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평] 당당하게 한표!!

[사설] 사이비 투표 독려 현수막 홍수... 허접한 선거 룰이다

요란스러운 대통령선거전이 막을 내린다. 막판까지 싸움거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방금 터져 나온 이슈들까지 현수막을 타고 거리거리를 가득 메운다. 대부분 극렬 네거티브 내용이다. 투표 독려를 빙자한 출처 불명의 현수막 홍수다. 이 모두 합법적이라니 더 놀랍다. 시도 때도 없이 정치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는 국민들이다. 투표 독려는 당연히 국가 업무 아닌가. 사전투표를 전후해 거리마다 정치 현수막들이 기승을 부린다. 공식 선거운동 현수막은 후보 사진과 기호, 정당을 명시한다. 읍·면·동 기준 2개까지만 내걸 수 있다. 유권자들에게 후보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거리마다 현수막이 우후죽순이다. 투표 독려의 탈을 쓴 악성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이나 인하대 주변 등 주요 교차로마다 이런 현수막들이 시야를 가린다. ‘커피원가 120원? 분노하면 투표장으로’, ‘진짜에 투표해야 독재권력 막습니다’, ‘내란 종식에 한 표를!’, ‘12.3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지금 한 표!’ 얼핏 보면 투표 독려 활동인 것 같다. 조그맣게 투표 날짜도 안내해 놓았다. 그러나 본심은 그게 아닌 것으로 읽힌다. 투표를 하되 특정 후보에게 찍으라는 강요다. 누가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거리는 어지럽고 시민들은 불쾌감을 느낀다. “현수막이 너무 많고 자극적이라 혼란스럽고 불쾌하다”고 한다. “투표 독려를 빌미로 상대 후보를 헐뜯고 시민들까지 정쟁에 끌어들인다”고도 한다. 문제는 이런 사이비 투표 독려 현수막의 난무가 합법적이라는 점이다. 공직선거법 제58조2다. ‘누구든지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 등의 사용은 금지된다. 그런데 투표 독려 현수막을 내거는 데는 개수 제한도 없다. 개인, 단체, 기관을 막론하고 아무라도 무제한으로 내걸 수 있다. 누가 만든 법인가. 전국 곳곳에서 이런 현수막들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최근 선관위가 해석을 내놓았다. 표현이 애매한 경우에도 특정 후보 선거운동과 관련한 명확한 메시지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선거운동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더 지능적으로 현수막을 만드는 것인가. 사실상의 적나라한 선거운동에 투표 독려를 덧칠하는 것이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투표 독려 업무를 향우회나 동창회 등에 내맡기는 나라가 또 있는가. 참 허접한 선거 룰이다.

[사설] 경기도민에 특별했던 대선, 투표 참여가 마무리다

곳곳에서 선거 벽보가 찢겨 나갔다. 상대 후보에 대한 극단적 혐오 표출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인 범죄는 203건이다.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접수된 대선 사건이다. 가장 많은 유형이 선거 벽보·현수막 훼손이다. 179건(185명)으로 전체 88%를 차지한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달 30일 현재 99건을 접수했다. 역시 전체 87.8%인 87건이 벽보·현수막 훼손이다. 선거폭력, 허위사실 공표, 금품수수, 선거운동 기간 위반, 기타 등도 있다. 선거 벽보가 부착된 것은 지난달 15일이다. 경기지역 1만7천837개소에 붙었다. 현수막은 지난달 12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게시됐다. 한 남성은 아홉 차례에 걸쳐 벽보를 훼손했다. 커터칼, 손, 지팡이 등으로 벽보를 훼손했다. 특정 후보의 현수막을 라이터로 태운 유권자도 있었다. 벽보 등 훼손은 비교적 가벼운 행위로 여겨진다. 우발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 정치적 양극화 심화가 부추긴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짧지만 격렬했던 선거운동이 끝났다. 오늘은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이번 대선이 경기도민에게 주는 의미는 대단히 특별하다. 유력 후보가 모두 경기도와 연을 맺었다. 기호 1번 이재명 후보는 민선 7기 경기지사였다. 성남시장을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역임했다. 기호 2번 김문수 후보는 민선 4·5기 경기지사였다. 부천 소사구에서 국회의원을 세 번 했다. 기호 3번 이준석 후보도 경기도 정치인이다. 화성시을(동탄)이 지역구다. 같은 광역지자체의 전직 단체장 간 대선은 처음이다. 두 후보의 도정 실적이 곧 평가의 잣대다. 신개념 복지가 이재명 도정이다. 기업·일자리 유치가 김문수 도정이다. 경기도민이 기억으로 갖고 있는 가까운 모습이다. 다른 지역 유권자는 생각 못할 만큼 생생하다. 그런 만큼 부정적인 도정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다. 이재명 후보의 법카 유용 논란이나 김문수 후보의 소방관 통화 논란이 그런 경우다. 너무 가까운 기억이 네거티브를 부른 역작용이다. 현수막 훼손이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있었다. 선거운동 내내 경기도에서 불거진 상호 혐오다. 이제 모든 절차를 끝낼 순간이다. 투표장을 찾아 한 표를 행사해야 할 때다. 민주주의의 가장 숭고한 절차가 선거다. 그 정점에서 행해지는 행위가 투표다. 아쉬웠던 경기도민만의 특별한 대선도 이제 마지막 행위만 남겨 놓고 있다. 빠짐 없이 참여해 질서 있는 투표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1천300만 경기도민 민주주의’가 좋게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지지대] 대선, 끝이 아닌 시작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국민이 대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권력을 부여하는 일, 그 권력을 막강하게 만드는 정통성, 그게 바로 선거다. 오늘, 우리는 나라의 얼굴이자 미래인 대통령을 결정한다. 오늘이 지나면 혼란스러웠던 권한대행 체제는 사라지고 다시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로 안정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끝은 아니다. 지지를 호소한 후보들에게도, 국민에게도 대선은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번 대선을 통해 구성되는 새 정부는 불과 1년 뒤 하나의 성적표를 받아든다. 민심의 평가표이자 그들의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치가 될 지방선거다. 정치권에서는 이번에 들어서는 정부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국민과의 약속 이행에 초점을 맞출 거라 입을 모은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 역시 지방선거다. 이들은 알고 있다. 국민이 지방선거를 통해 냉정한 국정 평가를 내놓게 될 것을 말이다. 짧고 치열한 선거였다. 전쟁같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끝으로 갈수록 서로를 향한 공격은 멈출 줄 몰랐고 ‘이런 경쟁력이 있으니 저를 뽑아주세요’보다 ‘이렇게 나쁜 사람이니 저 사람은 뽑지 마세요’가 난무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번 대선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들이 가려버린 공약들을 하나씩 꺼내 점검해야 한다. 유권자인 우리가 그들의 약속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야 약속을 어길 때도, 지키지 않았을 때도 그들에게 항의할 명분과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이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그러나 당선이란 성적표는 또 다른 투표 속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천자춘추] 공동체의 추억

우리나라는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 공동체 사회였다. 과거에는 모두가 함께 일해야만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웃이 가끔 꼴 보기 싫어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래야만 내가 아쉬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어느덧 지능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애써 힘을 합치지 않아도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시대가 됐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던 기성세대와 달리 부부가 가사와 육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직장에서 상하 관계를 내세우면 꼰대로 취급받게 됐고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직장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기보다 정시에 퇴근해 운동과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새로운 직장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꽤나 완성도 높은 법제도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개인을 보호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교육을 명분으로 손찌검을 하지 못하게 됐고 욕설조차 금지하는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서양 현대 이전에는 강한 가족 공동체에 약한 개인이 소속됐지만 지금은 강한 국가와 강한 개인의 시대임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0년에 걸쳐 체화했던 가부장적 문화를 상당 부분 청산했다. 더 이상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게 됐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가장 우선시하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동체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도 함께 사라졌다. 즉, 개인은 가부장적 공동체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와 동시에 한없이 외로워졌다. 그래서인지 나이 든 정치인이나 기관의 리더들은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강렬하다. 그들은 일제히 공동체 복원을 외쳤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동체 관련 사업을 앞다퉈 추진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외로움이다. 어떤 사람도 교감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2명이 혼자 살고 10가구 중 4가구는 1인 가구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을 50만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까지 임명해 사회적 대응에 나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절박한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다만 힘들게 얻은 개인의 영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세련되게 다가서려면 과거와 달리 ‘사회기술(社會技術)’을 따로 익혀야 할지도 모른다.

[경기시론] 난민 소송제도의 개편 방향

6월20일은 세계난민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출입국관리법에 난민 관련 조항을 신설했고 2012년 독립적인 난민법을 제정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그러한 공포로 인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상주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무국적자를 말한다. 박해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해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국제사회가 난민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민신청 건수도 증가하고 심사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어 진정한 난민을 신속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신청 건수는 1만8천336건으로 1994~2015년 건수(1만5천250건)보다 많다. 지난해 기준 심사종료까지 평균 4년 이상 소요된다.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난민심사가 종결된 누적 건수(9만4천391건) 중 이의신청 건수(4만8천563건)의 비율은 51.4%로 높다.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2023년 난민소송은 전국 법원 행정 사건 중 약 20%를 차지하고 2023년 기준으로 1심 행정 사건 중 난민 사건의 비율은 13.4%, 2심 26.2%, 3심에선 41.8%에 달할 정도로 상소 비율이 다른 사건보다 높다. 또 2018~2023년 난민소송을 통한 난민인정 비율은 약 0.3%로 같은 기간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 사건의 평균 승소률 10.1%에 비해 매우 낮다. 난민 심사·결정이 지체되는 것은 ▲국적국의 정황, 난민요건 충족 여부 등 심사에 많은 시간 소요 ▲난민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강제송환이 금지되고 난민신청 후 6개월이 경과하면 취업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을 이용해 이의신청, 쟁송 등의 남용 사례가 증가하는 점 ▲난민심사 전담공무원 양성과 확충, 쟁송제도 개편 같은 조치가 미흡한 점 등에 기인한다. 난민쟁송제도 개편과 관련해 우선 독립적 심판원을 설치, 행정심판을 먼저 거치게 하거나 행정심판과 동시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최소한 제1심의 경우 난민전담법원을 신설함으로써 난민사건을 집중 심리토록 해야 한다. 난민이 다수 발생한 국가 출신이고 사회적 지위와 활동내용 등을 고려할 때 서류심사만으로도 난민 인정 가능성이 있는 사건과 패소판결이 확정된 후에 사정변경 없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소권 남용 사건은 우선 심사 대상으로 분류해 신속 처리해야 한다. 둘째, 소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독일은 제2심부터 특별한 사실적 또는 법적 어려움이 없는 사건은 대면심리 없이 간이 소송 절차에 따라 행정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 특히 난민 관련 간이 소송 절차의 경우 1개월 이내에 대면심리 없이 소송을 종료할 수 있다. 또 명백히 근거없는 난민 신청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본안심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제1심 소송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경우 제1심 결정이 상급법원 판결(근거)과 다른 경우 또는 소송 절차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본안 심리를 진행한다. 미국은 입국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난민신청을 하지 않다가 이후에 납득할 만한 사유 없이 신청을 한 경우 난민신청이 불허됐음에도 사정 변경 없이 다시 신청한 경우 또는 국가 간 협정에 따라 안전한 제3국으로 출국시키는 경우에는 처분청은 난민신청 접수를 거부할 수 있고 법원이 그 접수 거부의 적법성을 심리한다. 또 연방행정소송규칙에 따라 법원은 부당한 소송에 대해 소송 비용 담보 제공, 제소 금지 등을 할 수 있다. 영국은 제소 금지와 함께 높은 소송비용을 청구한다. 반면 우리나라 행정소송법은 처분청이 패소하면 기속력을 인정해 처분청이 그 판결의 내용에 따라 처분해야 하지만 난민 신청자가 패소하면 민사소송법을 준용토록 규정돼 있어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한 소송제기에 대해 판례로써 심리 없이 기각판결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간이 소송 대상과 절차를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 기판력에 반한 소송 제기를 각하 사유로 명시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산책] 가능성 있는 천재에 투자하라

한국 대중음악은 이제 케이팝을 넘어 세계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눈부신 성과는 극소수에 집중돼 있으며 그 바탕이 되는 창작 생태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신진 음악인과 소규모 제작사는 창작 초기부터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능성 있는 콘텐츠가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채 사장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작 초기 단계의 음악 프로젝트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망한 창작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자생적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뮤지션 투자 사업’은 이러한 필요에서 출발하는 개념으로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공공이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향후 수익 일부를 회수해 재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현재 대중음악 산업은 높은 초기 비용과 낮은 성공 확률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마케팅 등에는 수천만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창작자는 담보도 없고 신용도 낮아 민간 금융 접근이 쉽지 않다. 민간 투자 역시 성과가 검증된 아티스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공공이 먼저 나서 고위험 영역에 투자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 이는 단기 성과 중심의 민간 시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창작 생태계 전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 지원이 아닌 ‘무이자 선투자’ 혹은 ‘조건부 환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프로젝트당 약 3천만 원에서 1억원 내외의 금액을 선투자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를 회수하는 구조다. 정산은 반기 또는 분기 단위로 진행하고 음원 플랫폼이나 공연 데이터를 연동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민간 음악 투자사 또는 제작사와 공동 투자하는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공공이 먼저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후 민간의 후속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공공 단독 사업’이 아닌 시장과의 접점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모델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업모델이 존재하며 그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영국 PRS파운데이션의 ‘모멘텀뮤직펀드’는 신진 음악인에게 제작, 마케팅, 투어 등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수익 일부를 회수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10년간 수백명의 글로벌 아티스트를 배출했다. 미국의 ‘사운드로열티’는 창작자의 저작권 수익을 기반으로 미래 수익을 선지급하는 민간 모델로 창작자가 지식재산권(IP)을 담보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공 혹은 민간이 창작 초기의 리스크를 감수함으로써 다양한 음악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음악은 지역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이자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따라서 ‘뮤지션 투자 사업’은 한 명의 창작자 지원을 넘어 지역문화재단 및 글로벌 유통 채널과 연계돼 창작 프로젝트의 전국적 확장, 나아가 세계 시장 진출을 돕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당 사업은 문화예술 분야에만 한정된 정책이 아니라 지역 산업정책, 청년 일자리, 콘텐츠 수출 전략과 맞물리는 중장기 투자로 해석돼야 한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예산 사업이 아니라 창작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공공 투자 시스템이다. 공공이 먼저 움직이고 민간이 이어받아 함께 키워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음악 산업의 미래 모델이 돼야 한다. 가능성 있는 창작자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공공이 책임 있게 지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출발점이며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약속이다.

[기고] AI 시대 깨어 있는 유권자

인공지능(AI)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중세시대 마녀에 대한 공포가 우연한 계기로 확산되고 이것이 수세기 동안 무자비한 마녀재판으로 이어졌던 역사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초기에 마녀에 대한 괴담이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저자는 ‘마녀의 망치’라는 책이 발간돼 당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마녀가 존재한다는 ‘상호주관적인 실제’가 급속히 퍼져 나가 잔혹한 마녀사냥이 촉발됐다고 쓰고 있다. 마녀사냥은 중세의 새로운 정보기술인 인쇄술의 발달에 기인한 아이러니한 비극이라는 얘기다. 이야기로 시작해 문자 발명, 인쇄술 발달, 산업사회 태동, 그리고 인터넷 사회를 거쳐 AI시대에 접어든 정보기술 발전사를 돌아보면 마녀의 존재 같은 허황된 음모론이 시대에 따라 주제와 대상을 달리할 뿐 항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가짜뉴스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뉴스들이 뉴미디어 시대의 강력한 매체인 유튜브와 맞춤형 알고리즘을 통해 구독자들의 편향적 사고로 고착된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증편향은 레거시 언론에 대한 불신과 함께 디지털 매체를 통해 쉽게 확산되는 듯하다. 최근 부정선거에 대한 다큐영화가 상영됐지만 기존의 주장들과 크게 다른 점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미 선관위가 해명했거나 법원 판결로 부정이 없었음이 입증된 사례의 재탕이었다. 하지만 대중문화인 영화의 영향력은 크다. 우려되는 점은 영화처럼 감성적인 정보전달 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거짓정보가 선거관리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갖는 참여의 가치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단체는 투표소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행동 매뉴얼까지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고 하니 자칫 유권자들의 투표에 피해를 주지 않을지 걱정도 든다. 그럼에도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선관위 위원으로서 부정선거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기보다 이 말씀을 드린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유권자가 만들어 간다. 쏟아지는 음모와 가짜뉴스로부터 지켜야 할 것은 유권자의 냉철한 균형감각이다. 선거에 대한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주장과 정보를 접하는 경우에도 이념적 대립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지난한 대화와 설득으로 진실과 화해를 추구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하라리의 경고처럼 우리는 AI 정보혁명 속에서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전대미문의 불확실한 시대에서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대통령선거가 오늘이다. 깨어 있는 유권자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경기만평] 취객 난입...

[사설] 유시민·윤석열, 지지자 애먹이는 X맨 됐다

유시민의 ‘말’에 지지를 바꿀 유권자가 있을까. 윤석열의 ‘등장’에 돌아설 지지자가 있을까. 있다면 판세를 바꿀 정도의 비중이 있을까. 돌이켜 보면 돌발변수 없는 선거는 없었다. 많은 경우 그게 ‘말’ 또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거판을 바꾼 결과는 예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말’ 또는 ‘행동’은 예민했다. ‘아군 진영’에서 시작된 사달이라 더 그랬다. 지지자들에게는 속타는 내부 총질이었다. 이번에는 ‘유시민 말’, ‘윤석열 등장’이다. 유시민 작가의 발언은 이랬다. “...설난영씨의 인생에서는 거기 갈 수 없는 거예요.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어요. 이제 영부인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뜻이죠.” 김 후보를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자’로, 설씨를 ‘찐(세진전자 노조위원장 출신) 노동자’로 구분했다. 여고 졸업 이후 공장 노동자였던 신분을 논리 출발로 삼고 있다. ‘180석’(2020년), ‘60대 썩은 뇌’(2004년)도 그의 과거 설화였다. 노동자 대표 양대 노총이 들고 일어났다. 한국노총은 ‘계급·성차별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도 ‘여성·노동자 비하’라는 성명을 냈다. 국민의힘은 비난을 넘어 선거 막판 이슈로 몰고 간다. ‘고졸 유권자 분노했으면 투표장으로 가자.’ 수원 등 도심에 등장한 현수막이다. 상황이 이렇자 민주당에서도 ‘진보 진영 스피커들의 말조심’을 주문했다. 이재명 후보도 “(유 작가가) 사과했으니 국민이 용서할 것”이라며 머리를 숙였다. 사흘 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오는 6월3일 반드시 투표장에 가셔서 김문수 후보에게 힘을 몰아주시기를 호소드린다.” 직접 밝힌 것은 아니고 대독이었다. 전광훈 목사가 주최하는 집회에 보낸 메시지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최대 공격 포인트다. ‘김건희 여사 잡음’도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다. 민주당이 기다렸다는 듯 ‘김문수 후보가 윤석열’이라며 맹공을 가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입장이 분노에 가깝다. “국민의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사실 윤 대통령의 등장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1일에는 갑자기 서울의 극장을 찾았다.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영화였다. 그때도 대선판은 ‘계엄·내란’으로 확 돌아섰다. 일부에서는 이런 배경을 ‘본인 정치’로 보기도 한다. 내란 재판 등 추후 고된 일정이 산적해 있다. 이를 위한 지지자 규합·유지가 목적이라는 추론이다. 유시민 작가. 선거 때면 도지는 관심일까. 아니면 고도의 화두 몰기일까. 윤석열 전 대통령. 여론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만의 정치셈법일까. 막판에 등장한 ‘X맨’들 ‘활약’에 두 정당이 애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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