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redo Lam의 무제 중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기독교 성화를 수없이 볼 수 있다. 마치 유럽의 여느 나라처럼 미술 소재로 자리 잡고 있으나 쿠바에서는 별로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쿠바 혁명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혁명 초기에는 실제로 종교 탄압이 있었고,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으나 중남미 다른 나라보다 신앙심이 강하지 않아서인지 성화도 흔치 않다. 아마도 그 자리는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초상화,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별과 노동 현장 등 혁명과 반노예 주의를 표현한 사회주의적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화가의 코너에서 콜로니얼 건축물을 모티브로 한 거리 풍경 작품을 본다. 잠시 뒤로 거슬러 가는 시간 열차를 타고 중세의 시간 여행에 빠졌을 때, 한가로이 시가를 피우던 흑인 작가는 진한 향을 내뿜으며 우리 부부에게 작품을 설명하려 든다. 스페인어를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도 노 잉글리시 하며 두 손으로 가위 지으며 설명을 포기한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미술 작품에서 얻은 느낌을 차곡차곡 담아 발길을 옮긴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섬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쿠바섬에 오랜 세월 동안 함축된 인디오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식민지 편입 이후부터 19세기 후반까지는 유럽 열강의 다양한 문물이 유입되면서 전통문화는 거의 소멸할 정도로 사라졌다. 스페인이 쿠바섬을 점령하자 인디오와 에스파냐 문화가 섞였고 그 후에는 아프리카 흑인 문화까지 뒤섞이면서 이종 혼합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400여 년 동안 식민 시절의 고통과 고난, 불안과 갈등을 문화의 용광로에 녹여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히비스커스꽃처럼 콜로니얼 문화로 승화시켜 지금도 피고 있다. Amelia Pelaez의 비둘기와 소녀 이처럼 쿠바의 미술은 원주민 문화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흑인의 넘쳐나는 감성과 유럽 백인의 미술적 감각이 융합되면서 20세기 들어서도 서구의 모더니즘과 사회주의 전위 예술의 영향을 받아 꾸준히 성장하였다. 그 결과 쿠바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인 아멜리아 펠라에스와 초현실주의자인 위프레도 람 등이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화려하게 세계 미술계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쿠바 혁명 이전 아바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휴양과 관광도시였고, 멕시코시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어깨를 겨룰 만큼 중남미 문화의 거점도시로서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혁명 이후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폐쇄 정책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그 결과 과거 화려하였던 문화를 계승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으나 지금은 개방을 통하여 정체기에서 벗어나려 날갯짓한다. 발길을 돌릴 때 본 한 청년 여류 화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는 캔버스 뒤에 쪼그려 앉아 눈길도 주지 않고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한다. 옆에 있는 어린 딸도 한눈팔지 않고 엄마의 붓끝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늘은 쿠바 현대미술의 부활을 꿈꾸는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한 넉넉한 하루였고, 그들이 작품에 담아낸 미학적 감동의 울림을 간직한 채 찬사를 보낸다. 박태수 수필가
문화일반
박태수
2020-08-26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