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목감천’→‘광명천’

‘냇깔’은 시냇물의 가장자리를 일컫는 토속어다. 시골에선 ‘안골’과 함께 흔한 지명이다. 지금도 두메산골에 가서 어르신에게 여쭈면 종종 튀어나온다. 경기도에도 이런 이름을 갖춘 고을이 지천이다. 광명이 그중 한 곳이다. 북쪽으로는 서울 개봉동, 북동쪽으로 가리봉동과 시흥동, 북서쪽으로는 부천, 남쪽과 서쪽으로는 안양과 접한다. 구체적으로 이 도시의 학온동이 딱 그렇다. 이곳의 토박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냇깔이라고 부른다. 냇깔의 서축으로 유유히 흐르는 개울이 있다. ‘목감천’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렇게 불리진 않았는데 특정 시기부터 그랬다. 향토사학계는 그 시점이 1980년 초반이라고 기억한다. 인근 서울 영등포에서 많은 서민들이 속속 옮겨오던 시기였다. 주민들에게 목감천으로 변경된 까닭을 물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인근 시흥 목감동에 위치한 630고지에서 발원됐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인근에는 높이가 630m에 이르는 산은 없다. 이런 가운데 광명시가 목감천의 명칭을 ‘광명천’으로 변경을 추진(경기일보 4일자 11면)한다. 취지는 지역 정체성 확립과 행정 혼선 최소화다. 목감천은 광명은 물론이고 시흥, 서울 구로 등지를 경유해 안양천으로 흐른다. 총연장 12.3㎞인 국가하천이다. 문제는 이 명칭으로 인한 행정 혼선이다. 각종 문헌이나 인터넷, 각종 보고서 등에도 관례적으로 차용돼서다. 특히 도로명 주소의 경우 광명 광명동 일원은 목감로, 시흥 목감동은 목감중앙로, 목감우회로, 목감둘레로 등으로 혼용되고 있다. 홍수 및 화재 등 발생 시 신속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까닭이다. 광명·시흥 신도시가 조성되면 피해는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꿔야 할 명분은 명쾌하다. 광명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분석해 정부에 변경을 요구할 예정이다. 광명시의 소통 행정이 주목된다.

[지지대] 발암물질 놀이터, 교육당국 대책 내놓아야

본보 K-ECO팀이 경기도내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놀이터 중 탄성포장재로 조성된 놀이터에 대해 유해성 검사를 실시했다. 초등학교 네 곳, 유치원 네 곳 등 총 여덟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사 결과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암이나 호흡기 질환 등을 일으키는 유해 화학물질인 PAHs는 어린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PAHs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화합물 중 일부 물질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민감한 생리적 발달 단계에 있는 어린이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장시간 노출될 경우 폐암, 피부암, 생식 장애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유치원 놀이터에서는 성조숙증과 자폐를 유발할 수 있는 ‘프탈레이트’도 검출됐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뒹굴며, 살을 직접 바닥에 비비며 노는 공간이다. 이러한 곳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교육기관에서 말이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발암물질이라니 무슨 일인가”, “어쩐지 냄새가 많이 난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놀이터에서 물도 나와 물놀이장으로 사용하도록 하던데, 물이 깊은 곳까지 다 스며들고 또 나오고 할 것 같다” 등의 우려를 내놓으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검사에 함께한 안광률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경기도교육청에 놀이터 바닥재 전수조사와 재시공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제 교육당국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성장시켜야 할 교육현장이 발암물질을 품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지지대] 차트병과 필경사

군화도 제대로 벗을 수 없었다. 초안이 밤 늦게 나와서다. 필자가 군대에서 차트를 쓰는 행정병(차트병)으로 근무했던 시절의 추억이다. 필체가 좋아 선택받았던 보직은 아니었다. 줄을 잘 선 덕분이었다. 훈련 안 받고 철책 근무도 면제 받으니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베이비부머들이 동감할 터다. 행정반이라고 불리던 사무실에는 미군이 쓰던 타자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류와 차트 작성은 손글씨로 이뤄졌다. 전형적인 아날로그시대였다. 보고용 차트는 신문지 두 장 정도 크기인 전지에 손으로 썼다. 최근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쓰는 공무원을 새로 뽑았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역대 다섯 번째다. 인사혁신처 공고에 따르면 최종 합격자는 56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것으로 나타났다. 합격자는 오는 4일까지 등록을 마치고 신원 조회와 신체검사에 문제가 없으면 제5대 필경사(筆耕士)로 임용된다. 지난 2018년 11월 제4대 필경사로 김동훈 주무관이 선발된 뒤 6년여 만이다. 앞서 인사혁신처는 3대 필경사였던 김이중 사무관이 지난해 초 퇴직하면서 같은 해 2월 공고를 냈지만 적격자를 찾지 못해 선발을 보류한 바 있다. 당시에는 1명 채용에 21명이 지원했다. 자판에 의존하는 MZ세대에겐 낯설겠지만 지난 1962년 처음 생긴 이래 62년 동안 단 4명밖에 없었던 직군이다. 1년 넘게 김동훈 주무관이 홀로 업무를 도맡는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5월1일 다시 채용 공고를 냈다. 그리고 적임자를 찾았다. 지난 2005년 임명장을 전산화한 적도 있었지만 공직자들의 의견 제기로 수기 임명장이 복원되기도 했다.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시대 직군이 대통령실에 살아 있다. 임명장을 자판으로 때울 수 없다는 상징성 때문일까.

[지지대]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 고대 로마법의 원칙이다. 이는 1953년 제정한 형법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의 기원이 됐다. 친족 간 도둑질, 곧 재산 범죄에 대한 특례 조항이다. 형법 제328조 1항은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의 사기·절도·횡령 등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했다. 2항에선 함께 살지 않는 친족이 재산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피해자가 고소해야 기소하는 친고죄 조항을 뒀다. 가정에서 재산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가가 개입하기보다는 가정 내에서 먼저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친족상도례’로 인한 피해가 도를 넘고 있다. 법 제정 70년이 넘는 동안 가족공동체가 무너졌고, 1인 가구 증가 등 핵가족화가 심화됐다. 친·인척 간 교류도 많이 끊어졌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기엔 재산 범죄로 인한 피해가 많아졌다. 친족상도례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방송인 박수홍씨다. 박씨는 친형 부부가 10여년간 박씨의 출연료 등 거액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자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자 박씨 부친이 “자금 관리를 내가 했다”며 친족상도례를 들고 나왔다. 형제간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자 제한이 없는 부친이 나섰다는 것이다. 법을 악용하려는 의도로 비쳐 논란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7일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친족상도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지적장애인이 부친 사망 후 함께 산 작은아버지 부부에게 2억원 이상의 돈을 빼앗겼음에도 검찰이 친족상도례상 ‘동거친족’으로 인정해 기소하지 않은 사건이 발단이 됐다. 헌재는 ‘일률적 형 면제’의 개선을 주문했다. 친족상도례를 무조건 적용할게 아니라 죄질에 따라 처벌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나 친족이라도 절도·사기·횡령·배임 등 자기 재산에 가한 범죄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전면 폐지론에 대해선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개별 가정마다 입장과 기준이 다르므로 합리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지지대] 엉터리 태극기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로 구성돼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낸다. 태극은 음(陰·파랑)과 양(陽·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만물이 음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했다. 네 모서리의 4괘는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과 양이 어울리면서 변화하는 우주를 나타낸다. 외국의 저명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가 한국의 국기라고 말한다. 태극기가 우주의 오묘하고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태극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태극기는 ‘케이팝 굿즈’로 각광받고 있다. 외국인 케이팝 팬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터리 태극기가 상당히 많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e커머스에서 판매하는 태극기 상당수가 태극문양이 뒤집어졌거나 4괘가 잘못 그려진 게 수두룩하다. 심지어 한국인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고 여기서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 ‘RE100’ 홈페이지에도 엉터리 태극기가 게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RE100’은 기업이 소비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민간 차원의 글로벌 캠페인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환경 캠페인 공식 사이트에 잘못된 태극기가 사용되다니 황당하다. 세계 곳곳에서 엉터리 태극기의 사용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진표, 세계적인 테마파크 레고랜드의 기념품 티셔츠 등에도 잘못된 태극기가 사용됐다. 한 나라의 얼굴인 국기가 잘못 사용된 곳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한류가 세계인들에게 주목받는 지금이 태극기를 올바르게 알릴 수 있는 적기다. 정부와 민간에서 올바른 태극기 홍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는 아닌 것 같다.

[지지대] “욱하는 데 0.2초...”

욱한다. 다음 동작은 자명하다.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서다. 공격적인 언행이나 행동 등이 뒤따른다. 일의 중한 정도에도 맞지 않는다. 까닭 모를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된다. 요즘처럼 더울 땐 특히 그렇다. 툭하면 매일 스트레스가 쌓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단조로운 일상이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증후군의 지속이다. 매일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증세라는 명칭이 붙었다. 의학계는 분노를 표현하면 약간의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 이후 찾아오는 후회 및 허무함 등으로 되레 스스로 괴로움을 느낀다. 갈수록 끈적거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종교인이 이 같은 증세를 앓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치료 요령을 내렸다. 의사가 아닌데도 말이다. “욱하고 화를 내는 시간은 0.2초에 불과합니다. 감정이 요동치기까지는 6초가 걸립니다. 화가 났다고 판단하면 5~6초만 참으세요.” 명쾌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의 말씀이다. 스님은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대중적인 선(禪)명상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런 그가 사회지도층 인사를 모아 놓고 이렇게 당부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에서다. 멈춤을 마음을 다스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기본 요령의 하나로 꼽았다. 마음을 다스려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게 요체다.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 등이 떼어 낼 수 없는 관계임을 이해하라고 당부했다. 물론 선문선답일 수도 있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디지털에 인공지능(AI)까지 밀려오는 복잡 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깨우침은 간단명료하다. 헛기침을 하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가락을 반 박자만 가다듬어 보자. 그러면 밝음이 어둠을 밀어내고 우리를 환하게 맞이한다.

[지지대] 세 송이 물망초

지난 24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장관 옷깃에 파란색 꽃 모양의 배지(badge)가 눈에 띄었다. 김 장관은 “세 송이 파란색 물망초는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를 상징한다”며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다. 김 장관은 물망초 배지를 건네주며 △전시납북자법을 제정 공포한 3월26일 △전후납북자법을 공포한 4월27일 △통일 교육주간인 5월 마지막 주 △6·25전쟁납북희생자 기억의 날인 6월28일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 발표일인 8월18일 △KAL기 납치 사건 발생일인 12월11일에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6·25전쟁납북자 수는 약 10만명으로 추정된다. 1952년 1월4일 초대 주한 미국대사 무초가 유엔군사령부에 보낸 문건에 납북자 수가 12만6천325명에 달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북한에 10년 넘게 억류돼 있는 선교사 3명을 비롯해 탈북민 3명 등 우리 국민 6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0월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와 이듬해 10월과 12월에 각각 억류된 김국기·최춘길 선교사다. 김국기·최춘길 선교사는 10년 넘게 수용시설에 구금 중인데 강요받은 듯한 기자회견을 끝으로 모습을 볼 수 없다. 지난해 3월 공개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는 한국인 전시납북자 10만명, 전후 납치·실종자 516명, 미송환 국군포로 5만명으로 명시됐다. 6월28일 ‘6·25전쟁납북희생자 기억의 날’을 앞두고 있다.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들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 주길 기원해 본다.

[지지대] 천원의 아침밥

밥 한 끼에 천 원? 요즘 세상에 정말 착한 가격이다. 경기도내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이 가격에 아침을 해결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식당 직원 임금은 제외하더라도 재료 값만으로도 어림 없어서다. 순수한 공익봉사 개념으로 이 같은 가격을 유지하는 걸까. 이 가격의 얼개는 정부와 지자체, 학생과 대학 등이 4천원 상당의 식사를 1천원씩 분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근 천 원의 아침밥에 몰려 드는 대학생들이 많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경기일보 11일자 6면)이 나왔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증액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세수 감소 등으로 쉽지 않다. 이 사업 초기에는 대학들의 분담률이 높았지만 지난해 경기도가 예산 지원에 참여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분담금을 늘리면서 같은 해 다섯 곳에 불과했던 참여 대학 수는 하반기 23곳, 올해는 32곳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천 원의 아침밥을 먹으려면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먹을 수 없다. 대학 측도 시험 기간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준비하는데도 10~20분이면 금방 소진된다고 밝혔다. 예산 증액과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재원이 고정된 상태에서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천 원의 아침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추가 예산 확보가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육 당국과 지자체가 수요를 분석해 적절한 규모를 설정하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대학들이 종강을 앞두고 있지만 방학에도 학생들은 취업 준비 등을 위해 캠퍼스를 찾을 터다. 이들에게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천 원의 아침밥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대한민국 미래의 주인공은 이들이 아닌가.

[지지대] 50도 ‘살인 더위’

낮 최고기온 섭씨 50도, 상상이 잘 안된다. 35도만 돼도 숨 쉬기 힘들어 헉헉거리는데 50도라니, 그야말로 ‘살인 더위’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이슬람 대규모 성지순례 행사인 ‘하지(Haji)’에 참석했다가 사망한 사람이 1천301명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파하드 알잘라젤 보건부 장관이 24일(현지 시간) 국영 TV에 출연해 공식 발표한 내용이다. 엿새간의 하지 기간에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망자가 지난해 200여 명의 6배가 넘는다. 하지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일생에 한 번은 이슬람 발상지인 메카나 메디나를 방문해야 한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 해마다 200만~300만명이 몰려 압사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는 지난 17일 메카 대사원 마스지드 알하람의 기온이 51.8도까지 치솟는 등 불볕더위가 이어져 사망자가 급증했다. 우리나라 더위도 심상치 않다. 장마철이 지나기 전에 한여름이 시작됐다. 지난 21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35.1도까지 올라갔다. 그날 밤 올해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 서울에서 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117년 만에 가장 빨리 찾아온 열대야다. 6월 폭염일수는 22일 기준 2.7일로 최근 10년 중 가장 많았다. 평년(1991∼2020년 평균) 기록이 0.6일인데, 6월이 끝나기 전에 이미 평년의 4배를 넘겼다. 지난주까지 건조한 가운데 불타는 듯한 ‘사막 더위’였다면, 이제부터는 장마를 동반해 습하고 후덥지근한 ‘동남아 더위’가 찾아올 것이란 전망이다. 노약자와 에너지 빈곤층, 실외 근로자들은 폭염을 어찌 견딜까 걱정이 크다. 지금 같은 ‘고탄소 시나리오’가 지속되면 60년 뒤엔 4개월간 폭염을 견뎌야 한다는 예측이다. 기상청은 2081∼2100년 서울의 폭염일수가 110일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봄·가을이 사라져 가고, 폭염·폭우가 늘어나는 현상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기상청 예측을 먼 얘기처럼 간과해선 안 된다. 당장 점점 더 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지 않은가.

[지지대] 늘어나는 ‘국포자’

교육부가 매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한다.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 현황과 변화 추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다. 중3과 고2 전체 학생의 3%를 표본으로 추출해 국어·수학·영어 교과별 학업성취 수준을 우수, 보통, 기초, 기초 미달 등 4단계로 진단한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으로 문제가 어렵지는 않다. 국어라면 비유법에 해당하는 문장을 고르는 정도, 수학은 기본적인 인수분해를 하는 정도다. ‘기초학력 미달’에 해당한다면 수업을 이해 못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9월 실시된 ‘2023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전국 476개교에서 2만4천706명의 중·고교생이 참여했는데, 기초학력 미달자가 국어와 수학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국어의 경우 중3의 기초학력 미달이 9.1%로 고2 미달 비중(8.6%)보다 높았다. 고2의 수학 기초학력 미달은 16.6%로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았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데도 문해력이 떨어지는 ‘국포자’(국어를 포기한 자)가 늘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는 상수나 함수 같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를 만든다. 수포자에 이어 국포자까지 크게 늘어나는 상황인데 영어 실력은 조금 나아졌다. 중학생은 기초학력 미달자가 영어보다 국어가 더 많다. 교육당국은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학교가 오래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나고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었다. 코로나 후유증이 이유일 수 있다. 코로나 세대의 학력격차가 이후 직업과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등 경제 양극화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 학업성취도를 ‘공부’ 문제로만 인식해선 안 된다.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다 보면 의사소통까지 어려워지게 된다. 이는 사회 집단·계층 간 소통을 저해해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 국포자 증가를 결코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지지대] 햇감자의 절기, 하지

밭에서 햇감자를 캤다. 외할머니는 이를 갈아 부침개를 만들어 주셨다. 산기슭이나 냇가 등지에 제단이 설치되기도 했다. 동네에선 굿판도 벌어졌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의 추억이다. 농촌에선 이맘때가 추수 때만큼 바쁘다.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수확, 고추밭 매기, 마늘 수확 및 건조, 보리 수확 및 타작, 모내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대마 수확, 병충해 방제.... 해도 해도 농사일은 끝이 없었다. 남녘에선 단오 무렵 모를 심어 이맘때 마무리한다. 장마도 시작된다. 하지 이야기다. 오늘이 그날이다. 이날은 태양 황경이 90도가 되면서 지구의 자전축이 하지점에 멈춘다. 북반구에선 이 시기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 여름의 중간 지점이자 1년 중 가장 덥다. 실제로 24절기 중 기온이 가장 높은 날은 입추다. 남중고도와 기온이 꼭 비례 관계가 아님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선 절기가 농사일의 기준인 ‘농사 달력’이다. 모내기가 끝나면 비가 와 논에 물이 가득 차야 벼가 잘 자랄 수 있다. 논에 물 대기가 그해 농사를 좌우하고, 가뭄이라도 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는 농부들의 ‘제 논 물 대기 다툼’이 큰 싸움으로 변했다.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으면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나 ‘유월 저승을 지나면 팔월 신선이 돌아온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올해도 절반이 후딱 지나가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에 집단휴진까지 겹친다. 이런 사안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까. 싹수가 노랗다. 국회는 강 대 강 대치로 어수선하다. 상임위조차 구성 못하는 등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밥그릇 싸움만 하는 꼬락서니가 역대급이다. 정치가 본업을 내팽개치니 이 모양이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눈앞이 캄캄한데 세상사가 우리를 더 지치게 한다. 하지라는 절기에게 되레 겸연쩍은 요즘이다.

[지지대] 태극전사에 격려와 성원을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구기 종목의 잇따른 출전권 확보 실패와 국제경쟁력 약화로 인해 48년 만에 최소 규모의 선수단이 참가한다. 메달 획득 목표도 금메달 5개, 종합순위 15위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못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전통적인 효자 종목 양궁과 펜싱, 배드민턴 등이 금메달 후보 종목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보수적인 예상으로 최근 국제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냉정히 분석한 결과 이보다 많은 10개 가까운 금메달도 가능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격, 태권도, 수영, 사격, 근대5종, 유도 등이 이를 기대케 하는 종목들이다. 예전보다 규모가 줄었고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관심은 경계해야 한다. 언론과 국민의 지나친 관심은 선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 독이 될 수 있다. 정부나 정치권은 평소 엘리트 체육에 대한 정책적인 뒷받침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올림픽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고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했다. 국민들 역시 과정보다는 결과만 놓고 웃거나 비난했다. 국가대표 요람인 진천선수촌의 시계가 본격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올림픽을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는 긴장의 연속이다. 심적인 부담 또한 커져만 간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올림픽 메달은 최고의 지향점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있다. 국민은 그들의 선전에 환호하고 때론 좌절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파리 올림픽은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이 반등하느냐, 역주행하느냐의 갈림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대표들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 격려가 필요하다. 과도한 관심과 부담보다는 묵묵히 성원을 보내며 결과를 떠나 올림픽을 즐기고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를 기원해야 한다.

[지지대] 결혼성비 불균형 심화

농촌 총각들이 중국, 베트남 등지의 여성들을 찾았다. 장가를 가기 위해서였다. 1990년 중반이었다. 외국인 여성들을 신부로 소개해주는 업소도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농촌에서 불이 나면 집 밖으로 나오는 젊은 새댁이 대부분 외국 여성들이다. 농촌 남성들을 포함해 결혼성비 불균형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최근 결혼성비 불균형이 심각해졌다는 발표가 나왔다. 미혼 남성이 20% 더 많고 대구는 3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35세 비혼율 남성은 46.5%, 여성은 29.1%로 집계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분석 결과다. 2021년을 기준으로 하면 미혼 남성은 미혼 여성보다 19.6%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 남녀가 만나더라도 미혼 남성이 많이 남는 만큼 인구학적으로 보면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보다 그만큼 결혼하기에 불리한 구조인 셈이다. 미혼 남성이 더 많은 불균형은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서 특히 심각하다. 미혼 남성 과잉 비율은 서울이 2.5%, 부산이 16.2% 등으로 평균보다 낮았지만 경북(34.9%), 경남(33.2%), 충북(31.7%) 등은 30%를 넘었다. 결혼 성비 불균형은 남녀 간 미혼율 차이로도 나타났다. 2020년 시점에서 1985년생(당시 35세) 비혼율은 남성이 46.5%로 29.1%인 여성보다 훨씬 높았다. 이처럼 미혼 남녀 성비 불균형이 큰 건 남아 출생이 여아 출생보다 많은 상황이 오래 이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암울한 미래가 청년들의 결혼을 꺼리게 하고 있다. 결혼 성비 불균형 문제, 특히 미혼 남성이 더 많은 상황은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 총각들까지 결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젊은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우울하다. 우리 시대의 ‘웃픈’자화상이다.

[지지대] 환자 곁 지키는 의사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7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응급·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는 제외했다지만, 전체 진료 교수의 절반 이상이 휴진에 돌입했다. 18일에는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하는 집단 휴진에 ‘빅5’ 병원이 동참한다. 이 중 세브란스병원은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상태다. 다른 빅3 병원은 18일 휴진에 동참 후 추가 휴진을 논의할 방침이다. 중증·위급 환자와 가족들은 “사람 목숨을 볼모로 삼지 말라”고 절규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28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회장은 “의사집단의 조직폭력배 같은 행동을 보고, 죽을 때 죽더라도 이 사회의 엘리트로 존재했던 의사집단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겠다”며 “정부는 이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건물 노동조합 게시판에는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붉은 배경의 대자보 상단엔 ‘의사 제국 총독부의 불법 파업 결의 규탄한다’는 문구와 함께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라는 글이 적혔다. 의사들이 지켜야 할 윤리를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글귀 일부도 써넣었다. 의정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에 남겠다는 의사들이 있다. 대학병원 뇌전증 전문교수들로 구성된 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를 겁주고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차라리 삭발·단식을 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 맞다”며 집단 휴진 불참을 선언했다. 앞서 대한분만병의원협회도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아기를 받았던 분만장을 닫을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한아동병원협회도 “의협 투쟁에는 공감하지만 아이들을 두고 자리를 뜨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들에 감사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들은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이라는 기본을 지키려는 진정한 의사들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선 안 된다.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화나고, 정부의 무대책에 속 터진다.

[지지대] 때 이른 ‘모기와의 전쟁’

한밤에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돌아다니면 밤새 잠을 설치게 된다. 자다가 불을 켜고 잡아보려 해도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 어렵다. 다시 잠이 들만 하면 또다시 나타가 앵앵거린다. 다음 날 종일 피곤하다. 모기 한마리 때문에.... 모기에 자주 물리는 사람이 있다. 땀을 많이 흘려서, 피가 달아서, 몸이 뜨거워서, 잘 안 씻어서 등등의 이유를 붙이는데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모기가 나타나면 일상이 괴롭다. 모기는 무서운 곤충이다. 한 해 수십만명이 죽는 말라리아의 매개가 모기다. 2008년 세계에서 2억4천70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렸고 그 가운데 200만~30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사망자가 매년 줄어들지만 모기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말라리아 외에 뇌염, 뎅기열 등까지 합치면 모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죽는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요즘 때 이른 모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모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의 모기예보제에 따르면 서울시 평균 모기활동지수는 지난 2~15일 2주 연속 가장 높은 수치인 100을 기록했다. 모기예보제에서 가장 높은 4단계(불쾌)에 해당한다. 이는 야외에 모기 유충 서식지가 50∼100% 범위로 형성된 단계로, 단독주택 밀집 지역의 경우 침입 모기가 하룻밤에 5∼10마리 된다. 5월 초부터 극성을 부리는 모기 퇴치를 위해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사람이 소독약을 뿌리는 전통 방식부터 ‘모기 잡는 드론’까지 등장했다. 드론에 살충제 탱크를 달아 펜스가 높이 쳐진 공사장 물웅덩이, 저수지, 판자촌 등 방역 차량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드론을 투입한다. 천적 관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순천시는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잡아먹는 미꾸라지 3만9천여마리를 푼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루에 장구벌레 1천마리 이상 잡아먹어 자연 친화적이다. 구미시는 공원과 캠핑장 등에 모기가 싫어하는 향을 내뿜는 허브인 구문초를 심었다. 일반인들도 향기나는 팔찌, 스티커 등의 모기기피제를 이용하고 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공산품은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지지대] 아프지 마라

2009년 봄으로 기억한다. 첫아이의 시력이 좋지 않았다. 대학병원 소아안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외래진료 신청을 하려다 깜짝 놀랐다. 지금 6월에 접수하면 9월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단다.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대학병원 예약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인기 과(?) 진료를 받으려면 한두 달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대학병원은 중병을 앓는 환자들이 간다. 아픈 사람들은 절박하지만 환자는 많고 의사는 적다 보니 병원 갈 때마다 예약 걱정부터 앞서 마음이 급하다.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아 주는 의사가 없어 구급차를 타고 전전하다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지는 요즘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이나 주변 지인 중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병원 환자 쏠림 현상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경미한 병에도 동네 의원보다 대학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동네 의원 의사를 주치의로 두자는 캠페인도 벌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 의료체계 개선이나 의사 증원을 논의하기보다 낮은 국민성 문제를 더 부각한 계몽운동이었다. 정치권력, 사법권력과 함께 의사는 또 다른 권력 집단이 됐다. 물론 막무가내식 의사 증원을 발표한 정부의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만 빼고 다 공감하는 의제다. 의사 집단은 더 똘똘 뭉치는 모양새다. 의사협회가 집단 휴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급기야 이른바 ‘빅5’ 종합병원들도 집단 휴진에 동참한다고 한다. 지난 12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조가 내건 대자보 제목이 인상 깊다. ‘히포크라테스의 절규’라는 제목이다. 새내기 의사들이 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비꼬는 내용이다. 의사 집단에서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연의 의무를 저버린 채 절박한 환자를 두고 거리로 나온 의사들은 국민들 눈에는 ‘제 밥그릇 지키기’에 나선 탐욕스러운 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런 시대에 우리 스스로 아프지 않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지지대] 위축되는 착한 소비

소비는 자본주의의 중요한 축이다. 소비가 활성화돼야 생산 증가로 이어지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고전적인 경제학파의 중요한 얼개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소비를 제어하는 반전 요인들이 있다. 뭘 살 때마다 늘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다양한 소비 형태 속에서 환경, 이웃, 세계, 지역, 건강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다. 이른바 착한 소비의 정형이다. 생활이 풍족해지고 편리해질수록 지구는 몸살을 앓는다. 당장은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거나 때로는 불편하고 비싸더라도 환경과 미래를 생각한다. 제로 웨이스트 개념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교집합은 무엇일까.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 등을 태우지 않고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 등으로 배출하지 않고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 및 재활용한다. 플라스틱 빨대, 일회용 컵, 비닐봉지 대신 실리콘 빨대, 개인 컵, 텀블러, 에코백 등을 사용하는 연유도 이에 해당한다. 최근 고물가 등으로 착한 소비와 제로 웨이스트가 위축되고 있다. 특히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이나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의 경우 대량생산되는 공산품보다 평균 가격이 많게는 배 이상 비싸다. 전반적으로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제품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지보다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를 따진다. 그러다 보니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브랜드 제품을 계속 사서 쓰는 게 사치라는 경향이 나온다.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 상점들도 덩달아 한숨이 깊어졌다. 관련 업계는 지난해부터 제로 웨이스트 상점들의 폐업이 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국에 있던 상점의 30%는 사라진 것으로도 관측되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이 두 개념은 어떠한 함수관계일까.

[지지대] “배 고명도 사라질까”

벌써 후텁지근하다. 바야흐로 냉면의 계절이다. 평양식이든 함흥식이든 이 음식의 압권은 고명이다. 냉면 맛을 더하기 위해 얹는다. 배 같은 과일이 많이 쓰인다. 사과 등도 얹히긴 하지만 대세는 역시 배다. 제법 운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냉면에 배를 얹기가 부담스러울 것으로 전망된다. 배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햇배가 나오기 전까지 물량 부족이 우려돼서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다음 달까지 배 출하량은 1년 전보다 84.3%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햇배가 나오기 직전인 다음 달까지 출하량은 4천t 안팎으로 집계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84.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물가 당국은 이달 배 도매가격은 15㎏에 11만1천80원으로 1년 전 3만8천925원과 비교해 185.4% 오르고 평년 4만7천674원보다 133.0% 비싸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래저래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배 값 오름세는 지난해 봄 냉해와 여름 잦은 호우 등에 더해 병해가 확산되면서 생산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추석까지 값이 높은 수준을 보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유통업계의 우려도 가세한다. 배는 냉면 등 여름철 음식에 고명 등으로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꼭 찾는 수요처가 있는데 사과 값보다는 배 값이 더 올랐다고 밝혔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수요 분산을 위해 직수입해 할인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수입 과일 도입량은 1년 전과 비교해 품목별로 최대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수입 과일 도입량에는 배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냉면에 얹는 고명도 수입산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도락가는 기가 막히게 가려낸다. 올여름 냉면 고명에 배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지지대] 다시 켜진 ‘대북 확성기’

대북(對北) 확성기가 다시 켜졌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따라 확성기를 철거한 지 6년 만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이다. 남북은 대북 확성기 심리전을 둘러싸고 50년 넘게 갈등과 충돌, 타협을 반복해 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3년 시작돼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에 맞서 11년 만에 재개했다. 2016년 1월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다시 방송을 했다. 그러다가 2018년 4월 23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단했고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확성기 시설을 철거했다. 대북 확성기는 철거 전까지 최전방지역 24곳에 고정식으로 설치했고, 이동식 장비도 16대 있었다. 고정식은 출력을 최대로 높이면 야간에 약 24㎞, 주간엔 약 10㎞ 떨어진 곳까지 도달했다. 차량에 탑재된 이동식은 고정식보다 10㎞ 이상 더 먼 곳까지 음향을 보낼 수 있다. 최전방의 북한군 상당수가 들을 수 있는 성능이다. 때문에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체제 위협’으로 간주해 확성기를 포격까지 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때 한국군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연천군 28사단 최전방에 배치된 확성기를 겨냥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했다. 이에 우리 군이 155㎜ 자주포 28발로 대응 사격을 하면서 남북이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0~80년대엔 북한군의 귀순을 유도하는 정치적 내용이 많았다. 2010년대 이후엔 북한관련 뉴스와 대중가요 등을 방송했다. 9일 재개된 방송에선 ‘자유의 소리’를 송출했다. 한국의 발전상과 북한 인권 실태, BTS 노래 등이 담겼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북한이 ‘오물 풍선’을 뿌린 데서 시작됐다. 이에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고, 북한이 또 오물 풍선을 살포하면서 확성기가 가동됐다. 접경지역 주민뿐 아니라 국민들은 ‘강 대 강’ 대치에 군사적 충돌이라도 일어날까 불안해 하고 있다. 정부 대응이 국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한 적절한 조치인지 의문이다.

[지지대] 사교육 뺑뺑이

한국의 저출생 이유 중 하나로 사교육비를 지목한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이 27조1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3월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 대비 1조2천억원(4.5%) 증가했다. 학생 수가 전년 대비 1.3% 감소했음에도 사교육비 총액은 첫 조사를 진행한 2007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교육 참여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55만3천원을 지출했다. 2022년(52만4천원)보다 5.5% 올랐다.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보건복지부도 며칠 전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에 18세 미만을 양육하는 아동 가구 5천753가구(빈곤 가구 1천가구 포함)를 직접 방문해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6~17세의 월평균 사교육 비용은 43만5천500원으로 5년 전인 2018년(31만6천600원)보다 11만8천900원 증가했다. 9~17세 아동의 70%가량은 영어·수학 사교육을 받았다. ‘방과후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응답(42.9%)은 절반에 가까웠지만 그런 현실을 누리는 아이(18.6%)는 매우 적었다. ‘사교육 뺑뺑이’를 돌고 있는 10명 중 7명의 아이들은 신체활동이 줄어든 만큼 비만율이 높아졌다. 비만율은 2018년 3.4%에서 지난해 14.3%로 급증했다. 우울감을 경험했거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정신건강 고위험군도 늘었다. 한국의 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 몸과 마음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 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할 아이들을 종일 책상에 붙들어 놓는 건 정상이 아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미래 사회가 밝다. 저출생에 아이들이 자꾸 줄어드는데, 그 아이들을 더 이상 불행하게 만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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