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놀자]<30>가평문화원, 그까이꺼 재즈

여기 사람 아니면 어디에 붙여야 잘 보이는지 몰라요! 행사 홍보 걱정은 기우였다. 언제 연락이 되었는지 다양한 연령층의 20여명이 가평시 곳곳을 뛰어다니며 포스터를 붙인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른 이보다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마냥 모두 열심이다. 대학로 소극장 주변처럼 여기저기 초록색 테이프로 붙여진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순식간에 포스터를 붙인 이들은 한국 생활음악협회 가평지부 회원들이다. 가평에는 생활음악협회 뿐 아니라 문학회와 사진동호회 등 자생적으로 구성된 동아리가 많다. 그들이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서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가평문화원(원장 조정현)의 가장 큰 자랑이다. ■ 내가 좋은 것만 하나, 마당쇠도 해야지 가평 생활음악협회는 다른 곳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협회 소속 17개의 음악동아리가 그것이다.고등학생부터 70대의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색소폰, 난타, 기타, 밴드 등 장르 역시 다양하다. 가평하면 떠오르는 재즈라는 음악적 이미지에 걸맞게 이들 역시 단순히 취미 생활 수준의 동아리로 접근하면 큰 코 다칠 만큼의 실력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다. 특히 연세 지극하신 어르신이 많은 색소폰 동호회는 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폐활량을 자랑한다.각 동아리 단원들은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홍보에서 뒷정리까지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처럼 일을 가리지 않고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모든 회원의 공통분모다. 세대별 장르별 다양한 음악 동아리가 오미조밀 모여 있어 서로의 공연에 협주가 가능하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직장인과 학생임에도 매주 연습이 가능한 지 묻자 아이고, 얼마나 기다리는데요.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어요. 나는 이거 안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몰라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정택원 생활음악협회 가평지부 사무국장은 생업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며 각 동아리 모임이 가진 큰 힘을 강조한다.가평문화원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동아리가 있다. 가평지역을 글로 노래하는 글두레 문학회다. 가평 지역을 시라는 문학적 언어로 다듬어 온지 18년째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노래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작품으로 가평을 담아 놓듯이 우리는 글로 가평을 기억하죠. 가평에서의 추억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나요? 모두들 실력도 있으시지만, 작품활동도 정말 열심히 하세요. 김주린 글두레 문학회 회장의 말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것은 탄탄한 글솜씨뿐 아니라 가평과 함께한 그들의 삶과 애정이 고스란히 서려있다. 회원 중 소영숙 시인의 작품 하얀 고무신은 노래로 만들어져 재즈보컬리스트의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소 시인은 음악 가득 띤 얼굴로 누구보다 열심히 박수치며 공연장을 지켰다고. 문학회 회원 역시 하나같이 자신의 글이 노래가 된 것처럼 반색하며 내년에도 또 만들어 주나요? 내년엔 내 시가 뽑힐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시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은 문인에게 색다른 경험이자 또 다른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열정적인 각 동아리의 활동과 장르가 다른 단체간 유기적 협업은 가평 문화원이 자랑하는 보석이다. ■그까이꺼 재즈! 재즈의 탄생배경은 삶의 예술적 투영입니다 가평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주민에게 재즈는 어렵고 복잡한 음악 장르일 뿐, 내 삶의 이야기가 곧 재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난 2012년 10월 27일 가평 구역사에서 열린 그까이꺼 재즈! 행사는 음악이라는 공통된 단어로 묶인 이들에게 재즈 역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역임을 자연스럽게 알려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당초 가평 구 역사앞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운좋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2010년 이후 열린 적 없던 가평 폐역사가 열렸다. 프로그램은 가평 주민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과거의 기억과 그것에 연관된 내 생애 단 한 곡을 접수받아 라디오 공개방송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이스크림통이 사회자석, 표 파는 곳은 음향 부스, 대기실은 전시장으로 폐역사 내부의 모든 물건이 고스란히 공연장이자 전시장이 됐다. 카페분위기로 꾸며진 역사 안에는 가평역의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진과 동영상이 펼쳐졌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부터 경춘선의 마지막 운행모습까지, 마을 주민 뿐 아니라 먼 길을 찾아 달려온 사람들에게도 하나쯤 가지고 있던 경춘선과의 인연을 끄집어내게 했다. 폐역사 내부에 들어간 주민들은 과거 이야기로 들떴고, 사연 소개와 음악 연주에 주민들은 진짜 라디오에서 사연이 소개되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발그레해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춘기 소녀가 됐다. 이날 방문한 코레일의 부역장 역시 신 역사에서도 이런 공연 했으면 좋겠다. 비가오니 더 운치있고, 이 분위기, 마치 재즈카페 같은데요라며 그간의 우려를 씻어내며 기뻐했다.공연을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만들고 즐기며 함께 박수쳐주는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까지 생생한 에너지를 이끌어냈다. 이날 행사는 가평문화원을 창구로 생활음악협회와 글두레 문학회, 코레일과 그림마을, 가평군청, 문화집합36.5가 소통하고 네트워킹한 산물이다. 저희는 하나도 한일이 없어요. 저희가 전문가의 손길로 혜택을 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이분들이 모든걸 만들어 가셨고, 저희는 서포트한 모양이 되었네요. 문화집합 36.5의 기획자들은 문화원과 주민들의 소통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말한다. 조정현 문화원장은 시작은 문화원이었지만 이제는 주민과 각 동아리가 함께 어울려 스스로 너무 잘해냈다며 가평 폐역사를 박물관으로 만들고 레일바이크도 설치한다는 등 많은 말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 많은 주민이 함께 사용하고 상설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또 아직은 동아리 사람들이 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대관이나 객석을 가득 채워야 하는 걱정 없이 정말 즐겁게 공연하고 작업할 수 있는 상설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통과 네트워크를 통한 대안적 문화공간 창출, 그리고 지연 주민이 주체가 되어 즐거운 삶을 이뤄가는 과정까지 제도권에서 해야 할 일이 문화원에서 해냈다. 행사가 끝난 후 그냥 우리가 하는 일들이 즐겁다며 조촐하게 선물한 지역 상품권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주변 식당으로 가는 주민들을 보면서 끈끈한 지역 사랑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글_유쾌한 책상머리

‘내 손안에’ 펼쳐진 경기도 문화예술

경기도의 다채로운 문화예술 현장과 인물,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엄기영)은 문화예술 전문영상 무료 애플리케이션 매직아이(Magic Eye)를 출시하고 본격 운영한다고 19일 밝혔다. 매직아이는 대중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시간과 장소애 구애받지 않고 쉽고 간편하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새로운 창구다. 명칭은 Museum(박물관미술관), Arts create(문예창작), Ggcf(경기문화재단), Identity(경기문화 정체성), Civic Culture(문화시민) 등 문화재단의 2013년 비전과 미션을 상징하는 영단어의 각 이니셜에 눈을 뜻하는 Eye를 합성한 것으로, 마법처럼 자유자재로 손바닥 안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스마트폰을 활용한 문화예술서비스 확대를 위해 재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무처와 경기도박물관ㆍ경기도미술관ㆍ백남준아트센터 등 산하 9개 운영 문화예술기관에서 제작축적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문화재단 전문영상채널 구축을 준비해 왔다. 문화재단과 도 대표급 문화예술기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 콘텐츠로 모은 것이다. 이후 지난 1월 첫 번째 단계로 안드로이드용 매직아이 애플리케이션을 먼저 개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어 지난 15일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까지 출시함으로써, 스마트폰 기종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매직아이에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재단 사무처와 도내 각 문화예술기관에서 개막했던 다양한 행사, 전시, 인터뷰, 유명 작가와 전문 강사의 강연 영상 등을 선보인다. 또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의 원형을 기록ㆍ보존하고 그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제작한 경기문화 재발견시리즈 등 130여편을 제공하고 있다. 문화재단은 앞으로 매주 새로운 영상물을 업데이트하고, 신규 영상 콘텐츠를 기획ㆍ제작해 문화재단 문화포털(http://www.ggcf.or.kr)은 물론 네이버, 다음, 유튜브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비상하는 에듀클래스]<25>에필로그_문화예술교육의 철학과 실행법 확립해야

#1.파리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1층.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어린이들이 지도교사의 지휘에 따라 한 유명 근대미술 작품 앞에 조용히 앉아있다. 지도교사는 어린이들에게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화 작품에 대한 작가와 작품 등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그림 속 개구리는 어디있나, 초록색으로 칠해진 곳은 어디인가 등의 질문을 잇달아 던진다. 어린이들은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눈높이에 보이는 그림 속 이미지와 색을 가리키며 조용히 답한다. #2. 영국 런던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입구.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개관 시간을 30여 분 앞뒀음에도 우산을 든 관람객의 줄이 100m를 훌쩍 넘어섰다. 유럽회화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장품 때문에 관광객도 제법 있는 듯하지만, 현지인과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나다를까. 미술관에 들어간 (학생처럼 보이는 그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전시장 곳곳의 의자에 앉아 한 작품을 주시하거나 전시작품을 펜으로 모사하는 등 면학 분위기다. 마냥 부러웠던 외국의 문화예술교육계 한 단면이다. 당시 고작 1~2명의 교사가 30~40명의 어린이를 두명씩 짝지어 세운 뒤 일렬로 30여분만에 미술관을 휙 돌고 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우리네 풍경이 오버랩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특별한 기획전이 개막하는 날이 아님에도 개관 전부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대학생과 관광객 등을 바라보며 썰렁한 우리네 다양한 예술공간을 떠올리며 부러움에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그것은 어린이들이 미술관을 미술관답게 관람하는 태도를 갖추고 세계적 명화 앞에서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감상하는 모습이었다. 미술관이 전공자와 성인에게 이른 아침부터 줄 서서라도 입장하고 싶은 장소이자 배움의 터전으로 인식한다는 의식 그것이었다. 한 마디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탄탄한 기반이 배 아플 정도로 부러웠다. 도대체 저런 교육 풍경은 어떻게 조성할 수 있는 것인가, 성인의 머릿속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저런 인식을 심을 수 있는 것인가. 지난해 6월 시작한 본보 연중 기획 비상하는 에듀클래스는 그 철학을 찾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종착역이다. 본보 시리즈 기획 기사는 문화예술교육에 희망을 담자는 목표로 20여 차례 이상 경기도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다니고 관계자들과 더 나은 교육환경과 방법을 모색했다. 이 긴 여행의 출발에 앞서 열린 자문위원 회의에서 자문위원단은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현실은 운영 철학의 부재 및 제반 여건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기획시리즈가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도출해내고 예술강사는 물론 정책입안자 등 관계자들이 문화예술교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도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이미 철학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철학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이 진행중이었다. 지난해 한여름 문턱에서 찾은 부천 대안공간 아트포럼 리는 학교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했다. 수업 시간만 정해져 있을 뿐, 교과 과정과 주제ㆍ평가 점수 등은 없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며 치유되고 성장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도 이 철학은 공통분모였다. 수원미술전시관이 토요문화학교로 선보인 새싹비빕밥이 그러하다. 맛있는 예술재료를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놀이예술을 즐기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프로그램의 기반이었다. 차상위계층 가정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하늘꿈 캡틴플레닛의 대신정원, 시골 마을에 살며 방과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연극과 각종 문화예술활동을 가르치는 예술문화단 놀패의 몸 열고 마음 열고, 줄어든 또래 친구들과 폐교에서 신나게 즐기는 창문아트센터 소풍가는 날-우리동네 락! 락! 락!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문화예술교육이 공통된 교육 철학을 갖고 있었다. 문화예술은 자유로운 창의성과 자신 안에 가둬버린 나를 이끌어내는 도구이며, 예술가와 교사 등은 아이들 그 길을 스스로 밟을 수 있도록 안내판 역할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화예술교육과 철학은 아이들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센터의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을 통해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도드라진 특징을 갖는 특정지역 학습자들에게 지역주민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성과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교육도 진행됐다. 수원 화성동의 주민으로 구성된 못골문화사랑이 결혼이주여성과 중도입국이주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소통과 지원을 위해 진행한 다문화요리가 그것이다. 또 화성 반월동 자율방범순찰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빙빙돌자, 춤으로 동네한바퀴도 있었다. 춤을 배우며 활기찬 중년의 삶을 찾은 어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문화예술교육 현장이었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역차별 대상이기도 한 성인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잃어버린 삶의 가치와 열정을 얻을 수 있는 지 드러냈다. 이처럼 성인과 어린이들은 그 교육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된 철학이 존재했고 가치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통된 교육 철학처럼 현장의 예술가와 교사들이 하나같이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있었다. 교육 매뉴얼 제작이 그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이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면서 각각의 결과를 낳고 있는 시점에서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정리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장기간 임상실험 프로젝트처럼 각종 경험과 사례, 효과 등을 기록함으로써 철학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 기반을 확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제 비상하는 에듀클래스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도출된 각종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우리나라만의 철학과 방법을 정리하는 근간이 되기를 바란다. 프랑스와 영국 등 세계 각 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부러워하지 않는 그 시작이 되기를 응원해 본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그림 읽어주는 남자]정정엽의 ‘도시-나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얘기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일제히 저항하듯 당신의 눈을 점령해 들어왔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정엽은 신도림과 구로 사이의 전철역 주변에서 느닷없이 그것들과 마주쳤다. 전철을 타고 수없이 오가며 반복했던 순간들이었으나 그날은 예기치 못한 순간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한 날 한시를 작정한 듯 그에게 달려들었다. 익명의 사람들처럼 서 있는 나무들의 존재! 그는 숨이 턱 막혔다. 그것들은 기찻길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고, 도시 생태의 한쪽 귀퉁이에서 미세하게나마 겨우 존재의 한 가닥을 드러낼 뿐 하등의 실존적 존재가치를 갖지 못했다. 설령 지워져도 그만이었고, 그림자에 묻혀도 그만이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그것들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싹둑 잘려나간다 한들 눈 하나 꿈쩍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생의 반란을 일으키듯 정정엽의 눈에 파고들었다. 황폐한 도시 속의 나무들은 그렇게 눈에 박힌 채 시간을 보냈다. 2001년, 인천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자 그는 오랫동안 깊게 각인되었던 그 나무들을 화폭에 옮겼다. 눈에 박힌 그것들을 꺼내 배경 없이 오직 그들의 모습만을 그렸다. 어떤 것들은 한쪽의 어깨가 꺼졌고, 어떤 것들은 배가 옴폭 뜯겨나갔다. 어느 것 하나 불구 아닌 것이 없었다. 봄여름가을 수시로 절지당한 몸들은 모두 지체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캔버스 화면을 독차지한 채 모노드라마를 펼쳤다. 나홀로 주연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까지 그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들은 아우성을 쳐댔다. 매연과 소음, 온갖 먼지들과 가위질로 시커멓게 멍이 들어서 나무의 몰골은 온데간데없이 흡사 유령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그들이. 오랫동안 여성주의 미학으로 한국사회의 여성문제를 성찰해 온 정정엽에게 그들 그 나무들, 그 유령의 실존들은 이 사회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새 천 년의 시대령을 넘긴 2000년에도 이름 없이 사라지는 여성들이 태반이었고, 가정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아니 한국사회 전반에서 여성폭력은 일상이었으니까. 나무에게 가해진 소외의 폭력이야말로 여성폭력과 같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자들의 세계일지 모른다. 다수가 진리인 세계에서 소수는 설 자리가 없다. 언제부터 민주주의가 경쟁과 다수자들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민주ㆍ인권ㆍ평화가 하나의 철학이라면 소수를 위한 예의는 기본이어야 한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나에게 딱 맞는 디지털TV를 찾아라

지난해 말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데다 최근 가전제품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면서 꾸준히 디지털TV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종류와 기능이 많아 어떤 제품이 좋은건지 고민이 많다.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한국소비자원이 디지털TV 품질 비교정보 자료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40인치대 LED TV 중 3D 기능을 갖고 있는 스마트TV 6대(고가형 3개, 저가형 3개)와 100만원 이하의 일반 디지털 TV 5대를 대상으로 영상품질, 음성품질, 사용 편리성 등을 시험ㆍ평가했다. 200만원대 고가형 스마트TV 중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제품의 품질이 우수 평가를 받았지만 소니는 보통에 그쳤다. PC와의 정보 공유 등 스마트 기능의 사용 편리성도 삼성과 LG는 매우 우수를 받은 반면 소니는 낮음 평가를 받았다. 다만 삼성은 3D 안경 사용이 다소 불편하고, LG는 음성 품질이 한 단계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100만원대 저가형 스마트TV 중에서는 LG의 영상품질이 가장 우수했다. LG 제품은 평가에서 우수를 받으며, 보통을 받은 삼성과 소니 제품을 앞섰다. 스마트 기능 역시 매우 우수로 삼성ㆍLGㆍ소니 3개 제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100만원 이하 일반 디지털TV 중에서는 삼성ㆍLG전자 제품이 모든 항목에서 보통 이상으로 평가받아 전반적으로 품질 측면에서 우수했다. 영상 품질 측면에서는 TG삼보 제품이 삼성ㆍLGㆍ오리온정보통신ㆍTG삼보ㆍ하이얼 제품 중 유일하게 영상품질 우수, 관능평가 매우 우수를 받았다. 이 제품에는 절전 기능과 외부 동영상 파일 재생 등의 부가기능은 없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주로 뉴스, 드라마를 시청하는 소비자라면 일반 디지털TV를, 3D 영상 시청, 인터넷 검색, 다른 기기와의 정보 공유 등을 사용하는 소비자라면 스마트TV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어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자신에게 필요한 사양과 기능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핀 뒤 예산에 맞는 디지털 TV를 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디지털TV 품질 비교정보는 공정거래위원회 스마트컨슈머 홈페이지(www.smartconsumer.go.kr) 내 비교공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한약재 ‘초오’ 잘못먹었다간… 마비증세ㆍ생명위험도

지난해 30대 한의원 원장, 직원 등 4명이 한약재 초오를 넣고 조제한 약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해 나눠 마셨다가 복통과 마비 증세를 호소했다. 이들은 저혈압, 부정맥 등의 증상을 보였으며, 이들 중 가장 많은 양을 마신 한의원장은 의식을 잃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11년에는 70대 노인이 신경통에 좋다며 시장에서 구입한 초오를 먹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약재로 사용하는 초오를 잘못 섭취해 의식을 잃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초오는 소백산, 태백산, 대암산, 설악산, 광덕산 등에서 흔히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 초오속 식물의 덩이뿌리로서 흔히 투구꽃의 뿌리로 알려져 있다 초오는 독성이 강한 한약재인 부자에도 포함돼 있으며, 아코니틴(aconitine), 메스아코니틴(mesaconitine) 등이 함유돼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사약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초오에 중독되면 입과 혀가 굳어지고 손발이 저리고 비틀거리며 두통, 현기증, 귀울림, 복통과 구토, 가슴 떨림 증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한약재는 질병 치료 등에 사용하는 의약품으로, 재래시장 등에서 민간요법에 따라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거나 섭취하면 안 된다. 신경통과 관절염 등의 치료를 위해 섭취할 때에는 한의사 등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식약청 관계자는 약재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부작용 사례 등에 대한 홍보활동을 강화하겠다며 불법판매 근절 등 한약재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법률플러스] 손해배상액 예정 초과분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란 계약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손해배상에 따른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하기 위해 미리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정해 두고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채권자가 이 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계약 당시 당사자 사이에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는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입증의 곤란을 덜고 분쟁의 발생을 미리 방지해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채무자에게 심리적 경고를 함으로써 채무의 이행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당사자 사이에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약정이 있는 경우 채권자가 예정액을 초과하는 실손해를 입증하여 채무자에게 실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해 대법원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증명의 곤란을 덜고 분쟁의 발생을 미리 방지해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등의 목적으로 규정된 것이고, 계약 당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경우에는 다른 특약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입은 통상손해는 물론 특별손해까지도 예정액에 포함되고 채권자의 손해가 예정액을 초과한다 하더라도 초과 부분을 따로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10.7.15. 선고 2010다10382 판결 참조), 채권자가 예정액을 초과하는 실손해를 채무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있다. 한편, 대법원은 계약 당시 당사자 사이에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약정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액에 관한 것이라면, 그 계약과 관련된 불법행위상의 손해까지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약정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대법원 1999. 1. 15. 선고 98다48033 판결 참조)고 판시하였는 바, 당사자 사이에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약정만이 있었던 경우에는 채권자는 채무자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해 채권자가 입은 실손해를 입증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문의 (031)213-6633 박순영 법무법인 마당 변호사

명절로 깨진 신체리듬, 편안한 수면으로 되찾는 법

사흘이라는 짧은 설 연휴 탓인지 명절 후폭풍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다. 남자들은 장거리 운전으로, 여자들은 명절 음식 준비로 지쳤지만 피로를 회복할 시간도 없이 일상생활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편안한 수면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일상 업무 등에 지장을 주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강한 수면법을 소개한다. ■잠들기 전 음주ㆍ흡연ㆍ카페인 금지 흔히 잠이 오지 않을 때 술을 마시는 경우 많다. 술을 마시면 쉽게 잠들 수 있지만 깊은 잠에 들지 못하게 되고, 이뇨작용으로 밤 중에 화장실을 가게 돼 숙면을 취할 수 없다. 담배의 니코틴 성분 역시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을 흥분시키고 뇌를 자극해 깊게 잠을 잘 수 없게 한다. 커피, 홍차 등 카페인이 든 음식은 수면을 유도하는 신경 전달 물질인 아데노신의 작용을 억제하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는 피해야 한다. ■잠잘 때는 오른쪽 옆으로 눕자 잠을 잘 때는 정면을 보고 눕는 것보다 오른쪽 옆으로 누워 무릎을 구부린 자세가 숙면에 도움이 된다. 또 오른쪽으로 눕는 것이 간과 폐 기능을 좋게 하는 역할을 한다. ■햇볕을 자주 쬐자 멜라토닌은 수면을 촉진시켜 주는 호르몬으로, 어두운 밤에 분비되고 낮에는 분비가 억제된다. 낮에 충분한 햇볕을 받지 못하면 멜라토닌이 과다 분비돼 밤에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줄어들게 된다. 또 햇볕을 자주 쬐면 몸에 활력을 주는 세로토닌이 분비돼 우울증 예방에도 좋다.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자 취침시간과 기상 시간이 불규칙하면 생체리듬이 깨져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평소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몸을 적응시키면 취침시간에 잠이 쉽게 온다. ■손발은 따뜻하게, 물은 많이 마시자 손발을 따뜻하게 하면 혈액순환이 원활에 숙면에 도움이 된다. 수면양말을 신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잠들기 전 혈액순환과 긴장 이완에 좋은 족욕을 하는 것도 숙면을 취하는 방법이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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