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또 다른 자아

지난 5월18일 방한한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저 콘버그 스탠퍼드 교수는 연구를 하면서 절망의 순간이 오면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연구를 하다보면 자주 실패를 한다. 그러나 오히려 매일같이 실패를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를 할수록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흥미와 열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며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어느 분야에서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한 거장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실패를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실패는 분명 살아있는 스승이다.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목표를 향해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누군가의 성공에는 열광하지만 실패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성공한 이들 주위엔 사람들로 들끓지만 실패하면 그를 영원한 실패자로 간주하고 대부분 등을 돌리는 게 세상 인심이다.실패땐 구체실질적 계획 세우고최근 뉴질랜드에서 한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을 했다. 자살하기 전날 큰딸이 미니홈피에 필요할 때만 찾고 쓸모가 없어지면 눈도 안 마주칠 사람들.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들이 시련을 겪을 때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와 관심이 있었다면 비극적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은 다시 힘을 내어 더 큰 성장을 했을지도 모른다.이런 사회적 풍조에 대해 조지아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이디쓰 와이스코프 조웰슨은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시련에 수치심보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을 품위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고 있는 잘못된 풍토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시련을 겪었다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당당하게 극복해나가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며 사회의 인식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그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세계적인 금융인 래리 핑크 회장도 이러한 세상의 쓴 맛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성공한 비결에 대해 처절한 실패라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가 한 순간 큰 실패를 했다. 그 때 리스크 관리는 모두가 행복한 시절에 더 절실하게 해야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가 큰 실패를 하고 나니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느꼈고 더 이상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는 깨달음을 통해 다시 일어섰고 작년 말 세계 1위의 자산운용사가 됐다.누구나 미래를 향해 한걸음 진전하는 기쁨은 잠시, 몇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서 수천 번의 실패를 겪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피겨여왕이 되기까지는 얼음위에서 수만번을 넘어지고 실패와 좌절을 넘나든 후에야 가능했다.어느 분야에서든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수많은 실패들을 겪은 후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목표성취 할 때까지 전진해야 성공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점이라면 성공한 사람은 실패를 거듭해도 다시 일어나서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나아간다면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하는 그 순간 주저앉아 포기한다는 차이일 뿐이다.CNN부사장 게일 에반스는 여러 번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구성된 이력서가 승자의 이력서라고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물론 실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 또한 없다. 실패는 성공의 또 다른 변주이며 자아(自我)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급변하는 시대의 ‘생존전략’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변화했고, 다시 정보사회에서 지식사회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이러다보니 어린이들의 직업관도 바뀌었다. 지난 1983년 어린이잡지 새소년이 당시 초등학생 대상으로 장래희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과학자(23.3%), 교사(14.1%), 법관(11.5%), 의사(11%) 순으로 장래희망을 답한 반면, 올 2월에 어린이 포털사이트 다음 키즈짱이 실시한 장래희망 설문조사에서는 연예인(50.1%)이 단연 1위였고 과학자는 겨우 1.1%에 불과했다.몇년 전 필자의 친척 한분이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며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아들이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영국 유학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아들은 영국에서 헤어디자인 전문학교 과정을 마친 후 자격증을 획득해 최근에는 강남의 유명 미용실에 스카웃 되어, 인기 헤어디자이너로 활동중이다.그동안 공연계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경험해 오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실황을 현지에 가지 않고서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게 됐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덕분에 예전에 정성들여 구입한 LP판이 소용없게 되었고, 영화관에 가지 않고서도 안방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공연기획이나 공연 마케팅도 인터넷 덕분에 한결 업무가 수월해 진 편이다. 해외의 유명예술가나 단체를 초청하려면 종전에는 텔렉스나 서신, 전화를 통해 소통하거나 직접 해외 출장을 다녀와야 가능했고, 공연 입장권도 별도 인쇄를 하고 검인을 거쳐 일일이 예매처에 배부하고 판매 현황을 전화로 알아보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컴퓨터만 있으면 인터넷 상에서 실시간으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해외 유명공연자를 섭외할 수 있게 됐다. 공연예매 역시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희망하는 좌석을 선택할 수 있게 됐고 공연 관람료도 전자 결재로 이뤄지고 있어 종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효율도 높고 편리해진 게 사실이다.사회학자들은 21세기를 일컬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지는 다변화, 다가치화 시대로 예상한다. 지금보다 휠씬 빠르게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진단이다.빠르게 진화하는 세상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고 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우선, 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20세기 사고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에 빠른 적응을 위해서는 내 자신이 정신 차리고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두 번째는 이런 시대에 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즐거운 일에 시간을 집중하여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와 성공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결국 오직 실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나의 비전을 달성하고,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가(specialist)로서 안주하기 보다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professional)가 돼야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화장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세계화와 정보화 사회를 바탕으로 급격한 변화가 쉴 새 없이 추구되는 특징을 보인다. 아울러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무한히 존중되는 시대이며 조직보다는 개인을 우선가치에 두고 획일적인 사고방식보다는 독창적인 창의성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높게 추구해온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부모에 대한 효성과 같은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가 점점 낮게 평가되는 것 같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래없이 성공한 국가의 한 시민으로 자라온 필자는 시대에 따라 자기 정체성과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에 혼란이 많았다. 이제는 필자도 인생을 보다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외연이 열려서인가? 화려한 5월을 보내는 이즈음 불현듯 잊고 지낸 지나간 일들이 생각난다.충신이란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화려한 5월이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흔히 5월을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바르게 지도해 주시는 스승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때이기도 하다. 부부의 날도 있다.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반려자에게 서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나타내는 날이기도 하다. 모두가 감사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부모님만은 못한가 보다.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었다. 폭발사고로 유명한 평북 용천이 바로 아버지가 태어난 곳으로 나의 원적이기도 하다. 삼팔선이 생긴 직후에 월남하여 경상도에서 터전을 잡고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외지에서 믿을 것은 자식밖에 없다는 신념을 직접 실천하신 아버지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8남매의 장남이 된다. 어수선한 육이오를 전후하여 아주 젊은 나이에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했다. 어린 동생들과 함께 일본인들이 거주하다 물러간 커다란 사택에서 생활하며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는 연고 없는 외지에서 교육자로 성공한 사실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나 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하다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다툼도 많았다. 그래도 늘 꿋꿋하게 학생들 교육에 전념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느껴졌다.그런 용맹한 아버지가 무서워 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겨울밤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에 가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허술한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에 나타날 것 같은 이름 모를 샤먼들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곤히 자고 있는 어린 나를 깨워 꼭 화장실 앞에 보초를 세웠다. 볼 일이 길어질수록 나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얼어붙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정령들의 거친 숨결이 사라지도록 조심조심 눈앞의 어둠을 지워갔다. 사방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숨막히는 눈길들이 무서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차가운 별빛들이 시리도록 머물렀다가 폭포처럼 마당으로 쏟아져 내렸다.화장실 보초를 섰던 어린날의 추억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바보였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동생을 탓하며 아버지는 늘 이 말을 하셨다.충(동생)이란 놈은 불효한 놈이야.우(본인)야는 충신이로고. 나는 충신(효자)이란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서움을 의무감으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문을 나서 장승처럼 화장실을 지켰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동생도 몇 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매일 밤을 내복차림으로 서있던 그때가 그립다. /김우 자혜학교장시인

문화재지리정보서비스와 예측모델

문화재보호법을 보면, 일정 규모 이하를 제외한 개발 관련 문화재의 조사와 보존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사업 시행자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 문화재는 공공의 자산이므로 개발로 인해 그것을 훼손하게 되면, 개인 주택과 같이 소규모인 문화재를 제외하고는 해당 문화재의 훼손 원인을 제공한 사업 시행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논리다.문화재가 공공의 자산이라고 한다면, 어디에 문화재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그 자산의 주체인 국가가 응당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찾는 기초 작업인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의 비용까지 사업 시행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문화재청에서는 지난 3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문화재지리정보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전국의 지정 문화재와 보호 구역 현황, 매장 문화재 분포 지역 등을 수치 지도를 통하여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직 흡족하지는 않지만 매장문화재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문화재가 포괄적이고 실질적으로 국가 관리의 대상이 됐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문화재지리정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는 10여 년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시스템 구축에 이처럼 긴 시간이 소요된 까닭은 1만 건 정도인 지정 문화재 중에 구역이 불분명하거나 보호 구역이 설정되지 않은 경우, 지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초 조사 자료가 없었던 매장문화재 조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지리정보시스템의 정밀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군 단위의 기초 조사가 구석구석 정밀하게 이뤄지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어느 기관에서 조사했느냐에 따라 각 시군의 문화재 분포 밀도가 현격하게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 등의 문제점들은 추가 조사를 통한 지속적 자료 보완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매장문화재는 시굴 조사를 해 보기 전까지는 유적의 유무를 직접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개발 사업에서 시굴 조사로 전환된 유물산포지 중 유적이 확인되는 경우는 30% 정도로, 매우 낮은 확률을 보인다.이처럼 낮은 확률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문화재 예측 모델이다. 이는 이미 조사된 문화 유적의 해발 고도와 방향, 강으로부터의 거리 등 다양한 입지 조건을 분석해 지형에 따른 문화 유적의 분포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으로, 문화 유적의 부존 가능성을 5단계로 구분해 색깔별로 제시한다. 이 중 확실하게 문화 유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등급 지역에 대한 현장검증결과의 정확도는 69%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문가에 의한 것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시대에 따른 유적의 중요도라든가 유적의 중심 지역 표기 등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지형 조건에 따라 문화재의 분포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다.매장문화재를 두고 생기는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나 문화재로 인한 사유재산권의 침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최소한 문화재의 유무를 알지 못해 입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이나 개발 사업자의 재산상의 손실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문화재청의 지리정보서비스 제공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문화로 읽는 시대의 흐름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조나 시대상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문화를 들여다 보라. 문화는 그 시대의 양식, 트렌드, 사회상, 가치관이 그대로 녹아있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TV와 신문매체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문화를 반영하고 때론 유행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대중매체를 관심있게 보면 그 시대의 흐름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원하는 기호를 읽을 수 있다.최근 다양한 문화 아이콘 중에서 하나의 큰 축은 자연 혹은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회귀적 갈망이다. 그 바람은 서점가에서도 불고 있다. 얼마전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직후 스님의 책들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17권이 올라갔고 무소유를 비롯한 몇 권의 책들은 금세 절판됐다. 평소 스님이 강조하신 무소유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삶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서점가에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있다면 방송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올 초 방송에서 보여준 아마존의 눈물은 TV 다큐 사상 최고의 시청률인 20%를 돌파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아마존에 살고 있는 조에족들의 원시적이며 역동적인 삶을 보면서 수천년전 우리의 조상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 기억들이 수세기에 걸치면서 후손들의 무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던 원시성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었다. 중국 서남부 운남, 사천에서 시작되어 티벳과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5천여㎞ 전 구간을 방송한 차마고도 역시 아름다운 풍경과 소수민족들의 삶과 문화를 볼 수 있었던 귀한 다큐멘터리였다.방송프로그램은 제작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현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의미와 이미지를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미학과 이미지 과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프로그램보다 꾸며지지 않는 모습, 사람들의 날숨과 들숨이 그대로 노출되는 날 것을 보고싶어 한다. 질펀하고도 진솔한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과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으면서 그들의 삶과 대비되는 내 삶을 반추하고 싶어한다.문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역시 자연 혹은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추세다. 과잉의 재료와 양념, 복잡한 조리법과 화려한 데코레이션으로 완성된 국적불명의 퓨전음식에 싫증난 대중들은 이제 단순하고 자연적인 음식에 향수를 느낀다. 전국 곳곳의 오지나 시골집에 찾아가 할머니들이 손수 그 지방에서 채취한 식재료를 이용한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먹을거리를 만들어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는 것도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대중들의 기호가 반영됐기 때문이다.실제 이러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 식당은 친환경적인 음식점으로 영국 요리 월간지 레스토랑 매거진이 최근 발표한 세계 최고 식당 50위 중 1위에 올랐다. 이 식당은 코펜하겐 주변에서 나는 제철 재료만 사용하며 덴마크에서 생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올리브오일도 쓰지 않고 소금도 거의 뿌리지 않는다. 땅의 기운을 그대로 식탁으로 가져가려는 셰프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 이 식당 만찬이 1인분에 20만원 정도의 높은 가격이지만 예약 개시 직후 금세 마감될 정도로 손님들의 반응은 뜨겁다. 또한 방송에서 제주도의 올래길 탐방이 소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올래길 걷기 체험으로 이어졌고 다른 지방에서도 제 2, 제 3의 올래길을 발굴하고 있다.느리게, 그리고 자연으로! 더 문명화된 세상을 만들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지금까지 앞만 보고 뛴 결과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우리 모두는 정신적 허기와 영혼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속엔 그런 대중들의 욕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이국진 칼럼니스트

정성으로 빚는 예술가의 어머니

매년 5월 이맘때면 정부는 예술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예술가들의 어머니들에 대해 장한 어머니상을 시상한다. 올해도 지난 3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을 가졌는데 역대 수상자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가 직접 경험한 특별한(?) 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씨의 어머니이신 고(故) 이현경 여사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분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 같다. 김씨는 현재 한국에 귀국해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필자는 당시 신문사 문화사업부에서 공연기획을 담당하던 때였는데, 섭외를 통해 세계적인 연주가의 국내연주회 일정이 확정되면 신문이나 각 방송을 통해 사고(社告)를 내보내게 된다. 그러면 김씨의 모친으로부터 어김없이 연락이 온다. 서울 운니동 자택에서 세계적인 연주가를 초청해 식사대접을 하고 싶으니 일정에 꼭 넣어 달라는 것이다. 운니동 자택은 전통적인 한옥으로 조선시대 말 흥선대원군이 쓰던 운현궁의 별채였다.그 당시 운니동 자택으로 초대받은 음악가는 세계적인 지휘자 레오나드 번스타인, 유진 오먼디, 리카르도 무티,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 핑커스 주커만, 이자크 펄만, 첼리스트 요요마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다.한국의 전통가옥에서 신선로, 구절편, 각종 떡과 전, 감주, 수정과 등 당시 일반인들이 먹어보기 힘든 정통궁중 음식들을 손수 만들어 접대함으로써 세계적인 예술가들에게 한국은 물론 아들인 김영욱에 대한 이미지를 굳건히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예술가 김영욱이 있기까지는 자신의 재능과 더불어 지극정성으로 손님을 모시는 그의 모친 은덕이 깊게 서려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내일 모레면 어버이 날이다. 원래는 어머니날이라고 해서 100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행해오고 있는 기념일인데, 우리나라도 1956년에 도입돼 1972년까지 어머니날로, 그 이후 어버이날로 불려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으며, 어머니 또한 자식에 대해 글이나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무한대의 사랑을 베푼다.조선 중종 때 대학자인 이율곡을 교육하기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모정의 표상이다. 율곡이 저술한 신사임당의 행장기에 의하면 신사임당은 올바른 예도와 자애, 온화한 성품과 행실로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임당은 또 슬하의 7남매에 대해 어릴 적부터 좋은 습관을 갖도록 엄격한 교육을 시켰으며, 아들딸을 구별 않고 개성을 살려주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키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강원도에서는 지난 75년부터 신사임당상을 제정하여 강원도 출신이나 강원도에 거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해마다 시상하고 있는 등 신사임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어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아마 뒤늦게나마 불효를 깨달았거나, 효도하고 싶어도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어버이날을 맞아 동그랗게 굽어진 어머니의 작은 등이 아련하게 생각난다. 자손들이여! 어버이 돌아가신 후에 호화분묘의 거창한 장례 치르며 자기과시에 열중하지 말고, 살아 계실 때 어버이께 정신적, 육체적 효를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늑대처럼 살아라!

필자는 말을 좋아하지만, 말 이외에 좋아하는 동물은 단연 늑대이다. 집에서 기르는 큰 개와 비슷한 모습의 늑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늑대의 생활습성과 행동방식이 나의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늑대대장을 중심으로 협력하여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쟁취하는 조직력과, 몸이 부서지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끝까지 목표물을 추적하는 강인한 지구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먹이를 포획한 후에 최소한의 깔끔한 처리로 상대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 나에게 장룽의 장편소설 늑대 토템은 일단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늑대 토템은 작가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내몽골에서 늑대와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기반으로 쓴 자전적 소설로 원제는 낭도등(浪圖騰)이다.저자는 앞으로 중국이 발전하려면 전통적인 농경민족의 집단주의적, 순응형의 특성을 벗어나 늑대와 공존하고, 그래서 늑대로 표상되는 유목민의 진취적이고 기민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불굴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가져서 모든 중화민족은 늑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왜 하필 늑대인가?라는 물음에 장룽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늑대세계의 강점은 질서정연한 조직력에 있다. 20~40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늑대 무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장 늑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먹잇감을 포위하고, 순식간에 덤벼들어 덩치 크고 힘 좋은 먹잇감을 해치운다. 늑대를 강하게 하는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끈질긴 인내심에 있다. 늑대가 가젤을 사냥할 때는 무리 전체가 숨을 죽이고 배고픔과 추위를 참아내며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도 눈 속에 파묻혀 몸을 숨기고 최적의 기회를 포착해 사냥에 성공한다. 늑대의 야성이란 이러한 지혜, 놀라운 집중력과 조직력, 인내심과 도전성에 기초한 것이다.결국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늑대 숭배사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은 야성(野性)의 회복이라고 본다.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와 감각적인 유혹들 앞에 우리는 넓은 초원을 달리는 힘찬 질주본능과 생존본능의 팽팽한 긴장감을 잊고 지낸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사나이다운 야성을 잃어가고 있다. 어떤 역경이나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끈질김을 찾아보기 힘들다. 체력과 정신력이 허약해 매사에 소극적인 유약한 청소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쉽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공직자들도 많다. 조급하게 일을 벌이고 힘든 과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편한 일만 추구하며 힘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직장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처럼 나약하고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늑대의 야성은 준엄하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댄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냉철한 분석, 지형지물에 대한 완벽한 이해,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도모하라고 말한다. 리더의 일사불란한 지휘, 엄격한 조직의 규율, 승리에 이르는 속전속결, 가족에 대한 책임감,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대비를 바탕으로 야심과 웅지를 가지라고 으르렁거린다.지식 정보화, 세계화가 화두인 21세기는 분명 유목민의 시대다. 군둘라 엥리슈가 말한 Job Nomad(직업 유목민)는 과거 칭기즈칸이 그러했듯이 유목민의 기질인 결핍을 극복하는 능력, 본질에 집중하는 힘,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늑대들의 습성과는 약간은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무한질주적인 창발성과 변화와 본질 앞에서 조물거리지 않은 당당함은 서로 비슷하다. 긴 소설이지만 일독을 권한다./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원술랑

올해는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국민정서를 감안해 8월로 연기됐지만, 해마다 5월이면, 어린이날을 전후로 연천에서는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18회를 맞는 이 축제는 석기 만들기나 불 피우기, 돼지 잡기 등 구석기시대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흥미롭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매년 수만 명이 참가하고 있다.연천 전곡리 일대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구석기시대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다. 1978년 미군병사가 처음 주먹도끼를 발견한 이래 1979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홈날찌르개 등 수천 여 점의 다양한 석기가 발견됐다.전곡리 선사유적지의 형성 시기는 대략 20만년 전인 전기구석기 후기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데 양날떼기 기법을 갖춘 아슐리안 석기 형태의 주먹도끼와 박편도끼가 동북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유적지로 주목 받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중요성으로 인해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약 80만㎡가 사적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이처럼 화려한(?) 구석기의 명성에 가려 전곡리 선사유적지 일대에 전곡리토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둘레가 약 2km, 흙으로 판축된 이 토성은 발굴 조사 결과 고구려성으로 밝혀졌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토성이 우리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매초성터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매초성은 신라와 당나라가 벌인 나당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675년, 당나라 장군 이근행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매초성에 주둔하며 보급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맞추어 임진강 하구에서 지키고 있던 신라군은 40여 척의 당나라 보급선단을 궤멸시키고 여세를 몰아서 매초성 공격을 감행한다. 이 전투에서 신라군은 군마 3만380필과 수많은 병장기를 획득하며 압도적으로 승리한다.이 매초성 전투에는 김유신의 아들 원술이 참전했다. 원술은 매초성 전투가 있기 3년 전 석문(황해도 서흥 지방) 전투에서 간신히 목숨만 살아 돌아왔다. 김유신은 문무왕에게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가훈을 저버렸으니 목을 베어야겠습니다며 전장에서 돌아온 아들의 목 베기를 주장한다. 문무왕은 그를 용서해 주었으나 원술은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을 대하지 못하게 된다.명예를 회복할 날을 기다리던 원술은 매초성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우고 포상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 김유신은 이미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부모에게 용납되지 못한 것을 분하고 한스럽게 여긴 원술은 죽을 때까지 벼슬을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석기를 만들어 동물을 사냥하고 불을 지피는 구석기인들의 생활 모습과 화랑의 명예를 회복하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한을 풀기 위해 목숨 걸고 적을 물리쳤을 원술랑의 일화 중 어느 것이 더 감동적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이며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풍부한 문화적 콘텐츠를 가진 원술랑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올해도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될 것이다. 축제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 모르지만, 전곡리 벌판에서 벌어졌던 매초성전투와 전투에 참여했던 원술랑과 관련된 작은 코너라도 마련하면 축제의 내용이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싸우지 않고 도망하였으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며 끝내 아들의 비굴함을 거부했던 김유신 장군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행복 열광

해마다 새해 지인들에게 보내는 카드나 휴대폰 문자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뭘까? 바로 행복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이나 돈, 명예, 학벌, 사랑 등을 꼽는다.그러나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련의 불행한 비보들을 접하면서 부나 지위가 행복을 보장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행복한 삶에도 공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하버드 대학교 학생 중 1930년대 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72년동안 추적했다. 그 결과 행복의 조건이란 인생에 있어 고통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라는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제시한다.또 행복을 연구하는 긍정심리학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정 수준의 경제수준이 넘으면 돈은 더이상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밝혀냈다.최근 우리 사회 엘리트층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그 원인에 대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엘리트층들이 더 행복할 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실제 스트레스는 2~3배 또는 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조지아대학 심리학 교수였던 이디쓰 와이스코프 조웰슨은 우리 사회가 행복관에 대해서 왜곡되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며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또 그는 오늘날 정신건강 철학은 반드시 행복해야 하며, 불행은 부적응의 징후라는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가치체계가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지면서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짐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을 만들어온 것이다며 더 나아가 불행할 뿐 아니라 이렇게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학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행복의 열쇠를 몰입에서 찾았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 시간이 멈추는 느낌, 모든 것이 편안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질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순간은 사소한 일상 속에 있고, 사람들이 쉬거나 놀 때보다 공부나 일을 할 때 더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또 다른 연구결과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일정한 행복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행복한 기분은 얼마가지 못하고 원래 자신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과정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자신의 삶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다.발레리나 강수진씨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내 생활은 지루한 반복과 같다며 그러나 아무리 아파도 발레를 하는 것이 즐겁다. 나한테 중요한 건 오늘이다라고 했다. 무대 위에서의 화려함은 잠시, 매일 매일 고된 연습으로 점철된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낼 줄 아는 능력이 있었기에 수십년간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많은 학자들이 사례와 연구를 통해 행복해지기 위한 법칙을 만들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행복은 개별적이며 독자적이고 각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행복해지고 싶은가? /이국진 칼럼니스트

21세기 성공 비결은 감성(EQ)이다

모름지기 21세기는 감성(EQ)의 시대이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배려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업도 정치도 성공할수 있다.이미 감성은 시대적 트랜드로 부각돼 각 부문에서 적잖게 반영되고 있는데 한 예로 각 기업마다 신상품을 출시하게 되면 경쟁적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마케팅에 주력한다. 아침 일찍 출근길에 나서는 직장인들에게 아침밥을 거르지 말라며 권하는 ○○음료, 고향의 어머니의 손맛으로 빚는다는 ○○만두, 주부들도 이젠 힘든 집안 청소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 ○○스팀청소기 등은 감성마케팅으로 모두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박을 터트린 공통점을 갖고 있다.정치인의 모습도 예전과는 딴판으로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싹수가 노란 고압적이고 위선적인 인물일지라도 중앙정부나 지자체를 대상으로 예산만 많이 따오기만 한다면 훌륭한 정치인으로 칭송받았지만, 이제는 가슴으로 지역 주민을 배려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보듬을 수 있는 정치인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 6월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들이라면 이 대목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감성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성이 풍부할수록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가까운 예로 식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만 보더라도 감성의 효능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여성과학자 도로시 레틀랙 박사는 호박 넝쿨에 고전음악을 들려줬더니 곧게 잘 자라고 수확량도 좋아진 반면 록 음악을 들려준 호박은 넝쿨이 뒤틀리고 수확량도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국내 농촌진흥청에서도 비슷한 실험결과를 내놓았는데 부드럽고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식물은 병충해도 없고 성장발육도 훨씬 나았지만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식물은 병충해와 성장발육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사람도 마찬가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근심 걱정이 많으면 각종 암으로 조기사망률이 높은 반면, 근심 없이 편안하고 낙천적 생활을 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이렇듯 감성(EQ)이 21세기에 명석한 두뇌(IQ) 이상으로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어떤가. 먼저 아이들은 학교에서 오자마자 PC게임에 몰두해 사람이든 동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 죽이는 간접 살상 경험을 한다. 그러고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낀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격무와 사회적경제적 불안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가정이나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기 쉽고,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까지 얻게 된다.본격 감성시대다. 감성을 키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공연장이 가장 좋은 감성훈련장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감상하면서 웃고 즐기며, 무덤덤하고 짜증나는 내 영혼에 감성을 불어넣는 일, 이것이 바로 공연관람의 매력이자 감성을 키우는 방법이다.이번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하며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와 은메달을 차지한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의 차이점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술력보다는 예술적 감성표현에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김연아 선수의 동작, 표정 하나하나에는 감동을 자아낼수 있는 감성적 연기가 묻어있는 반면, 아사다 마오의 표현력은 감동이 없는 기계적 요소 일색이라는 것이다.우리도 올 봄에는 절로 신명이 나는 감성 키우기에 몰두해 보자.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그리고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감상하면서.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유혹을 유혹하다

평소에 동양, 특히 중국 중심의 처세술을 읽기 좋아하는 필자는 가끔 합리적 사유가 지배하는 빈틈없는 서구의 전략적 관점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며칠 전 다시 꺼내든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은 충분히 매력적이다.로버트 그린은 현대사회의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남녀관계 등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동인과 권력관계를 정립하는 수단은 강력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잘 움직이는 심리적인 기술인 유혹이라고 본다. 그가 유혹을 기술이라는 표현까지 하며 말하고픈 요지는 아마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관계는 심리 게임이라는 전제에 바탕을 둔 듯하다. 이러한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는 유혹의 유형을 크게 성적인 유혹과 경영처세적인 유혹, 그리고 정치적인 유혹으로 나누고, 이 세가지 유혹의 유형에 부합하는 유혹자들의 성공한 전략과 이와 관련한 사상가들의 유혹에 관한 개념들을 풀어가고 있다.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통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책의 함의는 사랑과 권력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깊은 의미를 두거나, 혹은 잘 모른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생은 단순한 것 같다. 타고난 종족보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이며 배우자를 찾고 짝짓기에 나선다. 일거리를 찾고, 가정을 꾸며 자신의 아성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 나타나는 적대적인 상호갈등과 위계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남들보다 우위에서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욕과 명예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욕망은 죽기 전까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집요하게 지배한다. 이러한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유전인자를 후대에게 남기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살아있지 않은가? 사랑과 권력은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유혹이라는 전략은 그래서 필요한 것 같다.로버트 그린이 말하는 성적인 유혹은 말 그대로 남녀 간의 유혹을 말한다. 저자는 카사노바와 마릴린 먼로의 예를 들며, 사랑이란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룬 고도의 심리전으로 얻어지는 결과라고 했다. 경영처세적인 유혹은 기업의 마케팅이나 광고 전략, 그리고 개개인의 홍보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협상과 설득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개념인 유혹을 경영과 처세에서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정치적인 유혹은 정치가들이 대중을 사로잡을 때에 뛰어난 정책 제시보다는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뛰어난 유혹의 기술, 즉 심리적인 방법이 큰 힘을 발휘함을 보여준다. 뛰어난 웅변술로 정치력을 발휘한 나폴레옹과 루즈벨트 대통령, 겸손한 처신으로 2인자의 자리를 잘 지킨 중국의 매력적인 정치가 주은래 등은 대표적인 유혹자들이다. 이처럼 정치가들조차 유혹의 기술을 구사했다는 점은 유혹이 권력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며, 어떤 정치 캠페인도 유혹을 배제하고는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유혹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유혹자의 희생자가 될 것인가 생각하니 아무래도 유혹자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다. 단, 정말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유혹자가 나타난다면 필자는 기꺼이 유혹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으리라. 그가 팜므 파탈이면 더욱 좋고, 인간적인 매력이 뚝뚝 떨어지는 세련된 경영인이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유혹자는 현실적인 통합형 감각과 신뢰심을 구비한, 그러면서도 때묻지 않은 겸손한 사람인 것 같다. 유혹의 기술, 일독을 권한다./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하남 위례성의 위치와 지명전쟁

삼국시대에 대하여 기록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이름만 있고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유명미상지분(有名未詳地分) 358개가 있다. 관미성, 쌍현성, 살수, 건안성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곳들도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지명이며, 그 중에는 위례성도 포함되어 있다.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저술하던 때는 고려 인종 23년(1145)으로 고려가 건국된 지 200여년, 고구려 멸망이 불과 500여년 경과한 시점임에도 잊혀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중요한 역사 현장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고증할 수 있는 기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이처럼 부족한 역사 기록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많은 혼란과 논쟁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한성백제의 도성인 위례성(慰禮城)이다. 위례성의 위치는 임진강 유역, 삼각산 동록, 장안평 일대, 몽촌토성, 남한산성, 하남 일대 등 여러 곳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 논의에는 유형원, 신경준, 안정복, 정약용, 이병도, 이기백, 천관우 등 조선시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대표했던 학자들이 참여하였지만 위례성의 위치를 밝히지는 못했다.위례성의 위치는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 위례성의 하나로 추정되었던 이성산성은 발굴조사 결과 6세기 중엽 신라가 쌓은 신주의 치소성(治所城)으로 밝혀졌으며,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대에 처음 쌓은 주장성(晝長城)으로 확인되었다.반면 아무도 백제도성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풍납토성에서는 정교하게 쌓은 판축토성벽과 대규모의 의례용 건물을 비롯하여 기와건물과 도로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또한 와당, 삼족기, 고배 등 다양한 유물과 함께 중국과의 교역을 말해주는 전문도기, 육조계의 벼루 등 중국계 유물들이 출토되었다.몽촌토성에서도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판축한 토성벽과 지상건물지, 수혈주거지, 저장시설 등의 유구와 중국제 시유도기, 청자류, 금동제과대금구, 각종 철기류, 골제찰갑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발굴조사 결과를 보면 한성백제의 도성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서울과 하남, 성남에 걸쳐 679만㎡의 규모로 건설되는 송파신도시는 도시 명칭공모를 통하여 2008년 위례신도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백제의 역사가 시작된 지역으로서 그 역사성을 되살린 미래지향적인 도시명칭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그런데 최근 천안시에서 위례신도시라는 명칭 사용을 재검토 해달라는 건의가 국토해양부에 제기되었다. 삼국유사와 조선시대의 각종 지지자료에 온조왕의 위례성은 직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천안에 위례산과 위례성이 있지만 수도권에는 위례와 관련한 어떤 역사적 근거와 유적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역사왜곡이니 이름을 도둑맞았다느니 하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명 전쟁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그러나 위례성과 관련된 이 논쟁에서 천안시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명 외에는 백제 도성이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천안 일대에서 확인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다른 어떤 자료보다도 많은 정보를 남기지만 때로는 이처럼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위례성 지명 논쟁을 보면서 상반된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표현하고 있는 신문 중 일부만 후대에 남게 된다면 그 때의 학자들은 오늘을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프라우트가 온다

얼마전 제주도 올래길을 5시간에 걸쳐 천천히 걸은 적이 있다. 평소 느리거나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필자로서는 일행이 있어 할 수 없이 걷게 된 일정이었다. 격하게 땀흘리고 운동량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걷다보니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느릿느릿 따라오며 제주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가까운 데 좋은 곳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맑은 공기를 크게 받아들이며 걸었다. 조금 지나니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예정지인 서귀포의 강정마을을 지나게 됐다. 낯선 여러 가지 색깔의 깃발과 구호판이 육지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육지로 각각 함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최근 제주도에서는 해군기지를 둘러싼 찬반 갈등이 안보론과 경제론으로, 혹은 감성과 논리로 나뉘어 격렬한 토론과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찬성하는 입장은 한반도 유사시에 기능할 해군기지의 전략적 목적과, 기지 건설에 투하되는 향후 소비가 예측되는 경제적 효과를 강조한다. 반대하는 입장은 군사기지 유치가 제주도에 결정적인 형질 변경을 가져오고 결국 주민의 삶에 심대한 변형을 초래한다는 입장이다. 모두가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노암 촘스키가 대단히 중시하며 언급한 사상이 있으니 곧 프라우트(PROUT)다. 진보적 활용주의인 프라우트(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는 인도의 P. R. 사카르에 의해 계발됐다. 프라우트는 개인주의가 최고의 가치이며,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모든 이들이 혜택을 받게 된다는 자본주의의 환영을 거부한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앞으로 올 이상사회의 모델을 통합적 거시경제 모델로 제시한다. 모든 이들의 복지를 지향하며 사회적경제적 지역 및 그 지역 사람들에게 발전과 혜택을 주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으로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해 줌으로써 인간의 세 가지 영역인 물질정신영적 측면을 지원하는 경제체제를 추구한다. 프라우트의 비전 가운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프라우트가 새로운 세상을 보는 비전을 단순히 정치사회경제적인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 남녀평등, 영성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개발이 가능한 비전을 자급자족경제, 협동조합, 환경보존의 영역으로 확대한 것은 의미있다고 본다. 생활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특별히 소개하는 것은 단순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이렇듯 프라우트가 지구촌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질하는 것으로 비유되는 오늘날의 사회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군대들보다도 강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때가 무르익은 사상이다. 이것은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노력한다면, 우리의 경제시스템은 보다 더 민주적이고 생태보호적이며, 누구에게나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체제로 나아갈 것이며, 우리의 마음은 착취와 무한경쟁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이웃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좋은 대안제도로서 그 실행가능성을 생각하며 내려오는 올래길의 해변가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구호들이 깃발에 담겨 펄럭이고 있었다. 무조건 철수라는 붉은 글과 함께 커다란 철판 게시판에는 전투함대의 모양이 구멍으로 뻥 뚫려져 있는데, 그사이로 보이는 남녁의 바다풍경은 평화롭고 잔잔했다. /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우리나라 축제도 변해야 한다

축제의 기원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그 궤를 같이한다고 민속학자들은 전한다. 우리 조상들도 태고적부터 고달프거나 기쁠 때면 노래하고 춤추고 기원하며 살아온 나름대로의 축제를 펼쳐왔다. 옛날의 길쌈놀이나 석전놀이, 차전놀이, 불놀이 등을 언급하지 않아도, 추석이나 단오와 같은 명절 때면 시골마을 조그마한 장터에선 농악대, 광대들의 줄타기, 씨름대회, 줄다리기가 열리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들어 장국밥도 사먹고 서로 소통하며 즐기곤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고유의 거리축제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경제가 나아지고 농촌이 도시화돼 가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직접 참여가 소극적으로 되어, 구경꾼 입장으로 전락하고 직업적인 전문 단체가 공연하는 축제의 형태로 바뀌게 됐다. 행안부 통계에 의하면 2009년 말 현재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만 해도 6천여개에 달한다. 꽃, 고추, 참외, 복숭아, 도자기, 나비 등 축제명칭도 다양하다. 하지만 일부 축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천편일률적이고 대동소이하다.사실 야외축제는 규격화된 공간에서 공연자가 관람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공연자와 구경하는 자가 열린 공간에서 함께 출연하기도 하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것으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거리극이다.지난달에 필자는 호주예술위원회의 초청으로 호주 애들레이드를 다녀왔다. 아트마켓행사인 APAM(Australian Performing Arts Market)참관이 주목적이었는데 같은 기간에 거리극과 무대극의 신작발표가 페스티벌 형식으로 개최됐다. 행사기간 동안 이 도시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로 인해 호텔과 항공편 예약이 모두 동이 날 정도로 인기 있는 축제다.이 축제에 대해 좀더 소상하게 살펴보면 흥미로운 요소들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소요 비용은 10억원이 조금 넘었다. 예산조달은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로부터 68%를 지원받고 나머지는 자체수입과 협찬으로 충당한다. 1주일 동안 총 관람객은 2008년의 경우 180만명이었으며, 자원봉사자만도 매일 2백여명이 페스티벌을 위해 봉사한다. 정말 부러운 것은 연방정부에서 재정적 지원은 물론 외국 공관을 통해 홍보와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더욱 놀랍고 부러웠던 것은 거리극이 열리고 있는 공원에는 너무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입구에서 정리요원이 입장객을 카운트하면서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오는 관객수만큼만 입장시키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공연 입장권이 매진됐다는 사실이다.우리나라도 각 지역별로 특화된 축제를 개최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선결돼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우선 운영주체가 관이나 공기업이다. 이는 예산도 중요하지만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축제 관련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대회운영을 함으로써 공연단체나 인맥관리 및 네트워크 구축, 예산절감, 축제의 특성 유지 등 축제내용도 알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이나 공기업에 담당자나 실무책임자 업무를 맡기게 될 경우 1~2년마다 바뀌게 되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효율이 떨어지게 되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축제의 성격이 매번 달라지게 될 우려가 있다.다음으로 축제 참여하는 공연자의 경우 반드시 프로만으로 제한하지 말고 일반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면 더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개개인이 무질서하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조직적이고 집단화하여 사전에 충분한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 참여하게 된다면 축제는 소통, 참여, 화합의 장이 될 것이 확실하다. 이제 우리나라 축제도 달라질 때가 됐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대수장군 풍이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증선지가 중국 고대시대부터 송대까지 중국 4천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중국 역사 입문서다. 책 속에는 황제에서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들의 지혜와 삶이 담겨져 있다. 십팔사략에는 장군 풍이(馮異)의 이야기가 나온다. 풍이는 중국 후한 광무제 때의 장군으로 별명이 대수장군(大樹將軍)이다. 그는 군사전문가로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강력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평소의 마음가짐도 매우 엄격하고 겸손했다. 아마도 그의 가장 큰 덕목은 겸양의 경지까지 내려간 겸손한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크고 작은 전투 후에는 으레 전공에 대한 논공행상이 벌어진다. 그가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는 별칭(別稱)을 얻게 된 것은 매사에 겸손해 모두가 치열하게 공을 논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빙긋이 웃으며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물러나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대수장군이라는 말은 후세에 매사에 겸손하고 말 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됐다.겸손은 경건하고 사려깊은 삶을 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미덕으로 나타난다. 겸손은 자기자신에 대한 진정성과 자부심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구현되지 않는다. 교만의 모습으로, 열등의식이나 비굴함으로 나타난다. 겸손은 참으로 자신있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인격이다. 딕 디보스는 겸양이 지니는 몇 가지 장점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겸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심의 기초인데, 동정심이나 용기처럼 개인의 고결함과 자유의 보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겸손은 관대함과 친절한 수긍, 관용, 융통성 있는 견해를 갖게 하여 타인의 가능성 등 좋은 특성들을 기꺼이 보고자 하는 태도를 갖게 해준다.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은 옳은 일의 일부이며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우리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해주고 우리를 진실하게 해준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공정해지려면 겸손은 필수적이다.이처럼 겸손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삶의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를 용서하는 데 필요한 확신을 준다. 어떻게 보면 겸손은 아첨을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한 일을 바로잡게 하고, 생색을 내지 않으면서도 남을 격려하는 좋은 무기다. 실제적인 면을 보더라도 겸손함은 처세와 인간관계에 있어 부드럽고 세련된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정치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은 겸손의 중요성을 알고 겸손하기를 원한다. 아니, 겸손의 모양이라도 갖추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은 겸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마음 같지는 않다. 겸손하게 행동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 힘 없는 자의 처세술 내지는 비굴함으로 보고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을 갖춘 진정한 겸손함이 필요하다. 여기서 힘은 개인별로, 사회적 상황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머지않아 6월 지방선거가 있다. 지역사회를 둘러보면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선출직으로 선택되어 정치하기를 희망하는데,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겸손히 일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현장에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사리사욕에 바탕을 둔 비열함과 중상모략, 권모술수가 수단으로 횡행하는 대신, 민의우선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가슴에 담은 겸손한 사람들이 비중 있는 사람으로 선택되고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선거과정에 최선을 다한 다음 선거 후 논공행상의 현장에서 민초들의 바람을 최우선으로 하였다는 겸손한 모습으로 큰 나무 뒤에서 빙그레 웃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개성공단과 문화재 조사

2년 전인 2008년 2월26일 오후, 우리 일행은 개성공단 2단계 구역에 대한 문화재 예비 조사를 위해 개성시 삼봉리에 있었다. 사업 지구의 남서쪽 끝에 해당하는 삼봉 저수지 제방 위에 서니,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삼봉리 일대의 넓은 벌판과 덕물산, 진봉산이 한눈에 들어왔다.평양에서 온 조사원 중 몇 명은 4년 전 함께 조사를 했었던 우리 일행을 몹시 반가워했다. 원로 고고학자인 리창언 선생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과 함께 다른 조사원들의 근황도 들을 수 있었다.826만4천여㎡ 규모의 개성공단 2단계 사업 지구는, 1단계 사업 지구의 서쪽에 잇닿아 있는 개성시 봉동리, 삼봉리 일원에 위치하며, 남쪽의 덕물산, 북서쪽의 진봉산, 북동쪽의 흥룬산으로 빙 둘러 에워싸여 있는 분지다. 또한 삼봉천이 사업지구의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중앙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어, 문화유적이 있을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지형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산과 들판에는 이렇다 할 나무나 건축물도 없고, 풀도 아직 자라기 전이라 지표 조사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지표 조사는 3월4일부터 시작됐다. 눈은 이미 녹아 있었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현장으로 가려면 봉동 시내를 거쳐 마을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차를 타고 가는 도중 많은 주민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짐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 유치원에서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던 아이들. 우물가에 모여서 수다를 떨며 빨래하던 아낙네들. 논밭에 나와 거름을 주고, 끌고 밀며 쟁기질을 하는 농사꾼 부부.사방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보호(?)해 주는 가운데 북한 조사원들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 조사를 진행하면서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 왔다.지표 조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와 고려시대의 고분군,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유적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산포지 20여 군데를 확인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는 절터로 추정되는 대규모 건물지의 확인이었다.전체 규모가 13만7천여㎡에 달하는 이 대형 건물지는 양주 회암사지처럼 아래쪽에서부터 여러 단을 이루며 건물이 조성돼 있었다. 큰 주춧돌이 흩어져 있는 건물지 주변에서 수많은 기와편과 함께 막새기와도 여러 점 수습됐다. 고려 시대 개성 주변에 108개의 큰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조사를 마치고 한 달 만에 서둘러 지표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곧바로 시굴이나 발굴 조사로 이어져야 하고, 사업 일정에 맞추려면 조사를 빨리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어느 순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개성공단 2단계 추진 일정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흘러갔다.작년 10월, 다른 일 때문에 다시 개성공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개성공단 주변을 돌아보는 도중 공단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수천 명의 북한 노동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된 것은 또 하나의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차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돌아오면서 간절하게 기원했다. 시골 할아버지처럼 선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리창언 선생이 쾌차하기를, 그리고 우리가 조사해 놓은 그 유적들을 발굴하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미즈노 남보꾸의 강력한 권유

미즈노 남보꾸(水野南北, 1757~1834)가 쓴 절제의 심리학을 봤다. 그는 전설적인 일본의 관상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남보꾸는 어려서 부모를 여위어 성정이 난폭하고 거칠어서 18세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죄수들은 일반인들과 비교했을 때 얼굴이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출옥을 한 후에 자신의 운명이 궁금해 한 관상가를 찾아간다. 관상가는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므로 액운을 피하기 위해서는 속세를 버리고 입산수도를 하라고 했다. 이에 놀란 남보꾸는 절을 찾아갔는데, 스님은 수도생활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미리 예행연습으로 1년간 밀과 보리만 먹은 후에 오라고 했다.남보꾸는 부두가에서 노무자 생활을 하면서 1년 동안 밀과 보리만 먹고 지내며 약속한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산사로 들어가는 도중에 전에 만난 관상가를 찾아가게 된다. 남보꾸를 대면한 관상가는 깜짝 놀라면서 1년 전과는 관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그 연유를 묻길래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자 관상가는 1년간의 절제된 식습관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면서 이제는 입산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에 남보꾸는 느낀 바가 있어 3년간은 이발소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씻기며 두상(頭相)을 연구하고, 3년간은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면서 체상(體相)을 연구했으며, 마지막 3년은 화장터에서 소체부(燒體夫)로 죽은 사람의 염을 하면서 골격과 생김새 등 골상(骨相)을 연구하여 나중에는 사람의 운명을 백발백중 맞추는 상법(相法)의 대가로 대일본이라는 칭호를 받는 큰 사상가가 됐다고 한다.결론적으로 미즈노 남보꾸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것은 타고난 관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한 인간이 생의 전반에 걸쳐 검소하게 절제된 생활을 하느냐 못하느냐 여부에 있다고 했다. 특히 운명은 음식을 먹는 평소의 습관에 많이 좌우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관상을 가지고 있어도 빈한하거나 요절하는 사람이 있고, 별로 좋지 않은 관상을 가졌는데도 장수하고 출세하는 사람이 있어 그 원인을 알아보니 각 사람들의 음식습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식사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절제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봤다.음식을 절제한다는 것은 폭음과 폭식, 과식 등 음식을 탐닉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술과 육식은 마음을 탁하게 하고 몸을 무겁게 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술이나 고기를 배부르게 마시고 먹으며 건강한 듯 뽐내는 것은 본래 천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오래갈 수 없다고 했다. 미즈노 남보꾸의 음식에 대한 절제는 곧 소식(小食)에 대한 강력한 권유로 이어진다.음식을 체격에 비하여 많이 먹는 사람은 설혹 인상이 좋아도 만사 순조롭지 않고 매사 뒤늦은 결과로 평생 걱정하게 되고 만년이 불길하다. 대식하고 거기다 그 양도 시간도 정한 바 없는 사람은 말할 것 없이 평생 불운하고 결국 가정도 무너지고 병에 걸린다. 소식(小食)으로 엄격히 조심하는 사람은 예컨대 빈한하고 나쁜 인상이라도 상응하는 복을 받고 장수하며 만년이 행복하고 영양이 부족하게 보여도 병을 앓지 않는다.인상의 선악을 분명히 알고 싶으면 성실하게 3년 동안 식사를 절제해 보십시오.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성공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면, 천지에 이치란 없고, 어느 세계에도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 미즈노 남보꾸는 천하의 사기꾼이 될 것이오!이것은 남보꾸의 말이다. 못 이긴 척 한번 지켜보는 것도 새해맞이로는 좋은 결심인 듯 하다./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지방도 복합문화시설 갖춰야 한다

얼마 전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 올림픽공원에 간 적이 있다. 이른 시간대임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을 선 10대 청소년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학교에서 단체행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근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수많은 전세버스를 보고서야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요즘 한류스타로 국내외에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5인조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몰려온 열성 팬들이었다.지난주 내한공연을 가진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셀린 디온, 앤니오 모리꼬네, 플라시도 도밍고, 보첼리 등 매머드급 외국공연 대부분이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플라스틱으로 된 객석의자에 열악한 방음시설에도 대형 공연물이 유독 서울 올림픽공원에만 몰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지방에는 1만여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만한 대형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규모가 가장 큰 서울 세종문화회관이 3천22석이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2천530석이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대형 공연, 특히 외국의 대형 콘서트는 엄두도 못 낸다. 비싼 비용을 들여 고작 서울에서 하루 이틀 정도 공연할 수밖에 없다. 지방은 마땅한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본에서는 같은 공연인데도 지방까지 보통 20~30여회 공연한다. 그렇다 보니 단가면에서 볼 때 우리가 일본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관람객이 지불하는 공연 관람료는 공연자의 출연료와 항공숙박비, 인쇄선전비, 공연장사용료, 음향, 조명, 무대설치비와 각종 세금 등이 포함된 모든 비용을 좌석수로 나눈 금액이 평균 입장료가 된다. 공연횟수가 늘면 출연료와 항공료 시설비가 절감돼 입장료 가격도 내려간다. 공연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지방공연을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지방에 있는 팬들은 서울까지의 교통비와 숙식비 등 추가비용부담으로 서울팬들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아예 포기해 버린다.그렇다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큰 규모의 공연장을 전국에 당장 건설하기는 어려우며 또한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현재 있는 시설을 잘 활용하면 큰돈 안 들이고도 가능하다. 전국 웬만한 도시에는 1만여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체육관이 여러 곳 있다. 이 시설에 음향, 조명, 무대장치, 방음시설 등을 보강하면 공연장으로 훌륭히 활용할 수 있다.따라서 운동경기도 하고 대규모 공연도 하는 복합 문화시설로 리모델링을 하면 지방 청소년들도 서울의 팬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행안부 통계에 의하면 각 지방에서 개최되고 있는 크고 작은 각종 축제가 2009년 현재 전국적으로 매년 6천여개에 달한다. 별로 실효성도 없는 부실한 1회성 전시행정에 불과한 축제를 정리하고, 그 예산으로 체육관 시설 보강에 사용해 복합문화시설로 재탄생시킨다면 장기적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이렇게만 되면 공연기획사는 전국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공연을 할 수 있게 돼 지금보다 저렴한 가격의 관람료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기획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지방의 팬들은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브랜드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마침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안산의 경우 전천후 복합문화시설인 안산★스타돔이 건설된다고 한다. 오는 2014년 완공되면 이곳에는 야구경기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센터와 영화관, 대규모 공연도 할 수 있는 시설들을 갖추게 된다. 앞으로 4년 후 인기절정 스타들의 국내 공연은 물론 세계적인 공연물을 쾌적한 시설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해 보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며 기대가 앞선다./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납관부 일기

언제부터인가 신문의 부고란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평소 알고지내던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자신의 생의 마감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고는 짧은 글로 고인의 나이와 직업, 그리고 남은 가족들, 발인장소와 일시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전에는 이것이 남의 일인냥 하여 지나쳤지만 이제는 새삼 나의 일로 다가온다. 나도 언젠가는 인생을 마감하면서 짧은 글로서 나의 죽음을 고지하지 않을까?납관부 일기(納棺夫 日記)는 아오키 신몬이 10여년간 장례회사에서 납관부로 일하면서 쓴 일기와 산문을 모은 책이다. 납관부(納棺夫)는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장례지도사다. 시신을 깨끗하게 닦고 정갈하게 손질과 화장을 한 후 염습을 하여 입관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업에도 실패하고 문학가로도 별볼일 없던 저자는 우연히 아기 분유값이라도 벌어오라고 바가지를 긁던 아내가 내던진 신문의 구인광고를 보고 납관부일을 하게 된다.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죽음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일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아울러 죽음을 기피해야만 할 악으로 생각하면서 생(生)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현실의 모순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언젠가 저자는 심하게 부패한 독거노인의 시신을 수습하며 엄청나게 슬어버린 구더기들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빗자루로 연신 쓸어내면서 그는 죽은 이의 몸에서 생겨난 작은 생명체들도 단 며칠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빗자루를 피해 구물구물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은 생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끈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으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이었다라는 옛 수행자의 뜻을 체득하는 과정은 그의 죽음에 대한 성찰을 잘 표현하고 있다. 수명은 영어로 life expectancy이다. 자기가 얼마정도 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수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기대를 예측불가능하게 다가와 사정없이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가끔 가다 스스로 지나치지 않은가? 할 정도로 업무와 일상에 몰입하는 자신을 들여다 본다. 혹은 왜 사느냐?하는 인생의 의미가 서늘하게 다가와 뒤를 돌아 보기도 한다. 숨가쁘게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바쁜 일상속에서 의도적이라도 한번 정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정신없이 달려가는 우리의 삶에 조용히 정지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은 명리(名利)의 큰 산에 미혹된 헝크러진 우리의 마음에 존재의 근저를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20대에는 묵자의 치열함으로 살고, 30대는 한비자의 엄격함으로, 40~ 50대는 공자와 맹자의 노련함으로 살고, 60대 이후에는 노장의 사상을 받아들여 여유와 유유자적, 무위로 살아가라 했는데 불현듯 죽음을 생각하니 지금의 이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고 귀하게 생각된다. 평소 죽음을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자세로 담담하게 미학적으로 받아들여온 필자는 불현듯 분기가 일어난다. 창밖에는 벌써 봄날의 새 기운이 알게 모르게 밀려오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순간 뒤엉켜 살아가고 있는 같은 민초들의 냄새나는 살맛을 느끼고 싶다. 이승에서 함께 뒹구는 개똥밭이 얼마나 좋은 것이냐. 여하한 경우라도 태연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아오키 신몬의 죽음에 대한 사념은 생과 사가 눈과 비가 함께 엉클어져 내리는 진눈깨비로 표상되어 다테야마 마을을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내리고 있듯이 필자도 비록 중후반의 장년기이지만 아직까지는 20대의 묵자처럼 치열하게 이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고고학과 신기술

고고학 발굴 조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 실측이다. 실측은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정보를 도면으로 옮겨, 보는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말한다. 고고학에 입문할 때 가장 먼저 하는 훈련도 실측이며, 도면만 보아도 조사기관의 발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실측은 중요하다. 때문에 모 대학에서는 고고학 교수를 선발할 때 유물실측 시험을 보기도 했다.실측은 3차원의 데이터를 2차원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는 유구의 형태나 유물의 단면 모습 등을 보여주기 위하여 고고학 보고서에는 반드시 실측도면이 첨부되기 마련이다. 보고 그리는 것이니까 실측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적이나 유물이 가지고 있는 공간 좌표를 파악하여 축소된 형태로 도면에 정확하게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발굴을 하다 보면 주거지 패총, 고분, 건물지 등 여러 종류의 유적이 노출되는데 그 중 실측하기 가장 어려운 유적이 산성이다. 대부분의 산성은 높은 산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어 실측을 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벽 중에는 높이가 20m에 달하는 것도 있어 어떻게 해야 정확한 실측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산성을 발굴하는 현장에서 풀어야 할 큰 숙제였다.지난 2000년 12월, 자동차 회사에서 엔진 개발을 담당했던 몇 명의 전문가들이 박물관으로 찾아와 엔진 도면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레이저 스캔 기술을 고고학 조사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하며 자문을 부탁했다. 레이저 스캔 기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그동안 고민해 오던 정확한 실측의 숙제를 풀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됐다.곧바로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던 남한산성과 연천의 고구려성인 호로고루 성벽에 대한 실측을 의뢰했다. 3D-Scan의 결과는 정확도에 있어서 그동안 해 왔던 실측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높이 5m에 길이 수십m의 성벽을 실측해도 오차범위가 10㎜ 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단면과 함께 유적에 대한 3차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3D-Scan으로 한 번 도면을 작성해 놓으면, 이후 모형 제작이나 정비, 복원 시에도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남한산성과 호로고루에서 처음으로 고고학 실측에 적용한 이후 고고학 조사의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3D-Scan 기술. 지난 10여년 동안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 고고학 실측을 기계로 하는 것에 대한 많은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조사기관들이 1m 간격으로 줄을 치고, 언 손을 녹여가면서 줄자를 대고 실측하지 않아도 정확한 도면을 확보할 수 있는 3D-Scan 기술을 현장에서 이용하고 있다.고고학 조사에 있어서 3D-Scan 기술의 사용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단순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이 경향은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실측 가능 여부가 고고학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새로운 수준으로 발돋움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며칠 뒤 남한산성 8차 발굴 보고서가 간행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유구뿐만 아니라 유물에 대한 실측과 탁본까지도 3D-Scan 기술로 작업한 첫 번째 보고서가 될 것이다. 이 보고서가 고고학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징후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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