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가 한국남동발전㈜의 사업 계획을 반려했다. 도시계획시설 실시 계획 변경인가 신청이다. 접수된 지 1년3개월 만에 내린 결정이다. 분당복합발전소를 현대화하는 사업이다. 1993년부터 가동된 난방열·전력 공급 시설이다. 내구연한 30년으로 설계됐고 기한이 지났다. 시설이 노후해 작동에 어려움이 크다. 설비 부품 수급에도 차질이 있다. 1조2천억원을 들여 이를 현대화하려 했다. 이 사업 신청이 성남시에서 반려된 것이다. 성남시 관계자가 반려 사유를 설명했다. “발전소와 인접한 단독주택지 완충지역 확충 등 주민 환경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의견차가 이어져 왔다. 이런 의견에 대한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어 종합적인 의견을 검토해 반려했다”고 밝혔다. 반려는 제출된 계획을 처리하지 않고 되돌려 줌을 뜻한다. 발전소 현대화 사업의 완전 부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정을 거쳐 잘 진행돼야 한다. 시민 모두의 일이다. 분당복합발전소가 책임지는 지역은 성남 등 일대다. 20만가구이니까 1개 거대 도시 규모다. 청정 연료인 LNG를 사용해 전력과 난방열을 생산한다. 발전사 최초로 발전용 연료전지를 설치했다. 설비 개선으로 친환경 발전소를 유지한다. 석탄·핵을 사용하는 발전시설과는 많이 다르다. 현대화 사업의 궁극적 목적도 친환경 강화다. 대기 배출 물질(NOx) 88%, 온실가스(CO2) 32%를 저감시키겠다는 게 이번 사업이 밝히고 있는 목표다. 물론 지역 민원은 있게 마련이고 중요하다. 완충 지역 확충도 인근 주민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앞서 다른 형태의 민원도 접수된 바 있다. 지난 16일 분당 국회의원 등이 제출한 주민청원서다. 분당동 주민복지관 신규 건립 요구를 했다. 한국남동발전㈜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의견을 청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성의 있는 대화로 결실을 맺을 것을 기대한다. 시, 주민, 회사가 풀어 가야 한다. 지적하고 갈 것은 이 사업의 시급성이다. 발전소 내구 연한 30년이 이미 지났다. 효율성은 떨어졌고 설비는 노후했다. 당장 시작해도 2033년 10월에나 끝난다. 시공사까지 지난해 10월 계약된 상태다. 매월 수천만원의 이자 비용이 나간다고 한다. 이 결정을 성남시가 1년3개월을 갖고 있다가 반려했다. 빠른 결정이 아쉽다. 지역사회 초대형 SOC다. 기업이 1조2천억원을 쓰는 사업이다. 지역 안위와 기업 생존이 걸려 있다.
경찰의 책임을 무조건 추궁할 수 없다. 그런 매도를 당하고 있을 경찰도 아니다. 하지만 동탄 납치 살인 사건은 다르다. 비참하게 살해된 피해자는 30대 여성이다. 지난 12일 오전 화성의 한 아파트에서 숨졌다. 범인은 한때 이 여성과 생활하던 30대 남성이다. 남성이 여성의 오피스텔에서 강제로 납치했다. 자신의 아파트로 끌고 가 흉기로 살해했다. 전형적인 교제 후 보복 범죄 유형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접근하면 안 되는 법률적 상태였다. 상습 폭행에 의한 접근 금지 조치였다. 그런데 어떻게 납치와 감금, 살해가 이어졌을까. 여기 이해 못할 경찰 대처가 있다. 여성이 경찰의 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해 9월9일이다. 112 신고를 통해 남성의 폭행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도 지속적인 폭행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당시 동거 관계였던 둘 사이의 행위였다. 일상적 가정폭력으로 해석하는 게 옳았다. 피해자 진술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교제폭력 정도로 봤다. 현장 종결이라는 경미한 조치로 끝냈다. 경찰이 떠난 뒤 여성이 닥친 상황은 어땠을까. 끔찍한 상황에 내몰렸을 것이다. 올해 2월23일, 여성이 또다시 112로 경찰을 찾았다. 이 두 번의 신고만으로도 사건의 심각성은 설명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현장 종결로 마무리됐다. ‘단순 말다툼이었다’는 진술을 그대로 믿고 끝냈다. 경찰이 떠난 뒤 상황이 나중에 알려졌다. 남성의 심각한 가혹행위가 있었다. 112 신고는 이후에도 한 번 더 있었다. 동일한 남성에 의한 폭행을 신고한 동일한 여성의 신고가 세 번이나 됐다. 당연히 범죄 중대성, 재범성을 조사했어야 옳았다. 견디다 못한 여성이 남성을 고소했다. 절차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접근이 금지됐다. 하지만 여성은 극도의 불안 속에 생활했다. 폭행 피해 등을 증명하는 600쪽 분량의 고소 보충 이유서를 경찰에 냈다. 이쯤 되면 폭행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한 셈이다. 지난달 28일 경찰 담당 과장이 구속영장 신청 검토를 지시했다. 하지만 이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담당 형사가 휴직하면서 업무가 누락됐다고 한다. 그 열흘 뒤에 여성이 살해됐다. 경찰이 세 번의 112 신고를 단순 처리했다. 심각한 오판이다. 경찰이 고소 이후 불안 상태를 장기간 방치했다. 중대한 직무유기다. 경찰이 구속 수감의 시기를 업무 차질로 날렸다. 어이없는 업무 오류다. 아니라고 할 수 있나. 화성동탄경찰서장이 사과를 했던데. 사과는 지휘부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장은 책임을 져야 하고, 담당 경찰들은 징계·처벌을 받아야 한다. 피해자 유족에 대해 국가와 경찰이 져야 할 민형사 책임도 명백하다.
예부터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깃발 이야기다. 특히 병영에서 그랬다. 부대의 존재를 과시했다. 장군의 지휘권도 상징했다. 전투 중에는 위치도 알렸다. 그래서 기수는 적이 최우선으로 노리는 타깃인데도 늠름하게 위치를 특정했다. 이 때문에 담대하고 용맹한 병사들이 맡는 명예로운 직책이었다. 영토나 영역의 표시이기도 했다. 적군이 점유하던 곳을 점령한 후에는 아군의 깃발로 바꿔 달았다. 이때 노획한 적군의 깃발은 아군의 빛나는 전공을 상징하는 증거 중 하나로 보관됐다. 전후 적군과의 화친이 성립돼도 반환을 꺼렸다. 19세기 말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빼앗긴 장수를 뜻하는 수(帥)자가 적힌 깃발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파병 당시 노획한 금성홍기가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이다. 해병대 제2사단(청룡부대)이 노획한 베트콩기도 보관하고 있다. 동티모르 파병 당시 상록수부대가 인도네시아 국기를 노획한 사례도 그렇다.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프랑스 ‘삼색기’는 혁명의 불꽃 상징으로 세계 곳곳의 계급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영제국의 상징인 ‘유니언 잭’은 제국주의의 확장을 촉발했다. 공산권 국가의 상징인 ‘오각별’은 거대한 이념집합체를 의미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광화문과 여의도 등지에서도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몸짓이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떠올랐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며칠 후면 우리 마음에 새로운 깃발이 걸린다. 어떤 형태와 내용일까.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년) 안성에서 출생해 10세에 출가했으며 17세에 융천사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 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문종 14년(1060년)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 도망쳤다고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 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118년 전 한 장의 사진이 남겨졌다. 산속에서 총을 든 조선 청년들, 그 곁에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이 있었다. 1907년 가을 영국의 종군기자 프레드릭 아서 매켄지가 경기 양평군 오빈리에서 의병을 만나 촬영한 사진이다. 오늘날 이 사진은 교과서, 박물관, 신문 기사 속에서 익숙하게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안의 인물들에게 묻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들의 이름도, 나이도, 마지막 순간도 알 수 없다. 우리는 그 얼굴들을 수없이 봐 왔지만 한 번도 그들의 삶과 죽음을 상상해보지 않았다. 왜 우리는 그들을 잊었을까.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무명의병들 역사는 기록을 남긴 자의 몫이다. 안중근, 유관순 같은 독립운동가는 기록이 남아 있기에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순국 독립운동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싸웠지만 드러나지 않았고 그렇게 잊혔다. 기록을 남기면 일제에 체포되고 탄압당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놓친 진짜 독립운동가는 누구입니까.”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일본군이 남긴 ‘조선폭도토벌지’에 따르면 전국에서 1만7천779명의 의병이 전사했다. 경기도 출신만도 1천288명에 이른다. 그러나 공식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름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사살된 폭도 ○○명’으로만 남아 있다. 우리는 그들을 역사의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무명의병을 찾아 떠난 3년의 여정 세계는 이름 없는 무명용사를 기억한다. 프랑스 개선문 아래 무명용사의 묘,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신만이 아는 병사’가 잠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명의병을 기억하지 않았다. 의병의 전투 기록은 남아 있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이름 있는 의병장 중심으로만 기억해 왔다. 2022년 몇몇 역사학자가 잊혀진 무명의병 찾는 일을 시작했다. 양평 오빈리 사진 속 의병의 흔적을 따라가며 기록을 모았고 영상과 카드뉴스, 학술포럼, 시민 행사로 확장됐다. 2023년에는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무명의병 기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으며 2024년부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에는 강연과 포럼이 열리고 무명의병에 대한 기억을 시민과 함께했다. 이는 단순한 과거 정리가 아니라 기억을 다시 세우는 윤리적 실천이다. 무명의병 기억은 우리 시대의 책임이다 무명의병은 누구의 아버지였고 이웃이었으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자리를 비워두지 않았다. 그저 지워 버렸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그들을 다시 불러야 한다. 이름은 없어도 그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무명의병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곱씹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되묻는, 미래를 향한 실천이다. “산천초목만이 기억하던 이름, 이제 우리가 부르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 중국 입국의 복잡한 행정절차 중국 최변방 고비사막 국경도시 ‘엘렌하오터’에서 중국 통과를 위한 복잡한 행정절차를 마쳐야 한다. 중국은 외국인의 자동차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는 경우 제한적으로 허가한다.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 전에 중국 컨설팅회사와 접촉, 우리 자동차의 중국 입국 허가 절차를 미리 마쳤다. 중국 컨설팅회사를 통해 5개 중앙부처(총참모부, 공안, 해관총서, 외교부, 문화관광부)의 허가를 받아 놨다. 컨설팅회사를 통해 중국 자동차 번호판 발급, 자동차 등록, 자동차보험 가입 등 여러 절차를 마쳐야 한다. 중국은 ‘국제운전면허증’이 통용되지 않는 나라다. 컨설팅회사를 통해 중국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국가 간 자동차의 자유로운 여행을 지원하는 ‘제네바국제조약’이 있고 우리는 ‘가입국’, 중국은 ‘미가입국’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국은 외국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와 소수민족 인권 및 환경 문제 등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외국인의 자유로운 자동차 여행을 통제한다. 입국허가 당시 사전에 우리 차가 지나갈 코스를 중국 정부에 신고했다. 우리 차량이 신고 지역을 벗어나는지 감독하는 감독관 한 명이 내몽골 국경부터 탑승해 함께 여행해야 한다. 이 사람은 ‘류 선생’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조선족이라 의사소통이 자유롭다. 중국 영토를 벗어날 때까지 류 선생의 급여, 숙식비 등 제반 비용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 입국허가, 운전면허증 발급 등 중국 입국 비용이 상상 이상으로 거액이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이 오아시스를 통과할 때 통행세를 냈던 것처럼 중국에 통행세를 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엘렌하오터에서 한국에서 자동차부품 ‘터보’를 가져온 조선족 박씨를 만났다. 이미 울란바토르에서 중고 부품을 교체했기 때문에 터보는 예비용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박씨의 ‘터보’ 부품 공수 여비를 우리가 부담한다. 중국 입국 다음 날 중국 세관에서 자동차를 찾아왔다. ‘자동차 번호판’, ‘운전면허증’도 나왔다. 이틀 동안 쉬면서 빨래도 하고 시내에서 발 마사지도 받는다. 컨설팅회사의 한 사장이 베이징에서 이곳으로 와 통관 업무를 대행해 줬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오랜만에 푸짐한 중국 요리와 바이주를 먹는다. 컨설팅회사 사장에게 “한국은 여러 명의 남자 중에 여자가 한 명 있으면 여자를 ‘홍일점’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서 여성을 어떻게 부르나”라고 질문하자 ‘봉황’이라 한다고 했다. 사장은 오랫동안 외국인 자동차 여행 업무를 해 왔는데 여성 입국자는 내 아내가 처음이라고 말하며 아내에게 험난한 장거리 자동차 여행 참가에 존경한다고 말한다. ■ 공룡화석 보고 ‘고비사막’ 고비사막은 공룡화석의 보고다. 지금은 척박한 사막이지만 아마 2억~3억년 전에는 초목이 우거지고 많은 공룡이 살았던 지형으로 추정된다. 엘렌하오터 외곽의 ‘공룡 지질학박물관’은 1920년대 러시아 지질학자들이 공룡화석을 발굴했던 장소인데 중국이 대규모 야외 공룡 박물관을 만들었다. 수십마리의 공룡뼈가 뒤엉켜 있는 어마어마한 공룡화석 매장지와 공룡알 화석이 인상적이다. 변방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고비사막의 오지여서 평일 관람객은 필자와 아내뿐이다. 공룡에 관심이 많은 서울에 있는 어린 손자들이 생각난다. ■ 내몽골(중국)과 외몽골(몽골)의 차이점 몽골이 독립하기 전인 100년 전 ‘자민우드’와 ‘엘렌하오터’는 같은 몽골족 마을이다. 현재 두 지역은 국경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됐다. 중국 땅은 나무를 많이 심어 녹음이 울창하고 시내 도로가 6차선 뻥뻥 뚫리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도시의 가로수, 공원의 나무는 고무 호스로 하루에 몇 번씩 물을 흠뻑 준다. 400㎞ 이상 멀리서 물을 끌어와 변방의 고비사막에 초현대식 오아시스 도시를 건설해 놓아 두 도시가 비교된다. 시내에서 대낮에도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가 자주 난다. 처음에는 폭탄 터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 결혼식, 생일날, 개업일 등 번성하라는 의미로 밤낮으로 폭죽을 터뜨린다. 주민들은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큰 해바라기 씨앗을 잘도 까먹는다. 몇 사람만 있어도 목청이 크고 소란스럽다. 언어가 ‘사성 구조’여서 목소리가 크다고 한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아랍 군대가 많은 당나라 군인을 포로로 잡아갔다. 아랍인들은 중국인 포로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처음 듣고 신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구글, 카카오톡, 네이버 등 외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가 서울에서 가져간 무전기 ‘워키토키’는 반경 5㎞까지 통신이 된다. 워키토키로 서로 간 연락을 하기로 했다. 간첩죄가 엄하게 적용된다는 소문에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SNS는 적게 사용할 생각이다. 중국 여행을 동행하는 감독관 류 선생은 지린성 출신 51세의 조선족 남자다. 류 감독관은 우리들 여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부 당국에 보고한다고 한다. 류씨 앞에서 중국 정치 얘기, 시진핑 주석 얘기 등 예민한 것은 입도 벙긋하지 말아야 한다. 여행하면서 남의 감시를 받는것은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심리적 스트레스다. 아내는 중국의 심한 감시에 신경이 날카롭다.
이런 대선은 없었다. ‘지각 공약집’ 얘기다. 선거 공약이 조각조각 제시되고 있다. 드라마 ‘쪽대본’을 보는 듯하다. 찾아보려면 일일이 언론을 들춰야 한다. 진작 배포됐어야 할 공약집이 없어서다.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는 오늘 시작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공약집은 26일 공개됐다. 그나마 책자 발간은 더 늦었다. 민주당은 더 심하다. 28일 오후에 공개했다. 사전투표를 반나절 앞두고 나온 것이다. ‘탄핵 대선’의 촉박함만 탓할 것도 아니다. 돌아보면 대선에서 공약은 늘 경시됐다. 선거 공약을 관리·공개하는 곳이 선관위다. 역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공약도 선관위 홈페이지에 있다. 그런데 이게 뒤죽박죽이고 엉망이다. 경실련이 1987년 이후 대선 공약서 공개를 살폈다. 76명의 후보 중 32명은 벽보만 공개하고 있다. 2명은 공보만, 1명은 공약서만 공개했다. 공약 자료가 온전히 공개된 후보는 17명에 불과하다. 백년대계 국가 경영 약속이다. 그 자료가 이렇다. 대선 공약이 이 정도면 지방선거는 어떻겠나. 때마침 본보가 그 실태를 추적해 보도하고 있다. 기획 시리즈 ‘의원님 뭐하세요-광역의원 공약 추적기’다. 지역 맞춤형 공약의 현재 이행률을 봤다. 23.6%였다. 2013년 조사했을 때는 21%였다. 나아진 게 거의 없다. 그나마 경기도의회는 나은 편이다. 공개된 공약이 꽤나 많다. 다른 광역의회는 공개 자체가 없다. 이행 여부를 대조할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저마다 지역맞춤형 공약이라며 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근본 문제는 법률에 있다. 공약 관련 규정은 공직선거법 제66조(선거공약서) 제7항이다.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공약서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등 선거구민이 알 수 있도록 이를 공개할 수 있으며, 당선인 결정 후에는 그 임기 만료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할 수 있다.’ 문구만 그럴듯하다. 여기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다. 강제규정이 아니다. 임의규정이다. 후보자가 공개 않겠다고 버티면 그걸로 끝이다. 경실련도 문제를 지적했다. 법 개정 요구다. ‘공개해야 한다’는 강행규정으로 바꿔야 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개는 일상이다. 아주 간단한 절차만으로 공약 공개는 실현될 수 있다. 이걸 왜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풀어놨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시대에 안 맞고 유권자 요구에도 반한다. 이번에는 동기까지 부여됐다. 공약집 없는 대선을 국민이 비난하고, 경기일보를 통해 허술한 공약 관리가 확인됐고, 경실련이 성명으로 법 개정을 촉구했다. 모든 유권자가 원한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9공구에 대규모 주차장이 있다. 송도 화물차 주차장이다. 5만㎡(1만5천여평) 크기라 대형 화물차 402대가 주차할 수 있다. 인천항만공사가 금싸라기 송도 땅에 50억원을 들여 2022년 12월 완공했다. 그러나 3년째 텅 비어 있다. 인천시가 주차관제시설 등 주차장 필수 시설물 공사를 불허해서다. 불허 명분은 주민 반대다. 지난주 이 주차장을 둘러싼 행정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인천항만공사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인천경제청)을 상대로 낸 소송이다. 주차장 가설건축물 축조 신고 반려처분 취소 청구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인천경제청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반려처분을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건축법에서 정하는 요건만 확인해 신고 수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 민원 등 다른 사유로 수리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인천항만공사나 인천경제청 모두 인천을 위한 기관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시민 세금과 시간을 들여 법정 다툼을 이어가게 된 것인가. 화물차 전용 주차장은 인천의 해묵은 숙제다. 공항 항만의 물류도시라면서 변변한 화물차 주차장 하나 갖추지 못했다. 물류업계는 차 둘 곳을 못찾아 헤맸다. 시민들은 주택가 이면도로 화물차 불법주차에 시달렸다. 인천항만공사가 먼저 나섰다. 2021년 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 부지를 잡아 인천시에 사업계획서를 냈다. 인천시도 군말 없이 승인했다. 앞서 인천시가 ‘화물차 주차장 입지 선정 용역’을 해보니 이곳이 최적지로 나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넓고 번듯한 화물차 전용 주차장이 탄생했다. 그러나 공사를 끝내고 나니 인천시가 입장을 바꿨다. 지역 주민단체 등이 반대하니 주차장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다른 부지를 찾아보자고 인천항만공사에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 주차장의 시설물 설치 신청을 모두 반려했다. 무인주차 관제시스템 운영시설은 물론 간이화장실 설치도 못하게 했다. 이런 갈등에 국민권익위원회나 행정심판까지 동원됐다. 인천시는 다른 부지를 찾아 화물차 주차장을 다시 짓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천항만공사는 기껏 완공한 주차장도 쓰지 못하면서 대체부지는 어디서 찾겠느냐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텅 빈 송도 화물차 주차장 주변 도로는 화물차 불법주차 장소로 변했다. 이제 와서 인천시는 화물차 주차장이 인천경제청 소관이라며 떠민다. 인천경제청은 이번 판결을 받고서도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라 한다. 이러면 자치며 행정이 무슨 소용인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법원이나 주민단체에 떠넘기는 풍경을 보고 있다.
흉기를 든 범인을 만났을 때 효과적인 호신술로 소개되는 기술이 있다. ‘기회를 포착해 신속히 도망가는 것’. 이런 돌발적이고 경악할 만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위에서 제시한 호신술(?)과 정반대로 날카로운 흉기와 맞서야 하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푸른 제복의 공직자 ‘경찰’이다. 지난 22일 오후 9시50분께 파주시 한 아파트에서 가정폭력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3명이 40대 남성으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했다. 조사 결과 중상을 입은 경찰관 2명이 방검복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현장으로 출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이들 경찰관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인식하고 상황을 회피했다면? 2021년 인천 남동구 빌라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해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현장. 혈흔이 낭자한 범행 장면을 목격한 여경이 도망쳐 계단 아래로 피신했다. 현장으로 향하던 남경도 여경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함께 빌라를 빠져나갔다. 이후 이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은 뒤 해임됐고 형사재판에서도 실형이 선고됐다. 다시 파주 흉기 사건과 관련, 경찰 고위 관계자의 “출동 지령에 안전장구 착용 지시가 있었으나 출동 경찰들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발언이 보도되면서 경찰 내부에선 지휘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위급한 신고 상황에 방검복을 다 챙겨가지 못한 현장 경찰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등에선 “권한은 지휘부에 있고, 책임은 현장에만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본인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위해와 불법과 불의에 대결하며....’ 경찰의 복무선서 중 일부 내용이다. 심각한 인력난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 확보를 위해 명시된 매뉴얼 규정조차 지키지 못한 채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경찰들. 이들이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다짐하고 외쳤던 선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