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자기 주도적 삶 위한 청소년 활동

다양한 청소년 활동에 참여해 자신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고 충분한 활동 기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미래 사회의 주역인 청소년들이다. 청소년기는 자아를 형성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비전을 정립하는 중요한 시기이지만 오늘날 청소년은 입시 중심의 공교육과 과도한 사교육 속에서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경험을 누릴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활동은 단순히 여가를 보내는 것을 넘어 과도한 경쟁과 학업 부담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하며 균형 있는 성장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실 밖의 세계를 탐험하며 자신만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것은 그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 활동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 시설을 갖추고 지원하고 있다. 청소년 시설은 청소년들에게 입시 위주의 활동이 아닌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기계발과 또래 활동을 통해 균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지나친 경쟁에 노출돼 입시만을 위한 교육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러한 시설이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이용할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활동은 단순히 학업 외의 부가적인 활동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주도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이를 위해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교육의 홍수 속에서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활동이 활성화돼 마치 가랑비처럼 그들의 삶에 스며든다면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화산책] 왕가의 한(恨)을 품은 사찰, 회암사

아파트 숲이 빼곡하게 들어찬 옥정신도시의 천보산 기슭에는 예사롭지 않은 절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회암사지라 불리는 이곳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이후 나옹, 무학대사 등 수많은 고승이 거쳐갔으며 조선이 건립된 이후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궁궐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녔다. 현재 남아 있는 터의 규모는 262칸이며 이곳에서 수행하는 승려의 숫자도 3천명에 달했다. 특히 서승당은 현재 남아있는 국내 최대 온돌시설로 한겨울에 수행하는 많은 수도승을 배려하기 위해 지어졌다. 크기와 명성만큼 이 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회암사에서 출토된 유구를 살펴보면 정교하게 조각된 토수와 용두를 비롯해 궁궐에서만 쓸 수 있었던 청기와, 왕실 전용 관요에서 제작된 도자기가 알려져 있다. 그 화려함이나 자태는 다른 곳과 격을 달리할 정도로 품격이 높지만 예사롭지 않은 유물이 하나 있다. 청동금탁이라 불리는 것으로 처마 끝에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내는 종이다. 이 종에는 조선의 평화와 번창을 기원하는 글과 함께 ‘왕사 묘엄존자 조선국왕 왕현비 세자’가 상단에 새겨져 있다. 각각 무학대사와 이성계, 그의 왕비 신덕왕후 그리고 세자인 방석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절의 위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이 금탁이 중심 전각인 보광전터에서 나온 것으로 미뤄 태조 이성계에게는 이곳이 단순한 종교시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회암사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왕자의 난으로 왕위를 넘긴 이후 회암사에 머물렀던 기록이 상당수 등장한다. 이성계에게 회암사는 어떤 의미였을까. 숭유억불, 유교를 국가의 근본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회암사란 존재는 불교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국가의 중추인 사대부의 탄압에 시달렸던 사찰들은 왕실 권력에 기대어 그 명맥을 이어갔다. 아들 이방원의 난으로 아끼던 막내 방석은 죽고 동료도 잃었으니 권력의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방원이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짓밟아야 할 하나의 원수였다. 태조는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고는 그 복수를 위한 발판으로 회암사를 선택했다. 이즈음 세간에는 ‘함흥차사’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왕의 자리에 오른 방원이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소식이 끊긴 일을 두고 만들어진 사자성어다. 아비는 모든 것을 앗아간 아들을 지우고 싶었고 자기의 몫을 되찾았다 여기는 아들은 아비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부자관계인 둘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멀어져 가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왕위를 되찾기 위해 난(亂)을 일으킨다. 회암사가 위치한 양주는 이성계가 터를 잡았던 함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재기를 꿈꾸기에 완벽한 입지를 지녔다. 고향에는 그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무장세력이 남아 있기에 그들을 활용한다면 백전무패의 장군이었던 이성계는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여겼다. 그는 인척인 조사의를 통해 군대를 일으켰지만 이방원의 과감한 결단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꼼짝없는 아들의 포로로 전락한 이성계는 회암사의 부처에 의지하며 회한(悔恨)에 잠겼다. 무학대사의 조언으로 그는 돌아갈 결심을 한다. 궁으로 돌아온 이성계가 아들을 마주했을 당시 심경은 어떠했을까. 세속의 악연은 이제 접어두고 끊을 수 없는 자식과 그 손자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자식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해 자부심으로 여겼던 이방원이 아닌가. 그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불교를 꺼리던 아들이지만 아버지를 위해 회암사에 땅을 하사하는 등 호의를 베푼다. 그 인연은 왕가의 대를 이었으며 유생들의 방화로 불타 없어질 때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양주 회암사는 부자지간의 골육상쟁과 용서, 한과 소망을 품으며 후세 사람들에게 말없이 전해 주고 있다.

[기고] 양자과학기술 중요한데…경기도 뭐하나

유엔은 양자역학과 응용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을사년 2025년을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로 지정했다. 1925년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양자역학의 주요 선구자 중 한 명이며 ‘행렬역학’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같은 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으로 물질의 상태를 설명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완성했다. 100년 전인 1925년은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 등장한 기념비적인 해인 셈이다. 100년이 흐른 현재 연구 성과가 쌓이고 실험장비가 발전하면서 양자역학을 토대로 한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 기술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2025년 양자과학기술의 해를 맞이해 새해 양자 관련 언론 기사를 찾아보니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년사에서 “우리는 현지 실정에 맞춰 새 질적 생산력을 육성했고 집적회로와 인공지능(AI), 양자통신 등 영역에서 성과를 이룩했다”고 강조했고 영국 양자기술기업 옥스퍼드아이오닉스의 리스밸런스 최고경영자(CEO)는 신년담화에서 양자컴퓨터가 올해 산업현장의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에 최초로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역학이 상식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며 “AI도 처음엔 연구자들만 다뤘지만 지금은 누구나 쓰고 있다”며 연구자가 아닌 사람이 양자 원리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완전히 상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3월 필자는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경기도 양자산업 육성 및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양자경제시대를 준비하려면 양자산업의 체계적인 성장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정보 제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경기도가 양자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욱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김용성 의원(더불어민주당·광명4)은 2025년 본예산 심사에서 “양자산업은 경기도가 미래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집행부는 기업지원, 전문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며 최소 두 배 이상 예산이 증액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025년 성균관대 양자정보공학과에서 학부생을 맞이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양자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대학생이 처음으로 생긴다는 소식이 너무 반갑다. 또 세계 최대 기술박람회로 손꼽히는 소비자가전쇼(CES)도 양자컴퓨터에 주목했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의 게리 셔피로 회장은 8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5에서 처음으로 양자컴퓨팅 분야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양자과학기술, 경기도는 무엇을 하고 있나. 경기도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을 위해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정책 마련을 기대하며 필자는 국제 양자과학기술의 해(IYQ)를 맞이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개최되는 국내 양자과학기술 생태계 동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산·학·연·관 네트워킹 행사에 참석해 2025년도 정부정책 및 사업 방향을 청취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종구 칼럼] 소추 혐의 철회, '박근혜 결정문'에는 없다

내란죄 철회가 적법한가. 윤석열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반발하고 있다. 탄핵 소추의 핵심을 변경하는 것이라고 한다. 국회 의결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형법이 아닌 헌법 위반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철회를 무죄로 판단하는 정신착란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거론하는 것이 박근혜 탄핵의 예다. 2017년 당시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 그 당사자가 권성동 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다.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은 사건은 없다. 판에 박듯 적용할 판결이란 것도 없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건의 경우는 더하다. 우리 헌정사에 세 번밖에 없는 사건이다. 노무현·박근혜·윤석열 탄핵의 구성이 다르다. 선거법 위반(노), 국정농단(박), 계엄과 내란(윤)이다. 판례를 도출할 경험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탄핵의 예(例)’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찾아보자. 인용은 2017년 3월10일 헌재 결정문 속 단어와 해석이다. 첫째, 용어에서 차이가 있다. 2025년 청구인은 ‘철회한다’고 표현했다. “철회하는 것이냐”는 정형식 재판관 질문에 “철회 맞다”고 했다. 2017년 결정문은 ‘제외’ 또는 ‘다시 정리’로 적고 있다. “각종 형사법 위반 유형을 제외하고”, “소추 사유를 다시 정리하였다”. 적어도 헌재 결정문에 ‘철회’라는 표현은 없다. 권성동 의원의 당시 발언에도 ‘철회’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재작성해서 제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2017년 1월·기자회견). 둘째, 시기에서 차이가 있다. 2025년 청구인의 ‘철회’는 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등장한다. 12월27일 철회에 대한 견해를 냈고, 1월3일 소심판정에서 “철회가 맞다”고 확정한다. 본격 심리를 가다듬는 준비기일에 등장한 ‘철회’다. 2017년 탄핵 때는 한창 심리가 진행되다가 등장했다. 당시 결정문은 “청구인이 2017년 2월1일 제10차 변론기일에 다른 유형과 사실 관계가 중복되는 각종 형사법 위반 유형을 제외하고…”라 적고 있다. 셋째, 피청구인의 동의 여부가 다르다. 2025년 철회에는 피청구인이 반발하고 있다. 탄핵의 원천 무효까지 주장한다. 2017년 탄핵 때는 피청구인이 일단 동의했다. 당시 결정문에 두 문장이 있다.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변론을 진행하다가 2017년 2월22일 제16차 변론기일에 이르러…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양 당사자가 유형별 정리에 합의하고 15차례에 걸쳐 변론을 진행해 온 점에 비추어 볼 때…”. 넷째, 해당 사건의 비중이 다르다. 2025년 탄핵 소추의 핵심은 내란죄다. 1차 탄핵안에는 무속인, 이태원, 명태균, 김영선 등도 있었다. 이게 불발되자 2차 탄핵안에는 다 빼고 내란죄에 비중을 둔다. 그제야 여당표가 움직여 통과된다. 2017년 결정문은 탄핵 소추 혐의에 번호를 부여해 나열했다. ①비선조직 ②권한 남용 ③언론 자유 침해 ④생명권 보호 위반 ⑤각종 형사법 위반 등이다. ‘제외’ 또는 ‘정리’된 것은 맨 뒤 ⑤번 혐의다. 청구인과 피청구인은 각자의 영역이 있다. 각기 다른 논리로 법을 해석한다. 그 결과를 정답이라고 선전한다. 국회 청구인도 그렇고, 윤 대통령 대리인도 그렇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피면 될 문제인데. 한 가지는 자꾸 귀에 거슬린다. 노무현 탄핵 또는 박근혜 탄핵의 예를 함부로 끌어 쓰고 있다. ‘그때 했으니 지금 해도 된다’며 논리의 근거로 이용하려 든다. 그래서 박근혜 탄핵 결정문 전문을 찾아봤다. 대개 거짓말이거나 과장이었다. 헌재는 법을 수용한다. 여론도 수용한다. 정치도 수용한다. 하지만 과장이나 거짓말은 수용하지 않는다.

[경기만평] 사실상 공동경비구역...

[사설] 사활 건 탄핵 시간 싸움, 헌재는 심판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 돌발 화두가 등장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내란죄 공방이다. 논란의 시작은 민주당의 내란 혐의 철회다. 3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정형식 이미선 재판관 심리로 소심판정이 열렸다. 재판부가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철회한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국회 측은 “철회 주장이 맞다”고 답했다. 국회 측은 12월27일 준비기일에서 “철회”라는 견해를 냈다. 윤 대통령 법률자문단 윤갑근 변호사는 탄핵 소추가 무효임을 자인한 것이라며 국회 의결을 다시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국회가 새로운 탄핵소추문을 작성해 탄핵안 재의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 나라를 내란죄로 뒤집어 놓고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나경원), “탄핵 찬성파 여당 의원들은 입장을 밝히라”(윤상현), “찐빵 없는 찐빵이다”(권성동) 등의 비난들이 등장했다. 민주당이 반박에 나섰다. “형법이 아닌 헌법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한민수), “내란죄가 내란행위로 바뀌었을 뿐 거의 차이가 없다”(이성윤). 국민의힘 주장에 ‘정신착란적 주장’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여야가 다툴 새로운 화두의 등장이다. ‘내란죄 철회’는 민주당이 꺼냈고, 이 단어가 윤 대통령 측에 빌미를 제공했다. 이를 예견 못했을 민주당이 아니다. 그럼에도 들고 나온 이유가 있다. 민주당 측 모든 설명에 있다. 이성윤 의원은 “내란죄가 더 까다롭고 시간도 길게 걸린다”고 했다. 한민수 대변인도 “내란 수괴 윤석열을 하루빨리 파면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철회’를 처음 주장한 27일 재판정에서도 ‘탄핵심판이 지연될 수 있어서’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마다 등장하는 ‘탄핵 심판 속도전’이다.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연결지어진다. 그런 국민의힘도 시간에 목맨다. 헌재 재판부는 내란죄 관련 주장을 서면으로 받겠다고 했다. 주장 자체를 막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이나 국민의힘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2월12일 담화에서 헌재 재판의 생중계를 요구했었다. 계엄에 이르게 된 과정을 시간을 갖고 풀어가겠다는 계산이다. 이런 여야의 탄핵 시간 싸움이 ‘내란죄 철회’로 시작된 것이다. 재판 속행과 재판 지연의 수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 싸움의 심판격(格)이 바로 헌재다. 그래서 헌재의 모든 결정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내란죄 철회’만 해도 그렇다. “헌재 안에 이재명 부역자 있나”(홍준표), “민주당과 헌재가 짬짜미를 한 것으로 해석한다”(주진우) 등의 저격이 등장했다. 헌재가 민주당 편을 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무조건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헌재가 할 일은 이런 오해의 소지도 없애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든 입장은 심리를 통해서만 생산돼야 한다. 그리고 그 전달은 재판정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헌재 공보관’이나 ‘헌재 관계자’는 결코 바람직한 메신저가 못 된다.

[사설] 화재 많은 겨울철, 철저한 예방만이 최선책이다

지난 금요일 경기지역에서 대소형 화재사고 3건이 발생했다. 대형 화재는 3일 오후 4시37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지하 5층, 지상 8층 규모의 복합상가 건물에서 발생했다. 이용객이 많은 복합상가 건물에서 발생해 대형 참사가 우려됐지만, 다행히 소방 당국의 신속한 대처와 방화문으로 화재는 1시간 만에 진압됐고 사망자와 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하에는 어린이 수영장까지 있어 큰 피해가 우려됐지만, 신속한 구조·대피로 큰 인명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두 번째 화재는 3일 오후 6시50분께 경기 용인시 모현읍에 있는 플라스틱 공장 창고에서 발생했다. 이 화재 역시 한때 대응 1단계를 발령한 소방 당국은 오후 8시 40분쯤 큰 불길을 잡았지만, 불은 4일 오전 1시40분쯤에야 완전히 진화됐다. 이 화재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연기가 많이 발생해 용인시는 “인근 주민은 창문을 닫는 등 안전에 유의해 달라”는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세 번째 화재는 3일 오후 8시30분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의 13층짜리 복합상가 건물에서 발생해 20분 만에 진화됐고 11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겨울철은 화재가 많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명사고가 가장 많은 계절이다. 이에 소방청은 지난 11월부터 오는 2월까지 ‘겨울철 소방안전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낮은 기온과 건조한 날씨 등 계절적 특성에 따라 난방기구 사용과 실내 활동이 늘어나 화재 위험이 다른 계절보다 매우 높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겨울철(12월~다음 해 2월) 화재는 연평균 약 1만530건 발생해 725명의 인명 피해(사망 105명, 부상 620명)와 약 2천035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화재에 따른 인명피해 비율은 사계절 중 가장 높다. 지난 3일자 경기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경기도내 많은 원룸촌이 화재 발생에 대비한 최소한의 소방시설조차 갖추지 않아도 되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우려가 제기된다. 주로 원룸으로 공급되는 단독주택,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한 화재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화재 예방을 위한 소방시설 설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법률상 의무만 존재할 뿐 실질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대다수 원룸 소유자들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겨울철 화재 예방을 위해 소방당국의 철저한 안전 점검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소방시설법에서 규정한 의무 조항의 강화와 함께 처벌 규정의 제도적 정비 등이 요구된다.

[지지대] 삼합리 이야기

말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어깨를 마주치며 살 수 있을까. 수도권에 그런 곳이 있다. 경기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三合里)가 그렇다. 이 마을 이름의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세 개가 합쳐진다는 뜻이다. 지리적으로는 마을 세 곳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전국적으로 그런 곳이 흔하지 않아서다. 이 마을 앞으로 강이 흐른다. 주민들은 이 강을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여주의 가람이란 의미에서다. 남한강의 지류다. 이 강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첫 부분에도 나온다. 이 강을 끼고 경기도와 강원도, 충북 등이 만난다. 아주 오래전부터다. 강 건너편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다. 그 남쪽은 충북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다. 지리적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이곳에선 남한강과 그 지류인 섬강, 청미천 등이 합쳐진다. 오갑산 능선의 꼬리 부분에 위치한다. 자연 마을로는 단진개, 중간말, 대오 등이 있다. 단진개는 장마가 지나면 강의 하상이 드러나 붉은색을 띠므로 단진개(丹津)라고도 부른다. 청미천 맨 끝 하구에 위치하므로 단진(斷津)개라고 불렀다. 중간말은 단진개와 오리골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오는 깊은 오지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여강을 놓고 보면 여주에선 남녘이고, 충주에선 북녘이며, 원주에선 서녘이다. 애주가들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자정 무렵이면 다리 하나 건너 술자리를 이어 갔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충북에만 통행금지가 없어서다. 이들 세곳의 주민들은 지금도 봄과 가을이면 돌아가며 운동회를 열어 화합을 다지고 있다. 이들은 강원도 주민도 아니고, 충청도 주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기도 주민도 아니다. 남한강 주변 이웃일 뿐이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졌던 사회·정치적 상황들이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삼합리 주민들의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자. 그게 상생이다.

[천자춘추] 곁을 내어 주세요

타인과 유의미한 교류가 없고 도움받을 수 있는 지지 체계가 부재한 청년, 그중에서도 방이나 집에 스스로를 가두고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청년을 고립·은둔청년이라 한다. 백수, 니트(NEET),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등 다양하게 불리는 이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으르다’고 비난받고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활기차게 도전해야 마땅한 시기에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이 청년답지 못하다고, 일부 청년들의 지극히 개인적 상황이라며 그간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고립·은둔청년이 더 이상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감염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민 모두가 고립을 경험하거나 가까운 곳에서 고립을 마주하면서 고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기반이 됐다. 통계청 사회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고립청년은 54만명, 팬데믹이 완화된 2023년에도 49만명인 것으로 추정됐다. 그저 노인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고립이 생애 가장 건강한 시기를 살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에, 게다가 그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에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그러나 참 어려운 시기다. 많은 사람이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은 낮고 끊임없이 무한 경쟁해야 하는 노동시장에서 이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놀랍게도(?)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다. 2019년부터 1천700명이 넘는 고립청년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고립청년의 가족, 친구를 위한 가이드(2024년)’를 발간한 니트생활자에 따르면 고립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적 지원(17.5%)이 아닌 정서적 지지(47.5%)와 사회적 교류 기회(27.5%)다. ‘우리’가 될 시간이다. 2023년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4명은 현재의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립청년들은 가족과 친구보다 오히려 느슨한 관계에서 지지와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친구로, 가족으로 채워지지 않는 관계망을 우리로 채울 때다. 그들의 속도와 필요를 존중하자. 적절한 거리에서 위로하고 격려하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이 아닌, 배려와 공감이다. 지금 당신의 곁을 내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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