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이탈리아 명품 주방 ‘스토사(Stosa Cucine)’는 60년 전통의 이탈리아 프리미엄 주방 가구 브랜드다. 지난 196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설립된 후 프리미엄 주방가구시장에서 독보적인 스토사는 100% 이탈리아에서 제작되는 제품들로 고급 소재와 장인 정신이 결합된 정교한 마감이 일품이다. 게다가 최신 디자인 트렌드와 사용자의 편의성을 반영한 설계로 유럽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감각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80개국 이상에서 사랑 받고 있는 스토사는 주방을 단순한 요리 공간이 아닌 가족과 소통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 내는 공간으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스토사의 국내 론칭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테리어 및 주방 리모델링 시장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국내 주거공간에서 주방이 단순한 요리 공간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며, 감각적인 디자인과 실용성을 겸비한 프리미엄 주방 가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테리어 전문가 A씨는 “최근 소비자들은 단순한 주방 가구를 넘어 디자인과 기능성이 조화된 하이엔드 제품을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스토사는 이탈리아 명품 주방 브랜드 중에서도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성비가 뛰어난 브랜드로 국내 시장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소비자 만족도 최상 스토사는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탁월한 품질과 서비스로 높은 평가를 받아 소비자 만족도가 최상급 브랜드로 평가 받고 있다. 주방 가구는 디자인, 내구성, 기능성 모두에서 소비자들의 기대를 뛰어 넘으며 높은 신뢰와 만족도를 자랑한다. 이탈리아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고급스러운 원목, 강화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천연 석재 등 프리미엄 소재 등을 사용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제공한다. 주방 가구는 유럽의 최고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한 아름다움과 품격을 제공하며 고급원목과 강화 유리 등 내구성이 뛰어나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 장기간 사용해도 변형 없이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또 세심한 디테일과 정밀한 마감이 특징이다. ■ 모던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소비자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던, 컨템포러리, 클래식 디자인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우선 모던&컴템포러리 라인으로 ‘인피니티’(미니멀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베스트셀러)와 ‘알리안트’(강화 유리와 알루미늄 마감을 활용한 세련된 디자인), ‘메트로폴리스’(현대적인 감각과 최적화된 수납시스템이 돋보이는 모델) 등이 있다. 클래식&네오클래식라인으로 ‘요크’(내추럴 원목을 사용한 따뜻한 감성의 주방)와 ‘뉴포트’(유럽과 미국의 클래식 주방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가 있고 각 모델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컬러와 마감 옵션을 제공하며 맞춤 제작이 가능해 나만의 개성 있는 주방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 각 모델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성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최신 기술을 반영한 스마트 주방 시스템을 적용, 편리하고 실용적인 주방 환경을 제공한다. ■ 최첨단 공장과 친환경 시스템 스토사는 첨단 기술과 정밀한 생산 공정을 통해 고품질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공장 규모는 매우 크고 혁신적인 제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우선, 공장은 약 17만㎡ 이상의 대규모 생산시설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주방 가구는 설계, 제작, 조립, 마감 등 모든 단계가 이뤄진다. 고급 소재를 효율적으로 가공하고 제품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최첨단 기계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 고도의 정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 개념을 도입해 자동화된 제조 공정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공장은 로봇 기술, 정밀 가공기술, 컴퓨터 제어 시스템 등을 활용해 정확하고 일관된 품질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며, 고객 맞춤형 주방 가구도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 ISO 9001 품질 관리 시스템과 환경 관리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제품의 품질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철저히 관리하며, 모든 제품이 엄격한 품질 테스트를 거쳐 출하된다. 특히 세부적인 품질 검사가 이뤄져 제품이 시장에 나가기 전에 고객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지 확인한다. 지속 가능한 자원을 활용한 환경 친화적인 제조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공장에서 사용되는 재활용 가능한 소재와 저 VOC(유해 화학물질 배출 최소화) 마감재는 환경을 고려한 스토사의 철학을 반영한 사례다. 공장은 직원 수백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시설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디자인, 엔지니어링, 생산, 품질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인프라와 인력 모두 우수,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산을 통해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한다. ■ 환경 & 지속 가능 주방 가구 스토사는 지속 가능한 제조 공정을 통해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FSC 인증(친환경적으로 조달된 목재 사용), CARB P2 마감재 사용(유해 물질 방출을 최소화, 건강한 실내 공기 유지) , 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위한 친환경 가구 제작) 등의 노력으로 글로벌 친환경 인증을 획득하며 유럽시장은 물론 세계적으로 환경보호를 고려한 고급 주방 가구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셀트리온은 골 질환 치료제 프롤리아·엑스지바의 바이오시밀러 스토보클로·오센벨트가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품목허가를 얻었다고 4일 밝혔다. 셀트리온은 전 세계 골다공증 환자 479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해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유효성 동등성과 약력학적 유사성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두 제품에 대한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그 결과 스토보클로는 폐경 후 여성 골다공증, 오센벨트는 골전이 암환자의 골격계 합병증 예방 및 골거대세포증 등 각각 오리지널 의약품이 미국에서 보유한 모든 적응증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오리지널 의약품인 프롤리아와 엑스지바는 지난 2024년 합산 매출액 65억9천9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67%인 43억9천200만달러를 기록했다. 셀트리온은 오리지널 의약품 개발사와 특허 합의를 마치고 빠르면 오는 2025년 미국에서 두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남은 후속 파이프라인의 허가 절차를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며 “허가 받은 제품이 시장에 빠르게 자리 잡아 매출 증가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NXT)’의 출범으로 70년 가까이 이어진 한국거래소(KRX)의 독점 체제가 해소됐다. 특히 주식 거래 시간이 12시간으로 대폭 늘어나는 등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와 편익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넥스트레이드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금투센터)에서 개장식을 열었다. 넥스트레이드는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ATS다. 넥스트레이드 출범에 따라 거래 시간이 대폭 늘어난다. 주식 거래 시간은 기존 정규 시장(오전 9시~오후 3시30분) 전후로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오전 8시~8시50분)과 애프터마켓(오후 3시30분~8시)이 추가된 12시간(오전 8시~오후 8시)이다. 또 최우선 매도·매수 호가의 평균 가격으로 거래하는 ‘중간가 호가’와 시장가가 특정 수준에 도달하면 미리 지정한 가격으로 주문을 내는 ‘스톱지정가 호가’가 추가돼 투자 전략이 다변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식거래 시장의 복수·경쟁 체제 전환으로 거래 비용 부담도 완화된다. 넥스트레이드는 한국거래소 대비 20~40% 낮은 수수료를 적용하고 특히 지정가 주문인 ‘메이커’ 거래에는 더 낮은 수수료를 부과해 투자자 부담을 줄인다. 넥스트레이드는 한국거래소와 동일한 시장 관리·감독 기준을 적용받는다. 결제는 거래일로부터 이틀 후(T+2) 이뤄지며, 증권사의 ‘최선 집행 의무’도 동일하다. 다만 공매도는 정규 시장에서만 가능하며, 유동성이 낮은 프리·애프터 마켓에서는 금지된다. 지난해 합산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증권사들이 이날부터 참여하며, 거래 종목은 10개를 시작으로 한 달 뒤 800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를 밟는다. 서울회생법원은 4일 오전 홈플러스가 신청한 기업회생절차에 대해 개시 결정을 내리고 별도의 관리인 선임 없이 현재 홈플러스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의 사업성과 경쟁력 등 핀더멜탈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신속한 회생 절차를 개시해 조기에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원의 회생 절차 개시 결정에 따라 홈플러스의 금융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협력업체와 일반 상거래 채무는 전액 변제된다. 모든 상거래는 정상적으로 지급 결제가 이뤄지며, 임직원 급여도 정상 지급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법원의 신속한 결정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홈플러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임직원과 주주 모두가 합심해 최대한 빨리 회생절차를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신청… “자금 이슈 선제 대응”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4580017
국내 대형마트 3사 중 한 곳인 홈플러스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4일 오전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자금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이익 창출력의 약화 ▲현금 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 부담 ▲중장기 사업 경쟁력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 등을 이유로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렸다. 홈플러스는 2022년 2월 끝나는 회계연도부터 지난해 2월까지 3년 연속 1천억~2천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보였다. 지난해 11월까지 3분기 가결산 기준 적자도 1천571억원을 기록했다. 총차입금은 5조4천620억원이며, 부채비율은 1천408%에 달했다. 리스 부채를 제외하고 운영자금 차입을 포함한 실제 금융부채는 지난 1월 말 기준 2조원 수준이다. 부채비율은 462%로 전년 대비 1천506% 개선됐다. 홈플러스는 신용등급이 낮아져 향후 단기자금 측면에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단기자금 상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금일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며 이번 회생절차 신청이 사전예방적 차원임을 강조했다. 다만 이날 회사의 회생절차 신청 소식은 오전 중 직원들에게 통보된 것으로 확인되며 내부 반발과 논란이 일고 있다. 직원은 약 2만명이며, 점포는 126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신용등급이 하락함에 따라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자금 이슈를 예방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현재 온오프라인 영업점에서 정상적으로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회생절차 개시 명령이 바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회생절차를 공식화한 이날 오전 직원들에게 공지됐지만, 소통은 충분히 이뤄졌다”고 말했다.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D-1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며, 233명의 경기인천지역 후보자들이 마지막 유권자 마음 잡기에 나선다. 3일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5일 치러질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의 선거 운동 기간이 4일 종료된다. 이에 앞서 지난달 18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후보자 등록 기간에 전국 1천102개 금고에서 1천542명이 입후보했다. 경기도에서는 94개 금고에 149명이, 인천에선 49개 금고에 84명이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경기인천지역 143개 금고 중 71개 금고(경기 51개·인천 20개)는 후보자가 1명이어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다. 경기인천지역 233명의 후보자는 후보자 등록 종료 다음 날인 20일부터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전화 ▲문자메시지 ▲정보통신망 ▲명함 배부 및 지지 호소 ▲공보·벽보 게시 ▲어깨띠·소품 사용 ▲정책 발표 등을 통한 선거 운동은 오늘까지 가능하다.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는 MG새마을금고 창립 이래 최초로 시행되는 이사장 직선제다. 당초 MG새마을금고중앙회 이사장 선거를 자체적으로 시행했지만, 금품 제공 등 부정 비리 이슈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자 국회는 지난 2021년 새마을금고법을 개정, 선거의 운영과 감독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며 자산 규모에 따른 직·간선제 투표를 진행하도록 했다. 이에 이번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에서 자산규모가 2천억원 이상인 금고는 직선제로 이사장을 선출한다. 2천억원 미만인 금고는 총회나 대의원회에서 간접선거를 진행한다. 이번 이사장 선거를 실시하는 경기도 94개 금고 중 84개 금고가 직선제로 선거를 진행한다. 인천은 49개 금고 가운데 21개 금고에서 직선제 방식으로 이사장을 선출한다. 나머지 경기 10개 금고, 인천 28개 금고는 간선 방식 중 대의원회 투표로 이사장을 뽑는다. MG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는 “한 달 반여의 선거 기간 동안 많은 후보자의 진심이 유권자에게 전달됐길 바란다”면서 “중앙회도 선거 종료 시점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2. 경기도·인천 경제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2025년, 경기도와 인천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두 지역의 발자취는 소상공인의 눈물과 땀, 기업의 노력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대한민국 경제 역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작지만 고귀한 요소인 ‘사람’에서부터 그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복 이후 80년간 경기, 인천의 산업화 과정과 경제적 변화를 경제 통계와 지표를 통해 짚어봤다. ■ 수도권 경제를 움직인 거대한 흐름 ‘인구 이동’ 광복 이후 경기도와 인천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인구 이동’이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기록에 따르면 1949년 전국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 경기도 인구는 275만594명(13.6%)으로 집계됐다. 당시 경기도 행정구역에는 현재의 서울과 인천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인구는 5천121만7천221명이며, 이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인구는 2천604만 7천523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50.9%에 달한다. 전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천369만4천685명의 경기도 인구와 302만1천10명 인천 인구의 합은 1천671만5천695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32.6%를 차지한다. 수도권 인구 증가는 단순한 팽창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는 원동력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경기도는 서울과 맞닿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IT산업의 중심지로, 인천은 항만과 물류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더 많은 경제활동을 유발해 수도권 전체를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로 변화시켰고, 오늘날까지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 산업화와 공업 발전, 그리고 분리된 길: 경인 경제, 시대의 흐름을 타다 대한민국 경제가 기틀을 다지던 시기, 경기도와 인천은 빠르게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산업화의 출발점이자 경인 지역 경제의 토대가 형성된 1940년대 경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를 살펴봤다.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경기도에서는 다양한 업종의 공장이 활발히 가동됐다. 특히 ▲식품(45개) ▲화학(44개) ▲기계(30개) ▲섬유(20개) ▲요업(17개) ▲광업(17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 활동이 이어졌다. 이는 미군정 시기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 재산을 불하받아 운영된 공장들로,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도 경기도 산업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천 역시 산업화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1946년 3월 인천에서는 168개의 공장이 운영됐고 불과 3개월 후인 6월, 242개로 급증했다. 이는 인천이 빠르게 산업 중심지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천은 일본 식민지 시절 귀속된 공장들이 대거 분포했던 지역으로 당시 귀속 공장 201개 중 135개가 집중된 지역이었다. 1949년 ‘인천부(仁川府)’에서 공식적으로 ‘인천시’로 승격될 때까지도 인천은 경기도 산업의 핵심을 담당했다. 산업의 기틀을 다진 경기도와 인천에선 시대별 산업 변화를 눈여겨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경기도에서는 음·식료품, 섬유·의복 등 소비재 산업이 주를 이뤘으나,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바탕으로 기계 및 장비, 고무·화학·석유·석탄 등 중화학공업이 급성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한국 최대 규모의 경인공업지대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주요 대상 지역이 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이 시기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제품 수출 비중은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급증했다. 1981년, 인천이 경기도에서 완전히 분리돼 독립된 광역시로 재탄생했고, 경기도와 인천의 주요한 산업에도 변화가 일었다. 1980년대 이후 경기도는 IT,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성장하며 산업 구조가 고도화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평택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이 발전하고, 판교·광교테크노밸리 등 첨단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경기도 4차 산업의 특화도와 동태를 분석한 GRI연구논총에 따르면 경기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에서 ICT 제조업종의 비중은 2002년 24.3%에서 2012년 39.6%로 상승했다. 인천은 2000년대 이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을 발전시켰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인천항은 지난 2022년 컨테이너 물동량 335만 TEU를 처리했으며 2023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국제 화물 운송 실적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국제 비즈니스, 첨단 산업, 관광 레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지역 경제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 시장과 소상공인 시장과 소상공인의 변화는 단순한 상업 흐름을 넘어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시대별로 시장의 형태와 소상공인의 업종이 달라지며 경기도와 인천 경제의 구조도 함께 변화해 왔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에 따르면 1954년 경기도에는 111개의 시장이 운영됐다. 축산물과 농산물이 주된 거래 품목이었으며,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중심지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상설시장이 증가하고 수원과 인천 등지에 중앙도매시장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경기도의 상점 수가 2만851개로 집계됐으며, 이 중 법인 사업체는 330개였다. 농산물과 식료품 중심이던 시장은 점차 의류, 의약품, 건축자재 등 다양한 품목을 거래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에는 전통시장 수가 165개로 늘었고, 이 중 70개가 상설시장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슈퍼체인’(대형 마트 체인)이 등장하면서, 유통 구조도 커지는 흐름을 보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집계한 지난해 7월 기준 전통시장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150개의 전통시장과 2만3천40개의 점포, 인천에는 44개의 인증된 전통시장과 1만1천504개의 점포가 있다 ■ GRDP로 본 대한민국 경제 중심지 경기·인천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는 광복 이후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1940년대 후반, 공식적인 경제 통계가 부족했던 시기에도 연구자들은 간접추계를 통해 당시 경제 규모를 분석했다. 표학길·이근희의 ‘한국의 지역별 국내총생산(RGDP)의 간접추계’ 연구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84년까지 경기도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29%에서 51% 사이의 부가가치 비중을 기록하며 산업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부터는 현대적인 지역내총생산(GRDP) 개념이 도입되며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 규모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집계가 시작된 1985년 기준 경기도의 GRDP는 약 13조원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이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며 2014년에는 GRDP가 약 352조를 달성, 약 350조였던 서울의 GRDP를 초과하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실질 경제성장률이 서울의 3배에 달하는 성과를 기록하며 수도권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탈서울 현상, 신도시 개발, 교통망 확충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진됐다. 2023년 기준 경기도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35.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56.0%에 달하면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고 있다. 인천의 성장 속도도 눈에 띈다. 1985년 인천의 GRDP는 3조2천억원으로 전국 8위를 기록했다. 2017년 GRDP는 88조5천억원으로 특별·광역시 중 서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인천 역시 2023년 제조업 비중이 27.7%를 차지하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62.1%로 증가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문미성 경기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와 산업이 집적된 경인 지역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핵심 지역으로서 시대별 성장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과 교통 인프라를 제공하며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를 이끌었다”며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미래 성장을 주도하는 선도 지역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43
잿빛 폐허 위에서 희망을 설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광복과 전쟁의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과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일궈낸 이들. 우리는 그들을 ‘지역경제의 개척자’라 부르기로 했다. 1950년 삼백산업(三白産業)과 광공업의 불씨를 댕기고 중화학 공업과 IT·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세계 시장에 진출한 기업부터, 지역 주민과 호흡하며 삶의 애환을 나눈 소상공인의 이야기까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 경제의 개척자들을 조명해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그려본다. 편집자주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1. 불모지서 ‘기회의 땅’으로 “대한 독립 만세!” 1945년 8월15일. 억압의 어둠을 뚫고 두 손이 하늘을 갈랐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희망의 불씨가 뜨거운 태양 아래 솟구쳤다. 3·1운동으로 시작된 외침은 8월의 환희로 타오르고, 광복의 깃발이 억센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그날, 광장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함성을 품은 사람들은 무너진 폐허 위로 다시 일어섰다. 고난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새로운 역사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적은 경기도를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경제 심장부로 만들고, 인천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우뚝 세웠다. 대한민국 경제의 태동을 알리고 중심을 지켜온 지역 경제. 그 안에는 광복 전후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기업들이 숨 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40년대부터 지역 곳곳에서는 산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안양의 노루페인트는 광복과 함께 건설·산업 현장에 색을 입히며 성장했고, 삼성제약은 1950년대 국민 건강을 책임지며 국내 제약 산업을 선도했다. 1951년 인천의 공성운수와 이천 애경개발은 교통과 생활용품 산업을 기반으로 도시 재건의 초석을 다지며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한제분은 1952년부터 한국 밀가루 산업을 재건하며 국민 식생활을 책임지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대한전선과 가온전선은 전력과 통신망 구축을 주도하며 경제 회복의 기틀을 다졌다. 팍팍한 삶 속에서 꿋꿋이 희망을 노래한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도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오산 할머니집 설렁탕은 광복 전부터 지금까지 설렁탕 한 그릇으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왔다. 1945년, 의정부의 부흥국수는 피란민들이 모여드는 시장 한편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으로 자리를 잡으며 오늘날 국수 공장을 세우는 역사를 만들었다. 같은 해 문을 연 인천 영제한의원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침술을 이어왔고, 수원 만빈원은 1950년부터 짜장면 한 그릇에 고향의 맛을 담아내며 지역 경제의 뿌리를 지켜왔다. 이들은 단순 사업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역사의 증인이다. 1941년 설립돼 국내 전선 산업의 포문을 연 ‘대한전선’ 관계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헌신해 온 모든 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앞으로도 경기도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2025년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울림으로 남아있는 1945년 8월15일 그날의 함성. 그 80년의 역사 속 경기도와 인천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하며 성장의 발판이 된 기업들과 소상공인을 만나 이들의 역사와 시대상을 조명해 본다. ■ 광복 이후 ‘대한’의 이름으로…대한민국 불 밝힌 대한전선의 태동 대한민국 ‘빛’의 역사를 되짚어가면 국내 전선 산업의 시작을 알린 대한전선이 있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조선전선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조선전선’은 일본이 물러나며 대한민국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故 설경동 회장은 이를 불하받아 경기도 안양에 자랑스러운 ‘대한’의 이름을 내걸고 대한전선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한전선 초대 회장인 설경동 회장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업가였다. 설경동 회장이 1936년 세운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는 연 1천만원(현재 가치 1조원)에 달하는 동해안 정어리어업 및 가공 산업을 주산업으로 삼았다. 1945년에는 선단 70여척을 보유하면서 그 규모를 더욱 키워 나갔다. 그러나 설 회장은 광복 당시 친일파로 몰려 공산당에 재산을 몰수당했고, 남은 어선 몇 척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수산과 무역회사 대한산업을 설립했다. 당초 사업에 소질을 보였던 설 회장은 회사를 굳건히 성장시켰고, 수원의 성냥공장까지 인수하며 한국전쟁 전 성냥업계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전쟁과 함께 설 회장의 전 재산은 먼지가 돼 사라졌다. 그러나 설 회장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 대한방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 1954년에는 대동증권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설 회장은 일본의 잔재였던 조선전선을 불하받아 이듬해 대한전선으로 재창업했다. 굴곡진 설 회장의 인생처럼 주인을 찾지 못하고 내팽개쳐 있던 과거 조선전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전선으로 대한민국을 밝히기 시작했다. 대한전선은 ‘조선’이라는 사명(社名)을 벗고 ‘대한’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전무했던 전선 산업의 시초가 되는 등 여러 의미의 개척을 일궈냈다. ■ 어둠 속 한 줄기 빛…광복과 함께 전선 산업 선도한 ‘대한전선’ 광복 이후 1955년 조선전선은 현재의 사명인 대한전선으로 사명을 변경,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1957년 PVC 피복 전선을 생산했으며 1959년 국내 최초 용동 압연기 설치, 1961년 국내 최초 연피통신케이블 생산 등 ‘최초’의 기록을 세워나갔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에 들어서며 대한전선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1960년 초반 국가 주도의 인프라 구축 사업 등 수많은 현장에 전선을 공급했으며, 1964년 국내 최초로 전선을 해외에 공급하며 대한전선이라는 사명과 대한민국을 알리는 국위선양을 이뤄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8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대한전선은 당시 재계 5위까지 성장했다. 대한전선은 1969년 텔레비전을, 이듬해인 1970년에는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산업 발전의 고도화가 진행된 1970년대 후반, 대한전선은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초고압 OF 케이블 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초 광섬유를 개발하면서 전선 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국내외 전력 및 통신망 구축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전선은 1980년대에 ‘제2의 창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국내 전선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본격적인 기술 연구 및 생산을 위해 기술연구소와 안양 광통신케이블 공장을 설립, 해저용 광케이블과 누설 동축케이블, 국내 최초 Kraft 절연 345kV OF 케이블 등을 개발해 냈다. 대한전선은 기술력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하며 경기지역의 제조업에 한 획을 그었다. 수출 등 세계 무대로 영역을 확장한 대한전선은 1997년 제34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 해외에서 대한전선의 위상을 증명해 보였다. 세계 10대 종합 케이블 기업으로 성장한 대한전선은 자동화, 4차산업의 등장 등 전 산업에 변화의 파동이 일었던 2010년대에도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내공으로 흔들림 없는 성장세를 이어 나갔다. 지난 2011년 대한전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당진공장을 준공했으며 2023년 국내 최초로 525kV 전압형 XLPE HVDC 케이블 국제 인증을 받았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대한전선은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비전과 경영이념, 중장기 전략 등을 수립해 도약과 전진을 이뤄 나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을 채워 나간 대한전선은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과 세계 최고의 케이블&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 하에 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음도 치료합니다…1945년 의료 산업의 포문을 연 ‘영제한의원’ 경기인천지역의 경제를 이끌어 온 ‘지역경제의 개척자’는 기업뿐만이 아니다. 빽빽한 보도블록 틈에서도 푸릇한 새싹이 고개를 내밀 듯, 척박했던 광복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지역 경제를 성장시킨 소상공인도 주역이다. 현재는 구도심이 돼 버린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자리하고 있는 영제한의원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광복 이전 문을 연 영제한의원은 길 영(永), 구할 제(濟), 생명을 영원히 구한다는 염원을 담아 이름 붙여졌다. 이는 한의학의 핵심인 ‘구제창생(救濟蒼生)’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염원을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인간적이며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영제한의원 경영 방침이자 역사의 시작이다. 영제한의원은 노학영 초대 원장, 노두식 2대 원장, 노승조 3대 원장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대째 지역 주민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주치병원으로 자리 잡기까지 여러 시대적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창업주인 노학영 1대 원장은 대한민국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노학영 원장은 1940년대 초 인천 도원동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복숭아밭이 많아 ‘도산정(桃山町)’이라고 불렸던 도원동은 일제강점기 병참기지화로 노동자들이 살 집이 부족해지자 인천부 즉, 지방관청이 직접 집을 지어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난을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이 대거 도원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영제한의원을 찾는 일본인 환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길고 긴 일본의 통치가 끝난 1945년, 노학영 원장은 광복을 기념하며 1945년을 개원 원년으로 삼고 지금의 위치인 숭의동에 터를 잡았다. 노학영 원장은 ‘동의보감’, ‘변증기문’, ‘방약합편’ 등 한의학 처방 서적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일일이 옮겨 적거나 목판, 금속활자로 찍어내 의술을 연구했으며, 노 원장의 영제한의원은 광복의 감동과 함께 활짝 문을 열고 지역민과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됐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로의 모습을 갖춰가던 꽃 같은 시절이 지속될 줄 알았지만, 불과 5년 뒤 6·25전쟁이 발발하며 세상은 암흑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그 일대를 뒤로 한 채 무의도로 피난을 가게 됐고, 인고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영제한의원은 흔적도 찾기 어려울 수준으로 폐허가 돼 버린 상태였다. 절망만이 남아있던 노학영 원장은 영제한의원이 지역민의 웃음꽃이 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재건에 힘을 쏟았다. 노 원장은 전쟁 잔해를 정리하며 수천 번의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항상 그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응원해 준 주변 상인들과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숭의동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1978년 아버지인 노학영 원장으로부터 병원을 물려받은 노두식 2대 원장은 아버지 노학영 원장과 한의원이 80년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역에 대한 ‘애정’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두식 원장은 “아버지인 노학영 초대 원장에 이어 47년 동안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병을 잘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서 “‘영제’라는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힘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지역민과 함께하고, 지역 경제 역사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38
지난해 출생아 수가 늘어나는 반전이 나타났지만 지속되는 인구 감소 추세를 막지는 못했다. 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인구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는 12만명 자연감소했다. 출생아 수가 23만8천명으로 전년보다 8천명 증가했으나 사망자 수(35만8천명)가 여전히 출생아 수를 웃돌았다. 이 때문에 인구는 2020년 첫 자연감소 후 5년 연속 줄었다. 자연감소 폭은 2020년 -3만3천명에서 2021년 -5만7천명으로 늘어난 뒤 2022년 -12만4천명대 부터 지난해까지 3년째 -12만명대를 기록했으며 최근 5년간 인구 감소 누계는 45만6천명으로 집계됐다. 출생아 수 감소세도 이어지고 있다. 출생아 수는 1990∼1994년 352만7천명에서 2000∼2004년(266만9천명) 200만명대로 내려왔으며 이후 2005∼2014년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감소세는 2015∼2019년부터 가팔라져183만2천명을 찍고 2020∼2024년에는 125만명까지 줄었다. 출생 근간이 되는 결혼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2만2천건으로 2019년(23만9천건) 이후 가장 많았지만, 최근 5년간 누적으로는 역대 최소 수준으로 집계됐다. 일시적 출산율 반등에도 장기적인 인구 감소 추세는 계속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인구는 중위 추계 기준 2022년 5천167만명에서 2030년 5천131만명으로 줄어든 뒤 2072년에는 1977년 수준인 3천622만명까지 축소될 전망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의 경우 2072년에 절반 수준인 47.7%까지 커진다.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한 저위 추계에서 2072년 인구는 3천17만명까지 줄어드는 데, 이는 1967년의 인구 수준이다.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D-3 금고 클로즈업 完. 성남중부·안양동부새마을금고 다음 주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경기인천지역 233명의 후보자는 마지막 표심 잡기 대결이 한창이다. 이중 성남중부새마을금고와 안양동부새마을금고에는 각 2명의 동갑내기 후보자가 등록해 선거 열기를 더하고 있다. 성남중부새마을금고는 지난 1976년 설립됐다. 2000년 제1대 임원 취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역 금고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지점 개점을 통해 지역 조합원들과 더욱 가까이에서 풀뿌리 금융을 실현했다. 성남중부금고는 2020년 자산 1조원을 달성한 뒤 불과 2년 만인 지난 2022년 말 1조5천억원의 자산 성과를 기록했다. 현재 성남중부금고는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7개(수진1·태평1·태평3·분당구미·판교백현·위례광장·야탑) 지점을 관할하고 있다. 성남중부새마을금고에는 2명의 후보가 등록을 마쳤다. 이명구, 임대성 후보자는 1961년 동갑내기이며, 두 후보자 모두 성남중부새마을금고에서 전무를 지낸 바 있다. 동갑내기 후보자가 이사장직에 도전한 또 다른 경기지역 금고는 안양동부새마을금고다. 안양동부새마을금고 역시 지난 1976년 창립했다. 경쟁력을 갖춘 수익사업에 집중해 온 안양동부금고는 지난 2021년 말 3천232억원의 자산을 달성했다. 안양동부금고는 안양 동안구 관양동 소재 주사무소인 본점과 3개(래미안·임곡·동편) 지점으로 조직돼 있다. 안양동부새마을금고에 등록한 2명의 이사장 후보자는 김병윤, 이학재 후보자로, 두 후보자 모두 1968년생이다. 김병윤 후보자는 현재 안양동부금고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이학재 후보자는 안양동부금고에서 부이사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MG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는 “다음 주 예정된 선거에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중앙회도 선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