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이라 하여 도시를 떠나 생태적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움직임들이 심상치않다.한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귀농 가구 수는 6천500가구로 2010년 4천67가구에 비해 무려 60%나 급증했고, 이런 추세는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증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도시의 몸에 베인 일상의 습성을 버리고 도시탈출의 꿈을 꾸게 되는 연유는 여럿이겠으나, 그를 통해 도시에서 얻을 수 없는 다른 뭔가를 기대하는 심정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이것저것 따져보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본다 한들 귀농귀촌의 결단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 것은 단순히 삶의 공간의 물리적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업의 방편은 물론 삶의 일상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설계하며 스스로의 문화적 파동을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그러기 위해선 스스로의 공력이 우선이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어찌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하게 그려지겠는가?마을을 찾아 그 곳에 머물다보면 마을에서 잔뼈가 굵은 소위 원주민과 귀농귀촌이라 하여 마을에 새롭게 찾아든 이주민이 어우러지는 여러 모습들을 보게 된다. 늘어나는 귀농인들의 적응문제그러다보면 누가 누군지 선듯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서로를 닮아있는 모습도 보지만, 때로는 입고, 먹고, 잠자는 기본적인 습성이나 말과 행동의 모양새가 서로 다르고, 심한 경우 물과 기름같이 겉도는 모습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인간사 사는 모습이 모두가 같을 수는 없겠거니 하며 지나치곤 하지만, 마음 한 켠의 딱한 심사마저 없는 듯 할 순 없겠다. 흔히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귀농귀촌인들의 적응력 부재나 마을 사람들의 배타성, 폐쇄성, 고답성 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성정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듯하다. 마을에서 살아 온 사람이건 마을로 돌아온 사람이건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삶의 양식을 버리고 다른 이의 그것에 전적으로 맞추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우리네 마을이 들어냄 보단 암묵적이고 숨겨진 질서로 작동되는 부분이 적지 않고, 그것이 마을 살이의 잔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표준화와 명시성의 틀 거리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혼자 힘으로 풀어내기 버거운 힘겨움을 얹혀주는 것도 사실이다.아마도 귀농귀촌의 마을 살이에서 크고 작은 부대낌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와 명시성이 절대선이 아니듯이 암묵적이고 숨겨진 질서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귀농귀촌이란 서로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마을을 사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마을 사용의 질서규칙 공유하자따라서 귀농귀촌이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마을 사용하기의 암묵적 지식과 숨겨진 질서 등을 들어낼 수 있는 장치가 요구된다. 이러한 마을 사용하기의 들어냄을 통해 보편성과 특수성의 교차점을 찾아내고 마을 안팎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마을 공동체의 합의된 시각을 갖춰나갈 수 있을 때, 귀농귀촌의 문화적 의미와 함께 마을 공동체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에너지원을 한층 풍부하게 가꿔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단지 귀농귀촌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도 절실한 일이다. 마을의 공동체성은 사람이 모여 사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주체와 방법, 지향점 등을 같이할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오피니언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2012-02-15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