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위기의 사회적 기업가

착한 일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보면 의례 접하게 되는 것이 있다.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 그것이다. 시장만능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벗어나면서 한편으로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엿보는 이들에게 사회적 기업은 여러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되어 제도적 틀 거리가 마련되면서 지난 4~5년간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의 폭이 확대되어 왔다. 이제는 그 기대치와 정책적 동인 등이 다소 초기의 그것만 못하다 하겠으나, 여전히 자본과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회적 참여의 현실적 방법론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사회적 기업은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압축 성장에 익숙한 우리의 경우, 사회적 기업 역시 그 개념과 철학적 배경 등에 대한 천착보다는 제도적 도입과 현실 적용의 기능적 부분이 앞서나갔음은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기업을 일궈낼 수 있는 우리 사회 전반의 생태 문화적 기반을 닦기보다는 일자리 창출이나 수익 모델 등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 지향의 분위기에 휩쓸리게 됨을 보게 된다. 현실 적용의 기능적 부분만 앞서 물론 일자리 창출 역량과 안정적 수익 모델 개발 등이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주요한 요인임을 부인키 어렵다 하겠으나, 그것이 어찌 단기간의 제도적 견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지금까지 기반 닦기보다는 과업 지향적 성과관리 위주 제도적 견인력으로 인해 그마저도 이루어내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더욱이 기반 닦기부터 가시적 성과도출까지 그 모든 것들을 오롯이 사회적 기업가의 몫으로 지워주게 된다면 이는 성공신화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문하지만 사회적 기업가의 역량이란 한마디로 사회적 목적과 기업가적 수단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는 곧 사회적 기업가에게 사회적 목적 구현을 위한 의제 설정과 기업가적 수단의 발현을 위한 시장 참여 등의 구조적 문호가 개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회적 기업가는 설정된 의제의 대집행 대상이거나 수많은 시장 참여자의 하나일 뿐으로 치부되곤 한다. 많은 경우 사회적 기업가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선 기꺼이 대상화의 굴레를 감수해야 하며 한편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받기 위해선 시장에서의 이전투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 곳에서 목적과 수단의 접점을 찾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뿐이다. 사회적 기업, 협치의 동반자 돼야 사회적 기업가는 일정 부분 몽상가의 기질을 갖기도 한다. 그들은 그들이 기획하는 목적과 수단이 일치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목적과 수단의 대상이거나 단순 참여자가 아닌 협치(거버넌스, governance)의 동반자이길 소망한다. 우리보다 이른 시기에 사회적 기업의 철학적, 제도적 기반을 쌓아나간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도 사회적 기업 육성의 방점을 여기에 두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 기업의 영역에서 기왕지사 작동되고 있는 제도적 견인력이 그나마 바람직한 성과를 얻기 위해선 사회적 기업가의 꿈과 소망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길 바란다. 아마도 그랬을 때 사회적 기업가의 역량은 한층 만개할 것이고, 거기서 우리의 사회적 기업도 더욱 풍성해 질 것이다.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문화카페] 오월 어느 날의 행복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그날따라 오월의 신록은 더욱 찬란했고, 풋풋한 향훈은 더욱 싱그러웠다. 초가지붕 원두막을 배경으로 한 간이무대에는 고운 가락과 춤사위가 나부꼈고, 달빛 뜨락에 오순도순 둘러 앉은 하객들은 잠시나마 세속의 홍진(紅塵)을 떨쳐내고 곱고 청순한 서정의 물길 따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호접몽(蝴蝶夢)으로 드는 분위기였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 항상 마음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 마음이 따뜻한 사람 / 밤하늘의 별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인기 절정의 공혜경 낭송가가 음송(吟誦)한 이 날의 시제처럼, 그 날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미시문화서원과 나라사랑 남양주시민화랑단은 공직바로세우기 시민운동으로 풀뿌리 공무원 신상필벌 헹가래운동을 펼쳐 오고 있다. 비리 공무원은 계도하고, 정의롭고 정직하고 정도대로 일하는 삼정(三正) 공무원은 높이 칭송하여 시상하고 축하공연을 해드리는 지역시민운동이 곧 그것이다. 올해로 6회째인 금년도 수상자는 남양주시 주민생활지원과의 강태일 공무원과 경기경찰청 제2청 광역수사대의 조권기 경찰관이었다. 작년 말 국제투명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지구촌 183개 국가 중에서 43위로 전년보다 4계단이나 떨어졌고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이처럼 부패문제가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는 계제에 이들 삼정공무원들은 여간 소중하고도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존경할 인물 찾기 어려운 세태 속 한편 이미시문화서원에서는 작년부터 작지만 의미있는 시상을 치러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승복하고 흠경(欽敬)하는 우리시대의 사표(師表)를 선정하여 존경과 행운의 부신(符信)을 드리는 행사가 곧 그것이다. 올해의 우리시대 사표로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님을 모셨다. 그 분을 존경하는 분들은 잘 알 것이다. 총리의 벼슬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누구나가 인정하는 그 분의 개결한 인품과 투철한 우국충정과 혼탁한 사회를 지탱해 준 중류지주(中流砥柱)와 같은 소신을 흠모해서 모셨음을 금세 이해할 것이다. 그만큼 그 분은 우리시대의 위안이고 버팀목이고 시대의 좌표를 향도하는 어른이심에 분명한 분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주변에는 명사도 많고 박사도 많고 지성도 지천이다. 하지만 겪어 보면 허명에 허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재사(才士)들은 많아도 우리 사회는 오히려 혼란스럽고 우리 삶이 허전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다. 우러러 받들 어른이 드물기 때문이다. 등불을 들고 현인을 찾아 거리라도 나서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시대의 사표(師表)를 모셔서 경하(敬賀)해드리게 된 배경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행복했던 만남 아무튼 그날 오후 우리는 이인호 교수(전 러시아 대사)의 축사처럼 모처럼의 아름다운 행복을 조용히 음미하며 공유할 수 있었다. 연분홍 저고리 연두색 치마로 곱게 단장한 홍금산 원로 무용가의 춤사위가 신록의 화폭에 곡선의 율동으로 펼치는 선경(仙境)도 우리들의 청복이었고, 모인 사람 모두의 가슴에 천진난만한 추억의 감미를 솟게 했던 주황색 드레스로 치장한 분당여성합창단의 우리가곡 합창 고향의 봄 등의 정감어린 성색을 만끽한 것도 행복이었으며, 이제 동시대인들과는 좀해서 해후(邂逅)하기 드물지도 모를 90대 노경 강영훈님의 존안에 흐뭇한 미소가 흐르던 일도 우리 모두가 즐거워한 홍복(洪福)이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너나 없이 허기진 세상에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지난 주말은 참으로 오랜만에 행복의 함박웃음꽃을 피워본 살맛나는 하루였다.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문화카페] 세상은 준비하는 자의 것

만약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열정과 끈기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열정과 끈기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익숙한 세계와 결별하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낯선 세계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도시에서 샐러리맨으로 살다가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처럼. 준비는 필수다. 일요화가에서 세계적인 화가로 우뚝 선 인물이 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다. 그는 꾸준한 준비로 전업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예술가다. 전직이 세관원이었다. 1871년부터 무려 22년 동안 파리 세관의 세금징수원으로 밥벌이를 했다. 루소가 처음 붓을 잡은 것은 1884년 마흔 살 때였다. 이때 루브르박물관에서 유명한 그림들을 베껴 그릴 수 있는 모사 허가증을 받는다. 그는 직장과 가정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럼에도 시간을 쪼개서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그림을 그렸다. 가슴 한 켠에는 뛰어난 화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초보자 티를 겨우 벗을 무렵인 1885년, 꿈에 그리던 살롱전에 난생 처음 출품한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자 노력하는 것(헤밍웨이) 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또 나는 실험에 실패할 때마다 성공을 향해 한발 짝 한발 짝 다가가고 있다(에디슨)는 말에 공감이라도 한 듯이 다시 캔버스와 씨름을 계속했다.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이듬해인 1886년에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한다. 살롱전의 고답적인 스타일에 반기를 든 젊은 화가들이 창설한 앙데팡당전은, 루소가 새로운 그림을 선보인 단골 무대였다. 7년 동안 출품한 작품이 20점이나 된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루소의 그림을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루소가 아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인 만큼 화가로서 자부심은 시들지 않았다. 1893년, 루소는 그림에만 전념하기 위해 세관을 그만둔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듯이 과감하게 전업작가로 나선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열정은 뜨거웠지만 반응은 냉담했고, 생활마저 궁핍했다. 그런데 고진감래였다. 1905년,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든다. 예전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가을 살롱전에 작가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마침내 제도권 비평가들도 그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화상들도 원시적인 동시에 몽환적인 루소의 그림을 구입해갔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강한 의지와 도전의식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꿈은 고달픈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의 방부제다. 꿈은 날마다 가슴 뛰는 삶을 선사한다. 뜨거운 열정차분한 계획 갖고 준비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잘 나가던 경제학자에서 도예가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어느 경제학자는, 경제학자의 삶에 공허감과 환멸을 느낄 무렵, 운명처럼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가슴이 뛰었다. 경제학을 접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도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도예가로 변신에 성공한다. 평생 업으로 생각했던 경제학보다 도예가로서의 생활이 훨씬 윤택하다고 했다. 도예가 이기영씨의 이야기다. 하늘은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을 돕는다. 지금과 다른, 후회 없는 삶을 꿈꾼다면 계획을 세워서 조금씩 준비할 일이다. 인생은 정직하다. 노력하는 사람에겐 열매를 주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겐 후회를 안겨준다. 꿈을 향해 묵묵히 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CEO다. 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문화카페] 전곡 축제 20년에서 보는 문화유산보존전략

짐승인간의 현대 나들이, 20년 전 저명한 전위예술가인 무세중씨가 초미니 유적박물관이었던 전곡리유적관을 개관하면서 만든 춤극의 제목이다. 4월 초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재직하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과 함께 벌거벗고 원시춤을 추었다. 이 굿거리를 시발로 하여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축제가 벌어져 금년도에 20회가 된 것이다. 이번에 유산체험교육엑스포에 참여한 외국 문화유산전문가들이 놀랐듯이 당시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체험교육적인 페스티발이 시작된 셈이다. 전곡리구석기유적에서 하는 축제는 아마도 세계 최고의 전통을 가진 선사문화축제일 것이다. 20년이 최고의 전통이라면 우습겠지만 실제로 구석기고고학의 원조인 프랑스의 남부 베르동 계곡의 작은 마을에서 하는 캉쏭 구석기유적축제가 20년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 연천군이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이제는 축제 기간 동안 방문객이 거의 100만 명에 육박하는, 아마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축제가 된 셈이다. 이제 시대의 조류가 바뀌어 유산의 적극적인 활용이 사회적인 화두가 되고 있지만 그동안 유산의 활용은 파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실제로 그동안 전곡리 축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유적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문화재청에 고발당한 경험도 있었다. 이제는 축제를 통해서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사례가 된 점에서 이 축제의 문화유산 보존에 있어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적체험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교육의 모델을 개발하여 유산을 통한 전인적인 교육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이 축제가 가지는 큰 의의일 것이다. 점점 어려워지는 유적 보존 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사회적인 경비가 소요되는 것으로서 공감대의 확산이 필요하지만 그동안 유산의 보존은 학계의 자문을 얻은 정부의 판단과 역할에만 의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유산의 항구적인 보존은 이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고 특히 고고학적인 유적의 보존은 엄청난 사회적 경비를 부담해야 하고 이익집단의 반발이 너무 커서 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려워졌다. 때문에 근래에는 새로운 고고학 유적을 지정해 보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다. 이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대중의 역할이 점점 증대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이해 당사자를 압박하고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중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유산의 보존에 대중적인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선 대중에 문화유산관련 정보유통량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박물관이용자의 숫적인 증가에 볼 수 있듯이 관심은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대중의 관심이 새로운 유산의 보존을 위한 자발적인 여론의 형성까지는 아직도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유산 보존, 대중이 주체돼야 문화유산은 우리에게 물과 공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산의 훼손은 곧 정신환경의 오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환경지킴과 마찬가지로 문화유산지킴도 대중이 주체가 되는 것이 보존의 관건이다. 대중의 역할의 하나는 유산의 보존에 대해서 사회적인 보편적가치에 대한 이해 당사자로서 여론형성에 참여하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유산의 활용극대화를 위해 주체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서는 대중의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의 강구가 당면과제이자 핵심적인 전략이다. 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문화카페] 풀뿌리 협동조합 만들기

올 해는 유엔에서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라고 한다. 이에 부응하듯 우리나라 역시 작년 연말 제18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를 통한 의결을 거쳐 2012년 1월 26일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을 공표했다. 시행령 제정 등 후속 절차가 남아있는 관계로 실제 법령의 시행일이 2012년 12월 1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5인 이상의 모임만으로도 소정의 여건을 갖출 경우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도록 법적 문호가 한층 개방되었다. 아직 우리 주변에서 이에 대한 인식의 기반이 그리 넓게 형성되어 있지 못하고, 법령의 일부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으나, 공동체적 가치에 바탕을 둔 사회적 결사체의 새로운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구의 경우, 이미 19세기 중반 협동 경제학에 바탕을 둔 로치데일 원칙이 제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세기 들어 자발성과 개방성, 민주성,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훈련 및 정보제공, 연대의 정신, 지역사회의 기여라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 7원칙이 자리 잡기까지 협동조합의 가치체계를 정립하려는 지속적인 모색이 이어져왔다. 물론 우리에게도 향약, 두레, 품앗이, 계 등 공동체에 기반을 둔 협동의 모습이 있었고, 그 속에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등과 같이 서로 조응하는 훌륭한 덕목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록 오늘날 그 의미가 변질되고 퇴색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하겠으나, 예부터 함께하는 가치 속에서 삶의 기반을 좀 더 깊고 넓게 다지려 했음은 양의 동서가 따로 있지 않았다. 자조의 공동체 협동조합 협동조합의 가치체계에서 볼 수 있듯이 협동조합이란 자급과 자립, 자활을 지향하는 자조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자조의 공동체에선 스스로를 돕는 것과 서로를 돕는 것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한 승수효과를 가져다준다. 따라서 거기선 조직과 자본력 등 규모의 크고 작음보단 가치 공유의 폭과 깊이가 어떠한지가 더욱 관건이 된다. 오히려 규모가 크면 클수록 가치 공유의 폭은 협소해지고 그 깊이 역시 얕아질 수밖에는 없음을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그려낼 협동조합의 모습은 가치 공유의 뿌리가 굵고 깊게 자리 잡힐 수 있는 지점에서 시작됨이 타당할 것이며, 이는 곧 풀뿌리 공동체의 협동과 연대를 통해 들어나게 될 것이다. 수평적 협동연대 이뤄져야 풀뿌리 협동조합이란 단순히 사람이 모이는 결사체의 여러 형태 중 하나로써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지역성(Locality)과 공동체성(Community)이 결합된 좀 더 낮은 단계에서의 수평적 협동과 연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탐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결핍을 메우기 위한 협동, 경쟁과 배제가 아닌 상부상조와 연대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사람과 세상,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우리 사회 곳곳의 그늘진 자리에 협동과 연대의 기운이 퍼져나가 사회적 배제와 소외를 극복하는 사회연대의 공동체 모델로써 풀뿌리 협동조합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길 바란다.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문화카페]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문득 옛 김연수 명창의 단가 사절가가 떠오른다. 꽃 철이 녹음 철로 바뀌는 계절 탓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뜰 안의 백목련이 하루 이틀 사이에 순백의 자태를 접고 추레하게 지더니, 곧이어 매화와 벚꽃이 푸섶에 흩날리며 가는 봄을 울어옜다. 흩뿌려진 낙화를 보고, 간밤의 무심한 비바람에 꽃들은 또 얼마나 많이 졌을고(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라는 맹호연의 명귀를 음미하기도 전에 천지는 어느새 연초록 물결들로 차일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김연수 명창이 말년에 애창하던 사절가의 가사와 가락이 여실하게 다가오지 않을 리 없다. 아름다움과 소소(蕭蕭)로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짓기 일쑤라서 그런지, 춘하추동의 경치를 노래한 사절가 속에는 각 계절의 경승(景勝)도 읊조려 있지만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의 인생무상도 촉촉한 비감으로 농축돼 있다. 며칠 전에는 동심초와 산유화와 이별의 노래 등으로 고난의 시절 국민의 정서를 보듬어주던 작곡가 김성태 선생이 이승을 영별했다. 인걸은 가도 작품은 남는다지만 주옥 같은 작품으로 한 시대를 수놓아 온 다정다감한 작곡가의 빈자리엔 온통 제행무상의 허무와 엽진화락(葉盡花落)의 애상만이 가득한 채 가는 봄에 대한 페이소스를 더해주는 느낌이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계절의 여왕, 찬란한 신록의 5월 소프라노의 미성에 실려 흐르는 당대(唐代) 비운의 여류작가 설도(薛濤)의 이 춘망사(春望詞) 가사는 이 봄따라 유난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느 시인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봄철의 낙화를 일러 때를 알고 가는 결별을 이룩하는 축복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우리들의 일상도 가는 봄을 못내 아쉬워만 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찬란한 5월이 갈마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빠름을 일러 유수와 같다느니, 쏜살 같다느니, 혹은 백마과극(白馬過隙)이니 하며 나부터가 호들갑이기 일쑤다. 하지만 지구가 초당 30㎞의 속도로 태양을 공전하고 우리네 태양계가 초속 230㎞의 속도로 반지름이 5만 광년이나 된다는 은하계를 치달리고 있는 거대 우주의 속도들을 감안한다면, 기실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지각하며 아쉬워하는 세월의 속도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하찮은 감상들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의 가사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처럼, 꽃피는 봄 4월은 가고 녹음방초(綠陰芳草) 신록의 5월이 되었다. 도시 벗어나 자연에서 휴식을 잠시 매연과 속진에 찌든 도회생활의 질곡을 벗어나 순수 자연의 품속에 안겨 영혼의 안식을 가져보는 것도 삶의 활력을 위해 요긴한 일이라 하겠다. 때마침 전 우즈베키스탄 최영하 대사가 풍광수려한 영월 고향마을로 이미시 문화서원의 동료 학동(?)들을 초대했다. 청령포 노송들의 솔향과 방랑시인 김삿갓의 음풍농월로 청순한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 아니 모처럼의 청복이 아니겠는가. 차제에 김삿갓의 싯귀처럼 백화제방의 봄 한 철도 꿈길과 같아 성 밖에 독좌한 백발옹도 가는 세월 탄식하네(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라는 시심도 공유해 보고, 작은 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 얹고 흰 가루 햇기름으로 두견화 전을 붙여(鼎冠撑石小溪邊 白粉靑油煮杜鵑)라는 만고의 풍류랑(風流郞) 김삿갓이 겪어 본 산 절로 수 절로의 유락(遊樂)이라도 공감해 본다면, 이것만으로도 잠시 별유천지 비인간의 구름 밖 신선이 돼 봄직한 일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문화카페] 아이와 함께 보는 살아있는 미술교과서

남성도 마찬가지지만 결혼한 여성이 미술을 접할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대입준비와 동시에 미술교육은 뒷전인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미술강좌를 수강하거나 미술 단행본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는 한 미술과는 평생 담을 쌓은 채 그림맹(盲)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그나마 각종 여성패션지에서 미술정보를 다뤄주는 것은 다행이다. 화가들의 비범한 이야기나 가십성 미술 기사, 그리고 세련된 편집디자인과 상품광고디자인을 통해 은연중 여성들의 미적인 감각을 계발해준다. 생활 속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여성패션지이고 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미적 안목을 키워주는 것은 8할이 여성패션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때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여성패션지가 미술을 다루는 방식은 미술 전문서나 논문이 미술을 다루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미술 전문서와 논문에서는 미술사나 작품의 조형성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어렵고, 딱딱하다. 반면에 여성패션지에는 작품의 조형성보다 작가나 작품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쉽고, 재미있다. 따라서 독자 맞춤형 기사를 작성하는 잡지의 생리상 여성패선지도 흥미 위주로 미술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작품의 조형성까지 음미하게 자극하는 생산적인 독서 효과를 기대하기란 역부족이다. 미술 접하기 어려운 주부들여기서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유아용 그림책이다. 3세부터 9세 안팎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은, 말 그대로 적은 분량의 글과 풍부한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아지 똥, 노란 우산, 만희네 집, 까마귀 소년, 네모상자 속의 아이들 등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따뜻한 교감을 나누는 국내외의 그림책은 성인용 소설 못지않게 작품성을 인정받을 만큼 탄탄한 내용과 얼개를 갖추고 있다.또한 아이들의 감성 계발에 필요한 다양한 그림풍을 구사한다. 수채물감, 수묵, 유채, 아크릴릭, 크레용, 파스텔 같은 재료나 소묘, 사실화, 극사실화, 그리고 판화나 전통적인 민화 스타일 등 다채로운 표현 방법으로 풍부한 시각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법도 콜라주, 모자이크, 몽타주, 오려붙이기, 긁기, 번지기 등 여러 가지다. 초중고 미술교과서에서 배운 모든 재료와 기법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돼 있다.이런 다양한 그림 재료나 표현 기법을 눈여겨 보면서, 우리나라와 세계의 명화를 소개한 각종 미술 관련 그림책을 가까이 하면 미술에 대한 애정지수는 급상승한다. 유아용 그림책, 훌륭한 교과서오랫동안 미술을 멀리했던 여성들도 막상 아이가 생기면 교육차원에서 그림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동화를 읽는 어른의 모임처럼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는 눈을 개명시켜주는 대표적인 단체도 있다. 각 지역마다 여성 회원들이 모여서 좋은 그림책이나 동화를 읽고 토론하는데, 이때 내용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도 함께 이뤄진다. 그림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표현된 이야기의 완성도, 그림풍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각 장면과 장면의 유기적인 관계, 표현기법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본다. 미술은 멀리 있지 않다. 유아용 그림책은 살아 있는 미술 교과서다. 아이에게는 감성 개발을, 엄마에게는 미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유아용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림책을 찬찬히 살펴보자. 내 아이의 건강을 위해 각종 먹을거리를 세세히 따져보듯이, 그림책도 형상이며 표현기법 등을 곱씹어 보면 된다. 미술을 다시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곳에 그림맹에서 미술 애호가로 거듭나는 지름길이 있다.정 민 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문화카페] 내가 사는 도시 속의 올레길

지난번 해외 여행을 하는 동안 스페인의 기독교 순례길을 주제로 한 영화 길(the way)을 보고는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이 길은 부르고스에서 서쪽으로 성당이 있는 북부 대서양 해안까지 연결되는데 그냥 자연 상태로 있는 흙길이다. 영화는 죽은 아들의 유골을 싸들고 가면서 이 길에 뿌리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각기 인생의 행적이 다른 네 사람의 인생 역정과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다. 길을 걷는 동안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마지막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는 모두가 성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도의 여정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주고 있다.이 길을 모델로 우리도 신앙과는 관계없이 제주도의 올레길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제주도로 몰려간다. 또 이와 비슷한 길이 여러 곳에 생기어 호젓이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곳으로 가기에는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 속의 길을 올레길로 만들 수는 없을까?길을 걷는 것, 이것은 아마도 지난 700만년 동안 인간으로의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뿌리박은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다. 걷기, 인간 생존의 기본적 행위걷는다는 것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로서 적절하게 바람을 느낄 수가 있어서 기분도 좋고, 먼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기본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자연 속에서 진화하면서, 수 백 만년 동안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느끼던 기분이고 특히 우리 피부의 털이 옅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이래의 땀의 발산으로 느끼던 그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또한 멀리 볼 수 있는 것도 항상 음식을 구하러 다니던 당시 시선의 안정감을 가지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가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필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의 다른 하나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문명의 집합체인 오늘날 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걷기 향수는 망각된 본능이거나 억압된 감성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는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시나 시골이나 대부분의 신작로는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인도가 없는 곳도 많고 차도에 의해서 끊어지는 길도 많다. 인도가 있어도 도시에서는 쓰레기와 간판 그리고 울퉁불퉁한 노면들이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인도는 행상들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거리의 간판들은 한결같이 원색적인 색깔과 공격적인 언어로 무장하여 걷는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산보할 수 있는 도시 만들자앞으로 걷기를 방해하는 도시는 몰락할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도시들이 자동차 도로들이 들어오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은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연과 먼지 소음만 일으킬 따름이다. 그래서 쾌적한 환경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 도시는 경제가 흥하고 살만한 도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걷는 동안 도시의 모습도 보고 물건도 사고 그리고 마음에 들면 그곳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도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시는 지난 5천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지만 도시형 인간들에게는 이미 유전자화 됐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 속에 숨어있는 걷기의 본능을 억압하는 도시는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도시생활을 만들기 위해 산보하는 도시속의 올레길을 만들기 위한 도시문명혁신프로젝트라도 추진해야 할 것 같다.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문화카페]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

오래 전 한때 잘 살아보세!의 구호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잘 살아보자는 투지(?)를 불사르며, 하면 된다 식의 목표 지향적 삶이 잘 사는 것의 표상이었던 시절이다. 어느 누군가의 선창이 있었겠으나, 사실 그 만큼 압축적으로 우리 모두의 폐부를 파고드는 슬로건도 없었던 듯싶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이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단군 이래 최대의 부를 누리고 있다고 호기롭게 외치기도 한다. 형편이 이러다 보니, 혹여 잘 사는 것에 대한 다른 가치를 얘기하려 든다면, 세상 물정에 어둡고 물색모르는 인사이거나 한가한 입방아나 즐기는 호사가로 치부되고 만다.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듯이 지난 시절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이들은 파이가 커야 나눌 몫도 크다며, 고지가 바로 저기니 희망봉에 다다를 때까지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곳간의 쌓임이 충분치 못한 것인지, 아니면 곳간과 인심의 상관관계가 꼭 그러하지만은 않은 것인지, 곳간은 쌓여간다고 하는데 인심은 그렇지 못함이 사뭇 이상하다. 오늘 그들은 다시 시장과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 따위를 들먹이며, 그나마 언젠가 떨궈질 지 모를 물 한 모금을 기대하려면 부지런히 시장을 채워나가야 한다며 곳간과 인심의 사정이 달라졌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경쟁과 효율이란 달콤한 속삭임이 되뇌어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된다. 경제는 좋아졌지만 인심은 나빠져잘 산 다는 게 뭔가?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을 그 중심에 놓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지사고, 오히려 잘 산다는 것의 물적 가치가 더도 덜도 말고 딱 거기에 머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삶에선 내 배를 불리기 위해 남의 배를 주려야 하고, 내 등을 덥히려 남의 등을 시려야 한다. 이는 승자전취(winner takes all)와 최소투입-최대산출의 무한 에너지를 전제로 하는 경쟁과 효율이란 물리학적 괴변이 맞닿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다. 거기선 적당과 멈춤, 협동과 연대, 상호부조 등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며, 오직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슨 짓도 마다않을 대담함이 강요된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은가 자문해 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 같은 범부들에겐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한경쟁사회, 어떻게 살 것인가?지금, 여기 우리의 삶은 한 순간의 찰나라 할 것이나, 거기엔 어제의 흔적과 오늘의 몸짓, 내일의 상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고 어떠해야 하는지 답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자기합리화와 자기로부터의 도피에 가려 종종 시계가 흐려지기도 하지만, 삶의 항해를 이어가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것은 생물학적 삶의 시간을 넘어서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의 세상살이가 잘 살아 보자는 집단 욕망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 속의 삶이 된 마당에 이런 저런 토를 다는 일이 부질없는 짓일 수 있고, 하물며 이를 멈추려 함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함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어제보단 오늘, 오늘보단 내일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마저 팽개칠 순 없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문화카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지난 90년대 벽두 사천성 아미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양자강을 따라 상해의 황포강까지 종주를 한 적이 있다. 중경에서 배를 타고 장강삼협(長江三峽)을 지나다보면 장강(양자강)으로 흘러드는 냇물인 향계(香溪)를 만나게 된다. 바로 이곳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명구가 유래하게 된 주인공 왕소군(王昭君)의 고향마을이다.왕소군은 한나라 원제 때의 궁녀였다. 당시 한나라에서는 세력이 강성했던 북방의 흉노족에게 여인을 종종 공녀로 보내곤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치부되는 왕소군은 우여곡절 끝에 흉노의 선우 묵돌의 애첩이 되기 위해 북방으로 끌려갔다. 아릿다운 여인이 하루아침에 황사 날리고 을씨년스런 호지(胡地)로 이송되니, 본인의 고뇌도 고뇌려니와 당연히 여러 시인묵객들 또한 그녀의 비극적 시련을 두고 가슴아파하지 않을 리 없었다. 바로 그녀를 소재로한 소군원(昭君怨)이라는 명시도 그래서 탄생했고, 그 중의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라는 싯귀도 그렇게해서 후세에 널리 회자되게 되었다. 서원 서실에는 사군자반의 매화 그림이 화사한 춘색을 더해주고, 창 밖에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월력(月曆)도 4월로 접어들었으니 절서는 분명 춘삼월 호시절이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체질 탓인지 내게는 아직도 음산한 한기가 옷깃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겨울의 끝자락이 하도 요상해서 그런지 어느 노래가사처럼 꽃 피는 봄 사월이 되었건만 냉기에 움츠러든 내겐 아직도 춘래불사춘이다. 봄에 어울리지 않는 요즘 풍경들울 안에 산수유를 심고 나서 안 일이지만 봄의 전령은 분명 개나리보다 먼저 피는 산수유 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이전에는 도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나리꽃을 화신의 메신저로 여겨왔다. 물론 개나리꽃이 없었던 내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의 봄꽃은 으레 온 산에 만발한 진달래꽃이었다. 하지만 내 삶의 공간이 도시로 이동되고부터 내 마음의 봄꽃은 단연 샛노란 물감의 개나리꽃들이었다. 젊은 날 서울의 어느 한적한 골목을 지나면서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큰 저택의 담장 너머로 새봄의 청순한 모습을 드러내던 꽃도 개나리였으며, 4.19시절 불의에 항거하며 젊은 함성이 노도처럼 거리를 누빌 때, 그들이 절규하며 흔들어대던 피 묻은 옷가지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봄날의 비통을 증언하던 꽃도 다름아닌 그해 사월의 노란 개나리꽃들이었다. 선거, 진정 국민 위하는 일꾼 뽑자 개나리는 신이화, 영춘화 등으로도 불리며 한자로 연교(連翹)라고도 한다. 특히 북한 일부지역에서는 식용으로도 쓰이는 참나리에 비해 실속없는 나리라는 뜻에서 개나리라고도 한단다.때마침 나리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거리에도 상가에도 신문에도 텔레비전에도 온통 황적청 삼원색의 잘난 나리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만발하고 있다. 민초들의 약이 되고 희망이 되고, 일꾼이 되고 애국자가 되겠다며 갖은 애교와 감언으로 자신들이 가장 아름답노라며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 때를 노리는 분칠한 조화(造花)들을 숱하게 겪어 본 민심들은 이내 저들 요란한 보호색 속의 속셈들을 본능적으로 꿰뚫는지라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합리와 이성은 뒷전인 채 죽기살기의 원한 맺힌 감정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저들 거리의 들꽃들 중에 진정한 참 나리꽃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묵언의 민심들은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이번 꽃시장에서는 역겨운 개 나리꽃보다 향기로운 참 나리꽃이 민의의 전당으로 많이 팔려가야 할텐데 적잖이 걱정이다.이래저래 금년 화시절은 음산한 날씨 탓만이 아니라 내 정서의 텃밭까지 춘래불사춘이다.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문화카페] 기념일에는 미술품을 사자

옛날에는 자식을 낳으면, 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딸을 낳으면 논두렁에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골라 심었다. 오동나무로는 딸이 성장해서 시집 갈 때, 장롱이나 반닫이를 만들어서 평생 함께하게 했고, 소나무나 잣나무는 죽을 때까지 자라게 해서 관을 짜는 데 썼다.이런 지혜는 미술품 구매 시기와 관련하여 곱씹어볼 만하다. 사람들은 언제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 하지만 사실 작품구입에 적당한 시기란 없다. 아무 때나 가능하다. 그래도 실현 가능한 적기를 꼽아보라면, 권하고 싶은 때가 있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듯이 각종 기념일에 미술품을 구입해보는 것이다. 우선 아이가 태어날 때, 20~30년 후의 미래를 보고 작품을 사면 된다. 이때 구입한 미술품은 작품 본래의 가치 외에도 기념일의 가치가 더해져 특별한 보물이 된다. 작은 묘목이 세월과 더불어 무럭무럭 자라듯이 구입한 미술품도 세월에 따라 가치가 불어나게 마련이다.꼭 아이의 탄생뿐만 아니라 백일, 돌 같은 중요한 날을 기념해서도 구입할 수 있다. 결혼기념일도 좋다. 노후를 내다보며 결혼기념일마다 미술품을 산다면, 나중에는 두둑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은 젊어서는 경제적인 이익을 좇고, 은퇴 후에는 문화예술과 더불어 산다고 하지 않는가. 그 문화생활의 토대를 미술품 수집으로 조금씩 다져갈 수도 있다. 기념일의 가치가 더해져 특별다음으로, 구입하되 미술품의 종목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태어난 자식에 따라 다른 종류의 나무를 심었듯이 미술품도 다양하게 구매하는 것이 좋다. 현재 뜨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고, 미래의 가치를 보고 유망작가의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예컨대 아이의 생일에는 뜨는 작가의 작품만 구입하고, 결혼기념일에는 유망작가의 작품만 구입하는 식이다. 또 장르별, 테마별로 특화해서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도 적기다. 오랜 동안 구입한 작품을 감상하다가 아이의 대학 학자금이나 결혼자금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 구입에 따르는 덤도 있다. 자녀에게 미술품 컬렉션이라는 아름다운 습관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가정사와 관련된 각종 기념일을 미술품 구입의 적기로 삼는 방식은 미술품을 소장하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의미 있는 날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조급해하지 않고 장기적인 소장이 가능하다. 당장의 이익을 챙길 수 없더라도 세월의 흐름이 불려주는 수익에 뜻밖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면서 미술품을 마음껏 즐기고, 자식에게 예술을 가까이 하는 생활태도를 심어줄 수도 있다. 작품 구매, 미래에 보내는 값진 선물미술품 구매는 일종의 장기투자다. 구입하고서 몇 년은 가지고 있어야 수익이 난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물이 되는 공산품과 달리 와인과 작품은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진다. 미술품 투자에는 술이 익듯이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집안에 걸어두고 매일 감상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치가 상승한다. 미술품 구입은 가장 열정적인 느림의 생활방식이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속도의 시대에 여유롭게 감상하면서 마음의 풍요를 체감할 수 있다. 조상들이 자식이 태어날 때, 나무를 심었듯이 특정한 날을 기념하여 10년, 20년, 30년 뒤의 자식과 자신을 위해 미술품 투자를 고려해보자. 그것은 자식과 자신의 미래에 보내는 값진 선물이다. 4월5일, 식목일을 앞두고 해본 생각이다.정 민 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문화카페] 中 공자부활과 우리 전통문화 확산 전략

얼마 전에 공자와 맹자의 종손들이 안동의 도산서원에 와서 참배를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됐다. 우리 유학의 대가인 퇴계 선생의 사상이 이토록 존중받는다는 점에서 흐뭇한 일이다. 역시 우리는 문화를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훨씬 발전시켜 최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다른 엉뚱한 것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각 나라의 입장의 변화이다. 공자 말씀이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의 공동선을 실행하도록 하는 실용적인 사상이지만 지난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큰 상처를 입었던 적이 있다.마오는 문화혁명 당시에 모든 전통도덕과 관습보다도 자신의 사상을 사회를 이끄는 중심 논리로 삼았는데 중국의 전통사상은 철저히 무시됐던 것이다. 문화혁명의 지도자들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의심하고 파괴하는 것을 좋은 일로 장려했다. 이런 가운데 엄청나게 많은 전통건물, 공예, 서적 등의 전통문화유산들이 파괴돼 사라지게 됐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 사라진 문화유산의 양은 천문학적인 것이어서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 기간의 문화말살로 인해 중국의 전통적인 기술이나 예능 중에서 사라지게 된 것도 많고 이 기간 중에 중국을 탈출한 사람들에 의해서 외국에서 전수된 것도 있다고 한다. 계급투쟁의 와중에서 임금과 신하의 도와 부모와 자식의 도 등등의 유교적인 논리는 방해가 된다고 해 이를 상징하는 문화유산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도록 선동했던 것이다. 전통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아그런데 이제 공자가 중국에서 살아난 것이다. 물론 이미 마오의 문화혁명의 오류는 그의 사후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철저히 비판받은 것이지만 최근 중국의 전통사상 존중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수 년 전에 경기도의 어느 향교가 중국에서 선물로 주는 거대한 청동공자상을 받아서 향교의 정원에 세워도 되겠는가? 라는 질문을 하여온 적이 있다. 당시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공자상을 선물하는 의도가 단순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회가 변해도 전통의 가치는 사상을 막론하고 결국 사회가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자원이라는 것을 공자의 부활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이제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문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문화는 모든 인식과 감성의 출발이기 때문에 문화의 보급과 토착화에 각 국가들이 여러 가지 노력을 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한류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문화확산 전략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으로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한(韓)류와 중국 화(華)류의 차이는 전자는 소나기식이고 후자는 봄비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토착화로 장기적 생명력 키워야물론 역사의 깊이나 문화의 양으로 보면 우리가 급속하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문화전파게임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토착화에 의한 장기적인 생존력의 차이를 가질 수 있는 문화의 확산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지난 2000년대 초반에서 시작돼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됐지만 실제로는 훨씬 그 이전부터 해왔던 숨은 전략이었고 우리에게 드러난 것이 그 즈음일 것이다. 지난 90년대 초에 요녕성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 고구려 등 고대사가 조선족의 잃어버린 역사가 됐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이미 그러한 과정은 오래전부터 진행해 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옷자락을 소리없이 적시게 만드는 봄비처럼 그러한 문화정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우리도 봄비식의 문화확산을 더욱 확대해 가는 전략이 필요하고 또한 중국의 이 전략을 이기는 법은 우리의 전통문화의 가치를 봄햇살 같이 만들어서 널리 보급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문화카페] 이야기를 담는 도농교류

도시인에게 농촌이란 일상의 터전과는 멀리 떨어진 공간적정서적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농촌에 고향을 두고 일가친지들과의 왕래가 유지되는 경우는 이런 저런 대소사를 함께하는 계기라도 있다할 것이지만, 그 조차도 없는 이들에게 농촌은 필요에 따라 잠시 들려 머무는 객지일 뿐이다.더욱이 사람과 자원이 빠져나가 고령화와 공동화의 늪에 빠진 농촌에서 뭔가를 도모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이 우리네 농촌만의 일도 아니며, 소위 선진화와 도시화의 길을 걷는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디서건 농촌을 일으켜 세우려는 시도들이 나름 성과를 보기 위해선 사람과 자원의 유입이 관건이라 할 것이며, 그것은 곧 도시의 사람과 자원임은 쉽게 유추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도농교류의 실질적 기대치가 그려지게 된다. 농촌 공동체 스스로의 자생력과 내발성을 강조하는 주장도 그 타당성이 충분하다 할 것이나, 그것은 좀 더 긴 호흡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보니 당장의 삶을 채워줄 방도로써 도농교류를 통한 실효적 방편을 찾아보는 일 또한 마다할 것은 아니다.그러나 막상 도농교류 프로그램의 구상을 엮다보면 뭔가 서로를 대상화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본다면 농촌은 언제나 생태문화적 체험의 대상이고 도시는 그에 대해 지갑을 열 대상이 되고 만다. 도시농촌의 수평적 교류 필요그렇다면 도시와 농촌의 수평적 교류 협력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인적, 물적 기반을 전제로 한다면 딱히 다른 방도를 찾긴 어려울 것이나, 상상력의 진폭을 달리 해 볼 수는 있겠다. 도시와 농촌이란 자연과 사람이 엮여서 돌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도시와 농촌은 그 안에 자연과 사람의 기억이 담겨있다. 그것은 삶의 지식이나 지혜이기도 하다. 거기엔 공간의 크고 작음이나 사람과 자원의 많고 적음은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고, 그에 따른 우열의 가늠도 따질 일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품고 있는 기억과 지식, 지혜를 나누고 눈높이에서 마주볼 수 있다면, 서로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도시와 농촌은 스스로의 기억을 가꿀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도시는 조금 느려지고 농촌은 조금 채워져야 한다. 도시의 삶이 이다지도 빠르다면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기억을 추슬러내기 힘들 것이다. 또한 농촌의 비어있음은 단지 사람과 자원만이 아니라, 기억의 비어있음이 더욱 문제다. 사람과 자원은 언제든 돌아오고 채워질 수 있지만 한번 잊어버린 기억은 다시 찾기 어렵다. 삶의 지식지혜 나누자도시와 농촌이 스스로의 기억을 찾았을 때 거기서 서로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적, 물적 기반을 넘어서는 도농교류의 다른 모양새를 그려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농촌 공동체의 자생력과 내발성 역시 이야기의 힘을 통해 갖춰지고 들어낼 수 있게 된다. 공동체주의 이론의 한축을 대변하는 매킨타이어는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농교류의 새로운 지평을 궁리하면서 그의 말을 다시금 음미해 본다.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문화카페]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 심각하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안다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허상인지를 요즘 나는 여실히 체험하고 있다. 그간 나는 판검사라면 당연히 투철한 소신과 남다른 공인의식을 가진 계층으로 알았고, 사법부하면 으레 혼탁한 사회를 걸러주는 중류지주(中流砥柱)와 같은 마지막 정의의 보루라고 등식처럼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소박한 민초들의 나이브한 꿈이자 소망사항이지 현실은 한참 멀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의 현장경험을 통해서 온몸으로 체득했다.불완전한 인간이 모인 사회집단이 말처럼 논리처럼 이상적일 수가 없다. 법조계 또한 예외가 아닐 게다. 구성원 개중에는 함량미달도 있고 양심불량자도 있기 마련일 게다. 그래서 최근에 꼬리를 무는 법조계의 물의들도 실은 이 같은 시각의 연장에서 나는 이해하고 치부해왔다. 사법부에 대한 무너진 신뢰하지만 근자에 직접 송사를 겪다 보니, 그 동안 뇌리에 각인됐던 사법부의 인상은 나만의 나르시스적인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불행하게도 사법부가 정의의 보루가 아닐 수도 있다는 문항에 나는 주저없이 방점을 찍게 되었고, 속칭 결론을 예단한 기술재판이라는 말이 공연히 유행되는 사회현상이 아니라는 인과율(因果律)도 알아채게 되었다. 더욱 우리를 암담하게 하는 것은, 저간의 크고 작은 사법계의 신뢰붕괴 문제는 몇몇 구성원의 개인적 일탈행위 때문만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사법부 특유의 체질과 조직문화에 그 뿌리가 있음을 간파한 사실이다.민망한 일이지만 필자가 최근에 주위토지 통행권 소송의 피고로 겪고 있는 송사의 예를 보자. 정의롭고 냉철한 지성의 잣대라면 쌍방간의 자료를 한 번만 정독해 봐도, 사건의 본질이 위증과 허위진술과 허위도면 등으로 범벅이 된 민관유착의 전형적 협잡(挾雜)행각의 일환인지의 여부를 단번에 분별할 수 있다.하지만 이 같은 간단한 민사가 가처분을 거쳐 1, 2심까지 거치는 데만 꼬박 귀빠지는 3년이 걸렸다. 3년 송사에 집안 망한다듯이 그간 당사자와 가족이 겪은 울분은 가히 고문수준이었다. 법대로라면 1년 안에 1심과 2심의 선고까지 끝내야 한다. 하지만 항소심만 15개월을 끌다가 마지못한 결론을 냈다. 더욱 납득불능인 점은 항소심 종국판결일을 잡아 놓고도 이유도 없이 계속 선고를 미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뢰 회복 근원적 대안 고민해야판결은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2주 이내에 선고해야 하고 특별한 경우 4주를 넘겨서는 안 된다고 아예 소송법에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어느 지방법원 항소부는 지난해 9월 8일을 선고일로 공지한 이래 장장 7개월에 걸쳐서, 다음 달, 다음 달하며 8번째로 선고를 미뤄오다가 어렵사리 지난 달 중순에서야 판결을 내렸다. 아마도 한국 사법사상 유례없는 진기한 판례임에 틀림없을 게다. 모름지기 판사는 곧 초법적인 위치에 있는 공인이라는 명제라도 있는 모양새다.바로 이 같은 단면이 국민이 밑으로부터 체감하는 대한민국 사법부 오늘의 실상이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계기로 사법부 신뢰문제에 관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차제에 사법 당국은 사법부에 대한 도전이니 어떠니 하는, 어데서 많이 듣던 메아리 없는 대척적 미봉책에만 매몰되지 말고 근원적인 대안을 고민할 때다. 결국 정의에 목말라하는 국민이 믿고 기댈 곳은 그래도 사법부가 아니겠는가.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가장 열정적인 그림 사랑법

미술품에 말 걸기가 쉽지 않다. 이미지가 눈에 빤히 보이지만 사람들은 망설인다. 왜 그럴까? 그릇된 인식 탓이 크다. 사람들은 시험문제 대하듯이 미술품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미술품에 들어 있다고 믿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감상의 정도인양 생각한다. 이런 오해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고 있기에 미술품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미술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미술품은 마음이 가는대로 감상하면 된다. 그리고 해당 미술품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서 주관적인 감상에 더하면, 감상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작가나 작품에 얽힌 일화를 챙겨보거나 미술사적인 맥락을 더듬어보는 것도 유익하다.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작품을 곁에 두고 감상하는 것이다.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미술품을 구입하게 되면,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전시장이나 잡지에서 아이쇼핑을 하듯이 작품을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백화점에서 아이쇼핑만 하다가 직접 옷을 사 입을 때처럼, 소장의 기쁨은 작품을 곁에 둬보지 않으면 절대로 모른다. 어느 컬렉터는 시시각각 변하는 감상의 즐거움을 이렇게 들려준다.이후 몇 년 동안 그 항아리를 안방보료 옆에 두고 살았다. 여전히 이름도 고운 달항아리라는 건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잠에서 깨어서 볼 때와 퇴근 후 전깃불 아래서 볼 때의 모습이 달랐다. 춘하추동 계절마다 느낌이 달랐고, 내 마음의 날씨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곤 했다.(이우복, 옛 그림의 마음씨에서) 작품을 곁에 두면 감상이 달라져사실 나도 무수한 미술품을 접해왔지만 정작 구입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한 아트페어에서 젊은 작가의 그림을 한 점 구입했다. 그림을 집에 걸어 두니,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매일 보면서 그림의 꽉 짜인 조형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마음을 주는 만큼 그림의 의미도 풍성해졌다. 해당 작가의 다른 그림과 작품세계도 살펴보게 되었다. 작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틈틈이 작가의 전시회 소식도 챙겼다. 작가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는 셈이다.우표나 화폐만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있듯이 미술품도 한 가지 소재나 한 장르, 한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것도 좋다. 이른바 특화된 컬렉션이 되겠다. 장기간에 걸친 특화된 컬렉션은 자기 식으로 또 하나의 미술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 정신과의사는 자신의 미술품 컬렉션을 공개한 저서 화골(畵骨)에서, 국내 근현대 작가들의 드로잉만 수집하여, 드로잉으로 된 한국 드로잉 근현대미술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 화가의 작품만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도 있다. 소장의 기쁨 누려보길사실 컬렉션 종목을 특화시킨 컬렉터가 많을수록 컬렉터가 편집한 미술사는 풍부해질 수 있다. 수집한 작품에는 컬렉터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미술품 수집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컬렉터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은 일차로 작가의 마음의 표현이지만 이차로는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 취향의 표현물이기도 한 까닭이다. 즉 수집한 작품에는 작가 마음에 컬렉터의 취향이 더해져 있다는 뜻이다. 특화된 컬렉션은 초보자나 전문적인 컬렉터들이 한번쯤 해볼 만한 안전한, 보람된 컬렉션 방법이다.일단 미술품과 말을 트고 나면 미술만큼 이용가치가 높은 예술 장르도 없다. 미술에서 연애의 비법을 배울 수도 있고,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 심리치유나 창의력 개발, 경영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또 자기 계발에 미술을 십분 활용할 수도 있다. 미술은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활용 가능성이 풍부한 샘이 깊은 물이다. 작품을 소장하면, 더 깊고 넓게 사귈 수 있다.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세계유산 희망과 경기북부개발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위원회가 생긴지 40년이 되고 이제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 중에 있다.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보전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문화와 자연의 보전은 사회적인 개발의 정책논리 앞에서는 사실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것이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세계유산제도가 생기면서 그리고 이 제도가 국가이미지 제고나 홍보에 크게 기여하고 실제로 관광수입이 크게 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국가로서는 자존심이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세계유산을 지정하고자 하는 경우가 늘어가서 매년 지정할 수 있는 건수가 제한된 마당에 그 예비목록이 점차로 늘어가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최근에 중국이 김치와 아리랑을 자신들의 예비목록에 추가했다고 하여 우리 문화유산계가 발끈한 경우도 있다.이제 세계유산을 지정하고 보유하는 일은 국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나라들마다 그리고 각국의 지자체들마다 지정할 수 있는 유산이 있을 경우에는 지정되기 위한 전략짜기에 골몰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도 세계유산, 세계무형유산, 세계기록유산 등을 합쳐 33건이 지정됐다. 때문에 과거에 세계유산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았지만 이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세계유산 가능성 많은 경기북부우리나라도 과거에 설악산지역을 자연유산으로 지정하고자 할 때는 주민의 반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지만, 제주도가 지정되자 제주도의 인지도가 상승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 그 지정의 가치가 단순히 상징성에 그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최근에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하나인 양동을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자 할 때는 주민들이 솔선해 경관의 보전에 협력해 준 것이 바로 그러한 인식의 연장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경기북부는 아마도 수도권에 인접하고 있으면서도 그동안의 수많은 개발정책에서 밀려나 있었다. 단적으로 연천이나 포천을 관통하는 그 흔한 고속도로가 하나도 없다. 서울에서 연천가는 교통시간이 대전가는 것보다도 길다. 연천의 인구가 5만 정도이고 주변 20㎞ 반경의 인구가 30만이 안된다. 아마도 수도권의 오지라고 할 정도이고 주민들도 상대적인 상실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자연경관이 잘 보전돼 있고 세계적으로 의미심장한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는 지역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의 현무암절벽이 이루는 적벽경관이나 문산의 한강과 임진강 두 큰 강이 마주치는 지역의 경이로운 경관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질 수 있는 경관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 경관은 절경으로 인식돼 조선시대 실경산수화가 겸제 정선도 좋아해 그림을 다수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 강을 따라 남아있는 전곡리 구석기유적지를 비롯한 문화유산들도 세계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유산이다. 자연문화 유산 활용 방안 찾아야무엇보다도 세계적으로 유일하고 가장 중요하며 현대사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는 세계유산은 바로 우리의 가슴을 찢고 있는 철책선이자 DMZ구역 자체다. 인류역사에 그 유례가 없는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만든 거대한 유산인 것이다.이제 차세대의 수도권 개발에서는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경기북부지역의 이러한 자연유산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보전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만들어서 이제까지의 개발에서 뒤떨어진 보상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의 균형감각을 찾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이 지역은 그동안 개발이 억제된 탓으로 청정지역이고 지역사회도 농업과 관광산업을 통해서 경제적인 효과를 만들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제 국가정책도 이 지역의 자연과 문화자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는 전략정책을 수립하여 이 지역이 수도권 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민들의 소외감에 대한 그동안의 보상이자 통일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다.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마을 사용하기’의 들어냄

귀농귀촌이라 하여 도시를 떠나 생태적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움직임들이 심상치않다.한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귀농 가구 수는 6천500가구로 2010년 4천67가구에 비해 무려 60%나 급증했고, 이런 추세는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증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도시의 몸에 베인 일상의 습성을 버리고 도시탈출의 꿈을 꾸게 되는 연유는 여럿이겠으나, 그를 통해 도시에서 얻을 수 없는 다른 뭔가를 기대하는 심정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이것저것 따져보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본다 한들 귀농귀촌의 결단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 것은 단순히 삶의 공간의 물리적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업의 방편은 물론 삶의 일상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설계하며 스스로의 문화적 파동을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그러기 위해선 스스로의 공력이 우선이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어찌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하게 그려지겠는가?마을을 찾아 그 곳에 머물다보면 마을에서 잔뼈가 굵은 소위 원주민과 귀농귀촌이라 하여 마을에 새롭게 찾아든 이주민이 어우러지는 여러 모습들을 보게 된다. 늘어나는 귀농인들의 적응문제그러다보면 누가 누군지 선듯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서로를 닮아있는 모습도 보지만, 때로는 입고, 먹고, 잠자는 기본적인 습성이나 말과 행동의 모양새가 서로 다르고, 심한 경우 물과 기름같이 겉도는 모습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인간사 사는 모습이 모두가 같을 수는 없겠거니 하며 지나치곤 하지만, 마음 한 켠의 딱한 심사마저 없는 듯 할 순 없겠다. 흔히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귀농귀촌인들의 적응력 부재나 마을 사람들의 배타성, 폐쇄성, 고답성 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성정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듯하다. 마을에서 살아 온 사람이건 마을로 돌아온 사람이건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삶의 양식을 버리고 다른 이의 그것에 전적으로 맞추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우리네 마을이 들어냄 보단 암묵적이고 숨겨진 질서로 작동되는 부분이 적지 않고, 그것이 마을 살이의 잔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표준화와 명시성의 틀 거리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혼자 힘으로 풀어내기 버거운 힘겨움을 얹혀주는 것도 사실이다.아마도 귀농귀촌의 마을 살이에서 크고 작은 부대낌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와 명시성이 절대선이 아니듯이 암묵적이고 숨겨진 질서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귀농귀촌이란 서로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마을을 사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마을 사용의 질서규칙 공유하자따라서 귀농귀촌이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마을 사용하기의 암묵적 지식과 숨겨진 질서 등을 들어낼 수 있는 장치가 요구된다. 이러한 마을 사용하기의 들어냄을 통해 보편성과 특수성의 교차점을 찾아내고 마을 안팎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마을 공동체의 합의된 시각을 갖춰나갈 수 있을 때, 귀농귀촌의 문화적 의미와 함께 마을 공동체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에너지원을 한층 풍부하게 가꿔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단지 귀농귀촌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도 절실한 일이다. 마을의 공동체성은 사람이 모여 사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주체와 방법, 지향점 등을 같이할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문화카페] 시가운동으로 이풍역속을

얼마전 춘천지방의 시인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찻집은 시가 중심을 살짝 벗어난 U자형 야산이 둘러쳐진 고즈넉한 남향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는 주인장이 텃밭이나 인근 야산에서 채취해 발효시킨 희한한 차들이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한옥풍의 다실에서 몇 순배의 끽다로 다담(茶談)을 나누고 난 후, 일행은 자연스레 그날의 주인공인 허전 시인의 시를 한 편 한 편 돌아가며 낭송하기 시작했다. 시의 주제는 거의 어머니를 소재로 하고 있었다. 서둘러 밥상 치우시고/설거지 끝내신 어머니가/윗목에 쪼그리고 앉으셔서/대야에 발을 담그시며 눈살을 찌푸리신다/엉금엉금 기어가 들여다보니/발뒤꿈치가 두꺼운 얼음판처럼 쩍쩍 갈라지고/붉은 핏물이 들불처럼 야울 거린다/고무줄 돋보기를 쓰시고/손잡이도 부러진 쇠칼로/ 조심조심 베어내는 굳은 살덩이에/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프게 떨어져 나간다/눈이 뜨거워/돌아 앉아 창 밖을 보니/아픔만큼 큰 눈송이가 펄펄 내린다허 시인이 어머니를 주제로 시를 쓰는 배경에는 사연이 있다. 그는 월남전의 수색병으로 참전했다가 베트콩의 총탄을 네 발이나 맞는 중상에서 살아남은 기적 같은 사람이다. 여생을 청송교도소 같은 격리된 세상을 찾아가서 그들을 시로 교화시키는 일을 천직으로 알며 실천하고 있다. 좋은 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그런데 거친 심성의 수인들은 아무리 좋은 강연이나 교화활동이라도 심드렁한 채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얘기나 어머니에 대한 시를 낭송할 때면 많은 재소자들이 숙연하게 눈시울을 붉힌다고 했다. 그래서 허 시인은 그들에게 어머니를 소재로 한 시를 쓰게 하고, 이 습작들을 일일이 읽고 교정해가며 문단에 등단도 시켜주고 있는데, 그들의 태도나 인생관이 몰라보게 달라지더라고 했다. 일찍이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듯이, 좋은 시는 이처럼 사람들을 속속들이 감화시키는가 보다.며칠 전 저명한 여류 시낭송가 공혜경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 일간지 기사를 봤느냐고 했다. 나는 뻔하게 짚이는 게 있어서, 이미 가슴 아파하다가 스크랩까지 해놨다고 답변했다. 기사내용은 어느 가난한 형제의 자살사건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40대 중반의 형은 그 동안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살 아래의 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굴착기 일로 생계를 이어오던 형은 건설경기의 퇴조로 일자리를 잃었고, 근래에는 인력시장에서 품을 팔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3년 전부터 통장 잔액이 바닥난 형제는 라면으로 연명하다가 급기야 13층 임대 아파트 거실에서 함께 투신자살했다. 청소년 정서 위해 시를 가르치자여기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비극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 것은 사건의 주인공이 시를 그토록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역경 속에서도 시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 같은 소박한 행복마저 허용하지 못했다. 세상살이에 시달리다 보면 심성이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중삼중의 시련 속을 살아가면서도 따뜻한 시심을 잃지 않았다. 그의 남다른 위대한 정신의 일면을 접하는 느낌이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자신에게 시낭송을 지도받은 적도 있고, 지난해에는 서울시가 주최한 전국 시낭송 경연에도 출전했었단다. 그때 그는 용혜원의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속에서도 사랑을 읊조릴 수 있는 그의 정신세계,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다.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자라야 할 젊은 세대들이 모진 폭력들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세상이 됐다. 국민개송 시가운동이라도 펼쳐서 이풍역속(移風易俗)하는 것이 상책임을 지혜로운 사람들은 안다.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얼룩백이 황소’의 눈물

소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그림과 동행했다. 농경사회인 조선시대의 그림에서 소는 듬직한 일꾼이었다. 공재 윤두서의 산골의 봄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등에서 소는 부지런히 논밭은 갈고 있다. 이른바 일하는 소다.자아표출을 연기한 소도 있다. 요절한 이중섭의 소가 대표적이다. 대담한 붓질로 표현한 이중섭의 소는 골격이 드세고 힘차다. 평화로운 소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저돌적이다. 그것도 토종한우인 칡소에, 수컷이다. 1951년 이후의 소는 철저하게 이중섭 자신을 상징한다. 625전쟁 중의 피란생활과 가족과의 생이별 과정에서 소는 역동적으로 변한다. 몸부림치는 소의 포즈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친 한 사내의 초상이 겹쳐진다. 부인과 자식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이중섭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듯이 소로 변해서 자신을 위로한다.작고 단순한 그림을 그린 장욱진도 소를 즐겨 그렸다. 그의 소는 간결하고 유머러스하다. 동그라미로 된 눈과 두 개의 선으로 조형된 코뚜레, 그리고 뿔, 치솟은 엉덩이로 소의 특징만 살렸다. 극도로 단순화된 이미지는 어린아이 낙서 같다. 천진난만하다.이중섭의 소가 화가의 분신이라면, 장욱진의 소는 가족이다. 이중섭의 소가 수컷이라면, 장욱진의 소는 대부분 암컷이다. 소의 표정도 이중섭의 소처럼 고통스럽지 않고 평화롭다. 주인을 닮아서 심성이 맑고 착하다. 장욱진의 탈속적인 조형세계에서 소는 가족이자 고향이고, 낙원의 동반자였다. 자식같던 소 아사시킨 절박함80년대에 이르면 농촌 현실을 반영한 소가 등장한다. 민중미술가 이종구의 소는 당시 우루과이라운드에 짓밟힌 농촌의 참상을 증거한다. 선하게 팬 쌍꺼풀과 긴 속눈썹이 아름다운, 깊고 검은 눈동자로 무너져가는 농촌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세밀화를 그리듯이 극사실로 그렸다. 순박한 얼굴에서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소들은 상처 입은 농촌을 배경으로 장승처럼 서 있다. 마치 그늘진 현실 앞에 서 있는 아이의 표정 같다. 암울한 풍경과 순박한 얼굴의 대비는 우리가 외면하고 살아온 농촌의 실상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종구의 소는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의 환부를 보여주는, 현실에 발언하는 소다.소들이 굶고 있다. 심지어 굶어죽는 소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소 값이 폭락하고 사료 값이 폭등하자 사료를 먹일 수 없어서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가족이었던 소의 죽임은 농민들이 선택한, 생명을 담보로 한 무언의 저항이다. 농민들 눈물 닦아줄 처방 필요자신이 키우던 소를 굶겨 죽이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주인은 밤낮으로 고민하지 않았을까. 손해를 보고 계속 사료를 먹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또 소를 키우는 일마저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더욱이 한미 FTA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앞날을 보며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래서 주인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위정자들에게 기구한 축산농가의 처지를 호소하듯이 소들을 굶겨 죽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식 같은 소를 아사시킨 행위에서 동물학대 운운하기 전에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과 축산농가의 현실을 떠올려야 한다. 농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만약 이 시대의 화가들이 소를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더 이상 목가적인 평화로운 풍경의 소는 아닐 것이다. 대신 이종구의 소처럼 농촌현실을 반영하되, 피골이 상접한 이중섭의 소처럼 절규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한 시인이 노래한 얼룩백이 황소의 금빛 게으른 울음(정지용의 시 향수에서)이 사라진 현실에서, 요즈음 노을은 유난히 핏빛이다.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흑룡, 소통과 융합의 상징

금년이 흑룡의 해라고 한다. 그렇지만 민속학자들은 흑룡이라는 말은 현대 상업주의의 산물이라고 하고 원래부터 용의 색깔론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 사실 용이라는 동물도 인간의 허구성 동물의 하나이다. 인간의 간절한 희구의 표현이라고 할까? 아마도 현대문명적인 언어로 대입한다면 트랜스포머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인간의 고뇌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해결해 주는 절대존재이고 인간과 절대자의 중간지대에 있는 상상의 동물인 셈이다. 용이라는 의미 자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용이라는 존재가 여러 동물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항상 난관의 발전적인 해결자로서의 상징이 내포되어 있는 상상동물이다. 아니 동물이라기 보다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더 강할 것이다. 인간 상상의 극치, 용용이라는 창조의 동물이 가지는 인류 진화사의 의미는 대단히 특별한 점이 있다. 전곡구석기박물관의 후기구석기시대 동굴에 보이는 빙하시대의 동물그림 중에는 상상의 동물은 없다. 이 그림의 주인들도 현생인류이지만 이 당시까지는 상상의 동물이 필요 없거나 상상의 단계가 이에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은 어느 시대이건 인간들의 염원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행위와는 별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행위들을 하는 인간 고유의 정신행위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생각하거나, 사회의 공동선이 극대화되기를 기원하는 등의 생각을 하는 행위들을 말하는 것이다.그러면 언제 인류사에서 상상의 동물들이 나타났을까?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미 인간성의 표현은 동굴벽화, 사람시체의 매장,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거나, 몸을 치장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조각품을 만드는 등의 인간성의 표현은 전 세계의 유적에서 널리 보인다. 그렇지만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예술에는 사자의 탈을 쓴 사람은 보이지만 상상의 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 울주의 반구대 그림에서도 형상이 추상화되기는 했지만 그 속에 상상의 동물은 없다. 그런데, 문명의 시대에 접어들면 상상의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스의 신화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신화에서 보이는 반인반수 그리고 반수(獸)반조(鳥)와 반인반어(魚)등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면, 또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상상의 동물이다. 갈등의 응어리 풀어줄 흑룡의 해 용이 바로 그러한 것의 대표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 상상의 극치로서 용이 존재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은 교역이 보편화되고 원시사회들의 통합이 이뤄지는 신석기시대 다종족 또는 다문화사회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인간사회 속에 선과 악의 갈등과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커진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응징과 욕망의 충족을 위한 문명시대의 정신세계 확장으로서 이 상상의 동물이 발명됐을 것이다. 아마도 현대문명사회에도 이러한 상상적 동물들은 우리 정신의 카타르시스로서 존재하는 셈이다.금년도 용의 해, 특별한 시대적인 의미가 있다.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기술로 인한 인간소외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야기되는 갈등의 응어리를 풀어줄 해결사로서 흑룡이다.금년도에 아마도 선거를 통해서 우리 사회속에 다면적으로 쌓여온 욕구불만과 기술문명과 제도와의 괴리가 심각하게 노증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고 살아가는 현실이 좋은 제도로 개선돼가는 순환이 이뤄지고 또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장점만을 모아서 융합돼 단군 이래의 최대의 사회 진화가 일어나는 한해가 됐으면 하는 것이 나 뿐 아니라 백성 모두의 바람이다. 흑룡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바로 모든 색의 진정한 융합의 결과로서의 용이리라. 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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