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천불 소득! 백억 수출!’ 을 아십니까?

‘천불 소득! 백억 수출!’ 60대 이상이면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내내 들었던 구호일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만 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온 국민의 하나 같은 염원이었다. 사회지도층에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다수 국민은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치던 시절이었다. 1972년 11월7일 박정희 대통령은 ‘월간 경제 동향 보고’에서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을 1천불로, 그리고 1980년에는 1백억불 수출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1977년 12월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불을 돌파했습니다.” 온 나라가 흥분에 빠졌다. 수출 100억불, 쉽게 믿기지 않을 숫자였다.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던 1962년의 수출액은 5천만달러였고 1964년에야 1억달러를 달성했다. 10억달러를 넘은 것은 1970년의 일이었다. 10억달러에서 100억달러가 되는 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이 걸렸다. 우리는 불과 7년이 걸렸다. 100억달러 돌파는 ‘한강의 기적’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이 기쁨과 보람은 결코 기적이 아니요, 국민 여러분의 고귀한 땀과 불굴의 집념이 낳은 값진 소산이며, 일하고 또 일하면서 살아온 우리 세대의 땀에 젖은 발자취로 빛날 것입니다.” 축하의 표시로 광화문 네거리에는 ‘100억불 수출의 날’이란 대형 아치가 세워졌다. 수출 1백억달러 달성에 뒤이어 1978년 새해에는 대망의 1천달러 소득이 실현됐다. 1978년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1천50달러, 1975년 500달러를 돌파한 이래 3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쾌속의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처음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던 60년대 초 연평균 성장률 7% 목표에 대해서조차 무리한 계획이라며 많은 논란이 있었고 70년의 10억달러 수출 목표 자체도 그 당시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꿈으로 여겼던 일이었다. 일부에선 공허한 선전이라고 여겼으나 수출과 1인당 국민소득은 모두 목표보다 4년이 앞당겨진 1977년 성취됐다. 이는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1인당 GNP가 1천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은 우리 경제도 중진국 대열에 진입함을 뜻하며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먹고 입는 문제는 우선 해결했다고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좁은 섬나라 같은 국토, 빈약한 자원, 긴 겨울, 많은 인구, 전쟁으로 파괴된 산하 등을 가르치고 배웠다. 이러한 절망적 환경은 수출만이 살 길이었다. 시작된 산업화는 외자 투자유치, 인력 개발, 국제경쟁력 강화 등의 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그저 가발과 인형 수출 등으로 초라하게 출발했다. 공장에서는 ‘QC(Quality Control·품질관리)’, ‘공장 새마을운동’ 등으로 불량을 몰아내고 품질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국제표준에 맞추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국민의 ‘마이 홈’과 ‘마이 카’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져만 갔던 시절이다. 드디어 2023년 말 국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3천745달러로 일본을 추월했다고 한다. 경천동지, 격세지감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 같다. 말로만 하는 반일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 준 극일을 이룬 것이다. 우리는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수출로 먹고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누구도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다. 스스로 힘으로 이뤄내고 지켜내야 할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3만달러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모으면 4만달러 고지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 ‘트럼프 2.0’이 우리의 수출길을 불안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긴다. 우리에게는 ‘천불 소득, 백억 수출’의 비전을 기억하며 선진국에 안착할 수 있는 또 다른 도전에 대한 비전과 목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철저한 대비만이 우리가 이룬 것을 지켜내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경기만평] 희망사항...

[사설] 임태희표(標) 과학고 선정, 시작부터 신뢰 잃다

무슨 공공 기관의 공모 절차를 이렇게 진행하나. 상식에도 반할 뿐더러 위법 소지까지 다분하다. 경기도교육청의 과학고 공개 선정 절차 얘기다. 당초 공고에서 1단계 예비 지정 발표는 오는 30일이었다. 이 결정을 닷새 앞둔 26일 관련 일정이 연기됐다. 서류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요구를 반영했다고 한다. 세밀한 심사를 위한 변경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서류 심사에는 심층 질의도 새로 추가됐다. 25일 각 교육지원청에 변경 내용이 통보됐다. 임태희 교육감의 역점 사업이다. 교육감선거 때 핵심 공약이었다. 경기도에 대한 역차별 해소 차원이다. 시•군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교육청이 지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언제나 수요와 관심이 많다. 특히 과학고 유치는 많은 시장·군수들의 공약이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12개 시•군이 신청했다. 고양·광명·구리·김포·시흥·이천·용인·평택·화성시 등이 신설 방식, 부천(부천고)·성남(분당중앙고)·안산시(성포고)는 전환 방식이다. 선정 절차가 확정된 건 오래전이다. 1단계 예비 지정, 2단계 특목고 지정, 3단계 교육부 요청 순이다. 1단계 심사 방식이 ‘서류 심사’다. 이 첫 번째 절차가 연기되고 변경된 것이다. 서류만으로는 세부 평가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게 중대한 공모 내용의 변화를 정당화 하는 근거가 될까. 응모자라면 서류 내용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 내용의 차이가 곧 경쟁의 본질이다. 세밀하지 못한 시•군은 떨어뜨리면 된다. 그런데 전체 시•군을 다 되물렸다. 정해진 공모 절차를 통한 해결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교육청이 행해 오는 숱한 입찰·공모가 있다. 적격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는 왕왕 있다. 이때 준용되는 일반화된 방식이 있다. 일정 배수 이상의 예비 선정자를 뽑는다. 다음 단계에서 심층 심사한다. 여기서 부적격자를 걸러내면 된다. 다행히 이번 공모에는 2단계 심사도 있다. 그런데 교육청은 서류 심사라는 공모 약속을 깼다. 공모 때는 없던 심층 심사까지 끼워 넣었다. 이렇게 막 바꿔도 되는건가. 제일 어이없는 건 이거다. 살폈듯이 시•군의 사정은 절박하다. 시장·군수, 국회의원들의 공약이다. 탈락할 경우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 당연히 탈락의 변을 찾지 않겠나. 절차 임의 변경의 위법성은 더없는 트집거리다. 이런 이유로 거쳤어야 할 절차가 법리 검토다. 26일 기자들이 ‘법리 검토를 거쳤느냐’고 물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안 했다. 최대한 서둘러 하겠다’고 했다. ‘위법’으로 결론 나면 어쩔 셈인가. 토목 입찰이었다면 벌써 난리 났을 일이다. 임태희표 과학고 선정이 시작부터 신뢰를 잃었다.

[사설] “E4호텔 수백억 뻥튀기”... 진실 공방 명백히 가려야

요즘 인천시 안팎에서 송도 E4호텔(송도센트럴파크호텔) 논란이 뜨겁다. 최근 iH(인천도시공사)는 E4호텔 공사비 의혹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인천경찰이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인천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맡는다고 한다. 지난 21일에는 황효진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직접 브리핑에 나서 경찰 고발까지 가게 된 사정을 밝혔다. 이 호텔은 송도 개발 초기 2007년 국제도시 기반 시설을 위해 착공했다. 그러나 시공사 부도로 iH가 인수한 이후 수년간 방치했다. 2013년 들어 인천아시안게임 취재진 숙소 마련을 위해 민간사업자 공모방식으로 사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사업의 일부인 관광호텔만 완공했다. 나머지 레지던스호텔은 시작도 못한 채 공사비 미지급 등에 따른 다툼만 이어지고 있다. 이날 황 부시장의 브리핑을 통한 인천시·iH 측의 입장은 이렇다. 레지던스호텔 공사비가 수백억원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민간사업자와 시공사의 재무제표상 레지던스호텔의 공사비는 107억원뿐인 것으로 본다. 황 부시장은 “민간사업자와 시공사 대표는 사실상 동일인으로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이 같은 통정거래를 통해 공사비를 부풀린 정황이 있어 iH가 경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재무제표 분석을 통해 추정한 레지던스호텔 공사비 107억원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관광호텔 부분의 공사비 일부가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iH가 민간사업자에게 레지던스호텔 관련 공사금액 정산을 요구했을 때도 아무런 증빙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설계도면이나 회계자료, 공사계약서 등이다. 그러나 민간사업자 측은 레지던스호텔공사비는 이미 2차례나 400억원 이상의 감정가가 나왔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5년 iH가 지정한 업체의 감정과 최근의 법원 감정에서다. 인천지법은 2020년 제기된 민간사업자와 시공사 간 550억원 규모의 공사대금 청구 소송 심리를 하고 있다. 시공업체는 공사비 451억원에 이자 272억원 등 723억원을 청구했다. 이후 법원 선정 감정인은 레지던스호텔에 기성률 74.26%를 적용, 공사비를 409억원으로 잠정 산출했다. 이렇듯 복잡하게 얽힌 진실 공방에 대해 시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인천시는 민선 5기 당시 iH와 민간사업자 간의 불합리한 계약이 사태의 단초라는 입장도 내놨다. 따라서 경찰 수사를 통해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iH는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이런 분란을 만들었는가. 주인 없는 공기업이어서인가. 아무튼 인천시민의 자산이 걸린 일이다. 경찰은 명명백백히 사태의 본질을 밝혀 내야 할 것이다.

[지지대] 오빠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논에서 울고/뻐꾹 뻐꾹 뻐꾹새/숲에서 울 제/우리 오빠 말 타고/서울 가시며/비단구두 사가지고/오신다더니.’ 한국에서 동요 ‘오빠 생각’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이는 없을 듯 싶다. 서정성과 소리말이 살아 있어 그 자체로 아름답다. 동요의 주인공은 최순애(1914~1998). 수원 북수리에 살던 열두 살 소녀 최순애는 1925년 오빠를 간절히 기다리던 마음을 동시 오빠 생각에 실어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 투고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화성 성벽을 따라 산길로 올라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뜸부기 울음소리를 듣다 오빠를 그리워했다 한다. 여기에 청년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였고 이내 국민 애창곡이 됐다. 오빠 생각이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수원문화도시포럼은 오빠 생각이 어린이 잡지에 실린 지 100년이 되는 내년 5월 ‘오빠 생각 노래비’ 제막을 목표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수원과 최순애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발굴될지도 기대된다. 실제 오빠 생각에는 방정환과 최순애의 남편이자 ‘고향의 봄’ 작사가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최순애가 그리워하던 오빠 최영주 등 다양한 인물이 연관됐다. 동요문화를 일으켜 어린이들에게 트로트 대신 동요를 돌려주자는 취지도 있다. 지난달엔 그림책도 출간됐다. 박상재 아동문학가와 김현정 그림작가는 동요 오빠 생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를 모티브로 한 동화책을 펴냈다. 주인공은 비단구두를 사가지고 돌아오겠다는 오빠를 한없이 기다리는 순이와 단짝 홍이. 수원 화성과 광교산을 배경으로 한 두 소녀의 여정은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펼쳐진다. 잊혔던 역사가, 지역의 인물이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될 때 지역의 정체성은 더욱 뚜렷해지고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지역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노래비 건립 추진과 책 출간 소식이 마침 반갑다. 최순애와 오빠 생각이 어떤 상상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기고] 적극행정 확산, 발전하는 가평

급속한 사회 변화와 함께 행정의 수요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직자들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행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복잡한 행정 상황에서 공무원이 단순히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군민 중심의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적극행정은 군민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적극행정은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법령이 불명확한 상황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자세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규정이 없어서 어렵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긍정의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즉,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 마인드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평군은 민선 8기 들어 적극행정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왔다. 그중 하나인 ‘적극행정 지원·면책제도’는 공무원들이 불명확한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호막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선례가 없거나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주저 없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제도 덕분에 공무원들은 책임 문제로 인한 부담을 덜고 군민을 위한 최적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또 가평군은 ‘적극행정 보상제도’를 통해 우수한 적극행정을 독려하고 있다. 평가를 거쳐 공무원들에게 승진 가점이나 포상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행정 마일리지제도로 실적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게 해 동기 부여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로써 군민을 위한 행정에 있어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 사례들은 이러한 정책이 군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일례로 청평면 A다세대주택 가스시설 개선 사례는 2년 넘게 미해결된 채 위험에 노출돼 있던 가스시설 문제를 적극행정으로 해결했다. 군은 주민과 꾸준히 소통하며 문제 해결에 집중했고 그 결과 주민 안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과는 경기도 주관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주목받으며 적극행정이 주민의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다른 사례로 2026년부터 시행될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에 대비해 군은 발 빠르게 소각시설 입지를 결정했다. 주민설명회와 공모 과정을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며 빠른 행정 절차를 밟은 이 사례는 주민들과 협력하는 적극행정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평군은 적극행정과 함께 무사안일의 ‘소극행정’ 근절을 위한 단속과 처벌도 병행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 등을 파악하지 않고 처리하는 ‘적당•편의주의’, 특별한 사유 없이 소관 업무를 처리하지 않거나 늑장 대응하는 ‘업무태만’,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편의상 관례대로 처리하는 ‘탁상행정’ 등이 소극행정의 대표적 사례다. 군은 앞으로 업무태만 등에 대한 단속과 처벌 등을 강화해 소극행정 퇴치에 적극 노력하겠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적극행정문화를 확산하고 우수사례 경진대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군민 중심의 행정을 강화할 계획이다. 가평군의 모든 공직자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군민의 요구에 응답하고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적극행정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 개선을 넘어 군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력이다. 군민을 위한 적극행정으로 군민과 함께하는 가평군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겠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자춘추] 기후변화와 새로운 성장엔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최근 폐막했다. 본 회의는 유엔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995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회의로 2015년 11차 회의에서는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목표를 핵심으로 하는 전 지구적인(190여개국) 합의안(파리협약)을 도출하기도 했다. 올해는 새로운 기후재원 목표 설정과 국제탄소시장 운영 기반 조성을 주요 과제로 다뤘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2022년에 세계 14번째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 통과됐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전 국가적인 노력은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기후변화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총회가 열리기 전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4도 높을 것으로 분석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지구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기후변화 목표가 위태로운 상황인 것이다. “공유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믿고 각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해 모두가 파국을 향해 달린다.” 미국의 생물학자 개릿 하딘의 지적이다. 파리협약 등 규제와 관리를 위한 협의체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부분은 기후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산유국 등 국가 간 입장차와 상황이 다른 것은 협력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또 최근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은 파리협약을 탈퇴한 경험도 있고 기후변화 대응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세계의 기후위기는 다가오는데 공유지의 전형적인 무임승차와 의무태만 등의 행태가 이뤄지고 있어 위기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탄소중립 목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국가 간 상황이 다르지만 기후변화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때 협력 기능은 강화되고 투자도 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저출산과 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녹색기술과 청정 에너지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환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라고 할 수 있고 제품의 차별화 요소와 친환경적인 고객 선호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국내 산업의 생존 전략은 녹색성장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함께하는 미래] 예술·과학·산업의 융합이 만드는 미래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매년 9월 개최되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세계 최대의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로 예술과 과학, 산업의 융합을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혁신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BMW, HP 등 글로벌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하며 전 세계의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모여 상상력과 기술을 결합하고 현실 문제 해결과 사회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장이 되고 있다. 1979년 시작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중심에는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수행하는 ‘퓨처랩(Future Lab)’이 있다. 이 연구소는 지멘스와 협업해 의료 영상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버추얼 아나토미’, 와콤과 협업해 생체신호를 그래픽화하는 ‘라이프 잉크’, 도이치텔레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차세대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 기술 융합으로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맞춤형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기업 혁신을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며 기업과 예술, 과학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문화, 기술과 산업뿐 아니라 도시와 지역사회의 혁신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자신들의 노하우와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지역 연구개발(R&D)과 교육을 혁신하고 공장과 폐우체국을 창조 산업의 허브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등의 문화와 기술의 창의적 융합으로 낙후돼 가는 철강산업 도시였던 린츠는 디지털 아트와 혁신의 글로벌 허브로 변모하면서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 아트 창의도시로 지정돼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도시와 지역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 것이다. 린츠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사례는 기술혁명 시대의 경쟁력이 창의적 생태계 구축에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닌,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통해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혁신을 이끌어 내는 국가와 도시만이 미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전 세계 67개국, 1천260개의 프로젝트가 참가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출품작의 25%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었다. 증강현실과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는 지난 몇십년보다 기술과 예술과 산업과 사회의 변화가 더욱 밀접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이며 그것을 선도하는 새로운 씨앗들이 이곳에서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 문화의 유기적인 융합은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이며 다가오는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혁명 시대의 핵심 동력이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린츠시가 만들어낸 예술과 과학, 산업의 싱크탱크와 허브의 구축이 우리에게도 시급한 이유다.

[김종구 칼럼] 차라리 AI 법관을 모시든지

A는 작은 기업의 상무로 재직 중이다. 공직에 있을 때는 노조위원장을 했다. 노조의 흔한 정치적 성향과는 다르다. 정치를 즐겨 입에 담지 않는다. 그래도 어제는 정치가 술안주로 등장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인 재판 얘기였다. 현직 공무원 B와 C는 듣기만 했다. 박사 D와 필자가 주로 말했다. 이재명 무죄가 옳은가 유죄가 옳은가. 막판에 A가 말했다. “이래도 싸우고 저래도 싸우고, 이럴거면 AI로 재판하는 게 좋겠다”. 술자리 해답은 그걸로 채택됐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법관이다. 이재명 대표 사건에 대해 판결도 이미 내렸었다. 위증교사 사건만 쭉 모은 통계를 들이댔다. 2022년 이후 위증교사범의 83.1%가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었다고 소개했다. 실형 비율이 35.2%라고 했다. 최근 내려진 판례도 등장했다. 지난 6월 전 안산시장 P의 재판 결과다. 위증교사를 시킨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논리의 끝은 ‘이재명 징역형’이다. 근데 틀렸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여기서는 유무죄를 논하지 않겠다. 최종심이 남았고 변수도 많다. 다만, 유죄 예측의 근거를 좀 보고 가려 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건이 있나. 위증교사가 1만건이면 1만건 다 다르다. 83.1%와 이재명 사건은 무관하다. P시장의 예도 그렇다. 당시 판결문에 이런 부분이 있다. “피고인은 증인들에게 위증 연습까지 시켰다.” 증인과 통화했던 이 대표 혐의와는 다르다. 이 대표 유죄의 근거로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걸 보수정치, 유튜버들이 써 먹는다. 보름 전 선거법 위반 사건도 보자. 이 대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이 나왔다. 야권에서 재판이 잘못됐다고 난리다. 이 대표는 고(故)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했다. 이는 인식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반박했다. ‘골프 회동은 부인한 적도 없다. 하지도 않은 주장을 전제로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 직후 민주당에서 나온 입장이다. 야권 진영이 이 주장을 기초로 삼고 있다. 정치검찰에 놀아난 법원이라는 비난의 근거로 삼는다. 역시 유무죄는 말하지 않겠다. 이 역시 항소심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재판부의 판결문은 볼 필요가 있다. 이 대표 측의 주장을 하나하나 짚고 있다. 김 처장을 모른다는 주장은 그대로 인정했다. 부분 무죄라고 봤다. 그 대신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짚었다. “조작한 거죠” 등의 발언이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까지로 받아들여졌다’고 판시했다.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까지 붙이고 있다. 그런데도 야권은 딴소리다. 정치권이 왜 이러는지 뻔하다. 여론을 몰고 가려는 작전이다. 여론 재판으로 옥죄려는 술수다. 불행히도 이런 수가 통하는 세상이다. 이제 재판부 뭉개기는 충성 경쟁의 척도다. ‘위증교사는 100% 유죄로 바뀔 것이다’-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다. ‘선거법 항소는 반드시 무죄가 될 것이다’-진보 진영의 영웅이된다. ‘항소심을 겸허히 기다리자’고 썼다간 좌우에서 몰매 맞기 딱이다. 정치가 법치의 모든 걸 빼앗았다. 판결의 신뢰, 판사의 권위 다 없어졌다. 8년 전인가. 바둑에서 알파고를 만났다. 인간계(界) 최강 이세돌 기사와 붙었다. “아직은 AI가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 그의 자신감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세돌 1승, 알파고 4승. 세계 바둑계 어디서도 이 승부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세돌은 3년 뒤 바둑계를 떠났다. 그가 지난 7월 NYT와 인터뷰를 했다. “인간의 창의성, 독창성, 혁신성도 AI 등장으로 사라졌다.” A가 툭 던진 AI 법관이 해법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동의는 하루도 못 돼 철회됐다. 한국 정치가 AI 법관인들 가만두겠나. 좌파 AI, 우파 AI로 가르려 들 텐데.... 아예 AI 법관의 코드를 뽑자고 덤빌지도 모르고. 정치가 만들어가는 법치 망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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