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법안을 말한다

미디어 관련 법안의 100일 유예는 2월 국회가 낳은 유산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를 전제로 하여 파국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민생 쟁점 법안이 제대로 처리된 것도 없다. 2월 국회는 결국 파행속에 임시회 회기를 마감했다. 미디어 법안의 속불이 재연된 것은 이른바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을 둔 양당의 장외 설전이다. 국회 문광위에 두게 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한나라당은 자문기구로 규정하는 데 반해 민주당은 규제기구로 주장한다. 민주당 말대로라면 국회가 하는 일이란 거수기 노릇밖에 안 된다. “그럴려면 국회는 뭣하러 만들었느냐”는 것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말이다. 오는 6월에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미디어 관련 법안을 처리한다는 한나라·민주 양당 합의는 동상이몽이다. 한나라당은 그때 가선 민주당도 표결 참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데 비해 민주당은 그때까지 반대 여론을 확산한다는 전략이다. 6월 표결 합의 또한 정작 이행은 의문이다. 민주당은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갖다붙일 구실은 많다. “약속한 사회적 논의가 미흡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 논의기구’는 구성단계부터 샅바 싸움이 치열할 것이다. 논의될 내용은 뻔하다. 찬성하는 쪽은 ‘미디어산업 육성을 위한 개혁’이라 할 것이고, 반대하는 쪽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를 위한 MB악법’이라고 목청을 높일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소리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논의를 백날이 아니고 천날을 해봐야 양측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집권차원의 개혁으로 보고, 민주당은 정치적 기반의 와해라고 보는 것이다. 2월 국회나 6월 국회나 똑같은 싸움이 벌어질 게 거의 분명하다. 미디어 관련 법안은 방송·신문·정보통신망 분야 등 22건이다. 논란 부분을 요약하면 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 신문과 방송의 겸영 인정,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이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처벌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와 방종은 다르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얼굴을 감춘 익명성으로 남의 인격권을 무참하게 재단하는 허위사실 유포는 반사회적 범죄다. 조·중·동에 방송을 겸하게 하는 것은 메이저 신문의 언론독점이라고 힐난한다. 조선일보는 변화의 귀재다. 중앙일보는 재벌, 특히 삼성 편향적이다. 동아일보는 수구적이다. 지면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얼마전에 말썽이 있었던 청와대의 강호순 홍보지침을 동아일보도 축소는 했지만 그런대로 보도하고, 조선·중앙은 노골적으로 축소 보도했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에 오른 것은 독자의 선택이다. 메이저의 대명사를 마치 죄악시하는 트집은 그를 선택한 절대 다수의 독자를 욕되게 하는 질시인 것이다. 이들 신문에 방송을 준다지만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일찍이 방송을 가졌었다. 다만 조선일보는 없었으나 동아일보는 동아방송(DBS), 중앙일보는 동양방송(TBC)이 있었다. 1963년에 개국된 DBS, 이듬해 개국한 TBC를 한국방송공사(KBS)에 강제로 합병시켰던 게 1980년 12월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행한 언론사 통폐합에 의해서다. 대기업의 방송 허용은 부정·긍정의 양면성이 있긴 있다. 그러나 시청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신문도 대기업의 의욕적인 진출이 있다면 굳이 부정할 일이 아니다. 요컨대 문제는 품질이다. 기존의 방송사들이 새로운 방송 허용을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익이다. “하긴, 방송도 새로 생겨야 한다”는 것은 어느 방송 종사자의 속내있는 말이다. 그에 의하면 KBS·MBC가 지상파 방송의 양대 분점을 이루다가 1990년 SBS가 생길 때 스카우트 바람이 불어 요동을 쳤다는 것이다. 이는 방송사가 또 생겨야 우수 인력의 재배치와 함께 방송계가 긴장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상파 방송이 더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쟁을 두려워하는 밥그릇 지키기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가리켜 이 정부가 방송 장악을 하려 한다지만, 방송도 그렇고 신문도 그렇고 정부에 장악당할 언론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보는 눈은 한 가지다. 정치권의 생각도, 기존의 방송들 생각도 다 아니다. 방송은 시청자, 신문은 독자의 입장에서 판단돼야 한다. 대한민국 전파는 지상파 3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청자의 선택을 넓히는 데 반대하는 것은 어떤 말로든 이유가 안 된다. 미디어 관련 법안은 기실 민중의 민생과는 상관이 없다. 이럼에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국회 의사일정을 마비시켜가며 민생법안을 지연시키고 있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양절공’ 분묘의 경우

개발은 문명을 발달시키고 문화는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신도시 등 개발은 문명의 발달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물질문명의 개발이 정신문화의 자원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문화의 자원으로는 유형·무형의 여러 지정문화재 및 비지정문화재 등이 있다. 고분은 그중 대개는 비지정문화재에 속한다. 경기도 일원의 기전지방에는 특히 고분이 많다. 역대 왕조의 능은 물론이고 종친이나 중신들의 유택을 대부분 수도인 한양 인근에 써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고분은 고분마다 문화재 자원의 비밀을 갖고 있다. 연전엔 조선 중기 한 사대부 집안 마님의 분묘에서 당시의 의상이 출토되어 복식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됐다. 그런데 고분이 무단 발굴되어 문화재 자원이 유실되기도 한다. 양절공(良節公) 조온(趙溫)의 분묘가 이런 경우다. 양절공의 분묘 소재지는 근래 개발붐으로 뜨는 파주지역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양절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趙溫 1347~1417, 조선초 문신, 본관은 한양(중략) 용원부원군 인벽의 아들이 어머니는 환조(이성계의 아버지인 자춘)의 딸이다. (중략)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이성계를 유달리 섬겨왔고 1388년(고려우왕 14년) 위화도 회군 때 이조판서로 회군에 참여하여 회군공신에 책록되었으며(중략) 이성계 추대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중략) 서북면 도순무사로 수주에 쳐들어온 왜구를 격파하였고(중략) 1401년 태종이 즉위하자(중략)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중략) 효성이 지극하였고 청렴 검소하였다’고 모두 45행에 걸쳐 그의 공적을 상술해놓고 있다. 가히 문무를 겸비한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재상이었던 것이다. 양절공의 분묘가 예사롭지 않을 것은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태조로부터 받은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定社功臣趙溫賜輿王旨)의 국왕 문서가 기록유산으로 분류돼 보물 1135호로 지정된 것으로 미루어 또한 짐작이 가능하다. 1417년 5월18일 70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태종은 장례를 국장에 버금가는 예장(禮葬)을 치르면서 약 5만7천㎡의 임야를 묘역으로 내려 보기드문 사각석축묘를 축조한 묘석들은 591년 전의 석공들 손길이 이룬 옛 공예품이다. 묘역 자체가 개국공신의 장례의식과 생활사 연구가 가능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1980년대에 펴낸 초등학교 5학년 국정교과서 ‘훌륭한 분들’ (1)조온편은 8쪽에 걸쳐 이렇게 기술했다. ‘(전략)조온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데 노력한 분이다. 평안도에 침공한 왜구를 무찔렀고, 또 나라안에서 일어나는 분란을 막기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중략)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벼슬이 높아졌지만, 그는 거드름을 피우는 일이 없었다.(중략) 공신에게 내리는 곡식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의 허름한 집을 고쳐주려고 하였지만 조온은 허락하지 않고,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도록 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나 정동에 있는 집에서 말년을 보낼 때였다. 어느날 한 젊은이가 그를 찾았다.(중략) 이야기하는 사이에 저녁상이 들어왔다.(중략) 상 위에는 보리밥과 반찬 두어 가지가 놓여있을 뿐이었다.(중략) “대감께서는 너무 몸을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중략) “젊은이, 지위가 높아졌다고, 또 공이 좀 있다고 해서 호화롭게 지내서는 안되오. 나는 지금 나라일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백성과 똑같이 검소하게 생활을 하는 것이 나라일을 돕는 길이라고 믿소” 젊은이는 조온에게 부탁해서 벼슬을 올려볼까 했던 마음을 크게 뉘우쳤다.(후략) 이러한 조온의 유택이 지난해 8월 어느날 돌연히 이장된 자리는 지금 어지럽혀져 있다. 후손들은 서로 이의 시비를 법정에서 가리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주요 관점은 부장품에 갖는 의문이다. 그리고 비지정문화재의 훼손이다. 지방문화재 지정이 추진됐던 비지정문화재다. 개발문명의 발달이 정신문화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현실이 안타깝다.

빗물에 고인 友情

수원시가 국내 최초의 빗물 이용도시, 즉 국제적인 레인-시티(Rain-city)로 뜬다. 이를 위한 서울대학교와의 협약식이 엊그제 체결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원시-UNFP·SNU(유엔환경계획·서울대) 빗물연구센터 협약식’이다. 이로써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센터장·한무영 교수)는 수원시의 빗물관리사업을 국제적인 빗물 이용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세계물협회 등과 협력, 연구 및 기술자문과 함께 국제홍보 등을 지원하게 된다. 빗물관리는 인류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다. 물론 수원시의 빗물 순환체계 구축사업은 아직 청사진 단계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다. ‘천리길도 첫 걸음부터’라니 수원시의 고유 브랜드 창출이 앞으로 기대된다. 수원시의 빗물관리 말이 나온 게 약 한 달 전이다.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와 조금은 황당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빗물관리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처럼 어려운 일을 왜 하게 되고, 어떻게 할 것인가 궁금했다. 해서, 알아봤다. 좀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김용서 수원시장과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지난해 심 전 시장이 입원하기 전, 그의 자택인 이목동 ‘해우재’에서다. 심 전 시장이 김 시장을 초청했는지, 김 시장이 병문안을 갔는진 알지 못한다. 어떻든 둘이 만난 자리에서 심 전 시장은 김 시장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것으로 안다. 심 전 시장의 당부는 개인적인 일이 아닌, 지역사회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심 전 시장은 그때 이미 자신의 건강 회복이 어려움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수원시의 빗물관리사업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그러고 보면 심 전 시장은 17대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통해 빗물관리를 역설했던 게 기억된다. 김 시장 역시 평소 중수도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터였다. 그같은 전임 시장, 시임 시장의 생각이 맞아 떨어져 이번에 첫 발을 내딛어 시작을 본 것이 ‘레인 시티’ 조성 협약이다. 김 시장과 심 전 시장은 지역사회가 다 아는 라이벌이다. 심 전 시장의 3선을 저지한 사람이 김 시장이다. 심 전 시장은 그 후 국회의원에 당선, 여의도 정치인이 됐지만, 수원시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는 게 주변의 말이다. 이제 심 전 시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전임, 시임의 두 시장이 수원시를 위한 공통 관심사를 통해 쌓은 영롱한 우정은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빗물관리 말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는 ‘해우제’에 대한 말도 있었다는 것 같았으나 자세한 것은 파악되지 않았다. 세계화장실문화협회를 창립하는 등 화장실문화 개선에 앞장섰던 심 전 시장의 ‘해우재’ 자택은 이상형 화장실을 모델로 지은 특수건축물이다. 가령 ‘해우재’ 주변의 땅에 공원화가 가능하다면 예컨대 ‘심재덕 기념관’이 들어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는 등 그가 생전에 수원을 위해 쏟았던 열정은 기릴만 하다. 일에 대한 열정은 김 시장도 대단하다. 수원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만나려고 시청을 가도 도대체가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시장실에 시장이 없다’는 불만이지만, 시장실에 있기보단 사업현장이나 민원현장을 살피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인 걸로 들린다. 이 글을 쓰면서 김 시장이나 심 전 시장측에 물어 직접 취재한 것은 없다. 부담을 덜고 싶은 생각에서 그랬다. 간접취재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썼다. 혹여 사실과 틀린 대목이 있으면 이의를 접수하겠다. 분명한 것은 수원시의 특수시책이 남모른 두 시장 간 특별한 우정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빗물시책은 매우 생소한 분야다. 그러나 차세대에서는 보편화돼야 할 사업이다. 오는 2012년부터 빗물프로젝트 사업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폭력과 법치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아침 인사말은 듣기 따라선 참 싱겁다. 한데, 과거에 이런 인사법이 있었다. 길 가다가 지인을 만나면 한다는 인사말이 ‘어디 가십니까?’하고 묻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으로 말하면 사생활 침해다. 그런데 이같은 인사가 보편화됐던 연유가 있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보릿고개 시절에 ‘진지 드셨습니까?’하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 인사말이었던 것 처럼. 밤이 불안했다. 갑신정변, 동학란, 청일전쟁, 일본의 조선 강점, 징용 및 위안부 징발 그리고 광복 직후의 이념적 사회혼란은 건국 후에도 계속됐다. 근세기의 밤은 이렇게 밤 사이에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불안한 밤은 6·25전쟁 3년동안 극도로 치달았다. 우익 진영은 좌익에게, 좌익 진영은 우익에게 끌려가 개죽음 당하기 일쑤였던 게 으레 밤이었던 것이다. 밤새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세태속에 밤새 문안은 당연한 아침 인사가 됐고, 상대의 행선지를 묻는 인사는 혹여라도 실종에 대비하는 친절한 배려였던 것이다. 난세다. 난세엔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 주먹은 폭력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필연적 사고도 나지만 우연적 사고 또한 잦다. 남도 창녕에서는 억새를 불태우다가 사람이 떼죽음을 당했다. 용산 철거민 참사도 떼죽음이다. ‘밤새 안녕하십니까?’란 인사가 새삼 실감난다. 도내에서는 길가는 부녀자를 7명이나 납치, 의문의 실종이 주검으로 확인된 살인마가 붙잡혔다. ‘어디 가십니까’라는 인사가 예전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다중의 폭력으로 법 위에 군림하는 ‘떼법’ 인식이 팽대해 있다. 용산 참사도 화염병 등 폭력화가 참사의 요인이다. 그런데 진압에 나선 경찰더러 ‘살인경찰’이라고 우긴다. 경찰이 불을 질러 경찰관이 포함된 철거민 등 6명을 불타 죽게 만든 증거는 없다. 경찰의 진압과정에 생긴 엉뚱한 사고를 빗대어 무조건 경찰이 죽였다는 것은 억지다. 화염병을 던져 불을 낸 개연성은 시위대쪽에 있다. 불까지 낼 고의성은 없는 위협수단이었을 지라도,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화염병은 시위대가 쌓아 두었던 폭력 도구이기 때문이다. 진압과정에 발생된 의문의 돌발사고 참사가 폭력시위의 불법성을 면책시키는 것은 아니다. 시위는 민주주의의 주요 방법이다. 그러나 폭력은 민주주의를 저해한다. 용산 참사의 경우, 세입자가 억울한 문제점은 동의한다. 좋은 말로 호소해서는 통하지 않는 고질적 병폐도 인정한다. 이는 행정 당국과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 공권력보다 우선시하는 폭력시위를 너도 나도 들고 나서서는, 밤새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기가 예사였던 세상처럼 막가는 세상이 된다. 민중의 삶만 더 고단해진다. 문제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다. 이들은 마치 빈민운동을 하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아니다. 빈민운동으로 말하면 돌아가신 제정구 선생이 대부다. 하지만 그는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 평소 빈민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면서 구제운동을 벌였던 분이다. 지금 빈민층을 혼자 다 위하는 것 처럼 떠드는 사람들은 빈민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위선자들이다. 이런 위선자들이 폭력시위를 부추기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시위대가 전경을 때리는 것은 정의고, 전경이 시위대를 막는 물리력은 불의로 매도하는 그들은 다중의 폭력시위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동한다. 국회의사당을 때려 부수는 것도 그같은 맥락이다. 그 저의가 뭔가, 뻔하다. 가능하다면 정권 퇴진을 가져오는 군중 폭동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4·19 혁명처럼. 그러나 아니다. 현 정권이 아무리 잘 한게 없을지라도 제2공화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군중시위가 정당화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과거가 있긴 있다. 4·19 혁명도 그렇고, 5·18 민주항쟁도 그렇고, 6월 항쟁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그같은 이유가 없다. 민중은 물론 살기 어렵다. 비록 살긴 어려워도 ‘밤새 안녕하십니까?’ ‘어디 가십니까?’하는 인사법의 세태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폭력은 추방돼야 하고, 폭력이 추방되기 위해서는 법치가 살아 있어야 된다. 이런 건 있다. 독재정치도 법치를 말했다. 그러나 독재는 끝난지가 벌써 20여년이다. 법치는 특정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절실하다. /임양은 주필

MB, 왜 감동을 못주나?

이명박(MB)은 왜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대통령은 딴엔 한다고 하는데 대다수의 국민은 거의 감동받는 기색이 없다. 재산도 헌납한다. 후보시절의 약속이지만 능히 감동을 줄 만하다. 집 한 채만 뺀 135억원 상당인가 하는 사재를 사회에 내놓은 건 단연 외신뉴스 감이다. 아직은 내놓지 않았지만 내놓는 건 기정 사실이다. 대통령직 1년치 월급 1억2천만원 역시 한 푼 안 쓰고 이웃돕기 성금으로 보탰다. 이도 감동거리다. 한데, 정작 국민사회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청와대 본관, 지하벙커, 과천청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등을 뛰면서 경제 문제를 챙긴다. 가락동시장에선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눈물 쏟는 배추장사 할머니를 껴안고 위로하면서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할머니에게 씌워주었다. 그러나 국민사회의 반응은 ‘소가 닭 보기’다. 거의 매주 경제 살리기며 서민대책 등을 쏟아낸다. 그래도 역시 냉담하다. 국민사회의 이런 무표정은 예컨대 타이밍을 놓친 금융대책으로 여전한 금융경색, 실효성 없는 부동산대책, 현장과 괴리된 중기대책, 복지정책의 엇박자 등으로 정부시책을 국민사회가 피부로 느끼지 못한데 있는 것만도 아니다. 후보시절, 아니 후보가 되기 1년 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한 지지도로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지지도가 곤두박질쳐 이젠 땅바닥을 기는 형상이다. 이명박은 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불운하다. 그에 대한 국민의 열화 같았던 기대는 경제 부흥에 있었다. 그 또한 장담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취임하기가 바쁘게 불어닥친 뜻밖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이명박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사회가 그로부터 멀어진 것은 ‘경제 대통령’으로 아직 성공해 보이지 못한 데 있는 것 만은 아니다. 특히 서민층엔 그가 ‘부자들을 위한 대통령’으로 각인돼 있다. 재산도 내놓고 월급도 내놨다. 이명박은 부자가 아닌데도 부자들 사람으로 인식됐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누가 뭐래도 화염병과 시너통이 난무한 폭력이 원인이다. 이런데도 폭력시위 진압을 위한 특공대 투입의 당위성보다는 철거민들 죽음을 동정, 폭력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자 쪽, 즉 대통령을 밉게 보는 탓의 민중 정서다. 대통령은 부자가 아닐뿐 더러, 부자라고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그렇게 인식된 것은 그의 책임이다.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하는 것은 이젠 케케묵은 소린데도 시효는 살아있다. 연유가 뭣인가를 성찰해야 된다. 이명박은 재산이나 월급은 내놨어도 마음은 내놓지 않았다. “신뢰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게 이 때문이다. 내 사람이 아니면 믿질 않는다. 마음을 열지않고 닫고만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측근을 가까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측근으로 인해 망치는 것도 인간지사다. 친형 이상득의 비선라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쯤 되면 정적도 내 사람으로 쓸 줄 아는 국량이 필요하다. 나랏 일을 하는데 내 사람, 네 사람의 경계가 무슨 소용인가, 이런데도 주변에서만 사람을 찾다보니 함량 미달의 인물이 기용된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말을 잘 안 듣는 덴 그같은 각료 기용에도 연유가 있다. 박근혜도 실망스런 데가 적잖다. 허나, ‘친이·친박’의 담장 소통을 위해 이명박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것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생일에 청와대서 생일 케이크나 자르고 오찬이나 같이 한다고 해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연기가 아닌 실기를 보여줘야 된다. 뭘 보여줄 것인가는 대통령의 능력과 판단에 속한다. 한데, 그런 판단이 서는 것 같지 않아 답답하다. 정치권이든, 국민사회든 이명박을 비난하는 것은 탓할 바 아니다. 그러나 국회 의사당을 해머로 부수고 쇠사슬로 문을 잠그는 따위의 폭력농성은 안 된다. 화염병 등이 난무하는 폭력시위 역시 안 된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공적이다. 이명박이 맘에 안 들어 욕을 해도 대통령으로서는 일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밉든 곱든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 글로벌 경제위기의 항로를 항해하는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용산참사’를 악용하는 무리들

뉴타운사업이 유행화됐다. 그러나 서민들 입장에서는 사치다. 살던 곳서 쫓겨나는 원주민들이 많다. 그들 눈에선 피눈물이 난다. 도시재개발은 물론 필요하다. 허나, 피눈물을 쏟는 원주민이 많아선 저주가 쏟아진다. 어차피 가진 이들의 재산 증식 수단이다. 사업비 단가를 높여야 된다. 단가 상승은 증식의 체감이긴 하다. 그렇지만 가진이들의 이득을 줄여 쫓겨나는 이들의 눈물을 씻어줘야 된다. 모든 뉴타운사업이 마찬가지다. 사회정책적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 용산 철거민 참사의 비극도 발단은 그같은 관점에서 조명된다. 특히 상가 세입의 경우, 막대한 권리금도 붙어있다. 이런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 처지에선 생계문제가 절실하다. 이에 항의하고 시위를 벌이는 것은 생존권이다. 그런데 시위 과정에 사람이 6명이나 불에 타 숨졌다. 5명은 철거민이고 1명은 진압에 나선 특공대 경찰관이다. 일부에선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특공대 동원은 정당하다. 인명이 희생된 것은 불행하나, 특공대 투입은 마땅한 소임이다. 시위대는 망루를 세웠다. 거기엔 화염병이 가득했다. 시너도 야적됐다. 이건 시위가 아니고 폭동이다. 화염병을 던져대는 폭동은 사회를 불안케 한다. 질서를 어지럽힌다. 길가는 행인이나 차량이 엉뚱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경찰이 이를 방관한다면 직무유기다. 공정하게 가려내야 할 화인 그렇긴 해도 특공대까지 동원해 조기진압에 나선 것은 ‘과잉진압’이라고들 힐난한다. 하지만 아니다. 용산 화염병 시위는 상황에 비춰 특공대 투입에 무리가 있다고 볼 순 없다. 아울러 조기 진압은 경찰 직무 집행의 기본이다. 유감스런 것은 특공대 진입 과정에서 난 불이다. 시너에 왜 불이 붙어 큰 불로 번졌냐는 게 의문이다. 경찰의 과실일 수 있고, 시위대의 과실일 수 도 있다. 또는 누군가에 의한 고의일 수도 있다. 시급히 규명돼야 한다. 경찰의 책임이든, 시위대의 책임이든 참사의 원인이 된 화재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된다. 그러나 특공대 투입과 화재는 별개의 문제다. 용산 철거민 참사의 핵심은 시위의 폭력화다. 이상한 것은 숨진 철거민 5명 중 진짜 철거민은 2명이고 3명은 아닌 점이다. 외부 세력의 개입이 폭력시위의 변질을 가져왔다. 남의 철거 시위를 폭동으로 대행한다는 게 의문이다. 이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는 것 또한 밝혀내야 할 과제다. 시위대가 식량 등 물자를 6천만원 어치나 쌓아 두었다는 게 맞다면 돈의 출처 역시 괴이하다. 철거민 대행 시위는 지방에도 없지 않다. 유사한 시위를 할 때면 으레 철거민들을 찾아 시위 주도를 자청한다는 것이다. “돈을 더 타내기는 했지만 대행 경비라며 이것 저것 떼고 나니까, 더 나은 것도 없었다”는 것은 한 철거민의 체험담이다. 용산 철거민 시위에 개입한 그들도 이런 사람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남의 시위에 화염병으로까지 무장해가며 나선 것은 수상쩍다. 정치권, 특히 민주당은 정말 얌체같다. 남의 불행을 대정부 공세의 한건주의로 일삼는다. 그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사사건건 트집으로 일관해 식상케 한다. 이명박을 위하고, 한나라당을 위하고, 경찰을 옹호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명박에게 충고할 말도 많고, 한나라당을 비판할 일도 많고, 경찰을 나무랄 점도 많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 참사를 무조건 정치 공세의 호재로 삼아 민심을 선동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외부세력 개입이 폭력 불러 어떻든 뉴타운사업의 허점으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당한 비극이여서 ‘동병상련’으로 서민들의 촛불시위가 잇고 있다. 그러나 대중 선동으로 공권력이 훼손되면 공공사회의 불안을 가져와 서민층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 “DJ(김대중)는 입만 열었다 하면 선동과 파괴적 언행을 일삼는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YS(김영삼)의 말이다. DJ가 민주당 지도부에 “당의 명운을 걸고(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항하라”는 반정부 투쟁의 훈수에 대해 가한 일침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이 아깝다는 한 시민은 “이명박이 밉다고 용산 사건을 그런 감정으로 왜곡되게 봐선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귀성(歸省)

입영에 지역별로 모이던 때가 있었다. 장정들이 읍·면에 모이면 마을별, 시·군에 모이면 읍·면·동 별로 무리를 짓곤 했다. 평소 알고 지냈던 사이가 아니어도 같은 마을, 같은 읍·면·동 출신이란 것만으로도 신뢰의 유대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어 도청 소재지에 모이면 시·군별로 친근감을 갖다가, 논산 제2훈련소에 입대해서는 시·도별로 뭉치곤 했다. 이 같은 지역 소속감이 향토애다. 외국 땅에서 어쩌다가 보는 태극기에 느낌이 새로워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국가 소속감의 나라 사랑이다. 지방자치제 이후 지역이기심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원래 지역이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지방자치제다. 다만 유의할 대목은 있다. 나의 지역이기를 위해서는 남의 지역이기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지역이기심을 가져도 닫힌 이기심이 아닌 열린 이기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향토애는 고향(故鄕)의 정서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고향을 고리(故里), 고산(故山), 고원(故園), 고토(故土)라고도 한다. 고향에 관한 속담이 많다. 그중 이런 게 있다. ‘속담에 고향을 떠나면 천(賤)하다 하였으니, 네 설혹 수궁에 들어간들 무슨 부귀를 일조에 얻을 쏘냐’, 이는 작가 미상의 옛 소설 ‘토끼전’에 나오는 말이다. 토끼가 남해 용궁에 미혹되어 갔다가 용왕의 병약으로 간을 빼앗길 뻔 해 기지로 살아나왔다는 고대문학이다. ‘별주부전(鼈主簿傳)’이라고도 한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이다. 성장의 기억이 담겼다. 그 같은 기억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아름답게 기억된다. 조건 없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삶의 되새김 마당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고향산천을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시골에 더 많이 살았던 시절의 얘기다. 시골보다 도시에 더 많이 사는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산천이 보기 드문 고향이 많다. 그러나 예컨대 시골의 길목이든 도시의 길목이든 고향 길목에 서린 정서는 다를 바가 없다. 산간벽지, 갯마을이나 대도시, 서울이나 다 사람에 따라 갖는 내 고향이다. 산업화시대를 넘어 정보화시대다. 많이들 나가 산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다르고, 아버지의 고향이 다르고, 아들 딸의 고향이 다르기도 하다. 이도 세대 차이다. 귀성은 원래의 뿌리를 찾는 것이며, 그 같은 뿌리는 대개가 농경문화와 관련된다. 이리하여 전래의 명절에 시대생활이 낳은 귀성 풍속도가 가미된 신문화가 명절귀성인 것이다. 서구화된 현대생활은 부득이한 개인주의의 변모를 가져왔다. 대가족제의 핵 분열은 필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명절귀성이 있으므로 서구화 된 가운데서도, 한국적 발견의 차별이 가능하다. 명절귀성을 부럽게 보는 외국인들이 적잖다. 국어대사전은 귀성을 가리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혈연·지연의 귀소 본능이다. 대이동이다. ‘1천만의 이동’, ‘2천만의 이동’이라고도 한다.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자연 발생적 현상이다. 가고 오는 길이 순탄한 것도 아니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지경도 있다. 그래도 가족 일행의 귀성은 그때마다 가슴 설렌다. 뿌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를 낭비로 보는 사회 일각의 시각은 당치 않다. 길바닥에 태우는 기름이 약차고, 선물에 드는 돈이 약차고, 연휴로 노는 손실이 약차이긴 하나, 이는 확대재생산을 위한 간접투자의 생산비다. 현대생활의 정서적 윤활유이기도 하다. 고향을 찾는 심성엔 티가 없다. 명절귀성의 대이동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반대로 만약 명절귀성이 없었다면 현대인의 생활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부모를 찾고, 차례를 올리고,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을 찾는 것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좋은 성찰의 기회다. 자녀에겐 더 할 수 없는 체험적 가정교육으로 소중하다. 고향 땅은 또 맘속에 침전된 그간의 때를 씻어준다. 오는 26일 설을 전후한 연휴를 앞두고 있다. 귀성행렬이 시작된다. 고향에 간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다른 건 더 생각하거나 비유할 게 못된다. 정작 행복하지 못한 것은 고향을 잃었거나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설을 서럽게 여길 이유는 없다. 불행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찾는 고향도 있지만, 맘속 고향도 있다. 맘속 고향에도 부모가 계시고,살던 집이 있고, 산천이 있다. 나도 맘속 고향의 귀성을 해야 한다. 고향은 찾든, 맘속에 두든 어머니의 품과 같다. /임양은 주필

행복론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산다. 가정의 행복도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나라의 행복 또한 저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이다. 저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남의 행복 추구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생존경쟁이다. 그러나 이는 일찍이 개척시대를 경험한 서구인들의 서양사상이다. 특히 신대륙을 개척한 미국인들에게 이런 경향이 짙다. 이에 비해 동양사상은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의 관계를 충돌보다는 더불어 사는 생존화합의 관점으로 보아왔다. 한문의 사람인자 ‘人’은 사람이 서로 기댄 상형문자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저마다 사회기여의 활동 대가로 돈을 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은 결코 공동악이 아닌 공동선이다. 인간의 생활은 소비고 소비는 곧 돈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좋은 일을 하려도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돈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행복과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행복 순위가 돈 순위대로 기계화하면 인간의 삶이 무미건조할 것이다. 비록 돈은 적게 가졌어도 많은 돈을 가진 이 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흥미진진한 것이 인간사다. 절대적인 돈이 행복과의 관계는 상대적인 게 삶의 오묘한 이치다. 행복은 멀리 보이는 허상의 신기루를 향해 쫓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활 주변에서 실질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실체다. 예컨대 온 가족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밤이면 집에 돌아오는 것도 큰 행복이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범사의 평안에서 행복을 느낄 줄 모르면 특별한 행복도 이루지 못한다. 신기루 같은 행복 추구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면 불행해지고,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맹자는 ‘화복무불자기구자’(禍福無不自己求者)라고 했다. 화나 복이나 자기가 구하지 않는데 찾아오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다모클레스의 검’은 인간의 행복을 말하는 이탈리아 고사다. 시라쿠라스 참주 디오니시오스가 왕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를 왕좌에 앉히고 머리위에 말총으로 검을 늘어뜨려 영광속에도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일깨운데서 유래됐다. 한 평생 살면서 행복할 수 만은 없다. 슬플 때도 많고 분할 때도 많다. 곤경에 처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데 거쳐야 할 숙제다. 삶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같은 고독 또한 삶의 일부다. 행복의 뿌리는 존재하는 데 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처했어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능히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정의를 여러가지로 말했으나 ‘존재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보는 정의 이상 가는 정답은 없다. 흔히 자살을 말한다. 죄악이다. 자신에 대한 살인이다. 자신을 살인한 주체, 즉 범인이 죽어 다만 처벌을 하지 못할 뿐, 살인으로 보는 것이 법철학의 해석이다. 또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은 대부분 죽고 싶진 않았던 것으로 밝혀진 사실이 자살 미수자들을 상대로 한 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나왔다. 이 조사에 의하면 자살미수자 93%가 죽지 않고 산 것을 다행으로 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죽고 싶진 않은데 기도하는 자살, 그것은 단순히 자살기도의 이유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심리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은 살고봐야 행복하고 행복은 객관적 가치보단 주관적 가치성이 더 높다. 가령 식사 때 국이 없으면 밥을 못먹고 국이 없어도 잘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을 국에다 말아 먹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해 말아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식성 차이의 주관이 어느 게 좋다 안 좋다 하는 객관성을 띨 성격은 아닌 것과 같다. 실물경제가 위기에 빠져 어렵잖은 사람이 거의 없다. 정치인들이나 괜찮을까, 서민층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가진 이들도 애먹는다. 예를 들어 빌딩 주인은 비싼 세금은 내면서 세든 가게마다 장사가 안 되어 문닫는 바람에 골탕먹는 수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어도 살아있는 걸 행복으로 알고 살아야 된다. 살아가야 언젠가는 지난 고생을 말 할 때가 또 온다. 지금은 고생도 삶의 한 부분으로 알고 참고 견뎌내야 할 때다. /임양은 주필

‘된다’와 ‘안 된다’의 차이

전래의 고담(古談)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걸으며 노새를 끌고 갔다. 사람들이 ‘기왕이면 타고 가지 그냥 간다’며 흉을 봤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웠다. 이번엔 사람들이 ‘나이 많은 아버질 걷게하고 아들이 타고간다’고 나무랐다. 그래서 아들을 걷게하고 아버지가 탔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어린 아들을 걷게하고 아버지 위세로 제가 타고 간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남의 눈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남의 말을 다 듣다간 이도 저도 안 된다. 작금의 나라 사정이 아들과 노새를 둔 아버지 형편과 같다. 결정은 아버지가 한다. 노새의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노새가 병약하면 부자는 걸어서 가고, 아들이 피곤해하면 아들을 태우고, 아버지가 불편한 데가 있어 힘들면 아버지가 타면 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또 노새의 컨디션에 따라 선택하는 아버지의 결정이 만약 잘못된 게 있으면 아버지의 책임이다. 나랏 일, 특히 요즘 화두인 경제위기 대처방안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 저런 말들이 많지만 선택은 일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의 몫이다. 국정의 책임이 곧 고삐인 것이다. 장·단점이 없고 문제가 없는 정책은 없다. 정책은 선택과 집중이며, 무슨 정책이든 타이밍이 있고 시효가 있다. ‘Yes, We can’‘예(그래) 우린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바마의 좌우명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후보 민주당 경선에서도, 이어 당선된 본선에서도 늘 이 좌우명을 강조했다. ‘can not’(아무것도 할 수 없다), ‘must not’(해서는 안 된다) 등을 패배주의자나 무사안일을 일삼는 자들의 넋두리로 질타했다. 작금의 국가사회, 특히 정치권이 ‘can not’ ‘must not’ 병에 빠진 매너리즘은 성찰해야 할 현상이다. 씨름꾼이 처한 곤혹은 모르고 구경꾼이 ‘이 다리 떠라 저 다리 떠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도 했다. 관전평도 좋고 충고도 좋다. 견해가 다른 이견도 있어야 하고 비판도 있긴 있어야 된다. 문제는 내 말, 내 생각이 아닌 다른 말, 다른 생각은 안 된다는 사유(思惟)의 경직성이다. 과거 10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온 신기득권 세력의 이념 성향에서 그같은 경직성이 발견되는 것은 유감이다.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보는 투쟁 우위의 반민주적 폭력 불사는 심히 우려스럽다. 암은 사망률 1위를 기록하는 두려운 병이다. 한데, 암은 병균이 기숙하고 있는 환자를 숙주삼아 부단히 괴롭힌다. 숙주인 환자가 암의 괴롭힘으로 죽으면 암도 따라 죽는데도 인간을 주검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암이다. ‘암적 존재’란 말이 있다. 국가사회에 ‘암적 존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백의민족’이란 조상들이 흰옷을 입은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흰색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구극(究極)의 색으로 불멸의 빛깔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백의관음은 흰 옷에 흰 연꽃 가운데 앉아있는 관세음보살이다. 이런 종교적 비유가 아니고도 하늘과 땅을 숭배한 민족 고유의 신앙에 뿌리를 둔 것이 흰색이다. 제사 땐 흰옷에 흰떡·흰술·흰밥을 올렸던 관습은 역시 흰색을 중심으로 했던 옛 천제에서 유래된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흰색은 불멸의 빛깔이란 사실이다. 모든 색깔이 이 바탕 위에서 시작되는 흰색은 또 모든 색깔을 포용하는 모태이기 때문인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민족처럼 내외의 수난을 겪은 민족도 드물다. 이런데도 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우뚝 선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천지를 상징하는 불멸의 백의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일이 필설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막심하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멀리 비할 것도 없다. 인명이 파리 목숨 같았던 6·25 한국전쟁 당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같은 인명의 위험에도 생계를 이어가며 살았다. 경제 위기가 닥치긴 했어도 인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금의 위기를 타파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 특히 젊은이들은 6·25를 말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렇다. 전쟁 경험세대가 그같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전후 세대 또한 같은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의 전후세대나 젊은이들의 몸속엔 국난을 극복해낸 그같은 유전인자가 자신들의 핏속에 역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한 친박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믿었던 의문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됐으면 그를 국난을 타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된다”고 했다. 이외의 정치적 문제는 국난 타개후에 가릴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애’를 말한다

#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인간애의 나눔이다.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주택가에 전투기가 추락한 참사현장은 재미교포의 집이었다. 출근길 작별을 나눈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딸네 집에 왔던 장모를 일시에 잃은 30대 가장 윤동윤씨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실신했다. “전투기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은 눈물속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이다. 며칠뒤 전해진 위로금을 공익재단에 기부했다. CNN 등 많은 미국 언론의 이같은 보도는 미국인 사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것은 인간애의 물결인 것이다. 하필이면 그처럼 착한 이의 집에 왜 불벼락이 떨어졌을까, 모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시련일 것이다. 횃불은 어둠속에서 더 빛을 뿜는다. 고통 가운데서 피는 인간애는 더욱 아름답다. 그는 그같은 인간애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애는 인성의 나눔이다. 한문의 사람인(人) 자는 서로 의지하지 함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다. 인간의 삶을 인성 나눔으로 보는 전래의 동양사상인 것이다. 억척스럼과 악인스럼은 구별된다. 억척은 노력이다. 악인스럼은 악행이다. 억척스런 노력은 결과가 좋지만, 악행의 끝은 좋지않은 것이 인간사의 섭리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는 ‘노자’(老子)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지만 걸러내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는 본명이 이이(李耳)다.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로 도가(道家)의 시조다. 저서 ‘노자’는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재미교포의 인간애는 생활인의 인성나눔이다. 이런가 하면 목민관의 인성 나눔이 있다. 목민관의 어휘는 정약용(丁若鏞)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유래한다. 관리의 바른 길을 사례를 들어 일깨운 책이다. 모두 48권 16책으로 된 목민심서는 내용이 인간애로 집약된다. 근래에 있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예를 들겠다. 불우이웃돕기 김장 담그기가 있었던 날이다. 현장을 방문했던 그는 내친 김에 김치를 전해주는 데 까지 함께 갔다. 공교롭게도 김 지사가 간 곳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집단거주지역이다. 그는 집집마다 김치통을 직접 들고 찾았다. 그런데 도지사의 이 방문은 한마디로 곤혹이었다. “네가 도지사일 것 같으면 내손에 장을 지지겠다. 흰소리 그만하고 빨리 김치통이나 놓고 가!”하는 소릴 듣거나 “도지사가 미쳤다고 여길 오냐? 잘 해야 동사무소 직원이겠지!”하는 말 등을 듣곤 했다. 잠바 차림의 소탈한 면모에 설마 진짜 도지사일 것으로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몇 안되는 수행원이지만, 수행원이 굳이 더 설명을 안 한 것은 아마 ‘그래도 가만 두라’는 김 지사의 당부가 있어서일 것이다. 더러 진짜 도지사로 안 사람들에겐 호소하는 어려운 형편을 일일이 다 들어줘야 했다. 이렇게 해서 김치통을 다 나눠주는 데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도지사가 졸지에 동사무소 직원이 되긴 했으나, 그는 사는 형편을 세간붙이까지 다 살폈던 것 같다. 김 지사 당자의 후일담은 듣지못하고 또 들을 필요도 없지만, 미쳐 생각치 못했던 많은 것을 직접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나중에 주민들에게 들은 얘기다. 곤혹스러움을 미소로 달게 넘기며 민초의 형편을 세세히 살핀 것은 목민관의 인간애인 것이다. #마침 오늘은 성탄절이다. 독생자 아기 예수가 예루살렘 남쪽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서 탄생한 날이다. 성탄절에 생각되는 것은 그 분의 최후다. 머리엔 가시나무 줄기로 만든 가시면류관을 쓰고 양손은 골고다(Golgotha)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예루살렘 교외에 있는 언덕 골고다는 해골을 뜻한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였다. 성인의 인간애인 것이다. 크리스찬이든 아니든 성탄절은 좋은 날이다. 성인의 인간애는 종교를 초월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더 가기 위해서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미래를 향한 이정표의 확인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부모는 자녀를 만나고, 자녀는 부모를 만난다. 성장하면서는 친구들을 만나고, 결혼은 남남끼리 갖는 부부의 만남이다. 다중의 사회생활 또한 만남의 광장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이긴 하다. 만남은 이미 헤어짐이 정해졌다. 그러나 만남은 소중한 삶의 자산이다. 묵은 만남의 정은 더 두텁게 하고, 새 만남의 정은 값지게 하는 것이 인간애다. 인성 사랑의 인간애 앞에서는 빈부귀천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예외가 없는 인간애의 나눔이기 때문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행복하게 생각한다.

아버지의 얘기를 듣는 것이 늘 부담스러웠다. 아니, 따분했다. 말씀인즉슨은 구구절절이 옳지만 왠지 그랬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이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날은 해방된 듯한 기분이었다. 출장 가셨을 적의 일이다. 출장 기일이 오래 가길 바라곤 했다. 어머니가 잠시 집을 비우면 텅 빈듯이 허전했으면서도,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면 그토록 좋았다. 철이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역시 거북했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그 분의 의지력은 지금도 내가 배워야 할 강점이다. 그런데도 대화는 내키지 않곤 했다. 생각하면 대화라기 보단 일방적인 설교가 많았다. 아버지 생전에 당신께서 자신의 인생관을 강요한다고 여겨졌던 것이 젊었을 적의 기억이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가 되면 아들과 기탄없는 토론으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와는 좀 다른 아버지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나도 결국은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내 아들 또한 내가 아버지를 거북하게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거북하게 대한다. 아들만이 아니다. 보면 아들도 고등학생인 제 아들과 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제 아들을 더러 탓하는 소릴 듣지만 아니다. 손주 녀석은 내가 생각하기엔 제 애비보다 장점이 더 많다. 물론 부자간에 대화가 잘 되는 집안이 적지않다. 하지만 일상으로는 잘 안 되는 집이 더 많아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같은 보편적 현상의 의식 차이를 크게 보면 세대 차이다. 세대 차이는 인류의 기원 이래 있어왔다. 인류의 발전은 거듭된 세대 차이에서 변증법적으로 전개됐다고 보는 것이 문화인류사의 해석이다. 인간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사회의 관습이나 제도, 이밖에 언어·학문·예술·종교 등 문명 및 문화의 전통과 발달 과정이 다 이에 포함된다. 미래학은 인간의 갈등 심화를 완급의 충돌로 전망한다. 요즘말로 하면 예컨대 보수적 개혁과 진보적 개혁의 충돌이다. 비단 정치만이 아닌, 인간사회 제반의 이런 갈등이 앞으로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갈등의 본질이 완급으로 집약된다. 따라서 세대 차이 역시 기성세대와 신생세대 간의 가치관 해석을 완급의 차이로 보는 것이다. 세상에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들을 위한 노파심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타이르는 것은 아버지의 자유다. 이와 비례해서 아들의 자유도 있다. 마치 붕어빵을 구워내듯 아버지와 같길 바라는 아버지의 생각을 거부할 자유 또한 아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아들은 아들나름의 인생이 있고, 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들 고유의 몫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소원하다고 해서 서로간 혈육의 정이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대화는 표현(表現)이다. 표현의 대화가 있지만 묵언(默言)의 대화도 있다. 말이 없는 가운데 부단히 나누는 대화는 묵언의 대화로 이것이 곧 짙은 혈육의 정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흔히 효(孝)를 말한다. 효는 인륜의 근본이다. 다만 시대생활의 변천에 따라 효의 형태가 달라진다. 현대사회에서의 가장 큰 효는 아들이 부모, 즉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물심 양면의 걱정을 끼치지 않는 더 이상의 효도는 없다. 제몸 건강하게 간수하면서 제 힘으로, 제 처자식 잘 거느리고 사는 것이 부모에 대해 더 할수 없는 진정한 효도다. 반대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가장 바람직 한 것은 아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일이다. 경제 불황으로 아동복지시설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날로 늘어간다는 본지 보도가 시선을 끈다. 도내 27곳이 지난해 이맘 때보다 배가 넘는 667명에 이르러 초만원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고도 문의가 잇따른다니 걱정이다. 아이를 버리다시피 그런데다 맡기는 것은 가족이 해체된 탓이다. 상반된 두 가지 심정이 든다. 짐승도 다 클 때까지는 제 새끼를 버리지 않고 돌보는 데 아이를 짐스러워 한 것에 인간적 공분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형편이 오죽했으면 자기 아이를 남에게 떠맡기겠느냐는 생각에서 측은지심이 든다. 불황이라지만 불황을 넘어 가히 공황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가족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 중심은 부부이지만 아들도 한 축을 이룬다. 아들 얘기만 해서 딸들 분 한테 미안하다. 개인적으로 딸이 없기도 하지만, 딸 역시 소중하긴 마찬가지다. ‘부모를 위하는 것은 아들 며느리 보다 딸이다’란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거북하게 여기긴 했어도, 아버지 슬하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을 항상 행복하게 생각한다.

공무원 여러분!

공무원들의 노고가 많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이렇다. 한데, 여기선 노고에 대한 위로보단, 부패공무원들을 나무라겠다. 일부의 부패공무원들이 있다. 이들로 인해 한국 공무원의 이미지가 바닥을 긴다. ‘한국 공무원은 부패했다’고 한 응답자는 50.5%, ‘공무원부패가 기업활동에 심각한 저해가 된다’는 응답자가 58%에 이른다. 주한 외국공관·주한 외국인상공회의소·외국인 투자업체 등에 근무하는 주한 외국인 200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는 국민권익위원회가 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주요 22개국의 뇌물공여지수에서 한국을 하위권인 14위로 발표했다. 한 마디로 국제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이다. 말이 아니다. 외국인들에게 이런 평판을 듣는 판이니, 같은 내국인들에게는 더 말 할 것이 없다. 그나마 이는 부패의 개념을 지하부패에 국한한 것이다. 현대행정학이 부패로 분류하는 공식부패·준공식부패를 지하부패와 함께 부패의 범주에 포함하면 한국 공무원은 유감스럽게도 다 부패공무원으로 의심되는 유추해석이 나온다. 예를 든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관아를 나가 외식을 한다. 이들이 자기네 월급돈으로 점심을 사먹는다고 보는 외부의 시선은 별로 없다. 시민들도, 식당 주인들도 그렇게 본다. 시간외 수당이나 여비 등으로 잡비를 만든다. 만든다는 것은 예산집행의 관행적 방편이다. 공식부패인 것이다. 가령 공사의 기성고에 따라 중간 정산을 할 때면 지출되는 예산에 비례해 업자가 관련 부서에 사례금을 상납한다. 준공식부패의 불문률이다. 공식부패, 준공식부패의 사례를 든다면 또 많다. 이것이 한국의 공무원문화다. 이유가 있다. 시대적 배경이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무관급 봉급이 지금으로 치면 100만원도 안 됐다. 몇 십만원에 불과했다. 6·25전쟁을 치룬 혼란과 격동속에 나라의 재정은 마치 빈 창고와 같았다. 체계도 질서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공무원 발령은 정부가 해도, 먹고사는 문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던 게 그 무렵의 공무원사회다. ‘사바사바’가 성했던 것도 그 때다. ‘사바사바’는 뇌물의 은어다. 풍자어이기도 했다. 공무원을 거치는 일에 ‘사바사바’가 없으면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공무원 처우가 개선되기 시작하고 공무원사회가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 제3공화국에 들어서다.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뇌물, 즉 지하부패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비록 부패공무원이 많다고 하긴해도, 그리고 고쳐야 할 과제이긴 해도 뇌물을 당연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준공식부패나 공식부패에는 부패의 인식이 여전히 둔감하다. 1950년대에 생성된 불행한 과거의 공무원문화 뿌리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재는 맛으로 한다. 공복이니 머슴이니 하지만 국가가 부여한 권한을 행사한다. 1급이든 9급이든 다 소임에 합당한 재량권이 있다. ‘공직’을 과시하는 연유가 이에 있다. ‘과거에 공직에 있었다’는 것은 은연중 뽐내는 말이다. 그리고 뽐낼만 하다. 공무원이 재는 맛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가치 창출이다. 공무원과 공무원사회가 생각하는 판단, 수치 등 직무의 이행가치 발생 정도에 따라 국민이나 주민생활의 질이 좌우된다. 행정공무원만이 이런 게 아니다. 교육공무원, 세무공무원도 그렇고 사법공무원 등 모든 공무원이 다 마찬가지다. 이는 공무원의 긍지다. 또 하나 재는 맛은 대민업무다. 그런데 민원서류를 들고 관공서를 찾는 민원인 치고 기분좋은 맘으로 찾는 이는 거의 없다. 공무원 치고 민원을 접수하면 으레 첫 마디가 ‘된다’기 보다는 ‘안 된다’고 퇴짜놓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민원인이 시달림을 받는 곳이 우리 공무원사회의 민원창구다. 이는 공무원의 폐악이다. 물론 안 되는 것도 있는 게 민원이다. 그러나 될 일도 안 된다 하고, 안 될 일도 되는 것이 공무원사회의 민원처리다. 어떤 민원인에게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되는 길을, 심지어는 편법을 써가며 친절히 가르켜주는가 하면, 어떤 민원인에게는 물어도 대답이 시원찮다. 시큰둥하거나 퉁명스럽다. 친절히 대하는 것과 시원찮게 대하는 차이의 까닭은 뭣일까, ‘사바사바문화’의 잔존이다. 불행스러웠던 공무원사회의 관행적 뿌리를 역시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가장 안정된 직업이다. 처음 직업을 갖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처우도 그만하면 괜찮다. 월급도 괜찮고 상여금도 괜찮다. 자녀들 학자금도 있다. 퇴직해도 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된다. 이같은 처우에 드는 돈이 국가공무원은 국민, 지방공무원은 주민의 세금으로 나간다. 기업체 사원은 사원이 기업이익을 창출한 이윤으로 월급을 탄다. 공무원은 무슨 이익을 창출한 대가로 국민 또는 주민의 혈세를 월급으로 타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사회는 엘리트 집단이다. 묻겠다. 한국의 공무원은 과연 부패했는가, 부패했으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임 양 은주필

못사는 우리들, 힘내자!

온통 비명이다. 어렵다는 소리 뿐이다. 사람사는 곳 어디를 둘러봐도 다 똑같은 소리다. 경제지표가 엉망이다. 실질국민총소득(GNI)만 해도 올 3분기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국내총생산 증가율(GDP)은 3분기 3.8%에서 4분기엔 2%대로 주저앉는다.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대로, 그럭저럭 사는 사람은 그럭저럭 사는대로, 못사는 사람은 못사는대로 어려운 세상이다. 문제는 못사는 사람들이다. 억지로 산다. 죽지못해 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사회의 태반이다. ‘내년 상반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말이다. 상반기 뿐이겠는가, 내년 한해동안 내내 더 어려울 것이다. 믿고 기댈 데도 없다. 정부는 소리만 요란하지, 한다는 게 뭐 하나 피부에 와닿는 것이 없다. 국회는 나쁜 사람들의 집단이다. 비싼 세비를 받아먹어 배가 불러서인 지 민생은 안중에 없다. 기세 싸움으로 세월을 허비한다. 미국의 오바마는 단 1분도 아깝다고 했다. 소위 민중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다. 무산계급을 팔아 유산계급에 오른 작자들이 민중운동 지도자들이다. 민중은 집 한 칸 없이 못먹고 못살아도 민중운동가들은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산다. 실생활을 민중과 함께하는 민중운동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위선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못사는 사람들도 좀 잘 살아야겠다. 남들처럼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기 위해서 잘 살기는 커녕 당장 하루 하루가 절박한 현실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앞으로 수년동안 넘겨야 된다. 힘은 들어도 우선 살고봐야 잘 살 날이 있지 않겠는가, 보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렵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된다. 몸이 아프면 비명이 나오고 못살아 심신이 고단하면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렇긴해도 한탄이나 비명이 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캄캄한 어둠속의 절벽이지만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광명의 길을 뚫어야 한다. 입버릇처럼 ‘죽겠다’고만 하면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죽겠다’는 소린 이젠 그만 두자, ‘살겠다’고 발버둥 치자, 그리하여 없는 힘이지만 그럴수록 힘을 내야된다. 우리는 못살아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살다보면 노력의 효험이 서광처럼 비칠 날이 있기 마련이다. 절망은 곧 무망이다. 절망적일 때 절망을 거부하고 희망, 즉 꿈을 갖는 것은 이 또한 못살아도 영혼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설령 잘 살아도 꿈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육체에 불과하다. 못살아도 꿈을 갖는 사람은 축복이 기약된 영혼의 삶이다. ‘안 된다’는 생각은 털어버리자, ‘안 된다’고 여기면 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안 되는 것도 되는 것이 인간사의 섭리다. 생계가 어려우면 집안에 분란이 많은 것은 피할 수 없는 노출현상이다. 하지만 참자, 참아야만 된다. 아내가 남편을 구박하고 남편이 아내를 탓하고, 자식들이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가 자식들을 나무라는 것을 일삼아선 가정이 아니다. 해가 저물어 밤이되면 누구든 발길을 돌려 찾는 곳이 가정이다. 가정을 가정답게 꾸리기 위해서는 못살아도 서로가 이해해야 된다. 살다보면 남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하물며 혈육지간인 가족끼리 참으면 이해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참고 참는 것이 잘 사는 길이다. 장작불은 땔감을 모아야 내뿜는 불길이 화력을 더 한다. 땔감이 흩어진 장작불은 화력은 커녕 불길이 사그라든다. 가족들이 힘을 모아 화력을 살리는 것이 잘 살든 못 살든 건강한 가정이다. 가정은 국가사회의 기초적 단위체다. 병든 가정이 많으면 사회도 병들고, 건강한 가정이 많으면 사회도 건강하다. 경제가 심히 어려워 생활이 더 어렵다 보니 말로는 하기 좋은 온갖 경제논리가 다 쏟아진다. 그러나 그같은 유식한 말들이 피와 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로는 뭔들 못하겠는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쟁명과 같다. 쓸데있는 말도 있지만 쓸데없는 말들이 더 많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말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 보다 더 요긴한 것은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척 허약하다. 마뜩치 않는 것이 참 많다. 그래도 우리의 정부다. 비판할 땐 비판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맡겨두자, 그리고 노력 하자, 집안의 가장된 책임에 힘쓰자, 가족된 노릇에 최선을 다 하자,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경기가 좋아도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어차피 자신의 노력에 달렸다. 비명을 탄성으로 만드는 것도, 나쁜 경제지표를 좋게 만드는 것도, 절망을 희망으로 만드는 것도 사람의 힘이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우리들도 한 번 보란듯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힘을 내자. /임양은 주필

젊은이여, 기를 펴라!

# 그것은 충격이었다. 알토란 같았다. 단아하기도 했지만 푸성귀처럼 싱싱해 보였다. 며칠 전이다. 갓 입사한 수습기자 다섯명이 이러했다. 젊음의 기풍이 샘솟 듯이 가득했다. 집에 가서 사진첩을 펼쳤다. 거기엔 역시 또 하나의 푸성귀 같은 젊은이가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자화상이다. 신문사에 갓 입사하고 찍은 사진이다. 스물아홉살 때다. 내가 시험을 잘 치러 신문기자가 된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시험을 못치러 내가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신문기자가 평생을 몸 담은 천직이 됐다. 이젠 노인이 됐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있다. 그것은 한결같은 신념이다. 정의다. 그리고 정의의 실체는 인간애라고 믿어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그 어느 분야든 신문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애로 집약된다. 인간애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고관현직도 신문기자에겐 취재의 대상일 뿐이다. 취재엔 예절이 따른다. 취재는 정중하게 하고 기사는 날카롭게 쓰는 것이 기자다. 반대로 취재는 건방을 떨어가며 해놓고 기사는 물렁하게 써서는 기자가 아니다. 공직자에 대한 예우는 국가나 공공의 직함에 걸맞는 예의로 충분하다. 높은 벼슬아치들 앞에서 슬슬기거나 아양을 떠는 기자는 그도 기자가 아니다. 예컨대 순경은 무서워도 경찰청장은 무섭지 않는 것이 신문기자다. 나는 감히 말한다. 권력 앞에서 소신을 굽힌 적은 없다. 개인적 보복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권력의 군림이 아니다. 이를테면 천진난만한 아기의 미소, 그런 것엔 마음을 빼앗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일상이다. 신문기자는 이같은 일상이 훨씬 더하는 직업이다. 가령 출입처 같은데서도 종횡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출입처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신문기자가 돼야 한다. 기사를 예리하게 쓰는 것과 신뢰를 얻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주어진 조건, 즉 여건을 탓하는 직업인은 조건이 충족되어도 새로운 여건을 또 탓하기 마련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극복하는 것이 직업인의 자세다. 특히 젊은 신문기자에게는 도전의식, 실험정신이 자산이다. # 직장을 갖지못한 젊은 백수는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나도 20대 백수의 경험이 있다. 부모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동생들에게도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땐 서울에 돌산이 많았다. 채석장이다. 채석장에서 잡부 노릇도 했고 홍제동 시장터에서 호떡 장사도 해봤다. 당시 경험에 비추어 중요한 것은 좌절을 거부하는 강인한 의지다. 어떤 고난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몸은 험한 일을 해도 맘은 고결하게 가졌다. 그러면서 자신을 연마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스스로 애썼다.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부질없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 어떤 훌륭한 사람도 젊은 시절에 겪은 시련은 다 있다. 남보다 백수의 세월이 긴 것은 시련의 세월이 긴 것 뿐이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고 그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는다. 나 자신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부모 형제도 대신할 수가 없다. 자포자기는 이래서 자신에 대한 최대의 죄악이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어두움 뿐일지라도 햇볕을 볼 날이 반드시 온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섭리되는 세상사의 이치다. 인생의 마라톤 레이스에서 젊은 나이는 초반이다. 초반 선두가 결승 테이프의 영광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초반 부진이 낙오되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 결혼 시즌이다. 청첩장이 제법 들어온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새로운 가정이 탄생되는 것이다. 정말 축복할 일이다. 혼사는 두 가정의 중대사에 국한하지 않는 사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남남으로 만나 부모보다 더 가까운 부부가 되는 것은 서로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쓴 것도 사랑이다. 아들 딸 낳고 살다보면 세상 풍파를 겪으면서 미운정 고운정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사랑이다. 부부의 사랑은 마치 거친 곡식을 채에 받쳐 흔들면 검부러기는 걸러지고 알곡만 빠지는 것과 같다. 채에 받쳐 흔드는 것은 세상 풍파고 걸러진 알곡은 곧 사랑인 것이다. 십여년 전에 ‘일구는 사랑, 까먹는 사랑’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젊은 부부는 신혼의 사랑을 까먹는 사랑을 하기보단, 꾸준히 새로 일구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다. 사랑의 예금통장을 곶감 빼먹듯이 빼먹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더 저금하는 사랑을 말했었다. 이를 위해서는 순수한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해(under stand)는 영문자 그대로 상대 아래, 즉 남편은 아내의 위치 아래서 아내는 남편의 입장 밑에서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이해다. 젊은이들이여 기를 펴라, 젊음은 그 자체가 빛을 뿜는다. /임양은 주필

인사의 탕평책- 이명박과 오바마

술 자리에서 좋은 화제는 남을 칭찬하는 일이다. 반대로 나쁜 화제는 남을 헐뜯는 것이다. 물론 헐뜯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관적이기보단 객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적이어도 남을 비판하는 것은 간단 명료하면서 짧게 끝내야 된다. 그런데 패거리 험담은 술자리에서 으레 있기 쉬운 폐습이다. 자기 사람은 잘못을 덮으면서 남의 사람은 들춰가며 꼬집는다. 그러나 이런 패거리 논리가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등뒤에서 비수를 꼽는 배신은 언제나 패거리 안에서 나온다. 술 자리에서만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간교한 벗보다 당당한 적이 더 낫다’는 것은 영국의 속담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가 낙선자 매케인과 두번 째 만났다. 대선 직후 제3의 장소에서 처음 만난 이후 두번 째는 매케인이 시카고에 있는 오바마 정권인수팀 사무실을 찾았다. “현 시기의 긴급한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워싱턴의 ‘나쁜 관행’을 바꾸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는 것은 회동 후 두 사람이 밝힌 공동성명이다. 오바마는 대통령후보 당내 경선에서 맞싸웠던 힐러리와도 회동을 가졌다. 그녀의 국무장관 기용설이 나온 이유다. 이만이 아니다. 조각 대상에 공화당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것이 그의 인선 구상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이 속병을 앓고 있는 비주류 문제가 또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원내 172석의 한나라당이다. 과반의석 150석에서도 22석의 여유를 갖는다. 제1당의 집권 여당인데도 맥을 못쓴다. 80~90석은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비주류는 전 대표 박근혜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이다. 오바마의 상대 끌어안기는 기민한 것에 비해 이명박의 상대 끌어안기는 지지부진하다. 저쪽은 선거가 끝나기가 바쁘게 대통령 취임 전에 사회통합의 정지작업을 이미 마쳐가고 있다. 그런데 이쪽은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취임한 지가 언젠데 아직껏 당내 통합도 못이루고 있다. 박근혜는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진 뒤에 “당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승복했다. 매케인은 본선 패배 직후 지지자들에게 이번의 패배는 여러분들의 것이 아니고 나의 패배”라고 말했다. 미국이라고 선거판에서 좋은 말만 주고 받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당내 경선에서 욕설에 가까운 말이 오갔고, 오바마와 매케인은 본선에서 서로의 인신공격이 치열했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당내 경선에서도 험한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명박과 오바마의 다른 점은 오바마는 맘속 앙금을 침전되기 전에 털어낸 것에 비해 이명박은 앙금을 털어내지 못한 채 맘 속에 침전시킨 데 있다. 하긴, 이명박도 조각 당시 박근혜에게 국무총리 자릴 제의하긴 했다. 사양한 것은 박근혜쪽이다. “진실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상대를 끌어안는 덴 진실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체면치레나 보여주기 위한 쇼는 진실성이 있다 할 수가 없다. 진실성은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싹트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것을 버릴 건 버릴 줄 아는데서 신뢰가 선다. 대통령 이명박의 인사파일이 제한된 자기 주변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심지어 정부 산하 공기업의 요직까지 이명박계 주류가 독식한 사실은 그들도 부인치 못한다. 그래도 잘만 돌아가면 괜찮지만 잘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인사가 조직위주가 아닌 정실위주여서 고장이 잦은 건 당연하다. 이 정부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지 않고 대통령 눈치만 살피는 연유가 이에 있다. 물론 박근혜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차기감’인지 아닌지는 개의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은둔주의나 비판주의가 차기행보를 의식한 것이라면 능사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잘 돼야 박근혜도 차기가 있다. 이명박이 잘못되면 박근혜도 미래가 없다. 무엇보다 민생은 차기보다 현실이 급박하다. 한가한 ‘차기놀음’으로 민생을 등진 ‘신선놀음’이 인정될 수 없는 이유다. 여권 내부에서 ‘탕평론’이 나오고 있다. 주류에서 이같은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하지만 칼자루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명박이 자신의 몫도 버릴 건 버릴 줄 아는 신뢰를 보일 작심이 서야 가능하다. 자기의 것은 다 챙기면서 믿으라는 것은 과욕이다. 과욕엔 진실성이 없다. 탕평책은 ‘탕평론’이란 말도 없는 미국의 오바마가 먼저 쓰고 있다. 힐러리며 매케인이며 공화당 사람들을 끌어안는 국량이 꽤나 넓다. 상대당은 말할 것 없고 자기당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이명박의 협량함은 나라를 위해 유감이다. 시중 민초들의 패거리 주석 논리가 비록 그렇긴 해도, 민초들도 탕평책을 쓰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쓴다. 하물며 비상시국에 처한 대통령의 지위에서 의식이 패거리 논리에 머물러서 안 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盧와 민주당 사람들

총통은 권력적으로 대통령보다 상위 개념이다. 왕조와 버금간다. 왕 보다 하위 개념인 것은 혈통 승계가 안 되는 것으로 구별된다. 나치스 독일이 총통제였고 히틀러는 막강한 총통의 권한을 무소불위로 휘둘렀다. 이토록 지존한 총통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대만의 천수이볜은 전 총통이지만 총통은 총통인 것이다. 검찰에 체포되어 법원으로 호송되는 천수이볜은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머리위로 치들고는 “정치탄압”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대만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천수이볜의 ‘수갑 쇼’는 파렴치범의 단죄를 정치적으로 둘러대는 것이었으나 “벌써 감옥 갔어야 할 사람”이라는 게 대만 국민들의 한결같은 야유다. 그는 2002년 7월부터 2006년 3월까지 국가기밀비 횡령, 뇌물수수 등을 일삼아 돈세탁으로 일부는 해외에 빼돌렸다. 해먹은 돈이 밝혀진 것만도 우리 돈으로 1천320억원 규모다. 진보주의를 표방한 민진당(民進黨) 당수였다. 대만 민주화의 영웅으로 총통에 당선된 것이 2000년이다. 그러나 천수이볜 총통의 진보정책은 경제난을 가져와 만성적 경기 침체를 유발했다. 여기에 총통을 비롯한 가족 및 친인척의 비리가 분분한 가운데, 지난 5월 퇴임한 지 6개월 만에 마침내 범행의 수괴가 되어 감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가 지도자의 이같은 전락은 비록 이웃 나라지만 보기에 좋은 것은 아니다. 때마침 전 대통령 노무현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또 내뱉었다. 그의 한·미 FTA 재협상론은 남의 말을 해대는 것 같아 무책임해도 심히 무책임하다. “먹고 사는 문제”라며 협상 타결을 적극 추진했던 장본인이 바로 대통령이었던 그다. ‘서로 불만족스런 것은 다시 조정해야 한다’지만 재협상을 해도 불만족스런 점은 또 있기 마련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의 불만은 주로 자국의 자동차 생산업계 보호에 있다. “미국은 수십만대의 한국자동차를 사주는 데 비해 한국에서 사는 미국 자동차는 고작 수만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바마가 항상 토로하는 불만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바마 보단 노무현이다. 자기가 뭐라고 오바마 말을 거들고 나서는 지 모르겠다. 자신이 해놓은 일을 자신이 뒤엎는 토달기는 민주당더러 국회 인준을 극력 저지하라는 ‘상왕정치’의 개입이다. 총통을 방불케 한다. 언제는 “먹고 사는 문제”라던 것을 이젠 못하게 방해토록 한다면, 그럼 민생은 안중에 없다는 것인 지 실로 하는 짓이 괴이하다. 지금 항간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신수 편한 사람은 노무현이다’란 말이 파다하다. 중세기의 장원(莊園)같은 ‘봉하궁’을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사회적 관심의 의문이다. 그러면 조용히 장주(莊主)노릇이나 할 일이지, 상왕 노릇까지 하려고 드는 것은 망발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협정이 타결됐으면 고쳐도 시행해보고 고치는 것이 국가 간의 신의다. 시행도 않고 고치는 건 순리가 아닌 게 그런식으로 하자면 고치다가 장 파한다. 오바마가 아무리 보호무역을 선호해도 자유무역의 조류를 거역할 수 없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장주의의 재앙이긴 해도 역기능보단 순기능이 더 많은 것이 그래도 역시 시장주의다. 민주당은 참 이상한 정당이다. 자기네가 집권했을 때 한 일을 부정하는 것은 한·미 FTA 말고도 또 있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를 예로 들수 있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은 정책방향은 좋았으나 시책이 잘못된 게 실패의 원인이다. 수천억원의 나랏돈을 경작농민이 아닌 투기꾼 지주들이 챙겨 농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판에, 마치 현 정부의 잘못인 것 처럼 덤터기 씌우는 행태는 반성을 모른다고 보아진다.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노무현을 비롯해 하나도, 둘도 개혁이라며, ‘개혁’의 구호속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행태를 걸핏하면 ‘반개혁’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 붙였다. 그랬던 구정권 사람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자신이 ‘반개혁’의 우리 속에 갇혔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자기네가 했던 일도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습관성 구태, 줄을 잇는 구정권 사람들의 비리 백과는 반개혁의 표본이다. 민주당은 흠집내기 표적수사라고 힐난한다. 그렇지만 천수이볜의 ‘수갑 쇼’에 대만 사회가 냉담했던 것 처럼, 국내 사회도 민주당의 주장에 냉담하다. 유한열 한나라당 고문 등 여권 사람들도 비리가 들통나서 감옥에 떼어 들어갔다. 한나라당이라고 국민사회의 눈에 좋게 비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은 실로 속죄를 모르는 집단이다.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으로 위장 개업을 했다고 하여 진보노선의 잘못된 열린우리당 업보가 모면되는 것은 아니다. 봉하마을의 장원은 진보주의 모순의 상징이다. 그같은 장주 영향권에 들어 편승해서는 더 이상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오바마 ‘신드롬’

미국 제44대 오바마 흑인 대통령의 출현은 투표를 통한 미국 사회의 민중혁명이다. 제16대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146년 만에 노예의 후예가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링컨은 북부에 기반을 둔 공화당이었다. 노예 해방문제를 민주당 기반의 남부가 반대해 남북전쟁까지 치렀다. 북부지역은 상공업이 발달한 데 비해 남부는 영농 위주의 대지주가 많아 부릴 노예가 필요했던 것이다. 1861년에 시작된 남북전쟁은 무려 5년의 격전 끝에 1865년 남부의 항복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번 44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백인 후보 매케인이 민주당의 흑인 후보 오바마에게 패배한 것은 또 한 번의 엄청난 미국 사회의 변화다. 흑인사회는 오바마의 당선을 ‘역사적인 날’로 자축, 크게 평가하고 있다. 백악관이 ‘흑악관’이 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결이 흑백 충돌 양상인 조짐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인이 흑인에게 준 표보다는 흑인이 백인에게 준 표가 훨씬 적다는 사실이다. 오바마가 민주당 당내 후보로 대권 도전을 선언한 것은 1년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힐러리를 넘볼 것으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힐러리를 따돌렸다. 오바마의 평범함이 힐러리의 화려함을 제압한 것은 분명히 이변이었다. 이어 매케인의 관록, 오바마의 패기 싸움에서 미 국민이 오바마를 선택한 것 역시 새로운 역사의 서막인 대이변이다. 정계 입문 10년이다. 중닭 정도의 병아리다.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카리스마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상원 의원이긴 해도 영락없는 촌놈 스타일이다. 흔히 보는 40대 샐러리맨 타입이다. 여기에다 또 흑인이다.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런 조건이 오히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은 미국사회 민중의 과감한 상식 파괴다. 이른바 정계 거물, 부질없는 관록, 권위적 카리스마, 인물론, 오랜 백인 통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고정 관념에 저항한 결과가 이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오바마는 이 같은 민중 정서의 잠재적 갈망을 정확하게 읽었고, 새로운 역사와 미국의 변화를 다짐하면서 민중의 가슴에 파고 든 것이다. 시운을 탔고, 시운을 또 잘 이용했다. 그렇다고 오바마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흑인사회의 영광이 오바마에 대한 성급한 기대로 ‘흑흑’ 분란의 불씨가 될 공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면이 있다. 미국의 종말을 인종 분란으로 보는 게 미래학의 전망이었던 것이, 이 같은 통설에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 흑인 대통령의 출현은 인종시장인 미국 사회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법하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온 것을 주목하는 것은 초강대국의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백호주의의 잔재가 무너지면서 유색 인종의 세계 무대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흑인 대통령을 뽑은 미국 사회의 상식 파괴는 또 지구촌에 파급되는 영향이 점점 확대될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21세기 들어 금세기의 일대 변혁을 시사하는 첫 청색 신호다. 세상은 변화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류는 멈추지 않으므로 변화를 거듭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도태된다. 오바마가 미치는 필연적 파급 효과는 더욱 발빠른 변화를 보일 것이다. 기존의 상식을 땅에 묻어버릴 순 없어도 기존의 상식에 얽매이다 보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가 다 그렇다. 상식에서 탈피하는 도전적 실험정신이 필요로 하는 때다. 이건 보수와 진보·진보와 보수의 개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진보든 보수든 시대에 불합치한 정체된 관념은 다 깨부숴야 된다. 인류문화의 발달은 언제나 소극적 관념이 아닌 적극적 인식에서 출발되곤 했다. 지금이 그 같은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인 것이다. 오바마는 이민자다. 한국사회도 닫힌 사회관에서 열린 사회관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 100만 결혼 이민의 다문화 가정은 얼마 안가 다문화사회를 형성한다. 다문화가정은 점점 늘고 이들의 자녀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시대가 곧 온다. 민족의 개념보단 국민의 개념이 우선시되는 시대가 다문화사회다. 우리의 해외 이민은 300만 명을 돌파했다. 나라 안에서 외국으로 나간 해외 이민들 가운데도 다문화가정이 또 많다. 미국 사회가 투표를 통한 민중혁명으로 오바마 흑인 대통령을 낳은 현실은 결코 범상치 않다. 누구보다 우선 우리의 위정자들이 정신차려야 된다. 미국과 비슷한 유권자 혁명은 앞으로 나라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의식이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MB의 ‘바담풍’

바람풍(風) 글자다. 서당의 학동들이 ‘바담풍’이라고 했다. 훈장이 읽은대로 따라 한 것이다. 훈장은 혀는 짧아도 귀는 밝았다. 학동들더러 틀렸다며 자기딴은 ‘바람풍!’이라고 했지만 학동들이 듣기는 여전히 ‘바담풍’인 것이다. 자꾸 이러다 보니 학동들은 훈장을 불신하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같은 훈장 꼴이 아닌가 싶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안 그래도 어려운 나라 경제에 엎친 데 덮친 치명상이 됐다. 사흘이 멀다할 만큼 이런저런 대책을 쏟아내는 데도 백약이 무효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 상실’을 이유로 든다. 며칠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외화 유동성 문제는 능히 감당할 것이며, 시장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원화 유동성을 선제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말은 옳은 말인 데도 공감대를 형성 못하고 있다.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연유는 두 가지다. 직접적인 것이 있고 간접적인 것이 있다. 직접적인 것은 미국발 쓰나미에 대한 당초의 대처 미숙이다. 뭣보다 말들이 오락가락했다. 정책이라는 게 갈팡질팡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전광우 금융통화위원장 등의 엇박자가 심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도 각자가 이랬다 저랬다 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IMF 때보다 위기가 심각하다”고 한 게 “IMF 때와는 다르다”고 말한 지 불과 사흘만이다. 간접적인 연유는 대통령의 가슴이 자리에 비해 너무 좁다. 포용력이 없다. 강만수를 당장 갈아치워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퇴진시킨다고 약발이 살아날 것이란 보장은 없다. 강만수 대신 또 그같은 사람을 앉히면 맹탕이긴 매 한가지다. 사람을 쓰는 눈이 대통령 주변에서만 맴돌아서는 마냥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지금은 경륜을 필요로 하는 때다. 예컨대 IMF 국난을 타개하는 데 선봉에 섰던 임창열 같은 사람을 들 수가 있다. 하긴, 본인은 경제부총리를 지내어 총리면 몰라도, 장관 자린 주어도 싫다겠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한나라당은 야당시절에 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아마추어라고 비꼬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역시 그에 못지 않는 아마추어 수준 투성이다. 대통령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방법은 직·간접의 불신 요인을 거꾸로 푸는 데 있다. 우선 인재 기용을 주관화에서 객관화로 돌려 누가봐도 수긍하는 인재다운 인재를 써야된다. 그리고 과오를 시인할 것은 시인할 줄 아는 도덕적 용기다. 대통령은 소신은 약하고 고집은 센 것 같다. 금융위기의 초동 대처가 미숙했던 과오를 시인 않고 버티는 것은 고집이다. 위기의 현장을 살피기 보단 책상머리 보고에만 의존하는 것은 소신의 빈곤이다. 은행 점포·공장 기업체·식당·시장·농가·어촌·건설 현장·빈민촌·일선 시군 등등 대통령이 직접 살펴봐야 할 데가 참으로 많다. 이도 시나리오가 있어서는 효험이 없다. 무작위로 불시에 찾아야 거짓없는 얘기를 들을 수가 있다. 대통령 자신이 몸을 던져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진솔한 의지를 보여야 된다. 총지휘관이 위기돌파를 위한 공격 명령을 뒤에 숨어서 내리면 백 번을 외쳐도 부대는 서로 눈치만 본다. 지휘관이 몸소 앞장서 명령을 내릴 때 비로소 전진한다. 대통령이 뒤에 있기 보다는 맨 앞에 서야하는 것이 작금의 경제위기 전선이다. 각료들이 무위하고 부처 공무원들이 태만한 이유가 대통령이 전선의 후미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는 금융위기 등 갖가지 대책은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여느 때 같으면 안 되는 턱도 없는 내용 들이다. 부동산 문제 등을 예로 들어도 그렇다. 내수 경색을 풀기위한 조치가 우선 급하기 때문인 것이다. 금융권 차관의 정부 지불보증도, 문제가 있으나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하기 때문에 보증을 서는 것이다. 이런저런 정부 대책에 토를 달자면 얼마든지 달 수가 있다. 또 문제점 없는 대책은 없다. 요컨대 대통령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으면 덮어갈 수 있는 문제점도 신뢰를 얻지 못해 불신의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사람이 밉게 보이면 다 밉고(악마효과) 예쁘게 보면 다 예뻐 보이는(후광효과) 심리작용과 같다. 국민사회는 가장 크게 보는 시장이다. 대통령이 좀 맘에 안 들어도 국난 수준의 위기 타개를 위해 시장의 대승적 이해가 필요하다. 아울러 대통령 또한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생각컨대 시장의 이해 변화와 대통령의 자세 변화 중 대통령의 변화가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무작정 ‘바담풍’이라고만 하지 말고, 바람풍을 ‘바담풍’이라고 한 것을 시인해야 된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부덕이다. 대통령은 덕이 없어 고독하다. 대통령의 부덕은 국민의 불행이다.

좌편향 교과서의 ‘함정’

좌편향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은 나라의 기본을 바로 잡는 작업이다. 한데도, 이를 계속 비난하는 좌편향자들이 있다. 이들의 특성은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부인하잖느냐는 의심을 갖게하는 점이다. 사례를 든다. 국민의례는 행사 등에서 국민으로서 갖추는 전례 의식이다. 애국가는 국민의례의 주요 항목이다. 이런데 국민의례가 아닌 ‘민중의례’로 하고 애국가가 아닌 ‘임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진보주의 무늬를 덮어 썼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가 어렵다. 진보주의든 보수주의든 뿌리는 다같은 나라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모순은 끊임이 없다. 개혁 또한 이래서 끊임이 없다. 급진적 개혁이냐, 점진적 개혁이냐도 사안에 따른 문제다. 요컨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이념의 차이보다는 관념의 차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베트남인민공화국에서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진보주의는 19세기말 미국에서 발생했다. 정치 세력화는 1912년 테모드레 루스벨트가 공화당을 탈당, 프로그레시비즘(progressivism) 즉 진보주의를 표방한 진보당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1948년 윌리스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민주당의 트루먼에게 패배했다. 미국의 진보당은 지금도 있으나 쇄락했다. 진보당이 주창한 사회공익을 위한 국가 소임의 확대, 자유방임주의 폐단을 시정키 위한 간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다만 온도차만 있을 뿐 배제하지 않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하고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진보주의자로 볼 수 없는 것은 개혁성 보다는 혁명성을 더 신봉하는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좌편향 교과서의 한 대목을 예로 든다. ‘이승만은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중단되자 곧바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고 했다.(금성출판사·고등학교 근현대사 261쪽) 남북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기술이다. 우선, ‘미·소공동위원회가 1차로 중단됐다’는 것은 오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 의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서울에서 처음(1차로) 열린 것은 1946년 1월이다. 1947년 10월 한국 문제가 유엔에 상정됨에 따라 자동 폐기됐던 것이다. 더욱 날조된 것은 북녘은 단독정부 수립을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추진한 사실을 간과한 점이다. 그해 2월17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인민회의’가 구성되어 김두봉을 위원장으로 한 ‘조선민주국가 헌법 제정위원회’가 발족, 헌법 초안의 군중토의가 시작됐던 것이 같은해 4월이다. 이어 1948년 7월9일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제5차 회의를 열어 “전조선이 통일될 때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북조선 지역에서 실시하고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실시한다”고 결의했다. 이렇게하여 같은해 9월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초안을 원안대로 채택, 이튿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범됐다. 좌편향 교과서는 조국 분단을 이승만이 남한만의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수립한 데 있는 것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단독정부 수립을 ‘북조선주둔 소련군사령부’가 추진한 것은 1945년 8월25일 평양에 진주하면서 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학생들은 미래의 주역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그처럼 왜곡된 좌편향 교과서는 옳고,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은 그르다고 맞서는 그들은 무늬만이 진보주의자 일 뿐이다.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남쪽으로 돌리는 북녘사람들 말에 일방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이건 좌편향도 아닌 종북주의로 의심할만 하다. 물론 남북은 화해 협력의 새 시대로 가야한다. 그렇다하여 아닌 것을 맞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제2차 대전에서 미국과 일본은 원수지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도 없는 맹방이다. 그렇다 하여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 공격으로 태평양 함대가 궤멸당한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다. 하와이 진주만에는 ‘그 날을 잊지 말자’는 기념관이 지금도 있다. 역사에는 그때 마다의 시대적 배경이 있다. ‘멸공’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던 6·25 한국전쟁 당시의 구호다. ‘반공’은 정전후의 구호다. ‘승공’은 고도성장을 이루던 때의 구호다. 지금은 대공 관계의 구호가 있을 수 없다. 좌편향자들이 지금의 상황으로 과거를 재단, ‘멸공’ ‘반공’ ‘승공’을 부질없는 이념 투쟁으로 매도하는 것은 시대 배경을 간과하는 착시다. 아니면 이도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다. 오히려 소모적 이념 투쟁을 일삼는 것은 좌편향 교과서를 두둔하는 그들 종북주의자들이다. 친북주의는 인정한다. 그러나 종북주의는 아니다. 국민의례가 아닌 ‘민중의례’를 하고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노래’를 불러서 뭘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좌편향 교과서에는 무서운 함정이 깔려 있다.

“은행이 무섭다”니

그는 은행의 빚 독촉을 받았다. 집 살 때 떠안은 빚이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3천만원이다. 벌집 같은 다세대 주택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가족과 더불어 사는 삶의 보금자리다. 여러 달 연체된 빚 독촉이 아니다. 매월 말일에 입금시켜야 할 것을 넣지 못한 지 불과 닷새가 지나니까 급하게 재촉하는 은행 직원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한데, 그에게는 엉뚱한 고민이 생겼다. 이자가 갑자기 4만원 가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10%를 넘어선 연유이지만, 그에게는 월급에서 거의 하루 일당 가까이 해당되는 금액인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여 처사촌 동서에게 하소연했다. 그런데 그 동서는 “그런 걱정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나는 거덜날 지경”이라고 되레 푸념하더라는 것이다. 처사촌 동서는 자그만한 공장을 하면서 빌려쓴 은행빚이 만기도 안 됐는 데 원리금 상환 독촉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은행들 입장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달러 가뭄에 목말라 있다. 유동성 관리에도 신경이 곤두서 있다. 자체적인 자금 조달을 위해 이자율을 경쟁적으로 올린 은행채 발행에 힘쓰는 데도 팔리질 않는다. 고금리 예금 신상품을 내놔도 인기가 없다. 은행들도 갚아야 할 빚이 많다. 은행도 몸이 단다. 대통령은 ‘은행이 살려야 할 기업은 살려 흑자도산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13일 라디오 정례 연설에서 그같이 말했다. 그러나 은행들 반응은 시큰둥한 것 같다. 대통령 ‘말씀’으로 신용경색이 풀릴 조짐은 없다. 원론적인 ‘말씀’보다 중요한 것은 물꼬를 트는 팩터(factor)에 있다. 예컨대 유럽이나 미국은 정부가 은행간 거래에 지급 보증을 설 움직임을 보인다. 은행의 대외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런데 한국 정부는 “아직은 아니다”라며 타이밍을 놓쳐간다. 말만 앞세우는 말은 아무리 좋아도 공수표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던 날 주가가 오르고 환율이 떨어진 것은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에 대해 공조체제를 갖춘 데 기인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연설하자마자 주가가 오르고 환율이 떨어졌다”고 말한 것은 청와대 발표다. 그같은 발표는 현실 인식의 미흡을 드러내는 점에서 심히 걱정된다. 신용경색을 가져온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이긴 하나, 기왕 이렇게 된 상황에서 위협적인 것은 외적 요인보다 내적 요인이다. 주택담보 대출은 300조원이 넘고 가계대출은 500조원이 넘는다. 미국의 경제위기는 주택담보 대출의 파탄에서 시작하여 지금 신용카드 대란으로 이어졌다. 한국도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 같은 수순으로 갈 공산이 많다. 가계의 채무 건전성 지수가 위험 수준인 80 아래로 떨어져 75.1이라는 것은 한국신용정보연구소의 분석이다. 은행에 집을 잡혀 돈을 빌려쓴 집값은 떨어지는 데 비해 이자는 올라가고, 벌이는 신통찮아 가계빚 또한 늘어만 가는 것이 서민층 생활이다.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 대출금 상환 독촉을 받았다는 그 사람도 모자란 생활비를 신용카드 서비스를 조금씩 빼내어 때우고 있다. 그렇다고 돈이 따로 생기는 것도 아니여서 카드 대금은 돌려 막기가 일쑤다. 하다하다 안 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의 처사촌 동서 되는 사람의 공장은 제품이 안 팔려서 은행돈을 갚지 못한다. 더러 팔려서 받은 어음은 부도가 나기도해 운전자금이 돌아가지 않아 흑자도산의 지경인 것이다. 그와 그의 처사촌 동서만이 이런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널려있는 것이 그와 그의 처사촌 동서같은 사람들이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온갖 경제논리가 쏟아져 나온다. 온갖 말이 다 나오지만 그와 그의 처사촌 동서는 그런 어려운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서민층의 생각이 거의 다 이렇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일거리며 일터가 있어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 잘난 이들의 그 많은 경제논리가 이를 풀지 못하는 것을 서민층은 되레 이상하게 여긴다. 일거리며 일터는 일자리 만들기, 장사가 잘 되는 것은 내수진작으로 요약된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지금의 위기를 타개코자 한다면 ‘좌고우면’하면서 갈팡질팡하기 보다는 목숨을 걸고 몸을 내던져야 한다. 수도권 규제를 풀어 재벌기업의 50조원대 투자를 유발케하는 것은 그같은 결단이다. 서민층이 은행을 무서워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은행도 살기가 어렵다. 그와 그의 처사촌 동서는 “은행이 무섭다”고 한다. “은행에서 전화만 걸려와도 가슴이 철렁한다”고들 말한다. 문제는 그들만이 그러는 게 아닌 데 있다. ‘은행이 무섭다’는 말은 그 책임이 은행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에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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