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2025년 위기의 한국 경제, 스타트업이 열쇠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의 수습이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2025년 을사년을 맞이한 한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혼란이 더욱 심화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곧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가 글로벌 경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며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금리, 고물가, 경기 침체의 삼중고로 고전했던 2024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 할 만하다. 한국 경제는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모색함으로써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제에서 핵심 플레이어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스타트업에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2024년 9월 기준)을 보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알파벳(구글)으로 이들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벤처캐피털(VC)의 투자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이들은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에서도 톱10에 포함된다. 이처럼 스타트업은 특유의 유연함을 바탕으로 딥테크 분야의 빠른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글로벌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고 있다. 우리도 스타트업을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 매출과 고용의 측면에서 벤처 스타트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스타트업 간의 글로벌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스타트업은 팬데믹 이후 지속되고 있는 ‘혹한기’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VC의 미온적 투자, 신규 비즈니스 시장 진입 환경 저하 등으로 2023년 대비 부정적 변화에 대한 업계의 인식이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에도 이런 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보고서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 위기 가능성과 경제 상황 악화 전망 등으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여건은 오히려 악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지난해 국내에서 새롭게 탄생한 유니콘 현황을 보면 우리 스타트업의 어려운 상황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규 유니콘은 2021, 2022년 각각 7개로 정점을 찍은 후 2023년 4개, 2024년에는 2개로 줄었다. 매년 신규 유니콘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스타트업 선진국들과는 대조적 상황이다. 스타트업이 현재 한국이 직면한 경제 위기 극복의 키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각국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치열하게 경쟁 중인 인공지능 등 딥테크 분야에서 역량 있는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내수와 유통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딥테크 중심으로 전환하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보다 많은 스타트업이 딥테크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모태펀드 확대 등의 조치를 통해 투자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경기도는 2025년 예산으로 38조7천억원을 확정했다. 2024년 본예산 대비 2조6천억원(7.2%) 증가한 규모다. 경기도는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확장 재정의 기조를 지속하겠다고 밝히면서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중심의 스타트업 지원도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여전히 혹한기를 겪고 있는 스타트업들에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 기조가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확대되길 기대한다. 스타트업은 한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의 문을 활짝 열어 주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열면서] 새해 책 많이 받으세요!

연말연시엔 만나는 이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건네는 의례적 인사이고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서로의 안녕과 행운을 빌어 주는 마음만큼은 진심일 것이다. 설 명절 전후로는 실제 선물을 주고받으며 본격적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경우도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선물의 사전적 의미를 선물의 물성에 중심을 두고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이라며 설명한다. 그러나 선물을 주고받는 물건 정도로만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저서 ‘선물(The Gift)’을 통해 선물에 담긴 의미를 더 깊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선물이 오가는 과정 안에 ‘주기’와 ‘받기’라는 행위가 이뤄지는데 이는 단순히 물건이 오가는 차원이 아니라 주고받는 관계 간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는 사회문화적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선물을 받으면 되돌려 줘야 하는 의무 혹은 부담이 생기는데 이렇게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호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즉, 선물에는 경제적 교환과 함께 사회문화적 결속력 강화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는 의미다. 또 그는 되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고받는 공짜 선물은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는데 길에서 공짜로 받은 판촉물에 빚진 느낌을 갖지 않는다거나 무언가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선물을 줬다 하더라도 계속 주기만 하고 하나도 받지 못하면 받기만 하는 이에게 서운함이 느껴지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을 보면 선물 주고받기가 사회적 유대감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그의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외에는 선물에서 여러 의미와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선물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정한 순간의 사건을 기념하거나 기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작은 선물 하나에 개성이나 취향 등이 반영되기에 주고받는 사람들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따라서 선물이나 그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을 받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다수에게 보내는 의례적 답례품조차 심사숙고해 결정하기 마련인데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보내는 선물에 들인 정성이 적을 리 없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의 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원하는 것을 탐색하거나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정말 마음에 딱 드는 선물에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종종 명절이나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이라든지 어린이날이나 성탄 선물로 받고 싶은 선물 목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보도되곤 한다. 연령대나 성별, 조사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다양한 조사 결과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로 제일 많이 보이는 건 ‘현금’이다. 그 외에 고가의 선물이나 받은 이의 자율적 활용도가 높은 상품권도 인기 있는 선물 중 하나다. 받기 싫은 선물 목록도 함께 언급되곤 하는데 대부분 성의 없이 느껴지는 선물류다. ‘책’은 최악의 선물은 아니지만 그다지 인기 있는 선물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책만큼 상대에 대한 높은 애정이 담긴 선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상대의 취향이나 관심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그에 맞는 책을 선물할 수 있고 책을 함께 읽는다면 이를 매개로 서로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성의 가치에 비해 그 안에 담긴 지적·감성적 무한 성장 가치를 생각하면 책이야말로 상대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새해엔 서로 기쁘거나 축하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다른 여러 선물도 좋지만 상대방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을 선물하면 어떨까 한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시작하는 독자들께 새해 인사를 건네고자 한다. 모두 새해 책 많이 받으세요!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경기만평] 메시지...

[사설] 화성특례시만의 목표는 '화성과학기술인재특별시'다

화성시가 화성특례시가 됐다. 특례시는 기초자치단체 시에 부여되는 행정적 명칭이다. 인구 100만을 넘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2021년 1월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제198조를 통해 특례시 규정이 신설됐다. 2022년 1월 13일 경기 수원시·고양시·용인시와 경남 창원시가 특례시로 출범했다. 당시 4개 특례시는 법 개정 당시 이미 100만을 넘어선 상태였다. 어찌 보면 이들 100만 도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성격이 강하다. 이 특례시에 화성시가 2025년 1월1일부로 진입한 것이다. 모든 지역에서 인구는 줄고, 모든 시·군이 비상이다. 이럴 때 100만 도시의 신규 진입은 현실적이지 않다. 바로 이런 확장을 화성특례시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게 화성특례시가 기존 특례시와 다른 점이다. 인구가 팽창하는 유일한 화성, 산업 규모가 커지는 유일한 화성, 도시 개발이 진행되는 유일한 화성이다. 그래서 역동성이 크다. ‘2040년 160만’이라는 전망도 있다. 화성특례시 출범에 즈음한 슬로건이 나왔다. ‘특별한 시민, 빛나는 도시, 화성특례시’다. 좋다. 시정의 역점 둘 실천 목표도 제시됐다. 민생 경제 회복, 첨단 산업 육성, 문화·여가 인프라 확충, 균형 있는 도시 발전이다. 매우 적절하다. 좋은 특례시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균형 잡힌 대도시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취지에 동의하고 성공을 기원한다. 여기에 더할 기대가 있다. 화성특례시가 가진 독보적 잠재력을 구현해낼 구호다. 그 힌트가 정명근 시장의 구상에 있다. 지난해 11월 공개한 ‘과학기술인재 특별시, 화성’ 구상이다. 첨단 산업의 두뇌들이 총집결된 화성시다.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 3위의 현대차·기아차 연구소가 있다. 남양연구소를 거점으로 하는 세계 자동차 기술의 중심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의 한 축도 화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 두 첨단 산업에서 파생된 고급 두뇌들이 모두 화성에 집결해 있다. 4개 특례시가 따를 수 없는 여건이다. 정 시장이 밝힌 세부 약속도 있다. KAIST, GIST, DGIST, 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을 모으겠다고 했다. 통합 연구 거점을 화성에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화성과학고, 마이스터고 설립을 통한 과학기술인재 특화 교육도 약속했다. AI 미래도시를 준비하는 시민, 공무원, 초중등 과학시술 및 정보통신 교육 확대도 선언했다. 우리는 정 시장의 ‘과학기술인재 특별시, 화성시’를 사실상 화성특례시의 첫째 미래 전략으로 평가한다. 화성특례시가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국토균형이란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화성이 1등 될 수 있는 분야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 ‘화성과학기술인재특별시’다. 우리가 특례시 축하와 함께 화성에 부탁하는 미래다.

[사설] 윤 대통령, 저항하면서 쌓아가는 대응 법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한남동 관저 앞 지지자들에 전한 인사말 형식이다. “애국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메시지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상하시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안부도 곁들였다. 5년 전, 2020년 12월15일 동영상이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총장 직무 배제를 당한 처지였고, 지지자들은 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윤 총장이 출근하던 차에서 내려 시위대 앞으로 갔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말을 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이제 그만 하셔도 마음을 감사히 받겠다”며 인사를 전했다. 많은 국민들에게 겹쳐지는 대검 청사와 대통령관저 두 모습이다. 추운 날씨를 걱정하는 인사말까지 닮았다. 윤 대통령 측이 또 한번의 반전을 기대하며 그 출발 지점을 지지자들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때문일까. 윤 대통령 주변에 지지자들도 많아졌다. 윤 대통령 측 대응에는 거센 비판도 따른다. 지지자를 통해 법 무력화를 시도한다는 지적이다. 2일 변호인단의 발표가 그런 비난을 더 했다. 공수처가 경찰 기동대를 동원해 체포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공수처에는 경찰 기동대를 지휘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동대가 나선다면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혹여 ‘시민 누구나’를 ‘지지자 누구나’로 해석하면 상황은 위험해진다. 요 며칠 언론에 등장하는 과거 사례가 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이인제 전 자민련 의원 등의 예다. 구속영장 집행이 당원 지지자들의 저항으로 불발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사법 심판 자체까지 불능화시킨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은 결국 소환됐거나 기소됐거나 재판받았다. 윤 대통령에게도 사법 절차는 이미 시작됐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체포영장 집행에 맞서고 있다. 주목되는 게 변호인 측 주장이다.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음을 강조했다. 공소 기각을 주장할 논리다. 체포영장 발부에는 판사의 ‘형소법 110조·111조 적용 예외’ 기재를 반박했다. 영장이 위법했음을 주장할 논리다. 경찰 기동대 투입은 공수처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발표했다. 체포 과정의 부당성을 설명할 논리다. 수사 착수, 영장 발부, 체포 연행의 전 과정에 위법 논리를 미리 쌓아가는 듯 보인다. 쟁송을 위한 법 기술은 소송 당사자의 권리다. 윤 대통령에도 당연히 그런 권리는 있다. 다만, 그 과정이 국민을 불안으로 내몰면 안 된다. “기동대가 나서면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는 변호인 주장이 딱 그렇게 비쳤다.

[지지대] 신년사 방송 배경 왜 바꿨나

빼곡하게 들어찬 서적, 책장, 사진, 필기도구.... 지구촌 어느 국가 지도자의 신년사 방송 배경이다. 적어도 지난해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올해는 확 달라졌다. 그것도 확연하게 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얘기다. 2025년 신년사 방송에서다. 우선 책장과 가족사진 등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성홍기로 대표되는 국기와 만리장성이 떡하니 들어섰다. 집권 이후 매번 단골로 선보였던 집무실 풍경이 확 달라진 셈이다. 시 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3년 이후 집무실에서 책장을 배경으로 짙은 색 나무 책상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뒤에 걸린 국기는 그대로지만 만리장성 그림 양옆에 있던 우람한 책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전보다 더 큰 만리장성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책장이 사라진 게 가장 눈에 띈다. 그는 신년사 방송 때마다 책장에 놓인 사진 20여장에 변화를 주며 그해 역점과제를 에둘러 표현해 왔다. 이 때문에 신년사 때 사진은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창구로 여겨져 왔다. 더구나 지난해는 사진 중에서도 가족사진의 비중을 늘렸다.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의 부친인 시중쉰 전 부총리,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 어린 딸과 함께한 가족사진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심리적인 포석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외부의 비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가 권위를 강조해 내부 단결을 꾀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회주의 정권이어서 더욱 그렇다. 시 주석은 올해 신년사 방송에서 강대국의 위상을 강조했다.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도전과 신구(新舊) 동력 전환 압박 등 몇 가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한 해 펼쳐질 중국의 대미정책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시베리아 시골 도시 ‘벨로고르스크’

■ 시베리아 소도시 벨로고르스크에서 오전 9시 시베리아 시골 도시 벨로고르스크의 자동차정비소가 문을 열면 문제가 생긴 L실장의 차를 고쳐야 한다. 오늘은 자동차 수리 때문에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손님이 적은 시골 여관이라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부득이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내와 함께 시내 공원에 산책을 갔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레닌 동상은 대부분 철거됐는데 이곳은 시골 도시라 한 개 남아 있다고 한다. 레닌은 1924년 사망했으니 지난해가 사망 100주년이다. 레닌 사망 후 후계자 스탈린은 레닌 우상화를 위해 소련 각지에 수만개의 동상을 건립했다고 한다. 요즈음 러시아 전체에 남아 있는 레닌 동상이 희귀해 사진 찍는 관광 장소라고 한다. 아침 기온이 13도여서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는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노상에서 동네 주민들이 시베리아 산딸기, 야생 베리를 팔고 있다. 시식해 보라고 권해 먹어 보니 모양새는 맛있어 보이는데 신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다. 이곳은 일조량이 적어 한국보다 과일 당도가 낮다. 어제 산 야생 꿀도 확실히 당분이 적은 것을 느낀다. 언제 시베리아에 다시 오겠는가 생각이 들어 두 종류의 야생 베리를 노점상에서 샀다. 한 컵 가격이 250루불(약 4천원)이다. 짧은 여름 한 번 먹을 수 있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라 아내에게 권하니 배탈 난다고 먹지 않는다. ■ 인근 도시 스보보드니: 자유시 참변 장소 스보보드니는 벨로고르스크에서 60㎞ 떨어져 있다. 러시아어 스보보드니는 한국말로 ‘자유’라는 의미다. 이 도시는 독립군부대가 참변을 당한 ‘자유시 참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봉오동전투가 1920년 5월, 청산리전투가 1920년 10월에 있었다. 일본군의 추격에 쫓기던 독립군은 추운 겨울 두만강 건너 지린성 백두산 자락에서 출발해 북만주 벌판, 헤이룽장, 싱안링산맥을 넘어 수천㎞ 먼 길을 걸어 1921년 봄 ‘스보보드니(자유시)’에 도착했다. 혹독한 만주의 겨울 추위에 빈약한 복장과 부족한 식사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어렵게 이곳에 도착한 뒤 1921년 6월 러시아 적군과 고려공산당 군대에 의해 독립군이 학살당한 도시다. 독립군 측 기록에 의하면 600여명 사망, 900여명이 체포됐다. 학살로 대한독립군 부대는 거의 소멸돼 1921년 이후 일본군과 독립군의 변변한 전투는 없다. 청산리전투 사령관 김좌진 장군은 학살의 낌새를 눈치채고 사전에 빠져나와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 러시아 변방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은 대부분 무명용사일 것이다. 그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보보드니는 스탈린 치하 정치범수용소로 유명하다. 최대 19만명이 수용됐다고 한다. 스탈린 자신도 러시아혁명 이전 반체제범으로 체포돼 어느 시베리아 수용소에 2년 동안 수감된 경력이 있다. 억압받았던 자가 억압하는 위치에 있게 되면 더욱 잔인해지는 일이 인간사와 역사에 많다. ■ 스코보노디노로 가는 여정 자동차정비소에서 시간을 많이 소모하고 아침 늦게 스코보노디노로 출발한다. 북위 54도에 위치한 인구 1만명의 작은 도시다. 오늘 이동할 거리는 550㎞다. 우리 여정의 시베리아 초원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3일간 2천여㎞를 시베리아 숲길로 지나오면서 원시적인 자연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시베리아 산림은 비슷하다. 자작나무 숲이 주종이고 때로는 소나무 군락지도 나타난다. 열대지방, 온대지방 등에 비해 수종이 매우 단순하다. 텅 빈 대초원도 번갈아 나타난다. 연초록색 물결이 출렁이는 초원의 바다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근처에 사람이 안 살고 소비할 시장이나 판로가 없으므로 경작도 쉽지 않다. 도로변의 많은 초지가 텅 빈 채로 있다. 여름철 낮 시간이 16시간으로 매우 길고 강한 햇볕 때문에 짧은 여름 3개월 동안에 감자, 밀, 채소 등 경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공기는 매우 맑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무공해 자연은 아름답다. 거의 경치의 변화가 없는 시베리아 대평원 길을 며칠째 달리고 있다. 가끔 마을이 나타나는데 사람이 안 사는 폐가가 많이 보인다. 젊은이들은 모두 모스크바 등 대도시로 떠나고 시베리아에 살던 부모가 죽으면 우리 농촌처럼 자연스럽게 폐가가 될 것이다. 자작나무, 소나무가 서로 경쟁하면서 군집을 이루고 있다. 어떤 곳은 자작나무가 주종이고 어떤 곳은 소나무가 주종이다. 대체로 숲속의 나무는 매우 빽빽하게 밀집해 자라고 있다. 겨울 강풍과 추위에 서로를 지탱하기 위함이다. 가혹한 겨울 날씨에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지혜다. 초원에 잠시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야생 벌레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처음엔 모기에 물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초원의 야생 곤충에 물린 것을 알게 됐다. 곤충의 독성이 매우 강해 일주일 이상 붓고 가려워 큰 고생을 했다. 시베리아 곤충의 독성에 면역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간 모기약은 전혀 듣지 않는다. 밖에서 보면 아름다운 초원인데 속은 무서운 곤충들의 천국이다. 다시는 초원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면역력이 생긴 이곳의 농민이나 목동은 아마 괜찮을 것이다.

[세상읽기] 인공지능기본법, 한눈에 파악하기

여야의 극한 긴장과 대치 속에서도 민생과 미래에 꼭 필요한 법안들이 지난해 1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가운데 주목받는 법은 ‘인공지능기본법’이다. 인공지능기본법은 인공지능(AI)의 건전한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궁극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산업의 진흥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3년마다 ‘인공지능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사람이나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발전계획에서 벗어나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인공지능 발전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리고 주요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기 위한 조직으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45인 이내로 구성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인공지능 글로벌 전쟁에 대비한 일종의 국가 지휘소가 생겨난 셈이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인공지능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외국 기업을 상대하는 데 있어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구축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집적단지 지정, 인공지능실증기반 조성, 인공지능데이터센터 구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수한 전문인력 확보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전문기술 지원을 포함해 종합적인 정책 연구를 담당할 ‘인공지능정책센터’, 인공지능사업자 중심의 진흥 기구인 ‘한국인공지능산업협회’도 설립 근거를 가지게 됐다. 반면 인공지능이 가지는 잠재적 위험을 찾아 제거해 안전성과 신뢰성을 담당할 조직으로 ‘인공지능안전연구소’가 명시돼 있다. 데이터 학습에 사용된 누적 연산량이 일정 기준 이상인 첨단인공지능(Frontier AI)에 요구된 안전성 확보 의무 관련 업무는 물론이고 인공지능 안전에 관련된 위험 정의부터 시작해 안전 정책 연구, 안전 평가, 안전 기술 개발 및 표준화, 국제협력까지 이 연구소가 담당한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이 ‘위험(risk)’을 중심으로 기술됐지만 우리나라 인공지능기본법은 ‘영향(Impact)’을 중심으로 기술돼 있다.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을 ‘고영향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하며 10가지 대표적인 영역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고영향 인공지능인지가 불분명한 경우 해당 사업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서 문의하게 돼 있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경우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책무가 부과된다. 고영향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사전에 사람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사전 영향평가를 한 경우 국가기관 등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우선권이 주어진다. 고영향 인공지능은 생성형 인공지능과 더불어 ‘투명성’ 확보 의무가 특별히 명시돼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됐거나 인공지능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고지하거나 표시해야 한다. 딥페이크 사건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인공지능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과기부 장관이 제정해 공표하게 돼 있고 인공지능 관계자들이 윤리원칙을 잘 이행하도록 ‘민간자율인공지능윤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며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검증과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경우 이러한 검증과 인증이 강하게 추천된다. 끝으로 몇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 관련 외국 기업도 일정 규모 이상이면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게 돼 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는 이미 개소한 일본 사무소 외에 한국에서도 공식 사무소를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사업자가 투명성 의무, 안전성 의무를 지켜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만일 지키지 않았을 때 이에 대해 과기부 장관은 사실 조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위반행위 중지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적 지휘소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법의 시행일로부터 5년간 존속한다는 제한조건도 가지고 있다. 이 조항은 아무리 길어도 5년 안에 인공지능에 관한 국가 경쟁력 확보 및 신뢰 체계 구축을 확실하게 수립해 내재화하라고 요구하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국가적 역량 집중이 필요한 골드타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