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교육청] 나근형 전 인천시교육감 ‘마지막 월례회의’

나근형 전 인천시교육감은 6월 2일 인천시교육청 4층 대회의실에서 시교육청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임기 마지막 월례회의를 진행했다. 나 전 교육감은 지난 2001년 7월 제6대 시교육감이 된 이후 2005년 제7대 시교육감을 연임했고, 2010년 인천에서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초대 직선 시교육감으로 당선되는 등 12년 동안 시교육청의 수장으로서 인천교육을 책임져 왔다. 이날 나 전 교육감은 세월호 사고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정서가 침체돼 있는 이 시점에 공직자로서 최우선해야 할 것은 공직기강 확립이다며 이는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교육청 직원들에게 후회와 죄책감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서 생기는 것으로, 과거의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 또한 걱정과 염려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우일 뿐이라며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건강한 심신과 희망을 가지고 동료와 기쁘게 일하는 것이다고 당부했다. 한편, 나 전 교육감은 지난 1964년 김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은 뒤 시교육청 중등장학과장, 교육국장, 인일여고 교장 등을 거쳤다. 글 _ 김민 기자 suein84@kyeonggi.com 사진 _ 인천시교육청 제공

[아름다운경기도] 우리민족과 함께한 ‘술’ 한사발에 시름 잊고…막걸리

한국인에게는 모두 막걸리 DNA가 있다고 할 만큼 막걸리는 우리 역사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막걸리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의 벼농사가 자리를 잡은 시기에 시작됐다고 추정된다. 막걸리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은 송나라 사신서긍이 고려 인종 원년(1122년)에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바를 엮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는 구절이 있고, 이어 술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는 기록도 있다. 술이 독하다는 것은 고려 시대에 이미 밑술을 이용해 도수가 높은 술을 제조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큰 행사를 위해 사찰 등에서 대량으로 술을 빚었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교 배척 정책이 시작되고 각 가정에서 제례를 지내면서 일반 가정에서 직접 술을 빚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가양주가 등장한 것도 이 때다. 집집마다 술을 빚어 손님을 대접하고 제례를 지내던 풍습은 1909년 일제강점기 주세법 공포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전통적으로 빚어오던 술이 밀주로 취급받으며 점차 사라졌고 술 제조장은 점차 대형화됐다. 1916년 주세령 시행으로 가양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며, 급기야 1934년 자가용 양조면허가 폐지되면서 전통적으로 이어내려온 우리 술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정부에서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제한하게 되고 1965년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쌀을 이용한 술 제조가 금지됐다. 결국 막걸리는 쌀이 아닌 보리로, 다시 옥수수와 밀가루로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후 외국에서 맥주와 위스키 등 다양한 술들이 들어오고 1980년대에는 끼니 걱정이 사라질 만큼 시대가 풍요로워졌다. 또 카바이드 막걸리, 사카린 막걸리 등 불량막걸리들의 등장은 막걸리 인기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자연히 막걸리 산업은 하향길을 걷게 된다. 그 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과 함께 우리 전통주를 산업적으로 육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1993년부터는 농림부 장관이 추천하면 주류제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규제를 정비하면서 막걸리 제조허가에 필요한 시설기준을 완화하고 신규제조 면허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췄다. 또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제품생산을 위해 막걸리의 규격을 알코올 성분 3도 이상으로 조정하고 인삼 잣, 대추, 과일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다양한 고급 막걸리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공급구역 제한을 폐지해 전국적 유통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막걸리는 2009년 경기 불황 속에서 웰빙을 찾는 소비자들에 의해 재조명 받으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국내에 앞서 한류 열풍으로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며 K-FOOD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다. 특히 경기도는 막걸리 제조업체가 수원, 화성, 용인, 군포, 광주, 이천, 평택, 안성, 포천, 고양 등에 50여 곳이 산재해 전국에서 막걸리 제조업체 비중이 가장 높다. 경기 막걸리 수출은 2000년 71만 달러에서 매년 성장을 거듭, 2011년 2천120만8천 달러까지 치솟았다. 경기도는 산학관연의 막걸리 관련 기술과 정보의 네트워킹 구축 지원을 위해 2010년 경기막걸리세계화사업단을 구성해 막걸리의 산업화와 세계화에 기여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일본의 저도주 선호 분위기와 국내 수요 감소 등으로 막걸리의 인기는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경기도농업기술원, 경기농림재단,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과 함께 제품 개발과 마케팅 지원, 해외 판촉행사 등 각종 지원으로 막걸리의 부진을 만회하려 노력하고 있다. 글 _ 구예리 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알싸한 그 맛, 입에 착착!! 도내 막걸리 베스트5 자연으로 빚고 정성으로 담근 술 뽀얀 우유빛깔을 자랑하는 막걸리의 변신은 무한대다. 예부터 막걸리는 지역마다, 집집마다 빚는 방법이 달라 색과 향, 맛이 다양했다. 최근에는 현대적인 위생시설, 고급 브랜드쌀 등으로 다양한 맛을 품은 막걸리가 탄생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1천여 종이 넘는 막걸리가 탄생하고 있는데, 맛이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경기도에는 총 56곳의 제조장이 저마다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어낸다. 이대형 경기도 농업기술원 박사는 경기도 막걸리의 특징을 좋은 자연환경에서 만들어낸 맛으로 꼽았다. 이 박사는 경기지역은 좋은 쌀, 맑은 물을 이용해 맛 좋은 막걸리가 생산되고 있다며 한때 막걸리 수출을 주도했었던 만큼 새로운 시장 개척,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맛으로 다시 한 번 부흥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전통 제조장들이 손수 빚어내는 막걸리의 향과 맛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헌배인삼주가 (안성시 가사동대표 이명숙) 사연을 담은 방앗간 맞춤형 인삼주 제조 인삼을 머금은 2천여 통의 술독들이 지하 숙성고에서 조용히 국악과 클래식을 듣는다. 술독들의 사연도 제각기다. 30주년 결혼기념일에 쓰일 술, 대학입학을 기념하기 위한 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에 맞춰 노사모에서 주문한 술까지. 술독들은 사연과 이름표를 매달고 3~4년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청헌배인삼주가는 사연을 담은 인삼주 방앗간이다. 고객이 예약한 날짜에 맞춤형으로 인삼주만 제조한다. 국내 1호 술박사인 정헌배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가 자신이 고집하는 제조법으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쌀, 인삼, 누룩만 이용해 4~5년간 숙성한다. 2004년에 문을 열었지만, 첫 제품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9년 출시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표 상품 약주 (비 飛) : 정헌배 교수가 30년간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국형 누룩으로 재현한 작품. 생산자와 생산지역, 추수 시기가 확인되는 100% 국내산 쌀과 6년근 인삼만을 사용한다. 도수는 16%, 한우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다. 최행숙전통주가 (파주시 법원읍 가야리대표 최행숙) 파주개성인삼 통째로 발효 전통방식 고집 술을 빚는 최행숙 대표를 보면 술 좀 하는 여자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최 대표는 직접 재배한 쌀과 인삼으로 막걸리를 빚어낸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옛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것. 특히 청정한 민통선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6년근 파주개성인삼을 통째로 넣고 발효시켜 특유의 깊은맛을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최 대표는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여자다. 전통주 교육과정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술을 빚는 모습에 반해 술 빚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직접 7년간 연구개발한 끝에 막걸리를 빚어냈다. 고문헌 속에 나오는 아황주도 복원시켜 생산한다. 양조장에서 전통주 빚기 체험이 진행돼, 가족단위로 방문해 우리 가족만의 전통주도 빚을 수 있다. 대표 상품 인삼과 찹쌀로 빚은 술 미인(米人). 약주와 막걸리 두 가지 형태로 개발됐다. 멥쌀을 주재료로 하는 대부분 술과 달리 찹쌀로 고두밥을 만들어 부드럽고 단맛이 난다. 인삼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가평 우리술(가평군대표 박성기) 청정 암반수 사용 술 품질 인증 최다 보유 우리나라 청정지역으로 물 좋기로 소문난 가평. 산 높아 공기 좋고 물 맑은 운악산 자락에 우리술이 위치한다. 계약재배한 5년 경기미를 사용하고, 지하 270m 청정 암반수를 사용하니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특히 최초, 최다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 최초로 400만 불 수출탑 수상, 최초로 HACCP, ISO22000 인증을 받았고 최다 술품질 인증 보유했다. 세계 20개국으로 수출 중이며 총 200여 제품을 만들어 왔다. 우리술의 박성기 대표는 ㈔막걸리협회 회장으로 막걸리의 유네스코 등재를 앞장서 추진 중이다. 대표 상품 가평 생 잣 막걸리 : 가평의 특산품인 평잣을 갈아 넣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완전발효시켜 숙취가 없고 개운하다. 지난 2월 주류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효자 상품이다. me 3(미쓰리) : 감각적인 젊은 층에 맞춰 막걸리를 캔에 담았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3%의 저도 주다. 20~30대 고객층, 베트남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고양탁주합동제조장 (고양시 덕양구대표 서동수) 대통령이 사랑한 술 100년 전통 자랑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국민의 염원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양조장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고양 생 막걸리와 배다리 막걸리는 환희의 술이자, 아픔의 술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자 특별 초대됐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애주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의 만찬에 올려진 아픔이 있는 술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양탁주합동제조장의 막걸리가 유명한 이유는 고양시의 자연환경과 떼놓을 수 없다. 고양시는 한강 하류의 땅이 비옥해 벼농사가 잘됐고, 쌀이 맛있기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시대부터 양조장이 여럿이었고, 50여 년 전 5개 면의 양조장이 하나로 엮어 고양탁주합동제조장이 됐다. 200m 천연 암반수와 누룩, 청결미를 주재료로 100년 전통의 맛을 자랑한다. 대표 상품 고양 생 막걸리 : 하얀 병에 라벨을 감각적인 캘리그라피 느낌을 표현했다. 단맛과 신맛이 적당하며 전통적인 막걸리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배다리 생 막걸리 :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즐겨 마시던 막걸리다. 탄산이 풍부하고 목 넘김이 좋다. 막걸리 특유의 시큼한 맛도 느껴져 질리지 않는다는 평이다. 배상면주가 (포천시 화현면대표 배영호) 전통주에 문화와 멋 저변확대 주력 산사춘하면 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유명한 전통주 제조업체다. 막걸리의 고장으로 불리는 물 맑은 포천 운악산 밑에 자리해있다. 전통주 제조업체라기보다 문화 제조업체가 더 옳은 표현이다. 아시아 최고의 술 문화 기업을 꿈꾸며 전통주에 감각적인 아이디어를 입혀 문화 저변을 확대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강남에 도시형 양조장인 느린마을 양조장&펍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직접 술을 빚는 현장을 볼 수 있다. 또 배상면주가의 전통주는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인 낭만공정을 거친다. 기계화를 도입한 양조공정 중 핵심적인 부분은 수작업하는 것. 분위기와 멋도 함께 들이켤 수 있다. 대표 상품 느린 마을 막걸리 : 막걸리에 사계절이 담겼다. 막걸리를 빚은 후 시간 경과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맛이 그대로 전해진다. 쌀, 누룩, 효모만으로 빚어 깊은 막걸리 고유의 맛을 낸다. 글 _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시대별 변천사부터 제주 도구까지 눈으로 마시는 막걸리의 모든 것 알싸한 막걸리의 맛에 흠뻑 취했다면, 이제 막걸리 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전통 막걸리 제조 방법부터 시대별 막걸리 변천사, 막걸리 도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솔솔 풍겨오는 시큼한 막걸리 향은 코를 즐겁게 한다. 탁 트인 정원에서 향을 내뿜으며 술을 가득 담은 장독대는 한 폭의 멋진 동양화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좋은 자연 경관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막걸리 박물관으로 떠나는 오감(五感)만족 여행, 지금 출발해 보자. 산사원 _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 배상면주가의 대표 술인 산사춘의 원료 산사나무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200년 된 산사나무 열두 그루가 심어져 있으며, 나무 그늘 놓인 항아리에서 전통술이 익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 익은 독과 문화공간이 잘 어우러져 있어 지친 몸과 정신을 달래기에 좋다. 전통술 문화사 자료와 유물 1천여 점이 전시돼 있고, 산사정원에서는 세월 따라 항아리 속에 익어가는 세월랑을 구경할 수 있다. 부안당에서 막걸리 도가들의 기물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면 경주의 포석정처럼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울 수 있는 유상곡수에서 풍류를 즐기면 된다. 풍류를 즐긴 후 취선각으로 발을 옮기면 탁 트인 경관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에 운치 있는 차 한잔을 마셔볼 수 있다. 1996년 11월 개관 후 연평균 방문객이 3만 명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인기가 좋다. 술, 술 지게미, 누룩 등을 다시 발효시켜 만들어낸 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음공간도 있다. 40명 이상의 단체 관람 신청은 산사원 홈페이지(www.sansawon.co.kr)에서 단체견학신청 게시판에 글을 남기면 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이며, 문의는 031-521-9300으로 하면 된다. 배다리 술 박물관 _ 신라부터 조선까지 술 문화 총망라 고양시의 수역이 마을을 지나면 배다리 술 박물관이 나온다. 고양시의 막걸리는 예부터 유명했다. 5대째 술도가를 이어온 배다리술도가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제1전시관에 들어서면 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친 각종 술독, 술 항아리, 술통 등이 전시돼 있다. 술 문화와 의식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이후의 각종 술잔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2 전시관으로 이동하면 조선시대 말기에 술을 빚는 과정을 미니어처 인형으로 볼 수 있다. 막걸리 제조과정과 술 배달 과정을 재현해 흥미롭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노천카페에서는 모닥불에서 가족단위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고, 각종 전통술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으니 전통주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2층 카페테리아에서는 단체 세미나와 동호회 모임이 가능한 공간, 엘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됐다. 매주 일요일에는 전통방식으로 빚는 소주 내리기를 재현해 전통주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 각종 단체모임은 전화(031-967-8052)로 문의하면 된다. 글 _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경기초대석] 여인국 과천시장

대답은 단호했다. 끊는 말에는 힘이 넘쳤고, 철학도 있었다. 12년 행정의 성과를 묻는 기자가 당황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재임기간 성과나 업적은 시민이 평가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여느 행정 관료와는 달랐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석사도 박사도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2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주요 요직을 거쳤고, 한 번도 힘든 시장직을 민선3기부터 5기까지 세 번이나 연임한 성공한 관료였다. 그 정도의 관록이라면 으레 스스로를 치적을 과장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며 낮추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권위와 영광의 가면에 포장된 가공된 멋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답답하게 닫힌 단추를 풀며 시작된 인터뷰는 소탈하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지난 5월 22일 오전, 12년 간 과천 시정 운영을 끝으로 시장직을 내려놓는 여인국(58) 과천시장을 만났다. 시장으로 때론 색소폰 연주자로 시민직원과 감성적 소통 그에게 권위란 다른 정의(定義)였다. 따르게 하는 힘이 아니라 다가서는 힘에 가까웠다. 권위에 의한 접근보다는 소통을 위한 접근이었다. 색소폰을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친근하게 다가서기를 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학교로 달려가 음악선생님에게 색소폰을 배웠다. 처음에는 육중한 몸체덕에 소리를 내보기는커녕 두 손으로 들기 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몇 달을 배우고 어느 정도 운지법 익힐 수 있게 되자 시청내 관심사가 같은 직원을 대상으로 음악밴드도 만들었다. 이른 바, 시티밴드. 각자 실력이 들쭉날쭉, 중구난방 이다보니 음정박자는 가뿐히 무시됐다. 점차 연습량이 많아지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시청에서 주최하는 작은 무대에서 첫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여 시장은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선거에 임할 때만큼 떨리고 긴장됐다며 혹여나 실수라도 하면 시장이 자기 직함만 믿고 무성의하게 무대에 섰다고 구설수에 오를까봐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첫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뒤에도 5년 째 과천시청의 공식비공식 음악밴드로 크고 작은 무대에 섰다. 재능기부 일환으로 바쁜 일정을 쪼개 지역 내 복지시설에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시장과 직원, 시청과 시민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공연 때는 민원인을 대할 때처럼 완벽하게 연습하지 않으면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불철주야 연습을 했다. 그럼에도 삑삑 거리며 실수를 한다. 그래도 관객이 많이 이해해주고 권위적인 모습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시민과 직원이 기억해주는 것 같아 좋다 그는 친목과 화합을 중시한다. 특히, 시티밴드처럼 직원 간 동아리 활동을 강조한다. 그 역시도 밴드활동 이외 테니스와 낚시 등 몇 가지 동아리 활동을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관심사가 같은 직원끼리 동아리를 만든다고 하면 아낌없이 지원한다. 여 시장은 과 마다 나눠져 있어 다른 과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면 업무할 때도 서로 서먹서먹해진다. 하지만 함께 활동을 하면 같이 어울릴 수가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어 업무가 생기면 다가서기 수월해진다. 이것이 결국 업무 효율과 시민에 대한 서비스 질 향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인국 시장의 취임이후 12년 간 과천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이유도 그의 합리적 소통의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주민소환 정치적 위기 직면 그럼에도 소중한 기억 일상이 기적 따뜻하고 감성적인 소통을 강조하는 여 시장이지만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일부 시민에 의해 주민소환을 당했다. 지금에서는 허허하고 웃고 말지만 그 때 당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과천시장 주민소환은 개발제한구역인 지식정보타운 부지에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40년 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보금자리주택으로 풀어갈 방법을 찾았다는 찬성 측과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서면 전원도시로서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반대 측 주장이 대립했다. 보금자리반대운동은 결국, 여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으로 이어졌고, 주민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반년 간 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여 시장은 20일 간이나 직무정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보금자리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과천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시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보금자리지구지정을 수용하는 등 정부과천청사 이전 대책에 소홀한 여 시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했다. 여 시장은 문제해결을 위해 국토해양부와 합의해 지식정보타운 내 보금자리주택 건설 물량을 50% 축소하는 등 계획을 수정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투표함 개봉은 최저 투표율 33.3%에 못 미치쳐 무산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 시장이 받은 심적인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로 마음의 고통이 심했다. 주민소환의 사유도 처음에는 보금자리 문제였다가 행정 전반의 문제로 비화했다.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정치적인 색을 띠기 시작했고,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그냥 당시는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주민소환 투표가 무산된 이후 여 시장은 주민소환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나 중앙정부 요구사항에 주민소환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기준을 세우고,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소환 당사자에 대해 책임을 묻는 등 제도개선 요구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차례의 큰 파고를 겪은 여 시장은 더욱 단단해졌다. 허무주의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다져갔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성경 속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민선 5기 선거 공약을 새웠던 81개의 단위사업 중 76개의 단위사업을 차질 없이 마무리해 공약 이행률이 93.8%에 달했다. 또 남은 5개의 단위사업도 현재 추진 중이거나 완료 단계에 왔다. 고난의 계절에도 감사하며, 일상을 기적처럼 여기는 삶의 자세가 그의 가슴에 박힌 성경의 글귀처럼 실천됐다. 살기 좋은 도시 과천 시민의 자리에서 다져갈 것 여 시장의 시정 역점 과제는 교육과 복지였다. 하지만 그를 실현하기에는 예산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인구가 7만을 조금 넘는 작은 도시로 일 년 투입되는 예산은 2천억 원이 채 안됐다. 그럼에도 교육과 복지 부분의 예산은 줄이지 않았다. 사실 과천이 매년 조사하는 살기 좋은 도시에 항상 1위로 꼽히는 이유도 이들 분야를 특화한 탓이 컸다. 학자금 대출이자 전액을 지원한 것도 전국 지자체 중 과천이 처음이었다. 또 방과 후 온종일 교실, 학부모보조교사제 등을 운영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지난 2007년 2월 여성비전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2010년 노인복지관 증축 개관, 장애인복지관 및 종합회관 개관, 건강가정지원센터 개소,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 개소, 육아종합지원센터 개관 등 지역사회 내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을 늘려갔다. 여기에 복지수혜자별 복지증진과 생활안정, 재활지원 및 사회참여 촉진 등 다양한 복지기금을 확대 조성해 현재 노인복지기금 50억, 장애인복지기금 30억, 보훈복지기금 30억, 여성발전기금 30억 등 140억 원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시정 만족도도 점차 높아졌다. 과천시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하고 있는 과천 시민 의식구조조사에서 주거체감 만족도는 매회 90%에 이른다. 시장으로서 임기는 이달 말 끝이 난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이번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아직 퇴임 이후 계획은 구체화하지 못했지만 행정 출신으로 대학교에 출강을 나가며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도 있다. 또 정치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퇴임 이후 일이다. 아직까지 남은 책임과 임무를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말했다. 항상 시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12년 간 과천시 행정을 운영하지 못했을 거다. 모든 주민이 원하는 부분을 다 완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함도 있다. 앞으로도 과천시에 거주하며 영원한 과천시민으로, 과천에 뼈를 묻을 생각이다. 행복한 과천을 만드는데 미력하나마 버팀목으로 남고 싶다 시장으로서의 임기는 끝났다. 하지만 초심은 여전하다. 과천을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꿈은 이제 과천시민 여인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만나고싶었습니다] 김양희 경기도여성비전센터 소장

누구나 타고난 두뇌성격이란 게 있다. 보통은 이성적인 좌뇌형과 감성적인 우뇌형으로 구분 지어진다. 굳이 타입을 정하자면, 김양희 경기도여성비전센터 소장은 좌뇌형에 가깝다. 김 소장은 어린 시절, 호기심이 많고, 소꿉놀이를 하면 사장역할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입담도 좋아 어딜 가든 분위기 메이커였다. 주어지고 맡겨진 일에는 똑 소리가 난다. 김 소장의 호기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매번 같은 길로 출근하는 법이 없다. 월요일은 오른쪽 길로 가보고, 화요일은 왼쪽 길로 가보는 식이다. 호기심이 많다 보니 길을 찾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이 같은 행동은 도전을,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녀는 기질적으로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지 않다 보니 38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게 있다. 바로 남다른 유연성이다. 유연성과 열정, 그리고 바지런한 행동력이 만나 김양희 소장만의 경쟁력이 됐다. 유연성을 앞세운 리더십이 장점인 김 소장은 요즘, 경기도 가족행복을 위한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족은 기쁨, 슬픔, 아픔을 함께하는 공동체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은 사랑만 있다고, 의지만 있다고 완성되는 것 아니다. 일정 부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의 노하우와 비법을 김양희 소장으로부터 들어봤다. 상처입은 가정 눈높이 치유 직원과 소통, 즐거운 직장 조성 일가정 균형 일가(家)양득 사회적 분위기 정착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양희 소장은 매주 수요일 직원들과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다. 화목요일에는 스트레칭도 함께 한다. 직원과 소통하며 즐겁게 일하는 직장 분위기를 만드는데 악기와 운동이 최고라는 게 김 소장의 생각. 그녀는 직장도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한다. 이 같은 나름의 철학은 직장맘으로 두 딸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김 소장은 출산=퇴사라는 고용관행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를 위해 고군분투한 직장맘 1세대다. 요즘 직장맘들이 겪는 것처럼 회사에서는 직장인으로,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내로 살면서 일과 육아라는 갈림길에서 고민도 깊었다. 게다가 육아와 관련한 직장 내 고충, 보육 등 가족 관계의 고충, 심리정서 등 개인적 고충 등 직장맘으로서의 삼고(三苦)를 온몸으로 겪었다. 김양희 소장은 직장맘으로서 고민과 고충을 당연하게 여기며 두 딸을 악착같이, 잘 키워냈다. 김 소장은 직장맘으로 사는 동안 한국 사회는 외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지만 아직도 육아 부담을 알게 모르게 엄마들에게 전부 지우는 우리나라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다며 매년 31만 명의 여성들이 경력단절이 되고,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이 아이 키우는 게 너무 어려워서 회사를 그만둬야 된다는 조사결과가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실에 김 소장은 선배 직장맘으로서, 여성리더로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일(Work)과 가정이 행복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일가(家)양득의 사회적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실질적인 프로그램 운영에 더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김양희 소장은 최근 게임에 중독된 아버지가 2살 아이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등 최근 발생하는 비극적인 가족관련 사건, 사건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가정이 건강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많다며 한국사회가 압축적으로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가족 내 왜곡된 부분과 소통문제를 바로 잡아줘야 하고, 가족, 가정의 가치는 절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며 가족사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여러 가지 사업 가운데 특히 아이돌보미사업에 대해 큰 애착을 갖고 있다. 현재 경기도 아이돌보미사업의 총괄 운영자이면서, 지난 2006년 아이돌보미사업을 여성부에서 시작할 때 건강가정지원센터를 각 시군에 만들고 처음 아이돌보미를 양성하는 사업을 담당했던 팀장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돌보미 교사가 직접 가정으로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돌봄미사업은 꾸준한 보수교육과 전문교육을 통해 현재 무려 2천800여 명의 아이돌보미가 경기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가족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함께 개선돼야 한다는 게 김양희 소장의 의견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족문제와 육아는 개인의 문제였다. 그래도 가족 인적구성이 풍부해 조부모, 이모, 삼촌, 그리고 이웃이 함께 지혜를 모아 극복할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선 가족관계, 특히 육아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문제다. 그만큼 경기도여성비전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양희 소장은 사회 구성단위의 기본 못자리와 같은 가족 건강을 위해선 무엇보다 지금 당장 사랑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가족이 성장한다고 첨언했다. 그리고 경기도건강가정지원센터를 잘 활용하면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했다. 골치 아픈 가족문제 예방해결 일등공신 위기가정 지원 아이돌보미가족친화문화 조성 등 앞장 그렇다면 경기도건강가정지원센터(ggfc.familynet.or.kr)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 지난 2005년부터 시행된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가족정책의 전달체계로서 정부의 가족정책 추진방향에 부응해 건강가정사업을 실시하도록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설립됐다. 경기도여성비전센터는 2012년 10월, 여성가족부로부터 경기도건강가정지원센터로 지정을 받아 2013년 1월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개소 이후 점점 해체되고, 연결 끈이 느슨해지고 있는 가족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김 소장은 경기도여성비전센터는 가족의 해체를 방지하고 무너진 가족을 되살리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경기도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가족사업과 정책의 선행 모델로 자리매김하며 도민들의 가족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민들의 가족 내 문제가 생겼을 때, 또는 도움이 필요할 때 해결사 노릇을 척척 해내고 싶은 게 김양희 소장의 욕심이자,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김양희 소장은 경기도건강가정지원센터는 가족문제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가족돌봄나눔사업, 생애주기별 가족교육사업, 가족상담사업, 가족친화문화조성사업, 정보제공 및 지역사회 네트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일반가족은 물론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다문화가족, 일탈청소년가족, 군인가족, 수용자가족, 맞벌이가족, 이혼전후 가족 등의 다양한 가족 지원을 위한 상담,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이 결합된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 말고도 경기도건강가정지원센터가 하는 일은 디테일하고, 다채롭다. 아이돌보미 지원, 장애아가족양육지원사업, 공동육아나눔터사업 등의 돌봄지원사업, 취약가족과 위기가족을 위한 가족역량강화사업, 미혼모부자가족지원사업, 기타 타 부처와 유관기관과의 협력사업 등을 통해 다양한 가족 사업이 그렇다. 특히, 올해는 가족관계 다시 세우기와 은퇴 전후 가족파트너십, 수원지방법원 연계 위기가족회복 사업을 통해 경기도 가정 건강하기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먼저 가족관계 다시 세우기는 가족 구성원 간의 건강한 가족 관계를 방해하는 정신적 외상의 원인을 찾아 치유하고, 더 나은 가족 관계 형성을 위한 실천 방법을 단계적으로 찾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프로그램은 다양한 가족 형태에 맞춰 비행정서장애ADHD를 겪는 초등5~6학년 부모자녀(수원시), 40대 이혼위기 부부(시흥시), 30~40대 이혼위기부부(용인시) 등 3가지로 나눠 5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진행된다. 은퇴 전후 가족파트너십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조기은퇴와 은퇴 후 가족관계 재적응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성인자녀관계, 인생설계, 여가활용법, 역할과 생활패턴 재구성, 노후대비 프로그램 보급 등이 메인이다. 올해는 전역을 앞둔 50대 군 간부 부부를 위한 진짜 사나이와 행복한 가족(포천시), 은퇴를 앞두거나 직후에 있는 50~60대 부부를 위한 품위 있는 내 인생 제2의 시작을 위해(화성시), Bravo, My 꽃노년(여주시)이 6월부터 진행된다. 이와 함께 여성비전센터와 수원지방법원이 공동으로 재판이혼 또는 협의 이혼 신청한 부부를 대상으로 전문화된 관계 개선 프로그램을 제공해 이혼을 막는 이혼 갈등 위기가족회복 지원사업을 2년째 진행한다. 실제로 2013년 이혼위기 부부 37쌍을 대상으로 통통 소통1박2일 부부캠프와 개인별 상담을 연계한 가족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 27쌍(72.97%)이 이혼신청을 취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인천어디까지가봤니] 소래포구

햇살이 마음을 살짝살짝 간지럽힌다. 괜시리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멍하니 창가에 앉아 하루에도 몇번씩 하늘을 올려다본다. 영화 속 어느 여주인공이 썼던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작은 가방 하나 둘러메고 멀리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설렘, 소소한 즐거움이 추억으로 남는 낭만,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휴식,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 이런 것이 아닐까싶다. 이 모든 것을 도심 속에서도 누릴 수 있다면, 생활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여유롭게 일상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소래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쉬어가는 법을 알려주는 소래습지생태공원과 작은 항구가 반겨주는 소래포구, 나무그늘이 손 내밀어주는 인천대공원,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은행나무가 있는 만의골, 부담없이 하늘까지 닿게 해주는 소래산은 도심에서도 자연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에코벨트(eco belt)다. 도심 속 여행의 시작과 끝은 발걸음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을 눈에 담고 좋은 것을 맛보고 재미난 것을 손에 쥐어볼 수 있다. 일상을 바쁘게 뛰어왔다면 소래 앞에서 잠시 속도를 줄여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대보다 훨씬 큰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 천국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로 가득한 곳이 있다. 잔잔한 바다에 몸을 내맡긴 통통배와 갓 잡아올린 듯한 싱싱한 해산물을 보다보면 비릿한 바다내음조차 느낄 새도 없이 회 한 접시가 저절로 생각나는 이곳은 바로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에 위치한 소래포구다. 소래포구는 일제강점기 시절 염전이 있었고, 이곳에서 나온 소금을 실어나르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지나가던 곳이다. 지난 1937년 개통돼 1995년 12월 31일 폐선될 때까지 수원과 인천을 오가며 서민들의 애환과 수많은 연인의 추억을 담은 수인선 협궤열차는 더는 볼 수 없지만, 소래포구의 철길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바닷길을 건너는 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다리를 건너면 어시장으로 연결되는데, 이곳 소래포구 어시장은 무엇보다 꽃게가 유명하다. 소래포구에서 나온 꽃게를 소래 꽃게라고 따로 명칭해 부를 정도니, 그 유명세는 말로 다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소래포구 어시장이 꽃게의 제철인 4~6월에 도떼기 시장으로 변모하는 이유도 다 소래 꽃게 덕분이다. 알을 품 속에 고이 품은 채 커다란 대야를 가득 채운 꽃게는 지나가는 손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곳 상인들의 장사 수완도 일품이다. 손님과 끊임없이 가격 흥정을 벌이는 이들 상인의 눈빛은 바로 앞에 진열된 해산물 보다도 더 생기가 가득하다. 싱싱한 꽃게의 유혹에 이기지 못해 행여나 상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느새 양 손에는 꽃게가 한가득 들려있을 정도다. 이밖에 어시장에서 파는 새우, 젓갈 등도 시민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많은 손님과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주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싱싱한 해산물이 선보이는 이곳 어시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아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어시장이 유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횟집도 따라오는 법인가 보다. 소래포구 어시장 인근에 위치한 횟집만 무려 100여 곳에 달한다. 이곳 횟집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은 따로 정해진 식탁과 의자가 없다는 것이다. 횟감을 뜬 손님들은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앉아 소박한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소래포구 종합어시장 앞으로 크게 연결된 벤치는 그야말로 1등석이다.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거하게 들이키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캬하고 군침을 삼키며 인생의 참맛을 느껴볼 수도 있다. 소래포구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는 회가 전부는 아니다. 소래포구는 회 말고도 각종 먹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특히 대게 모양으로 생긴 대게빵은 남녀노소 하나씩은 꼭 사먹어 보게 되는 이색 먹거리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국화빵에도 국화는 없지만, 대게빵에는 엄연히 대게가 들어가 있어 한 입만 베어물어도 특유의 고소한 게 맛이 느껴질 정도다. 한 연인이 대게빵을 집어들고,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고 모 연예인의 흉내를 내는 정다운 모습 또한 이채롭다. 노점에서 판매하는 즉석 어묵 또한 지나가는 사람마다 침을 꿀떡 삼키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묵의 고향이 그 아무리 부산이라 하더라도, 바다내음을 잔뜩 머금은 소래포구의 어묵만은 못할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나무젓가락과 함께 들린 어묵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장시간 길을 걷더라도 전혀 힘들지 않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다. 옛 추억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번데기와 삶은 고둥도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먹거리다. 다양한 먹기로와 즐길거리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소래포구에 시선을 끄는 볼거리도 풍성하다. 소래포구 어시장과 소래역사관 사이에 있는 장도포대지가 대표적이다. 적의 포격을 방어하고 아군의 사격을 편리하도록 소래포구 인근에 세워진 장도포대지는 지난 2001년 4월 2일 인천시문화재사료 제19호로 지정됐다. 이곳에서는 서해안으로 들어오는 외세의 침입을 막는 목적으로 지난 1879년 7월(고종 16년)에 세워진 진과 포대를 볼 수 있다. 어린시절 소래 모습 간직한 소래역사관 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어시장 옆에 자리 잡은 소래역사관은 인천 남동구가 49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해 지난 2012년 6월 29일 개관했다. 소래역사관은 지하1층, 지상 2층 등 모두 3층의 규모에 전시장영상실수장고학예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지면적은 1천234㎡에 연면적은 1천425㎡에 달한다. 소래역사관은 지상 12층에 구성된 전시장에서 소래어촌의 전통 및 생활사, 소래염전의 유래, 소금생산과정 및 도구 등의 전시, 그리고 소래역사(驛舍), 수인선 협궤열차 등의 추억과 낭만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또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을 통한 시설관리를 바탕으로 장애인도 쉽게 역사관을 방문하고, 불편 없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상설전시실은 소래 지역을 대표하는 4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소래염전과 소래포구, 소래갯벌과 수인선 테마가 각각 지상 12층에 나뉘어 전시 중이다. 전시의 흐름은 2층 소래역 대합실을 시작으로 소래지역의 옛 모습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방식이다. 소래역은 수인선 협궤열차가 개통된 지난 1937년 신설돼 60여년 동안 인천 시민의 삶과 애환을 함께 해오다 1994년 폐역돼 역사 속으로 사라져 더이상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이러한 소래역 대합실을 소래역사관을 통해 다시 만나면서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추억 속 소래포구의 모습으로 빠져들 수 있다. 글 _ 김미경박용준김민 기자 kmk@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인천어디까지가봤니] 인천대공원

인천대공원은 298만4천㎡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인천에서 가장 넓은 공원이다.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이 곳을 다녀갔지만, 워낙 공원이 넓은 탓에 곳곳에 숨겨진 명소들은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인천대공원이 자리잡은 관모산에서 발원하는 장수천은 인천대공원~장수동~만수동~서창동을 거쳐 소래생태습지공원에서 바다와 만난다. 길이 6.9㎞에 이르는 장수천은 많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자전거와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산책로를 갖춘 2~3급수의 생태하천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인천대공원~장수천~소래생태습지공원~소래포구 구간은 인천 둘레길 제6코스이기도 하며, 인근 주민들의 힐링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놀이공원이나 먼 유원지까지 가지 않아도 팍팍한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인천대공원과 장수천 일대를 다녀왔다. 당신은 인천대공원을 가봤습니까?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5월의 하루, 8번 버스(송도~인천시청~송내역)를 타고 인천대공원 정문에 내렸다. 정문 앞 도로는 언제나 그렇듯 많은 차로 붐비지만, 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은 보이지 않고, 그와는 전혀 다른 자연이 펼쳐진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평일인데도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눈에 띄었다. 인천대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벌써부터 수십년은 족히 됐을 아름드리 나무들이 봄의 절정을 알렸다. 1년 중 방문객이 가장 많다는 벚꽃 시즌은 이미 지났지만, 푸르른 녹음과 곳곳에 피어있는 노랑분홍 빛깔의 꽃들이 뿜어내는 정취는 벚꽃 시즌 못지 않았다. 인천시민이든 아니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정문, 수천대는 족히 댈 수 있을 것 같은 주차장을 지나 처음으로 들른 곳은 꽃 전시관. 계절의 여왕이 위용을 뿜어내고 있는 이 곳엔 꽃잔디, 범부채, 노루오줌 등 갖가지 꽃들이 반겼다. 인천대공원은 꽃 전시관말고도 수목원, 장미원, 야생화단지 등 공원 곳곳마다 계절의 향기를 꽃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3~12월 운영되는 인천수목원은 1천75종 22만4천847본의 나무가 있어 연간 20만명 가량이 찾고 있다. 다양한 나무들이 십년 넘게 전문 녹지연구사들의 관리를 받아 단순한 휴게나 전시 기능 뿐만 아니라 교육용으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맞은 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4만여㎡에 달하는 호수는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친환경 시설이 새로 들어섰다. 호수 초입에는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여럿 생겼으며, 나무로 만든 관찰 데크가 강가를 따라 자리잡았다. 기존 콘크리트 길은 황토 산책로로 바뀌어 호수를 따라 걸으며 한껏 여유를 부리기 좋다. 수질이 한결 나아진 호수에서는 여전히 거위와 청둥오리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꿨다. 겁도 없는 청둥오리는 데크 위를 거닐다가 찾는 먹이가 없었는지 이내 다시 호수로 들어간다. 호수를 반 바퀴쯤 돌고 나니 어느덧 느티나무길은 1인용부터 2인용 4인용 등 각양각색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붐볐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나온 어머니, 휠체어를 타고 나들이 나온 장애인, 사랑을 더해가는 연인 등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표정은 하나같이 편안했다. 인천과 인연이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는 백범광장을 지나니 관모산으로 올라가는 숲길이 나왔다. 자전거 광장에서 약간의 돈을 내고 빌리거나 집에서 가져왔을 자전거는 으로 봄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높이 162m의 관모산은 낮은 산이라 걷는 데 부담이 없으며, 코스에 따라 정상까지 450~1천560m의 여러 길이 나 있다. 관모산 등산로에 설치된 메타세콰이어 길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이 곳이 도심과 멀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덧 잊게 된다. 배가 고플 때는 별도의 음식물을 팔지 않는 공원 안을 벗어나 동문 쪽으로 향하면 800년 된 은행나무와 지역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이 자리 잡은 만의골이 제격이다. 마을 중심에 인천시 기념물 12호 만의골 은행나무가 자리 잡은 만의골은 인천과 시흥 경계에서 독특한 마을 분위기를 지니고 있으며, 인천 맛집 리스트 상위권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수준급 맛집들이 곳곳에 있다. 집 앞 하천에서 만나는 바다 장수천 두시간 남짓 걸린 인천대공원 탐방의마지막 코스는 습지원이다. 다목적광장이나 시민의 숲, 자연학습장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습지원은 저 멀리 산 너머 보이는 아파트 옥상으로 도시임을 짐작할 뿐, 영락없이 어느 시골에 도달한 느낌을 받는다. 인천대공원에서 내려온 장수천은 이 곳에 이르러 만중골못, 붓꽃못, 백련못 등 연못을 형성, 우리가 알던 인천대공원과는 또다른 식생을 형성한다. 습지원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니 맞은 편에 너나들이 캠핑장이 보이면서 본격적인 장수천에 도달했다. 많은 생태하천을 가봤지만, 장수천은 특히나 산책로가 잘 형성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전거 도로는 일반 보행로와 분리돼 라이더들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하천 주변의 식생 또한 보행로와 떨어져 오롯이 보존됐다. 장수천 산책로를 따라 인천대공원 경계를 벗어나니 남동문화생태누리길이라 명명된 둘레길이 펼쳐졌다. 수현리, 장자리, 만의리 세 곳의 지명을 합쳐 부르기 시작했다는 장수천은 장수동 택지 지구를 비켜가 만수3지구로 향했다. 네발나비, 뿔나비 등 갖가지 곤충은 물론, 장수천에서는 거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산책로는 곳곳에 운동시설과 쉼터를 갖추며 단조로움을 피하고 각양각색의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특히, 이슬방을과 무지개 등 지하구간마다 예술작품을 터널에 설치해 어두운 이미지 대신 감수성을 건드리며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곳곳에 설치된 징검다리와 목교를 이용해 장수천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만수3지구를 넘어가니 장수천은 차츰 폭이 좁아지며 하류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괭이갈메기, 해오라기 등 바다 새가 하천에 날아다니며 먹잇감을 찾고 있고, 흙은 육지 모래 대신 갯벌 흙과 비슷해졌다. 곧 아시안게임이 열릴 남동경기장을 지나니 이제는 최근 조성된 택지지구인 서창2지구에 들어서며 장수천은 바다를 향했다. 바로 이 곳 서창동에 이르러 장수천은 소래생태습지공원과 만나 하천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바다가 된다. 이번 탐방을 통해 발견한 인천대공원과 장수천의 매력은 꾸미지 않은 친근함이다. 사람 중심의 과한 시설물로 치장한 어느 공원들과 달리 멀리 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인천대공원과 장수천이 많은 사랑을 받는 데에는 과연 이유가 있었다. 글 _ 박용준 기자 yjunsay@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미리보는인천AG] 6. ‘빛과 바람 그리고 춤’을 품은 주경기장

45억 아시아인들의 축제의 장이 될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이 마침내 위용을 드러냈다. 주경기장은 빛을 담다. 바람이 분다. 춤을 춘다는 세가지 컨셉을 바탕으로 하늘과 바다를 담은 도시인 인천을 형상화했다. 주경기장에서는 9월 19일 개막식과 10월 4일 폐회식은 물론 육상경기, 크로켓경기, 마라톤 결승지점으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주경기장에서 시작하는 화려하고 힘찬 경기는 45억 아시아인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6만2천818개 관람석 개폐막식 등 열려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은 인천시 서구 연희동에 위치하고, 전체 연면적 11만3천620㎡에 5층 규모로 보조경기장과 각종 부대시설을 갖췄다. 관람석은 모두 6만2천818석이며, 개폐막식 외에 육상 및 크리켓 경기가 치러진다. 2011년 6월 착공해 2014년 6월말 준공예정이었으나 완벽한 개폐막식 준비 등을 위해 공정을 조정하고 장비와 인력을 집중 투입해 공사기간을 2개월 단축했다.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건설하기까지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위한 경기장 건설 사업 중 가장 논란이 많았고 사업지속의 불투명성으로 가장 늦게 착공된 사업이 바로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이다. 2007년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당시 체육 인프라 확보여부가 유치 당락의 결정적 상황에서 각국의 NOC 위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인천의 체육 인프라는 문학경기장과 삼산체육관이 고작으로 주경기장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경쟁도시 인도 델리와는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유치 이후, 최대 수용인원이 4만8천590석인 문학경기장을 주경기장으로 사용 가능한지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OCA측 규정에 따른 개폐막식 7만석 규모의 주경기장으로 증개축시 최대 관람 가시거리 190m를 초과한 관람석이 다수 발생함은 물론, 관중석 내 기둥으로 1만2천석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회운영 면에서도 문학경기장은 개폐막식 행사요원, 입장대기, 선수단 등 2만여명이 대기할 수 있는 대기장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방송차량방송장비 등을 설치할 미디어존과 문화행사, 전시공간이 부족했다. 또한 행사에 따른 행사용품보관, 보안검색용 펜스설치, 자원봉사자 대기용 임시천막 등 관람석 확충이후 배후공간의 절대적 부족 등 국제행사를 개최할 수 없는 다수의 문제점이 도출돼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경기장 신설을 추진하게 됐다. 절실했던 국비 확보 대한민국의 국격을 더 한층 높이고 국익 증대를 위해서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뤄야 하는 사명에 따라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건설을 위한 국비 지원은 절실했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30%)와 2002부산아시아드경기대회(36%)에 국고지원을 한 사례가 있고, 대회지원법에 국고지원을 30% 해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국비지원을 거절했다. 정부는 당초 국비를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주경기장 신축을 허용한 점을 들어 불가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제의 장기 침체로 인천의 재정 형편이 어려운 상황 속에 지방채 발행을 통해 주경기장의 건설비를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가 행사인 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건설에 국고 지원이 한 푼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에대해 인천시는 정부로부터 국고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과 183만명의 인천시민들의 서명운동을 이끌어낸 인천시민사회와 여야 인천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해를 넘겨가며 주경기장 국비를 확보한 노력의 결과로 국비지원을 거부했던, 기획재정부로부터 2012년도에 150억원, 2013년도 615억원, 나머지 잔여액 411억을 2014년도 정부 예산(안)에 편성하였으나,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150억원을 증액 561억원을 편성해 총사업비 4천900억원중 국비 1천326억원(국비지원율 27%)을 지원받았다. 인천시는 당초 민자사업에서 재정사업으로 전환해 당초 약속을 불이행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패널티로 대회지원법에 따른 30%가 아닌 국회 예결위에서 정한 24% 기준을 고수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기획재정부를 지속적으로 방문해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국가적 차원 및 우리나라의 국격이 달려 있는 국제행사이고 대통령 공약사항임을 강조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서구 주경기장 건설을 위한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육상크로켓경기마라톤 결승지점으로 활용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는 개폐막식의 화려한 퍼레이드, 육상선수들의 숨소리, 땀방울을 보고 들을 수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경기를 신나게 구경할 수 있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폐막식은 주경기장의 장점과 특색이 최대한 반영된 프로그램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처럼 45억 아시아인들의 평화와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개폐막식을 통해 이런 바램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서편제의 임권택 영화감독이 총감독을 킬러들의 수다의 장진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개폐막식은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특색 있는 퍼포먼스를 그려낼 것이다. 육상경기의 원형은 4천년전 고대이집트의 유적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역사상 최초의 육상경기는 1866년 제1회 영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였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 육상 종목이 채택되어 12개의 세부종목으로 진행되었으며 금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등 총 17개 종목에 남자는 24개, 여자는 23개 총 47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한 경기로 영국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하여 영연방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2010년 제16회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때 처음으로 채택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인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가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금메달 수는 남녀 각 1개씩 총 2개이다. 대회 끝나면 시민의 문화체육 공간으로 2014인천아시안게임 신설경기장 사후활용 계획의 전반적인 관점은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은 주경기장의 흑자 수입으로 기타 경기장의 적자를 보전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경기장의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2013년 1월 완료된 서구 주경기장 사후활용 MD컨설팅 연구용역에 따르면 대회 이후 가설 관람석 3만 여석을 철거하고 대형 영화관, 할인점, 아울렛, 연회장, 뷰티클리닉, 스포츠센터 등 대규모 상업 및 문화시설과 함께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으로 영화관 유치에 필요한 층간 높이를 설계에 반영하는 등 하드웨어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사전에 반영해 주경기장을 건립했다. 글 _ 배인성 기자 isb@kyeonggi.com 사진 _ 2014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제공

[인천공항속문화이야기] 4. 공항에서 느끼는 전통의 향기 왕가의 산책

주상전하 납시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거리 한 복판에서 좌통례(조선시대 관직 통례원의 으뜸 벼슬로, 예식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정3품의 관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눈에 뛰는 것은 왕가의 산책 행렬. 인천공항에서 국왕이 조선시대 궁궐을 산책하는 모습을 재현한 왕가의 산책 행사였다. 지난 2009년 경복궁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2010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인천국제공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왕가의 산책은 총 20여명의 출연진이 투입되어 연중 365일 진행된다.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구역 전 지역에서 50분씩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와 4시 등 하루 3차례 진행된다. 또 일반지역 4층 한국문화거리에서는 오후 3시부터 15분간 진행되는 등 왕가의 산책 행렬은 하루 4번 인천공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총 연간 1천200여 회에 달하며 그동안 19만 명 이상의 여행객들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항에 울려퍼지는 주상전하 납시요 왜 장소가 대한민국 대표 관문인 인천공항으로 옮겨졌을까. 간단하다. 한류열풍으로 높아진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공항에서의 체류시간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인천공항만의 차원 높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왕가의 산책은 국왕과 왕비, 왕세자와 세자빈, 공주, 호위무사 등으로 구성하여 인천공항의 환경에 맞춰 최적화하였고, 출연진들의 의상과 소품은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해 제작됐다. 또 관광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상궁, 나인, 악장, 의장물 등의 인원과 장비를 추가,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장엄한 궁중음악을 제공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왕가의 산책은 대표명절 설날과 추석연휴 기간에는 국왕과 왕비 등의 출연진들이 나오는 전통행렬과 함께 조선시대 관리들의 공식적인 행차에 따르는 행진음악을 연주하는 대취타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역 연기자가 참여하여 왕세손의 행렬을 재현하는 이벤트를 시행하는 등 다양한 조선시대 왕실의 생활을 스토리텔링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인가요? 외국인 관광객 호기심 왕가의 산책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거리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외국인 관광객들의 큰 호기심을 불러온다. 한 면세점 종사자는 왕가의 산책 행사가 시작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혹시 영화촬영이냐? 아님 드라마를 찍는것이냐? 등이다면서 쇼핑을 하던 관광객조차 모두 왕가의 산책에 시선을 빼앗기기 일수라고 말했다. 실제 왕가의 산책 행사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그동안 TV, 영화, 드라마에서만 보던 조선시대 모습을 공항에서 직접 보게 되니 왕가의 산책에 시선을 한 번에 빼앗기고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누르기에 정신없다. 자신의 이름이 킹(King)이라고 밝힌 한 외국인 관광객은 내 이름이 한국의 국왕을 호칭하는 왕(영어로 King)과 같다면서 나도 왕이니 우리나라 국왕이 입는 옷을 사고 싶다. 어디서 파느냐. 또 가격은 얼마냐고 물어왔다. 또 다른 중국인 관광객은 얼마 전에 해를 품은 달을 중국에서 드라마로 봤다며 생각지도 못했는데 한국을 찾게 되면서 왕이 산책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어 너무나도 신기하고 뜻 깊다고 말했다. 내국인도 사랑하는 한국적 퍼포먼스 왕가의 산책은 내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인들이 왕가의 산책을 본 뒤, 다시금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품게 하고 있다. 수많은 연세가 지긋한 한국 관광객들도 왕가의 산책 행렬에 관심을 보이며 정확히 조선 어느 왕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지, 출연자 각각의 직위와 역할까지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는 왕가의 산책 행사를 보신 많은 내외국인들로부터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는 좋은 행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장에서도 매번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행렬 시작과 끝에는 왕가의 산책 출연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타임이 구성되어 있어 관광객들에게 추억도 남겨주고 있다. 하루 평균 500여명의 여객들이 기념촬영을 해간다. 글 _ 이민우 기자 lmw@kyeonggi.com 사진 _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