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차춘추] 생태계교란생물을 생각하며

2015년 7월 베트남에서 어디서 본 듯한 식물을 맞이했다. 낯익은, 어디서 봤더라…아하! 귀화식물인 도깨비가지구나. 같이 간 베트남 친구에게 혹시 이 풀을 아냐고 물어보니 베트남에서는 치통에 쓰인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이 풀도 쓰임이 있었구나.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인 도깨비가지는 1978년에 국내에서 처음 보고됐고 2002년에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됐다. ‘생태계교란생물’이란 유입주의 생물 및 외래생물 중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 또는 유입주의 생물이나 외래생물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생물 중 특정 지역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이 대상이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무시무시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느껴진다. 실제로 이 식물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어 찔리면 아프고 식물자체에 독성이 있어 소나 말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번식력은 굉장히 강해 다른 나라에서도 요주의 생물로 구분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귀화식물이 그렇듯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고 더위에 강하고 가뭄에 대한 내성도 있다. 이렇다 보니 개발지에서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34종의 생태계교란생물이 지정돼 있다. 이들은 목적을 두고 수입하거나 개인이 키우다 버려지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유입된 동∙식물이다. 해서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싶어 들어온 것이 아닌데 들여와 놓고 쓸모없어 지니 제거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생태계와 맞지 않으니 피해를 주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들이 정착해서 살 수 있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 한 예로 10여년 전 수원의 하천에서 나일틸라피아라는 물고기가 조사됐다. 나일틸라피아는 아프리카 태생으로 1955년 태국에서 수입하여 양식을 했다. 양식을 위해 수입한 물고기가 어찌된 일인지 하천에서 번식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일틸라피아는 10℃가 되는 낮은 수온에서는 살지 못한다. 우리나라 겨울철 하천의 수온에서는 살지 못하는 것이다. 원인을 찾아보니 하천유지용수를 위해 방류된 처리수의 온도가 따뜻하여 겨울동안은 방류구 근처에서 살다가 수온이 따뜻해지면 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방류수의 온도를 낮추면 되는 일이라 처리하는 기업과 행정과 논의를 하여 겨울동안만 처리수를 낮추는 처리를 했다. 지금 수원의 하천에는 나일틸라피아는 살고 있지 않다. 사실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교란시키는 일이 지정된 생물에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무분별하게 제거하는 일은 자칫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리해야 안정된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홍은화 수원환경운동센터 사무국장

[천자춘추] 언론의 역할

생각과 말이 삶을 지배한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 한 국가의 품격이나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 살고 있는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예전에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가치, 민주주의. 요즘은 너무 당연시돼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民主’는 ‘民’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이념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 하지만 새삼 이 말을 곱씹게 되는 것은 요즘의 정치 상황이나 우리들의 삶 속에 퍼져 있는 각종 행동이 과연 우리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민주라는 가치와 상통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데, 초심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크다. 위정자들의 언어와 행동 속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껍데기만 수용하고 내용은 저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정부는 과연 국민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는가. 지방정부는 시민 혹은 주민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는가. 정부나 자치단체는 고사하고 국민이 선택한 정치가들조차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과연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네 탓만 있고 내 탓이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중 하나가 다수결의 원칙이요,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한다. 권리만 추구하지 책임지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도 있다. 권력욕에 찌든 지배층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더러운 입을 통해 배설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은 총체적으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잘못된 것이 옳은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일반인의 삶 속으로 녹아든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정말로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래 국가가 나아갈 방향이 권력욕에 찌든 상류층 모리배들에 의해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거르고 걸러 국민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자정이 필요하다. 스스로 옳은 것이 옳은 것이요, 그른 것은 그른 것임을 알고 실천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박문신 여주지역자활센터장

[천자춘추] 클래식 대중화와 시립교향단의 역할

지난 6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또 한 명의 ‘K-클래식 스타’의 등장이라며 열광했다. 지금도 여러 공연장에서 수많은 연주자들이 무대를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임윤찬같이 새롭게 티켓파워를 갖는 연주자의 등장은 공연기획사들과 공연기획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몇 주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내한공연은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석 매진되는 티켓파워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매년 들려오는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대한민국 연주자들의 우승 소식은 이제 일상이 됐고 대한민국이 세계 클래식음악의 중심이 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를 보는 많은 공연 관계자들은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국내의 클래식 공연 시장만큼 명암이 크게 교차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 클래식 스타들의 공연 티켓은 한 장에 10만원이 훌쩍 넘어 가면서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 문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4인 가족이 함께 즐긴다면 연간 행사인 휴가비와 맞먹는 예산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 공연 시장에는 이미 팬덤이 형성돼 매진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는 일부 스타 연주자에게만 국한된다는 사실이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1970, 80년대 급격히 늘어난 음악대학은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이 돼 갈수록 지망생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클래식음악 시장은 오직 엘리트 예술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도립예술단, 시립예술단의 이름으로 지역에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예술단체들이 내일의 임윤찬을 발굴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무대에 올리며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선보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또 공공단체나 기관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가격으로 문턱을 낮춰주는 합리적인 티켓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 프로축구팀 경기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국가대표 경기만 응원하는 이들을 축구팬이라 할 수 없듯이 K-클래식의 위상은 우리 지역 시립교향악단의 공연부터 응원하며 감동 받을 때 더욱더 저력을 갖게 될 것이다. 류성근 성남아트센터 예술사업본부장

[천자춘추] 일상에 깃든 ‘인연’이란 기회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시인이 한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잘나도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영화 같은 특별한 인연, 특별한 순간을 꿈꾸지만 사실 이미 그런 기회는 우리 삶에 수도 없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한 병실로 들어갔는데 이미 그곳에는 다른 환자가 있었고, 보이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아는 분 중에도 보이차를 참 좋아하는 분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생각나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말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는 보이차를 좋아하는 분을 그 환자분 역시 알고 계셨다. 심지어 그분은 언젠가 나와 이 환자분을 서로 소개해 줄 생각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환자분이 머물던 병실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간호사의 실수로 내가 그 병실에 들어갔고, 그 병실에 계신 분은 거짓말처럼 내가 알고 있는 분을 함께 알고 계셨다. 그날의 좋은 인연으로 그 환자분과 나는 지금 함께 여러 가지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설로 쓸 만한 일이 내 삶에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연의 힘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내가 당황해서 바로 병실을 나왔더라면’, ‘보이차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조금 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더 흥미로워지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다음은 그동안 내가 인연에 대해 깨달은 두 가지 통찰이다. 첫째, 인연은 일상에 숨어 있다. 인연은 언제, 어디서 오겠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일상 속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인연의 기회가 열려 있다. 오늘 찾아올 수많은 인연을 열린 마음과 뜨인 눈으로 살피며 살아가면 피천득 시인의 말처럼 옷깃만 스치는 인연도 살려낼 수 있다. 둘째, 사랑이 인연을 만든다. 계산적인 사람은 인연을 끊어내기만 한다. ‘친구의 결점까지 사랑하라’는 이탈리아 속담처럼, 지금 보이는 약간의 단점도 사랑으로 덮어주자. 나와의 인연을 통해 그 사람이나 나의 인생이 아름답게 꽃피울지 모른다. 훗날 내가 정말 힘들 때 큰 도움을 주는 거목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일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연이 가진 묘한 힘이다. 조승원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이사

[천자춘추] 비핵화보다 ‘핵 확장 억제’ 주력할 때

북한이 연일 도발하고 있다. 그 도발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분명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과거의 경우, 한미가 연합훈련을 할 동안에는 도발하지 않았다. 그만큼 한미 연합훈련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미가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중에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중요한 이유로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핵을 개발하고 있을 당시에는 한미 연합훈련에 저항할 수단이 없었지만, 이제는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오히려 연합훈련에 대항해 우리와 미국에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른바 대북 포용 정책이 효과적일지 의구심이 든다. 김대중 정권 당시의 대북 포용 정책은 의미가 있을 수 있었다. 당시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당근을 주면서 ‘핵 개발’을 포기하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현재와 같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는 ‘핵 개발이 아닌,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해야 하는데, 당근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개발된 핵무기를 포기한 경우는 우크라이나 사례 정도인데,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해 핵무기를 보유했던 것이 아니라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핵무기를 ‘졸지에’ 보유하게 된 것이어서, 현재 북한의 상황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결국 자기가 가진 무기를 스스로 버린 나라는 없다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이제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핵 확장 억제’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25년 전에 유효했던 정책이 지금도 유효할 것이라는 ‘과거 지향적 사고’를 버리고,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핵 공유’에 대한 여론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미국은 결코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경우, 오히려 우리의 핵 보유 시도를 저지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미국의 입장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외교적 지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천자춘추] 분노에 이유 타당한 경우 드물다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온 국민이 가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전사고가 터지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참사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대한 주문이 무분별하게 쏟아진다. 사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더 세게 밀라고 했던 사람 때문이라는 의견부터 정부나 경찰의 무능 때문이라는 의견, 심지어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MZ세대(희생자들도 포함됨에도 불구하고)의 문제라는 세대(世代) 비난론까지. 게다가 참사 발생 초반 애도 분위기 때문에 잠잠했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참사의 책임 여부나 소재에 대해 마구잡이식 주장을 배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민들의 슬픔이나 아픔과 관계없이 오로지 정치적 계산에서 판단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런 정쟁(政爭)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우리에게 절망을 넘어 환멸을 느끼게 한다. 너무 참담한 사고였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픔이 큰 사고였기에 우리는 참사 발생에 책임이 있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분노의 대상을 찾으려고 한다. 오죽 힘들면 그럴까.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이 분노감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따져 봐야 한다. “분노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지만, 이유가 타당한 경우는 드물다”라는 프랭클린의 말처럼, 자칫 잘못하면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처럼 끔찍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우울감 또는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같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불안감은 분노감(또는 분노감 조장)에 쉽게 전염된다. 이럴 때 우리는 “미움의 이유는 정확해야 한다”는 영국의 시인 오든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미움의 대상(참사 유발자)이나 미워하는 근거(참사의 원인)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분풀이하듯 쏟아내는 말이나 글은 결국 우리의 슬픔을 강화시키고 아픔을 연장시킬 뿐이다. 감정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누그러진다고 한다. 분노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의 분노감을 개인적 원망이나 진영 논리에 의해 무가치한 (분노)감정으로 휘발(揮發)시킬 수 없다. 이는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토록 아픈 대가를 치르면서 만들어진 이 분노 감정을 이번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로 승화시켜야만 한다. 이럴 때 비로소 공분(公憤)이 집단지성에 기반한 진정한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작동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최순종 경기대 행정복지상담대학원 원장

[천자춘추] 나는 화, 내는 화

화에는 ‘나는 화와 내는 화’가 있다. ‘나는 화’는 산에 불이 나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없으나 ‘내는 화’는 내가 산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있다. 화가 많은 나에게는 참 공감하면서 동의(同意)가 되는 말씀이다. ‘화’란 사전적 의미로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 한다. 살아있는 생물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표시를 낸다. 식물은 빛을 너무 많이 받거나 적게 받을 때, 수분을 너무 많게 섭취하거나 적게 섭취할 때, 광합성작용이 방해 받을 때에는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식물에게 칼집을 내고 10㎝ 거리에서 소리를 측정한 결과 10~100㎑의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비명이 들렸다고 한다. 이렇게 식물도 받은 스트레스를 표출하는데 수 만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을까? 최근 순간적으로 욱해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발생한 폭행과 폭언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나 가족이나 친구와 직장동료 등 친밀한 이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장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를 낸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언짢은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것은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욕이나 비난,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강압적 지시나 무시, 배려 없는 매너 등을 접하게 되면 화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화가 나는 것은 신 레몬을 입에 넣었을 때 침이 나오는 것처럼 ‘무조건적 반사행위’와 같지 않을까? 이는 학습과 경험이 없어도 반사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며 외부의 행동으로 표출되기 전의 일이다. 생각을 정화하는 필터링(filtering)을 거칠 시간이나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내는 화’는 ‘나는 화’를 외부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는 작은 오해나 언짢음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저 사람은 이런 말을 해도 나를 이해해 주겠지, 좀 짜증을 부려도 괜찮을 거야, 하찮은 일이야, 응석을 부리는 거야, 장난이야 등등….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 도가 지나치거나 상대방에게는 의도한 것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이다. 화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에게 더 많이, 더 자주 낸다. 함께 하는 시간과 접점(接點)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가 크고 응어리도 오래간다. 따라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조심스런 언행이 필요하다. 또한, 듣는 사람은 화를 내기 전에 한 박자 쉬어 무심결에 한 행동인지, 진심인지, 해칠 의도가 있는지 등 상대방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가끔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훈계의 말을 하면서 오히려 점점 더 화가 증폭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화가 화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급적 화는 증폭되기 전에 빨리 가라앉히는 것이 좋다. ‘화는 참으면 나를 죽이고 터뜨리면 남을 죽인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도 요령과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기분을 크게 상하지 않되, 그 사람의 잘못된 말이나 행위의 팩트(fact)만 지적해야 한다. 당신의 이런 말이나 행위 때문에 내가 기분 나쁘고 상처를 받았다고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 같이 화를 내면 인정받기 어렵고 싸움만 생긴다. 화를 잘 다스리고 또 화를 내었다면 빠른 시간 내에 화해를 해서 앙금이 오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의돌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사무국장·前 의왕시 부시장

[천자춘추] 부동산 하락기 안정적인 주택공급 필요

불과 1년여 만에 ‘영끌’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킬 만큼 과열된 주택시장이 2021년 8월부터 8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상(0.5→3.0%)으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언론에서도 주택가격 하락과 미분양 공포 심리를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과거 주택공급정책은 정부마다 지향하는 가치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기본적으로 냉온탕식 단기 대책을 반복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2014년 9·1대책에서는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해 더 이상 신도시 등 대규모 공공택지를 조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공공택지 공급 감소에 따른 양질의 택지 수급 불안으로 2018년 이후 주택가격 급등 시 공급 측면의 대응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정부는 각종 세제 등 수요 억제 정책으로 억누르다가 결국 2018년 9·13대책으로 수도권에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을 다시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주택 수급 불안에 따른 가격 상승 흐름은 막을 수 없었고, 정부는 2010년 보금자리주택 공급 시 도입했다가 사실상 폐기했던 사전청약제도를 부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풍부한 유동성 및 저금리와 맞물려 전국의 주택 가격은 평균 24.5%나 상승했고 서울은 무려 31.7% 상승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또다시 급격히 위축되는 주택시장 상황에서 주택 공급을 다시 억제해야 할까. 주택 수급 문제는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다른 주택의 고유 특성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정량의 주택은 시장의 변동성에 관계없이 장기수급 계획에 따라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향후 인구 감소에 대응해 이참에 주택공급 물량을 대폭 축소하고 대규모 공공택지 조성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첫째, 주택이 아직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인구 1천인당 주택 수가 412채로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평균 462채) 중 27위이고 자가보유율도 60%정도로 33위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해도 250만가구 이상을 더 공급해야 OECD 평균 수준에 겨우 도달하는 셈이다. 향후 1~2인 가구 증가를 고려할 때 주택 공급량은 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소득과 노후 주택 증가 등으로 새 아파트, 주거입지 등 주거의 질적 상향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 중 2021년 현재 건설 후 20년 이상인 노후 주택이 50.2%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이런 질적 상향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셋째, 주택 공급의 비탄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택지 확보부터 공급까지 최소 5~10년 장기간 소요되고, 좋은 입지에 수요가 몰리는 특성이 있으므로 장기적인 수급계획과 도시계획 등 관련 계획에 따라 미리 택지 확보 등 준비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 270만가구의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공급 확대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요즘과 같은 금리 급등의 비정상적 시장 여건에서는 민간 부문의 리스크 등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공공 주택 및 토지 비축 기능을 활용한 시장수급 조절 방안을 강구하거나 공공택지 조성 이후 주택 건설 단계 시기 조절 등의 보완책을 함께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현행 주거기본법에 근거해 운영 중인 10년 주기의 장기 주거종합계획과 연간 단위의 주거종합계획의 실효성을 강화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주택 공급 방향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김동근 LH 경기지역본부 지역균형재생처장

[천자춘추] 무역수지 적자, 구조적 관점서 바라봐야

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심상치 않다. 올해 4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데다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년 9월까지 누적 무역 적자액도 289억 달러에 달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의 개선 여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무역적자 대부분이 에너지 수입 급증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에너지 시장 혼란이 좀처럼 안정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도 둔화세가 확연해지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될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우리 수출증가율은 지난 6월 이후 한 자릿수로 꺾인 데다 주력품목인 반도체는 가격이 하락하면서 3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유력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불안이 더해지면서 수출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얼어붙기 시작했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는 일시적인 요인이 큰 만큼 에너지 가격이 진정되는 대로 무역수지도 차차 흑자기조로 회복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역수지 적자는 수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에 활발했던 수출품목에서 이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반도체가 어려워지면서 곧바로 수출이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수출이 얼마나 반도체 산업에 편중돼 있는지 구조적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은 최대 고객인 중국이 이제는 최대 경쟁자로 떠오르며 과거처럼 무역흑자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신산업 부상 없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업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해외 생산이 많아지면서 수출이 양적으로 늘어나기 어려워졌다. 최근 무역적자의 배경에는 결국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저하 문제가 산재해 있다. 주춤한 수출동력을 다시금 끌어올려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미래 모빌리티, 우주항공, 인공지능 로봇 등 유망 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미래산업이 쑥쑥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혁신이 가능한 생태계 구축 역시 필요하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수출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시했다면,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과 기업혁신으로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역수지가 흑자냐 적자이냐를 넘어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우리 무역의 구조적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배길수 한국무역협회 경기지역본부장

[천자춘추] ‘저탄소 농업’으로 탄소중립 실천해야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의하면 2021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1도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한반도의 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온실가스는 에너지 분야 86.8%, 산업공정 7.9%, 농업 2.9%, 폐기물 2.4% 순으로 배출한다고 한다. 비록 농업 분야가 탄소배출 비중이 작더라도 탄소중립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업은 기후변화에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산업이면서 탄소배출 이상으로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토양이 비옥하면 식량 생산과 생물 다양성이 증진되고 사막화 방지 및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 특히 토양 유기물의 약 58%가 탄소로 존재해 토양은 거대한 탄소저장고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농산물 생산 과정 전반에 투입되는 비료, 농약, 농자재 및 에너지 절감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온실가스 흡수원으로서 정밀하고 고도화된 토양 관리를 통해 저탄소 농업을 실천할 수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국제적인 상황과 국내 정책 방향에 발맞춰 농업·농촌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도 농업분야 탄소중립 추진 전담반(TF)’을 지난해 4월 출범시켰다. 온실가스 저감, 저탄소 농업, 에너지 절감, 보급 확산, 실천 운동 등 5개 분과로 나눠 탄소중립 달성 신기술 개발과 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특히 저탄소 농업 실천을 위해 축산분뇨를 자원화하거나 에너지화함으로써 자원을 순환시키는 경축순환농업을 경기도청 농정해양국, 축산산림국과 함께 협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시군 토양분석의 정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정도관리, 스마트팜 자동관수, 토양검정에 의한 비료사용 기준 설정, 우분 이용 바이오차 개발, 유용미생물 이용 친환경 토양 관리, 기후변화 대응 재해경감 기술, 농경지 온실가스 저감 및 배출량 평가 등 관련 기술 개발과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농업·농촌 분야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분야이면서 미래에 탄소중립이 실현되면 가장 큰 편익을 누릴 분야이기도 하다. 농업 부문의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식량 ‘생산’ 영역의 탄소 감축을 넘어 가공과 유통 등을 포괄한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저탄소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앞으로 농업이 저탄소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농촌에너지도 친환경적으로 전환돼 중장기적으로 탄소중립 시대로 진입하면 농업 환경과 농촌 경관이 개선되면서 농촌은 도시민이 더 많이 찾는 쉼터의 공간이 될 것이다. 농업 분야 탄소중립 실현은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긴 여정이 될 것이나 이제는 저탄소 농업으로 하나하나 실천해야 할 때다. 김석철 경기도농업기술원장

[천자춘추] 주소정보와 공유 모빌리티

길을 걸으면 인도 위 또는 아파트단지 내 무분별하게 방치된 전동킥보드가 자주 보인다. 교통약자인 휠체어 이용자나 점자블록에 의존해 보행하는 시각장애인들은 과연 킥보드를 피해 안전한 보행이 가능할까. 실제로 인도 위에 방치된 킥보드 때문에 휠체어는 왔던 길을 돌아가기도 하며, 점자블록에 주차된 킥보드는 시각장애인에게 보이지 않는 무기로 작용한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세계 모빌리티 시장이 2015년 33조원에서 2030년 1천68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공유 모빌리티 시장 또한 급격한 성장에 따라 킥보드 관련 안전사고가 증가하는 추세며 보행자 불편에 따른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했으며, 일부 지자체는 주차구역을 만들어 위반 시 견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자체별 명확한 기준 부재와 서비스업체별 다양한 주차구역 설정에 따라 실효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현행 도로명주소 체계에는 킥보드 주차구역을 관리할 수 있는 ‘사물주소’라는 새로운 주소정보가 존재한다. 사물주소는 버스정류소, 전기차충전소 등 공공시설물에 주소정보를 구축해 정보화 기술의 발전에 따른 플랫폼 공간과 현실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미래산업의 기준이 된다. 전동킥보드 주차구역을 사물주소라는 명확한 주소체계로 관리하면 서비스 사용자는 다양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의 설치 없이도 주소정보를 통해 주차구역 확인이 가능하며, 내년에 활용할 예정인 전동킥보드 통합앱 구축과 연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서비스업체는 무분별한 주차에 따른 수거 및 재배치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으며, 국민의 안전한 보행권 보장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촘촘하고 입체화된 주소체계 마련과 디지털 주소정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제1차 주소정보활용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한국국토정보공사(LX)를 주소정보활용지원센터로 지정했다. LX는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주소정보산업 발전을 위해 사물주소 확산 및 대국민 홍보 등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 정책 실현을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 권경현 한국국토정보공사 경기북부지역본부장

[천자춘추] 생활예술, 교육 없는 발표 가능한가

생활예술이란 실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예술, 즉 실생활에서 실용적 가치와 기능을 갖는 예술을 이른다. 생활체육이 건강 유지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일반인의 평생 체육 활동인 것처럼 생활예술도 각 지역의 동아리 문화가 확산되고, 문화예술 활동이 늘어나면서 보편화되고 있다. 예술적 창작 활동을 하는 아마추어, 즉 일반 시민의 참여가 가능한 예술 활동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있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의 문화자원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각 지역 동아리에도 다양한 예술 활동과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지자체나 문화재단의 지원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터무니없는 내용도 간혹 있다. 문화예술의 주요 지원 육성 기관인 모 지자체 문화재단의 예를 들어보자. 2022년 지역예술 활동 지원 사업 공고를 보면, 전문예술과 생활예술로 이분화했다. 이는 언뜻 잘 차려진 밥상으로 보이지만 생활예술 차원에서 보면 문제도 있었다. 사업공고 내용에 ‘강사료 지급 안 됨’ 조항을 넣어 지역 동아리 단체의 발표회 지원금에 발표회 소요 비용은 지원하되 강사료는 지원될 수 없게 했다. 생활예술의 경우 이는 어불성설이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예술의 창작 및 활동이 전문예술인의 교육 없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생활예술 교육사업은 지역 전문예술인의 일자리 창출 및 시민 친화적인 생활예술과의 동반성장이다.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지역의 동아리 단체에서 장기간 자체적으로 잘 성장시켜온 교육 사업도 꽤 있다. 강사료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동아리 단체에서는 회원 각자의 주머니를 열거나 강사가 재능기부 수업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런 경우 문화 다양성 증진과 생활예술 창작의 기회 확대 측면에서 ‘강사료 지원 안 됨’ 조항은 행정적 오류이자 향후 시정돼야 할 항목으로 보인다. 현재 각 지자체는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문화예술의 활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생활예술 활성화로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과 문화 다양성 증진, 그리고 시민의 예술적 재능을 발산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일상 속에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그로 인한 삶의 만족도를 보면 문화예술 행정은 문화예술이 보다 다양하게 창조되도록 지원 육성하는 일이며, 이는 전문예술뿐만 아니라 생활예술 지원 체계에도 촘촘하게 반영돼야 할 것이다. 이재영 ㈔한국예총 김포지회 부회장

[천자춘추] 지원사업, 민관협치의 꽃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모임과 단체가 있다. 취미·운동모임이나 시민단체부터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경제 지원을 받는 단체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건강한 지역사회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중간 지원조직은 이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 공모 및 위탁사업 방식으로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민간 단위에 직접 투입되는 예산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국가정책이나 지역사회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발전이다. 특히 발전 속도 측면에서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첫 번째로 비용 효율의 측면을 평가해야 한다. ‘눈먼 돈’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있다. 예산을 배정하는 쪽은 수탁자의 사업 진행을 예산 사용 규정과 모니터링 등으로 관리하지만 사업의 가짓수가 많아 공백도 있어 보인다. 사업 결과의 평가보다는 영수증과 사진 등의 증빙에 관리의 무게를 두는 듯하다. 두 번째로 사업비를 받기 위해 사업을 만드는 경우다. 심하게는 사업을 위해 단체를 만드는 경우도 보게 된다. 앞뒤가 바뀐 형국이라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다. 지원사업이 민간 협치를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업역량’과 ‘행정업무’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사업은 공시부터 제출된 제안서 평가 및 선정까지가 전반부다. 이후 실제 사업 운영과 정산 등의 결산까지로 마무리된다. 전반부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역량에 대한 입증과 판단이다. 제안서를 꼼꼼히 살피면 어느 정도 파악은 된다. 후반부는 결과에 대한 평가다. 현재는 비용 관리의 측면이 강조돼 있으나 점차 실제 산출물이나 진솔한 평가서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행정업무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꼼꼼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수반되는 지역사회 활동이 민간 협치의 꽃이 되기 위해서는 지원사업을 대하는 선의의 관점을 옹골차게 지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를 건실하게 꾸려 가기 위한 사업 기획 및 운영 능력을 개발하고, 행정업무를 원만히 처리해 민관이 상호 신뢰의 기회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박태원 디앤아이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천자춘추] 코로나보다 무서운 갈등 바이러스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타와 가상현실, 로봇 등 4차산업혁명이 온통 세상을 집어삼킬 듯 밀려와 우리들의 평범한 삶까지 재설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공상과학이 현실이 되는 이런 세상에서 현실 적응 노력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사방에서 충돌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밀어닥쳐 역사 속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당황스러워 했고 숨죽였으나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회복하며 활보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나마 마스크 쓰는 모습을 통해 코로나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음을 경각심을 잃지 않고 있을 뿐이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를 겪어오던 우리들 일상 앞에 이제는 유가, 환율, 금리,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위기를 알리는 시그널 들이 월말의 카드 청구서 처럼 계속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IMF와 금융위기에 이은 코로나까지 거의 10년 주기로 위기를 경험했기에 고난의 행군을 준비하며 움츠려 들기도 하고 계산기도 두드리며 기회와 위협을 부지런히 저울질 하는 중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냉정하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적합한 자를 솎아내는 체제이고 경쟁을 본질로 하는 ‘피로사회’ 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사는 체제를 냉정히 바라보고 직시해야 한다. 과거 20세기의 IMF처럼 21세기 지금 코로나19와 4차산업혁명, 환경파괴 등이 오롯이 취약한 개인에게 직격탄으로 해일처럼 밀려드는 것을 이렇게 계속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러우전쟁과 에너지 공급대란, 미중 패권경쟁과 갈등심화, 핵무기 법제화와 잦은 도발 등의 한반도 긴장고조 등 우리를 둘러싼 외부적 요인들이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더욱이 국가경영의 리더쉽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약화 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이 아닌 정쟁과 비방으로 가득한 국내의 정치수준은 불안과 위기를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건 바로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몰된 채 이기심과 그릇된 신념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들 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끊임없이 탐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역사가 그러하듯 모든 전쟁과 파괴, 저주와 공격의 원인은 바로 갈등의 불을 지피고 이익을 얻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진정되어 가는 이제 우리 앞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위기 속에서도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갈등산업은 성황 중하다. 군수산업, 후진적 정치체제와 일부 언론, 극단적 광신교 등 갈등에 기생하고 편승하여 차별을 강조하고 낙인찍고 편가르고 공포와 불안감을 확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사회에는 이념, 소득, 지역, 종교에 이어 세대(나이)와 젠더갈등까지 실로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지난해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갈등지수는 OECD 30개국 가운데 최상위권이지만, 갈등관리 능력은 27위라고 한다. 첨단기술과 거대자본의 위력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잘못된 신념과 광기를 멈출게 할 인간의 예지와 집단지성, 진지한 고백과 성찰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인간은 점점 왜소해져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지금처럼 갈등 관리 능력은 약해가고 갈등 생산은 나날이 커지고 확산되어 간다면 우리에게 또다른 코로나19나 전쟁과 같은 끔찍한 재앙이 오지 않을까? 코로나19 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이 마음의 전염병, 바로 갈등 바이러스이다. 오형민 부천대 비서사무행정학과 교수

[천자춘추] 겨울의 지혜

갑자기 찾아온 동장군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계절이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대문을 나서니 건넛집 마당 감나무의 까치밥이 눈에 와 박힌다.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뭇가지에 발갛게 물든 감 서너 개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까닭이다. 잘 익은 감들을 따내고, 새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까치밥은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오래된 풍속이다. 색색이 물든 단풍과 이제 막 나무를 떠나는 잎새를 보면서 자연의 지혜를 되새긴다.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은 내일을 위한 치밀한 준비다. 봄이 돌아올 때까지 살아내기 위해 수분을 내보내고 영양분의 소비를 막기 위한 노력, 줄기를 메마르게 하고 깊은 잠을 통해서만 춥고 메마른 겨울을 견딜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보는 이를 눈부시게 하는 오색찬란한 단풍은 치열한 삶의 과정 중에 잠시 반짝이는 윤슬 같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나무의 겨울나기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시의(時宜)에 따라 적게 쓰고 아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 지구적인 경제위기와 환경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래를 위한 일들에 가치를 둬야 한다. 조금 불편해도 우리의 후대들에게 희망을 남겨 두기 위해, 가치 있는 미래를 열기 위한 방법을 찾아 노력해야 한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플라스틱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려는 범지구적 노력에 우리도 적극 나서야 한다. 개인과 국가, 지구촌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2022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오래된 고난에서는 다소 벗어났다지만 겨울독감의 등장과 코로나 재유행 우려라는 걱정은 여전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명의 이기적인 배설물들로 인해 지구의 미래는 암울하고 희망의 별은 밝지 못하다. 지구 북반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참혹한 전쟁은 밝은 대낮에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서 매우 괴이하고 공포스럽다.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수북이 전해지는 비이성적인 현실에 부끄러움이 가득해진다. 어른이라는 사실 하나로도 미안한 일이다. 바른 삶의 태도와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헌신과 봉사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잊은 까닭이다. 가르침을 전하는 과정, 곧 교육을 외면한 까닭이다. 겨울을 견뎌내는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고난 속에서도 계속될 오늘을 살아내는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천자춘추] 지역 행사, 축제가 되려면

요즘 지방자치단체 현장을 보면 저마다 각종 문화 행사로 분주하다. 간헐적으로 초대를 받아 가기도 하고, 홍보성 광고매체를 보고 가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나들이를 떠났다가 우연히 현장 정보를 알고 방문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많다. 그 이유를 지자체 단체장 혹은 관계부서장에서 묻고 싶은 것이다. ‘과연, 시민들의 복지와 힐링을 위한 문화 행사에 관심이 있기는 한가.’ 준비되지 않은 행사에 선심성 예산을 투입하거나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책정해 졸속 문화 행사로 마무리하고, 요식행위의 일환인 행사로 마무리하고 싶은지 의심이 갈 정도로 미숙함 내지 원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행사를 유치하는 데 있어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노출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 여전히 정치적 이념을 버리지 못하고 특정 정치 공당의 프로파간다(선전 선동) 유형의 숨은 전략이 그 행사를 주도하는가 하면, 둘째, 예산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충분히, 그리고 적정하게 잘 쓰이지 못하는 까닭에 사람 동원하기에 급급하고, 출연진의 질적인 자격 논란의 여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초대 받아 참석한 특정한 사람들이나 관람객으로 참석해 각 지자체의 토속문화를 즐기려고 기대를 모았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이런 졸속 문화 행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문화 유치 현상을 보면 이 나라의 정치나 행정기관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더 나아가 이런 문화 행사에 익숙해진 국민이나 유치 상황을 간과하려 들거나 이용하려는 세력이 사라지지 않는 불온한 환경이 지속된다면 국민의 삶의 질과 국가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삶이 정상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문화 수준이 반드시 그 이상으로 따라야만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충분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충재 시인, 문학평론가

[천자춘추] 학교폭력, 변호사 조력의 장점과 한계

학교폭력 사건에서 변호사의 등장이 일반화돼 간다. 가해자 측 변호사의 학교폭력위원회 출석·진술이 불허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징계 처분은 위법해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도 이러한 추세에 일조했다. 학생들은 물론 부모들이 처음 분쟁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혹여 경험이 있더라도 절차상 불이익을 피하거나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등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다. 또 변호사는 학폭위에서 정당하게 가해 학생의 징계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징계 이후에도 사죄와 반성이나 피해 회복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소년법상 처분이라도 바라면서 형사고소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듯 변호사 제도는 학생과 부모들이 정당하게 방어권을 행사하고, 법이 허용하는 권리구제를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학교폭력이 새로운 법률시장을 형성하다 보니 변호사가 의뢰인의 일방적인 이익이나 홍보 가능한 성과를 앞세우기 위해 혐의 또는 피해를 부풀리거나 반대로 이를 축소하려 할 수 있다. 당사자 간 사실관계 다툼이 커짐에 따라 학교폭력위원회 심의·의결 절차가 진실을 가리고 적정한 징계를 찾아 합의를 도출해내는 순기능보다는 상처뿐인 승리와 굴욕적인 패배를 남기는 스포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관련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는 일이다. 변호사의 개입이 일반화되면서 학교의 중재 역할은 축소되고 학교장과 교사들도 사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도 문제다. 학교폭력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합의금과 수임료만으로 돈 천만원쯤은 우습게 깨지며, 부모의 재력에 따른 법률적 조력의 차이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돼간다. 물론 경제력의 차이가 법적 불평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징계는 반드시 적정(適正)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거나 무거운 상해를 동반한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한다면 응보적 정의에 어긋나고 재범 방지에 기여하지 못한다. 반면 인격적인 성숙에 도달하지 못한 청소년기에 저질러진 경솔한 행동 하나만으로 온갖 낙인을 찍어 선량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기회를 박탈하거나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조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는데, 여기서 건전한 사회구성원은 비단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해당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대석 법무법인 대화(大和) 변호사

[천자춘추] LH 공공주택 확대와 지자체 상생방안

최근 LH 국정감사에서 정부 3기 신도시 주택건설용지 가운데 민간 주택건설용지의 면적이 62%에 달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LH가 본래 취지와 달리 민간에 과도한 개발이익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따가운 지적이다. 최근 5년간 LH 사업부문별 손익현황을 보면 LH의 분양토지 사업이익은 연평균 4조원, 분양주택사업 수익이 2021년 4조에 육박한다고 하니 공공성이 최대가치인 LH에 과도한 개발이익 챙기기라는 눈총을 받을 만 하다. LH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토지수용방식을 통한 강력한 행정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으로 특히, 수도권의 주택공급사업은 수익이 보장된 사업이다. 물론 LH는 임대주택사업에 많은 재원을 투입함으로 나름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빠른 주택공급과 원활한 재원조달, 임대주택 운영을 위한 자금확보를 위해 저렴하게 확보한 주택용지를 민간에 빠르게 매각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택용지는 법에서 정한 절차대로 확정된 금액으로 추첨을 통해 입찰을 받기 때문에, 민간에 매각한다고 해서 더 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데 훨씬 용이하다. 이를 통해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는데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LH는 지방도시공사에 공공분양 토지를 일부 수의계약으로 매각하기도 하였다. 지방도시공사는 LH와의 계약을 통해 확보한 주택용지를 개발하면서 개발이익을 지방재정과 지역 기반시설 확충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성남도시공사나 하남도시공사 등 비교적 일찍 출범한 지방공사는 이를 기반으로 지자체의 핵심 중추기관으로 성장하였다. 이 같은 방식은 LH의 주택용지 민간입찰방식이 아닌 공모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우수한 건설업체 선정이 가능하며, 지역주민들의 니즈를 반영한 공공주택 건립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방공사의 수의계약방식 또한 민간참여 협력사업이기 때문에 민간업체와 상생할 수 있는 구조이며, 민간건설업체의 브랜드를 허용하여 민간주택용지와 크게 다를 수 없다. 하지만 최근 LH는 공공분양용지를 지방공사에 수의계약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철회하고 지분참여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3기 신도시 건설에 지방공사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 되었다. 이유는 재정이 열악한 지방도시공사들은 LH와 수의계약을 한 뒤, 잔금을 미루면서 민간업체에게 재원마련을 떠넘기고, 이익만 가져간다는 LH 주장이다. 이번 국정감사의 지적에서 이러한 LH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지방공사와의 상생을 도외시한 LH는 결국 과도한 이익을 챙겼고,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을 쉽게 해제하여 가져간 개발이익은 지역을 위해 어떻게 재투자 했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LH는 기반시설 조성을 대가로 LH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추후 3기 신도시 개발에 LH가 공공주택 비율을 확대한다면, 지방공사의 참여가 보다 용이하도록 상생방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지방공사의 성장과 참여가 LH의 공공성 강화와 국토의 균형발전 정책의 실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혁 시흥도시공사 도시개발실장

[천자춘추] 당장 멈춰야 한다

서민들의 삶이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금리와 환율의 높은 인상은 우리 사회를 심각한 위기로 치닫게 하고 있다. 지난 10월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8월 국제수지’에 따르면 8월 경상수지 적자가 30억5천만달러에 이른다. 순수한 의미의 경상수지 적자는 2012년 1월(-22억9천만달러) 이후 10년7개월 만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으로 상품을 수출해 생기는 흑자로 다른 부문의 적자를 메워 전체 대외 거래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데 수출마저 부진하다면 이제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난국을 극복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나라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정치가 정쟁에 휩싸여 민생과 나랏일은 뒷전이다. 민주노총을 ‘김정은 기쁨조’로, 야당 의원을 향해서는 수령께 충성한다고 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국정감사장에서 떠들어 대는 자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했으니 이 정부에서 노사정의 협의와 타협을 기대하는 일은 출발부터 이미 틀렸다고 보는 게 맞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엄정 중립의 입장에서 국정을 감시, 감독해야 할 감사원장은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답변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특히 대통령과 집권층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의 일단이다. 총체적 난국의 압권은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다. 남북 간 군사적 대결과 전쟁연습은 도를 넘었다. 치킨게임과 같은 남북 간의 ‘강경 대 강경’의 충돌은 지금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대북 ‘선제타격’을 공언했고 취임 후 한미 군사훈련 또는 전쟁연습을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가장 빈번하게, 가장 강도 높게, 가장 큰 규모로 실시했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천명한 데 이어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했다. 이는 재래식 국지전이 곧바로 전면적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결정으로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최근 반복되는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무력 시위는 지정학적 단층선(Fault Line)인 한반도 안보환경을 극도로 악화시켜 전쟁의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어느 한쪽이 오판할 경우 한반도는 상상할 수 없는 대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당장 멈춰야 한다. 윤기종 前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정치학 박사

[천자춘추] 우리 시대 미술의 형태 사색과 유용성

예술에서의 사색은 화두처럼 던져 놓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창작의 언어가 천차만별이듯 감상도 무한하게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시대의 순수미술과 그 창작 언어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미술은 역사적으로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분야였고, 물질 만능 자본주의가 점령한 작금의 미술시장에선 더 심화하는 추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전통적 미술과는 다르게 현대의 시각예술은 산업, 경제와 결합하면서 개념의 폭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확장되었으나, 반면 전통적 순수미술이 지켜내던 철학적 깊이가 가벼워지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사실이다. 일부 계층만이 영위했던 봉건적 미술은 왕족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소수의 특정 작가들의 천재성을 키워나갔다. 현대 시각예술은 불특정 다수인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창작의 무한한 다양성을 갖게 됐고 이는 문명과 사회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진화로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엔 그렇지 않았을까. 구조류(舊潮流)와 신조류(新潮流)가 부딪쳐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현재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니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견고한 받침이 되는 전통적 예술을 디딤돌로 현 시대에 맞는 다양하고 새로운 표현방식을 통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창작 언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오늘날의 시각예술은 지극히 탈봉건적이며, 미술사적 영향력의 과감한 확대다. 특히 정보통신의 획기적 발달로 이루어진 예술 영역의 확대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우리 사회 대다수 구성원의 삶을 위한 매우 중차대한 철학이며, 현대에서 예술이 어떻게 우리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숙련된 표현을 통해 얼마만큼 품격 있는 사색과 감동을 전달하는가?’가 중요했던 지난날의 순수미술 개념과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떤 즐거움과 사색을 줄 수 있는가’를 가치로 둔 오늘의 시각예술의 개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예술이 더욱 인간의 삶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비예술인가’라는 물음보다 ‘무엇이 우리 삶에 더 유용한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이구 문화예술법인 라포애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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