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세조는 단종을 퇴출하고 왕좌에 오르는 데 명분과 공의를 극복할 측근들이 필요했고 그 대표적 인물이 한명회였으며 이들이 이른바 훈구파(勳舊派)였다. 이 훈구파는 조선 역사를 통해 수없이 등장했고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 때는 훈구파라고 하는 공신이 117명이나 되었으며 이들이 하사 받은 땅이 큰 부를 이루었다. 또한 요직을 독점하는 그야말로 적폐의 대상이었다. 조광조가 이 적폐 청산에 나서 훈구파(공신) 76명의 땅을 회수하고 노비를 몰수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죽음을 당해야 했다. 중종 이후에도 이와 같은 공신이 출현했고 역사에 기여도 했으며 때로는 역사를 후퇴시키기도 했다. 정부수립 후에도 마찬가지다. 5ㆍ16 쿠데타에는 육사 8기생들이, 그리고 군사정부 시절에는 하나회, 심지어 오늘까지도 친노, 친문, 친박, 친이 라는 용어들이 정치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그 속을 들어가면 진골, 성골 등 신라시대의 골품제도에서 보는 품계가 그들 실세들의 등급이 정해지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정반대이던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와 자리를 함께한 일이 있었다. 2010년 9월 부여공주에서 개최된 백제문화제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 우측에는 안희정 지사, 좌측에는 이광재 지사가 인사를 하며 반겼다. 그러자 누군가 우 희정, 좌 광재가 됐네요 하고 말해서 웃음이 일었다. 이 두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들로 세간에서는 우 희정, 좌 광재로 노 전 대통령의 복심임을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좌 ○○, 우 ○○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만이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 때도 있었다. 그 시절 상도동계하면 김영삼, 동교동계하면 김대중 정치세력을 말했는데 각각 복심이라고 하는 측근들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공신의 대표격인 김동영, 최형우를 일컬어 좌 동영, 우 형우라고 부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의 복심들은 특별히 군사정권 시절 혹독한 탄압과 감시를 받으며 결속돼 좌 ○○, 우 ○○ 할 것 없이 가신(家臣)처럼 묶여 있었다. 권노갑, 한회갑, 김옥두, 이용희. 이들은 감시와 투옥을 겪으면서도 동교동을 떠나지 않고 충성심을 발휘했는데 집권을 하고 나서는 비난과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여 2003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동교동계의 해체를 지시하기 까지 했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뿐 아니라 어느 시대든 복심, 가신, 실세, 측근, 주류, 비주류 등 이른바 권력창출을 위한 그룹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행보가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 진 데다 국회의장,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그리고 김경수 경남지사 등 전국 지방단체장과 만나며 업무협약을 맺는 등 광폭행보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정당 싱크탱크 책임자가 그렇게 튀는 행보가 없었기에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에게는 어떤 그룹이 있는 지 아직은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다. 하지만 친박ㆍ비박은 여전히 당의 진로와 정권 창출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치에는 정답이 없으며, 싱크탱크 답안대로 해서 정치 잘 한다는 법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오피니언
변평섭
2019-06-18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