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부두 울며 새던 눈보라 치던 그날 밤/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이 홀로/한이 맺혀 설움에 맺혀 남한땅에(후략) 625전쟁 당시 유행한 흥남철수 가요의 노랫말이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린 것이 14 후퇴다. 그중 흥남철수작전은 군함도 아닌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7천600t)에 국군과 유엔군 말고도, 남쪽을 향해 무작정 쏟아져 나온 북녘 피난민 10만여명을 태워 남하했다. 이때 미군을 설득, 피난민을 정원 외로 승선시킨 김백일 장군은 이듬해 4월 아깝게 전사했다. 중공군의 추격으로 시각이 급박했던 흥남철수는 밤중 아비규환의 수라장을 이뤄 바다에 빠졌거나 배를 놓친 피난민 또한 적잖았다.내가 겪으며 보고 들은 625 이야기를 어떻게 이 좁은 지면에 다 쓸 수 있으리, 흥남철수는 전쟁이 빚은 한대목 참상의 얘기일 뿐이다. 숱한 생명이 삼대처럼 쓰러져 죽었거나 다쳤다. 다음의 자료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내용이다. 우선 국군 전사자가 14만7천여명에 실종자가 13만1천여명이며, 부상자가 70만9천여명이다. 국군의 전체 손실 인원은 98만7천여명이다. 민간인 피해는 피학살자 12만8천900여명, 사망자 24만4천600여명, 부상자 22만9천600여명, 피랍자 8만4천500여명, 행방불명 33만300여명, 의용군 강제 징집 40만여명, 경찰관 손실 1만6천800여명 등 140만여명이다. 국군과 민간인을 합친 남쪽 인명 피해가 도합 230만여명이다. 유례 없는 625의 동족상잔인명 피해는 북쪽 역시 크다. 인민군 52만여명이 죽고 40만6천여명이 다쳤으며, 민간인 손실은 200만여명으로 저쪽의 인적 손실은 모두 292만여명이다.한편 참전 16개국의 유엔군은 전사 3만5천여명, 실종 1천500여명, 부상 11만5천여명으로 약 15만명의 손실을 냈다. 중공군의 인적 손실은 모두 합쳐 약 90만여명이다. 결국 남북 간 우리 동포의 인적 손실은 522만명이고, 유엔군과 중공군을 합치면 627만명의 손실을 냈다. 이만이 아니다. 1천만 이산가족을 낳았다. 전쟁통에 한반도 산하가 폐허가 되고도 이런 참극을 빚었다.이의 장본인이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다. 전쟁 직전의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하면 남쪽 군대는 10만5천752명인 데 비해 북쪽은 약 곱절인 19만8천380명이다. 무기는 북녘이 더 월등했다. 예컨대 저들은 T-34 전차가 232대인데 이쪽은 한 대도 없었다. 항공기 역시 남쪽은 22대인 데 비해 북쪽은 211대나 됐다. 당시 내각수반이며 인민군최고사령관인 김일성은 자신을 위원장으로 한 군사위원회를 만들어 전쟁 중 법령에 버금가는 군사위원회 정령을 수시로 발표했다. 1 남조선 청년 의용군 징발 2 남조선 주민 노력 동원 3 양곡 등 병참물자 현지 동원 4 서울로 수도 이전을 위한 건물 및 주택 징발 5 남조선 우익 및 중간파 체포 등은 군사위원회의 남조선 점령 시행계획으로, 남침을 하면 바로 통일이 될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저들은 625를 남조선 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난 1935년생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은 내가 태어나기 불과 16년 전 일이다. 이런데도 31 운동을 말하면 먼 역사 얘기로 들리곤 한다. 1950년 6월25일 발발, 1953년 7월28일 휴전된 625전쟁은 올해 61주년이 된다. 반세기에서도 10여년을 더한다. 내가 31 운동을 실감 못하는 터에 하물며 전후 세대가, 21세기로 세기를 달리한 지금 625를 알 리 없을 턱은 당연할지 모른다. 증언한다. 평양정권은 625를 일으킨 전범 집단이며, 저들이 수령으로 받드는 김일성 주석은 동족상잔 원흉의 전범자란 사실을 알아야 된다. 물론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선 웃으면서 대화도 하고, 협력도 하고, 왕래가 있어야겠지만 근본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잊어선 안된다. 호국보훈의 달이 슬픈 이유625가 나던 해 난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인공(인민공화국) 치하 3개월 동안 세포회의다, 노력 동원이다, 인민재판이다, 현물세다 하는 것을 경험했다. 하마터면 의용군으로도 끌려갈 뻔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으면 왠지 눈물이 자꾸 난다. 죽어간 동네 사람들이 생각나 눈물이 나고, 호국영령들이 생각나 슬프다. 이토록 목숨 바쳐 지킨 나라의 벼슬자리에서, 나쁜 짓 해먹는 벼슬아치들이 들끓어 또한 슬프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슬픈 것은 625가 점점 잊혀가는 사실이다. 세월이 무섭다. 북이 노린 심리전이 바로 세월이 가면 잊는다는 점이다. 제2의 625 참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미 비싼 대가를 치른 625를 잊지 말아야 한다.임양은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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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은 본사 주필
2011-06-01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