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슬로푸드 운동 이야기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이탈리아 로마의 한 유서 깊은 스페인 광장에 첫 체인을 론칭하면서 카를로 페트리니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면서 시작됐다. 본능적 쾌락인 단맛과 기름진 맛으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패스트푸드가 전통 식탁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에 직면하면서 슬로푸드 운동은 구체화됐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퍼뜨리는 가공식품으로 인한 폐해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령이었던 퍼시픽아일랜드 지역 미크로네시아의 경우 주민 90% 이상이 비만이고 80% 이상이 당뇨병에 걸리는 등 매우 비정상적인 신체 변화에 세계의 많은 영양학자들이 주목한 바 있다. 이곳 원주민들의 주식은 전분질의 빵나무 열매나 바나나, 어류였으나 미국식 햄버거나 피자 가게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기름지고 단 음식에 현혹돼 집단적인 대사병에 노출되고 말았다. 맨발로 생활하는 원주민들에게 당뇨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족부병증과 괴사에 의한 절단은 패스트푸드가 지닌 시대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압축성장을 통한 산업화, 세계화와 함께 서구의 가공식품들이 우리 전통의 밥상을 밀어내고 식탁을 점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1997년 일어난 외환위기 이후 햄버거나 치킨, 피자, 도넛 등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이 도시의 요지를 차지하고 외식에서도 육류, 유제품 또는 기름에 튀긴 음식 일색으로 바뀌었다. 각종 암에 의한 사망률과 청소년들의 비만 증가율은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사회적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슬로푸드인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의 발효식품이 있다.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의 식품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마음을 닮아 있다. 이러한 우리의 음식은 자연의 시간에서 얻어진 것이어서 달팽이 철학이기도 하다. 우리 고유의 밥상을 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진정한 슬로푸드 운동이다.

[천자춘추] 시대정신이란?

81년생인 나는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거쳐 공과대학을 나왔다. 1999년 대학에 들어가 바로 변리사 시험을 치르는 등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준비만 했을뿐 ‘사회 그 자체’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2학년이던 시절에 당선된 학생회장이 당시 ‘최초의 비운동권’이라는 것이 화제가 됐고, 축제 때 더 이상 민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나 밴드가 오지 않게 됐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존 롤스의 ‘정의론’ 등을 접할 기회도 없었고 접할 이유도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내가 40대가 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많은 발명가와 사업가를 만나는 변리사 업무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고객들의 사업이 더 잘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언론과 정치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못하면 나라는 후진국이 됨을 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우리 스스로의 ‘철학’을 갖지 못한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달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멘토들로부터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했던 나에게 ‘시대정신’은 멋지긴 하지만 추상적인 단어였다. 시대정신(Zeitgeist)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정신적 경향이라고 한다. 국가를 이루는 사회 구성원들 중 80% 이상이 공감하는 정신이 바로 시대정신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0년대부터의 건국 세대들은 “대한독립만세”, 1960년대부터의 산업화 세대들은 “잘 살아 보세”, 1980년대부터의 민주화 세대들은 “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치며 우리나라를 만들어 왔다. 짧지만 명확한 표어들은 시대정신을 그대로 담아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국민들은 하나가 돼 사회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을 갖고 있을까?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생각을 모아 발전적인 시대정신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건국, 산업화, 민주화라는 큰 산을 세 번이나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그래야 함께 행복할 수 있고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천자춘추] 실효성 있는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도’의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지방세수가 줄어 경기도에서는 상반기 추경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경기도의 성장동력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 일환으로 지역건설산업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지역건설산업은 세수 증가, 부가가치 유발 등의 비중이 높고 연계되는 산업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효과가 매우 크다. 지역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핵심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도의 경우 지역건설산업 활성화와 관련한 정책·제도 추진이 미흡하다. 타 지역산업 보호·육성 정책과 비교해보면 더욱 소외된 실정이다. 2022년 11월 통계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발생한 총 하도급 기성액 25조4천804억원 중 지역업체 기성액은 7조5천947억원으로 29.8%에 불과하다. 서울 59.8%, 부산 51% 등 타 시도에 비하면 경기도는 지역 건설공사에 대한 지역업체 기성율이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역 건설업체의 하도급 참여율을 높여 지역 건설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이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기도와 각 시·군, 산하기관의 관심과 역할, 특히 대형 종합건설업체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하도급 비율을 높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기도나 시·군에서 아무리 지역건설산업 활성화를 외쳐도 지역업체 참여 시 용적률 인센티브 지급, 지역의무공동도급 등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도급 비율을 높이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최근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고임금 현상과 경기 침체로 건설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일부 재무건전성이 저하되고 있으며 민간 건축 공사까지 타격을 받음에 따라 중소건설사들의 경영난이 심각하다. 특히 건설용 중간재·자재 가격과 임금 및 장비대까지 상승함에 따라 중소건설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5월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4월 경기도 고용 동향’을 보더라도 지난달 경기지역 취업자 수는 761만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9천명(0.1%) 증가했으나 건설업은 11.9% 감소해 전 산업 중 최다다. 지역경제가 회복하고 고용이 창출되려면 지역 전문건설업체들이 살아나야 한다. 지역업체 수주 확대를 포함해 지역건설산업 관련 조례·정책도 가다듬어야 한다. 가중되는 수주난에 맞서려면 지역업체 자체의 기술력이나 품질 향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건설산업 활성화를 시장 원리에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경기도 지역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경기도 및 시·군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적극적인 행정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천자춘추] ‘경기여성 DMZ평화걷기’ 후일담

지난 5월20일 파주 임진각평화누리에서 ‘2023 경기여성 DMZ평화걷기’가 있었다. ‘정전 70년, 평화를 향한 경기여성행진’을 슬로건으로 300여명의 참가자들은 6·25전쟁납북자전시관 앞에서 출발, 임진강역 맞은편 경기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 장남교 방향으로 돌아 드나들기를 거듭해 통일대교 남단에 이르렀다. 이곳을 분기점으로 6·25전쟁납북자전시관 앞에서 마무리한 약 9㎞ 거리를 걷는 하루 행사였다. ‘걷기’의 동인은 첫째, 2015년 5월24일 세계 16개국에서 모인 30명의 국제 여성평화운동가들이 당시 북측에서 출발해 통일대교를 넘었던 ‘2015WomenCrossDMZ’다. 2016, 2017, 2018년 전국 또는 국제행사로 이어와 한반도가 생명·평화·희망의 땅이 되기를 열망하는 여성들 행진의 참여 경험이다. 둘째, DMZ를 경계한 지역적 특성과 여성·평화 의제 연결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과제의식에 다양한 경기도내 여성단체 등이 연대하는 경기여성네트워크에서의 공감대 형성이다. 이는 기획, 준비, 참여 대상을 경기도에 집중하는 배경이 돼 2019년 ‘경기여성 DMZ평화걷기’로 연결해낸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의 공백을 거쳐 2022년과 그리고 올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걷기’의 단순함에는 1997년부터 지속된 ‘5·24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와 70년간 머물러 있는 정전협정이 아닌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의 참혹함과 맞닥뜨리지 않길, 항구적인 평화체제 실현을 염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기도 평화안보정책 담론에 DMZ라는 지리적 특수성에 집중해 70여년을 평화안보 이슈로부터 배제됐던 여성의 삶을 주체로 두고 본다면 아주 가까이 나와 내 이웃의 일상이 보일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지뢰 및 불발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탈북민 가운데 여성이, 그리고 기지촌 내 미군 위안부 문제가 경계 넘어 달리 구성되고 일상의 안녕을 위한 정치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이 평화안보정책이며 무엇이 여성평화 의제인가에 대한 지역화 담론은 그래서 현재진행형이어야 하지 않을까? ①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 조례 실효적 조치 마련 ②탈북 여성을 위한 자립 기반 지원 확대 및 경기도 특화사업 확대 ③경기도 여성평화안보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④경기도 지뢰 및 불발탄 피해 여성 전수조사와 지원 근거 조례 마련 ⑤남북 여성 교류 확대를 위한 경기도의 노력과 아시아 여성 평화심포지엄 정례화 ⑥경기여성 DMZ평화걷기 정례화는 이번 걷기 참가자들의 손에 들려 만장처럼 흩날렸다. 그리하여 내년 5월 어느날에는 작은 플래카드의 문구가 온전히 ‘걷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길 기대한다.

[천자춘추] 낯선 풍경이 익숙함이 되기 위하여

함께 살고 있는 아이는 올해로 초등학교 3학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가 주춤해지면서 학교도 대면으로 만나는 행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몇 년 만에 운동회가 열렸다. 초등학교 들어가 처음으로 하는 운동회였고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들뜬 마음으로 참석했다. 운동회의 낯선 풍경 하나는 운동회 진행을 학교 교사가 아닌 레크리에이션 진행 전문업체가 와서 한다는 것과 운동장에 모여 있는 어린이들 중 휠체어를 이용하는 어린이가 보였고 활동지원사들과 함께 있는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두 번째다.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아마 지금 어린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권교육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권은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익숙함은 누군가의 존재와 권리를 억압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어떤 낯섦은 그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장애인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동안 장애인을 학교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 어딘가에 분리 배제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장애,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모습이 낯선 풍경이 아닌 익숙함과 당연함으로 다가올 때 우리의 인권은 한발 더 앞으로 전진한다. 최근 시설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에서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안’ 제정을 두고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021년 9월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공개했고 이번 지원조례 제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는 협약 14조(장애인의 자유 및 안전할 권리)와 19조(장애인 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참여)에 관한 일반논평 5호를 보충하기 위해 제정됐다. ‘탈시설’은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이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적인 지원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며 학교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으면 한다. 존엄한 삶을 위해 우리에겐 더 많은 만남이 필요하다.

[천자춘추] 1천400만 경기도의 직주락(職·住·樂) 플랫폼 만들기

경기도 인구가 1천4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난 6년간 100만명이 증가했다고 하니 1년에 15만명 넘게 늘고 있다.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 가성비좋은 주택이 공급되는 경기도로 주거이동이 활발한 셈이다. 이는 서울의 쇠퇴나 경기도의 성장이라기보다는 수도권의 광역화가 촉진되는 새로운 도시화 현상이라 하겠다. 일자리는 집중하고, 주거는 분산되며, 통근거리는 증가하는 대도시권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먼 통근거리나 긴 통근시간은 고질적인 도시 문제다. 김포골드라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시내 주택정비사업도 활발해 주택 공급이 증가한다. 그러나 현재 건설 중인 GTX등 광역철도가 개통되고 3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 주거는 신교통축을 따라 더욱 분산되지 않을까. 주택은 분산되는데 일자리 분산은 쉽지 않다. 기업의 이동은 주거이동에 비해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경기도 인구가 증가할수록 통근거리가 길어진다. 광역철도와 광역버스 등 광역교통 개선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겠지만 일자리도 함께 분산돼야 한다. 특히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철도의 환승역세권, 터미널 중심으로 일자리와 주거가 복합되고, 교육문화복지시설이 어우러지는 직주락(職·住·樂) 플랫폼 개발이 절실하다. 좋은 직장에 더해 직주근접형 주택과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공원과 특화거리, 카페 등이 모여 있는 매력적인 장소로 사람과 기업들이 모여드는 이런 도시가 번영한다. 여기에 GTX의 환승역세권 같은 대중교통의 허브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벤처중심의 판교테크노밸리, 대기업 연구소 중심의 마곡사이언스파크 등이 새로운 성공모델로 자리잡아 간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일자리, 이색적인 카페거리, 저렴하고 편리한 주택, 편리한 대중교통망을 갖춘 미니 판교, 미니 마곡을 만들어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먼거리를 통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대도시권을 만들어 가야 한다. 판교3, 용인플랫폼시티 등 서울로부터 30분 거리에 조성되는 ‘경기형 직주락 플랫폼’은 경기도로 분산되는 청년들의 일자리, 주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족도시로 조성하되 광역교통망이 좋은 곳에 조성해 통근시간을 줄여가는 것이 최선책이다.  직주락플랫폼은 이동 필요성과 이동거리를 줄이고 친환경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는 탄소중립도시의 모델이기도 하다. 주거복지 지원을 위해 공공임대 공급, 청약제도와 주택금융정책 등 다양한 공적 지원이 이뤄진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땅값을 낮춰주고, 세 금부담을 가볍게 해주는 것과 동시에 기업 종사자에게 주택을 특별 공급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특별 공급에 따른 특혜 시비가 우려된다. 그러나 기업이 들어와 지역의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제 주택 문제를 주택만으로 풀 수 없다. 주택공급, 통근교통, 일자리를 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직주락플랫폼이 대안이다.

[천자춘추] 광장에서 시대를 만난다

최인훈은 소설 ‘광장’에서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고 썼다. 해당 소설 속 주인공인 이명준은 광장과 밀실의 이분법적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제3지대를 선택한다. 광장이 아고라에서 유래된 서구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관제집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등 광장은 낯선 문화였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 물결의 시작으로 1999년 여의도 공원화, 2002년에는 월드컵 응원으로 광장은 온 국민이 함께하는 축제의 마당이자 민의를 표현하는 시민의 공간으로 변화했다.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한 광장은 문화적 다양성도 품고 있다. 각종 축제와 행사가 개최되는 문화예술의 중심이면서 경복궁 및 광화문의 역사와 함께하는 광화문광장처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원에도 광장이 있다. 1996년 화성행궁 복원공사가 시작되며 2008년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 조성한 광장이다. 화성행궁을 배경으로 ‘수원화성문화제’와 ‘세계유산축전’ 등 수원을 대표하는 축제가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시민들은 현대에 조성된 광장에서 과거의 가치를 느끼며 문화유산을 무대로 현대의 예술을 만나고 있다. 물론 축제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화성행궁광장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흐른다. 예술인들의 공연,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의 웃음꽃, 소망을 담아 하늘 높이 연을 날리는 가족과 많은 관광객 등 다채로운 시민의 일상과 함께한다. 코로나19는 광장의 범위를 넓혔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으로 의사 소통 방식은 더 편해지고 장기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상의 공간은 더욱 확장됐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실 너머의 가상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무너졌다. 우리는 광장에서 시대를 만난다. 광장은 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이 모이는 장소이자 개인적인 공간이다. 오랜만에 마스크 없는 일상이 됐다. 화성행궁광장에서 푸른 하늘을 만끽해 보자.

[천자춘추] ‘챗GPT’ 대체재인가, 보완재인가

필자는 5년 동안 물류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었다. 연중 250일 이상을 해외에서 출장을 다녔는데 원고 마감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왔다. 그때 ‘글빚’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 해외 출장 중에 원고를 마감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내가 주요 키워드와 스토리를 알려주면 나 대신 누군가가 글을 써주면 좋겠다’ 또는 ‘나 대신 회의 자료를 만들어주거나 내가 필요한 논문을 찾아 요약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바라던 바람이 이제 등장했다. 바로 챗GPT다. 챗GPT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성’의 영역에 진입한 생성 인공지능(AI)이다. 챗GPT는 생성 AI의 대표적 모델인 GP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데 말 그대로 ‘자가 학습’해 답변을 ‘생성’하고 대량의 데이터와 맥락을 처리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변환기)’ 기술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기술은 GPT 중 ‘T’에 해당하는 ‘트랜스포머’인데 앞서 기술한 내용을 기억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기술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정말 놀라운 기술이다. 오픈 AI에 따르면 4월14일 기준으로 한국 챗GPT 이용자 수는 220만명이다. 국민 100명 중 4명은 챗GPT를 이용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경영컨설턴트와 교육이다. 기업의 당면한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다. 또 새로운 경영트렌드를 파악해 경영자에게 미래의 일을 준비하게 하는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대학에 컨설팅 제안서 작성과 충남지역의 지자체 컨설팅 제안서를 작성하는 데 챗GPT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챗GPT를 사용하면서 나의 직업이 과연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이클 포터의 산업구조를 변경하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 중 대체재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 고객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고 챗GPT를 활용하면 나의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 컨설팅 직종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의 두려움과 공포가 동시에 엄습해 왔다. 현재는 챗GPT가 보완재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앞으로 챗GPT가 나를 대신하는 대체재가 될 것인가? 챗GPT에게 질문을 했다. ‘경영컨설턴트인 나의 직업이 챗GPT로 대체될 것인가?’ ‘AI 기술은 확실히 많은 산업에서 비효율성을 줄이고 작업을 자동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경영 컨설팅과 같은 분야는 AI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고유한 능력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나는 챗GPT의 대답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 혹은 내가 속한 산업에 대해 ‘AI가 보완재인가? 대체재인가?’ 앞으로 도전과제인 것은 명확하다.

[천자춘추] 엔데믹 시대의 정치

지난 5월5일 WHO(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이제 더 이상 국제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아님을 선언했다. 이는 무려 3년4개월이라는 유례없는 전 세계 집단 감염의 강력한 바이러스가 사실상 종식됐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장기간에 걸친 팬데믹으로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온라인에 기반한 IT기술 발전 등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물가, 국제적으로는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등 ‘3고 현상’으로 서민경제는 나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지난 3년간 잔뜩 움츠러들었던 우리의 일상을 다시 찾고, 골목상권 등 실물경기의 회복과 더 나아가 뒷걸음질 치던 경제가 다시 성장의 힘을 얻길 우리 국민 모두가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지난 3년간의 팬데믹 상황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을 통해 분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과오를 들추자는 것이 아니다. 엔데믹이란 새로운 시대를 잘 열어가기 위해선 팬데믹 시대에 우리의 대응과 그로 인한 결과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평가에 기반한 새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반도체 중심의 수출 부진으로 최근 경제성장률 전망을 종전 1.8%에서 1.5%로 하향 조정했으나, 2024년에는 대외수요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세 확대로 2.3% 성장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취업자도 올해 서비스업 생산 증가에 기인해 27만명 증가한 후, 2024년에도 17만명의 양호한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밝혔다. 일부 민간 소비 부분의 확대와 여행 수요의 확대로 전체 민간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인 가운데, WHO와 우리 정부에서 발표한 사실상의 코로나19 종식 선언은 관광 산업 호황과 고용 확대 등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책이 돼줄 것이라 기대된다. 그 절실한 열망과 냉철한 반성이 함께 할 때, 우리의 바라는 바가 이뤄진다. 엔데믹에서 기대되는 경제성장을 한껏 더 끌어올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와 지방의회, 지방정부 할 것 없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 발굴을 위해 더 이상 진영논리에 휩싸이지 말고,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경제에는 여야가 없다.

[천자춘추] 엄마, 삶과 예술을 실천하기

한국은 ‘어버이날’이 있지만 미국은 ‘어머니날(Mother’s Day)’, ‘아버지날(Father’s Day)’이 따로 있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이는 1907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애나 자비스는 정부 기관, 입법부 등에 1년에 하루는 어머니들을 기리는 데 헌신할 것을 제안했다. 1910년, 버지니아주는 처음으로 어머니 날을 공식적인 휴일로 인정했다. 최종적으로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모든 미국인 어머니들을 위한 국경일로 선포했다. 기념일로 지정될 만큼 엄마는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 엄마가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없이 생각해 봤지만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끊임없이 줘도 부족하고 아쉬운 사랑의 순간들. 모든 장면이 사무치게 그리워 할 순간이 오겠구나. 매일 매순간이 기쁨이고 성장이고 경이로움의 연속인 건 확실하다. 산뜻한 바람과 꽃가루가 춤추는 5월. 지독하게도 끝나지 않았던 뉴욕의 얄미운 초겨울 같던 날씨가 어느새 물러가고 맑고 투명한 빛이 내리쬔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엄마가 되는 상상을 했다. 세상의 기적을 맛보는. 여러 의미로 정말이었다. 여성이자 엄마가 되는 건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각과 감정, 그리고 경험으로 생기는 또 다른 흩어진 ‘나’를 발견하게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예술계에서 엄마됨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여성’이자 ‘엄마’라는 주제는 젠더를 넘어선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도 시대에 대응하는 ‘젠더’, ‘페미니즘’, ‘모성애’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 문제, 특히 성별의 변화에 이뤄지는 ‘가족’과 ‘모성’을 주제로 다양한 예술 작업이 나타나고 있다. 엄마이자, 아티스트이자, 여성이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 속에서 나타나는 서사는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지만 또 하나의 ‘사회적인 삶’이다. 이 말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사회적 관계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예술계 안에서 이러한 주제가 생산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선 드러내기, 보이게 만들기, 함께하기, 지지하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엄마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고 함께 간다. 육아는 현실이고 예술과 육아는 이미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온 지 오래고 인식은 확장되고 있다. 큰 범주에 속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을 건드리는 것. 계속 끊임없이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입증할 일들이 앞으로 기대된다.

[천자춘추] 겸손의 문을 열려면

세계적인 베이스 기타리스트이자 교육자인 앤서니 웰링턴은 어떤 악기를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의식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무의식적 무지(Unconscious Not Knowing)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단계다. 생일날 장난감 드럼을 선물 받은 어린이가 마구잡이로 치면서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두 번째는 의식적 무지(Conscious Not Knowing)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단계다.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은 이 두 번째 단계에서 그만둔다. 만약 그 고통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배움에 정진하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신경 쓰면 멋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세 번째의 의식적 지식(Conscious Knowing)을 가진 프로가 되고, 이 부분을 넘어서면 의식하지 않아도 완벽한 연주가 되는 네 번째의 무의식적 지식(Unconscious Knowing)의 단계에 이른다. 웰링턴은 위의 네 가지 단계가 악기를 다루는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인생이 담겨 있는 통찰이다. 최근 어떤 사람과 일을 같이 했다. 나름 유명한 분의 가르침도 받은 사람이라 실력은 확실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아주 기본도 안 돼 있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강렬한 깨달음이 왔다. ‘나는 도대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동안 까불고 살았지? 누군가 보기에는 나도 그 사람만큼 모르는 사람일 텐데.’ 그 사람이 열 가지 중 한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열 가지 중 서너개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곱 개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두 개 가진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마치 나는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교만했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단계, 서두에 언급한 웰링턴에 따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무의식적 무지’의 단계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어떤 의미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정으로 겸손해 본 적이 없었고 수많은 실력 향상의 기회를 교만한 삶의 자세로 놓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칠 듯이 아쉬웠다. 10년만, 아니 5년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필 인생에 있어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지천명’의 나이가 돼서야 깨닫게 됐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얄궂다. 그래서 ‘철학의 시작’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우리에게 남겼나 보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천자춘추] 한국경제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 방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악재가 곳곳에 있고 인간의 삶 또한 스펙트럼처럼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경제는 아직도 그 여파로 인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허덕이고 있는 요즈음이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4월4일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측 프로그램인 ‘GDP다우’에 따르면 올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1.7% (연이율) 수준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 발전을 이뤄 내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 중 하나로 성장해 왔다. 한국 경제는 1970년대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 국제시장에 진출하게 됐는데 이는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성장과 함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의 노력과 지원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경제는 미래에도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과제가 존재한다. 그중 시급한 것은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성, 격차 해소 등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 측면에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기업은 자체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 육성해 이들이 미래 성장을 견인할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한국 경제의 중차대한 견인차 역할을 해온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패권경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반도체같이 첨단 제조 산업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핵심 기술에 대한 선점전략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물리학, 재료공학, 전기·전자공학 등 여러 분야의 인력이 함께 만드는 제품이므로 질적 우수성을 갖춘 인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생산에 이르는 전 단계에 걸쳐 전략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요자 맞춤형 우수 인재 육성을 통해 우리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달성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안정 성장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경기도 기회소득 활성화 정책 제안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민선 8기! 경기도정의 슬로건이다. 필자는 민의를 대변하는 도의원으로서 민선 8기 경기도의 시그니처 정책인 ‘기회소득’의 실질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기회소득의 정의, 개념의 명확한 정립에 대해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사회적 가치 창출자’를 ‘경기기회소득’의 대상자로 선정한다고 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자란 누구인가? 먼저 이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자는 경기도민의 생활 편익 확대와 직결되는, 즉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직종과 계층이다. 이 같은 정의는 기회소득이 특정 직업 분야 및 개인의 경제활동을 지원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경기도의 기회소득을 통해 경기도민의 생활 편익이 강화된다면 사회·경제적 가치의 동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소득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경기도의회와 사전 협의하면 좋겠다. 발전적인 의견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의회 내 공감대 형성은 향후 원활한 정책 추진에도 도움이 돼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두 번째, 업무 효율성 및 전문성에 관한 제안이다. 현재 기회소득은 지급 대상 관련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담당 부서의 혼재, 상위법 근거, 필요 조례의 제·개정 등 추진 중에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정보와 행정력을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필자는 큰 틀에서 확장된 기회소득 정책의 추진을 위해 효율적, 유기적, 전문성을 담보하는 전담조직의 신설을 제안한다. 세 번째, 대상의 확대가 필요하다.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인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재도전의 기회가 필요하다. 중·장년층은 부모 부양과 자녀 뒷바라지 등 3대(代)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실직과 퇴직 이후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이들의 경력과 전문성을 살리는 경기 기회소득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경기도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장애인, 문화예술인, 배달노동자, 청년, 베이비부머, 경력 보유 여성 등 보다 많은 도민들이 기회소득 정책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민선 8기 모두가 힘써 주기를 당부한다.

[천자춘추] 언어에도 새로 고침이 필요한 이유

언어는 상대를 전제한 행위다.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들리기 위해서다. 결국 언어는 나를 향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일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을 형성하고 문화에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언어는 사용을 통해 습관화되면서 감수성이 무뎌지는 특성이 있다.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언어 표현은 없는지 감수성을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예민하게 구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언어에 숨어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요소를 걷어낼 때다. 차별적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상의 차별 감수성을 높여줄 것이고, 더 행복하고 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매일매일의 언어 표현이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별적인 기존의 단어를 보다 평등한 단어로 대체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어의 ‘미즈(Ms.)’다. 영어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미스터(Mr.)’로 불리는 반면 여성의 경우 기혼 여성은 ‘미시즈(Mrs.)’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미스(Miss)’로 구분됐다. 이 같은 차별적인 관행에 대응하고자 생긴 언어가 바로 ‘미즈(Ms.)’로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여성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한국의 경우 반대로 성 중립적인 명칭에 남성에게는 사용하지 않지만 ‘여배우’, ‘여감독’, ‘여기자’, ‘여검사’ 등 ‘여’라는 성별을 붙임으로써 차별을 낳기도 한다. 언어는 지속적으로 새로 고침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표현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으며 상대의 감수성에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차별이라 차별인 줄도 모르고 이뤄지는 우리 일상에 숨은 차별의 언어 문제에 감수성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희망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천자춘추] 영화제가 왜 필요하죠?

“영국은 해가 지지 않았지? 한국은 영화제가 끝나지 않아.” 예전 해외 어느 영화제에서 영국 영화인을 만나 던진 농담이다. 실로 그렇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에 접수된 국제영화제 지원 사업 대상 단체가 15곳, 국내 영화제 지원 사업 대상 단체만도 59곳이라고 한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나 독립기관에서 ‘영화제’라는 이름을 건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경기도 최북부에서 부산, 제주도까지 전국 곳곳에서.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영화제는 상업 영화관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창구이자 신진 감독들의 등용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영화계에 찾아온 위기는 영화제 역시 비켜가지 않는 모양새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좀처럼 찾지 않고 감독과 스태프들이 영화 현장을 떠나 OTT 작품의 현장에서 길을 찾는 시점에 영화제 역시 여러 질문을 받고 있다. 결국 하나로 수렴되는 질문이다. 어째서 영화제가 필요하냐고. 영화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보루. 새로운 언어를 발굴하는 실험대. 이런 설명의 설득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영화제가 만들어 내는 공동체에서 답을 찾고 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하는 일의 80%는 결국 설득이다. 한국과 각국 창작자들의 작품을 본 다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당신의 영화가 들어올 만한 곳이라고 설득한다. 그러고 나서는 관객을 설득할 차례다. 이 작품이 왜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와서 보라고 설득한다. 그런 1년간의 준비가 끝나면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세계 각국의 창작자와 관객들이 한곳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본다. 모두가 하나의 장소에 모여 숨죽이고 같은 스크린을 응시한 후 불이 켜지면 대화를 나눈다.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난 사건에 관해서, 그것을 기록하고 재창조한 감독의 작품에 관해서,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 관해서. 함께 본다는 것. 그것이 바로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태어나 21세기를 맞이하며 죽음을 위협 받는 영화의 핵심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장치를 발명한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 중 후자가 영화의 창시자로 평가 받는 것은 그들의 장치가 관객들이 함께 영화를 보도록 고안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우리가 배워 왔고 꿈꿔온 가장 건강한 사회의 구성 원리와 닮아 있다. 창작자와 영화, 관객을 매개하는 영화제의 공동체는 일시적이고, 불균질하고, 때로는 연약하다. 그래서 지켜야 한다. 이 사회엔 확신에 찬 전진만큼이나 고뇌에 차 비틀대는 걸음도 필요한 법이니까.

[천자춘추] 같음과 다름의 가치, 상호 존중돼야

우리는 ‘다름’에 대해 다소 인색하다. 의견이나 생김새를 비교할 때 ‘다르다’는 표현보다 ‘틀리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늦었던 우리나라에서 ‘같음’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뛰어온 결과 어느새 고도의 산업 국가가 됐다. 초 단위 변화가 실현되는 지금은 ‘다름’에 기초한 창의성이 국가의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과거와 비교해 ‘다름’에 대한 인색함의 수준이 많이 나아진 듯하다. 그런데 정부 간 재정관계는 아직도 ‘다름’의 가치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 29년간 시행돼온 지방자치는 다양성이 크지 않다. ‘같음’을 우선시하는 재원 배분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재정 이전 수단인 지방교부세를 예로 들면 자치단체별 수요 대비 수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같음’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재정력이 열악한 지역이 더 많이 배분받는 구조다. 자치단체마다 처한 환경, 시민의 요구, 발전 방향과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다. 부족한 재원을 산식에 의해 보전해 주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세입을 확충하거나 세출을 절감할 유인 역시 갖지 못한다. 민선 자치 원년인 1995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63.5%였으나 2022년에는 49.9%로 13.6%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음’의 가치가 ‘다름’의 가치를 누른 결과 전국의 지방재정은 하향평준화됐다. 경기도는 재정력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한다. 성남, 화성, 용인, 하남, 수원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재정 재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갖는 대한민국 발전의 추동 가능성과 역량은 그 어디보다 크다. 저성장, 인구 소멸 등 미래의 경제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과 기회를 얼마나 확보하고, 먹거리로 전환시키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차대한 상황이다. ‘같음’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선택과 집중에 따른 기회의 확대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같음’의 가치와 ‘다름’의 가치가 서로 존중되는 정부 간 재정관계의 개선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

[천자춘추] 버스에 봄의 정다움이

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식장에 가는 경우처럼 같은 목적을 갖고 가는 길이라면 혹 버스 안에서 지인을 만나는 경우가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시내버스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난 일은 없다. 그리고 도시의 익명성으로 인해 버스 안의 승객은 모두 낯선 타인이다. 나는 시내에 나갈 때 승용차를 갖고 가지 않고 으레 시내버스를 탄다. 시내버스에 오르면 특별히 창밖 풍경을 살필 일도 없다. 자주 지나는 길이라 어떤 관공서가 있고 어떤 상점이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내릴 곳을 찾으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운전할 필요도 없고 알아서 실어다 주겠지 하고 기사를 믿고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는다. 세상에 제일 편한 곳이 시내버스 안이다. 봄이다. 비 온 뒤 하늘은 맑고, 가로수 은행나무에도 봄의 정다움이 가득하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봄의 기운을 빌려 인사하고 싶다. 그것이 봄의 힘이다. 실제로 나는 우리 집 동네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한다. 행궁동 안에 있는 문인협회에 가기 위해 수원역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올라서면서 빈자리가 있는지 둘러봤는데 승객이 반도 차지 않아 버스 안이 휑하다. 그런데 세상에! 둘이 앉는 좌석에 모두 통로 쪽에만 앉아 창 쪽 자리만 비어 있다. 통로 쪽에 줄 맞춰 앉아 있고 창 쪽은 줄 맞춰 비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통로 쪽에 앉은 사람이 몸을 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할 것이다. 차라리 서서 갈까? 통로 쪽에 앉은 사람 가까이 다가가 서 있어도 앉은 사람은 꿈쩍도 않는다. 아마 가까운 곳에서 내릴 것이니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수출 규모 세계 6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다. 선진국이라 불러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제 버스 착석은 안쪽 자리부터 앉는 전 국민 문화운동을 전개하자. 다음 정거장에 내리는 사람도 자리가 비었다면 당연히 안쪽 자리부터 앉아야 한다. 낯선 사람이 모인 곳에서의 에티켓은 더욱 아름답다. 모든 국민이 안쪽 자리부터 앉는 날 세계 1등 문화국민이 될 것이다, 그날 봄의 정다움이 버스 안까지 마음껏 들어오리라.

[천자춘추] 보릿고개와 어머니

내 어릴 적 오월은 온통 초록 보리밭이었다. 늦가을 뿌린 씨앗들이 엄동설한을 이기고 빼곡히 들녘에 차 올라 일렁이는 모습은 매혹 그 자체였다. 이랑 사이를 거닐며 콧노래도 부르고 연하디 연한 이삭을 어루만지며 가슴에 사랑을 그려 보기도 했다. 낭만과 설렘, 그리고 잔잔한 추억이 아직도 가슴에 그대로 들어있다. 그와 더불어 진한 아픔 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을 파고 든다. 긴 한숨 소리, 쌀 독 바닥을 긁는 아침, 종종걸음으로 이 집 저 집 돈 꾸러 다니는 조바심.... 내 어머니의 가난한 오월이었다. 10남매의 맏며느리, 여덟 자식의 젖가슴, 그렇게 강하지 못한 한 남자의 아내! 고생일 수밖에 없었고 눈물의 나날이었으리라.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의 투정과 성화는 그분의 삶에 여러 개의 멍자국을 남겼으며 녹록지 않은 살림은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이며 온몸에 잔병을 심어 놓았다. 나는 그 속에서 나고 자랐다. 불평과 심통을 부리며 때로는 원망도 서슴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요구와 그릇된 행실로 날마다 그분을 전전긍긍하게 해 드렸다. 그래도 내 어머니는 “큰일 저지르는 놈이 큰일한다더라” 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셨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 내게 필요한 만큼을 언제나 만들어 주셨다. 10년 전 임종을 앞둔 내 어머니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이 돈은 자네의 자존심을 세울 때 당당하게 쓰시게. 누구도 주지 말고 동기간에 나누려고도 말고 오롯이 자네만을 위해 쓰시게” 하시며 적지 않은 현금을 흰 봉투에 담아 내 손에 쥐여주셨다. 사뭇 놀랐다. 많이 뭉클했다. 눈물 범벅이었다. 그분은 철부지 나에게 태산보다 더 큰 자존심을 선물로 남기고 2013년 오월의 보리밭 이랑을 따라 하늘로 가셨다. “올해는 보리가 유난히 더디 익는다. 어머니의 푸념이었다.” 양식은 벌써 바닥이 났고 오월의 보리밭은 마냥 푸르러 알곡이 익으려면 아직 멀어서.... 해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많지 않은 밥을 이 그릇 저 그릇에 담으시고 당신은 밥알보다 물이 더 많은 밥으로 끼니를 이으셨다. 지독한 보릿고개였다. 철 모르던 시절에 보이지 않았던 그 고개가 올봄에는 어쩌면 그리 선명하게 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 심술궂은 보릿고개를 내 어머니는 사랑으로 이기셨다. 가난과 고생을 길동무 삼아 침묵으로 뚜벅뚜벅 헤쳐 나오셨다. 투박한 그리움의 잔에 보릿고개와 어머니 마음을 넘치도록 채워 본다.

[천자춘추] 언제까지 경기북부는 사법낙오지인가?

경기도는 김동연 지사의 강력한 의지로 2026년 7월까지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겠다는 목표로 ‘경기북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와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은 그동안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으로 경기 남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완화되지 않고 있어 남부지역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경기북도’ 신설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미 경기도북부청사(제2청), 경기도교육청북부청사(제2청), 경기도북부경찰청 등을 비롯해 의정부지방법원, 검찰청 등 경기 북부를 별도로 관할하는 행정기관이 소재하는 등 기능적으로 분리돼 경기 북부 도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독 항소심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고등법원 의정부 원외재판소가 설치되지 않아 경기 북부 도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국민이 많은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가까운 장소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다. 경기 북부의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약 9배에 해당함에도 도로 보급률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고 대중교통망도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 재판을 받으러 가려면 2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도 많다.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은 국민의 거주지가 어디인가와 상관 없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실은 재판청구권에 대한 평등권 침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전임 회장인 이임성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은 “2019년 경기 남부지역에 수원고법이, 인천에는 서울고법 원외재판부가 설치됐다. 현재 경기 북부에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항소심 재판을 지역에서 받을 수 없는 ‘사법 낙오지’로 남은 셈”이라고 그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의 광대한 관할 구역과 지역적 특성 및 1심 합의부 사건에 대한 항소심 사건의 증가 추세에 비춰 경기 북부지역에 고등법원 설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는 사법의 지방분권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경기 북부 도민들이 보다 용이하게 고등법원의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고등법원 의정부 원외재판부를 조속한 시일 내에 설치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자연을 망각하다

자연의 다양한 생물에게 사람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많은 작가들, 사람들, 정치인들은 마치 자연이 자신인 듯, 타인인 듯 자연에 빗대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철새 정치인’처럼 왔다 갔다 하는 정치인을 두고 하는 표현은 철새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철새의 이동은 대륙을 넘나드는 생과 삶의 길일진대 간사한 정치인에게 비교하다니.... 이렇게 좋지 못한 예도 있지만 콘크리트 틈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보며 ‘저런 환경에서도 자라는데 나도 힘을 내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좋은 표현이든 그 반대이든 관점의 주체는 ‘나’인 것이다. 그리고 자연을 얕잡아 보는 잠재의식 속의 습관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허투루 보는 역사는 오래됐다. 우리가 존경하는 철학자조차 자연을 함부로 대해 왔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단지 기계’라고 했고 칸트는 ‘동물은 자의식이 없다’고 했다. 사람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연을 이용해도 무방한 물건으로 여겨왔고 이는 함부로 자연에 생각을 투영하게 된 것이다. 믿지 못할 사람도 있겠지만 생물은 사유하는 존재다. 지능이 매우 높다는 오랑우탄에서 아무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풀들도 각각의 차이는 있지만-사람처럼 말을 못할 뿐이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가시를 점점 길게 내 방어한다. 작약은 수정이 되기까지 꽃가루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빛이 없는 밤이나 비가 올 때 꽃잎을 오므려 꽃가루를 보호한다. ‘잡초’라 불리는 식물도 결국 인간의 ‘쓸모’라는 관점에서 나온 단어일 뿐이다. 생물들이 살던 땅을 콘크리트로 덮어 버린 주체는 사람이면서 그 틈으로 나오는 식물들을 불쌍하게 보는 것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오래전에 이어져 나온 생태적 습성을 망각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생각, 감정을 우주의 나머지와 구별된 무언가로 경험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의식에 일어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라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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