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의 마케팅

김 세 종다산연구소 연구실장오늘날 산업구조는 날로 치열한 경쟁 가운데, 우리는 그야말로 무한경쟁과 급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따라서 전통음악 또한 시대적 된서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전통과 현대, 왜래음악과 전통음악이라는 문화 충돌뿐만 아니라, 세대 간 음악 감성의 불통은 전통음악의 흐름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변화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음악을 올곧게 지키려는 음악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층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창작활동이다. 이는 동서양의 조화를 이루며 젊은층과 세계를 넘나드는 퓨전국악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러나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특수성은 물론 그 아름다움을 고수하려는 입장은 고루하다는 쓴소리를 면치 못했고, 신선한 아이디어, 창의성이 짙은 음악양식은 국적 없는 새로운 장르란 비평을 감내해야 했다.하지만, 요즘 전통음악계는 이러한 쓴 소리와 비평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해의 풍요 속에 저물어가는 가을을 시샘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북소리 우렁차고, 가야금 소리 감미롭고, 정중동의 호흡에 맞추어 내딛는 춤사위가 현란하다. 분명 공연을 마주할 때마다 순수 전통음악은 시대 변화에 상당히 동떨어져 있고, 창작음악은 마음으로 와 닿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전통음악을 응용한 쇼 같고, 공허한 느낌마저 든다.물론 현대를 사는 우리는 누가 양질의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가가 관건이며, 더불어 글로벌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다. 기술력과 창의력, 개성, 차별화, 다양성 등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핵심 자원으로 떠올랐으며, 산업사회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그린(Green, 친환경), 스마트(Smart, 복잡성을 단순하게 전달), 시큐어(Secure, 모든 영역의 보안)는 셀프 리더쉽(Self-Leadership)에 따른 자기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너도나도 조언하고 있다. 게리 해멀은 경영의 미래라는 책에서 앞으로 기업이 필요로 한 인간의 능력을 열정, 창의성, 추진력, 지성순으로 보고, 근면과 복종은 그 비중이 크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지식이나 상사에 대한 복종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음을 암시하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그러나 전통음악은 시대가 요구하는 빠른 변화의 속도에 발맞춰 갈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탈권위주의 사회, 세계화(Globalization)를 외치며 아무리 개인의 역량과 리더쉽을 중요시여기는 때라 할지라도 전통음악의 급속한 변화는 득실(得失)을 따져 볼 때 실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왜냐하면 전통은 단순히 습속만이 아니라 정신문화와 사상적철학적 의미를 함의한 한 나라의 문화생활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때문에 한번 전통음악의 가치와 개념의 틀이 변하면 전통음악을 토대로 한 창조적 다양성은 물론 우리민족의 음악문화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내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 이 말은 곧, 급변화 사회에서 전통음악을 보존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승하며 나아가야 방향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게 하는 좋은 가르침인 것 같다. 아무튼 전통음악과 창작음악을 조화롭게 아우른 음악사조의 새로운 좌표가 요구되는 때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문화재 반환 함께 나서야

문화재의 고의적인 파괴와 약탈은 인류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이 문제가 강하게 부각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유네스코는 전쟁 및 무력충돌시 피해를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1954년에 전시문화재보호협약(헤이그협약)을 채택한데 이어 1970년에는 문화재의 불법적인 거래와 유통을 막기 위한 문화재 반환협약을 제정해 문화재의 탈법, 불법, 강압적 행위로 원산지에서 이탈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지난 1980년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기초조사와 그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9만여점 이상의 우리 문화재가 일본, 미국 등에 흩어져 있고 이 중 상당수의 유산들이 정상거래에 의한 반출이라기보다는 불법행위로 반출된 것들이다. 이 중에서 일제 강점기 기간 중 일본으로 이전된 수많은 유산들과 19세기 프랑스 극동함대가 강화도에 상륙해 조선군과 전투를 하고 시설을 방화하고 외규장각 도서 등 수 백점의 유산을 가져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이천오층석탑 반가운 소식국제협약은 문화재 약탈과 불법 이전이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범법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문화재 반환이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대영박물관 등 수많은 외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들은 설령 문화재 반환 요청이 있더라도 유품의 완벽한 보전처리가 의심되고 국내법적으로 적법한 보호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유물의 반환에 극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더더욱 그네들은 한 곳에 다양한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 뿐 아니라 인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세계 보편박물관이라고 스스로 지칭하면서 문화재 반환의 논리를 희석시키고 있다.그러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문화재 피탈국가들은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피탈문화재의 반환이 인류문화의 보편성과 윤리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중에 그리스의 유명 여배우이자 문화부장관이었던 멜리나 메로쿠리는 문화재반환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 중 한명이다. 메로쿠리 장관은 대영박물관을 방문해 엘긴 마블은 그리스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녀는 언젠가 돌아올 유물을 위해 파르테논 신전이 조망되는 위치에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건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한국과 프랑스, 일본간 문화재 반환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는 프랑스가 소장중인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문제로 10여년 이상을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일본과는 궁내청(일본 왕실 담당 행정기관) 소장 중인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가지고 막바지 조율을 하고 있다. 또 이와 함께 현재 도쿄 오쿠라 호텔에 가있는 고려 초기 5층 석탑이 잘 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를 위해 이천시는 예술회관 앞 공터에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올 석탑을 위한 장소를 깨끗이 단장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의식있는 시민 헌신적 노력 커사실 문화재 반환의 여러 성공적 사례를 살펴보면 해당 정부기관의 노력보다 의식있는 일반 시민과 단체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은 적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불법 유산의 반환과 상환은 국제법적으로 보거나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정부만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파르테논신전의 엘긴 마블의 반환을 위해 그리스 뿐 아니라 영국내의 여러 시민들과 학자, 문화예술인들도 이의 반환노력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이제 문화교류는 단순히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인류 및 시민사회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 운동의 정당성도 단순교류가 아닌 인류의 당면한 과제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허 권 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랜드마크는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전라남도 광양시에서 주최하는 포럼에 이순신 대교 개통에 따른 효과라는 기조발표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이순신 대교는 다리와 다리 사이의 간격을 의미하는 주경간이 1천554m로 인천대교의 800m보다 거의 2배 정도에 이르며 준공되면 세계에서 4번째 규모가 된다고 한다. 주탑의 높이 또한 270m로 63빌딩의 높이와 자웅을 겨룬다고 한다. 인천대교가 개통할 때 수도권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겼다며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구경하러 갔었다.왜 사람들은 이처럼 거대한 규모, 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또는 가장 긴 등의 수사를 좋아하는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 중 부와 명예에 관한 욕구는 많은 사람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욕구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최고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지만 무엇인가 최고라고 명명되는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최고라고 명명되는 랜드마크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대리만족 원하는 사람들 심리 대변랜드마크는 경계표로, 탐험가나 여행자 등이 특정 지역을 돌아다니던 중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뜻이 더 넓어져 건물이나 상징물, 조형물 등이 어떤 곳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의미를 띨 때 랜드마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인터넷 백과사전은 설명한다.내몽골을 지난 여름에 방문했다. 일행과 함께 비교적 높은 구릉지에 있는 오보에 도달하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오보는 신성시되는 산 위나 호수강가, 목지수렵지의 경계가 되는 산강고개길 등의 근처와, 라마교 사원의 경내 등에 축조된다. 오보는 행인들이 지나칠 때 공물을 바치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정표나 경계표가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랜드마크다. 오보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 천 하닥이 매달려 있고, 오색의 룽다가 주위에 펄럭인다.몽골인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랜드마크는 하늘과 교감하는 곳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 경계석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요즘의 랜드마크는 단순히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유명해져야하고 그 유명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한다. 뉴욕의 자유여신상,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로세움, 런던의 타워브리지, 북경의 천안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은 전형적인 랜드마크며 관광목적지다.편안행복하게 해주는 공간 돼야그러나 요즘 들어 세계 최고,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두바이의 6성급 호텔 버즈알아랍이나, 브르즈두바이가 전형적인 예다. 우리나라도 이에 질세라 초고층 건물들이 앞 다투어 건설될 예정이다. 최종 건축여부는 미지수지만 151층 높이의 인천타워, 133층 높이의 상암 DMC의 서울라이트, 용산국제업무지구에는 100층 높이의 랜드마크 빌딩을 중심으로 40층 이상 건축물만 19개가 들어선다고 한다.최근 성황리에 마친 슈퍼스타 코리아 2 선발대회에서 한국판 폴포츠라 불리는 허각이 최종 우승자가 됐다. 극적인 감동의 핵심은 진정성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래 실력이 있었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 높이의 랜드마크, 최대 규모의 랜드마크도 좋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여밀 수 있는 그런 공간, 사람을 기분 좋게 행복하게 해주는 휴먼스케일의 랜드마크가 경기도에 많아지면 어떨까? 경기도의 랜드마크는 크지 않습니다. 높지 않습니다. 휴먼 스케일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행복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답이 가능한 경기도가 되면 좋겠다. 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경기대 교수

친절 문화에 대하여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관공서 등의 기관이나 회사 등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면 언짢게 통화를 마치는 경우가 꽤 있다. 가벼운 말다툼을 벌이게 될 때도 자주 있다. 그래서 급기야 좀 친절하게 대할 수 없냐고 따져 물으면, 인원이 모자라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이런 전화를 받아서 짜증이 안날 수 없다는 식의 대답을 하고 오히려 거꾸로 이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업무여건이 불비한 것은 업무처리의 지연과 비능률화를 변호해 줄 수는 있지만, 불친절을 정당화시켜 줄 수는 없다. 이러이러하다면 내가 친절할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친절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식의 논리는 정당하지 않다. 친절을 베푸는 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설령 내가 베푼 친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느낌이 들어도 서운해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 사랑이 실패하더라도 내게는 최고의 기쁨으로 남게 되듯이, 친절도 그러한 것이다. 또한 베푼 친절에 대해 어떠한 반대급부를 바래서도 안될 것이다. 친절의 대가는 다만, 친절을 베푼 뒤 생기는 훈훈한 마음, 즉 자기 만족과 또 다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더 큰 관용의 생성일 뿐이다.친절 베푸는데 조건 있어선 안돼이같은 친절의 조건화와 함께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친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친절의 2원화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친절을 아랫사람, 대민부서 직원, 영업직 종사자, 판매직 종사자 등에만 요구되는 덕목으로 개념화해서 소위 윗사람이나 경영자, 관리부서 직원 등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거나 적어도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그래서 평사원은 친절한데 임원이나 사장은 불친절한 경우, 또 대민부서 공무원은 친절한데 상급직 공무원은 불친절하거나 때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를 우리는 별로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회가 오랫동안 계층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해 왔고 그 틀 내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친절이란 근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이는 종국적으로 사회적 질서 구현을 위한 최상의 수단이기 때문에 신분과 직위 따위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친절의 상품화, 즉 마음에 없는 친절, 상품으로서의 친절이다. 90도에 가까운 절을 하고 애써 웃는 웃음을 짓지만 물건을 사지 않으면 태도가 달라지는 판매원을 많이 본다. 서비스 업종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아예 손님에게 불친절한 경우도 많이 있다. 조금 기분 나쁘면,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줄 아느냐?하는 식의 태도와 표정을 보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직업의 귀천이 뿌리 깊은 우리의 의식구조 때문이겠지만, 이것은 외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우리의 고질병 중에 하나인 것 같다.우리의 친절문화 다시 생각할 때친절이 상품화되어서 파생되는 왜곡된 인식이 또 하나 있는데, 친절이 서비스업소 종사자들에게만 부과되는 덕목이고, 손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인식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구호 아래 손님은 종업원에게 함부로 하는 사례가 많이 있는 것이다. 친절에 손님이 성역이 될 수 없다. 친절이란, 두 사람 사이의 예의다. 친절이란 두 사람이 대화를 해나가기 위한 틀이지,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손님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친절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것의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우리의 친절문화,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일본이 동경올림픽 전 해인 1963년에 작은 친절운동을 벌인 뒤 친절한 국민으로서의 세계적인 명성을 갖추었듯이. 박만규 아주대 불문학과 교수

축제와 소음

이 세상에 조용한 축제는 없다. 민족과 국가, 지역에 따라 인류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축제를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한결같이 시끄럽다. 왁자지껄, 야단법석, 시끌벅적 이렇게 표현하면 적당할까. 좀 더 정도가 심하면 광란의 상태가 된다. 외국의 어떤 축제들은 사람이 다치고 기물이 파손되고 심지어는 죽는 사람도 속출한다. 카오스의 세계다. 한편, 축제 속의 인간들이 세상의 허울과 위선을 벗어 버리고 억눌렸던 에너지를 발산한다면, 일상 속의 인간들은 철저히 질서와 규범 속에서 살아간다.필자가 사는 아파트에 간곡한 어조의 안내문이 붙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을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으니 다시 한 번 주의를 당부하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그 중 두 가지가 아파트 생활을 어렵게 느끼게 하고 단독 주택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들이었다. 오전 9시 이전 또는 오후 9시 이후에 소음을 내지 않도록 주의할 것, 실내(계단, 복도/세대 내 화장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 등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꼭 지켜야 할 덕목이지만 쉽지 않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마음 편히 음악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마음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른 이웃의 편안한 휴식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집 베란다뿐만 아니라 화장실에서조차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우기도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까.일상서 벗어나 에너지 발산 기회우리의 일상이란 늘 이렇다.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우리의 일상은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정상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질서와 합리적 연속성을 지니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서 함께 살기 어렵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가기 싫은 곳에도 가고 먹고 싶지 않은 것도 때로는 함께 먹어야 한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게임의 원칙에 따라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속도를 요구한다. 한국 사회의 빨리 빨리는 경쟁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위기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의 일상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힘든 일상만 이어진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기만의 빛깔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발산하려고 하는데 현실의 질서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일상을 벗어나는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긴장구속 털어내고 활력 재충전축제는 이러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느림의 미학이고 휴식이다. 잠시 가두어 놓았던 생명의 활달함을 꺼내어 확인하는 일이다.잠시 일상의 무한궤도를 벗어나 긴장과 구속을 털어버리고 자기 본래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해버리는 축제는 다시 일상의 삶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저마다의 목소리로 한껏 떠들며 즐기니 축제는 조용하지 않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걸음걸이로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수원을 대표하는 여름철 수원화성국제연극제도 끝났고 지난 일요일에 수원화성문화제도 막을 내렸다. 축제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축제를 치루면서 많은 소음들이 발생했다. 쉬고 싶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도 생기고 그래서 이런저런 불만도 듣게 된다. 불편을 감수해 준 시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그러나 이 소음은 저마다 살아 있다는 활어시장의 싱싱한 생명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서 다시 일상의 질서로 돌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해준다. 축제가 소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의미와 내용은 생산적이다. 소음을 감수하면서 축제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 내년에는 더욱 풍성한 축제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극장경영학과 교수

노랫말의 유래와 단가

한국음악 중 노랫말을 중심으로 한 악곡에는 시조와 가곡 같이 짧은 노랫말도, 판소리와 무가, 가사(歌辭)와 별곡(別曲같이 긴 노랫말도 있다. 흔히 긴 것을 장가(長歌), 짧은 것을 단가(短歌)라 한다.원래 노래곡의 노랫말은 각 지방의 민요에 도태를 두고 있다. 그 옛날 시경(詩經)의 제작이 그러했듯이 채집된 민요는 민심을 살피고 정치의 잘잘못을 헤아리는 길잡이었으며, 여기에 시로써 품격을 갖춘 노랫말들은 백성과 군주를 하나로 묶는 동화(同化)를 뜻한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옛날에 채시관이 있었는데 임금은 풍속을 살피고 득실을 알아 스스로 바로 잡았다.(古有采詩之官, 王者所以觀風俗, 知得矣, 自考正也)하고, 예기(禮記) 왕제편(王制篇)에는 천자가 5년에 한번씩 순수를 하고-(중략)-태사에게 시를 찬술하게 하여 민풍을 살폈다.(五年一巡狩-(中略)-命太師陳詩以觀民風)하고, 국어(國語) 주어(周語)에는 옛날 천자가 정사를 들을 때 공경이하 여러 관원들에게 시를 지어 바치게 하였다.(古天子聽政, 使公卿至於列士獻詩)는 문헌기록 또한 민심을 시로 표현하고 시를 노랫말로 표상한 행간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유풍은 이후 한무제 때에 악부(樂府)가 설치되고, 이 악부에서 채록한 시가를 악부시가(樂府詩歌) 또는 악부라고 부르는데, 악부에 오른 민요시는 관현에 올려져 주로 궁중 연회(宴會), 제사(祭祀), 조회(朝會) 등에서 부른 노랫말로 삼았다.민요는 민심의 시대적 흐름 보여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악부의 영향을 받은 듯한데, 고려시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소악부(小樂府) 11수와 민사평(閔思平, 1295~1359)의 6수에서 처음 살펴진다. 곧, 우리말 노래를 7언 절구의 한시로 옮겨놓은 것으로 당시의 민요이다. 그러므로 악부시는 주로 백성의 삶, 부녀(婦女)의 정, 인정세태, 전설, 충신연주지정(忠臣戀主之情), 효심, 세상사의 덧없음, 벼슬길에 당하는 위난을 읊는 등 민요나 속요를 다채롭게 엮은 것이어서 민심의 시대적 흐름에 따르는 사회적 동인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음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악부시는 조선 후기 17~19세기에 이르러 지식층에 의해 관심이 고조되면서 다양한 노랫말들이 창작되었다. 당시 잘 알려진 악부시로는 동국악부(東國樂府)해동악부(海東樂府)영사악부(詠史樂府)기속악부(紀俗樂府) 등에서 역사와 풍속, 세태를 풍자한 노랫말을 살필 수 있다.단가 형식 노랫말 사라져가 아쉬워한편, 이때에는 판소리와 같이 긴 노랫말이 아닌 서정적 감흥을 노래한 비교적 짧은 노랫말도 유행하였다. 이러한 노랫말은 17~18세기 흥행하던 판소리와 융합되면서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관중들의 흥과 기대감을 돋우고, 창자의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서 부르는 짧은 노래 즉 단가 다른 말로는 영산(靈山), 허두가(虛頭歌)라 부르게 되면서 요즘은 단가하면 으레껏 판소리 전에 부르는 짧은 서정 노래로 분류하고 있다.그러나 요즘에는 단가 형식의 노랫말을 짓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옛 악부시의 흥취를 전달할 소리꾼도 그리 많치 않아 아쉬움만 앞설 따름인데, 학문이 얕고 재주가 변변치 않은 필자로써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사라져가는 악부시의 문학적 한 일면을 더듬어 그 유풍을 따라보려는 마음에서 우리네 심성의 아름다움과 사물에서 느끼는 감성을 노랫말로 짓는 새 바람이 일었으면 한다. 김세종 다산연구소 연구실장

노랫말의 유래와 단가

한국음악 중 노랫말을 중심으로 한 악곡에는 시조와 가곡 같이 짧은 노랫말도, 판소리와 무가, 가사(歌辭)와 별곡(別曲같이 긴 노랫말도 있다. 흔히 긴 것을 장가(長歌), 짧은 것을 단가(短歌)라 한다.원래 노래곡의 노랫말은 각 지방의 민요에 도태를 두고 있다. 그 옛날 시경(詩經)의 제작이 그러했듯이 채집된 민요는 민심을 살피고 정치의 잘잘못을 헤아리는 길잡이었으며, 여기에 시로써 품격을 갖춘 노랫말들은 백성과 군주를 하나로 묶는 동화(同化)를 뜻한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옛날에 채시관이 있었는데 임금은 풍속을 살피고 득실을 알아 스스로 바로 잡았다.(古有采詩之官, 王者所以觀風俗, 知得矣, 自考正也)하고, 예기(禮記) 왕제편(王制篇)에는 천자가 5년에 한번씩 순수를 하고-(중략)-태사에게 시를 찬술하게 하여 민풍을 살폈다.(五年一巡狩-(中略)-命太師陳詩以觀民風)하고, 국어(國語) 주어(周語)에는 옛날 천자가 정사를 들을 때 공경이하 여러 관원들에게 시를 지어 바치게 하였다.(古天子聽政, 使公卿至於列士獻詩)는 문헌기록 또한 민심을 시로 표현하고 시를 노랫말로 표상한 행간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유풍은 이후 한무제 때에 악부(樂府)가 설치되고, 이 악부에서 채록한 시가를 악부시가(樂府詩歌) 또는 악부라고 부르는데, 악부에 오른 민요시는 관현에 올려져 주로 궁중 연회(宴會), 제사(祭祀), 조회(朝會) 등에서 부른 노랫말로 삼았다.민요는 민심의 시대적 흐름 보여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악부의 영향을 받은 듯한데, 고려시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소악부(小樂府) 11수와 민사평(閔思平, 1295~1359)의 6수에서 처음 살펴진다. 곧, 우리말 노래를 7언 절구의 한시로 옮겨놓은 것으로 당시의 민요이다. 그러므로 악부시는 주로 백성의 삶, 부녀(婦女)의 정, 인정세태, 전설, 충신연주지정(忠臣戀主之情), 효심, 세상사의 덧없음, 벼슬길에 당하는 위난을 읊는 등 민요나 속요를 다채롭게 엮은 것이어서 민심의 시대적 흐름에 따르는 사회적 동인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음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악부시는 조선 후기 17~19세기에 이르러 지식층에 의해 관심이 고조되면서 다양한 노랫말들이 창작되었다. 당시 잘 알려진 악부시로는 동국악부(東國樂府)해동악부(海東樂府)영사악부(詠史樂府)기속악부(紀俗樂府) 등에서 역사와 풍속, 세태를 풍자한 노랫말을 살필 수 있다.한편, 이때에는 판소리와 같이 긴 노랫말이 아닌 서정적 감흥을 노래한 비교적 짧은 노랫말도 유행하였다. 이러한 노랫말은 17~18세기 흥행하던 판소리와 융합되면서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관중들의 흥과 기대감을 돋우고, 창자의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서 부르는 짧은 노래 즉 단가 다른 말로는 영산(靈山), 허두가(虛頭歌)라 부르게 되면서 요즘은 단가하면 으레껏 판소리 전에 부르는 짧은 서정 노래로 분류하고 있다.단가 형식 노랫말 사라져가 아쉬워그러나 요즘에는 단가 형식의 노랫말을 짓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옛 악부시의 흥취를 전달할 소리꾼도 그리 많치 않아 아쉬움만 앞설 따름인데, 학문이 얕고 재주가 변변치 않은 필자로써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사라져가는 악부시의 문학적 한 일면을 더듬어 그 유풍을 따라보려는 마음에서 우리네 심성의 아름다움과 사물에서 느끼는 감성을 노랫말로 짓는 새 바람이 일었으면 한다. 김 세 종 다산연구소 연구실장

문화의 시대 속 문화 일자리 빈곤

허 권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지난 7월 중순 유네스코가 한국의 서울과 이천을 세계창의도시의 하나로 지정했다는 낭보가 들어왔다. 그동안 별 다른 문화소식이 없는 상황에서 유네스코에서 날아 온 낭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유네스코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전 세계 도시의 문화역량을 강화하고, 문화산업을 도시 차원에서 발전시키기 위해 2004년부터 시작한 문화도시 사업에 베를린, 에딘버러, 가나자와 등에 이어 우리의 도시들이 처음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서울은 디자인 분야로, 이천은 민속문화 및 공예분야로 선정됨으로써 이 도시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창의도시로서 문화적 역량을 한층 더 공고화할 뿐만 아니라,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전 세계 여타 도시들의 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오늘날 문화는 신 성장동력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고부가가치의 창출과 고용증대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들이 지역의 문화자원을 집중 개발하고 시설을 확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의 현 모습은 여전히 문화를 행정의 일개 분야로 치부하고 도시의 외관을 장식하는 부속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도시의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반시설 구축과 함께 이를 운영할 고도의 숙련된 문화인력들이 곳곳에서 창의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시설에 대한 투자보다는 인적자원의 양성이 급선무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문화예술의 주요 거점 도시들은 전통문화와 함께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수많은 장인들과 예술가, 기획자들이 최대한 역량을 구가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오늘날, 문화의 경제적 유용성, 특히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의 급증과 문화산업의 기대감 고조로 많은 젊은 세대들이 문화콘텐츠 분야로 수용되고 있으며, 시장도 날로 커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부응해 2000년 문화콘텐츠 유관 학과가 67개에 불과했지만 2008년 조사에 의하면 그 숫자가 1천325개로 증가했고 매년 4~5만 명의 졸업생들이 배출되는 양적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문화의 신 성장동력화, 문화대표도시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동안 중앙과 지방정부는 지역 문화역량의 강화정책을 수립하면서 문화와 경제, 문화와 발전을 연계시키고자 했으나 문화시장의 유동성과 성장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아주 소수의 신규인력만이 지역의 문화산업체에 고용될 뿐이다. 그것도 정규직 채용보다는 인턴, 계약직, 프로젝트 참여 등 단기성 채용으로 이 분야의 고용 불안정이 상대적으로 다른 산업분야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물론 지역의 문화성장을 이끌 인력의 배출은 고등교육기관의 몫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산업체들은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창의적 고급 인력의 양성을 강력히 요구하였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고등교육기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사실은 인력의 양성보다는 학교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일할 자리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문화분야의 일자리 여건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정부의 문화분야 인력정책이 신규 인력을 길러내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지, 실제 안정적 재직 유도에는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진정 새로운 문화시대를 열 시대정신을 수용하고 지역의 문화성장력을 배양하려면 무엇보다도 문화인력시장의 고용상황을 점검하고 창의성, 전문성을 갖춘 고급인력들이 지역발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의 개선에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단계이다.

‘인상서호(印象西湖)’와 수원 화성

여행 가방을 여니 인상서호라고 적힌 부채가 눈에 띈다. 지난 8월 제4차 한중일 관광장관회의에 참가 차, 중국 항조우에 다녀올 때 기념품으로 받은 선물이다. 부채 전면에 한자로 인상서호라는 글씨가 있고 뒷면에 인상서호를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시우호(西湖)에 전래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붉은 수수밭과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장예모 감독이 만남, 사랑, 이별, 추억, 인상의 5부작으로 구성된 인상서호를 시우호에서 연출하고 있다. 전래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시우호 인근에 사는 청년 허선이 성묘 후 배를 타고 건너던 중 백랑이라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백랑은 천년 묵은 뱀이 변신한 여인이다. 관음보살로부터 8방울의 눈물을 얻으면 신선이 된다는 말을 듣고, 7방울의 눈물을 찾아 항조우를 찾던 중 허선을 만난 것이다. 금산사 법해선사의 도력으로 백랑은 원래의 모습인 뱀으로 변신한다. 허선은 백랑을 피해 법해 선산에게 몸을 의탁한다.아름다운 자연은 훌륭한 자원허선을 구하기 위해 백랑은 법해선사에게 무릎을 끓고 빌지만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백랑은 허선을 구할 목적으로 시우호의 물로 금산사를 물바다로 만들며 법해 선사와 겨루지만 지고 만다. 꿈속에서 백랑의 진심을 알게 된 허선은 백랑과 시우호 단교정에서 재회하고 아이를 낳는다. 법해 스님은 뱀이 인간과 사랑을 나누어 아이를 낳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백랑을 뇌봉탑에 가두고 탑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977년에 건립된 뇌봉탑은 오랜 풍화침식으로 약해진다. 신해혁명 후 뇌봉탑의 벽돌이 귀신을 쫓거나 아들을 낳게 하는데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탑의 벽돌을 빼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1924년 9월 천년을 버티던 뇌봉탑이 무너진다. 뇌봉탑이 무너진 후 백랑의 눈물인지 반짝이는 7개의 명주가 나왔다고 한다. 허선과 백랑의 이야기는 서극 감독이 연출하고 왕조현이 출현했던 영화 청사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장예모 감독은 시우호에 전래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400여 명의 지역민이 참가하는 인상서호라는 초대형 수상극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다.자연과 문화 그리고 관광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한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요즘 한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뉴욕에서 막을 내리기 전 미스 사이공은 뉴요커는 물론이고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인기 있는 문화 관광 상품 중 하나였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난타, 점프 등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콘텐츠다.문화상품은 최고의 관광상품중국 항조우의 시화호에서 개최되는 인상서호와 뉴욕에서 공연됐던 미스사이공은 공통의 키워드가 있다.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문화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화성에서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문화축제를 한다. 그러나 이 축제를 보려고 찾는 국내외 관광객의 수는 많지 않다.수원 화성과 같이 세계적인 문화자원을 갖고 있는 경기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경기도의 문화가 더 큰 꽃을 피우고, 국내외 관광객이 주목하는 관광 목적지가 될지, 문화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이며, 삶의 궤적이다. 풍요로운 문화는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와 연계된 문화상품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인상서호 글자가 적힌 부채를 펴면서 화두를 마음에 담는다. 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ㆍ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디스커버리 인질극과 다문화 사회

지난 1일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리가 워싱턴 인근의 디스커버리 채널 방송국 본사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즉각적으로 2007년 4월 역시 한국계 조승희 학생에 의해 저질러졌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언론에서 크게 보도했고 한국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면서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조승희 사건에 비해 단순히 사실보도만 이뤄졌고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다.왜일까? 우선 32명이 목숨을 잃고 29명이 부상을 입은 커다란 참화였던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 비해 이번 사건에서는 당사자가 저격되어 죽었을 뿐 인질들은 무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비록 조승희가 미국 영주권자이긴 해도 국적은 대한민국이었던 반면 제임스 리는 국적이 미국이었던 차이도 작용했으리라.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사건이 여전히 한국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유럽계 이민에 비해 역사도 짧고 인구도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국계라는 점이 중요한 사유의 대상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21세기 들어 다문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핏줄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버지니아 공대 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사과를 해야 한다는 여론과 미국인들은 한국민이 원인 제공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첨예하게 부딪쳤던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애도와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대한 반론이 많았지만, 그 반론들이 내겐 두 개의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편리한 대로 들이대는 이중적 태도를 투영하는 것 같아 매우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있기 얼마 전인 2006년 미식축구 수퍼볼의 스타였던 한국계 미국인 하인즈 워드를 마치 우리나라 사람인 양 영웅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온전히 한국인의 후손도 아니고 한국인 어머니의 피를 받은 혼혈인이었으며 국적도 미국인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국적도 한국인이고 이민 1.5세였던 조승희의 경우와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포츠 스타에게는 한민족의 자격을 부여하며 자랑을 했고, 나쁜 일은 한 살인자는 우리 민족의 후손이 아니라는 듯이 외면하려는 논리였던 것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적어도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우리나라는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쌀이 한 반도의 주식으로 정해지면서 우리 사회는 정착사회를 이루었다. 쌀농사는 지역 공동체의 협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의 정에 기초한 사회가 되었고, 혈연, 지연, 학연이 중요한 동력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반면에 유럽과 미국은 많은 민족들이 이합집산을 하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하는 이민사회를 이루었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자니 자연히 합리성과 법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었다.이제 우리도 외국인이 120만명을 돌파하여 바야흐로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도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에 더 이상 매몰되지 말고 세계시민으로서 열린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바람직한 형태의 다문화 사회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친 혈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공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동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대우 등의 소식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이제 제임스 리 사건이나 조승희 사건, 그리고 하인즈 워드 현상 등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만 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시민들과 함께 꿈꾸는 연극축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연예술축제인 수원화성연극제가 지난 8월14일 개막해 22일까지 화성행궁 광장을 비롯해 모두 5개의 공연장에서 시민들의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러시아, 체코, 이스라엘, 일본 등 5개국에서 18개의 초청작과 수원시민 배우들로 구성된 7개의 시민공동체연극 등의 작품들이었다. 무엇보다 올해 프로그램의 특징은 시민들이 연극제의 중심에 서서 함께 참여하고 연극제를 만들어가는 시민공동체연극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연극제의 주제도 이에 어울리게 시민들이 즐거운 연극축제 연극, 시민낙락(演劇, 市民樂樂)이라고 내걸고 축제 프로그램의 구성과 홍보도 같은 틀에서 진행했다.시민연극공동체의 확산을 위해 개막공연에는 시민 100여명이 함께 참여해 한바탕 대동놀이를 연출했고, 연극제 기간 중에 시민연극을 별도의 축제 프로그램으로 기획해 어린이 연극워크숍, 시민배우들을 공모하여 제작하는 시민연극교실, 학부모들로 구성된 인형극단, 청소년, 초등학교, 다문화 연극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연극제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일상과 연극의 결합을 통해 시민들이 연극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가도록 축제가 역할을 한 것이다.시민과 호흡한 수원화성연극제이러한 변화는 연극제가 누구를 위한 축제가 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며, 연극의 관객개발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체험과 교육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연극제의 비전이 돼야 한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시민연극교실, 시민배우활동 교육과 지원, 어린이 연극아카데미, 각종 연극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과의 연계, 시민연극 활동을 적극적으로 연극제에 참여시킴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다.연극의 저변확대와 관객개발은 연극시장의 여건을 좋아지게 한다. 연극이 다루고 있는 소재와 본질은 인간들의 삶과 역사를 새롭게 살펴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연극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고, 왜곡되어 있는 사람과 사회, 그리고 역사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그러한 이야기는 삶의 진정성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연극의 진정성이야말로 문화의 차이와 역사적 시공을 넘어서 아직도 유효한 의미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공동체연극은 시민들의 삶에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 변화를 가져다준다.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며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도 만들 수가 있다. 이로 인해 연극배우와 극단에게도 자극과 활력소가 되고, 연극문화 전반에 걸친 발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가 있다. 시민공동체연극이 중요한 이유다.시민공동체 연극 활성화 됐으면시민들에게 연극이 1년에 한번 치루는 행사가 아닌 자신들의 삶과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는 일상이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또 누구나 참가 할 수 있는 친근한 프로그램과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연극발전을 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연극이 시민들에게 좀 만만해져야 한다. 개혁군주 정조가 실사구시와 실용주의의 결집인 화성을 축성하면서 상하동락(上下同樂)의 새로운 문명세계를 꿈꾸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수원화성에서 펼쳐지는 연극축제를 통해 꿈꿔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 꿈이 시민들이 즐거운 연극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시민들은 연극제가 반갑고 연극제는 시민들이 반가운 수원화성국제연극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시민들과 함께 꾸는 필자의 꿈이다. 김동언 경희대 극장경영학과 교수

문화산업, ‘일거다득’ 마케팅 시대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변장자(辨莊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 번은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장검을 챙겨 산으로 호랑이를 잡으러 올라갔다. 호랑이 두 마리가 소 한 마리를 두고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 거리며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변장자가 이를 잡으려하자 뒤에 있던 아이가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는 중인데 결국 힘이 약한 호랑이는 힘센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될 것이고, 힘센 호랑이도 격렬한 싸움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기진맥진해질 것이니, 바로 이때를 기다려 상처 입은 호랑이를 잡게 되면 두 마리를 다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변장자는 호랑이들이 싸우는 추이를 지켜보다가 상처 입은 호랑이를 잡아 결국은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일거양득(一擧兩得)이란 바로 이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하나의 소재로 다양한 상품 개발그러나 요즘은 일거양득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일거다득(一擧多得) 즉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의 시대로 발전했다.이는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얻는 마케팅 전략으로, 문화산업재의 온라인화와 디지털 콘텐츠화가 급진전되면서 각 문화상품의 장르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매체 간 이동이 용이해 짐에 따라 하나의 소재(one source)로 다양한 상품(multi-use)을 개발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하는 전략을 말한다.이와 같은 전략은 미국에서 1930년대에 신문만화로 시작해서 TV시리즈로 방영되고,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90년대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아담스 패밀리에서 초기 전형으로 찾아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아기공룡 둘리가 만화로 시작해 TV 및 극장용 애니메이션, 뮤지컬, 게임, 교육용 비디오 및 많은 캐릭터 상품으로 나온 것도 좋은 본보기다.특히 국산 토종 캐릭터인 뽀로로는 이미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돼 4천여억원을 벌어 들였으며, 유아용 애니메이션, 완구, 동화책, 만화영화, 식품, 의류 등 16개 분야에서 6만개 이상의 각종 상품이 개발돼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근래에는 창구효과가 큰 문화산업의 특성에 맞춰 아예 기획 단계부터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개발 등을 목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하나의 인기 소재만 있으면 추가적인 비용을 최소화 하면서 다른 상품으로 전환해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관련 상품과 매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저렴한 마케팅 및 홍보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비용 최소화로 효과 높아 각광이같은 원 소스 멀티 유스의 효과는 열린 사고와 발상의 전환만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안산은 조선 후기 정조시대의 유명한 학자이자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자란 곳이다. 그래서 단원구가 있고 단원경찰서, 단원미술관이 있으며 단원예술제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차제에 시민이 일구는 문화도시라면 단원광장, 단원로, 단원호수, 단원역, 단원문화예술의전당 등 공공시설물에 널리 활용하고, 더 나아가 안산시 명칭도 단원시로 바꾸어 단원 생가복원, 단원박물관 건립, 단원관련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영화, 연극 등 문화상품에도 적용하여 명실공히 단원이라는 원 소스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도시의 네임 벨류(Name value)를 높임은 물론 시민의 자긍심을 갖게 함으로써,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흔들리는 러브체인

얼마 전에 한 지인으로부터 러브체인 화분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언젠가 탐스럽게 잘 자란 러브체인 화분을 보고 참 잘 키웠구나 하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잘 가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집을 떠나 연수를 다녀오게 됐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잎들이 몰라볼 정도로 잘 자라고 있었다. 긴 줄기들이 서로 엉켜 글자 그대로 체인을 이루고 각 잎들은 초록의 때깔을 마음껏 뽐냈다. 그러나 서로 엉킨 모습이 안쓰럽고 보기 좋지 않아 엉킨 줄기들을 실타래 풀듯이 하나하나 손으로 정리해 갔다. 그런데 줄기들은 떨어지기 싫은 듯 서로 꽉 붙들고 엉켜 있어서 나누기가 어려웠다. 억지로 나누는 중에 몇 개는 실수로 끊어지고 말았다. 나는 안타까웠지만 작업을 계속했다. 꽃이야 아파하든 말든 나 몰라라 하고 줄기 몇 개를 잡고 위에서 손사래치듯 설렁설렁 흔드니 엉킨 체인들이 모두 잘 풀어졌다.문득 오규원의 만물은 흔들리면서라는 시가 생각났다.엉키며 자연스레 자라는 러브체인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 튼튼한 줄기를 얻고 /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 살아 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 바람은 오늘도 분다 / 수많은 잎은 제각기 / 잎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 들판의 슬픔 들판의 고독 들판의 고통 / 그리고 들판의 말똥도 / 다른 곳에서 / 각각 자기와 만나고 있다 / 피하지 마라 / 빈 들에 가서 비로소 깨닫는 그것 /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나는 긴 러브체인을 가지런히 흔들다가 오규원의 시처럼 만물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그 바람은 누구에게나 분다.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리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흔들리면서 커간다고 마구 꽃줄기들을 흔든 나의 생각이 거칠었다고 생각됐다. 원래 러브체인들은 서로 엉켜 가면서 이리저리 꼬이기도 하며 사이좋게, 아니면 다투어 가면서 자라는 게 그들의 모습이라고 보는데, 인간인 내가 일방적으로 나 보기 좋으라고 가지런히 정리한 것이 아닌가. 그냥 있는 그대로 자라게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생 자체에 있지 않은가.장애학생도 고유 개성 중시 교육을요즈음 특수교육현장에서는 장애학생이 사회구성원으로 바람직하게 살아가기 위해 통합교육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교육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어 통합교육의 필요성은 거의 당위처럼 들린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은 서로 엉켜서 살아가는 러브체인들이다.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요구와 개성이 있으며 고유한 자아와 삶이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흔들리면서 줄기를 내린다. 우리가 이들의 고유한 개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통합교육이 좋다고 일방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 흔들리며 자라가는 꽃들을 억지로 풀고 가지런히 만드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학생들에게 주어진 통합교육의 현장이 또 다른 상처를 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사 중심의 일방적인 교육에 그들의 자아가 다치지는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더디지만 자유롭게 잘 자라고 있는 꽃들을 흔들다가 줄기를 뚝뚝 꺾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장애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그냥 내버려 둬도 어떤 형태로든 성장하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흔들리며 보여주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는 제각기 잎을 엮어가는 이들과 함께 들판의 자유로운 바람을 가슴으로 크게 맞이하면 된다. 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외설(猥褻)과 예술(藝術)

지난 85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문화예술계를 돌아볼 기회가 있어서 한 달여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주로 공연장과 미술관, 박물관 등을 방문했고 저녁에는 거의 매일 각 장르의 공연을 관람했다. 뉴욕에서는 미 국무성 문화담당관의 권유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오! 칼카타(Oh! Calcata)를 봤다. 그렇지 않아도 이 뮤지컬이 예술인지 외설인지를 두고 국내 언론을 통해 자주 논란이 있어 궁금하기도 한 참이었다.15년 동안이나 롱런을 하고 90년대 초에 막을 내린 오 칼카타는 남녀 8명의 연기자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떠들며 춤과 노래로 다소 퇴폐적으로까지 보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단지 벌거벗은 남녀 배우를 생전 처음 보았다는 것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나체공연도 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객석은 만원이었고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만 했다.우리는 어떤가? 작년 말 화제가 됐던 연극 교수와 여제자와 금년 전반기에 개막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와 여제자는 40대 대학교수가 젊은 여제자를 통해 성적 장애를 극복한다는 내용으로, 파격적인 성행위와 대사로 30세 이상에게만 입장을 허용한 대학로 연극 최초의 전라연기로 한 공연이다.필자는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겁던 지난 6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관람하게 됐다. 연극은 노골적인 성 표현으로 유죄 판결까지 받은바 있는 현역 유명 대학교수의 소설집 즐거운 사라를 바탕으로 제작된 연극으로, 대학 축제기간 중에 교정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섹스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성에 대한 거침없는 대사와 선정적인 장면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한 중년 남성 관객은 주연배우 소속사와 연극 극단에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외설적인 연극을 중단하라고 항의하는가 하면, 연극이 공연되는 날에는 로비로 찾아와 외설적인 연극 공연을 중단하라고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이 두 연극의 공통점은 연출자가 같은 사람이며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극장에서 공연되어,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나 노이즈 마케팅을 펼친다는 논란 속에서 단단히 효과를 보아 대학로 연극 예매율 1위를 고수했다는 점이다.외설(猥褻)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남녀간의 난잡하고 부정한 성행위나 또는 다른 사람의 색정을 자극하여 도발 시키거나, 자기의 색정을 외부에 나타내려고 하는 추악한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다.예술(藝術)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나 그 작품이라고 돼 있다.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미국 뮤지컬 오! 칼카타나 우리나라 연극 교수와 여제자 그리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예술인가? 외설인가?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답으로 찾으려는 데 문제가 있다. 시대의 잣대나 통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조선 후기의 유명화가 김홍도의 춘화도나 16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남성 전라조각 다윗상 등도 지금은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품이 됐다. 이와 같이 과거에는 외설 논란에 시달렸던 작품들이 현재에 와서는 예술로 재평가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의 도덕적인 의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작가의 뚜렷한 도덕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외설은 도덕적인 의식 없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혹은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상품화 하는 것이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가난한 예술가들

천재 예술가들도 거대한 운명 앞에서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걸까? 해바라기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인생 또한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유명하다. 그는 스스로 한쪽 귀를 자르고, 정신병을 앓다가 37살에 자살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심연과 같은 고독감과 부서져 버릴듯한 외로움, 처연한 슬픔 같은 감정이 뜨겁게 올라온다.고흐는 살아생전 자의식이 강했고 늘 고독했으며 지독하게 가난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아서 그림을 그렸다. 1886년 2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1885년 5월 이후로 따뜻한 식사를 한 것은 오직 여섯번 뿐이라고 언급했을 만큼 가난했으며 영혼이라도 팔아서 돈을 갚겠다 라고 썼을 만큼 동생에게 엄청난 미안함을 느꼈다. 고흐는 그림이 팔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전 시간을 그림 그리기에 매달렸지만 끝내 팔리지 않았다. 현재 그의 그림이 1천억원을 웃도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이로니컬하면서도 끝내 가혹하기만 했던 그의 운명이 안타깝기만하다.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테오에게 쓴 668통의 편지 속에는 그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후세 사람들이 평가한 것처럼 광인이나 천재가 아니었다. 매순간 투명한 의식으로 자신과 주변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했으며 실존에 고뇌하며 치열하고 성실하게 작품세계에 몰두한 지성이 빛나는 예술인이었다.현실과의 싸움서 고뇌번민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탐정소설을 번역해서 보낼테니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닭을 30마리 고아 먹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마리 먹어보겠다.이 편지는 일제시대에 소설가 김유정이 폐결핵으로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필사적으로 생명을 부여잡고 매달렸지만 편지를 쓴지 열흘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편지 속에서 그의 절절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져 비통한 마음이 든다.김유정과 동시대를 살았고 그와 같은 운명을 가진 불운한 천재 시인 이상 역시 가난했으며 폐결핵으로 28살에 사망했다.이들의 작품보며 새로운 꿈꿔야배고픈 얼굴을 본다. 반드르르한 머리카락 밑에 어째서 배고픈 얼굴은 있느냐. 저 사내는 어디서 왔느냐. 저 사내는 어디서 왔느냐. 이상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연민의 심정으로 쓴 시다. 이 천재 예술가들은 시대를 잘못 만나 끔찍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요절했다. 살아생전엔 이들의 의식세계와 작품이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에 당대 사람들에게는 비판을 받거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운명이 가해진 상처와 고독함을 끌어안고 살았다. 사후에서야 이들의 작품이 재평가되어 천재성을 발견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다. 뒤늦게나마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들이 생전에 뛰어난 예술혼과 차디찬 현실과의 간극사이에서 얼마나 고뇌하고 번민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지금 이 세 예술가들은 떠나고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감동하고 새로운 꿈을 꾸며 사고의 지평을 넓혀 나간다. 작품 속에서 이들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 숨쉬어 많은 후손들과 만나서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 있으니 지하에서 이들은 행복해하지 않을까? 올 여름 태양 아래서 뜨겁게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고흐를 새롭게 발견하고 싶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최고의 술

아키라 오제의 명가의 술은 나츠코라는 23세의 양조장집 딸이 죽은 오빠가 남긴 다츠니시키라는 환상의 쌀을 부활시켜 일본 최고의 술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만화이다. 처음에는 오빠의 유지를 따라 무턱대고 곡괭이를 들고 논을 만들어 다츠니시키를 키워 나가는 주인공에게 온갖 어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유기농을 추구하는 재배회를 조직하는 등 역경을 헤쳐 나간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빠가 남긴 최고의 술이라는 음양주 NO의 맛을 재현하는 것. 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점차 인간적으로 성숙해가고 양조장 경영마인드도 쌓아가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간다. 그리고 오빠의 술을 만들겠다는 애초의 목적에서, 점차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자신만의 술인 나츠코의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 결과 부분적으로 되살아난 음양주의 느낌은 한마디로 깨끗하다였다. 그러나 나츠코는 뭔지 모르지만 미진하다며 만족하지 못한다. 그가 애써 얻은 최고 수준의 술은 다양한 미주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힘 있고 따뜻하게 사람 마음에 호소하는 맛을 가진 것이다. 과연 최고의 술은 어떠한 맛을 지닐까? 작가는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최고의 술은 탄성이 나오는 술보다는 감동이 오는 술이며 힘이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질리지 않는 술이라고 한다. 좀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맛이 있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풍부하고, 달고 맵고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그리고 그것들이 절묘하게 균형 잡힌 술, 거기에 기술자의 자부심이 넘치는 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주를 만드는 장인들의 정신은 거의 목숨을 건다는 수준이다. 술을 만드는 과정 과정에는 이들의 혼과 백이 처절하게 서려있다. 오죽하면 이른바 경면이라고 하여 술 만드는 비법을 터득하면 술 밑에 커다랗고 티 하나 없어 사람 얼굴이 비칠 정도의 투명한 큰 거품이 생긴다고 하였을까?고향을 떠나 근 10여개월을 양조장에서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애환은 다음과 같은 시로 나타난다. 에치고를 나올 땐 눈물이 났지만, 지금은 에치고의 바람도 싫어라. 이러한 술의 예술가들에 의해 전쟁 후의 일본주는 어려운 벼농사 감산정책을 뚫고 화려하게 부활하지 않았나 본다. 결국 최고의 술을 빚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제조방법과 장인의 감성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술의 신인 마츠오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은 자연에게 다 역할을 주신다. 인간이 그것을 모르는 것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술을 빚어가야 할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서 마신다고 한다. 진리인 것 같다. 마시고 취하지 않은다면 그것은 술이 아니리라. 그러면 술이 취하면 그 감흥의 세계는 어떠할까? 일본 토속주의 선구자 고다마 미츠히사는 산두화라는 글에서 술에 취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여유있게 취하고 보니 온갖 풀이 살랑거리네 이처럼 술은 사람들의 애환과 호기, 사랑과 헤어짐, 절제와 후회, 치기와 여유, 폭력과 굴종을 끝없는 술내음으로 그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술을 담백하게 음미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마신다고 본다면 중국인들은 관조와 여백,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되는 미학적인 음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쌓인 한을 표출하고 해소하는 풀이의 마심인 것 같다. 주량은 약하나 술이 주는 감흥을 적잖이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최고의 술맛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미각과 분위기, 그리고 마시는 이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최고의 술맛이 정해지겠지만 결국 최고의 술맛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술이 아닐까? 문득 남도에서 한 지인이 보내온 글이 생각난다. 흔들리는 대숲소리를 바라보며 함께 소주 한잔 하지 않으시렵니까?/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가면을 벗기다

2010년판 영화 하녀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라는 양분화된 계급을 통해 부조리한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해석할 수 있지만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인 부분은 늙은 하녀 병식의 캐릭터다. 병식은 상류층가정 하녀의 신분으로써 뼈속까지 투철한 직업적 근성으로 완벽하고 빈틈없이 하녀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녀의 실제 모습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인앞에서는 본분을 다해 예의와 격식를 갖춰 시중을 들지만 주인 뒤에서는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를 외치며 주인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병식이 주인들의 극도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속물근성을 더 이상 참지 못해 주인집을 나갈 때는 하녀로서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동안 아니꼽고 메스꺼웠던 주인들에게 거침없이 일갈을 날리며 당당하게 그 집 문을 나간다.연출된 모습통해 상대방 파악우리는 병식처럼 한평생 다양한 역할을 맡고 그 역에 맞는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역시 그 사람이 쓰고 있는 가면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에 따라 상황에 맞게 연출을 하고 타인은 그런 상대방의 모습을 통해 그의 인격이나 정체성을 파악한다.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나 위치에 따라 다른 얼굴로 대하는 것이다.가면 연구의 대가 어빙 고프만은 아마도 사람이라는 단어가 그 첫 번째의 의미로서 가면이라는 뜻을 지녔음은 결코 단순한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다소 의식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인식일 것이다. 이러한 역할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아는 것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도 바로 이러할 역할들 속에서이다라고 말한다. 때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사람의 속마음은 뭘까?, 이 사람의 실체는 무엇일까?, 가면 뒤에 숨겨진 실제 모습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이에 대해 조지 워싱턴대 법학과 제프리 로즌 교수는 굳이 타인의 가면을 벗겨서는 안된다고 했다. 교수인 나는 학생들을 대할 때, 동네 세탁소 주인을 대할 때 각각 다른 사회적 가면을 이용한다. 만약 이 가면들을 모두 강제로 벗겨버린다면 남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을 잃어버린 상처 입은 인간일 것이다.자신을 지켜주는 사회적 보호대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어야하는 현대인들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해야 한다. 간혹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면을 진실을 가리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나 교활한 처세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가면은 가벼운 입김에도 소멸되고 만지기만 해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나약한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그래서 외부로부터 받을지도 모르는 상처를 최소한 줄이고 자신을 온전히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이며 보호대일 수 있다. 과장되어 말하자면 가면은 세상의 질서와 합의하에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한 프로정신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다양한 역할들 속에서 각각의 문법과 언어를 정확하게 따르고 구사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 말이다.어떤 가면을 선택할지는 결국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에 달려 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때가 많이 탔는지, 내면의 소리와는 동떨어진 낯선 모습으로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 볼 일이다./이국진 칼럼니스트

문화예술도 인재양성이 필요

민선5기 자치단체장들의 임기가 오늘부터 시작됐다. 짐짓 축하를 받는 즐거움보다 앞으로 산적한 현안에 대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방자치시대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초심을 잃지 않고 후보자시절 내걸었던 공약들, 특히 민생분야를 비롯해 복지, 건설, 문화 등 주민과의 약속들이 하나하나 현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문예회관 느는데 운영인력 태부족공약 중에는 헛된 약속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특히 문화예술분야가 그렇다. 지역문화의 활성화,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고장, 문화예술의 도시 만들기 등 추상적인 내용만 있고 구체적인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사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전국 곳곳에는 경쟁적으로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에 가입돼 있는 아트센터만도 140개 기관에 이르고, 현재 건설 중이거나 앞으로 개관할 아트센터도 30여개나 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228개인 점을 감안하면 시군구 중 75% 이상이 아트센터가 있는 셈이다. 현재 도내에도 18개 문화예술회관이 있다.물론 많은 공연시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영하느냐에 있다. 한국문예회관연합회가 조사한 2009년말 자료에 의하면 전국 문예회관 평균 재정자립도는 겨우 18.9% 밖에 되지 않는다. 중앙정부기관이 48.5%이고 민간기관이 60.8%인 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공공 아트센터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이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무작정 공공성만 강조할 수만은 없는 일. 이제는 지금보다 아트센터를 좀더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예술기획, 무대기술, 예술행정 등 각 분야별로 전문화가 선행돼야 하고 적재적소에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인재가 배치돼야 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국적으로 문예회관은 계속 늘어나는데 비해 이 시설을 운영관리하는 인원은 아직 수준에 못 미치는 형편이다. 흔히 사람은 많은데 쓸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환경과 조건을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데 지역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요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경우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있다. 요즘처럼 사회가 다양화, 전문화, 첨단화되는 상황에서 역량있는 인력의 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질높은 서비스 위해 전문가 육성 시급오히려 지역에 연고를 갖고 있는 전문인력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미 대기업에서는 지역전문가 육성을 위해 외국에 장기간 파견하기도 하고 같은 직종에 지속적으로 보직을 주어 회사나 본인 스스로 전문화를 꾀하고 있다. 아트센터 종사원들은 물론 관련 공무원도 다른 지방 아트센터의 시설이나 운영을 벤치마킹 하도록 함으로써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함은 물론 해외에도 내보내 21세기 글로벌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공연장은 문화서비스 기관이다. 보다 다양하고 질높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영마인드까지 갖춘 인재양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실현될 때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한단계 높여주고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그러니까 마음껏 해봐!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가 전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그런데 매순간 경기에 집중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다른 채널을 보는 자신을 보게 된다. 바로 프로야구 중계 때문이다. 야구가 내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크다. 아마 생의 가치와 덕목 중에 높은 순위라고 볼 수 있다. 야구는 우리가 인생을 모르듯 그 결과를 아무도 모르는 스포츠다. 야구는 개인의 운동능력을 수치로 통계화한 확률과, 예상치 못한 다양한 변수들이 상호교직되어 일어나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스포츠다.인간 삶처럼 희로애락 담겨있어굳이 야구를 정의한다면 야구는 과학적인 통계의 경기이자, 직관과 의지가 주도하는 멘탈경기이다. 아울러 사람이 홈에 들어와야 득점으로 인정되는 인본적인 스포츠다. 누군가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바둑을 두거나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것은 곧 야구경기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경기로 모든 경우의 수와 확률에 근거한 통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지적인 경기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섬세한 멘탈경기이기도 하다. 얼마전 한 경기에서 대기록을 앞둔 선수가 기록을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불확실한 인간적 요소인 의지나 능력 등이 끼어들 여지가 많은 야구를 보면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야구경기에는 인간의 삶처럼 모든 희로애락이 쉬지 않고 몰아 닥친다. 지금 당장 행복하고 좋다고 만족해서도 안되고 힘들다고 절망해서도 안되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단숨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9회말 대역전의 홈런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온갖 수를 써도 한점도 내지 못해 완봉패라는 치욕을 당할 때도 있다. 어제는 안되다가도 오늘은 활화산처럼 터지는 타선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이길 수도 있다. 혼자 독불장군처럼 잘해도 동료의 희생번트와 받아 올리는 호수비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 또한 야구다.다른 스포츠처럼 처음을 보고 결과를 예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투수의 공 하나로 승부가 뒤집혀지기 때문에 9회말 쓰리아웃을 잡을 때까지 양팀은 팽팽하게 긴장하게 되고 박진감 넘치게 되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다.9회말까지 예상못하는 야구의 매력야구는 무한한 가능성의 경기이다. 야구의 규칙만을 놓고 보면 야구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스포츠다. 각 팀에게는 공평하게 9번의 공격과 수비의 기회가 주어진다. 선수는 자기 순서에 따라 타석에서는 공격을 하고, 수비에서는 자기위치에서 수비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격하게 승과 패로 나타난다.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나 능력은 평등하지 않게 나타나는 인생처럼 야구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등 속에 야구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야구는 타임아웃이 없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을 가지고 있다. 경기종료를 결정하는 기준이 득점이 아니라 아웃이다. 3번의 아웃이 나오지 않은 이상 계속 진행되는 것이 야구다. 그저 아웃을 3번 당하지만 않는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마음껏 해봐!라는 뜻이다.결론은 야구는 재미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빠질만한 가치가 있다. 열광적인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도 꾸역꾸역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동류의식을 느낀다. /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열정 넘치는 대한민국의 유전자

작년 봄 박물관대학에서 중국 답사를 가게 됐다. 남경에서 출발해 항주의 식당에 도착하니 보기로 되어 있던 인상서호라는 공연의 시작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현지 안내원들은 불가능할 거라고 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오히려 3분의 여유가 생겼다. 17분 만에 60명이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까지 다녀와 버스에 오르는 신속함에 안내원은 물론 식당 종업원들까지도 놀라워했다.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한국말은 빨리빨리라고 한다. 세계 어디서든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로 자리잡은 것이다. 일상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외국에서 물건 값을 치르거나 티켓을 살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느린 손놀림과 유치원생보다 못한 거스름돈 계산 능력에 가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 우리가 얼마나 빠른 사회에 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모습과 성격이 다른 개인이 모여서 국가 단위가 되었을 때 보이는 공통의 성향을 민족성이라고 한다. 민족성은 기후와 풍토의 산물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최적화된 집단의 성향이 바로 민족성인 것이다.우리 민족의 급한 성질은 언제부터 형성됐을까. 우리의 민족성이 본래는 여유 있고 느긋한 성향이었지만 해방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정신없이 일만 해야 했던 근대화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부정적인 성향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이는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이미지나 소수의 양반이 중심이었던 조선 사회에 대한 편향된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지금부터 1700여년 전, 중국 서진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가 있다. 위촉오 세 나라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이 책 중 위지의 동이전에는 부여고구려읍루예한왜에 대한 내용이 수록돼 있는데, 그중 고구려전에 성질이 급하고 사납다, 길을 다닐 때도 달리므로 걷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중국인의 눈에 비친 고구려인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곧 수입으로 연결되는 산업 사회도 아니었고, 휴대전화나 자동차가 없었던 고구려 시대에도 이미 우리 민족은 성질이 급해서 걸어도 달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우리 민족의 급한 성질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왕성한 기력과 열정이다.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성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에 불이 붙으면 모두 하나가 되어 뜨겁게 타오르지만 열정이 사그라지면 순식간에 모래알 같이 차갑게 흩어진다. 당나라의 백만 대군이 고구려를 공격해 왔을 때 하나로 뭉친 수만의 군민만으로도 그들을 막아냈지만, 청나라 군사 3만명 앞에서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조선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민족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민족성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조용한 은자의 나라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우리의 진정한 원동력인 빨리빨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냄비근성을 버려야 한다고 혀를 찰 것이 아니라 다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는 신명과 열정과 속도를 즐겨야 할 것이다.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세계인의 잔치가 시작됐다. 2002년, 우리의 하나된 마음이 이루었던 기적의 꿈을 떠올리며, 새로운 기적을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인자 속에 잠재된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모두 목청껏 외쳐 보자. 대~한민국!/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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