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미래] AI 빈부 격차

지난주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접속 중단 사태는 현대사회에서 인공지능(AI)이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렸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챗GPT가 다운됐다고? 그럼 이제 나보고 ‘생각’을 하란 말이야”라는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저의 농담은 AI가 현대인의 사고와 업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지 2년 남짓. 이제 AI 없는 세상은 점점 과거의 일이 돼 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내비게이션 및 구글 맵 없이 해외여행을 하거나 낯선 길을 운전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AI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AI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누구나 공평하게 접근 가능한 기술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정보 격차는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AI 활용 능력은 이제 경제적 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챗GPT의 경우 누적 사용자 수가 약 1억8천만명에 달하지만 월 20달러의 유료 버전 사용자는 3~5%, 월 200달러의 프로 버전 사용자는 1% 미만에 그친다. ▲추론 능력 ▲데이터의 질 ▲응답 속도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에서 고가의 서비스가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제공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보도대로 월 2천달러의 초고가 서비스가 출시된다면 이러한 AI 성능 격차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AI 빈부 격차는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한국 정부의 연간 예산에 달하는 720조원을 AI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 메타는 맨해튼 면적에 버금가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약 9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민간 영역과 함께 2027년까지 65조원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지난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AI 패권 구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신적 사례를 제시했다. 젊은 천재들이 모여 있는 이 회사는 물량보다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 AI 개발 모델의 5% 정도에 불과한 비용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성능의 AI를 개발했으며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개인용 PC와 전기료만 있다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AI 산업을 주도하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시가총액 900조원이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딥시크의 기술력, 안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하지만 딥시크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이 막대한 자본과 물량 공세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는 투자와 인프라에서 뒤처지고 있는 한국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으로 여전히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더 많이’와 ‘더 크게’가 어려울 때는 혁신으로 무장한 ‘더 스마트’한 접근이 해결책인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외교 동물의 삶

1479년(성종 10년) 당시 백성들은 처음 보는 생명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끼리 두 마리. 이 거대하고 이국적인 동물은 명나라 황제의 선물이었다. 처음에 코끼리는 조선 백성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인기도 잠시, 코끼리는 너무 많이 먹었고 풀, 곡류 같은 농작물 조달은 점차 비용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코끼리 탈출 사건과 코끼리로 인해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만을 품는 백성들이 늘었다. 천덕꾸러기가 된 이들의 기록을 종합하면 오랜 귀양살이와 영양 부족, 추운 조선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가 간 우호 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 정치적 목적이 담긴 동물, 이들의 이름은 외교 동물이다. 과거 이들은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으로서 거래의 대상이 됐다. 겉으로는 화려한 이목이 쏠렸으나 실제 그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고 비참한 것이 현실이었다. 19세기 문화적 연결을 상징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 호주 캥거루는 부적절한 영양과 날씨로 질병에 시달렸고 비슷한 시기 유럽 왕실로 간 아라비아말은 역시 음식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이른 나이에 폐사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사육정보를 통해 여러 건강 문제를 개선했다. 그러나 여전히 외교 동물의 삶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목소리는 존재한다. 중국의 외교 동물 판다는 임대 형식으로 고액을 받고 제공되며 기간이 종료되면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만일 타국에서 새끼가 태어나도 이들은 중국의 소유가 돼 번식 적령기가 오기 전에 자국으로 반환돼야 할 의무가 있다. ‘푸바오’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판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지난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푸바오는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이동은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 단절과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는 현재의 외교 동물이 여전히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이용되며 동물 자체의 행복과 복지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교 동물에 대한 충분치 못한 배려는 인류 사회와 정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상업 논리와 화려한 외교 정치의 그늘에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윤리적 문제와 정서적 상실감에 직면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결국 국가 간 신뢰를 강화하고자 했던 외교 본연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외교 동물의 삶에는 국격이 보인다. 이제는 푸바오의 이야기를 통해 외교 동물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단순히 판다를 귀여운 동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생명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준 사랑만큼 그들의 삶에도 존엄과 안정이 보장돼야 한다. 외교 동물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생명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돼야 한다. 푸바오 같은 외교 동물이 우리의 삶에 준 기쁨이 그들 스스로에게도 행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몫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때 대한민국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이런 한 해가 돼야 한다

지난 9일 기상청은 2024년이 11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불과 최근 30년 전보다 연평균 기온이 2도나 높아진 것으로 더 이상 한반도는 기후변화의 ‘안전지대’가 아닌 ‘취약지대’임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지구 평균 기온을 높이는 나라, 즉 ‘기후 악당’ 국가임을 실시간 증명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그 결과가 조금이라도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항상 그 기대는 속절 없이 무너져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전 세계 어떤 국가나 정부, 지구인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의 지름길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 과학적 사실과 검증으로 확인되고 합의된 결과이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 타당한 경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은 우리가 선택한 정부의 성격과 공동체의 준비 정도에 따라 결과는 매우 큰 격차를 보인다. 기후위기 해결책은 어떤 권력을 가진 특정인에게 헛되게 맡겨진 것이 아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날뛰고,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는 시절이다. 결국 기후위기의 해결책도 조직된 시민의 힘에 있다. 그 힘의 크기가 경로를 바로잡고 속도를 배가시키고 양도 결정할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에 대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관련 전문가·지역주민·현장 운동가들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환경성, 주민 수용성, 형평성 등의 관점에서 입법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 현재의 ‘전원개발촉진법’ 하에서도 결국 형식적인 주민 참여, 정보 비공개, 일방적인 의견 수렴, 현실과 괴리된 보상 방식 등으로 갈등은 커지고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본질을 외면한 채 전력망 건설 기간만 단축시키려는 법안이 현재의 상황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전력 산업과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 분산형 전력망, 전력 계통의 운영 기준과 운영 기술의 선진화, 에너지 저장장치 확대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도한 시절을 이겨내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밑그림을 그리는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그 시작은 장밋빛 청사진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보듬고 감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가장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이 나온다. 모래성처럼 파도에 휩쓸려 흔적 없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 장기간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 이겨낼 수 튼튼한 초석을 놓아야 한다. 이미 현실이 된 기후재난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5년 새해는 씨줄에 날줄이 걸리고 날줄에 씨줄이 걸리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묶고 서로에게 묶여 전체가 되고 방향이 되고 면적이 되기 바란다.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삶과 생존, 사회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도 만들어내며 문화도 일으키고 의식도 일깨우기를 바란다. 진정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 기본과 순환고리가 지켜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생로병사의 순환 속에서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감히 뭐라 위로하고 어떻게 아픔을 나눠야 하는지 가늠조차 힘든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목격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희망이 샘솟기를 바란다. 이런 한 해가 돼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F 학점도 아까운 F4 회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인 이른바 ‘F4 회의’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 문제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최상목 권한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과 국정 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F4 회의가 경제와 정치를 정상화하는데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 시장의 평가는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유행어에 담겨 있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령이 발동되기 훨씬 전부터 해외투자자들은 물론이고 국내투자자들이 F4 회의를 불신임했던 것이다. 재정적자는 2년 연속 증가했다. 2023년 87조원, 지난해에도 30조원의 적자가 발생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주택도시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을 동원했다. 원화와 외화를 합친 외평기금 잔액은 2023년 말 기준 274조원이었다. 국세 수입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이 기금에서 2023년에 19조원, 지난해에도 4조원와 6조원이 각각 사용됐다. 환율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외국환평형기금의 축소는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시장의 냉혹한 평가는 ‘셀 코리아(Sell Korea)’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7~11월 미중 반도체 전쟁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 주식이 많이 매도됐다. 12월 이후에는 비상계엄령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이 지난해 7월10일에서 올 1월7일 사이 약 190조원 줄었다. 그 결과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외국인 지분도 같은 기간 3.08% 하락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국인 투자자 속칭 ‘서학개미’의 해외 증권투자 증가다. 한국은행의 ‘2024년 3분기 국제투자대조표 잠정치’에 따르면 통계를 집계한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액(9천969억달러)이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액(9천575억달러)을 제쳤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자본 유출은 원화 평가절하로 이어졌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12월2일 이후 1천400원대를 지속하고 있다. 1990년 환율변동제를 도입한 이후 환율이 1천400원대를 3주 이상 지속했던 사례는 1997년 외환위기(1997년 12월9일~1998년 3월20일)와 2008년 금융위기(2008년 11월17일~12월9일)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상황은 금융위기 직전과 매우 유사하다. 이창용 총재의 주장과 반대로 현재 상황에서 F4 회의는 경제보다 정치를 더 고려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는 한 어떤 경제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속한 사법 처리만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재판 과정이 길어질수록 탄핵의 경제적 충격은 커질 것이다. 지금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함께하는 미래] AI, 증가상현실과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거품이 가라앉은 후 한동안 침체됐던 증가상현실 분야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구글과 삼성은 혼합현실 헤드셋 ‘프로젝트 무한’으로 약 10년 만에 XR 시장에 복귀했으며 메타는 혁신적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을 앞세운 스마트 글래스 ‘오라이온’을 지난해 9월 선보였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해 온 애플 역시 같은 해 5월 첫 증강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구글의 AI 시스템 ‘제미나이’는 프로젝트 무한을 통해 고도로 개인화된 인터랙티브 경험을 제공하며 메타의 AI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사물의 맥락을 파악해 영화 속 인공지능 비서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처럼 XR 헤드셋은 AI와의 결합을 통해 단순한 디지털 기기를 넘어 우리의 비서이자 지적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제 3차원으로 구현된 구글 맵 속의 공간을 실제로 탐험할 수 있으며 의사는 눈앞의 공간에 펼쳐진 환자 데이터를 AI와 함께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진료를 진행한다. 산업 현장의 작업자들은 증강현실(AR) 매뉴얼과 AI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조립 작업을 수행하며 해외 파트너들과는 언어 장벽 없이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협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모바일 휴대폰처럼 대중화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오라이온의 프로토타입 제작 비용은 현재 약 1천500만원에 달하며 향후 몇 년간 상용화 계획이 없다. 애플이 야심차게 출시한 비전 프로 역시 킬러 콘텐츠 부족 등의 이유로 초기 판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중요성은 단기간의 투자 회수보다는 미래의 파급력에 있다. AI와 공간 컴퓨팅이 결합된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해 인류 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래 사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메타는 수십조원 규모의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으며 다른 빅테크 기업 역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 또한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과 적극적인 가상현실(VR) 육성 정책 등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결집, 독자적인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주도권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는 모양새다. 많은 지자체와 단체들이 비전이나 기술적 이해 없이 메타버스의 유행에 너도나도 편승하더니 어느새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정부 지원 사업이나 투자에서 금기어처럼 취급되고 있다. 장기적 비전과 과학적 분석 없이 새로운 키워드 중심의 유행만 반복되는 관행이 낳은 결과다. 마크 저커버그는 XR를 ‘최후의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국경 없는 새로운 통합 영토인 것이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거시적 어젠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새로운 영토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할 자리는 그리 넓지 않을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동물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공생’

일본의 신칸센 고속열차, 비행기 엔진, 항공기 날개, 풍력 터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물총새다. 물총새는 물고기를 발견하면 재빠르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냥한다. 이때 사냥 성공의 핵심 도구는 뾰족한 부리다. 물의 저항을 크게 줄여 공격 속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인류는 물총새의 생체 특성을 연구해 빠르고 소음이 적은 고속열차를 만들었다. 또 이를 비행기와 풍력 터빈에도 응용했다. 자연에서 발견된 구조나 시스템을 모방해 기술적으로 응용하는 기술을 ‘생체모방과학’이라 한다.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예는 다음과 같다. 모기의 입 구조를 모방한 주사침은 환자의 통증을 줄여줬고 박쥐의 초음파 위치추적시스템은 자율주행차 개발에 영감을 줌과 동시에 드론에도 응용됐다. 도마뱀붙이의 발바닥 구조를 보고 강력 접착 테이프를 만들었으며 거미줄의 강도와 유연성을 모방한 합성섬유는 방탄복, 의료 봉합사, 심지어 로봇팔에도 사용되고 있다. 북극곰 털은 속이 비어 있는데 이를 모방해 효율적인 단열재를 개발하는가 하면 사막의 흰개미 둥지가 지닌 독특한 자연 환기 시스템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센터처럼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게 유지되는 친환경 빌딩이 설계됐다. 이처럼 식물과 동물에서 발견한 원리는 새로운 기술이 돼 우리 일상에 효율과 편리를 제공한다. 생체모방과학을 통해 실생활의 지혜를 얻었다면 인문학적 측면에서는 ‘공생(共生)’을 배울 수 있다. 공생이란 동물 또는 식물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 예로 개미는 포식자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진딧물은 개미에게 단물을 먹게 해준다. 말미잘과 흰동가리, 소와 반추위 미생물들도 비슷한 공생 관계에 있다.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 주기도 하고 늑대 우두머리는 어리거나 늙고 상처 입은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행위가 당장은 동물 집단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들어 생존을 유리하게 한다. 즉, 남을 위하는 행동이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의 결과로 이타주의를 언급했으며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호혜적 이타 행동이 개인 또는 유전자에 이익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이타주의는 겉으로는 타인을 위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1980년대 에티오피아 기근으로 수백만명이 굶주렸을 때 퀸 같은 당대 음악가들이 참여한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는 많은 돈을 모아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재해 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본다.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노력이 커 간다면 언젠가 내가 예기치 않은 일을 겪을 때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아프리카 사막화가 심해졌을 때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를 중심으로 그린벨트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는 아프리카에 수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사막화 지역이 줄어들었고 동물 서식지가 복원된 곳도 있었으며 지역주민들은 다시 농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 나갔다. 동물을 보호하고 모두의 환경을 걱정한 마음이 나와 내가 속한 사회에 작지 않은 선물로 돌아온 것이다. 공생은 나를 둘러싼 다른 생명체를 생각하는 이타주의에서 비롯된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이것이 인류가 지혜롭게 사는 길이자 자연과 동물에게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함께하는 미래] 불확실성을 넘어

폭염 지나 폭설로 시작된 가을 그리고 뒤늦은 겨울, 올해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살아가는 동안 그 낯섦과 익숙함에 적응해야 할 것 같은 걱정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가져올 위기와 그 재난의 크기와 여파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확실성이 짙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까닭이다. 당장 확인되지는 않지만 지구생태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에 다가올 미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요동치기를 감히 소원한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 확실해진 가운데 지난달 198개 당사국을 포함해 6만여명이 참석한 제2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총회는 전 세계 기후시민의 바람에는 턱없이 부족한 합의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언급한 대로 지구가 온난화 단계를 넘어 ‘끓어오르는 시대’가 확실시돼 2018년 파리협정에서 정한 1.5도 목표를 이탈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국가별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위 20개국 중 16번째 국가임에도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금지나 보조금의 폐지에 참여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일까.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의 작황 부진으로 주된 식품의 원재료인 밀가루와 팜유, 치즈를 비롯한 기후식품인 커피 원두 등의 가격이 상승했다. 세계식량 가격지수가 수직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위 ‘기후플레이션’이 심상치 않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에서 주요 먹거리 식품에 대한 물가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보장이 취약하고 빈부의 격차, 소득불평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취약계층의 삶은 더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은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역동성에 따라 커진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은 과거엔 자료의 부족, 주요 핵심 사안에 대한 이해 부족, 과학자들 간의 의견 불일치 등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에서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그런 진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경로 이행을 방기하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된 방법을 거부하는 것에서 커진다. 오스트레일리아연방 남호주는 2027년까지 총공급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법제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전 클로즈 부총리 겸 기후장관은 “에너지 전환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며 세계를 선도하는 기후법, 일관된 정책 그리고 지원적인 계획 시스템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처한 조건과 준비된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할 것인지는 다르지 않다. 12월,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인데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던 탓일까. 꼭 반듯하게 지켜온 것만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사회 전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개인과 사회의 정신적 충격과 마음의 상처는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그것만큼이나 응당 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곧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다. 모든 낡은 ‘이, 것, 곳’과의 결별과 함께 현재와 미래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열려 있기를 기대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누구나 에너지 생산과 이용에 주인이 되고, 괜찮은 일자리로 정의로운 전환으로 인한 고통이 최소화되는 따뜻한 공동체를 소망한다.

[함께하는 미래] ‘트럼프 리스크’, 새 안보팀이 대비해야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주도할 내각과 백악관의 윤곽이 구체화되면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경험이 부족하고 극단적 견해를 가진 측근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지시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이고 1기와도 다른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심각한 리스크는 관세 인상 위협이다. 이는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국 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회원국에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국경에서 마약과 이민자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으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즉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찾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마약 억제와 이민자 차단 방안을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도 확전에서 휴전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싸운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반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전쟁이 아니면 참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압박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수복 목표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조건으로 휴전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대중 정책 역시 바이든 행정부와 다를 것이다. 시급한 현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변국들과 협력해 중국을 포위하기보다는 시진핑 주석과 담판을 통해 양보를 받아내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P)를 취임 후 폐기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기도 전에 트럼프 리스크는 전 세계를 이미 강타하면서 경쟁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도 정책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밀월에 아직도 도취해 있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의 전쟁 참여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에서 합의한 한미일 협력 방안이 트럼프 시대에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내정된 트럼프 행정부 2기 안보팀의 관심사는 방위비 분담, 북한 핵 협상,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지위 등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안보팀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잘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캠프데이비드 협상에 참석했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사퇴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내년 1월 퇴임하기 때문에 3국 정상들의 인적 유대도 사라졌다. 이달 예정된 전면 개각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안보팀이 발탁되기를 기대한다.

[함께하는 미래] 예술·과학·산업의 융합이 만드는 미래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매년 9월 개최되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세계 최대의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로 예술과 과학, 산업의 융합을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혁신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BMW, HP 등 글로벌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하며 전 세계의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모여 상상력과 기술을 결합하고 현실 문제 해결과 사회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장이 되고 있다. 1979년 시작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중심에는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수행하는 ‘퓨처랩(Future Lab)’이 있다. 이 연구소는 지멘스와 협업해 의료 영상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버추얼 아나토미’, 와콤과 협업해 생체신호를 그래픽화하는 ‘라이프 잉크’, 도이치텔레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차세대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 기술 융합으로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맞춤형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기업 혁신을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며 기업과 예술, 과학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문화, 기술과 산업뿐 아니라 도시와 지역사회의 혁신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자신들의 노하우와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지역 연구개발(R&D)과 교육을 혁신하고 공장과 폐우체국을 창조 산업의 허브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등의 문화와 기술의 창의적 융합으로 낙후돼 가는 철강산업 도시였던 린츠는 디지털 아트와 혁신의 글로벌 허브로 변모하면서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 아트 창의도시로 지정돼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도시와 지역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 것이다. 린츠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사례는 기술혁명 시대의 경쟁력이 창의적 생태계 구축에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닌,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통해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혁신을 이끌어 내는 국가와 도시만이 미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전 세계 67개국, 1천260개의 프로젝트가 참가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출품작의 25%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었다. 증강현실과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는 지난 몇십년보다 기술과 예술과 산업과 사회의 변화가 더욱 밀접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이며 그것을 선도하는 새로운 씨앗들이 이곳에서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 문화의 유기적인 융합은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이며 다가오는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혁명 시대의 핵심 동력이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린츠시가 만들어낸 예술과 과학, 산업의 싱크탱크와 허브의 구축이 우리에게도 시급한 이유다.

[함께하는 미래] 믿음과 행복을 전하는 말(馬) 이야기

사막의 낙타, 남미 고지대의 라마는 약 4천년 전부터 사막과 고산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사람의 이동을 활성화하고 인류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보급해 주던 동물이다. 이와 달리 대평원을 달리는 데는 말(馬)만한 동물이 없었다. 말은 5천5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가축화됐고 이후 4천200년 전 서부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또다시 가축화돼 이동과 운송을 위해 인류와 길고 긴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최고속력 시속 60~70㎞, 하루 최대 이동거리 100㎞를 달리는 말이 인류사에 가져다 준 업적은 실로 눈부셨다. 특히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출발해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거대한 제국을 확장하는 원정에서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전투 도구였다. 이후 13세기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은 말을 이용해 유라시아 전역을 빠르게 정복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가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이 군사 전술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의 기병대, 고려의 기마무예, 조선의 파발제 같은 통신제도를 통한 말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19세기 유럽 이주민들이 북미에서 서부 개척지를 탐험하고 정착해 농장을 일구기까지 말은 미국의 개발과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말은 참호전 격전지에서 병참과 물자 수송을 담당했다고 하니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불과 100년 전까지 이동과 수송, 전쟁과 교통에 기여한 말의 헌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일 말이 없었다면 인류 사회는 느리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법하다. 왜 하필 말일까. 잘 달리는 동물에는 얼룩말이나 사슴도 있고 힘 좋은 동물에는 코끼리나 소를 따를 자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말이어야 했던 이유는 기동성과 지구력을 모두 갖춘 신체적 덕목이 선행됐겠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믿고 따르는 말 고유의 성격이 신뢰와 행복감을 전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말은 운송·통신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포츠, 레저, 관광 같은 새로운 일을 맡아 인간 사회에 남게 됐다. 특히 신체 균형을 바로잡고 마음 치유를 돕는 재활 승마는 자폐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말에게 의지해 더 나은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성취감과 도전정신을 북돋우고 심리적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되찾게 한다. 자유롭고 강인한 말은 신뢰의 아이콘이 돼 인류의 새 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속담에 ‘안정적인 친구를 원한다면 말을 길러라’는 말이 있다. 말이 얼마나 헌신적인 믿음과 안정을 주는 동물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윈스턴 처칠은 “훌륭한 말을 타고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것”이라 했다. 말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이 매우 큼을 의미한다. 경주마, 승용마, 조랑말, 은퇴마.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지금 하는 말의 역할이 쓸모없어진다 해도 미래의 말은 여전히 인류의 좋은 파트너로 새 역할을 찾아갈 것만 같다. 수천년간 쌓아온 깊은 역사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고마운 말이기에 우리 인류가 앞으로 말과 함께할 공존의 관계를 더 소중히 준비하고 가꿔 나갔으면 좋겠다.

[함께하는 미래] 기후시계탑 앞에서

지난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참가한 198개 당사국들은 기후재난의 최소화를 위해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 억제를 목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충하고 에너지 효율을 2배로 증대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를 회피하고 싶은지 아직도 ‘시곗바늘을 디지털로 할까, 아날로그로 할까’ 등 소모적인 논쟁을 주도하면서 그나마 남은 탄소 예산을 개인의 일탈처럼 소진하고 있다. 이미 일어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이 과학적으로 분명하고 해결 방안도 이미 기술적으로 일반화된 방법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또 전환의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부담도 현 세대보다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낡은 것과 얽힌 고리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국민의 시곗바늘과 정부와 국회의 시곗바늘이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국회 ‘국민동의청원’으로 모아진 ‘탈석탄법’ 제정을 원하는 시민의 바람은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하물며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탄소중립’이라는 용어마저 우리에게 인식되기도 전에 마치 연기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인데 선출된 공복이 오히려 지배하려는 모양새인지 최근에는 이마저 언급되는 것조차 꺼린다. 22대 국회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초기 화석연료 문명을 개척했던 유럽연합의 변신은 놀라운 정도다. 의회에서 지난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2030년까지 기존 32%에서 42.5%로 상향시켰고 45%까지 확대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세부적인 실행계획까지 법제화하는 것으로 전환의 시대에 부응하는 그들의 의지와 철학을 담았다. 하지만 우리는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가 법제화돼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혀 그런 의지가 읽히지 않는다. 온갖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짜집기하고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규 사업을 제시하기 바쁘다. 마치 거꾸로 가는 기후에너지 정책생산소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재생에너지를 생산·이용하는 누구에게나 나침반이 되도록 법제화가 우선이다. 특히 이달부터 2016년부터 시행되던 ‘1㎿ 이하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계통접속보장제도’가 폐지됐다. 지난 9월부터는 광주광역시, 전남·북, 강원도에서는 2032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가 불가능하게 됐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를 방기하고 그 부담을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위기시대 재생에너지의 생산과 이용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정부와 국회는 ‘재생에너지 계통연계 의무화’로 화답해야 한다. 곧 정부와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 심의가 이뤄진다. 정부의 정책 브리핑을 통해 홍보된 예산안 핵심 사업을 살펴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기후재난으로 우리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디지털로 돌아가는 국회 기후시계탑의 시곗바늘을 아날로그로 바꿔야 할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가 아니라 작동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함께하는 미래]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 1만명을 파견하면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제공을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의하고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면 우리는 러시아의 주적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지원이 우리나라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안보 정책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국가이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우리나라의 이익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없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핵무기 공격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대북 억지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루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 동맹국이 개입한 전쟁에 나머지 동맹국들이 자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휘말리게 되는 상황에서 이 위험은 더욱 커진다. 미국은 러시아와 직접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개전 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주장했듯이 미국은 이 전쟁이 러시아와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요구에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입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NATO 전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연루 위험은 대리전에 대한 우려와 연결돼 있다. 대리전은 분쟁의 당사국이 직접 충돌하지 않고 동맹국이나 관련국이 적대국과 싸우도록 만드는 전쟁을 의미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NATO를 대신해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보낸 공격용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군을 살상하는 데 사용되면 한반도의 긴장은 급속하게 고조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NATO와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북한과 무력으로 충돌하게 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정부는 NATO 회원국도 아니며 군사동맹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병력과 무기를 희생해야 할 명분과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공격용 무기 지원의 실질적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난 6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이후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견제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지원은 러-북 관계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는 물론이고 핵 및 미사일과 관련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정찰 및 항법위성, 대륙간탄도탄(ICBM) 재진입, 핵잠수함 건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을 전수받는다면 그동안 국제사회가 부과했던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중차대한 국가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이 문제들을 국회와 우선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초당적 합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정책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여야가 잘 논의해 안보 불안을 조속히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함께하는 미래] 행운•불운을 비추는 거울 ‘고양이’

고양이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이 동시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나 싶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뭇 개와 다르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다. 열 반려견 안 부러운 애교쟁이 ‘실내냥이’에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까지 사는 모양이 다양하다. 고양이는 1만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먼저 왔고 스스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든 이 현명함이 고양이가 지닌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다. 또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릇은 거울과도 같아 나와 남을 동시에 비춘다. 고양이의 조상,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가 됐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쥐로부터 식량 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양이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됐고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돼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다. 세월이 흘러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균열이 생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다.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고 오랜 기간 마녀사냥과 동시에 고양이 숙청이 자행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발생해 10년 동안 최소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세기까지 창궐했다.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되돌아온 부메랑은 처참했다.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다. 서로에게 식량을 줬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돼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됐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이 돼 비춰 주고 싶다고.

[함께하는 미래] AI 시대와 예술적 창의성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로봇’에서 주인공은 인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로봇에게 이렇게 묻는다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어? 로봇이 빈 캔버스를 아름다운 걸작으로 채울 수 있나?” 이에 로봇은 차갑게 반문한다. “그럼 너는 할 수 있어?” 이 대사는 생성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다시 쓰여져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제 AI는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영화와 문학작품까지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때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력과 상상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2024년의 로봇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나는 할 수 있는데 너는?” AI는 인간의 역할을 놀라운 속도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적으로 3억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자동화될 수 있으며 유럽과 북미에서는 약 25%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 중 하나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도구인 AI를 적극 활용해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이는 것이다. ‘AI가 예술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예술가가 그렇지 않은 예술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은 단순히 예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AI가 우리의 충직한 도구로만 남아 있기에는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챗GPT는 단 1년 만에 IQ 테스트에서 하위 2%에서 상위 37%로 급등했고 많은 전문가가 2년에서 10년 이내에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AGI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류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AI와의 경쟁이 아니라 AI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 있다. 가장 중요한 영역이 독창성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연결해 결과물을 생성하는 데 능숙하지만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고흐의 그림을 모방하거나 그의 스타일로 다른 이미지를 그릴 수는 있어도 고흐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독창적 작품을 창조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또 직관과 통찰력을 통해 데이터 이면의 미묘한 맥락과 감정을 포착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개념과 분야를 융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비선형적 사고와 감성지능과 융합 능력 역시 AI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위에서 언급한 독창성, 비선형적 사고, 공감 능력 등은 모두 예술적 감수성과 깊이 연결돼 있다. ‘아이로봇’에서 주인공은 AI에게 “인간은 꿈을 꿔. 하지만 너는 꿈을 꾸지 못해. 너는 그저 기계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AI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AI는 어떤 인간보다도 더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분석할 수 있지만 꿈을 꾸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틀 속에 무한한 상상력과 복합적인 감정을 담는 것, 이것이 AI가 다다를 수 없는 꿈과 예술의 영역이다. AI 시대를 대비해 많은 사람이 코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고 있는 분야 역시 코딩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프로그래머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랭귀지는 ‘자연어 (어휘 구사 능력)’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최첨단 기술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지금, 인문학과 예술 교육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돼야 하는 이유다.

[함께하는 미래] 美·中의 경기부양책, 우리도 실기하지 말아야

사사건건 대립하던 미국과 중국이 오랜만에 동일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정책금리를, 중국 런민은행은 지급준비율을 각각 대폭 인하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정책 전환은 양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침체를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18일 정책금리를 5.25~5.5%에서 4.75~5.0%로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용 둔화와 성장률 하락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2%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2022년 3월부터 10차례 연속 인상했다.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4.0%에서 4.4%로 증가, 성장률이 2.1%에서 2.0%로 하락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연준은 2년 반 만에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한 것이다. 중국의 정책 전환은 미국보다 더 포괄적이었다. 판궁성 런민은행장,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지난달 24일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통화정책 완화, 부동산 부양, 주가 상승 방안을 예고했다. 지급준비율은 대형은행 8.5%에서 8.0%, 중소형 6.5%에서 6.0%로 각각 인하됐다. 2주택 대출 계약금 비중을 25%에서 15%로 낮추고 기존 모기지 금리는 0.5% 인하했으며 지방 국유 기업들의 주택매입 대출 지원이 주택가격의 60%에서 100%로 확대됐다. 보험·증권회사 등에 주식 매입을 위한 5천억위안 규모의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자사주 매입을 위해 3천억위안 규모의 재대출 자금이 제공됐다. 지난달 26일 개최된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는 이러한 조치의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비판을 불식시켰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경제성장률 목표 5%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시에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5억위안(약 944억원) 규모의 외식, 숙박, 영화, 스포츠 소비쿠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자본시장은 이러한 부양책을 즉각 환영했다. 실제 지난 9월23~27일 홍콩 항셍지수는 13%, 상하이종합지수도 12.8% 각각 급등했다. 우리나라의 1, 2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기부양책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미국 정책금리 1%포인트 인하가 우리 수출을 0.6%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의 경기 회복도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무선통신기기의 수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다만 현재 당면한 우리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뿐만 아니라 내수 진작이 필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8월 수출 증가세는 분명하지만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회복은 지연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6%에서 2.5%로 낮췄다. 현 정부 들어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긴축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56조원, 올해 3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가지수가 상승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유지돼 장기 불황에 빠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이 요구된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조성한 우호적인 대외여건을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펠라그라의 단서를 준 반려동물 ‘개’

어느 날 얼굴과 팔 전체가 붉게 부어오른다. 놀라 몸을 훑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큰 병이다 싶어 밖을 나왔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피부가 울긋불긋하다. 누군가는 침울하고 누군가는 혼잣말을 한다. 우는 소리를 따라가니 유명을 달리한 자 옆에 가족이 애처롭게 있다. 갑자기 뒤바뀐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다. 1907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미국 남부는 옥수수 주 생산지이고 옥수수는 20세기 초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었다. ‘펠라그라(pellagra)’는 염증으로 피부염과 설사가 나타나고 치매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다가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1907년부터 1940년까지 사망자는 10만명으로 추산됐다. 당시 미국 공중보건의 조지프 골드버거 박사는 농업지역, 요양병원, 보육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보고 전염병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치인, 자본가, 의사, 교사의 발병 수준이 낮은 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펠라그라의 원인이 ‘비타민B3(니아신)’ 결핍임을 밝혀냈다. 부유층보다 고기, 우유, 채소를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서민들은 비타민B3 흡수율이 낮은 옥수수를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원인을 밝히면 해결될 것 같던 펠라그라의 장막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러나 골드버거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서민을 살릴 차선책으로 비타민B3가 풍부한 저가형 식품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개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당시 비타민B3 결핍 실험으로 개의 혀에 검은 점이 생기는 ‘흑설병(黑舌病)’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흑설병과 펠라그라의 유사성에 주목했고 이때 효모가 치료에 탁월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결국 연구진은 빵을 만드는 효모를 대량 보급했고 이런 조치는 펠라그라 치료와 예방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개는 펠라그라 종식의 숨은 공신이자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부터 서민 건강을 지켜낸 동반자였다. 반려동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자로는 짝 반(伴), 짝 려(侶)자를 쓰며 영어로는 동반자를 뜻하는 ‘companion animals’로 삶을 같이 살아가는 존재, 같이 숨 쉬고 걷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을 동반자라고 한다. 사람과 개가 공존한 역사는 오래됐다. 독일에서 발견된 1만4천년 전 개 화석은 함께한 시기를 가늠할 증거다. 최근 유전자 분석 연구에 의하면 사람과 개의 역사를 4만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냥으로 도움을 주던 동반자는 현재 집지킴이, 경호견, 경찰군견, 구조견, 도우미견, 반려견으로 탈바꿈하며 사람과의 공존을 이어가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개는 사람에게 스스로 다가와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다. 개의 특별한 역사를 가늠한다면 어쩌면 펠라그라 종식을 위한 도움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늘 그래왔듯 또다시 도왔을 뿐이다.

[함께하는 미래] ‘기후시민’으로 살아가기

기후위기가 일상화된 시기에 시민은 ‘1.5℃ 라이프스타일’ 계산기를 활용해 스스로 개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 보며 ‘기후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무엇을 실천할지를 고민하는데 정책 당국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누군가 세상을 구한다는, 아니 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파리협정과 함께 매년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경로를 이행하기보다는 아직도 그들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구조와 욕망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한 듯하다. 탐욕과 과잉으로 점철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와 화석연료에 의존해 기형적으로 파생된 탄소경제를 주도한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현재의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고착화시켰다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가 아닌 탄소경제라는 무기로 돌파구를 찾았고 더 많은 부와 잉여를 쌓기 위해 수탈과 분열을 앞세운 경쟁 체제로 공동체를 붕괴시키며 ‘생태 학살’을 통해 시공간적 제약이 있는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이후 세대는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까.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경제학(Doughnut economics)’을 통해 성장을 목표로 낡은 20세기 경제학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구 구성원으로서의 민주적 합의를 기초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며 인간이 살기 위한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방안을 주창했다. 도넛경제 모델은 탈(脫)탄소사회, 탈탄소경제, 탈탄소도시로의 국가와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과 함께 온실가스 문제를 기후시민의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당면한 위기를 더 빠르고 더 과감하게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임계점에 다다른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공동체의 한 사람, 기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유엔환경계획(UNEP)은 누리집을 통해 ‘기후위기와 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권고했다. 그 답은 매우 간단하며 명료하다. ‘목소리를 내라’, ‘정치적 압박을 가하라’, ‘교통수단을 바꿔라’, ‘전력사용량을 줄여라’, ‘식단을 바꿔라’, ‘지역에서 구매하고, 지속가능한 상품을 구매하라’, ‘음식물을 버리지 마라’, ‘기후에 맞춰 스마트하게 입어라’, ‘나무를 심어라’, ‘지구친화적 투자에 집중하라’다. 서로 간의 용기를 북돋우고 연대를 통해 지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우 20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자연과 에너지를 독점해 수만년 자연과 동화돼 형성한 인류의 모든 자산의 흔적을 흔들고 있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삶의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며 지구 생태적인 한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후시민으로서의 삶이 우리의 미래다. 기후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묻고 하나하나 바로잡는 것, 낡은 틀을 바꾸는 것, 모든 것의 삶을 존중하는 것, 현재 세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 기후가 아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함께하는 미래] 해리스 대 트럼프⋯ 중국의 선택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 공개적으로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반면 지난달 29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의중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이유는 미국의 역공을 피하기 위해서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4월 “미국의 대선은 미국의 내정”이라며 “중국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관여하지 않는 대신 미국도 선거를 목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의 국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느 후보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을까. 단기적으로 중국은 해리스 후보의 당선을 선호한다. 해리스 후보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중국은 정책 변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즉, 미중 관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 고위층과도 여러 차례 소통해 온 터라 새로운 인맥을 찾아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 홍콩,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의 인권 및 반도체 제재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했지만 기후변화 및 AI 안전 등에서는 중국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합의한 핫라인을 통해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보다 훨씬 더 강경한 대중 정책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 트럼프 후보는 대만해협, 남중국해, 반도체 제재 등에 대해서도 중국을 최대한 압박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협상 상대를 새로 찾는 일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동안 중국이 공들여온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트럼프 후보의 총애를 잃었다. 중국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은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이전에 트럼프 후보는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을 탈취했으며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분담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누가 당선되든 미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대중(對中) 정책에 관해 해리스와 트럼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두 후보 모두 중국을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다. 또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중국과의 교류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도 공유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보복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6월에는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25~10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양당의 대중 정책이 수렴하는 이유는 급증하는 반중(反中) 정서에 있다. 2018년 개시된 무역전쟁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유례없이 상승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 호감과 비호감의 차이가 4%에서 2024년 65%까지 벌어졌다. 이런 추세가 역전되지 않는 한 어느 후보도 미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이후 중국의 대미(對美) 정책의 목표는 관계 개선보다는 현상 유지로 하향될 것으로 보인다.

[함께하는 미래] 고대 인류와 동물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고개를 들면 이름 모를 화가들의 천장 벽화가 펼쳐진다. 거대한 사슴과 말, 들소가 금방이라도 아래로 달려들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그림은 놀랍게도 구석기인의 작품이다. 인류의 먼 조상은 예술작품을 통해 그들의 뛰어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구석기의 훌륭한 모습은 사냥과 관련된 생활사에서도 드러난다. 여러분이 원시시대로 돌아갔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에게는 두 길이 있다. 곡류와 과채류 위주의 채식만 하는 길과 채식과 육식을 같이 하는 길. 단,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을 직접 사냥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채식을 선택한다면 사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거나 과도한 에너지를 쏟을 일이 없고 생명을 죽여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러나 균형 잡힌 영양원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특히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직접 죽여야 한다면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은 삶과 죽음 앞에 평등한 생명체이므로 고대 부족의 사냥과 육식 과정에는 희생된 동물에 대한 경건하고 겸허한 의식이 수반됐다. 아메리카 대륙의 곰부족은 곰을 사냥하기 전 의식을 치렀다. 사냥에 성공하면 바로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쓰러진 곰에게 담뱃대를 물려주고 하늘을 바라보며 부족의 식량원이 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새끼는 절대로 죽이거나 데려오지 않았다. 고기는 남김없이 먹고 남은 뼈는 신성한 터에 고이 묻어 그 넋을 오래도록 기렸다. 원시 인류에게는 사람과 동물 중 누구나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사람의 위치를 동물과 평등하게 뒀다. 현대를 사는 우리 인류는 어떨까. 고기가 필요하면 마트에 가면 된다.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키우고 도축하고 유통한 고기에 대한 값을 지불하면 될 일이다. 여기에는 희생된 동물에 대한 경외나 미안함과 감사함이 없어도 된다. 고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야 했던 뜨거운 양심은 퇴화라도 한 것일까. 현 인류는 명실상부한 최상위 포식자이며 의식주의 범위를 넘어 인류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수많은 형태로 동물을 희생해 왔다. 그 결과 사람의 활동지역은 야생동물을 서식지로부터 내몰았고 사냥, 밀렵, 기후변화로 19세기 이후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은 공식적으로 국제자연보전연맹 추산 11만8천600여종에 달한다. 야생동물은 동물원에 전시되거나 실험으로 이용됐고 사람에게 길들여진 가축과 가장 가까이서 지내온 반려동물은 자연환경에서의 생존본능을 잃은 지 오래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할 일은 인류가 동물이라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어떤 관점으로 대해 왔는가 하는 일이다. 하등한 착취의 대상이었는가, 동등한 동반자였는가. 모든 관점은 이 범위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여져 있을 것이다.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 관념이 앞으로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공존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 후손들이 지구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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