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과 야채로 그린 얼굴이 있다. 형상은 분명 사람의 얼굴인데, 코는 호박이고, 머리는 과일, 귀는 옥수수, 입은 완두콩 식이다.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얼굴 연작은 재료가 과일과 야채다. 재치 있는 상상력이 기괴하지만 재미있다. 흔해빠진 과일과 채소인데, 한데 조합해놓으니 초상화다.파블로 피카소의 상상력도 기발하기는 아르침볼도 못지 않다. 그는 버려진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로 황소머리를 만들었다. 안장은 머리가 됐고, 손잡이는 뿔이 됐다. 번뜩이는 상상력이 일품이다. 이질적인 물건들을 조합해서 어엿한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창조적인 상상력은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특히 비빔밥처럼 서로 다른 재료를 섞을 때, 그동안 친숙하거나 인습화된 삶이 놓친 신세계가 홀연히 펼쳐진다. 시인들이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활용해서 자동화된 일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유도하는 것처럼 창조적인 파괴는 창조적인 결실을 낳는다.
놀라운 이종교배 결정체 용
동양 문화권이 배출한 동물 가운데 톱스타는 단연코 용이다. 오색찬란한 자태에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강인한 비늘, 휘날리는 수염, 날카로운 발톱 등이 검투사의 몸처럼 단단하면서도 신비롭다. 십이지 중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인 용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로 무려 아홉 가지 동물의 부위를 편집한 잡종이다. 놀라운 이종교배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동물 중의 동물로서 능력이 최강이다. 장르와 장르가 혼합되는 크로스오버의 역동성이 신령스럽다. 상징성 면에서도 최고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 입는 의복은 곤룡포, 앉는 평상은 용상이라고 한다. 임금의 상징으로서 용의 이미지와 용 문양은 왕실의 권위를 대표한다. 또 좋은 일을 부르는 길상과 나쁜 일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비를 관장하는 물의 신으로서 사람들의 기원의 대상이 돼왔다.육해공의 동물을 창조적으로 조립한 슈퍼 울트라 애니멀로서 용은 요즘 말로 하면 하이브리드(hybrid)형 동물이다. 서로 다른 기능을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하이브리드. 획일화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허무는 하이브리드적 사고와 상상력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들었다. 자장면과 짬뽕을 합한 짬자면이 그렇고, 휴대폰은 이제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라 사진기이자 컴퓨터, 텔레비전이다. 태양광과 풍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가로등이 있는가 하면, 데스크톱과 노트북의 장점을 섞은 고성능 컴퓨터도 있다. 기업에서도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인간을 새 시대의 인재상으로 꼽는다.
경계 허무는 상상력 발휘하자
최강의 동물 부위를 한데 통합했다는 점에서 용은 스마트 기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예전에는 독립됐던 기기와 프로그램들이 애플리케이션이라는 형태로 스마트폰 하나에 통합됐다. 하이브리드적 상상력의 결실이다. 과거에 잡종은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사람들은 밝은 미래를 본다. 굳이 하이브리드 스타일을 서양미술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용의 조형원리를 곱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이제는 한 가지만으로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시대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다. 수십, 수백 배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아홉 가지 동물을 융합한 혼종임에도 용의 권위와 가치가 최고이듯이 하이브리드적 상상력은 무표정한 현실을 활짝 웃게 만든다. 임진년에는, 다른 동물의 장점으로 보디빌딩한 용처럼 자신의 강점에 타인의 강점을 받아들이는 하이브리드적 지혜가 필요하다.정 민 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오피니언
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2012-01-04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