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되라’고 가르치는 가정교육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이 권위를 잃고 있다. 학생이 공부 시간에 낮잠을 자거나 숙제를 해 오지 않아도 교사는 제대로 지도를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청소년답게 행동해라, 옷을 단정히 입어라 등의 행동 규범에 대한 지도의 실종은 더욱 심각하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나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행동규범에 대한 지도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스승의 행동에서 무언으로 전수받았던 행동 규범, 즉 도덕윤리 교육이 단절된 상황에 이른 것이다.행동 규범을 결정하는 도덕윤리의 함양 교육은 책을 보고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고매한 인격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스승의 행동에서 풍겨나는 도덕적 행동을 체험할 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가치 교육은 교사가 존경받고 권위를 부여받아 학생들에게 모범적인 실체로 인정되는 교육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서는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 이러한 교육 환경의 밑바탕에는 가정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종아리를 때리던 부모의 자애로운 가르침이 다른 아이보다 성적이 나아야 한다고 나무라는 부모의 이기적인 욕망의 표현으로 변질되어 도덕윤리 교육이 도외시 되고 있다.가정교육에서의 인성교육의 재건은 공교육 재건의 토대다. 학생이 스승의 권위를 인정하고 배우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해야 스승이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교육이 회복돼야 교사가 지식과 생각과 육체가 미성숙단계에 있는 피교육자를 성숙의 단계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교육 당국과 교육 정책 입안자들은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전문 지식과 인격을 동시에 갖춘 교사 양성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훌륭한 교사만이 가정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도덕윤리관을 제자에게 심어 줘 바람직한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배우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피교육자에게 지식을 전수하면 학습효과가 상승하여 학교 외의 곳에서 더 배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그러나 우리 현실에선 훌륭한 자질을 지닌 교사가 가슴에 품은 뜻을 펼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치 교육을 시간 낭비로 치부하거나 이를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활용이 규정상 어렵게 되어 있는 현실 때문이다. 교육 당국, 학부모, 교사 단체 등과 학교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이 교사들과 합심하여 현장 교육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교장이 학교 운영에서 스스로에게 부여된 권한을 어려움 없이 행사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성원하여야 할 것이다.학부모들은 교육 현안에 관심을 갖기에 앞서 자녀의 인성 교육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공 지식이 풍부하고 열성을 가진 교사가 알아듣기 쉽게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능동적인 학습으로 학력을 높여 자신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여 나라의 동량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21세기는 지식 기반사회여서 지식교육에 치우칠 위험성이 많다. 그러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인성교육이 결여되면 사회 질서에 혼란이 와 질 높은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각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만 다그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라고 다그쳐야 할 것이다./조창섭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장

가장 확실한 투자는 나눔이다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언론사를 중심으로 각종 사회단체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곤 한다. 그리고 방송이나 신문지상에는 김장 담궈주기, 연탄기부와 같은 훈훈한 기사들이 꼬리를 물고 소개된다.모름지기 21세기는 나눔기부와 같은 사회봉사가 세상까지 바꾸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바꿔 말하면 사회봉사활동 없이 이제는 개인이나 기업이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각 대학에서는 입학 전형시 응시자의 봉사활동을 합격의 주요 기준치로 삼는가 하면, 일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봉사활동을 많이 한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특별전형을 일반화하고 있는 추세다.필자가 중앙언론사에 근무하던 20~30년전만해도 각종 모금활동을 벌이게 되면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인사들로 인해 실무자들이 몸살을 앓곤 했다.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 또는 큰 종교단체가 성금을 내고 신문지상에 조금이라도 더 얼굴과 이름을 올리려고 떼를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이뿐인가. 수해나 대형참사 현장에서 약삭빠른 일부 인사는 TV방송기자가 어느 지역에서 취재활동을 할 것인가를 미리 알아보고 그곳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오는 웃지 못할 봉사활동을 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나눔의 문화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관심은 있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이들은 나눔이라고 하면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는데 그 나눔에는 자신의 재능이 될 수도 있고, 육체적인 노동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재능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자신의 직업과 특기를 조금씩만 나누면 된다. 가령 자신의 직업이 운동선수나 음악인이라면 주변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운동이나 음악을 가르치거나, 의사나 법조인이라면 의료봉사나 법률자문을 해 주면 그것이 사회봉사인 것이다.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나눔과 기부는 성공의 핵심요소이다. 최근 홍콩의 브랜드경영 아시아센터(ACBM)에서 조사한 소비자 가치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회공헌을 활발히 하는 기업군의 브랜드 신뢰도, 선호도, 충성도가 그렇지 않은 기업군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사회공헌을 활발히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브랜드 신뢰도 차이는 7점 만점 기준에 무려 1점 이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각 기업들이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막대한 광고마케팅 비용을 쏟아붓지만 사회공헌 활동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결론이다. 일정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건전한 기업 이미지가 얼마가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우리 기업들이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이제 우리나라도 어느덧 경제규모 세계 15위라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고 특히 올해 G20정상회의를 우리나라가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수십년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수백억원씩이나 지원을 받아왔던 우리가 이제는 한 해 3백억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지위가 크게 격상됐다.외형상 그렇다고 해서 정작 우리가 선진국이 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치와 도덕, 그리고 시민의식, 문화수준, 기초질서 등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사회를 가름하는 또 다른 척도인 나눔과 봉사의 문화에 대해선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우리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한번 내서 기부든 나눔이든 한 번 시도해보자. 그러면 그 이후부터는 훨씬 자연스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새해의 묵수(墨守)

최근에 인상깊게 본 책이 있다. 사케미 게이치(酒見賢一)가 쓴 묵공(墨功)이라는 중국풍의 소설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묵자라는 사람이다. 묵자는 공자나 맹자, 순자처럼 군웅할거의 유교에 대항했던 기묘한 인물로 박애주의를 주장하면서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다. 이러한 묵자가 만들어낸 전투집단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신비의 묵자교단(墨子敎團)이다.묵자교단은 박애주의라는 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조직된 종교집단으로 전쟁에 이기기 위한 비정함을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풍부한 인간성을 지닌 휴머니스트들이었다. 묵자교단의 주된 신도 계층이 상공업, 혹은 수공업자들이거나 다수의 협객들로 구성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묵자교단이 철저한 전투 용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절대로 남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격보다는 뛰어난 고도의 수비능력과 병기제조기술, 그리고 탁월한 방어전술로 약소국의 지원요청을 받고는 천하의 어떠한 성도 잘 지켜냈다.겸애(兼愛), 즉 천하에 남이 따로 없다는 천하무인(天下無人)을 바탕으로 전쟁을 배격하는 비전론(非戰論)을 내건 묵자교단은 이런 신념을 널리 전파하고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그들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인지 대단히 전투적인 모습을 보인다. 공격하지 않음으로써 성을 지킨다는 이른바 비공의 의미는 묵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지만 묵자의 수비는 온몸을 다 바쳐 끝까지 지키기 때문에 단순한 피동적 수비와는 다르다. 일종의 공격적이고도 능동적인 수비이다. 그래서 공격자에 대하여 항복을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자기를 지킴으로써 항복보다 더 나은 민중의 주체적 삶을 보장받기 원했다고 볼 수 있다. 200여년 동안 활동한 이 신비한 교단은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역사의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묵수(墨守)라는 말은 묵자(墨子)의 지침에 따라 굳건히 성을 지킨다는 묵자교단의 전법에서 유래된 말로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굳게 지킴을 의미한다.경인년 새해가 힘차게 시작됐다. 교수신문은 금년도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을 선정했다. 강구연월은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한 글이다. 이는 올해 우리 국민이 분열과 갈등을 넘어 상생과 화합의 시대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강구연월 외에 편안할 때 위태로울 때의 일을 생각하라는 거안사위(居安思危), 때를 벗기고 잘 닦아 빛을 낸다는 의미의 괄구마광(刮垢磨光) 등도 새해의 사자성어 후보로 꼽혔다. 정치인들도 이에 뒤질세라 새해의 각오로 태화흥국(泰華興國), 청정무애(淸淨無碍), 호시우행(虎視牛行), 지족불욕(知足不辱),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기호지세(騎虎之勢), 여민동락(與民同樂), 절전지훈(折箭之訓) 등을 새해의 묵수로 피력했다.우리들도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옳다고 믿고 반드시 지켜야 할 나만의 묵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시점이다. 이왕이면 우리들의 묵수가 경쟁과 우위를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상생과 소통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나만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먼저 배려하고 사회와 공공선을 향해 헌신하는 묵수가 됐으면 한다./김 우 자혜학교 교장시인

고구려성이라 불리지 못한 구의동 보루

551년 겨울 이른 새벽, 한 무리의 백제군 선발대를 태운 배가 소리 없이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목적지는 한강 북안에 있는 고구려군의 전방 초소. 백제군이 보루 바로 아래에 다다를 때까지 보루에서는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고구려 병사들. 백제군은 해발 50m의 야트막한 구릉을 기어 올라가 초소에 불을 질렀다. 나무 벽체와 갈대 지붕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초소 안에서 잠자고 있던 10명의 고구려 병사 중 몇 명은 불에 타서 죽었고, 바깥으로 뛰쳐나온 나머지 병사들도 기다리고 있던 백제군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그로부터 1천400여 년이 지난 1977년 5월. 서울시가 성동구 화양동 일대에 대한 택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서울대학교 조사단은 말무덤이라 불리던 구의동 유적의 발굴을 시작했다. 강돌로 쌓은 원형 석축 시설과 수혈 주거지, 온돌 시설과 토광 유구가 확인됐다. 온돌아궁이에는 철제 솥이 걸려 있는 상태였고, 10자루의 창과 4자루의 도끼, 2자루의 환두대도 외에도 1천300여 점의 화살촉과 철제 보습, 가래, 쇠스랑 등이 출토됐으며, 400여 점에 달하는 토기도 출토됐다.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였지만 당시 조사단은 구의동 유적이 고구려 성인지 알지 못했다. 백제 고분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했을 뿐 아니라 백제의 도읍지였던 한강변에서 고구려 유적이 발견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본 무덤을 쓰기 전에 만들었던 가묘 형태의 빈전장(殯殿葬)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백제 고분으로 결론을 내리게 됐다. 발굴조사 후 구의동 보루는 개발에 밀려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20층짜리 아파트가 건립됐으며, 출토 유물은 20여 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제실에 전시되어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이것이 고분이 아니라 군사시설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조사원 중 한 명이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부터 30여 년 전 한국고고학의 현주소였다.구의동 유적이 고구려 보루라는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올림픽 관련 시설 설치 전 실시했던 발굴 과정에서 몽촌토성 출토 유물 중 상당수가 구의동 보루 출토 유물과 비슷했는데, 이들이 고구려 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고구려의 백제 한성 함락 기사가 사실이라는 것이 유물로 입증된 것이었다.1994년 필자는 구리문화원의 요청으로 아차산에 대한 지표조사를 하게 됐다. 아차산 일대를 한 달 이상 계속 오르내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차산 4보루의 헬기장 바닥에 박혀 있던 몇 점의 고구려 토기가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마치 눈에서 허물이 벗어진 것 같이 가는 곳마다 고구려 토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구려 유적과 유물을 조사하며 보낸 1994년의 봄과 여름의 그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일은 내가 고구려 고고학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으며, 이후 남한 지역에서 약 40여 개소가 넘는 고구려 보루를 찾아내는 발판이 됐다.인식의 틀은 거대한 장막처럼, 또는 눈을 덮는 허물처럼 진실을 가리는 것 같다. 발굴에 임할 때마다 또 다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한해의 역사를 마감하는 12월의 마지막 날에 내 눈을 가리고 있을 또 다른 장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우수교사 양성이 공교육 정상화의 첩경

교원이 교육활동을 하는 교직은 국가와 민족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공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직업에 속하지 않고 사명감을 요구하는 봉사직에 속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있다고 하여 누구나 교직에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전공지식을 함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 다음 임용고사에 합격해야 교육 현장에 투입돼 교육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직을 전문직이라고도 한다.교직에 몸 담고 있는 교사는 전공 영역에 대한 폭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익혀 가장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개발하여 지식을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권위 있는 교사는 학생, 학부모 그리고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원에 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학교교육 즉, 공교육은 절로 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그러나 지금의 교직은 교육활동을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정년을 보장받는 느긋한 직장으로 평가받으면서 교직의 낙후성이 드러나고 있다. 교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선생님을 부르는 학생들의 호칭도 듣기 민망할 정도로 변질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교원을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통념화 되었다. 어떤 학부모는 선생님이 자기의 자녀를 심하게 다루었다고 교무실에 쳐들어와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뺨을 후려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있지만 교원의 권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교육활동은 지적으로 미성숙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공 영역에 대한 전문적 자질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야 학생, 학부모 그리고 사회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아 존경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교원의 지위도 향상되는 것이다.교사는 성장기의 피교육자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교직이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교사들은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도 그러한 자질 함양을 위한 교육을 받았어야 한다.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을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교사를 일찍이 태조 실록에 사범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다.사범(師範)은 학문에 밝고 행실이 바르며 도덕과 덕성을 겸비하여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뜻한다. <태조실록 2권, 태조 원년 1932년 9월>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을 사명감을 지니고 실천하는 사범다운 교사가 있다면 공교육이 사교육에 뒤쳐져 학부모가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수교사를 양성하는 길만이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공교육을 바로세우는 첩경이 될 것이다.최근 미래기획위원회는 취학 연령을 1세 낮추어 취학 전에 영어유치원 등에 지불하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보육비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젊은 세대로 하여금 출산을 하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청의 교육국에서 실시하려고 하는 취학전 아동을 위한 교육과 일맥상통하다. 이러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사범교육을 육성하여 권위있는 교사가 공교육을 바로 세우도록 교육정책을 수립해 실천해 나가길 바란다. /조창섭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출산기피, 남의 일이 아니다

정치경제분야를 제외하고 요즘의 최대 화두는 아무래도 출산인 것 같다. 각 언론에서 연일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율이 저조하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고,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도 묘안을 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달 안산에서도 아이낳기 좋은세상 만들기 결의대회가 열렸는데 이쯤되면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실제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을 보면 보통 심각한게 아니다. 유엔 인구기금의 세계인구 현황보고서에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1.22명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최하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출산율이 저조한 이유가 뭘까. 가임 여성들이 왜 출산을 기피하고 있는지 그 원인부터 짚어봐야 해답이 나올 것 같다.필자의 집안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50대 중반의 젊은 할머니의 사례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요즘의 추세를 반영하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교육계의 엘리트로 교감까지 지낸 그분은 얼마전 30여년동안 정들었던 교단을 떠났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의 후학육성은 본인이 아니어도 후배들이 할 수 있지만, 가족의 문제는 남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결혼한 자녀들이 출산을 미루는 모습을 보고 손자 손녀를 키우겠다고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이분의 사례를 보듯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을 회피하는 요인 가운데 1회용 기저귀와 분유비용도 만만치 않고 사교육비도 부담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자녀를 안심하고 믿고 맞길 만한 시설이나 여건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주부의 취업률이 65%를 넘어서 부부 맞벌이 시대에 들어섰다.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출산장려금 지급, 다자녀가정공공주택 특별분양, 다자녀 교육비 지원, 불법낙태 단속 등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탁아시설의 대폭적인 확충이야 말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까 싶다.또한, 돌보미를 이용한 육아의 경우도 그 실상은 녹록하지 않은 편이다. 우선 그 비용이 적어도 월 100만원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클뿐더러 아이들의 정서상에도 좋지 않다는 평가에 따라 기피하고 있는 현실이다.결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각 기업에서 출산 장려를 위한 경제적 지원이나 시설확충, 제도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되겠지만 이는 예산이 반영돼야 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됨에 따라 보다 더 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출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우선적으로 조성될 필요가 있다.요사이 점심시간에 괜찮은 음식점에 가 보면 젊은 할머니들 모임을 곧 잘 볼 수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보니 그럴 수 있겠는데 대부분 그들의 화제는 자식자랑, 남편자랑, 옷자랑 등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대화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모임일수록 자기과시용 자랑은 늘어놓지만 사회봉사와 배려의 문화에 대해서는 인색한 편이다.우리사회의 고령화추세에 맞춰 나이가 지긋한 유휴 인력이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활동모임에 참여한다면 우리사회도 건강하고 노인계층도 건강해 질 것이다. 또한 노인계층이 손자 손녀를 돌봄으로써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도움되고 젊은 부모들이 마음 놓고 직장에 나갈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식의 일석이조 효과가 기대되는 정책이다.그래서 출산은 무엇보다 젊은 부부, 본인들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네 노인계층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새삼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젊은 할머니들이여!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팔 하나 없는 사람입니다

성서의 깊은 뜻을 잘 모르는 제가 한 가지 냉소적인 언급을 하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벌였는데 초대받은 많은 사람들이 장가를 가야한다, 밭을 사야한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오지를 않습니다. 잔치에 별로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화가 난 주인이 길거리에 나가 여러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 잔치 자리를 채우라 했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이때 닥치는 대로 부름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대다수는 힘없고 별 볼일 없는 장애인들이었습니다. 그 모습도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가난한 자들, 불구자와 소경들, 다리를 저는 자들 등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왜 초대를 받았는지 모른 채 쭈빗거리며 잔치마당을 들어섭니다. 그저 이름없는 사회의 비주류로 지내다가 잔치상의 대타로 등장하게 되지요,얼마 전 수원역 맞은편에 있는 구두미화소에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사장님입니다. 얼핏 보니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 아저씨 어깨 너머로 자일에 의지해 암벽등반을 하는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아저씨인데 어딘지 모르게 자세가 어색합니다. 그제서야 나는 아저씨가 왼팔이 없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어렸을 때 탈곡기의 벨트에 걸려 큰 사고가 난 후 그의 인생은 여러가지로 굴곡진 길을 힘들게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장애인이 된 후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의례적인 말에 피식 웃음으로 막아서고는 그래도 자기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은 조금씩 다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비교적 고난도의 등산과 테니스, 그리고 수영 등은 모두 그가 하고 싶어서 해온 활동들입니다. 수원지역 산악인의 저변이 의외로 넓다는 공감하에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산악인을 언급하니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합니다. 전화로 그를 바꿔 주니 대뜸 저 잘 아시죠? 팔 하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합니다. 반갑게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가 자기이름을 말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의 특성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린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들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의미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는 있는 이름도 부르기를 주저한 듯 합니다.대부분의 손님들은 팔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알고는 들어오려다가 그냥 간다고 합니다.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사회로 하여금 손님들을 장애인의 바깥에서 빙빙 돌거나 힐끗거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기이름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 꽃이 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며,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을까 두려워 스스로 자기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입니다. 각자의 생김새와 가진 능력은 다를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정겹게 불러야겠습니다. 비단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들과 티없이 자라는 어린아이들, 이국땅에서 힘들게 새로운 꿈을 꾸는 다문화가정의 외국인들, 소년소녀 가장들, 미혼모들, 모두가 고유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나라 잔치에 마지못해 온 사람이 아니라 주인공으로서 초대받고 싶어 합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동전으로 잔돈을 거슬러주는 것을 미안해하는 그의 마음을 가슴에 담으며 길을 나서니 따뜻한 이름들이 살아나듯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이 찬 겨울을 환하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단양의 온달문화축제와 아차산성

매년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단양군에서는 온달문화축제가 열린다. 신종플루로 취소된 올해의 행사가 14회가 될 예정이었다. 단양군에서 온달문화축제가 열리는 까닭은 온달이 쌓았다고 하는 온달산성이 단양에 있고, 온달 동굴과 온달 공깃돌 바위 등 온달과 관련된 이름이 단양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온달은 삼국사기 열전에 수록되어 있는 고구려 평원왕 때의 인물로, 가난하고 못생겨서 바보온달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마음은 밝고 총명했다고 한다. 온달의 사람됨을 알아본 평강공주가 온달을 훈련하여 북주(北周)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도록 했고, 이로써 온달은 왕의 사위로 인정받는 자리에까지 이른다.평원왕의 뒤를 이은 영양왕 때에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정했던 온달은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신라 군사들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된다.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관이 꼼짝도 하지 않아서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고 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이러한 온달의 일생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의 인생역전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며, 그의 뜨거운 애국심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래서 온달은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역사 인물 중 한 사람이 됐다.그런데 단양이 정말 온달과 관련이 있는 곳일까? 민속학적으로는 그렇다일지 모르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아니다다. 온달이 쌓았다고 하는 온달산성은 전형적인 6세기대의 신라산성이다. 높고 견고하게 쌓은 석축 성벽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성문, 성 내에서 출토되는 유물 등은 이 산성이 온달이 쌓은 성이 아님을 말해 준다. 그리고 영양왕 원년(590년) 온달이 신라를 공격했다고 했지만, 삼국사기에는 이 시기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료는 단양이 온달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그렇다면, 온달이 전사했다고 하는 아단성(阿旦城)은 과연 어디일까? 475년 장수왕이 한성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을 처형한 곳이 바로 아단성이다. 아차산성이 원래는 아단성이었는데 태조 이성계의 이름인 단(旦) 자가 이름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차(嵯)로 고쳐 썼기 때문에 지금의 아차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1998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아차산성을 발굴하는 중 北漢이라고 쓰인 명문 기와가 출토됨으로 인해 신라의 북한산성은 바로 아차산성이었음이 밝혀지게 됐다. 신라는 백제의 아단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고 북한산성이라고 이름붙였던 것이다.삼국사기에는 영양왕 14년(603년) 고구려의 북한산성 공격 기사가 등장한다. 영양왕이 고흥 장군을 보내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하도록 했는데, 진평왕이 신라 원병 1만여 명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오자 고구려군이 퇴각하고 말았다는 내용의 기사다.온달이 출정했다가 전사한 전투는 이 북한산성 전투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이 시기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한 것은 바로 북한산성(아차산성) 주변에 고구려가 이미 쌓아 놓았던 20여 개의 보루가 밀집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온달이 아차산성 아래에서 전사했다고 하면, 온달문화축제는 단양군이 아닌 광진구나 구리시에서 개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고고학은 이처럼 전설이나 구전으로 인해 잘못 인식된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말이다. 문화카페

기를 살려주자

수능고사를 끝낸 고3 학생들이 홀가분한 기분에 취해 탈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목사님이 일요일 예배에 참석시키도록 독려하여 많은 학생들이 예배에 참석했다. 수능고사를 못 치룬 학생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하여 설교 중에 공부를 잘하지 못한 학생에게도 박수를 쳐 줍시다하고 김병삼 목사님께서 말씀을 하셨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회당의 오른편에 자리한 청소년들이 박수를 힘차게 쳤다. 교회의 본당 좌석이 넘쳐 별관에 자리를 하고 스크린으로 목사님의 설교를 시청하던 고3 학생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쳐 그 박수소리가 본당까지 들렸다.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이렇게 공부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하니 신도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교인들의 웃음은 공감의 표시였을 것이다.수능고사를 치룬 학생 중에 3%는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이지만 97%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한 범주에 속하여 갈등을 빚으며 불행해 하는 학생이다. 97%라는 다수 학생의 불행을 감소시켜 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학생의 기를 살려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목사님이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기를 살려 준다는 것은 학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신명나게 만들어 자기가 하는 일에 발전을 가져오게 만드는 리더십의 발현이다. 그러나 기를 살려 주는 것만으로는 수험생의 아픔을 일순간 진정시켜 주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미봉책을 넘어서서 다수의 수험생이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그것은 곧 지식 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지금의 세계는 국제무한경쟁 시대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월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능고사처럼 전과목을 주로 객관식 형태를 빌어 시험을 치르게 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은 지식 정보 사회에는 맞지 않는 평가방법이다. 중앙교육행정기관에서 대학입시를 독점적으로 집행하면서 행정의 편의와 객관성 유지에 급급하여 시험을 하루에 치르게 하고 객관식 문제를 주로 출제하다보니 서술형의 주관식 평가방법은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입시생은 암기식기계적 계산, 족집게식 공부 등 답 맞추는 기술에 함몰되어 얄팍한 학력향상에 치중하다보니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화나 창의성 함양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자기만의 소질을 가지고 있다. 그 소질을 개발하여 특성화하면 그 분야의 천재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여자 골프선수 신지애양이 LPGA 골프대회에서 1등을 했다. 받은 상금도 크겠지만 영어로 인터뷰한 내용이 좋아서 극찬을 받고 있다. 신지애양을 수능고사를 치뤄서 대학에 가라고 했다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의 범주에 속해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됐을지 모른다.또한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270 여 가지의 상품 개발도, 6천400억불이 넘는 무역고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것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용화하는 창의성 있는 인재들에 의한 것이다.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수월성 교육이 수능고사 상위 3%에 속한 전과목 우수자를 기르는 것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97%에 속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소질과 창의성을 개발해 우수 인재로 육성하는 수월성 교육을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특성화와 창의성을 함양한 학생이 진학할 수 있는 진학의 문을 만들어 줘야 한다. 입시제도의 개선으로 다수의 수험생이 행복을 느끼고, 나아가 질 높은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한다.

‘프로토콜’은 종합예술이다

최근들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프로토콜이란 용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외빈을 영접할 때 행하는 국가의 의전행사라는 말인데 뜬금없이 이 용어가 회자되는 것은 얼마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중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 화제가 되면서부터다.일본 방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본 국왕에게 허리를 거의 90도로 굽혀 인사한 것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미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미국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이에 미 행정부 고위 관리가 단지 외교적 의례(protocol)를 지켰던 것이라고 해명하자, 미국 언론은 프로토콜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부를 향해 그게 프로토콜이 맞느냐고 따지면서부터 프로토콜이란 용어가 세계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것이다.이렇듯 국가간, 개인간 의전(프로토콜)은 자존심이 걸려있는 민감한 사안인만큼 신중하고 세심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얼마전의 일이다. 대학 학장으로 재직중인 지인 한분이 모 단체가 주최한 시상식에 특별상 시상을 위해 먼거리도 마다않고 참석한 적이 있다. 그날따라 지역 유지분들이 대거 이 시상식에 참석해서 그런지 행사관계자 누구도 이 분에 대해 시상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는 커녕 식장의 자리조차 안내해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손님으로 참석한 필자가 이 분을 식장까지 안내하고 행사 관계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많은 분들을 초대해 놓고도 내빈소개 20분, 기념사와 축사 30분, 이렇듯 지루한 시간이 흘러 본격적인 시상식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상장과 수상자가 뒤바뀌는 바람에 시상하러 나온 분을 단상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게 하는 촌극을 연출했다.이날 수준 이하의 시상식으로 인해 수상자나 시상자, 그리고 축하객 모두가 상처뿐인 영광으로 오랫동안 씁쓸한 맛을 되뇌일 것이다.이렇듯 프로토콜이란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 참석자 모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물론 참석자들을 주눅들게 할 정도의 지나친 격식은 삼가야 되겠지만 최소한의 자연스런 프로토콜은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물론 행사를 자주 접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행사의 프로토콜을 마련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의전(儀典)이라면 누구보다 최고로 인정하는 외교통상부 전문의전팀마저도 실수를 줄이기 위해 공식행사에서 지켜야 할 일련의 규범인 세계와의 소통, 국가의전 이야기를 발간할 정도이니 말이다.그래서 의전은 종합예술의 극치인 영화에 곧잘 비유되곤 한다. 대본이 나오고 주연배우가 결정되고 조명, 카메라, 소품, 편집 등의 요소가 어우러져야 영화 한 편이 제작되듯 행사의 주인공과 대본에 해당하는 일정 계획서, 차량, 숙소, 연회 등의 요소들이 제대로 갖춰져야 비로소 하나의 행사가 완성되는 것이다.연말이 다가오면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지어 열리게 된다. 손님을 초대하면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하는 게 우리네 정서이고 보면 작은 행사일지라도 초대된 손님들이 짜증나지 않게 세심한 준비와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올 연말에는 감동과 배려가 있는 행사장에 초대받고 싶다./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영화 ‘300’과 특수교육

영화 300은 BC 480년 제3차 페르시아전쟁 때 그리스를 침공하는 페르시아 100만 대군을 막기 위해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300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킨 실제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거대한 강군과 맞서는 무모한 싸움이지만 스파르타의 용맹한 용사들은 나라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불가능한 이 전투에 맹렬히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건다. 이 전투에서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전원은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러나 이 전투는 전체 페르시아 전쟁에서 중요한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고 이후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동서양의 역사와 문명이 격렬히 충돌하는 계기가 되었다.스파르타인들은 전투에 임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진형을 구성하여 적들과 싸운다. 4명의 창병이 1팀이 되어 서로 등을 맞댄 네모꼴의 방진을 구성하여 공격과 방어를 겸하는데 그 파괴력이 엄청났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방진은 한 면이 취약하거나 허술하면 전체가 무너지는 전투구조라는 것이다. 300명의 용사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필사적으로 적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퇴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결국은 전멸을 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조국을 배신하는 한 사람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에게 산을 넘을수 있는 비밀스러운 샛길을 페르시아군에게 알려준 것은 바로 다름아닌 장애인이었다. 밀고자는 그 고장 출신의 지체장애인이었다. 스파르타는 강력하게 양성된 시민을 중심으로 국가중심의 전제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사회였다. 아이들이 병약하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산속에 버리거나 죽음에 처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을 몰래 숨겨준 아버지의 뜻을 살리고자 군인이 되어 자기도 시민의 한사람으로 당당하게 전투에 임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장애로 인하여 방패를 들어올려 자신이 맡은 방진의 한부분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된 레오니다스 왕은 그를 배척하고, 분노와 좌절로 앙심을 품은 그가 최후로 택한 것은 샛길을 알려서 조국을 배신하는 선택이었다.장애학생을 지도하는 특수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300의 주인공들과 같은 일당백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떠한 상황이든 특수교육의 본질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하고, 나보다는 조직과 전체를 중시하고, 권리보다는 의무를 우선시하며, 대접받기 보다는 조용히 밑거름이 되는 희생자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힘든 특수교육인데. 이제는 더 희생하고 더 일하라고 한다. 시대적인 분위기가 개인의 개성과 행복을 최우선하는데 왜 우리만 손해를 봐야하는가? 그렇지만 특수교사는 장애학생들을 위해 선발되고 자원한 용사들인 것이다.특수교육은 힘들다. 어떠한 상황이든 모든 사람을 안고 가야 한다. 장애의 유형과 장애의 정도를 불문하고, 교육의 효과가 크든 작든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록 그가 창과 방패를 들 힘이 없어서 자신의 몫인 방진을 지켜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영화는 동서양 문명의 승패를 좌우한 중요한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을 장애인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 묵묵히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고 있는 이 땅의 300전사들에게 작은 격려를 드린다. /김 우 자혜학교교장시인

부경(桴京)으로 남아있는 고구려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4년 8월의 어느날, 나는 만주 벌판에 있었다. 만주는 내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땅이다. 고조선의 중심지요, 고구려의 심장부였던 땅.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김좌진, 홍범도 등 수많은 우리의 독립 투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바로 그 땅. 고향에서 늘 보아오던 산과 강이 있어 전혀 낯설지 않은 땅이었다.나는 고구려의 왕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심양까지 비행기로 가서 심양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통화에서 내렸다. 통화에서 다시 자동차로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이 있었던 집안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통화에서 집안까지 120㎞. 포장도로라면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거리를 3시간째 달리고 있었지만 아직 절반도 못 왔다고 했다. 요철이 심한 비포장도로인데다 우리가 탄 차는 20년도 더 된 러시아제 지프였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마침 몸도 뻐근하고 출출했기에 쉬기도 하고 요기도 할 겸 가까이 있는 민가를 찾아 들어갔다. 집 대문을 들어서는데 이상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그 구조물은 우리의 원두막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땅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어른 키 정도 높이에서 가로로 나무를 대어 바닥을 만들고 벽체와 지붕을 얹은 원두막 형태의 구조물. 그것은 바로 기록에 전하는 고구려의 부경(?京)이었다.고구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의 진수(陳壽233-297)가 쓴 삼국지 동이전에 보면 (고구려인들은)큰 창고는 없지만,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다. 그것을 부경이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고구려의 부경을 천년도 더 지난 지금, 조선족도 아닌 한족(漢族)이 만들어 놓았을까?식사 후 차를 고치고 다시 출발했다. 지나치는 마을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집집마다 좌측이든 우측이든 부경이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그런데 그 이후에 확인한 것은 부경은 고구려의 영토 내에만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고구려의 영토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부경의 모습은 중국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문화의 영속성에 대한 최초의 충격이었다. 1천500여년 전의 고구려가 이렇게 부경으로 살아있다니.나는 심양 근방의 시골 마을로 들어가서 한 중국인 할머니와 인터뷰를 했다. 할머니, 혹시 고구려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칠순에 가까워 보이는 그 할머니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했다. 여기는 우리 땅이 아니야. 바로 고구려 땅이야. 우리가 와서 잠시 빌려서 살고 있을 따름이야. 언젠가 다시 고구려가 돌아오게 될 거야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만주 지역의 많은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은 중국인들의 고구려에 대한 반응이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말하며 무시하려고 했지만 고구려에 대한 그들의 반응 속에서 알 수 없는 고구려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만은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려고 하는 중국인들. 고구려 고주몽이 처음 도읍을 한 환인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왜 그럴까 생각했던 내 의문은 한 중국인 할머니의 대답을 통해 쉽게 풀릴 수 있었다. 고구려는 부경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 나는 전혀 몰랐다. 이미 동북공정 사업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특성화·창의성 교육제도 정착을

우리나라의 교육은 자녀의 안정된 삶과 신분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학부모의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바라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경제적 여건이 되면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고 있다. 영어 한 가지라도 잘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 교육을 위해서 연간 1억 원을 지출할 수 있는 사람은 자녀를 미국이나 영국으로, 그 정도를 지출할 수 없는 학부모는 캐나다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학부모라도 동남아 지역의 외국인 학교로 유학을 보낸다. 인접 국가인 일본과 중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는 학부모도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도 통계를 보면 약 2만7천 명의 초중등 학생이 해외 유학 중에 있고, 자녀 교육 때문에 해외 이주를 한 사람과 조기 유학에 동행한 학부모 수를 모두 합치면 약 4만3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지출하는 경비는 지난해에만 약 44억2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올해 8월까지 지출된 액수는 약 25억2천만 달러로, 한화로 계산하면 4조원에 이른다.상상을 초월하는 유학 경비를 미뤄 알 수 있듯이 어떤 나라가 유학생을 많이 유치하면 외화를 손쉽게 많이 벌어들일 수 있다. 자국의 학생보다 외국인 학생에게 비싼 등록금을 내게 하는 것도 교육산업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수단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선진국은 이미 교육산업을 바이오산업과 함께 미래 주도 산업으로 확정해 놓고 있다. 선진국이 후진국을 향해 교육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일류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대학들이 후진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할 사람들에게 단기 연수를 시켜 동창회의 일원이 되게 해 주면서 동창들 간의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도록 해 자긍심과 함께 협조의 장을 마련해 주고, 모교에 기부금을 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부유한 부모를 가진 대학 지원자가 많은 해외 고등학교에 직원을 파견해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학생을 배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왔다고 하면서 해당 학교를 부추겨 세우고는 더 많은 학생이 지원하도록 독려를 한다.우리는 교육산업에 뒤처져서 더이상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수월성 교육으로 지식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지식정보 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급격한 발전으로 세계가 한 마을이 된 생존 공동체로 변화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글로벌화라고 한다. 글로벌화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예전과는 달리 국제무한경쟁에서 승리하는 초일류 인재다. 그러므로 예전처럼 전과목 우수한 인재보다는 소질을 개발한 특성화된 인재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용화(상품화)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이러한 인재 육성을 위해 35년간 실시된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제도의 탈을 벗어던지고, 특성화된 인재와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담보하는 교육제도를 하루 속히 정착시켜야 한다.각자의 소질이 다르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언어지수나 수학지수에 입각해 인간의 능력을 가늠하던 획일적 수월성 교육에서 벗어나 각자를 초일류가 되게 만드는 수월성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많은 경비를 지출하면서 해외로 유학 나갈 필요가 없어지고, 도리어 유학생을 불러들여 선진국처럼 교육을 교육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조창섭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장

국민소득 3만불시대의 공연예절

지난 5월 초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관람객 한 분이 3살짜리 어린 딸과 함께 마당극을 관람하기 위해 우리 전당을 찾았다. 공연 특성상 8살 이상만 입장이 가능해 아이는 입장이 안된다는 안내 도우미의 설명에도 고집스럽게 입장하려던 이 분은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은 입장이 안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해 달라며 아주 심하게 항의하다 돌아갔다.얼마전 서울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을 보던 중에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관람객이 옆좌석에 앉았는데 이분은 공연 중에도 연신 휴대전화를 켜놓은 상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소곤소곤 목소리를 내며 거리낌 없이 통화까지 하고 있었다.첫 번째 사례의 경우 어린이를 동반한 관객에게 안내 직원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해주지 못한 측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쾌적한 관람 분위기를 위해 정해 놓은 관람 연령을 지켜야 하는 것은 공연장 관람 예절의 기본이다. 물론 대부분의 공연장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를 위해 별도의 놀이방 시설을 설치해 그곳에서 놀게 하고, 안심하고 부모들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자녀가 한두 명밖에 안되니 내 자식에 대해 잘해 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이야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상식에 벗어나면서까지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관객이나 공연장의 입장에서 이런 경우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방안이 있기는 하다. 초기 투자비가 좀 들어가기는 하나, 공연장에 투명유리로 된 관람석을 마련하여 옆 관객에게 피해도 안 주고 어린이나 동반 부모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어린이에게 정서 함양도 되고, 미래 고객 확보도 할 수 있지만, 이는 공연장 측에서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이런 시설이 완비되기까진 서로서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관람예절을 어기는 개인 이기주의는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두 번째 사례로 든 공연 중 휴대전화 사용은 아이와 함께 공연을 보려 항변하는 사례보다 더 못하다고 본다. 좋은 옷에 비싼 악세사리를 걸치고 외모로는 귀부인같아 보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성숙되지 않은 미성년자인 것이다.공연장을 운영관리하다보면 여러 가지 에티켓에 어긋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공연장 내에서 껌을 씹는다든가, 모자를 쓰고 있어 뒷 관객에게 불편을 준다거나, 공연 시작 후 늦게 입장해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을 일어서게 한다든가, 슬리퍼를 신고 온다든가, 지정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좌석에 앉아 버티는 사람,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사람 등 여러 가지 유형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그동안 빠른 경제 발전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코앞에 두고 좋은 집에 고급 승용차를 몰며 자신을 문화인으로 착각하지 말자. 비싼 최고 등급의 오페라 관람석에서 남이야 어떻든 전화통화를 하고, 차 안에서 창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며 새치기를 서슴지 않는 등 여전히 문화적 미성년자들이 너무도 많다.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선진 20개국 대열에 들어가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그 모임이 개최된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선진 국민이 되려면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신문화도 성숙해야 할 것이다.이제 우리 국민도 국제사회에서 이코노믹 애니멀(economic animal)보다 당당히 컬쳐 애니멀(culture animal)로 인정받고 대접받을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특수교육과 넛지

불현듯 리처드 탈러 교수가 쓴 넛지라는 책을 뽑아들었다. 넛지(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주다이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넛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을 유도해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명령이나 지시는 아니다. 인센티브와도 다르다. 넛지는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의 부드러운 기술이다.많은 예가 있다.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던 것,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전구의 색깔이 빨갛게 변하도록 하여 전기소비량을 줄인 것, 쓰레기 무단투기지역에 꽃담장을 조성해 쓰레기를 줄인 것, 냉장고 문에 오목거울을 붙여놓고 실제보다 뚱뚱하게 보이게 해 간식을 꺼내려는 손을 멈추게 하는 것도 넛지를 이용한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성공보다 좌절이 쉬운 장애학생들요즈음 교육현장에서 시행되는 여러가지 바우처제도도 그 일환이라고 본다. 넛지이론의 요체는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방임 또는 강제와 지시에 의한 억압보다 자유주의적인 부드러운 개입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특수교육현장에 근무하는 필자로서는 교육현장의 지도성이 보다 넛지스러워지면 교직원들이 더 편하게 근무하며 아이들을 잘 지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공보다는 좌절과 실패경험이 많은 장애학생들에게 교사주도적인 지시와 강제적인 개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에게 똑똑한 선택과 결정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교육방법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특수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직접적인 지적과 질책은 학생을 오히려 주눅 들게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할 수밖에 없는 긍정적인 행동지원(Positive Behavior Support)을 해야 한다. 부드럽게 유도하는 넛지교육 필요 교직원에 대한 지적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충고는 아무리 옳아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일단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충고의 방법도 슬며시 옆구리를 쿡쿡 찔러 상대방을 알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얼마 전 교직원들에게 질책성 지적을 할 일이 있었다. 마음 속에서는 특수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이 단합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집착하며, 학생들 지도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긴장하여 근무하자 등등이었다.그러나 회의시간에는 점잖게 넛지이론을 소개하며 특수교육현장에서 교직원 간 업무수행에 따르는 갈등요인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넛지적인 방법은 유용하다. 아울러 아동지도에도 온화하고 인간적 면을 강조하는 넛지전략이 장애학생의 성정과 맞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공감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넛지는 교육공학적인 방법면에서 유용할진 몰라도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철학적인 본질은 바로 진정성과 일관된 성실성이지 않을까 한다. 요즈음 엣지(edge)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교육현장을 위시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넛지 전략을 엣지있게 구사하는 것도 한 가지 멋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본다./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문자가 새겨진 유물

발굴을 할 때마다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이번엔 땅 속에서 어떤 유물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난 1983년, 충주댐 수몰 지구에서 발굴된 반달돌칼,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는 그 반달돌칼을 통해 2천5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곳에서 살다가 고인돌에 묻힌 한 할머니의 삶을 가슴에 느끼게 된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굴이 주는 짜릿함은 내가 고고학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고고학을 선택한 지 30여년. 그동안 나는 많은 유물들을 발굴했다. 지금까지 발굴한 유물 중 내게 큰 의미로 남아 있는 것은 글자가 새겨진 유물들이다. 특히, 1990년에 있었던 이성산성의 3차 발굴에서 명문목간이 출토되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戊辰年正月十二日前南漢城道使村主(무진년정월십이일전남한성도사촌주) 이 명문목간은 이성산성을 6세기 중엽에 신라가 쌓았으며, 당시 이성산성의 이름이 남한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올 여름, 연천에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를 발굴하는 도중 상고(相鼓)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편이 출토됐다. 명문이 없었다면 그냥 구멍 뚫린 토기편으로 분류됐겠지만, 토기에 새겨진 상고라는 명문으로 인해 이것이 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고는 발굴에서 출토된 최초의 고구려 악기로 향후 한국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국악박물관에서 복제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고, 진군을 독려하기 위해 전쟁터에 울려 퍼졌을 고구려군의 북소리를 머지않아 들어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금세기 최고의 발굴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령왕릉의 발굴도 무덤 속에 사마왕이라 새겨진 묘지석이 없었더라면,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경주의 황남동 98호분처럼 송산리 7호분으로 불렸을 것이다.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기록 문화유산 중 자국에서 소장하지 않은 것을 지정한 유일한 문화재가 있다. 바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가 그것이다.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신청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직지. 1985년 이전에는 그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1985년 3월1일, 청주에서 고물상을 하는 조모씨가 공사 현장에서 버린 흙더미 속에서 절에서 쓰는 북인 청동금구(靑銅禁口) 한 점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금구에는 흥덕사(興德寺)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관련 학계는 이 소식을 듣고 발칵 뒤집혔다. 흥덕사는 바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 활자보다 63년이나 앞서는 1377년, 불교 서적 직지(直指)가 인쇄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흙을 파낸 장소는 토지공사에서 사업 중인 청주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 현장이었다. 즉각 공사가 중단되고,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사지에서는 금구 외에도 동종, 금강저, 향완, 치미 등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 결국 이 절터는 보존됐고, 그 한쪽에 고인쇄박물관이 건립됐다.이것이 바로 문자의 힘이다. 유물에 새겨진 문자 기록은 유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다.내일은 한글날.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우수한 문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인다는 한글날에 즈음하여 문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국경일인 한글날이 조속히 공휴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푸른 가을 하늘에 띄운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전 토지박물관장

경기도청의 교육국 신설을 환영한다

우리나라를 세계 12대 무역 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한 것은 정부와 기업가의 노력도 컸겠지만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준 교육의 덕분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력 양성에는 학부모의 교육열도 큰 몫을 차지했다.예나 지금이나 자녀를 가진 모든 학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한다. 땅을 일구어 허기진 배를 채우던 옛 시절에는 생계수단이 막연한데도 생산 수단인 소와 땅을 팔아 자녀의 학비를 마련했고, 오늘날에는 단란한 부부생활을 포기하고 자녀의 조기 유학을 주선한다. 이 나라의 부모 된 자는 가난하거나 부유하던 간에 하나같이 자녀의 신분 상승과 안정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이렇게 하여 사회의식화 된 교육열은 한국 교육의 산실이 됐다.교육이 모든 국민의 관심사이며 국가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 공익성을 직시한 대통령은 교육대통령을 자처하기까지 하면서 교육개혁을 내세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교육의 수장 자리에 앉는 사람도 누구나 교육개혁을 내세운다. 그러므로 교육 목표를 위시한 주요한 교육 정책이 중앙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어 교육계로 하달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교육행정이 국가의 통치권 수행의 한 행정 영역으로 자리매김되었을 때 장점도 있었다. 교육활동을 통제하고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어서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교육활동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침해하며 교육정책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단점도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육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중앙 교육 행정기관에 집중시키지 않고 지방교육행정 기관에 분산시켜 학교의 교육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교육지방자치제가 도입됐다. 지도감독을 위주로 했던 교육행정에 지원과 봉사라는 기능이 첨가되면서 교육활동의 효율을 높이게 됐다. 그리하여 중앙교육행정 기관은 국가 차원의 교육 계획 및 정책 수립, 통합과 조정 그리고 재정적 지원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그 외의 제반 교육행정 업무를 지방 교육행정 기관에서 수행하게 됐다.그러나 교육은 공익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교육행정기관에만 맡기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도 교육에 관여하고 개입해 인적물적재정적 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이러한 교육의 공공성 원리에 입각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단체도 각급학교의 시설을 보수해 주고,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주며, 이-러닝(e-Learning)을 실시하는 등의 교육활동 지원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이제 교육은 교육당사자와 교육행정기관뿐만 아니라 각각의 행정기관이 상호 협력하여 육성을 도모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이번에 경기도청에서 교육국을 신설하여 학전 아동의 교육을 지원하고, 직업 전환을 돕는 평생교육을 육성하고, 특성화된 대학을 유치하여 조기 유학이 필요 없는 경기 교육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경기도청이 교육의 공공성 원리에 입각하여 지금까지의 수동적 교육활동 지원에서 소외되었거나 제도권 교육으로 편입하기에는 벅찬 교육부분을 챙겨서 교육활동에 필요한 인적물적재정적 조건을 개선해 주는 적극적 지원을 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자녀의 진로와 안정된 삶을 소망하는 모든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지원을 위한 경기도청의 교육국 신설을 쌍수로 환영해 마지 않는다.

초대권 유감(有感)

초대권이란 공연이나 전시, 운동경기 등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다. 초대권과 관련해서 말하라면 그동안 필자가 지난 71년 이후 공연예술 분야에 종사해 오면서 겪었던 많은 사례만 열거해도 책 한권 분량은 족히 넘을 것이다.그중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사례 한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지난 70년대 초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75년부터 79년까지 5년 동안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낸 고(故) 김성진씨에 관한 이야기다.그 당시만 해도 문화공보부 장관에게는 모든 공연의 초대권 일정매수를 제공해야만 했다. 모든 외국 공연물에 대해서는 문화공보부의 공연허가를 받아야만 한국 공연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그분은 바쁜 공무 일정에도 공연장을 자주 찾아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러나 본인이 부득불 공연장을 찾지 못할 때는 초대권을 그냥 호주머니속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꼭 반납하곤 했다. 본인이 아닌 가족이 관람할 때에는 로얄석에서 일반석으로 좌석등급을 낮춰 교환해 간 것으로 기억된다.처음에는 무슨 사정이 있나 생각 했는데 그 이후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됐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그분의 지위를 생각할 때 고마운 마음과 존경심이 내심 돋아났다. 아직도 그분을 존경하고 초대권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초대권의 귀중함과 고마움을 아는 그분의 일화를 소개하곤 한다.초대권은 받아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더러는 초대권을 받는 것이 마치 본인의 신분 과시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이도 있다. 물론 초대권을 받게되면 기분이 좋고, 예정에도 없던 일정을 바꿔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불필요한 초대권을 요구하거나, 받은 초대권을 남에게 주는 경우를 볼때는 공연관계자 입장에선 난감하기 이를 때 없다.한번 공짜표에 맛들인 사람이면 웬만해선 자기 돈으로 표를 사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장에선 초대권이 당장 객석을 채우는데 도움이 될지언정 장기적으로 건실한 공연장 운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독(毒)이 된다.서울의 한 대형공연장에서 근무하는 지인은 인기공연이 무대에 올라갈 쯤이면 여기저기서 공짜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성가신 청탁으로 아예 휴대폰을 꺼놓을 정도라고 한숨짓는다. 지방 공연장에서 근무하는 또다른 지인은 아예 대놓고 공짜티켓을 요구하는 지역유지들의 상습적인 성화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다행히 필자가 근무하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은 아예 초대권 제도가 없다.그래서 초대권 발행 문제로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다. 그러나 초대권을 한 장도 발행하지 않는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꼭 초대권을 발행 할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외국이나 타 지역에서 그 공연과 관련된 분이 꼭 그 공연을 볼 필요가 있거나, 기록보전이나 공무로 관람을 할 경우, 공연 특성상 좌석변동이 불가피 할 경우 등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공연장에서는 부득이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상용으로 유보해 둔 좌석을 이용하는 유보석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21세기 문화의 화두는 나눔이다. 올 추석부터 과감히 초대권을 사양하고, 자신과 주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공연관람권을 선물해보자. 초대권을 받는 초라한(?) 기쁨보다는 소외계층을 초대하는 더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장애인과 대중문화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몇 편의 영화를 보았다. 오아시스나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등을 보면 종전의 대중문화가 장애인에게 보내던 냉대와 편견, 무시와 무관심에서 이제는 다양한 장애인 주인공들이 한층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보통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와 아울러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질적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으로는 영화와는 달리 실제적인 현실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장애인에게 대중문화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과 사고방식, 즉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부여하는 주요한 소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장애인의 삶에 활력과 행복감을 부여하여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역동성을 부여한다. 아울러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정체성을 확고하게 하여 사회와 완전하게 통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장애인들은 여가선용과 레저 활동의 일환으로 대중문화에 맹목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정체성을 가지고 대중문화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개진되고 있다. 이것은 장애인을 위한, 아니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는 정말 가능한가?하는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장애인들이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비장애인과 동등한 정도의 사회적 위치가 확립되어야 한다. 즉 사회적 위상, 경제적인 여건 등 사회주류층과 대등하거나 동등한 위치가 보장되어야 장애인들이 대중문화의 한 중심이 될 수 있다. 윌리엄스가 지적하듯 문화는 인간이 넉넉한 경제적 토대위에 능동적 실천과정으로 만들어가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희소성과 독특한 가치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장애 자체를 문화적으로 특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위상확보는 장애인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사회통합 및 장애인복지를 위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제도적정책적 지원체계가 갖춰져야 하며, 이를 실제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민사회 전반의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실천적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앞으로 우리나라 장애인 대중문화는 이러한 토대 위에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장애인 특유의 정체성을 함유한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은 대중문화의 한 주체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사람들이 체험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체계와 감정구조의 확대를 통해 대중문화에 역동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얼마 전 수원에서 제 10회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예술제가 열렸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예술제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네팔, 중국 등 12개 나라, 14개 도시에서 온 많은 장애인들이 참가하였는데, 대회기간 동안 장애인들은 원초적인 생명력과 무한한 상상력을 투박한 몸짓과 진솔한 표현으로 자신들의 예술적인 가능성을 거침없이 표출하였다. 이것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장애인 대중문화도 이제는 세계화의 한 흐름을 주도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필자의 지나친 낙관일까? 낙관을 긍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점점 높아져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역사의 운명 바꾼 신라인들의 완벽주의

문화유적 분포지도를 보면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는 300개가 넘는 성곽이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 성들은 쌓은 시기가 각각 다르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라 성이다. 이성산성, 아차산성, 대모산성, 고봉산성, 파사성, 계양산성, 수안산성, 행주산성, 성동리산성, 호암산성, 반월산성, 설봉산성, 설성산성 등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대표하는 산성도 대부분 신라 성들이다. 신라는 6세기 중엽 한강 하류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성을 쌓기 시작하였으며, 7세기 후반 당나라와의 전쟁과 8세기에 발해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이처럼 많은 성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신라성은 남아 있는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돌로 꼼꼼하게 쌓았기 때문에 보존상태도 고구려 성이나 백제 성보다 양호하다. 백제의 판축토성은 흙으로 만든 성이라는 물리적인 한계로 인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성벽이 쉽게 붕괴되었다. 남한지역의 고구려 성의 경우, 석축성일지라도 두 겹 정도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다져서 쌓는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백제의 토성과 마찬가지로 성벽이 쉽게 붕괴되었다.신라인들은 성벽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성의 높이와 같은 너비로 기단부를 넓게 잡았다. 또한 성의 외벽과 내벽은 다듬은 돌로 쌓고, 가운데 부분은 길쭉한 돌로 빈틈없이 쌓아올려 성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다. 외벽에는 보축성벽을 덧대었으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성문을 성벽 위에다 만듦으로써 방어에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였다.신라가 튼튼하게 성을 쌓기 위해 투입한 인력과 비용은 백제나 고구려보다 몇 배나 많았을 것이다. 물자를 운반하거나 성을 드나들 때마다 사다리를 이용해야 하는 것도 많은 불편함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축성에 필요한 엄청난 대가와 출입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다. 성벽의 높이가 무려 20m에 달하는 삼년산성과 먼 곳에서 성돌을 가져다가 옥수수알 모양으로 하나하나 다듬어서 쌓은 이성산성 2차 성벽을 보면 신라인들의 정성과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신라가 이처럼 꼼꼼하게 성을 쌓은 것은 원칙에 철저한 신라인들의 완벽주의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신라에는 대장척당(大匠尺幢)이라고 하는 요즈음의 공병대와 같은 축성부대가 있었다. 신라는 새로운 지역을 점령할 때마다 신속하게 대장척당을 파견하여 성을 쌓도록 하였다. 고대 국가에 있어 점령한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확고히 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중요한 일이 견고한 성을 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아마도 신라인들은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성을 쌓았을 것이다. 이처럼 성을 쌓는 기술 하나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했던 신라인의 삶의 태도를 찾아낼 수 있다. 신라인의 이러한 완벽주의는 삼국 중 가장 열악했던 조건의 신라를 최후의 승자의 자리에 서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신라는 스스로 역사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경상도 사투리 중에 자주 쓰이는 말로, 단디 해라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에 꼼꼼하고 빈틈없이 하라는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은 먼 옛날 산성 쌓는 일을 감독했던 신라의 대장척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신라인의 완벽주의 위에 쌓여진 신라의 성곽은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전혀 없는 삼국 시대 축성 기술의 진수를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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