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에 지역별로 모이던 때가 있었다. 장정들이 읍·면에 모이면 마을별, 시·군에 모이면 읍·면·동 별로 무리를 짓곤 했다. 평소 알고 지냈던 사이가 아니어도 같은 마을, 같은 읍·면·동 출신이란 것만으로도 신뢰의 유대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어 도청 소재지에 모이면 시·군별로 친근감을 갖다가, 논산 제2훈련소에 입대해서는 시·도별로 뭉치곤 했다. 이 같은 지역 소속감이 향토애다. 외국 땅에서 어쩌다가 보는 태극기에 느낌이 새로워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국가 소속감의 나라 사랑이다. 지방자치제 이후 지역이기심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원래 지역이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지방자치제다. 다만 유의할 대목은 있다. 나의 지역이기를 위해서는 남의 지역이기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지역이기심을 가져도 닫힌 이기심이 아닌 열린 이기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향토애는 고향(故鄕)의 정서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고향을 고리(故里), 고산(故山), 고원(故園), 고토(故土)라고도 한다. 고향에 관한 속담이 많다. 그중 이런 게 있다. ‘속담에 고향을 떠나면 천(賤)하다 하였으니, 네 설혹 수궁에 들어간들 무슨 부귀를 일조에 얻을 쏘냐’, 이는 작가 미상의 옛 소설 ‘토끼전’에 나오는 말이다. 토끼가 남해 용궁에 미혹되어 갔다가 용왕의 병약으로 간을 빼앗길 뻔 해 기지로 살아나왔다는 고대문학이다. ‘별주부전(鼈主簿傳)’이라고도 한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이다. 성장의 기억이 담겼다. 그 같은 기억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아름답게 기억된다. 조건 없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삶의 되새김 마당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고향산천을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시골에 더 많이 살았던 시절의 얘기다. 시골보다 도시에 더 많이 사는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산천이 보기 드문 고향이 많다. 그러나 예컨대 시골의 길목이든 도시의 길목이든 고향 길목에 서린 정서는 다를 바가 없다. 산간벽지, 갯마을이나 대도시, 서울이나 다 사람에 따라 갖는 내 고향이다. 산업화시대를 넘어 정보화시대다. 많이들 나가 산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다르고, 아버지의 고향이 다르고, 아들 딸의 고향이 다르기도 하다. 이도 세대 차이다. 귀성은 원래의 뿌리를 찾는 것이며, 그 같은 뿌리는 대개가 농경문화와 관련된다. 이리하여 전래의 명절에 시대생활이 낳은 귀성 풍속도가 가미된 신문화가 명절귀성인 것이다. 서구화된 현대생활은 부득이한 개인주의의 변모를 가져왔다. 대가족제의 핵 분열은 필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명절귀성이 있으므로 서구화 된 가운데서도, 한국적 발견의 차별이 가능하다. 명절귀성을 부럽게 보는 외국인들이 적잖다. 국어대사전은 귀성을 가리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혈연·지연의 귀소 본능이다. 대이동이다. ‘1천만의 이동’, ‘2천만의 이동’이라고도 한다.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자연 발생적 현상이다. 가고 오는 길이 순탄한 것도 아니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지경도 있다. 그래도 가족 일행의 귀성은 그때마다 가슴 설렌다. 뿌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를 낭비로 보는 사회 일각의 시각은 당치 않다. 길바닥에 태우는 기름이 약차고, 선물에 드는 돈이 약차고, 연휴로 노는 손실이 약차이긴 하나, 이는 확대재생산을 위한 간접투자의 생산비다. 현대생활의 정서적 윤활유이기도 하다. 고향을 찾는 심성엔 티가 없다. 명절귀성의 대이동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반대로 만약 명절귀성이 없었다면 현대인의 생활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부모를 찾고, 차례를 올리고,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을 찾는 것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좋은 성찰의 기회다. 자녀에겐 더 할 수 없는 체험적 가정교육으로 소중하다. 고향 땅은 또 맘속에 침전된 그간의 때를 씻어준다. 오는 26일 설을 전후한 연휴를 앞두고 있다. 귀성행렬이 시작된다. 고향에 간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다른 건 더 생각하거나 비유할 게 못된다. 정작 행복하지 못한 것은 고향을 잃었거나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설을 서럽게 여길 이유는 없다. 불행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찾는 고향도 있지만, 맘속 고향도 있다. 맘속 고향에도 부모가 계시고,살던 집이 있고, 산천이 있다. 나도 맘속 고향의 귀성을 해야 한다. 고향은 찾든, 맘속에 두든 어머니의 품과 같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임양은 주필
2009-01-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