무리 함박웃음 터트린다 저 꽃들의 속삭임 침묵하기엔 연둣빛 함성의 갈채다 눈 시도록 파란 하늘 수많은 빛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희망 사랑 평안 용서의 빛 오붓한 한생生의 소망 그리며 5월에 그리워지는 어머니, 내 심령에 아름다운 빛을 담기 위해 엄마 품속 같은 5월의 숲으로 간다 허정예 시인 ‘문파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시학’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 동인. 시집 ‘詩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