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지속적인 과학기술 투자, 융성 국가의 지름길

우리가 확신하기 난해한 이슈에 대해서는 지나온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지표로 삼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원전 27년부터 시작된 로마의 찬란한 융성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이끌어오며 그 힘의 원천이 됐던 것들은 어떤 요인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제국은 과학과 기술 분야를 주축으로 중요한 발전을 이뤘다. 공학 분야에 있어 로마제국은 건축, 도로, 다리, 수도 시스템 등에서 뛰어난 공학 기술을 보였다. 로마 건축은 아치, 돔, 보, 기둥 등의 구조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기술은 현대의 건축에 큰 영향을 줬다. 로마인은 의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로마인은 해부학적 지식을 개발하고 다양한 약물을 사용해 질병 치료를 시도했다. 그 다음 산업혁명을 계기로 과학기술의 꽃을 활짝 피운 영국이 18세기에 한때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로 성장하게 된 주요한 원인도 과학기술의 덕택이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이 이끌었다. 증기기계, 섬유 제조, 철강 제조 등의 혁신적인 기술과 생산 방식을 도입해 산업 부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영국은 세계적인 제조 업체와 국제 무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그다음 21세기 들어서 세계를 리딩하는 국가로 부상한 미국도 역시 과학기술을 근간으로 한 혁신이 오늘날의 세상을 이끄는 국가로 성장했다.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프라와 연구 개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연구소,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 등의 다양한 연구 기관과 대학들이 세계적인 인재와 기술을 유치해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 또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혁신적인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생명공학, 항공우주 산업 등에서 세계적인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정부는 연구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미국 국립보건원(NIH),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의 정부 기관은 기술 연구, 개발, 응용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드는 과학자와 기업에 지원금을 제공한다. 이러한 배경과 요인들이 결합해 미국은 현재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로 성장하게 됐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융성한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정부 지원만이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세상을 리딩하는 국가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천자춘추] 독립영화를 왜 지원해야 하냐고요?

우람하고 선명한 근육을 자랑하는 보디빌더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이 닭가슴살이나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 모습을 떠올린다. 단백질은 근육을 생성하는 기본이니 틀린 상상이 아니다. 하지만 보디빌더들이 단백질만큼이나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는 것은 자주 간과한다. 근육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비롯한 다양한 신체 기관의 기능이 고루 활성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다. 뜬금없이 영양소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최근 영화계에서 이 정도의 상식이 흔들리는 듯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 며칠 전 임명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가뜩이나 최근 독립영화 등의 예산 지원이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 영화인들로서는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요는 ①왜 정부의 돈을 써서 독립영화를 지원하는가, ②(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화들 위주로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부디 청문회 과정에서 그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것을 바라지만 노파심에 말을 보태자면 영화를 비롯한 문화가 성장하는 메커니즘 또한 우리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봉준호를 비롯한 거장의 영화 혹은 한류 드라마의 세계적인 성공 뒤에는 독립영화, 혹은 다양성 영화라 부르는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우람한 근육 뒤에는 그러한 근성장을 가능토록 영양소를 실어 나르는 혈관과 내장 기관, 미세한 협응근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독립영화를 공적 자금으로 지원해야 하는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인용한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인들은 비유하자면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꺼끌꺼끌하고 밋밋한(때로는 쓴) 건강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같다. 상업으로 성공하기는 힘들지만 공중보건을 생각한다면 국민들에게 꼭 권장해야 하는 음식들 말이다. 사람들이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는다면 사회적인 의료비 부담이 치솟을 테니 억지로라도 건강식을 먹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만성 적자에도 불구하고 건강식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을 비롯한 많은 문화생산물의 역할은 꺼끌한 자연식처럼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근육 운동의 고통이 근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꺼끌꺼끌한 건강식이 백세시대를 여는 것처럼, 예술은 지금 이대로 괜찮냐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세계와 새로운 방식이 가능함을 환기한다.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독립영화 역시 지금껏 그 역할에 충실해 왔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K-무비’의 화려한 영화(榮華)는 독립영화를 가능케 하고, 독립영화가 가능케 한 사회의 건강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이다. 덧말. 쓰다 보니 체육과 건강에 관한 비유의 향연이 됐다.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한 부서에서 두루 살필 수 있는 저력을 갖춘 한국이니 이 정도 비유는 너끈하게 이해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천자춘추] 입시는 장기전, 멘털 훈련 필요

유독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에서 루틴대로 일정한 공부를 하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체력 안배를 한다면 만족스러운 연휴가 됐겠지만 실제로 말처럼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습 습관이 고3이 돼서야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입, 대입을 거치면서 짜릿한 합격의 기쁨을 맛본 학생들은 알 것이다. 입시는 길고 긴 레이스라는 것을 말이다. 일희일비하며 급격히 스퍼트를 내기보다는 꾸준하고 장기전으로 전략을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멘털 관리가 필수적이다. 프로선수들은 모두 멘털 코치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기술 연마와 체계적인 훈련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서는 긴장감을 이겨내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극강의 멘털이 필요하다. 수험생 역시 마찬가지다.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 쏟아 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와 긴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험장은 익숙한 공간이 아닌 절대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공간인데 거기에 긴장된 수험장의 분위기만으로도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다. 심지어 모의고사 때 등교를 일찍 해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시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도 봤다. 이렇듯 스트레스와 긴장 관리는 시험에 매우 중요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선척적으로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 학생들은 반드시 낯설고 불편한 공간에서의 연습이 필요하다. 조금은 소음이 있는 카페나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에서의 공부를 시도해보길 추천한다. 이를 통해 낯설지만 불편함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약간의 소음도 이겨내고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낯선 공간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면 효과적이다. 이러한 연습 역시 엄마가 같이 해주면 좋다. 늘 말하듯 엄마는 아이의 전략적 동반자여야 한다. 아이 혼자서 이 연습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엄마가 곁을 지켜주는 것이 좋다. 잔소리를 하거나 강압적 통제가 아닌 곁에서 늘 지켜주는 존재, 존재만으로 안정을 주는 심리적 코치가 엄마라면 아이의 힘든 입시 레이스가 조금은 덜 힘들어질 것이다.

[천자춘추] 문화예술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메세나(mecenat)는 기업이 문화예술 등에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칭하는 용어다. 로마제국의 정치가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을 후원한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에서 유래된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을 후원한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꼽는다. 최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됐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날로 확대되고 사회공헌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지난 7월 발표한 2022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2천73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천81억원)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러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목적은 사회공헌 전략이 63.2%로 가장 컸다. 이 중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예술지원이 4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문화예술지원을 위한 협력 채널로는 전문기관(한국메세나협회, 서울문화재단 등)의 비율이 30.6%로 가장 높았다. 문화예술 후원과 관련해 전문기관의 역할과 중요성이 확인된 셈이다. 그럼에도 문화예술후원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특히 지역 문화예술의 경우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에 공공의 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만 보더라도 예술활동증명 누적 합계는 2023년 9월25일 기준으로 3천명이 넘는다. 파악되지 않은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이기에 공공의 재원만으로 문화예술 지원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오는 12월17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NC문화재단 후원으로 ‘평범함의 비범함’ 기획전시가 열린다.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후원자가 될 수 있다. 표를 사서 전시와 공연을 보고, 작은 작품을 사는 것도 예술인에게는 큰 힘이 된다. 예술인은 종종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예술활동을 중단하기도 한다.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3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는 문화예술계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지역 문화예술계는 상황이 더욱 열악했다. 경제적으로 기반이 안정돼야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다. K콘텐츠의 열풍으로 문화예술의 힘과 가치, 그리고 중요성을 전 국민이 느끼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질적 성장은 사회 각 분야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밑바탕에 기업과 시민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문화예술은 기업 및 시민의 관심과 후원이 큰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또 공공기관의 후원 모델 발굴 등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 전략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천자춘추] ‘도박과 사행산업’ 호랑이 길들이기

호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서커스에서 조련사가 호랑이와 연인처럼 포옹하고, 호랑이 입속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TV 장면을 지속적으로 지켜봤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로 지금, 그 아이가 눈앞의 실제 호랑이와 마주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의 입장에서 줄무늬 담요 같은 호랑이의 외형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고 싶은 대상일 수 있다. 도박과 사행산업은 호랑이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위험하다. 우리나라는 개인 간의 도박은 형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지만 국가가 법률로 허가한 일곱 가지 사행산업(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토토), 소싸움경기 등)은 경제 활성화와 지역복지 증진, 건전한 레저문화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진흥하며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 2019년에는 우리나라 사행산업 매출액이 22조원을 초과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인 사행사업체는 큰돈을 벌었고 정부도 큰 액수의 조세 수입을 얻었다. 정부는 이들로부터 거둬들인 저항없는 조세에 중독돼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3년간 코로나19 비대면 상황에서 사행산업의 매출 감소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정부는 2021년 경륜과 경정의 온라인 발매를 허용했고 2023년에는 경마의 온라인 발매도 허용했다.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이제 국가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도박을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서커스의 조련사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듯이 도박을 통해 대박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누군가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고, 도박중독자의 삶을 살아간다. 도박중독은 개인과 가족에게 경제적 파산 및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고 우울증, 자살, 별거와 이혼 등의 심각한 삶의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윤리의식을 무너뜨리고 생산성 저하, 실업 가능성 증가, 살인, 폭력, 사기, 절도 그리고 돈세탁과 고리대금업 성행 등의 범죄를 야기하기도 한다. 국가기관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도박중독 상담치유 공공기관인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매년 9월17일을 ‘도박중독 추방의 날’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도박중독의 폐해와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도박중독 추방의 날’이 매년 진행되는 형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도박중독 문제를 공중보건의 문제로 인식하고 중독 문제 해결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도박과 사행산업이라는 호랑이를 규제하고 사행산업 이용자인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사행산업에서 나오는 조세를 공익적으로 사용하기 바란다. 도박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원인자 부담 원칙’의 사회정의 개념에 따라 도박중독을 예방하고 도박중독자를 치유하는 일에 더 많은 예산과 전문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대상자(청소년, 노인, 도박중독자와 그 가족 등)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도박과 사행산업이라는 호랑이를 길들여야 한다.

[천자춘추] 인구감소, 위기 처한 마을 살리기

1789년 맬서스는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학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인구 감소의 우울한 전망을 소개했다. 한국의 2023년 2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면서 지역소멸 위기 또한 찾아왔다. 인구 감소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약화됨은 물론 인천의 경우 도서지역부터 인구가 소멸되며 마을이 급격한 소멸 위기에 처하고 있다. 통계청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2년 3월 기준 소멸위험지역은 113곳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약 절반인 49.6%가 해당됐다. 서울과 인천 일부 지역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되는 등 대도시의 인구가 소멸위험 진입 단계에 들어 25년 내로 지방의 대부분이 소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방인구 소멸의 문제는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 경제 기회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불균형, 교통 및 생활 인프라의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이러한 원인으로 청년층의 유출이 가속화되고 지방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한계가 생긴다. 이런 지방인구 소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의 다양한 여건과 특성을 토대로 맞춤형 지원 시책과 규제 특례를 적용하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기반을 마련해 지방 투자 증가,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등이 이뤄져야 한다. 또 지방소멸지역의 교육과 의료 시설을 강화해 주민들의 생활 편의성도 향상시켜야 한다. 아울러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계획 수립 전통에서 벗어나 지방 현장의 여건과 수요를 반영하도록 지방의 주도성을 강화한 분권형 계획 수립 절차를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활력 있는 자립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방을 개성 있는 매력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생활인구 확보와 유출을 억제해 본격적인 인구 감소 시대에 대한 대응 및 적응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저출생과 지방소멸은 지역을 넘어 이제는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한국 사회의 장기적인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위협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지방정부, 지역주민, 기업, 사회기관 등의 협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수립해 지역이 주도하는 분권 역량과 실증 기반을 강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천자춘추] 만남보다 더 따뜻한 이별이길

가로수 이파리들의 안색이 변하고 있다. 저녁과 아침에 부는 바람 끝이 냉정해진 탓인지 푸른 기색이 옅어졌다. 마냥 싱그러우리라 여겼는데.... 벌써 나무와 이별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요동치거나 별다른 소리 없이 차분하게 순응한다. 아쉬움과 애틋함이 여기저기에 묻어 있음에도 그냥 떠날 정리를 하는 듯하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마저 미련 남기지 않고 떨굴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이 모두가 겨울 뒤에 올 봄에게 소망과 기쁨을 선물하려는 속 깊은 배려임을 읽을 수 있다. 스스로 영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헤어지는 방법이 서툴다. 쉽게 만나고 좋을 때는 잘 지낸다.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뜨겁다가도 이별의 순간에는 분노와 더불어 마음이 거칠어진다. 잘 들여다보면 사소한 오해와 작은 서운함에서 비롯된 미움이 갈라서는 까닭으로 이어진다. 많이 가졌거나 높이 올라선 사람들은 돈이나 힘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눌러 헤어짐을 겪는다. 죽음이나 뜻하지 않은 사연으로 돌아서야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여하간 사람들은 이별 앞에서는 틀림없는 아마추어다. 자연은 우리들의 스승이다. 만나는 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헤어지는 요령도, 그리고 다음에 오는 계절에게 새로움을 주려는 마음도 알기 쉽도록 가르쳐준다. 그럼에도 요즘 사람들은 더 각박해진 세상을 느낀다. 같이 있어도 외롭고 즐거운 시간은 짧아지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다가 결국 원수가 돼 등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느 때부터인지 사람들의 관계가 머리로 만나 눈으로 탐색하고 지갑의 크기로 계산된다. 끈끈한 인정이 아니라 계약이나 거래 중심으로 바뀌어만 간다. 가슴이 빨리 식는다. 소중함의 농도가 허약해진다. 그로 인해 어색한 헤어짐 후에 덩어리 미움과 분노의 찌꺼기에 오랜 시간 지배를 받는다. 나중에는 아픔과 후회로 몸살을 앓는다. 가을에 지는 낙엽이 새봄의 재료가 되듯 사람들의 헤어짐이 더 좋은 만남을 위한 자양분이었으면 한다. 누구라도 아무 때라도 만남 뒤에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만남이 사랑이었다면 이별도 사랑이기를 바라 본다. 함께 행복을 꿈꾸었다면 헤어질 때 그 행복을 똑같이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의 모든 이별이 따뜻한 박수가 있는 축제이기를 이 가을에 소망해 본다.

[천자춘추] 성장하는 아동에게 꼭 필요한 것

여러분은 아동이 몇 세까지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보통 아동은 13세까지, 청소년은 14~18세라고 한다. 아동권리협약상 아동(child)은 18세 미만이다. 아동권리협약 전문에 따르면 ‘아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하므로 특별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표기돼 있다. 여러분은 미성숙하다는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많은 사람이 미성숙하다는 뜻을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숙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동의 미숙함을 자기 삶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뜻으로 공유해보기로 하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장은 외형적으로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난다’이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장은 외적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 성장도 포함돼 있다. 내적 성장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에 대해 수용·공감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이 포함되는 것이다. 신체뿐만 아니라 심리·정서적 성장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게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교육이다. 성교육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방법이다. 내 몸과 마음을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동의를 얻는 방법을 배우고 거절을 존중하는 방법을 연습하며 나와 타인의 존엄을 어떻게 존중하고 존중받을 것인지를 알아차리고 배우는 교육이다. 필자는 경기도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근무하고 있고, 센터는 아동에게 필요한 성교육을 하기 위해 버스를 이용한 이동형 성문화센터 ‘와~소행성’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 남부지역 중 성문화센터가 없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는데 수요는 많고 버스는 한 대여서 신청 경쟁률이 높고 대기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도 신청이 된 학교나 기관을 찾아가면 교육 후 아동들이 “와~소행성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릴게요”라고 하고 교사들은 “먼 곳까지 찾아와 주시고 좋은 교육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육자원이 부족한 우리 아이들에게 와~소행성에서의 교육은 정말 특별한 경험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와~소행성도 어느덧 열 살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아동을 만났고 앞으로도 스무 살, 서른 살이 돼도 아동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갈 테니 기다려 주시길 바란다.

[천자춘추] 대화의 풍경, 작품의 단서가 된다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기존 사회에서 또 다른 사회로 귀속된다고 할 때, 그는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사회의 적응을 위한 가장 큰 첫 번째 노력은 언어다. 외국을 여행하거나 혹은 유학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떠나기 전에 그 나라의 언어를 가장 먼저 습득하고 간다. 그리고 한 번쯤 현지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 혀를 아주 매끄럽게 굴리거나, 혀를 유연하게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되어 보기도 한다. 아마도 언어는 매우 유연함과 동시에 예민한 존재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적응해 가는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 태도 그리고 말투 또한 모방해 간다. 뉴욕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내 생각을 제대로 읽었는지, 나의 배경을 궁금해하는지 생각하곤 한다. 내가 진정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가? 언어의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다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약 170여개, 크게 분류하면 약30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뉴욕의 길거리에서는 쉽게 여러 가지 언어들을 들을 수 있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등 수십 가지 언어들이 뉴욕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마치 각 나라의 언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루에 수십 개의 작품을 보고 듣고 있는 셈이다. 예술의 실천이야말로 다양한 나라 그리고 그 지역 사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화는 상호 유대성을 외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011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필자가 인턴을 하던 당시 전시했던 작가가 불현듯 스쳐 떠올랐다. 바로 ‘김홍석’ 작가다. 김홍석은 협업 작업 속에서 텍스트를 사용하여 예술적, 사회적, 지적 노동을 본인의 작업 속에 교차시키는 시도를 한다. 또한 그는 작가, 관객, 참여자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그들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작품에 개입시키는 작가다. 당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였던 ‘평범한 이방인’ 전시는 5개의 의자만 존재할 뿐, 전시장 안은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고, 퍼포머와 관람객이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작품이 재생산됐다. 전시의 내용은 작가에 의해 쓰인 텍스트가 퍼포머의 말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의자, 돌, 물, 사람, 개념’이라는 다섯 가지의 글이 퍼포머들에게 하나씩 전달되고, 작가는 퍼포머들과 그 글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작가가 제시하고자 한 작품은 결국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대화 그 이후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작가가 개입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대화의 내용(narrative)이 결국 또 다른 예술 작품이 된다. 작품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해 대화하고 소통하게 함으로써 상호관계를 맺고, 작품을 매개로 직접 만나 서로 교류하면서 공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해줬다. 우리는 흔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떠한 주제를 매개로 해 대화하고 교류하게 함으로써 언어, 정치, 사회와 현실에 대한 삶의 방식을 교환한다. 이곳 뉴욕에 와서 직접 경험했던 일시적, 작은 만남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발판이 되었고, 대화를 통한 소통의 장이 예술의 실천을 성립할 수 있다.

[천자춘추] 생존권 위협받는 전문건설업

사자와 토끼를 한 울타리에 넣어 놓으면 토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사자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사자도 먹을 것이 없어 죽을 것이다. 국가 기간산업인 건설업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적용한다면 국가 기반이 무너진다.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공생 발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건전한 사회일 것이다. 정부는 건설산업의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지난 2021년부터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간 상호시장 진출을 허용했으나 약자인 전문건설업체에 공정한 기회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종합업체는 현 기준으로도 아무런 제약 없이 모든 전문공사에 입찰 참여가 자유로운 반면 전문업체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자본금, 기술자를 추가로 확보해야만 종합공사에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현재 전문업체가 종합공사업 등록기준을 충족하는 수는 1%에 불과한 상황이다. 전문업체가 종합공사에 입찰하려면 면허 3~5개는 기본이고 10개까지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현재 1~2개의 전문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 수가 전체의 90% 이상인데도 말이다. 결국 규모가 큰 종합건설업과 대부분이 영세한 전문건설업 간 내부 정쟁만을 부추기고 상호시장 개방으로 인해 수백억원의 대규모 공사를 시공해야 하는 종합업체가 불과 2억원 미만의 전문공사까지 마구잡이식으로 진입해 싹쓸이 수주를 하고 있다. 이미 상호시장 개방은 전문업계뿐만 아니라 건설업계 전반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리얼미터에서 건설업체 기업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상호시장 진출 허용 제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84.2%로 나타났다. 산업경쟁력 영향에 대해서도 향상되지 않았다는 부정적 의견이 89.7%, 제도 지속 운용 여부도 83.3%가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전문건설업계는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대규모의 규탄대회를 열었다. 정부에 끊임없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개선되는 사항은 없다. 또 소규모 전문건설업체의 보호제도마저 올해 말 일몰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7만 전문건설사업자와 200만 가족이 거리에 나앉기 전에 정부는 중소 전문건설업 보호제도를 조속히 마련해 지역 산업의 근간인 전문건설업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기존의 전문과 종합의 업역 체계가 복원되는 건설산업의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전문건설인이 길거리가 아닌 건설현장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자춘추] 지속가능한 인권활동을 꿈꾼다

현재 소속돼 활동하는 인권교육온다가 10년의 시간을 채워 왔다. 온다는 인권교육뿐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연대, 청소년 인권운동, 차별금지법 제정 등 다양한 인권 분야에도 목소리를 내 왔다. 온다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교육을 통해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다. 온다를 포함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1인 활동가가 단체를 꾸려가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오히려 3인 이상의 활동가가 있는 단체가 대단하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온다도 첫 시작을 4명의 상임활동가가 함께했다가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3명의 활동가에서 현재는 2명의 활동가로 단체를 유지하고 있다. 몇 해 전 지속가능한 인권활동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인권활동가들의 삶과 생각을 들어보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설문 결과 열악하다는 말은 부족할 정도로 인권활동가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활동가가 많든 적든 한 단체를 꾸려 나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단체 운영부터 회원 모집과 시기마다 터지는 이슈 대응 활동에 여러 가지 연대활동까지 몇 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간다. 재정 상황이 어렵다 보니 앞으로 이 활동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온다도 교육활동을 매개로 단체 운영을 이어가다 보니 교육 횟수가 적어지면 바로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멈췄을 때는 1년 내내 교육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이대로 단체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온다가 단단히 걸어올 수 있던 이유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응원과 사랑 덕분이다. 사회학자이자 작가 오찬호님은 세상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꼭 거리에 서지 않더라도 서명운동부터 지지 댓글까지 소위 ‘손가락 연대’도 크게 보면 시민사회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또는 각자가 관심 있고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 후원부터 시작해 보기를 권유한다. 온다의 ‘온(溫)’은 따뜻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환대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따뜻하게, 차별과 혐오에 맞서서는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온다를 응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시민사회를 위해 함께해주길 바란다.

[천자춘추] 야성

맹기호 경기수필가협회장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보행 능력을 잃었다. 보조기구에는 바퀴가 달렸는데 단독주택은 문턱 때문에 사용할 수 없어 가까운 아파트를 월세로 얻어 이사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지은 51년 된 주택을 떠나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나를 믿고 어머니를 맡겼는데 저승에 가서 어떻게 아버지를 뵐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 매일 아침 본가에 신문을 가지러 간다. 단독주택에서는 다섯 가구와 교류했는데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쓰는 집이 20가구나 된다. 변화무쌍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때를 만나고 운명을 만난다. 여기는 또 어떤 만남이 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신문 가지러 걸어가는데 어떤 중년 남자의 엄지가 없는 오른손을 봤다.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그의 아픔을 생각했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 석가세존은 인생의 참모습을 고통이라 했다. 보도블록 틈에 자생하는 잡풀을 본다. 소복한 꼬리털 같은 강아지풀, 바닥에 납작 엎드린 바랭이, 무조건 타오르고 보는 환삼덩굴까지 보인다. 이런 야생은 오랜 세월 한정된 물을 갖고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하면서 강한 면역력이 형성된 것이다. 은행나무가 지구에 태어난 것은 고생대 페름기로 2억9천만년 전이며 지구에 초원이 등장한 것도 신생대 3기로 6천500만년 전이다. 그에 비해 인간은 어떠한가? 최초의 어정쩡한 직립을 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태어난 것은 300만년 전이고 크로마뇽인 같은 현생인류가 태어난 것은 겨우 3만~4만년 전이다. 지구의 모든 식생이 인간보다 훨씬 선배다. 그들은 온갖 환난을 거쳤고 여러 번의 빙하도 견뎠다. 그런 와중에 모든 질병에 대한 면역이 생긴 것이다. 그들에게 선배 대접을 해야 한다. 나는 인간과 함께 지구에 생명을 붙이고 있는 식생도 우리의 형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환절기가 되면 집안 식구 전체가 콧물을 줄줄 흘리는데 가족 중 비염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 어머니다. 충청도 두메산골의 내 어린 시절은 야성의 계절이었다. 어머니는 그 야성의 시간이 나보다 25년 더 길다. 강아지풀, 바랭이, 까마중의 야성이 어머니에게 깃들었기를 소원한다. 엄지손가락이 없는 사내도 생각한다. 내게 어머니의 치매는 맞서기 힘든 적이다. 모란을 좋아하는 93세 야성의 어머니, 본가에 아버지가 심은 30년 된 모란이 있다. 모란을 일곱 번만 더 보게 해주면 원이 없겠다.

[천자춘추] 경기북부특별자치도·패러다임 변화 제안

경기 북부 의정부시에 지역구를 둔 경기도의원으로 당선인 신분일 때부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 효율적인 활동에 대해 고민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추진단’에서 국회, 행정안전부, 경기 남·북부를 방문하고 경기 북부지역의 동료 의원들과 함께 다양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제11대 경기도의회에서 최초 논의된 건 아니다. 이전에 선배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있었다. 제11대 경기도의회도 1년이 지난 지금,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을 위한 새로운 접근과 패러다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중첩 규제와 접경지 국가안보 희생의 대가(代價)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각종 중첩 규제 등 경기 북부지역 도민의 희생을 행정·법률·제도 측면에서 해결하기 위해 경기북도 분도, 경기북부특별자치도가 고민돼 왔는데 필자는 이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의 1.0’이라 정의한다. ■ 낙후된 경기 북부 도민의 생활 편익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연구 필요 응급의료센터가 없는 양주시, 동두천시, 가평군 등에서 응급의료 체계 격차가 발생하고 지역내총생산(GRDP)이 낮은 북부지역 도민은 고가의 민자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하면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랜 이동 시간으로 인한 피로도는 삶의 질 저하와 문화향유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제는 도민의 삶과 직결된 생활 편익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김동연 지사는 9월 중으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관련 주민투표를 행안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 경기 북부의 ‘3自’ 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 본 의원이 대표발의한 ‘경기도의회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에 142명의 의원이 공동서명하는 과정에서 경기 북부의 ‘3自’(자립·자족·자생)가 가능한가를 묻는 경기 남부지역 의원들의 질문이 많았다. 이제는 경기 북부 ‘3自’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경기 북부의 고유한 문화·생태·관광·잠재 성장 산업 분야와 우수한 인적 자원 등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와 데이터를 제시해 경기 북부의 자립·자족·자생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경기 남부 도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또 그 시작을 아름답게 열 수 있을 것이다.

[천자춘추] 중앙정부, 지방재정 협력 대응해야

정부 간 재정관계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지방은 중앙에 비해 과세 기반이 열악하고 지방 간 재정 편차가 크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재정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23년 전국 자치단체 재정 총액 305조원 중 이전재원은 141조원으로 총 재원의 약 46.2%를 차지한다. 중앙의 세입이 감소하면 지방으로 이전되는 재원의 총량은 작아진다. 복지·보건 분야는 지방재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복지·보건 분야 정책사업은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가 매칭돼 실행되기 때문이다. 부담률은 평균적으로 국가가 75%, 광역이 10%, 기초가 15%를 부담한다. 따라서 이 분야의 정책 변화는 지방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난 8월29일 ‘2024년 국가예산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세 수입이 전년 대비 33조1천억원가량 감소했다. 지방으로 이전되는 재정 규모도 이에 비례해 감소할 것이다. 반면 분야별 세출 예산 중 보건·복지 분야의 예산 지출은 지난해 대비 16조1천억원이나 증가했다. 확대된 사업은 중앙정부 단독으로 실현되지 못한다. 광역과 기초의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지방재정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도의 경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취득·등록세가 대폭 감소했고 내수 부진에 따라 지방소비세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다. 시·군의 경우 공시지가 하락으로 재산세가 감소하고 법인의 이익 감소로 지방소득세 역시 큰 폭으로 감소할 상황이다. 중앙이 생색내는 만큼 지방의 골은 깊어갔다. 기초생계급여, 장애수당·장애연금, 기초연금, 영유아 보육 등 대부분의 사업이 중앙의 일방적 결정에 의한 지방비 부담 발생 사례다. 물론 이들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민생이 안정돼야 저성장과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 확대에 따른 추가 부담 증가에 대해서는 중앙과 지방의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 ‘지방재정법’ 제27조의 2에는 중앙과 지방 간 재정 분담 협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 사업의 확대에 따른 추가 부담은 논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방이 중앙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을 때 시민 복리 증진을 기대할 수 있다. 중앙의 일방적 결정이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지방재정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전재원의 감소와 매칭비 부담 증가라는 이중고에 국가와 지방이 공생할 수 있는 대응을 해야 할 때다.

[천자춘추] 학교급식실, 일하고 싶은 일터 만들기

1년 전 자기 아들이 50대 초반인데 결혼도 안 하고 실직 중이어서 걱정이라는 70대 후반의 지역주민을 만났다. 많은 학교가 학교급식실에서 일할 조리실무사를 찾지 못해 구인난을 겪고 있는 터라 무심코 학교급식실에서 일하면서 요리도 배워보는 건 어떠냐는 말을 꺼냈다가 어르신께 꾸지람을 들었다. 의원이면 의원이지 왜 남의 귀한 자식을 죽이려고 하냐고. 거긴 폐암 걸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 아니냐는 것이었다.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자리를 피했지만 무엇이 70대 후반의 어르신에게 학교급식실이 죽음의 일터로 인식되게 만들었는지 오랫동안 곱씹어 보게 됐다. 사실 학교급식실이 일하고 싶은 좋은 일자리는 아니다. 조리실무사는 흔히 방학 중 비근로자라고 해 1년 365일 상시근로자가 아닌 275일만 일하고 급여를 받는 9개월 기간제노동자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3개월은 자의 반 타의 반 집에서 쉬어야 하고 더욱이 쉬는 기간에 생활비라도 벌고자 알바라도 하려면 사전에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니 이 또한 녹록지 않다. 더욱이 몇 년을 일해도 급여는 해마다 연봉 50만원 남짓 오를 뿐이니 20년을 일하고서야 겨우 연봉 3천만원을 받았다는 한 조리종사자의 말은 새삼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학교급식실의 작업환경도 극한직업 수준이다. 조리종사자의 배치기준은 학생 수 120~140명당 1명꼴로 배치되는데 결국 조리종사자 8명이 1천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밥과 국이 끓고, 튀김요리가 튀겨지면서 내는 수증기와 유증기는 조리실의 실내온도를 40도를 넘나들게 만들고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찬 조리실에서 조리종사자들은 서너 가지의 반찬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정신없이 학생 배식을 마치고 식사시간이 끝나면 이어지는 청소와 설거지는 덤에 가깝다. 살림만 했다는 가정주부도 폐암진단을 받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현실에서 고농도 미세먼지인 조리흄으로 가득한 학교급식실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학교급식은 가장 즐거운 시간이고 학교급식 메뉴는 그날의 가장 핫한 뉴스일 수밖에 없다. 학교급식이 맛있어서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아이들의 우스갯소리처럼 학교급식이 없는 학교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학교급식실을 일하고 싶은 일터로 만들 수는 없을까.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는 올해 초 경기도내 학교 조리종사자 1만4천845명 전원을 대상으로 연구용역을 추진해 그 결과를 바로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급식실의 환경은 어떻게 개선할지, 조리종사자의 단순 반복적인 노동의 절감을 위해 어떤 기구를 보급할지, 가장 힘들어하는 요리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튀김요리를 힘들이지 않고 조리할 방법은 없는지, 본질적으로는 급식실 온도를 높이는 주범인 동시에 연기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가스)에 기반한 급식기구를 어떻게 순차적으로 전기에 기반한 인덕션 기구로 대체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현재 조리종사자의 60% 이상이 50대 나이로 향후 수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대량 퇴직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교육청이 학교급식실 환경 개선과 노동친화적 급식기구의 도입에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머지않아 대규모 학교급식 중단 사태는 피할 수 없게 된다. 내년도 세수 감소로 교육예산이 급격히 줄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최소한 조리종사자의 근무환경 개선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은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천자춘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얼마 전 경제적 어려움으로 꿈과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아동·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자 모임인 ‘고양 아이리더 서포터즈’ 발대식에 다녀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학업, 예술, 체육 분야 등에 소질이 있지만 꿈꾸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 고양 아이리더로 선발된 아동들은 1년 동안 재능 향상을 위한 전문교육 및 훈련에 필요한 비용을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받는다. 올해는 총 13명의 ‘고양 아이리더’가 심사를 통해 최종 선발됐다. 체육 분야(볼링, 축구, 소프트볼, 태권도), 예술 분야(한국무용, 미술, 웹툰), 학업 분야 등에 총 6천만원 상당의 후원금이 재능계발비로 지원될 예정이다. 고양 아이리더 서포터즈 캠페인은 지역사회 기업 및 단체를 중심으로 릴레이 후원 활동을 통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지역인재를 육성하는 데 목적을 둔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후원기업·단체의 대표에겐 ‘대표 서포터즈’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필자 또한 대표 서포터즈로서 힘을 모으고 있다. 어려운 형편으로 운동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박상영 선수는 초록우산 아이리더로 선발돼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고 대한민국 남자 펜싱 최연소 국가대표로 2016년 리우올림픽에 참가해 대역전극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현재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외국 속담이 있다. 실제로 경기도는 이 속담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경기권역 2022년 지원 인원은 1만4천316명이고 지원 금액은 110억7천950만6천794원에 달하고 있다. 또 경기권역의 정기후원자 수는 9만명을 넘는다. 아직 후원을 하고 있지 않다면 오늘이라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전화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가 함께 키우는 것. 그것이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천자춘추] 전열정비·상륙작전… 말·말·말

딱 ‘전쟁’ 용어다. 내년 4월에 치를 22대 총선을 대하는 정치인, 정치권력 언저리에서 나오는,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말들이다. 온통 적, 아를 구분해 전선을 형성하고자 용을 쓰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 싶다. 단 한 표라도 획득하는 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어마어마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리하여 그들만의 리그에서 놓고 보면 ‘전쟁’인 셈이다. ‘나를 대리할 정치인 역할?’과는 한참 다른 장면을 경험한 그들이기에 ‘대리자’보다 ‘전쟁 승리자’로서 권력을 쟁취한 위치의 정체성이 훨씬 친밀할 것이라는 걸 이 단어들만 놓고 보면 묘하게 이해하게 된다. ‘대리자-권력-시민’ 간 간극이 이미 한참 벌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가 됐다. 지긋지긋하게 변하지 않는 이 프로그램에 따라 내년 4월 이때가 되면 ‘전선에 홀려 들어가듯’ 혹시나 하며 나의 한 표를 누군가에게 맡기러 투표장에 갈 것 또한 자명하다. 그런데 그게 최선일까? 지난 8월9일, 경기도의회 회의실2에서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최한 ‘경기도 민선 8기 1년, 매니페스토에 담긴 의제 현황 분석’에 따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에 있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고 연대회의는 지방선거가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정책 중심의 선거’로 진행돼 그 결과가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회적 의제 해결을 위한 핵심과제 5개, 분야별과제 31개를 마련해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들과 정책협약으로 이어졌다.  ‘싸움의 현장’을 목격해야 한다면 그 내용이 최소한 사회적 의제가 맨 앞에 놓이는 싸움이어야 하며 대의민주주의제 하에서의 나의 최소한의 권리 행사 중 하나라는 판단이 이같이 정책의제를 구성해 내고 후보들과의 협약에까지 가져간 배경이다. 5개의 핵심과제가 던진 질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①경기도민은 재난으로부터 안전한가, 재난약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실행 조건을 마련하고 있는가 ②경기도민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의 확장과 숙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기반 구축은 가능한가 ③도민 삶 전체를 관통해야 하는 경기도 탄소중립 녹색전환 정책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있는가 ④경기도는 돌봄노동의 노동권과 이용자의 사회권의 균형을 통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돌봄’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가 ⑤경기도형 혁신 주택정책 시행을 통해 공공성 강화를 담보할 수 있는가로 축약됐다. 민선 8기 공약실천계획서에 기록된 전체 공약 295개 사업명-목표-내용-추진계획-소요예산 등을 점검한 결과는 정책 협약한 내용, ‘일부반영&보이지않음’으로 축약됐다.  이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나의 일상의 안녕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써 이러한 사회적 의제가 있음을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대리인’에게 알림으로써 대책 없는 전쟁이 아니라 왜 그 싸움을 해야 하는지 한 번쯤은 돌아보길, 그래서 총선이 다가올수록 ‘나의 언어’가 선거에 쓰이는 ‘말’들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천자춘추] 장(腸) 이야기

인간에게 있어 음식은 일종의 이물질이며 그 속에는 때때로 유해물질도 섞여 있다. 이를 몸속으로 받아들여도 될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장의 역할이다. 따라서 장에는 우리 몸을 병원균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면역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핵심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이 장이다.  장에는 소화, 흡수하는 세포뿐 아니라 신경세포도 존재하는데 그 수가 1억개에 이른다. 이는 뇌 외의 기관에 분포하는 신경세포의 약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그래서 장은 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장기이기 때문에 ‘제2의 뇌’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놀라운 사실은 인간의 감정과 기분을 결정하는 물질 대부분은 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애정을 결정짓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등을 장에서 합성하고 있어 인간의 감정 변화에도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는 고차원적 기관이다. 도파민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로 흔히 ‘행복물질’이라고 부른다. 도파민의 양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면 행복, 의욕, 집중력, 성취감 그리고 성욕 등이 살아나 삶에 활력을 준다.  그러나 과하면 조울증, 정신분열, 중독(도박·마약·게임·술·담배 등) 같은 무서운 부작용이 발생한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대표적으로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도파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통해 필수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을 섭취해 얻은 도파민 전구체인 ‘L-토파’를 뇌에 전달해야 하는데 그 담당이 장내 세균이다.  세로토닌도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로 인간과 동물의 위장관, 혈소판, 중추신경계에 주로 존재하며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으로 우울함과 불안감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또 세로토닌은 식욕과 수면에도 관여하며 특히 탄수화물 섭취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어 갑자기 식욕이 증가한다면 세로토닌 감소를 의심해 봐야 한다. 세로토닌 전구체 또한 뇌로 보내기 위해서는 장내 세균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장내 세균은 면역력을 억제해 알르레기성 질환과 자가면역 질환을 막아주고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예방하고 암 발생도 억제한다. 그러나 과도한 항생물질의 사용과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 인스턴트나 가공식품의 지나친 섭취로 장의 환경이 무너져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공격과 절제 안 되는 데이트폭력 및 살인 등 강력 사건과 마약, 우울증, 치매, 자살 등이 도를 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하겠으나 식습관에 의한 장내 환경이 무너진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장에는 유익균과 유해균 그리고 면역력이 저하되면 나쁜 영향을 미치는 중간균이 존재한다. 유익균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유익균 85%, 유해균 15%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섬유질이 많은 곡류, 채소류, 콩류 그리고 과일류 같은 식물성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며 적당한 운동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건강은 장에서 비롯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상기해 본다.

[천자춘추] 정부자본주의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다. 생산 수단을 공동으로 하는 협동 경제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분배 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경제체제 국가를 사회주의(Socialism) 국가라고 하는데 우리는 협동경제와 평등분배를 추구하지 않으니 사회주의 국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인가? 사전에 의하면 자본주의(Capitalism)는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사회구성원 각각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재화의 매매, 양도, 소비 및 이윤의 처분 등에 대한 결정을 개인에게 일임하는 경제체제라고한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2020년대를 살아가는 변리사인 나로서는 우리나라가 서양에서 운영되는 자본주의와는 사뭇 그 구성이 다름을 느낀다. 특허상담을 하다 보면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발명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과 열정이 있는 기업인들도 있지만 ‘조달청 납품’이나 ‘정부지원사업 선정’을 위해 특허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기업인들도 있다. 아니, 많다. 31조1천억원에서 25조9천억원으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5조2천억원 줄어든다는 소식을 들은 과학계는 이미 파랗게 질리다 못해 이민을 준비하겠다는 박사가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도 정부 및 각 지방자치단체의 R&D 예산에 기대 연구개발 및 연구인력의 인건비를 지원받아 왔는데 이러한 예산이 줄어들어 창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예산’에서 자유로운 대한민국 기업과 기관, 협회와 개인이 얼마나 될까? 일정한 부를 축적한 후 아무것도 안 하고 여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는 환자를 진료하거나 처방한 후 건강보험 행위별수가제에 의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수가를 받는다. 공공·민간·사회서비스 일자리 예산은 1조원이 넘고 변호사들도 국선변호인 제도를 통해 일하면 정부로부터 수입의 일정 부분을 받는다. 변리사들도 결국 R&D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된 기업들이 해당 예산에서 지식재산권 비용을 사용하게 되므로 정부로부터 수입이 생긴다. 지역사랑 상품권, 지역화폐, 온누리상품권 등도 정부예산이 시장 소상공인들의 수입의 일부가 되는 구조다. 언론도 1조원이 넘는 정부, 지자체 광고비를 제외하고도 언론진흥기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다른 나라의 ‘정부예산의존도’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전반적인 정부예산의존 현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정부자본주의’로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고 혐오하지만 사실은 정치권력이 자신들이 소유하는 재화의 양을 결정한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 정부자본주의 국가체제에서는 ‘누가 어느 기관의 기관장이 됐는가’가 중요해진다. 모임에 가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하마평만 가득하다.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천자춘추] 통근 고통에서 벗어나자면

서울로 통근하는 수도권 주민이 늘어난다. 거리와 시간도 길어지고 통근 고통도 커진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고 부업이나 취미를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없으니 길어지는 통근시간은 소득 감소나 삶의 질 하락과 직결된다. 통근시간은 왜 길어질까? 이유는 대도시권의 성장이다. 기술혁신의 진전으로 성장기업이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되니 서울 대도시권이 더 성장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니 주택 공급이 필요해진다. 서울시내의 주택 공급에 한계가 있으니 외곽 신도시 건설이 추진된다. 여기에 광역교통망이 연결되니 주거는 외곽으로 확산되고 통근자와 통근거리가 늘어난다. 내년에 예정된 GTX-A 노선의 개통을 시작으로 신안산선, 월판선 등 광역철도망 개통이 이어진다. 또 3년 후부터는 30만가구 규모의 3기 신도시 입주가 예정돼 있다. 센 기업, 좋은 일자리는 서울에 집중되고 가성비 좋은 주택은 외곽에서 공급된다. 서울은 더욱 고도화되고 수도권은 광역화되는 대도시권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서울 인구는 60만명 감소하고 경기도 인구는 150만명 증가했다. 서울 내부의 주택 공급은 더디고 규모도 작다. 외곽의 주택 공급은 대규모로 이뤄지나 일자리 공급이나 광역교통시설 개선은 더디다. 통근 고통은 점점 더 심화되지 않을까. 대안을 생각해보자. 첫째, 광역교통시설에 투자하는 일이다. GTX 노선 외에도 광역철도 건설이 추진 중이다. 철도와 함께 BRT도 효과적인 대안이다. 추진 중인 환승시설건설, 알뜰교통카드 도입 등 교통시설 및 운영 개선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2천500만명이 살아가는 수도권이 하나의 대도시권으로 작동되도록 공간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과도한 노선 연장과 정차역 신설 등의 요구에는 결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설투자만이 능사는 아니다. 새로운 투자는 새로운 수요를 유발하고 수도권의 확산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둘째, 서울시내 주거환경 개선과 주택 정비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저이용 부지를 고도화하고 노후주택의 정비도 추진해야 한다. 도시의 과밀에 대한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내 공급 가능한 주택 규모는, 바람직한 밀도는 얼마쯤일까? 이미 서울시는 행정구역 면적대비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혁신에 따라 수도 서울은 더 고도화돼 갈 것이나 주택시장, 통근 문제, 주변 대도시권과의 관계 등을 함께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셋째, 외곽에 새로운 고용 중심지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기업 이동은 주거 이동보다 몇 배 어렵다. 기업주뿐 아니라 종사자들의 이주 의사와 산업생태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첨단기업이나 연구소, 벤처기업 등의 경우 우수인력 확보 여부가 기업 입지를 결정하는 데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증가하는 경기도 인구가 서울로 통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미니판교'를 경기도의 광역교통축에 건설해 통근 필요성과 통근거리를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해가는 직주락(職住樂)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주택 문제를 주택으로, 교통 문제를 교통으로 해결하려는 단선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통, 주택, 고용 세 가지 시각으로 통근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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