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계엄 정당성에 의료 사태를 써 먹다니

탄광 정리를 결심하고 있던 대처 수상이다. 우려했던 강성 노조위원장이 선출됐다. 진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탄광이 파업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석탄 발전소다. 석탄 재고량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동력자원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탄광 파업이 시작되면 시위대가 석탄 반출을 막을 것이다. 발전소로 수송이 가능한 위치에 석탄을 가져다 놓아야 했다. 기름, 원자력, 가스 발전소도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준비한 대처의 승리로 끝났다. 대처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가 소신으로 꽉 찬 방향성이다. 강성 노조를 내부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이들을 눌러야 영국병을 치유한다고 했다. 이 판단에는 토론이 필요 없었다. 직(職)을 건 통치 판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준비된 추진력이다. 노조가 기마병 진압에 항의했다. 다음에는 탱크를 보내겠다고 답했다. 괜한 허풍이 아니었다. 발전소를 충분히 돌릴 석탄을 이미 쟁여 놨다. 노조가 꺼낼 무기를 미리 빼앗은 것이다. 1984년 영국 탄광 사태와 2024년 한국 의료 사태. 출발은 닮았다. 정부 의지가 분명했고, 여론 지지가 높았다. 2025년 의대생을 2천명 늘린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정부의 과업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여론이 지지를 표했다. 의료개혁이 80%, 의대 증원이 70% 언저리였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보는 눈은 싸늘했다. 의료계 ‘험악한 입’도 고립을 자초했다. 금방이라도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 여론이 변한다. 의료 파행 장기화에 대한 여론을 물었다. 정부·여당 책임 49%, 의료계 책임 35%다(엠브레인퍼블릭 조사·10월 말). 불과 4개월여만에 반전이다. 의료개혁 자체에 대한 지지가 바뀐 것 같지는 않고. 결국 사태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다. 전공의 집단 사퇴가 줄을 잇는다. 사실상의 진료 거부가 횡행한다. 의대생들은 계속해 수업을 거부한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은 없다. ‘의료계 위법에 엄정 대응’이라던 대통령의 경고는 오간 데 없다. 그 사이 등골이 오싹할 통계들이 쏟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5월 통계도 그 중 하나다. 외래·입원 진료 환자가 209만명 줄었다. 전년 대비 -1.8%다. 진료 후 사망한 환자는 2천명 늘었다. +2.9%다. 의료 공백 결과가 아니라고 할 텐가. 그러면 우리 옆에서 벌어진 참상은 어찌 설명할 건가. 수원에 사는 16살 A군이 쓰러진 건 지난달 15일 0시다. 병원 4곳에서 받기를 거부했다. 6시간을 헤맨 끝에 수술에 들어갔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응급실 자리가 없다’ ‘수술 인력이 없다’…. 환자 가족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겠나. 생떼 같은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다. 그의 절규가 듣는 이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남편이 저한테 그냥 보내주자 했어요. 고생했으니까 보내 주자고.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고.” 병원을 못 찾던 순간을 설명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이러다 잘못되겠다. 결국은.” 진료 거부인가. 의사를 입건(立件) 조사해야 한다. 의료 공백인가. 주무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탄광 노조가 석탄을 끊을 걸 알았다. 그래서 대처 수상은 석탄을 쟁여 놨다. 그래서 밀어붙였고 영국을 살렸다. 의료계 파업을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정책 집행은 밀리고 환자는 죽어 나간다. 대책이 이 정도로 없을 수 있나. 그 없던 대책이 황당한 곳에서 튀어 나왔다. 3일 밤 새벽 계엄 포고문 1호다. ‘전공의들은 즉각 복귀하라’며 처단하겠다고 했다. 의료 개혁을 계엄 정당화에 써 먹겠다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아픈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윤석열 정부의 파국, 그 끝에서 의료 정책 무능을 본다.

[경기만평]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사설] 병원 4곳이 거부한 16세 소년이 죽었다... 계속 환자 죽일거면 의료개혁 포기하라

모야모야병을 앓던 16세 환자가 숨졌다. 영정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아들이 웃고 있다. 어머니의 피를 토해내는 듯한 오열이 전해졌다. “남편이 저한테 그냥 보내 주자 했어요. 고생했으니까 보내 주자고.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고.” 이 아들의 안타까운 마지막 날이 보도됐다.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코앞 대학병원을 두고 다른 지역을 찾아야 했다. 끝내 사망했다. 어머니는 “나는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며 절규했다. 환자가 쓰러진 것은 지난달 15일 0시30분이다. 수원시 우만동 집에 구급차가 긴급 출동했다. 70분 만에 수원시 권선구의 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측이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전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받아 주는 병원이 없었다.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은 전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용인에 있는 대학병원, 서울의 한 대학병원도 받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15㎞ 떨어진 군포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신고 후 6시간이 지났고 결국 사망했다. 환자의 생명은 꺼져 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피 마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들을 거부한 병원들이 들었던 이유가 전해졌다. 서울의 대학병원은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고 했고, 용인의 대형병원은 ‘인력 문제로 답변에 시간 걸린다’고 했고, 수원의 대형병원은 그냥 ‘전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또 다른 수원의 대형병원은 연락도 닿지 않았다. 이게 그날 0시부터 6시간 동안의 대한민국이다. 의사·병실 없어 환자가 숨져 간 나라였다. 진료 거부는 당연히 조사돼야 한다. 의료법에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런데 이런 사법 기능이 작동하게 될지 의문이다. 18개월 영아가 손가락이 절단됐다. 부모가 부둥켜안고 사방을 뛰었다. 병원 15곳에서 수용을 거부했다. 이런데도 추상같은 의법 조치는 없다. 의사가 국가와 따로 논다. 공권력이 사라진 의료 통제 불능이다. 끝 모를 의료 사태다. 파국을 조정하려던 여·의·정 협의체도 좌초됐다. 쟁점은 2025년 의대 정원 문제였다. 수시 미충원 인원 100명 정도가 있다. 이걸 정시로 넘기지 말자고 요구했다. 예비 합격자 규모도 줄이자고 했다. 의대 정원을 ‘약간’ 줄이자는 요구다. 정부가 ‘수용 불가’를 고수하며 협의체가 해체됐다. 이러는 사이 환자들이 병원서 거부당하고 있다. 더러는 참담하게 죽어 가고 있다. 이쯤에서 묻게 된다. 환자 목숨 위에 의료개혁 있나. 윤석열 정부에는 30년짜리 치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길을 헤매는 환자에게는 30분이 지옥이다. 환자 희생 담보 잡는 개혁이라면 접는 게 옳다.

[사설] 빨라진 은퇴 시계... 정년연장 등 사회적 대타결 있어야

인천시민의 평균 은퇴 연령 48.3세. 보편적 통계 결과는 아니라 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의 생산적 구조가 크게 바뀐 모양이다. 그에 맞춰 우리 사회 구성원 삶의 양식도 많이 달라진 셈이다. 갈수록 은퇴 시계가 급하게 빨리 돌아간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까지 ‘불안’을 마주할 것이 문제다. 인천고령화사회대응센터가 최근 ‘은퇴와 노후 준비’ 조사를 했다. 인천의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경험이 있는 인천시민 623명이 대상이다. ‘주된 일자리’는 가장 오랜 기간 숙련을 축적해 온 일자리를 말한다.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조사 결과 은퇴 평균 연령이 48.3세로 나왔다. 성별로는 남성이 52.1세, 여성이 45.9세였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47.4%로 가장 높았다. 나머지 40대 28.7%, 30대 이하 14.3%, 60대 9.6% 등의 순이다. 평균적으로 한 직장에서 14.4년 일하고 은퇴한 것으로 나왔다. 이들의 은퇴 이후 삶은 매우 불안정하다. 재취업에 성공해도 절반 가까이는 은퇴 전 ‘주된 일자리’의 경력을 살리지 못한다. ‘주된 일자리’ 경력과의 연관성이 5점 만점에 2.77점 정도다. 또 이전 직장과 같은 지위를 유지한 이들이 33%에 불과하다. 대부분 지위가 낮아지는 것이다. 생계유지 등을 위해 원래 직장보다 월급 등이 더 낮은 고용조건에서 일한다. 이는 다시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려 투잡까지 뛴다. 조기 은퇴는 1차적으로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현재 인천 60세 이상 어르신의 70%가 중위소득 50% 이하다. 인천 65세 이상 어르신의 월평균 연금(기초연금·국민연금 등) 수급액은 57만7천원이다. 최소 생활비 수준에도 못미치는 노인빈곤이다. 이 때문에 60세가 넘어서도 소득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인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 954만명이 법정 은퇴 연령에 들어선다. 1차 베이비붐 세대(705만명)보다 훨씬 많은 예비은퇴집단이다. 정년 연장이 논의되고 있지만 세대 간 갈등, 기업 과부담이 장벽이다. 이를 넘어서려면 연대와 포용의 자세가 요구된다. 그래야 경제사회 정책의 큰 틀 안에서 일괄타결이 가능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40대부터 노후준비 프로그램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기존의 조기 은퇴자들은 정년 연장 혜택의 영향권 밖에 있다. 이들에 대한 맞춤형 복지도 고민할 때다.

[지지대] ‘삼일천하’ 갑신정변

조선이 근대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10년의 세월’을 잃어 버렸다. 역사학계가 내린 명쾌한 정의다. 갑신정변 얘기다. 그 현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서울 한복판에선 근대식 우편제도인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이 열렸다. 그때 우정총국 인근 민가에서 불길이 솟아 올랐다. 잔치가 열리던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른바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시작이었다. 1884년 12월4일이었다. 사태는 결국 피를 불렀다. 경우궁으로 피신한 고종을 찾아온 조영하와 민태호 등 대신 11명의 목도 잘렸다. 일본군 200여명을 등에 업은 개화파는 이튿날 곧장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정변 사흘째 오전 고종은 혁신책을 내놨다. 거사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을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군이 청나라 군대 1천500여명에게 밀려서다. ‘일본군 1명이면 청나라 군대 20명을 이길 수 있다’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첫 싸움에서 병사 30여명이 전사했다. 갑신정변은 ‘위로부터의 변혁’이었기에 혁명이라 불리지 않는다. 김옥균은 박영효와 서재필, 서광범 등과 패주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중의 분노는 심화됐다. 박영교와 홍영식이 백성들의 손에 살해됐다. 김옥균의 생가와 일본 공사관 등이 불에 탔다. 평가는 아직도 엇갈린다. 분명한 건 이 사태가 재정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고종의 위임장을 소지한 김옥균이 시도한 일본에서의 국채 발행이 ‘위임장은 위조’라는 수구파의 모함으로 무산됐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8개월 전의 일이다. 견제 세력이 없어진 수구파는 독일인 고문 묄렌도르프의 권고대로 악화(惡貨)인 당오전을 찍어 냈다. 인플레에 찌든 민초의 마지막 고혈은 왕처럼 군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위세를 업은 청상(淸商)에 의해 다시 짜였다. 특별한 자성과 노력이 없으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

[천자춘추] 클래식음악 좋아하세요?

‘클래식’이란 유행을 타지 않는 최고 수준의 명작, 오랜 시간 널리 사랑받고 지속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일상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용어다. 그렇다면 클래식음악이란 무엇일까. 클래식이 음악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면 과거 서양음악으로 한정된다. 보통 바흐, 비발디 등 바로크음악부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주의를 거쳐 19세기 브람스, 슈만 등 소위 낭만주의, 20세기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정도까지를 클래식음악이라 한다. 마이클 잭슨, BTS의 음악은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도 대중음악이라 한다. 클래식은 적어도 50~300년 그 가치를 꾸준히 인정받아 오며 서양 조성음악의 대위법, 화성학, 주제동기 기법의 뿌리에서 발전, 변형되며 창작된 음악이다. 리스트와 파가니니는 순회연주를 하며 오늘날의 유명 아이돌 비슷한 팬덤과 인기를 누렸다. 극성 팬들은 리스트가 무대에서 던진 장갑을 나눠 가지려 몸을 던지고 피우던 시가까지 소장하러 경쟁하며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표했다. 말러의 ‘천인 교향곡’이 초연될 때는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왕족, 문학가, 시인 등 당대 유명 인사들이 몰려 열광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사후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발굴 및 지휘한 후 재조명돼 ‘음악의 아버지’라는 찬란한 호칭도 얻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조성진, 임윤찬 등 스타 연주자 음악회의 티케팅 경쟁과 클래식 악기 취미 수요는 상당하나 출산율 및 학령인구의 감소와 함께 과거 찬란했던 대중적 인기는 다소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대중의 취향은 변한다. 클래식 역사에서도 18세기에는 유쾌하면서도 고상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을 선호했으나 19세기에는 익숙한 화음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다채로운 화성 진행과 개성적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어떤 시기, 어떤 스타일의 클래식이든 개인적인 호불호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음이 오랜 세월 인정된 음악이다. 영화를 볼 때도 평점이 좋거나 검증된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선택할 때가 많지 않은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미적 가치가 검증된 음악, 화려하지 않아도 은은한 스테디셀러가 클래식음악이다. 태양왕 루이14세가 권력 강화를 위한 이미지메이킹 도구로 적극 활용한 클래식. 루이 14세는 작은 악단이 항상 자신을 수행하며 연주하게 했다. 청력을 잃었던 베토벤은 내면의 갈등과 고통의 승화 과정을 클래식 기악작품에 쏟아냈다. 대체 클래식에 어떠한 힘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냥 느껴 보길 권한다. 추상적인 감정의 실체가 그대로 다가오는 것이 클래식이다. 말은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기 어렵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음악은 감정 자체이므로 오해가 없다. 어떤 작곡가, 어떤 연주자의 클래식이든 그들의 삶 속 고민과 흔적, 감정들이 듣는 나에게 매번 다양하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냥 오롯이 몽글한 감성에 젖어 보자. 연말의 화려함과 공허함이 공존할 때, 복잡한 심정일 때, 내 맘에 꼭 맞는 어떤 멜로디들이 따뜻한 위로가 돼 줄 것이다.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 내 삶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갈 힘이 돼 줄 것이다. 클래식은 클래식이니까.

[세상읽기] 셰르파 vs AI안전연구소

‘셰르파(Sherpa)’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히말라야산맥, 특히 네팔 북동부와 에베레스트산 남쪽 솔루쿰부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 계열의 부족을 가리킨다. 셰르파는 고산지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산맥에 널려 있는 숱한 위험과 장애물에 친숙하며 등산 실력 역시 출중하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히말라야산맥을 오르려는 등정대에 셰르파는 매우 중요한 가이드다. 셰르파는 언뜻 ‘짐꾼’처럼 보인다. 맞는 말이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는 짐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험한 등정 과정에서 앞에 어떤 장애물이 놓여 있고 장차 어떤 위험이 닥칠지 셰르파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셰르파는 등정대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그래서 셰르파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안내 없이는 그 어느 등정대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이르기 힘들다. 등정대가 드디어 산 꼭대기에 이르러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며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동행한 셰르파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짐꾼이자 길잡이이지만 등정대의 주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셰르파는 다양하고 많은 등정대를 꾸준히 돕는다. 50세의 셰르파 카미 리타는 부친의 뒤를 따라 셰르파의 길로 나선 1994년 이래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다양한 등정대를 안내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29번이나 올려 놓았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한 성공 이야기 가운데 셰르파의 이름과 얼굴은 언제나 중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우리나라 최초로 ‘AI안전연구소(AI Safety Institute·AISI)’가 판교 글로벌 R&D센터에 문을 열었다. 현재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며 입법 과정을 밟고 있는 ‘AI기본법’에도 명시된 조직이다 보니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기대와 우려가 겹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업의 입장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규제’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AI안전연구소가 앞으로 AI 기업에 대해 일종의 규제 기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법하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내세운 표현이 바로 ‘셰르파’다. AI안전연구소를 뜻하는 AISI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공통 명칭이다. 다들 ‘에이시’라고 읽는다. AISI에서 알파벳 ‘S’는 안전(Safety)에 해당하지만 이는 셰르파로 대체될 수 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정대인 우리나라 AI 기업에 AI안전연구소가 셰르파와 같은 존재로 다가가는 것은 연구소가 제시한 비전이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위험과 장애물을 예측하고 발견해 제거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안전한 등정길을 만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AI안전연구소의 역할이다. 이날 개소식에서는 우리나라 AI 기업, 대학, 연구소 등 25개 조직과 단체가 앞으로 AI 안전에 관해 원팀(One Team)이 되고자 ‘AI 안전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했다. 향후 AI 안전 컨소시엄을 통해 AI 안전을 함께 도모할 조직과 단체를 추가로 더 모은 후 컨소시엄 발족식 및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선진국마다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라보며 나름대로 국가 전략을 세우고 AI 산업 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다만 AI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를 국가 단위로 불식하기 위해 작년 11월 영국이 AI안전연구소를 최초로 세운 이래 미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도 이번에 여섯 번째로 설립했다. 우리나라 AI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도록 AI안전연구소가 국제 협력 활동은 물론이고 ‘셰르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경우 AI 국가경쟁력 3위(G3)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슈&경제] 1기 신도시 재건축 제대로 순항할까

드디어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가 발표됐다. 분당 세 곳 1만1천가구, 일산 세 곳 8천900가구, 평촌 세 곳 5천500가구, 중동 두 곳 6천가구, 산본 두 곳 4천600가구로 총 13개 구역에 3만6천가구가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는 해당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로 야구 경기에 빗대면 가장 먼저 출전하는 1번 타자에 해당한다. 1번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면 그 팀의 승리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기에 중요하고 재능이 있는 타자를 선정한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에서 1번 타자가 되기 위해 많은 단지가 수개월 동안 치열한 경쟁을 했다. 필자도 올여름 분당에 있는 모 단지에 초대받아 찬조연설을 하러 갔는데 여름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체육관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도지구 선정 기준은 ▲주민 동의 60점 ▲주차대수 10점 ▲도시 기능 활성화 10점 ▲통합 정비 참여 10점 ▲사업 실현 가능성 10점 ▲기부채납 가산점 6점으로 평가를 했는데 선도지구 지정을 위해 대부분의 단지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을 것으로 보여 결국 기부채납 점수에서 당락이 결정된 것 같다. 점수로 공정하게 평가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아쉬운 점은 남는다. 재건축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사업성으로 결국 일반분양을 많이 뽑고 일반분양가를 높이 책정해 추가 분담금을 최대한 낮춰야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어 순항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용적률을 최대한 높게 받을 수 있도록 준 주거지역으로 종 상향이 용이하고 높은 분양가에도 일반분양이 성공할 수 있는 역세권 인기 단지가 선정되는 것이 1기 신도시 재건축 전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요했는데 선도지구 선정 단지를 보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역세권이 아니고 지역 안배를 고려하지 않고 특정 구역에만 몰리는 현상도 발생했다. 공정하게 처리해 잡음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했다면 세부 점수표를 함께 공개해 탈락한 단지들이 수긍하도록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선도지구가 선정됐으면 이제 본격 추진해야 하는데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정부가 제시한 2027년 착공, 2030년 완공 목표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가능하다. 2027년 착공에 들어가려면 지금 이주를 시작해야 한다. 설사 2027년 착공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3만6천가구의 이주 수요가 나오면 주변 집값 전셋값 폭등은 불 보듯 뻔하다.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건축심의, 사업시행계획 인가, 조합원 분양 신청, 관리처분계획 인가 과정을 거쳐야 이주하고 철거를 할 수 있는데 아직 조합 설립도 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조합 설립을 하는 데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구체적인 사업비와 추가 분담금이 나와 재건축 조합과 사업 시행에 대한 동의까지 받았다면 모를까 선도지구 지정만을 위한 동의만 받은 상태여서 막상 본 게임에 들어가면 원하는 동의를 받기 쉽지 않다. 추진위에서는 2억~3억원 추가 분담금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5억원 이상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마저 지금 진행해야 그렇지 10년 이상의 사업 기간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10억원이 넘는 추가 분담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소송에 걸리지 않고 재건축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해도 1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라 진행이 된다고 하지만 지켜야 할 절차가 있고 특별법이 학교 문제 사전 해소, 부동산원 분담금 산출 지원, 전자 동의 방식 도입 등 행정 지원과 12조원 규모의 미래도시 펀드 자금 조달 등 금융 지원, 협력체 구성, 찾아가는 설명회 등 협력형 정비 정도의 지원만으로 획기적으로 사업 기간을 단축하기는 어렵다. 재건축 정비사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은 돈 문제다. 추가 분담금과 사업비를 두고 조합 내부의 갈등,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 기부채납을 두고 지자체와의 갈등은 정비사업의 단골 메뉴다. 지금은 마치 다 해줄 것 같은 지자체도 기부채납 문제는 양보하기 어렵다. 선도지구 지정을 하면서 기부채납을 많이 하겠다는 단지에 점수를 더 줬는데 기부채납을 적게 받겠다면 탈락한 단지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은 이제 첫걸음마를 뗐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재건축도 여러 어려운 단계를 밟아야 한다. 자녀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할 목표라면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겠는가. 선도지구 선정이 된 후 일부 단지는 5천만원에서 2억원까지 호가가 올랐다고 하는데 험난한 긴 여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냉정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기만평] 제발 쫌...

[사설] ‘트럼프 관세’가 직격할 반도체·자동차... 경기도민 잠 안오는 데 정치는 쌈박질

국민의힘은 이렇게 밝혔다. “사회간접자본(SOC) 등 각종 예산을 삭감한 것은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제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렇게 밝혔다. “세계적 경제 위기의 영향을 받았던 이전과 달리 외부 충격 하나 없는 1%대 저성장이 문제다.” 예산안 심사 파행을 두고 벌이는 ‘네 탓’ 타령이다. 정부가 677조4천억원의 예산안을 제출했다. 야당이 4조1천억원을 감액해 단독 통과시켰다. 여당은 다수당 폭거라며 정면 대치 중이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이 없음은 물론이다. 국내 각종 경제 지표가 최악이다. 한국은행의 예상 경제성장률은 내년에 1.9%다. 올해 2.2%보다 크게 후퇴했다. 2026년에는 1.8%로 더 나빠질 것으로 봤다. 2년 연속 저성장은 예가 없다. 위기를 부채질하는 눈앞의 변수도 등장했다. 관세 폭탄을 호언한 ‘트럼프 관세 리스크’다. 직격 당하게 될 품목이 자동차와 반도체다. 신용평가사 S&P가 지난달 30일 트럼프 수입 관세가 자동차 업계에 미칠 보고서를 내놨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25% 관세에는 현대·기아차가 관리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보편 관세 20%가 한국에 적용할 경우는 다르다. 총 영업 이익이 19%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위협이 직격할 곳은 경기도다. 현대차·기아차 모두 경기도가 본산이다. 화성시 남양연구소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중추다. 부품 생산 업체들도 경기도에 많이 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이 직격할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 분명하고 그 타격 지역은 경기도가 분명하다. 경기도 산업의 중추, 반도체도 큰일이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5~2016년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반도체 불황이 지자체에 준 타격이다. 수원시가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법인지방소득세가 1천755억원에서 826억원이나 줄었다. 화성시도 1천646억원에서 715억원, 용인시도 856억원에서 366억원 줄었다. 삼성전자의 하청 기업은 현재 2천515개다. 이들로 옮겨 붙을 불황 파동은 더 크다. 트럼프발 반도체 위기가 경기도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가 낼 대책도 필요하다. 지자체 노력도 요구된다. 하지만 이게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줘야 한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미국으로 달려갔다. 트럼프를 만나 무역적자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저러고 있다. 예산안 삭감 탓하고, 경제 위기 초래 탓한다. 그러면서 무서운 말도 내뱉는다. ‘나라 망하면 당신들 책임이다.’ ‘정쟁’이란 단어조차 아깝지 않나. 이건 차라리 쌈박질 아닌가. 사전(辭典)은 쌈박질의 정의를 ‘싸움하는 일을 낮잡아 이름’이라고 했다. 경기도 산업을 걱정하는 도민 눈에 비친 모습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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