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퍼레니얼 세대의 고민

퍼레니얼(Perennial)은 ‘오래 성장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퍼레니얼 세대는 모바일 뱅킹과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육체·지적활동이 활발한 어르신을 가리킨다. 50~60대가 딱 그렇다. 베이비붐 세대로도 불리는 이 연령층은 노인과 장년 사이에 끼었다. 그래서 젊은 어르신이라고도 불린다. 해당 연령층이 노후 대비와 관련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권의 분석 결과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베이비부머와 386세대 등 은퇴를 앞둔 ‘프리시니어’(예비 시니어)는 퍼레니얼 세대 명칭에서 보듯 노년층이란 고정관념을 탈피해 새 세대 역사를 쓰고 있지만 노후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이처럼 진단했다. 이 세대는 10명 중 8명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저축하고 있고 보유한 자산은 국내 총 순자산의 절반에 육박해 국부(國富)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가 유연해 부동산 자산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려는 성향도 강하다. 여러 금융사에 흩어진 자산 데이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분석하면 새 재테크 도구에 대한 관심도 높다. 물론 고충도 크다. 이들은 많이 저축했지만 이 돈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세부 목표가 불분명해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여러 지출 항목에 따라 돈을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저축하다 보니 쉽게 지치고 ‘목표치보다 저축량이 부족하다’는 생각까지 겹쳐 걱정을 키운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후에 나올 고정 소득이 얼마인지 시뮬레이션을 해볼 기회가 적고, 이 세대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아직 통상 70%가 넘어 앞으로의 현금 흐름을 예측하기가 까다롭다. 어느 세대나 노후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본격적으로 황혼기를 맞은 퍼레니얼 세대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복지당국이 헤아려야 할 숙제다.

[지지대] ‘협궤열차’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 둬야 한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자기 혼자만의 풍경 속으로 가라.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윤후명 작가의 장편소설 ‘협궤열차’ 도입부다. 제목이 특이해 펼쳤다가 단숨에 읽었다. 그 조그만 열차를 타고 둘러 봤던 서해안 풍광도 잊을 수 없다. 열차와 함께 달리던 맨드라미 행렬과 남미에서 시집 온 칸나 꽃이 처연하게 핀 모습 등이 그랬다. 흔치 않은 선경(仙境)이어서다. 얼개는 열차가 정차하는 곳에 거주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이뤄진다. 군자역과 달월역 등 옛 수인선 역들을 비롯해 소래철교 부근 바닷가 풍경, 협궤열차를 타는 어민들의 모습, 시흥 군자봉 성황제 등을 배경으로 삶과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여덟 가지 사랑 이야기도 담았다. 오랜 세월을 협궤열차에 실려 보낸 역장의 죽음을 뼈대로 여인 ‘류’에 대한 열정과 상실의 기억들, 그리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어느 사내의 이야기 등이 협궤열차처럼 이어졌다. 수원과 인천을 잇던 수인선 얘기다. 지금은 아파트단지 등에 가려진 철로로 열차가 운행됐다. 국제규격으로는 철로 폭이 1천435㎜이나 수인선은 762㎜여서 협궤선으로 불렸다. 1937년 8월 개통됐다. 총길이는 52㎞였다. 소래, 남동, 군자 등지의 소금과 경기도 내륙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건설됐다. 1946년 5월 국유화됐고 이후 쌀 수송이 사라지고 1970년대 이후 염전지대 물량도 줄었다. 1995년 12월 영업이 종료됐다가 2020년 9월 수인분당선으로 부활했다. 꺾일 줄 모르는 폭염에 갈수록 척박해지지만 마음 한 편에 좁은 철로 하나는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떨까. 좁다고 마음까지 좁은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지지대]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

동두천 하면 미군 부대와 클럽, 기지촌 여성을 떠올린다. 양공주로 불린 기지촌 여성은 6•25전쟁 이후 주로 주한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한 주한미군 위안부다. 동두천은 면적의 40% 넘는 땅을 미군이 점유했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엔 4천여명에 달하는 기지촌 여성이 있었다. 끌려오거나 팔려온 이들도 많았다. 정부는 매춘을 장려했다. 달러벌이 수단이었고, 미군과의 정치사회적·군사적 문제가 얽혀 있었다. 대법원은 2022년 “국가가 성매매를 중간 매개하거나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정부는 성병관리소인 ‘낙검자(검사 탈락자) 수용시설’을 운영했다. 1970~80년대 미군 클럽에 등록된 여성들은 주2회 의무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았고, 이를 증명하는 검진증을 소유해야 했다. 불시 검문 때 검진증이 없으면 성병관리소에 수용됐다.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성병에 걸렸다. 병 걸린 이들은 성병관리소에 구금됐다. 관리소는 수용자들이 철창에 갇힌 원숭이 같다해서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렸다. 성병관리소는 경기도에 동두천과 양주, 의정부, 파주(두 곳), 평택 등 여섯 곳에 설치됐고, 1993년 대부분 운영을 중단했다. 남은 건물은 동두천 성병관리소가 유일하다. 소요산 자락 6천766㎡에 2층으로 지어진 시설에는 방 7개에 140명까지 수용이 가능했다. 관리소는 1973년부터 운영해 1996년 보건소 내 성병관리팀이 없어지면서 폐쇄 됐다. 28년간 방치됐던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동두천시가 이 시설을 철거하고 호텔과 테마형 상가 등을 짓는 소요산 일대 개발 관광사업을 추진 중이다. 참여연대와 정의기억연대 등 전국 59개 시민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 철거 저지에 나섰다. 성병관리소가 한국 근현대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화벌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인신매매, 성폭력, 임신, 유산, 약물중독, 자살 등 국가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가 있던 곳이다. 부끄럽고 슬픈 역사지만 지워버리기보다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현장이다.

[지지대] 아슬아슬 ‘스몸비족’

스마트폰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보고, 화장실에서도 본다. 심지어 운전을 할 때도 본다.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넋 빠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 ‘스몸비(smombie)’라고 한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매인 세태를 풍자한 것으로 2015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됐다. 현대인의 스마트폰 사용은 지나치다. 상당수가 중독자다. 걸을 때나 운전할 때도 시선이 스마트폰을 향해 있어 각종 안전사고가 늘고 있다.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고, 귀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 눈과 귀를 닫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경기도내 횡단보도 보행 중 발생한 교통사고는 연 평균 1천389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상당수가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것이다. 운전자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은 음주운전만큼 위험하다. AXA손해보험이 운전면허 소지자 1천400명을 대상으로 한 ‘2023 운전자 교통안전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8.1%가 ‘운전 중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며 횡단보도를 걷는 보행자를 경험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2.4%는 주행 중 스몸비족으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걷게 되면 거리 감각은 40~50% 떨어지고 시야 폭은 56%로 좁아진다. 이어폰까지 끼면 자동차 경적 등 소리가 안 들려 사고 위험이 더 크다. 지자체와 경찰서 등에서 스몸비족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보행 중 스마트폰 주의’ 교통안전표시를 하고 바닥 LED 보행 신호등, 음성 안내 보조장치 설치를 확대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 해외 사례처럼 스몸비 사고 방지를 위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 다섯 쌍둥이의 희생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폭격에 열 살배기 다섯 쌍둥이가 희생됐다는 외신을 읽고서다. 포성이 멈추지 않는 중동 가자지구에서다. 헤드라인도 끔찍했다. ‘가정집 폭격에 엄마·동생까지 일가족 참변’, ‘휴전협상 와중에도 가자 전역 포성으로 얼룩’.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가해자 측은 이스라엘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가자지구 데이르 알발라에서 집에 머물던 10세 다섯 쌍둥이와 엄마, 동생 등 일가족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휴전 협상 와중이었다. 가자지구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 측에 따르면 가정집에서 폭격으로 성인 여성 한 명과 함께 있던 자녀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한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비롯해 교사인 딸도 숨졌다. 사망한 손주들 중 가장 어린 아이의 나이는 불과 18개월이었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열 살 된 다섯 쌍둥이였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현장에 있는 기자가 직접 시신을 확인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사체포 한 개에 담았다. 이 아이들이 뭔 잘못을 했느냐. 이들이 유대인들을 죽였느냐. 이것이 이스라엘에 안보를 가져다 주는 일이냐”라며 절규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도시에선 또 다른 공습으로 적어도 4명이 더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가자 북부 자발리야의 한 마을에서 공동주택 두 채가 공격받아 성인 남성 두 명과 모녀가 숨졌다. 가자 중부에서도 두 건의 공습으로 9명이 사망했고 난민촌이 있는 누세이라트에서도 공습으로 한 명이 숨진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 카타르 등은 15~16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휴전협상을 진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에 다음 주 이집트 카이로에서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무릇 참화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하지만 전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말자. 어떠한 논리로도 민간인 학살을 합리화할 순 없다.

[지지대] 불안한 세상, 희망은 어디에

세상이 불안하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난 전기자동차 화재 사건.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전기차 화재로 자칫 많은 인명 피해가 날 뻔했고 불이 빨리 꺼지지 않으면서 많은 재산 피해도 냈다. 이후 전국으로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포비아(Phobia)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늘 크게 생각해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불안을 느끼고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병적 증상’으로 소위 공포증을 뜻한다. 지난달 초에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자동차 때문에 무려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참사도 많은 시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차가 덮칠지 모르기에 맘 놓고 길도 걸을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코로나19도 다시 시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고작 엔데믹 공식 선언 1년여 만에 입원 환자가 급증하면서 재유행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헛기침만 해도 코로나19를 의심하는 눈총을 받는다. 여기에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 우려는 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이 밖에 폭염은 물론이고 장마 같은 기후까지 매일매일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모든 시민은 안전하게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이는 정부가 짊어진 의무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놔 시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물론 정부가 작은 안전사고를 침소봉대해 되레 불안과 혼란을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 이젠 희망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희망을 희극에서 찾을 수 없다. 이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치권에서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때다. 불안을 해소하면 곧바로 희망이 있다. 희망은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에.

[지지대] 일본에 울려 퍼진 한국어 교가

“동해 바다 건너 일본 땅은/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일본의 한 중소 도시 야구장에 울려 퍼진 한국어로 된 교가다. 재일 한국계 학교가 일본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해 승리해서다. 이 대회에선 관례적으로 경기가 끝나면 승리한 학교의 교가를 방송해준다. 이 교가의 주인공은 어느 학교일까. 교토에 위치한 재일 한국계 고교인 교토국제고교다. 외신에 따르면 이 학교 야구부가 일본 전국고교 야구선수권대회에서 3년 만에 8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대회를 일본인들은 보통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부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교가가 방송된 날은 광복절 이틀 뒤인 8월17일이었다.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소재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여름 고시엔’ 본선 3차전에서 후쿠오카현 대표인 니시닛폰단기대학부속고교를 4-0으로 꺾었다. 2회 초 먼저 2점을 뽑았고 5회 초와 9회 초 각각 1점을 내면서 승리를 확정 지었다. 앞서 1차전에서도 7-3, 2차전에서도 4-0 등으로 이겼다. 선발 투수는 이날 경기에서 위력적인 투구로 9회까지 삼진을 14개나 뽑아 내면서 완봉승을 거뒀다. 선수들도 승리한 후 교가를 힘껏 불렀다. 이 모습은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교토국제고교는 1999년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입했다. 2021년 처음 여름 고시엔 본선에 진출해 4강까지 올랐다. 2022년 여름 고시엔 본선에선 1차전에서 석패했다. 지난해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재일 한국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됐다. 일본 교육당국의 차별로 2004년 비로소 정규 학교가 됐다. 갖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대한의 젊은이들이 늠름하고 자랑스럽다.

[지지대] ‘나홀로 사장님’의 눈물

문 닫힌 상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붙은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비어있다. 빈 상가는 여기저기 자꾸 더 늘어간다. ‘나홀로 사장님’이 크게 줄고 있다. 최근 1년 새 하루 평균 300여 명이 문을 닫고 있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코로나19 때도 꾸역꾸역 버텼는데,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가게를 접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자영업자는 총 572만1천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나홀로 사장님)는 427천3천명(64.3%)으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144만8천명(21.8%)의 3배였다. 나홀로 사장님은 지난해 7월보다 11만 명 줄었다.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올해 들어서만 월평균 7만8천500명이 사라졌다. 새 일자리를 찾거나 업종 전환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망해서 영업을 종료한 것으로 분석된다.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당시에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6만 5천 명 급감했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9만명 늘었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버텼던 나홀로 사장님들이 최근 한계에 다다랐다. 고물가로 실소득이 줄어 소비 심리가 위축된데다 코로나 때 2~3% 저금리로 받았던 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다. 지난 6월 말 예금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454조 1천억 원에 이른다. 2019년 6월(325조 2천억 원)에 비해 39.6% 늘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때는 정부가 대출 지원을 해줘 버텼는데 임대료와 관리비, 대출 부담에 구조조정할 직원도 더 이상 없어 자영업자 폐업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영업자 중에 상당수는 투잡을 뛴다. 치킨집에선 주문 없는 낮에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자신의 가게에 나간다. 낮에 장사하는 가게는 저녁에 대리 운전을 한다. 투잡을 뛰며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나홀로 사장님들의 분투가 눈물겹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한 이들의 폐업은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대출 지원 등으로 좀 더 버틸 수 있게 붙들어 두는 게 능사는 아니기에 답답하고 안타깝다.

[지지대] ‘초등 의대반’ 열풍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시민단체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 대중 운동을 펼친다. ‘입시 경쟁으로 단 한 명의 아이도 잃지 않는 세상,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단 1만원도 쓸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게 목표다. 사교육과 입시 고통에서의 해방. 이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경쟁과 고통이 극심하다. 학생들은 골병이 들고, 학부모는 등골이 휜다. 요즘 사교육 시장의 최대 관심은 ‘초등 의대반’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를 목표로 ‘초고속 선행 교육’을 받는 것이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이 사교육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최근 전국 유명 학원가의 홍보물을 분석한 결과, 제주를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초등 의대반을 운영했다. 전국 89개 학원에서 136개의 초등의대반을 개설했다. 서울이 28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20곳, 대구 10곳 순이다. 초등 의대반의 수학 선행학습 프로그램은 학원마다 다르다. 가장 보편적인 커리큘럼은 초등 5~6학년생에게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방식이다. 선행 정도는 약 4.6년이다. 서울 대치동의 한 의대프라임반은 초등 5학년을 상대로 6개월 동안 중1~고2 과정의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보다 14배속 빠른 선행 교육이다. 가우스 기호나 대학 과정의 행렬식 개념 등이 실린 교재로 수업하는 학원도 있다. 초등 의대반에서 중·고등학교를 넘어 대학 과정에서 다루는 수학 개념까지 배운다니 놀랍다. 이런 선행학습이 효과가 있을지,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걱세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천명을 조사한 결과 ‘초등 의대반이 교육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63.3%가 ‘부적절하고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초등 의대 선행학습은 경제적 부담, 교육 불평등에다 공교육에 해를 끼친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병들게 한다. 오죽하면 강경숙 의원(조국혁신당)이 ‘초등 의대반 방지법’까지 발의했겠나.

[지지대] 중국의 네 번째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 쿠츠네초프, 랴오닝, 퀸엘리자베스, 비크라마디트야, 상파울루, 샤를드골, 차크리.... 세계 각국 항공모함의 함명(艦名)이다. 항공모함은 바다에서 전투기를 이착륙시키는, 움직이는 해상 항공기지다. 육상기지를 확보하지 못한 곳에서도 전투기를 배치할 수 있어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다. 최초로 건조한 국가는 일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인도, 중국, 브라질, 태국 등 10개국이 운용 중이다. 현대 해군 전략·전술의 핵심이다. 이 함정은 부피가 적에게 큰 위협이다. 그래서 적들의 주요 공격 목표다. 분쟁 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해야 하는 만큼 공격을 위해서나 방어를 위해 중요한 게 속도다. 전투기 이륙을 위해서도 그렇다. 갑판은 지상의 활주로보다 짧다. 전투기가 뜨기 위해 속도를 충분하게 낼 수 없는 까닭이다. 전투기가 100의 속도로 이륙하는 경우 항공모함이 30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면 전투기는 130의 속도로 전진한다. 이륙할 수 있는 정도의 양력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전투기는 출력을 아낀 만큼 더 많이 무장할 수 있고, 연료도 아낄 수 있다. 중국이 네 번째 항공모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랴오닝성 다롄 조선소에서 선체 너비가 40m인 항공모함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을 재급유하지 않고 항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진수까지 6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2028년까지는 시험 항해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랴오닝함과 산둥함 두 척의 항모를 운영 중이고 세 번째 항모 푸젠함은 지난 5월부터 시험 운항 중이다. 우리는 독도함과 마라도함 등 헬기 이착륙 상륙함 2척이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항공모함을 갖춰야 한다. 해양 국가를 지향하는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닌가.

[지지대] 오늘은 택배사 쉬는 날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화물 무게에 눌려서다. 승강기가 없는 연립주택은 일일이 들고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택배사들의 일이 그렇다. 속칭 진상 고객 때문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상당수 택배사들은 이럴 때 더 아프다고 호소한다. 원했던 물건이 왔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우기고 금품을 뜯으려는 경우도 있다. 조금만 늦어도 닦달하기 일쑤다. 주차 문제도 장난이 아니다. 예전에 지은 아파트들은 지상에 차량을 세울 수 있지만 요즘 건립한 아파트들은 어렵다. 쟁점은 지하주차장 출입이다. 대다수 택배차량은 높이가 2.5~2.6m인데 지하주차장 높이 제한은 2.1~2.3m다.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출입해야 한다. 이중 주차는 불가피하다. 민원이 수시로 접수된다. 승강기 사용을 놓고도 옥신각신한다. 화물 이용이 금지돼서다. 무거운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선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모든 물건을 카트에 싣고 옥상층부터 차례차례 배송할 수밖에 없다. 택배산업은 허브·서브터미널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2일 이내 배송체계를 갖추면서 속도경쟁을 벌이고 있다. 연평균 8.7%씩 성장하고 있지만 택배단가는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하락세다. 택배물량 증가와 택배사 업무가 가중되고 있으나 전담 법안 제정과 실효성 있는 대책 추진은 더디다.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택배사들이 쉬는 날이다. 택배사가 아닌 자체 배송망을 활용하는 배송은 평소대로 이뤄진다. 앞서 택배업계와 고용노동부는 2020년 택배사 휴식 보장을 위해 오늘을 쉬는 날로 정례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주요 택배회사들은 매년 약속을 지켜 왔다. 택배사들은 근로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근로조건이나 환경도 열악하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들의 고충을 헤아려 보자.

[지지대] ‘1호선 전철’ 개통 50년

1974년 8월15일은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한 날이다. 서울역~청량리역에서 시작한 1호선은 오는 15일이면 50년이 된다. 광복절인 이날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시민들을 해방시킨 ‘역사적인’ 날이다. 지하철은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한 인구와 한계에 다다른 지상 교통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됐다. 1974년 개통 당시 이름은 ‘종로선’.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 역을 잇는 9.54㎞ 길이의 국내 첫 지하철이다.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결실을 맺어 열차가 첫 운행되던 날, 그러나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개통식 직전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은 것이다. 지하철 개통 당시 재밌는 일화가 많다. 신발을 벗고 역사에 들어왔다는 어르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약속 장소가 엇갈린 시민의 민원으로 환승역에 통합 출구 번호를 만들었다는 얘기 등이 있다. 지하철은 신문물의 상징이었다. 대중교통 체계가 지하철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새롭게 형성됐다. 역을 중심으로 땅값이 크게 올랐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생활문화도 바뀌었다. 지하철역은 만남의 장소가 됐고, 전동차에서 이동 시간에 신문과 책을 읽는 등 독서문화가 발달해 출판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1호선 전철은 남쪽으로 점점 확장됐고, 구로에서 인천과 수원으로 갈렸다. 이후 남쪽으로 충남 아산 신창까지, 북으로는 경기도 연천까지 연결됐다. 현재 1호선은 38선 넘어 최북단 연천역에서 최남단 신창역까지 203.6㎞ 구간을 달린다. 1호선 전철의 하루 운행 거리는 12만8천520㎞로 매일 지구 3.2바퀴를 도는 것과 같다.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첫해 2천900만명이던 수송 인원은 올해 상반기 2억7천303만2천810명에 달했다. 하루 수송인원으로 환산하면 약 8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증가했다. 50년간 승객 800억명을 싣고 지구 5만바퀴의 거리를 달린 1호선은 오늘도 시민들을 곳곳에 실어 나른다. 언젠가는 북한 땅까지 내달리길 기대해본다.

[지지대] ‘철밥통’ 깨는 청년 공무원들

한 번 취업하면 정년까지 해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철밥통’이라 한다. 일반 기업은 실적이나 성과가 미흡하면 일찍 잘릴 수도 있는데 철밥통을 가진 직업은 큰 잘못이 없는 한 누구도 함부로 자르지 못한다. 대표적인 직종이 공무원이다. 철밥통을 가진 공무원은 오랫동안 인기가 높았다. 월급은 기업에 비해 많지 않아도 정년까지 안정적이고, 공무원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했다. 각종 수당과 해외연수, 공로연수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나쁘지 않았다. 공직의 역할과 사명감도 만족도를 높였다. 하지만 요즘 공무원의 인기는 예전같지 않다.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공무원들의 이탈현상이 심각하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조기 퇴직의 이유다. 실제 재직 기간 5년 미만 공무원 퇴사자가 2019년 6천663명에서 지난해 1만3천500명으로 늘어났다. MZ공무원들은 “공무원도 노동자다”라며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선 ‘청년 공무원 100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 공무원들은 철밥통을 상징하는 노란 냄비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밥값을 올려달라’는 등의 글이 새겨진 노란 냄비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대통령실 인근까지 행진했다. 행진을 마친 공무원들은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밟아 찌그러뜨렸다. 자신의 ‘철밥통’을 부수는 퍼포먼스였다. 이들은 “청년 공무원들은 악성 민원인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주말에 행사가 있으면 동원까지 된다”며 “그럼에도 실질임금은 매년 마이너스다. 철밥통에 밥이 없다”고 호소했다. 국가에 봉사한다는 공무원의 소명의식과 열정, 자부심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철밥통으로 여겨졌던 공직이 젊은이들에겐 더 이상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다.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과 업무의 과부하, 위계구도에 따른 경직성 등은 MZ 공무원들 스스로 철밥통을 깨뜨리게 만든다. 적정 수준의 임금 상승, 계급구조 개선, 조직 유연성 등 구조와 시스템 변화를 동반한 혁신이 절실하다.

[지지대] 양궁 여섯 번째 금메달

2024년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종목에서 1점을 맞혀 주목받은 아프리카 차드의 마다예 선수. 그의 도전은 비단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보호장비도 없이 대회에 참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 같은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양궁 장비 제조 기업인 파이빅스 백종대 대표는 마다예 선수에게 활과 보호장비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더 나아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마다예가 1점을 쏜 양궁 과녁은 수원 기업인 파이빅스가 생산한 제품이다. 마다예의 파리 올림픽 참가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는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비록 1점을 쏘았지만 그의 도전정신과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양궁 선수 출신인 백종대 대표는 부상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백 대표는 좌절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마다예의 이야기에 감명받아 후원을 결정했다. “마다예 선수의 도전 정신은 우리 회사의 가치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백 대표의 말처럼 파이빅스는 이번 후원을 통해 도전과 혁신을 지향하는 기업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다예의 도전과 이를 후원하는 파이빅스의 결단은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성적에만 치중하지 않고 도전과 노력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마다예와 선행으로 여섯 번째 금메달을 따낸 파이빅스의 앞날에 큰 응원을 보낸다.

[지지대] ‘폰지 게임’

한 가난한 젊은이가 부유층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돈을 많이 써서 그만 빈털터리가 됐다. 그래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지구촌의 한 편에선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청년의 미국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보스턴에 도착한 그의 손에는 달랑 2달러50센트뿐이었다. 영어를 빨리 익히고 동부 해안 지방에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막 유럽을 강타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유럽은 인플레이션으로 통화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경제 호황을 누리며 달러 강세로 환율이 급변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우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궁지에 몰렸던 청년은 이 같은 점에 눈독을 들였다. 각국의 우표들이 환율로 교환되는 점을 노리고 우편쿠폰사업을 구상한다. 미리 요금을 내면 해외에서 우편을 보낼 때 우표쿠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때 이탈리아에서 산 우편쿠폰을 미국에서 달러로 바꾸면 6배의 환차익을 볼 수 있었다. 사기 행각은 그렇게 출발했다. 외국에서 구매한 만국우편연합 국제반신권을 팔 때 발생하는 차익도 악용했다. 45일 내 50%의 수익률, 90일 내 10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도 속였다. 이러한 수법으로 1년 동안 투자자들에게 2천만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이른바 금융피라미드 사기 행각이었다. 1920년 오늘의 일이다. 이 청년의 사기 행각은 경제사에 기록으로 남았고 그의 이름을 따서 ‘폰지 게임’으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폰지 게임이란 실제로는 아무런 사업도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는 일종의 금융 다단계 사기 수법이다. 이 같은 금융 사기는 고도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도 우리 곁을 떠돌아 다니며 제2의 범죄를 노리고 있다.

[지지대] 오늘 입추인데...

곡식이 여물려면 맑은 날씨가 계속돼야 한다. 만곡(萬穀)을 익게 하기 위해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 절기가 지나도 닷새 이상 비가 내리면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비를 멎게 해달라는 애타는 호소였다. 농민들은 하늘이 청명하면 작황이 풍년이라고 여겼다. 날씨가 눅눅해지면 곡식이 상한다고 걱정했다. 천둥이 치면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나면 다음 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우려했다. ‘고려사’ 등 옛 문헌에 나오는 입추라는 절기 관련 기록들이다. 24절기 가운데 열 세 번째다. 오늘부터 입동까지가 가을이다. 오늘이 지난 뒤에도 어쩌다 가끔 늦더위가 찾아오긴 했다. 하지만 땅거미가 지면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이때부터 새로운 계절을 준비했다. 이 즈음에 김장용 무와 배추 등을 심어 김장에 대비했다. 이 무렵 유행했던 속담에 ‘어정 7월 건들 8월’이 있다. 7월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8월이면 좀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뭐 그런 지혜였다. 전국에 폭염이 지속되면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폭염 대처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5월20일부터 최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는 1천54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명이 많은 수치다. 온열질환 사망자도 11명에 이르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가축도 6월11일부터 최근까지 가금류 23만5천880마리 등 모두 25만7천483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식장에선 넙치 5천867마리가 죽었다. 기상청은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안팎으로 올라 매우 무더울 것으로 예보했다. 게다가 ‘호우주의보급(級)’ 소나기까지 가세하고 있다. 기상당국은 폭염위기 경보 수준을 ‘심각’ 단계로 상향했다. 가을은 아직 멀었을까. 잠깐 새 땀이 후드득 돋는 폭염을 지켜보면서 드는 걱정이다.

[지지대] 기후우울증

극한 폭우가 쏟아졌던 장마가 끝나니 극한 폭염이다. 한반도가 찜통에 갇힌 듯 후끈거린다. 낮에는 섭씨 40도에 육박하고, 밤에도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불볕더위에 열사병 환자가 잇따라 사망자가 여럿 나왔다. 역대급 폭염으로 지구촌 곳곳이 펄펄 끓으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연일 40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도쿄에서만 지난달 123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지난 6월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치러진 이슬람 정기 성지순례(하지) 6일 동안의 사망자는 1천300명을 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최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낮 기온이 55도까지 치솟았다. 섭씨 50도라니,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지구촌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다.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은 매년 온도를 경신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후 온난화에 따른 영향이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현상을 마주한 사람들은 날씨 변화에 영향을 받아 정서적 고통을 겪으며 심리적 안정을 위협받는다고 호소한다. 2017년 미국 심리학회는 심각한 기후 현상들이 개인의 불안과 우울을 증폭시키는 현상을 ‘기후우울’이라고 정의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짜증과 불평, 불만을 넘어 슬픔이나 두려움, 절망, 무력감 같은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고통은 신체화돼 심혈관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암과 같은 병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후변화는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협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외국에선 집단 상담을 받거나 회복커뮤니티에 나가 소통하면서 기후우울을 완화하는 사례가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선 기후고통을 나누는 ‘클라이밋 카페’가 곳곳에 지부를 둔 정식 단체로 성장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정보를 나누면서 두려움을 없애거나 공동체 의식을 높이면서 기후우울증을 예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우울은 새로운 사회 문제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가적인 지원체계 등 적극적 기후행동이 절실하다.

[지지대] 파리 올림픽과 K-컬처

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이 2024 파리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6월에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진은 지난달 14일 파리 리볼리 거리 교차로에서 카루젤 광장까지 성화를 운반하고,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 앞에서 다음 주자에게 횃불을 넘겼다. 진의 성화 봉송 현장에는 해외 각국의 아미(ARMY·방탄소년단 공식 팬덤) 등 수천명의 팬이 몰려 들어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진은 팬들의 환호성에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이탈리아 체조 선수 등에 새겨진 한글 타투가 화제다. 엘리사 이오리오(21)는 지난달 28일 파리 베르시 경기장에서 열린 기계체조 여자 단체전 예선에 출전했는데 등에 ‘당신 자신을 사랑’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글의 일부가 옷에 가려졌지만,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라는 문구라고 한다. 이 글은 BTS의 앨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문구 위에 있는 변형된 하트 모양 타투 또한 해당 앨범의 표지와 같은 모양이다. 29일과 30일에 팬클럽 아미는 이오리오의 타투 사진과 ‘러브 유어셀프’ 앨범 사진 등을 SNS에 올렸다. BTS 팬들은 “응원한다. 우리 아미 올림피언”, “올림픽 선수 중에도 아미가 있다니 자랑스럽다” 등의 글을 남겼다. 이오리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를 공유했다. 그는 앞서도 보라색 하트와 함께 ‘자신을 사랑하세요’라고 적은 글을 올린 바 있다. 보라색은 BTS를 상징하는 색이다. 이오리오의 인스타그램에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사진과 영상이 여러 개 올라 있다. 이오리오는 BTS 찐팬이 맞는것 같다. 28일 체조경기장에선 한국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특’, ‘매니악’, ‘락’ 등의 노래도 잇달아 흘러나왔다.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올림픽에서 케이팝을 접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메달 소식 못지않게 기분 좋은 일이다.

[지지대] 열대야 유감

“따갑긴 따갑네.” 어렸을 적 어른들은 쏟아지는 햇볕을 보고 혼잣말로 그러셨다. 우리의 전통적인 여름 더위는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햇볕에 습기가 스며들고 있다. 공기가 눅눅해지고 있다. 습도가 오르고 있어서다. 습도는 공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의 양 또는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다. 예전에는 한여름 길어야 며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불쾌지수도 오른다. 불쾌지수는 온도, 습도, 풍속 등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정도의 수치다. 자꾸 옛날 이야기를 꺼내 민망하지만 그땐 낮에 불쾌지수가 높아도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 줬다. 요즘은 밤에도 그렇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열대야 얘기다. 원래는 일본 기상청 용어였다.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밤을 뜻했다. 일본의 기상수필가 구라시마 아쓰시가 처음 썼다. 단, 일본 기상청이 통계로 잡았던 건 야간 최저 기온에 의한 열대야가 아니라 하루 중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이었다. 최근에는 도시 열섬 현상의 영향으로 매일 불쑥 찾아온다. 적어도 서울에선 하루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이 1940년대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연간 10일가량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선 거의 매일이다. 장맛비가 그치면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출근길 시민들의 얼굴이 퀭하다. 밤새 열대야에 시달려서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지구촌이 펄펄 끓고 있다. 에어컨을 껴안고 산다. 징그럽다. 한낮 체감온도가 30도를 넘은 지 이미 오래다. 열대야도 이젠 땅거미가 지면 일상이 됐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더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 어깨로 쏟아지던 햇볕을 구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환경을 훼손하는 인간을 향한 조물주의 꾸지람이 그럴 텐데 말이다.

[지지대] 태극전사들이 주는 ‘여름밤 에너지’

밤낮없이 이어지는 찜통더위에 국민들은 잠 못 드는 여름밤이 괴롭기만 하다. 더욱이 이번 여름은 프랑스 파리에서 선전하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잠 못 드는 ‘올빼미족’이 늘고 있다. 무더위와 올림픽 모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주범이지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한여름 무더위는 ‘열대야’로 이어져 짜증스럽지만 올림픽에서의 국가대표들의 선전은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 경기를 시청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게 해주는 청량음료 역할을 한다. 당초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금메달 5개 이상 획득, 종합순위 15위 이내 진입’이라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체육 정책의 위축과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기력 저하가 주 원인이다. 특히 구기 종목의 경기력 하향세가 두드러지면서 이번 올림픽에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8년 만의 최소 규모 선수단이 참가했다. 그럼에도 우리 선수들은 경기 초반 눈부신 선전으로 대회 개막 사흘 만에 목표한 금메달 5개를 수확했다. 양궁과 사격에서 2개씩, 펜싱이 1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궁과 펜싱을 제외하고는 사격 금메달은 기대 밖의 성과다. 앞으로도 양궁과 펜싱, 근대5종, 유도 등의 선전이 이어질 경우 10개의 금메달도 가능하리란 전망이다. 올림픽은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최고의 무대다. 이 무대를 밟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땀방울을 흘렸고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낸 결과물이 메달이다. 예상치 못했던 선수의 메달 획득은 우연이 아닌 피눈물 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메달을 못 딴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를 떠나 모두 승리자다. 올림픽은 국민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힘이 있다. 정쟁만 일삼으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에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역만리서 선전하는 태극전사들에게 올림픽 때만 반짝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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