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소년엔 사랑,노인엔 공경을

청소년선도 문제와 노인복지 문제가 현대사회의 일만은 아니다. 예전에도 있어왔다. 옛 말에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나이들어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도 했다. 이런 생활속 전래 속담은 예전에 있었던 청소년문제며 노인문제 등을 반영한 것 들이다. 다만 시대에 따라 문제성은 다르다. 농경사회에서의 청소년선도 노인복지는 비교적 단순했다. 생활상이 단순한데다가 사회적 도덕 규범이 아주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산업사회에서는 생활상이 다양해지면서 도덕 규범이 둔화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정보사회에서는 생활상은 복잡하고 도덕 규범은 아주 약해져 가고 있다. 여기에 현대사회는 1960년대까지 이어온 전통적 농경사회와 그 이후의 신흥 산업사회에 이어 2000년에 접근하면서 급격히 발달한 정보사회 등 뒤죽박죽 살아와 더욱 혼란스럽다. 며칠전 집 베란다의 화분들이 꽃을 너무도 아름답게 만개하여 장관이었다. “사람들 좀 오게 해서 꽃구경시켜야 겠다”고 했더니 남편 말이 엉뚱했다. “당신이나 좋아하지 요즘 사람들은 삭막해서 별 감흥을 못느낀다”는 것이다. 딴은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정서면 또한 혼란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청소년선도 문제나 노인복지 문제 역시 이처럼 예전같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 다단할 수 밖에 없다. 정보사회의 개방된 물결은 유익한 것이든 유해한 것이든 걷잡을 수 없이 도처에 넘쳐난다. 노인복지 수요의 개념도 점점 다양하다. 이에 따른 문제 유형 또한 열거할 수 없을만큼 가지가지다. 그러나 기본은 있다. 청소년선도는 사랑, 노인복지는 공경으로 시작하는 것 이상의 왕도가 없다. 이건 그간의 체험이다. 수년전 안양경찰서에서 맡았던 청소년문제 상담에 이어 지금의 노인사업을 해오면서 직접 터득한 결론이다. 물론 예산과 시설이 필요하지만 청소년 문제엔 그보단 사랑, 노인복지는 그보단 공경이 앞서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빈 그릇과 같아 실효가 있을 수 없다. 가령 일곱 여덟가지를 잘 못하는 청소년에게 잘 못한 것만 나무라기 보다는 잘 하는 두 세가지를 칭찬해주는 게 다른 잘 못을 고칠 수 있게 해준다. 노인복지도 겉치레나 체면치레가 아닌 진정으로 사회가 받드는 공경심이 전해질 때 비로소 긍지를 갖게 해 드릴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청소년기를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다 노년이 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은 아직 미완성 인격체인 반면에 노인은 인생의 쇠약기에 있으므로 청소년문제와 노인문제는 사회가 관심을 가질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래야 또 사회가 건강해 진다. 청소년에게 사랑, 노인에게 공경심을 갖는 건 곧 사람다운 인성이다. 여기에 어떤 사회적 조건이 있을 수 없다. 거의 무한한 사랑과 공경심이 갈구되는 것은 정서가 삭막한 정보사회에서 인간사회의 인성이 더욱 그리운 탓이다. /이지현 (사)한길봉사회경기도지부장

기고/국가재난 대비는 119 '소방청' 의 몫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순박한 우리 조상들이 다른 나라 민족에게 크고 작은 침략을 946회 정도 받았다. 그동안 나라를 위하고 후손들을 위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침략자를 물리치고 나라를 찾아 세워 오늘을 있게하기 까지는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에서 오는 저력이 컸다. 일제 압제에서 해방이라는 기쁨을 누리는가 싶던 아버지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6·25남침을 당해 허술한 무장으로 전쟁터에 나가 피를 흘리고 죽어가야 했던 몫도 아버지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북은 승리자도 패자도 없이 철조망 하나로 갈려 반세기를 오지도 가지도 못하며 부모, 자식들에게 눈물의 세월을 만들어 준 것도 아버지들의 욕심 탓이었다. 그 욕심의 대가로 폐허가 된 남쪽이나 북쪽의 생활은 살아가기 힘든 50~60년대였다. 가난의 비참한 생활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국가 지도자의 결단은 아주 중요하였다. 그 결단은 바로 ‘자유 수호군’이란 깃발을 부여잡은 월남참전 용사들의 파병이었다. 젊은 용사와 아버지 용사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벌어들인 달러로 경제를 살려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한 사회는 서서히 긴장을 풀며 이제는 쉬자, 놀자는 생활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따라서 가난으로 움츠러 들었던 사람들은 생활의 여유로 정신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그 해이함은 서서히 사회의 대형재난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 대표적인 대형 사고가 71년도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으로, 한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한 가스 폭발은 순식간에 고층까지 화염으로 뒤덮어 163명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가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 후에도 삼풍백화점의 붕괴, 성수대교 상판 붕괴,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및 방화사건, 서울 홍제동 주택화재 붕괴 등 인위적인 재난과 태풍 등 자연적인 재해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 대형 재난 사고 현장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해보려는 용감한 아버지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한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119 소방구조대’인 소방관이요, 아버지들이다. 소방의 사명과 책임 역할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는 ‘소방의 몫’을 과연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수십 년간 피와 땀을 흘리며, 더욱이 고귀한 목숨까지도 바치며 오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평안한 행복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갖은 고통과 절망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인 소방으로 발전시킨 ‘소방관 아버지’들의 노고에 격려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 그러한 소방관들의 노고를 간과하고 국민들의 염원인 ‘소방청’의 신설을 재난관리청이란 조직으로 해 ‘소방의 몫’을 빼앗으려는 사고와 현실은 마냥 서글프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 그대들이여! 당신은 화염 속에 갇힌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속에 뛰어 들 수 있는가?”라고. 각종 대형 재난사고 발생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급박하고 위험한 불과 유독가스가 가득 찬 연기 속 또는 물 속에서, 또는 절벽의 산 속에서 인명 구조활동에 피와 땀을 흘리며 악전 고투할 때 그대들은 넥타이 맨 양복차림으로 뒷짐지고 실적의 숫자나 챙기지 않았는가. 과학적이고 사명감과 책임감이 투철하며 고도의 훈련과 숙달된 능력으로 생명을 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소방관들을 믿고 ‘소방의 몫’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소방청’을 신설하는 것이 필연적이라 생각한다./한영석 (포천소방서)

기고/'아마추어 문화활동'을 제안한다

문화정책에 관한 관심으로 21세기를 준비하는 세계 각국의 문화정책에 대해 조사연구를 하면서 필자는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문화기관들이 ‘아마추어 문화활동’ 활성화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현황을 살펴보자.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 초일류 강대국이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의 창조력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며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시장 수요와 일정거리를 둔 ‘건전한 비영리부문’과 실질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며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하는 ‘상업적인 창조산업’, 마지막으로 공공의 삶에 생기를 부여하고 예술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아마추어 문화활동’의 촉진이 그것이다. 일본이 21세기 유망직종의 영역에 ‘생활문화, 인력개발’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창조력과 상상력의 원천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과거 비영리예술에 관한 정책은 분산되었고 전통적으로 정부는 소극적이고 민간부문이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자평하면서 ‘비영리예술의 수준을 증진시키려는 정부의 목표’를 강조하고 있다. 1999년 1월부터 시행된 ‘예술가 소득지원법(WIK)’을 통해 ‘어떤 사람이든 전문적으로 예술 행위를 계속하고 있음을 보일 수만 있다면’ WIK에 의거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인상깊다. 통일독일 이전의 동독의 경우는 문화부 내에 ‘아마추어 예술활동 위원회’를 설치하여 어린이를 포함한 아마추어 예술활동 참여인구가 1백 40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활동부문을 수적 중요도 순으로 볼 때 합창단, 댄스오케스트라, 취주악단, 예술사진술, 아마추어 영화 서클 및 촬영소, 합창클럽, 조형 및 응용미술 서클, 아마추어 연극, 무용(민속춤부터 고전발레까지), 풍자극, 시문학서클, 교향악단, 실내악단, 인형극단, 무용 및 곡예댄스, 혼합민속그룹, 버라이어티그룹, 마술사서클, 무언극 그룹 등이다. 1969∼1970년의 루마니아에서는 800여명의 교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총 36개의 인민예술학교가 무대감독,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안무가들을 포함한 1만 2천여 명의 아마추어들을 위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정도였다. 1971년 개최된 제10회 ‘음악 무용 축제’에는 약 20만 명의 연예인들을 포함하여 약 8천500개의 그룹들이 참가하여 경연하였고, 같은 해 10만 명의 배우를 포함한 5천 개 이상의 연극그룹들이 제6회 ‘아마추어 연극그룹 축제’에 참가한 사실은 아마추어 예술운동이 대중운동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으로 살펴본 세계 각 국의 최근 또는 과거의 사례는 국가 또는 지역사회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아마추어예술활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문화예술분야 NGO들이 문화예술교육활동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거나 시도하고 있는데, 특히 안성의 ‘달팽이학교’는 이미 구체적인 실천으로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대학도 문화예술 전문교육기관으로서 앞서 살펴 본 다른 나라의 사례와 같은 실천을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도내 각 지역에서 열정으로 지역문화를 일구는 일꾼들을 찾아 다니고 있다

기고/밝은 미소와 상냥한 인사를

90년대 서양사람이 한국을 여행한후 소감에서 검은색 자가용이 많은 나라, 권위주의적이며 근엄함이 표정에 배어있는 나라라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폐허가 된 땅을 일구어 내느라 여유가 없었고, 산업부흥을 일으켜 한강의 기적을 이루다보니 앞만보고 달리던 습관이 몸에 배어 제2의 천성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해방후 수십년 이어져 내려온 군사문화에서 비롯된 경직된 표정과 권위주의적인 사상까지 몸에 배어 있던게 사실이다. 보릿고개도 잊은지 오래고 IMF 사태도 졸업했건만 반짝했던 얼마전 전성기의 추억을 잊지 못해서 그런지 모든 국민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지고 근심기가 역력하다. 보름전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아파트 뒷동산인 영장산을 산책하던 중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했다가 아주 낭패를 겪은 일이 있다. 새벽 어둠이 걷혀가는 산자락에는 발빠른 장끼가 푸드득거리며 경쾌하고도 명랑한 특유의 아침인사를 하기에 나도 덩달아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더니 묵묵부답인 표정에 뭐가 잘못된 사람인냥 힐끔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젊은 나이에 안됐다는 표정인지, 아니면 뭐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인사를 한 내쪽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에 무슨 일이 잘못되었나 아니면 삶이 고달퍼 만사가 귀찮은지 그저 무표정한 얼굴에 말없이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장거리 산행을 하다보면 낯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생기에 넘치는 밝은 표정으로 수고하십니다, 반갑습니다 하며 가파른 길을 오르는 자에게 양보하며 건네주는 정겨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과 용기와 위로를 느끼는 것은 오래된 관례다. 하물며 이웃에 사는 동네 사람끼리 만났는데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니 참으로 민망하고 쑥스럽기 짝이 없다. 한번 시작한 인사를 그만두자니 뒤를 이어 오는 사람에게는 미안하기도 해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 인상이 경직된 상태에서 인사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 목소리가 너무 허스키해서 그랬는지. 내일은 내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해보자, 매일같이 해보자 오기가 발동했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인데 오늘 하루 모든 일이 두루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십시오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인사를 계속해도 반응은 여전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십여일이 지난 어느날 새벽 먼발치에서 나를 알아본 상대방이 먼저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아! 의식과 정서가 바뀌고 있구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정 다감하게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아니 고맙습니다라며 허리숙여 인사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밝아지며 엷은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가 경쾌해지며 마음이 즐거워졌다. “건강하십시오 또 행복하세요.” 이땅의 모든 사람들이여 밝은 얼굴로 명랑한 목소리로 희망에 찬 내일을 설계하며 힘차게 외치자.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임정복 경기도의회 의원

기고/'2005 경기방문의 해'의 준비

대한민국 인구의 50%인 2천5백만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은 우수한 접근성과 각종 관광자원의 다양성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시장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특히 풍부한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경기도는 동북아시아 관광의 보석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가진 경기도는 외국인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가장 선호하는 지역인 동시에 세계문화 유산 ‘화성’을 비롯, 용인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 평화안보관광지 그리고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연결하는 관광벨트가 바로 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은 2002년 5천3백만명이었고, 2006년에는 7천2백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잠재되어 있는 관광자원은 풍부하나 상호 연계가 다소 부족하고 일부 인바운드 여행사들의 관심부족으로 외래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경기도는 선진형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고 관광 자원을 상품화하며 지역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등 관광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경기도 관광활성화를 위해서는 호텔, 여행사 등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본 인프라의 확충이 필요하며 관광지 및 관광자원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경기도에서는 기존 서울중심의 관광산업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관광 중심지로 발돋움 하기 위해 2005년 경기 방문의 해를 준비하고 있다. ‘2005 경기방문의 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경기도에서는 자원봉사 프로그램 운영을 활성화하고, 친절운동 및 청결캠페인 등 남녀노소 모든 도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및 사업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2005 경기 방문의 해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경기도의 사업추진 방향은 관광인프라 확충 및 정비, 경기도 관광홍보네트워크 구축 및 상징체계개발, 세계적 축제 및 이벤트 개최지원, 다양한 관광상품개발, 도민의식 제고 및 참여촉진 등 크게 5개의 추진방향으로 설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2005년 경기도 방문의 해의 준비를 통해 경기도 관광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경기도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며, 1천만 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도와 의회간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유지되고 도민의 폭넓은 참여와 성원이 있다면 ‘2005 경기방문의 해’는 성공적인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2005 경기방문의 해를 계기로 성숙된 시민문화를 계속적으로 유지시키고 관광인프라의 개발 및 국내외 홍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하며, 특히 도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지역고유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추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규진 도의회 문화여성공보위원장

기고/님비현상

‘님비’란 ‘NOT IN MY BACK YARD’의 약자로, ‘내 집의 뒷마당에는 안된다’는 의미다. 님비란 말이 생긴 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1987년 미국 뉴욕 근교의 작은 동네인 아이슬립이란 곳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버릴 곳이 마땅치 않자, 쓰레기들을 무작정 바지선에 싣고 항해를 나섰다. 이들은 쓰레기를 받아줄 곳을 찾기 위해 미국 남부를 떠돌아 다녔지만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다. 미국 내 모든 지방에서 외면하자 남미의 이웃나라인 멕시코와 벨리즈, 바하마까지 갔지만 모두 ‘노탱큐!’ 쓰레기는 바다 위에서 6개월 동안 6천마일을 떠돌다 결국 아이슬립으로 돌아갔다. 하긴 자기동네에서 조차 외면한 쓰레기를 남의 동네에서, 남의 나라에서 받아줄 리가 있겠는가. 님비라는 말은 그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님비현상과 비슷한 말이 ‘바나나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동네 사람 근처에는 절대 아무 것도 짓지말라(Build absolutly noting anywhere near anybody)’는 영어의 약자다. 님비현상은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골칫거리다. 공익을 목적으로 한 건물이나 시설물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주장하며 저항하는 것이 님비현상의 단면이다. 대개는 화장터나 쓰레기 소각장, 분뇨처리장, 도로시설을 건설하려 할 때 해당 지역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같은 시설이 필요한 줄은 알지만 우리 동네는 안된다”라는 님비현상으로 인해, 강력한 전제정치를 펴고 있는 사회주의의 국가를 제외한 많은 국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시행에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 수원시도 예외가 아니다. 수원시에서도 쓰레기소각장, 화장장 이전 건립 등의 문제로 홍역을 치른바 있고, 지금도 우만고가도로 건설문제나 고색동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건설문제 등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곤란을 겪고 있다. 물론 그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소음·악취 등으로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고생해서 마련한 집이나 땅이 가격마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해당 주민들의 어려움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런 시설들을 수원 지역에 살고 있는 103만 시민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같은 사업들이 늦춰지면 그 손실은 전체시민들에게로 돌아간다. 특히 도로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우리 수원시의 가장 큰 현안인 교통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도로확충사업 및 고가도로·지하도로사업, 우회도로 개설 사업들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같은 사업들이 추진되려면 무려 13~14년이 소요되지만, 우리는 시민들의 고통을 단축시키기 위해 무려 2천200억원이라는 예산을 확보, 2~3년안에 모두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업들이 완료되면 수원은 정말로 ‘더불어 사는 행복한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수원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이 도시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서 우리 모두 ‘공익’과 ‘공공성’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박승근 수원시 공보담당관

기고/홍난파와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위 노래는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귓가에 머무르는 ‘고향의 봄’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중얼거리며 복숭아꽃 살구꽃으로 대표되는 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준다. 더군다나 세월의 나이를 먹은 이들은 어린 시절 냇가를 뛰어 다니면서 개나리를 꺾고 소여물을 먹였던 마음속 ‘고향의 봄’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부르고 또 불러왔던 ‘고향의 봄’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그리움 속에 담긴 아름다움과 목 메일 듯한 안타까움은 부르는 이나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애잔하게 고향으로 향하게 만든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껏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일제에 나라와 고향의 따스함을 빼앗긴 슬픔을 달랬으며, 6·25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고향을 떠난 이들 가슴깊이 남아있는 노래인 것이다. 고향의 봄을 생각하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정겨운 마을의 아침 굴뚝으로 피워오르는 구수한 밥 냄새도 떠올리며 돌아오는 올 봄에는 꼭 가리라 못 가면 내년 봄에는 꼭 가리라, 다짐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봄을 시작하는 요즘 지난해 한 모임에서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 홍난파가 포함된 것과 관련하여 지난 28일 경기도음악협회 주최로 ‘난파 홍영후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 심포지엄’이 열려 다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심포지엄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다듬고 걸러야 할 것들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발전적으로 논의를 한 후 이를 적용시켜 나간다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과를 분명히 하여 생애에 이러 저러한 이유로 ‘단순 친일행위’를 한 것과 한 사람의 모든 생애가 ‘친일파’로 단정 지어지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가피한 일시적 친일로 인해 국가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될 수 있는 큰 업적들이 전면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홍난파의 경우 학계의 논란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 음악계에 혁혁한 공을 남긴 것은 물론이고, 방송국에 근무하던 중 흥사단 단가를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1936년 도산 안창호와 함께 일제로부터 심한 고문을 당한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올바른 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해 온 것은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기에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해를 가한 친일인사들을 가려내는 작업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으로나 학계, 전문가 집단에서도 논란이 많은 인사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을 기해 검증을 거치는 일에 노력을 할애하였다면 보다 올바른 친일청산이 이루어 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민족이 ‘고향’이라는 단어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도 매년 설날과 추석 때 고생길을 헤치고 고향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봄 우리의 정다운 고향에 따사로운 봄이 돌아와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앞동산을 거닐며 ‘고향의 봄’을 부르는 일을 망설여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강성구 국회의원(오산.화성)

기고/이라크전 우리가 가겠다

이라크전 개전이후 TV뉴스의 대부분은 미·영 연합군의 바그다드 공습장면과 모래바람 속에 사막의 전장에서의 격전모습을 비추고 있다. 우리는 안방에서 마치 한편의 전쟁영화를 보듯이 남의 일처럼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53년전 그와 똑같은 상황으로 같은 민족끼리 싸워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와 우방의 젊은이들까지 피를 흘리고 싸운 곳이 바로 이 나라 일진대 당시의 그 처참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본인 또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그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잃어야 하는 아픈 세월을 보내고 이제 오십 중반의 반백의 나이가 됐다.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간에 명분과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란 극히 어렵다.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과 영국의 중동지역에서의 세력을 넓히려는 패권 전쟁과 세계 2위의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석유쟁탈 전쟁으로 여론이 분분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 전쟁 때문에 정부도, 국회도, 사회단체도, 세대간에도 싸움을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생각해서 파병결정을 내렸지만 “이쪽말도 맞구요! 저쪽말도 맞고요!”하고 계시니 참으로 안타깝다. 반대론자들은 “왜!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내서 피를 흘리게 하며 그들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가?”라고 하는데 지당한 말씀들이다. 나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해병대에 보내서 현재 군생활을 하고 있으니 남의 일이 결코 아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우리나라가 어려웠을때 도와준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을 잊었는가? 그들과 함께 흘린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전투병도 아닌 건설공병과 부상자들을 치료할 의료진 몇 백명 정도 보내주는 것인데… 즉 혈맹관계 있는 미국을 도와주어서 의리도 지키고 전후 복구사업에도 참여하여 국익을 챙겨보자는 뜻이다. 이것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우월성은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이제 파병안의 결정은 국회로 넘어갔다. 모든 국민의 관심과 시선속에서 과연 그 결정이 어떻게 날까? 운명의 그날을 기다려 본다. 그러나 그 결정이 어떻게 나든 국민 여러분께서는 걱정 하지 마시라! 그리고 더 이상 분열되어 싸우지 마시라! 그 아까운 우리의 젊은이들을 뜨거운 전쟁터에 보내지 않기 위하여 우리 해병전우들이 가겠다. 우리에게는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무적 해병정신으로 무장된 전우들이 얼마든지 있다. 다시 한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아마 기백명이 아닌 기천명, 기만명은 몰려 올 것이다. 언제든지 불러만 주시라! 본인을 비롯한 많은 해병전우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제발 싸우지들 마시라! 지금부터라도 하나로 뭉쳐서 천만년 우리 후손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데 열과 성을 다하자!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을 힘들게 하지 말자! /한성섭 경기도해병대 전우회장

기고/황혼, 그 따스한 아름다움

요즘 우리 사회에는 명예퇴직이나 구조조정 등으로 일터에서 나온 많은 전문인력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놀고 있다. 자녀를 다 키웠거나 여유가 있는 분들은 동네 사랑방이나 취미 생활을 즐기고, 조금 더 여유있는 분들은 해외여행이나 골프를 즐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직금을 조금씩 축내면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어떤 분은 상당히 괜찮은 직업을 갖고 많은 활동을 하신 분인데, 노년에 부인은 돌아가시고, 외아들은 미국으로 이민간 상태에서 얼마 남지 않은 전세금을 빼서 병원에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였는데, 그나마 그 병원에서 노인클리닉실을 폐쇄하는 바람에 오갈곳이 없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남의 일 같지 않게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통계청의 추계에 따르면 어느덧 우리나라도 노인부양률이 10%에 달한다고 한다. 노인 부양비율이란 15~64세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말하는데, 이는 곧 우리가 부양해야 할 노인층의 비율이 현재 10%에 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비율은 2030년에는 29.8%에 달할 전망이다. 즉 10명의 65세 미만 인구가 3명의 65세 이상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령화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물론 복지정책이다. 복지재정을 확립하여 노인들에게 국가에서 인간적으로 살 만큼의 연금을 주면 된다. 그러나 단지 노령 인구수에 따라 일정액의 복지재정을 확보한다는 식의 계획은 그 엄청난 부담액으로 해서 실현가능성도 거의 없고 설사 재정이 확보된다 해도 너무 낭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령인구 중에는 건강과 전문적인 능력, 그리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함께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국가가 적절히 일할 기회와 동기를 부여해 준다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아무런 물질적 대가나 보수 없이도 기꺼이 사회를 위한 봉사에 나설 것이다. 우리 주변을 한번 잘 살펴 보면 봉사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어르신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휴지를 줍고 다니시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또 나의 주변 어른들만 해도 교육상담이나, 교통지도나, 불우청소년 돕기 활동이나, 장애아 돕기와 같은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일전에 TV에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하러 우리나라에 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맑고 활달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80세 가까운 그분의 소탈하고 활기찬 얼굴을 보면서 감동과 감사함을 느꼈다. 언젠가 그분은 토크쇼에 나와서 나이가 먹으니까 좋은 점은 쓸데없는 욕심이나 고집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좌절된 꿈과 질병과 능력상실, 궁극적으로 죽음까지도 모두 인간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나 또한 교장 임기가 중임을 한다고 하더라도 4년 정도 남았다. 그리고 정년 전까지 5년이 더 남았다. 요즈음은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많이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의 삶도 목표 없이 흐르는 대로 살아왔는데, 덤으로 사는 노후를 굳이 목표니, 꿈이니 그런 것에 매이고 싶지 않으니까. 그동안 외틀어지고 남루한 내 모습 들여다 보느라고 다른 사람 돌아 보지 못하였다. 이젠 나도 누군가를 위해 따스한 삶을 살고 싶다고 소망한다.

기고/법학교수의 변호사 자격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금 한국법학교수회가 일정한 범위의 법학교수에게 변호사자격부여를 입법부에 청원하고, 그에 대해 대한변협은 반대하고 있다. 그 당부를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토론이라도 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심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근년에 들어 민주화되면서 일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도처에서 밥그릇 다툼에 기초를 둔 대립양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 변호사회가 대학교수들의 변호사로서의 실력 운운하는 것은 아마도 대학교수가 전공에 따라 특수과목에는 깊은 실력은 있으나, 변호사로 갖추어야 하는 소송법실력 내지 송무경험이 없어서 변호사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의미라면 일부는 수긍이 가는 점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그 경험, 소송법의 지식이 없는 것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고, 소송법등 전공이외의 타법분야는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해 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의뢰인이 신뢰가 안가면 대학교수로서 변호사 자격을 갖는 사람을 안 찾아 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학교수가 더러 법정에 선다면 교과서와 현장실무가 어떻게 다른가와 법을 공부한 학자, 실무가는 어떤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는가를 강단에서 실감있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학교수에게 변호사자격을 부교수이상 10년 경력을 가진 자로 한정한다고 할 때, 과연 몇 명이나 변호사 개업을 할 지도 의문이다. 그 자격요건으로 보아 대부분이 50세 이상이 된 사람이 그에 해당할 것이고 변호사를 주된 업으로 하기에는 연령적으로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면 변호사회가 우려하는 자기네 직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리라 본다. 변호사님들이 들으면 좀 기분이 나쁜 말이 되겠지만, 변호사들 중에는 독일등 선진국의 신이론과 판례를 몰라서 소송상 어려움을 겪는 것을 상당히 보아 왔다. 그리고 실력은 있으나 성격상의 이유, 기타 본인의 철학상 변호사자격을 가지고도 학계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드물게나마 교수들이 소송실무의 경험을 얻을 기회를 갖는다면 산 법학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피력하는 바이다. 솔직히 말한다. 나는 60년초에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 63년 3회에 10명, 64년 4회에 22명, 65년 5회에 11명, 66년 6회에 16명, 67년 7회에 5명등 극소수를 합격시켰던 시절 그 당부는 차치하고, 그 상황에서 우리 대학교수가 변호사자격을 달라는 것은 명분도 없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80년대에 들어와서 매년 300명씩 뽑다가 90년대에는 점점 숫자가 늘어 지금에 와서는 1,000명 정도가 된 마당에 과거 자격부여를 거부하던 상황이 변하고, 명분도 사라졌고, 오히려 법학교육(실무와 연결된 법학교육)에 나쁜 영향만 주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마디 더 언급하거니와 이 문제의 찬반이 더 이상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은 최고 지성을 자랑하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람들로 모인 법학교수와 변호사들이 추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리고 변호사회의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나 국회는 그 찬반을 좀더 균형 있게 고려하여 먼 장래를 내다보고 우리 법학교육에 미칠 영향을 잘 살펴서 결론을 내 주길 바란다. 국회법사위원회는 대부분이 법조인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장·단점을 형평있게 고려하여 결정하고, 어느 단체의 이익만을 대변하거나, 압력단체의 압력에 굴복하는 식의 결정은 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기고/어려서부터 '경기 米와 친근하게'

우리민족에게 쌀은 단순한 곡물로서의 의미보다 더 크고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릴적 밥상에서 밥풀이라도 떨어뜨리면 큰 잘못이라도 지은 것처럼 미안해 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그 귀하고 중하게 여기던 쌀이 최근 연속된 풍작과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식생활 패턴이 고급화 됨에 따라 소비량이 줄어들어 남아 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주변에 널려있는 서양음식을 잘먹어야 유행에 뒤지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우리 고유의 음식물은 등한시하고 햄버거 등을 많이 먹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비만 등 서양음식의 문제점 등을 인식하여 소비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예부터 경기도는 서울을 감싸안듯이 위치하여 서울과 같이 성장하여 왔으며, 이제는 경기도가 인구 1천만명을 넘었고 올 하반기에는 인구면에서 서울을 앞지를 거라고 한다. 이렇게 거대도시인 경기도에서 생산하는 경기미는 지난해 3백만95만2천섬으로서 자급도로 볼 때 65%이며, 1천만 경기도민 만이 먹을시 약 7~8개월 밖에 먹을수 없는 양이다. 우리 경기도는 수도권 대도시 지역과 농촌지역이 혼재한 도시로서 양보다는 질에 우선 순위를 두어 정부보다 앞서 경기미 품질고급화를 위해 지난해에는 추청 등 고품질벼 재배면적을 10만 7천㏊(재배 면적의 90%이상)로 확대하였다. 또한 도내 RPC(미곡종합처리장)에 고품질을 생산하도록 색체선별기, 싸레기선별기, 저온 보관시설, 완전미 생산시설 등 고품질쌀 가공시설을 지원하여 ‘경기미는 밥맛 좋은 고품질 쌀’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였다. 우리 경기도의 대표적인 브랜드 쌀인 임금님표 이천쌀, 대왕님표 여주쌀, 화성 수라청쌀, 안성의 안성마춤쌀, 평택 추청쌀, 양평 맑은 고을쌀, 양주 바이오 임꺽정쌀, 김포 금쌀, 용인 백옥쌀, 파주 통일로가는 길목쌀 등도 다른 도(道) 쌀보다 80㎏당 2만~5만원 정도 더 받고 거래되는 실정이다. 쌀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소가 균형있게 들어있어 어려서부터 밥을 잘 먹으면 건강하고 공부도 잘 할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도에서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쌀 위주의 식생활 습관을 가지고 경기미 밥맛에 익숙하게 하여 성장하여서도 경기미만을 찾을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학교급식용 정부양곡을 지난 2001년 3월 1일부터 신곡으로 연산을 바꾸어 공급하고 있다. 또한 정부양곡의 도정도 10분도에서 시중유통 일반쌀의 품질과 같이 12분도로 상향조정 하여 2001년 7월 1일부터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내 학교에 급식시설이 없어 위탁하고 있는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조리시설을 갖춘 학교의 급식용 쌀은 전량 경기도에서 생산 수매한 경기미로 학생들에게 공급하고 있으니, 일부 학부모나 교사들이 생각하는 미질이 떨어진다거나 값싼 타도 쌀을 우리의 어린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기를 바란다. 아울러, 일부 위탁급식학교에서 경기미를 사용하지 않는 학교는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위탁급식업체간의 협의를 통하여 맛좋은 경기미를 사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고/이라크 전쟁을 보며

마침내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이 먼 나라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의 싸움이라고만 간단하게 넘길 일이 못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국제 유가 동향이 심상치 않았고, 이것이 한국에 살고 있는 누구에게나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싫든 좋든 세계는 이미 하나의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있어서 지구 반대편 먼 오지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 하나도 우리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세계의 모든 이목은 이라크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긴장하여 예의 주시하는 한편 마음 깊은 곳에서 일고 있는 불안감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사태는 머나먼 이국에서만 벌어지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때 우리들 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상되는 몇가지 우려 사항을 열거해보면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 국민과 시설에 대한 테러위협이 증대되고 있음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미국 및 다른 참전국 국민과 시설은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反戰 단체들의 시위 격화로 反美 분위기 고조를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사회혼란을 틈탄 악성 유언비어 유포행위가 성행할 위험도 있고 유가상승, 경제불안 등 사회혼란에 따른 범죄 증가도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은 비상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이미 지난 20일부터 지방경찰청에 대테러협의회를 구성하고 대테러 상황실을 운용하고 있다. 시설에 대한 경계와 보안, 그리고 정보 등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외국 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예기치 않게 벌어질 상황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그 가능성이 만의 하나라도 이에 맞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은 사막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바라보며 근심과 불안이 일더라도 우리 경찰을 믿고 꿋꿋이 생활하시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려움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특히 국제유가의 급등으로 화학 에너지 가격이 뛸 가능성이 높은 점이 그렇다. 석유를 비롯한 모든 화학 에너지를 외국에서 사다 써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 전쟁이 미치는 악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 여러분은 고유가에 대비하여 차량 10부제가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기를 권장하고 싶다. 어려운 상황이니 만큼 이해와 협조바란다.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더라도 우리는 현명한 판단과 차분한 대응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근심과 불안을 최소화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고/고추장과 냉이 한봉지

상주의 현준이 엄마가 고추장 한 단지와 냉이 한 봉지를 보내왔다. 고추장은 상주의 곶감을 가지고 만들었다면서 이 참에 특허를 내보겠다고 한다. 식탁에 올려놓고 먹어 보니 집의 고추장과는 또 다른 각별한 맛이 느껴진다. 냉이는 포도밭을 손질하다가 하도 햇볕이 좋기에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뜯었다는 것이다. 냉이를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참기름에 조몰락조몰락 무치면 밥맛이 훨씬 있을 거라고 편지까지 써넣어 주었다. 현준이 엄마는 전에도 청국장이며 된장을 손수 만들어 보내주기도 하고 곶감을 빚어 보내주기도 했다. 그 정성이 너무도 지극하여 나보다도 집사람이 더 고마워한다. 현준이 엄마는 여성회관 문예창작반을 통해 내 강의를 받은 수강생이다. 수필을 잘 써서 언젠가는 수필가로 등단이 될 거라는 기대에 찼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루는 느닷없이 부군과 함께 상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시골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건 쓸데없는 우려에 불과했다. 상주로 내려간 현준이 엄마의 편지에는 시골 생활에 대한 기쁨과 감동이 저 들녘의 풀들처럼 무성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현준이 남매를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 키울 수가 있어서 그지없이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꼭 한번 시간을 내어 다녀가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지난해 나는 마침 현준이 엄마의 친구들이 상주를 다니러 가는 편에 끼어 현준이 엄마의 사는 모습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으면서 나는 왜 현준이 엄마가 시골을 찾아갔나를 비로소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참된 행복이었다. 그랬다. 내가 본 현준이 엄마의 생활은 최소한의 소비를 통해 보다 많은 풍요를 얻는 넉넉한 생활이었다. 또한 정신없이 허둥대며 살아야하는 삶 대신 조금 느리더라도 생각하며 사는 삶에 있었다.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어디서든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고, 시냇물 소리며,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축복의 삶에 있었다. 마침 틱낫한 스님이 방한중이다. 시인이며 평화운동가인 스님은 이미 여러권의 책을 통해 우리들의 비뚤어진 모습을 알려주었고 참삶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냥 대지 위를 천천히 걸어라. 차가운 아스팔트가 아니라 아름다운 지구 위를 걷는다고 생각하라. 다음, 생각을 놓아버리고 그냥 존재하라.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그대 발걸음마다 발걸음이 일고, 그대 발걸음마다 한 송이 꽃이 핀다.’ 그렇다. 우린 너무 긴장 일변도의 삶에 익숙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여기며 한시도 느긋할 수가 없다. 스스로 행복해지지 못하면 결코 영원히 행복할 수가 없다는 말은 명언중의 명언이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부쩍 전원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도시적 삶의 한계에 다다른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물 속의 산소가 부족하면 고기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 아닌가. 오늘 저녁엔 맑은 별들을 지붕 위에 띄워 놓고 책상 앞에 고이 앉았을 저 현준이 엄마한테 편지라도 써야 할까 보다. 보내준 고추장과 냉이 덕분에 밥 한그릇을 뚝딱 게눈 감추듯 먹었다고.

기고/이젠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어야

우리나라 분묘기수는 약 2천만기로서 이중 1천380만기(69%)가 개인묘지로 추정되며, 집단묘지 114만기, 나머지는 가족묘, 국립묘지 등이 차지하고 있고, 묘지면적으로는 998㎢로 추산되며 이는 가용 국토의 5.2%를 차지한다. 죽은자가 차지하고 있는 묘지1기당 면적이 산 자의 주택면적보다 3~4배 크고 해마다 여의도 면적만큼 묘지가 새롭게 생겨나는 나라, 살아서는 주택난, 죽어서는 묘지난을 겪는 나라, 죽은자가 산자를 밀어내는 나라, 전국 어디에나 묘지로 뒤덮여 묘지강산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또한 한식과 추석 성묘때마다 전국의 도로는 교통대란을 겪지만 그럼에도 40%는 연고자 없이 방치된 무연고 묘지이다. 실례로 우리공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용인죽전·동백택지개발사업 지구내에 산재된 분묘만 살펴보더라도 전체개발면적 2백8만7천평에서 분묘가 1천903기로서 이는 묘지분포면적 1천97평당 분묘가 1기씩 산재해 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오며, 참으로 안타깝고 심각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몇년전에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들의 ‘화장유언서약’을 시작으로 화장유언 남기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났으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최근 여러기관에서 실시한 장묘문화관련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60~70%가 화장에는 찬성하지만 실제로 본인 가족에 대해서는 10%만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장묘문화는 예부터 뿌리깊은 유교적 사상과 관습이나 종교 등 사회·문화적 속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일시에 또는 빠른 기간내에 개선되기는 쉽지 않으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건전한 장묘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강력한 화장위주 장묘정책과 추진의지, 관계법령의 제도정비가 시급하며, 무엇보다도 국민의 인식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매장중심 장묘문화를 개혁하는데 화장만이 대안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필자는 몇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로 화장·납골시설의 확충에 따른 입지의 확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비용분담과 적정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둘째로 환경친화적인 현대식 시설로 만들어 혐오성과 위해성이 없도록 관계전문가와 이용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반영하여야 한다. 셋째로 주민의견 수렴과정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누구를 어느 부문에 어떤 방법과 단계에서 참여시킬 것인지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넷째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재정비, 종합장례서비스 시스템 조기구축, 납골당 등 장묘시설을 가족공원으로 느낄 수 있게 조경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 모든 해결방안을 정부의 주도하에 적극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를 후손에게 삶의 터전으로서 온전하게 물려주게 될것이며, 우리는 이제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기고/선생님이 존경받는 사회

어느 날 영국 황제 찰스 2세가 웨스트민스터 사원(寺院)의 부속학교를 견학한 일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그 누구도 황제 앞에서는 모자를 쓴 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 부속학교의 바비스 교장은 황제 찰스 2세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황제가 학교를 돌아보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폐하! 제가 모자를 쓴 채로 폐하의 앞을 그대로 걷게 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학생들에게 저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찰스 2세는 쾌히 승낙을 한 채 그 학교의 견학을 마치게 되었던 것이다. 교육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의 교권을 말하는데 만약 바비스 교장과 찰스 2세 사이처럼 교권이 존중된다면 우리의 학교교육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최고의 높은 사람으로 존경받게 되고 학교에서 교장이 최고의 지도자로 존경받게 된다면 우리의 교육은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교사들이 높게 존경받는 풍토 아래에서는 교사에 대한 폭언이나 폭행은 상상할 수 없으며 학생들이 교사에게 반항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해방직후에는 교권이 대단했다. 그러나 세월에 비례하여 교권은 점점 약해져갔고 몇 년 전에는 정년단축을 중심으로 교권은 땅에 곤두박질 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사를 공격했던가! 극히 일부 교사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을 한동안 계속 떠들다보니 마치 모든 교사가 그런 부류로 오인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사 무시하는 풍토가 전국을 휩쓸었던 것이다. 해방 후에는 교장이 시골학교에 부임을 하면 그 지방 군수가 인사를 간 적이 많았다. 지방행사에서는 교장을 오른쪽에 모셨으며 속된 말로 깍듯이 대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농부 두 사람이 물꼬다툼을 벌였다. 경찰과 행정관서에 갔지만 서로 고집을 부려 해결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선생님에게 가서 물어보자고 했다. 그들은 선생님 말에 따라 해결을 보았다. 당시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선생님의 한마디에 수긍을 잘했다. 자연적으로 예절교육이 되었으며 인성교육이 이루어졌다. 바비스 교장의 에피소드처럼 오늘날에도 영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황제 앞에서 모자를 쓰지 못한다. 다만 교장은 예외이다. 확고한 교권이 세워진 것이다. 가정교육은 가정에서 권위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잘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가정교육 이외의 교육의 장소는 학교 교육이다. 학교교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선생님들이 존경받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를 이루게 되므로 자연히 사회적으로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 그리고 예절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선생님이 존경을 받으려면 선생님들 스스로 자신의 실력이나 행동가짐 등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만 요즈음은 아무리 모범적으로 근무하는 선생님이 계셔도 유행처럼 교권을 흔드는 일이 허다하여 교권의 추락이 늘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옛날에 비하여 다양한 사회가 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에 대한 무시풍조가 날이 갈수록 너무 심해지는 것 같아 바람직한 교육의 환경을 위하여 선생님이 존경받는 사회적 풍토조성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기고/지방분권, 더 이상 늦춰선 안된다

1991년 지방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까지 어느 누구도 제대로 지방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국정아젠다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논제를 내놓음으로써 지방자치단체, 관련 학회와 단체 등에서 지방자치제도 개선과 관련한 논의를 폭발적으로 전개하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논의의 출발점이 국가사무의 지방 이양, 지방재정의 확보, 지방조직의 강화, 자치경찰제 도입 등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위상, 자주권 확보 등에만 집중되고 있는 반면, 지방의회의 문제점과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는 등한시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 참여하고, 토의하여, 해결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현재 주민과 함께 지방자치를 실현해 나갈 의회의 모습은 그러한 작업을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의 권한이 중앙정부와 단체장의 역할 비대 등에 의해서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지방의회의 의결권한은 자치단체장과 중앙정부 및 상급자치단체의 지도·감독권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에 의해 다시 제약되고 있다. 둘째, 입법권한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하여만 제정이 가능하다는 점에 지방의회의 조례제정권의 한계가 있으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역시 한계가 있다. 셋째, 행정감독권한은 사무구분의 불명확성, 즉 자치사무, 기관위임사무, 단체위임사무의 분명치 않은 구분 때문에 국정감사와 중앙정부조직의 감사와 중복되는 등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또한 ‘강시장·약의회’로 구부되는 현재의 지방자치 형태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역할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형식적인 감사 및 조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넷째, 예산권에 관한 권한도 중앙정부의 감독권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세목과 세율이 법률로 정해져 있어 독자적인 세목개발과 세율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독립적인 재정권 수립이 못되고 있다. 이러한 외형적인 제약과 함께 무보수·명예직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지방행정 및 정치에 관심이 있는 유능한 젊은 전문가들의 지방의회 진출을 가로막고 있으며, 의회사무처의 조직과 정책기능이 미약하다. 따라서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 중앙과 지방정부간 사무의 명확한 구분, 지방정부 재정자립도 확충과 동시에 지방의회를 정책의회로 전환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젠 지방의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관철시키는 작업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될 시점에 도달했다. 전국 단위의 지방의회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속적인 지방의회 관련 제도개선을 위한 공동 모색을 제안한다.

기고/성폭력, 단호하게 대처하라

미국에서 이루어진 몇가지 연구에 따르면 데이트중에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성폭력의 비율을 볼 때, 남자 친구나 연인으로부터 당하는 성폭력 피해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피해보다 많다고 한다. 더욱이 잘 아는 남자로부터 당하는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들이 오히려 저항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평소에 잘 아는 사람들이라 경계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단호히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은 여성을 종종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낯선 사람이 수풀에서 뛰어나와 덤벼든다면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몇 번 데이트한 남자가 좀 거칠게 나온다든지, 애정을 구걸하는 경우, 여성은 참으로 난감하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데이트 중에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다음 두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수동적이며, 나약한 성격의 여성들로 자신의 의사를 뚜렷이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와 또 다른 하나는 충동적이며 현실감각이 떨어진 여성들로서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라며 위험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렇지만 데이트 중에 일어나는 성폭력이 얼마나 많으며, 그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안다면 좀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타산지석, 다른 사람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우선 데이트 중에 성폭력을 하려는 남자들의 태도를 분석해 보자. 잘 아는 남자로부터 당하는 성폭력의 경우, 우선은 선물이나 달콤한 말, 또는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가서 한잔의 유혹을 시도한다. 부드러운 속삭임과 은근하고 친밀한 신체 접촉으로 여성의 본능을 일깨울 것이다. 결혼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책임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또는 적절하게 터프한 매력(?)이나 완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고.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말로 해결할 생각이라면 아주 강하게 나가야 한다. 좋아하던 남자와 깨가 쏟아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면, 이미 키스를 했거나 애무를 즐기던 사이였다면, 갑자기 강한 태도를 보이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성폭력의 수준에 이르기 전에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그와의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가능하면 일찍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가 처음부터 당신에게 너무 가깝게 접근하거나 접촉을 시도할 때 “나는 너와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하지 않는한 너의 행위는 강간이야. 강간은 분명한 범죄고, 나의 의사에 반하여 네가 나를 강간하면 나는 너를 고발하겠어”라고 단호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성을 사귀다가 성폭력을 당하였다면 전문가를 찾으라.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모든 것을 자기탓으로 돌리면서 쉬쉬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알려지면 수치스럽다거나 보복을 당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단호하고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여자의 정과 약점을 이용하는 남자들은 매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할 사람은 바로 피해자 본인이다. 성폭력은 우리 모두가 증오하고 추방해야 할 가증스런 범죄다.

기고/진정한 직업의 의미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직업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것에 소중함은 어떤 직업이든지, 우열을 가릴 수 없고 평등하다는 말로 풀이해도 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직업을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 척도로 보았지만 현대는 돈과 권력보다는 개인의 적성과 전문성을 찾는 도구로 상당한 인식의 전환을 하였다. 따라서 근대에는 일을 통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앞섰지만, 현대에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라는 구체적인 물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현대를 자격증 시대라고 할 만큼 국가자격증은 물론 민간 자격증까지 총 1000여 가지의 공인된 각종 자격증이 있는 것 만 보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격에 맞춘 직업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으므로 생소한 자격증이 많다. 그것은 만물이 서로 불안정하게 대치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현명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각기 재능이 틀리고 해야 할 몫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개성이라고 하는데 대개 사람들의 개성에는 장점과 단점이 얽혀 있다. 속담에도 ‘날아가는 짐승은 기는 일에 능하지 못하고 소는 뿔이 있으나 그 대신 물 줄 모르고 호랑이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으나 그대신 뿔이 없고 쥐를 잡는 데는 사자가 고양이만 못하고 꿩을 잡으려면 매가 제일이다’라고 했다. 사람마다의 고유한 능력이 다르므로 좋고 나쁜 직업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경제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실현이기 때문에 둘 다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단, 경계해야 할 것은 돈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사회적으로 범죄와 죄, 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사회악을 조장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한편, 자신의 직책과 지휘를 이용하여 범죄적인 방법으로 돈벌이를 하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돈 자체가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고 일에 대한 결과로 상응하게 경제적인 보상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일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수도하는 자세로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에서 비롯되었다. 성실은 학문이나, 지식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져 있는 일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맡은 일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몸에 배는 것이다. 마치 쉬지 않고 바위 위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깨달음을 몸소 보여 주듯이, 우리가 지금 삶의 터전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이 자리는 낭비하며 흘러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기고/대구지하철 참사 잊어선 안돼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해 나라가 발칵 뒤집힌 요즘, 연일 안전대책과 책임소재를 놓고 끝없는 공방이 일고 있다. 특히 대구지하철 경영진의 녹취록 조작과 상황실 직원들의 안일한 대응등의 소식을 접할때면 분통 터질 만큼 화가 치민다. 지난 달 대구 지하철 참사현장을 방문했다. 대구 중앙역은 유가족들의 오열로 그야말로 초상집이나 다름 없었다. 지하철입구에서부터 승강장까지는 화마가 할퀴고간 상흔만 남아 있었다. 2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이번 지하철 참사,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앞서 왜 우리는 이같은 대형참사를 해마다 겪어야 하는지, 안전대책은 없는지, 경제성장으로 봐서는 분명 선진국인데 사고가 터질때 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을 면치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제출한 녹취록과 모니터 화면등을 조작했는가 하면 가장 중요한 화재현장을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물청소를 했다는 것에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또 1080 기관사의 안전조치에도 의구심이 많다. 분명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와 불꽃이 승강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도 열차를 멈추거나 중앙역을 통과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전동차를 중앙역에 정차해 놓은 후 충분히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많은 생명을 잃게 했다는 것은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참사가 대구 중앙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권일대 모든 지하철에는 이같은 대형참사가 도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하철의 안전문제가 재검토 되겠지만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은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는 우리의 의식이다. 그동안 우리는 예산문제를 운운하면서 안전은 뒷전이었다. 이같은 정책으로 인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물론 여러 공사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등이 발생했을 때 온 국민들이 앞으로는 이같은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된다며 장치마련을 요구해 왔고, 정부는 절대 대형 참사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6개월내지 1년이면 언제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망각의 늪으로 빠져 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대구지하철 참사 문제가 해결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대구지하철 참사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서는 안된다.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부모와 아들, 딸들의 소중한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정부는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모든 기관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하고, 다시는 이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는 대구지하철 참사의 불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만이 우리가 안전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고/조병화 선생께 부치지 못한 편지

봄맞이를 위해 서재를 정리하다가 누렇게 퇴색된 신문을 펼쳐보았습니다. 자, 그럼/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넌 남으로 천 리/난 동으로 사십 리/산을 넘는/저수지마을/삭지 않는 시간/삭은 산천을 돈다./등은 덴마크의 여인처럼/푸른 눈, 긴 다리/안개 속에 초초히/떨어져 서 있고/허허 들판/작별을 하면/말은 무용해진다./어느새 이곳/자, 그럼/넌 남으로 천 리/난 동으로 사십 리. 선생님의 ‘오산인터체인지’라는 작품이지요. ‘고향으로 가는 길’ 이라는 소제목까지 붙인 이 작품의 영향으로 저는 뒤늦게나마 글길로 들어섰습니다. 더구나 ‘시작노트’에서 ‘인간은 누구나 두 개의 고향을 갖는다. 하나는 지리적인 고향이요. 하나는 영혼적인 고향이다. 이 두 개의 고향을 항해하며 보다 먼 본질적인 고향은 영혼의 고향이라는 걸 나는 생각한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이 제 마음을 끌어당겼지요. 그때부터 저도 시를 쓰고 난 후에는 꼭 ‘후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선생님의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에서부터 ‘남은 세월의 이삭’까지는 무려 50권이 넘습니다. 표제시만 가지고도 한 권의 시집이 넉넉히 될 분량이지요. 저는 언젠가 생활이 넉넉해진다면 그 표제 작품으로 시집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께는 언제나 제가 아쉬울 때만 전화를 드렸는데, 이젠 통화마저 어려운 형편이니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작년 가을, ‘경기도문인 시낭송회’를 그곳 난실리 편운재 문학관에서 열지 않았습니까. 지난 2월 26일에도 ‘편운재’에 들렀습니다. 오산에서 302번 지방 도로를 탔더니 오산·화성·평택·용인시의 4개 시 경계를 지나더군요. 송전 삼거리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추어 드넓은 호수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노인이/호심 깊이 낚시를 던지고/온종일 물가에 홀로 앉아 있다//물 속의 구름인지 바람인지/이따금 낚시찌만 흔들릴 뿐/호심 깊이 흰 구름 소리 없이 흐르고/천지사방이 귀를 찌르는 적막이다//우주 무한/오늘도 그 자리 선생님께서 지난해 펴내신 시집 ‘남은 세월의 이삭’에 실린 ‘무거운 세월’입니다. 고독한 노인의 심정을 이토록 투명하고 절절하게 표현하신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호수를 향해 홀로 낭송했습니다. 마을 입구의 놀이터에 ‘우리 난실리’라는 기교와 가식이 없는 선생님의 소박한 시가 새겨진 시비도 있더군요. ‘노인회관’앞에는 ‘조병화 박사 송덕비’도 세워져 있더군요. 난실리 사람들은 선생님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편운재 문학관’은 잘 정돈된 잔디와 조각 작품들이 우거진 숲과 조화를 이루고 선생님의 삶과 문단 이력까지 고스란히 보관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있는 그대로 경기도기념물 혹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안성시에서 어련히 향토사적으로 정비하고 복원하리라 믿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관광 및 교육자원으로도 손색이 없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최근 펴내신 ‘편운재에서 보낸 편지’에는 ‘이젠 더 계속할 힘이 없어서 제120신으로 이번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마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선생님께서 읽어주시지 않더라도 자주 편지를 띄워 보내드리렵니다. 스스로/스스로의 생명을 키워/ 그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 빛 있는 곳으로 가지를 늘려/ 잎을 펴고/빛을 모아 꽃을 피우듯이// 추운 이 겨울날/나는 나의 빛을 찾아 모아/ 스스로의 생명을 덥히고/ 그 생명을 늘려/환한 내 그 내일을 열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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