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곁가지에 삿갓등 내어걸고 아치형 터널 따라 미리내 수많은 별 땀땀이 사람들 가슴에 수를 놓는 시화전 신풍루 문을 열면 화성행궁 달이 뜬다 청사초롱 불을 밝혀 밤길을 열어두면 바람도 가던 길 멈추고 적막 속에 잠긴다 어둠의 옷을 벗어 저편에 걸어 두면 고즈넉한 풍경 따라 시월의 밤 깊어 가고 마음은 고요의 바다 화성의 달이 뜬다 서기석 시인 ‘문예춘추’ 시 등단 ‘시조시학’ 시조 등단 ‘수원문학 젊은 작가상’ 수상 수원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작가들의 숨 회원 시조집 ‘희망머리’
공작선인장의 꽃말은 ‘정열’이다. 선인장 꽃은 개화 기간은 짧지만 화려한 것이 보통이다. 공작선인장 역시 꽃색이나 모양이 꽃말처럼 정열적이며 화려하다. 사진은 밝은 미색의 품종이다. 선인장과에 속하는 종은 수만 종이나 돼 선인장만큼 종류가 많은 식물도 드물다. 공작선인장은 줄기가 납작하고 편평하며 선명한 녹색으로 1m 정도까지 자란다. 꽃은 진한 홍색으로 선인장류 중 가장 아름다운 꽃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관상용으로 수백 종류의 품종이 있으며 꽃색도 매우 다양하다. 가정의 분화용으로 많이 쓰이며 식물원 온실에 심어 관상용 또는 교육용으로도 흔히 이용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다. 반가움에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데이비드 리드베터가 내놓은 ‘최고의 골프레슨’이라는 제목의 테이프였다. 1990년대 중반 삼성그룹은 당시 골프 유망주였던 박세리 선수를 공식 후원하면서 삼성물산 내에 전담팀을 만들었다. 1997년에는 박 선수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유명 스윙 코치 데이비드 리드베터에게 스윙 레슨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듬해인 1998년 IMF 사태로 힘들었던 우리에게 ‘맨발 투혼’으로 얻어낸 박 선수의 US 여자 오픈 챔피언십 우승은 쉽게 잊지 못할 기억이다.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장면은 애국가 방송에 자료화면으로 쓰일 정도로 당시 대한민국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특히 박 선수의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된 새하얀 발은 그간의 노력을 대변하는 듯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렇게 우리가 IMF를 극복하면서 훗날 ‘박세리 키즈’로 불리게 될 어린 선수들이 성장해 나갈 무렵 삼성영상사업단이 한글로 출시한 데이비드 리드베터 비디오테이프를 접했다. 외국인 지도자가 생소하던 시절, 당시 삼성 임원에게 부탁해 어렵게 입수한 레슨 테이프를 여러 번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 코치의 설명과 상세한 지도 방식이 담긴 영상은 왠지 과학적이면서 첨단 기술을 담고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흘러 2025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스포츠는 과학화, 첨단화 과정을 거쳤다. 최첨단 기술의 도입과 잘 갖춰진 경기장을 비롯해 첨단 스포츠용품, 영상장비의 발전 등 그 흔적들은 이제 일상이 됐다. ‘스포츠 과학’은 체육 현장에 존재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예견한다. 스포츠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스포츠 수행 능력 향상으로 인체 기능 개선, 심신의 건강 증진, 운동의 효율성 증가를 의미한다. 이미 올림픽, 월드컵 등 많은 스포츠 이벤트는 첨단 스포츠 과학의 향연으로 발전했으며 일반인이 즐기는 생활스포츠 현장 또한 스포츠와 과학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지난해 12월20일 정부는 스포츠 참여, 경쟁력 확대와 세계 7대 스포츠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제1차 스포츠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28년 국민생활체육 참여율을 70%까지 끌어올리고 스포츠산업 규모를 105조원까지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신체활동 기준에 맞는 ‘운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체력인증센터를 2028년까지 126곳으로 확대하는 등 누구나 쉽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선다. 특히 정부는 국민체력100센터를 중심으로 건강진단-운동처방-운동참여를 연계한 맞춤형 체력 관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골프레슨 비디오 영상이 과학적으로 여겨지던 과거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체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이를 토대로 운동처방을 받아 나에게 맞는 운동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스포츠 과학이 빚어낸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막연한 장수(長壽)가 아닌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을 꿈꾸고 있는 우리에게 스포츠 과학은 100세 시대를 가능케 한 ‘숨은 조력자’가 아닐까.
무릇 격언은 쉬운데 심오하다. 오랫동안 벼린 촌철살인의 묘수를 담아온 품이다. 처세든 철학이든 삶의 지혜를 농축해온 말의 힘이다. ‘닭이 방귀를 뀌면’은 그런 격언 중에도 아프리카에 전해 오는 격언의 앞 구절이다. 그 뒤를 어떻게 받을지, 무슨 수수께끼처럼 상상력을 촉발하는 표현이다. 웃음까지 물리는 뒤 구절은 ‘땅이 불편하다’, 의외의 표현에 정신이 확 깬다. 독자에게도 예상을 뛰어넘는 조금은 웃기고 놀라운 문장일까. 그런데 볼수록 오묘한 시적 표현처럼 생각을 부르는 말이다. ‘닭이 방귀를 뀌면 땅이 불편하다’, 얼핏 보면 당연하지 싶다. 어떤 존재의 방귀를 편히 받는 상대는 없을 테니 말이다. 소의 방귀가 지구 환경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 수없이 보고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 ‘닭의 방귀’라니, 그런 소리나 표현은 본 기억이 없다. 아프리카니까 가능한 말이라며 되짚어 보니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내용의 비유다. 방귀처럼 사소한 일이나 행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계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격언은 꽤 있건만 생소한 표현에 끌려 눈에 들더니 여운도 길게 만든다. 지금 이곳의 도처에 들끓는 불편한 세상사를 일깨워 ‘땅이 불편하다’는 말에 더 머물렀는지도 모르겠다. 먼 아프리카의 격언을 다소 에두르는 에누리 변 같긴 하지만. 그런 갸웃거림을 무릅쓰고 보면 닭의 비유 중에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의 파장이 컸다. 최근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차별적 속담도 ‘흥한다’로 뒤집는 시대적 변용이 흔히 쓰인다. 이런 격언이나 속담의 전복적 활용은 그동안 앞서 나간 걸음의 영향을 넓히는 경우다. 앞의 아프리카 격언과는 다소 다른 예지만 닭에 담아온 비유 중에서도 홰치는 소리가 큰 영향력의 확장이겠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닭처럼 애꿎은 짐승을 빌려 자신이 원하는 뜻을 전했다고, 새삼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더욱이 일생 먹거리로 사육당하다 몸 바치고 가는 닭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닐까. 다시 ‘땅이 불편하다’는 말을 새겨보면 불편한 땅은 아프리카를 넘어 지구 전체에 해당되지 싶다.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는 땅을 전보다 더 많이 착취하고 학대해 더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 그래서 조금 낡은 듯싶은 격언 ‘닭이 방귀를 끼면 땅이 불편하다’는 말에서 전 지구적 땅의 불편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땅이 지금은 무수한 생명을 길러낸 후의 잠시 휴식에 들어갈 때다. 닭의 방귀가 아니라도 진기 다 빼앗겨 불편한 몸을 뒤척이며 봄이 오면 새로이 움트는 것들 키워낼 힘을 조용히 길러갈 것이다. 우리도 한 해의 소출을 돌아보는 마지막 달이다. 새해의 다짐들은 그럭저럭 이뤘는지, 아니면 바람처럼 어느새 새나가고 말아 자신의 삶에도 미안하고 불편하진 않은지. 또 의도치 않았는데 방귀처럼 발설해 버린 말로 주위 누군가에게 심각한 불편을 끼친 일은 없는지. 애초엔 사소했으나 점점 커지는 꼬리로 몸통 흔드는 말의 태풍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하긴 말이 곧 생각이고 인격이니 당연한 귀결이겠다. 그래서 또 챙겨둔다. 어떤 불편이든 덜 만들며 가보자고.
27일 오후 수원시 태장면고개가 마비됐다. 양방향 차량이 멈추다시피 했다. 일부 시민들은 차에서 내려 상황을 지켜봤다. 퇴근길 내내 계속된 상황이다. 28일 오전 북수원 야구장 사거리는 더 심했다. 차량이 뒤엉켜 오도 가도 못했다. 사거리를 통과하는 데 30분 걸렸다. 버스 승객들이 차에서 내려 걸었다. 수원시를 관통하는 1번 국도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출근길 시민들은 차량을 포기했다. 걷거나 뛰는 시민들 입에서 원성이 쏟아져 나왔다. 소나무 등 조경수들도 시내 곳곳에서 부러져 나갔다. 수원시 조원동 한일타운 단지의 피해가 컸다. 도로를 따라 식재된 수목들이 대거 피해를 입었다. 특히 30년생 이상의 소나무가 눈 무게에 부러졌다. 일부 잔해는 인도까지 걸쳐 행인을 위협했다. 대책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28일 오전에 공무원들이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피해 상황을 체크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책은 내지 못했다. 27일부터 나무에 쌓였던 눈을 처리했어야 했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비상 대처에 나섰다. 관계자 회의를 열고 총력전을 지시했다. 28일 오전 7시 시청·구청·사업소 직원 1천500여명이 44개 동(동별 30~40명), 버스정류장, 전철 역사 주변 등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3시간여 동안 제설 작업을 했다. 오후에는 필수 인력을 제외한 모든 공직자가 현장에 투입됐다. 통장 등 각 동 단체원들, 환경관리원과 함께 44개 동 골목길, 이면도로 등에서 제설 작업을 벌였다. 눈과의 전쟁을 벌인 하루였다. 하지만 현장 목소리는 달랐다. “제설 차량을 보지도 못했다”거나 “눈을 치우는 모습은 없었다”는 원성이 이어졌다. 대중교통도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28일 오전 출근길 수원시내 버스는 운행을 포기한 듯 보였다. 30분 이상 1시간 넘게 연착되는 버스가 허다했다. 버스정보시스템(BIS)에는 ‘차고지 대기’ 안내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구체적인 지연 정보를 원했지만 안내는 ‘기상 악화로 버스운행이 지연되고 있다. 양해 바란다’는 문구만 반복했다. 수도권 전 지역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수원시를 지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원시의 폭설 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폭설 때도 지역이 마비됐다. 2021년 1월 폭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수원시의 총력전은 전개됐지만 도심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폭설에 따른 도심 마비가 이제 수원시의 연례 행사처럼 자리했다. 이쯤 되면 차원이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수원지역 폭설 피해에 대한 근본적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공무원들의 대처는 효과도 없고 신뢰도 없다.
필설로 옮기기도 참담한 소식들이다. 그렇다고 입 닫고 있을 수도 없다. 일개 사건이 아니라 일반화된 사회 현상이다. 지난 달 초, 70대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60대 아내를 목졸라 살해하려던 현행범이다. 아내는 수년간 말기 암 투병 중이었다. 더는 간병이 힘들자 이런 행위를 한 것이다. 남편은 구속됐고 아내는 숨졌다. 같은 살인 용의자 80대의 사정도 같다. 2020년부터 치매를 앓아온 아내를 살해했다. 역시 ‘더는 간병할 수 없었다’는 이유였다. 노인에 의한 ‘간병 살인’이 계속 생긴다. 부부 일방이 노인성 질환에 시달린다. 남은 일방이 간병하며 보살핀다.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노노(老老) 케어’다. 예부터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긴 병에는 부부도 없다. 경제적 빈곤, 육체적 한계에 부딪힌다. 막판에 이르러 참담한 결정을 한다. 알려진 통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본 해결책이야 뻔하다. 무한 돌봄 지원이다. 돈 넉넉히 주고 간병인 지원하면 다 된다. 문제는 예산 한계다. 경기도도 노력은 하고 있다. 지난 9월 ‘2025년 경기도 간병 SO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저소득계층 노인들에게 간병비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1인당 최대 120만원씩 잡았다. 6인실 하루 2만원을 기준 삼고 있다. 대략 두 달 치 지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노인 질환의 경우 중증 환자가 많다. 부득이하게 1인실을 이용하게 된다. 이 경우 간병비는 10만원 정도다. 12일 헤택에 그치는 셈이다. 사각지대 문제도 있다. 올 6월 기준 저소득계층 노인은 19만3천여명이다. 노인 질환은 필연적으로 악화되는 특징이 있다. 간병 수요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도 부족하고 앞으로는 더 부족해질 것이다. 신청자를 대상으로 집행하는 방식도 한계다.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많다. 간병 복지의 사각에 그대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한계와 구멍을 무조건 탓할 수도 없다. 모든 노인의 간병을 지원을 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주문할 건 효율성 제고다. 또 다른 지원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실시되고 있는 제도부터 다듬어가야 한다. 사각지대를 찾아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질환의 경중에 따른 차등 지원도 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련 복지의 통합 관리가 절실하다. 중앙정부 따로, 지방정부 따로 가서는 안 된다. 시•군별 내용의 차이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경기도가 31개 시·군과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타 지방에 선보일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백 번 선도해도 좋은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참담한 종말을 선택하는 사건, 경기도만이라도 줄여 보자.
“눈은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기침을 하자/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1960년대를 풍미했던 김수영 시인이 읊은 ‘눈’이다. 서울 토박이였던 그가 원고지에 이 작품을 쓰던 날도 오늘처럼 폭설이 내렸나 보다. 그가 시를 통해 녹여 냈던 서정은 반듯했다. 일체의 정립된 언어와 고정된 언어 등을 부정직한 것으로 여겨서다. 오늘 같은 날씨에 읽으면 제법 근사하다. 눈을 소재로 한 소설도 있었다. 이청준 작가의 ‘병신과 머저리’다. 6·25전쟁의 아픔을 안고 사는 제대 군인의 실존적 고통을 담았다. 4·19 전후에 청년기를 보냈던 젊은이의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고통도 그려졌다. 소설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해소하려는 시도나 뚜렷한 형체 없이 존재하는 정신적인 고통의 묘사가 돋보였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눈이 오는 날이 좋겠어. 그 사이에 포성이 오면 또 생각을 달리해도 될 테니까. 그러고는 금방 눈이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눈이 오고 있다, 김 일병’.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나서 다시 김 일병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작품의 얼개는 6·25전쟁의 정신적 상처로 고통받는 의사인 형과 고통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화가 동생의 이야기다.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형은 그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자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오관모와 김 일병, 나(형)는 전쟁에서 낙오된 패잔병이다. 김 일병을 죽이겠다고 하는 오관모와 김 일병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 그 잔인한 날에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린 눈이 폭설로 번진 날에 되짚어 보는 단상이 어지럽다. 2024년 첫눈은 후세에 어떻게 기억될까.
지난달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9천억원이 투입되는 ‘CCU 메가프로젝트 시범지역’ 다섯 곳을 선정했다. 안타깝게도 경기도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내년 2월7일 ‘이산화탄소저장활용법’이 전격 시행되고 정부가 시·도지사의 신청을 받아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집적화단지’(이하 집적화단지)를 지정해 집중 육성한다는 점에서 경기 북부 역시 탄소순환경제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Storage)’는 발전소 및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CC)함으로써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전략이며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지하 등에 저장(CCS)하거나 메탄올 및 건축재 등의 물질로 만드는 활용(CCU) 기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CCU가 설치된 곳은 석탄화력발전소의 실증시설 정도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중부발전이 운영하는 충남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방문했다. 이 시설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연장 운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국내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실증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보령석탄화력발전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CCU 실증 시설을 통해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액화 후 드라이아이스 생산과 농업 용도 등으로 판매되는데 시설 운영비 정도의 수입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포집을 확대하더라도 판매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동해가스전 등 해저 지층에 저장하는 CCS가 필요한데 이 역시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결국 이산화탄소 포집을 확대하려면 탄소활용(CCU)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 유럽 등에서 CCU 기술이 상용화한 것과 달리 국내는 아직 기술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즉, CCU 기술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메탄올과 합성연료, 탄소벽돌, 탄소플라스틱, 탄산칼슘, 드라이아이스, 일산화탄소 등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고 기술 고도화 및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단가를 낮춰야 전체적인 CCUS 생태계 조성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 포집을 통해 생산된 청정 메탄올은 항공유나 선박유에서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고 있으며 가솔린 대체 연료로도 확대될 것이다. 세계 각국이 청정 메탄올 생산 단가를 낮추는 경쟁에 나설 만하다. 이처럼 산업현장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해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해 연료나 건축재,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것을 ‘탄소순환경제’라 한다. 탄소순환경제에 편입되는 제품이 많아질수록 대기 중에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게 되고 넷제로(Net-Zero), 즉 탄소중립 실현에도 기여하게 된다. 경기 북부지역은 그동안 수도권 규제와 접경지역에 따른 규제를 받으면서 오랜 시간 수도권 발전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 앞으로 경기 북부지역에 산업단지 등을 조성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구축해야 할 기업환경은 신재생·탄소순환 인프라다. RE-100 등 생산 과정에서의 탈(脫)탄소 에너지 규제는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전 산업으로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생산환경에 신재생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환경과 탄소배출을 흡수하는 생산환경 구축은 기업 유치에 큰 장점이 되며 기업규제 완화와 녹색 파생산업 확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2025년은 탄소순환경제가 시작되는 원년이다. 지금까지 첨단 산업 발전에서 소외돼 온 경기 북부가 탈탄소 경제를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자체와 국회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문예지는 발간하기도 어렵고 발간 이후 지속하기도 어렵다. 그 이유는 기획 능력과 특별한 사명감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 중에서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문예지를 발간하는 데는 청탁한 원고에 대한 고료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 고료가 없으면 좋은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하지 못한다. 최근 폐간 또는 휴간에 들어간 문학사상과 시인수첩 같은 수준 높은 문예지도 여럿 있다. 과거에는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10대 문예지가 있었다. 10대 문예지들은 어느 곳이든 각자 개성 있는 문학적 담론을 생산해 냈다. 순수 문예지가 폐간 또는 휴간하는 것은 한국 문학 발전에 장애로 작용한다. 필자가 작가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포엠피플 발간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발간 비용은 우선 인천시인협회 회원들의 연회비에서 나온다. 인천시인협회는 가입할 때 심의위원회에서 작품 심의를 한다. 심의에 탈락하는 분이 많다. 그 대신 가입하면 시인으로 성장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포엠피플은 시와 비평 전문지이므로 시 발표뿐만 아니라 평론가로부터 평가받을 기회를 수시로 준다. 회원 수가 많지 않고 연회비가 다른 단체보다는 조금 더 많다. 연회비로 한 호 발간이 가능하다. 포엠피플은 과거의 문학과 대화하고 현재의 문학을 성찰한다. 그리고 한국 문학의 미래를 짚어보는 담론을 다양한 특집을 통해 생산한다. 인천시인협회 회원들은 포엠피플과 동반 성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문화재단의 기금을 지원받는다. 포엠피플은 인천에서 발행하는 문예지이기 때문에 인천문화재단에 기금을 신청한다. 올해는 문화재단으로부터 동인지와 동일한 금액을 지원받았다. 문예지와 동인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문예지는 수많은 외부 필자가 참여하고 동인지는 동인들만 참여한다. 따라서 발간 비용만 호당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동인지는 1년에 한 번 펴내는 연간지이고 포엠피플은 반년간지에서 계간지를 목표로 하는 전문 문예지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필자는 인천문화재단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처럼 호당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호당 지원이 어려우면 동인지와 차등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학판이 변하는데 문화재단이 변하지 않으면 문학 발전은 어렵게 된다. 포엠피플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수 있는 것은 선경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선경산업은 호마다 포엠피플 표4에 광고를 싣는다. 문예지는 광고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광고로 후원해 주는 것이다. 이 기업은 우리뿐만 아니라 문학상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선경산업은 문학에 대한 후원이 선구적이고 적극적이다. 글로벌 시대 문학의 발전은 제조업 분야의 상품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 예술과 문학의 부가가치가 상품에 얹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포엠피플은 10대 문예지를 목표로 한다. 인천시인협회가 시와 비평 전문지 포엠피플을 발간할 수 있는 것은 회원과 문화재단 기금 그리고 선경산업의 후원 때문이다. 순수 문예지인 포엠피플을 지속적으로 발간하려면 문화재단의 현실성 있는 기금 지원이 절실하다. 작가들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성장한다. 한강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K-문학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제2의 한강을 찾기 위해 포엠피플은 매년 신인을 탄생시키며 문학의 저변을 확장하고 있다. 한 권의 좋은 문예지가 작가들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이것이 어려움을 딛고 포엠피플을 발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