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구] 세월호 참사 애도 경건한 ‘어버이날’

인천 계양구는 5월 7일 제42회 어버이날을 맞아 지역 내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어버이날 기념식을 계양구 노인복지관에서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은 세월호 사고에 따른 범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경축행사를 대폭 축속하고, 기념인사와 유공자 포상, 계양 구립여성합창단의 어버이 노래 제창 등 기념식만으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구는 매년 사라져가는 효 사상과 경로효친 의식을 확산하고자 사회의 본보기가 되는 효행자와 장한 어버이, 효 실천 및 노익복지 기여 단체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정부 포상자로 추천하고, 자체 포상 또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오랜 기간 치매로 고통받는 시아버지와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문순복씨(54여계양1동)가 효행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효행 청소년에는 지동호군(14양촌중), 효 실천 기관(보건복지부 장관상)에는 인천 해서초등학교가 선정됐다. 또 문재홍씨(82계양2동)는 장한 어버이 뽑혀 인천시장상을 받는 영애를 안았고, 동주민센터와 노인복지관에서 추천받은 지역주민 9명과 단체 1개가 각각 구청장 표상을 받았다. 구 관계자는 앞으로도 효 사상과 경로효친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라며 특히 어르신들의 편안한 노후를 영위할 수 있도록 노인복지사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 _ 김민 기자 suein84@kyeonggi.com 사진 _ 인천 계양구청 제공

[ISSUE] 세월호 참사

수백여 고교생들의 학창시절 마지막 추억, 그리고 50년지기 동창생들의 끈끈한 우정도, 삽시간에 검푸른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다. 여객선 세월호가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3박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일반 승객, 승무원 등 모두 476명의 탑승객 중 174명만이 구조됐다. 사망자 및 실종자 포함 총 302명 중 사체 인양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미 100명을 훌쩍 넘은 사망자 수만 늘어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58분께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남서쪽 3㎞ 해상에서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6천825t급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 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여객선은 신고 접수 2시간 20여분만에 완전 침몰했다. 기회는 있었다. 침몰 전 초기대응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훨씬 더 많은 승객들이 생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장을 비롯한 선박승무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등 미흡한 초동조치는 더욱 큰 참사로 만들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대다수의 승객들이 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그대로 믿고 따라 그 자리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안일한 사고대처와 승객의 안전을 저버린 채 자신들의 목숨 챙기기에 급급했던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들의 행태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승객들이 안내 방송을 믿고 있던 사이 선장과 항해사 등은 교신이 끊긴 오전 9시37분께 자기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 밖으로 탈출했다. 이에 반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살신성인으로 타인의 목숨을 구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삶이라는 희망을 남겼다. 사고 직후부터 시작된 구조작업에서 온 국민이 바라는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고 사체만 인양되고 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기적을 바라고 있지만,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무책임한 선사와 선장, 선박직 선원의 행태는 온 국민을 절망에 빠뜨렸다. 또한 정부의 재난 대응은 매뉴얼도 시스템도 없이 우왕좌왕했고, 결국 더 많은 이들을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다. 대한민국을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 참사. 그 아픔을 치유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기약 없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도 나보다 남을 위해 한목숨 바칠 수 있는 소리없는 영웅들이 있기에 한가닥 희망을 본다. 사람으로 상처받은 아픔을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게 해준 영웅들이여. 하늘에서 고이 잠드소서. 故 박지영씨 뛰어 내려 마지막 외마디 10여명의 학생들에 구명조끼 입힌뒤 침몰하는 세월호와 바닷속으로 사라져 세월호에서 선내 방송을 담당했던 박씨는 구명조끼를 주변의 학생들에게 양보한 뒤 침몰한 세월호와 운명을 같이했다. 사고 당시 박 씨와 함께 3층 로비에 있었던 김수빈군(16)은 친구들 10여명과 함께 있었는데 우리에게 구명조끼를 입어라며 건네고, 움직이지 말고 난간을 꼭 붙잡고 있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군에 의하면, 김군과 학생들이 누나도 구명조끼 입으세요라고 울면서 소리쳤지만, 박씨는 끝까지 10여 명의 학생에게 구명조끼를 착용시키고 움직이지 말고 끝까지 난간을 붙잡으라고 지시했다. 김군은 배가 점점 더 심하게 기울면서 비상구 쪽으로 몸이 완전히 쏠렸는데, 누나가 우리를 다독이면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이후 구조대가 도착하자 승무원 누나가 전부 뛰어내려라고 소리쳐 모두 뛰어내렸다고 전했다. 4월 22일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박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이날 오전 9시 박씨의 시신이 차량에 운구되자 유가족들은 지영아라고 박씨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특히, 어머니와 여동생은 바닥에 주저앉아 먼 길을 떠나는 딸을 보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함께한 시민들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군 채 뜨거운 눈물만 쏟아냈다. 박씨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벌써 하늘나라로 돌아가서 어쩌느냐. 제발 돌아와라며 통곡,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박씨는 2012년 다니던 수원과학대를 휴학하고 세월호 선사인 (주)청해진해운에 입사해 승무원으로 일했다가 이번 참사를 맞았다. 한편 박씨의 의로운 행적이 알려지면서 시흥시는 박씨의 의사자 선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만명의 누리꾼들도 참여하며 의사자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故 김기웅정현선씨 우리 결혼은 하늘에서 침몰의 순간 한명이라도 더 탈출시켜야 배안으로 뛰어 들어간 살신성인 커플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기웅씨와 승무원 정현선씨는 올가을 결혼을 앞둔 연인 사이였다. 김씨와 정씨는 각각 4월 19일과 20일 인천 길병원과 인하대병원에서 장례를 마치고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 함께 안치됐다. 인천대 학생인 김씨는 군제대 후 학비를 벌겠다며 4년 전부터 선상에서 불꽃놀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승무원인 정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친구들과 인천 용유도에 놀러갔고 최근에는 용인의 놀이동산에 다녀오는 등 풋풋한 사랑을 키워왔다. 이들은 김씨 대학 졸업에 맞춰 올가을께 결혼할 예정이었다. 유가족들은 49제에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김씨와 정씨는 사고 당시 누구보다 앞장서 승객들을 구하다 함께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3층 로비에 있던 김씨는 사고를 인지하고 동료 3명을 깨워 나오던 중 정씨가 없는 것을 알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힘겹게 만난 김씨와 정씨는 바로 탈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기 위해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한 탑승객은 정씨와 김씨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이런 참변을 당해 매우 비통하다며 이들은 탑승객들 탈출시키기 위해 소리치며 떠밀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씨는 평소 정 장군이라 불릴 만큼 남자 직원 못지않은 능력과 책임감을 보였으며, 어린이와 노약자를 배려하는 태도로 많은 승객과 직원들이 따랐다. 김씨도 활달한 성격으로 졸업학기임에도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평소보다 아르바이트에 매진했으며, 사고 당시에도 여자친구인 정씨와 시간을 보내려고 일부러 세월호에 탑승했다. 정씨의 언니는 배가 집이나 다름없어 유품이 모두 물에 잠겨 기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탈출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故 정차웅군 구명조끼 벗어 친구에게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하늘나라에선 못다한 꿈 이루기를 덩치카 커서 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안산 단원고의정군은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넸다. 곧바로 다른 친구를 구하러 나섰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같은 반 학생 김모군(17)은 차웅이는 원래 친구들 말도 굉장히 잘 들어주고 평소에도 친구를 위해 양보를 잘하던 친구였다며 보지는 못했지만, 차웅이는 구명조끼를 벗어주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정군은 평소에도 심성이 곱고 양보를 잘하는 친구로 알려졌다. 활달한 성격에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 없던 모범생이었다. 특히 검도 3단 유단자로 대학 체육학과에 진학하는 꿈을 가졌었다. 이제 그 꿈은 이룰 수 없게 됐지만,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 던지는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남겼다. 정군의 친구 나정훈군(17)은 차웅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4월 22일 먼 길을 떠나기 전, 정군은 봄햇살이 따사로운 학교 운동장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돌았다. 이후 정군은 같은 반 친구 2명과 함께 20분 간격을 두고 연화장으로 향했고, 마지막까지 같은 추모공원에 나란히 자리했다. 故 최덕하군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오전 8시 52분 최초로 119에 신고 174명 구조 길튼뒤 싸늘한 주검으로 안산 단원고의 최군은 16일 오전 8시52분 119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고 신고했다. 2분 뒤 연결된 목포해경은 열일곱살 고등학생에게 경도와 위도, 선명과 선박 종류가 뭔지 따위를 캐물으며 시간을 허비했지만, 최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30여분 뒤 해경이 도착했다. 결국 이 신고는 174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이 중에는 탈출 지시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 살고자 했던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 15명이 포함됐다. 바로 최군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선을 타고서. 이에 반해 자리를 지키라는 선내 방송에 따랐을 최군은 물론 다른 친구들도 구조선을 탈 수 없었다. 아니 타지 못했다. 결국 최군은 지난 24일 새벽 배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4층 선미 객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가 발생한 지 8일만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뻔한 상황을 막았던 비보에 국민들은 또한번 오열했다. 최군의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트위터 등에 최군을 그리며 애달픈 글들을 올렸다. 활발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친구들로부터 덕하최라고 불렸던 최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故 남윤철 교사 제자들 가슴 속에 부활 두려움 떨고 있는 학생에 든든한 교사 객실서 아이들 밀어내고 끝내 최후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 남윤철 교사는 기우는 선실 비상구에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줬다. 두려움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 대피시켰다. 그는 가까스로 갑판까지 올라왔다가 아래층 객실로 다시 내려갔다. 안내 방송대로 객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물이 머리에 차오를 때까지 밀어냈다. 그는 이튿날 세월호 주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 교사의 장례미사에서 그의 아버지는 사랑한다. 내 아들아, 잘 가라, 장하고 훌륭한 내 자식이라고 오열했고 장례식장은 일순간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전원 구조라고 해서 병원에 있으면 데려오려고 내려갔다며 중간에 상황이 바뀌어 학생들 30명 정도가 객실에 남아 있어 구해야 된다고 했을 때 윤철이가 그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눈물을 삼켰다. 또 아버지는 지식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스승으로 남으라고 했는데 그들을 살리다 결국 그렇게 됐다며 말끝을 흐렸다. 남 교사의 부친이 치과의사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세영 협회장과 회원들이 2억 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이와 함께 남 교사의 6반 제자 박호진군은 쓰러진 자판기에 끼여 있던 다섯 살 여자아이를 안고 나왔다. 90도 넘게 기운 세월호 난간을 붙들고 아기요, 여기 아기 있어요 외쳤다. 박군은 아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배를 벗어났다. 열일곱 살 소년은 아버지가 네 살 때 돌아가셔서, 부모 찾으며 우는 아이를 두고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故 최혜정 교사 걱정말고 너희들 먼저 기울어져 가는 배안에서 제자들 구출 위기속에 강했던 여린 새내기 선생님 올해 첫 부임한 단원고 2학년 9반 담임교사 최씨는 사고 당시 SNS로 제자들에게 걱정하지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전하며 10여 명의 학생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첫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것. 지난 19일 오전 안산 단원고 최혜정 교사의 발인이 엄수됐다. 이 자리에는 사랑했던 가족과 제자들 100여명이 눈물로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버지 최재규씨는 똑똑하고 꿈 많던 아이였는데, 착하고 성실했던 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다고 오열했다. 또 최씨의 대학 동기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선후배와 동기들이 모두 좋아하고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동국대에서 역사와 영어를 복수 전공한 그는 재학 중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 사범대를 수석졸업 한 뒤 지난해 3월 단원고 교사로 임용된 새내기 교사였던 최씨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제자들을 살리고 자신은 산화한 최씨의 모습에, 이 시대의 올바른 스승상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의 가슴에 아로새겼다. 글 _ 구재원이명관박용준정자연박광수 기자 kjwoon@kyeonggi.com

[인천어디까지가봤니]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국 화교의 130년 역사를 품은 관광지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다. 특히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언제나 관광객을 반갑게 맞아주는 패루 삼 형제가 있다. 패루는 인천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탑 모양의 문으로, 상가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세운 중국 전통의 문루다. 4개의 붉은 기둥으로 웅장함을 뽐내는 인천역 앞 제1 패루를 들어서면 붉은색 바닥과 깃발 등이 마치 중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우뚝 솟은 패루를 지나 계속 경사진 길을 300m가량 걸으면 T자형으로 길이 양쪽으로 나뉘고 주변 상가는 온통 중국의 거리에 온 듯이 느껴진다. 붉은색 간판과 홍등이 내걸리고, 음식점이나 진열된 상품도 대부분이 중국 일색이다. 화려하게 단장한 인천차이나타운 곳곳을 둘러보는 재미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북적이던 도시였던 인천 차이나타운은 지난 1967년 외국인 토지소유권 제한조치로 장사하기 어려워진 중국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최근 다시 부흥하고 있다. 자장면 발상지와 차이나타운, 근현대문화 역사 등이 어우러지며 관광특구로 지정, 내국인은 물론 중국인까지 몰려드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130년 화교 역사 품고 인천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 인천 차이나타운의 역사는 130여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나라의 군인과 함께 온 40여 명의 군역상인이 이 땅에 정착했다. 주로 푸젠성저장성 등 남방인인 그들은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조선 상인과 무역을 했다. 이후 1884년 4월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商租界章程)이 체결되면서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 1만6천500㎡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고, 그해 10월 청국 영사관도 이곳에 세워졌다. 중국의 조계지가 생긴 후 중국의 건축 방식을 본뜬 건물이 많이 세워지면서 현재의 인천 차이나타운이 됐다. 이후 인천의 화교 수는 급증했다. 1883년 48명이던 화교는 1년 후 5배에 가까운 235명으로 늘어났고, 1890년엔 1천 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청관이라 불리는 청나라 관청(청국 영사관)이 이곳에 세워졌다. 화교들은 인천을 상업 활동의 중심으로 삼으며 전반적인 상권을 장악해갔고, 산둥 연타이 지방에 살던 중국인까지 건너와 채소 농사를 지으며 조선에 양파당근토마토 등을 전파했다. 하지만, 1984년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인천에 살던 화교의 생활이 흔들렸고, 한국전쟁(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거의 파괴됐다. 전쟁 후 화교는 한국에서 외국인 부동산 소유제한 등으로 외면당하기 시작했고, 화교만 운영 가능했던 중국 음식업계에 한국인도 경영허가를 내주면서 생활에 어려움이 커졌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재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인천이 중국 교류의 중심도시가 되면서 이 지역이 역사성과 문화성이 재조명, 인천의 새로운 문화와 관광 명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지난 2008년 21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등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점차 찾아가고 있다. 원조 찾은 누들타운 면의 행렬 중국인도 사로잡은 맛의 유혹 인천 차이나타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을거리다. 대표 음식은 물론 자장면이다. 하지만 자장면 거리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털어내고 새롭게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정통 중국 음식 등 각종 먹을거리의 향기(?)가 가득하다. 이 때문에 인천 차이나타운은 전국 각지의 식도락가가 몰려들어 주말마다 분주하다. 중국풍의 이색적인 공연이 펼쳐지고, 테마거리에선 왕서방과 만날 수 있는 이국적인 정취. 이 풍경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가족단위 나들이객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은 북새통이다. 심지어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까지 원조 자장면의 맛을 보고자 이곳을 찾는다. 10년 전 10여 개의 중국 음식점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며 을씨년스런 뒷골목길이였던 이곳이 대형 중국음식점과 다양한 볼거리가 합쳐지면서 국내 최대의 차이나타운으로 부활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표 음식 자장면은 정통의 맛과 함께 계속 진화하고 있다. 중국 전통의 춘장과 황장을 넣어 특유의 구수한 맛과 담백함이 일품인 하얀 자장, 고기 대신 두부와 해산물을 넣어 느끼함 대신 다채로운 식감을 선사하는 두부 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맛볼 수 있는 정통 중국 음식 중 깐쇼새우는 다른 중국 음식점과 차별화된 특별한 맛이 있다. 국물 없이 마르게 조린 새우살 요리라는 뜻으로 칠리소스 새우라고 하는 깐쇼새우. 중국 전통방식으로 파삭한 튀김 속에 쫀듯한 튀김옷이 있고 그 속에 부드러운 새우살이 있어 한번 맛보면 또다시 찾게 된다.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다 보니 전가복도 인기 메뉴. 가족 구성의 결속력과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는 큰 의미가 있고, 이를 요리에 비유해 각종 해산물을 모두 종합한 풍성한 요리를 일컫는 요리다. 특히 공갈빵은 최고의 인기 상품이다. 바삭한 피와 달콤하고 고소한 속의 조화로움이 일품인 공갈빵은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푹 꺼지는 속이 텅 비고 겉만 부풀게 구운 중국 고유 빵이다. 중국에선 공기빵으로 불린다. 먹는 재미보다 빵을 만들 때 구멍을 때우는 모습이 마냥 신기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표 먹을거리다. 또 입이 심심할 때 생각나는 게 바로 월병이다. 남송 때부터 전해지는 중국 전통 과자로 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반죽으로 껍질을 만들고 달걀, 팥소, 말린 과일 등을 넣은 다음 무늬가 있는 나무틀에 끼워 모양을 만든다. 중국에서는 해마다 음력 8월15일 중추절이면 가까운 이웃에게 월병을 선물하고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행복을 빌어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또 고구마단호박고기검정깨 등을 넣고 200℃가 넘는 화덕(옹기)의 안쪽 벽에 붙여 구워낸 중국식 항아리 만두인 옹기병도 눈에 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움으로 꽉 차있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한 항아리에 60여 개 정도를 붙여 12분 정도 구워낸다. 한편,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시가 추진하는 누들(면) 타운의 첫 시작점이자 중심 역할을 한다. 누들 타운은 이곳의 자장면과 신포동 쫄면, 용동 칼국수,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으로 이어진다. 맛보고 즐기고 관광레포츠형 특구 제2도약 인천 차이나타운의 면적이 확장되고, 먹을거리는 물론 숙박체험 등의 시설이 갖춰지는 등 제2의 도약을 맞고 있다. 중구는 차이나타운 특구를 테마형 관광 또는 먹을거리숙박볼거리체험 등 시설이 종합적으로 연계된 관광레포츠형 특구로 조성 중이다. 앞서 차이나타운은 지역 특성에 맞게 선택적으로 규제 특례가 적용되는 지역특화발전 특구로 지난 2007년 4월27일 지정(11만 4천136㎡)됐으나, 특례 활용 대부분이 상업지역에 있는 중식당 등에만 적용돼 특구 내 일부가 비활성화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구는 차이나타운 비활성화 구역과 인접한 송월동을 각종 동화 속 캐릭터 벽화와 시설물을 갖춘 동화마을로 조성한 데 이어 차이나타운 활성화 구역과 송월동 동화마을을 잇는 300m 구간을 중국풍으로 재정비했다. 중국풍 거리는 차이나타운 비활성화 구역 가로질러, 차이나타운을 방문해 송월동 동화마을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에게 비활성화 구역이 자연스레 노출되고 있다. 특히 구는 특구 균형발전 이후 대대적인 면적 확장에 돌입할 계획이다. 화교 이주라는 차이나타운의 역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주민의 참여와 민관 소통을 통해 확대 범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차이나타운~인천 내항을 연결해 바다자원 및 숙박시설을 활용하는 방안과 개항장문화지구까지 확장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글 _ 이민우신동민 기자 lmw@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Interview] 서학보 인천 차이나타운 번영회장 맛과 멋, 역사와 사람 어울림의 공간 눈앞 차이나타운은 패션입니다. 맛과 멋, 역사, 사람이 어울리는 공간의 완성이 멀지 않았습니다. 서학보 인천 차이나타운 번영회장(56)은 차이나타운은 단순히 중국 민속촌이 아닌, 한국과 중국 문화가 충돌해 생긴 제3의 문화공간이라며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존재에서 문화가 된 차이나타운만의 패션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차이나타운을 패션 단 한 단어로 요약했다. 여느 음식점 사장과는 달리 맛보다 문화를 강조하는 한국 출생 화교 2세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맛 자체가 형태가 없는 만큼, 세상엔 맛있는 음식도 맛없는 음식도 없다. 가령 술을 마실 때 누구와 먹고,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쓰고 달고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사람과 음식의 어울림, 먹는 그 순간의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도록 음식문화를 꾸려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지난 2000년 중국 웨이하이(威海)시로부터 기증받은 패루가 입구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재정비에 들어간 지 14년이 지났다. 타운 내 상인은 십시일반 모은 정성으로 시민을 위한 무료 공연을 준비하는 등 앞으로도 변함없는 한중 융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서 회장은 한국에서 중국 문화를 맛보게 할 수 있는 계몽 역할을 한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통 중국 무용과 노래를 보이며 한중간 화합을 키워나가겠다며 앞으로 10년 안에 도리를 중시해 신뢰가 높았던 옛 중국 상인인 진상(晋商)과 휘상(徽商)이 가득한 차이나타운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글 _ 이민우 기자 lmw@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아름다운경기도] 도자투어라인

도공이 가마에 불을 지핍니다. 강변의 흙과 물로 빚은 도자를 밀어 넣었습니다. 잘 건조된 참나무 장작도 넣습니다. 이글루 같은 가마는 이글이글 달아오릅니다. 앞으로 나흘. 황토색 도자가 매끈한 도자로 탄생하는 시간. 그동안 가마 안 도자는 어떤 꿈을 꿀까요. 하늘빛일까요. 아니면 우윳빛일까요. 가마 위 우뚝 솟은 굴뚝에서는 아리송한 연기만 모락모락. 도자는 생명이다. 그 사이 죽은 것은 없다. 빛깔은 시간이 지날수록 광채를 더한다. 문지르고 닦다 깨어지면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순환주기에 따라 흐르고, 태어나고, 흐르기를 반복한다. 광주이천여주를 잇는 삼각벨트 도자투어라인 지금부터 딱 6개월 전 일이다. TV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가 끝난 것이. 대중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으나 도자기 같은 묘한 매력을 풍긴 이 드라마는 조선 최초 여성 사기장인 백파선의 일대기를 그린 조선판 트렌디 드라마였다. 그 배경이 되는 무대가 바로 광주다. 남한강에서 북한강으로 갈리는 분파지점인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일대는 과거 도자 운송과 원료 조달의 관문이었다. 그렇게 남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황포돛배가 드나든 여주나루터에 이른다. 내륙교통을 기반으로 도자문화를 발달시킨 이천까지 연결하면 오리온의 벨트 같은 도자투어라인이 완성된다. 이 투어라인 안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도예가들의 꿈들로 반짝인다. 이들 세 지역에 걸친 요장(일종의 공방)은 697곳, 도예가들만 1천916명에 달한다. 도내 등록 도예가(2천374명)의 80.7%의 도자벨트 안에 집중한 것이다. 과거 조선팔도를 호령했던 광주, 여주, 이천 도자의 명성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 4월 2일, 한국도자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도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살아 숨 쉬는 도자투어라인을 돌아봤다. 당일 코스로 기획됐으나 여유 있게 도자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과감하게 1박을 권한다. 광주 곤지암도자공원 왕실도자 기품 있는 풍만함 먼저 찾은 곳은 광주시 곤지암도자공원.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곳은 체험형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조성됐다. 69만2천㎡에 이르는 드넓은 대지에 경기도자박물관, 모자이크공원, 구석기체험마당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화려함에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바로 모자이크 정원이다. 가로 72m, 세로 50m의 모자이크 정원은 오방색 이미지를 주조로 청룡과 백호, 주작, 현무 등 사방신이 새겨있다. 분수를 중심으로 매표소에 이르는 길목에는 알록달록 무지개빛깔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꽃잎처럼 박혀 있었다. 투어를 함께한 한국도자재단 이준한 대외협력실장은 전국 각지에서 수집된 수십만개의 도자파편을 가지고 15명의 작가들이 작업해 만든 공원이라며 제작기간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소개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도자파편이었다. 백호도 주작도 파편으로 그려졌다. 폐품으로 수집된 도자를 깨서 날카로운 부분은 사포로 문지르고, 색은 새롭게 덧입혀 거대한 그림을 완성한 거란다. 레드카펫처럼 깔린 모자이크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경기도자박물관이 서있다. 관요의 고장 광주의 도자 역사와 태동부터 현대까지 장구한 한국도자의 변천사가 전시돼 있다. 특히 고려시대부터 현대 도자를 아우르는 소장품 상설전인 한국인이 빚어낸 아름다움 전과 도자의 역사와 특징을 배울 수 있는 도자문화실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도자투어라인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에게는 필수적인 관광코스다. 이를 토대로 이천과 여주에서 만날 지역 특징적인 도자 문화를 미리 체득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는 체 하고 싶다면 꼼꼼히 돌아보고 담아가자. 이외에도 공원에는 갤러리아 카페, 자연생태원, 스페인조각공원, 엑스포조각공원, 한국정원, 캠핑장 등 각종 전시장과 편의시설이 자리해 있다. 이날 시간상 문제로 모든 시설을 다 돌아볼 수 없었지만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 간다면 모두 꼼꼼히 둘러보길 권장한다. 그만큼 예쁘고 얻어가는 것이 많다는 의미다. 이천 세라피아 젊은 도예가의 현대적 창조공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이천 세라피아. 평일에도 수 많은 인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특히 봄에는 더더욱. 설봉저수지와 설봉공원을 중심으로 5천여 본의 왕벚나무가 식재돼 있다. 숨바꼭질하듯 곳곳에 놓인 도자조형물과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흩날리는 벚꽃과 묘한 배경적 어울림이 있었다. 벚꽃이 아름답지만 한 철이다. 이천 세라피아에는 세계 도자예술의 흐름과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 전문 도서관, 체험장 등 현대적인 문화시설이 있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창조센터다. 여기 1층에서 도자, 에콜로지를 생각하다라는 이름으로 오는 8월 24일까지 도자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생태학을 뜻하는 Ecology의 뜻처럼 자연과 동식물, 인간의 세 가지 주제로 모두 95점의 작품이 진열됐다. 전시 말고도 이곳만의 특징이 있다. 바로 창조공방이다. 의미 그대로 의미 그대로 공예 분야에 재능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육성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현재 도자 작가 5명과 유리 작가 3명이 상주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창조공방은 오픈 스튜디오 형태로 관람객들이 직접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켜볼 수 있으며, 아카데미 운영은 물론 막 구워낸 뜨끈한 작품도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물론 파는 것은 작가 마음이다. 다음은 토야지움을 들렀다. 한국도자재단의 마스코트인 토야(TOYA)와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지난 2009년 사무실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수장고를 갖춘 전시관으로 총 4개의 전시실에 1천300여 점의 재단 소장품과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유럽 등 대륙별 세계 도자를 전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자는 물론 다양한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컨퍼런스실과 휴게 공간, 교육학술 공간도 함께 마련돼 있다. 토야지움 왼편에는 토락교실이 놓여있다. 상설체험관으로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물조물 빚기, 반짝반짝 모자이크, 알록달록 그리기 등 도자와 파편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날은 지역 아동기관을 통해 들어온 10여 명의 아이들과 부모가 도자 틀과 백토 반죽으로 진흙 케이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만든 케이크를 들고 고깔모자와 폭죽을 터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토락교실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상설운영하며 개인과 단체에 따라 각각 1만3천원에서 1만5천원의 참가비용이 발생한다. 여주 도자세상 생활도자의 산실 광주와 이천을 둘러봤다면 그 대미는 여주 도자세상이 장식한다. 생활도자의 산실인 여주답게 상대적으로 쇼핑에 특화된 곳이다. 국내 최초의 도자쇼핑문화복합문화관광지인 도자세상은 생활도자에서 예술도자까지 각양각색의 도자를 직접 감상하고 체험하며 구입해 갈 수 있다. 상품의 특성과 고객 취향을 고려해 아트샵과 리빙샵, 브랜드샵, 갤러리샵 4개 매장을 갖추고 있다. 전국 115개의 요장에서 3천800여 종의 다양한 생활도자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만나볼 수 있다. 실제 들어간 매장에는 도자기로 만든 수저와 젓가락, 꽃무늬 도장을 한 다기세트, 백자와 청자 그릇, 화병 등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도자가 진열대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가격 수준을 논하기 힘들지만 소품인 경우 1만원 내외로 그릇과 찻잔이나 밥그릇 등의 세트상품의 경우 10만원 안팎에 판매하고 있었다. 정확한 가격대는 도자세상 온라인 포털사이트(www.dojasesang.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러니 알아서 판단하도록. 쇼핑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도자세상에는 반달미술관이라는 전시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생활도자전문 미술관을 지향한다. 반달이라는 이름처럼 미술관 내 마련된 전시실 이름도 초승달, 하현달, 상현달, 보름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화제의현장] 통일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 DMZ

최근 우리나라 전반에 가장 큰 사회적 화두를 꼽는다면 통일을 꼽을 수 있다. 지난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 한마디는 국민 모두에게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3년4개월만에 금강산에서 다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한동안 잊은 한민족이라는 뜨거운 가슴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특히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체계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 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통일 준비를 선포한 셈으로, 국민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통일 한반도에 대해 어느 때 보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포고양파주연천 등 12개 코스 189㎞ 평화누리길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접경지역인 경기도 곳곳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통일 한반도를 먼저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있어 많은 국민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지난 2010년 개장한 평화누리길이다. 평화누리길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문화유적 등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국민이 찾고 있는 경기도 관광명소이다. 도내 접경 시군인 김포, 고양, 파주, 연천 등 4개 시군 12개 코스 189㎞의 노선으로 이뤄진 평화누리길은 평균 1개 코스에 15㎞가량으로 도보로 4~5시간가량 소요된다. 김포시는 총 3개 코스 37㎞로 한강하류, 철책선, 덕포진, 문수산성, 애기봉 전망대 등을 둘러볼 수 있으며 고양시는 2개코스 24㎞로 행주산성, 철책선, 장항습지, 호수공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파주시는 4개 코스 61㎞로 반구정, 임진각, 화석정, 황포돛배 등을 둘러볼 수 있으며 3개 코스 67㎞의 구간을 갖고 있는 연천군에서는 숭의전, 주상절리, 로하스파크, 철도종단점 등을 볼 수 있다. 평화누리길 일부 구간은 자전거로도 이용할 수 있어 주말마다 가족단위의 많은 시민이 찾고 있다. 문수산성 남문에서 애기봉 입구까지 8㎞ 구간인 김포시 둘째 길은 북한과 가장 인접한 구간으로 민간인 통제구역이 많은 구간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철책 너머로 북한지역을 관찰할 수 있다. 이 구간은 문수산성 남문~홍예문~청룡회관~조강저수지~애기봉 입구까지 도보로 총 3시간20분가량 소요된다. 특히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기생인 애기와의 슬픈 사랑의 일화가 있는 애기봉 정상에서는 북녘땅이 한눈에 바라다보여 통일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숭의전지에서 당포성~주상절리~임진교~허브빌리지~군남홍수조절지까지 이어지는 연천군 둘째 길(18.9㎞)은 들판과 강변, 야산을 통과하며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구간은 도보로 6시간20분가량 소요되며 민가가 적어 도보 여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구간이기도 하다. 임진강 유역의 홍수 피해 방지와 북측 황강댐 무단방류에 조기 대응하기 위해 건설된 군남홍수조절지에는 두루미, 수달서식지 및 오리섬 등이 있어 다양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고 인근에 두루미테마파크도 있어 가족단위의 즐길 것 들이 많은 것이 장점이다. 파주시 첫째 길은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파주 출판도시 이채사거리에서 시작해 문발 IC~송촌리다리~파주NFC~통일동산까지 이어지는 9.7㎞ 구간인 파주시 첫째 길은 도보로 약 3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이 구간에서는 이국적 정취가 느껴지는 출판도시뿐만 아니라 인공습지와 한강하구, 오두산 통일전망대 등도 둘러볼 수 있어 탁 트인 오솔길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행주산성을 둘러볼 수 있는 고양시 첫째 길의 총 거리는 10.1㎞로 약 2시간40분가량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행주산성에서 시작해 행주대교~삼성당마을~섬말다리~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행주대교 북단을 돌아 나가면 도심 속의 전원풍경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시민이 찾고 있다. 두바퀴로 달리며 느끼는 한반도 통일 평화누리길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도보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면, 자전거를 즐기는 도민들도 통일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도 DMZ 인근에서 개최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의 2014년 DMZ 자전거투어 운영계획을 보면 도와 관광공사는 DMZ 자전거투어를 정례화해 오는 10월까지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총 10차례 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자전거투어를 즐기는 시민들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DMZ를 최대한 시민들에게 개방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높이고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도는 지난해 10월13일 정전 60년을 맞아 파주시 임진각 일원에서 DMZ는 우리의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대규모 자전거 퍼레이드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대회에서는 김문수 경기지사를 비롯한 이인재 파주시장 등 주요 내빈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라이더 등 3천여명이 참가했으며 두드림 공연을 시작으로 도미노 퍼포먼스, 자전거 퍼레이드 등이 진행됐다. 특히 정전협정 후 60년 2만1천900일을 상징하는 21.9km 코스를 개발해 운영됐으며 국방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으로 자전거 대회로는 최초로 북한 개성으로 가는 관문인 남북출입사무소(CIQ)까지 주행, 대회에 참가한 라이더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정전 60년간 남북의 아픈 역사적 사건과 DMZ 248km의 자연생태를 담은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도미노 퍼포먼스를 진행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염원했으며, 참가자 개인들은 평화통일 메시지가 작성된 백비브(Back BIB)를 매고 달려 서로 메시지를 보면서 통일에 대한 관심과 나라 사랑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도는 지난해 10월19일에는 연천군 일원에서 자전거 라이더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누리길 자전거 대행진도 개최했다. 이 행사는 정전 60년을 맞아 자전거가 통일의 수레바퀴가 돼 화합평화미래통일을 염원하며 DMZ 접경지역인 연천군의 아름다운 평화누리길을 횡단하기 위해 개최됐다. 민간인 통제구역 코스개발, 외국 단체관광객도 유치 도는 올해 DMZ 자전거투어에 회당 300여명씩 총 3천여명의 시민들을 참여시킬 계획이다. 도가 올해 구상하고 있는 DMZ 자전거투어 코스는 임진각에서 출발해 통일대교~군내삼거리~초평도~임진각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총 17.2㎞이다. 도는 올해부터 장단반도 지역과 평화누리길 주변지역으로 자전거투어 코스를 확대하고 가족 및 단체 단위의 참가를 늘려 임진각 대표 레저스포츠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도는 정례투어 참가자를 확대하기 위해 교육청과 연계해 학생 단체 참가자 모집에 나서며 코레일 등 유관단체와 협조를 통한 수도권 이외 지역 시민들의 참가를 유도할 계획이다. 코스 다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정례코스 이외에 자연경관이 뛰어난 장단반도 등 민간인 통제구역 코스개발에 주력한다. 민간인 통제구역 코스 개발을 위해서는 군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군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민간인 통제구역을 팸 투어 형식으로 시범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또 파주시에서 조성 중인 자전거도로 중 반구정에서 화석정까지의 구간을 투어코스로 활용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도는 DMZ 자전거투어의 홍보를 강화, 외국 단체관광객 유치에도 나선다. 도는 자전거투어에 참여했던 참가자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한 입소문 홍보에 주력하는 한편 한국어학당 외국인, 다문화 가정 및 새터민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 초청 행사도 매회 가질 예정이다. 또한 여행사 초청 행사를 마련해 외국 단체관광객 유치활동에 나서며 경기 컨벤션뷰로의 외국인 대상 인센티브 투어도 지원한다. 혹시 자전거 투어 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한 안전대책도 마련됐다. 도는 자전거 코스 곳곳에 CCTV 등을 설치해 안전사고에 대비토록 했으며 자전거 헬멧 및 안전 장구 등도 수리를 완료하고 라이더들을 기다리고 있다. 단체 참가자들을 위해서는 무전기와 텐트 등도 지원되고 위험구간에 대해서는 미끄럼방지 및 안전 펜스 설치 등의 조치도 완료했으며 자전거투어 참가자 전원을 상해보험에 가입시킬 예정이다. 글 _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사진 _ 경기관광공사

[이슈의현장] 이발소의 변신은 무죄

인천의 이발소가 젊어지고 있다. 1970~80년대를 생각나게 하던 낡은 이미지를 버리고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는 올해부터 인천지역내 이발소를 미용실 부럽지 않은 곳으로 탈바꿈하는 이발소 부활 프로젝트 아들아, 아버지랑 머리 깎으러 가자를 시작했다. 이발소 4곳이 시범이발소로 지정돼 변신을 끝마쳤다. 전통식 이발소가 지금은 지역의 명물 이발소로 거듭나고 있다. 낡고 무거운 분위기의 이발소는 가라! 이발소는 1960년대부터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동네 터줏대감 같은 역할을 하던 친근한 공간이다. 아버지 손을 잡고 머리를 깎으러 가던 바가지머리 철부지 아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어 거뭇거뭇 수염이 나기 시작한 10대 소년에게 하얀 면도거품을 잔뜩 바르고 면도칼로 스윽스윽 면도해주는 하얀가운의 이발사는 남자의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빛바랜 사진과 마찬가지다. 세윌이 흘렀어도 이발소는 여전히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남다른 공간이다. 단순히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몸을 쉬게 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휴식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빠르게 변했고 남자가 미용실 가는 것이 쑥스럽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 요즘, 이발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2005년 인천에는 1천462개에 달하는 이발소가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822개로 줄었다. 이발소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미용실은 4천109곳에서 4천913곳으로 늘어났다. 인천시가 지난해 미용실을 이용하는 남성 525명을 대상으로 이발소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201명(38.3%)이 폐쇄적인 분위기와 낙후된 환경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이미용 기술수준 낙후 117명(22.3%), 접근성 취약 91명(17.4%) 등 이유도 다양했다. 시는 이발소의 낡고 오래된 듯한 환경이 싫다면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바꾸면 되고, 이발소가 시대에 뒤쳐져 있다는 오해는 풀어주면 된다고 해법을 내놨다. 시는 낡고 퇴폐적인 이미지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고 있는 이발소를 다시 살릴 수 있게 이발소를 위한 변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올해까지 이발소 10여 곳을 선정해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간판을 교체하고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인천시 지정업소 표지판 설치, 출입구 환경과 내부 이미용 기구 정비 등을 돕도록 했다. 또 시군구 홈페이지에 지정 이발소 홍보공간을 마련하고 기술친절마케팅 교육도 실시하기로 했다. 시대성심한양청명이발관 변신 또 변신 변신의 주인공이 된 이발소는 모두 4곳이다. 계양구 임학동의 시대이발관, 부평구 부평6동의 성심이발관, 연수구 동춘3동의 한양이발관, 남동구 간석동의 청명이발관이다. 4곳 모두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발소였다. 하지만 이발소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남다른 곳이다. 인천시는 올해 초 아들아, 아버지랑 머리 깎으러 가자 프로젝트에 참여할 이발소를 모집했다. 시가 간판과 외부 환경을 바꿔주고, 인테리어 상담, 친절교육 등을 해주는 대신 이발소 주인이 직접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새로운 이미용 기술도 익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모두 20곳이 신청했고 4곳이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가장 첫 단추는 이발소의 얼굴인 간판을 바꾸는 일이었다. 간판 디자인은 인천대학교 학생들이 기꺼이 나서 디자인 재능을 기부해줬다. 노란 바탕에 동글동글 귀여움이 돋보이는 글씨체로 이발소 이름을 새겼다. 젊은 감각이 한 껏 묻어나는 간판이 속속 이발소 머리에 내걸렸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시커멓게 창문을 가리고 있던 유리창 코팅은 모두 떼어내고 햇빛이 좋은 날에는 이발소 안까지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도록 블라인드를 달았다. 내부도 싹~ 바뀌었다. 이발사는 상징과도 같던 하얀가운 대신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도록 앞치마를 걸쳤다. 미용실처럼 손님이 편하게 누워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기구도 들여놨다. 안심하고 옷과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옷장도 들이고 헤어스타일을 고를 수 있는 잡지와 읽을 만한 책도 생겼다. 이발소 안에는 잔잔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깔리고 화사한 꽃으로 장식도 했다. 변신의 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한달도 채 안돼 이발소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뜸하던 젊은 손님도 급격히 늘어났다. 부평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성철씨(34)는 줄곧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어왔다가 최근 이발소를 처음으로 머리를 잘랐다. 이씨는 이발소는 그냥 아버지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가시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미용실에 다녔는데 요즘 지나다니면서 보니 이발소 간판도 바뀌고 내부도 깨끗해 진 것 같아서 궁금한 마음에 한번 들러봤다. 서비스도 헤어스타일도 매우 만족스러웠다며 아버지 모시고 한 번 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심이발관의 최병식 대표는 처음에는 간판 바꾸고 인테리어 조금 바꾸는 것으로 될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기대이상으로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여성의 눈길까지 사로잡는 이발소 이발소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는 올해 시범이발소를 추가적으로 선정하고 모니터링을 거쳐 보완점을 찾을 계획이다. 시는 무엇보다 이발소가 완전히 되살아나려면 서비스 다변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형을 바꾼 것 이상으로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미용실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고 내실을 다지려면 규제완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에는 이발소에서 이발, 면도, 검은 머리 염색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 인천시 공중위생팀장은 이발소 부활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발소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갈 수 있는 편안하고 쾌적한 곳으로 바뀌는 것이라며 인천 전역으로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앞으로는 이발소에서도 미용실처럼 다양한 헤어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발소의 변신이 완성된다면 여성들이 이발소를 찾는 것도 남성이 미용실을 찾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글 _ 김미경 기자 kmk@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