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빵’보다 소중한 ‘예술’을 찾는 아이들

‘가끔은 빵보다 예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베네수엘라 빈민가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 배급되는 빵 한 개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살던 한 소녀의 말을 떠올려본다. 이 말이 탄생하게 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며 교육은커녕 끼니를 걱정하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엘 시스테마의 성공적인 결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우리나라 역시 ‘꿈의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으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용인문화재단의 경우, 많은 문화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예술교육을 역점사업으로 펼쳐온 바, 이를 기반으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 기관으로도 선정되었다.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특히 소외계층 및 다문화계층의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이에 따른 성과가 반영되어 올해, 예술교육팀이 본부급으로 확대 승격되었고 관련 직원을 채용했다. 이렇게 예술교육이 청소년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는 예술교육은 그 진정한 의미를 간과한 채 그저 일회성 복지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은 엘 시스테마를 마약과 범죄에 노출된 지역의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기여한 사업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엘 시스테마가 그저 악기를 연주하며 범죄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예술교육을 통해 그들에게 세상이 아무리 암울해도 앞으로의 삶에 기쁨과 희망 그리고 꿈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이 같은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필자는 내 딸 아들들에게 예술교육을 통해 뭔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에 세 아이 모두를 음악학원에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이웃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집 앞에 나서면 보이는 수많은 영어 수학 학원들을 지나쳐 찾기도 힘든 음악학원을 향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상한 시선은 결국 부모를 향한 시선이었다. 더구나 2016년 설날 아침, 한 자리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이 억울한 시선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필자를 바라보는 친척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필자는 마침 TV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소재로 화제를 돌려야 했다. 뉴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북한 김정은의 유엔 안보리 위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정치인의 이합집산 그리고 메르스를 떠올리게 하는 지카 바이러스 공포까지. 이것이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2016년 설날의 현실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진학한 막내 녀석이 공부 좀 해보겠다고 영어 수학 학원 보내달라던 말이 생각났다. 대학 등록금이 예체능 계열이라는 이유로 정확히 일 년에 일천만원 들어가는 첫째 아이보다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녀석한테 들어갈 학원비가 필자의 2016년 설날을 어둠 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아, 그래도 시나브로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면서 목구멍을 뚫고 나오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래, 그래서 더욱 예술교육이 필요한 거지. 이런 세상에 그것마저 없으면 어찌 살아가려고 이러나?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길고 긴 그 소중한 시간을…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별 헤는 밤이 그리워

오늘은 밤하늘에 무수히 쏟아지는 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은하계에만 천억 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또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그런데 그중 하나의 별이 수십억 인구 가운데 하나인 나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별과 내가 서로 마주 본다는 것, 이것은 현대의 소시민들에게는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라고 탄복한 시인의 노래가 귓전을 울린다.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은 우리들의 가장 큰 놀이터였다.수많은 별을 쳐다보면서 상상의 놀이를 하였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을 읊었던 그 시절이 있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려 고개를 든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아스라이 멀어진 우리 현대 도시민들에게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문득 밤하늘의 별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와, 노래, 세상살이 속에는 별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 별과 함께한 우리 추억을 떠올려보자. 김광섭은 ‘저녁에’라는 시에서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라고 했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별을 읊었다. 이성선 시인은 ‘사랑하는 별 하나’에서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외로워 쳐다보면/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별 하나를 갖고 싶다.”라고 했다. 별을 소재로 한 노래도 많다. 윤향기는 ‘별이 빛나는 밤’에서 “너와 내가 맹세하던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은 별빛 따라 흘렀네.”라고 노래했고,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라는 한때 유행했던 음료수 CM송 광고와 김환기의 그림, 영화 ‘라디오스타’ 도 떠오른다. 이렇듯 별은 우리 삶과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 바쁜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실제로 하늘의 별을 쳐다볼 여유는 가지지 못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삶 속에서 별을 노래하고 별을 찾았고 또 별을 추억했다. 경기도박물관은 올 봄 어린왕자 특별전(5월2일-8월30일)을 준비하고 있다. 생텍쥐페리(1900-1944)의 소설 ‘어린왕자’ 속에서 별은 글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소재이다.어린왕자가 온 곳이 바로 별이며, 어린왕자가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 어른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 속에도 별이 있다. 소설 속 화자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일주 중 갑자기 고장이 나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다.사막 한가운데서 비행기를 고치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쳐다보며 외로움과 싸우다 별에서 온 어린왕자를 만나 나눈 이야기 책이 바로 ‘어린왕자’다. 화자는 어린왕자를 만나 어린왕자가 들려주는 별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경기도박물관에서 준비하는 어린왕자 특별전시에서는 현대 프랑스 조각가 아르노를 통해 재구성된 어린왕자 주요 장면의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통해 어린이들에게는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과 같은 꿈을 심어주려 하고, 어른들에게는 이기적 욕망(오만, 군림, 위선, 허무주의, 물질만능, 인간성 상실)의 세계를 극복하면서 잃어버린 별을 찾아주고 싶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작가와 고향 그리고 기념관

소설 돈 키호테는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에 의해 써진 세계문학의 한 봉우리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이 소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그의 고향인 라 만차 지방에서는 가히 종교적이라 할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르가마실라 마을 입구의 길가에는 커다란 돈 키호테의 실루에트 상像이 서서 안내를 한다. 부근에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그림이 벽에 그려진 하얀 풍차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 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이 있다. 마을 복판에는 소공원이 있고 거기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석상이 서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돈 키호테의 집은 마을의 교회에서 가까운 곳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은 텅 빈 마당이다. 한쪽 구석에 땅 밑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있다. 하얀 벽의 동굴에는 나무 책상이 하나, 돌바닥 침대가 하나 놓여 있다. 가히 세계적 풍운아 돈 키호테의 궁궐 같다. 그러나 이 동굴은 돈 키호테가 감옥살이를 하면서 소설을 집필했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만든 인위적 공간이다. 소설에서 돈 키호테의 고향은 라 만차라고만 돼 있지 마을 이름은 ‘들먹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돈 키호테를 이 지방의 영원한 주민으로 살려 놓고 싶은 사람들이 돈 키호테의 고향을 아예 아르가마실라로 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한’ 작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민들이 자기 고장의 작가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아끼는 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발생이었다. 곧 작가와 주민을 하나로 연결한 아름다운 ‘끈’이었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기형도 시인의 문학관을 광명시에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기형도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하여 29세의 나이로 작고할 때까지 구체적 이미지들을 통해 우울한 자신의 경험과 관념들을 독특하게 표현한 바 있다.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출생한 시인은 1964년부터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를 근거로 광명시와 시인의 모교인 시흥초등학교 총동문회가 2014년부터 꾸준히 추진한 끝에 마침내 문학관 건립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행복한 작가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유년기를 보낸 시인의 족적을 오래오래 기리고자 문학관을 건립하는 데 힘을 모은 주민들의 뜨건 작가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그의 작품과 이름은 주민들과 함께하니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작가의 몫이지만 이를 수용하고 보존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자 자랑이다. 특히 품격 있는 나라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경기도 양평의 ‘황순원 소나기 문학관’, 안성의 ‘조병화 문학관’과 ‘박두진 문학관’ 등이 그 좋은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은 그 작가의 고향(태어난 곳은 물론 성장 내지는 장기간 머문 곳 포함)과 어떤 형태로든 ‘인연’의 끈이 닿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그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우리 고장의 작가’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어 할 것이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이란, 문화 동반자로 접근하자

방송뉴스에서 이란의 중세 사파비왕조의 화려한 수도인 이스파한을 소개하는 것을 보니 짧은 세월에도 격세지감이 든다. 이란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을 찾겠다고 발굴조사를 하기 시작한 지 이제 십년 정도 된다. 그동안 이란을 경험하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경이로운 문화체험이었다. 하나는 이방인으로서 닫힌 사회를 들여다보는 신비로움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바깥 세상 희구에 대한 연민, 또 한편으로는 거대한 제국의 역사에 대한 애수와 잔잔하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용이 웅크리고 있는 미래를 보아온 것이다. 이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가 풀리면서 우리 사회에도 이란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지구촌에서 소외된 별종 국가는 북한만이 외롭게 남은 것 같다. 이란이라고 하면 그동안 그 이미지가 이슬람 율법의 엄격함 그리고 그동안 알려진 공격적인 이미지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조금은 무서운 나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수년전 여행을 같이 갔던 여류사업가는 만일 테러라도 당하는 경우를 위하여 딸에게 유서를 써놓고 왔다고 하여 웃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란은 아마도 가장 친절하고 평화스러운 나라의 하나일 것이고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 있지만 우리와 문화적으로 대단히 깊은 공감대가 있는 가까운 나라이다. 페르시아의 후예로서 아마도 가장 극적인 역사를 남긴 민족일 것이고 우리가 깜짝 놀랄 역사도 있다.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민족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제국의 건설자인 사이러스왕은 2500년 전에 바빌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놀랍고도 놀라운 종교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늘날 이스라엘과의 극한적인 대립에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뒷 언저리에서 융합을 통해서 문명의 새로운 면모를 창조한 이란은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는 잠자는 사막의 사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란 혁명이후 거의 40년 동안의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견뎌낸 것을 보면 그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란은 우리에게 멀지만 가까운 이웃이다. 한류의 영향을 가장 잘 받고 있는 국가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놀라울 일은 이란의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신라이야기다. 이란의 지도에 한쪽 끝에 이란을 표시하고 다른 끝에는 신라를 표기한 고지도가 있다.그리고 이란의 왕자가 신라 공주와 결혼하였다는 전설은 유라시아 대륙판 러브 스토리다. 그렇지만 단순히 전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은 경주의 신라왕의 고분에서 나오는 페르시아 산 유리그릇이 말해주고 있다. 이란은 고대에도 그랬지만 그들이 정말 어렵게 지내온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우리의 감성적인 우방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경험에서 보아도 이란인들이 우리 문화를 너무도 좋아한다. 그동안 중국이 엄청나게 투자하였고 또한 이번에도 시진핑 주석이 직접 가서 협력관계를 챙기는 것을 보았다.그렇지만 이제 새로이 개방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란에 접근하는 방법이 좀 더 세련되었으면 하는 것을 기대한다. 아마도 이란인들은 그들이 경제적인 시장으로서가 아니라 오래된 친구로서 접근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에 앞서 문화가 한발 앞 서 가야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바로 친구로 남는 것이며 한편으로 이 경제난국 속에서 중국을 이기는 길이기도 하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국제박물관협회 국가위원회 의장

[문화카페] 강이 풀리면…

전국의 강이 얼어붙었다. 바다마저 얼어붙었다. 제주의 하늘 길도 얼어붙었다. 이제 한파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여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해 연안 일부는 여전히 얼어있고, 바닷물이 얼었다가 녹은 곳에서는 유빙이 바닷길을 막아 어민들의 발을 묶고 있다. 포구의 횟집은 수족관이 통째로 거대한 얼음덩이가 돼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이고, 거대한 얼음덩이가 조류를 타고 바닷길을 막으면서 여객선 운항도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전국적으로 몰아친 폭설과 한파가 설을 앞두고 치솟는 물가와 함께 서민들의 주름살을 깊게 만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한파로 인한 피해가 외신을 타고 속속 전해진다.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눈폭풍은 급기야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사태까지 몰고 왔다. 희망차게 맞이한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들이닥친 한파로 인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은 풀린다. 제 아무리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도 꽁꽁 언 얼음 밑으로는 쉬지 않고 물길이 흐르다가 때가 되면 강이 풀리고 훈풍이 불기 시작하면 봄이 오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순리가 있어 겨울을 버텨 낼 수 있다. 겨울은 우리에게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양식을 제공한다. 초목이 언 땅 깊숙한 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올려 새싹을 피울 때까지, 땅 속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언 땅을 뚫고 나올 때까지, 앙상한 나뭇가지가 헐벗은 겨울 산을 지키고 푸른 숲을 이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어떤 작은 풀잎 하나도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은 없다. 모든 생명은 겨울이라는 질기고 모진 추위와 바람을 견뎌내고 기다림을 거쳐야 다시 소생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얼 때는 얼어야 한다. ‘쨍’한 얼음의 결기는 순수와 성성한 정신의 표상이다. 한반도 남쪽 하동 평사리에 사는 시인 조문환은 평사리 일기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강이 얼었다/이 얼마만이냐/고맙다/겨울에 강이 언다는 것이/그래야 강물이 녹아 물이 흐르고/봄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얼지 않은들 어떻게 알 것인가/겨울에 이처럼 강이 얼고/봄이 올 무렵에는 강이 울어줘야/봄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이니/ 울기 위해서는 강이 얼어야만 하느니/그러니 강이 언다는 것은 울기 위함임을/오늘 밤에 또 강이 언다’. 죽은 것은 울지 못하지 않는가! 살기 위해,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겨울에는 강이 얼어야 한다. 언제 경제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문화가 융성한 시절이 있었는가, 정치권이 국민을 섬겨본 적이 있었는가.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인생이 기다림이란 것을. 김동환 시인은 ‘강이 풀리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배가 오면은 님도 오겠지/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강이 풀리면 배도 오고 님도 올 것이다. 사는 일이 다 이런 기다림 속에서 진행된다. 강이 풀리면 선거를 통해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가 이루어지겠지, 강이 풀리면 경제도 좋아져서 살림살이가 넉넉해지겠지, 강이 풀리면 문화가 융성해지고 온 국민이 행복해지겠지.또 혹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꿈과 희망은 남겠지. 봄이 와야 받을 수 있는 편지를 기다리듯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강이 풀리길 기다린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문화카페] 문화융성 위해 패러다임 변화를 기대하는 문화재단들

‘문화융성’은 지금 우리에게 얼마만큼 다가와 있는가? 정부는 지역문화 발전과 생활 속 문화 확산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강도 높게 ‘문화 융성’을 외쳤고, 그에 걸맞은 과감한 문화정책을 펼쳐왔다. 문제는 체감온도다. 아무래도 지금 현재, 그 온기가 썩 신통치 않은 것 같다. 물론 세월호나 메르스 같은 미증유의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문화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응원이 더 컸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이 땅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화는 문화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그저 ‘문화융성’의 구호만 들릴 뿐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하향식 지원정책을 지적해왔다. 물론 정부는 국민과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 생활밀착형 정책을 새로운 문화정책의 틀로 삼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지금까지의 방식인 하향식 지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문화진흥법 제정과 이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전국의 지자체에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지역의 특성을 담아 작성된 상향식 계획안은 정부가 원하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문화융성’을 위해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또다시 드러나는 아쉬움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지적되어온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기본계획을 실질적으로 수행해야 할 주체가 배제된 채 진행되는 결과물은 결과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간과한 하향식 지원정책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작금의 과정에 성공적인 ‘문화융성’과 국민의 만남을 실질적으로 이어줄 연결고리가 배제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중앙과 광역 지원단체의 하향식 지원 방식은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에게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이 땅 곳곳 사람들의 삶 속으로 다가가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문화라는 모내기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현재 전국에 50개의 기초재단이 지역민들과 함께 ‘문화융성’을 위한 모내기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의 재단들은 그 지역민들이 어떤 문화를 원하는지 어떤 문화가 필요한지 또 어떻게 해야 ‘문화융성’이 성공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전문기관이다.그렇게 때문에 경쟁을 통해서든 협의를 통해서든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라는 테이블에서 함께 논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전국 지역문화재단들은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의 이름으로 소통하면서 ‘문화융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정부의 문화정책 테이블 위에 올려질 기회나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다행인 것은 경기도의 경우, 경기도문화재단협의회가 운영되고 있는데, 지난 회의에서 경기도 지역부터라도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해 함께 협의하고 노력하자는 공동선언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내 기초자치단체 소속의 문화재단 13곳이 모여 경기문화를 위해 소통하고 있는 경기도문화재단협의회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타 지역에서 예상하지 못한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이에 경기도문화재단협의회의 소통의 결과물도 정부의 정책과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의 ‘문화융성’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문화융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소통과 협력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한 ‘문화융성’의 성공적 결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남한산성에 깃든 해와 달 이야기

조상들은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하늘을 공경(恭敬)하고 사람을 사랑하라[愛人]는 가르침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하늘(天)’은 우주 삼라만상을 만든 창조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만사(萬事)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하늘에는 천지자연의 법칙이 있고,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궂은 일이 있을 때나 모든 것을 하늘의 뜻이라 여기면서 자연의 법칙에 순응했다. 이렇듯 조상들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하늘의 섭리와 우주가 들려주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우리는 그동안 소홀히 여기며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늘의 이치인 천문의 사상을 멀리하면서 세속적인 욕망의 세계만을 키우는 데 급급했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하여 많은 인파가 높은 산등성이로 또 동해바다로 몰리는 현상은 다 자연 현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연관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는 인간사의 근본이 된다. 생명의 근원과 터전인 자연의 움직임은 우리 삶의 나침판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과 천문의 세계를 실증적으로 활용한 예로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행궁을 살펴볼 수 있다. 남한산성은 서쪽은 높고 동쪽이 낮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形)의 자연 지세에 입지해 있다. 이러한 자연 지세를 존중하여 행궁 건물의 대부분은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자연 환경에 순응하여 조선왕조의 경도보장지로서의 또 하나의 한양인 남한 행궁을 지은 것이다. 또한 조선의 건축은 남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남한 행궁 전체는 수어장대가 있는 서쪽 높은 봉우리, 즉 산성의 주봉 아래에 동향의 행궁을 지었다. 서쪽의 큰 산 밑에 위치해 있으니 지는 해가 더욱 일찍 넘어가는 형국이다. 입지상 일조량이 적은 곳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또한 조상들의 깊은 뜻에서 계획된 것이다.천기(天氣)를 살려 배향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건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지(冬至)와 하지(夏至)의 해 뜨고 해지는 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 각별히 자리를 살펴서 행궁을 배치한 것이다.즉, 남한 행궁은 겨울에 일찍 해를 받아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하여 동쪽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입지하였고, 동시에 산성 천주봉 아래로 해가 넘어는 곳에 입지했다. 가장 일조량이 많은 공간에 위치함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따뜻함을 유지 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하지를 중심으로 한 여름날에는 아침 해가 산성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가장 늦게 떠서 저녁에는 수어장대 주봉 정상 너머로 가장 일찍 진다. 따라서 일조량이 가장 적은 곳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시원한 행궁이 되도록 건물의 방향을 배치했다. 천기를 알고 건축물인 행궁의 배향을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건물의 배향을 정하는데도 이렇듯 자연의 이치를 살펴서 활용하는 지혜를 보였다.이러한 남한산성 행궁의 천기를 떠올리면 조상님들의 지혜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남한산성의 또 다른 이름인 ‘주장산(晝長山)’, ‘일장산(日長山)’에 하루 해가 길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이처럼 남한 행궁 자체는 태양의 움직임과 관련 있는 한편 그 좌측 언덕의 능선에는 달맞이하는 정자 ‘영월정(迎月亭)’이 있어 흥미롭다. ‘해’와 빼놓을 수 없는 관련이 있는 ‘달’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함께 배치한 것이다. 산성에 깃들어 있는 해와 달의 이야기는 1000년 역사의 산성에 스며든 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병신년(丙申年) 새해에는 해와 달, 우주의 이야기에 마음을 더욱 쓰면서 욕심을 줄이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멋진 아마추어 예술가들

언젠가 지인이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실버악단의 음악회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70세가 넘은 노년층으로 구성된 관현악단의 연주와 노래였다. 그날 내가 첫 번째로 놀란 것은 무대 위의 단원들이 너무도 젊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얼마쯤은 화려한 의상에다 약간의 화장을 한 덕분이긴 하겠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들 50대쯤으로 보였다. 여기에다 연주하는 모습도 70대 노인들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객석의 분위기였다. 실버악단의 연주이니 객석이 썰렁할 것으로 여겼는데 웬걸 빈 좌석은커녕 통로에까지 초만원이었다. 게다가 연주 내내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모습이 젊은 가수의 콘서트를 연상시켰다. 연주회는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다들 어찌나 신바람이 나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지 객석에 앉은 나까지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런데 뒷얘기가 더욱 나를 흐뭇하게 해주었다. 이곳 단원들은 모두 한때나마 가수나 연주자를 꿈꿨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동안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는데 이제 비로소 자유인으로 자신의 젊은 날의 꿈을 되찾아 다들 행복하게 노후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날의 꿈을 나이 들어 이룬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룬 꿈으로 이웃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 뛰어난 프로는 아닐지라도 훌륭한 아마추어로 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이름만 대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한 고위공직자는 자리에서 물러나자 카메라를 둘러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끝에 개인전을 열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공직 생활에서 누리지 못한 개인의 꿈을 노후에 이룬 본보기라 하겠다.그런가 하면 젊은 날부터 교도소를 밥 먹듯 드나들던 한 중년 남자는 어느 날 경찰차에 실리어 가는 도중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감동해 복역을 마치고 나오자 새 사람이 되어 기타를 둘러메고 요양원과 노인정을 찾아다니면서 봉사 활동을 하는 이도 있다.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남은 인생을 이웃을 위해 뜻 있게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경찰차 안에서 들은 노래는 ‘눈물로 쓴 편지는 지울 수가 없어요’ 였다고 한다. 날로 늘어나는 고령화 사회를 생각할 적에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화젯거리로 끝날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가슴에 묻어둔 어린 날의 꿈을 나이 들어 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가. 노년은 그저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시기가 아니다. 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야말로 젊은 날에 놓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 마치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후반부 같은 삶이라는 것.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버악단의 연주를 보면서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각종 평생학습 차원의 교육을 돌아다보게 되었다. 시 창작교실, 사진 동우회, 서예교실, 그림 동우회, 구연동화 모임, 무용교실, 노래교실 등에서 자신의 노후 인생을 재창조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세모에 생각하는 경기문화의 미래

얼마 전에 개성 만월대 발굴현장을 다녀왔다. 임신한 여인의 누운 형상이라는 송악산을 뒤로 하고 조선의 궁궐과는 달리 높은 언덕에 장대한 궁전을 조성한 초석들이 오래전에 유행한 노래가사처럼 잘 남아 있었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만월대 궁전을 올라가는 계단이었다.그 계단은 중국이나 로마의 궁전계단처럼 정교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가파르게 되어 있고 또한 아래에서 보면 높다란 다락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도록 배치가 되어 있어서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의 계단을 보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라는 국호가 말해주듯이 국제적으로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왕조의 위엄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경기도민들에게 중요한 점은 개성이 바로 경기도 아닌가? 경기도는 지난 천년 동안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심이었다. 고려와 조선왕조의 도읍의 외곽이자 인적 생산적인 기반으로서 한국문화인자의 가장 풍부한 풀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경기는 서울의 위세에 눌려서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왜소해지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내일이면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마당에서 한 번쯤 새롭게 생각하여 경기문화의 미래를 기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것은 단지 관광객을 유치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경기인이든, 타지역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문화와 환경적 매력을 가져야 정을 붙이고 살게 될 것이고 그 인연을 지속할 근거가 생길 것이다. 환경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우수한 문화경관의 구성은 결국 앞으로 경기인의 삶을 결정할 것이고 경제적으로 지속발전가능한 경기를 만드는 전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경기적인 문화이고 삶인가? 사실 경기만은 고대로부터 외래문물이 들어오는 한반도의 입이고 한반도 땅의 모든 기운이 쏟아져 모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물산의 풍요로움이 있는 곳이 바로 경기지역이다. 아름다운 산수 속에서 다양한 경기도의 물산과 문화를 만끽할 수 있고 서울과도 많은 부분 공유하거나 즐길 수 있는 거주지가 바로 경기도다. 그런데 경기도의 고유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존할 것인가? 앞으로 경기적인 문화가 남아 있을 것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기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앞으로 경기도의 문화정책을 구축하는 화두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 앞으로 경기도 지역은 지금도 지역사회의 구조가 한창 변하고 있는 중이지만 앞으로의 변화는 더욱 급하게 변할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미군부대의 이전과 대규모의 산업단지의 조성이 남부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데 이러한 거점시설들이 자리 잡게 되면 주변의 주거환경들이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경기 북부지역은 아직도 휴전선 일대를 비롯한 많은 지역들이 개발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통일의 방식에 따라서는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지역이다. 이러한 시점에 미리 경기문화환경을 미래지향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경기환경 그리고 문화적 삶의 철학의 재구성이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전략정책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배기동 국제박물관協 한국위원장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문화카페] 필사(筆寫)문화

며칠 전 새해 다이어리를 구입하기 위해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새로운 유행을 발견하였다.필사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필사 다이어리와 시인들의 시를 베껴 쓰는 책에서부터 ‘어린 왕자’, ‘데미안’ 등의 명작, ‘플라톤의 대화’ 같은 인문 서적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만년필을 비롯한 각종 필기구들도 함께 구비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옛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만년필로 김현승, 윤동주, 한용운, 한하운, 릴케의 시들을 꼼꼼하게 적어 넣었던 작고 이쁜 노트.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필자의 사춘기 시절 필사 공책이다. 손글씨로 적었던 시 한편 한편은 이후 40년간 마음의 밭을 일구어준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베끼어 쓴다’는 뜻의 필사(筆寫)는 인류 문명 발달의 대동맥 역할을 하였다. 인류의 직립보행과 자유로운 손의 사용이 언어의 발달, 문자의 활용, 문명의 탄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손으로 그리거나 쓰는 행위나 정교하게 도구를 제작, 활용하는 능력이 인간의 두뇌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특히, 손으로 문자를 쓰면서 지식의 집적과 정보 전달이 훨씬 쉬워지고 인류는 급속도로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고 나서도 직접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드는 사본시대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도서관들에서는 점토판 필사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파피루스 필사가 이루어졌으며,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의 필사작업은 고대 문화를 후세에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렇게 전승된 필사 고전들이 르네상스 운동의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로부터 필사는 종교를 비롯해 교육, 정치, 행정 분야에서 널리 이루어졌다. 한글자마다 절하며 정성을 다하는 일자일배(一字一拜)의 불경 필사 전통이 고려의 팔만대장경을 낳았고, 조선시대의 위대한 기록문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필사의 덕이다.소리를 내어 책을 읽고 글자를 암기하면서 필사하는 전통적인 교육방식도 오감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디지털과 속도문화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에서도 필사의 전통은 여러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문인들의 필사는 필력 향상의 수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좋은 글을 따라 쓰다 보면 종이 위에 적힌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의 깊은 내면세계와 만나게 되고 그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게 되어 글솜씨가 좋아지기 때문이다.최근에는 공부나 지식의 전수를 넘어서 자기성찰을 위한 힐링의 문화로 필사의 모습이 변해간다. 컴퓨터 화면과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 펜을 들고 한 글자씩 적으면서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필사의 단점은 느림에 있다. 정신을 차릴 새 없는 빠른 속도의 문명에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이제는 느림이 강점이다.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는 슬로푸드나 걷기가 각광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도를 거스르며 조용하게 마주하는 필사의 시간은 자기 인생의 나침반을 들여다보면서 삶의 에너지를 무한대로 넓혀준다. 느림의 미학이다. 이번 연말에는 대학 시절에 아내가 선물한 만년필로 좋은 글귀를 담은 손글씨 연하장을 적어 보내야겠다. 김동언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문화카페] 지역문화 재생,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가 앞장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지난 12월 8일부터 9일까지 전주에서 ‘지자체의 문화 경영’이라는 주제로 지식공유포럼의 시간을 가졌다. 전국 47개 지자체 문화재단이 가입한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지금까지 6번의 지식공유포럼을 가진 바 있다.그동안의 포럼을 통해 각 지역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재단 경영자 및 사업담당자들이 함께 공유함은 물론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의 개발 및 연계까지 이끌어 내고자 하는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왔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지난 9월, 용인에서 열린 ‘지역문화 전성시대, 지역문화재단 사용설명서’라는 주제에 이어 그때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는 발제와 토론이 펼쳐졌다. 특히 전국의 모든 지역이 공감하고 있는 과제인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의 실행 프로세스에 관한 기조발제와 토론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서울의 문화도시 수립 기본 계획에 이어 청주지역의 ‘동부창고를 채운 문화의 힘’이라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각 지역이 안고 있는 구도심 특히 유휴공간의 문제에 대해 한발 더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였다. 특히 이러한 공간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함에도 지역을 떠나는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성공 사례 발표는 큰 감동을 주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와 유사한 포럼이 관련기관이나 학회를 통해 여러 차례 있어왔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후속 사업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실질적으로 지역 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재단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예술기관 및 문화예술인이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로 문화원, 예총, 민예총 등이 있는 바, 그들은 나름대로 지금까지 그 지역의 문화를 지켜온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그리고 이제는 문화재단이 속속 출범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관들이 그 지역에 동시에 자리 잡고 있을 뿐, 함께 소통하고 함께 지역문화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각 기관은 사업의 영역과 예산의 분배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일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용인문화재단의 경우, 많은 지역문화재단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그렇게 지역예술인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느냐고.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열린 마음 그리고 공유하고 상생하는 공동 사업 개발이 바로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용인문화재단은 물론 문화원, 예총 그리고 민예총까지 용인의 문화예술인들은 서로 먼저 마음을 열고 만남을 시작하고 그 만남의 자리에서 지역 문화발전을 위한 사업을 함께 만들어 낸다.한마디로 즐거운 만남이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각 지역이 경우, 용인의 사례가 이미 심하게 벌어진 갈등을 해결할 현실적인 방법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인 것이다. ‘문화융성의 시대’는 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많은 기대를 안고 출발했고 다양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문화재단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로부터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문화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진정한 ‘문화융성의 시대’를 안겨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분배가 아니라 문화 공간을 통한 프레임의 변화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소중한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지역문화 재생’을 위해 앞장서 나가고자 한다.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품격의 견인차, 박물관

중세사회 유럽에서는 봉건 영주(領主)나 성주(城主)들이 최상의 문화를 향유하였고, 고급문화는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유럽의 박물관에서 우리들이 경험한 명작은 대부분 그들 귀족들의 기호와 요구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유럽사회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사회의 성숙 속에서 새로운 자본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새롭게 나타난 신흥 자본가들도 종전의 봉건 귀족들이 누렸던 품격 높은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기 시작했다. 시민들도 고급문화를 발전시키고 또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시민문화도 품격높은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하였다. 시민들은 문화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럽은 문화의 품격을 발전시켰고 오늘날에는 문화 관광 대국이 되어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문화의 최고 품격은 어디에 있었을까? 궁궐문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임금은 최고로 좋은 한옥 대궐에서, 전국의 진상품으로 꾸며지는 최고의 요리를 맛보았고, 궁중 화원이 그리는 수준 높은 그림을 향유했으며, 궁중 정악을 통하여 음악을 발전시켰다.왕이 입은 옷은 또한 가장 수준 높고 품격있는 복식이었는데, 이러한 왕실문화는 우리문화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이러한 궁궐문화를 사대부들이 모방하고,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면서 한국문화의 근간이 발전했던 것이다. 우리 문화의 품격은 그렇게 형성되었고 창조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무너지고 급작스럽게 궁궐문화가 해체되면서 우리 문화의 품격과 전통은 서서히 사라져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 문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수준 높은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필자는 박물관이 그 중 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박물관에서 한국 문화의 걸작들을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면 세계화와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색을 잃어가는 우리 문화의 진정한 품격과 전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물관을 자주 찾고 배우려는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문화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깨닫고 체화되는 것이 아니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스스로가 공부하고 느껴야 한다. 보이는 것 만큼만 보이는 것이 문화다.박물관을 찾아 그 곳에 스며든 한국 문화의 정수를 찾아보면서 더 높은 문화의 안목을 길러야 한다. 우리 문화의 최고 걸작들이 모여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문화의 품격을 더욱더 높일 때라고 생각한다. 문화융성은 구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곳에 있다. 문화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품고 내일을 개척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늘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면, 또 문화의 높은 품격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다면 문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어야 한다. 문화선진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체감하면서도 문화에 투자하기를 꺼린다면 이것은 현재와 미래 세대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미래의 한국문화를 위하여서도 품격높은 문화의 정수를 찾고 또 발전시켜 나가려고 하는 진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부처 및 문화계는 물론 시민사회와 더불어 개개인 모두가 합심하여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지역문학 발전의 요람 ‘수원문학인의 집’

문학은 작가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때론 팀워크를 통해 작가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속단체는 거기서만 머물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에도 기여해야 하는 책무를 떠안고 있다. 수원문인협회에서 운영하는 ‘수원문학인의 집’은 바로 이런 취지에서 탄생한 공간이다. 수원시 화서문로에 위치한 문학인의 집은 아담한 3층 건물로 1층에는 사무 공간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학작품과 서적을 볼 수 있는 북 카페, 만남의 장소가 마련돼 있고 2층에는 ‘마을 르네상스 센터’와 북 카페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3층에는 문학인들의 창작 공간과 회의실이 갖춰져 있다. 특히 이곳 공간이 문학 애호가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것은 박병두 회장의 중점사업으로 유명 작가들이 지도하는 창작 교실의 운영에 있다 하겠다. 수원이 고향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최동호 창작교실(매월 1회 셋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을 비롯해 허형만 창작교실(매월 1회 셋째 주 금요일 저녁 7시), 이지엽 시조교실(매월 1회 넷째 주 월요일 저녁 7시), 박이도 창작교실(매월 1회 첫째 주 화요일 저녁 7시)이 그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수원문협 소속 임병호 시인과 김현탁 소설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월 1회 문예 강좌를 펼치고 있어 문학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들 창작교실은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수원을 사랑하는 작가들이 자원하여 무보수로 참여하는 강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아름답다. 열기 또한 대단해서 마치 뜨건 용광로를 연상시킨다는 게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공통된 소감이다. 대학 강단에서 연마된 지도교수들의 탁월한 이론과 실기 지도 아래 매서운(?) 마음으로 무장된 수강생들의 열기가 더해져 그야말로 입시를 앞둔 수험생 교실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지면으로만 뵙던 저명한 작가들을 직접 만나 그분들의 창작 경험담을 듣다 보면 작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다 습작한 작품을 스스럼없이 보여드리고 한 말씀 듣는 것도 크나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인의 집은 그런 점에서 작가와 독자를 하나로 묶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문학인의 집에서 있었던 주요 행사로는 초대작가 오세영 시인의 문학특강, 한국문학사 속의 나혜석 세미나, 광복70주년기념 시 낭송회, 독도사랑 시 전시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때마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독자들의 호응이 컸던 것은 문학인의 집이 그만큼 지역문학 발전의 요람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증좌로 봐도 좋을 듯싶다.그간 수원문학인의 집을 찾은 시민들의 수는 월 평균 3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거의가 수원 시민들이지만 외지에서 소문을 듣고 오는 내방객도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나라의 문학이 발전하려면 지역문학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널리 알려진 세계문학 작품을 보더라도 이는 입증이 되고도 남는다.세계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은 그 무대가 시골인 곳이 많았고, 작가가 살았던 작은 마을이 명작의 산실이 됐던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수원문학인의 집은 그런 의미에서 지역문학의 본보기가 돼야 하겠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산실로도 그 역할이 기대되는 바 크다 하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문화카페] 미래사회를 위한 대학개혁

요즈음 대학이 온통 혼돈의 시대가 접어든 것 것 같다. 정부는 취업률을 높이는 대학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니 취업과 거리가 있는 전공은 전전긍긍하고 있다.인문사회 전공을 줄이거나 죽이고 공학계열을 늘리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이제 대학 사회에는 인문학이 살아남을 길은 요원하다. 세상, 아니 교육권력자들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학생들의 취업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딸도 예술을 한답시고 취업은 뒷전이지만 열심히 자기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보고 있다.비싼 등록금을 대주고도 아직도 아빠의 빨간 속내의 못 사오는 이 딸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험난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대견스러움도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참고 사는데 우리 사회는 참지 못한다. 왜 취직을 못하냐고?!! 어느 사회이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생명유지의 명제 중의 명제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기술을 배우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현실적인 교육방안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젊은이들이 취업을 하여 현실경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그런데 그 딴 분야, 밥먹는 것하고 거리가 있는 분야를 좀 한다고 해서 사회에서 구박받는 것은 선진적인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술자만 양성한다고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반드시 밝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특히 모든 대학이 천편일율적으로 공학이든 상학이든 간에 기술자의 양성으로 그 교육의 방안을 강요받는 상황은 정말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문화를 연구하는 나에게는 문명의 진보과정에서 기술은 점차로 사람의 손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첨단기술만이 살아남아 적용될 것이고 그 첨단기술은 결국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서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보았던 로봇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다.기술은 우리가 먹고 사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미래사회를 기약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술은 많은 사람들을 종속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교육에 지향하여야 하는 것은 단지 필요한 기술자를 키우는 일만인가? 더구나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학들에서 조차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해서 타당한 일일까?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을 사이클이 짧은 기술자 대열에 서게 하여야 할까? 기술은 사회의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바탕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의 정책이 여기에만 경도되어서는 국가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바로 발명왕 에디슨의 대표적인 명구이다. 새로운 기술의 발명은 사회를 진보하게 만든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철칙이다. 그런데 현실세계의 필요는 이미 늦었다. 필요가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필요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역사학이고 역사에서 추론된 철학이다. 그리고 문화의 진화방향을 읽어내는 고고학과 인류학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보다 인간의 사유를 자유롭게 만드는 예술이 바로 다양한 미래의 생각과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이러한 분야의 진작이 없다면 기술은 오늘을 사는 데에는 필요하겠지만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기에는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대학교육 조차 모두다 짧은 현실에 너무 경도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ㆍ국제박물관협회 국가위원회 위원장

[문화카페] 낭중지추(囊中之錐)

예술은 송곳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묻혀 있던 감성을 자극하여 따뜻한 피를 돌게 하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생각나게 한다. 작품 속에 담긴 예술가의 정신은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의 권태로움을 벗고 신선한 감동과 생생한 세계를 눈앞에 펼칠 수 있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정신과 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시대를 뚫고 나오기 위해 오랜 세월 자신만의 송곳을 예리하게 갈고 닦는다. 그 송곳의 끝에는 창의적이고 신선한 무엇이 묻어날수록 좋다. 장구한 인류 역사 속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명멸하는 동안 송곳처럼 우뚝 솟은 예술가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해준다. 훌륭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은 박제화된 과거의 형식과 정신을 답습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사회를 제시해왔다. 위기와 역경에 처한 시절에는 예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의문을 던지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주는 역할도 하였다. 주머니 속에 가만히 넣고만 있어도 그 끝이 뾰족해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처럼, 창의적 과정의 산물이며 인간 정신활동의 최고 결정체인 예술은 주머니 같이 평범한 우리의 삶에서 송곳처럼 삐져나와 자리를 하게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중국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로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이다. 뛰어난 재주나 강한 개성은 도드라져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고사성어다. 지난 주말 국립극단 주연배우 출신의 이상직이 제작한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전라남도 구례에 다녀왔다. 이상직은 2000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대상’, 2004년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을 받는 등 국립극단의 주요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많은 팬을 확보한 주목받는 연극배우였다. 유명배우의 길을 접고 갑작스레 귀농해 농사를 지으며 연극을 만드는 그의 작품이 궁금했다. 2010년 창단한 극단 ‘마을’은 이상직을 제외하면 배우를 직업으로 가진 적 없었던 지역의 주부, 농민, 교사, 학생 등으로 구성된 외형상 아마추어 극단이다. 하지만 일견 초라한 이 극단이 창단공연부터 주목을 끈다. 2012년 2월 18~19일, 구례 섬진아트홀의 객석 300을 모두 채우고 통로에까지 관객이 앉았다는 소문은 구례를 떠나 서울까지 파다하게 퍼졌다. 창단공연 ‘인생콘서트 39°5’ 이후로도 ‘마실 가세’, ‘슈퍼마켓 습격사건’, ‘우리 읍네’ 등의 작품을 꾸준하게 무대에 올리며 지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종일 내리는 가을비에도 구례문화예술회관은 소문대로 관객이 차고 넘쳤다. 공연 3일째, 150석 객석이 모자라 20명이 넘는 관객은 통로에 불편하게 앉아 연극을 관람했다. 학생배우의 어머니와 돈은 없지만 연극을 꼭 보고 싶다던 지역민 포함, 단 2명만 무료관객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료관객이었다. 4일간 700명 정도가 연극을 관람했다고 추산된다.구례군의 인구 2만 5천 명 중, 어린아이와 고령의 노인을 제외하면 극단 마을에 보내는 지역민들의 관심과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놀라운 변화는 또 있다. 이번 작품에 출연한 배우 중에는 인근 곡성과 순천에서 참가한 이도 있었다. 인근 지역으로 확산이 이루지고 있는 것이다. 또 대학로에서 연출하던 사람, 배우가 구례로 와서 극단에 합류했다. 그곳에 창작집단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연극이 지역공동체에 큰 동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상업성에 오염되지 않고 제도와 권력에 의존하지 않은 연극정신이 이렇게 한 번씩은 뚫고 나와야 한다. 송곳처럼.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문화카페] 문화변방서 문화중심으로, 조기 인재발굴·육성이 답이다

“쇼팽 콩쿠르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고, 11살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밝힌 소감이다. 그가 우승한 쇼팽 콩쿠르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최고 권위의 콩쿠르다. 조성진의 우승 타이틀은 조성진 개인의 영광일뿐 아니라, 나아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의 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성진은 11세 때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조성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피아노 신동이 되었고, 그 신동은 쇼팽 콩쿠르 우승을 꿈꿨다. 어릴 적 큰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성공은 문화예술에 재능 있는 인재 조기 발굴 및 육성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 분야는 재능 발굴과 육성이 더욱 중요하다. 책만 읽어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조기에 재능을 발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 이 작은 시작이 개인의 인생은 물론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흐름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지자체 문화재단에서도 지역 예술 꿈나무 발굴 및 육성을 재단의 미션으로 삼으며 중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기본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의 체계화를 추진 및 실행 중이며, 다각적 사업 추진을 현실화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클래식, 뮤지컬, 연극 등 장르별 혹은 지역별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으로 인재 육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일환으로 용인문화재단은 지난 10월 경기일보, 한국뮤지컬협회 경기도지회와 함께 ‘2015 뮤지컬 스타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꿈나무들의 신선한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무대였다. 본 페스티벌에서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는 뮤지컬 대중화란 트렌드 반영뿐 아니라 대극장이라는 하드웨어를 갖춘 문화재단과 인근 지역에 거점을 둔 대학에 다수의 뮤지컬학과가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2015 뮤지컬 스타 페스티벌’은 적시성뿐 아니라 지역적 자원을 십분 활용한 예라 할 수 있다. 결선진출자들은 용인포은아트홀에서 공연 예정인 프랑스 오리지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연배우와의 만남이라는 깜짝 선물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한 번 무대에 오르게 해 준다고 해서 인재 발굴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적합한 교육과 꾸준한 지원이다. 우선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재단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 교육에 대한 현실적 부담을 줄이고 더 많은 수혜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한다. 아울러 예술가의 재능기부를 통한 문화 나눔의 선순환고리 구축 역시 중요하다. 재단은 인재와 예술가를 연결해주고, 나아가 체계를 갖춘 인재 육성 프로그램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연장선상으로 문화나눔 사업의 확대 및 네트워크 구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인재 육성을 위한 시스템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술을 통한 국위선양,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다. 어릴 적 꿈을 이룬 제2의 조성진이 바로 우리 옆집 어린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지자체 문화재단은 과감한 시도와 꾸준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인연으로 피운 아름다운 박물관의 꽃 ‘기증’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中)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생각나는 초겨울이다. 연탄이 우리네 삶에 깊숙이 함께 했던 그 시절, 골목마다 수북이 쌓여있던 연탄재 속에서 아직도 열기를 머금은 채 벌겋게 달아 있는 연탄재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의 시는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존재로 살아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어보는 삶을 우리는 꿈꾼다. 자신의 몸을 재로 만드는 희생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는 연탄처럼 살아보는 삶을 말이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현실에서 우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것을 나누는 순간이 되면 인색해진다. 조건 없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한다. 그러나 여기, 자신이 소중히 아끼고 간직해온 집안의 가보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놓은 뜨거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박물관의 기증자들이다. 경기도박물관 20년 역사 속에 이런 숭고한 뜻을 실천한 분들이 500여분이 넘게 계신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유물 기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귀감으로 삼고, 선양하기 위해 11월 7일 경기도박물관은 2015 경기도박물관으로의 초대: ‘인연으로 피운 경기문화의 꽃’이라는 주제로 성대한 잔치를 기획하였다. 기증자 분들을 모시고 어떤 행사를 치를까?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생각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을 모시기에 정성스럽고 후한 음식 대접을 하고 싶었다. 우리말에 ‘먹는데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먹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번 잔치에서는 유기농 농산물로 꾸린 식단을 통해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밥상을 차려 드릴 예정이다. 또 중요한 것이 뜻 깊은 선물이다.어떤 귀중한 선물을 드려서 박물관의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달할 수 있을까 무척 고민했다. 여러 번의 회의 끝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도자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정성스럽게 구워낸 도자기가 모쪼록 기증자 분들의 마음에 들어, 집에 오래 두고 간직하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문화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경기도립국악단의 경기민요 공연과, 처용무 및 수제천 공연 등을 준비했다. 이번 기증자의 날 행사를 통해 기증자 분들이 자신들의 기증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으며, 그 무엇보다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었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곧 박물관 기부문화 활성화의 첫걸음이며, 경기도박물관이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양제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존경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기꺼이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빌게이츠를 마음속 깊이 기억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아름다운 기부문화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자기중심의 천민자본주의와는 사뭇 다른, 멋진 자본주의이다.돈과 물질은 유한하지만 아름다운 기증·기부 행위는 무한히 남아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돈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다만 삶의 도구일 뿐이다. 돈이 목표가 되어버린 불행한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이 세상에서 등불이 되는 이들을 만나는 기증자의 날 행사를 손꼽아 기다린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향토문학이 곧 세계문학

퍽 오래 전, H일보 주말판에는 프랑스 특파원 김성우 기자의 세계문학 취재 기사가 실려 문학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바 있었다. 세계문학에 이름을 올린 작품의 무대를 직접 찾아가 그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취재 소개한 기사였다.2년간 연재하는 동안 소개된 작품은 모두 81편(작가는 80명)이었는데, 기자는 연재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돌아보니, 한 마디로 세계의 큰 문학은 향토문학이었다. 우리가 애독하는 세계문학전집 속의 작품들은 거의가 작가의 고향이 무대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아니면 작가의 신변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작가의 어릴 때 추억, 도시에서보다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의 추억이 세계문학을 키운 토양이었다. 고향 속에 세계가 있다.” 기자는 명작의 무대를 소개하면서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국민들이 자국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지극한 가를 예를 들었다. 독일 국영방송은 괴테 탄생 100주년이 되던 날 아침, 첫 뉴스를 괴테의 시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했다.미국의 한 부호는 거액을 들여 사들인 주택이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자, 한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기꺼이 이 주택을 시에 기증하여 헤밍웨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동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데르센을 낳은 덴마크는 동화 인어 공주의 주인공 인어상을 코펜하겐의 랑글리니 부두에 세워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인어상의 코를 손으로 어루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이 너도나도 어루만진 나머지 인어상의 코가 반질거리고 있다는 것. 이탈리아의 한 호텔에서는 독일의 작가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잠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이를 동판으로 새겨 그 사실을 홍보하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괴테가 그 호텔에서 하룻밤도 묵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숙박을 하러 왔다가 방이 없어 로비에 잠시 서 있다가 돌아갔음에도 이를 기념하여 동판으로까지 제작했다니 상술도 이만 하면 수준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남프랑스의 퐁비에이유 마을에는 나의 풍차에서의 편지의 작가 알퐁스 도데가 이곳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여 동판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영화박물관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주인공 클라크 케이블을 밀랍인형으로 제작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애틀랜타에서는 1939년 이 영화를 세계 최초로 상영했을 때 작가 마가리트 미첼과 남주인공 클라크 케이블이 앉았던 의자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곳곳에 문학관을 짓거나 기념비를 세워 한국문학을 기리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서울 종로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강원도 봉평의 ‘이효석 문학관’,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 문학관’, 경기도 양평의 ‘황순원 문학촌’, 전북 남원의 ‘혼불 문학관’, 경기도 화성의 ‘노작 홍사용 문학관’ 등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문학관과 기념비를 관리하는 일에만 머물지 말고 향토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애정이 따라줘야 할 것이다. 또한 문학인들도 혼신의 힘을 다한 창작으로 한국문학사에 기리 남을 작품을 생산해 내는 일이라 할 것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문화카페] 삼포청춘박물관건립계획서

‘포’라고 하면 예전에는 주로 포구를 말하는 지명의 어미사였다. 목포, 구포, 연포, 마포 등등 모두 옛날에 배가 와서 닿는 곳들이다.그래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구에 서면 한편으로는 두둥실 강릉 가는 배를 쳐다보면서 짠하고 남는 희망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조의 시인이었던 정지상이 남포항에서 불렀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헤어지는 마음이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것을 애잔함이 상상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에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포’라고 하면 간 떨어지게도 ‘포기’라는 뜻이란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겠지만 ‘삼포’라는 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직장이 부실하여 집, 결혼, 자식포기란다. 여기다가 ‘헬조선’이라는 무슨 공상과학영화 제목 같은 말이 따라 붙는다.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서는 웃을 수가 없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온 우리 세대의 경험으로서 흔히 교문을 나서는 제자들에게 ‘야 이놈들아, 나가서 무소의 뿔처럼 세상에 돌진하거라!’ 라고 큰스님이 선문답하듯이 큰 소리하지만 허공에 사라지는 구세대의 책임 없는 수사이다. 대학졸업시즌이 되면 학교에 남는 교수들은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눈망울에서 두려움을 읽을 때 너무도 허망한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라는 자조의 질문이 한마음 가득할 때가 있다.‘선생님. 저 취직했어요!’ 전화에 들려오는 감동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 북극의 빙하가 봄 햇살에 녹아내리는 듯하다. 절망의 우리 아이들에게 정부도 여러 가지 정책을 강구하기는 하지만 그 성과가 피부에 와 닿기 까지는 시간도 걸릴 것이고 젊은이들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에 이 아픈 청춘 위로를 위한 우리의 신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최근에는 내가 나의 아이들, 자식들이나 제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즈음 내 머리 속에 돌아다니는 생각으로 ‘청춘박물관’ 하나 만들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젊음 사용법, 세상 읽는 법 그리고 인생 사랑법 등을 보여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별의별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 교육하여 오늘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생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박물관도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한번은 지나야 할 젊은 시절에 대한 박물관은 왜 없나? 나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 나도 전혀 청춘의 길을 잘 모르고 지냈다. 어쩌면 요행으로 청춘행로를 지나온 것 같이 기억되기도 한다. 청춘의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소리도 없이 휙하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시간의 길은 선택할 수가 있다.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표준되는 답은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사례들은 아마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청춘박물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읽기, 이것은 대학에서나 가정교육에서 흔히 가르친다. 그러나, 아무리 가르쳐도 머리나 마음속에 남지 않는 것을 어이 하리요! 스스로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종교 신전에서나 있을 법하겠지만 박물관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오늘날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충분히 할 수 있다. 세상의 지혜를 모아서 젊은이들의 메카처럼 만든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적어도 젊은이들이 골목 농구를 하듯이 청춘과 인생을 가상체험하는 감동적인 공간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배기동 국제박물관협회 한국위원장ㆍ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문화카페] 가면의 축제

“나는 가면을 쓰고 자유로웠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복면가왕’에 출연했던 한 가수가 가면을 벗은 뒤에 한 말이다. 그동안은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이나 표정에 신경이 쓰여서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없었는데, 가면을 쓰니 불안한 마음과 무대 공포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가면은 가짜 얼굴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은 복잡한 관계망 속에 위치할 수밖에 된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관계가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기도 하고 사회적 상황에 어울리는 처신과 역할이 사회적 신분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가면을 쓰게 된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융(Jung)은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사된 성격’을 고대 그리스의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인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페르소나는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여러 형태의 얼굴이다. 융은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아와는 다르며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하고 자신을 은폐시키려 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와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융의 이론은 가면만들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감정을 정직하게 이해하고 억압된 분노를 해소시키는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아예 참가자 전원이 가면을 쓰고 벌이는 축제는 좀 더 확장된 의미의 집단적 치료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가면 축제다. 중세의 엄격한 계급 구조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피지배층, 농노나 하인들은 축제 기간 동안에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해서 왕도 되고 귀족도 되어 억눌렸던 내면의 꿈과 욕망을 분출하며 불만과 억압을 다소간 해소할 수 있었다. 필리핀의 마스카라 페스티벌은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매우 의미 있는 가면의 축제다. 1980년 사탕수수 가격 폭락으로 인한 바콜로드 시 경제위기와 700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MV 돈 후안’ 호의 침몰 사고로 침체된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는 동시에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응원의 의미로 시작되었는데, 대중을 뜻하는 영어 단어 ‘Mass‘와 스페인어로 얼굴을 뜻하는 ‘Kara’를 합한 ‘마스카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국민적 역경과 슬픔을 미소가면으로 이겨낸 필리핀 바콜로드 시민의 의지가 참 아름답다. 지금은 필리핀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축제 중 하나로 매년 필리핀 전역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든다고 한다. 축제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웃는 얼굴의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갈아입고 삶의 축제를 만끽한다. 우리에게도 오랜 전통을 가진 가면의 축제들이 있다. 안동 하회 별신굿 탈놀이를 비롯하여 지역마다 전승되고 있는 각종 탈놀이들이다. 이들 탈놀이들 역시 기득권, 지도층들의 위선 및 허위의식과 사회제도의 문제점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집단 에너지를 만들어 내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온통 축제의 열기로 난리다.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그러나 대부분 진짜 축제는 없고 어설픈 관 주도형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민과 지역민들이 꿈꾸고 열망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한바탕 집단 신명의 ‘가면의 축제’가 곳곳에서 생겨났으면 좋겠다. 김동언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