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사격장 이전

군부대 사격장내 영농문제가 연초 농번기때마다 ‘된다’ ‘안된다’로 이어져 마치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6.25전쟁이후 군작전상 필요한 땅이면 어느 곳이던 징발해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지만 지역이 점차 개발되고 상주인구도 늘면서 주민생활에 끼치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격장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부시책에 따라 군훈련에 지장이 없는 한도내에서 영농이 허용돼왔다. 이에 부대는 매년 당해년에 한해 영농을 허용한다는 각서를 받아왔고 농민들도 이를수용해 사격장내 영농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군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올해도 올한해만 영농을 허용한다는 방침아래 사격장내 기동로를 기존 3.5m에서 8.5m로 넓히고 주변에 철조망을 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기동로를 넓히는 것은 1천500여평의 농경지 잠식과 함께 49만여평에 철조망을 침으로써 많은 국방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주민들은 군부대의 이런 계획들이 영농을 금지토록하는 전초전이라며 사격장 폐쇄운동을 점차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격장 이전은 지역주민들의 숙원이다. 이런때 민·관·군은 머리를 맞대고 주민 편에 서서 생각해보고 주민들을 위하는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행정이나 군부대나 모든 정부조직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조직돼 있고 조직의 목적이 국민을 위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처럼 지금부터라도 사격장의 이전 문제를 논의, 통일시대에 대비해 한반도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연천=장기현<제2사회부> khjang@kgib.co.kr

봄비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동양적 서정 세계를 부드럽고 아늑한 율조로 읊은 이수복(李壽福) 시인의 ‘봄비’라는 詩다. 산과 들을 적시는 봄비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봄엔 풀리게/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풀리게 하옵소서./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초록의 눈물, 그리고 땅속의/벌레들 마저 눈뜨게 하옵소서./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새 소리, 물 소리에/귀는 열리게 나팔꽃인양,/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불붙게 하옵소서” 연천 태생의 박희진(朴喜璡) 시인의 ‘새봄의 기도’라는 詩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리던 봄비가 16일 전국적으로 내렸다. 잠시 내린 이 봄비로 지난 2월 19일부터 한달가량 전국에 내려졌던 건조주의보가 경기도와 서울, 강원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제됐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도와 인천에 적게 내려서인가, 도무지 봄비가 왔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정치꾼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자연이 오염되었는가, ‘봄은 찾아 왔는데 봄이 정녕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李白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수복의 ‘봄비’같은 봄비가 온누리에, 그리고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속에 종일 내려 박희진의 ‘새봄의 기도’처럼 나뭇가지마다 초록눈물이 맺혔으면 좋겠다. /청하

실효성없는 본적란 폐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3일 전직 대통령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지역감정의 골을 해소하기 위해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이후에 찬반 양론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지역감정 문제가 특히 선거 때 마다 증폭된 작금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려는 생각에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지역감정이 과연 호적에서의 본적란 때문인가. 물론 아니다. 역대 정권이 국민의 자연스런 애향정서를 불순한 의도로 왜곡시켜온 것이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의 원인이다. 본적의 가족법상 정의는 호적의 존재장소다. 그러나 국민정서는 법에 앞서 연년세세(年年歲歲)의 혈연, 가족관계 및 개인 정체성의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법을 바꿔 본적을 삭제할 수는 있지만 그에 앞서 국민 일반의 공감이 선행돼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 제도하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때 각종 서류 등을 통해 개인의 본적지가 따라다니고 그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출신지를 환기시켜 주기 때문에 본적란 삭제가 지역감정 타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찬성론도 있다. 그러나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는 일은 여권에서 국적을 안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이력서에서 학력을 없애는 것 과도 같다. 본적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뿌리와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적 기재를 왜 나쁜 의미로 해석하는가. 또 호적제도 자체는 유지하면서 본적지란을 없애는 것은 호적등·초본 발급시 출생지 등이 상세히 나타나 실익도 의문시 된다. 현실적으로 취업, 진학, 자격시험 때 본적지를 스스로 표시토록 하는 관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만큼 설령 호적에서 본적이 삭제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지역주의를 치유할 수는 없다. 현 제도하에서도 본적을 옮기는 전적(轉籍)이 어렵지 않고, 또 많은 국민이 실제로 본적을 옮기고 있지만, 그로써 지역감정 문제의 심각성이 결코 덜해지지는 않는다. 지역감정을 극소화하려는 고충은 십이분 이해가 되지만 호적에서의 본적 삭제 문제는 무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 둔다. 본적폐지 검토는 지역감정 해소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것인지 법령이 아니다.

조급한 對北 ‘노크’, 상투적 ‘반응’

북한을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로 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각은 오류다. 그랬으면 좋지만 북한은 다르다. 단순한 사회주의 정권이라면 벌써 개혁개방에 나섰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유가 동구권 붕괴이후 더욱 강도높게 다진 김일성주의에 있다. 김일성주의는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로 폐쇄사회에서나 가능한 체제다. 이를 모르지 않을 김대통령이 그제 재향군인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혁개방을 촉구하면서 중국·베트남과 비유했다. 정말 같다고 보고 말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 연유가 어떻든 베를린 선언이후 며칠새에 대북 제스처가 부쩍 는 것은 정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송위원 면담 자리에서는 ‘베를린선언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전직 대통령들과의 회동에서는 ‘북한이 응할 것’이라고 했다. 육사졸업식에서는 ‘어떤 레벨의 당국자회담도 응하겠다’고 했다. 베를린선언과 관련, 미국에 보낸 이정빈 외교는 ‘북한의 테러문제는 응징보다 재발방지가 중요하다’며 테러지원국 해제조건으로 랑군폭파, KAL기 폭파사건 등을 묻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러나 북한측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대통령의 재향군인회 간부들 접견이 있던 날 중앙방송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노동신문 논평을 보도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소위 통일애국인사 활동보장,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긍정적 변화 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이뿐 아니다. ‘남조선 집권자가 최근 해외에서 북남관계의 연설을 하면서 무슨 선언이란 것을 발표…’라고 한 방송보도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 비하의 어투로 보인다. 가관인 것은 북한의 보도내용보다 우리측 대응이다. 중앙방송을 가리켜 ‘북한이 베를린선언의 대응방법을 둔 내부조율 과정에서 1차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통일부 당국자의 논평은 제정신인지 의아스럽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의 냉전종식은 우리 역시 대통령 못지 않게 열망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유도해야 한다는 고충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벌이는 대북노크는 틀렸다. 북한 문제는 보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내외정세와 함께 신축성, 의연성 있는 객관적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같아서는 설사, 북한이 대좌에 나온다 해도 적당한 구실로 저들에게 일시 이용만 당하기 십상이다. 남북문제를 치적화에 급급하는 일방적 과욕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국회의원 신기루

고등학교 진학도 뒤로 한 채 연기학원에 다녀 청소년 드라마에 몇번 출연했던 한 10대가 상습적인 본드흡입자가 돼 경찰에 구속됐다. 드라마 출연이 좌절되고 결국 퇴출당하자 마약·본드에 손을 댄 것이다. 열 아홉살 때 주연급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던 한 여배우는 데뷔후 연기력 부족 등의 지적을 받고 물러난 뒤 강남의 한 술집 룸 살롱 ‘마담’이 되었다. 한때 10대들의 우상이었던 모 가수는 대마초 흡입으로 몇차례 구속되곤 하더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나이트클럽과 미장원에서 일하는 왕년의 인기 댄스그룹 멤버들도 있다. 10대들 중심의 편향된 대중문화가 연예계를 휩쓸면서 ‘스타 열병’에 시달리는 수 많은 N세대들이 이렇게 절망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한해 2천명이 넘는 신인가수들이 음반을 내지만 살아 남는 사람은 1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힘겹게 스타가 돼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가수의 경우 음반 50만장 이상을 팔아도 홍보·의상비용 등을 빼고 나면 용돈 정도만 남는다. CF나 이벤트 행사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입을 매니저나 제작사에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인과 매니저가 맺는 계약서를 ‘현대판 노예문서’라고 부른다. 5장의 앨범을 40만장 이상씩 팔며 활동중인 인기 댄스그룹 멤버 K씨의 경우도 번지르르한 외제 승용차 한대가 재산의 전부다. N세대들이 스타세계에 대한 환상으로 겉만 보고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가 이내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마치 요즘 4·13총선을 앞둔 정치판과 같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군상들을 보면 ‘스타 신기루’에 정신이 빠져 전후 좌우를 제대로 못가리는 N세대들 같아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국회의원 신기루’가 ‘스타 신기루’보다 더 허황되고 마약적인 것 같다. /청하

선진 교통문화 확립을

최근 수원시는 불법 주·정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까지 교통질서 확립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수원시 전역에서 불법 주·정차한 차량에 대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함은 물론 견인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원시의 이런 강력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내 곳곳에는 불법으로 주·정차한 차량이 많아 교통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응급환자 발생시나 화재시 구급차와 소방차 같은 긴급 차량출동이 어려워 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수원시의 교통체증은 이미 한계에 달하고 있다. 최근 도로 증가율은 0.5%인데 비하여 차량 증가율은 11.2%로 훨씬 높고 또한 출퇴근시 주행속도가 낮아지고 있어 불법 주·정차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다. 이에 시는 78명의 단속 요원을 배치하여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철저한 단속을 하여 선진화된 교통문화를 확립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불법 주·정차 문제는 최근에 야기된 상황은 아니다. 또한 수원지역만의 문제도 아니고 운전자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물론 불법 주·정차를 하는 운전자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과연 정부나 지자체에서 차량 증가에 따른 주차장과 같은 기본 시설 설치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진화된 교통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자들의 준법 정신과 교통 질서에 대한 폭넓은 이해이다. 아무리 강력한 단속을 해도 운전자들의 협조 없이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통질서를 지킴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또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질서 의식이 선행되지 않고는 당국의 단속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 무절제한 차량 운행을 줄이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중 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대중교통 노선에 대한 재정비도 필요하다. 대중교통이 시내전역에 고루고루 운행되어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지 않은가. 2002년 월드컵 대회를 개최하는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 위한 선진교통문화가 불법 주·정차 근절로부터 확립되기를 기대한다.

투표소, 장애인도 배려해야

이번 4·13총선에서도 장애인 유권자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선거때나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2·3층에 위치한 상당수의 투표소가 출입경사로와 휠체어 리프트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장애인들이 모처럼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됐다는 보도다. 경기도내 장애인 유권자는 관계기관에 등록된 장애인 9만6천여명 중 70%인 6만7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도 선관위에서 설치예정인 2천272개소의 투표소 가운데 장애인이 투표하기 어려운 2·3층 또는 지하에 마련된 투표소는 423곳(19%)에 이른다. 장애인 상당수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헌법이 명시한 투표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될 처지에 있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을 위한 부재자 투표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거동이 불가능한 재가(在家)중증 장애인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지체장애인협회는 재가중증 장애인을 제외한 장애인들이 투표장에 나간다 하더라도 투표소가 지하나 2·3층에 설치됐을 경우 편의시설이 없거나 장애인들을 도와줄 종사자들이 없기 때문에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우리가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식과 함께 장애인의 복지증진을 다짐해 온지 올해로 20년째다. 그런 장애인의 날을 며칠 앞두고 치러질 4·13총선의 투표소 중 2·3층에 설치된 투표소가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아 이들이 주권행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복지증진은 커녕 이들에게 불편없는 주권행사의 장(場)조자 마련해 주지 못하는 실정은 장애인 처우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아직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인권보호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일체의 차별을 없애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시책에서 ‘장애인 우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상이며, 그동안 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겉돌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형편에서 ‘선진형 복지’니 ‘사회안전망 구축’이니 하는 구호들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 관계당국은 당장 투표소 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기가 어렵겠지만, 이번 선거엔 1층에 장애인을 도와줄 종사자들을 배치, 이들이 주권행사에 불편이 없도록 각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심 못잡는 경제정책

최근들어 유가 및 원자재값 인상, 미국증시 불안 등의 외부악재와 환율불안, 금융시장 혼란, 무역수지 비상 등 내부 악재가 맞물리면서 제2차 외환·금융위기 발발에 대한 황색경보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정부가 경제정책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은 심히 우려되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4·13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의식해서인지 정책 방향이 갑자기 뒤집히고 있는 사례가 속출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환율대책의 경우 재경부 고위관계자가 지난 7일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대거 유입으로 원화환율이 달러당 1천1백10원대까지 급락하자 ‘조만간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1조원어치 추가발행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 재경부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번복했다. 대규모 외평채 발행소식이 전해지면서 회사채금리가 다시 10%선에 육박하는 등 금리가 뛰었다는 것이다. 유가대책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재정경제부 차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유가 급등은 단기에 그쳐 성장·물가·국제수지 등 경제운용의 기본틀을 흔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유가관련 세금을 인하하고 정부 비축유를 민간에게 대여하는 등 가능한 조치들을 동원해 국내 유가는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도 유가전망이나 대책 양면에서 지나치게 단기적일뿐 아니라 유가전망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금세 나왔다. 최근의 대외 경제변수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해 정책대응에는 어차피 버릴 것은 버리는 선택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론을 제시하기 보다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면서 정책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실상을 자꾸 덮어 두면서 정책대응을 소홀히 하면 국제투기자본의 공격을 자초하는 등 사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실제 상황이 이러한데도 임기응변식 대응을 계속 한다면 또 다시 불행한 경제대란을 겪게 될 것이다. 정부는 정치권을 의식하지 말고 과제별로 순차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기를 바란다.

地自體長 선거개입 안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총선개입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 4·13 총선이 초장부터 과열돼 사상 유례없는 혼탁 타락선거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도내 몇몇 지자체장들이 선거개입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주의와 경고조치를 받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당에 소속된 지자체장은 통상적 정당활동은 할 수 있으나 일반 유권자를 상대로 하는 선거운동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다. 대통령이 여당총재이면서도 선거관리에 엄정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자체장들도 설사 자기가 당원이라도 선거관리에서는 엄정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지자체장들은 지구당 개편대회나 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에 참석, 자기 당 공천자에 대한 지지발언과 축사를 했고, 지역소식지에 국회이원들의 인사문을 게재했다는 것이다. 우리 선거역사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가 ‘관권개입’임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지자제 실시전 임명직 시장 군수들에 의한 선거개입가능성은 주로 여당후보 지원이나 자신의 입후보 대비에 관한 것이었으나 정당공천 단체장들의 개입은 여당지원뿐 아니라 야당지원도 가능하게 되는 등 정당대결의 양상이 나올 수 있다. 공명선거를 훼손함은 물론 지방자치의 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적을 가진 단체장들이 일선행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어떤 선거든지 행정의 엄정중립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각 정당이 사활을 걸고 뛰는 총선의 소용돌이와 열풍은 지자체장들이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이번 선관위의 조치는 중립적 위치에서 자칫 일탈하기 쉬운 지자체장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지자체장들은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을 만큼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최소한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미리 알아보고 문제가 되지 않게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아울러 부하 공무원들의 엄정중립유지도 각별히 감독해야 한다. 각 정당들도 소속단체장에 대해 중립을 지키기 어렵게 하는 어떤 부담도 줘선 안된다. 단체장들의 잘못된 처신으로 지방행정의 중립과 총선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바오로 2세

바티칸시국(市國)이 독립한 것은 1929년이다. 교황 비오11세가 이탈리아 정부와 맺은 라테라노조약에 의해 로마 서쪽에 있는 지금의 바티칸 땅을 매입했다. 면적은 44만㎡에 인구는 1천200여명으로 독자적인 화폐와 우표를 발행한다. 초미니국가지만 세계적인 강국이다. 세계인구의 7분의1에 해당하는 카톨릭교도의 본산으로 60여개국에 대사 및 공사를 교환하고 있다. 바티간의 수장(首長)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다.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가 팔레스티나 포교활동에 이어 로마의 사교로서 사교좌(司敎座)를 로마에 정하고 포교하다 순교한 이후, 로마의 사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로 공인받게 된 것이 로마 교황의 기원이다. 지금의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67대 교황이다. 바오로 2세가 지난 12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서 가진 사순절 미사에서 카톨릭이 지난 2000년간 저지른 죄를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특별미사를 집전했다. 진리추구를 빙자한 중세기의 종교재판(마녀재판), 십자군전쟁을 비롯 타종교 및 유태인 박해, 여성억압, 인종차별 등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외신은 ‘교황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문을 읽었다’고 전했다. “교회의 체면을 손상시켜온 이런 행동과 악이 저질러지는데 대해 우리 각자가 맡았던 역할에 대해 우리는 솔직하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또 “그동안 카톨릭이 당해온 박해에 대해서도 가해자들을 용서할 준비가 돼있다”며 참회와 관용의 모습을 함께 보였다. 하느님에 대한 고해와 인류에 대한 참회의 교황 고백문은 역사적 평가가 가능하다. 새천년을 맞아 새롭게 출발하는 카톨릭의 용기가 무척 신선해 보이는 것은 용서를 구할 종교가 비단 카톨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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