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주한미군 4천500명 감축설은 예상대로 한국 사회에 상당한 충격파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오면 안보 공백 상황이 발생한다는 불안감이 한국 사회를 휘감았다. 이번에도 다수 평론가는 안보 불안을 중심으로 논평과 해설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안보 불안 개념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단지 관성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다. 이런 접근법은 외교안보 개념의 근본 특성과 부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외교안보 문제는 국가 이익을 보전하고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항상 국가적 차원에서 손익 계산을 수반해야 한다. 그리고 국익의 주요 변수인 국제 환경과 국내 정치 여건은 항상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국익 손실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관성적이고 기계적인 대응을 한다면 낭패를 면할 수 없다. 2025년 상황에서는 어떤 계산이 필요한가. 우선 국제 환경을 점검해보자.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북 분단 구조와 북한의 선제 핵무기 타격 위협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역량은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고 북한과의 대화 단절로 평화적 문제 해결 가능성은 훨씬 작아졌다. 다만 핵무기 외에 재래식 군사력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대북 군사적 억제 역량이 상당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구체적으로 말하면 패권국가 미국이 잠재적 도전국인 중국을 견제하는 양상도 중대한 관찰 요소다. 한국에 미국은 군사동맹국이고, 중국은 바로 옆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정면 충돌은 극도로 불편한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온 배경이나 전략적 함의를 분석하면 모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목표라면 주한미군 감축은 미국의 이익과 반대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말대로 주한미군은 중국의 심리적 내부 공간에 주둔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견제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대만해협 주변으로 투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중국 동북지역과 동부 지역을 방어하는 인민해방군 병력의 주요 경계 대상이 주한미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략적으로 모순 요소가 내재한다. 주한미군 규모를 줄이면 중국은 동부지역에 주둔하는 병력을 대만 방면에 투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모순적인 요소를 정리하면 주한미군 감축설은 미군 예산 절감에 초점을 맞춘 일반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섣부른 대응은 경솔하다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설사 미국이 주한미군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 해도 우리가 안보 불안감에 빠져 허둥댈 필요는 없다.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를 통해 3천명 전후 병력을 감축하는 것은 지난 20여년간 주한미군 병력 운용을 고려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주한미군은 이미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3천명 정도의 병력을 수시로 순환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또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이 최근 세계 5위 수준으로 급등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한미 동맹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북한 핵무기 대응과 관련한 확장억제 프로그램을 견실하게 운용하는 것이고 재래식 군사력 분야에서는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한미군 감축설과 관련한 외교안보 현황 분석과 전략적 함의 분석을 정리해보면 주한미군 감축설 보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진지한 정책 검토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추정할 수 있고, 진지한 검토가 진행된다 해도 확장억제 분야에서 신뢰성을 높이는 조치와 병행한다면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커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협의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한 관찰 대상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상당한 수준의 선진 강대국이 됐는데 과거처럼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말만 나오면 무조건 경기를 일으키는 행태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그런 태도는 미국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주는 21세기를 특징 짓는 메가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특정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영역에서 중장기적인 변화를 추동해내는 거대한 동향이나 추세가 메가트렌드다. 국제사회가 이주를 메가트렌드로 평가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가트렌드로서 이주는 모든 국가와 개인의 삶에 ‘디지털 전환’이나 ‘탄소중립’에 버금가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주는 더 이상 몇몇 사람들만의 특별한 경험일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시공간이 통합’된 하나의 지구는 누군가가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무제한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는 전 지구인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된다. 실제로 전 지구인의 7명 중 1명은 이주민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주는 전 지구적인 지속가능한 발전에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며 바람직한’ 동력으로 재평가된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세부 과제에 이주가 포함돼 있다. ‘질서 있고 안전하며 일상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의 이주와 유동성의 보장’이 전 지구적인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유엔의 모든 회원국은 동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이주는 선택지가 아니라 절박한 정언명령(定言命令)일 수밖에 없다. 활력 있고 창의적인 이주민들의 적극적인 유치를 간과한 채 우리의 미래를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보편화된 이주의 시대, ‘국민과 외국인’, ‘선주민과 이주민’류의 인구 집단에 대한 전통적인 범주화의 유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제 모든 이는 ‘현재적인 이주민’이거나 ‘잠재적인 이주민’일 뿐이다. 우리와 그들의 엄격한 경계에 근거한 ‘우리끼리주의’ 역시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새로운 경쟁력은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우리’ 혹은 ‘더 많은 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과 구분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가트렌드로서 이주를 수용하는 모든 이들이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은 이렇다. 당신은 ‘잠재적인 이주민’으로서 ‘현재의 이주민’들과 연대할 준비가 돼 있는가. 당신은 지속가능한 공동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우리’의 경계를 확장하고 ‘더 많은 우리’를 환대할 준비가 돼 있는가.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는 단순하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라. 이윤 추구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시장경제는 지난 200여년간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와 기술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원 고갈, 불평등, 기후위기라는 어두운 그림지가 짙게 드리워 있다. 특히 기후위기의 시계는 이미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가전제품, 패션의류가 위기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배경에는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자본주의의 오래된 핵심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계획적 진부화란 기업이 의도적으로 제품의 수명을 짧게 설계해 소비자가 자주 새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생산방식을 의미하기도 하고(기술적 진부화), 제품이 고장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구닥다리처럼 느끼게 만들어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새 제품을 찾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심리적 진부화). 스마트폰 카메라 위치나 베젤 크기 등 디자인을 변경해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교체 불가능한 배터리를 설계하거나 시즌마다 바지의 넓이, 패딩 길이, 새로운 립스틱 컬러에 변화를 주거나 1~2주 단위로 변화하는 패스트패션의 빠른 트렌드 등 기술적 심리적 수명을 동시에 단축해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해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찾게 만듦으로써 기업들은 소비의 속도를 높이고 이윤을 극대화했다. 이 전략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무한성장’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구조가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환경과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제품 생산에는 자원 채굴, 에너지 사용, 탄소배출이 필수적이다. 제품이 조기에 버려지면 전자폐기물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난다. 패스트패션 산업만 해도 매년 수천만t의 의류가 버려져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자본주의의 무한성장 논리를 가능케 하는 계획적 진부화와 과소비는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숨은 가해자로 작동한다. 이제 우리는 경제 시스템 전반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더 이상 ‘선형경제 (Linear Economy)’ 모델, ‘생산-소비-폐기’의 일방통행 구조로는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안으로 ‘순환경제 (Circular Economy)’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순환경제는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내구성과 수리 가능성을 높이고 폐기물 최소화를 위해 재사용, 재제조, 재활용을 촉진한다.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생산과 소비의 모든 과정을 순환 고리로 연결해 자원의 가치를 최대한 길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 개념이다. 르노자동차회사의 경우 프랑스 플린 공장을 리팩토리(Re-Factory)로 전환해 차량 해체, 부품 재사용, 배터리 재활용 등을 한데 모은 순환경제 허브로 활용해 연간 12만대 이상의 차량을 해체 및 재활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수리권(Right to Repair)과 제품의 재활용 의무화를 법제화하며 2015년부터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계획적 전부화의 유혹에 빠져 있다. 기업들은 ‘새로움’을 무기로 소비자를 자극하고 소비자는 최신 제품을 소유해야만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정부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등 일부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강제력과 실효성 면에서는 갈 일이 멀다. 자본주의의 무한성장 신화를 이제는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생산자는 내구성과 수리 용이성을 제품 설계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하며 ‘새것=좋은 것’이라는 신화를 내려놓고 ‘오래 쓰고 고쳐 쓰는’ 소비습관을 길러야 한다. 정부는 강력한 규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계획적 진부화의 소비 덫을 끊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 모두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후위기의 경고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제는 무한성장의 메커니즘을 멈추고 순환경제로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사회 전반에 걸쳐 신속하게 뿌리 내려야 한다.
요란스러운 대통령선거전이 막을 내린다. 막판까지 싸움거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방금 터져 나온 이슈들까지 현수막을 타고 거리거리를 가득 메운다. 대부분 극렬 네거티브 내용이다. 투표 독려를 빙자한 출처 불명의 현수막 홍수다. 이 모두 합법적이라니 더 놀랍다. 시도 때도 없이 정치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는 국민들이다. 투표 독려는 당연히 국가 업무 아닌가. 사전투표를 전후해 거리마다 정치 현수막들이 기승을 부린다. 공식 선거운동 현수막은 후보 사진과 기호, 정당을 명시한다. 읍·면·동 기준 2개까지만 내걸 수 있다. 유권자들에게 후보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거리마다 현수막이 우후죽순이다. 투표 독려의 탈을 쓴 악성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이나 인하대 주변 등 주요 교차로마다 이런 현수막들이 시야를 가린다. ‘커피원가 120원? 분노하면 투표장으로’, ‘진짜에 투표해야 독재권력 막습니다’, ‘내란 종식에 한 표를!’, ‘12.3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지금 한 표!’ 얼핏 보면 투표 독려 활동인 것 같다. 조그맣게 투표 날짜도 안내해 놓았다. 그러나 본심은 그게 아닌 것으로 읽힌다. 투표를 하되 특정 후보에게 찍으라는 강요다. 누가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거리는 어지럽고 시민들은 불쾌감을 느낀다. “현수막이 너무 많고 자극적이라 혼란스럽고 불쾌하다”고 한다. “투표 독려를 빌미로 상대 후보를 헐뜯고 시민들까지 정쟁에 끌어들인다”고도 한다. 문제는 이런 사이비 투표 독려 현수막의 난무가 합법적이라는 점이다. 공직선거법 제58조2다. ‘누구든지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 등의 사용은 금지된다. 그런데 투표 독려 현수막을 내거는 데는 개수 제한도 없다. 개인, 단체, 기관을 막론하고 아무라도 무제한으로 내걸 수 있다. 누가 만든 법인가. 전국 곳곳에서 이런 현수막들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최근 선관위가 해석을 내놓았다. 표현이 애매한 경우에도 특정 후보 선거운동과 관련한 명확한 메시지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선거운동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더 지능적으로 현수막을 만드는 것인가. 사실상의 적나라한 선거운동에 투표 독려를 덧칠하는 것이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투표 독려 업무를 향우회나 동창회 등에 내맡기는 나라가 또 있는가. 참 허접한 선거 룰이다.
곳곳에서 선거 벽보가 찢겨 나갔다. 상대 후보에 대한 극단적 혐오 표출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인 범죄는 203건이다.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접수된 대선 사건이다. 가장 많은 유형이 선거 벽보·현수막 훼손이다. 179건(185명)으로 전체 88%를 차지한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달 30일 현재 99건을 접수했다. 역시 전체 87.8%인 87건이 벽보·현수막 훼손이다. 선거폭력, 허위사실 공표, 금품수수, 선거운동 기간 위반, 기타 등도 있다. 선거 벽보가 부착된 것은 지난달 15일이다. 경기지역 1만7천837개소에 붙었다. 현수막은 지난달 12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게시됐다. 한 남성은 아홉 차례에 걸쳐 벽보를 훼손했다. 커터칼, 손, 지팡이 등으로 벽보를 훼손했다. 특정 후보의 현수막을 라이터로 태운 유권자도 있었다. 벽보 등 훼손은 비교적 가벼운 행위로 여겨진다. 우발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 정치적 양극화 심화가 부추긴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짧지만 격렬했던 선거운동이 끝났다. 오늘은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이번 대선이 경기도민에게 주는 의미는 대단히 특별하다. 유력 후보가 모두 경기도와 연을 맺었다. 기호 1번 이재명 후보는 민선 7기 경기지사였다. 성남시장을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역임했다. 기호 2번 김문수 후보는 민선 4·5기 경기지사였다. 부천 소사구에서 국회의원을 세 번 했다. 기호 3번 이준석 후보도 경기도 정치인이다. 화성시을(동탄)이 지역구다. 같은 광역지자체의 전직 단체장 간 대선은 처음이다. 두 후보의 도정 실적이 곧 평가의 잣대다. 신개념 복지가 이재명 도정이다. 기업·일자리 유치가 김문수 도정이다. 경기도민이 기억으로 갖고 있는 가까운 모습이다. 다른 지역 유권자는 생각 못할 만큼 생생하다. 그런 만큼 부정적인 도정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다. 이재명 후보의 법카 유용 논란이나 김문수 후보의 소방관 통화 논란이 그런 경우다. 너무 가까운 기억이 네거티브를 부른 역작용이다. 현수막 훼손이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있었다. 선거운동 내내 경기도에서 불거진 상호 혐오다. 이제 모든 절차를 끝낼 순간이다. 투표장을 찾아 한 표를 행사해야 할 때다. 민주주의의 가장 숭고한 절차가 선거다. 그 정점에서 행해지는 행위가 투표다. 아쉬웠던 경기도민만의 특별한 대선도 이제 마지막 행위만 남겨 놓고 있다. 빠짐 없이 참여해 질서 있는 투표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1천300만 경기도민 민주주의’가 좋게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국민이 대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권력을 부여하는 일, 그 권력을 막강하게 만드는 정통성, 그게 바로 선거다. 오늘, 우리는 나라의 얼굴이자 미래인 대통령을 결정한다. 오늘이 지나면 혼란스러웠던 권한대행 체제는 사라지고 다시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로 안정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끝은 아니다. 지지를 호소한 후보들에게도, 국민에게도 대선은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번 대선을 통해 구성되는 새 정부는 불과 1년 뒤 하나의 성적표를 받아든다. 민심의 평가표이자 그들의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치가 될 지방선거다. 정치권에서는 이번에 들어서는 정부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국민과의 약속 이행에 초점을 맞출 거라 입을 모은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 역시 지방선거다. 이들은 알고 있다. 국민이 지방선거를 통해 냉정한 국정 평가를 내놓게 될 것을 말이다. 짧고 치열한 선거였다. 전쟁같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끝으로 갈수록 서로를 향한 공격은 멈출 줄 몰랐고 ‘이런 경쟁력이 있으니 저를 뽑아주세요’보다 ‘이렇게 나쁜 사람이니 저 사람은 뽑지 마세요’가 난무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번 대선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들이 가려버린 공약들을 하나씩 꺼내 점검해야 한다. 유권자인 우리가 그들의 약속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야 약속을 어길 때도, 지키지 않았을 때도 그들에게 항의할 명분과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이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그러나 당선이란 성적표는 또 다른 투표 속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 공동체 사회였다. 과거에는 모두가 함께 일해야만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웃이 가끔 꼴 보기 싫어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래야만 내가 아쉬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어느덧 지능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애써 힘을 합치지 않아도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시대가 됐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던 기성세대와 달리 부부가 가사와 육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직장에서 상하 관계를 내세우면 꼰대로 취급받게 됐고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직장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기보다 정시에 퇴근해 운동과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새로운 직장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꽤나 완성도 높은 법제도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개인을 보호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교육을 명분으로 손찌검을 하지 못하게 됐고 욕설조차 금지하는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서양 현대 이전에는 강한 가족 공동체에 약한 개인이 소속됐지만 지금은 강한 국가와 강한 개인의 시대임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0년에 걸쳐 체화했던 가부장적 문화를 상당 부분 청산했다. 더 이상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게 됐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가장 우선시하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동체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도 함께 사라졌다. 즉, 개인은 가부장적 공동체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와 동시에 한없이 외로워졌다. 그래서인지 나이 든 정치인이나 기관의 리더들은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강렬하다. 그들은 일제히 공동체 복원을 외쳤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동체 관련 사업을 앞다퉈 추진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외로움이다. 어떤 사람도 교감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2명이 혼자 살고 10가구 중 4가구는 1인 가구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을 50만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까지 임명해 사회적 대응에 나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절박한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다만 힘들게 얻은 개인의 영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세련되게 다가서려면 과거와 달리 ‘사회기술(社會技術)’을 따로 익혀야 할지도 모른다.
6월20일은 세계난민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출입국관리법에 난민 관련 조항을 신설했고 2012년 독립적인 난민법을 제정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그러한 공포로 인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상주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무국적자를 말한다. 박해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해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국제사회가 난민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민신청 건수도 증가하고 심사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어 진정한 난민을 신속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신청 건수는 1만8천336건으로 1994~2015년 건수(1만5천250건)보다 많다. 지난해 기준 심사종료까지 평균 4년 이상 소요된다.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난민심사가 종결된 누적 건수(9만4천391건) 중 이의신청 건수(4만8천563건)의 비율은 51.4%로 높다.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2023년 난민소송은 전국 법원 행정 사건 중 약 20%를 차지하고 2023년 기준으로 1심 행정 사건 중 난민 사건의 비율은 13.4%, 2심 26.2%, 3심에선 41.8%에 달할 정도로 상소 비율이 다른 사건보다 높다. 또 2018~2023년 난민소송을 통한 난민인정 비율은 약 0.3%로 같은 기간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 사건의 평균 승소률 10.1%에 비해 매우 낮다. 난민 심사·결정이 지체되는 것은 ▲국적국의 정황, 난민요건 충족 여부 등 심사에 많은 시간 소요 ▲난민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강제송환이 금지되고 난민신청 후 6개월이 경과하면 취업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을 이용해 이의신청, 쟁송 등의 남용 사례가 증가하는 점 ▲난민심사 전담공무원 양성과 확충, 쟁송제도 개편 같은 조치가 미흡한 점 등에 기인한다. 난민쟁송제도 개편과 관련해 우선 독립적 심판원을 설치, 행정심판을 먼저 거치게 하거나 행정심판과 동시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최소한 제1심의 경우 난민전담법원을 신설함으로써 난민사건을 집중 심리토록 해야 한다. 난민이 다수 발생한 국가 출신이고 사회적 지위와 활동내용 등을 고려할 때 서류심사만으로도 난민 인정 가능성이 있는 사건과 패소판결이 확정된 후에 사정변경 없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소권 남용 사건은 우선 심사 대상으로 분류해 신속 처리해야 한다. 둘째, 소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독일은 제2심부터 특별한 사실적 또는 법적 어려움이 없는 사건은 대면심리 없이 간이 소송 절차에 따라 행정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 특히 난민 관련 간이 소송 절차의 경우 1개월 이내에 대면심리 없이 소송을 종료할 수 있다. 또 명백히 근거없는 난민 신청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본안심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제1심 소송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경우 제1심 결정이 상급법원 판결(근거)과 다른 경우 또는 소송 절차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본안 심리를 진행한다. 미국은 입국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난민신청을 하지 않다가 이후에 납득할 만한 사유 없이 신청을 한 경우 난민신청이 불허됐음에도 사정 변경 없이 다시 신청한 경우 또는 국가 간 협정에 따라 안전한 제3국으로 출국시키는 경우에는 처분청은 난민신청 접수를 거부할 수 있고 법원이 그 접수 거부의 적법성을 심리한다. 또 연방행정소송규칙에 따라 법원은 부당한 소송에 대해 소송 비용 담보 제공, 제소 금지 등을 할 수 있다. 영국은 제소 금지와 함께 높은 소송비용을 청구한다. 반면 우리나라 행정소송법은 처분청이 패소하면 기속력을 인정해 처분청이 그 판결의 내용에 따라 처분해야 하지만 난민 신청자가 패소하면 민사소송법을 준용토록 규정돼 있어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한 소송제기에 대해 판례로써 심리 없이 기각판결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간이 소송 대상과 절차를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 기판력에 반한 소송 제기를 각하 사유로 명시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대중음악은 이제 케이팝을 넘어 세계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눈부신 성과는 극소수에 집중돼 있으며 그 바탕이 되는 창작 생태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신진 음악인과 소규모 제작사는 창작 초기부터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능성 있는 콘텐츠가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채 사장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작 초기 단계의 음악 프로젝트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망한 창작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자생적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뮤지션 투자 사업’은 이러한 필요에서 출발하는 개념으로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공공이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향후 수익 일부를 회수해 재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현재 대중음악 산업은 높은 초기 비용과 낮은 성공 확률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마케팅 등에는 수천만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창작자는 담보도 없고 신용도 낮아 민간 금융 접근이 쉽지 않다. 민간 투자 역시 성과가 검증된 아티스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공공이 먼저 나서 고위험 영역에 투자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 이는 단기 성과 중심의 민간 시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창작 생태계 전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 지원이 아닌 ‘무이자 선투자’ 혹은 ‘조건부 환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프로젝트당 약 3천만 원에서 1억원 내외의 금액을 선투자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를 회수하는 구조다. 정산은 반기 또는 분기 단위로 진행하고 음원 플랫폼이나 공연 데이터를 연동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민간 음악 투자사 또는 제작사와 공동 투자하는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공공이 먼저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후 민간의 후속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공공 단독 사업’이 아닌 시장과의 접점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모델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업모델이 존재하며 그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영국 PRS파운데이션의 ‘모멘텀뮤직펀드’는 신진 음악인에게 제작, 마케팅, 투어 등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수익 일부를 회수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10년간 수백명의 글로벌 아티스트를 배출했다. 미국의 ‘사운드로열티’는 창작자의 저작권 수익을 기반으로 미래 수익을 선지급하는 민간 모델로 창작자가 지식재산권(IP)을 담보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공 혹은 민간이 창작 초기의 리스크를 감수함으로써 다양한 음악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음악은 지역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이자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따라서 ‘뮤지션 투자 사업’은 한 명의 창작자 지원을 넘어 지역문화재단 및 글로벌 유통 채널과 연계돼 창작 프로젝트의 전국적 확장, 나아가 세계 시장 진출을 돕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당 사업은 문화예술 분야에만 한정된 정책이 아니라 지역 산업정책, 청년 일자리, 콘텐츠 수출 전략과 맞물리는 중장기 투자로 해석돼야 한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예산 사업이 아니라 창작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공공 투자 시스템이다. 공공이 먼저 움직이고 민간이 이어받아 함께 키워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음악 산업의 미래 모델이 돼야 한다. 가능성 있는 창작자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공공이 책임 있게 지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출발점이며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