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처칠,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선거에는 패배했다

런던에 있는 영국 의사당 입구에는 영국이 배출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영국인이 아닌 유일한 동상은 2015년에 세워진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 그런데 이들 동상 옆을 지나면서 유난히 구두가 반짝이는 동상 하나를 발견한다. 윈스턴 처칠의 동상이다. 그만큼 처칠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갈 때 처칠의 신발을 쓰다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그는 세계 2차대전 시 영국 총리로서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그가 전쟁 중에 국민을 향해 피와 눈물과 땀밖에는 내가 바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 연설은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애용하는 명연설이다. 독일 폭격기들이 런던을 폭격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몸을 피하지 않고 우뚝 서서 전쟁을 지휘했고 마침내 1945년 승리를 쟁취했다. 5월8일, 독일이 항복한 날, 온 국민이 열광했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2개월 후, 그러니까 1945년 7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시행됐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당연히 선거에서도 압승하여 다시 총리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뜻밖이었다. 처칠은 패배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왜 국민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국민이 정신적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전쟁 중에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제 좀 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구가 치민 것이다. 이것이 솔직한 인간심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상대 당은 우리 모두 미래와 마주하자는 달콤한 슬로건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했다. 이제 그 무섭던 전쟁의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의 복지국가를 향해 나가자는 데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것이 민심이고 정치다. 그런데 처칠은 전쟁 후의 계획에 소홀했다. 요즘 세계가 한창 코로나와 싸우면서도 코로나 이후의 문제를 서둘러 다루기 시작했다. 소위 포스트 코로나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회 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교육의 온라인화와 비대면 의료시범사업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이제는 기업체에서 재택근무의 장점을 살려 비대면 근무체제로의 전환 등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의 물결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이 나온 것도 이런 코로나 이후에 대한 준비로 보인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코로나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선택의 짐을 지울지 모른다. 이미 미국은 중국 내 자국 기업의 철수와 중국에서의 자원공급을 동결하고 동맹국들의 동참을 요구할 태세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고 자원을 중국 등 외국에 의존하는 입장이니 큰 문제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외적 환경의 변화다. 이것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선방했다고 찬사를 받고 있지만 이와 같은 코로나 이후의 급변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면 전쟁에서 이기고도 선거에 패배한 처칠처럼 될 것이다. 더욱이 국민은 코로나와 싸우면서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다. 그래서 처칠의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31번, 66번, 그리고 학원 강사 B씨의 경우

뉴욕 맨해튼에 있는 타임스퀘어는 미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이다. 매년 12월31일 밤, 빼곡히 모여 있는 사람들이 5ㆍ4ㆍ3ㆍ2ㆍ1 카운트다운을 하다가 0에 이르면 환호성을 지르고 축포가 터진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다. 참 멋진 광장의 문화이다. 유럽 도시의 광장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 파리의 콩코드광장, 런던의 트라팔가르광장, 체코 프라하의 바츨라 광장,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등 도시마다 전통과 특색이 있는 광장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도시 중심에 광장이 있는 것은 도시를 건설할 때 광장부터 조성하고 그 나라의 상징이나 인물을 조형물로 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광장들은 그 도시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며 큰 규모의 종교 행사도 이곳에서 열리게 된다. 심지어 파리의 콩코드광장에서는 프랑스혁명 때인 1793년 루이 16세를 공개 처형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럽에서의 광장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은 그리스의 아고라 등 시민들의 공공장소 역할을 해 온 데서 비롯됐다고들 말하고 있다.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한 도시공학 전문 교수가 유럽 도시에는 광장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시민계급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수긍이 갔다. 우리는 왕권과 백성만 있고 시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시민이 없고 백성만 있으니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고 토론문화가 형성되는 광장이 필요 없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광장이 있어 시민 계급이 형성된 것 같고, 또 달리 보면 시민 계급이 있어 광장이 생긴 것 아닌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 같다. 어쨌든 광장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시민의식을 높였으며 도시의 공적 기능에 대한 참여도를 확대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광장이 없었다. 지금의 서울 광화문 광장도 조선시대에 육조 거리, 관아가 있는 큰길에 지나지 않았으며 오늘의 모습으로 탄생된 것은 2008년에 착공, 2009년 8월에 완공을 했다. 그러나 지방도시는 역사성 있는 공원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고 도청 앞 광장, 역 앞 광장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광장 없이 살아온 생활문화 때문인지 우리 도시인들에게 함께 사는 도시인으로서의 연대감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를 자주 본다. 코로나19 수퍼 전파자로 지목된 신천지 신도 31번 확진자 의료인들의 헌신적 희생과 국민의 협조로 겨우 사태를 진정시키는가 했는데 이태원 클럽에 가서 불을 지른 용인 66번 확진자, 그리고 인천 미추홀구의 학원 강사 B씨, 이런 위기를 뒤로하고 골프를 치려다 문제가 되자 이를 취소한 국회의원 등등. 이들은 광장이 있는 최소한 삶의 연대감도 없는 야생의 인물들이다. 학원 강사 B씨의 경우 거짓말까지 하여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숨겨 그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 그래서 그에게서 수업을 들은 A군은 물론, 그의 어머니와 다른 학원생 등 14여 명을 감염시켰다. 함께 사는 광장의 삶에서 가장 나쁜 것은 거짓말이다. 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광장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골목 문화에서 광장 문화로 삶의 연대감을 높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착한 꼰대

지난 주말 C대학 인근의 생선 초밥집을 지인과 함께 들렀다. 식당은 점심 시간이 훨씬 넘긴 시간인데도 좌석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붐볐다. 그동안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와 상관없이 손님들로 북적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선 초밥은 젊은 세대들과는 거리가 먼 어른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손님들 90%가 젊은 대학생들이었고 나이 많은 사람은 어쩌다 한둘 보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젊은 남녀 학생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게 꼭 이방인 같았다. 어떻게 해서 이 초밥집을 젊은 대학생들이 점령하게 되었는가. 한참을 서서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첫째, 일식집에서 초밥을 시키면 넓고 큰 접시에 꽃잎을 놓는 등, 여러 가지 장식을 해서 가져 온다. 그래서 옛날부터 일본 음식은 눈으로 먹고, 한국 사람은 배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식당은 큰 접시를 없애 버리고 30㎝ 정도의 좁은 나무 판에 초밥 10개를 나란히 얹어 가져 온다. 쓸데없는 장식도 없다. 소위 스키다시라는 서비스도 없다. 그러니 큰 접시에 눈부시게 차려 내놓는 초밥이 아니어서 부담 없이 가볍게 먹을 수 있고, 가격도 대학생들에게 무겁지 않은 1만원대. 초밥 10개는 광어, 연어, 골뱅이 등 고르게 나열되어 있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게 했고, 거기에 따라나오는 작은 공기의 메밀국수 (소바)를 먹으면 포만감까지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종업원들이다. 일반 횟집 (일식집)처럼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아닌 젊은 또래의 아르바이트생들이어서 역시 대학생들에게 부담감을 덜어주고 친근감마저 준다. 실내 음악도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팝송. 이렇게 일식 초밥 식당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체질 변화를 일으키면서 젊은 세대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인 것이다. 우리의 정치도 젊은 세대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 현실을 벗어나려면 초밥 식당과 같은 변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한 여론조사에서 젊은 세대들의 보수당 인기가 선거 때보다 더 추락하는 것을 보면 이런 체질개선이 절실함을 느낀다.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은어, 꼰대의 탈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나 학생들이 잔소리 많은 선생님을 가리킬 때의 은어, 꼰대가 이제는 일반화되고 외국 언론에 까지도 소개될 정도로 정치권에서도 자주 회자 되고 있다. 이 은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는 완고한 고정관념의 소유자들. 그래서 가령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추운 날 장갑을 끼라고 하면 옳은 소리인데도 꼈던 장갑을 벗어 버리는 조건 없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수출이 급감하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그러려니 흘러 버리고, 불이야! 하고 소리쳐도 놀라지 않는 이를테면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한다. 그렇다. 바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공감의 벽을 정치가 허물지 못하는 것이다. 이 벽을 허물지 못하면 정치, 특히 보수정당은 그들 만의 외로운 무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위기를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혈압이 올라가도록 자기주장만 완고하게 설득하려는 것으로는 젊은 세대와의 공감의 벽을 허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보수의 지도자로 나서겠다는 사람 중에는 굴착기라도 동원하여 벽을 헐어 버릴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선 초밥집 사장처럼 기존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식당 좌석을 젊은이들로 꽉 채울 착한 꼰대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형님문화와 ‘40대 기수론’

필자가 처음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은 선배 기자들의 책상에 놓여 있는 잉크스탠드에 잉크를 채워 주는 일이었다. 그 시절은 펜으로 잉크를 찍어 원고지에 기사를 썼기 때문에 잉크를 채워 주는 일이 중요했다. 그런데 겨울에는 잉크가 얼어 버리는 일이 자주 있어 따뜻한 물에 데우는 등 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그다음 후배 기자들이 들어오면 이 고역(?)은 그대로 이어진다. 그래도 후배들은 그 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불평하지 않았다. 이렇게 언론사도 선후배 의식이 강했다. 선후배 의식은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사석에서도 선배님, 형님 하는 호칭이 일반화돼 있는 것이 그런 것이다. 서양 사람들처럼 선배를 존이니 마이클 하는 식으로 불렀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훈련은 학교 때부터 쌓여 왔기에 사회에 나와 서도 형님 언니 문화는 더 두터워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좌담회를 하거나 오락 프로에 출연해서도 선후배를 따지고, 조직폭력배사회에서는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얼마 전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역시 같은 운동권 출신의 어떤 인사를 가리켜 그 형님은~하고 말하는 것에서 형님 문화는 우리 사회에 강한 DNA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지난달 국회의원 선거를 했지만, 국회처럼 선후배 따지는 곳도 없을 것이다. 초선이니 재선, 삼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정말 초선으로서는 여간 활약을 하지 않고는 그 존재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정치문화도 그렇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YS(김영삼), DJ(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이 바람을 일으켰다. 이 바람 속에 이철승(李哲承)씨도 49세로 40대 기수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원내 총무였던 YS가 40대 기수의 대세론을 주장한 데 대해 같은 당의 유진산 총재가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깎아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중국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인 데, 40대 YS를 아직 입에서 젖 냄새가 나는 아기 취급을 한 것이다. 그 당시 67세에 이른 노정객(老政客) 유진산 총재의 눈에는 40대 젊은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이 젖 냄새 나는 아기로 보였던 것이다. 과연 40대 기수들이 이와 같은 형님문화의 벽을 깨고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한국적 정치 풍토는 그것을 허용하지 못했고 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정치 판도를 바꾸는 데는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40대가 아닌 60~70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그러는 20여 년을 거치면서 이제는 세대가 아니라 상도동(YS), 동교동(DJ), 청구동(JP)으로 불리는 정치 지형을 형성했으니 이른바 3金 시대가 그것이다. 그 3金의 치열한 경쟁과 이합집산, 부침이 계속되었으나 세대교체와 정치혁신 같은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4ㆍ15 총선을 치르고 나서 우리 정치계에 젊은 피의 수혈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선거에 참패한 야당에서 이런 목소리가 높은데 심지어 40대가 아니라 30대를 외치기도 한다. 80년대생에 30대로 2000년대 학번을 이르는 830세대 기수론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30대 총리,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해보자는 것인데 문제는 구상유취에 젖은 형님문화다. 이 벽을 허물 수 있을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참패한 야당, 2008 올림픽 야구 기억하세요?”

정말 그 여름 밤의 뜨거움이 중국 베이징의 야구장을 달구고 있었다. 2008년 8월 23일, 한국과 쿠바의 올림픽 야구 결승전. 이승엽이 홈런을 치고 선발 투수 류현진이 선전해서 7회 초까지 3대1로 우리 대한민국이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7회 말 쿠바에서도 홈런이 터져 점수는 3대2로 좁혀진 가운데 9회 말 쿠바 공격에서 1사 만루로 우리는 위기를 맞았다. 거기에다 심판에 불만을 표시했던 강민호 포수가 퇴장을 당하는 불상사까지 겹쳤다. 1점차 1사 만루, 그야말로 다음에 상대할 타자 한명 한명에 올림픽 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가 판가름날 상황. 벤치에 있던 우리 감독과 코치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안절부절못했고, 관중은 물론 TV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도 숨을 죽이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김경문 감독이 류현진 투수를 불러들이고 정대현을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세우는 것이 아닌가. 정대현은 언더핸드 투수로, 커브, 싱커 등에 뛰어난 선수이다. 정대현은 3구째에 바깥쪽 결정구를 구사, 쿠바 타자를 병살타로 유인해 위기의 불을 꺼버렸다. 야구장은 물론 TV를 시청하던 국민도 환성을 터뜨렸다.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차지 한 것이다. 투수 교체 결단을 내린 김경문 감독도 영웅이 됐다. 야구의 매력은 이처럼 구원투수라던지 대타자 같은 규칙을 만들어 위기에 처한 팀에게 그것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는 데 있다. 가령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는 공에 약한 쿠바 타자가 들어섰을 때 언더핸드 정대현을 구원투수로 등장시켜 타선을 봉쇄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바로 감독의 판단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야구를 감독의 머리싸움이라고 하고,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위기를 넘기면 그를 fire men 즉 소방수라고 한다. 소방수처럼 불난 집에 불을 껐다는 뜻이다. 이렇듯 야구 경기처럼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제1 야당인 통합당이 패배한 해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쿠바를 꺾은 김경문 같은 감독이 없었고 작전도 없었다. 황교안 당대표와 공천 작업 다 끝내고 영입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누가 감독인지 어정쩡한 체제에서 복잡하고 민감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제대로 작전 지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코로나 재난자금 100만 원 지급에 통합당은 1인당 50만 원 지급 등 통일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한쪽에서는 돈을 푸는 것은 매표행위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겹쳐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주었다. 부천 소사에서 출마한 통합당 차명진 후보의 막말 사건도 그렇다. 막말 자체도 그렇지만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이 답답했다. 만약 쿠바와의 야구 결승전에서 김경문 감독 같았으면 단호하게 선수 교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명도 아니고 탈당도 아닌 탈당 권유라는 애매한 결정을 내렸다. 야구의 명감독은 교체면 교체지 교체 권유 같은 어정쩡한 결정은 하지 않는다. 선수 선발에서도 감독은 그 선수의 득점력이 있느냐, 오직 그것만이 기준이다. 이 선수가 과거 어떤 말을 해서 조금 말썽이 됐다든지, 또는 누구의 계보라던지 하는 것은 따지지 않는다. 야구 선수는 도덕 선생님을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당은 아무리 득표력이 있어도 당선되면 내 자리를 위태롭게 할 후보는 공천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통합당은 쿠바와의 결승전, 원 아웃 만루의 위기를 멋지게 넘길 감독 없이 완패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밥이 하늘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 오후, 최근 새로 집을 마련한 지인이 있어 그와 함께 집 구경을 갔다. 아직 이삿짐을 옮기기 전이어서 새로 도배와 장판을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천장과 방에 도배하는 사람 중에 20대 젊은이도 있었다. 그의 얼굴이 좀 달리 보여 투표 결과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관심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젊은 사람이 선거 결과에 관심이 없다니하고 다시 물으니 취업하는 것밖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해왔는데 코로나로 모든 시험이 연기되는 바람에 이렇게 아르바이트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고 커피숍이나 양식당 같은 곳에서는 아르바이트 2~3명을 뽑는다고 하면 거의 100명 가까이 몰려오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런 장판 도배 노동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창 젊음의 꿈을 펼칠 젊은이가 여기저기 장판 도배 현장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오늘 하루 일자리가 급한 청년에게 어느 정당이 몇 자리 의석을 차지하고, 정치개혁이 어떠니, 하는 말은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지난해 3월 대비, 올해 기업의 채용공고가 33%나 줄었으니 취업은 좁은 문에서 바늘구멍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르바이트 시장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에 의하면 지난 2월7일부터 3월6일 사이에 서비스업은 26%, 외식 음료업은 25% 아르바이트 수요를 줄였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 이 모두를 포함하여 점점 높아 가는 청년 실업률은 선거에 이겼다고 춤을 추고, 선거에 졌다고 울분에 떠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정말 시급한 것이다. 선거 결과에 관심 없다는 장판과 도배 아르바이트생의 대답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지난 2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민생경제를 살피고자 충남 온양시장을 방문했을 때 한 반찬가게 여주인이 거지 같다는 말로 실정을 말했다가 뜨거운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었는데 사실 자영업자, 영세상인, 청년실업 상태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기생충에 가려 있었지만 지난해 송강호 주연,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도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기생충에서처럼 세종대왕 역의 송강호가 열연했는데 특히 세종대왕이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자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그 진지하고 연민의 정이 가득한 세종대왕의 표정에서 애틋한 애민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당시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백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그러니 비를 기다리는 세종대왕의 간절함이 오죽했으랴! 사실 세종실록에는 민위식천(民爲食天)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한 마디로 밥이 하늘이다는 이야기다. 백성이 배가 고프면 아무리 뜻 깊은 담론을 펼쳐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당장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못 구해 가슴 태우는 청년에게 검찰개혁이 어떻고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게 문 앞에 휴업합니다하는 안내문을 써 붙이고 돌아서는 자영업자에게 한국 코로나 방역이 모범국이라고 홍보해 봤자 얼마나 먹히느냐는 것이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했다는 어느 영세 상인의 말도 그래서 실감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이 경제다. 따라서 국회의원 새 금배지를 가슴에 단 선량들은 밥이 하늘이라는 세종대왕의 말씀을 깊이 새기길 바란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중국 춘추시대 소의 피는 매우 신성시되었다. 제후들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 조약을 맺을 때 소의 피를 함께 나누어 마셨을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종을 제작할 때 마지막 의식이 종에 소의 피를 바르는 것이었다. 그것을 흔종(鍾)이라 했다. 제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임금이 거동하는데 한 사람이 소를 끌고 가고 있었다. 임금이 유심히 보니 소가 울고 있지 않은가, 임금이 물었다. 왜? 저 소가 눈물을 흘리느냐? 그러자 신하가 대답했다. 저 소는 흔종을 위해 끌려가는 것인데 그것을 소가 알고 우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임금은 소를 놓아주라고 명한다. 그리고 소 대신 양으로 흔종의 의식을 치르라고 했다. 이것을 이양역지(以羊易之)라고 하여 맹자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임금의 눈에 우는 소(牛)는 보이지만 그 대신 죽을 양(羊)의 희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다. 말하자면 임금과 울고 있는 소의 관계이다. 이 관계 때문에 죽고 사는 엄청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신하가 임금에게 소는 불쌍하고 양은 왜 그렇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임금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어떤 관계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소와 보이지 않는 양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코로나 사태로 빚어진 민생경제를 살리자는 긴급처방으로 정부는 엄청난 돈을 풀 계획이다. 그런데 그 대상을 놓고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코로나 피해는 전 국민이 다 당하는 것이니 소득직업 가리지 말고 무조건 다 지급하자는 주장도 있고, 이 어려움을 가장 뼈아프게 당하는 자영업자 영세상인, 실직자,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조금 여유 있는 층은 고통을 나누는 뜻에서 양보하자는 주장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은 제외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공무원이라고 어려움이 없느냐? 라는 반론도 있다. 역시 소를 보느냐, 양을 보느냐 관계의 차이이다. 상위 30%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데 그 기준을 건강보험료로 할 것으로 알려지자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선정 기준을 23만 7천원으로 할 경우 단돈 몇백원 때문에 탈락할 사람들이 보험공단에 민원을 제기하는데 그 행렬이 마스크 사려고 줄 서는 것처럼 길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 30%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탈락할 경우 이들의 실망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또 어떤 사람은 2년 전 소득을 가지고 평가를 한다는데 그 후 2년의 세월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고 한다. 참으로 딱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해서든 탈락하는 층에서는 형평성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형평성이야말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수레바퀴처럼 중요하다. 한쪽이 기울면 수레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형평성이다. 서울시는 어떻고, 경기도는? 충청도는? 하고 차등이 생기면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형평성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절차에 매달려 시간을 끌다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환자의 치료는 신속함에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죽고 나서 처방을 내려봤자 늦은 것이다. 때(時)를 다스리는 것이 정치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재난지원금을 표의 관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가 끼어서 더욱 오해받을 수 있다. 참으로 소와 양, 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음의 관계가 정치의 핵심인지 모르겠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처음 경험하는 이상한 선거

오래전 나돌던 유머 한 토막.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 늦게까지 운동장 한쪽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깊은 숨을 몰아쉬며 울고 있었다. 마침 담임선생이 지나다 그 학생을 발견하고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 날이잖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출마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낙선하면 우리 가정이 망합니다.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선거라는 게 모든 걸 걸고 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가져 올 후폭풍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러니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식으로 혈투를 벌이는 게 선거다. 그런데 4ㆍ15 총선은 바로 코앞에 다가왔지만, 옛날의 그 뜨겁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했던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저질 꼼수만 난무할 뿐 조용하다. 심지어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춰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난장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개학조차 못하니 그럴 염려도 없다. 역시 코로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 전 법무장관 검찰수사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등, 대형 폭발물들이 코로나라는 쓰나미에 다 묻혔으니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지금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투표율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 투표장에 줄 서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특히 노년층이 투표장에 나가는 것을 꺼린다는 것. 노년층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불안할 뿐 아니라 도대체 연동형 비례대표니 위성정당이니 하는 새 선거법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일부 우려대로 노년층의 투표율이 저조해진다면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참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가 이렇게 괴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코로나 31번 확진자(신천지 신자)가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이것이 공장 문을 닫게 하고 시장경제를 통째로 흔들면서 사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에 누가 출마하고 공약은 어떤가를 생각하기보다 우리 동네 어느 약국에 가야 마스크를 살 수 있는지가 더 시급한 문제가 됐고, 골치 아픈 위성 정당이 어떻고 하는 뉴스보다 당장 코앞에 닥친 자식들의 개학문제가 더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번 4ㆍ15총선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 같다. 국가채무의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고 내리는 결단인데 이것이 과연 보약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단발성 아이스크림으로 끝날 것인지. 역시 코로나가 가져온 쓰나미다. 그래서 대형 이슈 때문에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쏟아 내는 웬만한 공약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장 불리한 쪽은 정치 신인들이다. 물갈이한다고 각 당이 신인들을 많이 발굴해 냈지만, 그들이 설 공간이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유권자 다수를 접할 기회가 없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하고 외치고 싶어도 그럴 무대가 너무 제한적이다. 그래서 이처럼 쓰나미에 매몰되어 버린 이번 선거 결과도 걱정이다. 어떤 후보를 고를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 밤에 결정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둠 때문에 보이는 시야가 한정적이고 낮에 비해 밤은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4ㆍ15 투표 역시 코로나 쓰나미에 휩쓸려 있지만, 밤의 장막에 갇혀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코로나와 로또 열풍

천둥 칠 때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은 600만분의 1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확률이 낮은 것이 복권 당첨률로 814만 분의 1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로또 대박의 꿈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인생 역전의 꿈을 안고 복권 한 장에 모든 것을 건다. 이번은, 반드시 이번은하면서 허탕을 치며 마른 침을 삼키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복권을 산다. 경제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20대와 30대에서 복권을 많이 사는데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서 심각한 복권 중독 현상마저 나타난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젊은 세대들이 복권 열풍에 빠지는가? 취업이 안 돼 헤매는 사람, 결혼을 해야 하는데 당장 전세자금 마련이 어려운 사람 등등. 그러나 지금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에다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고통을 겪는 자영업자들과, 갑자기 직장을 잃은 사람들까지 로또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2002년 로또 판매액이 1조 5천억원이던 것이 2018년에는 3조 9천600억원, 그리고 지난해에는 4조 31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렇게 복권 판매액이 몇조 단위로 뛰어올랐으면 그만큼 행복지수도 높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가령 4조원대의 복권이 팔렸으면 실제 당첨금으로 배정된 것은 507명에 1조 420억원 뿐이며 당첨된 사람들도 파산자가 많다는 사실은 복권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복권이 행복을 보장하는 환상 속에 지갑을 털어 복권을 사지 않고는 불안 해서 하는 중독현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일확천금의 환상에 빠진 중독자들은 로또뿐 아니라 카지노 도박장이 있는 정선 지방에도 심각하다는 보도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강원랜드가 휴장에 들어갔는데 소위 카지노 앵벌이가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빚을 얻어 돈벼락의 꿈을 안고 이곳 카지노에 왔다가 자동차, 시계, 목걸이 모든 것을 전당포에 잡혀 먹고 무일푼이 된 도박 낭인을 일컫는 카지노 앵벌이들이 카지노 문 열기를 기다리며 여기저기 서성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이들 카지노 앵벌이들은 인근 찜질방이나 게임방에서 끼리끼리 모여 판을 벌이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도박의 중독이 가져 오는 후유증은 심각하다. 복권중독현상이나 카지노 앵벌이의 후유증이 무서운 것은 가정 붕괴에서 사회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울감과 피로감이 엉뚱한 범죄로 발전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대전의 경우 지난해 3월13일까지 단 1건에 불과했던 살인ㆍ살인미수 사건이 올해는 8건으로 늘어났다는 사실만 봐도 경제 심리적 불안이 사회범죄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심지어 30대 엄마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린 아들을 고무호스로 때려 숨지게 하여 충격을 준 사건도 있었다. 따라서 지금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또 하나의 무서운 바이러스를 이겨 낼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앞에 나서야 하고 정부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역시 이 문제도 정치에 귀결된다. 국민정신이 건강하지 않고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가 망한 것은 군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건실했던 로마 정신이 무너지면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코미디 공부 많이 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이주일씨는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 인물이다. 특히 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금연을 호소하는 공익광고에 출연해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WHO(세계보건기구)는 그에게 공로상을 주기도 했었다. 그는 우리 코미디계의 1인자였으면서도 14대 국회의원이 되어 금배지를 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통일 국민당을 창당했던 정주영 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주일씨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면서 한 말이 그의 금연 공익광고 못지않게 감동을 주었다.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그러니까 코미디계의 1인자도 배워야 할 만큼 국회가 코미디였다는 뜻이다. 역시 고인이 되었지만 하숙생으로 너무 유명한 가수 최희준씨도 15대 국회에서 새천년 민주당으로 진출했었다. 그 역시 생전에 후회되는 것은 부친께서 정치는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 놓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왜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정치는 하지 말라고 말렸을까? 요즘 우리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 대답이 나온다. 그리고 왜 이주일씨가 4년간 코미디 공부 많이 한 것으로 정치판을 빗대어 말했는지 이해가 된다. 도대체 위성정당이니 의원 빌려주기, 4+1이니 하는 단어들을 어떻게 교과서대로 공부하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27일 그렇게 아우성치며 소위 정치개혁을 한다고 패스트트랙까지 발동해 통과시킨 선거법 개정이 이런 것이었는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역시 정치는 코미디이다. 오죽하면 정의당 심상정 대표까지 나서 국민의 표를 도둑질하는 꼼수 정치라고 개탄했을까. 그런데 선거법 개정을 위한 4+1 열차에 동승하고서 뒤늦게 개탄하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코미디가 아닐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끄는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정봉주ㆍ손혜원 의원이 이끄는 열린민주당 사이의 친문(친 문재인)표를 끌어 모으는 경쟁이 마침내 갈등으로까지 표출되는 것도 코미디다. 더욱 헷갈리는 것은 정봉주 전 의원이 우리는 4월15일까지 전략적 이별이라 했고, 더불어 민주당의 사무총장은 오히려 현재의 공천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주도한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 간의 공천 갈등도 코미디이다. 한선교 미래한국당대표와 공병호 공관위원장이 물러나고 강경 태도를 바꾸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공식 발표됐던 비례대표 공천명단이 백지화되고 재검토되는 것 역시 코미디가 아닌가. 이런 가운데 비례대표 앞자리를 차지하고자 위성 정당에 의원을 빌려주는 것은 세계에서도 없을 것이다. 물론 민생당의 전신인 바른 미래당 소속 8명의 의원이 미래 통합당 등 각자 도생을 위해 셀프 제명을 한 것도 그렇지만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큰 혼란을 겪은 것도 우리 정당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정말 셀프 주유소, 셀프 세차장하는 것처럼 정당에서 셀프 제명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 모든 것이 꼼수의 극치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공자는 정치의 최고의 가치를 믿음(信)이라 했는데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모습들은 믿음의 정치가 아니라 코미디이다. 이주일씨가 살아있어 이 현실을 보면 또 한번 코미디 공부 잘했다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뉴스 보기가 불안한 세상

국정 장악능력은 떨어져 남은 2년 반을 표류할 것이다. 무능 정부에 대한 시민저항이 한동안 한국 정치와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대형교회가 몰락하기 시작할 것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줄어들어 교통체증을 가속할 것이며 공연, 찜질방, 영화관, 단체 여행 등의 사업이 퇴조할 것이다. 위 내용은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가 코로나 19사태가 가져 올 우리 삶의 변화를 14개 항목에 걸쳐 SNS에 올라온 일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시민들의 위생적인 생활이 향상되는가 하면 무인점포의 증가, 스마트 행정 수요 확대, 오프라인 유통구조가 온라인으로 옮겨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예언했지만, 비관적인 전망도 제시했다. 디지털 경제에서 낙오되는 취약계층은 경제적 기회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우려되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이번 사태를 조속히 안정시키고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학도 연기했고 성당과 교회까지 종교행사를 간곡히 말렸다. 운동경기도 중지되거나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으며, 각종 모임과 사회단체의 행사도 취소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홍보가 계속 될수록 사람이 무서운 관계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중소 상인들,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이다.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결혼 예식장이 파리를 날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죽하면 상가 임대료 깎아 주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런 경제적 취약계층은 이병태 교수가 지적한 대로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문제를 과연 우리 정부가 뚫고 나갈 능력이 있을까? 경제적 양극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연일 계속되는 TV에서의 코로나 사태 뉴스는 어쩔 수 없이 사회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이런 사회적 불안에다 마스크 하나 사기 어려운 실정에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는 친구와 전화를 했더니 다 죽어 가는 소리를 한다.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돼지를 키웠는데 이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돼지는 누가 키우느냐는 것이다. 이제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한국을 탈출하는 바람에 그 고통은 사회적 약자, 경제적 취약계층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됐다. 경로당 문을 닫고 무료급식소까지 급식을 중단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노인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노숙자들을 무척 힘들게 한다. 이들 경제적 약자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입는 정신적 트라우마는 여러 분야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런 불안이 쌓이고 쌓여만 간다면 개인적으로는 우울증 같은 불행을 초래할 것이고 이것이 집합을 이룬다면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꼭 10년 전 칠레에서는 광산이 무너져 33명의 광부가 갱도에 갇혔지만 69일 만에 구출된 기적 같은 사건이 있었다. 절망과 분노, 배고픔, 공포그러나 작업반장 우르수아는 이들을 보듬고, 희망을 갖게 하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69일을 버티게 한 끝에 모두를 살려 냈다. 그리고 그는 굴속에서 구조될 때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다. 그렇다.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무섭고, 거리에 나서기가 불안한 사회적 약자들, 마스크 하나 해결 못하는 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국민, TV만 켜면 쏟아지는 뉴스에 가슴이 울렁이는 사람들이럴 때 믿음직스럽고 용기와 삶의 힘이 솟구치게 하는 칠레의 광부, 우르수아 같은 지도자의 모습이 간절할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임진왜란과 코로나 사태

임진왜란 때 원균은 선조의 출정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왜군과 싸우다 1597년 7월 16일, 거제 칠천량 전투에서 전사했다. 원균 뿐 아니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도 목숨을 잃는 등 참패를 당했다. 선조는 이렇듯 현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출전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사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옥에 갇혀 문초를 당한 끝에 백의종군하게 된 것도 현지 사정을 모르고 선조가 내리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순신 장군이 싸움마다 다 이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현지 출신의 참모를 많이 기용했음을 지적한다. 현지 출신이기 때문에 바다의 물길에 대해 잘 알고 날짜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조류를 이용하여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전에서는 물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현지 출신 참모들의 의견을 크게 중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류가 험한 한산도 앞바다로 왜군을 유인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원균은 그렇게 못하여 참패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폭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국민은 너 나 없이 마스크로 입을 막고 살아야 하며 대구에서는 전쟁터 같은 살벌함이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BSI(기업 경기 실사 지수)는 한 달 새 10포인트나 떨어졌고 코스피, 코스닥 모두 연일 급락하고 있다. 10일 오후 2시 기준으로 한국인의 입국 제한을 가하는 지역과 국가는 109곳에 달해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러브콜을 보냈던 중국에서조차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이것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모습이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임진왜란 때처럼 현지의 사정을 외면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라는 소리가 높다. 병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의사이다. 그들이 모여 의사협회를 만들었고, 감염에 대한 전문가들이 모여 감염학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런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내놓은 코로나 방역책은 중국인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일곱 번 건의한 의사협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감염학회 역시 지난 2월 2일, 2월 15일 중국 후베이성 외 지역도 입국을 제한할 것을 권고했는데 정부는 2월 4일부터 후베이성만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2월 13일 코로나 사태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이다. 그런데도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국회에서 감염학회가 중국 전역 차단을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고 왜곡 발언을 했다. 그러니까 감염학회의 의견을 귀에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박 장관은 코로나 감염의 책임을 한국인 탓으로 발언하여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도대체 어느 나라 장관이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스크 대란도 해결 못 하는 무능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이처럼 중국에 대해 저자세도 부족하여 납작 엎드리는 속내는 무엇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매달리기 때문인가?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기에는 정치적 계산보다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방역주권이다. 북한이나 러시아 몽골 같은 나라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해 버리는 것, 이스라엘이 우리 한국인들 태운 비행기가 그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의 비용으로 전세기를 마련, 내쫓듯 돌려보내는 단호함.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사안들이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는 이렇듯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나 꼼수가 있어서도 안 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물갈이냐, 객토냐

1984년 2월, 나는 한ㆍ일 관계에 따른 한 행사에 참석한 것을 기회로 당시 일본 구마모토 지사로 있던 호소카와를 그의 집무실에서 면담할 기회를 가졌다. 훤칠한 키에 젊음이 넘치는 그의 모습은 참신함 그것이었다. 그의 언변도 여느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는 진솔함이 느껴졌다. 특히 그는 지방분권을 많이 강조했다. 그 무렵 일본은 자민당의 38년 장기집권에 정경유착 등 정치의 부패로 개혁을 갈망하는 소리가 높아 가고 있을 때여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는 그런 개혁의 기수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과연 그는 얼마 안 있어 일본신당이라는 당을 만들어 일본 열도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방 도지사를 했을 뿐 국회의원은 한 번도 한 일이 없었지만 일본 사회당 등 8개 야당이 호소카와를 중심으로 뭉쳤다. 마치 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도 앙마르슈(전진)운동을 벌여 대권을 잡았듯이 그렇게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마침내 1993년 총선에서 호소카와는 승리하여 총리에 오른다. 일본 정치의 물갈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물갈이는 너무도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가 추진하던 국민복지세 신설이 좌절되면서 자신을 밀었던 정당과의 연정에 갈등이 시작되고 정치개혁도 지지부진했다. 그런데다 그가 사가와 유빈그룹으로부터 1억 엔을 차입한 사건이 스캔들로 번지면서 호소카와 내각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붕괴하고 말았다. 그렇게 개혁은 물갈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사람만 바꾼다고 정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그 밑받침을 하는 정치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사실 우리 국회가 그동안 선거 때마다 물갈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6년의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5.8%가 물갈이된 것을 비로소 16대 40.7%, 17대 62.5% 등 20대까지 거의 50%대의 물갈이를 해왔다. 미국의 상하 의원 13~15%의 물갈이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그런데도 왜 우리 정치는 조금도 발전하질 못하고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의 진흙탕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가? 17대 때 열린우리당은 68%를 물갈이하여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16대 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그렇게 해서 273석 중 133석을 차지하는 성공을 했다. 이회창 총재는 물갈이의 폭을 넓혀 오랫동안 한국정치판의 중심이었던 3金 청산을 내걸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물갈이로 초선 의원들이 많아졌으면 의회정치도 새로워져야 하는데 시간이 가면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것은 왜일까? 그 대답은 논농사의 기본을 중시하는 농부들에게 들어야 한다. 벼농사에서 중요한 것이 물갈이임은 분명하나 더 중요한 것이 객토(客土)라는 것이다. 아무리 물갈이를 잘해도 논바닥의 토층(土層)이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토양의 결함, 이를테면 자갈땅, 광물질이 부족한 땅, 오염된 물로 썩거나 산성화된 땅. 이런 논에는 좋은 흙을 옮겨다 토층을 새롭게 바꾸고 튼튼하게 하는 객토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국회도 물갈이가 전부가 아니며 정치판을 바꾸는 객토작업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국회의원 개인의 소신 존중하기, 다선위주의 비민주적 원구성 지양. 등등 정말 우리 정치판을 바꾸는 객토작업이 절실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샤론 崔’ 같은 국회의원을 뽑고 싶다

아카데미 4관왕으로 세계적 인물이 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 언론과의 인터뷰를 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샤론 최가 이것을 어떻게 통역했을까? 그대로 직역을 하면 너무 평범하다. 그런데 그는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라고 통역했다. go into it cold는 미국식 재미있는 표현으로 무조건, 저지르고 본다, 덮어 놓고 뛰어든다는 뜻으로 미국 언론인들은 샤론 최의 이 표현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뿐 아니라 샤론 최는 봉 감독의 유머까지도 거침없이 통역하는 바람에 아카데미 수상 무대의 깜짝 스타가 되었다. 그래서 세계 언론들이 봉 감독 못지않게 샤론 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고 봉 감독의 아바타로 인정받았다. 어떤 언론은 샤론 최가 봉 감독의 영혼까지도 완벽하게 소화한다고 격찬했다. 봉 감독 자신도 그를 가리켜 이분도 멋진 영화감독이라고 치켜세웠다. 사실 그는 전문 통역사도 아니고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와 미국 등 여러 곳에서 영화 제작에 손을 댄 전력이 전부다. 문제는 외국어를 얼만큼 잘하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얼만큼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오랫동안 외무장관을 맡은 강경화 장관의 오늘이 있기까지도 그의 통역 실력이 한몫을 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클린턴 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할 때 동시통역을 맡아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은 그 후에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과의 회담 등 중요한 회담에서 몇 차례 통역을 맡은 강경화 장관에 대해 내 말이 강경화 특보를 통해 통역되면 더 멋있게 만들어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강경화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 특보를 거치는 등 외교 무대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갔고 오늘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통역으로 가장 크게 신분상승을 한 사람은 우리 역사에서 유청신(柳淸臣)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257년 전라도 고흥에서 태어났는데 신분이 부곡(部曲)으로 고려 사회에서 가장 낮은 하층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몽골어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어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원(元)나라 집권층과 친밀해질 수 있었다. 조정에서도 원 나라와의 주요 외교 문제를 다룰 때 유청신이 통역을 맡아 잘 해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리하여 유청신은 고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3대 왕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부곡 신분으로서는 5품 이상 올라갈 수 없었는데도 그는 첨의정승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물론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은 것인데 점점 위세가 높아져 임금까지도 좌우하는 등 기고만장했다. 심지어 왕을 폐위하거나, 고려를 원의 식민지로 편입하는 등의 월권을 행사하다 불행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이처럼 통역은 그 인물에 따라 그 영향력도 막대하다. 그래서 사심이나 편견 없이 어떻게 상대에게 이쪽의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도 역시 정확히 옮기느냐가 생명인 것이다. 샤론 최가 여느 통역보다 칭송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뜩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샤론 최 같은 인물이 많이 당선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국민의 뜻을 정확히 국정에 반영하고 소통하는 국회의원, 당략에 빠져 국민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국정에 반영하는 국회의원, 영혼까지도 전달한다는 샤론 최 같은 신선한 국회의원을 그려 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당신이 부끄럽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바른 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개입 의혹사건 공소장 공개를 거부한 추미애 법무장관을 향해 한 말이다. 개가 풀을 뜯어 먹다니 참 독하게 찔러 댔다. 추 장관이 이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최근 들어 우리 귀를 때리는 말들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6일 수원고등법원 노경필 부장판사는 은수미 성남 시장에 대한 선거법위반 항소심 재판에서 검사 구형보다 배가 높은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면 시장직을 잃게 했다. 그러면서 재판장은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나무랐다. 정치인으로서 민주발전 책무, 정치활동과 관련된 공정성, 투명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버린 것이며 국민을 섬기는 기본자세를 망각했다. 재판에 대한 또 하나의 인상적인 말은 같은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트럼프 미 대통령 탄핵에 대한 상원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롬니 상원의원. 그는 당론을 따르지 않고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나는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신(神) 앞에 맹세했고 이를 지킨 것이다고 했다. 무엇보다 요즘 쏟아진 말들 가운데 중국 SNS를 넘어 지구촌을 감동시킨 것은 코로나19를 둘러싼 것이 아닐까. 찌아요! (힘내라!) 도시에 갇혀 꼼짝 못하는 중국 우한 시민들에게 중국인들이 보내는 응원 구호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19를 처음으로 알렸으나 오히려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되어 반성문까지 써야 했던 30대의 젊은 의사 리원량의 마지막 메시지는 세계인을 슬프게 했다. 그는 지날 6일 죽기 전에 정의는 사람들 가슴에 있다는 말을 남겼으며 숨 쉬기가 답답하다라고 외쳤다.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네티즌 분노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 우리를 죽이는 건 박쥐가 아니라 정부의 강요된 침묵이다. 또한, 중국의 명문 칭화대학 쉬장룬 교수의 에세이는 직접 중국 공산당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조직적인 무질서와 윗사람에게만 책임을 다하는 제도적인 무능, 내 한 몸 지키려는 이기심이 억만 인민을 얼음과 불에 몰아넣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된 통치 체계의 문제점을 용기 있게 지적한 것이다. 지구촌에 감동을 준말은 또 있다. 지난 1월 이란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잇달아 있었는데 그동안의 반미(反美) 시위가 아니라 자기네 나라 최고 권력자 하메네이를 향한 것이었다. 이란 혁명군이 우크라이나 민간 여객기에 미사일을 쏴 176명이 사망한 사건이 터지자 하메네이 최고 권력자를 향해 당신이 부끄럽다. 이 나라를 떠나라!라고 외친 것이다. 감히 이란에서는 보기 어려운 함성이었다. 지난여름 조국이 부끄럽다!고 팻말을 높이 들었던 서울대인 촛불 집회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당신이 부끄럽다! 요즘 권력만 잡으면 말이 바뀌는 정치인들이 정신 차려야 할 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가 읽기에도 두려운 경전(經典) 같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나폴레옹이 무서워한 중국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중국은 잠자는 사자라며 중국을 크게 두려워했다. 비록 지금 잠을 자고 있지만, 중국의 잠재력은 사자처럼 무섭다는 뜻이다. 과연 요즘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면 중국은 두려운 존재가 되고 있다. 물론 나폴레옹이 중국을 무섭다고 한 것은 이것을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여러 가지로 두려운 존재임은 사실이다. 미 국방부가 2019년 의회에 보고한 중국 군사력에 의하면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전쟁할 경우 패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핵 추진 항공모함에서 2012년 5만 5천t 급 랴오닝함을 진수시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6만 5천t 급을 취역시켰고 곧 8만t 급도 진수시킬 계획이다. 태평양을 미군의 지배하에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동풍 41을 곧 실전 배치할 계획인데 10대의 다 단두 탑재가 가능한 위력적 미사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미사일 또한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군사적인 면에서만 중국이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를 만큼 발전했고 상하이(上海)는 미국 뉴욕에 버금갈 정도의 현대화된 도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급작스런 부(富)의 성장으로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 프랑스, 스웨덴, 미국을 떼 지어 휩쓸고 우리나라 역시 중국 여행객이 아니면 면세점이 타격을 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면세점을 휩쓸고 다니는 중국 관광객을 걸어다니는 지갑 이라고 부를 정도이며 바쿠카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다. 바쿠카이는 폭탄이 터지 듯 묻지 마 사재기식 쇼핑을 뜻하는 것으로 2015년 일본 유행어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정말 중국은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생선을 먹기 시작하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가 불법어업을 하며 싹쓸이를 하는 중국어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인이 손만 대면 그 물건은 세계시장에서 빨대처럼 빨려간다. 심지어 미국이 발행한 국채 1조 1천120억 달러를 쥐고 있다. 이런 중국이 이번에 보여 준 신종 코로나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실 복잡한 의학용어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우한 폐렴 곧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폐렴을 가리킨다. 그 폐렴이 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발생했다. 수산시장이라고도 하고 박쥐 등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판매하는 곳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는 장소에서 시작,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그 엄청난 군사력, 경제력으로도 이 구석지고 음습한 곳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최근 세계적 의학 연구를 자랑하는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질병 예방 대응 능력에서 중국은 세계 195개국 중 51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보건안전 수준이 이 정도인지 놀랍기만 하다. 한국은 9위를 차지했으며 중동의 예멘이나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보다 높다. 중국이 예멘이나 사우디 아라비아보다도 밑에 있다는 사실에 중국의 자존심은 말이 아닐 것이다. 결국, 세계 여러 나라가 중국인 입국을 기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59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무역 박람회에서 벌어진 닉슨 미 부통령과 당시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 간의 소위 부엌논쟁은 지금 중국에서도 교훈이 될 것이다. 미사일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부엌 시스템(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의미)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유배를 떠나거든…

몇 해 전 시간을 내어 경상남도 남해에 있는 노도(櫓島)를 다녀왔었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아름드리 동백나무 숲. 참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섬에 조선조에 이르러 구운몽을 쓴 김만중을 비롯하여 남구만 등 7명이나 되는 문신들이 유배를 살았다는 사실에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애련한 생각이 들었다. 바다와 갈매기를 벗 삼고 동백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세월이 바뀌는 것을 알며 떠나온 부모ㆍ형제, 처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특히 김만중은 이곳에 귀양살이하는 동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받고 글을 쓰다가 눈물이 쏟아져 글을 맺지 못했다 하니 그 마음 짐작이 간다. 그래서 이곳에는 유배 온 선비들이 남긴 글이 많고 남해군에서는 이런 작품을 모아 유배문학관이라는 특별한 문학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런 유배지에서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그래도 위안을 삼는 글은 어떤 것이었을까? 흔히들 유배 온 선비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벽에 써놓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참을성을 기르고, 할 수 없었던 일도 하게 한다(是故動忍性增益其所不能). 그런가하면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무려 18년이나 했는데 그의 유배생활 역시 특별했다. 주막집 뒷방에서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며 살았지만, 그 귀양살이 방을 사의재(四宜齋)라고 고상한 이름을 붙였고, 거기에 따른 네 가지 수칙을 사의재기라 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첫째, 생각은 담백하게 할 것. 둘째, 용모는 엄숙하게 할 것. 셋째, 말을 적게 할 것. 넷째, 행동은 무겁게 할 것. 그러면서 마지막 글에 나는 이 날 주역의 건괘를 읽었다고 했다. 건괘를 읽었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그의 꿈을 버리지 않았음을 뜻한다. 과연 그는 조선의 개혁이라는 큰 뜻을 당장 이루지 못하였지만 목민심서라는 불후의 명 저서를 남겨 지금까지도 모든 공직자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1836년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에까지 올랐으나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자 10년 전의 사건으로 1840년 제주도로 유배를 가야 했다. 말하자면 정권이 바뀌자 정치보복을 당한 것이다. 유배기간도 1848년까지 무려 9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때 만든 작품이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가 아닌가.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세찬 겨울바람이 몰아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참 멋진 글이요 그림으로 당당히 국보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 그림과 글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것을 특징으로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은 그 황량했던 제주도 유배지에서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지만, 그 뜻은 굽힘이 없이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견디어냈다는 정신력이다. 이처럼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저술했고 서포 김만중은 구운몽을 완성하는 등, 그 옛날 우리 선비들이 숱한 유배생활에도 굽힘 없이 자기 세계를 지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요즘 단행된 검찰 고위급 인사에서 정권수사를 지휘했던 간부들의 영전성 좌천 발령을 가리켜 조선시대의 사화(士禍) 또는 유배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유배라면 그들에게 선비들이 유배지에서 위안받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고사(古史)를 읽어보길 원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마키아벨리 유령은 살아있다

대중은 왜 항상 소수에 당하는가? 그들이 울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분노하기 때문이다. 울지도 말고 분노하지도 마라. 역사는 울보에게도 분노하는 자에게도 (권력을) 맡기지 않는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1512년 군주론(君主論)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걸핏하면 흥분하고 쉽게 손뼉치는 냄비근성의 대중들은 이 때문에 늘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 주장이 과격하고 권모술수의 교본 같기도 하지만 특별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등 많은 서양사 학자들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여러 형태의 글로 발표를 했다. 그러면 마키아벨리에게 이와 같은 주장을 강하게 심어 준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사보나롤라가 권력을 잡은 과정, 그리고 그의 참담한 몰락이었고 여기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사보나롤라는 1490년 역사적인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세운 산 마르코 수도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교황청의 타락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등 명설교로 시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494년 11월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해 왔다. 샤롤 8세 왕이 직접 프랑스군을 이끌고 이탈리아 영토를 깊숙이 점령했는데 피렌체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사보나롤라가 프랑스 진영으로 들어가 샤롤8세 왕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여 마침내 프랑스군이 철수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친 것이다. 그러자 금세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의 영웅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4년간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잡자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여 항소할 권리도 주지 않은 채 5명을 사형시키는가 하면 경제난이 닥치자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무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변한다는 것, 국난이 닥쳤을 때 아마추어로서는 위기극복에 한계가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보나롤라는 점점 국민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다 교황청으로부터 경제 제재까지 가해졌다. 사보나롤라가 교황청을 계속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수사가 정적이 되어 도전을 받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분노한 시민들은 1498년 5월 사보나롤라를 권좌에서 끌어내 감옥에 가두었다가 바로 시뇨리라 광장에서 화형(火刑)에 처하고 말았다. 끔찍한 권력의 반전(反轉)이었다. 지금도 그 광장에는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자리에 기념 동판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집필, 당시 권력자 메디치에게 헌정하여 자신의 등용을 노렸으나 그가 죽은 후에야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책이 나와서도 한동안 금서(禁書)로 낙인 찍혀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결국 권력을 유지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번영케 하는 군주가 되려면 때로는 여우가 되고 때로는 사자가 되어 권모술수를 적절히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 사자가 되고 어떤 때 여우가 돼야 하는가?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규범을 어겨도 좋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 사악(邪惡)하거나 무법자라는 비난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군주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 시대에도 가능한 논리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정치인이 은근히 마키아벨리의 이 논리를 믿고 있으며 어제의 말을 오늘 뒤집는 등 자신의 도덕적 배신과 위선을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빌려 위로하고 변명 거리로 삼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유령(幽靈)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비극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가시고기 부성애와 세습

민물고기인 가시고기 수컷은 부성애(父性愛)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수컷 가시고기는 혼자서 열심히 수초를 물어다 좋은 장소를 찾아 집을 짓는다. 그러고는 암컷을 맞아들여 산란을 한다. 산란을 끝낸 암컷은 사라지고 수컷이 남아 알을 지키며 부화를 위해 정성을 쏟는다. 물속에 신선한 산소를 확보하고자 꼬리 지느러미를 쉬지 않고 휘저으며 알 주위를 맴돈다. 그렇게 하여 10여 일쯤 알에서 새끼가 나올 때면 아버지 수컷은 지쳐서 죽고 만다. 알에서 부화하여 나온 새끼들은 죽은 아버지 몸뚱아리 살을 먹으며 성장을 한다. 참으로 기막힌 수컷 가시고기의 일생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감동적이다. 그러나 종족 번식의 생물학적 본능이 강한 남성에게는 특별한 부성애가 발동 되기도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기붕 장남 이강석 육군 소위가 양자로 입적했다. 아들의 확실한 출세가도를 확보하고 아들을 그렇게 입양시킴으로써 자신도 차기 대권에 대한 튼튼한 보증을 세운 셈이다. 그러나 그 야심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3ㆍ15 부정선거로 4ㆍ19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분노한 학생들이 서대문에 있던 이기붕 의장의 집을 급습했고 이 의장과 가족들은 몸을 숨겼다. 4월28일에는 이강석이 권총으로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을 죽이고 자신도 이마에 총을 쏴 자살했다. 참으로 참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만약 이기붕 의장이 대권 세습의 탐욕을 버리고 아들을 권력의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3ㆍ15 부정선거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낳는 것이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를 대표하는 모 교회도 세습의 논쟁에 휩싸여 있다. 존경받아오던 김모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 목사직을 물려 주는 데서 발생한 소요다. 세습이라며 아들의 승계를 반대하는 측과 세습이 아니라 합법적임을 주장하는 측과 싸움이 벌어진 것. 사실 세습은 그것이 합법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법이라는 것이 (교회의 법까지도) 때로는 피해 나갈 통로가 있다. 가령 ~할 수 있다 는 조항은 ~아니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세습을 찬성할 사람들로 대의원을 지명하게 한 후 거기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어 통과되면 그건 합법이다. 그러나 합법이라고 정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양심적이라 말할 수도 없다. 북한의 김정은이 3대 세습인데 형식은 당 대표자들이 모여 100% 찬성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다. 이 기막힌 세습을 누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세습이 박수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조직을 화석화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보편적 절차로 선출된 후계자가 비록 세습에 의해 승계된 자보다 능력이 뒤떨어진다 해도 그는 도덕적 힘을 받기 때문에 조직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그러나 세습에 의한 조직은 교회건 정치건 공의롭고 정당성 있는 절차를 상실했기 때문에 화석이 된다. 그래서 인류가 발명해 낸 최고 최선의 제도가 비록 갈등과 비용이 많더라도 민주주의인 것이다. 선거철이 되자 또 세습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일, 목포는 누가, 대구는 누가 하는 식으로 지역을 세습처럼 떠드는 일 토건업자들이 공사입찰 때 오줌만 먼저 누어도 연고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무서운 싱귤래리티 시대의 권력게임

지구를 휩쓴 한국 젊은이들로 선풍적 인기를 얻은 BTS(방탄소년단). 그 멤버의 뷔가 2018년 솔로 곡 싱귤래리티를 발표했는데 트위터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했으며 LA타임즈의 2018년도 최고의 명곡 10선에 선정되는 등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평론가들은 깊은 저음과 특별한 퍼포먼스에 각별한 찬사를 보냈다. 특별한 퍼포먼스란 뷔가 마네킹과 춤을 추는 것인데 일찍이 뮤직 비디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뮤직 비디오에서처럼 싱귤래리티는 달콤하고 로맨틱한 것일까? 인간의 마음을 빨아들이듯 속삭이며 낮은 저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싱귤래리티일까? 어쨌든 이 낯선 단어가 방탄소년단에 의해서 뿐 아니라 최근 갑자기 여러 분야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싱귤래리티의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고 모든 분야에서 업(業)의 개념,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고 하였다. 재벌 총수의 신년사에서 싱귤래리티란 말이 절박하게 표출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도대체 그럼 싱귤래리티란 무엇인가? Singularity의 사전적 의미는 단독, 비범, 색다름 등으로 설명되지만,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실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에 앞서 우리 교포로서 일본 최고의 재벌에 오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싱귤래리티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손 회장도 조현준 회장처럼 이것이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에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상황(생각하면 공포영화 같은 시대가 연상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이 바둑 대결에서 보듯 싱귤래리티 시대의 게임법칙은 무조건 상대방을 제압하고 이기는 것이다. 그렇게 설계되고 조정된다. 그래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것이 가져 올 부작용으로 인간성이 죽어가는 것을 지적했고 어떤 교수는 인간이 퇴화하는 것을 문제로 제기했다. 모든 것이 상대를 이겨야 하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게임의 룰이 인공지능을 통해 진행되면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것그런 끔찍한 가상(假像)이 현실화 된다는 것이다. 정치도 그렇다. 정치의 속성인 권력을 잡기 위한 룰에서 인간성이라든지 정의라든지 하는 것은 없다. 오직 상대방을 제압하고 이기는 룰만 추구하는 것이다. 이벤트, 가짜뉴스, 다수의 위력 등등 특히 올해는 선거를 치르는 데 이 싱귤래리티가 동원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이미 이와 같은 증세는 여의도에서 그리고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것 같다. 오직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으면 권력을 잡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나는 없어지는 것이라는 칼춤과 같은 게임 룰. 사실 싱귤래리티가 아니어도 우리는 이와 같은 게임 룰의 DNA를 가지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죽은 자의 무덤까지 파헤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했고, 노론이 집권을 놓칠까 사위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잔인한 아이디어를 영조에게 제안한 장인도 있지 않은가(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라를 구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도 당쟁의 칼춤에 제물이 되었고. 증오와 갈등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해야 우리가 산다는 그 게임의 룰이 소름끼칠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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