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기다림의 미학’ 장 담그기 문화

그랬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놀라울 정도였다. 그 완결은 혀끝에서 막을 내렸다. 장(醬) 담그기 얘기다. 따로 길일도 택해야 한다. 햇살이 내려앉는 양지에서 작업도 해야 한다. 일각이라도 허비하면 허사다. 우리의 오래된 음식문화가 대부분 그렇다. 이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회의에서다. 정식 명칭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가 공동체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 연대를 촉진한다고도 분석했다.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 등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장은 오랫동안 우리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발효나 숙성 방식,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한 장이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장 담그기는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만들어지고 관리·이용 과정에서 전하는 지식, 신념, 기술 등도 아우른다. 콩을 발효해 먹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독특하다. 우리나라에선 장을 담글 때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친다. 중국과 일본과는 제조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문화다. 우리나라 장 담그기는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이 오롯이 녹아 있다. 콩을 삶은 뒤 으깨 일정한 크기로 뭉쳐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해도 최소 3개월 이상 걸려서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장맛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어수선한 정국에 맞이하는 근사한 소식이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오디세이 시베리아

오전 9시 우수리스크 마르코폴로 여관을 씩씩하게 출발한다. 7월9일 아침 기온 15도, 낮 기온은 25도 이내로 매우 쾌적하다. 시베리아는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잔다. 오늘 목적지는 하바롭스크. 680㎞를 가야 한다. 부산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실제로 오늘이 시베리아 대평원 자동차여행의 첫날이다. 우수리스크를 벗어나자 멀리 아무르강 하류 우수리강이 보인다. ■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 유허비 우수리강에 헤이그 밀사 정사인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 선생은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사망했는데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유해를 화장 후 우수리강에 뿌렸다. 광복회가 우수리강에 이 선생 유허비를 세웠다. 이 선생은 신식 서양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수학, 화학, 법학을 공부했고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탁월한 언어 실력으로 헤이그에서 열리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 대표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학책을 직접 지어 조선인 학생에게 ‘수리 과목’을 가르쳤다. 근대 ‘한국 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20대 나이에 성균관 대사성을 거친 천재 학자임을 알게 됐다.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 역대 대사성 명단과 함께 선생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아무르강에서 맴도는 고혼(孤魂)이시여 이제는 평안하소서.” 멀리 고국에서 온 후생(後生) 인사드립니다. ■ 시베리아 대평원을 향하여 출발 원주민 언어로 시베리아는 ‘잠자는 땅’이란 뜻이다. ‘시베리아’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원시림, 광활함, 혹독한 추위, 자작나무 숲, 영화 닥터 지바고 설원 등 광활한 대자연 단어가 연상된다. 여행은 언제 가느냐가 중요하다. 겨울철과 여름철 대자연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시베리아는 초여름 연녹색의 향연이다. 위도가 높아 봄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나뭇잎 색깔이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차창 밖 줄지어 서있는 연녹색 산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하다. 도로 옆으로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림 사이사이에 작은 농가 몇 가구, 널따란 대초원, 커다란 필지의 농지가 나타난다. 우수리스크를 벗어나 두 시간이 지나니 인가도 거의 없다. 도로 옆으로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났다 헤어졌다 계속 달려간다. 아마 바이칼호까지 약 3천700㎞를 철도와 나란히 서쪽으로 달려갈 것이다. ■ 위험한 시베리아 국도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국도는 고속도로가 아니고 편도 1차선(왕복 2차선) 으로 협소한 길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동쪽 태평양을 연결하는 국가의 중요한 간선도로임에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미흡함을 느낀다. 산업용 도로이기 때문에 관광객이나 승용차는 적고 대부분 화물차다. 겨울철 눈으로 파손된 도로는 제때 보수가 안 돼 곳곳에 포트홀이 매우 많고 자동차가 튀어 오르는 바운딩이 자주 있어 운전 여건 최악의 위험한 길이다. 조금만 전방 주의를 소홀히 하면 포트홀에 빠지고 차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앞쪽의 화물차들은 천천히 달리므로 화물차를 만날 때마다 추월해야 한다. 반대 차선에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면서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야 하므로 시속 150~160㎞의 위험한 급가속 운전을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 재정이 어려워 도로 보수가 지체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러시아 국방비가 전쟁 전 국내총생산(GDP)의 4.3%인데 지난해는 6.7%(한국은 2.9%)로 증가했다. 전비 조달을 위해 금년에 세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한다. 소득세율은 전쟁 전 13% 단일세율에서 금년부터 최고 22% 누진세율로 인상, 법인세율도 전쟁 전 20%에서 금년부터 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 평화스러운 숲속 길 드라이브 ‘카메이트’인 L실장은 여수에서 온 분이다. 향후 두 달 동안 좁은 차에서 함께 보내야 할 자동차 가족이다. 점심은 휴게소의 야외 식당에서 샤슬릭 꼬치구이를 먹기로 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우리를 유혹한 것이다. 샤슬릭 꼬치를 굽는 러시아 직원이 과거 마산에서 일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는 계속 광활한 산림과 대평원을 지나간다. 언어와 단어로 광활한 대평원의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 현대인들은 속도의 경쟁에서 중압감을 받으며 살아간다. 빌 게이츠가 말한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뒤떨어지면 낙오자가 된다. 문명 세계의 속도, 빠름, 효율성, 날짜, 요일, 시간 관념을 이곳에서는 잠시라도 잊고 싶다. 무심히 창밖의 초원. 산림,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하바롭스크까지 680㎞의 먼 거리를 달려 가면서 수시로 급변하는 다양한 얼굴의 시베리아를 마주한다. 어느 구역은 소나기가 계속 내리고, 어느 구역은 햇볕 쨍쨍한 파란 하늘이다. 어디는 흐리고, 어디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다. 동해안에서 서울까지 280여㎞ 짧은 거리를 차로 올 때도 날씨가 여러 번 변하는 것과 비교해 본다. 녹색의 대초원과 자작나무 숲속을 지나 석양 무렵에 목적지 하바롭스크 화려한 러시아정교회 첨탑을 마주한다. 첫날 680㎞를 무사히 달려왔다. 마침 시내에 고려인 식당이 있어 저녁식사는 한식으로 한다. 고객은 러시아인들이고 외국인은 우리 일행뿐이다. 검색해 보니 고려인 후손이 8천명 산다고 한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곳은 하바롭스크주의 주도이며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아무르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아무르강변의 호텔은 전망도 좋고 침대와 샤워 시설이 매우 깨끗하다. 샤워실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여독이 풀린다.

[문화산책]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열정을 뿜어냈던 오베르쉬르우아즈에 가면 그가 그렸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강산이 수차례 변해도 마을 곳곳에 자리한 성당과 저택, 심지어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밀밭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그 시절과 교감하는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흐를 자랑스러워하는 이 마을 주민들의 수많은 노력이 담겨 있다. 주요 장소마다 작품이 그려진 안내판을 비치해 고흐의 눈과 우리의 시각에 비친 풍경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고 고흐를 찾아다니는 순례자들을 위해 최대한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근래에 전쟁과 각종 개발로 천지가 개벽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일제강점기를 거쳐 폐허가 됐다가 복원으로 되살아난 고궁은 관람객들의 편의와 현실을 고려한 재창조에 가깝고 양반의 행차를 피해 다닌 피맛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땅에 귀를 기울이면 지하에 잠들어 있는 옛터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급격한 발전으로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우리는 지나가 버린 옛것의 가치를 조금씩 갈구하고 있다. 낡은 기와집만 남아 있어 슬럼화되던 황리단길은 첨성대와 불국사보다 붐비는 경주 최고의 관광지가 됐으며 폐공장과 버려진 집은 독특한 공간을 지닌 카페로 사랑받고 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북촌과 서촌은 항시 외국인들로 붐벼 몸살을 앓는 중이다. 사라져 가는 옛 골목길을 재조명하고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게 카페와 상점이 잇따라 들어서며 활성화된다면 무엇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천편일률적인 구성, 건물주들의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겹쳐 그 열풍이 사그라든다면 거리는 이내 빈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채 을씨년스러움만 풍기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오베르 마을의 고흐처럼 그곳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튼튼한 스토리텔링을 갖추지 못하고 유행만을 좇는다면 이내 인기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의 본질은 화려한 치장과 그럴듯한 외양이 아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뼈대가 핵심이다. 경주의 황리단길이 날이 갈수록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는 담장 너머 신라 천년의 고분군이 이곳의 정체성을 확연히 증명하기 때문이고 수원화성의 행리단길이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정조 이래 굳건한 성곽이 예나 지금이나 자리를 지켜서다. 켜켜이 쌓이는 세월의 때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기에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4대 강 이후 남한강의 경관은 완전히 변했지만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공간은 여강 절벽을 굽어보는 자리에 들어선 여주 신륵사다. 절에서 강의 경관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이 공간에 들어선 다층전탑은 고려시대 이래로 이곳을 지나는 뱃사공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다. 강 건너에 호텔이 들어서고 강변의 모래밭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신륵사와 전탑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존재들 덕분에 나루터를 오가던 황토돛배가 여행객을 싣고 예전의 수려했던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흔들다리나 케이블카, 각종 위락시설로 치장해도 잠시 사람들의 흥미를 끌 뿐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린 케이스가 부지기수다. 우리는 그동안 본질을 유지하고 있는 가치는 애써 무시한 채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닐까.

[사설] 윤석열 계엄, 지지층 20%에 대한 도리도 아니었다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었다. 그 이유가 느닷없어 국민이 놀랐다. 우리 현대사에 기록된 비상계엄은 모두 12번이다. 여수 순천·제주 사건 계엄(1948년), 부마 항쟁 사건 계엄(1979년) 등은 치안공백이 이유였다. 4·19 계엄(1960년)은 혁명, 5·16 계엄(1961년)은 군사 정변이 이유였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계엄(1979년)은 국가 원수 유고가 이유였다. 이 중 어떤 것도 이번 계엄 사유와 겹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게 이상했다. 실패한 이번 계엄을 두고 두 가지 위법성 논란이 나온다. 기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고, 절차를 위반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정부 내에서 류혁 법무부 감찰관이 의견을 냈다. 위법한 계엄을 따를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위법성을 주장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계엄의 위법성 자체가 탄핵 사유다. 대통령실이 해명해야 하는 부분이다. 정치적 책임도 있다. 담화에서 계엄 사유가 열거됐다. 종북 반국가 세력, 국가 재정 농락, 국가기관 교란, 범죄 집단 국회 등이다. 거대 야당의 폭거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예산으로 정부 숨통을 조인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계엄 사유에 이르지는 못한다. 국회 대치는 정치력으로 푸는 것이다. 치안 범죄는 사법기관의 일상 업무다. 계엄이 아닌 긴급명령권,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권(제76조 1항)도 있었다. 과했음이 분명하다. 국가·국민에 미친 피해가 크다. 국가의 경제지표가 황망하게 추락했다. 담화 직후 환율은 1천440원대까지 치솟았다. 주식 선물·코인이 급락했다. 정규 시장이 시작된 4일 장에서도 충격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코리아 디스카운트 확대다. 세계 주요 외신이 한국 상황을 ‘사태’로 타전했다. 국가 신인도를 한 방에 떨어뜨렸다. 윤 대통령이 밝힌 이런저런 계엄 선포 사유, 그 모든 위기보다 이게 더 크다. 내우외환은 그가 불렀다. 국민적 분노가 높다. 계엄 선포 직후 수백명의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왔다. 대학 교수들, 변호사 단체, 노동 조합 등의 성명이 이어졌다. 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 이후에는 윤 대통령 책임으로 옮아갔다. 탄핵, 사임, 체포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도 어디 한 곳 윤 대통령을 두둔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48시간 내 사임’을 통첩했다. 조국혁신당과 탄핵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책임자 문책을 말한다. 마지막 보루도 무너지고 있다. 20% 지지층의 분노와 실망이다. 그동안 안쓰럽기만 한 지지였다. 그래도 그들이 가졌던 건 기대다. 김 여사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는 기대였고, 채 상병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는 기대였고, 명태균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했다. 급기야 상상도 못했던 상황까지 끌고 들어갔다. “시작했으면 성공이라도 하지”라는 탄식이 들린다. 얼마나 참담하면 이러겠나. 윤 대통령의 정치는 캄캄하다. 어떤 격변이 와도 이상할 게 없다. 어울리지 않는 주문이 있다. 김건희 여사와 연관된 모든 특검을 수용해라. 대통령 본인이 연계된 의혹을 낱낱이 고백해라. 언젠가 거쳐도 거쳐야 할 과정 아닌가. 현직 대통령 때 수용했다는 평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지금 대통령 실 밖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냉정히 보면 이럴 시간이 주어질지 여 부도 확실치 않다. 도대체 김건희 특검은 왜 그렇게 안 받은 것일까.

[지지대] 인천의 진정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싱크탱크(Think Tank). 사회 정책을 비롯해 정치, 경제, 군사, 기술,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기관을 뜻한다. 대부분 비영리 조직이다. 소위 ‘두뇌집단’으로 불리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조사·분석 및 연구·개발을 한다. 인천에서는 인천연구원이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꼽힌다. 초빙연구원을 포함해 50명이 넘는 연구인력이 도시사회, 경제환경, 교통물류, 도시공간 등 각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이는 인천시 정책의 근거자료 등으로 쓰인다. 이 밖에 인천시 산하 기관에도 각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분야별 연구를 하면서 인천시의 정책을 만들고 있다. 과연 이들 연구기관이 진정한 인천의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는지는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들이 하는 연구의 대부분은 인천시의 정책을 뒷받침할 근거자료를 만드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즉, 연구기관이 인천의 미래 발전을 위해 스스로 고민해서 이뤄진 연구가 아니라 인천시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연구인 셈이다. 이는 인천시가 이들 연구기관의 예산이나 관련 지도·점검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인 탓에 인천시로부터 일방적인 연구 지시를 받는 연구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천시는 착수보고회에서는 정책의 기본 바탕을 정해 주고, 중간보고회를 통해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끌어가고, 최종보고회를 통해선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낸다. 이 절차에서 공무원은 연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제는 인천시가 연구기관 스스로 자율성을 갖고 인천의 진정한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계 정립부터 다시 해야 할 때다. 연구기관은 일 부려 먹는 하부 기관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다듬어 가는 동반자임을 알아야 한다.

[천자춘추] 직업계고 경쟁력 강화 방안

경기도의 직업계고등학교는 지역사회와 산업의 필요를 충족하는 중요한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평택마이스터고, 수원하이텍고, 경기게임마이스터고 등 106개의 직업계고 중 일부를 제외하면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등록률이 9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은 직업계고의 이미지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직업계고는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거나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로 인식돼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직업계고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가 필요하다. 졸업생 성공 사례와 다양한 취업 기회에 대한 정보 제공은 인식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공유학교와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를 확대해 중학생과 학부모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 경제적 지원과 우수한 취업처 확보는 직업계고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공공기관, 대기업 등 우수한 취업처 지원과 동일계 특별전형, 선취업 후진학 재직자전형 같은 대학 입학 혜택이 있지만 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청과 단위학교는 학부모 설명회와 학생 대상 워크숍을 통해 이러한 혜택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과정 도입도 중요하다. 일부 직업계고는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 교육을 위한 학과 개편을 진행 중이며 이를 더욱 강화해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업계고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교사들의 신기술 연수는 학생 중심 교육을 위해 필수적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해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내용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교사 역량을 높이고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만든다. 또 학교는 산업체와 협력해 현장 경험을 제공하고 기업 전문가 초청 강의 등을 통해 실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예산 지원과 인력 보충으로 노후한 실습 환경을 개선하고 첨단 실습실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경기도 직업계고는 교육과정 개선, 교사 역량 강화, 지역사회 협력, 홍보 강화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선택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발전할 것이다.

[기고] ‘인천 섬의 생명수 지하수 고갈 대비해야’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다.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의 현실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백령도는 어업과 함께 농업 의존도가 높은 섬이다. 논 548ha, 밭이 258ha로 이뤄진 백령도의 1년 벼 생산량은 6천t이 넘는다. 이 정도 규모의 논밭을 일구려면 많은 물이 필요할 거라는 건 상식이다. 백령도는 이 논밭을 일구기 위해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농업용 관정만 157개에 이른다. 식수 또한 지하 관정으로 퍼 올린 물을 사용하고 있다. 백령도는 지하수맥이 좋은 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십년간 지하수를 끌어올려 썼기 때문에 언제 고갈될지 늘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필자는 이 때문에 20여년 전부터 백령도의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수년 전 군의원으로 의정활동 당시 저수지 개발을 농어촌공사에 건의했고 상수도사업본부엔 소규모 댐을 건설해 식수로 사용하자고 건의했다. 또 백령공항 준공 전에 해수담수화시설과 기수담수화시설을 만들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하수 고갈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관계당국의 움직임은커녕 ‘물을 아껴 씁시다’라는 스티커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국제학술지 ‘네이처 워터’는 물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태양광발전으로 얻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전력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도 담수화 시스템을 공급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는 내용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전력 효율이 우수하고 배터리가 필요 없어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에도 도입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구팀은 6개월 동안 뉴멕시코의 지하수 우물에서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했는데 여러 기상 조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패널에서 얻은 전기에너지 가운데 평균 94% 이상을 낭비 없이 활용했다. 그렇게 얻은 물이 하루 최대 5천ℓ에 이른다. 연구팀은 전력에 대한 접근성이 충분하지 않고 지하수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에 시사점을 남겼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물을 담수화하는 시스템은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므로 관계 당국에서는 이러한 사례도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물 자원은 유한하다. 더 늦기 전에 지하수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더욱이 인천-i바다패스 시행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 들면 물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역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물론 예산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자연의 재앙을 막기 위한 예산 확보 및 집행은 그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이다. 병도 예방했을 때보다 병이 발병했을 때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재앙이 닥치고 나면 수십 배의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물 부족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미래] ‘트럼프 리스크’, 새 안보팀이 대비해야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주도할 내각과 백악관의 윤곽이 구체화되면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경험이 부족하고 극단적 견해를 가진 측근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지시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이고 1기와도 다른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심각한 리스크는 관세 인상 위협이다. 이는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국 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회원국에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국경에서 마약과 이민자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으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즉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찾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마약 억제와 이민자 차단 방안을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도 확전에서 휴전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싸운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반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전쟁이 아니면 참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압박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수복 목표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조건으로 휴전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대중 정책 역시 바이든 행정부와 다를 것이다. 시급한 현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변국들과 협력해 중국을 포위하기보다는 시진핑 주석과 담판을 통해 양보를 받아내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P)를 취임 후 폐기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기도 전에 트럼프 리스크는 전 세계를 이미 강타하면서 경쟁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도 정책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밀월에 아직도 도취해 있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의 전쟁 참여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에서 합의한 한미일 협력 방안이 트럼프 시대에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내정된 트럼프 행정부 2기 안보팀의 관심사는 방위비 분담, 북한 핵 협상,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지위 등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안보팀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잘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캠프데이비드 협상에 참석했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사퇴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내년 1월 퇴임하기 때문에 3국 정상들의 인적 유대도 사라졌다. 이달 예정된 전면 개각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안보팀이 발탁되기를 기대한다.

[삶, 오디세이] ‘꼬리표’ 농담처럼 사소화되는 편견과 차별

꼬리표란 단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늘 따라다니는 떳떳하지 않은 평판이나 좋지 않은 평가’를 뜻한다. 그런데 누구나 이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는 있어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로 그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일례로 ‘동남아’와 ‘다문화’라는 단어를 한번 돌아보자. 이것의 사전적 의미는 각각 ‘동남아시아의 음역어’와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동남아’는 ‘아시아의 동남부’ 지역인 ‘동남아시아’를 한자로 간단히 나타낸 지리학 관련 용어이고 ‘다문화’란 한 사회의 문화적 변화 양상을 의미하는 사회문화학 관련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학계가 아닌 일반 언중은 이 ‘동남아’와 ‘다문화’라는 용어를 그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특정 언어·문화권의 사람들을 ‘동남아’나 ‘다문화’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이민자들의 출신 국가 중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동남아시아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한민족 순수 혈통’이라 자부하는 일부 한국인은 그 지역에서 온 이주민을 통틀어 ‘동남아’ 내지는 ‘다문화’라고 부르곤 한다. 이때의 ‘동남아’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동남부를 뜻하는 지리학 용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주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이들을 향한 편견이 내재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동남아’는 편견으로 점철된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또 어떠한가. 한국의 언중 사이에서 주고받는 ‘다문화’는 더 이상 학계에서 공유되는 사회문화학 용어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언중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한민족 순수 혈통’이라 할 수 없는 이주민을 구분하고자 하는 꼬리표로서의 기능만 할 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범한 말로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붙이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꼬리표가 붙은 대상자는 본인도 의도하지 않은 편견 속에 숨죽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꼬리표에 짓밟히고 있는 셈인데, 평범한 말로 꼬리표를 붙인 당사자들에게 이러한 지적을 하면 그들은 대부분 무심코 그랬다거나 농담으로 한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생각 없는 말이나 농담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는 동시에 언어에 사고가 반영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 속에 편견이 내재해 있거나 그 속에서 잠재적인 편견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배우가 한 시상식에서 “편견은 차별을 낳고, 차별은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한 적 있다. 무심코 던진 말에는 모종의 편견이 내재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농담이라 항변하는 말들도 누군가에게는 꼬리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한번 붙은 꼬리표는 쉽게 떼기 어려우며 그 꼬리표로 차별받는 일상은 당사자에게 벗어날 수 없는 폭력 그 자체로 작용한다. 이렇게 농담처럼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사실은 편견 어린 차별이자 잠재적인 폭력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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