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인사동을 걸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박생광의 전봉준을 보고 인사동으로 간다. 전봉준의 상투와 흰 바지적삼이 애달파 한잔 할까하고. 인사동에 들어설 때 권진규의 자소상이 떠올랐다. <조각가 권진규는 자살 직전 앳된 비구니의 얼굴을 빚었다. 평생 얼굴만 만들어온 대가의 작품치곤 의외였다. 어느 청명한 가을날 칠번 국도변 작은 휴게소에서 한 비구니는 오래도록 거울 앞을 떠나지 않았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마치 더 깎을 것이라도 남아있는 듯.... > 이홍섭의 적멸이 풍금처럼 울려왔다.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인사동에 눈이 올 것 같아서 궐 밖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퍼다 버린 그리움 같은 눈발, 외로움이 잠시 어깨 위에 얹힌다. 눈발을 털지 않은 채 저녁 등이 내 걸리고 우모보다 부드럽게 하늘이 잠시 그 위에 걸터앉는다. 누군가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를 눈 속에 파묻는다. 궐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내 생의 그리움, 오늘은 인사동에 퍼다 버린다.> 김종해의 시를 뇌다가 화수공담에서 평론가 김종길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왜 내 앞에서 나르시시즘을 얘기 했을까? 왜 동굴로 들어가라 했을까? 그곳에서 도나 닦고 살다죽으라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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