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연 인천시교육감은 2월 3일 지게를 이용해 10㎏ 쌀포대 5개를 들어 올리는 라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라이스 버킷 챌린지는 전국 쪽방촌에 거주하는 홀몸 어르신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를 돕기 위한 캠페인으로, 소외된 이웃이 가진 삶의 무게를 함께 느껴보고 체험하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참여자는 이 쌀 30㎏ 이상을 들어 올리거나 쪽방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캠페인에 참가할 수 있으며, 캠페인에 동참하길 원하는 이들을 지명할 수 있다. 이 교육감은 경제가 어려워 점점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이때, 보다 많은 이들이 쪽방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이어가길 바란다며 이번 행사로 캠페인이 널리 확산돼 많은 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교육감은 다음 도전자로 이정희 인천시자원봉사센터 회장과 안승목 인천경영포럼 회장을 지명해 캠페인에 동참하길 희망했다. 글=김민기자 사진=인천시교육청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어린이집 아동 학대사건 예방대책과 관련, 어린이집 학대 사건을 막으려면 동기가 될 만한 요인을 없애야 한다면서 보육교사 처우와 보육환경 개선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월 11일 오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소재 선사 어린이집을 방문해 보육교사들과 간담회를 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CCTV 설치는 실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이재명 시장은 성남시는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보육교사들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되, 가혹 행위가 발생한다면 엄히 제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이재명 성남시장의 어린이집 방문은 사기가 저하된 보육교사들을 격려하고, 근무환경에 대한 애로사항과 실효성 있는 보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간담회에서 보육교사들은 성남시의 보육교사 처우개선 사업에 대해 감사의 뜻을 밝히는 한편, 하루 12시간을 아동 보육에 매달려야 하는 등의 어려운 여건을 토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보육교사들의 건의사항과 관련해 시는 지자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과 별개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적극 건의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시는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해 761곳 어린이집 교직원 5천115명 전원에게 복리후생비, 장기근속수당, 사회복지공제회 상해공제 가입비 등 급여 외 일인당 최고 1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글=문민석강현숙기자 사진=성남시청 제공
용인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생들이 각종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유아숲 체험원 3곳을 운영한다고 2월 11일 밝혔다. 체험원은 처인구 모현면 용인자연휴양림 용인아이숲, 기흥구 중동 한숲근린공원 한숲 유아숲 체험원, 기흥구 공세동 보라생태마당 근린공원 보라 유아숲 체험원 등으로 전체면적은 6만9천㎡에 달한다. 용인아이숲은 유아를 위한 모래놀이터와 모임터를 조성한 버드나무 교실, 유소년을 위한 어드벤처 놀이시설, 대피시설인 밤톨 조형물 등으로 구성됐다. 또 한숲 유아숲 체험원은 나무공작교실, 표현의 숲, 숲속교실, 숲속길 등을 갖추고 있고 보라 유아숲 체험원은 경사오르기와 밧줄타기 시설, 모래놀이터 등이 있다. 시는 이들 체험원을 정기형, 체험형, 자율형 등 3가지 유형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협회 등을 통해 참가신청을 받는다. 운영기간은 상반기 3월 2일부터 7월 15까지, 하반기 7월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로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2차례 운영된다. 시는 수요자 눈높이에 맞는 오감만족 놀이와 체험, 참여형 산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밖에 시는 유아 숲교육 전문가, 산림교육 전문가, 담당 공무원, 체험원 참여 기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유아숲 체험원 운영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운영위원회는 유아숲 체험원과 숲교육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점검하고 체계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한 자문 역할을 한다. 또 교육기관과 업무협약 등 협력체계 구축에도 나선다. 글=강한수권혁준기자 사진=용인시청 제공
최성 고양시장은 2월 12일 K-컬쳐밸리 조성은 100만 도시 고양시의 비약적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로 고양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 컨퍼런스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CJ 주도로 1조원이 투자되면 향후 10년간 총 25조원의 경제효과와 17만명의 고용창출이 기대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K-컬쳐밸리는 CJ가 구성한 컨소시엄이 1조원을 투자해 고양시 일산서구 한류월드 부지 내에 콘텐츠 파크와 상설공연장, 글로벌 한류 체험 공간 등을 2017년 말까지 조성하는 사업이다. 최 시장은 지난 11일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서 남경필 경기지사와 손경식 CJ 회장 등과 K-컬쳐밸리 조성 및 운영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최 시장은 이번 K-컬쳐밸리 조성으로 100만 고양시민이 간절히 염원하는 한국폴리텍대학의 유치와 GTX 조기착공에도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K-컬쳐밸리는 킨텍스와 빛마루, EBE, 원마운트 등과 연계해 신한류 문화관광밸트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의 K-컬쳐밸리 조성 의지와 경기도, CJ간 이뤄진 협약에 따라 고양시는 시민적 차원의 TF팀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며 향후 고양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한류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될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글=유제원김현수기자 사진=고양시청 제공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제종길 안산시장은 1월 27일 대부도 선감동 갯벌자원연구센터 건립부지를 방문했다. 이날 남 지사와 제 시장 일행은 갯벌자원연구센터 건립부지 현장에 도착, 건립 추진현황 및 현안사항에 대한 보고를 받고 건립부지를 돌아봤다. 연구센터는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55번지 일대 7만803㎡ 규모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기도 해양의 종합적 이용관리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갯벌 서식어종 변화, 신양식 품종개발로 서해안 해양수산 R&D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추진 되고 있다. 사업기간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추진 된다. 1단계는 총 사업비 80억원(국비 32.5, 도비 47.5)을 들여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착공, 패류동 연구시설, 연구사무동 등이 건립된다. 또한 2단계는 2016년부터 2년 동안에 걸쳐 107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어류동, 갑각류동, 연구시설, 수산물안전검사동, 관리사동 등이 건립되며, 3단계는 2018년 이후로 사업비 113억원에 해양생태학습관이 건립 될 예정이다. 글=구재원기자 사진=안산시청 제공
광주시는 청소년들의 푸른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인 청소년수련관을 2월 3일 개관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조억동 광주시장을 비롯한 단체장, 초중고 교장과 청소년,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광주시 회안대로에 소재한 광주시청소년수련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 면적 9천715㎡의 규모로 10여 개의 동아리실과 체육관, 헬스장, 공연장, 청소년상담실 등 문화체육시설을 갖췄다. 조억동 광주시장은 기념사에서 청소년수련관이 수련교류문화활동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해 청소년들에게 꿈의 공간으로 자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한상훈기자 사진=광주시청 제공
의왕시가 2월 10일 중앙도서관에서 사회단체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단체장들의 애로 및 건의사항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왕시 대한노인회, 새마을회 등 관내 사회단체장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사회단체장들은 ▲사무실 리모델링 지원 ▲주차장 부족 문제 해결 ▲노인복지관내 건강보조시설 설치 ▲사회단체지원조례 제정 ▲수화통역사 지원 ▲먹거리촌 조성 ▲공사장 인근 인도 확보 ▲사무실 이전 요청 ▲바리스타 운영을 위한 장소 지원 등 단체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김성제 의왕시장은 이날 건의된 안건들에 대해 해당부서와 관련기관과의 협조아래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김성제 의왕시장은 지난 민선 5기동안 의왕시가 교육과 복지 부분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큰 발전과 변화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지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사회단체장들의 헌신과 도움이 컸다며 앞으로 민선6기 사업들이 원활하게 추진되어 의왕시가 명품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사회단체장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글=임진흥기자 사진=의왕시청 제공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이바지한 애국지사와 그의 유족, 이들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이 그 누구보다도 뜻깊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300여만명에 이른다. 허나, 유공자 지원을 받는 이들은 생존자와 유족을 합해도 1만명이 안 된다.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처우가 외국에 비하면 열악하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독립운동가 유족들과 후손들의 모습은 어떨까.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재산을 독립운동에 쓴데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면서 후손들은 경제적 약자로 전락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조들의 독립운동이 후손들에게 대부분 명예보다는 가난만 유산으로 남겨진 경우가 많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도내 독립운동가 3인의 후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소앙 선생 8촌 조양래 독립운동가 조소앙선생 기념공원 추진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는 조양래(79)씨는 조소앙 선생이 8촌 할아버지가 된다. 조소앙(趙素昻, 1887~1958) 선생은 파주시 출생으로 어린 시절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서 보냈다. 임시정부의 사상적 기틀이 된 건국강령을 마련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 사회당 당수,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특히 삼균주의를 제창해 임시정부가 건국까지 좌우파를 통합해 어떤 이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할지 기본 방향을 정한 독립운동가로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조씨는 조소앙 선생을 언변이 좋고 유머러스한 할아버지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조소앙 선생이 집에 종종 들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1950년 5월 30일 제2회 총선거에 서울 성북구에 출마해 3만4천35표로 전국 최고득표로 당선되면서 제2대 국회에 진출했다. 그 때 내가 아마 중학교 1학년이었을텐데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 화려한 언변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지식의 깊이와 나라를 향한 애국심이 대단했던 분이셨다. 625전쟁으로 서울에서 강제납북돼 전시하에서 가혹한 생활을 견뎌야 했고 결국 순국해 평양 남쪽 애국지사 묘역에 고이 잠들어 있다. 조씨는 조소앙 선생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워 지난 2008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조소앙 선생 기념공원 조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조소앙 선생이 어린시절을 보낸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조성중인 조소앙선생 기념공원은 총사업비 54억9천만원으로 현재 본가 복원과 기념공원조성을 완료하고 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10월 개관 예정이다. 다들 주변에서 조카가 할 수 있겠느냐 의구심을 가졌다. 내가 죽으면 끝이겠구나 생각해 정말이지 열심히 뛰어다녔죠. 솔직히 너무 힘들고 지쳤다. 정식으로 조소앙선생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후손들에게 조소앙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애국정신을 함양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사업들이 진행됐으면 하는 게 소원입니다. 최익현 선생 현손자 최종규씨 포천에서 16대째 살고 있는 최종규(84)씨는 지역에선 큰 어르신으로 통하는 유명인사다. 포천문화원을 만들어 1대에서 4대까지 원장을 맡아 포천문화발전에 힘썼다. 무엇보다 조선 말기의 위정척사사상을 주창한 유학자이자 항일 의병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가인 염재(念齊) 최면식(崔勉植, 1981~1941) 선생이 각각 고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된다. 포천에선 최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다들 조상 덕을 많이 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최씨의 생각은 다르다. 최씨는 후손이 못 사니 선조도 빛이 안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광복이 됐을 때 광복이 뭔지도 몰랐다. 지난 과거가 너무나 비참하다. 어려서부터 내 뜻대로, 기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았다. 가난에 얽매여서 살았고 혼자 서울에서 유학할 때 625가 나서 외가가 있는 가평으로 도망을 갔다. 자전거에 쌀 한가마니를 싣고 70리 길을 오셨다 가셨는데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조상들 욕먹이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면서, 외롭게 살아왔다. 최씨의 고조할아버지 최익현 선생은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최후의 진충보국했던 분으로서, 구국의병항쟁의 불씨를 점화시킨 항일 의병장이다. 최씨의 할아버지 최면식(崔勉植, 1891~1941) 선생은 1916년 대한광복회에 입단해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펼치다 일본 경찰에 피체돼 옥고를 치렀다. 그 후에도 수차례 옥고를 치르던 중 공주형무소에서 건강 악화로 출옥한 뒤 순국했다.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는 최씨의 고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 채산사(山祠, 경기도기념물 제30호)가 있다. 일제의 탄압이 유독 혹독했고 광복 후에도 친일파들의 득세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현재도 그러하다. 후손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사회 전체의 관심이 필요하다. 최씨는 지원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최소한 후손들로 하여금 조상들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도록 말이다. 조병세 선생 채수민 前 삼충단보존회장 강직하고 추진력도 굉장하고. 그러니 나라가 망할 것 같은데 왕은 설득 안되니 바로 극약 자시고 자결하지. 독립운동가 조병세(趙秉世,1827~1905년) 선생을 모시는 제단 삼충단(三忠檀)의 건립을 추진했고 지난해까지 삼충단보존회장을 맡았던 채수민(79)씨의 말이다. 조병세 선생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지금의 국회의장과 같은 중추원 좌의장(1894년)을 지냈다. 1898년 의정부 대신에 임명됐지만 은거하며 끝내 사양했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79세의 몸으로 국권회복과 을사5적의 처형을 고종에 주청하다가 일본군에 연금되는 수모를 겪었다. 곧 풀려나 대한문 앞에서 석고대죄하며 같은 주장을 펴다가 가평으로 추방당했다. 다시 상경해 을사늑약의 위법성을 성토하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 당해 억지로 교자(가마)에 타서 미리 준비한 극약을 마셨다. 조 선생은 죽기 전 각국 공사와 동포, 백성에게 유서를 남겨 독립의 기초를 세울 것을 당부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조 선생은 을사늑약에 나라가 이미 망하였으니 나는 대대로 국록을 먹던 신하로서 나라와 함께 죽음이 마땅하다며 분통스러워 했다. 지금이야 조 선생처럼 자결하면 개죽음이라 하겠지만, 당시 엄청난 것이었다. 온 국민이 부친상을 당한 듯 슬퍼했다고 한다. 채 회장은 조 선생과 국권을 되찾기 위해 함께 활동한 최익현(崔益鉉), 민영환(閔永煥)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인 삼충단 복원에 힘써왔다. 삼충단은 1910년 설단해 방치 훼손됐다가, 지난 89년에 복원됐다. 처음 삼충단을 세웠던 13명 중 한 사람의 후손 분이 내가 청년일 때 찾아와 복원 관련 문헌과 자료를 줬다. 그 때부터 총대를 맸다. 조 선생님 관련 자료를 찾고 맨 땅에 헤딩하듯 기금 마련하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동네 이장이 피할 정도로 수 년간 가가호호 방문 모금을 불사하며 기어코 삼충단을 복원, 지난해까지 삼충단에 제를 진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3년 전 작고한 조원흥이라는 조병세 선생 후손이 말하기를 그렇게 주민들한테 내 식구처럼 자상한데 국가 일을 할 때는 엄중하게 처리했다더라. 이 시대에 그런 양반 기리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깨달았으면 더 소원도 없겠다. 정리=류설아강현숙기자 사진=전형민기자
해방 이후 경기도가 서울시에서 나눠져 독자적인 행정체계를 추진한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경기도는 70여년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획기적인 정책과 비전 제시 등을 통해 많은 광역자치단체의 롤모델이 됐다. 광복70년을 맞아 경기도가 걸어왔던 어제의 모습을 재조명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미래 비전을 모색해본다. 해방 직후 경기도 해방직후 중앙정치에서 전개된 좌우익의 대립 상황은 경기도내 각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경기도는 어느 지역 못지 않게 정치적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며 경기도의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와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 당시 경기도는 서울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치적 비중이 상당히 컸다. 이 때문에 미군정 당국이나 국내 정치지도자들 모두에게 경기도는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경기도는 또 한번 큰 피해를 받게 됐다. 도는 3년에 걸친 남북전쟁으로 인해 무려 12만8천740명의 민간인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자산 및 시설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피해가 컸던 이유는 북한 인민군의 주공격선이 모두 경기도를 통과했고 두 차례에 걸친 양군의 진격과 후퇴로 거듭되는 전란을 치렀기 때문이다. 경기도내 자행됐던 양주군 남면 상수리 남양 홍씨촌 집단학살, 파주군 임진면 마정리 임진강 갑바위 집단학살 등도 경기도 피해를 가중시켰다. 특히 휴전선에 인접한 경기북부 지역의 경우 남북간의 군사적 대립으로 인해 안보상의 이유로 많은 규제를 받게 되며 지역개발사업 등이 등한시됐다. 이후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에 의해 경기도도 변화를 맞게 된다. 경제개발계획이 실행되면서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공업지역은 경제개발계획 단계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경제개발과정에서 인천과 그 주변지역에는 공업단지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나아가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으로 공업지역이 확대되면서 경기도의 공업도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같이 경기도는 한국사회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했다. 군사전략적으로는 남북이 대치하는 현장으로,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경기도청 수원 이전 현재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경기도청이 광교 신청사로의 이전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유는 너무나 낡고 오래된 건물이어서 늘어나는 인력과 행정 수요를 감당하기에 비좁고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지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수원시내 가장 최신식 건물로 평가받았다. 지난 1946년 8월 경기도에 속해있던 서울시가 경기도로부터 분리됐다. 당시 서울 태평로에 있던 경기도청은 졸지에 남의 행정구역에 셋방살이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청사를 경기도내에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17년간 경기도 각 도시 간 도청유치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막연하게나마 경기도청은 해당 행정구역내로 이전한다고 결의하자 도내 각 지역에서는 본격적인 도청 유치운동을 벌였다. 후보지로는 수원시를 포함해 의정부시, 안양시 등도 대상 물망에 올랐다. 이 같은 청사문제 이전을 두고 발발한 625전쟁으로 도청 이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잠시 중단됐다. 전쟁기간 중 경기도청은 대구와 부산 등지로 전전하다가 지난 1951년 3월 평택을 거쳐 수원에 임시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이도 잠시, 2년 뒤인 지난 1953년 8월 수원에 있던 경기도청은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옛 건물로 다시 옮겨지게 된다. 이후 지난 1956년 초대 경기도의회 의원 선출 선거와 195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도청사 이전 문제는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으며 특히 수원시는 인천시, 안양시와 도청사 유치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수원시는 도청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수많은 유치운동을 벌이고 투쟁한 결과, 마침내 지난 1963년 12월10일 서울시 태평로에 위치한 경기도청이 관할구역내인 수원시로 이전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산업화의 중심으로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치면서 등장한 군사정권은 경제개발 슬로건을 내세우며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산업단지가 구축된 서울 및 인천 외에도 이들 지역과 인접한 안양시, 부천시, 성남시는 다른 지역보다 먼저 공업지대의 확산 과정을 겪게 됐다. 이 시기부터 수도권 공업의 중심지역이 점차 서울에서 경기도로 옮겨가게 됐다. 1960년대만 해도 제조업체 수가 33곳에 불과했던 안양시는 공업지대가 확산되기 시작한 1970년대 초 제조업체 수가 100여곳으로 늘어났다. 또 경수산업도로가 개통되면서 산업화의 속도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고 1980년대에는 400개가 넘는 공장이 입주하게 됐다. 안양시의 급속한 산업화 확장은 90년대 이후에도 지속돼 남으로는 군포시와 의왕시를 지나 이미 대규모 공업지역으로 성장한 수원까지 연접하고 서쪽으로는 시흥시 및 안산시까지 연계되기에 이른다. 부천시 역시 지난 1968년 경인고속도로 건설과 1974년 수도권전철 개통 이후 가장 급격히 산업화된 도시로 꼽힌다. 성남시의 경우 서울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68년 성남시(광주대단지)를 개발하면서 이주민들에게 생업의 터전을 제공하여 자족도시로 개발성장시킬 목적으로 공업단지가 조성됐다. 첫번째 단지는 지난 1974년 준공했으며 1976년 23단지가 완공돼 200여개의 업체가 입주하게 됐다. 이후 입지조건과 지가 등의 요인으로 더딘 성장을 보이던 성남시는 현재 판교 신도시의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되며 융합기술 중심의 첨단혁신클러스터로 급부상 중이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가장 큰 염전지대였던 화성은 90년대 대규모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신규 공장 및 설립에 가속화가 붙었다. 90년대까지 350여개에 불과했던 화성 지역의 공장은 2000년대 들어서며 3천여개가 넘는 제조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정리=양휘모기자 사진=경기일보 DB
경기도 관광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기관광공사가 새로운 수장이 취임함에 따라 올해부터 경기도 관광객 유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올 1월 1일자로 제6대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부임한 홍승표 사장은 수십년간의 공직생활을 바탕으로 경기관광공사에 활기차고 건강한 에너지를 부여해 경기도 관광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4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 한 채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 경기도 관광 산업 발전의 선장 역할을 맡게 된 홍승표 사장으로부터 경기도 관광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Q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소감은. A 지난 2004년도에 경기도 관광과장을 맡아 2005년 경기도 방문의 해를 준비하면서 경기도 관광의 실태와 현주소, 문제점 등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2002년 경기도 관광의 해를 치르면서 정부 표창도 받게 됐다. 지금은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많이 변했다. 변화된 상황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의 경기관광공사는 전적으로 도의 지원에 의지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비 지원도 받을 수 있게 사업을 발굴하고 시군과의 협업을 통해 같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 계획이다. 특히나 관광은 공사 따로, 시 따로, 도 따로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 일환으로 서해안 관광지 개발을 위해 화성시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여주와도 복선전철 개통이 완료되는 시점과 맞물려 여주를 관광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해 여주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또 지난해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올해에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화시키기 위한 밑그림을 마련할 방침이다. Q 오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는데. A 1975년 2월에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6개월 정도 쉬었던 기간을 빼면 총 39년 6개월간 공직에 몸을 담갔다. 고향인 광주 신촌면(현 곤지암읍)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한 뒤 문화공보팀에서 근무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고양, 의왕시에서도 문화공보 관련 부서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특히 경기도의 대표적인 관광 지역인 용인시와 파주시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관광 개발과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Q 공직 기간 중 제일 보람찼던 때와 제일 힘들었던 시기를 돌이켜본다면. A 제일 보람찼던 시기는 아무래도 2001년부터 도 문화정책과장 등 문화, 관광분야에서 근무하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백남준아트센터, 도립 국악단, 경기도미술관 등을 설치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관광과장을 하면서 한류월드 30만평 부지 매입, 2005년 경기 방문의 해를 성공적으로 준비했던 것이 제일 보람찼다. 어떻게 보면 공무원으로서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시기적으로도 잘 맞물렸기 때문에 주요한 시점에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파주부시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도 말에서부터 2011년도 초다. 그때는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새벽 1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을 100일 넘게 이어갔다. 어느 출근길에는 콘크리트 바닥을 밟는데도 스펀지처럼 발이 쑥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래선 큰일 나겠다는 생각까지 날 정도였다. 체중도 급격히 줄고 머리털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파주부시장 퇴임식에서 인사말을 하다가 너무 고생한 것이 생각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고생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당시에는 살처분을 하면서 동물위령제만 세번을 지냈다. 4년만에 구제역이 다시 번지고 있는데 비교적 잘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얼른 마무리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공직 생활 중에서는 구제역이 제일 무서웠다. Q 공사 사장으로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A 첫번째는 현재 경기도 보건정책과와 관광공사로 이원화돼 있는 의료관광객 유치를 유치단계에서부터 공사가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싶다. 현재는 의료관광객에 대해 치료에 대한 부분은 도가 하고 이후 부분을 공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를 초기 단계부터 협업을 펼치도록 해 효과적인 의료관광객 유치가 되도록 할 생각이다. 또 날로 성장하고 있는 마이스(MICE) 산업 관련 관광객 유치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재 경기도 마이스 산업의 70%이상이 킨텍스에서 이뤄진다. 최근에 임창열 킨텍스 사장과 만나 서로 직원 2명씩 파견을 하기로 하는 등 공조체계를 이어가기로 했다. 킨텍스에서 큰 국제회의가 있을 때 참가자들을 북부지역 관광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공사가 역할을 해야 한다. 같은 관광객이라도 개별, 단체보다 국제회의 등에 참가하는 인센티브 관광객들이 두세배 더 많은 소비를 한다. 관광이라는 것이 굴뚝없는 산업인데 일반적인 수준으로는 한계에 와있다. 의료관광과 마이스 산업이 경기도 관광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경기도의 여건을 잘 꿰서 통합시스템화하고 통합마케팅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밖에 올해에는 그동안 수도권 인구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부산, 경북, 대구 등 영남권과 광주 등 호남권 관광객을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세일즈를 해볼 생각이다. 5월에 부산 벡스코 관광박람회에서 경기관광주간 행사를 진행하는 등 양 지자체가 서로 힘을 보태는 관광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이후 광주에서도 박람회를 진행하고 코레일과도 협의해 관광상품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Q 남경필 경기지사가 북부지역 발전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A 남경필 지사의 계획이 2018년도까지는 북부 중심의 도정을 계획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이 북부에 출장소를 만든데 이어 경기신용보증재단와 경기개발연구원도 북부사무소를 설치했다. 앞으로는 콘텐트진흥원도 북부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북부지역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관광공사도 장기적으로는 북부로 이전을 하고 남부에 출장소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최근 들어 경기북부지역 관광객의 점유율이 전체 관광객 대비 43%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 점유율은 몇년 내 50%를 넘기게 될 것이다. 경기북부 활성화 차원에서 DMZ를 북부지역 대표적인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다각도에서 준비 중이다. Q 관광공사의 수익창출을 위한 방안은. A 관광공사는 현재로서는 큰 수익구조가 없는 상태다. 단지 지금은 도내 시군 관광 발전에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관광공사가 평화누리를 제외하고는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대부도에 골프장을 설치하는 안도 검토됐었지만 분석해 본 결과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수익구조를 다변화할 방편 중 하나로 수원 영화지구 부지 매각을 생각하고 있다. 수원 화성 옆에 위치한 영화지구는 4천평(1만3천여㎡)에 이르고 있지만 전혀 활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묶어둔 채 방치만 할 것이 아니라 수원시에 매각해 시가 부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 통해 공사의 유동성자금을 확보해 공사가 다방면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규정상으로는 공사에 600억원의 자금이 투자됐어야 하지만 경기도의 재정 여건으로 인해 450억원만 투자가 이뤄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영화지구에 270억원이 묶여 있고 기존 운영비로 94억원로 사용하면서 이제는 86억원만을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선은 영화지구를 수원시에 매각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해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고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생각으로는 임진각에 위치한 도깨다리를 스카이워크로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할 생각이다. 도라전망대도 현 위치에서 100m떨어진 곳에 3층으로 전망대를 다시 짓고 전망대와 식당, 기념품 상점 등을 재배치해 수익창출 모델로 재생산할 예정이다. 글=정진욱기자 사진=추상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