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2-③

광장을 가로질러 아바나의 명물 오비스포 거리로 들어선다. 조금 전과는 너무나 다른 아바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어디선가 귀에 익은 라 팔로마가 들린다.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줄지어 선 레스토랑을 보며 마요르 광장 쪽으로 내려간다. 라틴재즈 연주 소리가 요란한 레스토랑 Europa 앞에서 가던 걸음을 멈춘다. 종업원의 안내로 앞자리에 앉아 쿠바 맥주 크리스털을 곁들여 음식을 주문한다. 댄서가 큄바라(Quimbara)라는 곡에 맞춰 현란한 살사 춤사위를 펼친다. 경쾌한 타악기의 활기찬 선율과 리듬의 반복을 강조한 이 음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춰 대표적인 살사 춤곡이다. 손님 모두 식사는 뒷전이고 정열적인 댄싱에 눈을 떼지 못한다. 댄서의 동작 하나하나에 짜릿한 전율을 느낀 옆자리 유럽 사람들은 리듬에 따라 어깨를 들썩인다. 두 남녀는 춤추는 동안 뜨겁게 서로 얼굴만 바라본다. 눈에는 이글거리는 사랑의 불꽃이 튄다. 이들처럼 쿠바인의 몸에는 들끓는 피가 흐른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자연스레 춤과 음악을 만날 수 있고, 올드 아바나 지역 어디서나 쉽게 거리 예술가를 만날 수도 있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오비스포 거리의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라틴 재즈 연주자싱어살사 댄서를 위한 크고 작은 공연 무대가 있다. 이처럼 쿠바인들의 춤과 음악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큄바라의 리듬과 살사의 잔잔한 파동을 가지고 헤밍웨이가 머물렀다는 아보스 문도스 호텔을 지나 아르마스 광장으로 간다. 좁은 거리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스쳐 간다. 광장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깃발을 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하다. 이처럼 여행은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접하면서 감동하고 체험함으로써 생동감을 충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카사로 돌아가는 길에 Cafe Paris에서 라틴 재즈를 연주하는 아프로 쿠반(Afro Cuban) 밴드를 만난다.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의 고전적 리듬과 재즈가 조화롭게 만나 즉흥 연주의 기교를 혼합한 형태인 라틴 재즈는 스페인 전통 음악과 아프리카 타악기와 춤이 혼합되어 쿠바 음악의 새로운 기원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 밴드는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쿠바 전통악기 마라카스(maracas)와 여러 종류의 타악기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연주를 듣다 보면 절로 흥겨워질 수밖에 없는 마력이 리듬에 숨겨져 있다. 아프로 쿠반의 라틴 재즈는 그들의 영혼이 담겨 있다. 쿠바를 사랑한 미국 작가 헤밍웨이도 아바나 오비스포 거리에 머물 때, 매일 저녁 라틴 재즈 밴드 연주를 들으며 다이키리나 모히토 같은 럼 칵테일을 마시고 술과 음악에 취했다. 아프로 쿠반 밴드의 경쾌한 타악기 리듬은 쿠바인들의 자유를 향한 외침이다. 과거 식민 시절에는 침략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었고, 지금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한 외침이다. 라틴 재즈처럼 쿠바인들은 언제나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욕망, 개방을 추구하면서 사회를 스스로 변화시킨다. 박태수 수필가

[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1-②

오늘은 구시가지를 걸어서 둘러본다. 숙소를 나서 먼저 아바나의 상징인 카피톨리오 광장으로 간다. 이곳은 아바나를 찾는 여행자의 대다수가 투어를 시작하는 곳이다. 주변에는 건축 시기가 서로 다른 중세와 근세 건물들이 뒤섞여 조화를 이루며 자태를 뽐낸다. 스페인어로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카피톨리오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과 프랑스 파리 판테온 신전을 모티브로 삼았다. 한때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되었으며 쿠바인들에게 이곳은 자긍심의 상징이다. 카피톨리오의 건축적 특징은 좌우 대칭이 완벽하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살려 형태와 색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극적인 강렬함을 나타내면서도 역동성과 기념성을 두루 갖춘 정통 네오바로크 양식을 잘 보여준다. 카피톨리오는 그 위용만으로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빼앗기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꼭대기 돔은 올드 아바나의 스카이라인을 제압하고 주변의 다양한 콜로니얼 건물들은 고개를 숙인 듯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옷차림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침을 한다. 여기저기 호객꾼들의 외침과 울긋불긋한 오색 물결의 1950년대 올드카가 줄지어 관광객을 기다린다. TV에서만 보았던 아바나의 첫 모습은 간접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감동이 파도치듯 밀려든다. 스쳐 가는 사람 중에는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피부색을 가진 물라토가 눈에 띈다. 그들은 중남미에 사는 여러 혼혈 가운데 특히 유럽 혈통의 백인과 노예로 이곳에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들이다. 물라토는 쿠바를 포함한 서인도제도에 많이 살고 라틴아메리카 혼합문화 형성에서도 많은 역할을 한다. 몇 년 전 남미를 여행하면서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본 스페인계 백인과 인디오 혼혈 메스티소처럼 이곳 물라토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쿠바에서 혈색에 따른 상하 관계는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물라토가 상류 계급에서 활약하는 예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올드 아바나의 심장부인 카피톨리오 광장을 뒤로하고 말레콘 방파제를 향하여 Paseo del Prado 공원길을 따라 한가로이 걷는다. 길 좌우에 펼쳐놓은 거리 화가의 다양한 미술 작품이 발길을 잡는다. 작품 중에는 아열대 자연을 그린 원시림과 싱그러운 열대 과일들, 살사의 여왕 셀리아 끄루스처럼 열정적인 춤을 추는 연인들 그리고 카리브의 넘치는 에너지를 담아낸 바다 그림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빼앗는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강렬한 태양처럼 밝고 깊지만, 섬세한 터치는 잔잔한 파도처럼 감미로운 파동의 여운을 남긴다. 시들지 않을 듯한 굵은 선과 색상은 쿠바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 느낌을 입체적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박태수 수필가

[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1-③

Wifredo Lam의 무제 중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기독교 성화를 수없이 볼 수 있다. 마치 유럽의 여느 나라처럼 미술 소재로 자리 잡고 있으나 쿠바에서는 별로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쿠바 혁명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혁명 초기에는 실제로 종교 탄압이 있었고,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으나 중남미 다른 나라보다 신앙심이 강하지 않아서인지 성화도 흔치 않다. 아마도 그 자리는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초상화,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별과 노동 현장 등 혁명과 반노예 주의를 표현한 사회주의적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화가의 코너에서 콜로니얼 건축물을 모티브로 한 거리 풍경 작품을 본다. 잠시 뒤로 거슬러 가는 시간 열차를 타고 중세의 시간 여행에 빠졌을 때, 한가로이 시가를 피우던 흑인 작가는 진한 향을 내뿜으며 우리 부부에게 작품을 설명하려 든다. 스페인어를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도 노 잉글리시 하며 두 손으로 가위 지으며 설명을 포기한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미술 작품에서 얻은 느낌을 차곡차곡 담아 발길을 옮긴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섬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쿠바섬에 오랜 세월 동안 함축된 인디오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식민지 편입 이후부터 19세기 후반까지는 유럽 열강의 다양한 문물이 유입되면서 전통문화는 거의 소멸할 정도로 사라졌다. 스페인이 쿠바섬을 점령하자 인디오와 에스파냐 문화가 섞였고 그 후에는 아프리카 흑인 문화까지 뒤섞이면서 이종 혼합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400여 년 동안 식민 시절의 고통과 고난, 불안과 갈등을 문화의 용광로에 녹여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히비스커스꽃처럼 콜로니얼 문화로 승화시켜 지금도 피고 있다. Amelia Pelaez의 비둘기와 소녀 이처럼 쿠바의 미술은 원주민 문화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흑인의 넘쳐나는 감성과 유럽 백인의 미술적 감각이 융합되면서 20세기 들어서도 서구의 모더니즘과 사회주의 전위 예술의 영향을 받아 꾸준히 성장하였다. 그 결과 쿠바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인 아멜리아 펠라에스와 초현실주의자인 위프레도 람 등이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화려하게 세계 미술계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쿠바 혁명 이전 아바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휴양과 관광도시였고, 멕시코시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어깨를 겨룰 만큼 중남미 문화의 거점도시로서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혁명 이후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폐쇄 정책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그 결과 과거 화려하였던 문화를 계승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으나 지금은 개방을 통하여 정체기에서 벗어나려 날갯짓한다. 발길을 돌릴 때 본 한 청년 여류 화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는 캔버스 뒤에 쪼그려 앉아 눈길도 주지 않고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한다. 옆에 있는 어린 딸도 한눈팔지 않고 엄마의 붓끝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늘은 쿠바 현대미술의 부활을 꿈꾸는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한 넉넉한 하루였고, 그들이 작품에 담아낸 미학적 감동의 울림을 간직한 채 찬사를 보낸다. 박태수 수필가

[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1-①

콜로니얼 건물들이 도시를 모자이크한 올드 아바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에메랄드빛 파도는 말레콘 방파제에 부딪혀 새하얀 물보라 꽃을 피우고 가마우지는 물속 먹이를 찾아 해수면 위를 곡예 비행하는 아름다운 카리브의 섬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인 쿠바까지는 거리도 멀지만, 아는 것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국가가 됐고 개방이 늦어져 시간이 멈춘 은둔의 나라 정도다. 이념적으로는 북한과 가깝고 한국과는 외교 관계가 없어도 쿠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숨결이 남아 있고 의사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가 사회주의 꿈을 이룬 곳이다. 마침 미국 오리건 주 카이저라는 시골에 머물고 있어 포틀랜드 공항을 출발해 LA를 거쳐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후 항공사 카운터에서 미화 20달러 주고 쿠바 비자를 산다. 잠시 공항에 머물다 아바나 행 비행기를 타고 밤 8시가 넘어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배낭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자 여느 공항과 달리 호객꾼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아 조용한 첫인상을 느낀다. 관광 안내소에 갔으나 영어로 된 관광지도가 없다. 관광 인프라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왔지만, 한 나라 수도이자 관문인 국제공항으로는 빈약하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이글거리는 카리브의 태양은 이미 잠들었고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온몸을 덮치자 피로가 몰려온다. 서둘러 국영 환전소에서 달러를 여행자 전용 화폐인 쿠바 쿡으로 바꾸고 택시를 탄다. 지긋한 나이의 운전사는 민박집 주소를 받아들고 알았다는 손짓을 하고 낡은 차를 몰아 역사지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향하여 막힘없이 달린다. 북반구에 속한 이곳의 1월 중순은 계절적으로 겨울 건기지만, 아열대성 기후라 습도가 높다. 카리브의 별들은 먼 곳에서 온 여행객을 환영이라도 하듯 너도나도 반짝이며 달빛 타고 흐른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모습에 취할 즈음 피로가 몰려들어 몸을 움직이자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던 아내가 잠에서 깬다. 20여 분 지나자 올드 아바나의 흐릿한 불빛이 보인다. 외곽에서 본 아바나의 밤은 생각보다 어둡다는 느낌이 들 때 차는 뒷골목을 휘돌아 낡은 4층짜리 건물 앞에 도착한다. 늦은 밤 적막감이 밀려들자 어깨에 멘 배낭은 다른 때보다 무게감을 느낀다.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 반응이 없다. 몇 분 지나자 여주인이 내려갑니다(baja)를 외치며 가파른 계단을 구르듯이 내려와 밝은 미소로 반긴다. 상큼한 그녀의 미소가 공항 환전소에서 받았던 언짢은 기분을 밤공기에 실어 날려 보낸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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