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헌재의 ‘151석’ 결정, 재탄핵 조장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불완전한 권한이다. 법적으로는 모든 권한을 넘겨받는다. 다만 중요한 한 가지를 가질 수 없다. 투표 등 국민의 선택으로 부여받은 권력이다. 민주주의가 창출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러다 보니 대행은 정치에 치이고 휘둘린다. 야당에 의한 견제가 특히 심하다. 그중에도 무서운 공격이 탄핵이다. 그동안은 없어서 몰랐다. 이번에 알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대행을 탄핵했다. 직무 시작 열흘 만에 날아갔다. 그리고 87일 됐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 복귀시켰다. 그런데 하루도 안 돼 ‘한덕수 대행 재탄핵’ 얘기가 나온다. 24일 기자가 물었다.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재탄핵을 검토하나.”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답했다. “속단할 수 없다.” 탄핵 성적 9전9패의 민주당이다. 대놓고 말하기 민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이 다음 날 지면에 대행 재탄핵 얘기를 실었다. 복귀 하루 만에 정부를 휘감아 도는 공포다. 출발은 헌재의 24일 결정문이다. 151석을 대행의 탄핵 소추 요건으로 인정했다. 6명이 동의한 이유가 이렇다. “(대행은 대통령과 비교해)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 정당성만 보유한다”, “권한대행 지위가 새로 창설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본래 신분상 지위(총리)에 따른 의결 정족수를 적용해야 한다”. 대행의 권한을 제한적이라고 봤다. 현실은 알겠는데, 법률에 근거가 있나. 대통령에게만 있고, 권한대행에게 없는 권한?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엔 논리상의 어색함도 있다. 재판관 후보자 불(不)임명이 발단이었다. 한 대행이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 임명 권한이 대행에게는 없다고 본다.’ 그러자 민주당이 ‘권한 있으니 임명하라’며 탄핵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을 했다.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한덕수 대행이 ‘임명 권한·책임 없다’고 했고, 민주당·헌재는 ‘임명 권한·책임 있다’고 했다. 그랬던 헌재가 정족수에서는 달라졌다. ‘대행의 권한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소수 의견이 있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이다. 절차 흠결을 이유로 탄핵을 각하했다. 둘의 논리가 이렇다. “권한대행자를 대통령과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 “비상 상황에서는 탄핵 제도 남용을 방지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그러면서 이런 비유도 했다. -현행법에서 차관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차관은 장관직을 대행하면서 중한 위헌·위법을 해도 탄핵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정치 현실과 법률 해석이 보다 명료해 보인다. 혹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입장을 얘기한다. 151석 밀어붙인 부담을 덜어줬다는 것이다. 혹자는 민주당에 탄핵 무기를 쥐여줬다고 얘기한다. 홀가분하게 재탄핵할 근거를 줬다는 것이다. 헌재가 이런 계산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 흔한 지라시 한 장 받아 본 적 없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결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151석’이 더욱 개운치 않다.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광화문 차벽도 아슬아슬하다. 시위대는 법원까지 난입했다. 물리적 내전과 국가 위기가 경고된다. 싸우는 걸 보면 곧 망할 나라다. 하지만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당대(當代)는 언제나 난세(亂世)라 했다. 당대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의 사건 아닌가. 곧 역사에 기록되고 정리될 것이다. 탄핵 정족수를 특별히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당대뿐 아니라 미래까지 끌어갈 기준이라서다. 헌법재판소는 판결이 아니라 결정을 한다. 판례가 아니고 결정례(決定例)·선례(先例)다. 미래에 미칠 구속력에서 판례의 그것과 다르다. 한번 내린 결정이라도 바뀔 수 있다. ‘151석 아쉬움’을 남겨 놓는 이유다. 언젠가 200석으로 바뀔 바람을 적어 두겠다. 김종구 주필

[경기만평] 9전 9패...

[사설] ‘탄핵에 이를 정도인가’, 윤 탄핵에 핵심문구 될 듯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이 기각됐다. 기각 5, 인용 1, 각하 2로 갈렸다. 한 총리는 즉시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복귀했다. 한 총리 탄핵은 기각 또는 각하 예상이 많았다. 실제 결과도 예상의 범주 내에서 나왔다. 사실 관심은 윤 대통령 탄핵 가늠이었다. 한 총리 결정문으로 짐작이 가능할 거라고 봤다. 실제로 24일 오후부터 각종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논리를 빗대 진영의 바람을 이끌고 있다. 전망이라며 쓰지만 사실은 희망이다. 엄연히 다른 사건이다. 혐의 속 역할이 다르고 법률이 보장하는 신분이 다르다. 비교해서 결론을 추론할 연관성이 박약하다. 굳이 살펴볼 가치가 있다면 큰 틀의 원칙이다. 재판관들이 밝힌 의견에 깔려 있는 접근 기준이 있다. 판결의 일관성 또는 개인적 소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판단의 근거나 기준을 담아내는 각자의 그릇과도 같다. 5(기각), 1(인용), 2(각하)라는 결론만으로 분석될 순 없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가 중요하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냈다. 법률이 정하는 절차를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 본안 속 혐의는 판단하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 측에서는 헌재 불공정을 문제 삼았다. 내란죄 제외, 기일 일괄 지정 등이다. 같은 기준으로 살필 가능성이 있다. 정계선 재판관은 혐의가 인정되고 파면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내란 동조, 재판관 임명 보류 등 5개 혐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윤 대통령이다. 짐작되는 방향이 있다. 기각한 김복형 재판관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탄핵 조건을 가장 까다롭게 따졌다. 주목되는 것은 나머지 기각 4인의 의견이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가 주목할 만하다. 한 총리에 대해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법 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한 부분이다. 그런데 결론은 기각이다. 탄핵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거나 ‘단언할 수 없다’는 이유다. 위법과 탄핵을 분리해서 본 것이다. 윤 대통령의 운명은 ‘6인’이다. 찬성이 ‘6인 이상’이면 파면, ‘5인 이하’면 복귀다. 한 총리 결정에서 큰 틀의 방향은 비쳤다. 중간 지대에서 형성될 4~5인의 향배가 관건이다. 이들의 의견에 등장한 것이 ‘불법의 크기’다. ‘위험·위법한 행위가 인정된다’는 전제가 같더라도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탄핵에 이를 정도’라면 인용, ‘탄핵에 이르지 않을 정도’라면 기각이다. 감사원장의 탄핵심판에서도 같은 논리가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들에 대한 심판에서도 있었다.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그 때문에 논쟁할 여지도 적다. 어찌보면 법원과 구별되는 가장 헌법재판소적인 영역이다.

[사설] 인천 떠나는 청년들... 좋은 일자리가 답이다

인천에 사는 청년들이 서울 등으로 계속 떠나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도, 인천만의 일도 아니긴 하다. 인천은 다른 지방과 달리 인구가 늘고 있다. 최근엔 인구 유입이 눈에 띌 정도다. 그런데도 청년(18~39세)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중이다. 주거비 부담이 크지만 직장 가까운 서울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매일 왕복 3시간씩의 출퇴근도 인천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다. 인천 인구는 2018년 295만5천명에서 2023년 300만명을 넘어섰다. 증가세가 이어져 현재 311만명이다. 지난해 인천의 인구 순유입률은 0.85%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청년 등 생산연령인구는 반대로 줄고 있다. 2018년 인천의 18~39세 청년 인구는 91만4천200명이었다. 이후 2020년 86만7천154명, 2022년 83만7천218명, 2024년 82만4천956명으로 줄었다. 7년 동안 인천 인구는 15만명 늘었지만 청년 인구는 10만명이나 감소했다. 청년 유출은 특히 원도심에 더 많다. 남동·동·계양구 등 원도심 지역 청년들이 주로 직장을 따라 서울 경기 등으로 빠져나간다. 원도심에서 송도·청라·영종·검단 등 신도심으로 옮겨가는 청년들도 있다. 인천시는 취업, 교육·생활 인프라 격차 등을 청년 유출 원인으로 파악한다. 경기·서울지역이 취업 기회나 기업 규모, 임금 등에서 인천보다 낫기 때문이다. 인천 20대 청년들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도 한 원인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저숙련 제조업 중심의 인천 산업 구조를 지적한다. 서비스업이나 첨단기술 제조업 등의 청년 선호 일자리와 매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인천의 신도심은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고 원도심은 취업 환경이 열악해 청년들이 머무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도 한다. 인천시도 조만간 획기적인 청년 지원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청년 대상 또 하나 ‘아이(i)+드림’ 정책이다. 인천에서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근로자 비율이 28.9%라고 한다. 인천시민 10명 중 3명은 서울, 경기도로 일하러 가는 셈이다. 이에 인천시는 ‘인천형 특화 일자리’ 정책에 주력할 참이다. 기업 유치로 서비스업이나 첨단산업 일자리를 늘린다. 또 인천의 주력인 뿌리산업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나선다는 것이다. 결국 일자리 문제로 초점이 모아진다. 교육·문화·생활 인프라 등은 2차적 요인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청년 일자리들을 외면하는 사례도 자주 본다. 지자체의 불합리하게 엄격한 규제나 주민 반대 등이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따라 떠나기도, 돌아오기도 한다.

[지지대] 국가유산 추진되는 절밥

두부나 김치, 나물 등을 한데 섞어 비빈다. 버섯잡채나 순나물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첫맛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단출하고 소박하다. 절밥(사찰음식)이 딱 그렇다. 단어 그대로는 절에서 먹는 끼니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곡선의 처마를 바라보며 먹을 때 느껴지는 식감은 그래서 근사하다. 주변의 소록소록한 자연과 풍광이 그대로 내려와 앉았다. 법정 스님은 우주가 들어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나물을 한 숟가락 입에 물면 풍경(風磬) 소리가 난다. 의성어로 표현하면 “댕그랑댕그랑”이다. 그윽한 공감각이다. 소리에도 품격이 있는 셈이다. 그 어떤 강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으뜸인 특징은 육식과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오로지 또 다른 수행의 한 방법으로 여긴다. 먹는 것도 수행이다. 절제를 추구하는 식탁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정부가 절밥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경기일보 24일자 16면)한다. 절밥은 불교 정신이 오롯이 담긴 음식이다. 승려들이 일상에서 먹는 수행식과 발우공양 등을 포함한다. 사찰마다 다양한 음식이 전해져 오는데 육류와 생선, 오신채(五辛菜·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자극적인 다섯 가지 채소)를 쓰지 않고 채식을 중심으로 한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다’는 생명 존중의 철학적 가치도 녹아 있다. 아끼면서 배려하는 행복한 관례이고 법칙이다. 절밥은 오랜 기간 우리 식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 등에 그런 내용이 소상하게 담겼다. 조선시대에는 사찰이 두부, 메주 등 장류와 저장음식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면서 사대부가와 곡식을 교환하는 등 음식을 통해 교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간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무형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입안에서 사각사각 녹아드는 절밥을 먹으면서 봄을 맞이하면 어떨까.

[인천시론] 루원시티, 양보·타협으로 큰 그림 그려야

수도권 집값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하락을 예견하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강남 아파트는 급등해 해제됐던 토지거래허가제를 부활한다는 기사를 봤다. 동시에 인천은 송도에서조차 마이너스 피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서로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왜 강남의 집값은 오르기만 하는데 인천은 부동산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까. 출생률 1위라는 인천은 여러 면에서 이와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미분양 사태를 걱정해 공급자들은 분양을 미루는가 하면 이미 공급된 아파트에서는 분양가에서 마이너스 피로 거래가 조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구 가정동 일원의 루원시티는 국내외 대기업을 유치해 주거, 상업, 업무시설이 혼합된 복합도시로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계획된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이었다. 그러나 공기업과 금융기관 등 기업 유치에 실패해 업무와 상업 기능을 중심으로 한 도시 비전은 공염불이 됐다. 양질의 일자리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계획의 실패에 인천시와 LH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다투는 사이 분양 열기에 편승한 장벽 같은 아파트들로 채워졌다. 아파트의 그림자와 함께 어둡고 침침한 방음벽 그늘에 경인고속도로대로는 멈춰 서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아직도 토지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등에 따른 LH와 인천시와의 갈등은 좀처럼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 다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 기관이기에 주인없이 길어지는 갈등으로 인한 난개발을 일반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는 서울을 목적으로 향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인천으로 그 방향을 돌려야 한다. 루원시티는 인천으로 향하는 나들목으로서도 중요한 입지에 있으며 공항 및 항만 등과의 접근성에도 허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애초에 금융 등 업무와 상업 기능을 중심으로 계획된 일자리 중심의 도시개발 사업이었으며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서라도 기업을 유치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주거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 원도심의 핑크빛 청사진으로 여겨지는 인천시의 야심찬 프로젝트 제물포르네상스도 양질의 일자리를 견인할 대표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일 것이다. 앵커로서 기능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파생할 수 있다면 특혜시비를 넘어설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어서라도 유치하는 것이 투자이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의 목적이 특정 집단의 이익과 맞물리는 경우 우리는 유치와 특혜의 논란 속에서 움츠러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가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공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전망을 탄탄하게 마련한다면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경관에 대한 고려가 상실된 인천대로의 루원시티의 아파트 그림자를 보며, 하루빨리 공공기관 간의 갈등을 타협하고, 도시와 공공정책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멈춰진 루원시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선을 정비하기를 기대해본다.

[문화산책] 옛 고을 걸으며 경기도 미래를 생각하다

28개 시와 3개 군으로 구성된 경기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행정구역의 변천이 잦았다. 1914년 일제에 의한 부군면 통폐합으로 많은 고을이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으며 산업화 이후 서울이 공룡처럼 커지면서 그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양주와 광주는 넓은 고을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에 그 살점을 내줬고 광명과 군포, 의정부 등 새로 태어난 고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화성시 동부에 자리한 동탄은 신도시의 대명사로 불리며 젊고 활기찬 트렌드를 주도해 하나의 밈(Meme)으로 화제가 됐다. 신도시가 탄생한 만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장도 적지 않다. 고속도로 터널과 리조트의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양지는 김대건 신부가 유년기를 보낸 마을이며 인천에 속한 부평은 인천, 부천지역을 포괄하는 대도호부로 경기 서부에서 가장 번영을 누렸다. 화려했던 역사는 시대 너머로 사라지고 그 자취를 보여주는 경관도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들어 그 이름을 상기시킨다면 옛 고장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해줄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이 현령을 지냈고 천하의 명의 허준이 동의보감을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양천현으로 먼저 떠나보자. 현재 서울 강서, 양천구 영역을 감싸고 있던 옛 고장은 한양과 가까우며 수운을 통해 들어온 물산이 풍부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수령자리를 탐했다. 많은 배들이 다니던 나루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차들의 행렬로 발이 묶인 올림픽대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겸재의 ‘경교명승첩’을 통해 유서 깊은 고을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화첩은 그가 현령으로 부임하던 시절 오랜 친구인 이병연과 시화를 나누기로 정했는데 이때 한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여러 폭의 그림에 담아 실은 것이다. 양천관아 뒷산인 궁산 정상에 자리한 소악루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며 달맞이를 즐기던 그는 붓을 들어 한손에 그리기 시작했다. ‘소악후월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우리는 예전 양천의 모습을 기억한다. 통진, 부평, 양지, 지평 등 하나의 구나 면, 읍의 지명으로 남은 고을도 있고 적성, 마전, 풍덕, 장단처럼 분단의 비극으로 흩어진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포천시 북부지역에 자리했던 영평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한탄강이 지나가는 이곳은 풍경이 빼어나 수많은 시인묵객이 거쳐가며 글과 시를 도처에 남겼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여덟 곳을 일컬어 영평팔경이라 불렀다. 특히 화적연은 큰 바위를 중심으로 강이 휘감으며 마치 볏단을 쌓은 모양을 하고 있다. 겸재 역시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해악전신첩’을 통해 바라본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영평’이란 명칭은 시대 너머로 사라졌지만 경흥옛길을 통해 그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떤 고을은 쇠퇴를 막지 못하고 작은 동네가 큰 도시로 발전하는 사례를 수없이 만나 왔다. 서울의 팽창과 집값 억제를 위해 탄생한 1기 신도시 이후 경기도는 지금도 수차례 지도를 다시 그려야 했다. 일산, 분당신도시는 기존 원도심과 격리된 채 고양, 성남과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주장하며 광교, 한강신도시처럼 소속돼 있는 고장의 특색을 살려 정비된 신도시도 존재한다. 고령화와 저출산 시대를 맞이해 10년 뒤 경기도의 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 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기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시기 대권주자가 할 일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성장 둔화와 함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환경에 놓여 있으며 과거보다 지역별로 파편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독일, 멕시코, 한국의 성장 전망이 크게 하향 조정된 가운데 우리 경제는 트럼프 관세, 세계 교역 위축 및 내수 둔화 등으로 어두운 전망이 주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임시방편보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국가경제를 책임질 혁신형 지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선 경제정책의 뼈대를 이루는 인센티브 제공 방식의 재고가 필요하다. 기존의 소비형 인센티브 대신 혁신형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과거 어려운 경제 여건하에서도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나 IMF 외환위기 직후 초고속망 투자 같은 기간산업 육성을 통해 중화학산업과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이룬 경험이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 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한 지역별 특성에 맞는 고도 실험 설비 구축 등이 핵심 인프라일 것이다. 또 혁신형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할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혁신 기술을 활용한 벤처 창업 및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법률, 자본조달, 인력 양성 등 핵심 영역에서의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 산업사회에 맞게 구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수용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보상 체계의 혁신, 즉 근로자 임금도 단순히 물리적인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동의 성과 측정, 자본과 노동의 적정 배분체계 마련 등이 필요하다. 영화 ‘론리 플래닛’의 스윙 루트(swing route), 즉 커다란 혼란 속에서 직관을 믿고 희망을 찾는 식의 처방보다는 원칙에 입각한 체계적인 개혁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끈기와 고집이 다른 것처럼 자신감과 과신도 헷갈리면 안 된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은 현 시점에서는 경험 많고 노련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제부총리와 세계은행 선임정책관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한 혁신형 일자리 30만개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경제 여건은 미국 과학자 리처드 해밍 의 ‘올바른 문제를 적당한 때에 제대로 된 방법’에 한 가지를 더해 엔비디아 젠슨 황이 말하는 지적 정직성을 갖춘 ‘적격자’가 풀어 나가야 할 환경이다. ‘어려울 때 조급함을 버리고 원칙을 지켜라’는 말처럼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분기점에서 임시방편적 대책보다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반 구축은 도덕적 의무라고 본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자춘추] 심사평가원 활용 좋은 병원 찾기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질병으로 입원해야 할 때가 있다. 어느 병원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 우리는 종종 주변 지인의 추천이나 거리가 멀더라도 규모가 큰 대학병원을 찾곤 한다. 하지만 집 가까이에 의료 질이 높은 병원이 있다면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지인들이 병원 선택을 고민할 때 먼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병원평가 정보, 즉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를 참고하라고 권한다. 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진료의 안전성, 효과성, 효율성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평가해 그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병원평가 정보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심사평가원 홈페이지나 ‘건강e음’ 앱의 ‘우리 지역 좋은 병원 찾기’ 서비스에서 지역을 선택하면 급성·만성질환, 암질환 등 다양한 질환별로 의료기관들의 평가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평가 결과는 5개 등급으로 나뉘어 있는데 등급 숫자가 작을수록 우수한 의료기관에 해당한다. 찾는 질환에 대해 주변의 의료기관이 모두 우수한 의료기관이라면 병원 선택에 참고할 만한 다른 정보는 없을까. 이런 경우 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환자경험평가 결과를 확인하기 바란다. 이 평가는 환자의 관점에서 개인의 선호, 필요 및 가치에 상응하는 의료가 제공됐는지를 평가하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도입됐고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 입원 경험이 있는 환자에게 모바일웹(카카오톡 또는 문자)을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설문 내용은 입원 진료 중 의료진의 경청, 환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 회진 시간 관련 정보 제공,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 투약 및 치료 관련 이유 및 부작용 설명, 치료 결정 과정에 환자 참여 기회가 제공됐는지 등으로 다양한 측면의 환자 경험 조사 결과를 제공한다. 평가 결과는 6개 항목별로 100점 기준 점수로 공개되고 찾는 병원 결과 외에도 평가 대상 병원들의 평균값 및 최고값을 함께 제공하고 있어 병원 선택 시 참고할 수 있다. 다만 환자경험평가는 현재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입원 경험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해당 병원에 입원이 예상되는 경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환자경험평가의 핵심은 여러분의 참여다. 다른 적정성 평가와 달리 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자료가 수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8~12월 실시할 예정인 심사평가원 환자경험평가 모바일웹(카카오톡 또는 문자) 설문 요청을 받으면 적극 응답해 주시기 바란다. 4분 정도 소요되는 설문 참여가 우리 모두를 위한 환자 중심의 더 나은 의료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기시론] 국내 유입 이민자 규모 어떻게 정해야 할까

법무부는 지난해 정주적합성이 높은 전문·숙련 외국 인력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고 정책 수요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며 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취업비자 총량 사전 공표제’를 시범 도입했다. 해당 제도 도입을 통해 우수 인재, 투자자 등과 같이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대상의 경우 정책 목표로서의 기능을 하고 단순기능인력 등과 같이 국민 일자리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는 연간 비자 발급건수의 상한을 제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이에 앞으로 인구 구조, 경제성장률, 산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간 이민 도입 규모를 정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국가들의 관행을 보면 미국은 이민귀화법에 따라 매년 인구의 0.3%(약 100만명)에 해당하는 이민비자(영주비자)를 발급하고 있고 캐나다와 호주는 연간 계획을 수립해 매년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이민자에게 영주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영주비자를 발급할 때, 학력, 경력, 소득, 연령, 언어능력 등 다양한 개인 역량을 고려하기 때문에 정주 외국인의 양은 물론이고 질적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 앞선 나라들은 영주비자 이외에 일시적 거주와 취업 등에 필요한 비자도 발급하지만 영주비자를 통한 정주인구 증가에 더 큰 정책의 비중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민자들은 영주권을 가지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 자신의 기술, 기능, 지식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해외에 가진 물적 자본까지 이전할 수 있다. 아울러 본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나가고 창업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일본 등은 주로 노동수급 상황을 고려해 부족 인력을 메울 수 있는 이민자의 취업 업종·직종을 제한해 한시적으로 거주를 허용하고 입국 후 에 정주자격을 부여할지를 결정한다. 우수인재 입장에서 볼 때 정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직업역량의 강화와 직업의 변경, 창업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이 정책은 결국 인력의 미스매칭이 많이 발생하는 단순노무 분야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유입시킨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취업자격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의 약 84%가 단순노무에 종사하고 있다. 지난해 이민정책연구원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중소제조업체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이 1% 증가할 때 지역 내 제조업의 생산성이 0.56%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이민자의 전문성(숙련성)이 높을수록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기업이 채용하는 외국 인력의 구조에 따라 그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 대학 및 기업이 협업해 연구개발을 통한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 사업모델의 개발, 자동화 등을 통해 산업구조의 조정을 촉진하고 그 변화에 적합한 숙련기능공과 전문인력을 양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구 보너스 시대와 같이 부족 인력만 보충하면 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인구 급감에 따라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고 노동 수요와 일자리가 감소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지난해 8월 기준으로 229개 시·군·구 중 57.2%가 소멸위험지역이 될 정도로 대다수 지역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 따라서 생산, 소비, 투자 등에 도움이 되는 정주외국인의 유입과 정착 지원에 대해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 실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비교우위산업의 육성 ▲교육발전특구의 활용 확대 ▲다양한 대안학교와 저렴한 국제학교 운영 ▲방과 후 프로그램 지원 ▲거주여건 개선 등을 통해 이민자는 물론이고 자녀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이뤄져야 부모도 정착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인구 구조 악화와 인력 부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해외 직업훈련을 강화했고 2019년 특정기능 2호 비자를 신설, 숙련기능 외국 인력까지 정주를 허용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은 1994년 유럽연합(EU) 단일시장 출범에 따른 노동시장 개방, 2004년 EU에 가입한 동유럽 8개국에 대한 노동시장 개방, 2020년 ‘전문인력 이민법’ 제정을 통해 EU가 아닌 국가의 전문인력과 숙련기능공의 유치 및 정주 허용 등과 같이 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민자를 부족한 인력을 일시적으로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잠재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이 이뤄져야만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근본적인 틀도 바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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