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공의 의미

싱그러운 5월은 우리에게 그 계절의 상큼함과 넘치는 활력만큼이나 긍정적인 삶의 가치, 아니 성공적인 삶의 요소들을 가르쳐 주는 시기이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이 들어있는 5월은 사회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짚어보고 되새겨보는 기회가 된다. 그 관계의 저변에는 반드시 사랑과 존경과 배려의 마음이 깔려있게 마련이다. 이 5월의 절기가 주는 사회적·인간적 유대가 견고하고 튼실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요, 그런 사회는 아름답고 따뜻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 성공은 객관적인 판단에 의해 규정되는 게 아니라 주관적인 인정과 감사가 따를 때 가능해 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너무 표피적이고 외형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이른바 성공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남의 떡만 커보여서’ 항상 만족의 한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그 성공의 가치기준이 돈(재력)이 많아야 하고, 힘(권력)이 있어야 하며 허울(명예)이 좋아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 성공을 이루는 방편으로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좋은 연줄을 잡아야 하며 좋은 돈줄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정통한 어느 외국 인사는 “한국사회의 상류층일수록, 부유층일수록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면 대략 이재(理財), 사교육, 골프 등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더라”고 말했다. 그것이 일리 있게 들리는 게 지금 당장 우리 사회를 열병처럼 휩쓸고 있는 사회문제인 부동산과 과외요,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을 심심찮게 낙마시키는 게 바로 골프다. 마치 그 부류에 들지 못하면 사회적 약자요, 소외계층이 되는 것처럼 비춰지고 그것은 곧 ‘빈익빈 부익부’니 ‘사회의 양극화’ 등과 같은 개념으로 정리돼 갈등과 분열의 사회 분위기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중산층이 없어져 버렸다는 얘기는 바로 사회 구성원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정서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 성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의 성공은 어떻게 보면 참다운 가치의 성공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전형적인 출세(出世) 지상주의에 만연돼 있다. 출세는 말 그대로 남을 누르고 밖으로 우뚝 나와 서 있어야 되는 것이지, 남과 같이 있으면 출세가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에 내 몰리게 돼 합리와 상식 등이 배척당하고 수완과 요령 등이 득세하게 마련이다. 이런 출세지상주의는 우리 사회를 무한경쟁의 투전장으로 만들어 개인적인 가치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야하는 공동체정신을 훼손하게 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보람을 느낄 때 그것이 진정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성공의 기준이 정착돼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사회적인 위계나 물질적인 위상으로 인간의 가치가 평가되고 재단되는 풍토가 된다면 그 사회는 한국적 잣대의 출세는 있을지 몰라도 참다운 성공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인간의 가치를 탐구했던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는 성공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 했다. “당신의 일이 비록 작은 일이라도 전력을 기울여라. 성공은 자신의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말하는 그런 성공이 사회문화의 기조가 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미디어는 ‘오감(五感)의 메시지’

필자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소통의 방식에 주목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메시지를 작업 속에 반영하고자 노력해왔다. 미술이 예술로 존재하기 위해선 한 시대를 통해 그 사회와 개인의 시대적 관점, 지속되는 가치관과 상황 등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보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가는 일상을 관찰하되, 일상성을 초월해 작품의 자율성을 확보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멀티미디어! 이것은 문자, 음성, 영상 등을 융합시킨 정보전달 매체를 뜻하는 단어지만 꼭 기술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미까지 포괄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이니스는 “진정한 권력이란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능력에 달려 있으며, 이는 오로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통제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커뮤니케이션 언어를 통제하는 자는 문화를 통제하고 결국 진정한 권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마샬 맥루한도 “세가지 중요한 기술의 변화가 인류사회의 형태와 문명, 문화 등을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이 세가지 기술의 변화란 표음문자의 발명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마르코니의 전신 발명 등이다. 첫번째 시대는 문자 이전의 시대, 혹은 부족적인 시대이며 두번째 시대는 구텐베르크 시대, 혹은 개인주의 시대이고 세번째 시대는 현재의 전기전자의 시대, 또는 재부족화한 시대이다. 맥루한에 따르면, 인쇄술의 발명은 감각의 균형을 전면적으로 파괴시켰고 언어를 표준화했으며 마침내 소리 내어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즉 듣기와 읽기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이러한 시각과 청각 등의 분리로 인한 심리적인 결과는 개인주의였다. 오랫동안 퇴화된 우리들의 오감을 되찾아준 전기시대의 멀티미디어는 인간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두가지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측된다. 첫째, 컴퓨터의 정보처리 능력에 힘 입어 커뮤니케이션 메시지가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접속됨으로써 미디어의 통합화현상이 가능하게 된다. 즉 문자, 음성, 영상 등이 각각 개별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던 게 통합된 미디어에 의해 하나로 합쳐진 정보전달이 가능하게 된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정보의 발신자이자 정보의 수신자가 되는 게 가능하다. 개인은 라디오나 TV 등과 같이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였으나 멀티미디어 사회에선 쌍방향성을 갖는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 예술 작품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미디어 아트의 상호소통방식은 관객들을 기존의 수동적 입장에서 적극적 예술 참여, 현실 참여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완성된 채 벽에 걸려 있는 회화와 그것을 바라만 보았던 기존의 수동적 방식에서 미디어 아트는 관객들을 해방시킨 것이다. 이처럼 관객들의 참여가 극대·민주화된 게 미디어 아트의 특징이다.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상호작용)의 세계에선 국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라틴어로 공동체의 뜻이자 지식과 경험의 사회적 공유과정이다. 즉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한다. 인터랙티브는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놀이의 즐거움을 제공해 문화적 자산의 활용을 극대화시킨다. 시대가 제공하는 미디어라는 기본 인프라 위에 예술작업은 시대변화와 흐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더불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상상을 경영하는 예술가들의 재능, 창조성, 모험심, 지적 자본 등이 오감을 통해 표현되는 이 시대의 예술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바로 미디어아트 세계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우리시대의 大木匠 신응수

우리의 전통문화가 주목받아야 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 환경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공예품이나 공연에서의 예술적 가치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높은 장인 정신과 예술적 가치와 함께 우리의 전통문화는 자연을 닮고 욕심을 내지 않고 주변과 조화하는, 즉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라는 것인데 이는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과제를 우리 선조들이 먼저 추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문화가 날이 갈수록 단절되고 있으며, 배우려는 사람들도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특정분야는 돈이 넘쳐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고, 오히려 지나친 모습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공예분야는 대가 끊어질 위험이 많은 분야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건 누구의 책임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반성해 볼 대목이 있다. 우리들 스스로가 빠른 것, 편리한 것, 대량 생산물 등에 길들여져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삶을 스스로 포기하진 않았는지 말이다. 즉 우리들 생활 속에서 묵을 갈고 붓으로 글자를 써보거나, 한지로 선물을 포장하거나 도배를 하거나 아파트생활 속에서 방문이나 창 등을 전통양식으로 활용해 보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다. 생활 속의 실천은 수요를 창출하고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선 공급이 된다. 이렇다면 자연스러운 순환구조가 생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문화재를 공부할 때 우리의 의·식·주 중에 집을 선택했다. 사람살이가 문화인데 우선 공간개념을 배우기 위해 목수 신영훈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이론은 골방에서 배우고 전국의 한옥 현장을 찾아다녔다. 무수한 한국의 대학 중 한국건축학과는 단 한곳도 없었다. 겨우 7년 전 부여에 전통문화학교가 만들어져 3년 전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참으로 기구한 한국 건축계의 현실이다. 이때 대목장 신응수 선생을 알게 됐다. 선생은 충북 청원 출신인데 중학교를 마치고 10대 후반 사촌형 손에 이끌려 한옥 건축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궁궐 건축 목수의 적통을 이어오던 조원재와 이광규라는 스승을 만나 오늘날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수원화성 성곽 장안문 등 전통 건축 복원·보수공사와 아울러 청와대 상춘재나 대통령 관저, 삼청동 총리공관 등을 짓는 큰 목수로 성장했다. 이런 그가 후배들과 많은 시민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한국전통건축박물관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에 1만여평 땅을 시로부터 구입해 지으려 한단다. 필자는 선생이 다른 지역에서 박물관을 지으려다 지친 일화를 알고 있으면서 가슴이 아팠었다. 부천에 최종적으로 결정이 나게 됐다니 선생의 기쁨보다는 경기도와 부천시는 복덩이가 굴러왔을 것이다. 선생이 추구하는 박물관은 사람들이 한옥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포나 서까래 등 한옥의 속살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박물관을 짓고 싶고 후배 목수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하고자 한단다. 또한 박물관 내에는 실제 전통 건축에 있다가 교체한 실물 부재와 강릉 객사문과 수덕사 대웅전 등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축소 재현한 모형 건축물, 창덕궁 낙선재 등 궁궐이나 전통 양반 가옥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생활체험관 등도 들어선다고 한다. 박물관이 완성되면 선생도 여기서 후학을 키우며 사시겠다고 한다. /황 평 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미술시장과 작가정신

최근 일간지 미술기사는 단연 호황을 맞은 미술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미술계 봄맞이’를 시작으로 ‘이젠 부동산 팔아 그림에 투자해볼까’ ‘미술시장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우아한 돈벌이 아트테크를 아세요?’ 등등 선정적인 제목과 기사들이 판을 친다. 더욱이 그동안 미술계에서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블루칩, 아트펀드, 아트테크, 개미군단, 펀더멘털 등 주식시장에서나 통용되던 용어들이 그대로 미술시장에서도 난무한다. 일찍이 보지 못하던 현상이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지독한 불황을 겪어온 미술시장으로서는 이 극적인 반전에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불황이 깊은 나머지 국가에서 ‘미술은행’을 설립하고 매년 25억원 안팎의 예산으로 그림을 구매하여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한 극단의 처방까지 내릴 정도였다. 이러한 미술시장 호황의 일차적 수혜자는 당연히 작가들이다. 좋은 일이다. 그동안의 불황으로 대부분 작가들의 생활은 극도로 열악해져 극빈계층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불과 두 달 전, 한 미술문화연구소가 조사 발표한 통계만 보아도 대부분의 미술가의 경제적 현실이 고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전국 시각예술인 1천3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를 보면 30.4%가 월수입이 없다고 답했고, 월수입이 100만원 이하라는 응답도 27.6%나 됐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사이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이제 미술계의 여건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많은 작가들이 지난날의 어려움을 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결코 좋은 작가의 작품들이 팔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수준 높은 작품보다 오히려 대중취향의 작품과 일부 인기 작가들에 편중된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작고작가나 일부 원로작가의 경우 대체로 미술사적으로 평가된 작품성과 유통의 희소성으로 인해 인기를 끄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일부 젊은 작가들의 경우 비평적 관점이나 미술사적 평가의 잣대도 없이 잘 팔리고 있는 현상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 창작의 본질과 그에 따른 예술적 진정성이 없이 유행을 좇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구매자들이 단순히 감상을 위해 소장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러나 최근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화랑이나 경매사, 전시기획사들이 이를 투자의 대상으로 부추길 경우 자칫 재능 있는 작가들이 훗날 성취해야 할 예술적 성과가 일시적으로 소모될 우려가 크다. 재테크를 위해 투자하는 컬렉터 또한 마찬가지이다. 실제 필자가 지난달 요즘 미술시장을 달구고 있는 아트페어를 몇 차례 돌아 본 후 과연 지금의 호황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미술시장의 구조인가 의구심을 갖게 됐다. 그림이 잘 팔리는 젊은 작가 중에는 물론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은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 지난날 유행한 사조의 회화작품으로 판매실적을 올리는 작가들이 많았다. 소재만 조금씩 다를 뿐 실물을 확대하거나 과장하여 사진처럼 그리는 식의 이들 작품은 과거 60~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팝아트나 극사실주의의 재탕이며 우리나라도 70년대 후반 유행했던 사조의 되풀이에 불과했다. 미술사적으로 평가되지 않는 작품은 결코 생명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미술사에 편입된 작품은 반드시 미술시장으로 흘러 자연스럽게 유통되어 왔지만, 반대로 미술시장에서 인기 있었던 작품이 미술사에 편입된 예는 흔치 않다. 시류에 영합하는 작품은 일시적인 상품성을 가질지언정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거품은 꺼지고, 작가는 매몰되고 만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이 경계해야 할 대목이며, 미술시장에 연연하기에 앞서 건강한 작가정신을 가다듬을 때다.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인텔리데이팅’과 공연장

‘요즘 미국에선 ‘인텔리데이팅’(Intellidating)이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인텔리데이팅이란 ‘지성’과 ‘데이트’를 합친 신조어로 연인(戀人)들의 데이트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젊은 남녀가 만나면 저녁식사나 영화감상, 아니면 술집이나 댄스클럽엘 가고는 했는데 이제는 뭔가 이런 오락적이고 형식적인 만남에서 벗어나 예술 감상이나 독서, 토론 등으로 지적(知的) 활동을 함께 나누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텔리데이트족들은 지적인 활동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애무’하는 것보다 더 관능적인 건 없다”고까지 스스럼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흐름은 그동안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파티로 가득 찬 미국 젊은 그룹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해외의 유행이나 조류에 매우 민감한 우리 사회의 젊은 계층에게 이런 신선한 유행이 빨리 전파됐으면 싶다. 70년대 생맥주, 통기타, 청바지 등이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그 열정처럼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인텔리데이팅 문화가 대학가나 젊은층 세대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대한민국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새로운 외국의 풍조가 녹아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그들을 ‘P 세대’로 규정하는데 여기에서 P는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힘’(Potential Power),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는 세대’(Paradigm Shifter) 등을 뜻한다. 살펴보면 어느 한 요소도 외국의 바람직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동인(動因)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지난 2002년 월드컵이나 선거, 또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일치된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 직업의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인텔리데이팅이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유행처럼 번졌으면 공연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란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 서울과 같이 대도시 공연장의 주요 관객들을 분석해 보면 P세대에 들어가는 20~3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신흥 산업도시나 고용 창출 기반을 배후로 두고 있는 도시에 위치한 공연장들을 보면 관객시장이 비교적 잘 형성돼 있다. 예를 들어, 불황을 모르며 지속 성장해 주민들의 평균소득이 이미 3만불 시대를 구가하고 있어 언론에 소개되고 있는 거제와 같은 도시의 공연장은 클래식 공연과 같은 순수예술이 오히려 많은 관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것은 지역에 소재한 조선소 2곳이 주민들의 소득을 받쳐주며 문화예술과 교육의 욕구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많은 아트센터들이 건립되고 있다. 특히, 단일 생활권에 들어있는 수도권 도시들에 규모를 갖춘 복합문화예술공간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젊은층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 환경에서 활력 넘치는 문화 활동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인텔리데이팅이 유행을 탄다면 공연장의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각 지역들마다 갖고 있는 고유의 사회문화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들의 참여의식과 열정을 문화예술에 접목시킨다면 그 지역의 문화 민도(民度)는 크게 향상될 것이 분명하다. 지식이 기반이 되는 문화의 시대에 사랑과 문화가 결합된 지적 활동이란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경쟁적으로 나서는 공연장 건립 붐 속에 미국에서 부는 인텔리데이팅 바람이 한국에도 봄바람처럼 불어온다면 정말 좋겠다. 공연장의 주요 관객 구성이 기성세대와 함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는 젊은 세대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인텔리데이팅이 새삼 남다른 느낌을 준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프랑스 미술교육의 저력 ‘보자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는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프랑스인들의 사고의 틀은 데카르트의 이성적 논리, 즉 ‘카르테지앙’에 의해 모든 이론이 형성되고 펼쳐지며, 상대를 설득하는 중요한 방식이 된다. 20세기 미술사에서 중요한 막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은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은 일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탈바꿈됐다. 그는 작품을 예술가들의 손으로 만든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용품을 차용하더라도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사고(思考)를 창출할 수 있는 컨셉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 예술가들의 정신을 크게 변화시켰고 예술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었다. 즉 현대 예술의 개념과 영역을 확장시킨 셈이다. 이처럼 뒤샹이 20세기 미술사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까르테지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프랑스 미술교육의 저력을 보여주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국립고등미술학교 이하 보자르) 또한 철저히 데카르트의 논리에 의해 엘리트 미술교육을 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미술이론을 정확히 끌어내 논리적으로 순서에 따라 작업하는 방법을 중요시하고 작품을 설명할 때 감정에 기대지 말고 대중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도록 가르친다. 프랑스 미술교육은 문교부와 문화부 두 축으로 이뤄진다. 미술대학은 문교부 산하로 예술사를 전공할 학생들에게 적합하다. 반면, 보자르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생산자, 프로 예술가 양성교육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문화부 소속으로 오늘날 프랑스 예술을 지탱해온 저력 있는 미술교육 시스템으로 소수 엘리트 교육도 자랑한다. 앙리 마티스와 조르주 루오 같은 세계미술사의 수많은 거장들이 보자르 출신이었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보자르 시험에서 3번 떨어졌을만큼 입학이 쉽지 않다. 프랑스 보자르 교육의 핵심은 두 축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미술이론과 실기가 동시에 완전히 융합된 작업세계의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보통 이 시기에 자신이 평생동안 하게 되는 작업의 기본방향이 결정되고 20년 이상 한 방향으로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둘째, 대중에게 자신의 작업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혹독한 훈련이 반복된다. 현대미술은 특히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므로 관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수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작업의 이론적 배경이나 철학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초청 교수로 있는 핸느시 보자르는 파리 서남쪽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데 프랑스 전체 보자르 52곳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큰 곳이다. 4월 중순 브르타뉴 지역 보자르 4곳은 신입생 공동 입학시험이 있는데 전세계 국적을 가진 1천여명의 지원자들이 몰린다. 핸느 보자르는 신입생을 80명 선발하는데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1지망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입학 경쟁률은 12대 1 정도 된다. 보자르에 떨어진 많은 학생들은 미술대학을 선택하지만 미술대학이라고 입학과 졸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매년 4월 입시철 필자가 동료 교수들에게 반복해 듣는 말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왜 똑같은 테크닉과 획일적인 생각으로 중무장됐는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한국 미술교육의 현주소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란 직업은 과거의 사람이 미래의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한 경쟁의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미술대학생이 치열하게 대중과의 소통을 교육받은 보자르 학생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문제아의 배경에는 문제 부모가 있듯 한국 미술대학생들의 문제점은 교수들의 낡은 교습법과 커리큘럼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교수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만큼 현실적인 커리큘럼과 비전 있는 교습법이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김문수 지사의 판단

필자는 경기도가 추진하는 대형 문화공간, 즉 박물관, 미술관 정책에 대해 진정성이나 정책 결정과정의 부족, 운영방안 미흡 등의 이유로 중단을 여러 차례 요구했었다. 554억원을 들여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에 5천㎡ 규모로 건립하려던 선사유적지 박물관은 고구려 유적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사유적지 위에 박물관을 짓겠다는 황당한 계획이었다. 남양주시 능내리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1천232평에 18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시작했던 실학박물관은 콘텐츠 부재 및 장소를 잘못 선정해서 터파기 공사 중 지하에서 물이 나와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 또한 여주 영릉(英陵)에 300억원을 들여 연면적 5천910㎡ 규모로 추진해온 세종대왕 박물관 건립도 건립부지가 조선시대 재실(齋室:제사를 지내는 집) 터라는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서 경기도는 또 한 번 체면을 구겼다. 그 동안 경기도는 필자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무시하며 일부 관변학자들의 입장만 수용하여 강행을 하더니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지지부진하던 사업들이 최근에 김문수 지사의 취임 후에는 아예 포기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김 지사는 수백억 원씩 투입되는 박물관이 투자 대비 효과도 너무 적고, 소방, 교통 등 기초행정 분야에 예산을 우선 투입하겠다고 한다. 김 지사의 판단은 오만일까? 필자는 김 지사의 판단을 존중한다. 다만 김 지사의 결단이 문화적인 상상과 감성이 아닌 경제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울러 김 지사와 경기도 공무원들에게 다시 호소한다. 다가올 미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사람, 즉 시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개개의 사람(시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identity ! 이것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동시에 가장 소중하고 큰 문화공간은 ‘사람’이며, 아울러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진실을 알았으면 한다. 최근의 문화공간 확보는 대형화, 즉 거창한 건물부터 신축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문화공간의 구성요건은 건물, 주제, 사람(전문 인력), 예산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거꾸로 건물에만 치중하거나 예산을 건물 치장하고 유지하는 데만 사용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지역(문화거점)의 정체성을 무시한 무리한 공간확보는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재활용’의 의미를 포함한다. 동사무소, 마을회관, 양로원, 교회, 사찰, 방과 후 학교의 교실 개방, 문화예술인이 거주하는 작업실, 의지가 있는 작은 카페, 사찰의 성보 박물관 심지어 다방까지도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행위자와 관객이 예술의 우수성과 우월함에 나태하거나 만용을 부리지 않고 거리감 없이 직접 향유할 수 있는 작지만 귀중한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정력은 문화공간이 전무한 작은 마을에 이러한 문화공간을 발굴해 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형 사업 실패로 낭비된 예산이 벌써 수십억 원에 도달한다. 이에 대한 부실정책결정 과정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관변학자와 담당 공무원에 대해 엄중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실패 매뉴얼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결정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김 지사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한 판단에 대해서는 문화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자주 접하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나가길 기대한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대추리의 운명과 예술품

2007년 4월초, 오랫동안 사람이 살고 있던 농촌 마을 대추리와 황새울 들녘은 이제 그 운명을 접었다. 집과 농지가 국방부에 의해 수용된지 3년, 마지막까지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주민 50여 가구가 모두 대추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대추리에선 지난 3년 동안 주민들은 물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마을을 지키는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봄 파종해야 할 옥답엔 철조망이 설치됐고, 주민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공부하고 뛰어놀던 옛 초등학교 건물은 무너졌으며, 오랫동안 살아온 빈 집들도 철거됐다. 그리고 마침내 주민들은 농사와 마을의 공동체를 잃고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 다시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 전, 지난 2004년 9월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돼온 대추리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935번째 마지막 촛불행사가 열렸다. 이제 곧 떠나야 할 시간을 앞둔 주민들과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수백명의 사람들은 농협창고에 모여 대추리에서의 추억과 아픔을 되새기며 촛불을 환하게 밝혔다. 행사의 후반, 대추리의 수호신과도 같았던 문정현 신부와 주민들이 무대로 나와 우리는 결코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자고 외치며 촛불을 높이 들었다. 행사가 끝이 나고 촛불도 하나 둘 꺼지는 시각, 그러나 주민들은 차마 마지막 촛불을 끄지 못한 채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대추리는 곧 깊은 적막과 어둠에 잠겼다. 대추리는 지금 역사 이래 가장 조용한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고단한 노동과 삶의 애환으로 힘겨웠던 마을은 며칠간의 휴식기를 거쳐 본격적인 철거 공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주민들이 모두 떠나 적막하기만 한 대추리엔 아직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대추리의 예술품들이다. 그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평화를 기원하고 대추리를 지키려는 의지를 담아 작품들을 남겼다. 어떤 작가는 아예 이곳에 상주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으며, 벽화와 조각 작품 등을 세웠다. 물론 마을 어린이들과 주민들도 참여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무슨 기금을 지원받은 것도 아니다. 순전히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물감과 철판을 사서 만들고 세우며 대추리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렇게 해서 대추리는 평화예술마을로 탄생됐고, 만들어진 작품이 100여점.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곧 철거위기에 놓여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작품을 파괴하지 말고 몇년 후 주민들이 새로 이주하게 될 장소로 옮겨 다시 평화예술마을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들 작품들은 한 시대 역사의 증거이자 평화를 사랑하는 상징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이 각계에 호소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관계부처의 반응은 무관심과 비협조였다고 한다. 다만 평택시가 5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줘 3~4점의 대표적인 작품들만 옮길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다. 과거 독일이 통일되면서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파편은 그 역사적 가치로 말미암아 귀중한 문화재가 됐고, 많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사례가 있다. 이에 비춰 우리의 문화인식은 빈곤하기만 하다. 더욱이 우리 정부가 평택미군기지 조성에 부담해야 할 비용이 약 5조 5천9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생각할 때 이 적은 이전비용은 문화의 시대를 지향한다는 정부나 기관이, 기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척박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만든 수많은 대추리의 예술품들은 대추리의 운명과 함께 파괴돼 영원히 땅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이를 즈음해 진정한 평화의 시대, 평화를 위한 길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사회 지도층의 감정노동

우리나라의 계층·세대·지역·영역간 등 모든 사회 구성의 현장에서 갈등들이 존재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는 어디나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한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생각보다 아주 하위에 처져있다는 점에서도 방증이 된다. 행복이 물질·정신적 만족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과거 70~80년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해졌지만 아직 행복의 기준에서 미흡하다는 아이러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의 GNP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게 되면 행복의 지수가 높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진 만큼 그 단계에서의 또 다른 갈등과 분열 등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소통과 협력의 가치 중요 우리사회의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결국 ‘소통과 포용’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킹의 사회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우리는 그저 ‘의사의 전달과 사회적 연결고리 맺기’의 의미 정도로 인식하지만, 그 두 개의 가치에는 ‘정서의 소통과 공유, 그리고 상생의 협력’이라는 본래의 깊은 뜻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각 부문에서 주관적 논리와 자의적 명분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정치적’ 구조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부문에서 말로는 소통과 협력을 쉽게 운위하지만 생각과 행동의 기초가 되는 사회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아니하다. 이런 사회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게 무엇보다 먼저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의 가치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감정노동이란 지난 1983년 미국 버클리대 러셀 혹스차일드 교수가 직업상 원래의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해 내지 않고 얼굴 표정과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표현한 개념이었다. 대부분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에서 가져야 할 표정과 몸짓의 노동성을 두고 한 개념이었지만 주위에 보면 우리 사회의 각 분야 직업 대부분이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요구받고 있다. ‘섬기는 리더십’ 실천 필요 이제 이러한 감정노동은 이른바 대민 권한과 영향력이 막중한 정치인, 공직자, 기업가, 학자, 전문가 등과 같이 사회 지도층에게 필요해지고 있다. 그들의 언행은 바로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공직자와 같이 국가의 권한과 권력을 갖는 사회 주도그룹일수록 더더욱 감성의 공유와 상생의 협력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백화점에서 손님을 모시는 안내요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주문을 받는 도우미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감정노동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지도자들에게 더욱 감정노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것을 우리는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감정노동은 각 부문의 기층 구성원들에게만 요구되는 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조직을 거느리고 이끌어가는 리더들이라면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회통합과 발전의 중요한 가치이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문화홍보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언론

한국문화를 유럽에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그것은 역설적으로 세계 속의 한국 문화를 아는 것이다. 한국문화만의 독특한 특징을 집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 지역적 내셔널리즘이 아닌 국제적 코드로, 유럽 정서에 맞춰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 문화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일본은 이미 경제 대국이고 중국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나라이기에 유럽은 그들을 무시할 수 없는 면이 있다. 현재 중국 현대미술이 한국 민중미술보다 국제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한국보다 그들에게 더 정치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미술 그 자체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힘의 논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19세기 건물에서, 20세기 사고방식으로, 21세기에 잘살고 있는 유럽은 한국 패러다임과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 문화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구체적 컨셉과 전략, 장·단기계획 등을 세워야 한다. 각국의 문화는 상대적이며 어느 문화나 침범할 수 없는 무게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 문화를 그들에게 알리고 설득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는 사전에 두 문화 차이를 명확히 알고 접근해야 한다. 특히 주의할 점은 상대문화 의식 저변에 자리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읽고 해석하며 유추,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상대문화가 추구하는 가치모이나 기본 패러다임 등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정서와 패러다임이 유럽에서 그대로 적용되리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치열한 경쟁과 성장을 중시하는 미덕이 있지만 유럽은 분배나 배려를 더 중시,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미덕이 있다. 그 결과 근로 의욕이 낮고 사회가 능동적이지 못한 반면 안정돼있다. 지난해 한·불 외교수교 제120주년 행사 때 재불(在佛) 한국 대사는 제대로 된 프랑스 국립미술관이나 장소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그 결과를 사전에 예견했으므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그 이유와 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구축했는가?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문구 아래 전통 문화를 포함한 모든 내용들이 더욱 압축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재불 한인들도 실망하는 수준의 행사내용으로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특히 ‘까르떼지앙’(데카르트의 이성적 사고방식)을 중시하는 프랑스는 논리적인 개념으로 우리 문화를 설득해야 효과가 있다. 필자는 지난달 파리 국립 오르세 미술관장 초대로 마네 전시에 다녀왔다. 새로울 것 없는 인상파 화가 작품을 2007년에 맞는 유니크한 것으로 다시 부활시킨 탁월한 기획력과 컨셉이 아주 돋보였다. 둘째, 프랑스 문화와 정서를 명확히 이해했는가? 그들의 관심을 주목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한국 출신의 유럽 현지 예술전문가들이 상대 문화에 대해 깊숙이 이해하고 있고 설득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는만큼 홍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는 한국영화, 테크놀로지, 모필폰 등 기술문화 및 대중 현상들을 현지 신세대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홍보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셋째, 해외 언론과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는가? 그리고 혁신적인 테마로 홍보했는가? 필자는 고급뉴스 전담 기자들과 능동적인 우호관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문화에 대한 입체적인 정보와 독특한 테마로 해외언론을 위해 보도자료를 국가적 차원에서 꾸준히 제공하고 ‘질적 측면을 강조한 명료한 테마’로 집중적인 홍보를 병행해야 한다. /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한탄강이 사라지면 두고두고 한탄한다

분단의 아픔인 남북의 대치로 인해 역설적으로 DMZ와 한탄강 일대는 건설자본의 개발로부터 살아남은 몇 안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에 의해 수몰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한탄강 일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지역의 중요한 구석기 유적지이다. 더불어 이 일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의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고려, 조선, 근대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자연경관의 흔적과 신비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천혜의 보고(寶庫)이다. 전곡리와 철원의 장흥리를 잇는 중간에 위치한 한탄강댐 예정지는 강 양안으로 매우 넓은 구석기유물 포함층인 제4기의 고토양층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선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구석기 유물과 선사시대 유물 등이 수습되고 있다. 따라서 한탄강 일대는 아직까지 학술적으로 연구해 그 성과를 기록하고 남겨야 할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나아가 역사와 문화와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이곳은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으로는 역사문화지구로 남겨 보존해야 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세계 인류와 공동으로 보존하고 가꿔야할 인류유산의 가치가 높은 곳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구석기 유물이 온존하게 존재하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일본은 구석기유물이 없다보니 조작을 한 다음 들통이 나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던 사실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있는 유적지조차 지키지 못하고 없애기에 혈안이 돼있다. 이미 감사원에선 한탄강댐은 건설되어선 안될 사업으로 결론이 난 것을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건설자본들은 왜 지역 갈등을 일으키고, 천혜의 자연 경관과 역사문화 유적지를 파괴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대규모 댐 건설사업에 대해 사양사업으로 분류하고 기존 댐들도 원래의 자연 상태로 돌이키고 있는데 말이다. 홍수 조절이라면 소규모 저장시설과 가구마다, 또는 마을마다 자급 가능한 저장시설을 확충하는 생태환경적 방안을 강구하는 게 미래에 대한 현명한 준비이다. 즉 지속 가능하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사람 눈을 속이고 엉터리 수치를 들이대는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또한 한탄강만이 갖는 문화사·자연사적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 분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 문화재 조사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밀하게 재실시해야 될 것이며, 그 결과에 의해 댐 건설이 문화유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와 함께 객관적인 평가와 댐 건설이 필요 없다는 결론 도출이 이뤄져야 한다. 이제 토건세력의 이익만을 챙겨주는 대규모 건설사업은 한국에서 사라져야하며, 일부 투기세력들의 검은 거래 역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오랜 지구의 운동이 선사한 신비의 땅,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자연과 조화로운 땅, 인간의 전쟁까지 포용하며 오히려 천혜의 경관을 선사한 땅, 한탄강 일대! 그 누가 감히 겁도 없이 이 땅을 함부로 하려는가? 물길을 돌리는 것은 사람의 핏줄을 돌리는 것이요, 땅을 파는 것은 사람의 몸을 파내는 것이다. 정말로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황 평 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장

작가의 길과 생업의 길

지난 2월 졸업생들을 내보낸 캠퍼스의 3월은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로 활기가 넘친다. 특히 새로 입학한 새내기들의 해맑고 생기 넘치는 표정을 보면 그들과 마주치는 우리조차 벅찬 꿈과 희망의 기운이 샘솟는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공연분야를 비롯해 시각예술 등 여러 예술분야의 전공이 설치돼 있다. 그래서 캠퍼스엔 장래의 예술가를 꿈꾸며 공부하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그 중 필자가 가르치는 과목은 순수미술창작이다. 학생들은 장래에 작가(화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교육과정의 이론과 실기 등을 공부한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경제불황과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시대에도 미술대학 순수미술 전공 졸업반 학생들은 취업을 걱정하거나 이를 위해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생도, 교수도 취업에 관한 한 초연한듯 지내지만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그런 탓에 다른 전공과 달리 순수미술 전공 교수들은 졸업시즌이 돼도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 걱정이 없이 비교적 ‘편하게’ 지낼 수가 있다. 오직 훌륭한 작가로 키우기 위해 4년 동안 열심히 가르쳤기에, 선생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세상에 나가 오직 훌륭한 작가가 되어라’하고 이들을 내보내는 마음은 편하기는커녕 곤혹스럽고 무겁기만 하다. 예술가 또는 작가로서 나서는 것은 분명 인생의 보람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당장 생업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작가란 어쩌면 현실적으로 직장 없는 직업인, 사회·경제제도와는 무관한 추상적인 직업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런 탓에 공공의 사회제도 안에서 작가는 무직에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다. 작가의 직함을 갖고 은행에서 금융서비스를 받거나 생업을 위한 경제적인 활동 등을 보장받는 경우는 없다. 예술과 작품은 당장 돈으로서 환치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본래 작가로서의 직업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생업으로서의 다른 직업을 먼저 찾아야 한다. 며칠 전 보도된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의 ‘문화 분야 사회서비스 실태조사·제도개선 연구 용역 보고서’는 오늘날 예술가들의 참담한 경제적 현실을 보여주지만 새삼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늘 그래 왔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많은 예술인들이 저소득층(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또는 차상위 계층)에 해당되며, 이 가운데 생계 자활 후견 사업(도배·집수리 사업)에 참여하는 저소득 예술인도 있다고 한다. 문화예술인의 70%가 본업만으로는 월평균 100만원도 채 벌지 못하고 29%만이 정규직이며 한달에 70만~80만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고로 예술가의 길은 늘 춥고 배가 고팠다.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박수근 등도 그들의 예술은 위대했지만 가난으로 살다가 갔다. 인류가 절대 가난을 벗어난 문명시대에도, 21세기 문화의 시대, 예술이 사랑받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도 예술가는 여전히 가난하다. 예술이란 사회의 소중한 산소요 맑은 공기가 아니던가. 또 예술가란 혼탁한 세상을 맑은 영혼으로 정화시키는 청소부라 하지 않았던가. 이들의 삶을 최소한 보장해 삶의 질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강도 높은 문화예술 육성정책이 절실하다. 아울러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보호 인식도 절실히 요구된다. 봄이 오는 3월의 캠퍼스에서 장래의 예술가를 꿈꾸며 입학한 새내기들을 만난 기쁨은 크지만,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선 졸업생들을 생각하면 한편 마음이 가볍지만 않다. 그대들 부디 영광있으시라!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민간주도의 문화예술

문화예술이 인간의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치가 돼 있어 문화예술 발전은 바로 국가 선진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기도 하다. 중세기에 고전음악의 감상은 귀족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살롱에 모여 여유롭게 음악의 감미로운 선율에 도취되어 만끽했던 그 윤택함을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일반 대중들도 갈구하게 되면서 예술은 보편적 가치가 된 것이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예술의 향기는 일단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한 다음에야 찾게 되는 정신적 청량제이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는 주민의 삶의 질에 문화복지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민의 문화복지를 구현하는데 예술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삶의 질을 높이는데 촉매가 되는 문화예술이 경제적 자생력의 한계로 공공재원을 쓰다 보니 언제나 관주도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러한 관행에서 문화예술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 건립되고, 그에 따른 전문인력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문화예술의 창의적 역량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그동안 관 주도로 운영돼 왔던 문예진흥원이 민간중심의 문화예술위원회로 탈바꿈한 것은 바로 이를 상징한다. 이에 따라 지역 단위의 문화예술위원회가 민간전문가 체제로 출범하게 되면 명실상부하게 문화예술계의 선진화가 한걸음 당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예술의 민간주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모든 부문에서 합리성 객관성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위상을 견지하면서도 체계적이고 공명정대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이다. 문화선진국이 민간 분야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독자성을 인정할 때는 이미 그 사회가 전반적으로 신뢰와 협력의 바탕을 갖추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지금 발 빠르게 문화예술계가 민간주도체제로 변환하고 있는 가운데 효과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민간 분야의 경쟁력 향상도 절실히 요구된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여건에서는 중앙과 지역, 지역과 지역 간의 문화 편차가 심해 민간 전문성의 깊이와 넓이가 많이 다를 수 있다. 권역 간, 영역 간에 문화적 자원과 재원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 전문인력의 ‘체험적 지식’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경우 일찌감치 내실 있는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지역의 균형 있는 문화예술 성장기반을 닦았다. 이는 바로 일본의 문화예술계가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정착돼 있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한 예로, 일본에는 전국에 1천300곳 정도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지난 2003년 정부가 지방자치법을 개정, ‘지정관리자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공공 문화예술시설의 관리 운영을 외부 민간 전문가나 기관에 위탁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민간위탁의 경우 공개모집과 함께 임의 운영자 지정의 비율도 높아 객관적 정책신뢰도가 높다. 이같은 실질적인 제도를 통해 민간주도로 문화예술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불고 있는 민간전문화 바람이 단순히 문화예술정책 실행을 위한 사업 이전이나 막연한 ‘수직적 탈 관료’의 변화가 아닌 문화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공직사회와 창의적 자율성을 갖춘 민간전문가 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조율하는 대등한 상생의 파트너십 관계로 정립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창의력 발전소, 파리 퐁피두센터

건축사가 레이너 밴험이 지난 70년대가 만든 유일한 대중적 기념비라고 평가한 장소이자 지난 77년 개관 이후 10년동안 하루평균 2만5천명, 연 입장객 7천400만명이 찾은 세계 관광 명소 1위는 어디일까? 그곳은 지난 2일 개관 30주년을 맞은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프랑스 국립 현대미술관)이다.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5만여점의 현대미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고 여전히 세계인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매년 700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건축사의 혁명으로 불리는 매력적인 건축 형태는 물론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체험과 프로그램 기획력 등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지난해 12월 필자는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이하 퐁피두센터) 초대로 설치미술가인 야니크 콜러 초대전에 다녀왔지만, 평소에도 유럽예술가들과 자주 만나 예술에 대해 토론하는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건축의 역사는 한마디로 중력이란 무게와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필자에게 흥미로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건축의 주재료인 콘크리트의 발명, 고딕양식, 퐁피두센터 등이다. 1천년 전 로마에선 두 가지 이상의 자연재료를 혼합·가공해 강도를 유지하는 콘크리트를 발명했다. 이 건축재료는 기존에 사용했던 자연재료인 돌, 흙, 나무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화학적 제품이다. 이후, 중세시대 고딕양식의 특징은 플라잉 거더이다. 중력에서 해방된 이 건축양식은 외부의 틀을 쌓은 후 내부 공간을 완벽하게 텅 비워 건축의 높이에 무한한 날개를 달아줬다. 고딕양식인 독일의 쾰른 대성당의 높이는 127m에 이르며 파리 노트르 담 성당은 고딕 양식의 진수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퐁피두센터는 지난 69년 프랑스 전 대통령이었던 조르주 퐁피두가 직접 기획했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문화와 인간 사이에 존재했던 전통을 극복할 수 있는 복합 예술문화센터 건립을 국책사업으로 삼았다. 회화를 소장하고 전시하며 음악, 영화, 전문 도서관 등의 기능이 집결된 열린 문화예술 공간 개념이었다. 퐁피두센터의 공동 설계자였던 두 사람, 리처드 로저스와 랜조 피아노는 진보적인 건축가로 건축사를 형태나 양식 등보다 과학기술의 진화로 보았고 미완성의 미학을 건축철학으로 삼았다. 공간 조작으로 경사진 보부르 광장, 그 옆에 있는 퐁피두센터 구조는 건물의 안과 밖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형태이다. 내부 공간을 최대한 유연하게 활용하기 위해 기존의 내부 설치물들을 모두 외부로 끌어 냈다. 건물 구조가 거대한 파이프들의 조합처럼 보이는 외부 형태는 철저한 룰에 의해 강한 색으로 표현된다. 즉 파란색은 공기 순환, 노란색은 전기배선, 초록색은 급수 파이프, 빨간색은 동선 등을 나타내는 통로의 색상이다. 설계자는 퐁피두센터가 기념비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중과 끊임없이 쌍방향 작용하는 예술문화공간이길 바랐고 그들의 희망은 이뤄졌다. 특히 랜조 피아노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문하생을 고용, 이들의 문화를 건축에 반영하면서 현재까지 지구촌을 누비고 있다 유럽의 정서는 한 개인이 탁월한 열정으로 오랫동안 성찰해온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특별한 영향력을 만들고 확산시켰는가에 주목한다. 특히 프랑스 사회는 개인의 독특함(Unique)과 다양성 등을 존중하되, 총체적인 관점에서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 이같은 사회 배경과 비전 등을 갖춘 지도자의 강한 의지가 퐁피두센터를 미래에 세운 것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 책임자다. 그래서 예술은 정치이고 힘의 상징이자 한 나라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석탑은 울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동경 중심지에 있는 오쿠라 호텔에 조용히 잠복(?)했었다. 필자가 출연하는 방송사의 취재 요청에 호텔 측이 거부했고 우리 일행은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해 호텔의 마당이나 정원으로 보이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피워 무는데 무언가 나를 당기는 기운이 있어 홀린 듯 끌려가보니…. 아! 잘 생긴 탑 2 기가 오쿠라 호텔 구석에 처박혀 있다. 순간 온몸으로 전해지는 전율과 아울러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하나는 평양의 율리사지에서 뺏어온 팔각오층탑이고, 또 하나는 경기도 이천에서 약탈해온 ‘이천향교방오층석탑’이다. 이 탑에서 ‘방’은 부근이란 뜻으로 이천 향교 근처에 있었다는 뜻이고 원래는 쌍탑이었다. 현재 양정여고에 다른 1 기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제 모습을 잃어버린 채 남아있다. 일제는 지난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의 장식품으로 옮겼다 지난 1918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약탈해가 현재 동경의 오쿠라 호텔에 서 있다. 경복궁에 있을 당시의 사진 자료 등 유출 경로가 확실한만큼 보다 상세한 경위 조사와 함께 서명운동 등으로 모든 시민들과 단체가 참여하는 환수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적 여론을 조성하고, 소송 제기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는 수순이 필요해 보인다. 이천향교방오층석탑은 보존 상태도 양호한 국보급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이를 되찾기 위한 환수운동은 이천의 정체성을 찾고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식을 성숙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일본에 있는 문화재의 경우 지난 1965년 한·일협상 때 양국은 약탈문화재 1천400여점 반환에 합의했지만 경제지원 대가로 우리 정부는 서둘러 협상을 끝내 버린 오류를 범했다. 일본의 민간인 소유 약탈문화재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기증을 권고할 수 있다는 합의 의사록만 별도로 작성한 정도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 주도의 문화재 반환은 데라우치 문고에서 시작됐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지난 1910년부터 5년동안 문화재 조사사업을 실시, 문화재 1천500여점을 반출했다. 야마구치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이들을 찾아내고 지난 1995년 돌려받은 건 민간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당시 야마구치 대학은 정부가 아닌 대학 차원에서 보내 주며 ‘반환’ 대신 ‘기증’이란 용어를 썼다. 최근 있었던 조선왕조실록이나 북관대첩비 등의 환수도 민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민간의 노력으로 시작됐지만 최초로 국가기관간에 주고받았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를 잘 활용해야한다. 동경대는 국가기관이며 국가기관인 서울대로 조선왕조실록을 돌려준 건 일본 스스로가 65년 한·일협상을 파기한 것으로 간주해 우리는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한다. 혹자는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문화고 역사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 때 일수록 주변을 돌아보며 차분한 정리와 새로운 충전이 필요할 것이다. 경기 도민들과 특히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잘 전승하고 있는 이천 시민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장

우리 사회의 ‘녹색화’가 절실하다

문화예술계에 잘 아는 분이 있다. 그 분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후 공연예술 분야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각지를 수시로 넘나드는 글로벌 예술 비즈니스맨이다. 최근 그 분은 갈수록 확장되는 중국시장을 내다보고 그곳에 대한 공연예술분야 교두보 확보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예술계에서 중국시장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중국 내에서 숙식만 제공해도 너도나도 공연을 펼치려고 경쟁을 벌였다. 13억 중국시장에 예술의 ‘맛’을 알게 하면 미래의 황금 알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사업개척의 혜안 때문이었다. 그것이 오래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이젠 수익이 창출되는 중국대륙을 찾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발 빠르게 경제의 논리가 통하는 세계의 예술시장에서도 주역이 돼 가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중국을 무서워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의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용틀임의 잠재력이다. 그들은 느리면서도 빠른, 마치 ‘거북이 같은 토끼’의 양면성의 저력을 보여주는 문화의 큰 힘을 갖고 있다. 내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펼쳐지는 그들의 변혁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누가 이런 중국인들을 ‘느림의 미학’으로 수사(修辭)를 하려고 했던가? 그 힘의 원천에는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그럼에도 모두가 간과하는 대국다운 국민성이 있다. 사회적 대의를 수용하면서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가치관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갈등구조가 첨예하지 않으면서 계층·세대간 신뢰도 간극이 극명하지 않다. 어찌 보면 56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13억 인구의 통합된 다양성이 사회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끼 천원 식사를 하는 기층민이나 100만원짜리 호사스런 만찬을 즐기는 부유층이나 그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인정받으며 양극화의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근래에 들어 이른바 민주화, 자유화의 물결 아래 언로가 완전 개방된데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문화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분열과 갈등 등을 만연시켰다. 모든 사안에 대해 사회적 통합과 화합이 어려운 풍조가 된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절대 필요한 정의와 수용의 가치가 사라지고 다수이든, 소수이든 집단주의가 횡행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온 사회가 개인·계층·지역간 물고 물어뜯는 난장판이 돼 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가 내 놓는 하나의 정책은 또 하나의 갈등을 낳고, 하나의 제도는 또 하나의 분열을 촉발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들어 폭발하는 다양한 사회적 함성은 우리 사회가 편안하고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기보다 각박하고 인정이 메마른 이전투구장의 국가로 가는 길목에 접어든 게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가 꼭 정치와 경제만은 아닐진대, 물질만능가치에 빠져 ‘마음이 가난한 부자국민’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다. 문명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결국 인간은 본래의 감성을 찾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조만간 물질이 넉넉하지만 과거의 인간성과 인정이 넘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미덕이 간절해질지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치나 경제의 발전보다도 여유와 부드러움과 평화스러움 등이 회복되는 ‘사회의 녹색화(Greening)’라고 할 수 있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파리지엥의 역동적인 문화공간

파리지엥 생활 공간에서 삶과 예술은 분리돼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총체적인 하나를 말하고 하나이어야 하며 하나일 수밖에 없다. 부드러운 크로와쌍에 진한 엑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회색 빛 하늘아래 하루를 여는 카페는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는 기능적 장소가 아니라 지성과 문화의 중심공간이다. 필자에게 유럽 정체성의 근본은 역동적인 문화공간을 통해 ‘보고 느끼고 재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인식됐다. 유럽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는 수백년 전통이 살아있는 ‘카페 (Cafe)’라는 특수 문화 공간이 시민들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영국의 퍼브(Pub), 독일의 호프는 파리의 카페만큼 창조적이며 풍요로운 일상공간은 아닌 것 같다. 1654년 남 불 막세이유에 처음으로 카페가 생긴 이후 파리지엥의 카페는 문학, 예술, 사상과 지성 등의 산실로서 명소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1674년 이래 100여년동안 파리 중심지 6구에 있는 쌩 제르맹 데 프레 지역을 비롯, 약 900여곳의 카페가 파리지엥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1682년 문을 연 ‘프로코프’라는 카페는 볼테르, 라신느, 루소 등이 단골손님이었고 역사 깊은 ‘레 되 마고’ 카페는 쌩 제르맹 데 프레 성당 옆에 있는데 피카소와 브라크가 큐비즘을 탄생시킨 창조적인 공간이며 20세기 초 실존주의 철학가인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사상적 공간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대 문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랭보,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언어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각계 명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90년대 이후에 파리 바스티유를 중심으로 20여곳의 철학 카페까지 등장했다. 평범한 카페를 그들의 사상과 예술, 문학 ,철학 등을 토론하는 깊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파리지엥의 저력은 무엇일까?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비틀(Beetle)은 하나의 상자를 뜻한다.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상자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상자를 볼 수 없다. 그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의미는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당신의 생각이나 머리 등에 들어 있는 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문화 예술 공간이 반드시 대규모 미술관과 갤러리란 법은 없다. 사고의 전환과 발상 등에 따라 사소한 공간도 멋지고 품위 있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막셀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샘’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 권력화돼 가는 미술관의 행태를 고발하고 작가의 컨셉의 중요성을 일깨웠는데 이에 대해 앙드레 브르통은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기성품도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파리지엥들의 역동적인 문화공간은 열린 사고 방식 위에 존재한다. 단적인 예를 들면, 파리 막셀 뒤샹 거리에 있는 필자의 집 근처 1층에 한 건축 사무실이 있는데 창문 옆 벽에 전신 누드가 별 문제 없이 걸려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한 공무원이 필자에게 “공사는 문화공간이 아닙니다. 굳이 공사가 아니더라도 문화공간은 많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경직된 공사의 사내 조직이 예술행사로 부드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예술은 미술관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 도시의 작은 카페 공간조차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활용하여 품격 있는 문화로 창조해내는 파리지엥의 사고방식을 우리와는 먼 나라 이야기로 외면할 게 아니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들의 사고가 그들의 탄력 있는 문화의식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야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정치·종교권력 앞에 농락당하는 시민권리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나머지 일들이 고약하게 되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난해부터 준비되지 않은 국립공원 입장료 일방적 폐지가 불러일으킬 혼란에 대해 수차례 경고와 보완을 요구했지만 선거를 겨냥한 정치권과 환경부는 동반되는 문제인 문화재관람료에 대해 “우리가 알바 아니다”란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 역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문화재 소유자는 공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재를 공개할 수 있으며 관람료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얼마든지 사찰 입구에서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게 행정지도가 가능하지만 “나는 모르겠다”라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불교계 역시 설악산 백담사, 지리산 연곡사, 내장산 내장사, 덕유산 백련사 등 사찰 9곳의 소유지가 아닌 곳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면서 등산객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으며, 오히려 국립공원 내 사찰에 대해 해지를 해줄 것과 부지 사용료를 강요하고 있다. 시민들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급기야 지난 17일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이치범 환경부장관, 유홍준 문화재청장, 박화강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이 모여 대책을 협의했다고 한다. 필자는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가닥 희망을 갖고 결과를 지켜봤다. 결국 나온 얘기라고는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부의 대표 격으로 참가했던 환경부장관과 문화재청장 등은 미숙하게 대응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하며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사찰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매표소의 장소 이전문제에 대해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치·종교 권력 앞에 시민들의 권리는 또 다시 농락당하고 만 것이다. 이는 또한 시민들의 혈세를 정치권이나 불교계가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특정 종교단체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략이 오늘의 사태를 맞이했으며 종교단체는 이를 이용해 시민들의 혈세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만약 정치권이나 종교단체가 이처럼 말로 할 수 없는 억지 주장과 직무 유기를 보인다면 시민들도 이런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설악산 신흥사는 관람료 수입의 상당량을 울산시에 돌려줘야 한다. 설악산의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다가 설악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며, 불국사는 지난 70년대 국민들의 세금으로 복원됐다. 즉 불국사 건물의 주인은 국민들이다. 따라서 불국사와 석굴암, 기타 60년대 이후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수 및 복원된 불교문화재들은 모두 소유가 국민들과 정부에게 있다. 필자도 글을 쓰다 보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불교계는 유치하다 못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부 조직 방만함과 관련,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란 구조 조정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정부 및 산하기관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불교문화재 등의 관리권이 문화재청, 산림청,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나 우리나라의 문화헌장은 자연유산을 문화의 범주로 포함하고 있다. 현 국립공원관리공단을 환경부에서 문화재청으로 귀속시키면 입장료 수입·지출의 투명화, 국립공원과 문화재 관리의 일원화 등의 이중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치·종교 권력 앞에 농락당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더 이상 간과하지 말고 불교계와 정치권의 결자해지의 자세를 촉구한다. /황 평 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장

“화분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지난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여러 방송사가 진행하는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과 같은 연예프로를 즐겨봤다. 한해동안 빛나는 활동을 한 연예인들을 격려하고 시상하는 프로들이다. 대개 선정된 수상자가 무대에 올라와 트로피를 받는 동안 동료와 선후배, 가족들은 수상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수상자는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꽃다발에 파묻혀 수상소감을 전한다. 지난날 남달리 고생하면서 어렵게 정상에 오른 수상자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정상에 올라 꽃다발에 파묻혀 감격해 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순간 필자도 그들에게 꽃다발 하나를 전하고 싶다! 이렇듯 마음으로 축하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건 우리의 미덕이다. 승진, 당선, 취임, 결혼, 생일, 회갑, 개업과 기념식 등에도 빠짐없이 축하의 꽃을 보낸다. 큰 행사엔 주로 꽃다발보다 화분이나 화환 등을 전한다. 화분과 화환 등에는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이의 이름과 직함을 큰 글씨로 박은 리본을 다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론 이 화려한 꽃들이 무조건 아름답기보다 다소 권위적이고 과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화환은 더욱 그렇다. 화분과 화환 등은 미술전시회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경우 성대한 개업식장 못지않게 많은 화분과 화환 등이 늘어선 전시회도 있다. 전시회를 여는 작가가 조금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든가 또는 잘 나가는 배우자를 둔 작가일 경우 화분과 화환 등의 세례는 더욱 넘친다. 그런데 전시회장에 놓인 대형 화분이나 화환 등은 조용한 전시장의 작품들과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때론 보낸 이의 마음과 성의를 무색하게 어수선하고 또 경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미술전시회는 최대한 작품들이 돋보이도록 여러 조건들을 고려, 세심하게 디스플레이를 해놓은 절제된 공간이다. 가령 회화작품일 경우 주제, 형태, 색채, 크기, 연대, 동선 등을 고려해 작품들을 설치한다. 마치 한편의 이야기를 기승전결로 구성하듯 동선을 따라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스플레이도 작품 창작 못지않은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질서 있고 세심하게 작품들을 걸어놓은 전시장에, 화려하게 튀는 각양의 화분과 각색의 화환 등은 오히려 작품들의 빛을 잃게 하고 전시 효과를 감소시킨다. 더욱이 크게 노출된 화환의 꽃들은 전시회가 지속되는 동안 흉하게 시들기도 하고, 거기에 매달린 리본만이 보낸 이의 이름과 직함을 ‘비문화적’으로 과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전시회장에 놓인 화환은 보낸 이의 정성어린 마음과 달리 때론 받는 이에게 곤혹스러운 선물이자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 그런 탓에 요즘 미술관이나 전문화랑, 뜻있는 작가들이 보낸 초대장이나 팸플릿 등에는 “화분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미술전시회에 대형 화분과 화환 등을 보내는 관행과 문화를 바꿀 것을 제안하고 싶다. 작품 감상을 훼방하는 화분이나 화환 등보다 다른 방법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시회장을 찾아주는 일이고 불가피하게 전시회에 올 수 없는 사정이라면 전화나 축전 등을 보내 축하해 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람을 권고,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작가들은 더욱 고마워할 것이다. 꽃을 전하는 미덕은 아름답지만, 특정 행사의 기념식과 같은 1회적인 행사와 달리 여러날동안 열리는 전시회, 더욱이 최선으로 작품들이 돋보여야 하는 ‘문화적’인 장소에 커다란 리본이 매달려 있는 꽃들의 풍경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 /이 종 구 중앙대 교수·화가

감성이 회복되는 새해를 기원하며

어느덧 새해가 되었다. 그러나 ‘새해’라는 의미가 시간상의 구분이지 요즘같이 광속의 체감 시간대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듯이 느껴진다. 예전 같으면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우선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의 캐럴에서 한 해가 마무리되는 것을 아쉬워했고, 연하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는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세태는 이제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연말의 캐럴도, 새해 연하장도 말이다. 그게 디지털 문명이 가져온 생활의 편의성이나 첨단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그나마 송구영신의 인사를 나누게 되니 세상은 편리함이라는 미명아래 더욱 삭막해지는 것 같다. 우리처럼 아날로그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들로서는 옛 적의 훈훈한 정감과 운치가 그리워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필자는 강원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감성이 어른이 된 지금에도 밑바탕의 정서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게 지금 필자의 ‘문화적 감성’과 ‘인간적 모습’을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음울하고 삭막한 정경의 겨울이었지만 거기에는 동심의 멋이 있었다. 깊은 골짜기의 냇가를 뒤져 괭이로 두꺼운 얼음장을 깨고 알배기 개구리를 잡던 흥취도, 댓(竹)쪽을 뻐개 비탈길에서 미끄럼 타며 즐기던 멋도, 한 길이나 눈이 쌓인 지붕을 머리에 이고 알밤 굽던 동짓달 긴긴밤의 정취도 이즈음이면 새삼 그리워진다. 이 모든 것은 아마 요즘의 용어로 얘기하자면 ‘감성(EQ)’일 것이다. 그래서 감성은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요,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을 추구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이 감성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문화적’이지 않은 것이다. 감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삶의 여유가 있고, 인간의 정이 넘치고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문화를 심는다는 것은 개인이나 지역사회를 감성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사회가 기계문명의 첨단을 달리며 오히려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는 것 같다. 어우르기보다 개인과 개인의 경계가 명확해지며 온 사회는 갈등과 대립의 각만 예리해지고 있다. 온 국가가, 모든 지역사회가 한결같이 ‘문화예술’을 외치지만 그게 하나의 기능과 도구로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진정한 문화는 우리의 삶 속에 온건히 녹여져 있는 감성의 활력소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로젠블래트의 말대로, ‘문화란 바로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느끼고, 교감하는 것의 집합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문화와 예술은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와 더 궁합이 맞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문화관광부는 2006년 문화 향수 실태 조사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일반인들의 순수예술 분야 문화향유율이 97년에 비해 3분의1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국민들의 소득은 늘었지만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말하자면, 국민의 감성이 이 전보다 더 메말라졌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에게는 참다운 문화운동이 절실하다. 그래서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제동 풀린 무한질주에서 벗어나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외형은 디지털이지만 내면은 아날로그의 멋을 향유하는 ‘이중 성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 감성을 찾는 일에 문화예술공간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아트센터가 공공성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명 때문이다. 이제 2007년은 모든 지역마다 문화감성 부흥의 원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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