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호의 보물읽기]22. 윤관 장군묘(尹瓘 將軍墓)

윤관(?~1111)의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고려 문종때 문과에 급제해 숙종 9년(1104년) 동북면행영병마도통이 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 정벌에 나섰으나 여진에 패하자 임기응변으로 강화를 맺고 철수했다. 그후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창설, 대원수가 되어 예종 2년(1107년) 부원수 오연총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국방을 수비했다. 윤관은 문무를 겸한 공신으로 사후인 1130년 예종의 묘정에 배향됐다. 장군의 묘는 묘역 전체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봉분과 석물이 단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봉분 아래는 장대석 모양의 호석을 두르고 봉분 주위에는 곡장을 둘렀다. 정면에 상석이 놓여 있고 왼쪽에는 묘표가 있다. 단 아래에는 망주석과 장명등, 양편에 동자석, 문인석, 무인석, 석양, 석마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들 석물들은 최근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묘역 아래에는 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여충사(麗忠祠)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0일 제향을 지낸다. 장군 묘역은 조선시대부터 400여년 동안 계속된 산송(山訟묘지에 관한 다툼)으로도 유명하다. 윤관 장군은 고려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국가로부터 추앙받던 인물이었으나 묘는 실전되어 찾지 못하다가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임을 주장하여 영조 40년(1764년)에 공인됐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조선 현종대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15931662)의 묘가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로인해 양 문중의 산송이 시작됐고 영조는 양 문중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최근까지 400여년간 산송이 이어져 오다 2007년에야 파평윤씨문중에서는 인근에 대토를 내어주고 청송심씨 문중에서는 묘역을 이장키로 합의해 한국역사상 최장기 산송은 양 문중이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장시 경기도박물관의 발굴 결과 조선중기 복식, 묘지석 등 많은 문화재가 출토되어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문화원에서 놀자] <2>의정부 ‘의순공주’

화냥년에서 정신대까지, 우리의 국력이 약할 때 역사의 희생양이 됐던 여인들이다. 조선의 공주 의순(義順)도 이들과 마찬가지 일생을 살았다. 이름은 이애숙(李愛淑), 열 여섯살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스스로 공녀(貢女여자를 재물로 바치는 일)를 자처하면서 조선에서 가장 비운의 공주가 됐다. 나라는 구했건만, 동시에 나라의 치부가 돼 버린 의순공주. 그렇게 의순은 수백년동안을 역사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혔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그가 살다간 의정부 금오동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그것도 의정부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원형으로 말이다. ■ 환향녀 그리고 의순공주 단 두어달만에 끝장나버린 병자호란이었지만 임진왜란의 기난긴 7년여의 전쟁과는 또 다른 피해가 사회 전반을 휩쓸고 지나갔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끌려 갔으며, 끌려간 백성의 수는 무려 50여만명에 달했다. 이들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청나라가 조선 백성들에게 매긴 등급에 따라 돈을 지불해야 했다. 국가나 군주가 해결해 줄 수 없던 이 상황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전재산을 팔거나 빚을 내어 청나라에 끌려간 누이나 아내를 데려와야 했다. 이렇게 힘겹게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 하여 온 동네 사람들은 고생했다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 많은 환향녀들은 임신을 한 상태였고 환향녀는 화냥년이라하여 멸시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호로(胡虜)자식(호로는 오랑캐를 뜻한다)이라 불렀다. 사회 전체가 환향녀와 그 자식들에게 냉혹한 시선과 편견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비단 이런 경우는 힘없는 일반 백성뿐만이 아니라 사대부의 여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의순공주였다. 북벌을 꿈꿨던 효종 원년(1650년), 청나라에서 사신이 가지고 온 칙서에는 왕의 누이나 딸, 혹은 왕족이나 대신의 딸 중 재색을 겸비한 자들을 뽑아 보내라고 적혀 있었다. 새로이 조선의 국왕이 된 효종은 청나라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효종은 자신의 딸들을 오랑캐의 나라에 보낼 마음이 없었다. 대신들과 왕족들 역시 효종의 눈치를 보며 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종실 금림군 이개윤이 자신의 딸을 보내겠다고 나섰다. 효종은 고마운 마음에 의순공주로 봉작한다. 의순(義順), 대의에 순종하라는 뜻이었다. 16세 어린 나이에 머나먼 청나라에 시집간 의순공주의 삶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의순공주가 도르곤에게 시집간지 7개월여만에 도르곤이 세상을 떠났고, 설상가상으로 도르곤이 역모를 획책했다는 혐의를 받고 부관참시되면서 의순공주는 또 다른 황족이자 도르곤의 부하장수였던 박락(博洛)의 첩종이 됐다. 그러나 박락도 1년 뒤 세상을 떠났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의순공주 역시 다른 환향녀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 이개윤은 딸을 오랑캐에 팔아 먹은 인물로 매도 당했고, 의순공주 역시 환향녀라는 따가운 질책과 모멸 속에 28세를 끝으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단지 여자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굴욕과 비난의 대상이 돼야 했던 조선의 여인들, 환향녀 그리고 의순공주. 국가가, 남자들이 자신들의 무능으로 전쟁속에 내몰리고 공녀로 끌려간 여인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자결이라도 해서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정녕 수백년전의 과거속 일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일제의 대동아 전쟁속에 끌려간 정신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의순공주는 우리만의 비극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약자들이 강자에 의해 짓밟히고 깨지며 유린당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의순공주 이야기가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370여년 만에 화냥년 굴레 벗은 의순공주 의정부 금오동 천보산 끝자락에는 작고 초라한 묘가 하나 있다. 의순공주 묘다. 사람들은 족두리 묘라 부른다. 의순공주 묘가 어떻게 족두리 묘가 됐을까. 그 연유속에는 우리 사회가 드러내기 싫은 치부가 깊게 서려 있었다. 구전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순공주는 청나라로 가지 않았다. 도중에 평안도 정주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강물에 빠진 시신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의 족두리만 가져와 족두리 묘를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국의 공주가 오랑캐의 나라로 팔려 가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이때문에 의순공주가 화냥년이라는 굴레를 벗고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해낸 여성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되찾기까지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373년이다. 지난 2009년 의정부문화원(원장 조수기)은 의정부문화테마발굴 프로젝트 사업의 소재로 의순공주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마침내 의순공주는 당당하게 후손들 앞에 섰다. 뮤지컬 의순공주통해서. 문화원은 완전한 뮤지컬 제작에 앞서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한 중간단계로 쇼케이스 공연을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수기 의정부문화원장은 초중고등학생을 비롯해 각 세대별로 6천명이 관람을 하고 평가를 진행한 결과, 세대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며 질적으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2011년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경기도 문화원형 발굴사업 공모에 참여해 의정부의 문화원형 소재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원은 2012년 말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완료하고, 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2013년 10월 완성된 작품을 대중앞에 선보일 계획이다. 물론 아직도 막대한 예산을 확보해야하는 마지막 과제가 남아있다. 현재로써 가장 필요한 것은 시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예산 확보가 안돼 2010년 쇼케이스 이후 한 걸음 더 내딛기가 힘든 상황이예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박정근 문화원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의정부문화원이 만들고자 하는 뮤지컬 의순공주는 앞서 제작됐던 대형 역사 뮤지컬 명성황후, 남한산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인물 혹은 사건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숨어 있는 역사적 보물을 찾자는 것이다. 조 원장은 전국 230개 문화원 가운데 의순공주 같은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원형적 콘텐츠가 없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며 의정부문화원이 그 시발점이 돼서 좋은 선례를 남긴다면 전국적으로 문화원형 복원의 붐이 일거라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 의순공주여! 역사앞에 다시 서라! 의정부 금오동에는 언제부턴가 의순공주의 넋을 기리는 정주당놀이가 전해져 오고 있다. 매년 3월 한 많은 일생을 살다간 공주를 달래는 진혼굿을 비롯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잔치를 벌인다. 의정부문화원은 뮤지컬 제작과 함께 정주당놀이를 향토무형문화재로 등재시키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만약 등재가 이뤄지면 의정부로서는 향토무형문화재 1호를 갖게 되는 셈이다. 박정근 사무국장은 문화관광자원이 거의 없다시피한 의정부로서는 뮤지컬과 정주당놀이가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의정부 전체적으로 유일하게 수백년전부터 주민들에 의해 순수한 목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만큼 그 복원 가치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대대로 금오동에서 살아온 금림군 일가는 손가락질을 견디다 못해 이제는 파주며, 포천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다행히 의순공주 묘역 바로 밑에 홀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후손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정주당놀이 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이진형씨다. 역사적으로 의정부는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했던 곳입니다. 한국전쟁때도 그랬고, 지금도 최전방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죠. 애숙 할머니도 마찬가지셨어요. 몸을 바쳐 나라를 구했던 거죠. 의순공주와 의정부는 한 몸입니다. 의정부가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시민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의순공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시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실학박물관, 다산 탄생 250년 ‘회혼례’ 재현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이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내달 4일 오후 4시 남양주 다산유적지내 여유당 특설무대에서 최초로 다산의 회혼례(回婚禮)를 재현한다. 회혼례는 혼인 60년을 맞이한 부부를 자식들이 축하하는 잔치로 다산은 15세 때 풍산 홍씨를 아내로 맞아 해로하다 결혼 60주년 회혼례 당일인 1836년 2월22일 아침에 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재현 행사는 다산이 쓴 가례작의(嘉禮酌儀)와 19세기 그려진 회혼례 그림을 바탕으로 다산의 회혼례를 고증, 재현한다. 행사는 길놀이, 회혼례, 수연(壽宴), 다산이 지은 회혼 축시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회혼을 맞은 노부부 2쌍과 다산과 실학자 후손, 다문화 가정 부부 등 15쌍을 초청해 가정의 효심을 담은 대동잔치마당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에 앞서 오후 3시에는 다산의 양력 생일을 맞아 다산유적지 다산사당에서 고유제 및 헌다례를 봉행하고 묘소를 참배하는 고유제가 열린다. 고유제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초헌관으로 이석우 남양주 시장이 아헌관으로, 엄기영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종헌관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 다음날인 5일에는 다산의 고향 마재 마을에서 행해졌던 철마산 산신제를 다산의 기록을 복원, 재현한다. 철마산 산신제는 남양주 조안면 소재 철마산에 무쇠로 만든 철마가 모셔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재 마을 사람들은 매년 봄과 가을, 콩과 보리를 삶아 정성스레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박물관측은 4~5일 이틀간에 걸쳐 다산음악회뮤지컬연극을 비롯해 퇴계원산대놀이, 실학퀴즈, 아리수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의 (031)579-6005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제9회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

조선 22대 왕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서울에서 수원까지 직접 발걸음을 했다. 그리고 200여년이 지난 29일 오전 8시 청소년들이 옛 정조대왕의 능행차 길을 직접 순례하며 효 사상을 되새기기 위해 창덕궁 돈화문(敦化門) 앞에 도열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254명의 청소년들은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유완식) 주최, 수원문화원(원장 염상덕) 주관으로 마련된 제9회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에 참여하는 효 체험 순례단이다. 힘들거 같아요. 그래도 문화재도 익힐 수 있고, 또 정조대왕이 걸었던 길을 직접 걸을 수 있다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꼭 완주해서 정조대왕처럼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릴 겁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강행군을 앞둔 이형기군(13수원 명인중)의 표정이 무거워 보이기는 했지만 순례에 임하는 각오만큼은 자못 비장했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 화선의 융건릉으로 옮긴 뒤, 11년 동안 모두 12차례나 부친 묘소를 참배하러 직접 서울에서 수원까지 찾는 능행으로 효를 실천했다. 순례단은 이러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배우기 위해 8월1일까지 3박4일간 정조가 걸었던 그길 그대로 창덕궁을 출발해 화성 융릉(사도세자의 능)을 거쳐 수원 화성까지 모두 62.2㎞ 구간을 걸을 예정이다. 오전 9시, 힘찬 화이팅과 함께 행진이 시작됐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순례단은 보신각을 거쳐 숭례문을 지나 점심때가 되서야 정조가 다리를 놓아 한강을 건넜다는 노량진 배다리에 도착했다. 짙누르는 뙤약볕에 단원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발걸음은 상당히 무거워졌다. 작년에는 비와 와서 진짜 힘들었는데요, 올해는 너무 덥네요. 그래도 정조대왕이 수원까지 왔을 때도 날씨가 안좋았을 때도 있었을 텐데, 정조대왕도 효심 하나로 이 길을 걸었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꾹 참고 갈거예요. 마른 목을 축이며 말을 건내는 오영진군(15수원 산남중)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순례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순례단은 첫날 한강 배다리터를 지나 노량행궁, 남태령고개까지 가며, 둘째날 과천 온온사와 과천행궁, 지지대고개를 지나 수원 만석공원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어 셋째날 장안문, 팔달문을 지나 융릉을 순례한 뒤 넷째날 화성행궁 및 수원화성 성곽순례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염상덕 수원문화원장은 순례길은 창덕궁에서 융릉에 이르는 정조대왕의 능행길 속에 녹아 있는 효심을 따라 걸으며, 효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능행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번 순례를 통해 부모에 대한 효는 물론 (아이들) 자신의 체력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례 중 숙영지에서는 부모님께 효의 편지쓰기, 역사강의, 캠프화이어, 레크레이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날 기상청은 순례기간 내내 계속되는 찜통 더위와 함께 곳곳마다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몸은 비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스스로 부쩍 자란 아이들이 화성행궁에 입성하는 모습을 보며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는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까.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장덕호의 보물읽기]21. 봉업사지 오층석탑(奉業寺址 五層石塔)

봉업사(奉業寺)는 청주와 충주 등 중부내륙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인 죽산면의 국도변에 있는 폐사지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의 옛터에 오층석탑과 당간지주만이 세워져 있다. 석탑의 높이는 6m로 여러 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두고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의 기단을 이루는 석재에는 모서리 기둥이 잘 남아있다. 1층 탑 몸돌의 남쪽 면에는 작은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형식적으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얇으면서 각 층마다 5단의 지붕받침이 표현되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여 편평한 느낌을 준다. 현재 상륜부는 멸실되어 사라진 상태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율도 미미하고, 각 부분의 조각도 형식적이지만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고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다.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고, 1층 몸돌이 전체적 비율에 비해 매우 높은 점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석탑 특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남시의 춘궁동 석탑과 함께 경기도내 고려초기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봉업사는 기호지방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에 고려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사원(眞殿寺院)으로 세워져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번창했던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 폐사된 이후 매산리 사지로 전해져 오다 봉업사 명문이 기록된 금고(金鼓)가 발견됨으로써 그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됐다. 특히 봉업사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들이 칠장사, 국립박물관, 호암미술관, 연세대학교 등에 보관되고 있어 고려시대 경기도를 대표하는 최대사찰이었음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또한 죽산지역에는 죽산리 석불입상, 칠장사 등 많은 불교관련 문화재들이 분포하고 있어 최고의 문화유적답사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장덕호의 보물읽기]20.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이 지도는 조선 명종(明宗) 12년(1557)~13년(1558)경에 제용감(濟用監)에서 계회축(契會軸)의 형식을 빌어서 제작한 조선팔도주현도(朝鮮八道州縣圖)로 크기는 가로 61㎝, 세로 132㎝로 대형지도이다. 3단 형식으로 맨 윗부분에는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라는 제목이 있고 중간부분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맨 아래에는 지도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직성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유출되어 대마도 종가(宗家)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930년대에 입수하여 귀환한 문화재이다. 지도에는 조선8도의 주현(州縣), 수영(水營), 병영(兵營)을 표시하였고 특히 각 군과 현마다 색을 다르게하여 알아보기 쉽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산과 강의 경계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다. 지도의 형태는 지금의 전국지도 모습과 매우 비슷하나 북쪽으로는 만주지역과 남쪽으로는 제주도, 대마도까지 표시하였다. 동쪽 울릉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만주와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하였다. 지도는 먹으로 엷게 채색하여 그렸는데 함경도는 청색, 평안도는 녹색, 황해도는 백색, 강원도는 녹두색, 경기 충청도는 황색, 전라도는 무색, 경상도는 적색 바탕으로 그리고 타원형안에 지명수영병영 등을 기입하였다. 이 지도는 조선 전기 국가에서 제작한 지도로는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있는 원본 지도로 제작자제작연대가 확실하여 지도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은 물론, 이와 유사한 다른 지도의 제작연대도 밝힐 수 있는 자료의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이 지도의 발견으로 조선전기 지도제작의 수준 및 형식을 알 수 있고 또한 만주지역과 대마도를 명기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전기에는 만주 및 대마도 지역을 우리 영토로 생각하였던 영토의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조각, 빛을 품다!'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9일 개막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 창작 과정을 시민들이 직접 지켜 볼 수 있는 제 15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오는 9일 개막된다. 조각, 빛을 품다!( Sculpture, Embraces the light)란 주제로 이천 설봉공원에서 21일 동안 진행되는 이번 심포지엄에는 국내에서는 고명근김승영정국택엄익훈정재철 조각가와 해외 조각가로는 헝가리 이즈반에로스스페인 린드로 세이자스중국 린강불가리아 루멘 디미트로브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심포지엄 개막식은 9일 오후 5시 이천아트홀 광장에서 열린다. 설봉공원에서는 작가들의 작품제작과 함께 작가와의 대화(Artist talk)를 통해 그들의 작품세계를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역대 참여작가들의 기존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 등 시민들과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이들 작가들이 만들어 낸 10점의 전체 조각 작품은 온천공원, 농업테마파크 등 이천시 일원에 설치되며 작품을 통해 시민 휴식처에 조형미와 활력을 더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이천시가 문화예술의 도시로서 위상과 자부심을 높이는 국제적인 조형예술행사로 해가 갈수록 위상을 높여오고 있다. 이천=김동수기자dskim@kyeonggi.com

경기도 3대 종교인, 전통놀이로 화합의 장 펼친다

경기도의 3대 종교인들의 모임인 경기도종교협의회가 28일 오전 10시 수원 월드컵보조경기장에서 제1회 경기도 종교인화합 한마당을 개최한다. 개신교불교천주교 등 3대 성직자 및 신도 1천여 명이 함께 하는 이번 행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개 팀으로 나눠 투호던지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 30여 종의 전통놀이를 함께 하는 명랑운동회 형식으로 종교 간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간다. 특히 이날 명랑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목사, 스님, 신부님들이 직접 선수로 나서 네트를 사이에 두고 족구경기로 자웅을 겨루며 종교 간의 벽을 넘어 상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함께 나누는 행사로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종교협의회는 경기도 공무원 멘토단으로 활동하며 정기 모임을 갖고 종교 지도자 간의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다. 올 초, 모임에서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총무국장 성무스님(안양 삼막사 주지)과 도원스님(제25교구본사 봉선사 총무), 김영진 목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 이기수(원천동성당) 신부 등 3대 종교 성직자와 경기도청 관계자 등이 뜻을 모아 이번 제1회 경기도 종교인화합한마당을 개최하게 됐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김학중(안산 꿈의교회 담임목사) 준비위원장은 종교계가 일부 불미스런 사건들로 인해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자숙하고 자성하자는 의미에서, 그리고 종교 간 원할한 소통을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며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행사 당일 모금운동을 통해 도내 다문화가정과 사연이 있는 극빈자가정 등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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