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본사 주필공자도 부자 간 대화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자의 문하생 진항이 스승은 아들 백어에게 어떻게 교육하는 지 궁금해 물었다. 백어의 대답은 이랬다. 아버지를 집뜰에서 만나 지나가는 데 불러 시경을 읽어야 인정과 도리를 안다고 말씀하셔서 읽게 됐다는 것이다. 공자 같은 분도 아들과의 대화가 뜰에서나 있었던 것을 가리켜 후세인들은 정훈(庭訓)이란 고사로 전한다.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1993년 짐 쉐러단 감독 작품으로 1970년에 있었던 실화다. 아일랜드의 한 무직 청년은 아버지를 무능히 여겨 대화가 있을 수 없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온 가족이 런던 폭파 테러범 지원 조직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루며 누명을 벗는 법정투쟁 과정에서 보인 놀라운 용기와 인내를 보고 새삼 존경을 금치 못하게 된다.돌아보면 필자도 아버지 생전에 대화가 많지 않았다. 아니, 대화를 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못난 아들을 위해 남몰래 하셨던 이런 일, 저런 일들이 기억되는 데 나는 아버지를 위해 해드린 게 아무 것도 없어 부끄럽다. 이런 잘못을 경험삼아 내 아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으나 역시 뜻대로 되지 못했다.인천 신송고 부자캠프아들이 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렸다. 인천 신송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이튿날 28일까지 학교 대강당에서 가진 아빠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프로그램에서다. 이에 참가한 40여쌍의 아버지와 아들은 새로운 부자의 정을 일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바빠 그동안 못다한 서로의 얘기를 밤새워 도란 도란 주고받은 대화는, 말이 없어 응어리 졌던 맘속 앙금을 걷어냈다. 이밖의 다채로운 프로그램 또한 부자의 딱딱한 벽을 허물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뭣을 생각하는 가를 이해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거듭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물론 시일이 지나면 캠프에서 느낀 정서 역시 차츰 무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뿌린 남는다. 흑판 강의로 하는 인성교육도 좋지만 캠프 행사는 체험적 인성교육이다. 이런 체험적 인성교육이 많은 학교에서 다양하게 개발돼 확대 되면 좋겠다.가족 간에 소중하지 않은 사이는 없다. 부부는 말할 것 없고, 모자나 모녀간 사이도 중요하고, 형제자매나 남매간 사이도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부자 사이를 말하는 것은 남성 우월주의가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란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가족 형성의 계보가 부계, 즉 남성 중심으로 된 인류사회의 보편적 생활 양상 때문이다.대화를 더 많이 가져야아버지와 아들을 둔 말에 아버지는 아들의 덕을 말하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父不言子之德 子不談父之過)는 것은 명심보감의 말이다. 이에 비해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얼마후엔 아버지를 심판한다. 아버질 용서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드문 일이다라는 것은 19세기 영국의 탐미파 거장 시인 와일드의 말이다. 명심보감 구절은 동양적 사상이고 와일드의 말은 서구적 사상이다.주요한 것은 현대사회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전통적 인식에서 서구적 관념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들이 장가를 들지 않거나 장가를 들어 아일 갖지 않아도, 아버지가 뭐라고 하는 것은 잔소리로 치부한다. 가령 손주를 기다리는 것은 아들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권리인데도 아들은 아버지가 할아버지 될 권리를 잘 인정치 않는다. 부자관계만도 아니다. 고부 간 역시 바뀌는 추세로, 예전 같은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가 아니다.그러나 세태가 어떻게 바뀌어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 은 인성이 근본이다. 부자간의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같고, 이는 아버지의 군림과 세대차이 때문이지만 이러므로 더 해야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말같지 않은 남들 말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화에 있어서야, 단소리보다 쓴소리의 소통이 가정의 활력소다. 가족간의 대화가 중요한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소통은 더욱 중요하다. 이같은 소통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 또한 건강하다.임양은 본사주필

성질나는 ‘청문회’

MB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국민들 성질만 나게 하는 것이 인사청문회란 사람이 많다. 노무현(정권)때도 그래서, 이명박(정권)이 되면 좀 나을까 싶었는 데 거거익심이다(갈수록 더 심하다)라고도 말한다.닉슨의 하야를 가져온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은 대통령의 거짓말이다. 닉슨이 도청을 시켰다고는 믿지 않았으나, 나중에 알고도 부인한 것이 도덕성의 치명적 흠집이 됐던 것이다.부인의 관용차 개인 용무 사용, 도청 직원의 가사 도우미(하인)노릇을 부정하다가 뒤늦게 시인한 것은, 앞서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거짓말로 둘러대다가 증거를 대니까, 할 수 없이 자기 아내가 탄 관용차 연료비로 500만원을 납부하겠다며 죄송하다는 것은 진정성이 있다 할수 없다. 처음부터 시인, 사과했어야 한다. 이런 김태호(총리후보)가 (경남도지사적에)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10억원 선거비용 특혜 대출설의 사실 여부로 청문회장을 뜨겁게 달궜다. 그런 금지 규정을 오늘(24일) 처음 알았다는 것은 김태호의 말이다.심재민(문화관광체육부장관 내정)은 한국일보 논설위원까지 지냈다면서 무슨 부동산 거래를 17번이나 해 투기 의혹을 받는지 괴이하다. 이재훈(지식경제부장관 내정)은 벼룩의 간을 빼먹지 쪽방촌 투기까지 해놓고, 이젠(장관을 하기 위해) 그걸 내놓겠다고 한다.뒤늦은 사과, 면책될 수 없다위장전입은 거의가 필수적 공통과목으로 고관들의 기본적 위법 소양이 됐다. 신재민은 위장전입을 무려 5번이나 했다. MB에 대한 기억이 틀림이 없다면 대통령도 위장전입의 전력이 있다. 이래서 위장전입쯤은 죄가 아닌 것으로 준법의식이 희석됐는 지 모르겠다.88 개각의 국무위원 내정자들 청문회 얘긴 이미 신문에 났고, 또 여기에 다 되새기자면 정말 성질만 뻗칠것 같아 그만 두고, 공주 갑부 김갑순이란 사람 얘길 한다.그는 공주 감영의 아전 출신으로 왜정 때 운수사업과 수리사업으로 갑부가 됐다. 친일도 했다. 그렇긴 해도, 한편 민족자본을 지킨 측면 또한 없지 않다. 그런데 자신을 속여먹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민나 도로보(모두 도둑)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유명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생각되는 것이 김갑순의 그같은 말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 어떻게든 국민을 속여 장관이나 총리 자리에 오르려고만 기를 쓴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도층은 다 그렇게 썩은 인간들 뿐인지, 사람을 잘못 고르는 것인지 모르겠다.MB 내정자 탈락, 과감해야MB는 그랬다. 그도 인사청문회를 보고 느낀 것이 있었던 지 인사 검증 기준을 크게 강화하라고 했다. 물론 비서실 관련 부서에 지시한 것이지만,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자문자답해봐야 할 말이다.공정한 사회 건설은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 중 주요 내용이다. 민초가 갈망하는 것이 바로 공정한 사회다. 그런데 명색이 나라의 국무위원을 하겠다는 사람들마다 다대수의 과거가 불법이나 탈법, 부도덕으로 얼룩져서는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공정한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인사청문회에서 나타난 부정적 요인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를 확인해보는 사회심리학적 구명이 있을 법 하다. 아마 좋게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기성사회만도 아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언어가 거친 원인 역시 국가 지도층의 타락과 무관치 않을 것 같다. 물론 이엔 국회가 이따금 보이는 막가는 행태에도 영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국정 최고의 정부기관에서 상식이 존중되는 최고의 가치를 수범적으로 먼저 보여 파급시키지 못하는 잘못이 더 크다.MB는 이번 개각 임용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국민에게 수범을 보여야 할 절실한 입장에 있다. 탈락시켜야 할 내정자는 과감하게 탈락시켜야 된다. 그러지 않고 모두 기용하는 고집을 보여서는 민초사회와 점점 더 멀어져 그의 공정한 사회란 말은 공허 해진다. 인사청문회로 성질 난 국민들 마음을 다소나마 달래 줄 것인지, 아니면 눈 딱 감고 모른체 지나칠 것인지 두고 보겠다. 임양은 본사주필

좌파가 된, 손학규

손학규가 요즘 진보주의를 자칭한다. 좀 어리뻥뻥하다. 지난 수원 장안구 국회의원 재선거 때다. 민주당 선대위를 맡았을 적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경기지역 사람들 눈엔 좀 어색해 보였지만 이해하려고 했다.62 지방선거에선 달랐다. 그가 유시민과 어우러진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생뚱맞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15일 춘천에서 그동안 기르던 닭으로 손님들에게 백숙 대접을 하며 칩거 생활를 끝낸 자리에서는 이광재와 러브샷을 했다더니, 여의도로 돌아가자마자 이내 진보주의자가 됐다.아니, 전부터 좌파였던 걸로 행세한다.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선 한나라당을 나온 것도, 진보적 개혁이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고 했다.그는 좌파였을까, 경기비전 2006은 2003년 1월 경기도지사 시절에 발표한 도정 10대 분야 51개 사업의 로드맵이다. A4 용지로 무려 245쪽 분량이다. 말하고 싶은 건 이 방대한 책자의 내면 철학에 좌파 흔적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단 사실이다.좌파연대, 진보주의 열공중도 개혁의 실용주의 선호를 몰랐던 것은 아니나, 진보주의는 아니었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한 민중운동 전력은 있었어도, 좌파는 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보사부 장관에 기용된 것이 탈이념화 후다. 우린 그렇게 믿었었다.신자유주의 경제의 폐해가 예컨대 양극화라 해도, 사회주의로 갈 순 없고 또 사회주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10년 전과 달라 제3의 길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다란 것이 그가 표변한 좌파 논리다. 그러나 엎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진보적 자유주의에 새로운 길 수식어를 붙인다고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노무현을 교주로 하는 덴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나 같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은 좌파 정당이 분명하나, 민주당을 완전한 좌파 정당으로 보는 덴 아직 무리가 있다. 그런데 국민참여당계 노무현 인맥이 민주당내 일각을 형성한다.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이다.경포대란 2005년 손학규가 노무현을 가리켜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꼬아서 했던 말이다. 노무현은 또 2007년 대선 정국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를 말하며 보따리 장수라고 했다.장차,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은 필연적이다. 국민참여당의 선거직 독자 진출은 난망하다. 지난 62 지방선거, 728 재보선에서 거듭된 실패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지금 여론조사로 당권 주자의 선두에 선 손학규는 한참 신바람 났다. 하지만 그가 목표하는 상종가는 민주당+국민참여당=대통령 후보일 것이다.또 한 번의 시도 정치 도박한나라당에서 장관국회의원도지사를 지냈다. 모두 현직이다. 탈당은 이래서 단물만 쏙 빼먹은 배신이란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철저하게 불우했다. 민생 현장 100일 대장정은 어느 정치인도 흉내내지 못한 대탐험이다. 완전히 민생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당내에선 백안시했고, 여론조사는 계속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절로 고사될 위기감에서 결행된 것이 배신의 비난을 무릅쓴 탈당카드였을 것이다.어떻든 민주당으로 개가해서는 과도체제 대표에 이어 상임고문의 빅3로 분류되면서, 당권 주자로 주목받는 입장이 됐다. 여러 갈래의 당내 잡탕 계파 가운데서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는 민주당에 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불쏘시개가 아니고, 빼다 박는 벽돌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놓고는 갔다. 잘못하면 타버린 불쏘시개나 버려진 벽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한나라당에서 못 이룬 대권의 꿈을 민주당에서 이룬다면 역량이다.그의 진보주의 좌파 열공이 좌파 연대의 정략이든, 본인의 신조든 간에 한 가지는 믿는다. 별난 좌파의 종북주의와는 구별될 것으로 안다. 손학규의 돌연한 변신이 황당하면서도, 한편 기왕지사 관심을 갖는 것은 어지러운 국내 좌파 세력을 정비하는 진보주의의 새 모럴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해서다. 다시 닭을 키울 생각이 없으면 정치 도박에 처신을 잘 해야 된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임양은 본사주필

MB, 입장 표명을

여권에 김태호(총리 후보자) 신드롬은 약인가? 독인가? 88 개각이 불러들인 게 난데없는 김태호 타령이다. 때 아닌 차기 대권 주자 간 포화가 제법 거세다. 이명박(대통령MB)의 김태호 분신 발언은 이에 끼얹는 기름이 됐다.MB의 친서민정책이라는 것은 민생 안정이다. 서민들은 벌어먹고 살기에 바쁘다. 아직도 먼 얘기인 차기 대통령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개헌론 따위도 마찬가지다) 친서민 정책을 표방한다면서, 친서민 정서와 동떨어진 대권 주자 구도를 유발, 8룡이니 9룡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생뚱맞은 소리다.첫 포문을 터뜨린 것은 김문수(경기도지사)다. 자고 나면 총리가 나오고, 또한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행세를 한다)라면서 중국의 예견된 지도자(정치 질서를)를 예로 들었다. 이에 가만히 있거나, 총리 후보자의 입장에 그친 말로 대응하면 될 김태호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맞받아 친 것은 경솔하다. MB의 분신설에 겹쳐 본인 또한 낙점받은 차기감으로 과시한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김태호, MB 차기 의중 맞는가궁금한 것은 MB의 침묵이다. 현재로썬 국회에서 김태호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의 대북, 노동 문제 등 인식에 철저한 검증을 하겠다고 벼른다. 그러나 김태호에 대한 그런 인식의 문제보다는, 그의 기용을 집권 후반기 친정 체제 강화로 보는 야권의 무조건적 반대가 예상된다.설상가상인 것은 박근혜(의원) 계열의 변수다. MB의 김태호 차기주자 낙점론은 그러잖아도 박근혜의 입지를 좁힌 88 개각에서, 노골적으로 등 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래 가지고야 두 사람이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박근혜의 청와대 회동 무용을 주장하는 친박 의원들 말은 일리가 없지 않다. 박근혜는 여전히 의문의 침묵을 지키고 있다.만일, 친박계가 야권과 동조하여 임명동의안에 부표를 던진다면 김태호 총리 카드는 불발이 될 공산이 있다. 이 경우, MB가 입는 정치적 치명상은 예사가 아니다. 국민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기한다는 개각이 당내 소통, 화합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총리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면 88 개각의 내각 구성 또한 차질을 빚는다. 비록 형식적이나마 헌법상 국무위원 임명을 제청할 국무총리가 공석이기 때문이다.김태호는 자신이 소장사 아들이라고 했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 도의원 등을 거치면서 40대 경남도지사를 두 번이나 지낸 것은 범상치 않긴 하다. 그러나 그가 어떤 도지사였는진, 역량을 들은 적이 없다. 경륜 또한 아는 바 없다. 나이가 젊다고 꼭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총리로서도 미지수의 인물을 대뜸 대권 주자 반열에 올리는 것이, 기존의 여권 잠룡들에 대한 MB의 견제구라면 성급하다.분란 자초시 서민 정서 멀어져아니, 현직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을 염두에 둘 이유가 없다. 차기는 정치권 내의 일이다. 이를 현직 대통령이 간여하는 것은 되레 동티를 내기 십상이다. 정권을 야당에 넘기지 않고, 여당에 물려주고 싶은 요량이라면 할 일이 따로 있다. 현직 대통령은 현직에 충실하는 게 소임이다. 대통령 노릇을 잘해 국민사회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정권을 수직 이양하는 길이다.하물며 MB가 후계자를 자기 손으로 키우겠다면 평지풍파만 일 뿐,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공당을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여권의 내분과 혼란을 가져와 대통령 일을 수행하는 데 지장만 유발한다.MB에게 갖는 이 같은 의문이 기우라면 당장 밝혀야 한다. 김태호 카드는 총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차기와 무관하다는 것을 공표해야 된다. 물론 김태호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다. 마치 MB의 의중 적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도 볼썽사납지만, 그래도 책임은 MB 당자에게 있다.지금이 어느 땐가? 예컨대 남북관계는 내일을 예측하기가 어렵고, 이란 제재의 동참 여부는 딜레마에 빠졌고, 친서민정책 관련의 부동산 및 세제 등 난맥상은 정비가 시급하다. 한가하게 차기론 분란으로, 시일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MB의 입장 표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임양은 본사주필

남경필, 뭘 했나?

본사 주필728 재보선의 빅 매치는 단연 서울 은평을 선거구였다. 정치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의 코페르니쿠스적 탈바꿈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철저히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에 접근했다. 그것은 2년3개월 전 중앙정치의 거물이 지역에 기여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유권자들 의문에 겹친, 그 자신의 MB 킹메이커 오만을 보이던 것과는 영 딴판의 면모였다. 유권자들은 주민과 밀착한 이 같은 단기필마의 이재오 포복에 총선서 떨어뜨린 응징으로 충분히 반성했다고 보고, 범야권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큰 표 차이로 4선의 영광을 안겼다.선거운동 또한 4대강과 세종시 문제 등을 내세워 목소리 높여 떠들지 않았다. 후생 의료시설 같은 지역발전 공약으로 일관했다. 비록 지각 당선이나마 정치권에 복귀하는 데 성공한 첫 소감 역시 거창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지역을 발전시키라고 날 뽑아준 것으로 안다는 것이었다.이재오 의원 얘길 하는 덴 연유가 있다. 수원에도 4선의 거물이 있다. 남경필 의원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 무대의 비중이 지역사회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 지역주민의 의문이다. 수원의 정서가 남경필을 인물로 키우자고 했다면, 그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게 아니다. 키웠으면 기여가 있어야 할 터인데, 과연 그가 해놓은 것이 뭐 하나 있느냐는 것이다. 분당선 연장이나 화성 성역화 국책사업 등 현안을 예로 들 수 있다.물론 그의 측근들은 시도의원 등을 만들어 주었다. 이래서 조직 관리가 튼튼하다는 말을 하긴 한다. 그러나 수원시민은 그 같은 조직 관리의 노예가 아니다. 수원엔 국회의원이 4명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출신이 각 2명이다. 그러나 지역 현안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국회의원이 4명이나 되는데, 하필이면 왜 남경필 의원을 잡고 늘어지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있다. 앞서 밝혔듯이 4선의 중진이기 때문이다.알다시피 김진표 의원은 재선이다. 그리고 정미경, 이찬열 의원은 초선이다. 다선 의원으로 다른 수원 출신 국회의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 남경필 의원이다.그런데 독불장군이다. 김진표, 이찬열 의원과는 당이 다르다며 소원한 관계다. 심지어는 같은 한나라당의 정미경 의원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들린다. 지역 현안도 챙기지 않으면서 수원 사람, 객지 사람만 찾아서는 중진의 금도가 아니다. 오히려 현안에 고심해 가며 뛰는 것은 정미경 의원이다. 수원비행장 이전 문제의 근원적 타결점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국방부 등 관련 부처를 찾곤 한 것이 그다. 한걸음 나아가 국방대학원을 다닌다.국회의원에게 지역 문제를 말하면, 그건 지방의원이 해결할 일이라고 발뺌할지 모르겠지만 당치 않다. 완전 지방분권형 지방자치일 것 같으면 굳이 국회의원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현행 지방자치는 완전 중앙집권형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수임기관이면서 지역 대표성의 기속력을 갖는다.내친 김에 더 말한다.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기득권 고수의 탓도 있지만, 국회 역시 동조하는 무책임이 원인이다. 국회의원들 또한 중앙집권형 권력을 놓치기가 싫기 때문이다. 수원 출신의 고 이병희 의원은 516 군사정변의 주체 세력이다. 그에 대한 헌정사적 평가는 물론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수원으로 보아서는 은인이나 다름없다. 비근한 예를 든다. 경기도청을 끌어오고 삼성전자를 유치한 것이 그다. 당시 인천과 경합이 붙은 도청 유치를 위해 청와대에 머리카락을 깎고 들어가 대들기도 했다. 남경필 의원 정도라면 지역사회를 위한 이만한 열정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지역주민의 여망이다.물론 혼자 다 하라는 것은 아니다. 캠프 파이어는 불기둥이 서로 모여 기대면서 탈 때 내뿜는 화력이 더 강하다. 떨어지면 불길이 줄고, 그나마 흩어지면 불길이 죽는다. 마찬가지다. 지금의 수원 출신 국회의원들은 현안에 불길이 죽은 상태다. 떨어지다 못해 흩어진 불길을 다시 모아 활활 타올려야 할 시점이다. 남경필 의원, 당신이 정말 다선 의원이라면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과 화합을 이루는 국량으로 지역 현안에 이마를 맞댈 뿐 아니라, 중앙 요로에 대들며 관철시키는 배짱도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 표결 시 반대표를 던진 것에 말이 많으나 그건 국회의원으로서 양심의 자유다. 그러나 지역에 뭘 했느냐는 의문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재오의 교훈이 그것을 말해 준다.

한상렬, 北에서 살아라

젊은이들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라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북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 왜 민주주의의 좋은 것은 다 누리면서 북한을 옹호하고 그러냐. 이북 가서 살지. 알려진 대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이다.지난 24일이다. 아세안지역포럼(ARF) 참석차 하노이에 간 그가 현지 기자들과 만나 가진 간담회서 한 말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로서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적절치 못한 막말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파면해야 한다는 지탄까지 나왔다.그러나 일리가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갖는다. 젊은 층을 싸잡아 그같이 (북에 가서 살라고) 표현한 것은 어폐가 있지만, 그렇게 좋으면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북 가서 살아야 할 사람들은 젊은 층이 아니다. 기성사회인 층이다. 예컨대 평양 만경대는 김일성 저쪽 주석 생가다. 그곳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과업 이룩하자고 써놓고 돌아온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김일성은 1994년 7월8일 82세로 죽었지만 아직도 주석으로는 살아 있다.나라 좀먹는 종북주의자들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확정 판결을 내린 것은 지난 23일이다. 범민련, 한총련 출신의 주사파들이 주도하는 단체다. 판결 이유는 이렇다. 실천연대의 활동은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 선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고, 국가의 존립 안전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어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단시위를 이끌며 미군 철수를 주장한 게 이들이다.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 땐 군중들에게 청와대 진격을 선동했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4명이다.공연히 여기서 난동 부리지 말고 북에 가서 살아야 할 종북주의자들이 많은 가운데, 북에 그대로 눌러앉아 살아야 할 종북주의자가 또 있다. 지금 평양에서 국빈 대접을 받고 있는 한상렬 목사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다. 지난 6월12일 중국을 거쳐 불법 입북했다.남북 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권의 반통일적 책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목숨 걸고 왔다(평양 도착 성명) 이명박 장로는 그동안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 왔다 (2000년 615 정상회담을 말하면서) 남녘 조국, 남녘 동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어른을 공경하는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머, 지혜와 결단력, 밝은 웃음 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북녘 조국은 진정으로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북녘은 주체사상을 기초로 핵무기보다 더 강한 일심단결자력 갱생혁명적 낙관의 3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22일 인민문화궁전 기자회견) 이명박이 남조선 동포를 속이고 반민족 독재, 반자주 예속화, 반자연 환경 파괴를 일삼고 있다(23일 환영군중집회에서) 앞으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며칠 전에는 판문점에 들러 북쪽 경비지역에 세워진 김일성 친필비를 둘러보기도 했다.진보로 위장된 폭력혁명 기도한상렬 목사는 오는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남녘 조국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오긴 왜 와? 그렇게 좋은 북녘 조국에서 그대로 살지 뭐하러 오느냐는 말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로동당 규약 전문 가운덴 남조선(해방과 혁명을 위한) 인민들의 사회주의화와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한다는 대목이 있다. 남조선 혁명 세력의 거점화는 평화통일 방안의 하나다. 무력 또는 평화통일에 여러 갈래의 이런 시나리오를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러니까 저들은 한상렬 목사 같은 종북주의자들을 남조선 인민의 사회주의화 지원 대상으로 삼고, 또 남조선 혁명의 거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한반도 분단이 예를 들어 독일의 분단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우린 전쟁을 치른 데 있다. 전쟁을 안 치른 독일은 그래서 국민의 선택에 의한 통일이 가능했으나 우린 다르다. 전쟁이 불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엄연한 전범집단이란 사실이다. 언젠가는 평화통일을 해도 북이 이를 인정해야 가능하다.한상렬 목사 같은 종북주의자들에게 묻는다. 한반도를 시산혈해로 만든 전쟁 도발의 책임을 외면한 저들의 평화 공세가 정녕 진정한 평화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그 책임을 묻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제기하면 일이 꼬이기 때문에 유보하는 것이다. 진보주의도 좋고, 좌파도 좋다. 다만 평양정권의 졸개 노릇은 더는 그만둬야 한다. 그것은 결단코 용인할 수 없는 진보 좌파로 위장된 폭력혁명의 기도다. 임양은 본사주필

빚더미 자치단체

집안 살림에 빚이 많아 올 가족 피서는 가지 말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가자(A형) 피서를 신용카드 서비스 대출로 가야 하니 검소하게 가자(B형) 기왕 빚진 김에 빚을 또 내서 남들처럼 멋진 피서를 가자(C형)피서철이 절정을 이룬다. 살림을 책임진 가장은 가족들에게 이상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따로 저축했거나 여유가 있는 집은 얘기가 다르다. 허나, 먹고 살기 바쁜 대부분의 서민층은 가계부에 피서돈 마련의 별도 기장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어느 유형의 아버지를 가장 좋아할까, 상식으로 보면 ABC형 순이다. 그러나 반대로 CBA형 순일 수도 있다.지방자치단체 살림도 다를 바 없다. 지방재정이 빚더미라고 아우성들이다. 우선은 역대 자치단체장들 책임이다. 그러나 나의 책임, 시민들 책임 또한 있다. 우린 그동안 C형 집안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사정은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지방재정을 흑자구조로 건전하게 만든다며, 도시토목 공사도 안 벌이고 행사도 갖지 않는 등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없는 자치단체장 즉 시장군수는 무능한 시장군수로 낙인찍힌다. 자치단체의 알뜰살림 효과는 시민들 생각엔 내 알 바 아니고 또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빚을 긁어모아서라도 곳곳을 파헤치고 거창한 행사를 자꾸 열어야 제법 일하는 것처럼 여겨온 것이 우리의 그간 인식이다. 민선5기 단체장들이 지금 돈이 없다고들 야단이지만, 이들 역시 무상급식 등 다음 선거용 전시성 사업을 위한 돈은 무슨 돈을 끌어대든 방만하게 벌릴 것이다.그러나 단체장은 한두 번을 하든 세 번 하든 임기를 마치고 훌쩍 떠나면 그만이지만, 단체장이 남긴 빚은 정부도 갚아주지 않는다. 결국은 주민이 갚는다. 이런 빚이 도내 자치단체엔 모두 4조원이고 전국 자치단체로는 25조원이 넘는다.하긴, 대한민국은 중앙부터가 부채공화국이다. 국가채무가 약 200조원이다. 정부 공기업부채는 610조원이다. 이런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진 빚 말고도 전국의 지방공기업이 모두 72조원의 빚을 졌다며 감사를 벌이겠다고 벼른다. 자치단체 빚이 폭증한 연유 역시 정부의 책임이 없지 않다.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 집행을 독려하면서는 지방채를 묵과하다가 이제 와서는 기채 요건을 강화한다고 야단이다.이 글을 쓰면서 자치단체란 말을 무척 많이 한다. 그러나 자치단체는 있어도, 지방자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지방자치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다 해서 지방자치가 아니다. 자치사무의 내실이 있어야 지방자치다. 지방자치다운 지방자치는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하는 첫걸음이다. 먼저 두 가지가 개혁돼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외교 국방경제기조국토환경 등 분야 외는 모두 지방에 넘겨줘야 된다. 또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2, 국세 위주로 편중된 현행 세제를 선진국처럼 지방세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국세에서 감질나게 떼어주는 지방교부세보단 아예 지방세원 확대가 더 긴요하다. 아울러 정부사업은 국세, 지방사업은 지방세로 추진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사업을 지방비가 부담하고, 지방은 국비 지원을 졸라대는 지금과 같은 재정구조는 기형아다. 문제점은 있다. 지방세 세원이 빈곤한 자치단체와 세원이 풍부한 자치단체 간에 부익부 빈익빈의 요인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여기선 지면상 더 말할 수 없으나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도내가 모두 같고, 전국이 모두 같은 기계식 기초지방자치사무는 자치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웃기는 현상이다. 자치단체 서로가 능력에 따른 차별 속에 경쟁하는 지방자치가 돼야 한다. 가령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지방재정을 잘 꾸려 건전하면 급여를 더 받고, 잘못 꾸려 부실하면 급여를 줄이는 것이 지방자치다운 면모다. 도시건설복지사업교육 및 치안 문제 등 시책 또한 자치단체마다 창의성이 발휘된 고유의 특성을 가지며, 상호 비교 연구하는 역동적 지방자치행정이 돼야 한다.요컨대 권한만 생각했을 뿐, 책임은 망각한 것이 병폐의 요인이다. 병폐의 요인은 여전하다. 분명하게 말한다. 서두에서 예를 든 지방자치단체의 A형 빚더미 타개는, 자치사무와 지방재정의 운용에 있어 권한에 상응한 책임을 귀속시키는 완전한 지방자치제 이행에서 시작된다.임양은 본사주필

대통령님 전 상서

이명박 대통령님, 이 무슨 해괴한 소리입니까? 영포 라인이다, 선진국민연대 라인이다 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권력층 내부의 암투 말입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서민층이 듣기엔 호사스런 괴담이니까요.이래서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은 초유의 무소유 대통령인데도 국민의 냉대를 받는 것 아닌지요. 이래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무작정 4대강 죽이기라며 반대해도 묵과하는 식물사회가 되지 않았는지요. 이래서 당연한 세종시 수정이 좌절된 자중지란을 겪게 된 것이 아닌지요.국민사회는 지금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치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치는 우렁이 속 같은 권력 내부의 고발성 폭로를 일삼는 서로 간 갈등에 한마디로 침을 뱉고 있습니다. 도대체 영포회는 뭐고 선진국민연대는 뭡니까? 포항 출신 공무원들이 20년 전에 만들었다고 한다면, 출발은 친목이 목적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포항 출신 대통령이 나오고도 그랬을까요. 대선이 끝난지가 언젠데 대선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가 아직도 회자되는 것입니까.둘러싼 비선라인 척결해야비선조직의 권력 농단 의혹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사회 정서라면, 억울하다 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렇게들 믿는 게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비선조직이 설쳐서 잘 되는 정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공식조직은 기강이 있는 데 비해 비선조직은 기강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강은 곧 책임 의식입니다. 대통령님이 경고를 했는데도, 이미 방자해진 그들은 어디 꼼짝이나 합니까. 어떻든 KB금융인사 개입 의혹 등 이런 것들이 100건도 더 있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나왔는데, 이게 무슨 소린지 대통령님은 아시는지요.아시든 모르시든 대통령님의 책임입니다. 왜냐면 권력 게임은 언제나 최고 집권자 주변을 중심으로 벌어지니까요. 세간에 드디어 대통령 형님 얘기가 나왔더군요. 정치와는 담을 쌓았다는 그분 말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국회의원직은 정치를 하는 자린데, 그럼 정치와 담을 쌓은 사람이 국회의원은 뭐하러 하는 것입니까. 하긴 비선조직은 정치는 아니긴 합니다.대통령님이 자신은 권력 게임과 무관한 변방인인 것처럼 비껴서 계신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직접 수술칼을 들이대야 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야당에게 정치 공세의 빌미를 더 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두려워 할 이유는 없습니다.골치 아픈 일엔 대타를 앞세워 한 발 빠지고, 골치 아픈 일 처리에 타이밍을 놓치곤 하는 것은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언젠 사회통합수석비서 자리가 없어 사회 소통이 안 됐나요? 문제는 직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번에 청와대 비서실 직제를 고치고 사람을 많이 바꿨지만 국민은 감동하지 않습니다. 곧이어 개각이 있겠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인사 스타일로 미루어 그 사람이 그 사람일 것으로 보는 생각이 국민사회에 각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각이나 비서실의 인적 쇄신 역시 주물럭거리다가 또 시의를 놓치기까지 했습니다.간곡히 말씀 드립니다. 청와대 초청만을 소통으로 착각하지 마시고, 꼬인 현장에 직접 몸을 던지십시요. 임기 5년의 반환점에 돌아섰습니다. 이제 뭔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님부터 달라져야 아래도 달라집니다. 대저 친이계, 친박계가 뭔지요, 이로도 모자라 벌이는 측근 세력 간의 아귀 다툼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결연한 읍참마속의 처단을 주저치 마십시오. 박근혜 의원 집도 찾아보고, 한나라당 당사며 민주당 등 야당 당사도 찾아 얘기를 듣곤 하십시오. 예를 든 이런 방문이 한두 걸음에 좋은 결과가 안 나올지라도, 국민사회가 보는 눈은 달라질 것입니다.설득의 리더십 위해 솔선을지난번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걸 보면서 이런 것을 생각했습니다. 미국 하원에서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통과시킨 데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심혈을 기운 노력 말입니다. 이 또한 여당인 민주당 안에서도 반대하는 의원들이 적잖아 해외 순방 일정을 미뤄가며 직접 만나 설득하고, 심지어는 공화당 의원들과도 토론을 벌여 100년 숙원의 현안을 해결하지 않았습니까.요컨대 대통령님께 소통의 진정성과 설득의 리더십을 기대합니다. 이는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국민사회는 대통령님이 하시는 일에 만성적 피로의 무력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왜 이럴까요? /임양은 본사주필

요즘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우리 클 때와 달라! 조상 대대로 전래된 말이다. 다르다는 것은 생활문화의 차이다. 그 같은 세대 차이점은 곧 문화 발전의 격차다.그런데 조선 말기까진 세대 격차, 즉 생활문화 발전의 속도가 지극히 완만하였다. 발전 속도가 상승 곡선을 긋기 시작한 것은 1884년(고종21년) 양반제 타파 등 서구 문물이 도입된 갑오혁신 이후다. 개화기가 절정을 이루면서 학교교육이 태동됐고 인간의 존엄성 가치가 추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는 여전히 농업이 경제 구조의 주류를 형성하는 농경사회의 틀을 면치 못했다. 농업 경제와는 비교가 안되게 자본 회전이 빠르고 또한 투자 효과가 높은 산업사회에 들어선 것은 1970년대다. 고속성장의 산업사회에 이어, 지금은 1990년대에 시작한 정보화사회가 구가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급변은 생활관, 가치관 심지어는 윤리관의 변화마저 수반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클 때와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정보화사회의 세대 간 격차지금 마흔 살 전후의 부부를 예로 들어 본다. 이들은 산업사회 시대에 성장하면서 농경사회서 자란 부모 밑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부부가 둔 자녀는 현재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생각의 격차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특히 지금은 불과 몇 해만으로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 할 만큼 정보화사회의 진행 속도가 발빠르다. 가령, 학생들 두발을 말하면 농경사회 적은 학교에서 시킨 대로 할 뿐, 감히 어길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산업사회에서는 두발을 어긴 학생이 간혹 있어 그 머리를 선생님이 가위로 잘라내도 아무 소리 못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왜 자르느냐?며 이의를 댄다. 인권을 말하기도 한다.정보가 개방되다 못해 넘치는 정보화사회 들어 청소년들이 영악해진 이유다. 물론 정보의 홍수가 사물의 변별력 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반면에 나쁜 것도 많다. 예컨대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청소년들이 안 본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가슴 노출은 예사고 이보다 더한 에로티시즘 영상물 투성이인 것을 못 본다고 여기면 착각이다.문제는 교육이다. 성장환경이 판이하게 변화된 지금의 학생들에게 기성세대가 예전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려 들면 잘 먹혀 들지 않는다. 현대 청소년의 특징인 강한 개성은 곧잘 따지기를 좋아한다. 부모나 스승이기 때문에 무조건 존경한다는 생각보다는, 부모다운 부모며 스승다운 스승을 요구한다. 요즘 교육계 일각에서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나 학업성취도평가 거부 등은 이를 테면 자연주의 교육이다. 루소의 유명한 교육소설 에밀은 인위적 교육을 배격한 자연주의 교육의 극치로 인간 본성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로 본 것은 옳을지라도, 지금의 청소년 성장 환경은 그가 살았던 18세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무렵의 인위적 교육이 본연의 인성으로 돌아가는 데 방해가 됐다면, 현대사회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를 저해하는 환경적 유해 요소가 너무 많다.청소년 눈높이 동행교육을방임하는 교육이 아닌 동행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눈높이에 맞추는 동행이 아니고, 배우는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는 동행교육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교원평가제가 또한 필요하다. 한데도 교원평가제를 한사코 반대하는 목소리가 요란하다. 평가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이에 제기하는 이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원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무사안일주의다. 도대체 학생들 일제고사도 못 보게 방임해 가며, 선생님들 철밥통이나 지키고자 한다면 공교육의 불신이 더욱 심각해진다. 미셸 리 미국 워싱턴 교육감과 워싱턴 교원노조가 학생들 성적을 기준으로 교원 성과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부럽다.아울러 인성 도야를 생각해 본다. 청소년에게 과잉 접촉되는 정보화사회의 매스미디어를, 그렇다고 억지로 차단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접촉되는 과잉 정보를 자연스럽게 걸러주는 노력이 현대적 의미의 자연주의다. 공부를 잘하면 물론 좋지만, 좀 못 해도 개성을 살리면 유망하다. 공부도 잘 못 가르치고, 개성의 바탕인 인성 도야도 제대로 못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요컨대 이 시대의 부모는 물론이고, 선생님들은 요즘 아이들은 우리들 클 때와 어떻게 다른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뭘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임양은 본사주필

시장·군수 여러분!

오늘은 시장군수 당선자에서 시장군수로 신분이 달라지는 날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일신의 영달이며 가문의 영광이다. 새로 뽑힌 시장군수는 더할 것이다. 가슴이 벅찰 게 분명하다.오늘 취임식을 앞둔 어젯밤은 무슨 생각을 했으며, 취임식을 마친 오늘밤은 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은 미루겠다. 왜냐면 이유가 있다. 이 순간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 취임하는 시장군수 가운덴 사고를 쳐 임기를 못 채울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상상해 본다. 시장군수 취임이 감옥소 가는 치욕의 길목이 된 것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악담한다고 나무라지 말라, 시장군수가 비리에 약한 것은 새삼 통계를 들 것도 없는 사회적 상식이다.영광의 자리, 더럽히지 말아야시장군수, 그 자리는 말하자면 돈방석이다. 누구 한 사람에게 이권을 주어 벼락부자 만들기로 하자면 식은 죽 먹기만큼 쉽다. 하물며 자신이 축재하기로 작심하면, 거머쥔 모든 시장군수의 권한이 곧 돈이다. 이 같은 권한이 도지사보다 더 많다. 각종 인허가권만도 그렇다. 여기에 용도지역 변경이나 토목공사 등 이해관계가 얽힌 갖가지 일이 쌔고 쌨다. 지방자치는 생활행정이고, 또한 기초자치단체 행정이 지방자치의 진수이기 때문이다.그렇다 하여 처음부터 시장군수 자릴 독직으로 더럽힐 생각을 갖는 시장군수는 없다. 과거에 영어의 몸이 된 시장군수들도 취임식 땐, 오늘 시장군수들이 취임식에서 한 말처럼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 시장군수 노릇을 하다 보니까 나쁜 길로 빠진 것이다. 자신은 아무리 다짐하고 거부해도 비리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 시장군수 주변이다. 이 유혹과의 전쟁은 정말 힘겨운 싸움이다. 열 번 잘하다가도 자칫 한 번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홉 번 잘한 게 소용이 없다. 유혹과의 전쟁은 자신과의 싸움이다.시장군수를 망치는 적은 먼 데 있지 않다. 가까운 데 있다. 가까워도 아주 가깝다. 측근을 조심해야 된다. 시장군수와 먼 사람이 감히 유혹의 손을 뻗치기는 어렵다. 측근을 통해 마수를 내민다. 물론 측근은 필요하다. 내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은 필요악이다. 문제는 측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측근 관리의 성패는 바로 시장군수 본인의 역량이다. 또한 책임에 속한다.시장군수에게 갑자기 다가서는 사람들 역시 조심해야 한다. 전엔 알지 못했던 사람, 또는 알아도 잘 알지 못했던 사람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장군수 곁에 끼지 못해 안달인 것은 위험한 사람이다. 그러한 위인이 자치단체 공무원이든 지역사회 유지든 사업가든 마찬가지다. 진짜 시장군수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스스로 시장군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의도적 접근을 제어하며, 침묵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시장군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 본분이다. 사람 만나는 것이 직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다 만난다. 그러나 변별력을 잃어선 안된다. 변별력을 잃으면 상대의 로봇이 된다. 유혹과의 전쟁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그 같은 변별력을 잃고, 결국은 약점까지 잡혀 상대에게 끌려간다. 감옥소 신세 지는 인생유전의 불씨가 여기서 시작된다.유혹과의 전쟁에서 이기길선거운동에 들인 돈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빚도 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군수는 나쁜 짓 않고, 공식 수입만 잡아도 꽤 짭짤한 자리다. 시장군수 자릴 팔아 돈을 벌고도, 탈 없이 넘어가는 일이 아주 없지 않은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요행은 바라지 말라, 곪은 것은 터지기 마련이다. 하늘의 그물코가 엉성한 것 같아도, 건져낼 것은 건져낸다고 했다. 노자(老子)의 말이다.이렇게 판단해야 한다. 일신의 영달이며 가문의 영광인 자리를, 돈 먹고도 넘어가는 요행수를 바라며 비리와 타협하는 도박을 벌이기엔 너무도 아깝잖은가, 그보다는 비리와 담 쌓고 맘 편히 큰소리치는 심적 자산의 자긍심이 훨씬 더 값지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앞으로 4년 뒤 또 뽑혀 연임이 되든, 그대로 퇴임을 하든 탈 없이 임기를 채우는 시장군수들에게 오늘 미룬 축하를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진정성을 갖고 하고자 한다. /임양은 본사주필

내가 겪은 6·25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난 중학교 2학년이었다.(그땐 고등학교가 없는 중5년제다) 전쟁 소식을 듣고도 그 무렵에 유행된 남쪽나라 십자성은 / 어머님의 얼굴 이란 노랫말 가요를 익히고 있었다. 38선에서 가끔 있었던 국지전으로 여겼던 것이다.전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여자 친구의 소령인 아버지가 금강전투에서 전사한 소식을 듣고 나서다. 그로부터 며칠 안 돼 인민군이 전라남도 광주까지 물밀듯이 쳐내려와 인공 치하의 딴 세상이 됐다. 그땐 담양에서 살았는데 우리 집에 인민군이 한동안 보초를 섰다. 국군 장교였던 선친이 후퇴해 요시찰 가족이 된 것이다. 담양에 산 것도 부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까까머리 인민군이 무서웠던 게 곧 친해질 수 있었다. 나보다 두어 살 터울 위의 그는 평양제일고급중학교(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석 달 전에 징집돼 인민군이 됐노라며, 처음 보는 다발총(따발총)을 분해해 보이기도 했다. 그 인민군은 약 보름 뒤 부대가 갑자기 이동하게 됐다며 떠났다. 추측건대 낙동강전선으로 간 성싶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전쟁에서 안 죽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난다.나는 인공 치하에서 소년단에 가입했다. 안 나가면 주목받게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도 있고 해서 나갔다. 날마다 진종일 노랠 배웠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 빨치산 등이다. 반복 교육의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때 체험했다. 처음엔 좀 시큰둥하다가도 나중에는 곡조와 분위기에 절로 들떠 사이비 종교 광신도처럼 박수치며 흥겨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학살이 시작된 것은 세상이 바뀐 지 한두 달 뒤다. 인민재판을 열어 죽여라! 죽여라! 해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도 하고, 반동분자로 잡아 묶어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다. 그땐 중학교에 학도호국단이 구성돼 배속장교가 있었는데, 배속장교 부인을 총살한 것이 업고 있었던 아기에게까지 탄환이 관통해 모녀가 함께 죽었다. 이 같은 집단 학살은 거의 (빨간)완장부대로 불리는 토착빨갱이들이 저질렀다. 토착빨갱이들의 인명 살상은 인민군이 퇴각할 무렵 더욱 심했다.국군이 들어와 세상이 다시 바뀌고는 토착 우익 진영의 학살이 시작됐다. 양민 학살은 국군이나 인민군이 개입한 게 아니다. 토착세력의 좌우익 극렬분자가 자행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나도 그때 국군장교 가족으로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게 된 것은 시골 구장이던 외할아버지 덕이다. 공기(낌새)가 이상하니까, 짐 싸들고 빨리 오라는 전갈과 함께 소달구지를 보내 주셔서 외할아버지 집으로 부랴 부랴 떠나 학살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군에 의해 완전히 수복이 되고 나서 광주에 살며, 한 번은 쌀을 가지러 외할아버지집에 갔던 날 밤이다. 산에서 보급투쟁 차 내려온 반란군들이 들이닥쳐(외할아버지집) 사랑방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두머리가 일장 연설을 했다. 위대한 인민군이 곧 다시 해방시킬 테니까 양식을 자진해서 내라며 차고 있던 권총집을 탁탁 두드리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었던 그날 밤 다행히 인명이 다친 일은 없었으나, 빼앗은 양식을 짊어지게 해 납치해 간 동네 두 젊은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625는 공산주의가 뭣인가를 일깨워준 산 경험이다. 땅이 없는 농민에게 땅을 공짜로 준다는 말처럼 솔깃한 것은 없다. 그런데 정작 살아 보니까 그게 아니어서 말 듣기보단 많이 다르다는 평판이 영세농민들 입에서 나왔다. 예를 들면 양곡의 현물세를 이렇게 산출했다. 벼 한 줄기가 몇 알인데, 한 포기에 몇 줄기며, 한 평에는 몇 포기이므로 200평 논 한 마지 현물세는 한 줄기 벼 무게로 계산해 물량이 얼마로 나오는데, 이게 소작료보다 턱없이 높았다. 심지어는 밭 작물에서 좁쌀까지 이런 식으로 계산하고, 밤엔 인민반 세포회의다 뭐다 해 사흘이 멀다 하고 들볶다시피 해 사람들마다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그토록 극성을 피웠던 현물세는 계산만 해 놓고 그해 9월에 있었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이 바뀌어 정작 거두진 못하고 퇴각했다.좁은 지면에 이 밖에도 그 많은 625의 참상을 어떻게 다 말하리, 사람의 목숨이 개 목숨보다 못했던 전쟁을 돌이켜 생각하면, 사소한 것에도 곧잘 인권을 말하는 지금은 사람 사는 사회가 됐다. 그런 비극을 거쳐 번영을 누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벌써 60년 전이다. 전후 세대는 625가 마치 임진왜란 같은 역사 속 일로 들릴지 모르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625 남침의 동족상잔을 일으킨 북녘 집단은 민족 앞에 사과는커녕 서울 불바다를 들먹이며 여전히 협박을 일삼는다. 제2의 625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유비무환이다. 국력을 모으는 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다. 평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누릴 준비가 돼 있어야 향유되는 노력의 산물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거꾸로 가는 ‘삐딱족속’

그들은 삐딱해야 깨인 국민으로 치는 족속이다. 고분고분하면 덜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한다. 깨이고 잘난 그 똑똑한 족속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중 하나가 참여연대다.유엔안보리에 천안함의 북 관련 정부 발표가 의문투성이라는 이의를 제기했다. 선체 절단면이 폭발침몰로 보기엔 너무 깨끗하다는 것은 참여연대가 낸 이의의 한대목이다. 그러나 심하게 솟구친 절단면 흔적 자체가 외부 폭발의 증거인 것은 러시아 조사팀도 인정한 사실이다.서해에 쇠덩어리 군함을 단번에 두 동강 낼 암초는 없다. 천안함이 폭침된 것은 승조원 장병의 증언이다. 누가 폭침 시켰는가,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군함을 공격할 집단은 평양정권밖에 없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개연성에다, 물증이 제시된 구체성이 국제합동조사로 밝혀졌는데도 그 족속들은 조작이라고 우긴다. 북측이 유엔안보리 소명에서 밝힌 소설 같은 얘기란 소린 일찍이 유시민 전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삐쭉대며 했던 말이다.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 목사가 평양을 무단 방문, 저들의 615 공동선언 10주년 행사에 참석해 남쪽 비방에 박수쳤다. 그러나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와 협력의 원칙에 합의한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킨 게 바로 평양정권이다. 2002년 9월29일 2차 연평해전이 저들의 선제 공격으로 발발했고, 2006년 10월9일엔 무서운 1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2008년 7월11일은 금강산 관광객을 총쏴 죽였다. 경기도 입장에선 현안인 임진강 수해방지 남북공동조사를 저들은 세 차례나 합의해놓고 번번이 무산시켰다.김정일 북측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2000년에 가졌던 1차 정상회담 615 합의사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답방 이행을 노래하다시피 요구했다. 2007년 10월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시에서도 답방 요청이 있었으나 철저히 외면됐다. 저들은 애시당초 약속을 지킬 뜻이 없으면서 약속한 것이 615 합의사항인 것이다.세상에 길가다가 뺨맞고 때린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보일 사람은 없다. 만약에 있다면 넋나간 사람이다. 왜 때렸느냐며 따지고 사과를 요구하는 게 정상인이다. 천안함 폭침과 장병들 희생에 이명박 대통령이 북녘에 따지고 책임을 묻는 것은 국가보위 의무를 진 대통령의 소임이다. 이에 오리발을 내밀며 되레 방귀 뀐놈이 성내는 식으로 나오니, 대북 기조가 더욱 강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그런데 뺨맞고도 미소짓지 않아 전쟁나게 생겼다는 사람들이 그 잘난 똑똑하단 족속들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또한 그런 사람의 하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1번 찍으면 전쟁 난다는 바람에 찍지 않았다는 것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많은 어머니들의 얘기다.전쟁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나 전쟁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인지, 전쟁반대는 그 잘난 족속들만의 전매품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엔 상대가 있다. 반대한다거나 피한다고 전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이쪽을 만만하게 안 보도록 힘을 갖춰야 전쟁이 안 난다.분단 못지 않게 두려운 것이 분열이다. 우린 지금 분단국가에 겹친 분열사회의 혼돈에 신음하고 있다. 분열 세력이 분단의 산물인 평양정권을 교주 삼는 종북주의자들이란 사실은 직시해야 할 대목이다.이렇게 말하면 으레 표현의 자유를 색깔론으로 덮어 씌운다지만 엄연히 드러내는 색깔을 색맹이 아니고는 안 보인다 할 수 없다. 배가 부르고 자유가 넘쳐 물덤벙술덤벙 설쳐대는 것이 종북주의자들이다. 종북주의는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사회복지 안전망 중심의 순수 진보주의와 또 다르다.평양정권의 615정신은 이쪽에서 퍼주는 것이다. 615 선언 이후 저들이 우리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퍼주기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 남북관계에 상호주의를 들어 일방적 대북지원을 중단하다보니, 심술이 솟아 한방 먹인 것이 천안함 폭침이다.참여연대의 훼방을 역적질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이의 제기가 설령 NGO(비정부기구)의 활동 영역이라고 쳐도 책임이 있다. 유엔안보리에서 일고의 가치없이 폐기되면 유엔도 공모했다고 할 것인가, 해도 너무한다. 나라를 뒤흔드는 종국적 목적이 뭔지 의심스럽다. /임양은 본사주필

공동지방정부의 ‘허구’

공동지방정부란 62 지방선거가 낳은 신조어다. 정치학에도 없는 말이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창조한국당 등이 사표(死票)를 빙자한 야4당 단일화 등으로 이긴 당선자가 이들 4당과 공동으로 자치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인천(당선자 송영길) 강원(〃이광재) 충남(〃안희정) 경남(〃김두관) 등 광역자치단체 4곳과 기초자치단체로는 성남(당선자 이재명) 등 도내 10곳, 인천 8곳을 비롯해 전국에 28곳이다.공동지방정부는 공동중앙정부와 대칭되는 용어다. 그러나 내용면엔 본질적 차이가 있다. 공동중앙정부 구성은 정치적이다. 반면에 공동지방정부 구성은 행정적이다. 전자에는 정당인 개입이 허용되는데 비해 후자엔 정당인 개입을 불허한다. 즉 공동정부의 특성인 권력공유가 중앙공동정부에선 가능한데 비해 지방공동정부에선 권력공유가 불가하다.이런 가운데 공동지방정부의 참여 형태를 굳이 들자면 형식적 탈당에 의한 정무직 기용이 있을 수 있으나 자리가 제한돼 있다. 일반직의 계약직 임용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직업공무원사회를 크게 해친다.성공할 수 없는 속성의 모델결국 지방공동정부의 참여 형태는 집행기관이 아닌 자문기관으로 귀납된다. 예컨대 민주도정협의회시정개혁위원회 등이다. 이외에 분야별 자문위원회를 둘 수도 있다. 지방공동정부의 이런 자문위가 이미 유명무실하여 식상할대로 식상한 기존의 자문위와는 다른 의욕으로 출발한다 하여도, 밝은 전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우선 문제인 것이 자문위의 활동 한계다. 자문은 어디까지나 자문일 뿐이다. 자치단체장이 자문위의 로봇도 될수 없고, 자문위가 자치단체장의 어용화도 될 수 없는 것이 양자의 관계다. 물론 성공적인 양자 관계의 정립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단체장이나 자문위나 탈이념화가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을 위한 실사구시만이 추구돼야 한다. 지방자치는 주민행정이고 생활행정이다. 장례예식장이나 하수도처리시설, 전철 연장이나 육아시설 확충 등에 이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공동지방정부의 각종 정책자문 성공은 자치행정의 효율화와 자문위의 활성화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는 정책참여자의 자세가 순수한 자원봉사 성격과 같아야 한다. 아울러 자문 분야에 탁월한 식견이 있어야 된다.문제는 이처럼 지목되는 공동지방정부 참여 대상자들 가운데 그 같은 자원봉사형의 전문 식견을 지닌 사람이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공동지방정부의 전망이 어두운 이유다. 특정 이념꾼들에게 이념을 절제하고 권력욕에 불탄 선거꾼들에게 기껏 자문위원으로 만족하라는 것은, 참새더러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라는 주문과 진배 없을 것 같다.각기 입장과 처지가 다른 야4당 사람들끼리 갖는 정책 조율에 불만을 갖는 이탈세력이 또한 없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뉘 덕에 당선됐는 데 이러기냐는 공치사가 안 나올 수 없다. 지방자치행정에 오히려 난맥상이 우려되는 것이 공동지방정부다. 억지 구성은 재앙의 불씨또 모르겠다. 단체장의 우호세력 동지로 포진하는 각급 정책자문위원의 수당을 상당한 급수의 일반직 공무원 월급에 준하는 조례를 만들어 돈을 퍼주면 겉모양새는 그런대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공동지방정부가 아닌 혈세(血稅) 갈라먹기다. 지역주민에 대한 배임이다. 이러잖고 이권을 챙겨준다면 협잡배 양성소다.단언하건데 공동지방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모델이다. 말은 그럴듯해 출발은 화려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권력이 지닌 불가분의 속성과 불가피한 참여자 불만의 충돌은 결국 파열음을 일으키는 것이 지방공동정부의 태생적 숙명이다.그보다는 당당해 보이는 것이 단체장의 신뢰를 더 한다. 문어발식 의견 수렴이 능사가 아니다. 소통은 찬반여하간에 들을 가치가 있는 의견에만 가능한 문제 해결의 통로다. 흔히 또 시민단체를 들지만 시민을 갖지 못한 시민단체가 수두룩하다.야권 단일화나 이에 준해 당선됐으면 단체장 일을 잘해내는 것이 참된 보은의 길이다. 마음의 빚을 자리를 주어 갚겠단 생각은 개혁에도 합당치 않다. 한마디만 더 하겠다. 공동지방정부는 쇼다. /임양은 본사주필

6·2 지방선거 ‘민심’

인정한다. 62 지방선거는 순수한 지방자치 선거가 되지 못했다. 이 정권에 대한 준엄한 중간 평가가 됐음을 시인한다. 민주당 등 야권의 대승이다. 한나라당의 참패다.16개 광역단체장 선거는 6대7로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한 군데 더 많은 우세를 보인 가운데 선진당 한 군데, 무소속이 두 군데를 차지했다. 경남지역의 한나라당 텃밭마저 내주었다.한나라당은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의 낙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신승이 없었다면 집권당의 체면을 그나마 완전히 구길뻔 했다. 그러나 문제다. 도내 시장군수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압도하고, 도의회는 여소야대가 됐다. 한나라당 도지사의 행정시책이 민주당 시장군수에게 얼마나 잘 먹혀들지 의문이다. 한나라당 도지사의 정책 입안에 여소야대 의회의 제동이 예상된다. 그 어느때보다 김문수 당선자의 소통과 포용력 발휘가 필요하다. 이는 그의 지도력에 새롭게 보여야 할 면모다.각급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사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민주당을 무조건 찍었다고 보는 것이 특징적 투표 성향이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반사적 견제심리다. 충격인 것은 전국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혼자 뿐이던 진보성향 교육감이 대여섯군데나 된 사실이다. 이광재(강원), 안희정(충남), 김두관(경남) 등의 광역단체장 약진은, 그들이 열린우리당 계열의 노무현 적통인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의 당선을 가리켜 세상에선 노무현의 부활이라고들 말한다. 마뜩찮다. 노무현의 부활도 그렇고, 진보세력의 득세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라면 현실을 부인할 순 없다.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주기설은 선거학의 민심 이변에 대한 설명이다. 즉 일정한 사이클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이 질 차례다. 1번 찍으면 전쟁난다는 괴이한 정치공세는 유언비어 수준이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에겐 이것이 먹혀 들었다. 미치지 않고는 무서운 제2의 625를 원할 사람이 없다. 문제는 천안함 사태다. 그렇게 당하고 간도 쓸개도 없이 저들에게 미소를 지으란 말인가, 이는 진정한 평화의 길이 아니다. 선거 때문에 조작했다는 황당한 낭설은 해도해도 너무하는 소리다. 이런데도 영향이 전혀 없다 할 수 없다. 이같은 선전선동이 먹히는 세태가 마뜩찮다.가뜩이나 이런 실정에서 62 지방선거의 보수세력 완패에는 보수진영 자해의 책임 또한 없지 않다. 진보진영은 단일화 후보를 중심으로 뭉친 선거꾼들이 사력을 다해 일사불란하게 뛰었다. 반대로 보수진영은 난립으로 갈라진 패거리끼리 서로 헐뜯어 제 살 깎아먹기를 일삼았다. 심지어는 보수진영 사람이 진보진영을 돕는 배신도 있었다. 수원시장 선거 역시 이의 예외가 아니다.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종국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MB는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국정 수행에 새로운 생동감을 보여줘야 한다. 민심은 기다리지 않는다. 오바마는 새로운 미국을 설계하겠다고 했다. 하토야마는 일본 개조론을 표방했다. 그렇게 해서 압도적 지지로 집권한 오바마는 의료보험 하나 개혁하는 데 지쳐 지지도가 전같지 않다. 무려 80%에 이른 지지도로 자민당 만년정권을 무너뜨린 하토야마는 집권 8개월만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국민의 냉소속에 퇴임했다.MB 역시 압도적인 지지로 권좌에 올랐다. 그것은 국민사회의 기대였다. 하지만 민심은 돌아가는 쳇바퀴와 같다. 62 지방선거의 MB 심판은 MB에 대해 갖는 국민사회 피로 증후군의 반영이다. 피로감을 덜게하기 위해서는 일 처리가 더 답답해선 안 된다. 좀 더 시원하고 매끄러워져야 된다. MB 자신의 신념을 그토록 어떻게 살리느냐는 것은 MB 자신의 정치적 역량이다.사실,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이념은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일 뿐, 지방행정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무한돌봄이 사업은 복지분야의 백미인 주요 행정으로 진보정책이다. 이를 착안하고 제도화 한 것이 다름이 아닌 보수세력의 김문수 경기도지사다.유권자를 믿는다. 진보세력의 약진을 보인 이번 지방선거 민심은 어디까지나 보수와 병행하는 진보의 허용이라는 것을, 종북주의의 발호를 허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 사실을 믿는 것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盧, 추종 세력들

고인이 된지 1년이 넘어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그를, 말하게 만드는 세력이 있다. 노무현을 매명하는 정치집단이다. 그의 적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또한 적잖다.멀쩡한 전직 대통령을 정치공작에 의해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것은 모 야당 대표의 말이다. 몽유병 환자 같은 소리다. 기업인 박 아무개로부터 600억원 상당을 받은 혐의는 천하가 공지하는 사실이다. 검찰이 이에 피의자 소환조사를 벌인 것은 만민평등법치의 헌법정신이다.묻겠다. 그럼, 혐의가 있어도 전직 대통령이므로 덮어둬야 했단 말인가, 눈감아 적당히 넘기지 않고 조사한 것이 정치공작이란 것인가, 도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이처럼 사람위에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는 소린 특권의식의 심취에서 아직도 덜 깬 집권 후유증 증세다. 서초동 청사로 불러 올린 것을 두고 가혹했다는 것도 그렇다. 당연한 형사소송 절차를 문제 삼는 것은 신귀족의 우월감이다.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강변은 무책임한 정치 공세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던 그다. 마땅히 국민에게 법정판결을 보여줘야 할 의무를 도피했다. 그 판결엔 추징금도 포함될 수 있다.그를 존경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 재직시의 공과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펴기위해 대통령을 하고자 하므로, 그의 독선에 대한 평판은 임기 종료와 함께 끝났다. 정작 실망스런 것은 봉하궁 건설이다. 그것은 민중의 지도자답지 않은 퇴임 채비였다. 그래도 거기까진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미국에 저택을 사주고, 억대 금시계를 논두렁에 버리기도 한 일련의 초대형 비리는 용서될 수가 없다. 세상 어디에 이런 민중의 지도자가 있단 말인가,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위한다는 민중지도자 자칭이 초심의 변질을 가져와 결국은 민중을 져버린 것이 그의 말년이다.그러나 그를 비판할 자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추모할 자유 또한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대조되는 분명한 사실은 있다. 지도자의 도덕성이다. 나는 이명박이 대통령이되기전, 자녀들을 서울 리라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한 것에 크게 분노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는 3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내놨을 뿐만이 아니라, 월급도 전액 이웃돕기에 기탁하고 있다. 어느 대통령은 전대 미문의 초대형 비리 의혹으로 축재하고, 어느 대통령은 전재산을 세상에 내놓았다. 앞으로 대통령학의 연구 대상이다.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은 추종 세력들이 걸핏하면 내거는 구호다. 대저 뭣이 노무현 정신이란 말인가, 아마 민중의 지도자상을 빗대는 것인지 몰라도 아니다. 그것은 허상이었고, 실상은 선민의식에 젖었었다. 민중속에 더불어 사는 민중의 지도자가 아닌, 민중위에 군림하며 호사하는 민중의 지도자는 있을 수 없다. 그가 봉하궁이 아니고 김해 생가로 낙향했더라면, 나도 재임시의 공과는 어떻든 존경했을 터인 데, 불행히도 존경심을 갖지 못하게 됐다.그의 추종 세력들이 진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다면 그를 더는 팔지 말고 고인이 편히 쉬도록 놔드려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추모의 자세다. 노무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들수록, 그에 비례해서 말하기 거북하고 또 듣기에 안 좋은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언제까지 이승에 없는 저 세상사람에게만 기댈 것인가, 친노 세력들이 정치를 제대로 할 요량이면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정치적 입지가 서로 다르면서, 똑같이 노짱을 입에 담는 것은 동상이몽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다.뻐꾸기는 알을 품지 않는다. 오목눈이 같은 참새류 둥지에 알을 낳아 참새류가 자기 알인 줄 알고 품으면, 뻐꾸기가 먼저 부화되어 나온다. 친노세력 가운데도 뻐꾸기가 있고 오목눈이가 있다. 버꾸기는 두견이과에 속하고 오목눈이는 박새과 새다.노 전 대통령의 대중적 추모 정서가 현저히 떨어지는 연유 가운데 친노세력의 자생력없는 노무현 기대기에도 이유가 있는 사실을 성찰하여야 한다. 역사의 무대는 주인공을 거듭 되풀이 하는 것을 불허한다. 한 시대를 거쳐간 사람을 두고, 유훈통치의 교조로 삼는 것은 시대적 착각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국내 좌파의 ‘종북주의’

그들은 믿지 않는다. 아예 믿지 않으려고 작심했기 때문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 프로펠러에 북녘 글자체 일련번호가 찍힌 물증 등이 아니라, 더한 것을 갖다대도 그들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 발표된 상세한 국제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를 중복되게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허나, 어차피 그들은 쇠귀에 경 읽기다. 천안함 절단면을 눈앞에 보여줘도 좌초돼 침몰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다.그러나 진실은 하나다. 평양정권의 소행임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등 30여 나라에 통고한 천안함 브리핑은, 국제사회의 신뢰가 담보됐다. 조사는 우리만이 한 것이 아니다. 미국만 참여한 것도 아니다. 영국호주스웨덴 등 여러 나라 전문가들이 함께했다.한데도, 아니라고 우기는 그들은 또 이렇게 억지를 부린다. 지금 나오는 얘기로 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배가 외부 폭발에 의해서 침몰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이란 사람이 CBS 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그는 또 북측을 이런 말로 두둔했다. 그런 어뢰라면 누가 언제 설치했고, 북한의 어떤 배가 와서 했는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상식 불허의 허를 찌르는 것이 기습 도발이다. 조사 내용은 북이 공해를 통한 상어급 잠수함 침입 루트의 정황 증거를 제시했지만 시인할 그가 아니다. 그는 처음엔 천안함 침몰에 황당한 미군함 연루설을 제기하기도 했다.이번만이 아니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얽힌 일이라면 사사건건 무조건 북을 비호하고 나서는 데 있다. 반목을 일삼자는 게 아니다. 동포 간의 친북, 친남 즉 남북 화해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대남정책 적대시에 맹종하는 친북은 친북이 아닌 종북이다. 국내 좌파가 해외 좌파와 다른 것이 바로 이점이다. 해외 좌파는 제3의 길 등 합리적 방향을 모색한다. 이에 비해 국내 좌파는 평양정권과의 접근성을 잣대 삼는다. 같은 좌파라도 평양정권을 비판하면 이단시하는 것이 종북주의 좌파다.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공식 및 비공식으로 평양정권에 퍼준 돈이 약 10조원이다. 동포애로 퍼준 대가가 대남 위협의 군비 확장으로 되돌아 왔다. 김노가 김정일을 찾아가 평화 공존을 그토록 부르짖었는데도, 조선로동당 규약의 대남혁명 기본 노선은 삭제되기는커녕 더 선명해졌다. 종북주의 좌파는 이 정부가 햇볕정책을 중단해 경색 국면을 가져왔다지만 아니다. 햇볕 속에서 개발된 것이 저들의 핵무기다.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역시 햇볕 기간에 도발됐다.조선중앙방송이 걸핏하면 남조선 혁명세력은 파쇼세력 타도에 떨쳐나서야 한다고 선전선동하는 남조선 혁명세력은 누군가, 종북주의 좌파를 지목하는 세간의 의심이 없지 않으나 그들이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유시민은 말했다. 정부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면 빨갱이로 몰린다고 했다. 마타토어다. 누가 빨갱이라고 했단 말인가, 그렇게까진 믿지 않는다. 다만 본의든 아니든 저들의 잠재세력으로 이용될 수 있음은 유의해야 한다.평양 최고인민회의 양형섭이 남조선 괴뢰를 들먹이며 천안함 공격을 부인한 것은 상투적 수법이다. 저들은 625 남침도, 124 특수부대 청와대 기습도, 울진 무장공비 침투도, 아웅산 묘소 폭파도, KAL기 격추사건 등도 모두 부인한 집단이다. 양형섭은 그러면서 천안함 사태를 공작 삼아 북침을 획책한다고 얼토당토않은 생트집을 잡았다.종북주의 좌파들에게 간곡히 일러둔다. 예를 들어 성장보다 분배에 우선을 두자는 것도 좋고, 교육에서 경쟁력보다 형평성을 중시하자는 것도 좋고, 노동의 유연성보다 안정성에 치중하자는 것도 좋다. 그러한 주장의 융합이 필요할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제발 평양정권을 교조적으로 옹호하는 주술은 더는 그만둬야 한다.예컨대 평양정권이 제 통치하의 인민을 굶기는 잘못은 제쳐두고, 동포가 굶는데 북에 쌀을 안 보낸다고 정부를 헐뜯는 따위의 편협성은 가치관의 오류다. 마찬가지로 천안함 기습이 설령 북의 소행일지라도, 당한 우리 쪽에 문제가 있다는 투의 유시민 발언 또한 망발이다. 애초부터 조사 결과가 어떻든 천안함 사건의 북측 관련을 부정하려고 마음먹은 그들이다. 언어의 현란한 기교로 진실을 호도한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순 없다. /임양은 주필

수원사람, 객지사람

무한 무변의 시공(時空), 이중 좁은 국토의 수원에 다 같이 살면서 따진다. 누구는 수원사람누군 객지사람이라고, 지척지간인 안양이나 평택사람도 객지사람 취급해대는 것이 일부의 토박이 수원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눈은 수원서 30년을 3대가 살아도 객지사람으로 본다.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졌다. 예전엔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이면 수원서 태어난 아들이나 손자도 전라도 사람으로 그들은 보았다. 아버지 고향은 가본적도 없는데 그러했다는 것은 지금은 은퇴한 영동시장 어느 거상의 말이다. 할아버지 고향을 숨겼다는 것은 누구라면 알만한 이의 회고담이다. 토박이는 어디든 다 있다. 텃세는 동물의 본능이다. 다만 사람의 텃세가 다른 것은 공동체가 존중된다는 사실이다.62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별의별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같은 수원출신 국회의원인 남경필, 정미경의 싸움이 주목된 덴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 수원시장 공천을 미는 입장이 각기 달라, 중앙당이 지난 7일에야 가까스로 최종 결정을 했을만큼 백중지세였던 싸움이, 막판 막말로 폭발한 것은 여기서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다. 두 사람의 당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경필이 정미경을 객지사람 취급했다는 것은 잘못이다.두 사람은 같은 1965년생이다. 남경필은 관록있는 4선이다. 정미경은 검사 출신의 초선이다. 남경필은 대망을 가진 연부역강한 정치인이다. 정미경은 이 정권의 실세 직계다. 수원비행장 문제해결을 위해 국방부를 찾기도 했다. 이어 국방대학에 다니는 열정파다. 선거구는 팔달권선구로 달라도 수원시민이 뽑은 유능한 국회의원들이다. 이에 토박이나 객지사람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1980년대 초 20만명이던 수원시 인구가 110만명을 넘어섰다. 30년전에는 수원 인구의 약 80%가 토박이던 것이 이젠 반대로 수원 인구의 약 80%가 객지사람이다. 수원만이 아니다. 경기도 인구 1천172만여명 역시 토박이보단 객지사람이 더 많다. 지역사랑의 소속감은 객지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것이 농경사회와 구분되는 정보화시대 사회생활의 특성이다.남경필은 꼴통이 아닌 깨인 정치인을 자임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농경시대에서나 있을법한 객지사람 타령을 하는 건 구닥다리 티를 벗지못한 징후다. 다음 번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에 나서고, 그 후엔 더 큰 도전을 할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국량이 토박이 수준에 불과한 구닥다리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토박이만 찾다가는 차기 도지사는 고사하고, 다음 국회의원도 되기가 어렵다.이번 지방선거부터는 객지사람보다 더한 신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다. 도내 각 지역선거구와 연고가 있으면서 외국에서 살고있는 재외국민들이다. 또 있다. 국내에 3년 이상 살고있는 외국인들도 투표권이 있다. 이런 재외국민 유권자가 1만5천252명이고 외국인 투표권자는 1천615명이다. 당락이 단 1표 차이로 갈라질 수 있는 것이 선거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유권자들이다. 하물며 토박이나 객지사람을 따지는 것은 자멸행위다.물론 토박이정서란 게 있긴 있다.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토박이정서가 토착비리를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박이끼리도 사분오열하는 것이 이해관계의 상충에 기인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디든 지역사랑으로 농축된 전통적 정서의 미덕이란 것이 있다. 이런 것을 객지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게 되는 지역지킴이의 면모가 함양돼야 한다. 토박이는 지역지킴이다.지방자치는 곧 주민자치다. 주민자치는 생활자치다. 참여자치이기도 하다. 이런 지방자치가 근 20년이 되는데도 기대만큼 성숙되지 못한 덴 연유가 있다. 선거판과 유권자, 즉 상층구조와 하층구조가 겉돌았기 때문이다. 이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우선 소통에 문제가 있다.선거판에 달콤한 온갖 말이 나도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순 없다. 소통은 진정성이 전제돼야 성립된다. 그 사람, 어디 사람이냐? 수원사람이냐?는 말은 지역소통을 막는 칸막이다. 닫힌 마음의 칸막이를 허물고, 열린 마음의 공동체사회 광장으로 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싸워도 열린 광장에서 싸워야 건설적이다. 닫힌 칸막이에서 싸우는 것은 조잡스런 텃세다. 수원은 참 좋은 도시다. 수원시민의 도시다. /임양은 본사주필

이런, 부패 둔감증 - 여주군수 사건의 경우

좀 지난 얘기지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의 공천 헌금 거부 수난이다. 이기수 여주군수가 2억원 뭉치를 기념품이라며 비서를 통해 그에게 건넨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문제는 이 의원이 돈에 맘이 없으면 그냥 돌려주면 되지, 굳이 경찰에 신고할 것까진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허나, 모르는 소리다. 돈뭉치를 건넨 현장에 당사자가 있을 경우엔 그 자리에서 돌려주면 그들 말대로 신고할 것까진 없다. 그런데 준 사람은 이미 현장을 떴다. 돈의 주인인 군수가 아닌 군수 비서에게 되돌려 주는 것은 행위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므로 뒤탈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나중에 돌려줄 요량으로 가져간다면, 설령 뒤에 돌려준다 해도 법리상 일단은 받은 것이 된다.차마 못할 일을 한 것은 경찰에 신고한 이 의원이 아니고, 이 의원을 황당하게 만든 이 군수다. 물론 이 의원이 2억원을 받아 챙겼으면 이 군수도 무사했다 할지 모르지만 아니다. 후환이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어떤 경우는 돈뭉칠 안기는 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 이 의원과 이 군수가 평소 썩 매끄러운 관계가 아니었다는 말도 들리지만, 이번의 사실관계와는 별 상관없는 소리다.관심사는 그 뒤의 일이다. 이 의원이 어느 지역 행사장에서 봉변 당한 달걀 세례가 단순히 지방선거 공천에 불만을 가진 소행이라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돈뭉칠 경찰에 신고한 데 대한 불만의 감정이 깔린 행위라면 그 부패 둔감증이 놀랍다.이 군수 사건 이후 나타난 사회적 반응은 대략 이렇다. 역시 경찰에 신고한 것은 너무했다는 것과 잘했다는 것의 두 가지다. 이 두 반응이 지배피지배 두 계층으로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어느 지역사회든 힘깨나 쓰는 지역 유지들이 있다. 이런 유지계층은 대개 너무했다는 데 비해 서민계층은 잘했다는 사람들이 많다.이른바 유지계층의 반응은 동병상련일 것이다. 끼리끼리 집단의 이권층으로 보는 개연성이 농후하다. 이러므로 유지층은 부정을 저지른 사람보다 부정을 신고한 사람을 미워한다. 반면에 이권과 무관한 서민층은 부정과의 타협을 거부한 것에 대리만족을 갖는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지역사회 지배층의 그 같은 동병상련은 이 사회의 부패 둔감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짐작게 한다. 쥐꼬리만 한 권력이나 행세하는 지위에서 갖은 협잡을 일삼으면서도 자신의 행실이 온당하다고 보는 사람들이다.이 군수의 경우, 그를 아는 사람들 말을 빌리면 수원에서 낡은 중형 아파트에서 산다고 한다. 돈뭉치 사실을 가리켜 그 친구 머리가 어떻게 돌았던 것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문제의 2억원 또한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돈을 빌려준 친구는 이 군수가 갑자기 돈 마련을 부탁해 여기저기서 끌어다 대준 것이 일이 이렇게 되어 낭패가 됐다는 것이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법칙이 있다. 영국의 16세기 재정가 그레샴이 제창했다. 즉 같은 나라 안에서 실질가치를 달리하고, 동일한 명목가치를 갖는 화폐가 함께 쓰일 땐 양화는 저장돼 감춰지고 악화만 지불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이다.이 의원의 경우를 이와 빗대어 볼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양화의 서민층은 침묵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악화의 유지층은 소리가 요란하다. 이는 고질적 병폐다. 즉 사회병리현상이다. 이 의원이 겪은 수난 사례는 뭔가 잘못된 사회병리현상의 단면이다. 이 군수나 이를 비호하는 세력 또한 권력층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부패 둔감증은 다른 범죄의 반사회성보다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부패는 사회적 가치관의 문란을 가져와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린다. 핀란드가 세계적인 강소국이 된 원천이 완전한 부패 추방에 있다. 부패에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예컨대 통치권력 부패, 국가권력 부패나 공무원 부패, 지역 부패나 국가사회를 좀 먹는 덴 다름이 없다.이 의원의 수난은 그중 지역 부패에 둔감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생각하게 한다./임양은 본사주필

이런, 공무원부패

안 그럼, 오더를 딸 수 없어 관행인 걸 가령 1억5천만원짜리 공사 같으면 3천만원, 1천만원 공사면 100만원을 담당 공무원에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업어가기도 있다. 예컨대 3천만원짜리 공사를 4천만원짜리로 꾸며, 시공업자가 4천만원을 받으면 부풀린 천만원을 공무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원인 불명의 잦은 서류상 설계변경이 업어가기의 함정이다.오더(order)란 원래 고전 건축에서 기둥과 지붕의 기본단위 형식을 말하는 건축 용어다. 지금은 업계에서 순서나 주문의 뜻으로 쓰인다. 즉 공사를 주문맡는 것을 오더 딴다고 한다.수원 인근의 어느 유명 보리밥집에서다. 식당 객실은 구분된 방이지만 문이 없어 저쪽 방에서 하는 말들이 간간이 들렸다. 업어가기 등 공사비 비리는 친구간으로 짐작되는 서너명이 밥을 먹고나서 나눈 대화에서 나온 얘기다. 누군가가 반문했다. 그래가지고 이문이 남나? 한숨 소리에 이어 나온 대답은 이랬다. 이문이라야 몇 안 되는 직원들 월급주고 현상유지하기에 바쁘지만, 어쩌나? 그래도 해야지 실적도 올려야하니까시공업자인듯한 그 사람의 말은 이어진다. 그렇게 담당공무원에게 돈을 주면 내부적으로 갈라먹는 모양인데, 담당공무원은 1년에 보통 2억원쯤은 별 문제없이 챙긴다는 것이다.비록 그렇긴 해도 관청공사가 기업체공사보단 낫다며 이런 말을 또 했다. 기업체공사는 관계자들과 밤새워 포커판을 벌이며 돈을 잃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술로 골병들어 지금 내몸이 말이 아니다라면서 돈도 돈이지만 잦은 술 접대의 애로를 토로하기도 했다.이 같은 공사비 비리가 어찌 그가 거래하는 자치단체 뿐이겠는가, 대한민국 공무원 상당수의 부패일 개연성이 높다. 서민경제 안정을 위한 재정자금의 조기집행이 추진되고 있다. 아마 그도 이런 공사를 맡은 군소업자일 것이다. 그런데 재정자금의 조기집행이 부패관료의 먹이사슬이 되고 있다.준공식부패다. 공무원부패는 예를 들어 인허가 등 이권을 둘러싸고 뇌물을 건네는 지하부패만 있는 게 아니다. 야근은 않은채 도장만 찍고 야근비를 빼먹는 것 등이 공식부패라면, 공사비 비리의 경우는 준공식부패다. 그런데 공무원부패라고 하면 지하부패만 부패로 알고, 공식부패나 준공식부패엔 둔감한 것이 작금의 공무원문화다.인식이 잘못됐다. 공사만 해도 그렇다. 오더 주는 것을 무슨 특혜를 베푸는 걸로 안다. 업자의 자치단체 시공 참여는 상생이다. 자치단체는 공사에 업자의 도움을 청하고, 업자는 자치단체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받는 관계다. 이런 관계가 공무원의 먹잇감으로 왜곡된 게 시혜로 보는 관료우월주의에서 기인한다. 이를테면 업자 네가 나 때문에 돈을 벌면서 나에게 돈을 안 주어서 되겠느냐는 생각을 앞세운다.설령 청렴한 담당공무원이 있어 비리를 외면하고자 해도, 그래서는 자리를 보존 못할 것이다. 왜냐면 윗사람이 보기엔 분명히 돈거래가 있을 터인데 상납을 않는다고 여겨 못살게 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계장이 국장에게 공사관련 서류의 결재판을 내밀면서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을 둥글게 맞대여 보이며 이것 준비 됐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준비물을 비치지 않으면 서류가 트집끝에 반려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공무원문화다.결국 피해자는 국민이다. 관급공사는 조달청 단가가 싸다. 가뜩이나 이런판에 관료들에게 상납하자니 시방서대로 시공하기가 어렵다. 부실공사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국민의 세금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명목상 설계변경으로 공사비를 늘려 예산의 누수를 가져오기 일쑤다.정보통신시대다. 이에 따라 행정장비 또한 첨단화됐다. 행정문화는 첨단을 걷고 있으나, 공무원문화는 부패의 늪에 그대로 잠겨있다. 당신 공무원인가, 일부의 공무원부패가 사회악을 유발한다./임양은 본사주필

대통령의 ‘눈물’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국가 안보시스템의 해이를 질타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군기밀이 해킹당했다. 합참 의장이 천안함 사건을 보고받은 게 폭발 침몰한 지 무려 45분이 지나서다. DMZ의 총기 사고가 잦다. 링스헬기가 자꾸 추락한다. F15 전투기가 잇따라 곤두박질친다. 이만이 아니다.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구멍 뚫린 안보 태세의 누수 증후군 증세가 심한 지 오래다. 나사가 느슨하다. 큰 나사, 작은 나사 할 것 없이 하나같이 풀렸거나 빠졌다. 빠진 나사는 다시 끼우고 풀린 나사는 조여야 한다.인민군이 의정부에 쳐들어오는데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용맹무쌍한 우리 국군이 적을 반격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래서 나온 것이 대통령의 서울 사수 방송이었다. 625 때 일로, 당시 국방부 장관은 신성모였으며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그러나 서울이 인민군 탱크에 짓밟힌 게 그로부터 불과 10여시간 만이다. 피란민들이 한강 다리가 끊긴 줄 모르고 건너다가 뒤에서 밀어대는 인파에 밀려 한강에 빠져 죽은 서울 시민이 많았던 게 그 같은 엉터리방송 때문이었다.안보 해이는 625 악몽을 떠오르게 한다. 이를 질타하는 것엔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노무현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덴 할 말이 있다. 얼마 전 민주당은 국가 안보가 총체적 부실이라며 정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국가 안보의 총체적 부실을 가져온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2004년 국방백서에서 북측에 대한 주적 개념을 삭제한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북을 주적으로 보는 것은 반민족 행위처럼 사갈시했다. 군 내부의 기강이 느슨해진 것이 이 무렵부터다.전력 증강 또한 북의 위협에 대비하는 실전용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미래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다며 대양해군 항공우주군을 강조했다. 그러나 위상을 높인 건 말뿐이다. 링스 헬기나 F15 전투기가 자꾸 추락하고, 북의 잠수함이 남쪽 바닷속을 안방처럼 드나드는 원인이 그 같은 말잔치에 기인된다.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것은 이미 수년 전 북녘 사람이 한 말이다. 협박은 근래에도 끊이지 않는다. 본때를 보여주겠다고도 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한다. 우리 군대의 엄숙한 경고를 무심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DMZ의 평화적 이용을 두고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민간인 살상 위협을 노골적으로 했다.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철저히 찾아내 바로잡아야 할 때다라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대통령은 지난 19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라디오 인터넷 연설을 통해 천안함 희생자를 추도하면서 그같이 말했다. 희생된 부사관과 병사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는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이젠 그런 걸 따지기보단, 대통령 말대로 부족한 문제점을 찾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노무현 정권의 대북 태세 해이는 지나간 일이다. 더는 탓해 봤자 소용이 없다. 아울러 노무현 사람들 또한 국가 안보를 정쟁 수단으로 삼지 않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대통령의 그 눈물은 국민의 눈물이다. 국민의 눈물엔 여야도, 지역정서도, 사회계층도 있을 수 없다. 희생된 우리의 젊은이들은 국민과 국방의 간성이다.위기관리체제의 개선은 국방력, 즉 전투력 보강이 전제되긴 하지만, 뭣보다 군기 확립이 시급하다. 군대다운 군대의 기풍이 군기다. 군기는 군의 사기와 직결돼 군기가 선 군대일수록 군의 사기 역시 높다. 강군은 무기가 강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무장이 완벽히 된 군대가 강한 군대다.집 울타리가 시원찮으면 도둑 들기가 쉬운 건 나라 또한 다를 바 없다. 국방 태세 증강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다. 저들은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더는 북이 도발 행위를 자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틈새를 드러내지 않아야 된다. 국가 안보에 심각한 경각심을 일깨운 것이 천안함 사태의 소중한 교훈이다. /임양은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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